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깨시민들의 패턴은 같습니다. 선거에서 지고, 그러고 나면 잠시 멘붕하고, 멘붕을 이겨내기 위해, 그리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개론을 소리 높여 외칩니다.

 

 그나마 온건하고 현명함이 남아있는 야권 지지자들은 슬슬 이런 깨시민의 언행 패턴이 자신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깨닫는 것 같습니다만, 깨시민들을 말리는 건 어려울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무의식은 근본적으로 민주정을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보지요.

 

 깨시민식 국개론 말마따나 국민(수준)이 다 큰 강아지라 올바른 정치적 선택을 할 능력이 없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논리적인 결론은 간단합니다. 투표권 박탈하고 민주정 그만 해야죠. 제대로 선택 못 할 사람에게 정치적 선택권을 주면 나라가 망할 거 아닙니까? 특히 양당제 현실에서 깨시민들 말대로라면 새누리당은 집권할 자격이 없는 부도덕한 정당이니 당연히 민주당계가 계속 독재해야죠.

 

 깨시민들이 뭘 말하고 싶어 하는지는 명백합니다. 정리해보죠. 그들 기준에 안 맞는 사람들의 투표권은 박탈하고, 그들의 기준에서 올바른선택능력이 있는 사람들만 정치적 권한을 가지고 그들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계속 해먹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사고방식입니다. 비아냥이 아니고 그들이 말하는 방식의 논지를 계속 전개시켜나가면 이런 결론이 도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요? 그들은 남들이 민주주의가 옳다고 하니까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민주주의라 써진 간판을 들고 있을 뿐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선거 결과가 마음에 안 들어도 국개론을 펼칠 수 있는 민주정 지지자는 없습니다. 국개론은 민주정의 전제 조건을 부정하는 독재자나 제국주의 외세의 논리입니다.

 

 게다가 백날 말하듯 그들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은 사상도 빈약하고 도덕적이지도 않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도 않지요. 할 말이 없으니 그저 니네가 더 나쁘고, 나쁜 놈들이 뭘 해도 밀어주는 국민이 강아지고, 운동장은 기울어져있다고 징징댑니다.

 

 그런데 이 징징이 조금 더 가면 뭐가 되는지 아십니까? 민주정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민주정을 파괴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 형태를 내세운 결과는 역사 속에 수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물론 외눈박이 바보들이 유토피아를 건설한 사례는 없어요. 매번 현세의 지옥을 만들었을 뿐이죠. 제가 괜히 그들을 파시스트라 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로 초기 파시스트들하고 패턴이나 정신세계가 꽤 비슷해서 그렇습니다.

 

 물론 깨시민 개개인은 의식적으로 파시즘이 나쁘다고는 생각합니다. 민주정이 뭔지 모르듯 파시즘도 뭔지 잘 모르지만요. 또한 그들은 대체로 권위주의나 독재, 전체주의 등이 나쁘다고도 생각합니다. 실제 무의식은 권위주의에 가득 차있고, 독재를 번번이 지향하기도 하지만 의식과 무의식이 따로 논다고 봐야죠. 이런 모순이 워낙 심하기에 제가 그들을 철학도 사상도 뭣도 없다고 하는 겁니다. 주워들은 것들을 체계화시키고 자기 스스로를 성찰할 지식과 지혜가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들은 대체로 충동적이고 반지성주의적이며 도덕주의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가끔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말하는데, 제가 말하는 도덕주의는 경직된 사고방식에 세상의 복잡성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떨어지고 근거 없이 자신이 도덕적으로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면서 타인에게 훈장질을 하는 꼰대인 반면 막상 본인은 도덕률을 잘 안 지키는 걸 의미합니다. 도덕주의자들이 넘쳐나는 사회엔 결코 도덕이 없지요. 또한 민주정과 도덕주의는 함께 갈 수가 없습니다.

