2023년 4월 게시판 & 방명록

게시판 & 방명록 2023. 4. 1. 13:35 Posted by 해양장미

 벚꽃철입니다. 그리고 2023년도 어느 새 2분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봄꽃은 예쁘게 피었으나 매일같이 황사가 잔뜩 끼어있고, PM 2.5 수치도 제법 높습니다. 코로나가 아니라 황사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합니다. 

 

 최근에 민심은 일본에 대해 좋지 않으나, 실제 우리 일상을 나쁘게 만드는 쪽은 역시나 중공입니다.

 

 기온의 변동이 심한 환절기입니다. 추워지지 않나 살펴서 옷을 잘 챙겨야 합니다. 코로나도 거의 끝났고, 공기도 좋지 않으니까 컨디션이 좋지 않은 분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건강관리를 잘 하고, 먼지가 적을 때 틈틈이 바깥운동도 챙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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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지명 정리 Ver 3.0

사회 2023. 3. 25. 23:32 Posted by 해양장미

 인천에서 현지에서 통용되거나 예전에 쓰던 지명 등을 다룹니다. 가나다 순입니다. 차후 업데이트될 수 있습니다.

 

(2022/01/05 대규모 업데이트. Ver 2.0)

(2022/01/13 구송도 내용 추가, 정렬 오류 수정. Ver 2.1)

(2023/01/03 부평, 원통이고개 내용 일부 추가. Ver 2.11)

(2023/01/15 내용 일부 수정. Ver 2.12)

(2023/03/23 내용 일부 수정. Ver 2.13)

(2023/03/25 대규모 업데이트. Ver 3.0 추가 항목 - 가천대 길병원, 가톨릭관동대학교국제성모병원, 가톨릭대학교인천성모병원, 가현산, 경인교육대학교, 경인선, 경인여자대학교, 계양꽃마루, 도봉산(고등학교), 도화지구, 드림파크, 루원시티, 미추홀공원, 부평공원, 북인천, 선인체육관, 소래습지생태공원, 송도달빛축제공원, 송도센트럴파크, 송도컨벤시아, 수봉공원, 수인선, 신포국제시장, 아라마루, 아트센터인천,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연안부두, 연희공원, 인천국제공항철도, 인천나비공원, 인천대공원, 인천대학교, 인천 도시철도 1호선, 인천 도시철도 2호선, 인천문화예술회관, 인천재능대학교, 인하대학교, 자유공원, 정서진, 중앙공원, 차이나타운, 청라국제도시, 청라호수공원, 포스코타워, 해돋이공원)

 

 

BYC거리

 

: 연수구 연수2동에서 청학동까지 걸쳐있는 상권을 의미합니다. 정식 명칭은 연수동 맛고을길 정도. 어원은 먼우금사거리에 있는 BYC 직영점입니다. 꽤 넓은 규모의 상권으로 연수구청 인근이며 북쪽으로 연수역이 지나가는, 도시설계상 연수구의 중심가. 실제 한동안 연수구 제1상권이었으나 송도국제도시가 흥한 현 시점에서는 연수지구의 중심상권 정도의 위상이 되었습니다. 연수역이 본래 도시계획보다 너무 늦게 생긴 건 이 상권에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원래 계획은 수인선 연수역이 인천 1호선 신연수역보다 먼저였지요.

 

 

 

 

 

NDS

 

: 법정동 남촌동, 도림동, 수산동을 의미합니다. 행정동 남촌도림동과 같은 의미입니다. 많은 지역이 그린벨트에 해당하며 인구밀도가 매우 낮은 지역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도시 느낌이 아니었는데, 근래엔 그나마 농산물도매시장도 생기고 개발도 조금씩은 되는 분위기입니다만... 그래도 인근 구월동에 비하면 여전히 별세계입니다. 대도시 한복판의 소도시.

 

 

 

 

 

6, 8공구

 

: 송도국제도시 6, 8공구를 의미합니다. 서쪽에 좀 외진 편이고, 근래 개발이 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공구 이름으로 불릴 때가 많습니다. 현 행정동으로는 송도4동의 옐로 선셋 레이크를 포함한 서쪽과 송도5동 주거지역이 6, 8공구입니다. 송도국제도시 전체로 보면 1공구부터 11공구까지 있는데, 송도국제도시 현지인은 송도1동~5동 구분보다는 공구 넘버로 동네를 구분합니다.

 

 

 

 

 

가정오거리

 

: 현재 가정오거리는 사라졌습니다만, 여전히 예전 이름을 사용하게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현재의 가정역 및 루원시티가 있는 곳입니다. 예전에는 이곳에 오거리가 있었습니다. 루원시티는 현지에서는 청라와 구분하지만 외지(인천 내 타 지역 포함)에서는 많이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서, 해당 지역은 그냥 청라 쪽이라고 하거나 구분해서 부를 때는 가정오거리 쪽이라고 많이 부릅니다. 지금은 오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찾아도 없습니다.

 

 

 

 

가천대 길병원

 

: 인천 최대 규모의 상급종합병원. 구월동 도심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공식적으로는 가천대학교 의과대학의 교육협력병원입니다.

 

 길병원이라는 이름은 가천대학교 총장 이길여 여사에게서 딴 이름입니다. 이길여 여사는 1958년에 중구 용동에 이길여산부인과의원을 개원했는데, 그것이 길병원의 기원입니다. 이후 이길여산부인과의원은 종합병원으로 발전하였고, 1987년에는 현재의 위치에 중앙길병원을 신축하여 이전합니다. 이후 구월동의 길병원은 가천의대 길병원이라는 이름을 거쳐 현재의 가천대 길병원이라는 이름이 붙게 됩니다. 본래의 중구 용동에 있던 길병원은 동인천길병원으로 불리는데, 그곳이 가천대학교 의과대학의 명목상 부속병원이긴 합니다.

 

 길병원은 여러 모로 활동도 많고 사건사고도 많은 병원으로 황천길병원, 킬병원 같은 부정적인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도심에 위치해있고 연구도 많이 하고 규모도 큰 상급종합병원이라 언제나 사람이 넘쳐납니다. 병원으로 종합적인 평가는 인천에서 세 번째.

 

 남동대로와 인주대로가 교차하는 사거리의 이름이 길병원 사거리인데, 실제 길병원은 약간 더 북쪽에 있습니다. 건물을 순차적으로 늘려온 병원이다보니 응급실 및 암센터와 본관이 남동대로를 사이에 두고 갈려있는데, 지하도를 통해 내부에서 이동 가능하나 입원 시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진료를 받을 때 종종 제법 긴 거리를 이동해야 합니다.

 

 전철로 방문할 때는 예술회관역이 시간상 가장 가깝고, 도보로 800미터 정도를 이동해야 합니다. 거리상으로 가장 가까운 역은 인천 2호선 석천사거리 역이지만 길을 건너야 합니다. 2호선 기준 인천시청역보다는 석천사거리 역이 조금 더 가깝습니다.

 

 

 

 

가톨릭관동대학교국제성모병원

 

: 서구 심곡동(행정동 연희동)의 가톨릭관동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통칭은 국제성모병원입니다. 2014년 개원하였고, 기존에 있던 부평성모병원(성모자애병원)과 종종 혼동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인천에서 그냥 성모병원이라고 하면 보통 부평성모병원(성모자애병원)을 의미하기 때문에, 국제성모병원은 반드시 국제성모병원이나 서구성모병원이이라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천주교 인천교구 산하에 있습니다.

 

 개원 이후 아라뱃길 이남의 서구 거점병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서구청에서 가깝고, 천마산 기슭에 위치합니다. 병원으로 종합적인 평가는 인천 내 4번째 정도입니다.

 

 

 

 

 

 

가톨릭대학교인천성모병원

 

: 통칭 성모자애병원 또는 부평성모병원. 1955년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의해 설립된 인천 최초의 대학병원입니다. 당시에는 천주교 인천교구가 없었기 때문에 서울대교구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설립 당시부터 2008년까지는 이름이 성모자애병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성모자애병원이라고 많이 부릅니다. 국제성모병원이 생긴 이후에는 구분을 위해 부평성모병원이라고도 부릅니다. 인천에서 그냥 성모병원이라고 하면 대체로 국제성모가 아니라 이 성모자애병원을 의미합니다.

 

 서울대교구가 설립한 후 성모자애병원은 1963년에 한국수녀복자수녀회가 경영권을 가져갔다가 2005년에 천주교 인천교구로 경영권이 이전됩니다. 다만 경영권은 인천교구가 가지고 있으나, 관련 대학은 국제성모와 달리 서울에 있는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입니다.

 

 인천에 셋 있는 상급종합병원 중 하나로 병원으로의 종합적인 평가는 인천 내에서 두 번째입니다. 위치는 부평역 북쪽이라 역 기준으로는 동수역에서 더 가깝고, 만월산터널 북쪽 입구에서 가깝습니다.

 

 오래 된 지역거점병원인만큼 부평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들 중 제법 다수는 인생의 첫 호흡을 성모자애병원에서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가현산

 

: 인천 본토 최북단의 산. 높이는 214.9m입니다. 정상은 인천 권역이지만 북쪽 사면은 김포시 권역입니다. 인천 산이지만 남쪽 사면으로는 마전지구 정도만이 도시지역인 반면, 북쪽 사면으로는 곧바로 김포 한강신도시이기 때문에 실제 등반객은 김포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진달래가 많은 산이고, 등반 난이도가 낮아 많은 사람들이 봄에 이 산에 오릅니다.

 

 

 

 

깡시장

 

: 부평시장역 근처의 연담화된 시장 중 하나. 예전에는 그냥 ‘깡시장’ 또는 ‘(부평)농산물도매시장’이라 했는데, 요새는 보통 ‘부평 깡시장’이라 부릅니다. 그리 멀지 않은 부천역 남쪽에도 부천깡시장이 있긴 한데, 그쪽은 부천 토박이들이나 아는 시장이 되어 있습니다.

 

 ‘깡’은 경매를 ‘깡 부른다’고 하던 말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도매시장이라는 뜻인데, 지금은 딱히 도매시장은 아닙니다. 현재의 부평시장은 다수의 시장이 합쳐진 형태가 되어서, 깡시장은 부평시장 중 일부 구역에 붙은 이름이 되었습니다.

 

 

 

 

 

 

검단

 

: 1994년까지 김포군 검단면이었던 지역으로 인천 본토의 북쪽입니다. 당시 인천직할시가 광역시로 승격되면서 강화군, 옹진군과 함께 김포군도 편입이 논의되었었는데, 김포군 내에서 의견이 갈려 주민투표를 했고 그 결과 검단면 사람들만 인천 편입에 찬성하여 검단면만 인천광역시가 되었습니다.

 

 검단은 본래 인천지역은 물론 부평지역과도 거리가 있었고, 후술할 계양동(면)과도 거리가 있어 교류가 많지 않았습니다. 또한 90년대 초반만 해도 대부분의 지역이 오지였고, 지형도 한남정맥에 속하는 구릉지대라 인천 편입 이후에도 개발이 신속하게 되지는 않은 곳이 많습니다. 다만 어느 정도는 90년대에 이미 신도시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발굴된 유적으로 박물관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후술할 경인아라뱃길 공사 이후에는 서구에 속하는 아라뱃길 이북 지역은 모두 검단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생겼는데, 아라뱃길 이북 서구 지역 중 그럴만한 게 본래 검단면이 아니었던 지역은 일부에 불과하고, 그 일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이 소수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도시가 된 지 25년 이상 지나고 있지만 아직 검단 지역과 그밖의 인천지역이 완전히 한 도시가 되었다고 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검단은 구릉지다보니 원래 외지기 쉽고, 인천 타 지역에서 굳이 검단에 가볼 일이 별로 없습니다. 경인아라뱃길 때문에 교류가 더 없기 쉽기도 하고요. 본래 검단면에 속하지는 않았던 드림파크나 독정역 인근까지는 그나마 서구에서 왕래가 있습니다만, 진짜 검단 안쪽까지는 타 인천지역에서 거의 오고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검단 사람들 중 제법 다수가 오고다니는 생활권이 김포, 일산, 서울입니다. 인천에 대한 외부의 오해 중 하나가 인천을 서울 위성도시라고 보는 건데요. 인천은 어떤 기준으로 봐도 서울의 위성도시라고 볼 수 없습니다만, 예외적으로 검단만은 서울의 위성도시 성격이 있는 지역입니다.

 

 

 

 

 

검암

 

: 서구 검암동 일대의 지명입니다. 이름의 유래는 검은 색을 띤 큰 바위가 있어서 지어졌다고 하고, 서인천고에 있는 검바위가 그 기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본래는 그보다 큰 검바위도 있었는데 학교 공사하는 과정에서 큰 건 사라지고 작은 것만 남았다고도 전해집니다.

 

 해당 지역에 인천2호선 역이 두 개 있고 서인천고 바로 앞에 있는 역명은 검바위, 보다 북쪽에서 AREX(공항철도)와 환승하는 역 이름은 동명과 같은 검암입니다. 검바위와 검암이 이름 뜻은 같지만 구분해서 부르고 있고, 그래서 검바위역의 중국어 이름은 黔石 입니다.

 

 바로 북쪽이 검단이고 이름이 유사하기 때문에 검암동은 검단과 흔히 혼동됩니다. 그러나 검암동은 아라뱃길 남쪽이고, 검단은 아라뱃길 북쪽입니다. 검암 생활권은 검단이 아니라 서구청 일대에 속합니다.

 

 

 

 

 

 

검바위 롤러코스터

 

: 검바위역 앞의 인천도시철도 2호선 경사구간을 롤러코스터 구간이라 부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철도 경사를 체험할 수 있는 구간으로, 실제 보는 거나 전철을 타고 체감하는 것보다 사진을 찍었을 때 착시로 극단적인 경사처럼 보이게 됩니다. 실제 타보면 의외로 그리 별 느낌이 아닙니다.

 

 

 

 

 

경서지구

 

: 청라 북쪽, 검암 서쪽에 고립되어 있는 도시화된 주거지역입니다. 05~06년 정도에 준공된 주택들이 있고, 인천 본토 최고의 오지. 청라나 서구청 일대, 검암 쪽에서 먼 건 아닌데 도보로 이동할 만한 거리도 아니고, 2021년 현 시점에서 주변에 다른 연담화된 지역이 없기 때문에 많이 외집니다. 외진 곳을 좋아하는 사람한테 추천할 만한 지역 중 하나.

 

 

 

 

 

경인교육대학교

 

: 계양구 경인교대 역 근처에 있는 교육대학교. 각 지역마다 있는 초등교사를 양성하는 대학으로, 20032월까지는 인천교육대학교였습니다. 근처의 역명도 인천교대였고요. 그러다가 2003년에 경인교육대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안양시에 경기캠퍼스를 만들어 이원화캠퍼스로 운영중입니다. 경인교대생들은 1~2학년은 인천 캠퍼스에 다니고, 3~4학년은 안양 캠퍼스에 다니게 되어 있습니다.

 

 인천 캠퍼스는 천마산 자락에 위치해있고, 계산동-작전동-효성동 3개 동에 걸쳐 있습니다. 경인교대 입구쪽에서 효성동쪽으로 가는 최단루트가 캠퍼스를 지나는 것이기 때문에, 인근 주민들이 경인교대 캠퍼스 내를 지나가기도 합니다. 1~2학년만 다녀서인지 교대 특성인지 경인교대 인천캠퍼스는 꽤나 조용한 캠퍼스입니다.

 

 

 

 

경인선

 

: 트램을 제외한 한반도 최초의 철도 노선. 1899년에 인천 축현 우각동 부평 소사 오류동 노량진의 7개 역으로 개통되었고, 증기 기관차가 다녔습니다. 당시 공사를 진행한 게 미국이었기에 (다행히) 일본식 협궤가 아니라 미국식 표준궤로 깔렸고, 이후 우리나라의 철도는 기본적으로 표준궤가 됩니다. 이후 1900년에는 경성까지 연장되었으며, 시간이 더 지난 이후 축현역은 동인천역으로 개명하고 소사역은 부천역으로 개명하게 됩니다. 현 소사역은 당시의 소사역과 다른 위치에 새로 생긴 역입니다. 그리고 우각동역은 1906년에 사라지는데, 우각동역 때문에 선로가 크게 꺾여있었고 이후 직선화 작업을 거칩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 우각동역 근처에 생긴 역이 현 도원역입니다.

 

 한편으로 1905년에 경부선이 생기면서 구로 경성 구간은 경인선이 아닌 경부선에 편입됩니다. 이후 경인선은 인천 구로 구간을 의미하게 됩니다.

 

 1965년에는 경인선이 복선화됩니다. 그리고 1974, 서울 지하철 1호선이 생기면서 경인선도 수도권 전철 1호선에 편입됩니다. 그러 니까 경인선은 1974년부터 전철이 된 거고, 그 이전 시대가 더 길었습니다. 그렇지만 1호선에 편입된 이후에는 실제로 경인선이라는 명칭보다는 1호선이라고 주로 부릅니다. 경인선이라는 이름을 굳이 쓰는 경우는 1호선 중 경인선 구간을 구분할 필요가 있을 때만 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인선은 한국 최초의 철도노선임에도 불구하고 복복선 전철로만 운영되고 있고, 일반열차가 다니지 않습니다. 아주 가끔 관광용 일반열차가 들어오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도시철도만 다니고 있습니다. 플랫폼 자체가 여객열차용 플랫폼이 없고, 인천에서 여객열차를 타려면 영등포나 용산까지 도시철도로 가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구로삼각선을 이용하면 경인선에서 경부선으로 바로 나갈 수 있습니다만 운행하는 여객열차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천시민들은 타 지역으로 나갈 때 여객열차보다 고속/시외버스를 많이 탑니다.

 

 한편으로 예전에는 경인선에 화물열차가 많이 다녔습니다. 그러나 이젠 화물열차가 다니지 않습니다. 트럭과 도로가 좋아져서 이제 예전처럼 화물열차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인선은 00년대에는 극단적으로 혼잡한 열차였습니다. 이후 공항철도, 7호선 등이 연장되면서 예전보다는 덜합니다만 여전히 매우 혼잡하며 무질서도가 높은 노선입니다. 실제 출퇴근 시간에 타보면 다른 노선에 비해 승차감이 매우 나쁘고 밀고밀리는 정도가 심한 편이라 객차 내 혼잡도가 비슷해도 다른 노선보다 경인선을 타는 게 더 힘듭니다.

 

 이 원인 중 하나는 선로에 있습니다. 경인선 선로는 분기가 많고 낡은 편이며 실외에 있어 노화가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승차감이 안 좋습니다. 게다가 경인선쪽은 워낙 구도시라 좀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편입니다. 그래서 경인선은 여러 의미로 악명이 꽤 높습니다. 오죽하면 전장연도 경인선은 멈춰세우지 않는다고 하지요.

 

 복복선이다 보니 경인선에는 동인천-용산 구간에 급행열차가 많이 다니고, 특급열차도 다닙니다. 소요시간은 동인천-노량진까지 완행 58, 급행 43, 특급 38분 정도입니다. 급행열차는 동인천 제물포 주안 동암 부평 송내 부천 역곡 개봉 구로에 정차하고, 구로부터 용산까지는 모두 정차합니다. 특급열차는 여기서 제물포, 동암, 개봉, 신길, 대방이 빠집니다. 급행과 특급열차가 있기 때문에 경인선에 여객열차가 안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급행열차가 아이러니하게도 부천시 주요 환승역에 정차하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서해선 환승역인 소사역과 7호선 환승역인 온수역에는 급행열차가 정차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급행이 소사와 온수에 정차하게 되면 더 이상 급행이라 부를 수 없는 수준이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환승역이 아닌 개봉역에는 2016년부터 급행이 정차하고 있는데, 그 이후 급행의 체감속도가 꽤 느려졌습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경인선 배차는 급행 배차 때문에 완행 배차간격이 조금 넓습니다.

 
 

 

경인여자대학교

 

: 계양구 계산동에 위치한 여자대학교. 본래 2년제 전문대학이라 경인여자대학이었는데, 2012년에 경인여자대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습니다. 간호학과는 4년제, 유아교육과는 3년제, 나머지 다른 과는 2년제인 대학교입니다.

 

 가장 가까운 역은 계산역이고 계산명의 부역명이 경인여자대학교인데, 실제 계산역에서는 약간 거리도 있고, 계양산 자락의 경사 때문에 실제 거리보다는 멀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계양구 현지 기준으로 이야기하면 계산역 사거리보다는 계산삼거리(옛 홍진아파트) 쪽에 있습니다.

 

 특이사항으로는 바로 옆이 계양구 예비군훈련장입니다. 시기에 따라서는 여대에서는 축제를 하는데, 바로 옆에서는 사격을 포함한 예비군훈련을 합니다.

 

 

 

 

 

 

 

경인아라뱃길

 

: 인천 서구 오류동의 정서진에서부터 김포와 서울의 경계 아라갑문으로 이어지는, 황해와 한강을 잇는 운하입니다. 운하의 폭은 80m 정도. 서해에서 서울 한강까지 직통으로 잇는 뱃길로 많은 기대와 우려 속에 준공되었습니다만, 결과는 우려했던 쪽에 가깝고요. 수운 역할은 못하는 대신 근사한 공원이자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만든 자전거 도로이자 성능 좋은 홍수방지시설입니다. 아라라는 이름은 아리랑의 가사 ‘아라리요’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이하 여러 번에 걸쳐 후술하겠으나 경인아라뱃길 프로젝트의 시작은 고려 무신정권 시대부터였습니다. 그 완공을 21세기에 하게 된 것이고요. 아마 좀 이른 시대에 완공했으면 수운으로도 잘 활용했을 것이나,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시대를 잘못 만났습니다. 다만 본래 기대된 두 번째 역할이 홍수가 잦은 부평평야의 홍수 방지용인데, 아라뱃길 완공 이후 부평평야에 홍수가 나지 않는 걸 보면 그 역할은 잘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라뱃길은 자전거 도로로 명성이 높습니다. 곧은 운하를 따라 자전거도로가 쭉 뻗어있는데, 한강처럼 사람이 많지 않고, 고저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꽤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풍향은 거의 항상 바다 -> 한강 쪽이기 때문에 동 -> 서로 가는 건 맞바람이라 상대적으로 어렵고, 서 -> 동 방향은 속도가 잘 나옵니다. 사람이 좀 더 많은 곳은 뱃길 남쪽 길인데, 뱃길 북쪽 길이 좀 더 경치 등이 근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원

 

: 고려 초기 1133년까지, 그리고 1390~1392년에 잠시 인천지역에 붙었던 이름입니다. 한자로는 慶源. 앞 시기에는 경원군이었고 뒷 시기에는 경원부였다는 차이가 있지만, 오래 쓴 이름이 아니고 잘 알려지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이 이름을 딴 경원중학교가 미추홀구 주안동에 있고, 연수구에서부터 부평까지 이어지는 인천의 주요 도로 중 하나인 경원대로도 이 이름을 따왔습니다.

 

 

 

 

 

 

계산지구

 

: 계산택지, 계산택지지구로도 부르는 계양구의 중심지로 행정동 계산4동 및 행정동 작전서운동, 그리고 법정동 병방동에 걸쳐있습니다. 계양구청과 계양경찰서, 소방서, 우체국 및 계양구 중심 상권이 있는 지역이며, 주거지역은 전부 고층아파트로 되어있고 북쪽에서부터 학마을, 용종마을, 초정마을, 은행마을, 도두리마을, 까치마을의 여섯 지역으로 나뉩니다. 이 지역의 아파트들은 건설사/단지별이 아니라 마을 단위로 동 넘버가 붙는 특성이 있는데, 예를 들어 학마을 아파트는 첫 숫자는 1이고, 그 다음은 학마을 아파트 전체에 01부터 동 넘버가 붙습니다. 101동부터 145동까지 있는데, 단지는 네 단지가 있지만 상관없이 동 넘버가 올라갑니다. 계산택지와 인접해 있지만 작전2차 현대아파트, 서운동 경남아너스빌, 계양임광그대가, 계양효성해링턴플레이스는 계산택지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이 마을 체계와 동 넘버 체계와 무관한 독자적인 동 넘버가 붙어있습니다.

 

 

 

 

계산천

 

: 본래 계산동 일대를 흐르던 하천이었습니다. 90년대에 대부분의 구간이 복개되어 도로화되었는데, 도로명에 그 흔적이 남았습니다. 계산천서로, 계산천동로, 계산새로에 속하는 구간이 본래 계산천이었습니다. 이 하천의 흔적으로 계산천서로와 계산천동로 및 그 주변 길은 구릉지가 아님에도 반듯하지 않습니다. 본래 하천 근처에 있던 자연적인 주거 환경의 모습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계산천은 서부간선수로에서 굴포천까지 이어지는 짧은 구간만이 남았습니다. 굴포천의 지류에 속합니다.

 

 

 

 

계양구

 

: 인천광역시 본토 북동쪽의 자치구. 과거 부평도호부 시절도 그렇고, 그 이전 시대도 그렇고 삼국시대부터 쭉 부평지역의 중심지였으나, 경인선이 생긴 이후 부평역이 있는 현재의 부평구 쪽으로 중심지가 넘어간 이후 외곽 주거지역화된 자치구입니다.

 

 인천 본토에서 가장 넓고 권역이 큰 산인 계양산과 아라뱃길을 끼고 있어 전체 면적의 2/3 정도가 산지 또는 농지이며, 북동쪽으로는 김포공항 활주로 일부를 포함하여 그 주변 지역은 오지로 남겨둔 상태이기도 합니다. 부평구와 가까운 남쪽 지역에 대다수의 인구가 거주 중이며 90년대에 많은 인구가 이주해 살다가 근래는 인구유출지역이 된 상태. 오래된 지역은 쇠락의 징후가 현저하여 과감하고 광범위한 재개발이 필요합니다만 복합적인 문제로 추진이 잘 되는 지역은 아닙니다.

 

 녹지가 많아 전반적으로 공기가 좋고 부평평야지대라 평지가 많으며, 신도시 지역은 실거주자들의 만족도가 높고 서울 강서구, 양천구와 가깝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강서구와는 접경하고 있어서 인천과 서울의 유일한 접경지입니다. 다만 위치 특성상 인접한 부평구, 서구를 제외한 인천 안쪽과는 교류가 다소 적은 편이며, 토박이들은 부평구쪽 못지않게 현재의 부천시, 김포시 고촌읍 및 사우동 일대, 김포공항 인근과도 전통적으로 교류가 있어왔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강화-김포-계양 지역은 순무를 먹는 공통점이 있기도 합니다. 다만 계양구 토박이는 드물기 때문에 순무를 아무데서나 쉽게 보거나 먹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강화도는 순무를 특산물화하여 팔고 있지만 김포, 계양 지역에서는 그냥 토박이들이 자급자족하는 정도입니다. 순무김치 나오는 음식점이 계양구에 가끔 있긴 한데 흔하지는 않습니다.

 

 본래 부평구와는 하나의 구였고, 00년대만 해도 계양구는 부평구에서 이어지는 주거지역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공항철도가 개통되어 계양구에서 서울로의 독립적인 접근성이 높아지고, 부평구 일대가 쇠퇴하면서 2010년대 들어 계양구는 부평구에서는 보다 독립적인 성향을 가지게 됩니다. 다만 본래 태생이 주거지역이고 일자리가 많은 자치구는 아니라서 여전히 다수의 계양구민들은 자치구 밖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습니다.

 

 

 

 

계양꽃마루

 

: 계양구 서부간선수로 인근의 꽃밭. 인근에는 양궁장과 벨로드럼, 그리고 인천대한항공 점보스 배구단의 홈구장인 인천계양체육관과 서운체육공원 및 인천광역시 농업기술센터가 있습니다. 겨울철에는 얼음썰매장을 개장합니다.

 

 공원으로의 구성은 드림파크와 유사합니다만 드림파크에 비하면 면적이 좁습니다. 다만 남쪽으로 봉오대로 건너편까지 공원 구역이 꽤 이어져있을 뿐만 아니라 서부간선수로가 부평구 삼산동부터 시작하고, 드림파크 북쪽으로는 계산천을 따라 굴포천까지 이동할 수 있고, 굴포천 북쪽으로 가다보면 아라뱃길이 나오므로 관광/트래킹 코스를 잘 짜면 즐기기 좋은 꽃밭입니다.

 

 

 

 

계양동

 

: 계양구 북쪽의 행정동. 계양 1동부터 3동까지 있는 광범위한 행정동이며, 계양구 전체 면적의 2/3정도를 차지합니다. 본래는 부평도호부에 속하였으나 1973년부터 1989년까지는 경기도 김포군이었던 지역입니다. 그래서 한참 한국이 도시화되던 시절에는 인천이 아닌 김포였고, 1990년대 들어서야 인천에 편입된 바깥쪽 지역입니다.

 

 19개의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래 임학동, 병방동은 계산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도시지역이었고 인천도시철도 1호선 완공 및 동양지구 개발 이후에는 박촌동, 동양동, 귤현동, 그리고 아라뱃길 이북의 장기동 및 이화동, 그리고 오류동 일부도 도시지역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계양동에 속하는 지역 중 아직 꽤 넓은 지역이 계양산 일대 및 농경지, 김포공항 활주로 및 그 인근으로 개발이 어렵습니다. 특히 계양산은 주민들이 나서서 개발을 막은 곳이기도 하고요.

 

 

 

 

 

계양산

 

: 인천 본토 최고봉. 높이는 해발 395.4m. 본래 부평도호부 최고봉이었으며, 강화군 편입 이전에는 인천직할시 최고봉이기도 했습니다. 단순하게 높이로만 보면 그렇게까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주변이 해안 평야지대라 워낙 지대가 낮고, 주변에 다른 높은 산이 없어 계양산 정상을 중심으로 직선거리 24km 내에서는 가장 높은 산입니다. 계양산에서 가장 가까운 계양산보다 높은 산은 관악산입니다. 그 다음으로 가까운 산은 인천광역시 최고봉인 마니산이고요. 현재 인천광역시에서 계양산보다 높은 산들은 모두 강화도에 있습니다.

 

 평야지대 최고봉이고 주변에 높은 산이 없는 만큼 날씨 좋은 날의 계양산 정상에서는 굉장히 먼 곳까지 볼 수 있습니다. 파주, 개성, 대부도, 롯데월드타워까지 시야 안입니다. 광범위한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만큼 항공관측장비가 나오기 이전에는 군사적 요충지였고, 고대에는 산성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개발되기 이전에는 산세가 험하기로 유명하기도 했습니다.

