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을 맞이하며 – 상황, 유럽, 축구 -

정치 2023. 1. 23. 23:05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youtu.be/uPYNsGXbuzY

 

 

 

 

 

 

1) 출생지가 아프리카인 선수 중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는 누구일까요? 이 질의에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답을 할 겁니다. 조지 웨아, 사무엘 에투, 디디에 드록바, 아니면 마이클 에시엔을 꼽는 사람도 있겠지요. 현역인 모하메드 살라를 꼽는 사람도 있을거고요.

 

 그러나 이 질의에 대한 객관적인 답은 정해져있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출생지가 아프리카인축구선수 중 역대 최고의 선수입니다. 호날두의 국적은 유럽 국가인 포르투갈이지만, 호날두가 태어난 마데이라는 지리적으로 아프리카입니다. 이는 버락 오바마가 미국인이지만 출생지는 오세아니아(하와이)인 것과 같습니다.

 

마데이라의 위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날두는 유럽인인 것으로 세계인들에게 인식되고 있지요. 국적이 포르투갈이니까 그렇기는 합니다만. 유럽은 매우 독특한 문화적 집단입니다.

 

 

 

 

 

 

 

 

2) 유라시아를 유럽과 아시아라는 두 분류로 나누는 것에는 그 어떠한 합당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럽을 대륙이라 주장하기도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럽인들이 유럽을 차별화시키고자 하는 관점에 불과합니다. 지구상의 대륙을 지리학적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프로-유라시아, 아메리카, 남극, 오스트레일리아. 이렇게 4개입니다. 이 중 아프로-유라시아와 아메리카는 수에즈운하와 파나마운하로 나뉘었다고 치면 분리할 수 있습니다만, 유럽과 아시아는 그런 식으로 분리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문화권이 다르다고 하기엔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 인도, 중앙아시아는 매우 밀접한 관계입니다. 중국과 인도는 완전히 다른 문화권이지만, 유럽과 인도는 제법 가까운 문화권입니다. 인도유럽어족이라는 분류가 괜히 있는 게 아니지요.

 

 아시아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들이 아나톨리아를 아시아라 부른 데서 기원하였습니다. 이후 시대가 지나면서 유럽인들이 점점 유라시아에서 유럽을 제외한 전역을 아시아라 부르게 되었고, 아시아인들도 일단 별 생각없이 그 이름을 받아들였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대륙별 축구 그룹을 볼 때마다 우습고 어이없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칠면조국은 유럽이고(근래 칠면조의 영어 이름이 튀르키예로 바뀌었다고 들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아시아니까요. 거기에 근래는 러시아까지 아시아로 간다고 하고 있던데, 그야 러시아 영토는 유라시아 중 아시아에 속한 곳이 더 넓긴 합니다만...

 

 그래서 축구계는 유럽 선수에게 유리합니다. 유럽 명문 구단에서 뛰다가, A매치에 나가도 상대적으로 짧은 거리만 돌아다녀도 되거든요. 대조적으로 유럽에서 뛰는 타 대륙 선수들은 A매치 때마다 고생을 하지요. 아시아같은 경우 그냥 아시아 내 원정 거리도 말도 안 됩니다. 유럽은 좁은 지역을 명목상 대륙으로 나눠놓았고, 극단적인 고도차도 없는 지역이다보니 원정이 쉽지요. 그래서 타 대륙 선수보다는 유럽 선수가 커리어가 좋기 쉽습니다. 같은 실력일때는요.

 

 

 

 

 

 

 

 

3) 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적어도 실력으로는 메시의 라이벌이었던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메시가 첫 발롱도르를 받은 시점부터 지금까지, 누가 봐도 실력으로 세계 최고의 선수는 메시였지요. 호날두는 골 수를 제외하고는 전혀 비슷한 레벨에 있지 않았습니다.

 

 나는 호날두가 만들어진 라이벌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호날두가 재투표로 리베리의 발롱도르를 강탈해간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데, 그 또한 어느 정도는 정치적인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만들어졌건 아니건 메시와 호날두, 그리고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라이벌 구도는 축구계의 흥행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미와 유럽을 상징하는 선수라는 점에서도 상징성이 있었지요. 내가 생각하는 포인트는 이 점입니다. 나는 유럽인들이 스타성만큼은 메시를 상회하는 호날두를, 유럽을 대표하는 선수로 띄워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메시의 등장은 유럽인들에게 매우 껄끄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메시 이전 유럽 최고의 축구선수는 요한 크루이프였습니다. 크루이프는 월드컵은 없지만, 월드컵 외에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고 펠레, 마라도나와 같은 반열로 언급될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크루이프가 일으킨 전술적 혁명을 높이 평가하는 이들은 크루이프를 넘버원으로 꼽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메시 이후엔 그게 사라졌습니다. 메시는 마라도나의 후계자이기도 하지만, 크루이피즘을 완벽히 체화한 인물이기도 했으니까요. 쉽게 이야기해 크루이프의 완벽한 상위호환이 등장해버린 겁니다.

 

 메시가 아르헨티나인이 아니었다면, 국가대표팀으로 아르헨티나를 고르지 않았으면 상황은 달랐을 겁니다. 만약 메시가 스페인 대표팀에서 뛰었다면 펠마메 논쟁 따위도 존재하지 않았을거고, 호날두는 라이벌로 거론되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메시는 아르헨티나를 골랐고, 마라도나의 후계자로 인지되었고, 메시의 눈부심 앞에 크루이프는 흘러가버렸고, 유럽인들에게는 메시의 라이벌이 필요해졌지요. 호날두가 그 대상으로 가장 적합했습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탐욕스러운 스코어러에 가까운 호날두는 원천적으로 메시의 라이벌이 될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호날두는 게르트 뮐러에 비견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메시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호날두는 철저한 시대의 지배자로 취급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시즌별로 보면 호날두 이상의 실력을 드러내는 선수들이 등장했었다고 생각합니다. 롱런 덕에 나는 2010년대에 두번째로 잘한 축구선수는 호날두라고 인정합니다만. 레알 마드리드에서만 해도 쭉 제일 잘한다고 생각해온 선수는 호날두가 아니라 벤제마였는데요. 벤제마가 호날두보다 기복이 좀 있고, 인성은 호날두 아래이긴 합니다만.

 

 

 

 

 

 

4) 유럽 사람들은 특별한 자존심과 우월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럽을 독립적인 대륙으로 보는 시각 자체가 유럽중심주의에 기인합니다. 유럽중심주의는 꽤 복잡한 문제라서, 과거에 서유럽은 이베리아를 유럽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거나, 동로마를 유럽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거나 하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우랄산맥 서쪽을 유럽으로 보는 시각이 등장한 건 그렇게 오래 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는 유럽의 행동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 있어 유럽중심주의를 반드시 고려해야한다는 입장입니다. 유럽인들의 사고방식은 비유하자면 우리나라 서울 사람들이 서울부심이 있는 것과 유사합니다. 서울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서울 사람들의 서울부심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비유럽인이 유럽인의 유럽중심주의를 이해하는 건 어렵지만, 중국인들의 행동을 이해할 때 중화사상을 고려해야하듯 유럽인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나는 신냉전 시대에 들어 유럽인들의 행동을 주의깊게 보고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유럽은 미국 중심의 세계를 내심으로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다시 유럽 중심의 세계가 된다면 좋을 거라 생각하고, 그럴 수 없다면 적어도 균형자로는 권력을 행사하고 싶어하지요. 그래서 유럽은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기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근래 이러한 느낌을 많이 주는 곳은 프랑스입니다. 영국도 그랬지만 프랑스도 세계대전 이후 여러 번 잃어버린 패권을 찾으려는 노력을 반복했었고, 이탈리아와 함께 공산당이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하였으며, 서방 세계 좌파들의 구심점이 되기도 했고, 동구권 특권층이 유사시 의료 서비스를 받으러 방문하기도 해왔습니다. 60년대 드골의 프랑스는 적극적으로 친소련 노선을 걷기도 했었지요.

 

 

 

 

 

 

 

5) 유럽과 중국의 관계는 꽤 밀접합니다. 중국의 화물열차는 런던까지 오가고 있고, 중국은 유럽 명품 최대 소비국이 되어 있습니다. 물론 유럽 브랜드의 제품 중 많은 부분을 중국이 만들고 있기도 합니다. 이미 유럽은 중국 없이는 못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독일은 중국의 최대 교역국이고, 중국에 대해 수출보다는 수입을 주로 하고 있지요.

 

 미국은 유럽이 중국에서 등을 돌리고 미국의 편을 들도록 종용 중입니다만, 미국의 지배력은 예전같지 않습니다. 이 와중에 핵심 동맹국인 우리나라의 해돈성왕(海豚腥王) 전하는 핵개발을 이야기하며 실질적으로 미군을 믿을 수 없다는 선언을 하는 등, 미국의 입장은 현재 매우 다난합니다.

 

 세계의 공장 중국을 자유 세계에서 추방하고, 중국의 역할을 대체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중국은 사회적 통제력이 고도로 높은 나라고, 그럴 수 있는 역량은 제조업 역량과 직결됩니다. 탈중국은 현재진행형이기는 하지만 어려운 과제입니다.

 

 이에 더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최근 약화되긴 했습니다만, 푸틴의 장기적인 계획으로 서방 세계 전반에 극우파가 육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좌파들조차 푸틴과 시진핑에게 협조적이기도 합니다. 세계는 중도적인 자유 추구자들과 좌우 양극단의, 보다 집단주의적이고 반지성주의적인 그룹으로 분화되었습니다.

 

 날리면 대통령은 잘 하고 있고 지지율도 회복되었습니다만, 이 시대의 파멸적인 흐름에 맞서는 것으로 보이는 정도일 뿐 아직 흐름 자체를 주도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고령인 날리면 대통령의 믿음직한 후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과거의 힐러리 클린턴보다 두 티어는 낮아보이고, 미국 민주당 지지층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건 정치인으로 보기 어려운 미셸 오바마입니다. 날리면 대통령이 앞으로 성공적으로 6년을 더 집권한다 하더라도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6) 미국 중심의, 미국이 유일한 패권국인 체제를 유럽 열강이 진심으로 지지할 이유는 없습니다.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들은 세계대전으로 내준 패권을 되찾아오고 싶어하는 마음을 언제나 가지고 있고, 내심 미국이 근본없고 고상함이 부족한 나라라 생각하고 있지요.

 

 나는 유럽이 중국과 러시아를 레버리지로 활용해서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고, 상대적 국력을 신장시키려는 마음을 품고 있다고 봅니다. 중국과 미국 중 편을 들라면 미국 편을 들지만, 완전히 미국 편은 아닌 것이지요.

 

 대영제국이 미국에 패권을 내준 가장 큰 원인은 독일에 있었습니다. 1800년대 후반에 미국과 독일은 동시에 엄청나게 성장하는데, 당시 대영제국의 국력으로는 미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독일까지 억누르는 게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독일을 적대하면서 미국과는 우방이 되는데, 그 과정에서 미국이 대영제국을 추월하는 걸 막지 못하게 되지요. 그러한 역사가 있으니까 이번에는 중국을 이용하려 할 겁니다.

 

 찰스 시대를 맞이하여, 재앙과 같았던 트러스 덕에 총리가 된 수낙은 새로운 역사의 한 축이 될지도 모릅니다. 수낙은 인도계일 뿐만 아니라 힌두교도고, 인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낙의 아내는 인도의 IT 거부인 무르티의 딸이고 인도 국적을 유지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수낙은 브렉시트 찬성파입니다. 즉 유럽의 일원으로의 영국이 아닌 커먼웰스, 통칭 영국 연방에 의식이 있는 쪽이지요. 그리고 수낙은 전전임인 보리스 존슨에 비해 우크라이나 지원에 다소 미적지근한데, 인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편을 들고 있습니다.

 

 

 

 

 

 

 

 

7) 우리가 사용하는 음력은 시헌력입니다. 시헌력은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 시대에 예수회 선교사 요한 아담 샬 폰 벨이 만들었는데, 명이 망하면서 발표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청대에 발표하면서 숭정력이 아닌 시헌력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지요.

 

 시헌력은 그 이전의 역법인 수시력보다 정확하고 과학적이었지만, 조선은 시헌력의 사용을 꺼렸습니다. 악연인 청나라 역법이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전통 역법 취급받는데요.

 

 실제로는 우리가 지금 쓰는 그레고리력보다 시헌력이 더 과학적입니다. 훨씬 후대에 만들어졌잖습니까. 그레고리력은 율리우스력을 약간 고친거고, 율리우스력은 무려 카이사르 시대에 만든 겁니다. 명청교체기에 만든 시헌력이 훨씬 후대의 역법이지요. 시헌력이 괜히 복잡한 게 아닙니다. 실제 자연현상하고 맞춰보는데는 시헌력에 더해 동지와 동지 사이를 24분한 24절기 쓰는 옛 방식이 훨씬 좋긴 합니다. 도시에서 살기에는 그레고리력으로도 충분하고, 그레고리력이 훨씬 쉬우니까 선호할 만 합니다만.

 

 그리고 음력설을 영어로 루나 뉴 이어로 부르느냐 차이니즈 뉴 이어로 부르느냐로 이번에 다툼이 일어났던데, 둘 다 맞는 표현이긴 합니다만... 시헌력은 명나라 또는 청나라에서 기원한 달력이지요.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청의 후예를 자처하여 차이니즈 뉴 이어라는 표현을 밀어붙인다면 말도 안 됩니다. 청의 직계 후예는 중화민국이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닙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건국 당시 청과 중화민국의 후계국임을 공식적으로 부정한 바 있습니다. 그와 함께 영국이 맺었던 조약을 부정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영국이 홍콩을 중공에 반환하게 되었었습니다. 대신 그 때 중공이 영국이 가지고 있던 청나라 채권을 갚아주긴 했습니다만. 미국이 가지고 있는 청나라 채권은 안 갚겠다고 버티고 있지요.

 

 공식적으로 청의 후계국을 부정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시헌력을 중국 달력이라 부르는 건 중공 특유의 무개념한 억지라고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물론 중공이 하는 언행에는 논리와 명분이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전세계의 교양인들은 모두 알고 있기도 합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역사가 짧고 근본이 없는, . 정확히 말하면 문화대혁명을 근본으로 하는 나라라는 건 세계인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역사가 짧고 근본이 이상하니까 나라 전체에 품위와 도덕이 없는 겁니다. 그들이 한복과 김치를 노리는 이유는 근본의 부족함과 짧은 역사 때문입니다. 근본이 문혁수준이니까 가진 게 없어서 훔치려는 겁니다.

 

 

 

 

 

 

8) 미국은 현재의 노선으로는 점점 한계를 맞이하게 될 겁니다. 달러는 신용화폐에 불과함에도 점점 지나치게 양화(良貨)가 되고 있고, 유럽은 자체적인 경쟁력과 생산성이 부족하여 중국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을 것이고, 미국은 서방이 필요로 하는 걸 충분히 충족시켜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미국이 결국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하는 날이 올 거라 예상하고 있으며, 그 전쟁이 앞날을 결정짓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우리나라도 참전을 해야 할 겁니다.

 

 

 

 

 

 

 

9) 계묘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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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은 초판이므로, 일단 미흡하게나마 내용을 작성하고 추후 업데이트해나갈 계획입니다. 감안하고 보아주시길 바랍니다.

 

 

 주방칼은 요리를 하면 누구나 사용하는 물건입니다. 종류도 많고, 가격도 천차만별인데 관련하여 알아두면 구매나 관리에 있어 나쁘지 않습니다. 일단은 형태별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 산토쿠 (산도쿠)

 

 아마도 우리나라 가정 주방에서 가장 일반적인 식칼입니다. 일본에서 기원한 식칼로, 한자로는 三德입니다. 우리나라 한자독음으로는 삼덕(三德)이라 ‘삼덕칼’이라는 표현도 씁니다. 지금은 세계 어디에서나 쓰는 칼이 되어있지요.

 

 산토쿠의 날은 곡률이 거의 없습니다. 브랜드에 따라 곡률이 약간 있는 경우도 있고, 전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체로 곡률을 이용한 칼질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보통 끝이 거의 뾰족하지 않고, 길이는 짧은 편입니다. 어지간한 과도 수준으로 짧은 산토쿠도 있습니다. 긴 산토쿠는 찾기 어렵고요.

 

 산토쿠는 보통 규토에 비해 짧은 만큼 가볍고, 끝이 뾰족하지 않으니까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들었을 때 위협감이 없고, 짧아서 좁은 공간에서 사용하기가 편리합니다. 이런 이유로 많이 쓰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곡률이 별로 없고 날의 폭이 넓다 보니 부피가 있는 생고기나 날생선 같은 것을 자르는 데는 불리합니다. 대신 상하로 눌러가면서 다다닥 채소를 써는 데(쵸핑) 적합합니다. 보통 가정에서는 채소를 썰 일이 많기 때문에 산토쿠를 많이 사용한다고 추정합니다.

 

 요리를 본격적으로 하지 않는 가정에서는 산토쿠하고 과도만 있어도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습니다. 큰 고기덩어리를 자르거나 생선을 다듬고 저미거나 할 일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채소도 작은 걸 자를 때가 많고요. 다만 채소를 자르더라도 크기가 큰 채소를 자를 때는 산토쿠가 그리 적합하지 않습니다. 산토쿠는 작은 채소를 다룰 때 적합한 편입니다.

 

 

 

 

 

 

일본식 규토

*) 셰프(쉐프) 나이프 / 규토

 

 가장 일반적인 주방칼이긴 한데,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산토쿠를 좀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셰프 나이프는 본래 서양식 주방칼인데, 일본에서 그걸 보고 유사한 모양으로 만든 주방칼을 규토(牛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는 우도. 그래서 셰프 나이프 ≒ 규토입니다.

 

 셰프 나이프와 규토는 대체로 같은 계열로 분류하지만, 유럽과 일본의 칼 만들고 쓰는 문화가 좀 달라서 후술할 슴베나 볼스터, 손잡이, 무엇보다도 곡률 등에서 일반적인 차이는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일본식 규토는 하프탱이고, 볼스터가 없고, 팔각 핸들이고, 곡률은 크지 않습니다. 대조적으로 서양식 셰프 나이프는 풀탱도 있고, 볼스터가 있는 경우도 있고, 둥그스름한 핸들이 많고, 곡률이 더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브랜드에서 서양식 셰프 나이프와 일본식 규토를 같이 만들 경우, 일본 스타일을 와규토(和牛刀)로, 서양 스타일을 웨스턴 규토로 구분해 부르기도 합니다. 굳이 구분해 부르지 않을 때는 그냥 규토 ≒ 셰프 나이프라 생각하면 됩니다.

 

 

즈윌링 셰프 나이프. 일본식 규토에 비해 곡률이 더 있습니다.

 규토는 산토쿠에 비해 곡률이 있고, 끝이 뾰족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밀고 당기면서 자르거나, 칼끝을 쓰거나, 곡률을 이용해 다지거나 써는 등의 사용법이 있습니다. 길이는 보통 산토쿠보다 깁니다. 야나기처럼 긴 규토도 구하기 어렵지는 않습니다. 긴 규토는 일반적인 칼꽂이에는 사이즈 오버인 경우도 있으니 구매 시 감안해야 합니다.

 

 집에서 산토쿠를 주로 사용하다가 규토를 사용하게 되면, 다른 것보다 크게 느껴질 수 있는 건 절삭력은 좋지만 자르고 난 후 날에 ‘담아 올리는’게 어렵다는 겁니다. 산토쿠는 끝이 뭉뚝하고 곡률이 별로 없기 때문에 자른 후에 자른 채소나 김치를 담아 옮기는 게 쉬운데요. 셰프 나이프는 상대적으로 조금 어렵습니다. 그래서 고깃덩어리처럼 큰 걸 자를 때는 규토가 좋은데, 채소처럼 자르기 쉬운 걸 자를 때는 산토쿠나 나키리를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재래시장 등지에서 많이 쓰는 속칭 무쇠단조칼도 형태는 규토입니다. 아마 일제 이후 규토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만 대체로 칼등 폭이 두껍고 투박합니다.

 

 

 

 

 

다양한 페티 나이프

*) 페티/유틸리티/페어링/필링/프렙 나이프

 

 기본적으로는 흔히 생각하는 과도를 의미합니다. 다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과도로 쓰기엔 좀 크고 무거운 유틸리티 나이프도 있습니다.

 

 Petty는 작다는 뜻입니다. 프랑스어 Petit(쁘띠)와 동일한 어원을 가진 단어고요. Paring및 Peeling은 껍질 등을 벗긴다는 뜻입니다. 유틸리티 나이프는 다용도 칼을 의미하는데, 페티/페어링/필링과 동일한 나이프를 의미할 때도 있고, 작은 서레이티드(톱날이 있는) 나이프를 포함한 분류를 의미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이프 세트에 ‘유틸리티 나이프’가 있을 경우 과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식생활에 따른 개인차는 있지만, 대체로 많이 사용하게 되는 칼이지요.

 

 프렙(prep) 나이프는 좀 큰 과도입니다. 밑준비용 칼이라는 뜻입니다. 때때로 나이프 세트에 유틸리티/프렙 나이프와 페어링 나이프가 같이 구성되어있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유틸리티/프렙 나이프가 좀 더 큰 과도고 페어링 나이프가 좀 더 작은(짧은) 과도인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헹켈 즈윌링 프로 라인업에는 날길이 7cm에 날끝이 앞으로 굽은 필링 나이프와 8cm의 페어링 나이프, 10cm의 페어링 나이프, 14cm의 프렙 나이프, 15.5cm의 유틸리티 나이프, 18cm의 프렙 나이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통 페어링 나이프로 파는 칼들은 일반적인 과도보다 칼날이 짧습니다.

 

 

즈윌링 7인치 프렙 나이프. 이 정도 길이면 다양한 작업이 가능합니다.

 같이 과도로 불리긴 하지만 짧은 페티와 긴 페티, 그리고 칼등이 얇은 페티와 두꺼운 페티는 적합한 용도가 좀 다릅니다. 사과나 감자를 벗길 때는 작고 가벼운 게 편하지만 소갈비를 다듬을 땐 좀 더 길고 생김새가 예리한 페티가 좋습니다. 칼등이 두껍고 묵직한 페티는 말 그대로 다용도로, 전천후로 사용할 수 있는 칼에 가깝습니다.

 

 

 

 

 

우스토프 클레버

*) 클레버 / 중식도

 

 직사각형 또는 그에 가까운 칼입니다. 중화요리는 거의 이 형태의 칼로 모든 걸 다 하지요. 서양에서 본래 클레버는 두껍고 무거운 직사각형에 가깝고 구멍이 하나 뚫려있는 칼을 의미했는데, 중식도도 생긴 게 비슷하니까 영어로는 다 클레버라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실제 일반적인 중식도는 클레버와는 생긴 게 비슷할 뿐입니다. 물론 진짜 클레버와 유사한 것도 있고요.

 

 중식도는 크게 나누면 날이 바짝 서있고 두께가 얇은 게 있고, 보다 크고 두꺼우며 날이 덜 서있는 게 있습니다. 후자가 서양의 전통적인 클레버에 가까운 겁니다. 그런 건 영어로 Bone Chopper라고도 부르지요. 이런 타입도 후술할 Bucher Knife라 부르기도 합니다. 생닭을 닭도리탕용으로 토막낼 때 쓰는 칼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본 쵸퍼는 실제 뼈를 자를 때 제법 유용합니다. 굳이 세게 내려치지 않더라도 질량과 형상 덕에 어린 양이나 돼지의 갈비뼈 정도는 눌러서도 썰 수 있습니다. 경험적으로는 돼지갈비뼈 정도는 인성이 있는 강재의 셰프 나이프로도 (일본식 규토로는 어렵습니다.) 곡률을 이용해 눌러가면서 썰 수는 있습니다만, 본 쵸퍼를 사용하면 훨씬 쉽게 작업 가능합니다.

 

 

중식 차이다오. 클레버보다 현저하게 얇은 칼입니다.

 그렇지만 중화요리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중식도는 본 쵸퍼보다 얇고 예리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뼈를 내려치거나 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뼈를 치는 칼은 두껍고 날각이 덜 예리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중식도는 산토쿠나 나키리처럼 채소 써는 데 어울리는 칼이지요. 실제로 중국에서 일반적인 중식도를 부르는 이름은 菜刀(차이다오/채도)입니다.

 

 중식도는 무게가 있기 때문에 들 때는 힘이 들어가지만, 내려서 썰 때는 꽤 잘 썰립니다. 날의 질량은 도마 위에서 사용할 때 절삭력과 꽤 상관이 있습니다. 셰프 나이프와는 대조적으로 넓은 면 덕에 썬 음식 올려서 옮기기 쉬운 것도 장점입니다. 다만 밀고당기는 식의 절삭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보닝 나이프

*) 호네스키 / 가라스키 / 보닝 / 필렛 나이프

 

 발골 또는 정형, 육가공용 칼입니다. 칼날부터 칼등의 날물폭이 일반적인 칼보다 짧아 얇싸한 형상이지요. 구분하자면 Boning 나이프는 육고기 발골 칼이고, Fillet 나이프는 닭이나 생선처럼 보다 작은 걸 다루는 칼인데 필렛 나이프에 해당하는 건 좀 더 칼등이 얇고 낭창합니다. 실제 발골 아니라 도매용 고깃덩이라도 썰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고기덩어리 사이로 나이프가 들어가게 되면 날이 두껍고 날면의 단면적이 넓을수록 자르는 데 방해가 됩니다. 얇고 날의 단면적이 좁을수록 좋지요. 큰 고기 직접 작업해서 드시는 분들은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게 좋은 칼입니다. 필렛 나이프는 우리나라나 일본 문화권이 아닌, 서양에서 생선을 다룰 때 쓰는 칼이라 생각하면 되겠고요.

 

필렛 나이프

 호네스키는 일본식 발골 칼입니다. 창칼이라고도 합니다. 일본식 칼이라 양각날이 아니라 편각날인 것들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발골 뿐만 아니라 다용도로 쓰이고요. 가라스키는 호네스키와 비슷한데 좀 더 깁니다.

 

 

다양한 호네스키

 우리나라에서 호네스키는 장어칼로도 많이 씁니다. 일본에서 장어칼은 우나기사키라고 따로 있는데, 지역마다 형태가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 호네스키를 장어칼로 많이 쓰는 걸 보면 창칼 형태도 장어를 다루는 데 적합한 것 같습니다.

 

 

 

 

 

 

다양한 치즈 나이프

*) 치즈 나이프

 

치즈는 굳이 자르자면 뭘로 잘라도 안 잘리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쉽게 잘 잘리는 물건도 아닙니다. 연성이나 반경성 치즈는 자를 때 치즈가 날에 묻으면서 잘리는 걸 방해하고, 경성 치즈는 잘 바스라지거든요. 그래서 치즈 나이프는 가능한 예리하고 얇으면서 날면의 단면적을 좁힌 형태가 되어있습니다. 보통 날에 커다랗게 구멍을 뚫어놓지요. 또 원체 치즈가 잘 안 잘리다보니 서레이티드(톱날) 처리가 된 것도 많고, 아니면 야나기처럼 날을 한쪽면만 연마한 편각날인 것도 있습니다. 때때로 일부 브랜드에서는 연성 치즈, 반경성 치즈, 경성 치즈용 칼을 따로 제작해 세트로 판매하기도 합니다. 연성 치즈의 경우 칼이 아니라 실로 자르기도 하는데, 실을 고정해서 쉽게 자를 수 있는 절단 키트 같은 것도 있긴 합니다.

 

 

 

 

 

다양한 빵칼

*) 빵칼

 

 빵칼은 대표적인 서레이티드 나이프입니다. 톱날이 달려 있지요. 케잌 사면 주는 플라스틱 칼을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쇼트케이크는 단단하지 않으니까 플라스틱 소재로도 충분하지만, 바게뜨 같은 걸 자르려면 제대로 금속으로 만든 서레이티드 나이프가 필요해지지요. 보통 빵집에서 바게뜨나 깜빠뉴를 사면서 잘라달라고 하면 빵칼로 잘라 줍니다만, 빵을 즐겨 사먹다보면 직접 잘라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레이티드 나이프는 단단하고 매끄러운 음식물을 효과적으로 자를 수 있습니다. 대신 자른 표면이 지저분해지기 쉽고요. 대통령이 되기 이전 윤석열이 계란말이를 빵칼로 자르는 걸 보여준 적이 있는데, 서레이티드 나이프로 썰 때의 절삭력을 이용한 겁니다.

 

 예전에 유행했던 백년장미칼은 서레이티드 산토쿠였습니다. 뭐든 슥슥 써는 칼로 광고되었지만, 사실은 빵 썰기 적합한 칼이었지요. 당연히 그런 칼은 위아래로 눌러 자르기(쵸핑)는 잘 안 됩니다. 당겨서 썰어야지요. 그래서 보통 풀사이즈 빵칼은 가늘고 길게 나옵니다. 한편으로 빵칼을 구매하고 사용할 때는 톱날 부분은 갈기 어렵다는 걸 고려해야 합니다. 톱날 가는 도구는 따로 있는데, 톱날 사이를 하나하나 갈아줘야 해서 손이 많이 갑니다.

 

 

 

 

 

 

*) 야나기

 

 정식 명칭은 야나기바보초. 줄여서 야나기바. 통칭 야나기로 부릅니다. ‘쇼부’라고도 합니다. 원래 일본어로 야나기는 버드나무라는 뜻인데, 버드나무 잎을 닮았다 하여 야나기바보초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회칼입니다. 사실 회칼도 종류가 많은데, 대중적으로 알려진 회칼은 야나기입니다. 끝이 뾰족하고, 날폭이 얇고 깁니다. 대신 칼등을 보면 일반적인 주방칼보다 제법 두껍습니다. 길고 칼등이 두껍기 때문에 무게도 제법 있습니다. 야나기가 괜히 이 시대의 전투도검이 아닙니다. 야나기의 절삭력은 어느 정도는 날의 질량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야나기같은 회칼은 양쪽 면을 모두 갈아 단면이 V자 모양인 날을 세우는 일반적인 날과는 달리, 날을 한쪽만 세워 단면이 │/ 형태가 됩니다. 장점이 있지만, 갈아서 날을 세우려면 숫돌을 써야 합니다. 간이 칼갈이로는 갈 수 없어요.

