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9. 25 이수역 사고에 대하여

사회 2014. 9. 26. 19:32 Posted by 해양장미

 평소에 저는 무리하게 몸이나 물건을 닫히는 문에 들이밀어 전동차에 승차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좋은 감정을 가지기 어려웠습니다.

 

 대략 내가 뭔 잘못을 했다고 저리 호러쇼를 보여주려 하나?’ 같은 심정이었지요.

 

 그러다 결국 어제 4호선 이수역에서 사단이 났습니다. 사고 소식을 못 들으신 분들을 위해 사건을 링크합니다. (클릭)

 

 개인적으로 이 사고의 주책임은 사망자인 노인에게 있으며, 이 노인이 정말 많은 이들에게 광범위한 민폐를 끼친 사건이라 봅니다. 기관사가 다소 부주의했고, 시스템도 완벽하지는 못했다지만 모든 안전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각자가 안전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 사건은 근본적으로 안전을 도외시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걸 주저하지 않은 노인에 의해 발생한 사건입니다. 동정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기관사와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고 그걸 평생 기억에서 잊기 힘들 목격자들입니다. 그들이 나쁜 경험에 너무 힘들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특히 평범하게 융통성 있게 일했을 기관사가 이 사건으로 인해 큰 불이익을 보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스크린도어가 열린 상태에서 원칙적으로는 전동차가 출발하면 안 되지만, 스크린도어가 고장 나는 경우는 사실 흔하다보니 현실적으로 규정을 다 지키면서 운행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규정과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다소의 거리가 있고, 현실적으로 모든 규정을 지키면 필연적인 비효율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전철 시스템은 그런 비효율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문제를 기관사에게 과도하게 전가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또 애초에 열차의 출발시간을 지연시키는 행위는 상당한 민폐입니다. 철도의 특성상 그런 행위는 뒷 열차들에게도 지연을 초래합니다. 게다가 위험성도 상당합니다. 또 만약 이번 사고와 같은 사단이 날 경우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심한 정신적 피해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단순하게 본인 안전에서만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를 막으려면 사실 닫히는 문에 몸이나 물건을 들이미는 행위를 강력하게 단속하고, 과태료나 범칙금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무인 카메라 같은 걸로는 당장 하기 어려운 행위일 테니 당분간 사람을 고용해서 강력하게 단속하면 많이 개선될 거라 생각합니다. 인건비는 과태료로 채우고도 남을 겁니다.

 

 사실 다니다보면 안전을 심각하게 도외시한 행위는 온 주변에 만연합니다. 안전불감증은 세월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사고 시 안전을 준수할 의무를 도외시한 자에 대한 법률적 책임을 강화하고, 기준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현행법은 보행자의 안전준수에 대한 법률적 책임이 너무 약합니다. 문제를 개선하려면 제도를 고치는 게 가장 빠릅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대형마트 의무휴업에 대해 반대해 왔습니다. 전국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이 제도는 대단히 곤혹스럽고, 더할 나위 없이 아둔한 제도입니다.

 

 우선 실제 이 제도가 어떤 결과들을 불러왔는지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가장 곤혹스러운 건 근래 세워진 신도시들의 현실입니다. 이 신도시들엔 전통시장은 물론, 전통적인 구멍가게-슈퍼마켓도 거의 없습니다. 대체로 대형마트 계열의 SSM, 대기업 계열 중형 마트가 기존의 슈퍼마켓 자리를 대신합니다. 그걸 제외하면 한국 어디에나 있는 CU등 체인 편의점들이 있고, 드문드문 대기업 계열이 아닌 중대형 마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신도시에서도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이 되면 SSM이건 대기업 계열 슈퍼마켓이건 다 닫는다는 데 있습니다. 이러면 신도시의 마켓은 반쯤 마비가 됩니다. 편의점과 SSM같은 것보다 훨씬 큰 중대형 마트 체인, 그리고 백화점을 빼면 슈퍼마켓에서 파는 물건들을 구할 수 없게 되니까요. 이미 시장의 생태계는 바뀐 지 오래라 신도시는 기존 도심 및 택지와는 다른 상권이 생긴 게 현실인데, 법이 억지로 신도시 주민들을 못 살게 굴고 있는 겁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편의점으로 해결이 안 되면 가까운 SSM두고, 차 몰고 km단위로 떨어진 중대형 마트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 중대형 마트라는 건 도무지 소상공인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체인형태도 많을 뿐더러 규모도 상당히 큰 게 많습니다. 객지의 소형 대형마트와 비교하면 식품코너만큼은 오히려 더 큰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농협 하나로마트 같은 경우는 대형마트인데 예외규정으로 영업할 수 있고요.