 

 롯데에서 계양산 토지를 많이 소유하고 있고, 개발하여 골프장과 테마파크 등을 만들려는 시도를 장기간 해왔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이 천주교세와 함께 개발을 막아, 롯데가 결국 포기한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계양구는 민주당의 텃밭이 되어버렸고, 또한 동시에 유감스러울 정도로 개발, 재개발, 재건축 등이 어려운 지역이 되어버렸습니다.

 

 

 

 

 

 

계양산팔각정

 

: 정상쪽 말고 계산역 쪽에서 가장 일반적인 등산로로 계양산을 오르면 육각정자가 하나 있는데, 지역 랜드마크로 실제로는 팔각이 아니지만 다수가 팔각정이라 부릅니다. 육각정을 팔각정이라 부르는 것이니, 다른 데서 팔각정을 찾으면 안 됩니다. 실제로는 육각인 건 대체로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육각정이라 불러도 사람들이 대체로 이해는 합니다.

 

 

 

 

계양천

 

: 계양산 북쪽 둑실동 쪽에서 발원하여 김포로 흐르는 하천입니다. 발원지가 아라뱃길 이북에 속하며, 검단을 지나 북쪽으로 흘러 한강으로 이어집니다. 지류로는 나진포천이 있습니다.

 

 이름이 계양천인 것과는 별개로 계양구 일대와는 별 상관이 없는 하천으로, 유역은 주로 서구와 김포 쪽에서 이용합니다. 발원지가 계양산이라 계양천이라 부르는 하천이고, 실제 김포 일대도 계양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이라 계양구, 서구 북쪽, 김포시는 본래 광의의 한 생활권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구송도

 

: 본래 인천 송도는 송도유원지 인근 및 옛 송도역 일대(현 청학사거리 일대)를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송도국제도시가 생기고, 송도유원지가 사라지면서 현재는 그냥 ‘송도’라고 하면 송도국제도시쪽을 부르는 말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래서 본래 송도였던 지역을 일컫는 말이 지금은 ‘구(舊)송도’가 되었습니다. 지리적으로 보면 연수구에서 송도국제도시가 아닌 지역 중 미추홀대로 서쪽은 대략 구송도에 해당합니다. 연수구 타 지역과는 달리 구릉이 이어지는 지형입니다.

 

 현재 수인선 송도역이 위치한 곳은 구송도입니다. 옛 송도역에 비하면 서쪽으로 1.5km 정도 떨어져 있고요. 그렇다보니 송도역은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역이 아닙니다.

 

 

 

 

 

구월동

 

: 본래는 법정동 구월동을 일컫는 말인데, 구월동이 워낙 도시 중심지고 인지도가 높다 보니 대략 근처 지역까지 뭉뚱그려서 구월동 쪽이라고 부를 때가 많습니다. 특히 구월동으로 오해를 많이 받는 지역은 터미널 주변이고, 간석동 쪽 일부도 구월동 취급받을 때가 드물지 않습니다. 여담으로 간석초등학교는 구월동에 위치합니다.

 

 

 

 

 

 

굴포천

 

 부평 일대를 흐르는 주요 하천입니다.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만들고 관리해온 인공하천으로, 발원지는 원적산입니다. 처음 공사를 시작한 인물은 최충헌의 아들 최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부평평야는 본래 전국적으로 꼽힐 곡창지대라 하천이 필요했으나 워낙 완전 평지라 공사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충분한 경사를 만들 수 있는 지역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천은 물이 흘러나가야 하는데, 완전한 평지에서는 경사를 만들기 어려워 물이 잘 흘러나가지 않습니다. 심히 평평하다보니 부평평야 일대는 오래 전부터 홍수가 잦은 지역이었습니다.

 

 굴포천은 그 자체로 저수기능이 있기 때문에 공사 이전보다는 부평지역의 홍수를 덜하게 만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역할의 연장선상에서 공사한 게 현대의 아라뱃길이고요. 현대의 굴포천은 본래 청천동을 흐르던 청천천 쪽을 복개하고 갈산동 쪽부터 하천이 드러나 아라뱃길로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7호선에 굴포천역이 있는데, 사실 굴포천역은 굴포천과 딱히 밀접한 상관이 있는 곳이 아니고, 해당 역명을 지을 때 주민들이 지지한 이름도 아닙니다. 본래 해당 위치는 신복사거리라 신복역으로 명명될 예정이었는데, 부평구에서 굴포천 이름이 들어간 역명을 짓고 싶어하여 굴포천역이 되었습니다.

 

 

 

 

 

 

금곡동

 

 인천에 금곡동이라는 동명은 두 곳이 있습니다. 하나는 동구 배다리 쪽에 있고, 하나는 서구 검단과 김포의 경계 쪽에 있습니다. 두 지역은 거리가 꽤 떨어져 있고 생활권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혼동을 일으키지는 않습니다만, 같은 도시에 동일한 동명이 있는 것은 좋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두 이름 다 법정동명이며, 본래 원인천과 검단이 다른 지역이라 생긴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길주

 

 인천의 과거 지명은 옛 인천도호부쪽을 위주로 설명되곤 합니다만, 실제 전근대 시절에는 부평도호부가 더 큰 도호부였습니다. 부평 지역의 옛 이름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도로명이나 학교명 등에는 좀 남아있는데, 길주는 인천광역시 이전 부평 지역에 붙었던 가장 급이 높은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려는 좀 복잡한 지방 행정 체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주요 지방 도시에 ‘목’이라는 이름을 붙여 관리하였었습니다. 흔히 12목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당시 목에 해당하는 도시는 양주, 광주(廣州), 충주, 청주, 공주, 상주, 전주, 나주, 진주, 승주(현재 순천에 통합), 해주, 황주였습니다.

 

 고려 시대에 부평은 처음에 수주(樹州)로 불리다가 이후 안남도호부로 개명되고, 또 계양도호부로 개명됩니다. 그런데 충렬왕 시대에 이르러, 충렬왕은 계양도호부에 자주 들르며 호감을 보입니다. 충렬왕은 태자 시절을 몽고에서 보낸 영향인지 매 사냥을 좋아했고, 당시 고려에서 매를 키우던 곳이 계양산에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현재 계양구와 서구 사이에 있는 징매이고개에 남아있지요.

 

 그 덕인지 충렬왕 34년(1308년), 계양도호부는 길주(吉州)목으로 승격됩니다. 그런데 이때는 충렬왕의 말년입니다. 충렬왕이 계양도호부를 길주목으로 승격시킨 1308년에 이미 충렬왕은 아들 충선왕과의 정쟁에서 패해 실권을 잃은 이후였고, 그 해 사망합니다. 참고로 충렬왕과 충선왕은 부자관계지만 꽤 정쟁이 심했는데, 본래 충렬왕은 1274년에 처음 재위하여 1298년까지 1차 재위한 이후, 아들인 충선왕에게 양위했다가 복합적인 갈등이 심해져 8개월 만에 복위하였었습니다. 그러다가 1307년에 들어서는 다시 충선왕에게 밀리게 되지요.

 

 충렬왕 사후 재즉위한 충선왕은 모처럼 목으로 올라갔던 길주목을 이번에는 도호부도 아닌 그냥 ‘부’급으로 강등시킵니다. 그 때 붙은 이름이 부평부. 부평이라는 지역 이름은 충선왕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이후 다시 도호부로 올라가긴 합니다만. 그러니까 길주는 부평이 독립 지자체로 가졌던 가장 급이 높은 이름이었습니다.

 

 현재 길주라는 이름은 7호선 석남역 서쪽부터 까치울역 동쪽까지, 7호선 라인과 동일한 도로인 길주로와 계양구 용종동의 길주초등학교에 남아있습니다. 본래 길주라는 지명이 현재의 부평구, 계양구, 부천시를 모두 포괄하는 것을 드러내듯 세 기초단체에서 사용 중인 이름입니다.

 

 

 

 

남구

 

: 미추홀구의 옛 이름. 과거에는 남동구와 연수구도 남구에 속했었습니다. 본래 인천 남쪽에 있었던 구지만 1988년에 남동구가, 1995년에 연수구가 분리되면서 실제 남쪽에 있는 구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 이름과 위치가 맞지 않아 2018년에 미추홀구로 이름을 개명하게 됩니다. 이름이 개명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직 남구라는 지명이 남아있는 곳이 꽤 될 겁니다.

 

 

 

 

 

남동구

 

: 인천광역시 남동쪽의 자치구. 방위에 어울리는 이름이기는 하지만 이름 한자가 南東은 아닙니다. 그래도 방위에 어울리는 이름이라 사용에 문제는 없는 상태. 금세기 들어 인천의 행정, 교통, 상권 등의 실질적 중심지입니다. 신도심. 그리고 도심지역과 떨어진 곳에 유명한 소래포구를 포함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리적으로는 구릉지이고 인천의 남동쪽 외곽이며 도심도 아니었습니다. 실제 상기한 대도시 속 한복판의 소도시, NDS 지역을 포함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원래 도심으로 발달하기 좋은 지형은 아니고, 주거지 및 농지에 가까웠으나 인천시청이 구월동으로 이전하고 1999년 10월에 인천도시철도 1호선이 부평과 인천시청, 구월로데오 및 인천터미널을 잇도록 개통되면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도심이 옮겨지고 말았습니다.

 

 남동구는 남동구만 하나의 도시라고 쳐도 대도시라 할 만큼의 면적, 인구수, 다양성, 상권, 산업 시설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점은 구월동-만수동-간석동의 도심지역은 어쩔 수 없이 번화도가 높아서 자차 운전, 주차 등이 쾌적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남동공단의 영향 등으로 주거하기에 공기질이 좋은 편은 아닌 지역이 제법 있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남동공단

 

: 인천에서 가장 유명한 공단. 남동구 고잔동 쪽에 위치해있으며, 실제 규모에서 인천 최고는 아니지만 존재감은 큽니다. 연수지구와 논현지구 사이에 위치해있으며, 정식 명칭은 남동인더스파크고 남동공단은 옛 이름이지만 다들 남동공단이라 부릅니다. 수인선 남동인더스파크역이 공단 한가운데 있습니다.

 

 대부분의 인천 바닷가 공단들이 그러하듯 남동공단도 간척으로 만들어진 땅에 형성된 공단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평지 지형이며, 현재는 송도국제도시가 생겼기에 인천 남부의 중앙에서 약간 동쪽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첨단화가 많이 진행된 공업지대라 공장지대 치고는 인식이나 환경이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만, 그래도 공단이다보니 인천에서 화재가 나면 이 지역에서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동유수지

 

: 남동공단 남부에 있는 거대한 유수지입니다. 승기천 하류의 물을 저수하는 시설로, 후술할 옐로 선셋 레이크 다음으로 인천광역시에서 큰 호수입니다. 공단지대를 흐르는 하천 하류 물이니까 원래 수질이 매우 나빴으나, 근래 많이 개선되었지만 음용수로 사용은 불가능합니다.

 

 꽤 거대한 호수입니다만 사람의 발길이 잘 닿는 곳은 아닙니다. 실제 유수지 주변에는 주택 등이 없다시피하고, 근처에서 봐도 조림을 통해 호수가 잘 안 보이게 해놨습니다.

 

 천연기념물인 저어새가 번식하는 곳으로도 유명한데, 본래 저어새는 외딴 섬에 알을 낳는 습성이 있는 새라 고양이같은 육상 포식자가 있는 곳에서는 번식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간척사업으로 인천앞바다 섬이 많이 줄어들었고, 그에 저어새는 한 때 멸종위기에 몰렸었습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근래에는 남동유수지에 저어새가 자리를 잡아 번식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몇 년 전에 너구리가 유수지에서 저어새를 공격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헤엄을 쳐서 저어새가 산란을 해 둔 유수지 한가운데의 섬을 공격한 것입니다. 그에 저어새를 보호하려는 사람들이 너구리를 생포해 먼 곳에 방사함으로 저어새를 지킨 일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캣맘은 야생 생태계의 진정한 적입니다. 환경 생태계 보호를 위해 캣맘을 근절해야합니다.

 

 

 

 

 

논현동

 

: 소래포구 주변, 남동구의 법정동입니다. 행정동으로는 논현 1, 2동이 있고, 나머지 법정동 논현동 지역과 고잔동 지역을 포괄하는 논현고잔동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논현동 일대에 소래염전과 한화의 화약 공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래포구가 있었고요. 그 때는 사람들이 논현동이라는 동명을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인천 사람들도 논현동이라 하면 서울 강남의 논현동을 먼저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한화가 화약 공장을 이전하고, 논현동을 주거지역으로 재개발하게 되면서 논현지구는 인천의 부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논현지구는 신도시 지역임에도 특이하게 고가철도로 수인선이 지나가는 지역입니다. 이는 수인선이 본래 오래 된 협궤 노선이었는데 표준궤로 바꿔 깔면서 고가철이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호구포역, 인천논현역, 소래포구역이 논현지구에 있는 역입니다. 7호선 논현역과 구분하기 위해 수인선에는 인천논현역이라는 역명이 붙어 있습니다.

 

 바다에 인접했고 서쪽으로는 남동공단, 북쪽으로는 구릉지를 넘어 NDS로 이어지기 때문에 논현동은 고립된 도시에 해당합니다. 다만 간선도로를 따라 연수지구나 송도국제도시와 가깝고, 해협을 건너면 역사적으로는 동일 지역이었던 월곶이나 배곧신도시와도 가깝습니다.

 

 논현지구는 인천지역에서 평수가 큰 신축 아파트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삽니다. 이는 논현지구가 들어서던 시대가 대형평수를 많이 짓던 마지막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논현지구보다 일찍 생긴 도시는 주택이 낡았고, 논현지구보다 늦게 생긴 도시는 대형평수 비율이 낮습니다. 그러니까 식구수가 많은 가구가 살기 좋은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논현지구의 단점은 공기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겁니다. 남동공단 근처에 있긴 하지만 송도국제도시나 연수지구는 공기가 좋은데, 논현지구는 공기가 나쁩니다. 그 이유는 풍향이 바다에서 육지로, 산에서 평지로 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논현지구는 계절에 따라 남동공단쪽에서 바람이 불어오게 됩니다. 물론 못 살 정도로 공기가 나쁜 건 아니지만, 남동공단 인근이라도 위치에 따라 공기 질은 좀 차이가 있습니다.

 

 

 

 

 

도봉산 (고등학교)

 

: 선인재단 소속의 향도실업고등학교, 운봉공업고등학교, 운산기계공업고등학교를 지칭하던 은어. 이 세 학교는 바로 옆에 붙어있기도 했고, 워낙 입학커트라인이 낮아서 인천에서 가장 공부를 못 하던 학생들이 다니던 곳이라 악명이 높았습니다.

 

 의외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선인학원의 은 그 백선엽의 입니다. 그리고 은 백선엽의 아우였던 백인엽의 이고요. 백선엽의 호가 운산이었고, 백인엽의 호가 운봉이었습니다. 선인재단은 역사에 길이 남을 막장 사립 학교법인이었고요.

 

 세 학교 중 명성은 대략 운봉 운산 향도 순서였고, 굳이 보자면 운봉과 운산이 양대 산맥이고 향도는 그 정도는 아니라서 도봉산으로 엮인 정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워낙 이 학교들이 불량, 일진, 예비 조폭이 많이 다니는 학교로 이름나긴 했습니다만 악명이 과장되기도 했는데, 이들은 바로 옆에 있던 인천전문대학이나 인천대학교 학생들한테는 대체로 불량하게 대하지 못했습니다. 인천전문대는 애초에 공고 출신이 많은 대학인데다 도봉산 출신도 없지는 않았고, 그나마 살짝 떨어진 인천대에는 도전장을 내밀어보기도 했으나 참교육 당했던 역사도 있습니다. 인천대는 그 선인재단 상대로 엄청나게 강성으로 싸우던 전투대학이었는걸요.

 

 지금은 향도는 인천전자마이스터고등학교로, 운봉은 인천대중예술고등학교로, 운산은 인천소방고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여담인데 현 계양구청장 윤환이 운봉공고 출신입니다. 그리고 이 세 학교 및 구 선인학원 출신의 학교가 위치한 산 이름은 (도봉산도 운산도 아닌) 부처산인데, 학교들밖에 없는 산이 되어서 막상 산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도화지구

 

: 미추홀구 도화동의 뉴타운. 본래 선인체육관이 있던 곳에 들어섰습니다. 미추홀구 일대에서 경인선 북쪽에 생긴 유일한 뉴타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추홀구는 대부분의 면적이 경인선 남쪽에 속하고, 북쪽의 도화지구는 미추홀구의 외곽이자 다른 구와의 경계에 위치해 있습니다. 서쪽으로 동구와 연담화되고, 동구 송림동에 있는 이마트 트레이더스와 가깝습니다. 북쪽으로는 옛날에 주안염전이었던 주안산단이 있고, 위치상 경인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울로 가게 되면 서구 권역의 가좌 IC를 이용해야 거리상 돌지 않습니다. 도화 IC는 쑥골고가를 넘어 경인선 남쪽으로 가야 진출입이 가능합니다.

 

 현재 도화지구는 확장 중에 있으며 앞으로 보다 큰 신도시로 발전해나갈 것 같습니다.

 
 

 

동구

 

: 인천 서쪽의 작은 자치구. 오타가 아니고 진짜로 인천 서쪽이고 서구의 남쪽입니다. 동구라는 이름은 예전에는 현 중구청이 인천시청이었는데, 그 동쪽이라 붙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인천 자치구중 최소면적, 최소인구에 낡고 못사는 이미지지만 실제로는 재개발이 꽤 되었고, 근처에 대기업도 있어서 경제력이 있는 가구도 어느 정도 거주하는, 빈부격차가 큰 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인천역이 있는 곳이라 오해할 수 있지만 동인천역은 중구에 속해있고, 동구는 경인선 북쪽입니다. 권역의 많은 부분을 공장과 항만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름이 전혀 실제 위치와 어울리지 않다보니 미추홀구처럼 개명을 추진하기도 하였으나, 중구 본토와 합치자는 의견이 있어 잘 추진되고 있지 않습니다. 중구 본토와 동구는 다른 자치구에 비해 면적이 작은 편이라, 둘을 합쳐도 그리 넓지는 않습니다.

 

 

 

 

 

 

동인천

 

: 동인천은 정확한 경계가 있거나 한 지명은 아닙니다. 동인천역은 축현역 -> 상인천역 -> 동인천역으로 개명을 거쳤는데, 동인천역 일대가 한동안 도시의 중심 번화가였기 때문에 그 주변을 동인천이라 불렀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은 인천의 원도심 전반이 쇠퇴해서, 동인천 쪽이라 부르는 범주가 좀 더 넓어졌습니다. 예전에는 인천 사람들이 동인천 쪽을 많이 다니니까 주변 지명을 잘 알았지만, 이제는 별로 다니지 않고 지명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아졌기 때문에 대략 원인천과 그 근처 전반을 동인천쪽이라 부르는 경향이 생긴 것입니다. 지리적으로 보면 인천 본토 서쪽을 동인천이라 부르게 된 거라 이름 자체가 아이러니합니다.

 

 

 

 

 

드림파크

 

: 서구 오류동의 수도권매립지 부지 중 매립이 끝난 부지에 만든 공원 및 골프장. 공원 쪽은 야생화단지라 이름붙은 꽃밭입니다. 사견으로는 인천 북부 최고의 공원. 쓰레기매립지였다는 게 무색하게 좋은 공원입니다.

 

 아라뱃길과 인접해있기 때문에 아라뱃길과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아라뱃길 백석대교에서 대교 위로 올라가 북쪽으로 향하면 드림파크 야생화단지 입구로 갈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드림파크에는 국제규격의 50M 수영장이 있습니다. 2014년에 아시안게임을 치른 수영장이기도 합니다. COVID-19 이후 장기 휴장에 들어갔었는데, 이제 코로나가 끝나 다시 재개장한다고 합니다.

 

 
 

 

디스코팡팡

 

: 인천에서 가장 유명한 놀이기구는 당연히 월미도 바이킹입니다. 극악의 각도와 불안정성을 자랑하지요. 그리고 그 다음으로 유명한 놀이기구는 월미도의 디스코팡팡입니다. 원래 정싱 명칭은 타가다 디스코, 예전 정식 명칭은 아폴로 디스코였다고 합니다만 다들 디스코팡팡이라 부릅니다.

 

 원반형 기구에 앉으면 디스코 음악과 함께 돌아가고 흔들리면서 DJ가 이런저런 입담으로 분위기를 띄워주는 기구인데요. 이게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에는 없고, 각 지역의 소형 테마파크들에는 있는데요. 옛날 드림랜드에는 있었지만 드림랜드는 사라졌고, 이제 수도권에 있는 남은 디스코팡팡인 월미도 디스코팡팡이 가장 유명합니다.

 

 다만 요새 세상 분위기가 흉흉해서 DJ가 하는 말을 성희롱이라 고소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생기면서 입담이 예전보다 조심스러워졌다는 소식이 들리긴 합니다. 원래 여성 고객을 놀리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경향은 있었지요.

 

 

 

 

 

 

로데오거리

 

: 인천에서 로데오거리라고 하면 구월동 로데오거리를 의미합니다. 중앙공원 동쪽, 예술회관역 남쪽, 인천터미널 북쪽에 해당합니다. 2000년대 이후 인천의 중심 번화가이며, 부평 문화의거리와 함께 인천의 2대 번화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90년대까지 번화했던 동인천의 번화함이 00년대 이후엔 옮겨온 느낌입니다.

 

 

 

 

 

루원시티

 

: 옛 가정오거리 일대에 조성한 대규모 재개발 구역. 루원은 동 이름인 가정동의 이름을 풀어 재해석한 것이고, 아름다운 누각이 있는 정원이라는 뜻인데 유감스럽게도 아직 딱히 이름값은 못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Lu1이라고 표기합니다.

 

 루원시티의 초기 계획은 매우 근사했습니다. 입체적인 첨단복합도시였지요. 그러나 그 계획은 실패했고, 지금은 가정역 인근의 평범한 재개발 구역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더구나 바로 옆이 청라국제도시이기 때문에 완전 현지인이 아닌 이상 인천 사람들이 가봐도 구분이 잘 안 갑니다. 물론 실제로는 차이가 조금 있는데요.

 

 일단 청라국제도시는 신도시인 반면 루원시티는 재개발 구역입니다. 그래서 청라 아파트 단지는 용적률과 건폐율이 낮은 편인데요. 루원은 더 높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청라 아파트 단지들은 용적률이 200%가 안 되고요. 루원은 200%가 넘습니다. 청라에서 용적률이 200%가 넘는 단지는 아파트가 아닙니다. 그리고 상가주택의 경우 청라는 3층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대조적으로 루원은 4층으로 되어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루원시티의 장점은 본래 교통의 요지였던 가정오거리 일대에 조성한데다 가정역이 있기 때문에 청라보다 교통이 좋다는 겁니다. 경인고속도로의 서인천IC를 바로 이용할 수 있고요. 아직 완성까지는 먼, 용지가 많이 남은 곳이라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될 지 기대하며 지켜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마니산

 

: 강화도 남부에 있는 해발 472.1m의 인천 최고봉. 단군신앙과 엮여 전국적으로 유명한 산이기도 합니다. 강화도 현지명은 마리산. 올라가려면 입산료를 내야 합니다.

 

 본래 마니산이 있는 강화군 화도면은 강화도 본도와 분리된 섬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706년 조선 숙종대에 간척사업으로 강화도와 하나의 섬이 되었다고 합니다.

 

 개천절 행사 및 전국체전 성화 행사가 이루어지는 산으로, 도교 제단이었던 참성단이 유명합니다. 참성단은 첨성대와 이름이 비슷하여 첨성단, 첨성대, 참성대 등으로도 불립니다.

 

 

 

 

 

마전지구

 

: 동쪽으로 떨어진 불로동의 불로지구와 함께 인천 본토 최북단 도시지역입니다. 김포 한강신도시에서는 남쪽으로 2.5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그 사이는 시골 지역입니다. 이름은 마전지구지만 같은 마전동에 속하는 마전역에서는 거리가 꽤 떨어져 있으며 상기한 NDS, 경서지구와 함께 인천 본토의 대표적인 오지라 할 수 있습니다. 북쪽인데다 산골짜기에 위치한 도시라 여름에 서늘하고 겨울엔 춥습니다.

 

 

 

 

매소홀

 

: 인천도호부 지역의 고구려 시절 이름입니다. 백제 시절 첫 이름은 미추홀이었는데, 미추홀과 매소홀은 같은 이름의 다른 표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대 인천에서는 매소홀보다는 미추홀이라는 이름이 더 인기있고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굳이 매소홀이라는 옛 이름을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문학산 북쪽의 매소홀로에 그 이름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만월산

 

: 남동구 간석 3동에 위치한 해발 187.1m의 만월산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지리적으로 현 인천광역시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인천 일대의 지리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산입니다. 만월산의 옛 이름은 주안산 또는 구월산이었는데, 만월산의 옛 이름을 딴 두 이름 다 인천의 지명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요. 대략 만월산 서쪽은 주안, 만월산 남쪽은 구월, 만월산 북쪽은 부평입니다.

 

 본래 인천도호부와 부평도호부는 만월산을 포함한 한남정맥으로 나뉜 지형에 따라 분리된 다른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만월산 서쪽으로는 인천도호부와 부평을 오다닐 수 있는 고갯길이 있었지요. 그러니까 원래 만월산 일대는 교통의 요지였고, 현대에는 만월산과 그 동쪽 만수산 일대에 만월산 터널을 뚫어 보다 편하게 부평과 구월동 일대를 오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래내시장

 

: 소래포구어시장이나 구월/남촌농산물도매시장 등의 특수한 시장을 논외로 하고, 일반 재래시장 중 21세기에 인천에서 가장 흥한 시장은 구월동 모래내시장입니다. 도심 주거지에 위치한 대형 재래시장이라 항상 잘됩니다. 재래시장의 쇠퇴 같은 건 적어도 여기서는 옛말입니다.

 

 모래내시장이라는 이름은 본래 이 지역이 하천가로 모래사장이 있었기에 붙었습니다. 실제 모래내시장 인근에는 만수천이 복개된 흔적이 있는데, 현재 만수천은 전 구간이 복개되었지만 본래 만수산 일대에서 발원하여 장수천에 합류하던 하천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도로를 보면 복개의 흔적을 볼 수 있지요.

 

 전국적으로 보면 모래내시장이라는 이름은 여럿 있습니다. 인천 모래내시장에서 가까운 다른 모래내시장은 서울 서대문구 가좌동에 있는데, 이쪽에도 마찬가지로 하천과 모래사장이 있어 붙은 이름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인천 서구에도 가좌동이 있다보니 서울 서대문구 가좌동의 모래내시장은 인천 가좌동 및 구월동 모래내시장과 이중으로 이름이 겹칩니다. 서대문구는 인천 북쪽에서는 가까운 편이기도 하고요.

 

 인천 모래내시장 인근에는 인천 2호선 모래내시장역이 있어서 외지에서도 편하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도심지에 있는 시장 치고는 주차환경도 극악하지는 않습니다. 바로 인근에 인천에서 가장 큰 아파트 단지인 구월힐스테이트-롯데캐슬골드가 있어 도보 이용자가 많은 게 이유라 생각합니다.

 

 

 

 

 

무네미고개

 

: 요즘 말로 하면 물넘이 고개입니다. 무네미는 옛 말이고요. 위치는 남동구 장수동입니다. 이 이름은 굴포천 및 후술할 원통이고개와 관련이 있습니다.

 

 최충헌의 아들, 최이 시대에 무네미고개 쪽으로 물길을 내서 한강까지 이어지는 수로를 파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실패했지요. 그렇지만 무네미고개라는 이름은 남았습니다. 지금은 무네미고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무네미고개의 이름을 딴 인근의 무네미로는 통행량이 매우 많은 도로입니다. 영동고속도로와 직결되어 북쪽 방향으로 장수고가와 인천대공원 정문(인천대공원역이 있는 쪽은 남문) 및 대공원앞지하차도, 장수IC를 지나 거마산 서쪽 고개를 넘어 송내지하차도를 끝으로 송내대로와 직결되는 인천 최악의 정체구간인 도로입니다.

 

 장수IC 서쪽 산 이름은 물넘이뒷산입니다. 그리고 그 인근에 수현마을과 수현로가 있는데, 무네미고개의 한자어가 수현(水峴)입니다.

 

 적어도 고려 시대부터는 인천에서 부평을 지나 한강까지 잇는 수로의 계획과 추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네미고개와 원통이고개는 그 실패의 흔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굴포천은 타협의 결과물이었고요. (절반의) 성공작은 경인아라뱃길입니다.

 

 

 

 

 

 

문학산

 

: 미추홀구와 연수구를 나누는 동서로 긴 산. 가장 높은 곳의 높이는 217m입니다. 인천의 역사적 기원은 비류가 세운 미추홀로 보는데, 비류가 처음 미추홀을 세운 곳이 이 문학산 일대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 시대의 인천도호부도 문학산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승학산에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인천지역에서 가장 주요한 산입니다.

 

 문학산 주변에는 ‘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지명이 많습니다. 북서쪽으로 미추홀구 학익동, 북쪽에 미추홀구 문학동, 동쪽에 연수구 선학동, 남쪽으로는 연수구 청학동이 있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현대에는 문학산 주변에서 학을 볼 수는 없고요. 연수구 쪽에는 특이하게 까마귀들이 좀 있습니다. 인천 본토에서 까마귀가 목격되는 지역은 연수구뿐입니다.

 

 연수구와 미추홀구는 본래 같은 구였음에도 불구하고 문학산이 막고 있어 왕래가 많은 편이 아닙니다. 그나마 문학산을 통과하는 문학산터널이 있어 차량이 있으면 멀리 돌지 않고 왕래할 수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문학산터널은 유료터널이고 하이패스도 안 됩니다. 문학산터널을 건설해 운영하는 민자 회사 때문인데, 그래도 몇 년 지나면 인천시 쪽으로 소유권이 이전되어 무료화될 예정입니다. 인천에 이와 같은 유료 터널이 둘 더 있는데, 원적산터널과 만월산터널이 그것입니다.

 

 예전에는 문학산 정상에 군부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민간인들이 정상에 올라가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몇 년 전부터는 문학산 정상이 개방되어 등반이 가능해졌습니다.