 

 많은 경우 V자 모양 날을 양날, │/ 자 모양 편삼각 날을 외날이라고 하는데 이런 표현은 주방칼에 제한되는 표현입니다. 일반적인 도검은 양날이라 하면 아밍소드나 롱소드, 대거(Dagger)처럼 칼등이 없고 블레이드 양쪽에 날을 세운 걸 의미하고, 외날이라 하면 칼등이 있고, 카타나처럼 한쪽에만 날이 있는 걸 의미하지요. 무협지에 한정한 표현으로 전자는 검, 후자는 도입니다만, 실제로는 도와 검을 양날이냐 외날이냐로 구분해서 부르지 않았었습니다. 그냥 유의어였고, 굳이 구분하자면 칼집이 있는 쪽을 검이라 불렀었지요.

 

 물론 주방칼은 거의 다 칼등이 있기 때문에, 날의 단면에 외날/양날 같은 표현을 해도 딱히 혼동될 건 없습니다. 다만 본문에서는 더 정확한 표현을 추구하여 편각날/양각날로 이야기하겠습니다. 한편으로 편각날물 자체는 모든 분들이 사용하고 계신데, 가위는 대칭을 이루는 두 편각날물로 구성되어 있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흰살생선회는 표면이 매끄러울수록 맛있습니다. 그래서 날을 잘 세운 긴 야나기 같은 걸로 떠야 맛있게 떠집니다. 날길이를 이용해 쭉 당기면서 질긴 생선살을 떠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실제 흰살생선회를 떠보면 날을 잘 세운 야나기를 써도 매끄럽게 뜨는 데 꽤 품이 들어갑니다. 생선이 질길수록, 뜨는 횟감이 클수록 깔끔하게 떠내려면 더 긴 야나기가 필요합니다. 힘을 줘서 눌러 자르는 게 아니고, 한번의 당기는 동작으로 떠내야 제대로 떠지기 때문입니다.

 

 야나기는 살덩이를 저미는 용도의 칼이기 때문에, 날의 경도가 중시되고 대조적으로 인성이나 내부식성은 덜 중요하게 취급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야나기의 이런 특성은 일본식 주방칼의 특성 전반에도 꽤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주방칼에 가장 신경쓰는 그룹이 야나기 사용자들이기 때문입니다.

 

 

 

 

 

 

*) 데바

 

 생선 잡는 칼입니다. 사진으로 얼핏 보기에는 규토나 막칼처럼 생겼지만, 실제로 보면 칼등이 두껍고 편삼각으로 날을 세우는 회칼이고 전체적인 형태도 다릅니다. 생선 비늘이나 점액질을 긁을 때, 그리고 생선 머리를 떼어낼 때 씁니다. 묵직한 칼이지만 동시에 제법 예리하게 날을 세우는 칼입니다. 이 데바로 생선 껍질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분리하고 살덩이로 만드는 작업(오로시)까지, 심지어 회를 저미기까지 다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미오로시데바

 데바는 세세하게 들어가면 종류가 많은데, 미오로시데바라고 오로시 작업을 위해 야나기처럼 날의 폭이 얇게 나오는 것도 있고, 아지키리(코데바)라고 전갱이(아지)같은 작은 생선을 작업하기 위한 소형 데바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데바는 본 초퍼나 부처 나이프처럼 묵직한 칼입니다. 내려쳐서 생선 머리를 떼어내거나 토막낼 수 있는 칼인 것이지요.

 

 회칼의 일종이지만 야나기와는 용도가 다르기 때문에 데바의 날은 높은 경도가 아닌 높은 인성 및 강도가 요구됩니다. 그래서 일본식 주방칼은 날물의 경도가 중시되는 경향이 있음에도 유독 데바는 예외적으로 경도가 덜 중시되는 편입니다.

 

 

 

 

 

 

키리츠케 회칼

*) 키리츠케

 

 뜻은 앞코를 사선으로 잘라놓은 칼을 의미합니다. 그냥 키리츠케라고 하면 보통 야나기의 키리츠케 버전을 뜻할 때가 많고, 규토의 키리츠케 버전인 키리츠케 규토도 많이 쓰입니다. 키리츠케는 곡률이 가장 큰 앞부분이 잘려있는 형상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야나기나 규토에 비해 끝부분의 곡률이 덜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회칼의 경우 회를 뜰 때는 날물의 길이가 실질적으로 야나기보다 키리츠케가 약간 더 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키리츠케 규토

 규토의 경우, 키리츠케 규토는 일반 규토보다 칼끝이 훨씬 뾰족해지게 됩니다. 야나기는 원체 날카로운 칼이다보니 키리츠케 회칼이 야나기에 비해 칼끝이 덜 날카로운 반면, 규토는 날끝이 많이 뾰족해져서 공격적인 모양새가 됩니다. 날끝으로만 음식물을 자를 때 얇은 날폭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대신 규토의 특징인 곡률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곡률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는 크게 줄어듭니다. 정리하자면 곡률은 서양식 셰프 나이프 > 일본식 규토 > 키리츠케 규토입니다. 날카로운 칼끝을 활용할 때는 키리츠케 규토가, 곡률을 이용한 절삭력이 필요할 때는 서양식 셰프 나이프가 좋습니다.

 

키리츠케 페티

 다소 드물지만 페티에도 키리츠케 버전이 있는데, 끝이 매우 예리하고 날폭이 좁기 때문에 가지고 있으면 다용도로 쓰기 좋습니다. 짧은 칼일 경우 예리한 칼끝의 활용도가 올라갑니다. 산토쿠도 키리츠케 버전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그건 보통 분카로 부릅니다.

 

 가격은 일반 야나기나 규토보다 키리츠케가 좀 더 비싼 경향이 있습니다. 제작 방식이 긴 칼을 만든 다음 앞코를 잘라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 사키마루

 

 뜻은 둥글다는 뜻입니다. 전통적인 회칼로 알려져 있습니다. 회칼 끝을 사키마루로 만들면 외형이 카타나와 유사해지는데, 진짜로 우치가타나나 와키자시처럼 날물 전체에 곡률을 줘서 만드는 경우도 있고, 그런 건 검을 닮았다는 뜻의 ‘켄카타’같은 이름을 붙이곤 합니다. 사실 날 길이가 어느 정도 이상 되는 켄카타 사키마루는 진짜 와키자시와 별다를 게 없는 칼이긴 합니다. 진짜로 무기로 쓰려면 찌르기가 되는 야나기 쪽이 더 고성능입니다만.

 

450mm 사키마루 켄카타. 일단 합법적으로 주방칼입니다.

 한편으로 관점에 따라서는 키리츠케도 검을 닮았다고 볼 수 있고, 실제 키리츠케 켄카타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것들도 있는데, 키리츠케 켄카타는 보통 사키마루 켄카타에 비해 곡률이 없는 편이고, 대신 도드라지는 하몬(전통방식으로 카타나를 담금질할 때 생기는 무늬)을 만들어두곤 합니다.

 

 사키마루는 키리츠케와는 정 반대로 칼끝이 둥글기 때문에 찌르거나, 칼날 끝까지 이용해서 절삭을 한다거나 하기는 어렵습니다. 카타나를 닮았지만 좀 더 다루기 안전한 칼이 됩니다.

 

 참고로 카타나는 일본도의 통칭이고 우치가타나는 가장 일반적인 일본도로, 그냥 카타나라고 하면 우치가타나를 의미할 때도 많습니다. 그리고 와키자시는 좀 짧은 일본도입니다.

 

 

 

 

 

 

*) 스지히키 / 슬라이싱 나이프 / 슬라이서

 

 칼을 잘 모르는 분들이 슬라이서(스지히키)를 사진으로 얼핏 보면 야나기와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이 다른 칼입니다. 슬라이서는 단면이 V자인 양각날이고, 야나기에 비하면 칼등 폭이 꽤 얇습니다. 실물을 보면 유틸리티 나이프가 날이 길어진 형태에 가깝습니다. 그렇지만 유틸리티 나이프로 쓰기에는 깁니다.

 

 슬라이서는 기본적으로는 육고기를 작업하는 데 쓰입니다. 육사시미를 뜨거나 고기덩이에서 포를 뜰 때, 또는 생고기 덩어리나 바베큐를 자를 때 쓰지요. 물론 야나기와 비슷하게 칼날폭이 얇고 기니까 야나기 대용으로 생선회를 떠도 되는데 (다만 양각날 특성상 야나기만큼 잘 떠지게 연마하기는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무언가를 떠낼 때 적합합니다. 생선 껍질을 벗기고 살덩어리를 떠내는 오로시 작업을 하는 칼로도 많이 씁니다.

 

 보닝 나이프와 슬라이서를 비교하면, 보통 슬라이서가 더 길고 보닝 나이프는 칼날의 폭이 더 좁습니다. 그래서 용도가 달라집니다. 보닝 나이프는 복잡한 형상의 고깃덩이와 뼈 사이를 다듬기에 좋습니다. 슬라이서는 대조적으로 살덩이를 자르거나 생선 밑작업을 하는 데 적합합니다. 보통 슬라이서가 보닝 나이프보다 길기 때문에, 큰 살덩이를 자를 때는 보닝 나이프보다 슬라이서가 적합합니다. 절삭력 자체는 더 무겁고 곡률도 더 있는 셰프 나이프가 더 나옵니다만, 슬라이서의 날폭이 좁기 때문에 큰 고기를 자를 때 슬라이서가 더 유리한 경우도 있습니다.

 

 

 

 

 

 

끝이 둥근 카빙 나이프

*) 카빙 나이프

 

 서양 문화에서는 때때로 슬라이서와 카빙 나이프를 딱히 구분하지 않는데, 일본식 명칭 스지히키와 카빙 나이프는 용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스지히키가 상기하였듯 생고기를 저미기 위한 칼이라면, 카빙 나이프는 구워놓은 고기를 자르기 위한 칼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바베큐를 저미기 위한 거지요.

 

 그래서 카빙 나이프는 서레이티드 처리가 된 것도 많고, 끝이 뾰족하지 않은 타입도 많습니다. 식탁에서 직접 서빙할 때 쓸 수 있게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건 식탁에서 스테이크나 돈까스를 잘라도 괜찮게 생겼습니다. 구매할 때는 칼의 형상을 보고 용도에 맞춰 구매하면 됩니다. 물론 슬라이서나 길이가 좀 있는 페티로 카빙 작업을 해도 문제없고 잘 어울립니다. 다만 식탁에 길고 날카로운 슬라이서를 가져가면 카빙 나이프에 비해 다소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전형적인 부처 나이프의 한 형태

*) 부처 나이프

 

 도축업자 칼이라는 뜻입니다. 딱히 정해진 모양이 있지 않고, 몇 가지 유형을 부처 나이프라고 하는데요. 일단 서구에서 부처 나이프로 부르는 칼은 곡률이 있는, 영화에 나오는 해적칼을 닮은 칼을 뜻할 때가 많습니다. 곡률이 있으면서 끝이 좀 둥그스름한 타입도 많고요.

 

세르비아 나이프

 또 세르비아 나이프라는, 특유의 형태를 가진 칼을 부처 나이프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또한 클레버를 부처 나이프라 부를 때도 있고요. 세르비아 나이프를 세르비아 클레버로 부르기도 합니다.

 

부처 나이프의 한 전형적인 형태

 그 외 드물지만 슬라이서나 보닝 나이프를 부처 나이프로 부르기도 합니다. 실제로 도축업자들이 슬라이서와 보닝 나이프를 사용하니까 그럴 것입니다만, 일반적인 용례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코쟁이칼을 닮은, 곡률이 큰 부처 나이프. 이런 타입의 부처 나이프는 Cimeter라 부릅니다. 이름의 기원은 중동의 도검 Scimitar.

 

 

 

 

 

 

 

*) 타코히키

 

 예전에 관동에서는 야나기가 아니라 타코히키가 일반적인 회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야나기를 주로 쓰고요. 회 전반에 사용할 수 있는 칼인데, 야나기와는 달리 끝이 네모납니다. 찔려서 다칠 위험이 없지요. 다만 끝모양을 다듬으면 사키마루가 되기 때문에, 사키마루 중에는 사키마루 타코히키 같은 이름이 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름 뜻은 문어칼인데, 문어만 잘라야 하는 칼은 아닙니다.

 

 전근대 시기에는 일본의 주방 환경이 현대와 많이 달랐기 때문에 타코히키를 썼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현대에는 뾰족한 야나기나 키리츠케를 주로 쓰게 되었지요. 물론 타코히키는 현대에도 생산되고 있고,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부 짧은 타코히키는 야나기에 비해 현저하게 칼등 두께가 얇은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는 후쿠히키와 기능적으로 유사한 칼이 됩니다. 다만 모든 타코히키가 칼등이 얇은 건 아닙니다.

 

 

 

 

 

 

후쿠히키. 칼등을 보지 않으면 야나기와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칼등을 보면 야나기보다 훨씬 얇습니다

*) 후쿠히키

 

 복어칼입니다. 복어는 살이 단단하기 때문에 회를 뜰 때 일반 생선회보다 얇게 뜹니다. 그래서 후쿠히키는 일반적인 야나기 등에 비해 칼등 쪽이 얇습니다. 그 외 생긴 건 야나기와 같습니다. 일반적인 야나기는 칼등이 꽤 두꺼운 칼이기 때문에 회를 아주 얇게 뜨는 데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관동식 우스바

*) 우스바

 

 채소 써는 일본식 칼입니다. 채썰기, 돌려깎기 등 다양한 채소 작업에 씁니다. 곡률이 전혀 없고, 한 면만 날을 세운 편삼각 날입니다. 관동형과 관서형이 있는데, 관동형은 끝이 네모지고 관서형은 끝 쪽 날 반대쪽이 둥급니다.

 

관서식 우스바

 

 

 

 

 

*) 나키리

 

 우스바처럼 채소칼입니다. 다만 편각날인 우스바와는 달리 나키리는 일반적인 양각날입니다. 좀 작은 중식도에 가까운데, 중식도 같은 걸 쓰고 싶지만 중식도는 너무 무겁고 투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키리를 쓰면 됩니다. 또한 산토쿠 대신 나키리를 써도 됩니다. 일부 브랜드에서 만드는 나키리는 관서형 우스바의 양각날 버전인지 산토쿠와 거의 흡사하게 생긴 것들도 있습니다. 나는 채소나 김치 등을 썰 때 나키리를 가장 선호하고 있습니다. 나키리 중에는 꽤 작고 짧은 것도 있는데, 그런 건 간단하게 작은 채소를 썰 때 사용하기 좋습니다.

 

 

 

 

 

 

*) 무키모노

 

 작은 채소칼. 끝쪽은 키리츠케처럼 사선이며, 날은 편각날입니다. 채소를 기술적으로 잘라 장식 등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칼입니다. 일반적으로 쓰기에도 우스바 대비 작아서 사용하기 편하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용예

 

 

 

 

 

*) 하모키리

 

 갯장어 칼입니다. 교토에서는 전통적으로 갯장어를 요리해 먹는데, 갯장어는 잔뼈가 많아서 잘게 칼집을 내서 뼈를 끊어 먹기 좋게 만들어 요리합니다. 그 칼집을 넣을 때 쓰는 칼이 하모키리입니다. 갯장어에 칼집을 내는 과정은 호네키리라고 합니다. 호네스키와 혼동하지 말 것.

 

 

 

*) 우나기사키

 

 뱀장어용 칼. 붕장어에도 씁니다. 일본에서 장어는 인기 있는 생선이고, 지역마다 다른 형태의 장어칼이 있습니다. 장어를 잡고 가르는 데는 짧은 전용 칼이 작업하기 좋아서 따로 발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장어칼이라 부를 때가 많습니다.

 

 

 

 

*) 분카

 

 일반적인 형태는 키리츠케 산토쿠에 가깝습니다. 길이는 보통 짧고 길이대비 날물 폭은 있는 편입니다. 산토쿠처럼도 쓰고, 아지키리 대신 쓰기도 합니다. 다용도 칼입니다. 가끔 키리츠케 규토에 가까운 걸 분카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사용하지 않지만 세계적으로는 꽤 인기 있는 칼로 보입니다. 짧은데 끝이 날카롭기 때문에 범용성도 있고, 섬세한 작업을 할 때 끝쪽을 활용하는 식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조개칼 / 오이스터 나이프

 

 굴을 포함한 조개의 껍질을 열고 살을 분리하기 위한 칼입니다. 형태는 다양한데, 쓰기 편하게 아주 짧은 것들도 많습니다. 주관적으로 조개칼은 좋은 것보다는 가격이 저렴한 걸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조개를 까는 작업은 어떻게 생각해도 칼에 부담을 많이 주기 때문에, 좋은 칼을 쓰는 것보다는 칼을 자주 바꾸는 게 현대기술 생산성 생각하면 더 나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 막칼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통칭 무쇠칼,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대장간 단조칼중 일반적인 건 분류하자면 규토입니다. 그렇지만 막칼이라고 좀 더 큰 칼도 만듭니다. 외형은 데바와 흡사하고, 용도를 분류하자면 데바/부처 나이프/본 초퍼 정도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재래시장. 막칼로 생선 머리를 날리거나 닭뼈째 치는 걸 볼 수 있지요. 물론 날을 세우면 회칼로도 쓸 수 있습니다. 실제로 회를 뜨기도 합니다.

 

 막칼은 기본적으로 저렴한 칼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막 자유롭게 다루기 좋은 칼입니다. 이건 막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무쇠칼이 다 그렇습니다. 실제로는 이름답지 않게 강철칼이고 대체로 품질이 엉망이라 날 자체가 어긋나게 달려있는 것들 투성이입니다만, 우리나라 대장간 강철칼은 대체로 경도는 낮고 인성은 높기 때문에 마구 내리치면서 써도 날이 깨져나가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 오로시칼

 

우리나라에서 개발/개량된 것으로 추정하는 생선 작업용 칼입니다. 일본식 칼 분류로 치면 미오로시데바의 한국형으로 봐야 할 겁니다. 오로시는 생선 껍질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분리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또한 강판에 무나 와사비 등을 가는 것도 오로시라고 하니 참조로 알아두면 좋습니다.

 

 오로시칼의 특징은 날의 곡률이 전혀 없고, 프로파일 테이퍼는 있다는 겁니다. 즉 칼끝으로 갈수록 날물의 폭이 좁아집니다. 날길이는 미오로시데바처럼 깁니다. 우리나라 일식 요리사들이 이와 같은 모양의 칼이 오로시를 하기 좋다고 생각하여 이러한 칼을 쓰게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 이도기리 / 나라비(나래비)

 

 일본어로 이토기리는 본래 가늘게 채를 써는 걸 의미합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어쩌다보니 뜻이 와전되어 나라비와 같은 뜻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나라비는 줄을 세운다는 뜻으로, 넘어진 도미노처럼 썰어놓는다는 정도의 의미로 통용되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도기리 칼이라고 하면 그런 식으로 써는 데 특화시켜 개조하거나 제작한 칼을 의미합니다. 오징어회나 비교적 저렴한 회를 많이 파는 횟집에서 빠르게 썰어 내놓다보니 그런 작업에 특화된 칼로 야나기를 개조하는 문화가 생겼고, 많이 쓰다 보니 통칭 이도기리(칼)가 시판도 되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처음에 이도기리 칼은 야나기를 오랜 시간 연마하면서, 다만 본래의 형태를 유지하는 걸 신경쓰지 않는 방향으로 마구 갈아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 결과 폭이 얇아졌고, 형태도 다소 달라졌습니다. 그런 칼이 회를 마구 빠르게 써는 데 유리했고, 실제 빠르게 마구 써는 데 숙련된 사람들이 그런 칼을 쓰니까 더더욱 그런 작업에 좋아 보인 면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비해 회 소비량이 많고, 회를 썰어낸 퀄리티에는 덜 민감합니다. 그러니까 일본과 다소 다른 식으로 칼 문화가 발전한 면이 있습니다.

 

 본래 야나기는 회를 당겨서 깔끔하게 썰게 발달한 칼입니다. 그런데 이도기리는 회를 빠르게 눌러 썰기 쉬운 방향으로 개량되었습니다. 야나기에 비해 날물의 폭이 좁고, 곡률이 전혀 없습니다. 오로시칼과 비교하면 얼핏 보면 매우 비슷하지만, 날물의 폭에서 차이가 납니다.

 

 

 이상 종류 설명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종류 외의 요소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소재부터 이야기해보지요.

 

 

 

 

 

 

*) 스테인리스 스틸

 

 이녹스(아이녹스/Inox)라고도 합니다. 대부분의 현대 주방칼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듭니다. 녹에 강하니까요. 스테인리스 스틸은 ISO 기준 크롬함량 10.5% 이상, 탄소함량 1.2% 미만인 크롬합금강입니다. 다만 실제로는 탄소함량이 1.2%보다 높더라도 그만큼 크롬이 더 들어가면 스테인리스로 취급됩니다. 섞인 크롬이 공기에 노출되면 철보다 빠르게 부식되면서 아주 얇고 투명한 피막을 만들어, 스틸에 녹이 슬지 않게 보호합니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크게 오스테나이트계와 페라이트계, 그리고 마르텐사이트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 오스테나이트계나 페라이트계는 별로 탄소를 함유하고 있지 않고, 열처리를 통해 경화시켜 사용하는 용도가 아닙니다. 경도를 얻을 수 있는 스테인리스는 마르텐사이트계고, 그러니까 주방칼같은 날물을 만드는 데는 기본적으로 마르텐사이트계를 사용합니다. 다만 후술할 카스미 방식에서 가운데 날 부분이 아닌 바깥쪽에는 페라이트계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부 주방칼은 오스테나이트계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칼을 전문으로 만들지 않는 주방용품 회사에서 출시하는 것들 중에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오스테나이트계로 칼을 만들면 녹은 정말 안슬지만 날 유지력은 논할 가치도 없는 수준이 됩니다. 오스테나이트계와 마르텐사이트계를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자석을 붙여보는 겁니다. 마르텐사이트계와 페라이트계는 자석이 붙지만 오스테나이트계는 붙지 않습니다.

 

 강철칼 대비 스테인리스 칼의 기본적인 특징은 높은 내부식성, 높은 칼날 유지력, 그리고 연마의 어려움 및 상대적으로 낮은 인성으로 요약 가능합니다. 기본적으로 철은 탄소를 넣어 담금질을 하면 탄화물(카바이드)이 생겨서 경도가 올라가는데요. 순수하게 철과 탄소만 함유된 강철은 철 카바이드(시멘타이트)만 생긴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스테인리스는 크롬 카바이드가 꽤 생기게 되지요. 내식성을 제외하면 이게 가장 기본적인 차이입니다.

 

 크롬 카바이드는 시멘타이트보다 경도가 높습니다. 그래서 사실 강철칼보다 스테인리스 칼이 비슷한 탄소함량에서 더 높은 경도를 확보하기 쉽고, 제대로 세우기만 한다면 칼날 유지력이 더 높습니다. 대신 문제는 연삭성에 있습니다. 크롬 카바이드는 너무 단단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저렴이 숫돌에는 제대로 안갈립니다. 이게 스테인리스 칼에 대한 인식이 나쁜 주된 한 이유입니다. 적당히 대충 갈면 날이 깔끔하게 서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크롬 카바이드가 깔끔하게 갈리지 않고 부분부분 떨어지거나 해서 제대로 된 날이 서지가 않습니다. 게다가 크롬 카바이드가 많아지면 후술할 인성(Toughness)이 떨어지기 쉽습니다. 그 외 칼이 너무 저렴할 경우, 스테인리스 칼은 아예 뭐라 평가할 만한 수준이 아닌 것이 되기 쉽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스테인리스는 탄소강보다 비쌉니다.

 

 그리고 문제는 또 있습니다. 스테인리스는 탄소함량이 높아질수록 크롬 카바이드가 많이 생기는데, 크롬은 카바이드가 되면 내부식성에는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카바이드가 되지 않고 남아있는 크롬만 부식을 막아줄 수 있다는 건데요. 그래서 스테인리스를 고탄소강으로 만들려면 기본적으로는 크롬도 더 넣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비싸지기도 하고, 인성도 떨어지기 쉽습니다.

 

 또한 스테인리스는 탄소강에 비해 가공성이 떨어집니다. 탄소강처럼 뚝딱뚝딱 고전적인 방식으로 두들기고 열처리해서는 제대로 만들 수가 없고, 좀 더 공학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건 바꿔 말하면 전통적 기법을 사용하는 데 제한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저렴한 스테인리스를 적당히 갈아 쓰면 내부식성 빼면 별로 성능적으로는 기대할 게 없습니다. 이는 전문 요리사들이 강철칼을 선호하게 하는 주된 요인입니다. 그러나 스테인리스도 돈을 들이면 많이 좋아집니다. 세상에는 좋은 스테인리스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대부분의 주방칼은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지고, 사용됩니다.

 

 

 

 

 

*) 탄소강

 

 전문 요리사들이나 시장 상인은 스테인리스가 아닌 강철칼을 사용한다는 이미지가 있고, 실제로도 많이 사용합니다. 실제 써보면 이런저런 장점이 있습니다.

 

 보통 탄소강으로 부르는 범주의 강재는 철과 탄소 외의 다른 비철금속의 함량이 매우 낮아서 순수한 강철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이거나, 아니면 비철금속의 함량이 별로 높지 않은 저합금강입니다. 대조적으로 크롬 외 비철금속의 함량이 제법 높은 합금강도 있는데, 그런 건 고합금강이라 부릅니다. 고합금강에 대해서는 따로 후술하겠습니다.

 

 탄소강의 최대 장점은 높은 가공성입니다. 칼 제작자가 만들 때도 가공성이 좋고, 사용자가 날을 갈아서 쓰기도 좋습니다. 날을 예리하고 깔끔하게 세우기 쉽기 때문에, 조리사나 시장 상인 등이 사용하는 보편적인 조건에서 탄소강 칼은 스테인리스 칼보다 ‘잘 듭니다.’ 또한 단조과정을 거쳐 만드는 탄소강 칼은 보통 스테인리스 칼보다 두껍고 무겁기 때문에, 그 질량 때문에 절삭력이 높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시장에서 파는 통칭 무쇠칼은 상기하였듯 사실 강철단조칼입니다. 보통 저합금강에 속하는 스프링강이나 레일강을 사용해서 경도는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고, 대신 인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 특성 때문에 시장칼은 날을 세우기가 매우 쉬운 편입니다. 시장칼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딱히 숫돌을 꺼낼 것도 없이 항아리나 도자기 컵 등의 유약이 발리지 않은 면을 이용해 날을 세우기도 합니다. 그런 데 갈아도 곧잘 갈릴 만큼 갈기가 쉽습니다. 또한 인성이 높기 때문에 마구 내리치면서 사용해도 날이 잘 깨지거나 하지 않고요.

 

 일제 주방칼에서 애용되는 백강(=백지=시로가미=White Steel)은 정제를 많이 한 거의 순수한 강철입니다. 그래서 백강은 거의 시멘타이트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백강으로 만든 칼은 열처리를 통해 경도를 높이더라도 고경도의 비철금속 카바이드가 거의 없어 아주 깔끔하게 날을 세울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백강 칼은 흔히 ‘절미(絶味)’가 좋다고 합니다. 1095라는 강철도 백강과 비슷하게 철과 탄소 외에는 별다른 비철금속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 백강 대신 쓰이곤 합니다. 1095는 미해병대의 제식 총검과 단검의 소재이기도 합니다.

 

 시멘타이트는 크롬 카바이드에 비해 경도는 낮지만, 상대적으로 입자가 작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카바이드의 입자는 작고 균일할수록 좋습니다. 기본적으로 크고 불균일한 카바이드는 날의 강도와 인성을 떨어뜨리고, 날을 세우기도 어렵게 만듭니다.

 

 또한 열처리가 쉬운 탄소강의 특징은 칼날과 칼등 부분을 서로 다르게 열처리할 수 있는 여지를 줍니다. 칼날 부분은 담금질로 경화시키고 칼등 쪽은 부분적인 가열 후 담금질을 하지 않고 풀리게 만듬으로 더 높은 인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단적인 인성을 확보할 경우, 아주 극단적인 충격과 변형에 강해집니다.

 

 그러나 탄소강은 부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비철금속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강철일수록 더 쉽게 녹이 습니다. 그러니까 탄소강 칼은 익히지 않은 생선이나 육류 등, 기름기가 있고 잘 잘리지 않는 걸 다룰 때 적합합니다. 지방질은 탄소강 칼의 부식을 억제해줍니다. 대조적으로 과일이나 토마토, 김치 등 산이 있는 걸 탄소강 칼로 자르면 날이 쉽게 부식됩니다. 적어도 산을 묻힌 상태로 오래 두면 좋지 않습니다.

 

 부식을 줄이려면 탄소강 칼은 항상 건조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개수대에 오래 두거나 하는 건 당연히 안 되고, 설거지 이후 곧바로 물기를 닦아내야 하는 것은 물론, 보관 장소도 가능한 건조해야 합니다. 싱크대 밑 선반 안쪽같이 습기가 차기 쉬운 곳에 오래 두면 쉽게 녹이 납니다. 바람이 잘 통하는 칼꽂이를 사용하는 게 좋으며, 나는 설거지 이후 키친타올로 물기를 닦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생각하여 키친타올로 닦고, 헤어드라이어로 말린 이후 외부 공기가 통하고 자석 접촉이 없는 환경에 보관합니다.

