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환풍구 추락사고에 대한 짧은 이야기

사회 2014. 10. 17. 23:17 Posted by 해양장미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는 거의 전적으로 본인들의 책임입니다.

 

 사고자들을 두고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남탓쟁이들 때문이에요. 세상에 환풍구 위에 수십 명이 올라가서 방방 뛰다니, 무슨 일부러 호러쇼 찍는 겁니까. 아예 올라갈 수 없게 지었어야 한다느니, 더 튼튼하게 만들었었어야 한다느니... 저기, 세상은 당신들 안전을 백퍼센트 책임질 의무가 없습니다. 안전은 각자 조심하는 거고, 사회는 위험요인을 줄여줄 의무정도만 있는 거죠. 안전수칙을 준수하고 산다면 충분히 확률적으로 안전할 정도로요.

 

 이런 사고에서 남탓을 하는 건, 저에게는 이런 말 비슷하게 들립니다. 요즘 중형차들은 대체로 악셀 끝까지 밟으면 시속 200km/h는 충분히 나올 텐데, 사실 시속 200km/h에서는 충분히 차세제어가 안 되는 차가 대다수고 만약 어딘가 들이받기라도 한다면 그 어떤 상용차도 그 속력에서는 찌그러진 쿠킹호일 됩니다. 그러니까 시속 200km/h로 다니지 말라는 거고요. 근데 누가 시속 200km/h로 달려놓고 사고가 나서 죽었다고 치면, 그 책임을 자동차 회사에 돌릴 수 있습니까? 시속 200km/h로 달릴 수 있는 차는 그 속도에서도 안전해야 한다는 식으로요. 이게 이번 사고에서 남탓하는 사람들 매커니즘하고 똑같아요.

 

 세상 모든 건 언제든 흉기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 말라는 짓해서 사고 터지면 그 피해는 나 하나의 사망 또는 부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환풍구 위에 수십 명이 올라가면 안 된다는 건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라도 3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거예요. 자동차 사고 정도의 충격이 있으면, 일반 철판 아니라 고강도 특수강판도 쿠킹호일처럼 찌그러집니다. 사람 한 30명이 좁은 장소에서 일제히 뛰다 보면 경우에 따라 건물도 무너뜨릴 수 있고요. 각자의 안전불감증이 그 무엇보다 문제입니다. 안전 신경 쓰는 사람들은 환풍구 위로는 어지간하면 지나다니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이번에 사고 난 환풍구는 지나다니라고 만든 환풍구도 아닙니다. 높이가 성인 남성 허리 정도 높이라서, 어지간한 탁자보다 더 높아 일부러 올라가지 않는 한 올라갈 일이 없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 수십 명이 서서 뛰었으니 사단이 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남탓할 게 아닙니다. 본인들 탓이죠.

 

 저는 이런 데서 남탓 하는 분위기는 문화적으로 문제소지가 있다고 봅니다. 각자는 자유로운 사람이고, 각자는 그러한 자유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국가는 평생 국민을 도와주는 보모와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물론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이는 보호해야겠지만, 저기 올라가서 뛴 사람들은 본인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성인들입니다. 자유란 그런 것입니다. 이 사고의 주책임은 안전수칙을 준수하지 못한 피해자들에게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강성 야권 및 깨시민 파시스트들의 큰 사상적 문제 중 하나로 사회갈등 자체가 불러오는 위험성을 간과하는 경향을 꼽고 싶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절대선의 위치에 놓고, 선한 자신들이 권력을 잡아야 만 한다고 규정하는 가운데 그것을 위한 모든 사회갈등은 민주주의는 본래 이런 것이다라는 식으로 합리화시킵니다.

 

 그들이 대한민국 정치판의 한 주류로 부상한 이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보여온 태도는 끊임없는 갈등의 촉발과 공격이었습니다. 그들이 모두를 공격하는 가운데 온건하고 이성적인 사람들은 침묵하게 되었고, 시민 사회와 언론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많은 것이 황폐화되었고, 황무지 위에 극단적인 반대세력이 출몰하였습니다. 갈등은 갈등을 부르고, 악은 악을 부릅니다. 세상에 서북청년당 재결성이라니, 강성 야권의 업적은 정말 대단합니다.

 

 돌이켜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을 해치려 한 자들도 용서하고, 사회 통합을 위해 애썼습니다. 노무현 정권이 자신의 세력에 칼을 꽂았을 때도 그는 용서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의 그러한 정신을 이은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서북청년단 재결성 같은 소리가 나오는 건 가볍게 보면 안 됩니다. 서북청년단은 역사적인 비극이라 할 만한 범죄 집단이고, 그런 집단이 부활하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기준에서 용인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민주적인 관점을 떠난 것입니다. 민주정체가 아니라 귀족정이나 왕정일지라도 그런 집단은 용인해서는 안 됩니다

 

 새누리당은 서북청년단의 재결성을 적극적으로 막고, 자유민주정체 국가의 집권여당으로서 품위를 지키고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꼬인 정국을 쉽게 돌파하기 위해 악의 손을 잡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저는 현재 새누리당이 제정신과 균형 감각을 상실한 면이 있다고 봅니다. 서북청년단을 결성하려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그 배후에 새누리당 차원의 지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뭘 만들고 뭘 어째도 어지간해서는 별 사고는 못 치겠지만, 결코 현명한 방식이 아닙니다.

 

 만일 서북청년단 같은 게 진짜로 활동하면 강성 야권과 깨시민들도 더더욱 과격한 언행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파시즘적 속성도 다음 단계로 본격적으로 진화해 사회 갈등은 더 첨예해지고, 보다 위험한 사회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집권여당은 국민을 통합시키고 평화로운 사회 분위기를 조성할 의무가 있다는 걸 상기해야합니다. 만일 그런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면 새누리당의 미래도 결코 밝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의 한국은 민주정체가 아닌 입헌주의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입헌주의가 전제하는 시민적 자유와 정의, 인권을 추구하는 정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민적 자유란 무엇이든 해도 되는 무질서함이 아니고, 서로의 권리와 시민권을 존중하고 나의 권리와 시민권을 지키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서북청년단의 재결성은 입헌적 질서에 대한 도전이자 체제에 대한 반역입니다.

 

 사실 서북청년단 재결성 같은 어이없는 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시민 각자에게 입헌적 질서의 혜택이 충분히 체감되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강성 야권은 이명박 집권 이후 정권에 대한 반대만을 반복하며 대안적 가치를 제시하지 못했고, 이번 국회에 들어서는 국회선진화법과 더불어 아예 입법마비를 일상화시키는 가운데 시민들에게 큰 고통을 전가하였습니다. 또한 야권에 보다 가깝던 광범위한 시민 사회와 진보 정치권은 민주당계 정치권에 포섭되고 반MB에 매몰되어 와해되다시피 하였고, 노무현 사후 야권 언론도 너무나 변질되어 언론으로서 전혀 제 기능을 못하고 있습니다. 87체제는 실패했고, 신자유주의와 IMF,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인한 침체와 불황은 우리의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악조건은 시민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쉽게 합니다. 강성 야권과 깨시민들은 이러한 악조건의 조성에 너무나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앞으로 더 큰 비극이 출현할지, 아니면 우리 사회가 위기를 이겨내고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을지는 하기 나름입니다. 계속 나쁜 선택과 사건들이 이어진다면, 우리는 또 한 번 역사에 비극적인 기록을 쓰게 될 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