 

 

 

 

 

미추홀

 

: 역사에 기록된 인천의 첫 이름입니다. 흔히 알려진 걸로는 백제의 첫번째 왕, 온조의 형이자 고구려 주몽 동명성왕의 아들이며, 유리왕의 동생이었던 비류가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실제의 역사는 어땠는지 미지수인 부분이 있습니다만. 여하튼 이후 비류의 미추홀은 온조의 위례와 합쳐져 백제가 되지요. 백제는 처음에는 십제(十濟)라 불렀으나 비류와 합쳐진 후 백제(百濟)로 이름을 바꿨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름 뜻은 물의 도시 정도. 인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 알려진 인천의 옛 이름으로, 인천 사람들이 ‘인천’이라는 이름보다 더 좋아할지도 모르는 이명쯤 됩니다. 그래서 인천 전역에 ‘미추홀’이라는 이름 붙는 게 매우 많습니다. 문제는 2018년에 남구가 이름을 미추홀구로 개명하면서 특정 구가 미추홀이라는 이름을 점유해버렸다는 건데, 그렇다고 미추홀이라는 이름을 미추홀구가 독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추홀이라는 이름은 인천의 아이덴티티 그 자체라, 본래 미추홀과는 다른 지역이던 부평 지역에서도 미추홀이라는 이름을 많이 쓸 정도입니다.

 

 

 

 

 

미추홀공원

 

: 인천의 옛 지명인 미추홀이라는 이름이 붙은 공원은 두 군데가 있습니다. 하나는 송도의 미추홀공원으로, 보통 인천에서 미추홀공원이라 하면 이것을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송도 미추홀공원은 송도센트럴파크, 해돋이공원과 함께 송도의 메이저한 3공원 중 하나라 할 수 있는데, 다른 둘보다 인기는 덜하지만 동쪽으로 송도 글로벌파크라는 다른 공원과 이어져있고, 글로벌파크의 면적을 미추홀공원과 합치면 송도에서 가장 넓은 공원이 됩니다.

 

 옛 이름을 사용한 것 답게 고전적인 분위기의 단정한 공원인데, 평지 공원치고는 흙길이 많아서 악천후에 조금 약합니다. 날이 좋을 때 동쪽 글로벌파크부터 걸으면서 즐기면 좋은 공원입니다. 서쪽으로는 센트럴파크가 가깝습니다.

 

 주안 미추홀공원은 주안3동 성당 근처에 있습니다. 인천지방법원 및 검찰청에서도 멀지 않습니다.

 

 
 
 

 

미추홀구

 

: 상기하였듯 남구가 2018년에 개명한 이름입니다. 인천 본토의 지리적 중앙 즈음에 위치하여 계양구를 제외한 인천의 모든 자치구와 접경해 있으며, 조선시대 인천도호부의 중심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도심인 인천터미널과 인천롯데백화점이 미추홀구 권역에 포함됩니다.

 

 주안, 석바위 등 80~90년대 인천의 핵심이었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살던 곳들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실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인천지역 사람에게는 원인천보다도 더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을 지역입니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재는 인천 본토에서 가장 낡은 자치구라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인데, 미추홀구보다 더 낡은 중구, 동구는 관광지화되거나 재개발이 많이 된 반면 미추홀구는 시기적으로 낡은 정도가 애매한 것입니다. 지금은 그래도 재개발이 진척중이니 시간이 지나면 주거지로는 개선이 있을 수 있을걸로 기대합니다.

 

 전반적인 지형은 동쪽은 고저차가 크지 않은 완만한 구릉지대. 부평평야나 매립지 수준으로 완전한 평지는 아니지만 경사가 급한 곳이 적어 인구밀도가 매우 높던 지역입니다. 서쪽에는 그리 크지 않은 수봉산과 선인학원이 있는 부채산 (이 산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이 있어 산기슭을 따라 발달한 지형입니다.

 

 

 

 

 

 

백마장

 

: 부평구 산곡동 일대를 뜻합니다. 요즘은 사용빈도가 낮아졌지만, 예전에는 산곡동이라는 동명보다 백마장이라는 이름을 더 많이 썼습니다. 백마장이라는 이름은 산곡역이 위치한 백마장사거리 및 산곡동을 지나는 도로명인 마장로에 남아있으며, 현재 산곡입구삼거리를 부르던 본 명칭은 백마장입구이며, 여전히 버스정류장에는 백마장입구라는 이름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부평구의 구수(獸)는 백마입니다. 산곡역 또한 완공되기 전에는 백마장사거리역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부평지역 토박이들은 ‘산곡’이라는 이름보다 ‘백마장’이라는 이름을 익숙해하고 좋아합니다. 백마장이라는 이름이 일제시대 ‘백마정’에서 비롯되었다 하여 공식적으로는 사용하지 않는 걸 권해 좀 강제로 사라지고 있는 이름이긴 합니다만.

 

 

 

 

 

부평

 

: 역사적인 ‘부평’은 부평도호부를 의미했는데, 지금으로 치면 독정역 이남 옛 서구 지역을 포함한 계양구 전체, 부평구 전체 및 부천시, 그리고 공항 근처 서울 강서구 일부 및 안양천 서쪽 서울 구로구 일대 정도를 포괄하는 행정구역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심지는 현재의 계양구 계산동 일대였지요. 그러다가 부평역이 생기고 일제 들어 부평도호부가 해체되면서 부평지역의 중심지가 부평역 일대로 옮겨가게 되는데요. 시대가 많이 지나 인천직할시 북구에서 서구가 먼저 분리독립한 이후, 인천광역시로 승격되면서 부평구와 계양구를 나눌 때 현 부평구 지역이 부평이라는 지명을 가져가게 되었고, 본래 부평도호부 시절의 중심지였던 계양구는 부평이라는 이름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계산동에 있는 부평초등학교와 부평향교 등에 옛 전성기의 흔적 정도만 남았지요. 현재는 부평이라고 하면 좁은 의미로는 부평역 및 부평동 일대를 의미하고, 넓은 의미로 부평구 전체. 그보다 조금 낮은 빈도로 계양구를 포함한 한남정맥 이북 지역 인천을 의미합니다. 다만 본래 부평도호부에 속하였던 서구 일대를 포함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검단정도로 이질적인 건 아니지만 부평구/계양구와 타 인천지역은 문화적으로 살짝 이질성이 남아있는데, 80년대까지만 해도 부평/계양 일대에서 택시를 타고 남동구나 주안 쪽을 가면 시외요금을 적용할 정도로 다른 지역이었습니다. 본래 부평도호부와 인천도호부는 다른 도호부였고, 그건 한남정맥이라는 지리적인 경계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부평공원

 

: 부평역과 백운역 사이에 있는 공원. 군부대 용지였던 곳으로 00년대 들어 공원화되었습니다. 그래서 도심 한복판에 최근에 생긴 공원임에도 규모가 꽤 큽니다.

 

 부평역 번화가와는 반대쪽 방면이고, 옛 현대백화점이었던 2001아울렛 인근에 있습니다. 번화한 부평에서 무료주차가 가능한 드문 장소이기도 한데, 대체로 여유공간이 없으니 방문 시에는 대중교통을 추천합니다.

 

 경인선에 인접한 공원으로 공원 중간에도 경인선 남부로 넘어갈 수 있는 육교가 있습니다. 직선거리로는 부평역도 백운역도 아닌 동수역에서 가장 가까운 공원인데, 동수역하고는 경인선으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육교를 건너가면 동수역까지 그리 멀지는 않습니다. 다만 경인선부터 동수역까지는 오르막입니다.

 
 
 
 

 

부평구

 

: 대략 한남정맥 북쪽, 부평평야 남부의 자치구. 구의 북쪽 경계는 경인고속도로고, 예외적으로 십정동은 한남정맥 남쪽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십정동은 부평도호부가 아니라 인천도호부이긴 했습니다.

 

 옛 부평도호부의 적통을 승계하기로 협의된 자치구이기도 합니다. 실제 역사적인 부평도호부의 중심지였던 계산동 일대가 계양구로 분리되어 나가면서, 일단 부평이라는 이름은 부평역이 있는 부평구가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본래 경인선을 타고 외부에서 인천으로 오면 가장 먼저 들어오게 되는 지역이었고, 상권과 주거 및 산업이 같이 발달한 지역이라 80년대 말부터 부촌이 발달했고, 전성기에는 인천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자치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금세기 들어 조금씩 쇠퇴를 시작하여 2010년대 들어서는 일단 추세가 꺾였고, 근래 들어서야 재개발 등을 통해 재부흥을 노리는 중입니다. GM 대우 공장이 위치하여 인천 노동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남쪽으로 남동구와 인접해 있으나 한남정맥으로 나뉘어져 있어 본래 같은 생활권이 아니었고, 교통이 좋아진 현대에도 교류가 아주 많은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구월동과 부평은 각자 도심화되었고, 21세기 이후 보통 인천의 제1도심은 구월동, 제2도심은 부평 같은 정도로 꼽히곤 했었습니다. 다만 근래에는 부평이 예전만은 못해서 향후 어떻게 될지는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부평역 일대는 본래 미성년자에서 20대가 많은 분위기인데, 이젠 예전만큼 1020세대가 많지 않은 게 한 원인인 것 같습니다.

 

 

 

 

 

부평역분수대

 

: 부평역 분수대는 부평역 북부 지상 광장에는 없습니다. 지하에 작게 있습니다. 부평역은 번화가인 북부에서 역에 갈 때는 지하도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고, 지하도에서 부평역 개찰구로 들어가는 곳에 있는 분수대가 랜드마크입니다. 부평역에서 약속을 잡으면 분수대에서 만날 때가 많지요. 부평역 인근은 도로가 복잡하기 때문에 지상에 있는 부평역 광장보다는 지하도가 접근성이 좋은 것입니다.

 

 문제는 부평역 분수대는 예전에는 물이 나왔는데, 지금은 물이 안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기준으로는 그냥 봐서는 그게 분수대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냥 지하 개찰구 앞에 기둥같은 거 있고 그 주변에 벤치 있는 게 분수대입니다. 예전엔 그게 분수대였기 때문에 분수대라고 지금도 부릅니다.

 

 

 

 

부평지하상가

 

: 점포수 기준 세계 최대의 단일 지하상가. 공식 명칭은 부평모두몰이며, 본래 4개의 지하상가가 합쳐진 것으로 33개의 출입구를 가지고 있고, 부평역 북부 일대 번화가 전반에 대한 우수한 접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천에서 젊은 여성이 보세옷, 악세사리 쇼핑하는 주요 공간이기도 합니다.

 

 부평에 자주 다니던 사람이 아닌 이상 지금도 복잡하다고 느낄테지만, 지금은 많이 정비되고 지도도 나와서 접근성이 좋아진 것입니다. 1990년대의 부평지하상가는 지금보다 훨씬 복잡했고, 몇 배는 길을 잃기 쉬운 곳이었습니다. 별명은 부평지하던전.

 

 인근 부평시장로터리에 부평시장로터리 지하상가가 있는데, 원래 부평지하상가와 연결할 계획이 있었으나 인근 지상상가 상인들의 반대에 의해 무산되었습니다.

 

 

 

 

 

부평평야

 

: 김포평야와 함께 수도권 최대의 저지대 평야. 전국적으로 꼽힐 만한 크기의 자연적인 평야입니다. 참고로 대한민국 최대 평야인 호남평야는 간척지입니다. 위치는 현재의 부평구, 계양구, 부천시, 김포공항을 포함한 주변 서울 강서구, 그리고 김포 동쪽 일대에 펼쳐져 있습니다. 지형으로 보면 마곡을 넘어 가양동, 염창동 일대가 대략 부평평야의 동쪽 끝쯤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김포평야’는 부평평야의 김포쪽이 아니라 김포 통진읍, 하성면 쪽과 한강을 건너 일산 및 파주 쪽에 펼쳐진 평야를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포평야와 부평평야는 때때로 문헌에 따라 한 평야로 간주되거나 혼동되거나 합니다.

 

 본래 부평도호부는 이 부평평야 지대의 행정구역이었고, 원체 소위 꿀땅이라 조선 초 및 해방 이후 도읍으로 지정될뻔한 적도 있었습니다만 무산되었습니다. 현재는 김포공항이 워낙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몇 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인천광역시는 김포와 부천을 인천광역시로 편입ㆍ통합시켜 이 땅을 제대로 활용할 생각을 가지고 있으나 부천, 김포, 경기도측에서는 반대하고 있습니다. 예외적으로 옛 김포군 검단면은 90년대에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었고요. 부천은 역으로 부평구, 계양구측에 부천과 합쳐 인천에서 독립해 (가칭) 부평광역시를 만들 생각은 없느냐는 제안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을 활용하는데 있어 김포공항이 워낙 걸림돌이 되고있다보니, 김포공항을 없애자는 의견은 종종 나오는데요. 다만 그러기에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꼽자면, 인천공항은 섬지역이라 김포공항보다 악천후가 되기 쉽고, 랜딩하기 힘든 시간이 일년에 몇 시간은 생기는데요. 그럴 때면 보통 항공기 기준으로는 가까운 김포공항에 랜딩합니다. 만약 김포공항을 없애려면 인천공항에 문제가 생길 때 랜딩할 수 있는 다른 공항을 마련하거나, 인천공항이 악천후라도 랜딩할 수 있게끔 대비를 할 것입니다.

 

 부평평야는 저지대에 넓게 펼쳐진 자연평야라서 홍수에 매우 취약했었습니다. 그래서 굴포천과 경인아라뱃길이 만들어졌고, 본래 상습침수지역이었으나 아라뱃길 준공 이후에는 예전보다 홍수문제가 많이 개선된 것으로 보입니다.

 

 

 

 

 

북구

 

: 현재의 부평구 + 계양구 + 서구에 해당하던 구. 십정동 일대를 제외하면 본래 옛 부평도호부 권역이었습니다. 88년에 서구가 먼저 분리되어 나갔고요. 이후 1995년, 인천이 직할시에서 광역시가 된 그 해에 부평구와 계양구로 분리됩니다. 이 때 북구청이 있던 지역이 부평구 쪽이라 북구의 적통은 부평구가 가져가는 게 되었고, 계양구는 명목상 분리독립이 되었습니다만 보통 부평지역 토박이들은 그냥 북구가 부평구와 계양구로 나뉜 걸로 생각합니다. 부평구청 인근에 ‘북구도서관’이 있고, 아직 도서관 이름을 개명하지 않아 북구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북인천

 

: 잘 사용하는 명칭은 아니지만 꽤나 곳곳에 남아있는 이름. 대략 북구 시절의 흔적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옛 북구 지역에 해당하는 부평구 + 계양구 + 서구에서 북인천이라는 지명을 쓰는데요. 이 지역 실거주자를 제외하고 북인천이라는 지명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은 청라국제도시역 인근에 있는, 영종대교로 진출입하는 북인천 ICTG입니다.

 

 한편으로 인천 본토 최북단인 검단 지역에는 이 이름을 쓰는 곳이 딱히 없는데, 검단이 인천광역시에 편입되는 시기에 북구라는 이름이 사라져서 그런 걸로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 시점에는 서구가 이미 분리되어서 현재의 부평구 + 계양구만 북구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습니다. 물론 북인천 ICTG는 북구가 사라진 지 한참 후에 생긴 이름이긴 합니다만.

 
 

 

 

사월마을

 

: 소위 쇳가루 마을로 악명높은 지역. 서구 왕길동에 있으며 드림파크 북쪽에 있는 시골 지역입니다. 수도권 쓰레기매립지와 폐기물 처리업체 등이 인근에 있고요. 관련 문제가 몇 차례 보도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쓰레기매립지 매립종료 및 사월마을 도시화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월마을 측에서는 도시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삼산지구

 

: 00년대 중반 정도에 조성된 부평구 삼산동의 신도시 지역입니다. 동쪽의 부천 상동과 완전히 연담화된 지역이고, 북쪽으로는 계산지구가 그리 멀지 않지만 중간에 경인고속도로와 소규모 산업지역이 있어 교류가 많지는 않습니다.

 

 지역 특성상 생활권이 부평 못지않게 상동에 가깝습니다. 삼산체육관역이 인천과 부천의 경계에 있는데, 그 동쪽에는 남북으로 꽤 큰 규모의 공원이 있어 삼산지구 사람들이 많이 이용합니다.

 

 이 지역에서 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외곽순환도로의 중동IC를 이용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전국 유료도로 중 최악의 정체구간이 이 중동IC부터 송내 IC를 지나 남쪽의 장수IC까지입니다.

 

 

 

 

 

 

서구

 

: 인천 본토 북서쪽의 자치구. 이 지역은 본래는 부평도호부에 속했던 한남정맥 넘어 해안가의 그리 넓지 않은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다쪽이 매립되고 공단이 들어서고, 쓰레기매립지 일대가 편입되고, 검단이 편입되고, 청라국제도시가 생기면서 인천 본토에서 가장 큰 자치구가 되었습니다. 인구도 지금은 인천 자치구/군중 가장 많고, 아라뱃길로 분단된 지형 탓도 있어 분구의 조짐이 있습니다.

 

 인천도시철도 2호선은 주안 북쪽으로는 서구쪽으로 쭉 이어집니다. 본래 서구에서는 인천 신도심쪽으로의 접근성이 좋지 못했는데, 2호선이 생긴 이후에는 비약적으로 쉬워졌습니다. 예전에는 검단쪽에서 인천시청쪽으로 가는 건 한세월이었는데, 이제는 어렵지 않게 오고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부간선수로

 

: 1923년~1925년에 착공한 수로입니다. 김포 고촌쪽 한강에서 물을 끌어다가 부평구청 인근까지 물을 대던 농업용 수로로, 지금은 한강에서 물을 대지 않지만 수로 자체는 거의 전 구간이 남아있습니다. 현재는 수로 형태의 저수지나 다름없는, 발원지가 없는 수로로 알고 있습니다.

 

 물길이 굴포천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굴포천과 비슷한 지역을 흐르기 때문에 혼동될 수 있지만 굴포천은 원적산쪽에서 한강으로 물이 흘러나가는 하천이었고, 서부간선수로는 반대로 한강에서 부평평야 지대에 물을 대던 수로였습니다.

 

 현재 서부간선수로는 삼산지구와 계산지구를 따라 공원화되어있습니다. 계산지구쪽 서부간선수로에는 노사모가 모금해 만든 노무현 벚꽃길이 있고, 예전에는 박유천(믹키유천) 벚꽃길도 있었는데 필로폰 투약 혐의 이후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부간선수로는 물이 깨끗하지는 않지만 물새가 많이 옵니다. 왜가리, 백로 등등. 근처 산책로에는 꽃도 많이 식재되어 있고요. 날이 좋을 때에는 주변 주민들이 산책을 즐기곤 합니다.

 

 

 

 

 

 

석바위

 

: 인천 토박이에게는 매우 익숙한 지명이었지만 외지인에게 어딘지는 설명하기 힘든 위치였는데, 인천도시철도 2호선 개통 이후에는 석바위시장역이 생겨서 설명이 쉬워졌습니다. 여담으로 간석이라는 지명은 동암과 석암(석바위) 사이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지만, 예전에는 인천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 중 하나가 석바위였습니다.

 

 

 

 

 

 

선인체육관

 

: 1970년 기공, 1973년 개장되어 2012년까지 미추홀구 도화동에 있었던 체육관 및 그 부속 건물. 이름 그대로 선인학원이 만들었던, 국내 최대 규모이자 아시아 최대 규모였던 실내체육관입니다.

 

 지대가 살짝 높은 데 있었고 건물 양쪽으로 두 개의 타워가 있었기 때문에 주변 일대에서 매우 잘 보였고, 꽤 오랫동안 랜드마크였습니다. 인천체육전문학교 -> 인천체육전문대학 -> 인천전문대학 예체능학부 및 인천체육고등학교가 이 건물을 사용하기도 했고, 홍수환이나 장정구의 세계 타이틀 매치나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을 치르기도 했던 역사적인 건물이었습니다. 한편으로 그 유명한 노무현의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라는 연설을 했던 장소도 이 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인학원이 지은 건물답게 부실공사였고 도화지구 재개발 과정에서 검토해본 결과 보수비용이 신축비용보다 비싸다고 판단되어 2012년에 철거됩니다.

 

 

 
 
 
 
 

소래

 

: 소래포구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인데, 막상 인천 사람들도 왜 거기가 그렇게 유명한지는 잘 모릅니다. 논현지구가 개발되기 전에 소래 일대는 염전이었고, 소래포구는 접근성 좋지 않고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어시장이었는데요. 여전히 논현동보다는 소래가 유명한 지명이라 외지인한테는 논현동을 소래 쪽이라 합니다. 지금은 소래포구 인근은 고층건물 즐비한 신도시 지역이지요. 물론 지금도 소래-논현동 일대는 고립지이기는 합니다. 북쪽은 상기한 NDS 지역이고 서쪽은 남동공단이거든요.

 

 한편으로 본래 소래 지역은 인천도호부에 속해 있었는데,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지역이 갈려 아직 경기도 시흥시에 소래 지역 일부가 속해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한 지역인 걸 광역단체 레벨에서 갈라놔서 개발과 행정에 문제가 좀 있습니다.

 

 

 

 

소성

 

: 인천지역은 비류-백제 시절에는 미추홀, 고구려 시절에는 매소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고구려가 멸망하고 신라가 백제를 차지한 다음에는 소성(邵城)이라는 이름이 붙여집니다. 당시 행정구역명은 ‘현’이라 ‘소성현’으로 불렸지요. 이 소성이라는 이름은 인천 지역 탁주인 ‘소성주’, 그리고 미추홀구 문학동의 ‘소성어린이공원’, 또한 무네미로에 있는 ‘소성성당’에 붙여져 있습니다. 소성성당의 위치는 부평구 구산동이지만, 군인이 이용하는 성당이라서 소성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걸로 보입니다.

 

 

 

 

 

 

소성주

 

: 인천지역 탁주입니다. 업계 최초 쌀막걸리로 알려져 있으며 생탁이고 저렴하고 맛있습니다. 다만 근 몇 년 사이 ‘소성주 플러스’라는 것도 나왔는데, 그건 나는 맛있는지 모르겠고요. 그냥 소성주는 탄산이 세고 맛있습니다. 맛있다보니 꽤 인기가 좋아서 인천 지역 외에서도 찾는 사람은 있지만, 인천을 벗어나면 구하기 어렵습니다. 바로 인접한 김포와 부천에서는 파는 곳이 있을 겁니다. 인천지역에서는 소성주 인기가 좋아서 다른 탁주를 밀어내고 탁주시장 1위 유지 중입니다.

 

 소성주에는 12간지에 해당하는 동물이 그려져 있습니다. 고를 때 마음에 드는 걸 골라도 되고요. 최근에는 인천의 오래된 건물 12개의 그림도 들어가 있습니다.

 

 

 

 

 

소래산

 

: 인천과 시흥에 걸쳐있는 산. 높이 299.6m. 정상의 비석은 299.4m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인천도호부에서 가장 높은 산이었고, 현재는 남동구쪽 인천광역시의 동쪽 경계에 해당합니다.

 

 소래산 정상부는 인천 권역입니다만, 소래산에 접근하기 좋은 지역은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과 대야동 쪽입니다. 시흥시에서는 소래산을 시흥시 산으로 홍보합니다. 정상부는 인천 권역인데 이용객은 김포시 쪽에서 많은 가현산과 비슷한 케이스. 인천 쪽에서 대중교통으로 방문할 때는 인천대공원이나 운연역 쪽을 통해 접근하는 게 편합니다.

 

 

 

 

 

소래습지생태공원

 

: 옛 소래염전 중 일부 지역을 활용한 대규모의 공원. 논현지구와 서창2지구 사이에 위치합니다.

 

 인천에서 드물게 진짜 바다 느낌을 만끽할 수 있는 공원입니다. 백사장 휴양지 느낌이 아니고요. 철새를 관찰하기 좋은 곳이기도 합니다.

 

 장수천을 따라 북쪽으로는 인천대공원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장수천을 따라 도보나 자전거 등으로 인천대공원까지 투어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송도

 

: 구송도에서 상기하였듯 현 시점에서 ‘송도’라고 하면 송도국제도시를 뜻합니다. 송도국제도시는 전역이 매립지고, 인천 본토와의 사이에 해수가 있는 해협이 하천 정도 폭으로 남아있어 인공 섬과 같은 지형입니다. 물론 구송도를 그냥 송도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고, 구송도와 송도국제도시를 합쳐서 송도라 해도 그 또한 틀린 말이 아니긴 한데 근 몇 년 사이에는 그런 식으로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송도달빛축제공원

 

: 송도국제도시 북쪽의 공원 및 역명. 송도달빛축제공원역은 202012월에 개통되어 현 시점 인천 1호선의 기점 역이 되어 있습니다.

 

 송도달빛축제공원은 평소에 이용객이 많은 공원이라기보다는 행사용 공원입니다. 맥주축제나 락 페스티벌 등, 송도에서 주요 야외 행사가 있을 때 주 무대가 되는 곳이 이 공원입니다.

 

 공원 내에 도그파크가 있어 평소에는 애견을 동반한 사람들이 달빛축제공원을 이용하곤 합니다. 또한 소위 송도 3대 공원보다 한적한 편이다보니 현지 주민들은 운동용 공원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공원 바깥쪽은 아암호수에 접해있어 향후 아암호반이 단장될 경우 그것을 즐길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유감스럽게도 현재는 딱히 볼만하지 않고 주차장소로나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천 본토와 송도국제도시를 가로지르는 갯골 인근에는 길게 공원이 조성되어있는데, 그 공원은 달빛공원이라 합니다. 달빛축제공원과는 인접해 있습니다.

 

 송도달빛축제공원역은 현재 인천 1호선 역 중 가장 최근에 개통된 역인데, 역명 설문조사 당시 현 이름은 전혀 인기가 없어 설문조사 대상 중 겨우 2.45%의 지지만 받아 최하위였던 이름입니다. 그래서 현 역명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당시 설문조사 순위는 인천타워역이 압도적으로 1위였고, 그 뒤를 이어 송도국제도시역 송도랜드마크시티역 인천대교역 송도달빛축제공원역 순이었습니다.

 

 아직 시공되지 않고 있는 인천타워는 송도 주민들의 오랜 염원이었고, 본래 그 위치가 달빛축제공원역 근처로 예정되어있던 만큼 당연히 인천타워역이 압도적인 1위였는데, 일단 타워를 올리지 않고 있으므로 그 이름을 붙이는 게 어려웠다 해도 송도국제도시역이나 랜드마크시티역이 더 어울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 역명은 나중에 변경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역 중 송도달빛축제역은 유일하게 송도라는 이름이 들어가있기도 합니다.

 

 

 

 

 

송도센트럴파크

 

: 송도국제도시의 랜드마크이자 사견으로는 인천 남부 최고의 공원. 전국에 센트럴파크라는 이름이 붙은 공원은 꽤 있지만 송도 센트럴파크가 가장 유명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하는 한국관광 100선에 2017년부터 선정된 후 지금까지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도 합니다.

 

 호수공원 형태이며 호수물로는 해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내부 호수에서 수상택시 및 보트, 카약 등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겨울을 제외하면 경관이 매우 미려한 공원입니다.

 

 내부에 한옥마을과 인천도시역사관, 그리고 트라이보울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한옥마을은 그리 규모가 크지는 않고, 상업용 한옥 단지로 호텔/음식점/카페라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트라이보울은 미술품 같은 익스테리어를 지닌 전시관 및 공연장으로 좋은 사진촬영 장소입니다.

 

 센트럴파크는 인천타워대로 서쪽으로도 이어지는데, 센트럴파크역 2번 출입구 쪽으로 아트포레라는 스패니쉬기와를 올린 상가가 있습니다. 아트포레 앞 호수에는 숭어가 다수 있어 통상적인 호수공원의 잉어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송도컨벤시아

 

: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컨벤션 센터. 즉 종합전시장. 인천광역시의 대표 전시장으로 COEXKINTEX 같은 전시회장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위치는 포스코타워 바로 옆으로 송도와 인천의 랜드마크 중 하나입니다. 다만 아직 규모가 크지는 않습니다. 확장이 예정되어 있지만, 아직 송도컨벤시아에서 개최되는 박람회의 규모는 다소 작은 편입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가장 가까운 역은 인천대입구역입니다만, 어느 정도는 걸어야 합니다. 지도로 보면 그리 멀어보이지 않습니다만, 송도국제도시는 구역 하나하나가 넓은 편입니다.

 
 
 
 

 

송현아

 

: 송도현대프리미엄아울렛의 송도 현지 속어입니다. 근 몇년 사이 송도국제도시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송현아 일대입니다. 대중교통도 주차도 편하고 규모가 있는 복합쇼핑몰이라 바깥날씨 영향이 덜하기 때문입니다. 근접해 있는 오네스타, 홈플러스 송도점, 트리플스트리트 A,B,C,D동과 지하도로 연결되기 때문에 밖에서 보면 사람이 많아보이지 않습니다만. 이중 송현아가 건물이 크고 주차가 편하기도 하고, 인천1호선 테크노파크역과 바로 이어지기도 해서 흔히 이쪽 일대를 부르는 이름이 송현아 쪽입니다. 테크노파크역이라는 역명으로는 이쪽 지역을 잘 부르지 않습니다.

 

 아라뱃길 아라마리나 근처 김포시 권역에도 현대프리미엄아울렛이 있는데, 그건 김현아라고 부릅니다.

 

 

 

 

수봉공원

 

: 미추홀구 수봉산에 조성된 공원. 수봉산은 해발 107.2m의 그리 넓지 않은 산으로 남쪽으로는 () 경인고속도로 현 인천대로 , 북쪽으로는 경인선이 지나갑니다.

 

 낮은 구릉지가 이어지는 구도시인 미추홀구는 녹지가 많지 않은 편입니다. 그런 미추홀구에서 수봉공원은 중요한 공원입니다.

 

 과거 남구가 인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던 시절에는 수봉공원이 인천의 주요 공원 중 하나였습니다. 예전에는 놀이기구도 있었고, 그래서 월미도, 송도유원지와 함께 인천의 3대 놀이공원으로 꼽혔었습니다. 지금은 놀이기구가 없어져서 월미도 일대가 인천 본토의 유일한 놀이공원이 되어버렸습니다만.

 

 최근의 수봉공원은 하절기에 밤산책을 하기 좋은 곳입니다. 날이 좋을 때는 붐비는 공원이고, 주차하기 좋지 않은 편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대중교통으로 방문하는 게 좋습니다.

 

 

 

 

수인선

 

: 인천역 수원역을 잇는 철도. 공식적으로는 경부선의 지선이며 광역철도에 속합니다만, 현실적으로는 수도권 전철 수인ㆍ분당선 중 수인선 구간을 의미합니다.