 

 그렇게까지 신경써야 하나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테지만, 탄소강 칼은 상기한 것처럼 해도 실내가 습하거나 하면 녹이 피어오르곤 합니다. 연마중에도 녹이 피어오른다는 말까지 나오는 게 순수한 탄소강입니다. 쓰다 보면 녹을 전혀 경험하지 않을 수는 없으므로, 녹에 좀 무심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붉은 녹이 표면에 스는 정도는 괜찮지만, 안쪽으로 슬다 보면 아예 칼의 수명이 끝나기 때문에, 녹이 피어오르면 문질러서 제거해줄 필요는 있습니다. 붉은색이 보이면 일단 철수세미로 문지르기라도 하면, 붉은 녹이 더 피어오르는 건 억제할 수 있습니다. 보기엔 안 좋지만 철의 녹이 딱히 몸에 나쁘지는 않기 때문에, 붉은 녹만 제거하면서 쓰면 사용하는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녹으로 인한 칼의 손상이 문제입니다.

 

 한편으로 탄소강 칼을 다룰 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녹이 안 슬도록 기름을 먹이고 팬 시즈닝하듯 굽는 경우가 있는데, 구우면 안 됩니다. 구우면 열처리한 게 풀릴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음식 정도의 온도는 칼날의 열처리를 풀 만큼 뜨겁지 않지만, 불꽃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탄소강 칼을 보관할 때는 녹 방지를 위해 산패하지 않는, (먹어도 문제없게) 정제된 미네랄 오일을 바를 수 있습니다. 반드시 정제된 걸 사용해야합니다. 도마 오일을 사용하면 됩니다. 아니면 더 강한 방청효과가 있는 것도 있습니다. 바셀린입니다. 바셀린은 먹어도 됩니다. 챕스틱같은 립밤도 바셀린 베이스로 만드는 겁니다. 소화가 안 되니까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날 확률이 높겠습니다만, 바셀린을 처음 개발한 사람은 바셀린이 몸에 좋다고 믿어서 매일 1큰술씩 먹었는데 만 96세까지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 고합금강/분말강/공구강

 

 일반적으로 철과 탄소 외 다른 원소가 많이 들어가지 않은 철강은 탄소강이라 부릅니다. 백강이나 10XX같은 걸 제외한 통칭 탄소강은 저합금강(Low Alloy Steel)이라 부르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고합금강(High Alloy Steel)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철과 크롬 외의 다른 비철금속이 많이 들어간 것들을 의미합니다. 크롬이 많이 들어가면 스테인리스고요. 엄밀히 보면 모든 스테인리스는 고합금강입니다만, 편의를 의해 구분해 부르곤 합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스테인리스인 고합금강과, 스테인리스가 아닌 고합금강이 있습니다. 물론 스테인리스 중에도 크롬 외의 비철금속이 많이 들어간 것들이 꽤 있고요.

 

 대다수의 고합금강은 가공용 공구를 만들기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공구를 만들기 위한 강재를 공구강이라 합니다. 절삭공구 같은 걸 만드는 데 쓰는 금속이다보니 단단하고 마모에 강해야 합니다. 특히 철강재료를 고속절삭하기 위해 개발된 건 고속도공구강(=하이스강)이라 하는데, 용도가 용도인만큼 높은 경도를 요구합니다.

 

 바나듐, 텅스텐, 니오븀 등의 일부 금속 원소는 탄소와 결합하여 카바이드가 되면 아주 높은 경도를 지니게 됩니다. 커런덤(=사파이어=산화알루미나)보다 경도가 높은 카바이드를 형성하지요. 이런 원소가 많이 들어간 합금으로 도검을 만들면 높은 경도와 칼날 유지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상기하였듯 카바이드는 작고 균일할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전통적인 야금법을 사용할 때 비철금속을 너무 많이 섞으면 크고 불균일한 카바이드를 형성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더 작고 균일한 카바이드 형성을 위해 고합금강을 야금할 때는 분말야금법을 사용하곤 합니다. 분말야금법으로 야금하는 강재를 분말강(Powder Steel)이라 부릅니다.

 

 분말야금법은 금속가루를 섞고 가압하여 원하는 형태를 만든 후, 녹는점 이하의 온도로 가열하여 소결시키는 방식입니다. 녹는점이 높은 금속에 대한 야금법으로 유용한 방식인데, 카바이드를 작고 균일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습니다.

 

 고경도 고합금 파우더 스틸로 도검을 제작할 경우, 매우 날을 세우기 어려운 대신 그만큼 칼날 유지력도 높은 날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웃도어 나이프는 고경도 분말합금강의 사용에 적극적인 편입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주방칼 분야에서 고경도 분말합금강의 사용은 일부 강종에 한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웃도어 나이프에서만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웃도어 나이프는 주방칼에 비해 보다 다양한 걸 자르게 됩니다. 나무나 밧줄처럼 음식물에 비해 단단하고 질긴 걸 자를 때가 많지요. 고성능 아웃도어 나이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이프를 쐐기처럼 사용해 나이프를 나무에 꽂고 망치질을 해 나무를 쪼개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리사들처럼 섬세한 절삭을 하는 경우는 적습니다.

 

 대조적으로 조리사들은 아웃도어 캠퍼들만큼 단단한 걸 작은 칼로 잘라대지는 않습니다. 뼈를 자를 때는 인성이 좋은 칼을 쓰거나 아예 톱을 쓸 때가 대부분이고, 칼을 보다 조심스럽게 다루고, 더 자주 갈기도 합니다. 요리사들은 날을 제대로 세운 주방칼로는 도마를 긁는 것도 기피합니다. 그리고 주방칼의 칼날은 평균적으로 아웃도어 나이프보다 크고 깁니다. 그러니까 조리사들은 보통 연마가 어렵고, 소재비와 가공비만으로도 값비싼 고경도 분말합금강에 대한 선호가 덜합니다. 나는 그런 거 좋아합니다만, 굳이 보자면 주방칼로 사용할 때 고합금강의 장점은 날을 한 번 세워놓으면 그게 거의 무뎌지지 않고, 일정 이상의 날카로움이 장기적으로 유지된다는 것 정도입니다. 이 자체만 놓고 보면 멋진 장점이긴 하지만, 가격과 연마의 어려움, 그리고 고가의 주방칼 이용자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고합금강 주방칼이 많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자세한 내용은 후술하겠지만 편각날 칼의 우라면이 고경도 고합금강이면 갈기가 불가능에 가까워서 실질적으로 이상적인 예각날을 세우는 게 불가해지기도 합니다.

 

 

 

 

 

*) 다마스커스

 

 다마스커스는 강재는 아닙니다만, 따로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마스커스 식칼이라는 걸 많이 팔거든요. 물론 주방칼만 다마스커스가 있는 건 아니고요. 소재를 다마스커스 강이라는 식으로 표기하고 파는 칼도 많습니다.

 

 원래 다마스커스는 시리아의 수도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도시는 다마스커스 검으로 더 유명합니다. 현재의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요르단 등지에서 만들어지던 검을 그렇게 불렀지요. 그냥 다마스커스라고 하면 시리아의 수도보다도 다마스커스 검을 이야기할 때가 더 많을 정도입니다. 역사적으로 살라흐 앗 딘이 사용하던 검으로도 유명합니다. 미디어에서는 대표적으로 총몽(Gunnm/Battle Angel Alita)에 다마스커스 블레이드가 나옵니다.

 

 다마스커스 검은 인도에서 생산되던 우츠강으로 만든 검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전승으로 그 검은 당시 유럽에서 사용하던 검에 비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마스커스에 대한 이런저런 전설이 전해져오는데, 다마스커스에는 모하메드의 사다리로 불리는 독특한 무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18세기 들어 우츠강을 만드는 인도 철광석이 고갈되면서 다마스커스는 맥이 끊기게 됩니다.

 

 이와 별개로 패턴 웰디드라는 게 있습니다. 제강기술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던 옛 시대에는 철에 들어가는 탄소의 양을 조절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탄소함량이 균일한 철을 원하는대로 만들 수가 없었고, 차선책으로 탄소함량이 낮은 철(연철/연강)과 높은 철(고탄소강/주철)을 섞어 열간단조 접쇠를 반복하면서 원하는 특성을 만들곤 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접쇠단조강철이 부식되면 강철 또는 주철과 연철 또는 연강이 레이어를 이루면서 다른 색깔을 띠고 무늬를 만들게 되는데, 그 모양이 아름답기 때문에 도검장인들은 의도적인 무늬를 만드는 기술을 터득하게 됩니다. 접쇠로 그런 무늬가 생긴 도검을 패턴 웰디드 도검으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위에 이야기했듯 다마스커스 검도 독특한 무늬가 있었습니다. 다마스커스 검을 동경하던 유럽인들은 패턴 웰디드에서 다마스커스의 비밀을 밝히려고 했거나, 패턴 웰디드 도검을 다마스커스라고 팔았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다가 패턴 웰디드를 다마스커스로 부르는 게 일반화되었고, 현대에는 다마스커스와 패턴 웰디드가 거의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시대가 지나 다마스커스를 만들던 우츠강에 대한 현대적인 연구가 있었습니다. 우츠강에는 바나듐, 몰리브덴, 망간, 크롬, 니오븀 등이 약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원래 철광석에 그런 비철금속이 포함되어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함량이 높지는 않아도 우츠강은 자연적인 합금이었단 말이지요. 당시 기술을 사용해 그런 합금으로 도검을 만들게 되면 독특한 무늬가 생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바나듐과 망간이 독특한 무늬를 만드는 게 주로 기여했다는 것 같고요. 지금이야 바나듐 합금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사용할 수도 있지만 옛날에는 아니었지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마스커스 강’으로 만들었다는 칼들이 있습니다만, 실제로 ‘다마스커스 강’은 딱히 없습니다. ‘우츠강’은 있었지만 본래의 우츠강은 다 캐서 사라진 지 오래고요. 우츠강을 재현할 수는 있지만 의미는 없습니다. 비철금속 합금은 현대에 드문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츠강보다 훨씬 좋은 합금강이 널린 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21세기입니다. 종종 우츠강을 개인적으로 재현했다거나, 재현된 우츠강으로 칼을 만든다거나 한다는 칼 상인들도 있는데 그냥 무시하면 됩니다.

 

 현대에 다마스커스 칼이라는 건 접쇠단조와 부식으로 무늬를 만든 패턴 웰디드 도검입니다. 그 무늬는 절삭성능 자체에는 딱히 의미있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장식적인 의미가 크지요. 주방용품은 예쁜 게 좋으니까 주방칼이 다마스커스인 건 당연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외의 의미는 크지 않습니다.

 

 만약 시판하는 주방칼의 소재가 그냥 ‘다마스커스 강’으로 적혀있다면, 그건 제작자가 다마스커스 무늬가 나오도록 이미 접쇠과정을 거쳐 나온 강재를 구매해서 칼을 만들었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칼을 만드는 단조사가 직접 접쇠를 하지 않은 겁니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다마스커스 강’을 구매해서 만들었으니까, 다마스커스 강으로 만들었다고 표현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이지요. 실제 단조사가 직접 접쇠공정을 거치게 되면 시간과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많은 경우 이미 접쇠공정을 거친 제품을 이용해서 만든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스테인리스제 다마스커스 주방칼은 많은 경우 칼날에 해당하는 중심부 강재와, 다마스커스 무늬를 만드는 옆면 강재가 다른 구성입니다. 이미 접쇠가 되어 있는 다마스커스 강과 중심 강재를 구매해서 만들기도 하고, 단조사가 직접 바깥쪽 패턴웰디드 부분을 만들기도 합니다.

 

VG10 - VG2 코어리스 다마스커스 켄카타 스지히키. 제작자 사카이 타카유키

 그렇지만 날물을 구성하는 금속을 따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다마스커스는 코어리스라고 부릅니다. 전체를 좋은 소재로 만든 코어리스 다마스커스는 후술할 혼야끼처럼 고급품입니다. 스테인리스에 비해 탄소강 다마스커스는 코어리스인 경우가 많은데, 탄소강 쪽이 단조 가공이 쉽다 보니 코어리스를 만들기도 쉬운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좀 더 간단하게 그냥 패턴 무늬를 칼에 새겨서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 단점은 겉면이 부식되거나 갈거나 해서 나가면 무늬가 사라지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대조적으로 제대로 접어서 만든 다마스커스는 표면을 좀 갈아내도 안쪽도 패턴이 있으니까 무늬가 유지됩니다. 산화가 제대로 안 되면 무늬가 잘 안보일 수 있기는 한데, 부식을 좀 시켜주면 무늬가 다시 드러납니다.

 

 다마스커스 주방칼은 일반적으로 칼등 두께가 조금 두꺼운 편입니다. 접쇠 열간단조 공정이 들어가니까 칼등이 두꺼워지는 경향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부의 다마스커스는 부식시켜 무늬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두 종류의 강재가 서로 다른 정도로 부식되면서 칼 표면에 손으로 만지면 만져지는 요철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경우 칼날 표면이 매끄럽지 않기 때문에 음식물을 썰 때 잘 달라붙지 않습니다. 다만 요철이 있어야 제대로 접어 만든 다마스커스인 건 아닙니다. 요철이 만져지지 않을 정도로 살짝 부식되더라도 패턴은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는 다마스커스는 요철이 있는 쪽을 선호합니다.

 

 

 

 

*) 비철금속

 

 보통 주방칼은 강철이나 강철합금으로 만듭니다만, 아예 강철이 아닌 비철금속으로 칼을 만들기도 합니다. 주방칼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비철금속 소재로는 티타늄과 리퀴드 메탈이 있습니다. 리퀴드 메탈은 지르코늄, 티타늄, 니켈, 구리 등의 합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둘 다 일반적인 주방칼 소재는 아니기 때문에 나는 아직 사용해보지 못했습니다. 티타늄은 흔한 이미지로는 강철보다 강한 소재인 것처럼 알려져있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티타늄 합금은 무게에 비해 강도가 강하고 녹이 슬지 않아 항공기나 자전거 등에 사용됩니다만, 도검에는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가공하기도 어려운데 강철에 비해 강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극단적으로 부식이 잘 일어나는 조건, 즉 바닷속 작업용 날붙이 같은 걸로 사용되긴 합니다만, 그 용도로도 고질소 스테인리스강이 나온 이후에는 의미가 크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세라믹

 

 세라믹으로 만든 식칼도 시판되고 있습니다. 세라믹은 경도가 높고 부식이 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금속이 닿으면 맛이 변질되는 예민한 식재료를 다룰 때 이점이 있고요.

 

 단점은 인성이 없어서 충격을 받으면 깨진다는 겁니다. 떨어뜨려도 깨지고, 얼은 음식처럼 너무 단단한 것도 안 자르는 게 좋습니다. 호쾌하게 내리쳐서 닭뼈 같은 걸 가르는 식의 사용도 안 됩니다. 비트는 데도 철제 칼보다 약합니다. 금속에 비하면 세라믹은 인성이 거의 없는 수준입니다.

 

 경도가 워낙 높다 보니 세라믹 칼은 날이 잘 닳지는 않지만, 한 번 닳고 나면 다시 날을 세우는 게 어렵습니다. 좋은 세라믹 칼날은 고급 숫돌 수준의 경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숫돌 같은 거 아니면 세라믹 날 세울 생각을 하질 말아야 합니다. 다만 세라믹 식칼로 유명한 교세라에서는 날을 세우는 툴을 팝니다. 그런 걸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세라믹은 철 대비 비중이 가볍다 보니 결과적으로 칼도 가볍습니다. 그래서 질량을 이용한 절삭에는 불리하지만, 작은 과도 같은 걸 장시간 사용할 때는 좋습니다. 한참 무언가 벗길 때는 칼이 가벼울수록 피로가 덜합니다. 다만 세라믹 필링 나이프 수준이 되면 워낙 가볍다 보니 세게 쥐고 있지 않게 되고, 그래서 더 떨어뜨리기 쉽기도 합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칼날의 이 정도는 나가 버리곤 합니다.

 

 녹이 절대로 안 스는 건 세라믹의 두드러지는 장점 중 하나입니다. 그 어떤 금속도 내부식성에서는 세라믹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칼을 만약 매우 뜨거운 것에 사용해야 한다면, 그나마 세라믹 칼이 낫습니다. 금속 도검은 열처리가 풀릴 수 있지만 세라믹은 그런 문제는 없습니다.

 

 

 

 

 

 

하몬이 두드러지는 혼야끼

*) 혼야끼와 카스미

 

 일본식 주방칼은 날 부분의 중심강재와 날물 바깥쪽 강재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단일 소재로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단일 강철(하가네)계열 소재로 만든 일본식 주방칼을 혼야끼(혼야키)라고 합니다. 대체로 고급품으로 취급되며, 특히 물로 담금질한 미즈야끼 혼야끼를 더 고급품으로 칩니다. 기름으로 담금질한 건 아부라 혼야끼라 부릅니다. 미즈야끼 대비 조금 저렴합니다.

 

 혼야끼는 진흙을 발라 담금질해 제작하는데, 이 과정에서 진흙을 바르는 모양에 따라 하몬이라고 부르는 특유의 무늬가 생깁니다. 카타나가 현대 일본에서 미술도검 취급받듯, 혼야끼도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물론 실제 사람 벨 일이 없을수록 좋은 카타나에 비해 (와키자시는 야쿠자들이 진짜로 쓰긴 합니다.) 혼야끼 주방칼은 주방에서 실전을 뛰긴 하지요.

 

 여담으로 강철이 아닌 스테인리스 등으로 일본에서 단일소재 칼을 만들면 젠코우라고 합니다. 강철제를 젠코우라 해도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보통 혼야끼라 부릅니다. 그리고 중심강재와 날물 바깥쪽 강재가 다른 일반적인 것은 카스미 또는 아와세라고 합니다.

 

 카스미는 양각날 칼의 경우 중심강재를 바깥쪽 강재가 양쪽에서 감싸게 됩니다. 이 경우 세 겹으로 강재가 구성되기 때문에 산마이(三枚)라는 표현도 씁니다. 그런데 대조적으로 편각날 칼은 우라면은 중심강재 그대로고, 반대쪽만 연한 강재를 쓰게 됩니다. 그래서 이 경우는 니마이(二枚)라는 표현을 씁니다.

 

 산마이를 만들 때 날물은 백강이나 청강같은 강철제를, 그리고 바깥쪽 금속은 스테인리스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만든 칼을 스텐클래드라고 표현하며, 날은 강철칼이기 때문에 절삭 특성과 날 관리법은 강철칼과 같으나 칼몸쪽은 부식이 억제됩니다. 이런 칼은 날이 부식되면 갈아서 쓰면 되기 때문에 관리가 편한 게 장점입니다.

 

 이상 재질 설명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주방칼에 사용되는 강재들을 설명해보겠습니다.

 

 

 

백강 (=백지=시로가미=White Steel)

 

: 본문에서 몇 번 언급한 탄소강입니다. 철과 탄소 외의 다른 성분을 거의 제거한 것으로, 망간 0.2~0.3%, 실리콘 0.1~0.2%, 인 0.025%, 황 0.004% 정도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조사는 히타치이며 포장지가 백색이라 시로가미라 부릅니다. 일본식 단조 주방칼에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백강은 종류가 3종류 있습니다. 기본적인 백강은 탄소함량이 1.0~1.2%입니다. 이것을 백2강 또는 시로가미 #2같은 식으로 부릅니다. 여기서 탄소함량을 1.2~1.4%로 높인 버전은 백1강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탄소함량을 0.8~0.9%로 줄인 버전이 백3강입니다.

 

 강철은 탄소함량이 높아지면 경도가 올라가고, 대신 인성이 떨어집니다. 세 버전 중 백1강의 경도가 가장 높지만, 인성은 가장 낮습니다. 인장강도가 가장 높은 건 이론적으로 백3강입니다. 탄소강의 인장강도는 탄소함량 0.86~0.87% 정도인 공석강에서 가장 높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공석강보다 탄소가 더 들어가면 인성이 부족하여 취성(깨지는 성질)이 생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백강은 써는 맛(절미)이 좋기로 유명하고, 연마가 쉬우며, 백강으로 만든 칼들은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나는 내가 가진 백강 칼들을 좋아합니다. 나는 백강보다 절미와 절삭 후의 완성도가 좋은 강재를 알지 못합니다.

 

 

청강 (=청지=아오가미=Blue Steel)

 

: 백강에 약간의 텅스텐(1.5~2%)과 크롬(0.3~0.5%)을 넣은 버전입니다. 백강과 함께 일본식 강철칼 소재로 세계적으로 널리 쓰입니다. 텅스텐이 좀 들어가기 때문에 텅스텐 저합금강이라 할 수 있고, 그래서 백강과의 차이가 생깁니다. 더 높은 칼날 유지력을 기대할 수 있지만, 더 쉽게 깨지고 연마가 어려워지고, 현실적으로 절미와 절삭 후의 결과물이 거칠어집니다.

 

 청강은 1강과 2강만 있고, 3강은 없습니다. 그리고 후술할 슈퍼청강이 있습니다.

 

 

슈퍼청강 (=슈퍼청지=아오가미 슈퍼)

 

: 청강의 경도 업그레이드 버전격입니다. 탄소 1.4~1.5%, 크롬 0.3~0.5%, 텅스텐 2.0~2.5%, 몰리브덴 0.3~0.5%, 바나듐 0.5%의 저합금강. 청1강보다 탄소함량과 텅스텐 함량이 조금 더 높고, 몰리브덴과 바나듐이 약간 들어간 강재입니다.

 

 슈퍼청강은 제법 높은 탄소함량에 텅스텐과 바나듐이 들어있어 경도가 꽤 높이 올라갑니다. 그렇지만 크기가 큰 카바이드가 제법 섞여 있기 때문에 연마가 어렵고, 취성이 있으며, 단단한 걸 자를 때도 칼날이 유지되는 타입은 아닙니다. 고전적인 방식으로 야금되는 슈퍼청강의 미세조직은 균일하거나 입자가 작지 않습니다. 충격을 주는 방식으로 사용하면 안 되고, 섬세하게 다뤄야 합니다.

 

 나는 주관적으로 청강계열 칼들이 독특한 절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식물을 자를 때 백강처럼 매끄럽지는 않지만 잘 파고드는 느낌이 있는데, 아마 성분을 생각해보면 백강이나 파우더 스틸 계열과는 달리 칼날의 미세 구조가 썩 균일하지 않을 겁니다. 이로 인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미세영역에서 미미하게 써레이티드 효과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1084

 

: 10XX는 상표권 없는, 거의 순수한 강철입니다. 그리고 그 중 1084는 공석강입니다. 백3강과 비슷하게 잘 만들면 준수한 경도와 인성을 확보 가능합니다. 1095에 비해 망간 함량이 좀 높기도 합니다.

 

 

1095

 

: 1084에 비해 탄소함량이 높습니다. 탄소 0.9~1.0%. 1084보다 높은 경도를 확보 가능하지만, 상대적으로 인성은 낮아집니다. 미해병대의 제식 총검 소재. 우리나라에서는 백강을 대체하여 사용합니다.

 

 서구에서는 핸드메이드 주방칼에 널리 쓰이는 탄소강으로, 15N20같은 다른 강재와 함께 코어리스 다마스커스를 만드는 데도 많이 쓰입니다.

 

 

5160

 

: 탄소 0.64%, 크롬 0.9%, 망간 1%, 규소 0.3%

 

 대표적인 스프링강입니다. 트럭 같은 데 사용되는 서스펜션용 판 스프링을 만드는 용도가 기본용도라 생각하면 됩니다. 인성이 매우 좋은 강재고, 1095나 백강에 비하면 크롬과 망간이 들어있어 녹이 살짝 덜 습니다.

 

 구하기 쉽고, 저렴하고, 인성이 매우 높은 특성 덕에 현대에 롱소드나 아밍 소드, 카타나, 사브르 같은 걸 만들 때 가장 많이 쓰는 강종 중 하나입니다. 히스토리 채널의 ‘최강의 검 더 마스터’ 같은 프로그램 보면 5160으로 검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여담인데 5160으로 만든 검 가지고 중근세로 가면 성검이나 신검 소리 들을 겁니다. 옛날 강재와 현대 강재의 품질차는 정말 큽니다.

 

 주방칼에 5160은 잘 사용되지는 않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많이 씁니다. 소위 무쇠칼이라 불리는 대장간 단조칼을 만들 때 5160을 곧잘 씁니다. 물론 시장에서 파는 단조칼은 강종을 거의 밝히지 않습니다만, 5160으로 만든 것도 시중에 제법 돌아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15N20

 

: 탄소 0.75~0.8%, 니켈 1.4~2%

 

 니켈이 포함된 탄소강입니다. 주방칼에서는 보통 탄소강 코어리스 다마스커스 제작에 쓰이는 강재로, 보통 1095와 함께 씁니다. 15N20에 포함된 니켈은 다소의 내부식성을 가지기 때문에, 1095와 함께 층을 이루도록 접쇠 열간단조를 한 이후 부식시키면 1095쪽이 더 많이 부식되고, 15N20은 덜 부식되고 보다 밝은 빛깔을 냅니다.

 

 

X50CrMoV15 (=1.4116≒X45CrMoV15)

 

: 탄소 약 0.5%, 크롬 13.8~15%, 실리콘 0.5~1%, 망간 1%, 몰리브덴 0.5~0.8%, 바나듐 0.15~0.2%

 

 거의 모두가 좋아하는 헹켈 즈윌링(쌍둥이) 및 인터네셔널(외둥이) 라인업에 속한 대부분의 주방칼을 만드는 강재. 다른 독일산 및 유럽산 칼을 만드는 주요 강재이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가격대가 있는 중국산 주방칼에도 많이 씁니다.

 

 탄소함량이 낮은 편이고, 크롬 함량은 높은 스테인리스입니다. 그리고 망간과 몰리브덴도 들어가있기 때문에 내부식성이 높은 편입니다. 이 소재의 헹켈칼은 실제 사용해보면 녹이 잘 슬지 않습니다.

 

 다만 탄소함량이 낮기 때문에 경도가 많이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의외로 인성도 좋은 편이 아닙니다. 주방칼은 강종을 표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강종을 표시하는 금속 중에는 경도, 인성, 강도가 모두 낮은 편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물론 강종을 표시하지 않는 칼보다는 표시하는 칼이 더 좋은 강재를 사용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은삼강 (=긴산코=실버3)

 

: 탄소 0.95~1.1%, 크롬 13~14.5%, 망간 0.6~1%, 실리콘 0.35%

 

 히타치의 스테인리스. 백강에 크롬과 망간이 들어간 것과 유사합니다. 탄소강과 유사한 절미를 가지는 스테인리스라 불리며 일본식 칼에 많이 쓰이는데, 텅스텐이나 바나듐같은 고경도 카바이드가 생기는 비철금속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일식 요리사들이 많이 쓰는 합성커런덤 숫돌로 깔끔하게 날을 세울 수 있습니다. 백강만큼의 절미는 아니지만, 백강에 비해 칼날 유지력이 높고, 스테인리스니까 탄소강에 비해 사용이 편합니다.

 

 

 

420HC

 

: 탄소 0.45%, 크롬 13%, 망간 0.8%, 실리콘 0.4~0.8%, 몰리브덴 0.4~0.6%, 바나듐 0.2%

 

 마르텐사이트계 420중 탄소함량이 높은(HC) 상표권 없는 스테인리스입니다. 고급강재라 할 수는 없지만, 열처리를 잘하면 경도도 어느 정도 나오면서 매우 높은 인성을 가진 도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성분이 얼핏 비슷해보이는 X50CrMoV15와 비교하면 인성 차이가 크게 측정된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의아해서 X50CrMoV15의 현미경 사진을 찾아본 결과 크고 불균일한 카바이드가 발견되는 반면, 420HC의 현미경 사진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440C

 

: 탄소 0.95~1.2%, 크롬 16~18%, 망간 1%, 실리콘 1%, 몰리브덴 0.75~0.8%

 

 상표권 없는 마르텐사이트계 고경도 스테인리스. 경도와 칼날 유지력이 제법 높게 나오고, 포스코에서도 만들다보니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쉬운 편에 속하는 금속이고, 어느 정도 고급품 칼을 만드는 데 쓰입니다.

 

 440C의 장점은 칼날 유지력이 제법 높으면서도 바나듐이나 텅스텐 같은 고경도 비철금속 카바이드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커런덤 숫돌로도 충분히 날이 깔끔하게 섭니다. 그리고 탄소함량이 높은 것 치고는 녹이 잘 안 습니다. 크롬함량이 높고 망간과 몰리브덴도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440C보다 칼날 유지력이 높은 강재는 초고경도 카바이드를 포함한 것들이라, 연마 난이도도 높아집니다.

 

 

 

AUS8

 

: 탄소 0.7~0.8%, 크롬 13~14.5%, 몰리브덴 0.1~0.3%, 바나듐 0.1~0.25%, 망간 0.5% 이하, 니켈 0.3% 이하, 실리콘 0.8% 이하

 

일본 아이치에서 만드는 강재. 일본식 주방칼에 종종 씁니다. 탄소대비 크롬함량이 높아 내부식성이 좋고, 탄소함량 대비 준수한 칼날 유지력에 가격도 그리 높지 않은 편입니다.

 

 

AUS10

 

: 다른 건 AUS8과 같고 탄소함량이 0.95~1.1%, 망간 1% 이하입니다. 경도가 더 올라가고, 인성 및 내부식성은 살짝 낮아집니다. VG10과 종종 비교됩니다만, 일반적으로는 코발트가 들어간 VG10쪽의 평가가 더 높습니다.

 

 

VG10

 

: 탄소 0.95~1.05%, 크롬 14.5~15.5%, 망간 0.5%, 바나듐 0.1~0.3%, 몰리브덴 0.9~1.2%, 코발트 1.3~1.5%

 

 일본 타케후 사의 강재. 일본 상급 주방칼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강재입니다. 단조사들이 좋아하고,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기가 있어서 업그레이드 변형판이나 유사품도 꽤 있습니다. 중국에서 만드는 유사품은 10Cr15CoMoV라 부르지만, 오리지날 VG10과 같은 품질로 인정받고 있지는 못합니다.

 

 VG10의 코발트는 담금질하는 과정에서 물성을 좋게 만듭니다. 몰리브덴 함량도 높은 편이라 내식성을 확보합니다.

