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2023/01/20'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3.01.20 주방칼의 종류와 소재 및 특성에 대하여 (Ver 1.0) 15

※ 본문은 초판이므로, 일단 미흡하게나마 내용을 작성하고 추후 업데이트해나갈 계획입니다. 감안하고 보아주시길 바랍니다.

 

 

 주방칼은 요리를 하면 누구나 사용하는 물건입니다. 종류도 많고, 가격도 천차만별인데 관련하여 알아두면 구매나 관리에 있어 나쁘지 않습니다. 일단은 형태별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 산토쿠 (산도쿠)

 

 아마도 우리나라 가정 주방에서 가장 일반적인 식칼입니다. 일본에서 기원한 식칼로, 한자로는 三德입니다. 우리나라 한자독음으로는 삼덕(三德)이라 ‘삼덕칼’이라는 표현도 씁니다. 지금은 세계 어디에서나 쓰는 칼이 되어있지요.

 

 산토쿠의 날은 곡률이 거의 없습니다. 브랜드에 따라 곡률이 약간 있는 경우도 있고, 전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체로 곡률을 이용한 칼질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보통 끝이 거의 뾰족하지 않고, 길이는 짧은 편입니다. 어지간한 과도 수준으로 짧은 산토쿠도 있습니다. 긴 산토쿠는 찾기 어렵고요.

 

 산토쿠는 보통 규토에 비해 짧은 만큼 가볍고, 끝이 뾰족하지 않으니까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들었을 때 위협감이 없고, 짧아서 좁은 공간에서 사용하기가 편리합니다. 이런 이유로 많이 쓰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곡률이 별로 없고 날의 폭이 넓다 보니 부피가 있는 생고기나 날생선 같은 것을 자르는 데는 불리합니다. 대신 상하로 눌러가면서 다다닥 채소를 써는 데(쵸핑) 적합합니다. 보통 가정에서는 채소를 썰 일이 많기 때문에 산토쿠를 많이 사용한다고 추정합니다.

 

 요리를 본격적으로 하지 않는 가정에서는 산토쿠하고 과도만 있어도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습니다. 큰 고기덩어리를 자르거나 생선을 다듬고 저미거나 할 일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채소도 작은 걸 자를 때가 많고요. 다만 채소를 자르더라도 크기가 큰 채소를 자를 때는 산토쿠가 그리 적합하지 않습니다. 산토쿠는 작은 채소를 다룰 때 적합한 편입니다.

 

 

 

 

 

 

일본식 규토

*) 셰프(쉐프) 나이프 / 규토

 

 가장 일반적인 주방칼이긴 한데,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산토쿠를 좀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셰프 나이프는 본래 서양식 주방칼인데, 일본에서 그걸 보고 유사한 모양으로 만든 주방칼을 규토(牛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는 우도. 그래서 셰프 나이프 ≒ 규토입니다.

 

 셰프 나이프와 규토는 대체로 같은 계열로 분류하지만, 유럽과 일본의 칼 만들고 쓰는 문화가 좀 달라서 후술할 슴베나 볼스터, 손잡이, 무엇보다도 곡률 등에서 일반적인 차이는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일본식 규토는 하프탱이고, 볼스터가 없고, 팔각 핸들이고, 곡률은 크지 않습니다. 대조적으로 서양식 셰프 나이프는 풀탱도 있고, 볼스터가 있는 경우도 있고, 둥그스름한 핸들이 많고, 곡률이 더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브랜드에서 서양식 셰프 나이프와 일본식 규토를 같이 만들 경우, 일본 스타일을 와규토(和牛刀)로, 서양 스타일을 웨스턴 규토로 구분해 부르기도 합니다. 굳이 구분해 부르지 않을 때는 그냥 규토 ≒ 셰프 나이프라 생각하면 됩니다.

 

 

즈윌링 셰프 나이프. 일본식 규토에 비해 곡률이 더 있습니다.

 규토는 산토쿠에 비해 곡률이 있고, 끝이 뾰족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밀고 당기면서 자르거나, 칼끝을 쓰거나, 곡률을 이용해 다지거나 써는 등의 사용법이 있습니다. 길이는 보통 산토쿠보다 깁니다. 야나기처럼 긴 규토도 구하기 어렵지는 않습니다. 긴 규토는 일반적인 칼꽂이에는 사이즈 오버인 경우도 있으니 구매 시 감안해야 합니다.