 

 본래 수인선은 1937년에 개통된, 지상에 깔린 협궤철도였습니다. 그러다 1988년 안산선(오이도-금정 구간 4호선)이 개통된 이후 수요가 줄어들었고, 그에 1990년대 들어 협궤 수인선은 점차 노선이 짧아지다가 19951231일을 마지막으로 폐선됩니다. 다만 그냥 없앨 계획은 아니었고, 표준궤 복선을 깔아 재개통하는 게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1997년에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수인선 공사는 바로 진행되지 못했고, 수인선 선로 근처 주민들의 요구로 인해 당초의 계획보다 지하화나 고가화가 이루어지게 되어 개통이 더 늦게 됩니다. 결국 수인선의 재개통은 2012년에야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1996년부터 20125월까지는 인천-안산-군포-수원 사이의 대중교통이 매우 나빴습니다. 먼 거리가 아닌데도 경인선을 타고 구로까지 가서 돌아가곤 했지요. 대한민국이 한참 발전하고 수도권 각 도시가 팽창하던 00년대에 수인선이 없었기 때문에, 인천과 수원은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는 도시가 되어버렸고 두 도시 모두 서울에 더욱 우선적으로 이어지면서 우리나라의 서울민국화가 가속화되었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수인선이 계획보다 많이 지체되었다는 증표 중 하나가 연수역과 신연수역입니다. 연수역은 본래 90년대 초에 연수지구를 개발할 때 계획되었던 역인데, 수인선이 폐선되고 재개통이 늦어지면서 2012년에야 개통되었습니다. 대조적으로 신연수역은 연수역 계획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이름이 신연수역이 되었고 인천 1호선으로 개통되었는데, 인천 1호선은 지연이 없었기 때문에 1999년에 개통되었습니다.

 

 처음 계획대로라면 연수역은 연수지구가 개발될 때 생겨 중심 역이 되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실제 연수역은 연수지구의 전성기가 다 지나가던 시기에 개통하고 말았습니다.

 

 복잡한 역사 덕에 수인선은 논현지구 구간에서는 고가철로 지나갑니다. 2010년대에 준공된 신도시에 고가철이 지나가는 드문 케이스인데, 소래포구가 관광지이다 보니 수인선의 고가철이 관광객들에게는 좋은 면이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수인선은 2020년에 점차 연장되던 분당선과 직결되어 수인ㆍ분당선이 되었습니다. 오이도-한대앞 구간은 수인분당선과 4호선의 공용구간이고, 한대앞역에서 두 노선이 갈라집니다. 수인분당선은 현재 청량리가 기점인데, 덕분에 인천역에서 청량리역으로 가는 철도가 둘이 되었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청량리역으로 갈거면 수도권 전철 1호선(경인선)을 타는 게 좋습니다. 수인분당선 열차 중 청량리까지 가는 열차는 배차가 별로 없고 무척 돌아서 가기 때문에 아주 오래 걸립니다. 대체로는 수인분당선 직결 열차도 왕십리까지만 가고, 청량리까지 가는 열차는 더 적습니다. 명목상 왕십리-청량리 구간은 분당선이 아니고 경원선이긴 합니다.

 
 
 
 
 

수주

 

: 고려 초기 부평 지역의 명칭. 1150년까지 사용된 이름입니다. 이 이름을 딴 도로명 ‘수주로’와 ‘수주초등학교’, ‘수주중학교’, ‘수주고등학교’가 있는데, 모두 인천광역시 권역이 아닌 부천시 고강동에 있습니다.

 

 

 

 

 

숭의아레나

 

: 정식 명칭은 인천축구전용경기장입니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홈 구장이고, 경인선 도원역 인근입니다. 구장의 공식적인 주소는 인천광역시 중구 도원동 참외전로 246인데, 흔히 부르는 이름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이름을 딴 숭의아레나입니다. 원래 이 곳에 숭의종합경기장과 숭의야구장이 있었는데 그걸 철거하고 축구전용경기장을 지은 것이거든요. 건축과정에서 중구와 미추홀구(당시엔 남구) 사이에 분쟁이 있었고, 결국 정식 명칭은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 되어 공식적으로는 그리 불립니다만, 축구팬들은 그 이름을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실제 구 경계선이 경기장을 지나가고, 인천유나이티드 홈팬 응원석은 미추홀구 숭의동이고 원정팀 응원석은 중구 도원동이라 더더욱 현지팬들은 숭의아레나라는 이름을 고집 중입니다.

 

 

 

 

승기천

 

: 인천지역의 대표적인 하천입니다. 수봉산에서 발원하여 주안을 거쳐 구월동에서 남쪽 방향으로 흘러 남동유수지를 지나 황해로 흘러가는 하천인데요. 지금은 구 구월농산물도매시장보다 상류는 복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복개되지 않은 승기천 일대는 원래는 바다였던 지역입니다. 간척한 지역만 복개하지 않은 상태고요.

 

 복개되지 않은 부분 전체가 공원화되어 있고, 연수구와 남동구의 경계를 이룹니다. 대략 승기천 서쪽은 연수구, 동쪽은 남동구 남동공단입니다.

 

 

 

 

 

시민회관

 

: 현재의 인천도시철도 2호선 ‘시민공원’역은 ‘옛시민회관사거리’에 인접해 있습니다. 사거리 북서쪽에 ‘옛시민회관쉼터’가 있는데, 그곳에 본래 2000년까지는 인천시민회관이 있었습니다. 역 이름이 ‘시민회관’이 되지 않은 건 지금은 시민회관이 없고 공터가 있어서인데, 사실 공원이라 하기엔 그냥 별로 넓지 않은 산책로 수준입니다. 시민공원역을 시민회관역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고, 시민공원이라는 이름이 많이 사용되는 편은 아닙니다.

 

 

 

 

신승반점

 

: 한국식 자장면은 차이나타운에 있던 ‘공화춘’이라는 중화요리집에서 처음 상품화되었다는 게 정설입니다. 설립 당시의 이름은 ‘산동회관’이었습니다.

 

 본래의 공화춘은 1970년대에 박정희 유신정권의 외국인에 대한 재산권 행사 제한으로 인해 경영이 어려워지게 되어 1984년에 폐업합니다. 이후 오랜 시간동안 폐가로 있었고, 2010년에 들어서야 중구청이 건물과 대지를 매입하여 짜장면박물관으로 개장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차이나타운에는 공화춘이 있는데, 이곳은 공화춘 재건 프로젝트로 다른 사람이 설립한 곳입니다. 설립 당시 옛 공화춘에서 일하던 주방장이 참여했다고는 합니다만, 보통 이 공화춘은 본래의 공화춘과는 다른 중화요리집으로 인식합니다.

 

 본래의 공화춘의 맥을 이은 곳으로 인식되는 음식점은 신승반점인데, 공화춘 설립자 우희광의 외손녀가 영업 중입니다. 본점은 역시나 차이나타운에 있는데, 지점도 곳곳에 있습니다. 본점에는 사람이 몰려서 이용하려면 대기시간이 긴 편이고요. (새) 공화춘과 신승반점 사이에 상표권 분쟁이 오랜 기간 있었는데 이건 공화춘이 이겼습니다.

 

 나의 경험으로는 신승반점은 방문할 때마다 맛 편차가 큰 편입니다. 워낙 고객이 많은 음식점이다보니 주방 인원이 다수인 게 영향이 아닐까 추정하고요. 맛있는 날엔 최고 수준인데 맛없는 날에는 꽤 평범해집니다.

 

 

 

 

신포국제시장

 

: 동인천역 및 신포역 인근에 있는, 소래포구어시장과 함께 인천에서 가장 유명한 시장. 전국 최초의 닭강정인 신포닭강정 본점, 신포우리만두 본점이 위치한 곳입니다. 그 외 공갈빵도 유명하고, 청실홍실 본점도 바로 근처에 있습니다.

 

 큰 규모의 시장은 아닌데 관광지이다 보니 날씨 좋은 주말에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으로 유명해졌던 눈꽃마을 청년몰이 있었지만 반짝 인기얻다가 사라졌고요. 인근에 개항장거리, 차이나타운, 송월동 동화마을이 있습니다.

 

 

 
 

 

신포닭강정

 

: 최초의 닭강정. 닭강정이라는 요리는 동인천역 인근 신포국제시장에서 처음 개발되었습니다. 신포시장에 가면 닭강정집이 여럿 있는데, ‘신포닭강정’이 최초의 닭강정을 만든 곳입니다.

 

 신포닭강정 맛은 간장 계열에 가깝고, 자른 고추가 들어있어 매운 맛을 보충합니다. 뼈가 있는 닭강정이고요. 흔히 닭강정은 식어도 맛있다고 합니다만 어떻게 먹어봐도 갓한 게 더 맛있습니다.

 

 부평에도 신포닭강정 지점이 있습니다. 거주지에 따라 다르지만 어지간해서는 사람이 몰리는 신포시장보다는 부평에서 먹는 게 편합니다. 위치는 북인천우체국에서 백운역 방향으로 100m정도 떨어진 길건너 맞은편입니다.

 

 

 

 

 

십정동

 

: 부평구 서남단의 법정동. 행정동으로는 십정1동, 십정2동, 부평3동으로 나뉘어있습니다. 행정동 부평3동은 법정동 부평동의 일부와 십정동의 일부를 포함하는 행정동이라 오래 전부터 말이 좀 나오는 편입니다. 보통 이런 경우는 부평십정동 같은 식으로 행정동 이름을 붙이는데, 왜 부평3동이라 이름붙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자로는 十井. 그래서 열우물이라는 한글 표현도 많이 씁니다. 본래 이 지역은 주안일대 만(Bay)이 닿은 바닷가에 해당하던 지역이고 인천도호부에 속하던 곳으로, 역사적으로 부평도호부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행정구역상으로는 부평구지만, 실제로는 부평지역이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대략 부평쪽에서는 백운고가 너머부터 동암역 권역이라 상권으로도 간석동이 가깝고, 서구 가좌동과도 이어지는 지역입니다. 즉 본래 인천도호부와 부평도호부의 경계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는데, 지리적으로도 그렇고 예전에는 인천도호부에 속했지만 인천과 부평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행정구역상 부평에 편입된 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릉지형으로 응답하라 1988을 찍은 지역이었기도 한데, 현재는 대규모 재개발이 이루어져 인천 최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동암역에서 백운역 사이는 경인선으로 인해 동서가 심히 분단되어 있고, 경인선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기 좋은 장소라 생각합니다.

 

 

 

 

 

쓰레기도로

 

: 2025년 종료를 앞두고 인천-서울 대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서구 오류동 쓰레기매립지에 오고가는 도로를 본래 쓰레기도로라 불렀습니다. 지금은 매립이 끝난 구역을 공원화시켜 ‘드림파크’라는 이름을 붙였고, 쓰레기도로도 이름을 드림로로 바꾸긴 했는데요. 예전하고 비주얼도 많이 바뀌어서 더 이상 쓰레기도로라는 이름을 많이 사용하지는 않습니다만, 누군가 쓰레기도로라 한다면 드림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라동

 

: 가장 최근에 생긴 인천광역시 검단 지역의 행정동. 행정동 원당동에서 분동되었으며, 2021~2022년에 전국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장릉 남쪽 고층아파트가 있는 지역이 이 아라동입니다. 물론 그 사건은 처음부터 일처리 잘못한 문화재청이 언론 플레이한 사건이었지요.

 

 김포시 풍무동과의 경계 지역으로, 일단 현 시점에서는 풍무동 인접지역과는 직접적으로 오갈 수 있는 길이 없는 상태입니다. 동 이름은 아라뱃길에서 따온 것 같은데, 막상 아라뱃길이 지나가는 동은 아닙니다. 아라동 남단에서 아라뱃길까지는 직선거리 500m 이상 떨어져 있습니다.

 

 

 

 

아라마루

 

: 아라뱃길 북쪽에 있는 전망대 및 휴게소. 동명의 장소가 경남 사천시에도 있긴 합니다.

 

 아라마루는 계양구 권역에 속해있습니다만, 계양산 북쪽 구릉지에 있기 때문에 실제 계양구 도시지역에서는 접근성이 좋지 않습니다. 서구 검암동이나 최근에 도시화된 아라동에서 접근하기 쉬운 편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검암역 쪽에서 가는 게 일반적인 루트입니다. 자차가 있다면 아라뱃길 북쪽의 아라로를 통해 접근하면 됩니다. 아라마루는 아라로 드라이브 코스 또는 아라뱃길 인근의 투어를 위한 휴게소라 생각하면 됩니다.

 

 아라뱃길 북쪽의 자전거도로를 달리면 인공폭포인 아라폭포가 있는데, 그 위쪽에 아라마루가 있습니다. 아라폭포에서 아라마루까지는 계단을 통해 접근 가능합니다만, 급경사의 계단이다보니 자전거를 가지고 계단을 오르려면 체력이 좀 필요하긴 합니다.

 

 아라마루 전망대는 고리형으로 천사의 고리를 연상시킨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주간에는 전망을 즐길 수 있고, 야간에는 LED가 빛나는 것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른 저녁 시간에 가서 노을과 낙조를 보고, 밤에 LED가 빛나는 것도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시아드

 

: 2014년에 아시안게임을 하면서 인천광역시는 글로벌금융위기의 여파와 유동성위기에도 불구하고 여러 시설을 건립하게 되는데, 그것들에 아시아드라는 이름이 붙어있습니다. 일단 ‘아시아드주경기장’은 인천 서구청 쪽에 있습니다. 인천도시철도 2호선에 ‘아시아드경기장역’도 있긴 한데, 실제 역에서 경기장까지는 수백미터정도는 거리가 있습니다. 아시아드경기장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아시아드대광로제비앙’이라는 아파트 단지가 있고요.

 

 아시아드라는 이름이 붙은 주요 거주지로는 ‘구월아시아드’가 있습니다. 남동구 구월1동에 위치해 있으며, 상기했던 NDS지역에 해당하는 수산동 인근입니다. 브랜드 이름이 붙은 아파트도 있고, 그냥 선수촌 X단지라고 부르는 단지들도 있는데요. 이름은 선수촌이지만 실제 운동선수들이 거주하거나 매수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천 도심지역에 있는 드문 신축아파트고, 주변이 녹지라 인기는 좋습니다만, 구월동 중심지 생활권에서는 다소 떨어져 있기 때문에 도심 선호자들에게는 비선호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계양구 서운체육공원 및 대한항공 점보스의 홈구장, 계양체육관이 있는 곳에 아시아드 양궁장이 있습니다. 이쪽은 양궁장이 존재감이 강한 편은 아니라서 아시아드로 불리는 빈도는 낮은 편입니다.

 

 

 

 

 

아트센터인천

 

: 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 콘서트홀. 인천예술회관 다음으로 인천에서 클래시컬 콘서트가 열리는 공간입니다. 센트럴파크와 인접해 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방문할 때는 센트럴파크역 2번 출입구에서 600미터 정도 가면 됩니다.

 

 

 

안남

 

: 부평지역의 옛 이름중 하나로, 고려 의종 4년(1150년)에 수주에서 안남도호부로 개명되었었습니다. 안남이라는 이름은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의 남쪽을 편안하게 다스린다는 뜻인데, 이 이름을 가진 지역이 여러 번 변경되었었습니다. 대략 전주 -> 고부(현 정읍) -> 영암 -> 전주 -> 부평으로 옮겨가면서 붙었던 이름입니다.

 

 안남도호부라는 이름은 고려 고종 2년(1215년)에 계양도호부로 변경되면서 사라집니다. 이름 변경 당시 안남도호부 관아는 현재의 이화동(당시 황어향 오리울=선곶. 현 행정동 계양1동 권역)에 있었는데, 의종 19년(1165년)에 이후의 부평도호부 위치(부평초등학교 관내)에서 멀지 않은 중구봉 아래로 이전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조선이 망할 때까지 700년 이상 부평의 중심지는 현 계산동-작전동-효성동 일대가 됩니다.

 

 안남이라는 이름은 경인교대 부설초등학교부터 남쪽으로 이어지는 안남로와 계산3동의 안남초등학교, 안남중학교, 계산1동의 안남공원, 작전1동의 안남고등학교에 남아있습니다. 부평의 옛 이름 중에서는 많이 쓰는 편이라 인지도가 있는 이름이지만, 실제 안남이라는 지명을 익히 사용하는 계양구에도 안남이라는 이름이 부평의 옛 이름이라는 것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안병원

 

: 현재의 부평구청 사거리에 있는 세림병원의 예전 이름이 안병원입니다. 처음 안병원을 세운 의사의 이름이 ‘안승택’이어서 안병원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쪽을 부평구청 쪽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부평구청이 생긴 건 부평구가 생기고 나서입니다. 80년대에는 부평구+계양구+서구가 북구였지요. 여기서 일단 서구가 분구되어 나간 이후, 인천직할시에서 인천광역시가 되면서 계양구가 분구되어 나가고 남은 북구는 부평구가 됩니다. 그 이후 세림병원 앞에 부평구청이 생겼고요. 부평구청이 생기기 이전엔 안병원이 그 지역의 랜드마크였고, 부평구청이 생긴 이후에도 한동안 그 쪽을 안병원 쪽이라고 했었습니다.

 

 안병원은 2001년에 이름을 세림병원으로 변경합니다. 이유는 ‘안과’병원이나 ‘암’병원으로 오인되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도 사람들은 세림병원을 안병원으로 오랜 기간 불렀으나, 이제 이름 바꾼지도 20년이 지났기 때문에 이젠 안병원이라는 이름을 잘 쓰지 않습니다.

 

 

 

 

안스베이커리

 

: 인천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 체인입니다. 대한민국 제과명장 중 한 명인 안창현 씨가 1989년 창업하였고, 성공하여 현재는 서울과 고양시, 부천시 등에도 체인점이 있습니다. 또한 안스베이커리에서 일을 하다가 독립한 사람들이 연 제과점들도 있는데, 그런 제과점들은 안스베이커리의 체인점은 아니지만 제빵 스타일은 안스베이커리와 유사합니다.

 

 안스베이커리 본점은 인천 구월동에 있는데, 구월동 번화가 중심지에 있는 건 아니라서 로데오거리 같은 데서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지점으로 인천에는 연수구 롯데마트 인근과 송도 센트럴파크 푸르지오, 그리고 미추홀구 도화지구에 세 지점이 있습니다. 이 중 연수점은 2층에 넓게 카페 좌석이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 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 연세대학교의 캠퍼스. 송도캠퍼스라고도 많이 불립니다. 미래캠퍼스(원주캠퍼스)와는 달리 본교에 속하는 캠퍼스로, 신촌캠퍼스의 공간적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인천1호선 캠퍼스타운역은 어느 정도 이 연세대 국제캠퍼스를 의식하고 지은 이름입니다만, 실제 캠타역과 연세대는 거리가 조금 있다보니 캠타역 근처만 보면 왜 여기가 캠퍼스타운인가 의아할 수 있습니다. 1역 떨어진 테크노파크역 인근에는 바로 인천대학교와 인하대학교의 캠퍼스가 있다 보니 더욱 그렇기도 하고요.

 

 본래 연세대는 국제캠퍼스에서 1, 2학년 수업을, 신촌캠퍼스에서 3, 4학년 수업을 받게 할 계획이었으나 그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체로 1학년만 국제캠퍼스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다만 학과에 따라 국제캠퍼스에서 4년을 보내는 학과도 있긴 합니다.

 

 한편으로 국제캠퍼스가 있는 송도에는 세브란스병원이 들어올 예정입니다만, 당초의 계획에 비해 지연되어 현재는 2026년에야 들어설 예정입니다. 그동안 송도국제도시와 인천광역시는 연세대학교의 유치를 위해 특혜 소리 들어가면서 많은 것을 제공했지만, 연세대학교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지키지 못했다고 하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병원 차려봐야 돈 못 벌거든요. 연세대측도 그동안 지키려고 나름대로 노력한 면이 있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연세대학교가 앞으로도 계속 약속을 어길 경우 인천과 송도는 강하게 대응하게 될 거고, 연세대학교는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연수구

 

: 인천광역시 최남단의 자치구. 문학산 남쪽으로, 남구에서 1995년에 분리 독립하였습니다. 인천광역시에서 경제력이나 생활수준이 가장 높은 자치구로, 본래는 행정 등에는 영향력이 높지 않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행정적인 비중도 높아지는 중입니다.

 

 연수구의 지역은 크게 3지역으로 나뉩니다. 구송도, 연수지구, 송도국제도시. 이 중 연수지구와 송도국제도시는 거의 전 면적이 간척사업으로 만들어낸 땅입니다. 그래서 예전엔 연수구 권역에 해당하는 땅이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꽤나 넓은 지역이 되었습니다. 구송도쪽만 원래 육지였는데 간척해 만든 다른 지역과는 달리 구릉지라 지형이 매우 대조적입니다.

 

 연수지구는 90년대 초중반에, 송도국제도시는 00년대 후반부터 도시화가 되었기 때문에 이 지역들은 거의 전체가 신도시입니다. 연수지구의 경우 송도국제도시가 활성화되기 전에는 인천의 강남 정도로 인식되었습니다만, 근 몇 년 사이에는 송도가 흥하고 건물이 구축화되면서 위상이 다소 떨어져 인천의 송파 정도가 되어버렸고, 대조적으로 송도국제도시는 나날이 별세계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생활수준이 높다보니 연수구 일대는 인천의 타 지역보다 물가가 비싼 편이고, 신도시가 차지하는 면적이 넓어 재래시장은 구송도의 옥련시장밖에 없습니다. 실거주시에는 고려해야 합니다.

 

 구의 마스코트는 학인데, 실제 학을 볼 수는 없고요. 대신 인천 타 지역에는 없는 까마귀는 쉽게 볼 수 있는 편이고, 새는 아니지만 박쥐가 종종 목격되기도 합니다. 

 

 

 

 

 

 

연수지구

 

: 90년대 중반에 들어선 신도시로, 연수구에서 구송도와 송도국제도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쯤 됩니다. 송도국제도시 북쪽, 미추홀대로 동쪽 정도로 규정할 수 있고요. 이 연수지구가 생기면서 원인천에 있던 중산층과 부유층이 많이 이주해 왔었습니다. 그래서 90년대부터 00년대까지 인천 최고 부촌으로 꼽혔고, 인천의 강남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젠 송도국제도시로 부유층이 많이 넘어가면서 인천의 송파 정도로 위상이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아직 생활수준이 괜찮은 곳입니다.

 

 90년대 초중반, 김영삼 시대는 우리나라의 황금기였습니다. 물질적으로는 지금이 더 잘 살겠지만 정서적으로는 저 때가 서민들 기준에서는 최고로 잘 살았지요. 그리고 그 당시 지어졌던 아파트 근린상가들은 크기도 큽니다. 아직 마이카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시기에 중산층과 부유층이 많이 들어왔던 곳이고, 문학산 이북에 비하면 인구유출도 심했던 지역이 아니고, 기독교인 비율도 높아서 그런지 동네 분위기가 밝은 편입니다. 경험적으로 어떤 동네는 처음에 어떤 분위기가 자리잡히면 그 분위기가 좋은 방향으로는 잘 변하지 않습니다.

 

 

 

 

연안부두

 

: 인천항의 부두. 일반적으로 연안부두라고 하면 인천항과 연안부두어시장을 의미합니다. 그 중에서도 사실 어시장을 의미할 때가 더 많습니다.

 

 연안부두에서는 배를 타고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의 서해 5도와(5도 중 우도에는 민간인이 살지 않습니다) 이작도, 자월도, 승봉도, 덕적도, 육도, 풍도, 팔미도, 그리고 제주도에 갈 수 있습니다. 그 세월호가 출항했던 항구이기도 합니다.

 

 연안부두어시장은 인천 현지인이 대체로 가장 선호하는 어시장입니다. 더 유명한 소래포구가 상대적으로 관광지 느낌이 강하다면 연안부두는 해산물 사러 가는 곳에 가깝습니다. 다만 연안부두는 교통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소래포구가 수인선으로 쉽게 접근이 가능한 반면, 연안부두는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가까운 역이 없고 버스를 타야 합니다.

 

 

 

 

연희공원

 

: 연희동 서쪽으로 조성중인 공원. 본래 해안에 포대가 있던 진지였던 곳에 위치해있어 그 흔적이 있기도 합니다. 조성중인 공원이지만 이미 공원화된 지역이 넓어 방문에 문제는 없습니다.

 

 연희공원은 꽤나 특이한 형태의 공원으로, 저지대의 경작지를 낀 낮은 구릉지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연희공원을 다니다보면 저지대의 논과 밭을 볼 수 있고, 본래 해안에 위치했던 곳이고 한적한 경작지여서 그런지 철새가 많이 옵니다. 새 구경을 하기에도 좋은 곳입니다. 도시 공원이라기보다는 도시의 경계에 있는 생태공원에 가깝습니다.

 

 공원 동쪽으로는 서구아시아드경기장이 있고, 서쪽에는 공촌천과 공촌천가에 조성된 사염공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서쪽으로 사염공원을 따라 1.3km 정도 가면 청라호수공원이 있어 공원을 따라 투어가 가능합니다.

 
 
 
 

연희동

 

: 서구청 일대의 행정동이자 법정동. 행정동 연희동은 법정동 공촌동과 심곡동을 포함합니다. 즉 행정동 연희동 = 법정동 연희동+공촌동+심곡동입니다.

 

 거대한 자치구인 서구의 행정중심지. 역사적으로는 부평에 속했고, 부평의 중심지였던 계산동 일대에서 징매이고개를 넘으면 되는 가까운 지역이라 구한말부터 요새화되는 등 역사적으로도 서구 지역의 중심지였습니다. 다만 지형이 구릉지고 넓지는 않습니다. 또한 서울 연희동이 유명하고, 실제 인천 연희동과 서울 연희동은 은근히 가깝기도 해서 (직선거리 20km 정도) 인천의 타 지역에서 ‘연희동’이라고 하면 서울 연희동을 떠올리는 경우도 제법 있습니다.

 

 

 

 

 

영종도

 

: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는 원래 지금만큼 큰 섬이 아니었습니다. 영종도 서쪽으로 신불도, 삼목도, 용유도라는 분리된 섬들이 있었지요. 그런데 현재의 영종도는 그 중간에 간척사업을 해서 하나의 섬으로 합친 겁니다. 그 결과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큰 섬이 되었지요. 안면도, 완도, 울릉도보다 큰 섬입니다. 공항이 워낙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고, 그 넓이에 비해 사람이 많이 산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만.

 

 네 개의 섬 중 제일 서쪽에 있었던 용유도는 다른 세 섬과 거리도 좀 있었고, 크기도 제법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영종도를 영종ㆍ용유도라 부르기도 합니다. 지금도 용유동이라는 지명으로 용유도의 흔적이 남아있고요. 지금 공항이 있는 위치가 대략 본래의 세 섬과 용유도 사이의 바다를 간척한 지역입니다.

 

 

 

 

옐로 선셋 레이크

 

: 송도4동에 위치한 인천에서 가장 큰 인공호수.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지도에도 나오지 않지만, 옐로 선셋 레이크 (Yellow Sunset Lake) 라는 이름이 붙어있습니다. 가칭인지 정식명칭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네이버 지도에는 현재 Water Front Lake로 나와 있습니다.

 

 주변 일대는 한참 개발 중이라서 아직 호수가가 공원화되거나, 호수에서 레저를 즐길 수 있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송도 워터프론트 계획의 일부가 될 겁니다.

 

 다만 호수가 남북으로 길이가 2km에 육박할 만큼 꽤 크다보니 송도 내부의 교통에는 좀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다리나 지하도 등 호수를 가로지를 수 있는 수단이 없고, 수단을 만드는 문제에 있어 협의가 없는 상태입니다. 호수 서쪽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있습니다.

 

 

 

 

오류동

 

: 인천에 오류동은 두 지역이 있습니다. 하나는 계양구 오류동이고 하나는 서구 오류동인데, 둘 다 아라뱃길 북쪽에 있고 멀지도 않습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서구 오류동 일부 권역은 아라뱃길 남쪽에도 걸쳐있습니다만, 대부분의 면적이 아라뱃길 북쪽에 있기 때문에 아라뱃길 북쪽의 법정동으로 인식되곤 합니다. 두 지역 다 별로 사람이 살지 않는 외곽 지역입니다.

 

 서구 오류동은 정서진과 수도권쓰레기매립지와 공단이 있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계양구 오류동은 그나마 신동아라는 대단지 아파트가 있긴 합니다만, 해당 지역은 법정동 장기동, 오류동, 이화동이라는 세 법정동이 몰려있는 지역이라 아파트 단지 이름은 ‘오류동 신동아’지만 지역을 부르는 대표동명은 장기동입니다. 한편으로 오류동 신동아 바로 옆에는 신동아 2단지가 있는데, 그 2단지는 법정동 이화동 권역이라 이화 신동아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류동이라는 동명은 인천에 두 곳이나 있지만, 아라뱃길 이남 계양구나 서구 사람들에게도 인지도가 별로 없는 편입니다. 그나마 인천도시철도 2호선 개통 이후에는 검단오류역이 생겨서 오류라는 지명을 인지하게 된 사람들이 꽤 있긴 합니다만, 일견 오류동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인천 사람들은 서울 구로구 오류동을 떠올립니다. 인천 사람들이 경인선을 타고 다닌 역사가 길고, 경인선에 오류동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 이전에는 서울 오류동 또한 부평도호부에 속하기도 했습니다.

 

 

 

 

 

올리브백화점

 

: 간석동의 백화점. 1980년에 ‘미도파쇼핑센터’로 개점하여, 1984년에 ‘희망백화점’으로 이름을 바꾸어 2004년까지 영업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인천 사람들 다수는 희망백화점 시대를 기억하고 있고요. 2004년에 동보가 인수하여 ‘올리브아울렛’이라는 이름을 거쳐 ‘올리브백화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지역 백화점으로 2016년까지 영업하였으나 현재는 공식적으로는 폐점.

 

 그러나 여전히 올리브백화점이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하고 있는데, ‘백화점’으로는 그리 멀지 않은 관교동 신세계-롯데에 밀려 경쟁력이 없지만 그냥 ‘상가’로는 워낙 대단지 인근에 위치한 상가라 영업이 아예 안 되지는 않습니다. 아울렛화된 옛 지역 백화점이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원인천

 

: 정확한 의미가 정해져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영종도를 제외한 중구 본토와 동구 지역을 의미합니다. 일제 시대 초기에 인천부와 부평부는 이 지역만 빼고 부천부가 되었었거든요. 원래 인천도호부의 중심지는 문학산 동북쪽의 문학동 및 관교동 일대였지만, 개항기와 일제 초기를 거치면서 현재의 인천역과 동인천역 쪽이 인천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후 1980년대까지는 이쪽이 쭉 중심지였지요. 1990년대 이후에는 문학동에 가까운 구월동 쪽이 다시 중심지가 되고요.