 

 

 

코발트스페셜

 

: 탄소 0.95~1.15%, 크롬 15~17%, 망간 0.3~0.5%, 바나듐 0.2~0.3%, 몰리브덴 1~2%, 코발트 2~3%, 실리콘 0.6~0.7%

 

 VG10에서 코발트 함량을 높이고, 그 외 크롬, 몰리브덴 등을 더 넣은 강재입니다. VG10만큼 많이 쓰이지는 않고, VG10의 업그레이드 강재쯤으로 취급됩니다.

 

 

 

VG10 MAX

 

: 탄소 1.1%, 크롬 16%, 몰리브덴 1.5%, 텅스텐 2.5%, 바나듐 3%, 코발트 2.5%

 

 일본의 칼 회사 슌(Shun)에서 독점 사용하는 강재. VG10의 업그레이드판으로 홍보되며, 알려진 성분은 위와 같습니다.

 

 파우더 스틸로 만들어야 할 것 같은 조성인데, VG10은 파우더 스틸이 아닙니다. VG10 MAX도 파우더 스틸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일반적인 강재로 위의 성분을 만들면, 내마모성은 확보할지언정 취성이 커지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슌 칼을 쓰다가 날이 깨졌다는 말이 드물지 않게 나옵니다.

 

 나도 VG10 MAX 강재를 사용한 슌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상기한 이유로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N690

 

: 탄소 1.08%, 크롬 17.3%, 몰리브덴 1.1%, 바나듐 0.1%, 코발트 1.5%

 

 오스트리아 뷜러사의 강재. 처음 개발된 버전은 코발트가 없었습니다. 초기버전과 구분해 부를 때는 N690Co라고 합니다. 조성이 VG10과 비슷하여 VG10과 비슷한 금속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크롬함량이 VG10보다 높습니다.

 

 

SKD11 (=D2=SLD=1.2379)

 

: 탄소 1.4~1.6%, 크롬 11~13%, 망간 0.6~0.9%, 몰리브덴 0.8~1.2%, 바나듐 0.2~0.6%, 실리콘 0.4%

 

 오래 된 고크롬 냉간단조용 공구강으로 상표권이 없습니다. 서양에서는 주로 D2로 불리고,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SKD11로 주로 불립니다. 크롬의 함량 자체는 스테인리스에 준하지만, 탄소함량이 높아서 스테인리스에 해당하는 내부식성을 가지지는 못합니다. 스테인리스라기에는 내부식성이 살짝 모자란 수준입니다. 그렇지만 가격에 비해 칼날 유지력이 좋아서 서양에서는 도검용 강재로 많이 쓰이는 편입니다.

 

 일반적인 D2는 인성이 나쁘기 때문에 미국 크루서블사에서는 분말강으로 D2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건 CPM D2라는 이름이고, 일반 D2보다 인성이 훨씬 높습니다.

 

 

SKD12 (=A2=1.2363)

 

: 탄소 0.95~1.05%, 크롬 4.75~5.5%, 망간 0.4~1%, 몰리브덴 0.9~1.4%, 바나듐 0.15~0.5%, 실리콘 0.1~0.5%

 

 D2(SKD11)에 비해 탄소함량과 크롬함량이 낮은 냉간단조용 공구강입니다. 비철금속 함량이 높지 않고, 크롬함량은 스테인리스의 절반이 좀 안 되는 수준이라 전반적으로 탄소강과 스테인리스의 중간적인 조성입니다. 일반적인 사용자 입장에서는 녹이 잘 슬지 않는 탄소강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AEB-L

 

: 탄소 0.67~0.68%, 크롬 13~13.5%, 망간 0.6%, 실리콘 0.4%

 

 스웨덴 우데홀름사의 강재입니다. 별 특색없는 조성 같아 보이기도 하고, 파우더 스틸도 아니지만 좋은 강재입니다.

 

 AEB-L이전에 우데홀름사가 개발했던 AEB라는 강재가 있었습니다. 그건 조성이 은삼강하고 비슷합니다. AEB는 질레트 면도기 날 제작용으로 쓰였었는데, 이후 후술할 산빅의 12C27에 영향을 받은것인지, 아마도 특성을 개선하기 위해 탄소함량을 줄입니다. 그래서 Low carbon이라는 뜻의 L이 붙어 AEB-L이 개발됩니다. AEB-L은 면도칼날을 만들면서 개량된 강재라, 꽤 드물게 칼날용으로 개발된 강재라 할 수도 있습니다.

 

 AEB-L의 특징은 탄화물 크기가 작다는 겁니다. 현미경으로 보면 전체적으로 작고 고른 탄화물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스테인리스에서 이보다 탄소함량을 높이면 큰 탄화물이 생기기 쉽기 때문에 물성이 불균일해지고 깨지는 성질이 생기기 쉽고, 매끄럽게 연마하기도 어려워집니다. 이 문제를 개선하려면 분말야금법이 필요해지고요. 극단적인 절삭력이 필요한 면도날은 깔끔하게 날을 세울 수 있어야 함은 물론, 면도기 카트리지는 소모품이다 보니 단가가 높아도 안 됩니다. 그 조건을 충족하는 금속 중 하나가 AEB-L입니다.

 

 AEB-L은 그리 높지 않은 탄소함량에도 불구하고 경도를 꽤 높게 올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도대비 인성이 높습니다. 또한 연마하기도 쉬운 편입니다. 단단한 걸 벨 때의 칼날 유지력도 탄소강보다는 현저히 높은 편입니다.

 

 단점이라면 AEB-L로 만든 칼들은 가격이 저렴한 느낌은 아니라는 겁니다. AEB-L이 좋긴 한데, AEB-L자체는 개발된지 오래 된 편이라 비싸게 살 거면 대안이 없지 않습니다. 그리고 스테인리스에 속하기는 하지만, 스테인리스치고 내부식성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12C27

 

: 이 강재에는 두 버전이 있습니다. 12C27™은 탄소 0.6%, 크롬 13.5%, 망간 0.4%, 실리콘 0.4% 입니다. 그리고 12C27M은 탄소 0.52%, 크롬 14.5%, 망간 0.6%, 실리콘 0.4% 입니다. M버전은 탄소를 약간 줄이고 크롬과 망간을 늘려 내부식성에 집중한 버전입니다. ™버전이 일반적인 12C27입니다.

 

 스웨덴 샌드빅의 강재. 상기하였듯 AEB-L의 탄생에 일조하였습니다. 샌드빅사의 강재를 스웨덴강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12C27을 뜻할 때도 있습니다.

 

 

13C26 (≒FC61)

 

: 탄소 0.68%, 크롬 12.9%, 망간 0.6%, 실리콘 0.4%

 

 샌드빅사의 강재. AEB-L과 실질적으로 같은 강재 취급받습니다. 그리고 헹켈에서 FC-61이라고 표기하면서 고급품에 사용하는 강재가 있는데, 그게 13C26이나 AEB-L아니냐는 게 일반론입니다.

 

 

14C28N

 

: 탄소 0.62%, 질소 0.11%, 크롬 14%, 망간 0.6%, 실리콘 0.2%

 

 질소를 함유한 샌드빅사의 신형 강재입니다. 질소를 이 농도보다 더 합금하려면 비싼 설비가 필요합니다. 양산형으로는 최대한의 질소를 함유하여 우수한 특성을 가지게 개발한 강재라 할 수 있습니다.

 

 면도칼용 강재답게 13C26보다 주로 개선된 건 내부식성입니다. 상기하였듯 13C26 및 AEB-L의 내부식성은 스테인리스의 기준은 충족합니다만, 스테인리스 중 높은 내부식성은 아닙니다. 14C28N은 화장실에서 물에 적신 채 두는 면도날 카트리지에 사용하기 좋도록 내부식성이 높아졌습니다. 이 특성이 주방칼에도 잘 어울리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19C27

 

: 탄소 0.95%, 크롬 13.5%, 망간 0.65%, 실리콘 0.4%

 

 샌드빅사에서 내마모성을 위주로 개발한 강재입니다. 본래의 용도는 질긴 섬유나 택배박스용 종이를 자르라고 내놓은 건데, 고경도에 스웨덴 강재를 좋아하는 일본식 주방칼에도 사용합니다. 성분을 보면 은삼강하고 유사하기 때문에, 흡사한 강재로 생각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BD1N

 

: 탄소 0.85~0.95%, 질소 0.1~0.15%, 크롬 15~17%, 망간 1%, 몰리브덴 0.5%, 실리콘 1%

 

 미국 카펜터 사에서 만드는 질소강. 높은 내부식성과 경도를 동시에 확보한 스테인리스로, 질소강답게 내식성이 높으면서도 경도 또한 제법 높게 올라갑니다.

 

 

 

SG2 (=R2≒FC63)

 

: 탄소 1.25~1.45%, 크롬 14~16%, 몰리브덴 2.3~3.3%, 망간 0.4%, 바나듐 1.8~2.2%, 실리콘 0.5%

 

 일본식 주방칼에서 널리 사용하는 타케후의 분말강. SG2는 Super Gold 2의 약어입니다. 이 강재는 아마 주방칼에 가장 많이 쓰는 분말강일 겁니다. VG10과 경도는 유사하게 나오지만, 분말강이고 바나듐 함량이 의미있게 높은 만큼, 칼날 유지력에서 장점을 가지며 인성도 VG10보다는 미미하게 더 높습니다.

 

 파우더 스틸이다보니 전통적인 단조 공법을 좋아하는 일본에서는 주로 카스미의 날물용 강재로 이 강재를 쓰곤 합니다. 그런데 편각날 칼의 경우, 카스미로 만들더라도 우라면은 날물용 강재가 그대로 노출됩니다. 그래서 우라면을 연마해야 하는 편각날 칼에 SG2를 사용하게 되면 우라면의 연마가 어렵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합니다. 바나듐 카바이드를 연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텅스텐이 제법 들어가는 슈퍼청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슈퍼청강과 비교하면 SG2는 경도도 덜 올라가고, 연마는 그나마 쉽습니다. SG2에 포함된 크롬은 바나듐이 카바이드로 변하는 비율을 줄입니다. 그리고 SG2는 분말강이기도 하고, 바나듐은 텅스텐에 비하면 카바이드의 크기가 작습니다. 카바이드가 작고 균일하면 연마가 용이해지고, 강도가 올라갑니다.

 

 한편으로 헹켈의 미야비 및 밥 크라이머 라인업에 많이 사용하는 FC63이라는 강재가 있는데, 이 SG2와 같은 강재라는 게 통설입니다.

 

 

 

SRS13

 

: 탄소 1.3%, 크롬 13%, 망간 0.3%, 몰리브덴 2.75%, 텅스텐 1.25%, 바나듐 1.5%, 실리콘 0.3%

 

 산요에서 만드는 파우더 스틸. 같은 라인업에 SRS15라고, 탄소 1.5%에 크롬 15% 버전이 있는데 그건 SG2의 유사 강재 취급받습니다. 그러나 SRS15는 텅스텐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SRS13은 그보다 탄소와 크롬이 조금 적은 버전입니다.

 

 

 

ZDP189 (≒MC66)

 

: 탄소 3%, 크롬 20%, 몰리브덴 1.4%, 바나듐 0.1%, 텅스텐 0.6%

 

 히타치의 파우더 스틸. 이 강재는 물성이 Steel이긴 합니다만, 사전적인 Steel의 범주는 벗어나 있습니다. 탄소가 3%나 들어가있기 때문에 고전적인 분류법으로 보면 이 철은 Steel이 아니라 Cast Iron(주철) 입니다. 그러나 20%의 크롬이 들어가 있고, 분말야금법이 사용되기 때문에 강철이라 할 만한 물성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극단적이라 할 만큼의 탄소함량으로 경도를 높이 올린 고크롬강. 크롬이 20%나 들어가 있지만, 탄소가 너무 많아서 스테인리스가 아닙니다. 이 정도 탄소 대 크롬 함량에서는 너무 많은 크롬이 카바이드로 변해서, 남아있는 크롬으로는 충분한 내부식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탄소강 수준으로 녹이 스는 건 아니고, 세미 스테인리스 정도로 부를 수 있는 정도의 내부식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ZDP189의 특징은 엄청나게 경도를 올릴 수 있는데, 그 경도에 비해 날을 세우기 쉽다는 겁니다. 바나듐이나 텅스텐이 많이 들어가 있지 않고, 대체로 시멘타이트나 크롬 카바이드가 경도에 기여하고 있는데다 파우더 스틸이라 그럴 것입니다. 경도는 ZDP189가 슈퍼청강이나 SG2보다 높고, 칼날 유지력은 그 이상으로 격차가 크게 높지만 커런덤 숫돌로 날을 깔끔하게 세울 수 있는 쪽은 ZDP-189쪽이고, 슈퍼청강이나 SG2는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한편으로 헹켈 케맥스 및 미야비 일부 칼에 사용하는 MC66이라는 강재는 ZDP189라는 게 통설입니다.

 

 

 

HAP40 (≒CPM Rex 45)

 

: 탄소 1.27~1.37%, 크롬 3.7~4.7%, 몰리브덴 4.6~5.4%, 텅스텐 5.6~6.4%, 바나듐 2.8~3.3%, 코발트 7.5~8.5%

 

 히타치의 파우더 스틸. 고합금 고속도공구강으로 고도의 내마모성뿐만 아니라 내열성까지 갖추기 위한 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텅스텐과 코발트를 섞는 건 초경합금의 일반적인 조성입니다. 비율이 높은 코발트는 텅스텐 카바이드를 소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날물에 사용할 경우만 생각하면 바나듐 함량이 더 높은 게 좋습니다. 바나듐 카바이드는 텅스텐 카바이드에 비해 입자가 더 작고, 경도는 약간 더 높습니다. 그러나 텅스텐 카바이드는 상대적으로 열에 강한 편입니다. 그래서 고속도공구(하이스)강에는 텅스텐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고합금강은 경도가 높게 나오고, 칼날 유지력도 우수합니다. 그리고 HAP40은 고합금강 중 주방칼을 만드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강재일 겁니다. 이 강재의 조성은 미국 크루서블사의 CPM Rex 45라는 강재와 유사하여, 거의 같은 강재로 취급받기도 합니다.

 

 HAP40은 저합금 탄소강에 비하면 크롬함량이 높고, 몰리브덴이 많이 들어있으므로 어느 정도의 내부식성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테인리스 수준은 아닙니다.

 

 이 강재로 만든 주방칼은 실제 사용해보면 절삭하는 느낌이 다소 독특합니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Steel이나 Stainless Steel과는 조성이 많이 다르다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이쯤되면 강철로 부르기 힘든 합금이라 봐도 될 것 같습니다.

 

 

 

CPM S35VN

 

: 탄소 1.4%, 크롬 14%, 몰리브덴 2%, 바나듐 3%, 니오븀 0.5%

 

 미국 크루서블사의 파우더 스틸. 개발과정에서 나이프를 위해 제작된 드문 강재 중 하나입니다. SG2에 필적하는 칼날 유지력인데, 인성은 SG2보다 현저하게 더 높습니다. 니오븀은 작은 크기의 카바이드를 형성해서 날물에 좋은 특성을 부여합니다. S35VN은 아웃도어용 나이프를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됩니다만, 미국에서는 고성능 주방칼 제작에도 사용합니다. 나는 S35VN과 후술할 Elmax를 유사한 레벨의 강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평가는 Elmax가 더 좋은 것 같습니다만.

 

 

 

Elmax SuperClean

 

: 탄소 1.7%, 크롬 18%, 몰리브덴 1%, 망간 0.3%, 바나듐 3%, 규소 0.8%

 

 스웨덴 우데홀름의 파우더 스틸. 통칭 ‘슈퍼 스틸’로 불리는 강재 중 하나입니다. 높은 경도, 높은 칼날 유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SuperClean’은 우데홀름의 파우더 스틸에 붙는 이름입니다.

 

 S35VN과 비교하면 칼날 유지력이 좀 더 높고, 인성은 조금 떨어집니다. M390과 비교하면 칼날 유지력은 다소 부족하고, 인성은 조금 더 높습니다.

 

 

 

M390 (≒20CV≒204P)

 

: 탄소 1.9%, 크롬 20%, 몰리브덴 1%, 망간 0.3%, 바나듐 4%, 텅스텐 0.6%, 규소 0.7%

 

 오스트리아 뷜러사의 파우더 스틸. 본래 공구강으로 개발되었으나 도검에 사용했을 때 판타스틱한 성능이 나오기 때문에 미국의 크루서블과 카펜터에서 복제를 만들어 나이프용 강재로 사용하게 됩니다. 크루서블에서 만드는 게 20CV, 카펜터에서 만드는 게 204P입니다.

 

 이 슈퍼 스틸은 매우 높은 칼날 유지력과 내부식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탄소함량이 강철의 범주를 초월하는 수준(사전적인 강철의 탄소함량은 0.035~1.7%)으로 높은데다, 20%나 되는 크롬을 가지고 있어 카바이드도 많이 만드는 동시에 충분한 내부식성을 가질 만큼 크롬이 남는 것으로 보입니다. M390은 고탄소 마르텐사이트계 스테인리스 중 최고 수준의 내부식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나듐 함량도 높은 편이다 보니 일반적으로 주방칼에 사용되는 스테인리스 중 M390은 가장 높은 칼날 유지력을 가진 것으로 추정합니다. M390보다 더 높은 칼날 유지력을 가지는 강재는 대체로 스테인리스가 아니거나, 주방칼을 만드는 데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상기한 ZDP189나 HAP40은 M390에 필적하거나 어쩌면 그 이상의 칼날 유지력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만, 그것들은 스테인리스는 아닙니다.

 

 다만 인성은 낮은 편이기 때문에 거친 작업용 식칼 소재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Cronidur 30 (=LC200N=Z-FiNit=1.4108=N360)

 

: 탄소 0.25~0.35%, 질소 0.3~0.5%, 크롬 14~16%, 몰리브덴 0.85~1.1%, 망간 1%, 니켈 0~0.5%

 

 고질소강. 강철에 섞인 질소는 탄소를 대신할 수 있지만, 일정농도 이상의 질소를 철과 합금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크로니두르 30은 질소를 철과 합금하려는 시도 끝에 개발되었고, 획기적인 내부식성과 높은 인성을 가지는 강재입니다. 또한 인성에 비해 칼날 유지력도 나쁘지 않습니다.

 

 마르텐사이트계임에도 오스테나이트계 수준의 내부식성을 가진 강재인만큼 도검에 사용될 때는 부식이 쉬운 환경에서 아웃도어 나이프용으로 많이 쓰입니다만 헹켈에서 창립 280주년 기념칼, 트윈 1731에 크로니두르 30을 사용하면서 일부에게나마 보급되었습니다.

 

 통용되는 이름이 꽤 많은 강재인데 아웃도어 나이프 사용자에게 주로 알려진 이름은 LC200N입니다. 대조적으로 주방칼 사용자에게 알려진 이름은 크로니두르 30 쪽입니다.

 

 

 

CPM MagnaCut

 

: 탄소 1.15%, 크롬 10.7%, 질소 0.2%, 몰리브덴 2%, 바나듐 4%, 니오븀 2%

 

 높은 칼날 유지력, 칼날 유지력에 비해 꽤 높은 인성, 높은 내부식성을 동시에 가지는 파우더 스틸. 원래 이 셋이 같이 높기가 어려운데, 그걸 실제로 구현해낸 나이프용 강재입니다.

 

 탄소함량이 높지 않고, 탄소함량 대비 크롬 함량도 높은 편이 아니지만 크롬 카바이드의 형성을 최소화하는 배합으로 개발되었고 몰리브덴을 함유하여 내부식성이 높은 편입니다. 최근에 개발된 인기높은 강재. 제조사는 크루서블이고 개발자는 Larrin Thomas입니다.

 

 

 

 

 다음 차례로는 칼의 각 부분 및 그 형태 등에 대한 특성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ㄱ) 칼날

 

 날붙이는 물리력을 날끝에 집중시켜 무언가를 자르는 도구입니다. 잘 드는 칼은 칼끝의 두께가 얇고, 칼날 부분의 단면 형상이 예각이고, 베는 동안 날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완벽하게 날을 세운다고 한다면 날끝이 분자 하나만큼의 두께가 되면 이상적인 두께입니다만, 금속 칼의 경우 그 정도로 날을 세우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그런 두께의 칼날은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상적으로 간 금속 칼날은 실제로 수십 나노미터 수준의 날끝 두께를 가질 수는 있습니다.

 

 금속이 아니라 흑요석이나 유리, 석영을 사용한다면 극단적인 날끝을 만들 수 있긴 합니다. 흑요석은 날을 완벽하게 세우면 진짜로 3나노미터 수준의 날끝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물론 주방칼에 흑요석을 쓸 일은 없습니다만.

 

 칼날 단면의 각도는 실질적으로 칼의 절삭력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칼끝의 단면은 쐐기 형태기 때문에, 각도가 예리할수록 잘 벨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각도가 예리할수록 날이 약해지고, 손상되기 쉽습니다.

 

 주방칼은 종류에 따라 날을 V자 모양의 양각날로 세우기도 하고, │/ 모양으로 편각날을 세우기도 합니다. 보통 편각날이 더 잘 든다는 인식이 있지만, 실제 절삭력을 측정해보면 동일 각도에서는 양각날 쪽이 더 절삭력이 높게 측정됩니다. 아마 │/ 모양의 / 부분이 자르는 대상에 대해 더 둔각이라 그럴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실제로는 회칼 등에는 │/ 모양의 편각날이 선호되고 있는데, 익히지 않은 생선살과 같은 부드러운 물성을 가진 음식물에는 편각날이 음식물을 우라면 반대 방향으로 밀어내면서 단점이 상쇄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양각날 칼은 일반적으로 편각날 칼에 비해 둔각으로 세워집니다. 편각날 칼은 우라오시쪽은 0°이기 때문에 15~20°수준으로 날을 세우는 게 어렵지 않은 반면, 양각날 칼은 20°수준으로 날을 세우려면 한쪽마다 10°로 연마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편각날은 손잡이 쪽에서 볼 때 │/ 모양으로, 왼쪽에 우라면이 있는 게 일반적이고, 그게 오른손으로 쓰는 칼입니다. 그런데 왼손잡이도 있기 때문에, 왼손잡이를 위한 반대 방향의 편각날도 있습니다. 왼손잡이용 편각날 칼은 사용자가 적다보니 아무래도 더 비싸고, 공급도 적은 편이긴 합니다.

 

 칼날은 매끄럽게 세워질 수 있으면 좋지만,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매끄럽고 이상적으로 칼날을 세우기는 어렵습니다. 칼날 끝은 나노미터 단위의 세계고, 그보다 조금 두꺼운 부분도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세계라 육안으로는 보이지도 않고 미립자는 만져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미세 영역이 자르는 데는 영향을 줍니다.

 

 날을 세우는 방식은 칼날의 완성도에 영향을 줍니다. 일반적으로 추천되는 방식은 방수가 낮은 숫돌부터 시작해서 점차 높은 (고운) 숫돌로 손으로 갈아 마무리하는 겁니다. 다른 방식으로 날을 세우면 그렇게까지 매끄럽게 완벽하게 날을 세우기 어렵고, 기계적인 건식 연삭 도구를 사용하면 아예 마찰열로 온도가 너무 올라가서 열처리가 풀려버릴 수가 있습니다. 간이 칼갈이는 칼날 끝쪽만을 갈아버리고 보다 위쪽은 갈지 못하기 때문에 과도하게 사용하면 갈아도 잘리지 않는 무딘 날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이상적인 내구성을 가지는 양각날의 단면은 볼록한 모양이어야 합니다만, 느슨한 벨트 샤프너를 이용해 숙련자가 갈 때만 구현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숫돌로는 바나듐이나 텅스텐 카바이드를 갈아낼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다이아몬드 숫돌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면, 커런덤 숫돌로는 바나듐이나 텅스텐 카바이드는 갈아내는 게 아니라 떼어내게 됩니다. 커런덤이 경도가 더 낮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장표 숫돌로는 스테인리스의 크롬 카바이드도 갈아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실질적으로는 카바이드의 입자 크기가 연마 난이도에 영향을 줍니다. 숫돌 등 연삭재의 요철 크기보다 카바이드가 작을 경우, 카바이드를 통째로 떼어내기 쉬워집니다.

 

 즉 경도가 높은 비철금속 카바이드가 큰 입자 크기로, 분균일하게 생길 경우 일반적인 연마로는 매끄러운 칼날을 세우기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카바이드와 주변 강철 조직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큰 카바이드는 경계부분을 따라 칼날 끝이 안 보이게 깨져나가게 만들기 쉽습니다.

 

 한편으로 칼날 끝은 너무나 얇고, 금속은 어느 정도 충격이 가해져도 휘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실제 미세영역에서는 칼날 끝이 휘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발생합니다. 그러나 금속은 굽힘이 반복되면 피로파괴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저항성(피로강도 및 인성)이 실제 매끄러운 날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카바이드는 인성을 떨어뜨립니다. 카바이드의 양이 많을수록, 입자의 크기가 클수록 인성이 떨어집니다.

 

 부식과 광물질의 형성 또한 칼날의 이상적인 날카로움에는 악영향을 줍니다. 부주의하게 다룰 경우 스테인리스도 조금씩 부식되며, 물에 녹아있던 광물질 성분들이 칼날 끝에서 말라 굳을 경우, 보이지 않는 크기의 결정을 만들어내 날카로움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일상적으로 사용할 때는 아무 문제 아닌 게, 칼날 끝과 같은 나노미터 단위의 세계에는 악영향을 줍니다. 흔히 강철칼이 스테인리스보다 잘 든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가 강철칼 사용자들의 관리 방식에 있을 걸로 추정합니다. 강철칼 사용자들은 녹 방지를 위해 칼을 적신 상태로 방치하지 않습니다. 대조적으로 스테인리스 칼 사용자들은 칼을 더 편하게, 부주의하게 다루는 편이기 때문에, 아무리 날을 잘 세워놔도 그게 유지가 충분히 잘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동일하게 주의하여 다루면 스테인리스 쪽이 더 날 유지가 잘 됩니다. 부식에 강하기 때문입니다. 칼날은 보이지 않는 수준의 부식으로도 보이지 않게 손상됩니다.

 

 다만 칼날은 이상적으로 매끄러운 날카로움을 유지하지 않더라도 어지간해서는 절삭은 됩니다. 때때로 손상되거나 잘못 연마되어 거칠어진 칼날이 소재에 따라 더 나은 절삭력을 보이기도 하는데, 보이지는 않아도 미세영역에서 톱날과 같은 모양이 될 경우 어떤 소재에는 더 잘 파고들면서 잘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음식물은 그저 자른다고 다가 아닙니다. 절삭하여 얼마나 깔끔한 절단면을 만들어냈는가에 따라 다른 결과물이 나옵니다. 물론 음식에 따라 완전히 매끄러운 절단면이 무조건 좋은 건 결코 아니기도 합니다.

 

 

 

 

 

일본식 편각날의 단면과 우라의 구조

ㄴ) 우라

 

우라는 양각날 칼에는 없고, 일정 이상 가격대의 편각날 칼에만 있습니다. 가격대가 좀 있는 편각날 칼은 얼핏 보기보다는 구조가 복잡한데, 편각날 칼의 단면을 │/라고 할 때, 왼쪽 │면은 실제로 평면이 아닙니다. 미미하게나마 오목하게 연마를 해 둡니다. 과장하여 표현하면 )/ 같은 모양이란 말이지요. 이 오목한 것을 우라, 오목한 면을 우라면, 오목한 곳을 우라스키, 연마로 생기는 우라스키 위아래의 평평한 영역을 우라오시라고 합니다.

 

 편각날 칼을 연마할 때는 │/ 모양의 오른쪽, 그러니까 /면을 통째로 가는 게 아닙니다. 모든 칼이 그렇듯 기본적으로는 날끝을 갈게 되지요. 그런데 │면이 평면이면 면을 통째로 갈아야 합니다만, 담금질로 경도가 올라간 날물을 통째로 가는 건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면이 평면이면 어지간히 연마를 해서는 제대로 갈리지를 않고, 날을 편각날로 유지시키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라가 있습니다. 우라가 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날끝을 편각날로 세울 수 있는 겁니다.

 

 우라가 있기 때문에 편각날 칼은 숫돌을 이용해 손으로 연마를 해야 합니다. 우라면을 숫돌에 갈아 우라오시를 먼저 연마해주는 게 편각날 칼의 연마방식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편각날을 세우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 외 우라는 음식물이 칼날에 덜 붙게 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날면이 오목하니까 아무래도 덜 붙게 됩니다.

 

 편각날 칼도 저렴한 건 우라가 없습니다. 우라는 일단 단조 과정에서 숙련된 단조사가 직접 망치로 때려 만듭니다. 그 다음에 수공연마과정에서 우라를 완성하고요. 그러니까 기본적으로는 제대로 만든 수공단조제품이어야 우라가 있다는 겁니다. 그냥 판 강재를 잘라 만드는 편각날 칼은 우라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일본식 주방칼에서 수공 단조가 중요하게 취급되는 한 이유입니다.

 

 우라가 없는 편각날 칼은 실질적으로 날끝은 1:9 정도의 비대칭 양각날이라 생각해도 됩니다. 우라가 있는 칼도 완벽하게 편각날을 세우면 날끝이 쉽게 손상되는 경향이 있어, 끝부분이 둔각인 이중날(이토)을 만들거나 날끝의 우라오시를 살짝 갈아 비대칭 양각날을 만들어놓기도 합니다. 절삭력을 포기하고 내구성을 확보하는 식의 연마를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거지요.

 

 탄소강 편각날 칼은 우라스키에 녹이 스는 걸 신경써야합니다. 우라면을 숫돌로 문지르더라도 오목한 우라스키에는 숫돌이 닿지 않으므로 직접 제거를 해 줘야 합니다. 우라스키에 붉은 녹이 깊이 파고들다보면 칼의 수명이 끝납니다.