 

 집에서 산토쿠를 주로 사용하다가 규토를 사용하게 되면, 다른 것보다 크게 느껴질 수 있는 건 절삭력은 좋지만 자르고 난 후 날에 ‘담아 올리는’게 어렵다는 겁니다. 산토쿠는 끝이 뭉뚝하고 곡률이 별로 없기 때문에 자른 후에 자른 채소나 김치를 담아 옮기는 게 쉬운데요. 셰프 나이프는 상대적으로 조금 어렵습니다. 그래서 고깃덩어리처럼 큰 걸 자를 때는 규토가 좋은데, 채소처럼 자르기 쉬운 걸 자를 때는 산토쿠나 나키리를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재래시장 등지에서 많이 쓰는 속칭 무쇠단조칼도 형태는 규토입니다. 아마 일제 이후 규토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만 대체로 칼등 폭이 두껍고 투박합니다.

 

 

 

 

 

다양한 페티 나이프

*) 페티/유틸리티/페어링/필링/프렙 나이프

 

 기본적으로는 흔히 생각하는 과도를 의미합니다. 다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과도로 쓰기엔 좀 크고 무거운 유틸리티 나이프도 있습니다.

 

 Petty는 작다는 뜻입니다. 프랑스어 Petit(쁘띠)와 동일한 어원을 가진 단어고요. Paring및 Peeling은 껍질 등을 벗긴다는 뜻입니다. 유틸리티 나이프는 다용도 칼을 의미하는데, 페티/페어링/필링과 동일한 나이프를 의미할 때도 있고, 작은 서레이티드(톱날이 있는) 나이프를 포함한 분류를 의미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이프 세트에 ‘유틸리티 나이프’가 있을 경우 과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식생활에 따른 개인차는 있지만, 대체로 많이 사용하게 되는 칼이지요.

 

 프렙(prep) 나이프는 좀 큰 과도입니다. 밑준비용 칼이라는 뜻입니다. 때때로 나이프 세트에 유틸리티/프렙 나이프와 페어링 나이프가 같이 구성되어있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유틸리티/프렙 나이프가 좀 더 큰 과도고 페어링 나이프가 좀 더 작은(짧은) 과도인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헹켈 즈윌링 프로 라인업에는 날길이 7cm에 날끝이 앞으로 굽은 필링 나이프와 8cm의 페어링 나이프, 10cm의 페어링 나이프, 14cm의 프렙 나이프, 15.5cm의 유틸리티 나이프, 18cm의 프렙 나이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통 페어링 나이프로 파는 칼들은 일반적인 과도보다 칼날이 짧습니다.

 

 

즈윌링 7인치 프렙 나이프. 이 정도 길이면 다양한 작업이 가능합니다.

 같이 과도로 불리긴 하지만 짧은 페티와 긴 페티, 그리고 칼등이 얇은 페티와 두꺼운 페티는 적합한 용도가 좀 다릅니다. 사과나 감자를 벗길 때는 작고 가벼운 게 편하지만 소갈비를 다듬을 땐 좀 더 길고 생김새가 예리한 페티가 좋습니다. 칼등이 두껍고 묵직한 페티는 말 그대로 다용도로, 전천후로 사용할 수 있는 칼에 가깝습니다.

 

 

 

 

 

우스토프 클레버

*) 클레버 / 중식도

 

 직사각형 또는 그에 가까운 칼입니다. 중화요리는 거의 이 형태의 칼로 모든 걸 다 하지요. 서양에서 본래 클레버는 두껍고 무거운 직사각형에 가깝고 구멍이 하나 뚫려있는 칼을 의미했는데, 중식도도 생긴 게 비슷하니까 영어로는 다 클레버라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실제 일반적인 중식도는 클레버와는 생긴 게 비슷할 뿐입니다. 물론 진짜 클레버와 유사한 것도 있고요.