 

 

 

 

 

원통이고개

 

: 부평삼거리에서 간석오거리 사이의 고개. 이 원통이고개에는 두 가지 전승이 전해지는데, 하나는 상기하였던 무네미고개 및 굴포천과 관련이 있습니다. 원래 처음에 뱃길을 뚫으려고 한 시도가 원통이고개 쪽이었고, 원통이고개에서 실패해서 무네미고개도 시도했지만 그쪽도 실패했고, 결국 성공한 게 굴포천이었다고 전해지거든요. 원통하게 실패해서 원통이고개라고 불렀다고 하고요.

 

 또 다른 하나의 전승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건국을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부평은 이때도 도읍으로 고려되었었다고 하는데, (조선 시대의 부평 지역은 대략 현재의 부평구 - 십정동 + 계양구 + 부천시 +  서울 강서구 일부 + 서울 구로구 일부 정도 됩니다.) 도읍이 되려면 산골짜기가 100개는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세어보니 99개였는데, 원래 원통이고개 쪽에 산이 있어 100개의 산골짜기가 있었으나 막상 세어보니 원통이고개가 언덕이 되어 있어서 99개로 그쳤다 합니다. 그래서 부평은 도읍이 되지 못했고, 원통하다고 원통이고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합니다.

 

 현재 원통이고개쪽을 다니면 원통이 같은 이름을 딱히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부평삼거리역 인근에 있는 인천가족공원묘지에 원통천이라는 하천이 흘러, 그것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읍내 (송도국제도시)

 

: 읍내는 보통 시골 지역에서 상권이 형성되어 있는 쪽을 읍내라고 하는데, 송도국제도시에서는 해양경찰청 주변 2공구 쪽을 읍내라고 합니다.

 

 송도국제도시는 대부분의 지역이 넓습니다. 밀도가 낮게 계획되어있기 때문에, 도보로 이동해서 뭔가 하기에는 부적합하지요. 그런데 2공구 쪽은 예외적으로 해협 건너 연수지구처럼 좀 평범한 대도시 밀도입니다. 그래서 상권의 밀도가 높고, 또 일찍 개발되기도 해서 한동안 송도국제도시의 중심상권이었기 때문에 읍내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지금은 송도에 상권이 많아졌지만, 읍내라는 별명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인주

 

: 인천의 본래 이름. 인천은 고려시대 때 경원(慶源) 또는 인주(仁州)로 불렸습니다. 인주라는 이름이 붙은 기간이 훨씬 길었고요. 모두들 잘 아시다시피 州는 우리나라 도시에 주로 붙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조선 초에 인천은 도호부급 도시가 아니었고, 이 때 州급 도시가 아니다 하여 仁州에서 仁川으로 격하 개명당합니다. 인천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도호부급 도시가 되었지만, 인천이라는 이름은 유지됩니다. 이 때 붙은 이름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지요. 문제는 인천은 전혀 하천이 발달한 도시가 아니라서 완전히 엉뚱한 이름이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급이 낮은 이름인데 아직도 쓰고 있기도 하고요.

 

 인주라는 이름은 현재 인천에서는 많이 쓰지 않지만, 숭의역부터 장수서창동까지 인천을 동서로 횡단하는 인주대로에 그 이름을 사용하고 있고, 학익동의 인주초등학교 및 인주중학교등의 학교 이름에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천가족공원

 

: 인천 시민들의 화장터이자 납골당이자 공동묘지. 위치는 만수산, 광학산 일대입니다. 만월산터널이 이 가족공원 밑을 지나갑니다. 인천 시민들 중 다수는 타계하면 인천가족공원에서 화장되고 납골당에 안치됩니다. 온갖 일로 츤츤대지만 인프라는 인프라 공사비까지 인천에 의존 중인 부천시 사람들도 이 인천가족공원을 이용하고 있고요.

 

 인천가족공원은 평소에는 자차로 방문해도 상관없는데, 명절에는 자차로 못 갑니다. 명절 자차 출입 자체를 통제합니다. 그러니까 대중교통으로 방문해야 하고요. 대중교통 역으로는 부평삼거리역이 가깝습니다. 경인선을 이용하면 백운역을 이용하는 게 편한데, 부평삼거리역을 이용하는 것보다 600미터 정도를 더 걸어야 합니다만 그게 부평역에서 환승하는 것보다는 편합니다.

 

 한편으로 인천가족공원에는 세월호 일반인 사망자를 위한 추모관이 있습니다. 이는 세월호가 인천항에서 출항했기에 인천가족공원에 추모관이 설립된 것으로 보입니다.

 

 

 

 

인천국제공항철도

 

: 통칭 공항철도. 영문 이름은 A’REX(Airport Railroad EXpress) 입니다. ‘에이렉스라고 읽습니다.

 

 2007년에 첫 개통한 전철로 처음에는 김포공항-인천공항 구간만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공항철도의 개통과 함께 인천도시철도 1호선 계양역은 환승역으로 운영을 시작했고요. 그런데 첫 3년 동안은 공기수송의 대명사로 통했습니다.

 

 에이렉스는 본래 준고속으로 계획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200km/h급 선로를 깔았고, 더 빠른 동차를 배치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실제 개통된 에이렉스의 최대속도는 겨우 110km/h수준이었고, 계양구에서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 속도에 비해 메리트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당시 에이렉스는 수도권 전철-버스에 적용되는 환승할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계양-김포공항 구간을 사람들이 이용하려고 해도 계양에서 환승할 때 요금을 내고, 김포공항에서 환승할 때 또 요금을 내게 됨으로 가격부담이 너무 컸지요. 그러니까 한동안 공항철도는 거의 공기수송밖에 못 했고, 결국 코레일이 공항철도를 인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환승할인이 적용되고 김포공항 서울역 구간이 개통되면서 에이렉스는 완전히 다른 평가를 받게 됩니다. 공기수송의 대명사가 갑자기 제2의 경인선이 되어버렸지요.

 

 직선적인 선형, 새 레일, 어쨌든 110km/h까지는 달리는 동차, 그리고 얼마 없는 역 숫자는 서울을 다니는 인천 사람들에게 신세계였습니다. 특히 김포공항 - 서울역 구간 개통 초기에는 역 숫자가 지금보다 적었기 때문에 체감 이동 시간이 매우 빨랐습니다.

 

 그래서 이 노선은 인천공항을 다니는 철도인 동시에 인천 북부와 서울을 잇는 급행 노선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인천 본토 구간의 에이렉스 역들은 지상에 꽤 거대하게 역사가 있는 편이라 진짜 여객열차 역 같은 느낌도 줍니다.

 

 

 

 

 

인천나비공원

 

: 통칭 나비공원. 부평구 청천1동의 꽤 외진 곳에 있습니다. 대략 부평구와 서구와 계양구, 세 지역의 경계에 위치해있으며 바로 서쪽으로는 현 시점에서 인천에서 가장 으슥한 지역 중 하나인 청천공단이 있습니다. 청천공단이 있던 곳은 본래 나병촌이었습니다.

 

 공원의 북쪽으로는 봉오대로 및 경인고속도로의 서인천 IC가 지나갑니다. 루원시티에서도 거리는 가까운데 경인고속도로 때문에 완전히 분리된 지역, 산자락에 위치해 있습니다. 나비공원이 위치한 산 이름은 참고로 장수산인데, 장수동하고는 완전히 다른 지역에 있습니다. 장수산이라는 이름은 비교적 최근에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나비공원은 나비를 테마로 조성한 자연학습공원입니다. 아이들이 단체로 가기 좋을 법한 공원인데, 개인이 아동 동반으로 가도 괜찮습니다.

 

 공원 뒤쪽으로는 바로 장수산으로 올라갈 수 있고, 장수산을 넘으면 원적산공원이 나옵니다. 원적산공원도 괜찮은 공원이기 때문에 같이 투어를 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인천대공원

 

: 인천 최대 규모의 공원. 인천 동쪽 끝 부분 한남정맥에 해당하는 관모산 자락과 서쪽 및 북쪽의 분지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꽤 오래된 공원같아 보이지만 의외로 1995년 개원입니다. 그러니까 인천직할시 시절에는 인천대공원이 없었고요. 개장 후에도 접근성이 좋지 못한 편이라 한동안 대중교통으로는 찾아가는 데 다소 난이도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환승할인이 적용되었고, 2016년 인천지하철 2호선이 개통하면서 남문 바로 앞에 인천대공원역이 생겨 편하게 방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인지 2개통 이후에는 노인 이용객들이 많은 느낌입니다.

 

 인천대공원은 2005년에 유료화를 시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반발이 심해 2007년에 다시 무료화되었고, 이후 무료 공원으로 운영 중입니다. 다만 차를 가져가면 주차비를 받습니다. 시간제가 아니라 일일제로 일반 승용차는 3000원입니다. 경차는 1500원이고요. 동문 쪽을 이용할 거면 소래산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조금 더 쌉니다.

 

 큰 규모의 공원이고 수목원, 온실, 장미원, 치유숲, 호수, 썰매장, 각종 체험장, 그리고 소규모 어린이 동물원 등이 있습니다. 인천대공원역이 있는 남문 쪽에서 접근하면 1km이상의 긴 벚꽃길이 펼쳐지는데, 지도를 보지 않고 돌아다니면 충분히 즐기기 전에 지쳐버리기 쉬운 규모니까 지도를 보면서 어딜 가볼까 생각하는 쪽을 권장합니다.

 

 한편으로 인천대공원에 있는 호수에서 장수천이 발원하여 만수동과 서창동을 흘러 소래에 이릅니다. 인천대공원에서 이 장수천을 따라 내려가 소래습지생태공원과 소래포구를 탐방하는 코스를 인천광역시에서는 인천둘레길 6코스로 지정해 두었습니다.

 

 

 

 

인천대학교

 

: 인천에 위치한 국립대학교. 역사가 꽤 복잡합니다. 본래 선인재단에는 1969년에 세워진 인천공업고등전문학교와 1971년에 세워진 인천체육전문학교가 있었는데요. 이 둘은 1980년에 인천전문대학으로 합쳐집니다. 그리고 1979년에 별개로 인천공과대학이 설립되는데, 곧바로 그 해 인문사회쪽 학부도 만들어 인천대학으로 이름을 변경한 후 1988년에는 4년제 종합대학 인천대학교가 됩니다. 인천전문대학도 마찬가지로 인문사회학부가 있었지만 2년제로 운영하게 되고요.

 

 그런데 이미 인천대학 시절 선인재단의 악명은 드높았고, 인천대학생들은 선인재단 이사장 백인엽과 그의 형 백선엽을 상대로 (그 전쟁영웅 백선엽 맞습니다.) 투쟁을 거듭했습니다. 그래서 제물포캠퍼스 시절 인천대는 00년대 초반까지도 엄청나게 강성인 학생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너무나도 심한 비리가 드러나며 1993년 선인재단은 해체되었고, 백인엽이 가지고 있던 모든 권한은 인천시장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1994년부터 인천대학교와 인천전문대학은 시립대학이 되는데요.

 

 문제는 선인재단 운영이 워낙 막장이었기 때문에 인천으로 넘어온 인천대학교와 인천전문대학은 인천 재정에 부담이 되었습니다. 시립대학이 된 이후 인천대학교와 인천전문대학은 등록금이 저렴한 대학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천전문대학은 4년제 수준으로 커트라인이 높았습니다. (수능쳐서 가는 기준으로는 시립 시절 인천대학교 낮은 과보다 인천전문대학 높은 과가 커트라인이 높았습니다.) 그건 학생들에게는 좋았지만 인천광역시에는 부담이었는데요.

 

 결국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인천대학교 국립화에 찬성했고, 인천전문대학은 2010년에 폐교하고 인천대에 흡수통합시키는 방향으로 결론이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제물포역 인근에 있던 인천대학교는 부지를 송도로 옮기게 되었고, 인천전문대학 예체능학부가 사용하던 선인체육관 및 인천대학교 이공관, 인천전문대학 인문사회학부가 있던 쪽은 도화지구로 재개발됩니다.

 

 그에 제물포역 상권은 완전히 사망하다시피했고, 당시 시장이었던 안상수는 제물포역 상인들의 원수가 됩니다. 그렇지만 인천대학교가 송도로 이전하는 것이나 인천전문대학이 사라진 것이나 딱히 안상수가 정한 것은 아닙니다. 송도 이전은 이미 최기선 때 논의되었거든요.

 

 현재 인천대학교의 주 캠퍼스인 송도캠퍼스는 인천대입구역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합니다. 그리고 부 캠퍼스인 미추홀캠퍼스는 송도캠퍼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테크노파크역 바로 인근에 있습니다. 미추홀구에 있는 게 아닙니다. 원래 미추홀은 인천을 대표하는 인천의 옛 이름인데, 남구가 미추홀구로 이름을 바꾸면서 최근에 미추홀이라고 하면 미추홀구를 연상시키게 되어버린 겁니다. 그러나 송도에 미추홀공원이 있듯 인천대학교 미추홀캠퍼스도 송도에 있습니다.

 

 그리고 원래 인천전문대와 인천대학교가 사용하던 인천대학교 제물포캠퍼스는 실제로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옛 인천전문대 본관이 현재 인천대학교 제물포캠퍼스의 본관인데, 유감스럽게도 폐건물입니다.

 

 한편으로 인천대학교는 원래 인하대학교보다 평가가 낮은 대학이었는데, 국립대가 되고 송도캠퍼스로 이전한 이후에는 평가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인하대는 기존보다 평가가 낮아졌고요. 그래서 요새는 둘이 어느 정도 비슷해진 면이 있습니다. 다만 대학 이미지라는 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다보니 아직 세간에서는 인하대 이미지가 높긴 합니다.

 

 인천대는 아직 의대를 가지고 있지 못한데, 의대 유치를 시도중입니다. 만일 의대가 생기면 인천대도 한 티어 올라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인천 도시철도 1호선

 

: 통칭 인지1. 1999년 개통하여 2016년 인천 도시철도 2호선이 개통될때까지 실질적으로 인천의 유일한 지하철(경인선은 지상을 다닙니다)이었기 때문에 한동안 그냥 인천지하철로 불렸습니다. 2호선이 개통된 이후에는 좀처럼 그 이름으로 부르지는 않습니다만, 누군가가 그냥 인천지하철이라고 하면 1호선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인천 1호선은 현 시점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중형 전동차를 사용합니다. 처음에 봤을 때는 대형 전동차에 비해 작은 사이즈라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었는데, 2호선 같은 경전철에 비하면 그래도 많이 큽니다.

 

 인천 1호선을 공사하던 시기에 부평 지역같은 경우 지옥같은 교통체증을 겪었습니다. 가뜩이나 밀리던 부평대로를 막고 공사를 했으니, 1호선을 개통한 직후에 부평 사람들은 전철이 생긴 것보다 공사가 끝나 도로가 잘 뚫리는 걸 기뻐했을 정도입니다. 그때만 해도 인천 1호선이 인천의 모든 것을 바꿔놓을 줄은 몰랐었지요.

 

 인천 1호선이 생기기 이전 인천은 경인선을 따라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남북으로 긴 인천의 지형과 한남정맥 및 경인선, 경인고속도로로 나뉘어진 인천의 지형은 각 지역끼리 유대감을 가지기 어렵게 만들고 있었지요. 그런데 인천 1호선이 생긴 이후 인천의 중심축은 경인선이 아니라 인천 1호선이 되어버리게 됩니다. 인천 1호선을 따라 부평, 구월동, 연수지구가 도심 및 중심지화가 되고, 주안이나 동인천은 쇠퇴하게 된 것입니다.

 

 인천 1호선의 역사는 근사합니다. 처음 개통되었을 때 감명깊었고, 공을 많이 들인 것들입니다. 이젠 시간이 오래 되어 낡은 곳들도 있으나 때때로 보면 90년대니까 이렇게 지을 수 있었구나 싶기도 합니다. 경전철인 2호선 역사와는 매우 대조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지요.

 

 한편으로 2009년에 개통된 송도국제도시 역들의 역명은 꽤 생소했습니다. 아예 없던 동네를 처음 만든 것이다보니 영어를 기반으로 한 역명 등 독특하고 긴 이름이 붙었거든요. 이름이 길다 보니 현지에서는 대략 다음과 같은 약어로 불립니다. 캠퍼스타운 => 캠타, 테크노파크 => 테팍, 지식정보단지 => 지정단, 인천대입구 => 인천대, 센트럴파크 => 센팍, 송도달빛축제공원 => 달빛. 국제업무지구역은 약어를 모르겠는데 사실 그 역은 별로 이용자가 없긴 합니다.

 

 

 

 

 

인천 도시철도 2호선

 

: 통칭 인지 2. 아시안게임에 맞춰 2014년에 개통하려는 계획이었지만 지연되어서 2016년에 개통되었습니다. 무인 운행하는 경전철이고 2량밖에 안 됩니다. 다만 같은 2량 편성의 김포골드라인에 비하면 이쪽은 플랫폼에도 여유가 있고, 2량보다 더 연장할 수 있도록 계획해둬서 이후 연장 가능성은 있습니다.

 

 인천 1호선이 인천의 동쪽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노선이라면, 2호선은 현 시점에서는 1호선이 지나가지 않는 서구를 도심지인 남동구 안쪽과 연결하는 노선입니다. 그런데 시발역과 종착역의 위치가 시 바깥으로 연장하기 좋은 방향이다보니 연장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고, 연장을 할 것을 고려하면 지금처럼 경전철로 깐 게 실수라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인지 2는 인천에 편입된 이후 20년 동안 인천광역시의 아이덴티티를 충분히 가지지 못하던 검단 지역을 인천 도심 지역과 연결시켰습니다. 그리고 꽤나 외진 위치라 접근성이 그다지 좋지 못하던 인천대공원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였습니다.

 

 그러나 인지 2의 개통으로 모두가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일단 동암역 북부(실제 방위상으로는 서부) 상권은 인지 2의 개통 이후 크게 죽어버리고 마는데, 인지 2 개통 이전에는 옛 서구 지역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동암역으로 가서 경인선을 탔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암역 남부(실제 방위상으로는 동부) 상권과 인근 간석오거리 상권도 쇠퇴를 면하지 못하게 되는데, 마찬가지로 남동구 간석동 및 구월동에 사는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간석오거리역과 동암역을 이용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남동구에 사는 사람들이 경인선을 타고 서울로 이동하려 할 때는 인지 2의 메리트가 떨어지기 때문에 동암역 북부보다는 남부 상황이 낫습니다만.

 

 한편으로 본래 인지 2호선은 경인선과 도화역에서 환승될 예정이었으나, 도화지구가 생기기 이전 실제 이용객이 없던 도화역 환승에 주변에서 반대하여 주안역 VS 간석역이 맞붙었고, 결과적으로 주안역 상인들이 승리하여 주안역에서 환승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 결과 주안역 상권에 딱히 득이 있거나 하지는 않은데, 전철 이용객이 주안역사 안에서 다이렉트 환승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주안역 상권을 이용하는 인구가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으로 생각합니다.

 

 인지 2는 무인경전철이기 때문에 정면조망이 가능합니다. 즉 열차의 맨 앞으로 가면 정면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아라뱃길 인근이나 인천대공원역 인근, 왕길역 인근에서는 열차가 고가철이 되기 때문에 관광용으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천문화예술회관

 

: 통칭 예술회관. 바로 앞에 예술회관역이 있고, 그냥 예술회관으로 부를 경우 혼동할 만한 다른 건물이 인천에 없기 때문에 그냥 예술회관으로 불립니다. 인천광역시의 메인 콘서트홀로 클래시컬 음악 및 뮤지컬 콘서트를 주로 하는 장소입니다.

 

 중앙공원에 위치에 있고, 주차는 유료입니다. 당일 콘서트 청중은 표가 있으면 정액 계산할 수 있고요. 딱히 예술회관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구월동 도심지 주차용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주차요금이 1시간당 1200원이기는 한데, 5시간 이후에는 24시간까지 그냥 6000원이거든요. 경차 할인 60% 되고요. 예술회관 근처에는 무료로 주차할 데가 많지 않아서 장시간 주차할 때는 나쁘지 않습니다.

 

 예술회관 인근에 무료주차 가능한 곳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올림픽공원 사거리 북쪽으로 무료주차 가능한 장소가 있긴 합니다. 중앙근린공원 주차장3 및 그 앞쪽 도로에 주차가 가능한데요. 문제는 한낮에도 주차가 어려울 정도로 주차공간이 얼마 없다는 겁니다.

 

 

 

 

 

인천재능대학교

 

: 통칭 재능대. 본래 1970년에 세워진 대헌전문대학(설립 당시의 이름은 대헌전자공업전문학교)을 재능교육에서 인수하여 1998년에 재능대학으로 이름을 변경하였습니다. 2~4학년제의 전문대학으로 본캠은 송림동에 위치하며 바로 옆에 재능중학교와 재능고등학교가 있습니다. 그리고 송도에도 캠퍼스가 있습니다.

 

 송림동의 재능대 캠퍼스는 그 도봉산과 인접해있고 옛 인천전문대 본관과도 가깝습니다만, 대헌전자공업전문학교 시절부터 본래 선인재단과는 무관했습니다. 주소지도 선인재단 산하였던 도봉산은 미추홀구입니다만, 재능중-재능고-재능대는 동구 송림동입니다.

 

 한편으로 재능대학교의 송도캠퍼스는 송도3동 행정복지센터 근처에 있는데, 가장 가까운 역은 테크노파크역이지만 2km 정도 떨어져 있어 도보로는 다니기 어렵습니다.

 

 

 

 

 

인하대학교

 

: 인천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교. 인하의 은 인천이고, ‘는 의외로 하와이의 하입니다. 하와이 교민들의 성금으로, 이승만에 의해 설립된 사립대학으로 모기업은 한진그룹입니다.

 

 인하대는 시작이 공과대학이었고 종합대학이 된 지 오래인 지금도 공대가 강합니다. 본캠인 용현캠퍼스는 경인고속도로(인천대로) 에 인접해 있으며 지금은 수인선 인하대역이 있어 위치를 특정하기 쉬운데, 인하대역이 생기기 이전에는 꽤 거리가 있는 주안역의 부역명이 인하대학교였습니다. 물론 알 만한 분들은 다 알듯 주안역에서 인하대까지는 버스로도 15분 이상 걸리는 거리입니다. 서울대와 서울대입구역보다 더한 관계였지요.

 

 근래는 평가가 영 좋지 않지만 그래도 인천의 종합대학 중에는 가장 좋은 대학이었기 때문에 예전에는 인천 하버드라는 우스갯소리도 들었었습니다. 문제는 근 몇 년 사이 좀 사건사고가 많고, 모기업도 사고를 크게 쳐서 분위기 전환과 부활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래도 부속병원인 인하대병원은 인천에서 평가가 가장 높은 병원입니다. 병원 위치는 인천IC(구 경인고속도로 기점) 근처입니다.

 

 인하대학교는 송도에도 캠퍼스가 있는데, 일단 항공우주캠퍼스가 테크노파크역 인근에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기반공사 중인 송도 11공구에도 캠퍼스를 추가할 예정이라고 하고, 김포 풍무동에도 캠퍼스를 추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제 김포만 인천에 편입하면 됩니다.) 그 외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도 캠퍼스가 있습니다.

 

 한편으로 인하대학교 용현캠퍼스 내에는 인하공업전문대학도 있는데, 전후 복구 과정에서 기술인력이 필요하여 정부가 인하대를 없애고 직업학교를 만들려 하다보니 다툼이 생겼고, 결국 인하대를 그대로 두는 가운데 2년제 직업학교를 새로 만들게 된 게 인하공전입니다. 인하공전은 항공운항과가 매우 유명했는데, 쉽게 이야기해 대한항공 스튜어디스를 육성하는 학과였습니다. 원래 여자만 있던 과로 여초과 특유의 엄청난 X군기로 유명했는데, 2016년에 어떤 남학생이 인권위에 소송 걸어서 2018년부터는 남학생도 입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유공원

 

: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 근대식 공원. 맥아더 동상으로 유명합니다.

 

 원인천의 자유공원은 아마 인천에서 가장 유명한 공원일 겁니다. 요새는 인천대공원이나 송도센트럴파크가 더 유명할지도 모릅니다만, 전통적으로 가장 유명한 공원은 자유공원이었습니다. 송도국제도시가 생기기 이전에는 맥아더 동상이 서있는 자유공원이 인천의 랜드마크 그 자체였지요.

 

 이 공원의 이름이 처음부터 자유공원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각국공원이라는 이름이었고, 그 다음에는 서공원으로 불리다가 광복 이후에는 만국공원으로 불렸습니다.

 

 이름이 자유공원으로 바뀐 건 1957년부터입니다. 전후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며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맥아더 동상을 세웠고, 공산권의 침략을 몰아내고 자유를 지켰다는 의미로 자유공원으로 이름을 변경하게 됩니다.

 

 덕분에 자유공원은 반미 좌파들이 가끔 동상에 불을 지르거나 과격한 시위를 하는 장소가 되기도 했는데, 몇 년마다 있는 발작이고 평소에는 그냥 좋은 공원입니다.

 

 자유공원 인근은 관광지로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에 주변에 근사한 카페가 많고, 공원 자체가 아주 넓지도 않기 때문에 쉬엄쉬엄 즐기기 좋습니다. 다만 바로 인근에 주차하기는 좋은 편이 아닙니다. 주차가 여유로운 쪽은 8부두 주차장인데, 청년에게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지만 아동이나 노인에게는 거리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장수천

 

: 인천대공원에서 발원하여 소래로 흘러가는 하천. 장수동 일대와 만수6동 일대에서 부분적으로 하천 주변이 공원화되었지만, 아직 제대로 개발되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서창지구와 논현지구, 소래습지생태공원 일대를 흐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공원화될 수 있는 하천으로 생각합니다.

 

 

 

 

 

 

장기동

 

: 장기동이라는 동명은 좀 혼동되기 쉬운 게, 인천 계양구 행정동 계양1동에 법정동 장기동이 있는 동시에 김포 한강신도시 쪽에도 장기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둘은 거리도 가까운데, 생활권도 어느 정도 겹칩니다. 둘을 오고가는 버스노선들도 있고요. 그러니까 장기동이라고 할 때는 인천 장기동인지, 김포 장기동인지를 확인해야합니다. 또한 계양1동이라는 표현은 잘 안 쓰기도 하고, 인천 장기동에 인접한 계양구 오류동, 이화동도 묶어서 장기동 쪽이라 표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김포 장기동도 운양동을 포함한 한강신도시 동쪽 지역을 한강신도시 장기지구라 할 정도로 대표적인 동명이라, 서로 곧잘 많이 쓰는 지역명입니다.

 

 

 

 

 

 

 

 

장제

 

: 부평 지역의 신라시대 이름. 부평 지역은 본래 고구려 시절에는 한자 표기로 주부토(主夫吐)라 하였고, 이는 긴 둑인 순우리말 줄보뚝의 한자 음차였다는 게 통설입니다. 어쩌면 부평은 평야지대였기 때문에 긴 둑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이설로는 ‘임금이 사는 땅’ 정도의 의미라는 설도 있는데, 이는 고구려 이전 마한 54국중 하나인 優休牟啄國(우휴모탁국)이 부평에 있었다는 설에 의합니다. ‘모탁’은 당시 언어로 ‘물뚝’을 의미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신라 경덕왕 시절에 우리나라 지명들을 한자화하면서 ‘長堤’가 부평지역의 이름이 되었었습니다. 장제는 현대의 의미로 훈역하면 긴 뚝입니다.

 

 장제라는 이름은 서구 아라동과 김포시 풍무동, 그리고 계양구의 접경인 유현사거리부터 시작하여 남쪽으로 만월산터널까지 이어지는 긴 도로인 장제로에 남아있습니다. 장제로는 평균적인 너비가 왕복 6차로고, 좁은 구간은 왕복 4차로라 대로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는 않지만 실제 계양구-부평구 지역의 중심지를 쭉 있는 가장 주요한 도로입니다.

 

 

 

 

정서진

 

: 아라뱃길 서쪽 끝쪽. 정동진에 대응하는 의미입니다. 다만 정동진은 지정될 당시의 측량기술 문제로 실제 광화문의 정동이라 하기는 어려운 위도로, 광화문보다 15km 정도 북쪽인 반면 정서진은 최근에 지정되었기 때문에 진짜로 광화문의 서쪽에 가깝습니다. 정동진이 새해 첫 해를 보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라면, 정서진은 한 해의 마지막 낙조를 보기에 좋은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서진에는 아라뱃길 인천여객터미널과 아라빛섬, 전망대, 선상체험공원, 그리고 4대강 자전거길 중 메인 코스라 할 수 있는 아라뱃길-한강-낙동강의 시작 및 끝 지점이 있습니다. 아라뱃길 자전거 코스의 경우 그냥 직선으로 쭉 달리면 나오는 바닷가(아라서해쉼터)가 있는데, 거기는 정서진이 아닙니다. 정서진으로 가려면 표지판을 보고 안쪽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다만 인근이다보니 아라서해쉼터도 정서진의 일부로 뭉뚱그리기도 합니다.

 

 정서진은 월미도, 연안부두와 함께 인천 본토에서 바다를 보고 싶을 때 방문하기 좋은 곳이기도 합니다. 자연적인 바다는 아니지만 바다를 보는 느낌의 비주얼 자체는 아라서해쉼터가 괜찮은데, 아라갑문 안쪽이라 갑문에 물이 항상 차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의 바다와 이미지상의 바다는 차이가 좀 있습니다.

 

 이번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20234설레는 드라이브 여행’ 5곳 중 정서진 드라이브 코스가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다른 4곳은 강원 정선 연포분교 가는 길, 충북 보은 말티재, 경북 봉화 국도35호선 법전-명호 구간, 경남 남해 남해 물미해안도로가 선정되었습니다.

 

 

 

 

중앙공원

 

: 동암역과 간석역 중간 부분부터 남쪽으로 길게, 인천터미널역 남쪽까지 이어지는 공원.

 

 동서 폭은 100미터 정도지만 남북으로는 3.6km 정도의 길이라 총면적은 꽤 넓은 공원입니다. 미추홀구와 남동구의 문화적인 경계에 해당하며 대략 중앙공원 서쪽은 미추홀구, 동쪽은 남동구로 인지됩니다. 실제 행정구역의 경계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보니 구월 3동 행정복지센터는 중앙공원 서쪽에 있긴 합니다만.