 

 그리고 우라의 존재 때문에라도 일식 요리사들은 다이아몬드 숫돌같은 연마력이 강한 숫돌의 사용을 피하거나 최소한으로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편각날 칼은 날 부분의 우라오시를 소모하면서 사용하는 거고, 그러니까 날 부분의 우라오시를 아껴 사용해야 칼 자체를 제대로 오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 숫돌처럼 연마력이 강한 건 우라를 너무 많이 소모시키기 쉽습니다. 우라가 다 소모된 편각날 칼은 상기하였듯 비대칭 양각날을 세워 쓰게 되는 게 보통입니다. 우라를 다시 파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라가 있는 편각날 회칼은 양각날 칼에 비해 탄소강이 장점을 더 가집니다. 아무리 칼날 유지력이 높은 고합금강을 사용한다 해도, 경도가 높은 금속으로 만든 날은 취성이 있고 칼날의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칼날 끝이 미세하게 깨지게 되고, 사용하다보면 미네랄 결정이나 부식에 의해서도 미세하게 손상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절삭력은 유지될지언정 절미나 절단면의 매끄러움이 유지될 수는 없습니다. 생선회의 특성상 절단면은 매끄러울수록 좋고, 그렇기에 회칼은 가능한 매끄럽고 완벽한 날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결국 자주 연마하는 게 답이고, 우라면이 있는 편각날 칼을 자주, 완벽하게 갈면서도 최대한 오래 날쪽 우라오시를 보존하려면 탄소강만한 게 없게 됩니다. 파우더 스틸 같은 경우 애초에 우라를 만드는 게 어렵기도 합니다.

 

 

 

 

 

ㄷ) 칼등 두께

 

 칼등 두께는 주방칼의 특성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두께가 두꺼운 칼은 같은 날폭과 길이일 때 보다 무겁고 튼튼합니다. 그리고 음식물을 자를 때 쐐기처럼 파고들면서, 절삭과정에서 절삭이 끝난 부분을 벌려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공 단조작업이 들어가는 칼들은 칼등 두께가 두꺼운 편입니다. 단조를 통해 칼날 부분은 얇게, 칼등 부분은 두껍게 만듭니다. 다마스커스의 경우 대체로 접쇠공정 덕에 두께가 어느 정도 있고요. 대조적으로 얇은 철판을 절삭가공해서 수공단조 없이 만드는 방식의 날물은 보통 두께가 얇습니다.

 

 도마 위에서 음식물을 자를때, 칼날의 질량은 절삭력에 제법 영향을 줍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칼날이 무거우면 잘 잘리고, 가벼우면 잘 잘리지 않습니다. 칼등 두께가 두꺼운 칼은 동일 조건에서 더 무겁기 때문에, 들어올리는 동작에 힘이 더 들어가지만 더 잘 잘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이런 경향은 음식물의 딱딱한 정도에 따른 차이가 심한 편인데, 예를 들어 부피가 크고 단단한 뿌리채소 같은 경우 형태변형이 어려우므로 칼등 두께가 얇은 쪽이 쉽게 파고듭니다. 두꺼운 칼은 무처럼 큰 뿌리채소를 자르는 데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익히지 않은 생선살이나 육류 같은 경우 질기긴 하지만 모양변형은 쉬우므로 칼등 두께가 두꺼운 칼로 당겨 잘라도 문제가 없고, 오히려 질량 때문에 얇은 칼보다 쉽게 잘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칼이 아예 파묻힐 정도로 부피가 큰 육류나 생선을 다룰 때는 칼날이 얇고 폭도 좁으면서 표면은 매끄럽지 않은 게 좋습니다. 그런 조건에서는 칼날과 음식물의 마찰을 줄일수록 칼이 잘 나갑니다. 어떤 음식물을 자르냐에 따라 잘 드는 칼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수공 단조작업을 거친 날 면의 한 형태

ㄹ) 날 면의 매끄러운 정도

 

 수공 단조작업이 있는 칼은 많은 경우 칼날 면이 매끄럽지 않게 마무리됩니다. 다마스커스가 아니라도 일부러 장식적인 모양을 만들어놓는 경우도 제법 많은데, 심미적인 이유도 있습니다만 실제 사용할 때도 특성이 달라집니다. 칼날 면이 매끄럽지 않고 우둘두둘한 부분이 많을수록 절삭시 음식물에 접촉하는 면적이 좁아집니다. 즉 마찰이 더 적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칼날의 면적 대비 부피가 큰 음식물을 자를 땐 날면이 음식물에 덜 마찰할수록 쉽게 절삭됩니다. 다만 날면이 매끄럽지 않게 처리되는 칼은 보통 수공단조를 거친, 칼등 두께가 일정 이상 두꺼운 칼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두께가 얇은 게 이익인지, 아니면 날의 표면이 매끄럽지 않은 게 이익인지는 자르는 음식물의 특성에 따라 달라집니다.

 

경면 처리를 한 야나기

 반대로 경면처리라고, 날의 면을 거울처럼 가공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이는 고방수의 숫돌에 연마를 해서 아주 매끄러운 표면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위해 만드는 작업이고, 그래서 가격대가 좀 있는 수공단조도검에 시도되곤 합니다. 이 경우 보기엔 좋지만 음식물에 대한 마찰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부피가 큰 음식물을 자르기에는 덜 적합해집니다.

 

 참고로 수공단조 공정이 있는 쪽이 꼭 고급칼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날물 전체가 파우더 스틸인 경우에는 수공단조공정이 들어갈 여지가 없습니다. 일본식 주방칼은 날물은 파우더 스틸로, 바깥쪽은 수공단조로 만드는 카스미도 많습니다만 그게 날물 전체를 파우더 스틸로 만드는 것보다 우월한 방식은 아닙니다. 그런데 날물 전체를 고합금 고경도 파우더 스틸로 만들게 되면 대체로 칼등이 얇고, 날면은 매끄럽게 마무리됩니다. 워낙 비싸고 가공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테이퍼가 두드러지는 가라스키

ㅁ) 테이퍼와 곡률

 

 테이퍼는 도검에서 칼날이 핸들에서 끝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거나 얇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방칼은 보통 칼날의 두께는 일정하므로, 폭이 좁아질수록 테이퍼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곡률은 칼날이 휜 정도입니다.

 

 테이퍼는 주로 무게중심에 영향을 줍니다. 칼날이 길수록 무게중심이 손잡이 쪽이 있는 쪽이 다루기 편한데요. 테이퍼는 칼끝 부분을 가볍게 하고 손잡이 부분을 무겁게 해 다루기 편하게 만들어줍니다.

 

곡률이 큰 빅토리아녹스의 cimeter

 곡률은 절삭력과 상관이 있습니다. 곡률이 없는 주방칼은 음식물에 날이 1차원적으로, 그러니까 하나의 선으로 닿게 됩니다만 곡률이 심한 경우에는 0차원적, 그러니까 점의 형태에 가깝게 음식물이 날이 닿고 힘이 집중됩니다. 그래서 곡률이 있는 칼과 없는 칼은 절삭력이 좀 차이납니다.

 

 셰프 나이프/규토는 곡률이 있는 대표적인 칼입니다. 대조적으로 산토쿠는 곡률이 별로 없고, 나키리는 그보다 더 적거나 아예 없으며, 중식도는 거의 아예 곡률이 없습니다. 대조적으로 시미터는 셰프 나이프보다 큰 곡률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르기 어려운 걸 자를 때는 곡률이 있는 칼의 곡률을 이용하면 보다 쉽게 자를 수 있습니다. 밀거나 당기는 동작으로 자를 때 곡률의 효과가 커집니다.

 

 

 

 

손잡이에 가까운 부분의 날끝 모서리를 사용 가능한 타입의 6인치 셰프 나이프

ㅂ) 날의 뾰족한 부분

 

 뾰족한 칼끝이 필요한 작업들이 있습니다. 그냥 칼날로는 해결이 안 될 때가 있지요.

 

 키리츠케 규토나 페티의 경우 칼끝이 매우 뾰족하기 때문에, 뾰족한 칼끝이 필요할 때 유용합니다. 대신 그만큼 위험하니까 조심해야 하고요.

 

 일부의 칼은 손잡이쪽 칼날 끝이 뾰족하게 처리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도 사용 가능합니다. 그런데 다칠 확률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이 뾰족한 걸 선호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아예 갈아내서 뾰족하지 않게 처리하기도 합니다. 후술할 볼스터가 이 부분을 덮는 경우도 있고요.

 

 

 

 

 

풀탱

ㅅ) 슴베

 

 슴베(Tang)는 손잡이에 들어가는, 날물에서 이어지는 부분을 의미합니다. 손잡이가 슴베를 완전히 감싸서 슴베가 보이지 않는 타입은 히든탱 또는 하프탱, 슴베가 손잡이 끝부분까지 이어져서 손잡이가 슴베를 감싸는 형태면 풀탱이라고 합니다. 둘은 특성이 좀 다릅니다.

 

 내구성이 좋은 건 당연히 풀탱 쪽입니다. 풀탱을 실제 본 적이 없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철판이 날 뿐만이 아니라 손잡이까지 쭉 이어지고, 손잡이는 그 철판을 감싸는 형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떤 풀탱 도검은 별다른 손잡이 없이 그냥 슴베에 마끈 등을 감아서 사용하는 타입도 있습니다. 주방칼은 그런 타입이 없지만, 아웃도어 나이프에는 그런 타입도 있지요.

 

끈을 감아 핸들을 처리한 풀탱 아웃도어 나이프

 풀탱 칼은 대략 유럽식입니다. 풀탱이 히든탱과 가장 다른 점은 무게와 무게중심입니다. 손잡이 끝부분까지 철판이 이어지기 때문에, 히든탱 대비 더 무겁고 무게중심이 더 손잡이 쪽에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더 묵직하고, 무게균형이 잘 맞는 편입니다. 풀탱은 많은 경우 슴베가 드러나 있고, 슴베 면을 포함하여 쥐게 됩니다. 나는 슴베가 드러난 풀탱 핸들의 쥐는 감각을 좋아합니다.

 

 히든탱은 풀탱 대비 칼의 전체 무게는 보통 가볍습니다. 대체로 철제 슴베보다는 핸들 소재가 가볍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히든탱은 무게중심이 날 쪽에 있습니다. 긴 칼일수록 더 그러합니다. 그래서 쥐었을 때 느낌이 다릅니다. 일본식 회칼 계열은 칼등이 두껍고, 길이도 긴데 히든탱이기 때문에 무게중심이 현저하게 칼날쪽에 있습니다.

 

레이피어의 핸들 부분. 풀탱입니다.

 과거 전투용 도검은 풀탱이 많을 것 같아도 의외로 히든탱이 많았습니다. 풀탱은 히든탱 대비 도검으로 무언가를 베거나 할 때 손에 전해지는 충격량이 크기 때문입니다. 강재에 비해 연한 소재인 핸들이 충격을 흡수해줘야 손목이 덜 아프단 말이지요. 손에 닿는 탱 사이드가 부식될 여지도 있고요. 일본식 식칼은 카타나의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이라 전통적으로 히든탱을 쓴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조적으로 서양 도검은 근대를 거치며 레이피어와 사브르로 발전하는데, 레이피어와 그 이후에 등장한 스몰소드, 에페, 플뢰레 등은 중세도검에 비해 날이 가느다란 도검이다보니 풀탱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서양식 나이프는 풀탱이 많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식 팔각핸들. 히든탱입니다.

ㅇ) 핸들의 모양

 

 주방칼 손잡이의 모양은 실제 칼을 사용할 때 느낌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일본식 칼은 단면이 팔각으로 각이 져 있는 게 특징입니다. 히든탱 팔각핸들이 일본식 주방칼의 아이덴티티입니다. 각이 있기 때문에 원형계열 핸들이나 측면이 납작한 핸들과는 다른 그립감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만드는 일본식 칼도, 일본식이라는 특성을 강조할 때는 손잡이에 각을 줍니다. 완전한 팔각일수록 일본식 같아집니다.

 

헹켈 밥 크라이머 브랜드의 굴곡이 있는 핸들을 가진 나이프

 일본식을 제외하면 대체로 핸들은 둥그스름합니다. 아예 동글동글한 계열도 있고, 좀 납작하게 동그란 것들도 있는데 아무래도 취향차가 큽니다. 이것저것 쓰다 보면 손 모양에 맞춰 약간의 굴곡이 있는 핸들이 쓰기 편하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어째 그런 건 저렴이 주방칼에 많고 고급 주방칼에는 상대적으로 덜 흔합니다.

 

 

 

 

 

흑단 핸들. 흑단은 수종과 부위에 따라 완전히 검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ㅈ) 핸들 소재

 

 소재를 크게 나누면 플라스틱과 나무가 있습니다. 플라스틱은 가볍고 부패하지 않는 게 장점입니다. 그래서 편하게 쓰는 칼일수록 플라스틱 손잡이인 게 좋습니다. 대부분의 가정 주방에서는 손잡이가 플라스틱인 칼을 쓰고 있을 겁니다. 일반적인 가정용 칼은 내식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날물이건 핸들이건.

 

흑단 핸들 데바

 그렇지만 고급 칼에는 나무 손잡이도 많이 씁니다. 좋은 나무를 쓰면 잡는 느낌도 좋고, 모양도 아름다워집니다. 대신 플라스틱에 비해서는 관리가 필요하고요. 나무 손잡이도 부패를 막기 위해 이런저런 처리는 합니다만, 어쨌든 물에 계속 담가두거나 하지는 않는 게 좋습니다. 나무는 수종에 따른 밀도차이는 있습니다만, 대체로 어쨌든 플라스틱보다는 무겁습니다. 흑단처럼 물보다 비중이 큰 수종을 쓰면 제법 무겁고요.

 

원피스 스테인리스 핸들

 스테인리스 같은 금속으로 손잡이를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날과 아예 결합부가 없이 원피스로 되어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속이 찬 스테인리스면 무겁고 비싸지니까 보통 속이 비게끔 만드는 것 같습니다. 다루기 편해서 이런 타입도 인기가 제법 있지요.

 

아크릴 핸들 풀탱 다마스커스 페티

 고급품 플라스틱 손잡이도 있습니다. 아크릴을 사용해서 고급스러운 무늬를 만든 것들입니다. 그리고 나무 손잡이도 함침 처리를 해서 색을 들이고 모양을 내곤 합니다. 함침 나무 손잡이는 비쌉니다. 부패에 강하고요.

 

함침목 핸들 규토

 주방칼 손잡이의 소재 제한은 거의 없기 때문에 다양한 고급 소재도 사용합니다. 자개(나전), 터키석, 라피스라줄리, 크리스탈, 사슴뿔, 물소뿔, 양뿔, 은 등등. 손에 닿았을 때 문제가 생기거나 쉽게 망가지는 게 아니라면 뭐든 써도 됩니다.

 

소뿔 핸들 풀탱 스테이크 나이프

 

 

 

 

 

핸들에서 칼날로 이어지는 부위가 볼스터입니다

ㅊ) 볼스터

 

 볼스터는 유럽식 칼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핸들과 날 사이에 있는 겁니다. 전투용 도검의 가드와 같은 역할입니다. 볼스터가 있으면 일단 사용 자체는 더 안전하고 편해지는 면이 있습니다. 손이 날로 갈 수 있는 여지를 막아주거든요. 무게중심도 좀 달라지고요.

 

 다만 문제는 볼스터가 날 있는 부분까지 크게 있는 경우 칼을 숫돌에 갈기 좀 어려워진다는 겁니다. 연마봉(야스리)이나 연삭기 등 다른 형태의 칼갈이로 갈아야 합니다. 그런데 칼을 가는 가장 좋은 방식은 숙련자가 숫돌에 손으로 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손해가 있긴 하지요. 이 문제 때문에 볼스터를 갈아내서 없애버리는 사람도 있긴 있습니다.

 

 물론 일반적인 사용자 기준에서 보면 볼스터가 큰 게 좋긴 합니다. 다칠 위험은 적고, 요새 일반인이 숫돌 쓸 일이 얼마나 있습니까. 높은 완성도로 갈리진 않아도 다른 걸로 갈아도 날은 서고요.

 

 

 이상 칼날의 형태적 특성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날물의 물리적 기본 특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본문 초판을 마치겠습니다.

 

 

 

 

 

 

A) 경도

 

 영어로는 Hardness. 딱딱한 정도입니다. 강도와는 다릅니다. 엄밀하게 정의된 개념은 아니지만, 통념으로 이야기하자면 ‘긁힘에 강한 정도’를 의미합니다. 대중적으로는 모스 경도가 잘 알려져 있지요.

 

 경도를 긁힘에 강한 정도라고 규정한다면, 경도는 칼날을 유지하는 능력에 개념적으로 비례합니다. 다만 문제라면 경도라는 개념이 엄밀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칼날처럼 매우 얇은 물질의 경도를 측정하는 건 일반적인 경도 측정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날물의 경도 측정은 일반적으로 록웰(록크웰) 경도 측정법을 사용하는데, 주방칼에 쓰는 경도 높은 금속의 경우 록웰 C측정법이라 하여 다이아몬드 콘을 유압기로 눌러 박아 얼마나 찍히느냐에 따라 경도 측정을 합니다. HRC로 표시하지요. 그런데 이 방식으로는 칼날의 긁힘에 강한 정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습니다. 카바이드 입자가 존재하는 날끝은 균일한 물성을 지니지 않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제 도검에 사용하는 금속은 칼날 유지력이라는 기준을 따로 측정합니다. 일정한 칼날각과 규격으로 칼을 만들고, 실제로 얼마나 벨 수 있는지 측정하는 건데요. 이론적으로 보면 칼날의 경우 이쪽이 더 올바른 경도 측정법일 수 있습니다만, 측정법이 복잡하기도 하고 현재 주로 참조되는 CATRA 칼날 유지력 측정법이 실리카가 함유된 종이를 이용하기 때문에 실리카보다 경도가 낮은(시멘타이트가 실리카보다 경도가 높다는 자료가 일반적이지만, 실제 CATRA 측정결과를 보면 시멘타이트의 경도는 실리카보다 경도가 낮다고 봐야 합니다.) 시멘타이트(철 카바이드)에 대한 유지력 측정을 할 수가 없습니다. CATRA 측정법을 기준으로 하면 440C가 슈퍼청강보다 현저하게 칼날 유지력이 좋은 걸로 측정되는 묘한 결과가 나와버립니다. 440C는 스테인리스라 크롬 카바이드가 많이 형성되어있기 때문에 (텅스텐이 좀 들어가긴 했지만) 시멘타이트에 의해 주로 경도가 나오는 탄소강(저합금강) 계열인 슈퍼청강보다 실리카에 마모가 덜 되는 걸로 추정됩니다. 또한 CATRA 칼날 유지력 측정법은 칼날에 어느 정도 충격과 같은 대미지가 가해지는 실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칼날 유지력 테스트는 특정한 칼이 아니라 특정한 금속의 특성을 파악할 때 사용되는 방식이다보니 실제 시판하는 주방칼들은 HRC만 표기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충분히 완벽한 측정법은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바나듐/텅스텐/니오븀 등의 초고경도 카바이드가 많이 형성되는 합금일수록, 그리고 카바이드의 크기가 작고 균일할수록, 인성이 높을수록 HRC 측정수치 대비 칼날 유지력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일제 고급칼에 많이 사용하는 VG10과 SG2를 비교하면, 경도는 비슷하게 나오더라도 SG2쪽의 칼날 유지력이 더 높습니다. SG2쪽이 바나듐이 많이 들어있고 또 분말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칼날 유지력’을 잘못 이해하면 안 됩니다. 경도와 칼날 유지력이 높은 칼들은 조심조심 주의해서 다뤄야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체로 인성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긁힘에는 강하지만 충격에는 약하단 말이지요. 단단한 걸 강하게 내려치거나, 도마를 긁어가면서 사용하거나 하면 잘못하면 칼날이 깨져버립니다. 칼날 유지력이라는 건 긁힘에 대한 저항력이지 깨짐에 대한 저항력이 아닙니다. 이를 오해하면 안 됩니다. 후술할 ‘인성’에 대한 부분을 참조해주세요.

 

 

 

 

 

 

B) 인성

 

 영어로는 Toughness. 쉽게 이야기하면 깨짐에 저항하는 성질입니다.

 

 단적으로 세라믹은 경도는 어지간한 금속보다 높습니다만 인성은 매우 낮습니다. 충격이 가해지면 깨져버리지요. 다이아몬드는 지구 최고의 경도를 지닌 물질이지만, 경도에 비해 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강한 충격을 가하면 깨져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세라믹이나 다이아몬드 뿐만 아니라 금속도 인성이 부족할 경우 허용이상의 충격이 가해지면 깨집니다.

 

 철은 탄소함량을 높이고 열처리를 통해 경도를 높일수록 인성이 낮아집니다. 그리고 카바이드가 많아질수록 인성이 낮아지고, 또한 카바이드 입자가 클수록 또 인성이 낮아집니다. 고경도 고합금을 분말강으로 만드는 이유는 카바이드의 입자를 작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물성의 균일성은 인성에 큰 영향을 줍니다. 날물의 일부분에 탄소함량이 너무 높다거나, 큰 카바이드가 있다거나, 야금 과정에서 미세한 공기 방울이 섞였다거나 하면 인성이 크게 떨어지게 됩니다. 야금 기술이 떨어지던 시절에 도검을 만드는 데 가장 어려운 요소는 균일한 인성의 확보였습니다. 현대에 들어 야금기술은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드물게나마 작은 공기방울이 섞이는 등 보이지 않는 불량은 발생하고, 그건 주로 날물 전체가 가지는 인성에 큰 악영향을 주게 됩니다.

 

 마구 내리치면서 쓰는 칼과 섬세하게 절삭하는 칼은 다른 물성을 가져야 합니다. 전자는 경도보다는 인성이 높아야 하고, 후자는 경도가 높은 게 좋습니다. 아무리 좋은 금속이라도 경도, 특히 칼날 유지력과 인성이 같이 높기는 어렵습니다. 같은 금속이라도 칼을 만들 때 경도를 조금 낮추면 인성이 높아집니다.

 

 경도가 아주 높은 칼들은 금속칼이라도 세라믹 칼처럼 인성이 없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마모에는 매우 강하지만 충격을 받으면 칼날이 깨지면서 아예 이가 나가버립니다. 대조적으로 우리나라 대장간 칼들은 경도는 낮고 인성 특화입니다. 생선을 토막내거나 닭을 자르려면 인성이 높은 칼이 필요합니다. 특히 냉동된 식재료를 자르려 시도할 때 인성이 부족한 칼의 사용을 피해야 합니다. 얼은 음식 자르려다가 세라믹 칼날 깨먹었다는 이야기가 드물지 않습니다. 대조적으로 경도가 낮고 인성만 높으면 깨지지는 않지만 칼날이 잘 닳고, 충격이 가해지면 날이 잘 뭉개지게 됩니다.

 

끝이 말려버린 칼날 단면의 사진

 인성은 칼날의 안정성에 영향을 줍니다. 칼날을 바짝 세울수록 그렇게 됩니다. 연마를 제대로 한 칼날 끝은 매우 미세한 두께를 가지고, 실제 사용을 하면 미세한 영역에서 계속 휘거나 하다가 파괴되곤 합니다. 높은 인성은 이런 피로파괴에 대한 저항성(피로강도)을 높여줍니다. 즉 인성이 높은 소재여야 날을 예리하게 세워서 쓰기에 적합하고, 높은 절삭력의 날물에 어울린다는 이야기입니다.

 

 한편으로 칼날이 일정 이상 길어지면 인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옛날 백병전 시대에 사용하던 전투도검을 만든다고 가정하면, 경도보다는 인성이 훨씬 중요합니다. 장검정도의 질량과 길이를 가지는 도검은 날을 바짝 세우지 않아도 인체에 치명적인 대미지를 쉽게 가할 수 있기 때문에 날 유지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인성이 부족하면 충격이 가해졌을 때 부러져 버립니다.

 

 

 

 

녹슨 스테인리스 주방칼

C) 내부식성

 

 실제 칼을 사용할 때 내부식성은 꽤 중요한 요소입니다. 칼 관리를 잘하더라도 녹이 잘 쓰는 칼은 시간을 더 쓰게 됩니다. 일반 가정은 칼을 원체 막굴리는 집이 많으니까 강철칼을 사용하는 주부는 별로 없고요.

 

 철에 합금했을 때 내식성에 가장 크게 관여하는 금속은 크롬이고, 그 다음이 니켈. 그 다음이 망간과 몰리브덴쯤 됩니다. 그리고 탄소는 크롬과 결합하기 때문에 내식성을 떨어뜨립니다. 즉 탄소를 많이 넣어 경도를 올리면 내부식성은 낮아집니다.

 

 스테인리스라도 냄비 만드는 오스테나이트계에 비해 칼 만드는 마르텐사이트계는 내부식성이 낮습니다. 경도확보를 위해 탄소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경도가 높을수록 녹이 잘 습니다. 그러니까 완전 저렴이 스텐 식칼은 보통 녹은 잘 안 습니다. 탄소함량이 낮고, 칼날 유지력이 떨어지는 대신 그나마 내식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내식성에 완전히 특화된 칼도 있긴 합니다. 세라믹이나 티타늄같은 소재 칼이요. 세라믹 칼은 아예 녹이 슬지 않지요.

 

 시중에 드물지만 내식성이 매우 높은 질소합금소재 칼도 있긴 합니다. 스테인리스에 탄소 대신 질소를 합금하게 되면 경도, 인성, 내부식성이 다 같이 일정 이상 높은 스틸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일정 이상 질소가 섞인 합금은 매우 만들기 힘들다는 겁니다. 그래서 비싸고요. 프라이팬 같은 거 만들 때 질화철을 표면에 만드는 공정은 그렇게까지 어렵거나 완성품이 비싸지 않지만, 질소합금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감자칩을 사도 봉지 안에 주로 들어있는 게 질소입니다만, 그 질소를 철과 합금하는 건 큰 규모의 장비를 필요로 합니다. 실제 질소합금 칼 써보면 좋긴 좋습니다. 비싸고 구하기 힘들다보니 추천은 못합니다만.

 

 대조적으로 내식성이 극단적으로 낮은 소재는 백강입니다. 철과 탄소 외에는 최대한 제거한 소재라서, 부식을 막아줄만한 성분이 없습니다. 나는 백강 칼은 젖은 상태로 두지도 않고 새콤한 걸 자르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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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지역 소개 - 6. 중구 본토

사회 2023. 1. 15. 17:05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youtu.be/czTygKKU0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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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양구 - 1) 계산, 작전동 일대

1. 계양구 - 2) 외곽 및 산악지대

 

2. 부평구

 

3. 남동구 - 1) 구월, 간석, 만수동 일대

3. 남동구 - 2) 남촌도림동, 장수서창동, 논현동 및 고잔동

 

4. 서구 - 1) 옛 서구 지역

4. 서구 - 2) 청라국제도시와 루원시티, 검암/경서동 및 경인아라뱃길과 정서진

4. 서구 - 3) 검단

 

5. 동구

 

 

 

 

 

 인천 중구는 본토와 섬지역인 영종/용유/무의도를 분리해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인천 중구의 넓이는 무려 140.27(중구 홈페이지 표기 기준)로 광활한 서구보다도 더 넓어 인천광역시 자치구 중 가장 넓습니다만, (군지역 제외. 인천광역시 기초자치단체 중에는 강화군, 옹진군에 이어 세 번째 넓이입니다.) 본래의 중구라 할 수 있는 본토지역 넓이는 대략 15정도밖에 안 되고 대부분의 면적이 섬지역입니다. 그리고 영종도에는 중구 본토에서 다리가 이어져 있지 않습니다. 영종도에서 인천역으로의 철도교량건설계획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고 있습니다만, 언제 실현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지금은 중구 본토에서 영종도로 가려면 월미도에서 배를 타야 합니다. 의외로 다리 건설 후에도 카페리를 이용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는 있습니다.

 

 실제 중구 본토와 영종도는 다분히 따로 놀고 있고, 외지인 비율이 높은 영종도 주민들 쪽에서 중구 행정 등이 본토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에 불만이 매우 크다 보니 향후 분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경우 동구 소개할 때 이야기했듯 현재의 동구와 중구 본토가 합쳐져 단일구가 되고, 영종/용유/무의도는 영종구로 분구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인천 본토에서 영종도로 통하는 교량은 서구에서 진입 가능한 영종대교와 연수구에서 진입 가능한 인천대교가 있습니다. 두 교량 다 인천 중구 본토에서는 가깝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아예 중구 본토와 영종도 쪽은 따로 다뤄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하 그냥 중구로 표기하는 경우 섬지역을 제외한 본토를 지칭하는 뉘앙스가 있는 것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중구는 개항 이후 원인천의 중심지였고, 1990년대 초중반까지도 중심지로 인식되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 인천의 중심지가 구월동으로 옮겨가면서 쇠퇴했지만, 관광지로의 변신을 위해 노력한 결과 지금은 관광지로는 나쁘지 않은 상태가 되어 있지요. 인천역 인근 차이나타운과 월미도는, COVID-19 이전을 기준으로 하면 근래엔 인천 관광지 중 No.1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90년대만 해도 인천 최고의 번화가로 꼽히던 동인천역 일대는 과거의 영광은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관광지로나마 어느 정도 살아있는 편이고, 경인선 북쪽 동구의 배다리나 화평동 쪽에 비하면 개항장거리 및 중구청 일대는 그래도 상태가 괜찮습니다.

