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회담 폐지론과 대한민국 파시즘

사회 2014. 11. 2. 17:20 Posted by 해양장미

 신해철의 느닷없는 타계로 인해 조금 덜 회자되고 있는 것 같긴 합니다만, 지난 월요일 방영되었던 JTBC프로 비정상회담BGM으로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를 틀은 것으로 인해 일련의 사회적인 파장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 사건을 파시스트들이 궐기한 또 한 번의 사건으로 보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한국 파시즘이 그 세를 잃지 않고 유지되는 중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한편으로 이 사건은 대한민국 파시즘의 개성적인 특징이 드러난 경우라는 생각도 듭니다.

 

 우선 개인적으로 비정상회담의 본 편은 보지 못했으나, 기미가요 BGM에 대한 사견을 밝히자면 큰 문제 없다입니다. 한국에서 기미가요를 트는 것은 불법이 아닙니다. 90년대에는 모든 일본 음악을 트는 것이 불법이었으나, 그러한 반민주적인악법은 김대중 대통령의 치세에 사라졌고 이제 기미가요를 트는 것은 각자의 자유입니다.

 

 물론 역사적 관점에서 한국인이 기미가요를 싫어하는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긴 합니다. 그러나 각국의 국가를 정하는 것은 해당 국가의 권리입니다. 그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하는 것 또한 해당 국가의 몫이고요. 한국은 일본 국가가 기미가요인 것에 대해 항의를 하고 자국에서 그것을 공식적으로 방송하지 못하도록 규제할 수 있으나, 그런 규제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국가(national anthem)는 대체로 폭력적이고 국가주의적인 내용이 많고 (우리 한국 애국가 같이 평화로운 가사는 좀 드뭅니다), 나라끼리 역사적으로 악연을 쌓기 쉬운 만큼 특정 나라의 국가(national anthem)에 악감정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타국에 대한 악감정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이미 한국은 기미가요의 방영 등을 금지하지 않기로 정한 상황입니다. 이것에 대해 각자가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현 시점에서 이는 세계적 표준에 부합하는 우리 사회의 규칙이며 사적으로 이 규칙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일단은 규칙을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규칙을 갈아엎고자 하더라도 일단은 규칙에 대한 존중이 필요합니다. 또한 '비정상회담'은 모토 자체 중 하나가 세계인의 화합이기도 하고요.

 

 저라고 일본이 기미가요를 국가로 쓰는 것에 대해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 내에도 류큐인, 자이니치 등이 있는 만큼 기미가요를 국가로 삼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이 많고, 개인적으로는 기미가요를 국가로 제정하는 일본이 대단히 한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 내 문제입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항의를 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내정간섭을 하긴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처한 진짜 문제는 우리 국가 내부의 파시즘입니다. 일본이 기미가요를 국가로 쓰건 어쩌건, 그건 기분이 나쁜 정도지 한국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입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국의 파시즘은 그런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공격성과 무관용으로 대표되는 이런 반민주성 및 극우성은 우리 앞에 놓인 미래를 진짜로 어둡게 만듭니다.

 

 저 역시 어떤 사람들이 기미가요를 방송한 것에 대해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할 사람이 나올 것이라는 것도 이해합니다. 비록 그런 행위가 극우적인 행위라는 것은 이야기 해야겠지만요. 그러나 사과를 넘어 폐지를 요구하며 맹렬한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은 파시즘입니다.

 

 한국의 이런 파시즘은 비단 이번만의 일이 아닙니다. 황우석 줄기세포와 심형래 디워사태는 한국 파시즘의 대표적인 사례들이었습니다. 이젠 대다수의 사람들이 황우석 사태를 흑역사로 받아들입니다만, 그런 사건이 일어나게 된 문화 및 대중심리 구조가 크게 개선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편으로 이러한 한국 파시즘의 현장에는 언제나 깨시민들이 있었는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번 본 블로그에서 이야기해왔듯, 파시스트들이 자칭타칭 진보로 불리는 게 21세기 한국의 너무나도 불행한 자화상입니다.

 

 비정상회담 제작진이 기미가요를 튼 것에 일본제국주의 찬양이나 식민통치에 대한 찬양의도가 있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 기미가요가 뭔지, 어떤 건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모두가 알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 알아봐야 기분 나쁘기만 한 일이고, 딱히 그 이상의 현실적인 문제는 없는 사안이니까요. 또한 심지어 (그럴 가능성은 없겠지만) 제작진에게 설령 일제를 찬앙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러한 과격하고 공격적인 인민재판은 자유민주정체국가의 국민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적어도 바람직하지는 않지요.