 

 워낙 긴 공원이다보니 공원 중간중간에 도로가 지나갑니다. 일부분은 육교를 설치해 두었으나 남북으로 이동하려면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도심에 위치한 공원으로 꽤 풍부하고 아름다우며, 인천 도심에 많은 영향이 있는 공원입니다. 중앙공원이 있기 때문에 인천시청, 예술회관, 터미널 일대는 실제의 유동인구에 비해 한적하고 여유로운 느낌을 줍니다. 한편으로 중앙공원은 인천 도심의 도로교통에도 꽤 영향을 주는데, 중앙공원 동서의 예술로와 문화로는 도심 도로지만 그리 넓은 도로가 아니고, 동일 구간을 인천지하철 1호선이 지나다니기 때문에 자차교통을 대중교통으로 유도하는효과가 극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래서 인천의 도심 구월동은 극단적인 교통체증은 없습니다.

 

 다만 단점이라면 구월동 인근의 교통에는 중앙공원이 긍정적이지만, 도심을 통과하는 간선도로망에 발생합니다. 인천광역시는 남북으로 긴 도시인데, 남북을 오다닐 수 있는 간선도로망이 부실하고 도심을 통과하는 예술로와 문화로는 고속주행이 어려운 좁은 도로라 교통을 충분히 분산하지 못합니다.

 

 도심 지역의 동서로 남동대로와 경원대로가 있는데 둘 다 주행의 쾌적함과는 거리가 상당한 도로고, 그래도 된다면 차라리 예술로나 문화로를 경유하는 게 운전의 스트레스가 적습니다.

 

 중앙공원은 9지구로 나뉘어있고, 북쪽부터 각 구역마다 각각의 테마가 있습니다.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지구 (희망의 숲 지구) / 2지구 (주원지구) / 3지구 (시청역지구)

 제4지구 (조각원지구) / 5지구 (하트분수지구) / 6지구 (올림픽기념비 지구)

 제7지구 (문화예술회관 지구) / 8지구 (터미널지구) / 9지구 (광장지구)

 
 
 
 

 

 

제물포

 

: 본래는 현 인천 중구 본토 지역의 이름이자 인천항 일대의 이름. 개항 이전에는 말 그대로 포구 이름이었고 현재의 항동/해안동/중앙동 쪽이었으며, 개항 이후에는 현재의 인천항, 동인천 일대를 부르던 말이었습니다. 지리적으로 보면 본래 곶(Cape)이었던 원인천 일대의 이름으로도 간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45년 10월 10일부터 27일까지 인천이 가졌던 이름이기도 합니다. ‘제물포시’라는 이름이 잠시 붙었었지요.

 

 문제는 제물포역입니다. 경인선 개통 이후 처음에는 인천역의 영문 부역명이 제물포역이었으나 그 시대는 길지 않았고요. 현재의 제물포역은 전후 1957년에 준공된 역입니다. 처음에는 제물포역 역명을 숭의역으로 고려하였으나 어떤 이유에선지 제물포역이라 하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때는 제물포가 인천의 이명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때였던 걸로 보이고요. 문제는 이후 ‘제물포’라고 하면 진짜 제물포가 아니라 제물포역 인근을 지칭할 때가 더 많아졌다는 겁니다. 미추홀구에 속한 제물포역은 원인천에서는 약간 거리가 있습니다. 실제 浦라는 이름이 붙기에 제물포역은 바다에서 너무 멉니다.

 

 현재 중구 본토는 이름을 제물포구라고 개명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이 경우 제물포역은 나름대로의 역명 혼동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남구가 미추홀구로 개명하면서 미추홀도서관이 미추홀구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였듯, 중구가 제물포구로 개명하게 되면 제물포역이 제물포구에 없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주부토

 

: 고구려 시절 부평 지역에 붙은 부평지역의 이름. 그 의미에 대해서는 장제에서 상기하였습니다. 다만 본래의 부평지역이 일제 이후 여러 지자체로 갈라졌고, 부평의 적통을 이은 부평구는 인천에 통합된 지 오래다보니 미추홀처럼 주부토라는 이름이 잘 알려져 있거나 많이 쓰이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본래 부평지역의 중심지였던 계양구 지역 토박이들조차 미추홀을 주부토보다 친숙해합니다.

 

 현재 주부토라는 이름은 계양도서관 일대, 옛 사이클경기장 앞길부터 시작하여 남쪽으로 부평시장역 인근까지 이어지는 주부토로에 남아있습니다. 이 주부토로는 큰길이라기보다는 안쪽 길이지만, 계양부평 사람들이 예전부터 이용하던 주요 생활권 길입니다.

 

 

 

 

 

주안

 

: 주안은 본래는 현 만월산의 이름이자, 만월산 서남쪽 일대인 현재의 부평구 십정동, 남동구 간석동 및 구월동 북쪽을 가리키는 지명이었습니다. 또한 본래는 십정동과 간석동 서쪽은 간조시 개펄이 되는 만(Bay)이었지요. 일제시대 들어 이 십정동, 간석동 서쪽 바다에 염전을 만들었는데, 이를 주안염전이라 하였고 1960년대까지는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염전이었습니다.

 

 1910년에 경인선 축현역(현 동인천역)과 부평역 사이에 주안역이 생깁니다. 일제시대에 생긴 유일한 경인선 역이었고, 그 때 만들어진 주안역이 지금도 있는 주안역입니다. 이후 부평역이 부평이라는 이름을 본래 부평의 중심지였던 계산동에서 빼앗았듯, 주안역도 주안이라는 이름을 십정동-간석동에서 빼앗게 됩니다. 사실 부평역과 계산동 사이가 제법 먼 것에 비해 간석동과 주안역은 가깝고, 실제 예전에는 동암역도 간석역도 없었던 만큼 주안역이라는 이름이 이상하지는 않았는데, 이후 주안이라는 지명은 본래의 주안보다는 서쪽을 의미하게 되긴 합니다.

 

 주안은 좁게는 주안역 일대를 의미합니다만, 실제로는 행정동 기준 1~8동까지 있는 주안동 전역과 주안국가산단역 북쪽으로도 이어지는 주안국가산업단지 전반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한 때 주안역 일대는 인천의 대표적인 번화가 중 하나였고, 거주지로도 정말 높은 비율의 인구가 사는 곳이 주안이었는데 지금은 예전정도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주안역 주변은 번화가에 속하고, 사람도 여전히 많이 사는 곳입니다.

 

 

 

 

주안산단

 

: 주안역 북쪽은 본래 바다였고, 주안염전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염전이 있던 곳입니다. 그러다가 60년대부터 염전을 간척하여 공단을 조성하게 되는데, 그것이 주안산단입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정확히 주안산단이라 해야 할지는 좀 어렵습니다만, 항구를 기준으로 보면 인천의 항구는 월미도와 연안동 일대의 인천항, 그리고 북성포구부터 청라 남쪽까지라 할 수 있는 인천 북항, 그리고 송도국제도시쪽의 인천신항이 있다 할 수 있는데요. 이 중 인천 북항에 해당하는 지역은 상당히 넓고 거의 항만산업단지로 조성되어 있는데, 이 산업단지 전체를 주안산단이라 불러도 별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동구와 청라이남 옛 서구지역 바닷가 일대 전체, 그리고 미추홀구 북쪽 일부가 주안산단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이 주안산단의 넓이는 남동공단보다 넓고, 현대제철이나 두산인프라코어, 동국제강같은 대기업 산업시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주안산단이 사실 인천 바닷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인천 사람들은 외부에서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달리 별로 바다를 보고 살지 못합니다.

 

 인천도시철도 2호선 개통 이후 주안국가산단 역이 주안산단 내부에 정차하는데, 그 역 주변만 산업단지가 아닙니다.

 

 

 

 

 

주안시민지하상가

 

: 시민공원역 인근의 지하상가. 시민회관지하상가라고도 부릅니다. 인천에서 부평지하상가 다음으로 큰 지하상가인데, 유감스럽게도 시민회관 일대의 상권 전성기가 지난 다음에 준공되었습니다.

 

 북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주안역 지하상가가 있고 동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석바위 지하상가가 있는데, 이 세 지하상가가 합쳐질 경우 부평지하상가의 규모를 능가할 정도의 거대지하상가가 되겠지만 현재는 따로 떨어져 있고, 딱히 합쳐진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중구

 

: 원인천의 중심지이자 현재의 영종도, 인천공항을 포함한 자치구. 인천의 자치구 중 면적이 가장 넓습니다만, 대부분의 면적은 영종도 일대가 차지하며 본토는 좁습니다. 90년대만 해도 영종도에 거주하는 인구는 얼마 되지 않았었습니다만 금세기 들어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현재는 본토보다 영종도 인구가 많아졌고요. 중구 본토에서 영종도로 오가는 방법은 현재 페리선 뿐이고, 영종도와 오고가는 두 대교는 중구 본토를 통하지 않기 때문에 중구 내부의 갈등이 심한 상태입니다. 영종도 주민들은 독립을 원하고 있고, 중구 본토는 인접한 동구와 합친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지요. 제물포구로 개명하겠다는 말도 있고요.

 

 중구 본토는 항만시설이 차지하는 면적이 넓고, 차이나타운과 월미도 일대 같은 관광지 및 동인천역 상권 등이 차지하는 면적 또한 넓어 현대에는 거주인구가 많지 않습니다. 이름이 중구인 이유는 본래 중구청이 인천시청이고 원인천 시절의 중심지였기 때문인데, 이 시대에는 딱히 어울리는 이름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1990년대까지는 동인천역 일대가 도심이었고, 중구는 인천의 중심지였습니다.

 

 인천 중구 본토는 법정동이 매우 잘게 세분되어 있는데, 이는 일제시대의 행정체계 영향입니다. 그래서 법정동명으로 위치를 세세하게 특정할 수 있습니다. 도로명주소에는 법정동명을 부기하게 되어있으므로 부기시 중구 본토는 도로명주소를 써도 예외적일 만큼 상세하게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영종도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방문한 인천 권역일 것입니다. 인천공항이 있으니까요. 원래 다수의 섬으로 되어 있었는데, 섬 사이를 간척하여 그 간척지에 인천공항을 지었습니다. 인천 본토에서 인천공항은 제법 거리가 있는 편이라, 계양부평 쪽에서는 사실 거리상 김포공항이 더 가깝기도 합니다. 김포공항 활주로 일부는 계양구 권역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영종도 주민들은 공항에서 일하는 비율이 제법 높은 편입니다.

 

 

 

 

 

 

 

진선미예식장

 

: 옛날에 부평에 있었던 랜드마크 예식장입니다. 워낙 유명했기 때문에 진선미예식장이 사라진 이후에도 그곳을 진선미예식장쪽이라 불렀고, 아직까지도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위치는 현재의 시장로, 한남시티플라자 정류장 쪽입니다. 이쪽에는 아직도 ‘진선미주차장’이 남아있어 옛 흔적을 보여줍니다.

 

 

 

 

차이나타운

 

: 인천역 인근에 위치한 차이나타운은 제물포항 개항 이후 청나라 사람들이 대규모로 유입되면서 생겨났습니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짜장면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차이나타운에서는 전족을 한 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도 전해집니다.

 

 일찍 우리나라에 유입된 화교들은 중화민국 국적이거나 귀화하여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은 한국인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 화교들은 1992년에 한중수교를 강력하게 반대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중화인민공화국 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천 차이나타운은 서울 대림동 일대의 차이나타운과는 많이 다릅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먹는 타입의 중화요리 및 산둥성이나 대만 스타일의 만두, 제과 등을 팝니다. 처음에 인천에 들어온 청나라 사람들이 산둥성 출신이었고, 국부천대 이후에는 대만과 왕래하면서 대만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중화요리 스타일은 인천, 군산, 부산 등지의 차이나타운에서 기원하였기 때문에 인천 차이나타운에 와도 딱히 이국적인 중화요리를 먹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대조적으로 양꼬치집 등에서 파는 중화요리는 한중수교 이후 들어온 조선족이나 한족들이 하는 거라 많은 경우 둥베이, 화베이쪽 요리 스타일입니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금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관광지화되었습니다. 원인천의 다른 관광지들과 이어져 있으며, 평균적인 유동인구가 많습니다. 차이나타운에 자차로 방문할 경우 주차는 8부두가 가장 쉬우며, 일부 가게는 자체 주차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라국제도시

 

: 인천 본토에 조성된 국제도시 두 곳 중 하나. 다른 하나는 송도국제도시입니다.

 

 가정동 및 연희동 서쪽에 있던 바다를 간척해 만든 부지에 조성한 신도시. 청라라는 이름은 해당 지역에 있던 섬 중 하나인 청라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주거지역 남북으로 심곡천과 공촌천, 두 하천이 흘러가고 내부에 커낼웨이라는 수로가 흐르며 그 수로가 호수공원으로 이어지는, 아름답고 근사하게 설계된 도시입니다. 송도국제도시가 세련된 미래도시처럼 꾸며졌다고 한다면, 청라국제도시는 일종의 테마파크처럼 꾸며졌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LH가 예산을 빼돌리는 바람에 송도와는 달리 도시철도가 제대로 깔리지 않았고, 그 때문인지 본래의 설계에 비해 유동인구가 심히 부족하여 조성된 테마상가에 공실이 많습니다. 강기갑 전 의원에 의해 LH의 문제가 드러나면서 뒤늦게나마 7호선을 공사하고 있습니다. 202712월 개통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청라가 단장과 관리를 잘 한다면 뒤늦게라도 송도에 버금가는 중심지로 거듭날 수도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루원시티와는 바로 인접해 있으며, 현지인이 아닌 이상 잘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북쪽으로는 공항철도 청라국제도시역이 지나가지만 실제 청라 주거지역에서는 가깝다고 하기 어려운 역이고, 현 시점에서는 차량으로 제법 이동해야 합니다.

 

 

 

 

 

청라호수공원

 

: 청라국제도시에 위치한 호수공원. 청라국제도시의 설계를 보면 호수공원을 중심에 두고, 전체적으로 테마파크 느낌이 나도록 딱히 어트렉션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 구성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꽤 큰 규모의 호수공원으로 남북으로 긴 형태입니다. 호수 중앙의 섬에 청라시티타워를 건축 중에 있으며, 전반적으로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현 시점에서도 충분히 즐길 만한 공원입니다. 특히 야간의 평이 좋습니다.

 

 청라호수공원에서 정서진까지는 거리가 그리 멀지 않습니다. 도보로 갈 만한 거리는 아니지만 (도보로는 편도 1시간 정도는 걸립니다), 차량이나 자전거를 이용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방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투어 코스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청라호수공원 서쪽으로 커낼웨이를 따라 정서진공원이라 이름붙여진 곳이 있는데, 그곳은 커낼웨이의 일부로 보통 정서진이라 불리는 아라뱃길 여객터미널이 있는 곳과는 별개입니다.

 
 
 

포스코타워

 

: 정식 명칭은 포스코타워-송도. 옛 이름은 동북아무역타워였습니다. 2017년에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높이 305m로 인천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입니다. 2014년 완공된 후 2017년 롯데월드타워가 완공될 때까지 대한민국 최고 높이 마천루이기도 했습니다. 완공 이후로는 인천의 랜드마크 마천루가 되었습니다.

 

 내부에 오크우드라는 호텔이 있고, 2019년까지는 Oakwood라는 이름이 건물의 외벽에 적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사라졌는데, 송도 현지에서 오크우드라고 하면 포스코타워 내부에 있는 호텔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옆에는 롯데마트와 쉐라톤호텔이 있는데, 이 세 건물이 주차장을 공유합니다. 그래서 내부 주차장이 굉장히 넓습니다.

 

 한편으로 자주 사용하는 별명은 아니지만 더위사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쪽 모습이 더위사냥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한남정맥

 

: 경기도 안성시 칠장산부터 김포시 문수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의미합니다. 인천에서는 동쪽의 소래산, 성주산, 거마산, 관모산부터 서쪽으로 만수산/광학산, 만월산, 그리고 북쪽으로 이어져 철마산, 원적산, 천마산, 중구봉, 계양산, 가현산으로 이어집니다.

 

 이 산맥은 조선 시대 부평도호부와 인천도호부의 경계였고, 현재의 부평+계양구와 서구의 경계입니다. 이 자연적인 경계 때문에 한 도시가 된 이후에도 인천과 부평은 완전히 한 도시라고는 하기 어려우며, 1980년대까지는 택시를 탈 때 아예 부평과 인천 지역끼리는 시외요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서구는 본래 부평 지역이었고 북구였습니다만, 한남정맥 서쪽이기 때문에 주안염전 간척 이후에는 동쪽의 부평/계양구보다는 주안에 더 가까운 지역이 됩니다.

 

 한남정맥은 기후에도 영향을 주는데, 한남정맥 남쪽인 구월동이나 인천대공원이 있는 장수동까지는 해풍이 불어옵니다. 그래서인지 바람 냄새도 다르고, 인천대공원의 벚꽃 개화 시기는 한남정맥 북쪽 부평/계양구의 개화 시기와 다릅니다. 그밖에 도시 분위기 자체도 좀 다릅니다. 부평/계양과 한남정맥 남쪽 인천지역은 1999년 10월에 인천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된 이후에야 실질적으로 좀 가까워졌습니다.

 

 

 

 

해돋이공원

 

: 송도국제도시의 세 주요 공원 중 하나. 송도 현지인들의 근린공원 성격이 강하여 실질적으로 송도 현지인 기준으로는 가장 인기있는 공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근사한 산책길이 조성되어있고, 장미나 작약 등을 식재하여 관리하고 있어 꽃 구경을 하기도 좋은 공원. 내부에 도서관이 있기도 합니다.

 

 미추홀공원과 마찬가지로 동쪽으로 공원이 계속 이어지는데, 미추홀공원과 달리 육교로 연결되어있지는 않고 횡단보도를 건너야 합니다. 동쪽으로 해맑은공원, 해누리공원, 햇무리공원으로 이어지는 햇님 시리즈 공원의 필두.

 

 가까운 쪽을 기준으로 하면 송도 3대 공원인 센트럴파크, 해돋이공원, 미추홀공원은 1블럭밖에 떨어져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 공원을 순환하면서 투어할 수도 있고, 미추홀공원과 해돋이공원의 동쪽 공원들까지 포함하면 더 긴 코스를 계획할 수 있기도 합니다.

 
 
 

 

혈구산

 

: 인천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은 강화도 중앙 쪽에 있는 혈구산(466m)입니다. 마니산과 별로 높이 차이가 나지는 않는데, 유명세는 많이 차이 납니다. 본래 강화도의 주산은 마니산이 아니라 혈구산이었습니다. 상기하였듯 마니산이 강화도 섬이 된 건 1706년부터니까요. 혈구군은 강화군의 옛 이름이었습니다.

 

 혈구산은 높이에 비해 산세가 험하고 풍경이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좀 오지에 있고 유명하지가 않지요.

 

 

 

 

 

 

홍진아파트

 

: 인천지역 홍진아파트는 계양구 계산삼거리에 있던 랜드마크 아파트 단지입니다. 2005년에 현재의 계산동 신도브래뉴로 재건축되었는데, 이후에는 랜드마크 역할을 못 하고 있습니다만 홍진아파트는 매우 유명한 랜드마크였기 때문에, 이후에도 한동안 계산삼거리 쪽을 부르는 명칭이 홍진아파트 쪽이었습니다.

 

 이 홍진아파트는 1970년대 후반 박정희 시대 때 정부정책에 의해 분양된 아파트로, 우리나라 아파트 중에는 이른 시기의 것이었으며 당시에는 아직 계양구 계산동 일대에 부평이라는 명칭을 쓰던 시기라 부평 홍진아파트로 불렸습니다. 지금은 계양구를 부평이라 하면 좀 어색할 수 있습니다만, 사실 90년대 이후 부평 일대가 워낙 혼잡해져서 그렇지 거리로 보면 부평역에서 계산삼거리까지 거리는 송도국제도시 동쪽에서 서쪽 정도의 거리밖에는 되지 않고, 평야지대기 때문에 그냥 통틀어 부평이라 했었던 것입니다.

춘분 무렵의 이슈들에 대하여

정치 2023. 3. 22. 01:48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youtu.be/hhS1GxUCyIE

 

 

 

 

 

1) 작년 하반기부터 주택 매매가가 떨어지면서 전세가도 떨어지고, 그래서 깡통전세가 발생하는 가운데 월세만큼은 떨어지지 않는 현상이 생기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문제도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요. 기회가 될 때마다 이야기하고 있지만, 임차인 입장에서 전세는 근본적으로 위험한 계약입니다. 전세는 단순한 임대차라기보다는 사금융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택 전세 계약은 쉽게 이야기해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전세금을 대출해주고, 이자 대신 주택을 임차할 권리를 받는 대출 계약과 같습니다. 그래서 모든 대출이 그렇듯 전세보증금은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할 리스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대출이 그렇듯, 대출에 대한 리스크는 빌려주는 사람도 짊어지게 됩니다.

 

 금융의 관점에서 보면 전세는 보합에 올인하는 겁니다. 전세 거주자는 집값이 오르건 내리건 손해를 보게 되어있습니다. 일단 전세 거주가 로우리스크가 아니라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전세를 살 만큼의 자본을 가지고 있다면 보통 대출을 껴서 집을 살 수 있습니다. (다가구 전세는 예외) 그러니까 전세 거주자는 대체로 어떤 이유에서건 주택을 사지 않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대출을 받기 싫고, 원리금을 상환하기 싫어서 그럴 수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집값이 오르는 추세가 되면 대출이자따위 신경쓸 바 아니게 오르게 됩니다.

 

 집값이 오를 때 대출을 끼고 집을 산 사람들은 돈을 버는데, 전세를 사는 사람들은 버는 건 하나도 없이 재계약시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요구 또는 나가달라는 요구를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집값이 오르면 전세 임차인은 손해를 봅니다. 그런데 반대로 집값이 떨어지면? 그건 전세 임차인들에게 더 골치아픈 상황입니다. 많은 경우 전세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집값의 변동성이 없다고 예상될 때만 선택하는 게 전세입니다. 집값이 떨어질 거라 예상되면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임차를 하는 게 훨씬 안전합니다.

 

 문제는 언젠가부터 나라에서 전세보증금을 대출해줬다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나라의 진정한 뇌관 중 하나입니다. 국가 입장에서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게 전세자금대출이었습니다. 특히나 지난 수령님 정권은 전세보증금대출 혜택을 마구 퍼주면서 집값폭등과 금융부실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세보증금 대출은 바꿔 말하면 갭투자 대출입니다. 갭투자하는 사람들의 투기자금을 국가가 세입자를 통해 대출해주는것이었단 말입니다. 그것은 수령님 정권 때 집값이 폭등한 한 주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2) 해돈성왕(海豚腥王) 전하의 대일본외교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요. 나는 기본적으로 일본에 대해 반감이 없는 편이고, 일본과 잘 지내야 하고 동맹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만 현 정권의 행보는 무리수고, 여론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모로 난해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일본과의 문제는 결국 해결하고는 갈 일이었습니다. 디테일이 문제일 뿐, 방향은 문제가 아니란 말이지요. 지난 수령님 정권에서 위안부합의 엎고 지소미아로 거짓말까지 했던 건 변명의 여지 없이 우리나라 잘못이었고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우리나라보다도 일본의 제발등 찧기로 마무리되었다고 보고요.

 

 독도 문제 빼면 결국 우리나라와 일본의 갈등은 정치적 기싸움에 가까운데, 요새 세계가 난리인 걸 생각해보면 그게 그리 중요한 문제인가 싶습니다. 물론 보통 사람들이야 세상 돌아가는 데 무관심하고 반일감정 같은 게 우선일 수야 있겠지만, 정치 고관심층까지 그래서야 쓰겠습니까.

 

 

 

 

 

 

 

3) 중국이 러시아에 포탄과 반도체를 공급해준다는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지난 포스트에서 나는 중국과 미국이 공업력 차이가 나기 때문에 대만에서 전쟁을 벌인다면 미국이 대만을 못 지켜줄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그게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러시아가 중국 포탄을 쓰고 있다면 러시아는 포탄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대조적으로 우크라이나는 이미 포탄부족에 시달린지 오래지요.

 

 우크라이나가 정말 잘 싸우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러시아가 유리한 상황이 아닙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공작기계도 없고, 공작기계를 만들 능력도 없는 상황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동맹 중 가장 우수한 포탄 생산능력을 가진 우리나라에는 갑질을 넘어 깡패짓을 하는 바람에 우리나라 심기가 크게 상한 상황이지요. 사실 우리나라만 보면 전쟁 전에는 우크라이나보다는 러시아하고 훨씬 친하기도 했던 상황이라 미국 아니면 우크라이나에 우리가 적극 지원할 이유가 별로 없는데 - 러시아의 막장 행각에 대한 공분은 일단 논외로 치고 미국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합리적인 판단을 하긴 하는건지 의문스럽긴 합니다.

 

 일단 나는 우크라이나의 승전을 기원하긴 합니다만, 우리가 직접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해서 전쟁을 끝내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이제 슬슬 관련하여 미국의 요구에 튕겨야 합니다. 중국이 러시아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면, 우리가 개입을 안 하면 미국의 보급능력 부족으로 우크라이나가 질 수도 있습니다. 나는 예전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적극적 개입과, 그것을 통한 우리나라의 군사력 및 국력 과시를 주장해오긴 했습니다만, 지금처럼 할 거면 이제 진짜로 하르키우가 다시 밀릴 상황쯤 되면 모를까, 분명 또 포탄 팔라고 미국이 접근해올 텐데 그냥 요구를 들어주면 안 됩니다.

 

 사실 골치아픈 건 중국이 러시아에 지원을 해주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겁니다. 그게 가능한 건 내가 보기엔 미국의 중국 제재가 시원찮아서 그렇습니다. 내가 얼마 전에 유럽은 중국 없이는 못 산다고 한 적이 있는데요. 보고있자면 미국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미 중국의 공업력에 중독이 되어버려서, 앞으로는 온갖 불만을 터뜨려도 뒤로는 중국 없이는 못사는 몸이 되어버렸어요. 미국이 중국 관련해서 내로남불 하면서 동맹 압박하는 거 보면 진짜 어처구니가 없는 수준인데, 우리가 거기 쓸데없이 필요이상 놀아날 이유는 없습니다.

 

 

 

 

 

 

4) 이제 바보가 아닌 이상 아무도 미국이 북핵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북핵은 이제 끝난 문제고, 북은 이미 미국까지 열핵병기를 바이든 할 수 있다고 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북한은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이 되었고, 아무리 어렵더라도 어지간해서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이 상황은 아주 간단하고 중요한 결론을 도출합니다. 유사시 미국이 우리나라를 지키지 않을 수 있다는 결론 말입니다. 물론 이 결론이 단순히 북핵에 의한 것은 아닙니다. 북핵에 더해 심화되는 미국의 고립주의, 중국의 팽창, 그리고 중국의 팽창을 막지 못하는 미국의 현 상황을 고려할 때 도출 가능한 결론이 되지요.

 

 그리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구역에 테르밋 소이탄을(백린탄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테르밋 소이탄은 백린탄과 다릅니다.) 지속적으로 바이든 하고 있습니다. 그런 무기는 대량살상무기기는 하지만 화생방 무기가 아니라서 핵우산이 작동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도시 구조와 식생을 고려할 때, 만일 우리나라 도시지역에 테르밋 소이탄 같은 게 대규모로 떨어지게 되면 그 피해를 어떻게 수습할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사실 태평양전쟁 때만 하더라도 커티스 르메이가 도쿄에 네이팜을 쏟아부었던 게 히로시마보다 피해가 더 크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히로시마는 잘 알아도 르메이의 도쿄 네이팜 융단폭격이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잘 모르는 편인데, 도쿄대공습 때 도쿄에 살던 조선인들도 만 명 이상 죽었습니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가지고 있고, 러시아 본토에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러시아가 그렇게 마음편하게 소이탄으로 민간인 구역을 공격하지는 못할 겁니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군사적인 가장 큰 문제는 역공을 못 하는 겁니다. 미국도 유럽도 확전을 못 하기 때문입니다. 군사력이 부족하다는 게 그런 거지요.

 

 우리나라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독자적인 확실한 역공 능력이 유사시 우리를 지켜줍니다. 주한미군은 적의 침략에서는 우리를 보호해줄지 몰라도 역공에는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 연평도 포격 시 미군은 이명박 대통령의 적극적인 반격 지시를 막았습니다.

 

 미국이 우리를 언제까지 지켜줄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미국이 진짜 떠나게 된다면, 그때부터 준비하면 늦을 수도 있습니다. 안보에는 안전을 위한 마진이 필요합니다. 안보는 빠듯하게, 최소한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5)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사태로 인한 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관련하여 이슈가 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트럼프 정권 시절 있었던 은행 관리감독을 풀어준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본래 자유시장주의 이념으로 설립된 나라였던 만큼 자유롭게 은행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화폐도 비교적 자유롭게 발행할 수 있었지요. 그 시절에는 연준도 없었고, 연방정부기관이 화폐발행을 독점하지도 않았었습니다. 1920년대의 대공황 이전까지는요.

 

 문제는 그러다가 대공황 때 너무 많은 은행이 망하고, 경제도 망하고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후 미국은 은행을 관리하고 규제합니다. 그러다가 1970~80년대쯤에 그 관리와 규제가 완화되는데요. 그것은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의 한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오바마 때 다시 은행 관리감독을 강하게 하는데요.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 그걸 트럼프 때 공화당 주도로 또 완화시켜버립니다. 이후 아주 큰 메이저 대형은행들은 가혹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부여받고 관리대상이 됩니다만, 그보다 작은 은행은 완화된 관리만 받거나 관리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또 터진 겁니다. 공화당은 경제를 마사지해서 당장 좋아보이게는 곧잘 만듭니다만, 꼭 뒤탈이 나도록 문제의 씨앗을 뿌려놓곤 합니다. (당시 기사 링크)

 

 은행이라는 건 언제나 관리되고 통제받아야 합니다. 현대 국가의 통화는 은행업이라는 크레디트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이 크레디트는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Belief 또는 Faith에 가까운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현대의 은행과 통화는 합법화된 사기고 일종의 종교나 다름없습니다. 다만 다수가 믿고 있으니까 돌아갈 뿐이지요.

 

 타락하기 이전의 은행은 쉽게 이야기해 금은 보관소였습니다. 은행이 일반화되기 이전에는 금화나 은화, 금괴 같은 걸 각 가정에서 보관했습니다. 귀족이나 부자들의 저택이나 각 회사의 사옥에는 큰 금고가 있었지요. 잭 다니엘이 회사 금고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열리지 않는 금고를 화를 내며 걷어찼다가 발에 부상을 입고 그로 인한 패혈증으로 죽었다는 건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게 1911년의 일이었지요.