 

 인천지역에서 문체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하는 한국관광 100선에 (2013년부터 2년마다 선정) 선정된 곳들 중 다수가 중구 본토에 있기도 합니다. 차이나타운의 경우 15-16년만 빼고 13-14, 17-18, 19-20, 21-22, 23-24 5회 선정되었고, 개항장문화지구는 21-22, 23-24 2, 송월동 동화마을이 17-18, 23-24 2, 월미도가 19-20 1회 선정되었습니다. 이 중 개항장문화지구(=개항장역사문화의거리=개항장누리길)의 일부는 차이나타운과 겹치고, 차이나타운과 송월동 동화마을은 거의 붙어있다시피 가깝습니다. 그리고 월미도도 차이나타운과 그리 멀지 않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중구 일대엔 주거지역이 넓지 않습니다. 대신 옛날엔 체감인구밀도가 지금보다는 높았었고, 주택가는 미추홀구쪽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중구쪽이 번화한 중심가였습니다. 동인천역에 인천백화점이 있었고요. 그런데 80~90년대에 미추홀구 및 구월동쪽에 주택이 늘어나고, 시청이 구월동으로 이전하면서 90년대에는 주안역 일대가 한남정맥 이남 인천지역 제2 중심지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90년대에 연수구 연수지구가 개발되고 인천지하철 1호선이 완공되고, 인천터미널이 현 관교동 위치로 이전하고 그 바로 앞에 신세계백화점이 생기면서 이후 00년 들어서는 아예 도시 중심지가 구월동으로 옮겨가고, 경인선 의존도가 높던 원인천 및 미추홀구 쪽이 점차 쇠퇴하고 맙니다. 참고로 이 서술에서 부평은 논외입니다. 부평은 1981년부터 이미 동인천역과 주안역의 이용객수를 뛰어넘습니다.

 

 대략 시대별로 보면 인천은 경인선을 따라 먼저 도시화되었고, 이후 외곽 지역으로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그래서 중심상권의 이동이 두드러지는 도시인데, 중구 본토는 원래 주거지역이 좁고 지형적으로는 곶이고 구릉지인데다, 도로교통의 발달로 인해 인천항을 통한 물류공급 중심지로의 가치가 현대에 들어 크게 쇠락하였기 때문에 중심지로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현대의 중구 본토는 항만 및 공업, 그리고 관광을 주로 담당하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중구 본토 지역은 독특할 만큼 법정동이 굉장히 세분되어 있습니다. 일제 때 행정구역의 영향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으로 분류할 만한 사이즈가 아닌 구역이 개별 법정동으로 분류되어 있고, 그래서 세부 지역별 이름이 다 있는 편입니다. 워낙 세분되어있다 보니 행정동명을 많이 쓰고요.

 

 원인천의 번영은 개항 및 경인선과 역사를 함께 합니다. 경인선 철도는 지금은 여객전용이 되어 있지만 불과 20207월까지만 해도 화물열차를 운행하였고, 현재는 폐선이 되어버렸지만 얼마 전까지 인천역에서 꽤 떨어진 연안부두 남쪽 석탄부두까지 깔린 선로가 이용되었었습니다. 90년대만 해도 경인선에 화물열차가 꽤 다녔던 걸 기억합니다.

 

 중구에 속한 경인선 역은 인천역과 동인천역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일곱 철도역 중 둘이지요. 그리고 2016년에 생긴 수인선 신포역도 중구에 속해 있습니다. 도원역은 실제 중구 권역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만, 공식적인 소재지는 동구입니다. 다만 도원역이 이름을 딴 도원동은 중구에 속해있습니다. 도원역의 전신(前身)은 최초의 일곱 철도역 중 하나였고 경인선 기공식을 치른 장소이기도 했으나 1906년에 사라진 우각동역인데, 우각동은 옛 지명으로 현 도원역 북동쪽 우각로 일대를 의미합니다.

 

 경인선 개통 당시에 인천역의 영문 역명은 제물포역이었고, 동인천역은 축현(杻峴)역이었습니다. 원래 조선 시대 때 현 인천역 인근에 있는 포구의 이름이 제물포였고, 그 일대를 제물포라 불렀지요. 지금이야 현 제물포역 쪽을 제물포라 하기 때문에 혼동되니까 인천역 일대를 제물포라 하진 않습니다만, 현재의 제물포역 인근은 물이 들어오기엔 너무 바닷가에서 먼 위치라 원래 제물포라는 이름이 붙을 수가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杻峴은 잘 쓰던 한자가 아니었고, 은 뉴, , , 축 등으로 다양하게 발음되는 한자다보니 일제 들어 1926년에 유현역은 상()인천역으로 개명됩니다. 한글/한자명 인천역, 영문명 제물포역은 이후 영문으로도 인천역이 되고요. 상인천과 대조하여 바닷가 인천역 일대는 하()인천이라 불리게 됩니다. 그러니까 원래 상인천은 동인천 일대를 의미했는데요. 이후 1955년에 상인천역은 동인천역으로 이름을 개명한 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대가 지나면서 상인천이라는 지명의 의미도 좀 변하게 됩니다.

 

 1970년대에 동인천 주변에 있던 상인천중학교와 상인천여자중학교가 남동구 간석동 일대로 옮겨갑니다. 그리고 80년대에는 그 주변에 상인천초등학교가 생깁니다. 올리브백화점 인근에 있지요. 그래서 현대에는 상인천은 동인천 일대의 옛 이름인 동시에 남동구 간석동의 지명이 되어버렸습니다. 원래는 동인천의 이명이었는데요. 상인천여중도 남동구에 있는데, 인천시청 인근에 있습니다.

 

 한편으로 남동구에는 동인천이름을 가진 곳도 여럿 있습니다. 80년대에 원래는 미추홀구 도화동에 있던 동인천고등학교가 만수동으로 옮겨가서 말 그대로 인천 동쪽에 있는 고등학교가 되어버렸고요. 동인천중학교는 상인천여중 근처에 있습니다. 현재 인천 남동구가 실제 지리적으로 인천광역시에서 동쪽에 있어서 그 의미로는 더 어울리긴 합니다. 한편으로 동인천여자중학교는 좀 엉뚱하게 서구 가좌동에 있습니다.

 

 동인천이라는 이름이 워낙 현재의 인천광역시 권역에 안 맞기 때문에, 향후 동구가 개명을 하면 어쩌면 동인천역도 개명하자는 목소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동인천역이 동인천이라 이름 붙은 시점도 1955년부터기도 하고요. 그 시점에 동인천이라 부르는 건 사실 그 자체로 잘못이었지요. 다만 현재 인천에서 그냥 동인천이라 하면 거의 혼동 없이 동인천역 인근을 지칭합니다. 현 시점에서는 동인천역이라는 이름을 개명하자는 의견이 나오더라도 그게 받아들여질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천역 동쪽에 있어서 동인천역이라 부르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꽤 있을 거고요. 다만 나는 개명에 찬성하는 쪽입니다. 사실 인천역도 개명했으면 좋겠습니다.

 

 동인천역에서 인천역까지의 선로는 많이 굽어있고, 그래서 매우 느린 속도로 달립니다. 그 선형이 경인선 급행열차의 기점이 동인천역인 한 이유고요. 동인천역과 인천역 사이에 응봉산이 있어서 그런데요. 이 응봉산 일대가 현재 월미도와 함께 인천 최고의 관광지입니다. 그곳에 개항장역사문화의거리, 차이나타운, 자유공원, 인천기상대, 송월동동화마을 등이 있습니다. 한 때 경기권 Top 5였고 인천 최고 명문고였던 제물포고등학교도 있고요. 제물포고의 평준화가 인천을 많이 쇠퇴시켰지요.

 

 인천역 주변은 대중교통으로 방문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만, 수도권 관광지치고는 무료주차가 가능한 편입니다. 무료주차 가능한 작은 주차장들은 많은데 금방 차고요. 여유롭게 무료주차를 하고 싶으면 인천역에서 도로를 따라 500미터 정도 떨어진 (직선거리는 200미터 조금 넘는 정도지만, 질러가는 길이 없습니다.) 월미로에 있는 제8부두 주차장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네비에 제8부두 주차장이라고 찾으면 됩니다. 주차공간이 아주 넓고, 항상 무료로 이용 가능합니다. 가족과 함께 왔더라도 가족들은 인천역 쪽에 내려주고 기동성 좋은 아빠만 8부두까지 다녀와도 되지요. 다만 8부두쪽을 재개발한다는 이야기가 있으니까, 언제까지 주차가 쉬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일단 사견으로는 8부두 무료주차가 워낙 좋아서 계속 무료주차가 가능했으면 합니다.

 

인천IC에서 인항로쪽으로 직진하는 대신 아암대로로 우회전을 추천합니다

 다만 원인천쪽으로의 도로접근성이 그렇게 좋지는 않은데, 어지간한 지역에서는 구 경인고속도로(현 인천대로)를 이용하는 게 그나마 가장 낫습니다. 팁은 경인고속도로 종점인 인하대병원사거리쪽을 향할 때 도화IC쪽에서는 가능한 1,2차로를 이용한 다음, 사거리쪽에서는 바깥 차로로 이동하라는 겁니다. 그래야 도화 IC로 빠져나가려는 차량들과 인하대병원사거리에서 좌회전하려는 차량 행렬을 피할 수 있고요. 인하대병원사거리에서 8부두까지 가는 길이 그리 좋지는 않은데, 거기서부터는 그냥 느긋하게 가면 됩니다. 어차피 멀지는 않고, 그나마 우회전해서 아암대로-제물량로를 타는 게 직진한 다음 서해대로를 타는 것보다는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다만 야간에는 서해대로를 타도 됩니다. 서해대로는 화물도로라 주간이 주로 막힙니다.

 

 월미도는 이름처럼 본래 섬입니다만, 간척사업으로 오래 전에 육지로 이어졌습니다. 인천역에서 월미도는 그리 멀지 않아서 잘 걷는 사람은 도보로 30분가량 걸으면(2.5km 정도) 유원지 및 선착장까지 갈 수 있고요. 버스도 많이 다니고, 착공 및 개통 과정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월미바다열차(옛 가칭 월미은하레일. 이 이름으로 아는 분도 많을 겁니다.)로도 방문할 수 있습니다. 착공 당시 부실시공 등으로 참 말도 탈도 많았는데, 2019년에 겨우 완공되어 운영 중입니다. 성인 기준 8000원 내면 3회 탈 수 있습니다. (내렸다 또 타는 식으로) 롯데월드 모노레일이나 서울대공원 코끼리열차 같은 거라 생각하면 됩니다. 표정속도 10.5km/h라 대략 조깅하는 속도니까 빨리 가고 싶은 분은 버스 타세요. 월미도도 유명세나 번화함 대비 주차하기는 그럭저럭 용이한 편입니다. 관광객을 노리는 유료주차장이 많지만, 잘 찾으면 무료주차도 가능합니다. 일단 이민사박물관쪽은 무료주차거든요.

 

 월미도는 불황을 잘 모르는 곳이고, 최근에는 COVID-19 때문에 대미지가 컸지만 날씨만 나쁘지 않으면 활기가 넘칩니다. 날 좋은 날 가보면 모두가 신나서 날뛰고 있지요. 애들을 데리고 온 엄마들만 지쳐 있을 뿐, 남녀노소 모두가 업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월미도에는 작은 유원지가 많은데, 마이랜드가 가장 유명합니다. 마이랜드 옆의 비치랜드와 원조(인어)바이킹은 일단 다른 테마파크고, 근래 생긴 길 건너편 월미랜드도 독립된 테마파크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잘 구분하지는 않지만 독립된 테마파크들이라 통합 자유이용권 같은 게 없고요. 마이랜드 근처에만 바이킹이 4개 있어서 뭐가 악명 높은 월미도 바이킹인지 잘 모를 수 있는데요. 일단 유명한 건 마이랜드 바이킹이긴 한데, 경험적으로 제일 무서웠던 건 마이랜드 거 말고 그 옆의 원조바이킹이었습니다. 자리 잘 고르면 실체감 각도 110도 정도의(수직이 아닙니다. 더 올라가요.)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경사각을 체험할 수 있지요. - 나는 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 - 팁을 이야기하자면 평일 이른 낮에 가세요. 사람 없으면 오래 태워줍니다.

 

 최근에는 마이랜드 근처 외에도 선착장 남쪽에 월미테마파크라는 또 하나의 테마파크가 생겨 있습니다. 다른 데서는 테마파크들이 망하는데, 특히 송도유원지는 언제 다시 생길지도 모르는데 월미도는 워낙 잘 되서 최근에도 계속 테마파크가 생기면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월미도 테마파크의 특징이라면 아동 이용객보다 청소년 및 청년 이용객들이 많다는 겁니다. 애들이 타기에 월미도 바이킹은 너무 무섭기도 하고, 디스코팡팡이라고 유명한 게 있는데 그것도 애들 타는 게 아닙니다. 월미테마파크에도 바이킹이 있기 때문에 현재 월미도의 바이킹은 총 5대입니다. 2016년 이전에는 3대였는데, 2016년에 2대가 더 생겼습니다. 2015년에 바이킹 세 대 중 한 대에서 사고가 나서 (마이랜드 건 아니었던 걸로 압니다.) 한동안 폐쇄도 되고 이후 각도를 70도로 조절한다고 기사가 나기도 했습니다만... 그리 저각이어서야 어디 월미도 바이킹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잠깐 말 나올 때만 저각 운영 하다가 각도 점점 다시 고각으로 높이는 게 월미도 정신이지요. 다만 암흑기 때 타보신 분들은 명성에 비해 안 무섭다고 느낀 분들도 있긴 할 거고요. 20231월 현재 최근에는 다시 각을 완만하게 바꾼 시기인 것으로 소식이 들려오긴 합니다만, 계속 그러면 월미도가 아니겠지요.

 

 월미도에는 유원지 외에도 선착장과 바다를 끼고 조성된 문화의거리, 전통정원이 있는 월미공원과 월미산 전망대, 폐쇄된 등대를 활용한 등대길, 이민사박물관 등이 있습니다. 백사장같은 장소는 아니지만 인천 사람들이 바다 구경하러 오는 대표적인 장소가 월미도입니다. 인천 본토에서 의외로 바다 구경할 만한 장소가 별로 없는데, (여러 번 이야기하지만 인천 본토 바닷가는 거의 공단과 항만입니다.) 그나마 월미도가 접근성도 좋고 간편하게 바다 보기 좋거든요. 옛날에는 물이 좀 지저분했지만 개선이 꽤 되었고요. 2010년대 이후 바다볼 수 있는 다른 장소인 정서진이 생기긴 했지만 아직 월미도의 명성과 인프라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월미도에서는 유람선을 탈 수 있는데, 아라뱃길 유람선이 대실패중인 것과는 달리 월미도 유람선은 영업이 잘 됩니다. 아라뱃길까지 한 번에 다니는 코스 만들어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런 코스는 없는 것 같고요. 아라뱃길 입구인 정서진까지만 다닙니다.

 

 인천역 인근의 차이나타운은 알려져 있다시피 짜장면이 발명된 곳입니다. 차이나타운뿐만 아니라 중구에는 잘 하는 중화요리집들이 많습니다. 인천 차이나타운의 화교들은 대체로 산둥성 출신으로 1800년대 후반 청나라 시절부터 우리나라에 넘어왔고, 거의 중공 국적이 아닌 귀화 한국인이거나 중화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는 기독교가 많고요. 그래서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오성홍기가 걸리지 않고, 중화민국 국기가 걸리곤 합니다. 조선족도 거의 없습니다. 치안문제 없고, 시끄럽지 않습니다. 서울 대림동 등지와는 완전히 다른 곳입니다. 인천의 귀화 화교 후대들은 네이티브와 혼인하여 사는 경우가 많으며, 후손은 완전한 네이티브 한국인입니다. 참고로 차이나타운을 비롯한 인천 중구에서 파는 중화요리는 한국화된 산둥(산동)식 중화요리로, 근래 많이 파는 둥베이(동북)식 중화요리와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 꿔바로우는 둥베이식이라 대림이나 양꼬치집에서 먹는 게 맛있고, 인천 차이나타운에서는 길쭉한 탕수육을 먹는 게 맛있습니다.

 

 1888년에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근대식 공원, 자유공원은 그 유명한 맥아더 동상이 있는 곳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의 승전을 기념하는 장소이기도 하지요. 언덕을 오를 필요는 있지만, 아름답고 좋은 공원입니다. 주변에 차이나타운을 포함, 전시시설 등이 많고 관광하기 좋게 되어있으니 많이들 방문하여 즐겨주시기를 권합니다.

 

 한편으로 자유공원은 심심찮게 맥아더 동상 철거하라는 좌파들이 테러를 저지르는 곳이기도 합니다. 2018년에는 한 반미단체 목사가 2차례에 걸쳐 맥아더 동상에 불을 지르기도 했지요.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가 저지른 큰 실수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맥아더는 나름대로 존중받을 필요가 있으며 맥아더 동상 철거하라는 좌파들은 용인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맥아더는 한국전쟁 이전 태평양전쟁에서 태평양방면 연합군 총사령관이었으며, 그렇기에 대한민국 광복의 주역입니다. 즉 맥아더 동상에 대한 철거요구는 단순한 종북행위일 뿐만 아니라 극단적인 친일행위이기도 합니다. 맥아더 동상 철거하라는 것들이 진짜 토착왜구지요.

 

 인천상륙작전은 비록 그 작전 중 인천 지역에 거주하는 민가에 오발사고가 다수 있어 불행한 결과를 낳은 면도 있었으나, 전략적으로 대단히 성공적인 작전이었습니다. 동시에 어려운 작전이었고요. 거의 전적으로 맥아더의 결단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좌파들은 인천상륙작전의 전과를 폄하하려는 시도를 언제나 멈추지 않는데, 걸러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맥아더 동상 옆에 리지웨이 동상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리지웨이가 더 나은 사령관이었지요. 무고사가 이적하지 않았으면 무고사 동상도 만들어야 했을 건데요.

 

 일본식 건축물이 남아있는 개항장역사문화의거리에 있는 중구청은, 1933년 완공된 후 1985년까지 인천시청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85년에 현재의 인천시청으로 시청이 옮겨가고, 이후 중구청이 되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원인천의 쇠퇴는 상상하기 어려웠고, 동인천 땅값은 전국 Top6 수준이었는데 시대가 흐르면서 거짓말처럼 쇠퇴해 버렸습니다. 지금 송도보다 그 시절 동인천이 더 잘나갔을 정도인데요. 지금은 관광지 관청이 다 됐지요. 그래서인지 인천광역시 북쪽으로 이웃한 김포시에서는 원도시민들이 시청이전에 결사반대하고 있습니다. 대구 시청이전 문제도 요새 말이 나오던데, 시청이전은 큰 안건입니다.

 

 개항장역사문화의거리는 오래 된 옛 도심으로 관광지화 중이지만, 근사한 옛 건물들이 아주 잘 보존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일제에 대한 감정적 반발, 장기적인 안목이 없는 도시관리 등이 주요 원인인 것 같은데, 구한말 컨셉 같은 걸로 도시정비를 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전주 한옥마을만 보더라도 구한말 컨셉 코스츔 플레이라거나, 사진 찍으면서 노는 분위기 같은 게 훨씬 잘 되어있거든요.

 

 한편 상기하였듯 중구 본토에 거주하는 인구는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오래 전에는 사람들이 중구 일대에 제법 모여 살았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상업지구화되다 이제는 상권도 쇠퇴한 이후 관광지가 된 것입니다. 해운과 철도가 지금보다 중요하던 시대는 중구 본토 일대를 번화하게 만들었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도로교통이 보다 중요해졌고, 중구의 도로망은 그리 좋지 못하기에 이젠 물류가 모이는 상권으로의 중구는 메리트가 사라졌습니다. 이제 중구는 일부러 외지에서 찾아가야 하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항만물류기능은 오히려 성장중이긴 합니다만, 화물항은 관계자들의 구역이지요.

 

 인접한 동구가 나름대로의 베드타운인 반면 중구 본토는 그 정도로 주거지역이 형성되어있지 않습니다. 중구 본토에 주택 자체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인천 중구 본토 면적 중 2/3정도는 항만 및 물류를 위한 공간이고, 나머지는 대부분이 상업시설입니다.

 

 도원동 일대 주거지역은 한 때 인천의 대표적인 부촌이었습니다만, 90년대부터 쇠퇴하여 이제는 상주인구도 줄었습니다. 연안동 및 신흥동 일대는 거의 전역이 항만과 그 부대시설입니다. 현지 노동자를 위한 것 같은 아파트들이 군데군데 있고요. 인천항과 연안부두어시장이 연안동에 있습니다. 인천항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제2의 항구로, 물동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입니다만 정부지원이 별로 없습니다. 인천은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받아야 할 지원도 못 받고, 규제와 인접한 서울 및 경기도의 견제 속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인천이 그리 체급이 낮은 편은 아니지만, 서울이나 경기도에 비하면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면서 같이 수도권으로 엮이니까 힘든 겁니다.

 

 연안부두어시장은 인천에서 오래 거주한 시민들이 선호하는 수산시장입니다. 보다 유명한 소래포구의 경우, 어촌계시장에서 좋은 물건을 구할 수는 있으나 일반 어시장은 연안부두어시장이 낫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다만 관광지로는 소래포구쪽이 압도적으로 흥행 중입니다. 외지에서 오기에도 소래포구가 편하고요. 소래포구 인근은 논현지구로 개발되어 주거지고, 쾌적하며 주변 일대를 관광하기 좋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인천에 살던 사람들이, 인천으로 이사 온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추천하는 어시장은 연안부두어시장입니다. 최근에는 근처에 고래마켓이라는 곳이 크게 생겨 회자되고 있던데 20231월 현재 나는 아직 방문을 못해봤습니다.

 

동인천역 일대에 비해 인천IC(인하대병원사거리)는 여전히 차량통행량이 많습니다

 인천 중구 원도심은 도심으로의 기능은 물론 도시 중심가로의 번화함도 크게 잃어버렸으며, 과거의 번화함을 되찾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보입니다. 인천역-동인천역 일대 인천 원도심은 다른 대표적인 항구도시인 부산역-부산항과 달리 지형상 만(Bay) 안쪽이 아니고 곶(Cape)이라 외부로의 교통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인천에서 부산역 정도의 위치에 대응하는 장소는 대략 구 경인고속도로(인천대로)의 시발점인 인하대병원 사거리 또는 숭의역 일대 정도입니다. 그쪽은 지금도 차량이동이 매우 많은 곳이지요. 지난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번화해지고 있고요. 만일 용현동 쪽이 원도심이었고, KTX 아니라 무궁화호라도 다녔으면 아직도 쇠퇴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도원역 일대는 중구와 동구 및 미추홀구의 경계입니다. 그리고 중구와 미추홀구 경계에 인천축구전용경기장, 통칭 숭의아레나가 있습니다. 경기장의 공식 소재지는 중구 도원동 참외전로 246 인데, 흔히 불리는 이름은 상기한것과 같이 미추홀구 숭의동 이름을 붙인 숭의아레나입니다. 인천유나이티드의 홈경기장입니다. 도원역의 개통 전 가칭은 운동장역이었으나, 서울에 종합운동장역이 있어 도원역으로 개통했다고 하는데 문제는 제물포역을 사이에 둔 도화역과 쉽게 혼동된다는 겁니다. 도원과 도화는 검단과 검암, 부평과 부개와 함께 인근에 있고 이름이 비슷해서 외지인이 혼동하기 쉬운 인천 지명 중 하나입니다.

 

 숭의아레나는 처음에 미추홀구 숭의동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습니다만, 건설 과정에서 중구청과 미추홀구청(당시에는 남구청) 사이의 알력다툼이 있었습니다. 부지가 두 자치구의 경계에 있고요. 그 결과 북쪽 골대는 중구 권역이고 남쪽 골대는 미추홀구 권역이 되어버렸는데요. 남쪽 골대쪽이 인천 유나이티드 서포터석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보니 정식 명칭은 인천축구전용경기장으로 확정되었지만 축구팬들에게는 그냥 숭의아레나, 약칭 숭의로 계속 곧잘 불리고 있습니다. 원래 여기 있던 축구/육상경기장이 숭의종합경기장이라 숭의아레나라고 부르는 게 익숙하기도 하고요. 원정팀 서포터들은 중구 도원동에서 응원을 하다 돌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실제 경기장 면적의 대부분은 중구 도원동 권역이긴 합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좋은 구장인데 인천이 전국 대도시 중 가장 추운 편인데다 구장 설계가 해가 잘 드는 편이 아니다보니 잔디 문제를 겪고 있긴 합니다. 그래도 아시아드경기장처럼 놀고 있진 않아서 좋아요.

 

 한편으로 원인천에는 수인선 송도-인천 구간이 2016년에 개통되어 이제 수원으로의 이동이 쉬워져 있습니다. 실제 인천은 서울과 쌍둥이 도시 격으로 독립성을 가지고 있고, 수원도 사실 광역시급 도시라 독립성을 가지고 있는데요. 인천-수원간의 교통은 그리 좋지 못했었습니다. 특히 수인선 협궤열차가 사라진 후 재개통되기 이전이었던 1995년부터 2012년까지는 자차가 없는 이상 영 다니기가 안 좋았지요. 대중교통으로 원인천에서 연수지구 쪽에 가는 것도 영 좋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원인천에서 연수구나 남동구 남쪽으로 갈 때는 수인선을 타면 편하게 갈 수 있습니다.

 

 현재 수인선은 수원을 넘어 분당선과 직결되어 수인분당선으로 불립니다. 인천역에서 출발하여 오이도-한대앞 구간은 4호선과 겹쳐지고, 이후 수원까지가 수인선 구간이고요. 거기서 바로 분당선으로 이어져 용인시, 성남시를 지나 강남과 한강을 넘어 경원선 구간 청량리까지 직결됩니다. 공식적으로 광역철도인데, 인천-청량리 전 구간을 다니는 수인분당선은 워낙 장거리라 배차가 많지 않고요. 인천역에서 그냥 청량리로 가려면 당연히 경인 1호선을 타는 게 훨씬 빠릅니다. 이동시간을 무시한다면, 인천역에서 환승 없이 청량리역으로 직행하는 열차가 두 노선인 겁니다.

 

 나는 앞으로 원인천은 관광지로 잘 가꾸어가야 하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인천공항에서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으면 좋겠고요.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월미도와 차이나타운 주변을 제외하면 많이 아쉽습니다. 역사적인 유산들을 더 잘 가꾸고 남길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싶고요. 워낙 번화했던 곳이라 어떻게든 쇠퇴를 막으려고 했던 온갖 시도들 속에서, 현 시점에서는 그나마 남겼으면 좋았을 옛 모습을 잃어버린 부분들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원인천을 서울의 4대문 쪽에 빗대기엔, 원인천의 전성기는 불과 100년 정도일 뿐만 아니라 애초에 구릉지 곶이라서 지형이 너무 다릅니다. 그리고 중구쪽에 본래 그나마 있었던 일본식 건물들은 역사적 문제로 충분히 보존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장기적으로 접근한다면, 진짜로 방문하고싶은 공간을 만들어서 오래 유지할 방안을 마련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주차장의 확충이 중요합니다. 8부두가 가까운 차이나타운은 그나마 주차공간이 있는 편이지만, 동인천역쪽은 주차가 수월하지 않습니다.

 

 한편으로 중구 일대가 현 시점에서 인천을 과도하게 대표하는 느낌도 없지는 않습니다. 실제 인천 사람들이 느끼고 기억을 가지고 있는 중구와, 인천 외부에서 보는 중구가 좀 다릅니다. 중구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던 건 정말 오래 전 일입니다. 중구가 진짜로 인천의 중심지였던 건 80년대 초반까지였다고 할 수 있고, 이후 00년대 초반까지는 그래도 도심으로 인식되었지만 실제로는 지속적인 쇠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30~50대 인천 토박이라 할지라도 중구에 아주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인구는 그리 다수가 아닙니다. 진짜로 중구의 전성기를 청년기에 체험했던 인구는 대체로 이제 노년이 되었고, 청장년층은 대체로 부평, 주안, 석바위, 동암, 구월동 등이 더 친숙하고 더 많은 추억을 가진 곳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다수의 인천 토박이 청장년층에게도 중구쪽은 친숙한 곳이라기보다는 같은 도시 내에 속한 관광지에 가까운 느낌인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종종 놀러가던 곳에 가깝지요. 그리고 인천에 실제 거주하는 사람들 중 다수는 가뜩이나 부족한 인천 재정이 원인천에 지나치게 투자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실제 살아가는 공간 근처에 보다 투자되었으면 하는 것이지요. 원인천은 대다수에게는 이제 그런 공간이 아니고요.

 

기타 의류 소재 (Ver. 1.1)

카테고리 없음 2023. 1. 12. 15:27 Posted by 해양장미

(2023. 01. 13. 가죽 내용 수정. Ver. 1.1)

 

 

 본문에서는 지난 포스트, ‘섬유의 종류에 이어 섬유가 아닌 의류 및 침구 등에 사용되는 소재에 대해 다룹니다. 의류에 사용되는 소재들 중 섬유가 아닌 것을 분리한 것입니다. 향후 버전업할 계획입니다.

 

 

 

 

 

 

가죽

 

: 동물의 피부입니다. 대체로 가축으로 키우는 포유동물의 피부를 사용하지만 비늘이 있는 악어, 뱀 등의 가죽이나 깃털이 뽑힌 자국이 있는 타조 가죽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포유동물의 경우 털을 제거한 상태를 가죽이라 부르며, 털이 있는 상태는 털가죽(모피)이라 부르며 구분합니다

 

 가죽은 가공이 어렵고, 잘 가공된 양질의 가죽은 의외로 귀합니다. 포인트는 표피와 모공이 살아있게 가공하느냐입니다. 표피는 체외에서 동물의 몸을 보호하는 핵심적인 기관이기에 기능적으로 뛰어나지만 매우 얇은 부분이고, 모공이 살아있게 가공한 가죽은 보기와 달리 통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 동물이 피부로도 호흡을 할 수 있듯, (사람도 호흡량의 0.6% 정도는 피부로 호흡합니다.) 가죽도 미세한 기공들이 뚫려 있는데 표피와 모공을 살리면서 가공하면 비싸집니다.