 

 더 나아가 소상공인 및 재래시장 보호와 증진이라는 명분은 현실보다는 관념이나 공상에 의한 것이 되곤 합니다. 어차피 재래시장도 이제 시장에 따라선 중대형 마트의 지분이 상당히 큽니다. 파는 품목이 비슷한데, 중대형 마트에서는 원스탑 쇼핑과 카드결제가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식당 등을 하는 소규모 상인들은 코스트코 등의 특수 대형마트를 많이 이용하기도 하는데, 회원제 마트의 영업일은 물론 마트 영업시간까지 규제하면서 일부는 휴무일이나 휴무시간이 다른 이웃 도시까지 장을 보러 가거나 기타 피해를 입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대형마트 휴무 제도는 한국의 변화한 유통 및 소비 구조를 올바르게 반영하지 못합니다. 현실적으로 가구 당 인구수 및 전업주부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가공되지 않은 식재료의 소매 비중은 같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 피해는 아무래도 재래시장이 주로 받게 됩니다. 공산품 및 소규모 수요 상품 위주의 유통에서는 대형 유통 체인의 경쟁력이 높을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실제 대형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 중 통상 재래시장에서는 거의 구할 수 없는 게 정말 많습니다. 물론 그 반대도 종종 있습니다만, 젊은 핵가족이나 1인 가구의 수요를 더 잘 반영하는 건 대형마트 쪽입니다. 재래시장은 일단 판매단위가 큽니다.

 

 한국에는 어차피 오래된, 전통적인 소매점이 별로 없습니다. 할머니 때부터 이 가게를 이용해왔지.’ 같은 건 매우 드문 이야기지요. 특히 서울 및 수도권은 이런 경향이 심합니다. 유럽에야 동네마다 전통적인 소시지, , 치즈, 와인 가게 같은 게 있다지만 한국엔 그런 거 없습니다. 이 나라는 어차피 어딜 가도 거의 비슷한 걸 팝니다. 그렇다면 더 나은 체제가 기존 체제를 대체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기업도 아닌 아딸 같은 게 얼마나 대단한 여파를 만들어냈는지 보면 답은 간단합니다. 생협 같은 것도 비교적 번창하고 있고요.

 

 한편으로 실제 대형마트에는 소규모 상인들도 다수 입점해 있습니다. 대형마트에 가 보면 작은 점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거의 개인 사업자들입니다. 푸드코트에 입점해 있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고요. 또한 다소 번화한 거리의 대형마트는 주차장 역할도 합니다. 그런 장소에서는 현실적으로 대형마트가 닫으면 주변 상권이 다 악영향을 받습니다. 마트 쇼핑할 겸 차 몰고 나오는 사람들도 안 나오거든요. 설마 대신 이 사람들이 재래시장에 갈까요? 실제 재래시장에 차 몰고 가면 정말 많은 경우 주차지옥입니다. 잠깐만 주차해놔도 주차요금 받는 유료주차장 운영하는 경우가 대다수고, 주차 난이도 자체가 높은 곳이 많습니다. 약간의 가격 차이에도 민감한 사람들이 많은 현실에서 괜히 저렴한 재래시장이 쇠퇴하는 게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결코 재래시장에 대해 전혀 나쁜 감정이나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다닌 재래시장은 대체로 친절했고 양심적이고 기타 여러 장점이 있었습니다. 다만 저는 재래시장과 대형마트, SSM등을 모두 이용하는 입장이다 보니 비교가 많이 됩니다. 사견으로는 재래시장의 문제는 재래시장의 몫이고 생활양식의 몫입니다. 대형마트를 규제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일단 양쪽은 위에도 이야기했듯 파는 물건 품목 자체가 다르기도 합니다.

 

 규제 정책은 정책 중 가장 시행하기 편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분별한 규제는 부작용이 크고, 실익은 없습니다. 저는 한국의 대형마트 의무휴무제도는 부작용만 크고 실익은 거의 없다고 판단합니다. 현실을 무시하고 관념과 공상을 앞세운 나쁜 규제는 얼른 철폐하는 게 옳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