 

 지폐와 수표는 본래 금은 보관증이었습니다. 금은을 직접 인출해 거래하는 대신 보관증을 거래하는 것에서 기원하였지요. 그러다가 은행은 보관증 장사를 하게 됩니다. 보관증(통화)을 빌려주고 대신 이자를 받고, 금을 맡기는 고객에게 보관료를 받기는 커녕 이자 수익 중 일부를 나눠줌으로 더 많은 금을 끌어오고 사업 규모를 키우게 되지요.

 

 문제는 그러다가 점점 은행이 소유한 금은보다 많은 보관증을 유통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게 현대 통화 시장의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어떤 이유로건 은행 고객들이 일제히 달려와 보관증을 내밀면서 금은을 출금하려 들면 은행은 다 지급할 수가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이게 뱅크런입니다. 이번에도 실리콘밸리은행은 뱅크런으로 망한 겁니다. 다만 이번 뱅크런은 스마트폰을 이용한 뱅크런이었기에 엄청나게 빨랐지요.

 

 근본적으로 은행이 실제 보유한 금은만큼만 보관증을 찍어낼 수 있고, 국가의 중앙은행도 보유한 금은만큼만 통화를 발행할 수 있다면 이런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문제는 유동성이 극단적으로 경직된다는 겁니다. 시중에 통화가 많이 공급되어 유동성이 늘면 경기가 따스해집니다. 모두가 돈을 벌지요. 그 돈이 설령 가짜 돈이라 해도.

 

 모두가 그렇듯,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달러보다는 금과 은을 신뢰합니다. 은행 중에는 JP모건이 최고라 생각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JP모건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은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JP모건은 실질적으로 연준의 일부 또는 연준의 모체, 아니면 연준의 배후 쯤 됩니다.

 

 분명한 건 은행은 가진 금은만큼 보관증을 찍어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통제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어줍잖은 자유를 들이대서 제어를 풀어버리려는 건 어리석은 선택 또는 로비의 결과물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공화당 정치인들은 언제나 사고를 칩니다.

 

  한편으로 실리콘밸리뱅크 파산 사태 때문에 미국 정부가 버핏 및 제이미 다이먼(JP모건 회장)과 접촉했다는 소식이 지난 주말 있었습니다. 버핏이 민주당 지지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사주매입에 대한 과세 등 날리면 정권의 정책에 대해 매우 강도 높게 공개적으로 비판했다는 건 알 만한 분들은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그런 버핏에게 아마도 옐런을 필두로 한 정부가 SOS를 쳤지요. 물론 이럴 때 버핏은 언제나 이깁니다. 그리고 미국 중앙은행장은 명목상으로는 파월이지만 실제로는 다이먼입니다. 다이먼이 나서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의아해하기도 하는데, 사실 연준은 엄밀히 보면 중앙은행이 아니에요. 역사적으로 보면 JP모건이 진짜 중앙은행이었습니다.

 

 이 상황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분들이 많을텐데, 2의 리먼사태는 없을겁니다. 왜냐하면 실리콘밸리은행은 제대로 규제받는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짜 대형은행들은 제대로 된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리먼브라더스처럼 큰 은행은 안전하단 말이지요.

 

 

 

 

 

6) 이번에 중국 주도로 사우디와 이란이 화해하는 그림이 그려져서 많은 분들이 우려하고 있지요. 다만 이 문제의 발단을 날리면 대통령이 빈살만을 화나게 한 것에서 찾는 분들이 많은데, 나의 견해로 그런 건 공화당 지지층이 퍼뜨린 시각에 가까워 보입니다. 미국하고 사우디 사이는 적어도 이미 2014년부터 영 좋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셰일캐니까 치킨게임하자고 덤볐던 게 사우디였거든요. 그 이전에 이미 911테러의 주범들 다수가 사우디 국적이기도 해서, 사우디 왕실이 배후 아니냐는 말 나오다가 그 의혹 해결된 게 최근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미 2020년에 트럼프는 사우디에 감산을 요구하면서 감산하지 않으면 주사우디미군과 패트리어트를 철수하겠다고 협박하고, 공화당 의원들이 법안까지 제출하는 강수를 둔 적도 있습니다. 주한미군 철수는 미국 의회가 막았지만 사우디는 안 그랬어요. 그때는 빈살만이 숙여서 넘어갔던 것 같은데, 상황이 원래 그랬으니 날리면 대통령도 그 기조 그대로 갔던 거지요. 이란 문제 꼬아둔 게 트럼프였다는 것도 언급해야 할 것 같고요.

 

 중동 문제의 배경은 애초에 매우 복잡합니다. 아랍의 봄부터 지구온난화까지 얽혀있어요. 미국의 결론은 중동에서 발을 빼고 미국 내 오일과 가스를 더 캐서 산유국 포지션으로 변경한다는 쪽이고, 그러니까 이제 사우디하고 예전같은 관계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미국의 진짜 실수라면 이라크에 쳐들어간 것과 카다피를 죽인 겁니다. 빈살만하고 다툰 건 큰 실수는 아니라고 봅니다.

 

 한편으로 근래 미국은 인도와 가까워졌는데, 작년 말 있었던 인도와 중국 간의 군사적 분쟁에서 인도를 도와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도는 반중 친러 포지션이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이 인도를 어찌 대할지 미지수인 면이 있었는데, 미국의 선택은 인도를 돕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장기적으로 미국은 인도와의 파트너쉽을 강화할 마음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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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한 난세에

정치 2023. 3. 10. 23:22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youtu.be/_d5vAMzuobo

 

 

 

 

 

 

 

1)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희망적이었던 2년 전과는 달리,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비극이었습니다. 지금 환호하는 자들은 단언컨대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는 광신도들입니다.

 

 그나마 천아용인이 나서지 않았으면 모든 과정 전반이 재미없는 비극이 될 뻔했습니다. 유승민이 꼬리를 말고 몸을 사릴 때 나서서 모진 권력에 맞선 천아용인의 용기를 기억하겠습니다. 겁쟁이 치타가 나의 표를 받아갈 일은 없을 겁니다.

 

 

 

 

 

 

 

2)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참으로 깊은 고민을 안겨줍니다. 단적으로 이야기해서 현재 미국이 우리나라를 대하는 태도는 과거 일본의 반도체 산업을 무너뜨리고, 플라자합의를 요구하던 때와 같습니다.

 

 당시 욱일승천하던 일본은 미국의 어택을 일본이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는 오판을 했지요. 또한 당시는 냉전시대였고, 군대를 가지지 못한 패전국 일본은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하고 있었기에 미국의 강압을 뿌리치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맞이하게 되었지요. 그 사건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는 일본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타계한 아베의 꿈은 일본의 보통국가화였는데, 플라자합의가 없었다면 아베가 그런 꿈을 꾸지도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과 다릅니다. 우리는 패전국이 아닙니다. 우리는 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저렇게 나온다면, 우리는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타는 듯한 햇볕에 노출되게 되겠지만, 이젠 자립하여 열강이 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미국은 우리나라를 양자로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배경에는 미국의 세대교체가 있을 겁니다. 이제 우리나라와 밀접하고, 우리나라를 지키고 키워낸 것에 뿌듯함을 느끼는 세대는 죽거나 은퇴했습니다. 미국 정계에는 청년들이 많이 진출했고, 그들은 우리나라를 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그들은 성장한 후의 우리나라를 보고 자랐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기존의 의견을 바꿨습니다. 우리나라는 핵개발을 해야 합니다. 존중이란 두려움에서 나오는 법입니다. 우리나라도 존중받는 나라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더 이상 누군가에 의해 미사일 사거리를 제한받아서는 안 됩니다.

 

 주한미군이 떠나겠다고 하면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가 미국을 적대하지 않는 이상 어지간해서는 주한미군이 사라질 일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더 강한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든 K-페미니즘을 타파하고, 여성 또한 남성과 동등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군사예산을 늘려야 함은 물론, 군수산업을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으로 육성해야 합니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투자도 기존과는 다른 레벨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3) 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날리면 정권의 근본적인 상황인식을 바꿔놨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 동안 행복회로 돌리던 미국이 이제야 상황을 파악했다고 봐야합니다.

 

포탄의 상징 행불상수

 우크라이나와 미국이 현재 겪는 문제 중 하나가 포탄부족입니다. 포탄부족 뉴스 자체는 접하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우리나라에도 포탄을 요구해서 우리나라가 미국에 포탄을 판매하는 상황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게 진짜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우크라이나가 소모하는 포탄과 로켓 양을 미국이 생산해서 공급해줘야 하는데, 현재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사용하는 양의 극히 일부분밖에 생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55mm탄의 경우 필요량의 1/10 정도밖에 못 만드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미국이 제대로 된 공업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꿔 이야기하면, 미국의 전력은 매우 강하지만 만일 당장 장기적인 총력전을 펼치게 된다면 소모품 부족으로 매우 불투명한 전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단적으로 이야기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은 자력으로 중국의 공격을 방어해주기 어려울 겁니다. 우크라이나에 포탄도 못 주는 상황인데 뭘 하겠습니까? 현재 중국과 미국의 기초적인 공업능력은 비교대상조차 못됩니다. 기술은 미국이 우위겠지만 당장 많이 찍어내야 하는 상황이면 중국이 그냥 이깁니다.

 

 즉 현재 미국의 패권은 충분히 튼튼한 반석 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은 개별 경제주체의 이기심을 통제하지 못하고, 미국이 가서는 안 될 곳까지 가버린 지 오래입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소련이 망한 이후 지금까지는 미국의 라이벌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잘못들이 용인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가 막장이긴 해도 나름 진심으로 우크라이나를 때리는 것만으로도 미국의 약점이 드러나 버린 것입니다.

 

 근래 미국이 보이는 행동의 기원에는 패닉이 있습니다. 나는 미국이 침착하고 냉정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근래 미국의 젊은 정치인들 중 기존의 미국적인 가치관을 일정 이상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 보입니다.

 

 미국은 변했습니다. 날리면 대통령은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대통령이 아닙니다. 그는 조직원들을 통합하고 의견을 모아 나아가는 유형입니다. 그리고 근래의 민주당은 분명 예전보다는 많이 진보적입니다. 이걸 민주당이 변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미국이 변한 겁니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4) 나는 현재 미국의 행보가 중국의 대만 침공시 대만을 지키지 못하는경우의 수를 염두에 둔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만이 넘어가면 당연히 TSMC도 넘어갑니다. 그 경우 현재의 파운드리 산업구도를 유지할 경우 미국은 삼성전자에 의존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미리 삼성전자를 꺾어놓으려는 마음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미국이 우리나라를 완전히 신뢰 못 하기도 하고.

 

 일단 현재 우리나라의 대미외교가 트럼프 때보다 어려워졌다는 걸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나라는 어쩔 수 없이 공화당과 가까워지게 될 것입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지원법에 공화당이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본 블로그를 쭉 보셨던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나는 미국 민주당 주류의 오랜 지지자였습니다. 본 블로그에 언급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여 나는 빌 클린턴, 앨 고어, 존 케리,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조 날리면을 지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제 미국 민주당 지지를 일단 접어야 합니다.

 

 나는 공화당을 지지할 수 없습니다만, 당장 우리나라 상황을 감안하면 공화당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는 걸 상상하는 건 대단히 끔찍한 일입니다만, 선택권이 없습니다.

 

 선택권이 없는 건 사실 우리만 그런 건 아닐지도 모릅니다. 내가 보기에 날리면 대통령과 미국 민주당이 어떤 정책을 결정하고 운신을 선택할 수 있는 폭 또한 그리 넓지 않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 자체가 그리 많지 않고, 그나마도 그 중 선택하는 게 그리 좋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여러 모로 유감스러운 시대입니다.

 

 

 

 

 

 

5) 외부적으로도 그렇고, 내부적으로도 그렇고 참 여러 모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이런 걸 총체적 난국이라 하는 것이겠지요.

 

 우리나라 정치를 이야기하자면 내년 총선 행방은 민주당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고 봅니다. K-180을 넘어 K-200도 지금은 충분히 가능한 경우의 수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은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판세예측을 해볼 수 있는 시점이 아닙니다만, 리재명 두목의 입지는 영 좋지 못한 반면 해돈성왕 용궁일당의 폭주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리재명 두목이 민주당에서 퇴출당한다면 그것은 민주당에게 큰 호재가 될 것입니다. 현재의 민주당은 강성하던 시절의 정치적 장점을 너무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을 일부라도 되찾을 수 있다면, 현재의 국민의힘 정도는 가볍게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이준석 전 대표의 해돈성왕 전하에 대한 투쟁은 일단 참패로 마무리되었다고 봅니다. 내 생각에 이런 건 확실하게 싸워보고 결론을 내는 게 중요합니다.

 

 나는 정치는 본질적으로 이해관계에 의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해관계가 실리보다는 감성적인 영역일 수 있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실리 이상으로 감정적 이익을 중시합니다. 정치역학이란 곧 유권자들의 정서적 이해관계에 의한 것이라 봐도 됩니다.

 

 그러니까 정치인은 일차적으로는 정서적 이익을 제공하는 서비스 업자나 다름없습니다. 일단 그럴 수 있어야 실질적인, 올바른 통치행위 같은 걸 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민주정입니다.

 

 그래서 2021년 초의 이준석과 2023년의 이준석은 완전히 다른 입지였던 것입니다. 2021년 초의 이준석은 다수의 국민의힘 지지층에게 정서적 이익을 제공할 수 있는 입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2023년의 이준석은 그런 입지에 서 있지 못합니다.

 

 이준석은 기존 고객의 니즈를 무시했고, 보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려 했으나 불충분했습니다. 이 현실을 이준석 본인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에 현재 이준석이 해야 할 것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숙이는 겁니다. 그가 해돈성왕 전하에게 숙일 필요는 없으나, 당원에게는 숙여야 합니다.

 

 

 

 

 

 

6) 이 와중에 경상수지는 사상 최악의 적자입니다.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상황인식은 나빠도 너무나 나쁩니다. 문제가 깊고 어두워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손대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야구에서 타격을 할 때 상대 투수가 던지는 공을 예측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예측이 되지 않는다면 보고 쳐야합니다. 예측을 한 다음 크게 휘둘러 넘기는 게 아니고, 배트를 짧게 잡고 보고 치기 쉬운 위치에 서야 합니다. 앞으로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이 터진 후에, 예측 가능한 범위의 미래가 펼쳐질 거라 생각합니다.

2023년 3월 게시판 & 방명록

게시판 & 방명록 2023. 3. 1. 19:46 Posted by 해양장미

이번에도 긴 겨울이 끝났습니다.

 

다가오는 봄은 언제나 기대와 기쁨을 안겨주곤 합니다.

 

올봄은 2020년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마스크 없이 나들이를 갈 수 있는 봄이 될 것입니다.

 

대중교통에서는 아직 써야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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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야(極夜)의 시대

정치 2023. 2. 27. 01:40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www.youtube.com/watch?v=ERolQfkVWnU&t=35s

 

 

 

 

 

 

1) 위대(僞大)한 수령(囚囹) 문재인(紊災人) 동지(哃謘)의 시대는 기나긴 달밤과 같았습니다. 그 루나틱한 시기가 끝났을 때 나는 새 시대를 환영하였고, 나름대로의 기대를 품었습니다. 그러나 지우지 못했던 불안은 곧 현실이 되었고, 해돈성왕(海豚腥王) 전하의 무단(武斷)한 독재 아래 기대했던 일출은 박명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바야흐로 극야(極夜)의 시대입니다.

 

 어둠의 지속은 별을 떨어뜨림으로 선언되었었습니다. 해돈성왕(海豚腥王) 전하는 처음부터 반사체에 불과했기 때문에, 자체발광하지 못하십니다. 그리하여 천하는 깜깜해졌고, 대한민국의 본격적인 추락이 시작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떨어졌던 별이 다시 솟구쳐 올랐습니다. 깜깜함 속에 빛이 보이니 그것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것만이 유일한 광원(光源) 입니다.

 

 

 

 

 

 

2) 돈을 번다는 건 남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고, 재화나 서비스에 대한 권리를 취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정치 유튜브를 보면 정치를 알 수 없고, 본 블로그와 정치 유튜브는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정치 유튜버들은 시청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방문하시는 분들이 가장 보고싶어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 시대의 문제 중 하나는 정치인들의 마인드가 정치 유튜버들과 비슷해졌다는 데 있습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직업으로, 돈과 권력을 얻기 위해 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 다수가 돈을 벌기 위해 내키지 않아도 출근을 하는 것처럼, 정치인들도 그렇게 정치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현실정치에는 많은 자금이 필요합니다. 고결한 마음가짐만 가지고는 현실정치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저 돈과 권력만을 위한다면 그것은 정치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은 권력놀음이고 속칭 정치질에 불과합니다. 물론 우리는 이 시대에 고결하고 도덕적인 정치를 거의 목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우리는 그 예외를 스스로 빛나는 별이라 불러야 합니다.

 

 정치인들이 돈을 추구하여 정치질로 돈을 번다면 그것은 정당한 이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남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은 그저 추종자들의 광신적 욕구를, 스폰서들의 이익을 충족시켜주는 존재여서는 안됩니다. 유감스럽게도 너무 많은 정치인들이 국가와 사회에 기생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정치인이라면 정치질을 일삼는 부류에 고분고분해서는 안 됩니다.

 

 

 

3) 우리나라를 둘러싼 현실은 급격하게 변해가는데, 우리나라의 권력자들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을 추종하는 광신도들 또한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청년들의 극우화가 심화되는 것도 관측됩니다. 청년남성들 뿐만 아니라 청년여성들의 극우화도 점점 노골적으로 관측되는데, 우리나라의 K-페미니즘이 유독 극우적이라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본질적 기능이 약화되었습니다. 그보다는 특권을 나눠먹고 권력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그리고 기성종교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그 속도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지난 정권은 지나치게 좌파 포퓰리즘을 앞세워서 문제였는데, 이번 정권은 민생에 너무 무관심해 보이는 게 문제입니다. 모든 문제를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나서면서 포퓰리스틱하게 굴고, 정부의 부피를 키워나가는 것도 큰 문제지만 현 정권은 모든 문제를 전 정권 탓으로 돌리고,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면서도 사고는 치고 다니는데다 권력투쟁에는 적극적이니 현재의 지지율도 지나치게 높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라가 이런 식으로 굴러가서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대지에 응력이 누적되다가 파열되면서 그 에너지가 흔들림이 되는 것이 지진이듯, 그런 식으로 지금은 우리 사회에 응력이 누적되고 있는 중으로 판단합니다. 누적된 응력의 총량이 클수록 규모가 큰 지진이 일어나듯, 현재 우리 사회도 꽤나 큰 규모의 에너지가 누적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4) 최근에 세계가 돌아가는 상황을 여러 모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차이메리카 시대가 끝나고 미국이 제조업을 다시 살리려 하고,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하고 오일과 가스를 생산하는 상황이지요. 기존의 질서가 유지될 수 없는 시대입니다.

 

 현 시대가 가진 문제의 기원을 이야기해보자면 일단 세계대전과 브레튼우즈 체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체로 사람들이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세계대전이 치러지는 과정 속에서 유럽 열강은 그들이 수백년간 축적한 부를 상실하였습니다. 유럽 각국이 모아뒀던 황금이 미국으로 빠져나갔거든요. 심플하게 정리하자면 미국이 유럽에 군수물자를 공급하면서 유럽의 금이 미국으로 가버린 겁니다. 당시 미국은 전 세계 황금의 70% 이상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진정한 화폐였던 황금을 미국이 과점하게 됨으로 인해 자유시장경제가 붕괴해버린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1944년에 금 1온스를 35달러로 고정시키고, 그 외에 다른 나라의 통화는 달러에 고정시키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출범합니다. 미국달러의 기축통화 시대가 열린 것이지요. 미국은 황금을 대신 달러를 세계에 풀게 됩니다.

 

 그러나 이 체제는 시작부터 붕괴 위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달러의 발권이 부족하면 유동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세계경제가 위축됩니다. 그런데 반대로 달러를 너무 발권하면 미국의 금보유량보다 달러가 많아져서, 금본위제가 붕괴하게 됩니다. 예일대 경제학 교수였던 로버트 트리핀은 이러한 브레튼우즈체제의 패러독스를 이야기했고, 이후 미국달러기축통화체제의 이러한 문제를 트리핀 딜레마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가 되자 유럽과 일본이 보유한 달러자산 총액이 미국이 보유한 금의 총액을 상회하게 됩니다. 유럽과 일본이 보유한 달러를 금으로 바꿀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지요. 그에 1961년 미국은 금값을 찍어누르기 위해 금값안정기금을 만들었고, 그 부담 중 50%만 자국이 부담하였습니다. 나머지는 영국,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10%씩 부담하게 하고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가 3%씩 부담하게 했지요.

 

샤를 앙드레 조제프 마리 드골

 이에 결국 드골의 프랑스가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프랑스는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주장하며 프랑스가 보유한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기를 요구했지요. 그에 미국은 결국 1969, 금본위제로의 복귀 대신 IMF의 특별인출권(SDR) 도입이라는 프랑스의 요구를 들어줍니다. 이 제도는 IMF에 출자금을 낸 가맹국이 국제수지가 악화되었을 때 무담보로 외화를 인출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남작

 특별인출권이라는 아이디어는 케인스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케인스는 브레튼우즈 체제에 반대했고, 금본위제를 폐기하고 금과 동등한 위치를 지니는 새 화폐를 만들자고 제안했었지요. 당시에는 케인스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지 않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자 케인스가 옳았었다는 게 증명되었고 결국 드골의 프랑스에 의해 특별인출권이 도입된 것입니다. 현재 특별인출권은 미국달러, 유로, 파운드, , 위안이 섞여 있는 유가증권입니다.

 

린든 베인스 존슨

 문제를 악화시킨 주범은 1963년부터 재임한 린든 존슨이었습니다. 그가 베트남전쟁에 개입하면서 미국 재정은 답이 없어졌고, 브레튼우즈 체제를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달러를 찍어냅니다. 그에 결국 브레튼우즈 체제는 심각하게 신뢰를 잃게 되었고, 1971년에는 서독이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탈퇴해 버립니다. 스위스와 드골의 프랑스, 스페인은 가지고 있던 달러를 미국에서 금으로 태환해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89일에는 영국이 미국에 30억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합니다. 미국은 국가부도 직전에 몰리게 되지요.

 

리처드 밀하우스 닉슨

 그리고 며칠이 지난 15, 본 블로그에서 여러 번 언급해온 그 닉슨 쇼크가 터집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금태환을 중단해버린 겁니다. 실질적으로 이 때 금본위제는 붕괴합니다. 공식적인 금본위제 폐지는 1974년입니다만, 닉슨쇼크 때 실질적으로 폐지된 겁니다.

 

 

 

 

 

 

5) 상기한 만행에도 불구하고 달러의 기축통화 체제는 유지됩니다. 일단 달러를 기축통화로 써왔다보니 바꾸기 어려운 면도 있었고, 미국달러보다 기축통화로 더 나은 통화가 없는 게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미국이 신용을 크게 잃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나라보다는 신용이 나은 상황이라 달러를 계속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이후 이 업보로 인해 유로의 반격을 세게 받게 되었다고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유로는 세계인들을 실망시켰고, 지금도 달러가 다른 통화보다는 그나마 낫기 때문에 달러기축이 유지되고 있긴 하지요.

 

 닉슨쇼크는 달러 환율을 망가뜨리는 방향으로 전개되었고, 결국 오일쇼크를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이후 어쨌든 그 수습에 나서야 했고요. 단적으로 이야기해 닉슨쇼크와 오일쇼크가 현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열강의 시대가 진정으로 붕괴한 시점은 오일쇼크 시기이며, 케인지언 시대의 종식도, 속칭 신자유주의의 대두도 오일쇼크로 인해 생겨났습니다. 속칭 금융자본주의는 유가를 통제하기 위해 발전하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고, 이후 공업국과 산유국의 갈등이 지속되며 때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1970년대의 일본

 미국은 산유국이지만 그 이상으로 오일을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포지션은 공업국에 해당해 왔습니다. 오일쇼크 이후 미국과 영국이 군사, 외교, 금융으로 산유국을 어느 정도 통제하면서 세계를 주도하게 됩니다. 다만 오일쇼크 이후 미국과 유럽의 공업은 쇠퇴일로를 걷게 되고, 이 시기에 연비가 좋은 자동차를 만든 일본이 크게 성장하여 미국에 공포감을 안겨줍니다. 이후 일본의 성장은 잘들 아시는 플라자합의로 꺾이게 되지요. 그리고 이렇게 일본까지 꺾이는 빈틈을 노려 성장하게 된 게 우리나라, 그리고 중국입니다.

 

 냉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달러를 발행하고, 그 발행한 달러로 일본, 한국, 중국, 대만이 생산한 물건을 구매하는 체제를 구축합니다. 이 체제를 차이메리카(차이나+아메리카) 체제라 부릅니다. 금융위기 이전의 미국은 중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면 자유화와 민주화가 이루어져 서방 세계로 편입될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도 같은 맥락에서 진행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미국의 기대와 달리 중국은 자유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이라크전쟁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인해 양적완화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또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었으니, 미국 제조업의 심각한 붕괴였습니다.

 

 

 

 

 

 

 

6) 글로벌금융위기는 중국을 패권도전에 나서게 만들었습니다. 금융위기 이전의 미국은 중국이 감히 근시일 내에 도전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으나, 금융위기 이후에는 해볼 만한 상대로 판단하게 된 것입니다.

 

 금융위기가 있었던 해 치러진 베이징올림픽과 남오세티야 전쟁은 냉전 이후의 짧은 전간기의 종식이었고, 신냉전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진핑이 집권하고 푸틴이 크름반도를 강점하던 무렵만 해도 신냉전의 어두운 그림자가 체감되지는 않았었지요.

 

 본격적인 신냉전의 시작은 아마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으로 정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두 사건은 일종의 투표 사고에 가까웠다는 느낌인데, 아주 복잡다난한 문제를 낳았습니다. 일단 두 사건 모두 민주정을 의심하게 만들었지요. 특히 권위주의 국가에서 말입니다. 브렉시트는 유로의 실패 선언이나 마찬가지였고요,

 

 도널드 트럼프가 일으킨 문제들은 너무나도 답이 없는데, 그가 저지른 잘못에 비해 우리나라 청년남성들과 우익 사이에서의 그에 대한 인식은 너무나도 긍정적이라 우려가 큽니다. 일단 현재의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의 트리거는 도널드 트럼프였습니다. 미국과 세계 경제에 큰 대미지를 준 미국 대통령을 넷 꼽자면 위에 이야기한 린든 존슨과 리처드 닉슨, 아들 부시,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입니다.

 

미국과 세계를 망친 4인방. 왼쪽부터 린든 존슨, 리처드 닉슨, 조지 부시, 도널드 트럼프

 린든 존슨은 베트남전과 무분별한 돈풀기로 미국의 재정을 망가뜨리고 무분별하게 달러를 발행함으로 브레튼우즈 체제가 망가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리처드 닉슨은 닉슨 쇼크의 주범이었고, 오일쇼크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아들 부시는 다들 아시다시피 이라크전을 일으켜 미국의 재정을 망가뜨렸고, 서브프라임모기지와 리먼사태의 책임이 있기도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경제적 과오도 위의 인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닉슨 이상의 정치적인 과오가 추가되긴 합니다만. 일단 트럼프는 포퓰리스트로 금융시장에 의도적인 과열을 만들었고, 양적완화의 상환을 적극적으로 막았습니다. 그리고 자유무역의 원칙을 어기고 관세를 통한 무역전쟁을 일으켰지요. 트럼프의 관세질은 동맹국에도 무분별하게 날아들었고, 서방 국가들이 전반적으로 미국에 대한 깊은 회의감을 가지게 만들었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동맹국에 군사적인 압박도 서슴잖았고, 그와 대조적으로 러시아에는 가장 좋은 미국 대통령이었습니다.

 

 그의 임기말 터진 COVID-19는 재정적으로 여력을 확보하지 못했던 미국에게 천문학적인 부채를 선사하였습니다. 달러가 너무나도 흔해졌고, 이미 무역전쟁으로 삐그덕대던 글로벌 공급망이 완전히 망가지면서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일어납니다. 그에 작년부터는 연준이 오일쇼크 시대를 연상시키는 금리인상에 들어갔지요.

 

 금융시장의 투기꾼들은 버블을 일으켰던 트럼프를 찬양하고, 버블을 수습중인 날리면에 저주를 퍼붓습니다. 그야말로 일자무식한 행위입니다.

 

 

 

 

 

 

 

7) 최근 들어 미국은 자국의 제조업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타국과 전쟁을 벌여 고립되는 유사시를 대비해 미국은 충분한 공업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세계대전 당시의 압도적인 공업력이 더 이상 미국에 남아있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이지요. 쉽게 이야기해 이제 미국은 소재부터 완성된 무기까지자체적으로 만들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트럼프를 당선시켜버린 러스트벨트 문제도 더 이상 좌시가 불가능해졌습니다. 미국은 어지간해서는 시장주의적으로 행동하는 나라지만, 미국 민주당은 이제 러스트벨트에 뭔가 해 줘야 트럼피즘의 침식을 막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제조업을 다시 살리고자 하고 있고, 이 문제에서만큼은 트럼프의 공화당과 날리면의 민주당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제조업을 육성하는 건 브레튼우즈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보니 미국 스스로도 당황스러워할 법한 상황이 발생 중입니다. 현재 미국은 인력이 계속 부족하고, 인플레이션이 잘 꺾이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코로나로 인력이 줄어들었는데 일자리는 계속 생기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르고, 임금이 오르니까 금리가 오르더라도 구매력이 있고, 구매력이 있으니까 인플레이션이 잘 안 잡힙니다. 그리고 연방정부와 연준은 이 상황을 이용해서 고용을 강하게 유지하는 가운데 연착륙을 시키려 하고 있지요.

 

 문제는 그렇게 미국이 미국부터 챙기는 게 미국의 동맹국들, 특히 우리나라같은 제조업 국가한테는 큰 부담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한국과 일본, 중국이 생산을 하면 미국이 소비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은 저렴하게 물건을 쓸 수 있었고, 한국과 일본과 중국은 돈을 벌었지요. 그런데 이제 미국이 생산을 직접 하니까 미국 물가가 오르고, 금리가 오르고, 우리나라는 돈을 못 벌게 된 겁니다.

 

 본질적으로 차이메리카는 지속 가능한 체제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는 열심히 일해서 생산하는데, 한쪽은 돈을 찍어서 소비만 하는 체제가 지속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브레튼우즈부터 차이메리카까지 지속되어온 경제사적 시각만으로 보면, 미국의 추락과 중국의 부상이 필연적인 것입니다. 미국은 지은 죄가 크고 무겁고,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기능하며 전 세계 사람들이 중국 없이는 못 살게 만들어버렸으니까요.