 

 비싸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흔히 도자기 피부라 부르는, 피부가 아주 좋은 사람은 적어도 성인이 된 사람 중에는 드문데요. 현대인은 그나마 실내생활하고 관리해서 피부가 좋은 건데도 이런 겁니다. 동물은 사람보다 피부가 보통 약하고, (사람은 털이 거의 없어서 대신 피부가 강합니다.) 거의 예외 없이 피부 상태가 온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표피와 모공을 살려서 가공할수록 가죽에 할 수 있는 처리는 줄어듭니다. 최고 품질 (/)가죽을 흔히 ‘()아닐린이라 하는데, 이건 원천적으로는 아닐린이라는 염료로 염색만 했다는 뜻입니다. 이런 가죽은 생전에 유독 피부가 좋았고, 도축과 가공 과정에서도 손상이 되지 않은 일부 동물의 피부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상품성이 있단 이야기입니다. 표피를 최소한으로 제거하고 가공을 최소한으로 한 아닐린은 감촉이 좋지만 비싸고 약합니다. 실제 우리 피부를 긁으면 손상이 되듯, 아닐린으로 염색만 한 가죽도 그렇게 쉽게 손상이 됩니다. 그나마 우리 피부는 미세한 손상은 금방 재생되지만 이미 죽은 동물로 만든 아닐린은 재생되지 않습니다. 가구로 치면 원목에 오일만 먹여둔 것과 유사합니다. 진짜 아닐린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잘 보기 힘들다고 보면 됩니다. 실제로는 염색만 한 아닐린은 너무나도 내구성이 약하고 문제가 발생하기 쉽기 때문에 얇은 투명코팅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세미아닐린과의 경계는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아닐린 소파

 

 세미 아닐린은 보다 널리 사용되는 고급 가죽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아닐린에 비해서는 표피를 조금 더 깎아내고 도료(안료)를 살짝 사용하는 차이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아닐린처럼 표면이 쉽게 손상되지는 않는데, 아닐린에 육박하게 통기성이 있고, 아닐린만큼은 아니라도 감촉도 매우 좋습니다. 그리고 아닐린 정도는 아니지만, 아닐린처럼 본래 동물이 가지고 있던 피부의 손상이 드러납니다. 다만 아닐린처럼 사용하면서 앤틱한 파티나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진짜 아닐린은 잘 관리하면서 사용하다보면 고급스럽게 파티나가 생깁니다.

 

세미아닐린 소파

 

 상기했듯 우리나라에서는 진짜 풀 아닐린은 잘 보기 어려운데, 가격도 풀 아닐린이 더 비싸지만 그보다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편적인 취향이 풀 아닐린 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풀 아닐린은 자연스러운 색감과 흉이 있고, 고전적인 관리가 필요하며 고풍스럽게 변화해가는 게 핵심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다 강한 발색과 시각적인 매끄러움, 그리고 관리의 용이성을 좋아하기 때문에 최고급 제품이라도 세미 아닐린을 사용합니다. 고급 가죽제품의 발색이 선명하고 흉이나 흠집이 별로 없다면 그건 가장 좋은 경우에 세미 아닐린입니다.

 

 한편으로 아닐린이나 세미아닐린은 풀그레인 가죽입니다. 풀그레인이라는 건 가죽의 겉 표면까지 사용한 가죽이라는 뜻인데요. 풀그레인 쪽이 진짜 피부에 가깝기 때문에 감촉이 좋고 내구성도 강합니다만, 어지간히 좋은 가죽이 아닌 이상 온갖 흉터 등이 보이는 게 단점입니다.

 

 이 단점을 커버하기 위한 가공법으로 약품을 사용해 가죽을 수축시켜 모양을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방식을 적용한 걸 슈렁큰이나 내추럴이라고 합니다. 차이는 슈렁큰은 일반 가죽보다 두꺼운 가죽이고 내추럴은 슈렁큰에 비해 얇은 가죽입니다.

 

 여담으로 에르메스 백을 만드는 토고 가죽이 슈렁큰 카프(송아지 가죽)입니다. 에르메스 버킨백 같은 경우 어지간한 명품백들 늘어놓고 봐도 유독 예쁜데요. 소재가 일단 슈렁큰 카프인게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외 풀그레인 가죽을 활용하는 다른 가공방식으로 누벅이 있습니다. 누벅은 후술할 스웨이드(세무)와 비슷하게 풀그레인을 가공한 건데요. 섬유 원단으로 치면 기모 가공을 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피부에 좀 문제가 있는 가죽이라도 누벅 가공을 하면 보이는 문제가 많이 줄어듭니다.

 

 슈렁큰이나 내추럴 가공으로 해결이 안 되는 가죽은 (누벅이 아닌 이상) 표피층을 더 제거합니다. 그리고 표피층을 더 제거한 가죽 중 표피에 가까운 부분은 탑그레인으로 부릅니다. 탑그레인 가죽은 안료(피그먼트)로 색을 내고, 슈렁큰이나 내추럴 가공이 아닌 엠보를 찍는 방식으로 가공을 합니다. 엠보를 찍어 모양을 내는 작업을 한 걸 오플이라고 부르는데, 오플을 슈렁큰이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는 용어의 혼돈으로 보입니다. 이 정도 등급을 일반적으로 피그먼트라 부르는데, 풀그레인에 비해 보다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양질의 가죽입니다. 다만 안료(피그먼트)의 사용 자체는 완전한 아닐린이 아닌 이상 세미아닐린이라도 하긴 합니다

 

오플 피그먼트. 일정한 패턴에 안쪽까지 안료가 들어가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어떤 가죽 제품의 패턴이 온전히 동일하다면, 그 제품은 아닐린, 세미아닐린, 슈렁큰, 내추럴은 아닙니다. 오플은 패턴을 찍기 때문에 찍힌 모양이 균일합니다. 일반적인 가죽 제품은 찍힌 모양이 균일하지요. 대조적으로 세미아닐린은 모양이 별로 없어서 잘 봐야 보입니다. 가죽을 수축시키지도 모양을 찍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플도 신경써서 만들면 패턴이 꽤 복잡해서 얼핏 보기엔 슈렁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가죽은 안료와 약품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본래의 천연 가죽에서는 먼 것이 됩니다. 탑그레인 피그먼트까지는 가공을 할수록 감촉과 통기성, 자연스러움, 고급스러움은 떨어지고 범용성과 내구성은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탑그레인은 가죽의 면피 부분, 그러니까 표피와 유두층을 사용한 것입니다. 유두층 밑의 망상층(그물층)은 소가죽을 가공할 때 분리하게 되는데, 일정 이상 두꺼운 가죽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소 통가죽의 두께를 고려할 때 망상층까지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분리한 망상층도 일단 천연가죽은 천연가죽입니다. 이 안쪽 가죽, 내피를 스플릿 또는 도꼬라고 부릅니다. 또는 천연 가죽이나 ‘genuine leather(진품 가죽)’ 같은 표현도 씁니다.

 

 내피는 기본적으로 조직이 스웨이드(세무) 상태입니다. 풀그레인이라도 표피쪽 반대쪽은 스웨이드 상태지요. 내피는 원래는 양면이 모두 스웨이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걸 스웨이드 가죽으로 쓰면 문제가 없습니다. 원래 그런 조직이니까요. (표피를 스웨이드처럼 만들면 그건 상기했듯 누벅인데, 얼핏 보면 비슷하지만 질감이나 내구성이 다릅니다. 누벅이 더 고급입니다.)

 

 그런데 내피를 그냥 스웨이드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코팅 가공을 해서 탑그레인 가죽처럼 보이게 만들곤 하지요. 이런 가죽은 소속은 천연가죽이긴 한데, 사실 천연가죽이라는 게 의미가 별로 없습니다. 보이고 닿는 부분이 사실 가죽이 아니라 코팅이거든요. 코팅 벗겨지면 안쪽의 전혀 다른 내피 조직이 나옵니다. 코팅으로 완전히 덮어놓은 거라 통기성 전혀 없고요.

 

 적당한 가격대의 가죽 제품은 마모가 덜한 부분에 부분적으로 코팅 가공한 내피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탑그레인을 쓰건 스플릿을 쓰건 천연가죽이라 해도 거짓이 아니니까요. 내구성이 필요한 부분에 탑그레인을 쓰고 상대적으로 덜 닳는 부분에는 스플릿을 쓰기도 한다는 거지요. 그래도 일단 여기까진 천연가죽입니다.

 

 천연가죽보다 아랫등급으로는 재생가죽이 있습니다. 재생가죽은 말이 재생가죽이지, 가죽은 죽은 동물의 조직이라 재생이 불가능합니다. 가죽이 재생할 수 있다면 고기도 재생이 되겠지요. 재생가죽이라는 건 가죽 가루에 라텍스와 오일, 기타 약품을 섞어서 만드는 가죽계의 MDF입니다. 아예 인조가죽보다는 품질이 조금 낫다고 합니다만... 코팅 내피보다도 훨씬 떨어지는 물건이지요. 문제는 이런 게 지속가능한 친환경 재생가죽같은 식으로 불리고 있다는 거고요.

 

 그리고 재생가죽보다도 더 낮은 품질의 것으로 인조가죽이 있지요. 사실 가죽계에서 가장 흔한 게 인조가죽입니다. 코팅 내피에서 내피를 뺀 코팅만 남겨두고 그 아래쪽은 패브릭인 건데, 섬유의 종류에서 이야기한 폴리우레탄이나 폴리에스테르로도 만들고, 아니면 후술할 PVC로도 만듭니다. 인조가죽은 어디까지나 가죽처럼 보이는 비닐이고, 내구성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능도 본래의 가죽 기능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그나마 가진 기능이라면 비닐이니까 완전방수가 된다 정도일까요.

 

인조가죽은 쓰다 보면 거의 예외 없이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인조가죽은 주로 에코가죽같은 기가 막힌 이름이 붙여져서 팔립니다. 채식주의자, 환경주의자, 동물보호론자들이 망치는 대표적인 시장 중 하나가 가죽 및 모피 시장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진짜 가죽은 오래 아껴가면서 쓸 수 있는 반면, ‘에코가죽은 좀 쓰다보면 처참하게 부스러져서 못쓰게 되지요. 비건들은 모피는 물론이고 울, 실크, 천연 가죽을 모두 피하는데 합성소재 쓰면서 착한 친환경 소비 어쩌고 하는 걸 보면 기가 막힐 뿐입니다. 혼자 그러면 모르겠는데 산업계 전체에 큰 악영향끼칠 정도라.

 

 아. 그리고 가죽 제품 중 베지터블같은 표현을 쓰는 게 있는데, 이건 상기한 채식주의자들하고는 상관없습니다. 원체 이상한 시대다보니 인조가죽을 베지테리안을 위한 가죽으로 부를 수는 있을텐데요. 그런 게 아니라면 식물성 무두질을 한 가죽 제품을 의미합니다. 식물성 무두질은 일반적인 크롬 무두질에 비해 약한 가죽 제품이 나오기 때문에 잘 하지 않습니다만, 발색이 좋기 때문에 고급 가죽 제품에 제한적으로 사용됩니다. 순수한 아닐린 가죽에는 거의 식물성 무두질을 합니다.

 

 이상 상기한 내용은 가장 기본적인 소가죽을 기준으로 이야기한 것입니다. 물론 다른 가죽에도 비슷하게 적용 가능한데, 양가죽 같은 경우는 두께가 얇고 부드럽기 때문에 딱히 면피와 내피를 분리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돼지 가죽은... 사실 가죽으로 쓰기보다는 거의 식용하는 게 돼지 껍데기인데, 가죽도 쓰긴 합니다. 부드럽고 가벼우며 모공이 크고 표면이 매끄럽지 못한 게 특징인데요. 소가죽이나 양가죽처럼 그레인을 사용하는 경우는 잘 없고요. 부드러워서 안감으로 많이 쓰이고, 스웨이드 처리를 해서 스웨이드 가죽으로 많이 쓰입니다. 모공이 커서 통기성이 좋은 제품이 나오는 게 장점입니다.

 

 

 

 

 

 

 

모피

 

: 털을 제거하지 않은 가죽은 제조방식이나 관리방식이나 일반 가죽과는 꽤 다르기 때문에 구분합니다. 털만 사용하면 울입니다. 영어로는 퍼(fur)라 부릅니다.

 

 모피는 다운을 제외하면 가장 보온성이 높은 소재로, 선사 시대에 인류가 가장 먼저 아마 현생인류가 생기기 이전부터 이용하던 옷감입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제조하기도 어렵고, 가격이 높고 입는 입장에서도 무겁고 관리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는데다 자칭 동물 애호가들의 주 시비거리가 되어 거리에서 흔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모피코트와 목도리는 귀부인의 상징 같은 느낌입니다.

 

북방족제비

 모피는 부드러운 털이 발달한 일부 동물의 것을 사용합니다. 대표적으로는 밍크, 담비, 위즐(족제비), 토끼, 친칠라, 여우, 라쿤(미국너구리), 다람쥐, 코요테가 있습니다. 그리고 양가죽을 털까지 모피 형태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양 모피 중 가죽을 밖으로 드러내고 털은 안감으로 한 점퍼 또는 재킷/코트를 우리나라에서는 무스탕이라 부르는데, 양 또는 양 모피를 뜻하는 프랑스어 Mouton(무통)을 무스탕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게 통설입니다. 와인 드시는 분들에게는 Chateau Mouton RothchildMonton Cadet로 익숙한 단어일 겁니다. 물론 진짜 국내에서 유통되는 대다수의 무스탕은 진짜 양 모피로 만든 게 아니긴 합니다. 진짜 무스탕은 비쌉니다. 그나마 여성용은 저렴한 걸 찾을 수 있지만, 남성용은 여성용보다 현저하게 비쌉니다.

 

밍크. 밍크는 단일 종이 아니고, 털색이 다양합니다.

 족제비과 동물들은 털이 부드럽고 고급스러워서 예로부터 모피용으로 사랑받아왔습니다. 담비도 족제비과에 속하고, 밍크도 족제비의 일종입니다. 주로 여성용 고급 의류를 만드는데 쓰입니다.

 

 현대에 모피 코트와 목도리는 주로 여성용으로 사용되고, 남성용 의복에는 털가죽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잘 사용되지 않습니다. 현대 의복에서 남성용 복식은 간결하고 단정한 경향이 강하고, 20세기 초만 해도 일반적이었던 화려한 복식을 잘 하지 않게 된 게 한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또 한편으로 현대 복식에 지배적인 영향을 준 영국에서 남성이 털 부분이 드러나는 방식으로 모피 옷을 잘 입지 않은 게 원인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옛날 사람들은 현대인보다 활동적이었던 반면, 세탁은 잘 하지 못했던(특히 예전 유럽은 그랬습니다.)게 한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성용 모피 옷은 일반적으로 카라 부분을 제외하면 털은 안감으로 쓰고, 가죽 부분을 바깥쪽으로 드러냅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남성용 천연 모피 의류는 겉감이 털가죽이 아닌 이상 스웨이드여야 합니다. 상대적으로 귀부인들은 자신들이 신체적인 일을 할 일이 없다는 걸 드러내는 수단으로 모피를 드러낸 옷을 입게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 털 부분을 안쪽에 넣는 쪽이 보온성은 더 높긴 합니다.

 

 토끼는 모피를 활용하는 주요 품종 이름이 렉스입니다. 그래서 렉스퍼 같은 표현을 쓰는데요. 티라노사우루스가 아니라 토끼를 의미하는 겁니다. 토끼 모피는 안감으로 많이 쓰입니다. 렉스의 털 색깔은 매우 다양합니다.

 

 여우목도리는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여성용입니다만, 외국에서는 남성도 사용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것 같은데, 누군가 하고 다니게 되면 남들도 하고 다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모피 목도리는 깔끔하게 관리하려면 좀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모피는 가공과정에서 보통 기름이 꽤 먹여져 있는 상태입니다. 살아있는 동물의 털은 피지에 의해 계속 기름이 공급됩니다만, 죽은 동물의 털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탁할 때는 꽤나 신경 써줘야 합니다. 모피 세탁을 주로 하는 세탁소가 있는데, 고가의 밍크 코트 같은 건 그런 데 맡기는 게 나을 겁니다.

 

 모피의 가죽은 무두질된 상태가 아닙니다. 그런데 세탁과정에서 모피에서 오일이 빠져나와 가죽에 스며들면 가죽이 경화됩니다. 이게 모피 세탁의 어려운 점입니다. 그래서 모피를 세탁할 때는 신경써야 할 점이 많습니다. 전문가용 세탁세제로 파는 종류 중 가지제라는 게 있는데, 그게 모피를 부드럽게 만드는 데 쓰는 겁니다.

 

 

 

 

 

 

 

다운

 

: 조류의 솜깃털을 의미합니다. 조류의 깃털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큰 깃털은 비행용 깃털이고 그 안쪽에 있는 보다 작고 짧은 깃털이 있는데, 그게 솜깃털입니다. 예를 들어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는 병아리는 솜깃털만 가지고 있습니다.

 

 

 의류와 이불에는 일반적으로 거위(goose)와 오리(duck)의 다운을 사용합니다. 체온을 잃기 쉬운 물새들의 솜털은 체온을 보존하기 쉽게 진화되었고, 그 결과 구스다운은 인류가 사용하는 가장 뛰어난 보온 소재가 되었습니다. 가볍고 보온성능이 높기 때문에 인천지역 겨울의 길거리를 보면 대다수는 아마도 다운이 들어갔을 패딩을 입고 있습니다.

 

 다운 제품에는 솜털 비율과 필파워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일단 거위건 오리건 솜털과 비행 깃털을 같이 가지고 있는데, 저렴한 다운 제품일수록 비행 깃털이 많이 들어갑니다. 고급형은 솜털의 비율이 높은데, 솜털 비율이 높아야 가볍고 무게에 비해 따스합니다. 깃털은 솜털에 비해 잘 안빠지고 깃대가 있어 모양도 잘 잡히긴 하는데, 솜털대비 보온능력이 낮을 뿐만 아니라 뾰족한 깃대가 바깥을 찌르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필파워는 누른 후의 복원력을 의미합니다. 다운은 사용하다 보면 눌리거나 하는데, 눌린 후 복원력이 좋을 수록 좋은 다운입니다. 복원력이 높다는 건 실질적으로 사용시 부피가 크다는 거고, 그 부피만큼 안에 공기가 들어가니까 중량 대비 보온성이 높습니다.

 

 구스다운이 덕다운보다 일반적으로 고급품으로 취급받습니다. 복원력도 더 높고 같은 중량에서 구스쪽이 더 따스합니다. 같은 거위털의 경우에는 추운 지역에서 키운 거위의 털이 더 고급입니다. 폴란드산 구스다운을 최고로 칩니다.

 

 다운은 드라이클리닝을 하면 안 됩니다. 중성세제로 물세탁을 해야 하고요. 솜털이 가지고 있는 기름기가 빠지면 본래의 성능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운의 대표적인 단점은 털이 빠진다는 겁니다. 솜털은 미세하기 때문에 옷을 어지간히 잘 꿰매놓더라도 입다 보면 빠져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다운점퍼를 입을 때는 안쪽에 니트류를 입지 않는 게 좋은데, 조직이 성긴 니트에는 다운이 끼어버려서 잘 빠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무

 

: 고무는 침구에 많이 사용됩니다. 라텍스 매트나 베게 등은 고무로 만든 거지요. 라텍스 매트는 부드러운 편이고, 그런 감각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합니다. 단점은 열에 약하기 때문에 전기장판 같은 걸 쓰기 어렵고,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는 점을 꼽아야하겠습니다.

 

 의류에도 고무는 많이 사용합니다. 고무장갑은 흔하니까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겠고, 허리끈에 고무를 넣는 바지 계열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방수가 필요한 옷에 고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원단에 고무액을 발라 방수를 하는 거지요.

 

 근래는 신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고무신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무신은 방수가 되고, 오염에 강하기 때문에 논밭에서 일을 할 때는 유용합니다. 운동화 같은 걸 신고 밭일을 하다 보면 흙이 묻고 들어가고 해서 수습이 참 힘든 경우가 많은데요. 고무신은 그런 문제가 없습니다.

 

 

 

 

 

폴리비닐 클로라이드 (PVC)

 

: ‘비닐이라는 단어는 폴리비닐 클로라이드에서 기인하였습니다. 다만 비닐봉지는 실제 PVC가 아니라 폴리에틸렌으로 주로 만들긴 합니다.

 

 PVC는 크게 하드 타입과 소프트 타입이 있는데, 하드 타입은 PVC 파이프 같은데 쓰고요. 소프트 타입은 장판이나 고무대야 같은 것을 만드는 소재입니다. 최근에는 고무신도 PVC로 만들고요. 고무와 비슷한 소재라 생각하면 됩니다. 상기한 고무의 역할을 대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방수 옷을 만들 때라거나.

 

 그리고 PVC는 인조가죽을 만드는 주요 소재이기도 합니다. PVC 외에 폴리우레탄이나 폴리에스테르로 만들기도 하는데요. PVC도 많이 씁니다. 물론 인조가죽 뿐만 아니라 내피의 코팅에도 PVC를 많이 씁니다.

 

 인조가죽이 아니더라도 PVC를 주요 소재로 옷을 만들기도 하는데요. 흔히 라텍스라 부르는, 광택이 있는 옷은 PVC로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진짜로 투명하게, ‘비닐같은 느낌으로 만들기도 하는데요. 박진영이 입던 비닐바지가 좋은 예입니다.

 

 최근에는 화사도 비닐옷을 종종 입었지요.

 

 

섬유의 종류 (Ver. 1.2)

카테고리 없음 2023. 1. 3. 23:32 Posted by 해양장미

(2023. 1. 4. 마 관련 내용 수정. Ver. 1.1)

(2023. 1. 11. 마, 레이온 관련 내용 수정 Ver. 1.2)

 

  본문에서는 의복과 침구류, 기타 목욕용품이나 테이블 웨어 등에 사용하는 섬유에 대해 다룹니다. 이후 내용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의견이나 내용첨부하시고 싶은 게 있으면 댓글 달아주세요.

 

 

 

 

 

폴리에스테르

 

: 폴리에스터라고도 하고, 그냥 폴리라고도 합니다. 가장 널리 쓰이는 합성섬유. 아마 모두가 입고, 사용하고 있을 겁니다.

 

 흔하니까 별로 좋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안좋으면 널리 쓰일 수가 없습니다. 가공성이 좋아서 정말 전천후로 다양한 옷감에 쓰입니다. 거의 모든 형태의 옷감을 폴리에스테르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극세사, 기모, 벨벳, 플리스, 인조 퍼, 인조 가죽 등등 안 되는 게 없습니다. 다공질로 가공해서 동절기 옷 내부 충전재로도 쓰이기도 합니다.

 

 또한 폴리에스테르는 물리적으로도 강하고 화학적으로도 강합니다. 물에 젖어도 늘어나지 않고, 오래 담금 세탁을 할 수 있고, 염기와 산 모두에 강하고, 합성섬유치고는 열에도 어느 정도 강합니다. 이염도 변색도 잘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잘 구겨지지도 않습니다. 세탁 후 마르기도 정말 빨리 마릅니다. 그야말로 폴리에스테르 옷은 편하게 세탁하고, 다리지도 않고 편하게 입을 수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해 깔끔한 걸 좋아하는 사람한테 적합합니다.

 

 튼튼하기 때문에 폴리에스테르 옷은 만원전철, 만원버스에서 부대끼더라도 잘 닳지도 않고, 닳아도 대체로 가격이 저렴하니까 금전적/정신적 대미지도 적습니다. 브랜드가 비싸면 폴리옷도 비싸긴 합니다만.

 

 폴리에스테르의 특성 중 하나는 흡습성이 매우 낮다는 겁니다. 액체상태의 물이건 기체상태의 수증기건 잘 흡수하지 못합니다. 기본적으로 합성섬유는 플라스틱을 섬유상으로 만든 것이다보니 물과 친하지 않은데, 폴리에스테르는 그 중에서도 흡습성이 유난히 낮습니다. 그러니까 폴리에스테르로 촘촘하게 짠 옷은 땀 흡수를 잘 못하는 게 대표적인 단점입니다. 또한 섬유가 매우 건조하다보니 정전기도 잘 생깁니다. 대신 이 특성 때문에 빨래를 하고 난 후 건조가 대단히 빠릅니다. 빨래한 후 가장 먼저 마르는 게 폴리에스테르 옷입니다. 워낙 건조가 잘 되니까 비올 거 같은 날에도 입기 좋습니다. 방습 의류처럼 아예 안젖는 건 아니라도 말리면 쉽게 마르거든요.

 

 그런데 흡습성이 나쁜 소재라는 건 여름에는 더운 소재고, 겨울에는 덜 따스한 소재라는 뜻도 됩니다. 그래서 폴리에스테르 원단은 높은 가공성을 이용해서 여름용으로는 성기게 짜거나, 미세한 홀을 뚫고 얇게 가공하거나 하고 겨울 옷은 기밀성을 높이거나 하는데요. 그렇게 하면 어느 정도 단점을 극복할 수는 있지만, 온도변화에는 취약성이 있는 소재가 됩니다.

 

 그 외에 폴리에스테르의 단점이 있다면 다른 소재에 비해 아름다움이 덜한 경우가 많다는 걸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원천적으로는 폴리에스테르도 나일론과 유사성이 있는 소재라서 실키한 느낌으로 만들면 원단이 제법 예쁘게 나오는데요. 문제는 폴리에스테르의 너무나도 높은 가공성과 저렴한 가격 때문에 현존하는 모든 옷감과 유사한 것을 폴리로 만든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니까 아무래도 어설픈 게 많이 나오는 게 문제입니다. 그리고 실키한 느낌의 폴리는 제법 예쁘긴 한데, 그것도 진짜 비단이나 레이온, 또는 나일론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덜 예뻐요.

 

 

 

 

 

 

: 폴리에스테르와 함께 가장 널리 쓰이는 섬유. 천연섬유로 목화에서 얻어낸 솜으로 만듭니다. 천으로 짠 건 순우리말로는 무명이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코튼.

 

 면을 생산하는 목화는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비식량작물이었고, 목화와 관련된 아주 많은 사건이 있을 정도로 면은 인류의 역사에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면보는 조선시대에는 실질적으로 화폐의 역할을 하기도 했고, 현대에도 지폐의 소재는 사실 종이가 아니라 면입니다. 그렇기에 실질적으로 면은 하얀 황금이며, 과거 미국의 흑인 노예들은 주로 목화밭에서 일했고, 남북전쟁은 남군이 면 수출길이 막히면서 보급이 끊긴 게 주요 패배 원인이 되었습니다.

 

 면은 포근한 감촉을 가지고 있고, 크게 비싸지 않으면서 피부에 친화적입니다. 그래서 아기옷부터 의료용 붕대, 소독용 알콜솜까지 모두 면을 씁니다. 그리고 흡습성, 통기성이 좋습니다. 그러니까 수건의 주요 소재도 면이고, 피부에 직접 닿는 옷에도 면을 많이 씁니다.

 

 코튼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코튼 원단은 적잖은 경우 그 촘촘함을 로 표현합니다. 면사의 두께를 의미하는데, 겉옷용 원단에는 보통 10~30수 정도를 쓰지만, 고급 면 제품은 100~160수 정도까지도 씁니다. 고급품 160수쯤 되면 감촉이 꽤 근사해집니다.

 

 면은 다른 소재들에 비해 알칼리와 열에 매우 강합니다. 산소표백 뿐만 아니라 락스로 염소표백도 할 수 있고, 섬유 소재 중 거의 유일하게 삶아도 됩니다. 젖으면 강도가 강해지는 특성도 있어서 빨래하기에 편한 편입니다.

 

 디자인적으로는 익히 다들 잘 아실 특유의 질감이 있으나 가공에 따라 꽤 달라집니다. 수를 높여서 제법 실키하게 만들 수도 있고, 코듀로이 가공을 하거나 혼방을 해서 다르게 만들수도 있습니다. 감촉이 포근하고 천연소재 중 관리가 쉽기 때문에 면 옷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단점은 일단 물리적으로는 합성섬유 대비 좀 약합니다. 그리고 매우 잘 구겨지고, 쉽게 펴지지 않습니다. 쉽게 이야기해 폴리에스테르 옷과는 달리 면으로 된 옷은 단정하게 입으려면 다림질이 필요합니다. 또한 흡습성이 좋은 대신 합성섬유보다 건조가 훨씬 오래 걸립니다. 잘 말려주지 않으면 꿉꿉한 냄새가 나거나, 심한 경우는 곰팡이가 필 수도 있습니다. 습하거나 추울 때는 건조에 신경을 꽤 써줘야 합니다. 나는 각 가정에 빨래건조기가 보급된 주요 원인은 코튼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코튼은 그 포근한 감촉과는 대조적이라 할 만큼 드레이프성이 영 좋지 못한 소재입니다. 부드럽게 흘러내리거나 신축성이 좋지 않고 빳빳한 소재란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코튼 옷은 얇을 때는 그나마 괜찮은데, 두꺼워지면 몸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느낌이 부족하고 뻣뻣한 느낌이 되기 쉽습니다. 특히 코튼 소재의 니트는 다른 소재에 비해 빳빳한 느낌입니다.

 

 또한 면 섬유는 통기성과 열전도성이 좋은 대신 보온능력 자체는 포근한 감촉에 비해 의외로 그리 좋은 편이 못 됩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와서 서민들이 겨울을 따스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고 배워왔다보니 면이 따스한 소재라고 생각하기 쉽고, 실제 감촉도 포근하다보니 더더욱 그리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비교대상이 마일 때 이야기입니다. 문익점에 의해 면이 많이 보급되기 전에 고려 사람들이 가장 널리 입던 소재는 마였거든요. 실제로는 마 정도는 아니라도 면도 시원한 소재에 속합니다. 천연 섬유끼리 비교하면 보온성은 모 > >> > 삼인데, 서민들이 과거에 모나 견을 입고 덮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면을 많이 사용했던 겁니다. 겨울에 면 소재 내의도 흔하게 입긴 하지만, 열전도성이 높기 때문에 방한성능만 보면 (마를 제외한) 다른 소재로 만드는 쪽이 더 높습니다. 드레이프성이 낮기 때문에 그 또한 따스함이 실질적으로 부족한 한 원인이 되고요.