 

 사실 역사상 수많은 철학자들이 민주정에 반대했습니다. 민주정은 분명 큰 단점이 있고, 파국으로 치달을 위험성이 상존하는 체제입니다. 그러나 민주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민주정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민주정이 현실적으로 가장 나은 제도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필연적으로 민주정 지지자들은 민주정의 단점과 위험성을 잘 인지하고, 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정당과 관료를 기반으로 한 현대의 민주정 체계는 오랜 시행착오와 보완 과정 속에 형성되었고, 계속 보완과 개량 중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민주정을 반대하는 것 자체를 덮어놓고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비판과 논박은 강도 높게 하겠지만요. 그런데 깨시민들은 자신들이 민주정을 반대하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고, 더 나아가 자신들을 민주주의자로 규정하다 못해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양 자처합니다. 이러한 일자무식과 뻔뻔함은 진짜 위험한 문제입니다. 양심이 있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민주정 지지자가 아니라는 걸 선명하게 밝혀야 합니다.


 민주정은 너와 나의 입장과 사고방식은 다르고,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며 각각의 시민들은 각자 자신을 위해 장기적으로는 최대의 이익이 되는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전제 및 가설에서 출발합니다. 물론 깨시민들은 이 전제 중 그 무엇도 갖추지 못합니다. ‘내 생각은 옳고, 네 생각은 그르다. 내가 대의다. 니들과는 대화할 것도 타협할 것도 없다. 그리고 니들은 옳은 선택을 하지 못한다.’ 이게 그들이 쭉 보여 온 언행입니다. 전형적인 독재자의 궤변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국개론에 마음이 동하는 분들을 위해 첨언합니다. 민주정에서 항상 시민들이 옳은 선택을 하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그른 선택을 하기도 하고, 때때로 민주정 자체를 붕괴시키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 박정희 유신 체제는 투표를 통해 결정되었었지요.

 

 그렇기에 민주정 지지자들은 민주정을 보다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한 고심을 오랜 세월 해왔습니다. 정당을 기반으로 한 민주정, 관료 및 각 분야의 엘리트, 자유로운 언론, 헌법과 3권 분립 등이 이런 고심 끝에 나온 안전장치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새민련은 어떤가요?

 

 일단 새민련은 정당을 기반으로 한 민주정을 충분히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그 정당엔 인력수급이 제대로 안 된지 오래고, 걸핏하면 찢어졌다 합쳤다 선거마다 군소정당과 합세하고, 계파다툼은 눈뜨고 보기 뭐한 수준이며 무엇보다도 한 정당으로서의 어떠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지 못합니다. 또한 관료와 엘리트들은 새민련에 등을 돌린 지 오래고, 노무현은 3권 분립을 침해했었지요.

 

 제대로 돌아가는 민주정 체계는 시민들의 실수를 미연에 줄이고, 실수를 하더라도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민련은 이러한 안전장치를 지나치게 무시합니다. 새민련 구성원과 지지자 중 너무 많은 비율이 사실 민주정 지지자가 아니라서, 민주정에 대한 성찰과 고민이 심각하게 부족한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월 속에서 과거 민주정을 지지하고 DJ를 지지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선지 오래입니다. 현재의 40~50대의 평균이 처음부터 새누리당을 지지했을까요? 국개론은 민주정을 반대하기 위해 창조된 망언입니다.

 

 현실 속에서 민주정은 민감하고 감정적이거나 또는 무관심하고 단편적인 시민들과 탐욕스러운 정치인들의 상호 관계 속에서 의외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나갑니다. 민주정은 세상사의 복잡성을 극대화하고, 서로간의 피드백을 통해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체제입니다. 집단주의적이고 도덕주의적인 단편성으로 이 복잡한 민주정을 쉽사리 재단하려 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도덕주의자의 결론은 언제나 독재가 되고 맙니다. 도덕을 강요하기 위해서는 독재 권력이 필요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