 

 다만 문제는 중국의 소프트 파워와 리더십에 있습니다. 미국은 강한 소프트 파워를 가진 국가고, 선행도 많이 했고, 친구도 많습니다. 그러나 중국에게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8)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문명은 석유 문명입니다. 19세기는 석탄과 증기기관 위주의 벨 에포크 시대였고, 이후 20세기는 석유를 앞세워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시대였지요. 메리카 제국의 시대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계의 권력과 갈등 중 아주 많은 부분이 오일에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이 오일문명이 근래 들어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변곡점의 일차적인 계기는 911 테러였습니다. 911 테러를 저지른 테러범들 가운데는 사우디인이 많았는데, 의문스럽게도 이 사우디인들은 금수저들이었습니다. 이후 미국의 조사 결과 사우디 정부이 911 테러에 관여했을수도 있는 정황이 포착되었었습니다. 해당 조사 문서는 오랫동안 기밀로 유지되어오다 2021년에야 공개되었는데, 사우디 정부가 개입한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는 게 결론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빈살만이 권력을 쥔 이후로 미국과 사우디는 더 이상 우호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푸틴의 크름강점과 오바마의 셰일혁명은 본격적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도 이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나빠집니다. 크름강점 이전 유가는 고공행진 중이었습니다. 러시아는 고유가 시대에 막대한 돈을 벌면서 잘 나가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푸틴이 크름반도를 강점하면서 오바마의 미국은 셰일혁명의 엑셀을 밟습니다.

 

 그에 대한 사우디와 중동 산유국들의 대응은 치킨게임이었습니다. 미국 셰일 채굴업자들의 손익분기점은 당시 배럴당 $75 수준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사우디는 겨우 $25였지요. 치킨게임에 앞장선 사우디는 2015년에 원유가격을 배럴당 $30 수준으로 떨어뜨립니다. 저유가 시대의 개막이었지요. 그에 미국의 셰일업계는 큰 타격을 입었었습니다. 201411월 대비 201511월에 미국에서 가동중인 셰일 채굴기는 20% 수준에 불과했었습니다. 이후 셰일업계의 생존자들은 기술을 개발해 손익분기점을 $45 수준으로 끌어내립니다만, 코로나 인플레이션 이전에는 적자를 면할 수 없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한 배경은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산유국과 미국의 상태가 영 좋지 못하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크름강점 이후 산유국들이 뭉쳐 한통속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치킨게임을 틈타 패권도전을 천명한 게 중국이었지요. 미국과 사우디, 러시아가 혈투를 벌인 저유가는 세계의 공장 중국에 축복이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시진핑이 패권도전을 선언하기 이전까지, 중국이 그렇게 흑화될 것으로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었습니다. 후진타오 시대의 중국은 지금의 중국과는 전혀 다른 나라였지요.

 

 한편으로 유럽은 오일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위주로 새 판을 짜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습니다. 그 배경에는 지구온난화라는 명분도 있었지요. 극우파들은 지구온난화 자체를 사기극으로 규정하고 거부하려 합니다만, 극우파들 뒤에 푸틴이 있다는 걸 언제나 염두에 둬야 합니다. 나는 유럽 주류 또한 지구온난화를 핑계로 개발도상국의 도전을 막으면서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같은 사건을 터뜨리고, 그로 인해 중국을 성장시켜줬다고 생각합니다만 지구온난화 자체는 명백한 과학적 사실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오일쇼크 이후로, 어쩌면 세계대전 이후로 계속되어온 산유국들의 도전장일 수 있습니다. 만만한 줄 알고 우크라이나를 때렸는데 망신만 당하는 중이지요. 러시아의 에너지 산업은 망가졌고, 세계는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미국은 세계 최대 LNG 수출국으로 발돋움 중입니다. 그리고 유가는 미국의 셰일업체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지요. 단언컨대 적당한 고유가는 미국에게는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푸틴과 트럼프 편을 들고 날리면 대통령을 모함하던, ‘왜 셰일 증산 안 하느냐고 소리치던 바보들은 상황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9) 문제는 미국의 자국중심주의입니다. 미국은 닉슨쇼크때도 그러하였듯, 진짜 위기를 맞이하면 우방이고 동맹이고 약속이고 다 무시해버리고 철저한 자국중심주의로 일관해버리곤 합니다. 그러니까 사실 미국의 핵우산 약속도, 미국의 대중국 제재 동참 요구도, 미국에 공장을 지어달라는 요구도 일정 이상 신뢰하고 협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최근 미국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및 포드의 IRA 회피 같은 걸 보면 미국의 위신이 추락한 지 오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이러면 결국 중국에게 계속 추가적인 득점 기회가 생깁니다. 우리는 독자적인 생존방안을 모색해야 하고요.

 

 초강대국 미국은 닉슨쇼크와 플라자합의와 차이메리카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들은 미국의 미래를 갉아먹었고, 이제는 미국도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미국의 양자(養子)격으로, 그리고 중국의 중간재 공급국가로 차이메리카 시대에 고도성장을 했던 우리는 이제 전에 없던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지난 위수문동(僞囚紊哃) 정권은 위기대비는 커녕 없던 문제도 창조하면서 화살비 속에 맨몸으로 출진하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현 해돈성왕(海豚腥王) 윤석열(蝡螫趔) 전하께서는 이런 문제를 염두에 두긴 하시는 것인지 심각하게 의문입니다.

 브금. 용궁과 추종자들께 추천하고 싶은 명곡입니다.

 

https://youtu.be/eLXXFVNFKww

 

 

 

 

 

 

 

1) 며칠 전에 일한 오마르가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축출당했습니다. 그에 그녀의 동료인 AOC(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가 분개하여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

 

 일한 오마르는 AOC, 라시다 탈리브, 아야나 프레슬리와 함께 ‘The Squad’, 우리나라에서는 통칭 4인방으로 불리던 미국 민주당의 급진주의 하원의원입니다. 이후 이 스쿼드에 5명이 늘어나 지금은 9명입니다. 자말 보우먼, 코리 부시, 서머 리, 그렉 카사르, 델리아 라미레즈가 합류했습니다.

 

 2018년에 처음 당선된 오마르는 소말리아 출생의 82년생 여성으로 무슬림입니다. 오마르는 2021610일에 "우리는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같은 수준의 책임과 정의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미국, 하마스, 이스라엘,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탈레반에 의해 저질러진 상상할 수 없는 잔혹 행위를 보아왔다."같은 발언을 트위터에 남겨 미국을 발칵 뒤집은 적이 있었는데요. 이후 시간이 지나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이 되자 오마르를 결국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축출한 것입니다.

 

 이에 AOC‘911 테러 이후 무슬림을 혐오해온 역겨운 유산, 유색인종 여성에 대한 인종차별과 폭력 선동같은 발언을 하면서 폭발했는데, 내가 AOC나 오마르 같은 스쿼드에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젓기는 하지만 공화당도 왜 이렇게까지 예전 일을 가지고 긁어 부스럼을 만드나 모르겠습니다.

 

 

 

 

 

 

 

2) 나는 미국 민주당의 좌경화에 꽤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날리면 대통령이 재선되면 아마 6년은 민주당 주류가 미국과 세계를 지킬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 다음은? 어쩌면 미셸 오바마나 카멀라 해리스가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지요. 거기까진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AOC의 성장세를 보면 나는 언젠가는 AOC가 대통령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AOC는 현재 고령인 버니 샌더스의 후계격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날리면 대통령과 버니 샌더스는 그리 사이가 나쁘지 않은 편인데, 날리면 대통령이 당내 인사와 두루 친한 호인이자 신사라는 면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 때문인지 날리면 대통령은 AOC에 대해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고 오히려 키워주는 모양새인데, 낸시 펠로시도 어째 마찬가지입니다. 막상 AOC는 펠로시에 여러 번 되바라진... 것도 넘어서서 도전장을 내민 수준으로 대했다고 생각하는데, 펠로시가 보기엔 그래도 스쿼드가 민주당 후계자들로 보이는지 관대합니다. 근래 보면 존 케리까지 AOC하고 함께 행동하며 AOC를 차세대 주자로 키우는 모습이 관측됩니다. 날리면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존 케리, AOC는 마침 같은 가톨릭 교도이기도 합니다.

 

 즉 현재 미국 민주당은 배타적인 집단이 아니고, 파벌이 다르더라도 후계를 키우고 극단화된 공화당의 공격에서 미국을 지키려는 그룹이 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국 민주당 내 가톨릭 그룹은 나름대로의 유대감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주류가 사멸한 공화당은 내가 보기엔 그냥 절대 집권하면 안되는 그룹입니다. 그런데 AOC가 대통령이 된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머리가 아픈 일입니다. 내가 AOC의 모든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AOC는 진짜로 자본주의 폐지를 부르짖는 사회주의자입니다. 샌더스보다 더 왼쪽에 있어요.

 

 

 

 

 

 

3) 푸에르토리코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될 수 있는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습니다. 상원에서는 어찌되나 모르겠습니다. 법안이 통과되면 푸에르토리코는 올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푸에르토리코는 COVID-19 사태에서 미국령이긴 하지만 미국의 주가 아니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했습니다. 또한 트럼프는 푸에르토리코를 그린란드와 바꾸자느니, 팔아 버리겠느니 같은 망언도 한 적이 있었지요. 푸에르토리코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된다면, 일정 이상 COVID-19와 트럼프 때문일 겁니다.

 

 푸에르토리코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된다면 민주당 주가 될 거고, 어쩌면 AOC의 서포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AOC는 집안이 푸에르토리코계입니다. 부계와 모계 모두 그러합니다.

 

 나는 미국 민주당의 장기집권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푸에르토리코의 주 승격을 강하게 응원합니다. 현재 미국 공화당은 네오콘이 당내 온건파 취급받는 수준이 되어버려서 절대 집권해서는 안 됩니다.

 

 

 

 

 

 

4) 최근에 우리나라의 핵개발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중적 관심은 그리 크지 않은 것도 같지만, 미국에서는 주의깊게 보고 있다고 판단하고요. 사견으로 해돈성왕 전하의 성격을 감안할 때 그냥 어느 날 개발 시작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관련하여 나의 기본적인 견해는 우리나라가 핵개발을 할 경우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고, 그것으로 얻는 것은 더 작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강하게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지금은 우리나라가 핵개발에 도전해볼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이야기해서 일단 명분은 있습니다. 북핵을 해결하고자 했던 모든 시도는 실패했고, 이젠 북한이 핵보유국인 건 거의 공인상태입니다. 거기에 트럼프 시대는 미국을 심각하게 의심하게 만들었고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핵보유국으로 얻는 특권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모두가 목격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핵을 개발했을 때, 미국이 진짜로 우리나라와 적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입장에서 최악의 경우는 핵보유국 대한민국이 레드팀이 되는 겁니다. 미국은 그것만큼은 막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일단 우리나라가 핵개발을 하면 우리나라를 참교육해서 개발을 막으려 들겠지만, 실제로 개발하고 나면 적대하지 않으려 할 겁니다.

 

 다만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미국의 양자같은 포지션이었다는 건 올바르게 인식해야 합니다. 미국은 우리나라를 잘 대해 왔습니다. 만약 우리가 핵개발을 하게 된다면, 이 부자와 같은 관계는 깨지게 됩니다. 핵개발을 한다는 건 우리나라가 독자적인 열강이 되겠다는 선언과 같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우호적으로 지낼 필요가 있는 잠재적인 도전자가 되는 겁니다. 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언젠가는 패권을 노릴 수 있는 국가로 취급받게 될 겁니다.

 

 일본이 미국에게 공포를 안겨줬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 결론은 플라자합의였지요. 우리나라가 핵개발을 시작하면 우리나라도 그런 거 얻어맞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전성기 일본에 비하면 체급이 많이 가벼운 나라라서, 미국이 참교육을 시전하면 진짜로 아플 겁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사람들 중 다수는 미국과의 특수한 호혜적 관계가 끝난다는 게 어떤 미래를 초래할지 짐작하지 못합니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미국을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믿어도 좋은가에 있습니다. 일단 나는 날리면 대통령을 신뢰합니다. 아버지 부시, 빌 클린턴, 아들 부시, 오바마도 동맹국 입장에서 신뢰할 수 있는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트럼프만큼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아들 부시나 오바마, 날리면 대통령은 유사시 핵우산의 약속을 지킬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트럼프가 핵우산 약속을 지킬 거라 믿을 수 없습니다.

 

 트럼프 하나만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공화당의 주류가 된 팔레오콘 전반이 똑같다고 봅니다. 네오콘이 영웅놀이에 심취한 바보들이었다고 한다면, 팔레오콘들은 그냥 빌런입니다.

 

 나는 미국을 신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트럼프의 집권으로 상실한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화당이 여전히 강성하며 트럼피스트에 의한 장악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5) 위대(僞大)한 수령(囚囹) 문재인(紊災人) 동지(哃謘)의 집권기간은 문화사적으로 우리나라에 중요한 지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세월 쌓아온 모순과 망상이 폭발한 시기였지요.

 

 수령동지의 집권 초기,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수령동지의 성공을 믿었고, 또한 기원하였습니다. 나는 그가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나 소수자에 불과했지요. 수령동지를 비판하는 것은 무질서하고 부도덕한 행위처럼 받아들여졌던 시기가 있습니다. 그 상태는 우리 사회의 모든 모순을 함축적으로 드러내 줬었습니다. 그렇기에 작금의 혼란과 망조는 필연적입니다.

 

 내가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들어본 모든 말 중 가장 무서웠던 말이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였습니다. 그 문구는 혁명적인정치권력과 유착하고 있었고, 그것은 민주정의 종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2017년 봄의 집권부터 2020년 여름의 어느 날까지, 3년 동안 우리나라는 수령동지 세력의 절대적인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시장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말입니다.

 

 

 

 

 

 

6) 우리나라 사람들 다수의 정서 밑바탕에는 피해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그건 한의 정서라 할 수 있지요. 우리는 본래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인데,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제점령했고 겨우 독립했지만 열강에 의해 찢어졌고,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겪었다. 라는 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본 역사관이고 민족 의식입니다.

 

 수령동지의 집권은 국민적 피해의식의 발로였고, 충족이었고, 망상의 실천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시대를 지나 포스트 문재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대깨윤과 개딸의 시대를.

 

 피해의식과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편적 근간에는 대단히 감정적인 기질과 권력에 대한 탐욕, 그리고 낮은 자존감과 높은 자존심이 있습니다. 상기한 피해의식과 이런 근간은 모두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고맥락 문화의 고간섭 사회고, 권위주의적인 사회입니다. 눈치가 부족하면 공격받고, 성장 과정에서 주변에 맞추고 권위에 맞추는 걸 훈련받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성장과정에서 많은 심적 상처를 안게 되고, 심리적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못하고 자존감을 취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년이 됩니다.

 

 K-페미니즘은 이런 조건에서 사회 전반을 망가뜨리는 정신적 전염병이 됩니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가진 낮은 자존감과 높은 피해의식은 페미니즘에 깊게 감염되기 쉽게 합니다. 일정 연령대 이상 남성들이 페미니즘의 해악에 대해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도 어차피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식을 주입받거나 권위와 주변을 따르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스스로 무언가를 알아보고 깨닫고 기존의 판단이나 지식 체계를 수정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을 때 고집을 부리고 떼를 쓰는 걸 종종 봅니다. 그 모습은 어린 아이가 떼를 쓰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성인이 되어도 마찬가지인 겁니다. 성장 과정에서 이성적으로 잘 생각해서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게 아니라 그저 더 이상 떼를 부려도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아서 그런 행동을 중지했던 것일 뿐,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가지게 되면 다시 떼를 쓰게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7) 상기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지난 세월동안 눈부시게 성장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상호간에 의식을 많이 하고 자존감이 약한 문화가 고학력 대한민국을 만들었고, 열심히 일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도 했거든요.

 

 그러나 이제는 한계에 부딪쳤습니다. 누적된 문제와 모순들이 국가와 민족과 사회를 짓눌러 압사위기에 이르고 있습니다.

 

 헤아려보고 싶습니다. 용궁의 해돈성왕(海豚腥王)께서 대체 왜 저러는지요. 그러나 아무리 짐작하려해도 저 자기 파괴적인 행동의 동기에 어떠한 심오함이나 통찰, 고귀함 같은 건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권력을 쥐었으니까 그저 방만하고 제멋대로 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해돈성왕(海豚腥王) 전하와 명신왕후(命新王后) 전하를 보며 그 부덕함에 대한 충언을 하지 못하고, 간신처럼 받들어모시고 지키려고 하고 있는 자들을 보고있자면 과연 대깨문과 대깨윤은 형제자매와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각하는 걸 포기하고 특정한 도그마에 취하면, 그 믿음이 깨지기 전까지는 행복한 법이지요. 그러나 살아간다는 건 본질적으로 번민의 연속이며, 자연적으로 증가하는 무질서도에 대한 저항이기에 편안하고 지속적인 행복따위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표만한 이성이라도 있다면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이 가진 모든 전통과 근본이 사멸중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해돈성왕(海豚腥王) 전하와 명신왕후(命新王后) 전하는 국민의힘에 그 근원을 두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천공 교주 또한 그러합니다. 현재의 국민의힘이 가진 것은 그저 행정권력뿐입니다.

 

 존중이란 두려움에서 나오는 법인데, 전하 내외께서는 너무나도 용감하여 두려움같은 일반적인 감각을 미처 느끼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용궁 바깥 세상은 무서운 곳입니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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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s://oceanrose.tistory.com/1443

 

다리를 벌렸을 뿐, 벌거벗지는 않은 임금님의 시대에

브금 https://youtu.be/mxJmvbaC104 1) 이번 설 연휴에 거리에 나가 사람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패딩 공화국이네.’ 평소에도 우리나라가 패딩 공화국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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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설 연휴에 거리에 나가 사람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패딩 공화국이네.’ 평소에도 우리나라가 패딩 공화국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요. 명절에도 이 정도일줄은 몰랐습니다. 마지막 날 빼면 1월 설 치고 그렇게 추운 설은 아니었거든요.

 

 사람들의 복장이 캐주얼해진 건 하루이틀 일은 아닙니다만, 이젠 설에도 갖춰입은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나의 느낌입니다. 1990년대를 생각해보면 그때만 해도 설에는 한복을 갖춰입은 사람이 많았고, 정장은 더 흔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복장으로 다닙니다. 명절에조차 빼입지를 않는것이지요.

 

 

 

 

 

 

최근에 넥타이로 가장 화제가 된 인물

2) 최근에 관측되는 모습 중 하나가 넥타이의 사멸입니다. 출근한 직장인 중에도 넥타이를 매지 않은 사람을 보기 쉬워졌지요. 블레이저를 입더라도 구두가 아닌 운동화 차림으로 다니는 사람들도 흔해졌고요. 퇴근하는 전철을 보면 거의 다 패딩에 운동화지요.

 

 여성들의 경우 몇 번 이야기했듯 메갈리아의 출현 이후 복식과 미용에 소비하는 금액이 급격하게 줄었습니다. 그리고 혼인율과 출산율이 급감했지요. 대신 여성들은 소형 SUV와 떡볶이에 돈을 썼고, 그건 떡볶이 가격의 가파른 인플레이션과 소형 세단 및 해치백의 사멸로 이어졌습니다.

 

 한편으로 나는 이 현상이 페미니즘 외에도 많은 부분이 스마트폰으로 인해 초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예전에는 주변과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다녔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제법 다수가, 특히 여성들은 더더욱 걸을 때도 스마트폰을 봅니다. 주변을 보지 않아요. 주변 사람은 더더욱 안 보고.

 

 단적으로 이야기해 나는 사람들이 아싸화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세대가 내려갈수록 집단적인 아싸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흔히 이야기되는 청년층의 문해력 저하라거나, 청년층의 사회성 부족같은 식으로 문제가 드러나는 중이라 생각하고요. 그나마 현 20대는 아동기나 성장기 때 스마트폰을 쥐고 자라지 않은 사람들이 다수일 텐데, 아동기부터 스마트폰을 만지면서 자란 세대가 사회에 나왔을 때 어떤 모습이 될지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3) 한편으로 나는 해돈성왕(海豚腥王) 전하를 지켜보면서 쭉 받는 느낌이, 근본적으로 예의가 없고 제멋대로인 타입이라는 겁니다.

 

화이트 코드가 완벽했던 수령님

 단적으로 이야기해 나는 해돈성왕 전하가 취임 후 드레스 코드를 격식에 맞춰 입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화이트 코드는 물론이고 블랙 코드도 본 적이 없고요. 대조적으로 정장 차림에 넥타이를 푼 건 봤단 말이지요. 쩍벌이라거나 후보 당시 논란이 있었던 열차 맞은편 의자에 발을 올리는 등의 무례에 일상적인 막말은 덤입니다. 단언컨대 나는 해돈성왕 전하같은 자유 세계 국가수반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특정한 포멀함을 굳이 아무 데서나 강요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유행의 강요라거나 지나친 스타일의 강요에 대해서도 부정적입니다. 부두노인(腐頭老人) 류시민의 다른 모든 건 내가 부정하더라도 빽바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지요. 국회에 참석하는 의원의 코디는 묵시적인 룰이지 규정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제적인 행사를 다니는 국가수반이 해돈성왕 전하처럼 하고 다니는 건 문제의 여지가 있어요.

 

 한편으로 2021년에 맛서인은 텐노 즉위식에 참가하면서 드레스 코트(연미복 중 석례복)차림을 한 리락연 동지에게 연미복은 일본 제복이라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어 이슈가 되기도 했었는데요. 맛서인이 리재명 두목의 측근이라는 건 다들 아실테고. 연미복이 일본 제복이라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일본에서는 연미복도 거의 모닝 코트만 입는다는 점에서 더더욱 무식함을 드러내는 발언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일본 대신들은 모두 모닝 코트를 입은 사진이 있는데, 입헌군주제인 일본은 내각이 출범할 때 대신들이 모두 텐노에게 임명장을 받습니다. 그 때 모닝 코트를 입고 밝은 회색 넥타이를 매는 게 예의라서 모두 모닝 코트가 있고, 격식이 필요한 행사에서 그것을 종종 입습니다. 대조적으로 우리나라는 공화국이다보니 복식이 좀 더 간소해지기 쉬운 편입니다.

 

 

 

 

 

 

 

 

4) 정장의 쇠퇴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스마트폰 시대는 전 세계에 평등하게 각 분야의 종말을 초래하고 있지요. 금세기 들어 일어난 이공계의 약진과 인문계의 쇠퇴도 우리나라에만 일어난 일은 아니고, 본문에서 언급하는 모든 것은 거대한 시대변화의 일부일 겁니다.

 

 이 시대의 비즈니스 룩에 제법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이 현용 스마트폰의 창조주, 스티브 잡스입니다. 잡스가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입었던 스웨터와 리바이스 진, 뉴발란스 운동화가 많은 영향을 줬지요. 저커버그도 티셔츠와 진을 주로 입습니다. 잡스와 저커버그가 그러니까, 불편한 정장보다 캐주얼하고 편한 차림이 창조적인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일반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복식은 이제 신분을 증명하지 않게 되었고, 격식을 얼마나 차리느냐의 문제가 되었을 뿐이지만 이젠 굳이 격식을 차릴 일이 얼마나 있겠느냐는 생각이 보편화된 것 같습니다.

 

 문제는 사회 전반적으로 아예 예의와 격식과 정중함이 없어졌다는 느낌이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의 개인에 대한 간섭과 감시가 증가했다는 사회변화가 그런 변화에 일조하고 있을 것입니다.

 

 단적으로 이야기해서 199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웠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공권력이 개입하기에 앞서 사적인 해결이 지금보다 쉬웠고, 그게 일반적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로 인한 문제도 많았지만 어쨌든 그런 사회에서는 상호간에 더 조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촉법소년 같은 문제는 거의 없었고요. 즉 지금보다는 법보다 도덕이 중요한 사회였다는 것입니다.

 

 법률은 본질적으로 권력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가깝습니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강조되는 건 전통적으로 덕치였지 법치가 아니었습니다. 도덕이 붕괴하고 법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타락한 권력자들이 날뛰는 디스토피아에서 살며 돌아보면 왜 선인(先人)들이 덕치를 중시했는지 알법합니다.

 

 

 

 

 

 

 

5) 복식을 갖추는 건 일종의 예의이고, 비언어적 소통 수단입니다. 과거에는 옷차림을 보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계급인지 알 수 있었지요. 그 의미는 시대가 지날수록 축소되었습니다만, 그래도 최근까지는 꽤 남아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페미니즘이 퍼지는 2010년대를 지나면서 빠르게 축소되다가 COVID-19로 언택트 시대가 열리면서 포멀함이 크게 쇠락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포멀하게 입지 않더라도 멋지고 아름답게 차려입은 사람을 보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런 현상조차 많이 사라졌습니다.

 

 나는 오버핏과 래시가드의 유행을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00년대에 스키니진과 노출패션이 유행할 때, 나는 그것이 모더니티라 생각했습니다.

 

 인체를 본질적으로 부정한 것으로 보고 숨겨야 할 것으로 보며, 현세보다 내세를 중시하는 것을 하나의 고전적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인본주의가 싹트고 성장하면서 인체는 아름다운 것이고, 긍정받아 마땅하다는 관점이 부흥합니다. 그래서 문화가 발달할 때 패션은 노출과 몸매를 드러내는 것을 긍정하게 됩니다. 세계대전 이후 오랜 세월동안 여성복의 노출도가 점점 올라갔다는 걸 복합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문명을 파괴했고, 스마트폰 시대는 타인을 바라보는 것을 중단시켰습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소녀시대가 입던 스키니진은 청년들 사이에서는 엄마 바지라거나 아줌마 청바지 취급받게 되었고, 노출도가 높은 옷을 입은 여성들은 페미니스트들에게 공격받게 되었습니다.

 

 다양성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던 문화는 문명의 파괴자들에 의해 서로 혐오하고, 외면하고, 공격하는 것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도덕과 규범과 정중함은 쇠락하였습니다. 멍청함이 직업병인 판사들과 잘못된 신념을 가진 법조인들, 원하는 모든 것을 가르는 권력자, 위선적인 기득권 단체들, 그리고 그것을 추종하는 다수가 그 주체입니다.

 

 

 

 

 

 

상의만 19세기 스타일입니다

6) 한편으로 남성 복식의 장기적인 변화 방향은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아졌다는 걸 일관적으로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고전 만화 캔디캔디 원작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캔디스 화이트가 아치볼드(아치볼트)를 처음 만날 때 아치는 화려한 블라우스를 입은 걸로 묘사됩니다. 캔디캔디의 시대적 배경은 1차 세계대전 시기인데, 실제로 1차 세계대전 당시만 해도 남성이 레이스로 장식된 블라우스를 입는 건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남성도 화려하게 입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었다는 말이지요.

 

 남성복이 간소화되고 장식이 빠지게 제약된 건 주로 세계대전과 미국의 영향이라 생각합니다. 세계대전은 정말 많은 걸 바꿔놓았는데, 세계대전 이전에는 각국의 군복이 화려했었습니다. 당시의 정장인 프록 코트를 그대로 화려한 군 정복으로 쓰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군사기술이 발달하면서 은폐가 중요해졌고, 각국이 진심으로 싸우는 대전을 거치면서 군복이 보호색으로 변해버립니다. 질병을 방지하고 부상을 입었을 경우, 또는 화학무기에 노출되었을 경우 치유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머리도 짧게 자르는 게 일반화되고, 수염도 면도해버리게 되지요. 이런 변화를 겪으면서 복식도 간소화되었고, 장식이 최소화된 복식과 차림에 신경을 크게 쓰지 않는 것이 남성다운 것으로 간주되게 됩니다. 남자아이가 스커트를 입지 않게 된 것도 의외로 2차 세계대전 시기부터입니다. 그나마 장식적인 부분이 남아있던 게 넥타이였는데, 최근에는 그것조차 사라지는 중이지요.

 

19세기 말의 남자아이는 이런 식으로 입는 게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전후 복식에서의 미적인 부분을 거의 여성복이 독식하게 되었고, 나는 이것이 여성의 사회적인 계급을 끝없이 올리고 남성의 사회적인 계급을 추락시키는 한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복식에 의한 사회적인 지위가 갈렸던 예시

 복식은 그 자체로 계급을 상징하고, 잘 갖춰입은 옷은 나름대로의 사회적인 지위를 부여합니다. 남성복의 경우 단적으로 말하면 여성복보다 대충 만드는 경향이 짙어졌고, 여성복의 다양성과 발전 정도, 시장의 크기 등등이 남성복과 큰 격차가 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의복에 신경을 쓴다는 건 곧 사교성과도 직결됩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가진 돈을 옷에 쓰면 그 옷을 입고 나가봐야 하기 때문에, 좀 더 인싸에 가까워질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점점 여성들은 평균적으로 인싸화되었고, 남성들은 아싸화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 세월이 누적되면서 사회상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봅니다.

 

 다만 근래 유행이 된 페미니즘과 탈코로 인한 여성의 패션 지출 감소, 그리고 여성 중에도 아싸가 늘어나는 현상, 대조적이라 할 만한 그루밍족의 증가를 보면 앞날은 또 모르겠다 싶기도 합니다.

 

 

 

 

 

노무현은 캐주얼이 정말 잘 어울리는 대통령이었습니다

7) 데모크라시가 퍼진 이후, 대중이 명사의 캐주얼한 복식에 친근함과 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예를 들어 날리면 대통령 취임식에서 샌더스는 수트나 코트가 아닌 점퍼에 벙어리장갑 차림이었는데, 그에 샌더스를 좋게 보고 응원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나는 대통령 취임식에 점퍼를 입은 것을 굳이 좋게 볼 건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샌더스 지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젤렌스키 또한 전쟁 이후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수트를 입지 않습니다. 언제나 티셔츠나 점퍼 같은 복장을 하고, 옷을 갖춰입을 시간도 없이 전쟁 중에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크이우는 그래도 젤렌스키가 옷을 갖춰입을 정도는 될텐데 싶은데, 캐주얼한 복장을 보이는 게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질지는 모르겠습니다.

2023년 2월 게시판 & 방명록

게시판 & 방명록 2023. 2. 1. 01:35 Posted by 해양장미

 언제나 2월이 될 때면 벌써 새해의 첫달이 다 갔나 싶습니다.

 

 길고 추운 겨울도 이제 2/3 이상이 지나갔네요.

 

 모두들 행운이 함께하는 2월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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