 

 물론 면 특유의 통기성과 흡습성, 포근한 감촉으로 인한 쾌적성도 무시할 수 없고, 실제 동절기에 바깥도 다니고 실내에도 있고 하다 보면 온도변화가 크기 때문에 그런 변화를 고려하면 면 내의가 좋을 때도 많긴 합니다. 그리고 면 원단도 코듀로이(골덴) 가공을 하거나 기모 가공을 하거나 두껍게 만드는 등의 방식으로 보온능력을 높일 수 있기도 합니다. 캐시미어같은 울 계열 혼방을 좀 하면 많이 따스해지고요.

 

 한편으로 면으로 된 옷을 세탁할 때는 적어도 피부에 닿는 쪽은 섬유유연제의 사용을 최소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섬유유연제가 면 특유의 뻣뻣함을 줄여주기는 합니다만, 섬유유연제의 성분은 면의 최대 장점인 흡습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수건은 섬유유연제를 사용하면 흡습성이 줄어들기 때문에 섬유유연제 대신 식초나 구연산을 사용하는 걸 권장합니다.

 

 

 

 

 

 

레이온

 

: 인견이라고도 합니다. 인조 견이라는 뜻으로, 식물을 화학적으로 녹여낸 후 실로 뽑아내 만듭니다. 원재료가 나무 같은 식물성이긴 한데, 제조 방식은 인조섬유입니다.

 

 비스코스, 모달, 텐셀, 리오셀, 큐프라, 뱀부얀, 아세테이트는 레이온의 종류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 모달은 너도밤나무로 만든 레이온입니다. 텐셀, 리오셀은 유칼립투스로 만든 레이온이고요. 뱀부얀은 대나무로 만든 레이온입니다. 모달이나 텐셀 같은 건 천연 섬유라고 종종 광고도 하는데, 석유를 기반으로 한 합성 섬유가 아닐 뿐 천연 섬유도 아닙니다. 원재료가 다른 거지요.

 

 다만 아세테이트는 다른 레이온과는 만드는 방식이 다른 겁니다. 친수성이 있는 일반적인 레이온들과는 달리 물을 잘 흡수하지 않도록 소수성을 지니게끔 만들어져서 타 레이온과 합성섬유의 중간적인 특성을 지닙니다. 아세테이트는 옷에도 쓰이지만 다른 용도로도 많이 쓰이는데, 담배의 필터와 고급 뿔테 안경테의 주요 소재가 아세테이트입니다.

 

 레이온은 특유의 부들부들한 감촉이 좋고 흡습성도 좋습니다. 그리고 실크처럼 광택도 낼 수 있고, 드레이프성(천이 자연스럽게 흘러 내리는 성질)도 높습니다. 인조섬유이긴 하지만 원료가 석유가 아닌 식물이라 인조섬유다운 매끄러움과 천연섬유같은 흡습성을 동시에 가집니다. 그렇기에 흡습성이 낮은 합성섬유에 레이온을 혼방하면 흡습성이 보완됩니다. 옷감 소재로 보기에도 좋고, 입었을 때의 쾌적성도 높은 섬유라 할 수 있습니다. 감촉도 좋고 흡습성이 높기 때문에 고급 수건의 소재로도 사용됩니다.

 

 한편으로 일반적인 레이온 원단은 매우 부드럽지만 의도적으로 까끌하게 가공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태리 타올의 소재도 레이온입니다. 이태리 타올은 까끌하면서도 물을 잘 흡수하는데, 레이온이 아니면 그런 걸 만들 수 없습니다.

 

 단점으로는 일단 보온성이 떨어집니다. 하절기용으로는 좋지만 동절기용으로는 따스한 섬유는 아닙니다. 잘 구겨지는 편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염색견뢰도가 나빠 이염이 잘 될 수 있기 때문에 처음 구매했을 때는 주의깊게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레이온은 나름대로 비싼 게 단점입니다. 또한 울처럼 젖은 상태에서 약해지는 편이기 때문에, 레이온으로 된 옷을 손빨래할 때는 너무 강하게 마찰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세탁기를 돌릴 때에도 레이온 비율이 높으면 강하게 돌리지 않는 게 좋습니다. 세탁 시 일반적으로 중성세제가 추천됩니다. 레이온이 종류가 꽤 많은데, 어떤 레이온은 알칼리에 약합니다. 아세테이트를 제외하면 흡습성이 높은 소재라 건조에도 신경을 꽤 써줘야 합니다. 경험적으로는 세탁과 건조에 실패하면 영 좋지 못한 냄새가 나기 쉬운 게 레이온입니다.

 

 그리고 레이온으로는 섬세하고 복잡한 모양의 여성용 의류를 만들기도 하는데, 그런 건 세탁 난이도가 극악입니다. 물에 젖으면 레이온은 잘 늘어나기 때문에, 모양이 복잡한 의류는 그 모양이 잘 망가지게 됩니다.

 

 

 

 

 

 

: 순우리말은 삼입니다. 천으로 짠건 베 또는 삼베라 부릅니다. 마 계열은 식물 줄기의 껍질 섬유를 사용하는 것으로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과거에 많이 사용하던 것으로는 대표적으로 대마가 있고, 그 외의 종류로는 저마(모시), 아마(린넨), 황마 등이 있습니다. 다만 현재 한국인들이 실제로 많이 입는 소재는 서양의 아마입니다. 현대 기준으로는 보통 대마는 상복에 쓰고, 모시는 개량한복 같은 데 씁니다. 좀 두꺼운 마끈은 무쇠제품에 감아 뜨거움을 방지하거나, 아크릴 대신 수세미를 떠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마 계열 수세미는 헹굼용으로 꽤 좋습니다. 

 

 우리나라와 유럽에서 마 계열은 과거 서민들이 가장 널리 입던 옷감 소재였습니다. 고려 말 면이 보급되기 전 고려 사람들은 겨울에도 베옷을 입었습니다. 우리나라말로 직조기를 베틀이라 부르는 건 이유가 있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이야기하는 대마는 담배처럼 피울 경우 마약류로 분류되는 대마초가 맞는데, 원체 대마라는 것 자체가 강한 마약이 아닌데다가 우리나라에서 자라던 대마는 더더욱 약성이 약해서 박정희 때 금지되기 전에는 담배 없을 때 대신 피우는 수준의 물건으로 취급되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대마를 금지시키는 건 매우 간단했는데, 담배를 주면 다들 불만 없이 대마 대신 담배를 피웠기 때문입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대마는 피우는 용도보다는 섬유를 활용하거나 씨앗을 먹는 용도로 주로 사용되었었습니다.

 

 린넨을 포함한 마 계열은 줄기 껍질 섬유라 특유의 질감이 있고, 통기성이 좋습니다. 그리고 열전도율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옷에는 하절기 옷에 주로 쓰입니다만, 특유의 고급스러운 텍스쳐 때문에 동절기 옷에도 아우터에는 쓰입니다. 그 외엔 테이블 보나 침대보에 씁니다.

 

 단점은 비싼데 잘 구겨지고 약합니다. 특히 세탁할 때 주의해야 하는데, 아마는 하절기 옷을 주로 만듬에도 불구하고 세탁기에 일반 세제/일반 모드로 돌리면 금방 망가집니다. 그리고 섬유유연제는 린넨에 맞지 않습니다. 사용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린넨은 섬유 중 드물게 산에 약하기 때문에, 유연제/식초/구연산 사용 모두를 주의해야 합니다. 다릴 때도 고온으로 다리면 안 되고, 보존도 주의해야 합니다

 

 워낙 린넨이 약하고 비싸기까지 하다보니 폴리에스테르 같은 합성 섬유에 아마를 약간 혼방한 제품들도 있습니다. 이러면 린넨의 특성이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보기에 질감에 약간 린넨 질감이 섞입니다.

 

 

 

 

 

 

나일론

 

: 폴리아미드라고도 표기합니다. 최초의 합성섬유. 최초의 합성섬유긴 하지만 최초의 인조섬유는 아닙니다. 레이온이 나일론보다 먼저 발명되었고, 레이온보다 먼저 니트로셀룰로오스(면화약)가 개발되었습니다.

 

 나일론은 대단히 높은 강도와 비단같은 매끄러움, 완벽한 탄성과 구겨지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롱 환자 같은 표현으로 이미지가 격하된 면도 있습니다만, 여전히 비싼 고급 제품에도 많이 쓰입니다.

 

 흔히 레이온을 인견이라고 합니다만, 나일론도 어떤 면에서 보면 레이온 이상으로 비단과 유사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레이온과 나일론은 각기 약간 다른 면에서 실크와 유사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일론은 촉감이 매우 좋고, 아주 가늘게 뽑을 수 있으며 가벼우면서도 부드럽고, 물리적으로 튼튼합니다. 스타킹이나 속옷, 화려한 색감과 디자인의 옷, 아웃도어 의류나 용품, 군용 장비 및 로프 등 사용처가 넓습니다.

 

 나일론은 합성섬유중에는 열전도율이 그나마 높고, 수분도 어느 정도는 함유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합성섬유중에는 시원한 느낌의 소재고, 정전기도 그나마 덜합니다.

 

 단점은 일단 열에 약하다는 점을 꼽아야 합니다. 처음 개발된 나일론은 터무니없이 열에 약했는데, 실제 상품화된 나일론은 그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열에 약합니다. 그래서 온수세탁하면 안되고 다림질도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변색이 잘 됩니다. 빛에 약하기 때문에 일광을 많이 받는 건 좋지 않습니다. 또한 이염이 되기 쉽고, 섬유의 강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마찰에는 약한 편입니다.

 

 

 

 

 

 

 

폴리우레탄

 

: 폴리우레탄은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판덱스(스판), 라이크라, 엘라스테인(엘라스틴)은 모두 폴리우레탄의 다른 이름입니다.

 

 폴리우레탄은 고무처럼 쭉쭉 늘어나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폴리우레탄을 혼방하여 원단을 만들면 편물이 아닌 직물이라도 늘어나는 성질을 가지게 됩니다. 몸에 붙는 옷이나 활동적인 옷을 만드는 데 혼방해 씁니다.

 

 폴리우레탄 섬유는 일반적으로는 원단에 일정 이상 비율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폴리에스테르에 폴리우레탄을 2~7% 정도 섞어서 늘어나는 성질을 얻는 정도로 많이 씁니다. 10% 이상 들어가면 꽤 잘 늘어나는 옷이 됩니다.

 

 폴리우레탄은 고온에 약하고, 염소(Cl)에도 약합니다. 폴리우레탄이 들어간 제품은 락스를 대면 안 되고, 다림질을 고온으로 하면 안 됩니다.

 

 

 

 

 

 

 

: 한자어로는 모라고 합니다. 포유동물의 체모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양모가 대표적이지만 양 외에도 캐시미어, 앙고라(염소), 아르갈리, 알파카, 비쿠냐, 쌍봉낙타, 앙고라 토끼, 야크 등의 울을 사용합니다. 동물마다 털의 특성이 다릅니다. 섬유가 부족하던 전근대에는 사람의 머리카락도 섬유로 활용하는 편이었지만, 인조섬유가 쓰이는 현대에는 사람 머리카락으로는 가발이나 붙임용 머리카락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사람 머리카락은 일반적인 옷감에 쓰기엔 너무 굵습니다.

 

 울은 기본적으로 따스하고 비싼 소재고, 어느 것이나 취급에 주의해야 합니다. 마른 상태에서는 튼튼하지만 젖으면 약해지고, 알칼리와 고온에도 꽤 약합니다. (다만 고온에 변형은 잘 되지만 연소 자체는 잘 안 되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알칼리성 세제 금지, 온수세탁은 금지입니다. 괜히 세탁용 중성세제를 울샴푸라는 이름으로 시판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만, 촘촘하게 짠 울의 경우 중성세제로 물세탁하는 것도 고난이도가 됩니다. 물세탁을 할 수 있게끔 만든 옷이 아닌 이상 일반적으로는 드라이클리닝이 권장됩니다. 잘못하면 보풀 잔뜩 생기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고 아예 전체적으로 쪼그라듭니다. 다만 오해를 하면 안 되는 게, 오염의 종류에 따라 드라이클리닝으로는 제거가 안 되는 것들이 있고, 그런 오염은 물세탁으로만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울로 된 의류도 특정 오염을 제거할 때는 물세탁을 하긴 해야합니다. 그저 울 의류 중 어떤 것들은 물세탁이 고난이도일 뿐입니다. 드라이클리닝이 능사는 아닙니다. 원천적으로 기름으로 세탁하는 게 물만큼 깔끔하게 세탁이 될 리도 없고. 피부 및 전반적인 건강과 환경에도 그리 좋지는 않지요.

 

 울이 물세탁이 어려운 건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만,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이야기하자면 울의 표면도 사람 머리카락처럼 비늘같은 큐티클로 덮여 있습니다. 마른 상태에서는 큐티클이 모를 보호합니다. 그런데 이 큐티클은 젖으면 일어나면서 열립니다. 사람 모발이건 양털이건 다른 동물 털이건 젖은 상태에서는 약해집니다. 특히 젖은 상태에서 모끼리 비비면, 일어난 큐티클끼리 비벼지면서 손상되고, 심한 경우 일어났던 큐티클끼리 걸린 후 마르면서 그대로 닫혀 엉켜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보풀은 기본이고, 심하면 아예 전체적으로 크기가 쪼그라듭니다. 그러니까 아예 물이 아니라 기름으로 세탁하는 드라이클리닝이 일반적으로 추천되는 겁니다.

 

 가장 일반적인 양모로 된 울 제품의 경우 두께에 비해 대단히 따스하며 고급스러운데, 감촉은 뭐라 하기 묘하게 거칠고 나쁩니다. 인조섬유 옷만 입다가 진짜 울을 입게 되면 감촉이 나쁘기 때문에 적응이 안 될 수가 있습니다. 이는 양털의 구조가 매끈하지 않고, 복잡하고 거칠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양모는 공기를 많이 머금어 따스하고, 대신 감촉은 나쁩니다. 감촉이 좋은 옷을 원하면 다른 소재의 옷을 입는 게 낫습니다.

 

 면양 품종 중 메리노 품종의 울은 메리노 울이라고 따로 구분해 부릅니다. 일반 울보다는 더 고급 울로 취급됩니다. 일반 울보다 털이 가늘고, 감촉이 더 좋으며 조금 더 따뜻합니다. 드레이프성이 높고요. 다만 메리노 면양은 많이 키우기 때문에 품질에 비해서는 보통 저렴합니다. 양모 중에는 감촉이 좋기 때문에 양질의 메리노 울은 이너웨어나 셔츠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새끼양의 울은 램스 울이라고 따로 구분합니다. 새끼양의 털은 성체 양의 털보다 아무래도 더 가늘고, 그래서 더 따스합니다만 대신 좀 거칠고 빳빳합니다. 가격은 일반 울보다 비쌉니다. 메리노 품종의 램스 울은 특히나 고급품으로 취급됩니다.

 

 그 외 버진울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그건 그냥 울입니다. 울은 원체 비싸고 좋은 소재다보니 이미 한 번 울 제품이 되었던 걸 다시 해체해서 재가공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건 재생울이라고 합니다. 재생울이 아니라 새로 깎은 양모를 가공한 게 버진울입니다. 고급 명품 브랜드에서 버진울이 고급 울인 것처럼 마케팅하기도 합니다만, 그냥 재생울이 아닌 겁니다.

 

 캐시미어는 캐시미어 염소의 속털인데, 양모에 비해서는 감촉이 좀 부드럽고 보온성도 더 높습니다. 가볍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대신 많이 비싸고, 많이 약합니다. 그래서 보통 혼방으로 약간 섞어 쓰고요. 양질의 캐시미어 100%는 진짜로 비쌉니다. 원체 포근한 느낌의 섬유라 약간만 섞어도 원단에 꽤 영향을 줍니다. 면에 약간 섞으면 확 포근해지지만 그 경우 일반 코튼 원단처럼 다룰 수는 없어집니다.

 

 캐시미어가 비싼 이유는 수요도 많은데 캐시미어 염소의 몸에 동절기에 나는 가늘고 고운 털만 모아 만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거친 겉털은 딱히 양모에 비해 가치가 없어서 제대로 된 캐시미어에는 최대한 빼버립니다. 그래서 캐시미어는 얻을 수 있는 양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비쌉니다. 얻는 방식도 제대로 할 경우 털을 깎는 게 아니라 빗질해서 모아 만듭니다.

 

 사견으로 저렴한 캐시미어는 질 좋은 메리노 울보다 감촉이나 드레이프성이 딱히 좋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외모는 캐시미어가 더 예쁘게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앙고라 울은 앙고라 토끼의 털로 만듭니다. 대조적으로 앙고라 염소의 울은 모헤어라고 합니다. 다만 때때로 구분없이 부르기도 하니까 토끼털인지 모헤어인지 잘 구분을 해야 합니다. 토끼털은 실제 토끼를 만져봐도 알 수 있듯 감촉이 부드럽고 좋지만 약한 게 단점입니다. 귀여운 느낌의 옷이 잘 나오는 편이라 여성복에 많이 씁니다.

 

 모헤어는 앙고라 염소의 털로 만드는데, 앙고라 염소는 꽤나 양을 닮은 염소입니다. 화려한 광택이 있고, 매우 헤어리하며 염색이 잘 됩니다. 시중의 모헤어라고 파는 옷 중에는 실제 모헤어 울의 함량이 매우 낮거나, 전혀 들어가지 않은 것들도 많으니 모헤어 옷을 입고 싶으면 잘 살펴봐야 합니다. 모헤어는 캐시미어, 알파카와 함께 고가의 울 소재로 분류됩니다.

 

 낙타과 동물들의 울도 사용합니다. 안데스에 서식하는 야생 낙타과 동물인 비쿠냐의 울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섬유입니다. 캐시미어보다도 훨씬 비싼데, 멸종위기까지 갔던 야생동물 털이라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비쿠냐의 가축 버전이 있는데, 그게 알파카입니다. 비쿠냐 울처럼 어처구니없이 비싸지는 않지만 알파카 울도 고급 소재로 취급됩니다. 알파카 울은 모헤어처럼 헤어리한 느낌이고, 알파카 자체가 털 색이 다양한 생물이라 보통 염색 없이 천연 울 색깔 그대로 사용됩니다.

 

 모헤어가 그렇듯 알파카 울도 꽤 비싸기 때문에 100% 모헤어, 알파카 또는 둘의 혼방을 사용한 옷은 잘 없습니다. 적잖은 경우 아크릴 및 나일론, 또는 폴리에스테르를 이용해 알파카나 모헤어와 유사한 느낌을 내곤 합니다. 순수하게 모헤어, 알파카를 사용한 옷은 순수하게 캐시미어를 사용한 것이 그렇듯 가격이 높은 게 많습니다.

 

 그 외 쌍봉낙타나 라마의 울도 사용합니다. 다만 카멜 울로 된 제품은 흔하지 않고,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면 낙타색 울 제품이 주로 나오는 게 문제입니다. 카멜 울도 가격이 높은 울입니다.

 

 그리고 야크 울은 아주 부드럽고 따스합니다. 캐시미어처럼 아름답지는 않지만, 사견으로 부드러움은 캐시미어 이상이고 따스함도 그 못지 않습니다. 다만 상품이 좀 드뭅니다. 아직 상품화가 덜 된 느낌이 있습니다.

 

 

 

 

 

 

 

 

: 비단, 명주라고도 부릅니다. 영어로는 실크. 잘 쓰지 않는 한자지만 금()이라고도 하는데, 삼국지에 나오는 서량의 금마초라는 표현의 금은 (황금)이 아니라 (비단)을 의미합니다. 그 시절에는 동일 무게의 황금과 비단의 가격이 아마 거의 같았을 겁니다.

 

 19세기까지 견은 단연코 최고의 섬유였습니다. 지금도 물론 고급섬유입니다만, 견은 유일한 필라멘트 천연섬유입니다. 그러니까 인조섬유가 나오기 전에는 인류가 필라멘트사를 얻는 방법이 누에고치밖에 없었습니다.

 

 견을 제외한 모든 천연섬유는 그 길이가 짧은 단섬유입니다. 단섬유는 방적을 통해 짧은 섬유들을 꼬아 이어 스테이플 파이버라 부르는 실을 만듭니다. 그러나 견은 고치 하나에서 1.5km 정도에 이르는, 아주 가늘고 긴 필라멘트사가 나옵니다. 너무 가늘기 때문에 견사의 제사(製絲)는 여러 가닥을 꼬아 원하는 두께를 만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필라멘트 구조인 동시에 견은 특유의 광택이 있으며, 매우 높은 물리적 강도와 뛰어난 흡습성, 가벼움과 부드러움, 그리고 높은 보온성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조섬유가 나오기 이전까지는 아예 다른 섬유가 흉내낼 수 없는 최고의 섬유였는데, 인조섬유가 개발되면서 상황이 변했습니다. 나일론과 레이온의 특성이 꽤나 견을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대에 가장 흔한 섬유인 폴리에스테르조차 의외로 견을 닮은 면이 많습니다. 모두가 비단옷을 입는 지상락원은 인조섬유의 개발과 함께 유사품으로는 구현되었습니다.

 

 이젠 인조섬유가 넘쳐나는 시대가 되어, 견은 고급 의류용으로 그 용도가 줄어들었습니다. 넥타이나 스카프 같은 데 많이 쓰이고, 서양식 복식에서는 여성용 드레스가 아니면 혼방으로 주로 사용됩니다. 광택이 강하기 때문에 남성복에 실크 100%를 사용하면 현대적인 기준으로는 다소 화려한 느낌의 옷이 되기 쉽습니다. 화려한 옷을 일상적으로는 입지 않는 남성이 많기 때문에, 남성용 옷에는 실크 함량이 높더라도 캐시미어 등을 조금 혼방하거나 가공해서 광택을 없애는 경우도 많습니다. 광택을 없애도 실크는 특유의 부드러움과 텍스쳐가 있습니다.

 

 한편으로 실크는 그 세탁 관리 난이도가 캐시미어와 유사합니다. 이는 경제력이 좋아진 현대에 사람들이 비단옷을 잘 안 입는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나일론이나 레이온으로도 비슷한 디자인이나 기능을 가진 의류를 만들 수 있는데, 관리는 나일론이나 레이온이 훨씬 쉽기 때문입니다.

 

 

 

 

 

 

아크릴

 

: 아크릴은 다양하게 쓰이는 플라스틱입니다만, 섬유로도 쓰입니다. 아크릴 수세미는 거의 다들 써보셨거나 쓰고 계실 거고, 옷에 쓸 때 아크릴은 주로 울을 대체하는 느낌입니다. 울론, 캐시미어라이크, 캐시라이크, 캐시밀론 같이 표기된 소재는 거의 아크릴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천연 양모에 비해 아크릴은 저렴하고 매우 가볍고 감촉이 좋습니다. 또한 합성섬유다보니 천연 울에 비해 더욱 화려하거나 다양한 원사나 원단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전기가 더 생기고 덜 따뜻합니다.

 

 폴리에스테르나 나일론과는 달리 아크릴은 주로 스테이플 구조로 섬유를 뽑아 방적을 합니다. 필라멘트 구조로 섬유를 뽑으면 더 매끄럽고 튼튼하지만, 보온성은 스테이플 구조쪽이 더 높습니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도 합성섬유인 이상 아크릴은 천연섬유보다는 단순한 형상입니다만, 합성섬유치고는 포근합니다.

 

 아크릴 섬유는 고온에도 약하고 물리적으로도 약한 편이라 세탁에 신경써줘야 합니다. 다만 화학적으로는 울처럼 알칼리에 약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꼭 중성세제를 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세탁기를 쓸 때는 코스는 섬세/울코스로 돌려야 하지만 울 세제가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울 혼방이면 최소 중성세제 써야 합니다.

 

 그 외의 특성으로는 역시나 합성소재답게 물을 잘 흡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탁 후 천연소재나 레이온 계열에 비해 건조가 매우 빠릅니다. 또한 햇빛에 강합니다. 매우 가볍고 탄력성이 높아 입었을 때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느낌이 있기도 합니다.

 

 

 

 

 

 

 

고어텍스

 

: 고어텍스는 섬유명이고, 소재는 테플론입니다. 테플론을 가열해서 늘여서 미세기공을 만든 섬유입니다.

 

 테플론은 물을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흡수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고어텍스의 미세기공은 기체 상태의 수증기는 통과시킵니다. 즉 물이 액체 상태일 때는 촘촘한 고어텍스 원단을 통과하지 못하는데, 증발하면 통과할 수 있습니다. 이게 고어텍스 원단의 특징입니다.

 

 고어텍스는 다들 아시다시피 아웃도어 의복이나 신발 등을 만드는데 쓰이는데, 눈이나 비를 맞아도 방수가 되지만 옷 내부의 습기는 외부로 증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극단적인 아웃도어 환경에서는 최고의 소재입니다. 비를 맞아도 젖지 않는데 땀은 증발되거든요.

 

 단점은 극단적으로 약한 내구성, 짧은 수명, 관리의 어려움입니다. 기본적으로 테플론은 강한 소재가 아닙니다. 프라이팬 쓰다 보면 코팅 나가잖아요? 프라이팬 코팅도 테플론으로 된 겁니다. 약한 소재로 된 미세기공 직물이 온갖 대미지에 오래 버틸 수가 없는 게 고어텍스 의류의 숙명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고어텍스 의류는 섬유유연제를 사용해 세탁하는 순간 고어텍스로의 기능은 사망합니다. 그렇게 되면 복구 불가입니다. 미세기공이 섬유유연제의 실리콘 성분에 의해 막히기 때문입니다.

 

 

 

 

 

 

메탈사

 

: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메탈사라고 하면 (경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진짜 금속 실이 아니라, 섬유소에 알루미늄 등을 증착시킨 금속사를 의미할 때가 많습니다. 화려한 금속성 광택을 내는 소재로 의류에서는 장식적인 역할을 합니다. 루렉스가 메탈사에서 유명한 상표라 루렉스로 통용되기도 합니다.

 

 메탈사를 옷보다 더 흔하게 볼 수 있는 분야는 수세미입니다. 수세미를 보면 반짝이는 광택을 지닌 것들이 있는데, 광택이 있다고 다 메탈사는 아니지만 메탈사를 사용한 것도 많습니다.

 

 

 

 

 

 

케블라

 

: 아라미드 섬유 중 가장 널리 쓰이는 것으로, 엄청나게 튼튼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크나 나일론보다도 질깁니다. 가벼우면서도 워낙 질기기 때문에 타이어에도 쓰고, 스피커의 유닛에도 씁니다.

 

 의복에 사용할 때는 방탄복이나 방염복, 바이크용 의복에 씁니다. 물리적으로도 강하고 열에도 강하기 때문입니다.

 

 

 

 

 

 

초고분자량 폴리에틸렌

 

: 약자로는 UHMWPE/HMPE라고 합니다. 고강도 폴리에틸렌이라는 표현으로 HPPE라는 약어도 씁니다. 물리적, 화학적으로 아주 튼튼해서 아라미드 섬유와 유사한 용도로 사용됩니다.

 

 케블라와 비교하면 HPPE는 물리적으로 더 강하면서도 더 유연합니다. 케블라는 엄청나게 뻣뻣해서 용도가 제한적인데, HPPE는 더 부드러워서 손보호용 방검장갑 같은 건 주로 HPPE로 만듭니다. 배낭, 텐트 등 튼튼한 아웃도어 용품을 만드는데도 HPPE가 쓰이고요. 선박용 로프나 돛을 만드는 데도 쓰입니다. 방탄복이나 방탄모에도 사용됩니다.

 

 다만 케블라 대비 HPPE의 단점은 열에 매우 약하다는 겁니다. 케블라는 열에 매우 강하기 때문에 방염복에 활용할 수 있지만, HPPE는 그런 용도로는 쓸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찰계수가 매우 낮고 어떤 물질로도 접착이 잘 안 됩니다. 그러니까 물리적으로 매우 튼튼함에도 매듭을 지어가면서 사용하거나, 마찰에 버텨야 하는 목적의 로프로는 못 씁니다. 접착이 안 되니까 가공에도 제약이 있습니다.

 

 

 

 

 

도전사

 

: 전기가 통하는 섬유입니다. 카본이나 금속분말을 섞거나 입혀 만듭니다. 메탈사와는 달리 딱히 금속성으로 빛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도전사의 주 용도는 원하지 않는 정전기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거나 정전기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일단 특정 조건에서 정전기는 매우 위험하거나 물건을 망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도전사가 들어간 의류 및 장구류를 사용하게 됩니다.

 

 그 외 가장 일반적인 용도는 장갑의 스마트폰 터치용입니다. 일반적인 섬유 원단으로는 정전식 터치스크린을 채택한 스마트폰을 터치할 수 없지만, 도전사로 된 원단은 스마트폰을 터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마트폰 시대 이후에는 장갑 중 엄지와 검지 손가락 끝에 도전사 원단이 들어간 장갑이 많습니다.

 

 

 

 

 

 

석면

 

: 섬유상으로 자연적으로 자라난 광물의 총칭. 일부 석면은 천으로 짤 수 있을 만큼 섬유가 길고 유연해서 장갑 등에 사용하기도 하였었습니다. 석면은 내열성, 절연성, 보온성, 내식성 등이 매우 뛰어난 물질입니다. 건강에 극도로 해롭다는 문제만 제외하면 좋은 소재지요.

 

 문제는 너무나도 유해하다는 겁니다. 석면은 아주 미세하게 부서져서 가루가 날리게 되는데, 그게 일종의 미세먼지고 몸 안에 들어가면 수습도 배출도 거의 안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석면가루를 흡입하다보면 암에 걸립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석면은 완전히 사용이 금지된지 오래입니다. 석면은 방사성 물질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가능한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합니다.

2023년 1월 게시판 & 방명록

게시판 & 방명록 2023. 1. 1. 00:04 Posted by 해양장미

새해입니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는 작년보다 무탈하고 평온한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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