 

 만약 TV에서 기미가요 트는 게 보고 듣기 싫으면, 그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자고 주장하고 행동에 나서면 됩니다. 물론 그것은 다분히 극우적인 사고방식이고 조처라는 건 미리 이야기해야겠고, 저는 그러한 자유민주정의 적들에게 관대한 태도를 가질 생각이 없기도 합니다. 자유민주정의 핵심 사상인 관용은 오직 불관용만을 적대합니다.

 

 또 이야기해야 할게, 관용 없이 공격적으로 구는 파시스트들이 과연 특별히 애국하는 마음에서 그러는 걸까요? 전 그건 아니라고 거의 확신합니다. 그보다는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공격할 만한 대상을 찾은 것에 가까울 테지요. 세금 조금 더 걷는다고 투덜거리고, 조금만 나라가 마음에 안 들어도 이민 가겠다고 하던 그 사람들이 가장 파시스트같이 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국과는 거리가 먼 불만분자들이라는 거지요.

 

 그리고 저는 이 깨시민 파시스트들이 TV에 탈북자가 나올 때 북조선 애국가 (제목은 한국 국가와 동일하게 애국가입니다만, 다른 곡입니다.) BGM으로 나온다면 결코 기미가요와 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으리라 예상합니다. 실제 북조선 애국가를 트는 건 기미가요와는 달리 불법이 될 확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저야 북조선 애국가를 틀건, 기미가요를 틀건, 한국 전쟁 당시 한국군과 연합군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쳤던 중국의 국가 의용군 행진곡을 틀건 그것이 우리의 이 사회와 자유민주정체에 대한 명백하거나 심각한 위협이 되지 않는 한 각자의 자유로 일단은 존중한 후, 그 뒤에 제 판단과 주장을 펼칠 것이지만 말입니다.

 

 파시스트들이 유독 기미가요에 심각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유는, 파시즘 심리에는 극우적 민족주의가 반드시 섞여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교육받고 자란 한국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우익 민족주의 교육을 받고 자랐고, 문화 또한 집단주의적이기에 파시즘에 물들기 쉽긴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을 존중하고 중용의 미덕을 지킬 필요가 있으며, 대화와 타협을 우선해야 한다는 교육도 같이 받았습니다. 이 사회가 잘 돌아가려면 무엇이 우선일까요?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기미가요가 방송에서 가끔 나온다 해도 별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파시즘이 한국에 매번 넘실대는 건 이야기가 전혀 다릅니다. 뭐가 진짜 문제인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또한 일제시대에 대한 역사교육도 보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좀 더 잘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일제시대는 단순한 독립운동의 시대도, 일본이 단순히 미쳐서 한국을 수탈하던 시대도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에도 사람들은 각자 생존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했고 그런 각각의 삶들이 모여서 역사가 되었습니다. 전체주의집단주의민족주의국가주의적 사관과 교육 체계는 그 시대의 실상을 전혀 알려주지 않습니다. 실제 파시스틱하게 구는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매우 편향적인 정보만을 취합하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저는 이번 사건에서 한국 파시즘에는 한국 특유의 문화적 결함이 크게 작용하고 있으며, 매우 계승되기 쉬운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한국의 여러 요건이 파시즘이 발달하기에 제법 좋은 토양이 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강화되었습니다. 실제 파시즘은 여러 국가에서 융성했었는데, 각 국가마다 개성적인 모습으로 전개되곤 합니다.

 

 다행히 한국 파시즘은 아직은 초기단계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심화될 수 있는 여지는 있고, 심화되고 결국 집권을 해낸다면 매우 나쁜 결과가 있을 것이라 봅니다. 미리 무엇이 파시즘인지를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파시즘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관용의 적이 관용을 압도하게 되면, 그 사회는 매우 쉽게 집단화되고 결국 파시즘이 꽃피기 쉬운 조건이 됩니다. 관용과 이해가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입니다. 그런 사회를 만들려면 애국의 탈을 쓰고 완장을 차고 극우적 관점으로 타인을 공격하는 게 파시즘임을, 그리고 파시즘이 얼마나 위험하고 왜 나쁜지를 보다 더 널리 알릴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