 

 중식도는 크게 나누면 날이 바짝 서있고 두께가 얇은 게 있고, 보다 크고 두꺼우며 날이 덜 서있는 게 있습니다. 후자가 서양의 전통적인 클레버에 가까운 겁니다. 그런 건 영어로 Bone Chopper라고도 부르지요. 이런 타입도 후술할 Bucher Knife라 부르기도 합니다. 생닭을 닭도리탕용으로 토막낼 때 쓰는 칼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본 쵸퍼는 실제 뼈를 자를 때 제법 유용합니다. 굳이 세게 내려치지 않더라도 질량과 형상 덕에 어린 양이나 돼지의 갈비뼈 정도는 눌러서도 썰 수 있습니다. 경험적으로는 돼지갈비뼈 정도는 인성이 있는 강재의 셰프 나이프로도 (일본식 규토로는 어렵습니다.) 곡률을 이용해 눌러가면서 썰 수는 있습니다만, 본 쵸퍼를 사용하면 훨씬 쉽게 작업 가능합니다.

 

 

중식 차이다오. 클레버보다 현저하게 얇은 칼입니다.

 그렇지만 중화요리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중식도는 본 쵸퍼보다 얇고 예리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뼈를 내려치거나 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뼈를 치는 칼은 두껍고 날각이 덜 예리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중식도는 산토쿠나 나키리처럼 채소 써는 데 어울리는 칼이지요. 실제로 중국에서 일반적인 중식도를 부르는 이름은 菜刀(차이다오/채도)입니다.

 

 중식도는 무게가 있기 때문에 들 때는 힘이 들어가지만, 내려서 썰 때는 꽤 잘 썰립니다. 날의 질량은 도마 위에서 사용할 때 절삭력과 꽤 상관이 있습니다. 셰프 나이프와는 대조적으로 넓은 면 덕에 썬 음식 올려서 옮기기 쉬운 것도 장점입니다. 다만 밀고당기는 식의 절삭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보닝 나이프

*) 호네스키 / 가라스키 / 보닝 / 필렛 나이프

 

 발골 또는 정형, 육가공용 칼입니다. 칼날부터 칼등의 날물폭이 일반적인 칼보다 짧아 얇싸한 형상이지요. 구분하자면 Boning 나이프는 육고기 발골 칼이고, Fillet 나이프는 닭이나 생선처럼 보다 작은 걸 다루는 칼인데 필렛 나이프에 해당하는 건 좀 더 칼등이 얇고 낭창합니다. 실제 발골 아니라 도매용 고깃덩이라도 썰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고기덩어리 사이로 나이프가 들어가게 되면 날이 두껍고 날면의 단면적이 넓을수록 자르는 데 방해가 됩니다. 얇고 날의 단면적이 좁을수록 좋지요. 큰 고기 직접 작업해서 드시는 분들은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게 좋은 칼입니다. 필렛 나이프는 우리나라나 일본 문화권이 아닌, 서양에서 생선을 다룰 때 쓰는 칼이라 생각하면 되겠고요.

 

필렛 나이프

 호네스키는 일본식 발골 칼입니다. 창칼이라고도 합니다. 일본식 칼이라 양각날이 아니라 편각날인 것들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발골 뿐만 아니라 다용도로 쓰이고요. 가라스키는 호네스키와 비슷한데 좀 더 깁니다.

 

 

다양한 호네스키

 우리나라에서 호네스키는 장어칼로도 많이 씁니다. 일본에서 장어칼은 우나기사키라고 따로 있는데, 지역마다 형태가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 호네스키를 장어칼로 많이 쓰는 걸 보면 창칼 형태도 장어를 다루는 데 적합한 것 같습니다.

 

 

 

 

 

 

다양한 치즈 나이프

*) 치즈 나이프

 

치즈는 굳이 자르자면 뭘로 잘라도 안 잘리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쉽게 잘 잘리는 물건도 아닙니다. 연성이나 반경성 치즈는 자를 때 치즈가 날에 묻으면서 잘리는 걸 방해하고, 경성 치즈는 잘 바스라지거든요. 그래서 치즈 나이프는 가능한 예리하고 얇으면서 날면의 단면적을 좁힌 형태가 되어있습니다. 보통 날에 커다랗게 구멍을 뚫어놓지요. 또 원체 치즈가 잘 안 잘리다보니 서레이티드(톱날) 처리가 된 것도 많고, 아니면 야나기처럼 날을 한쪽면만 연마한 편각날인 것도 있습니다. 때때로 일부 브랜드에서는 연성 치즈, 반경성 치즈, 경성 치즈용 칼을 따로 제작해 세트로 판매하기도 합니다. 연성 치즈의 경우 칼이 아니라 실로 자르기도 하는데, 실을 고정해서 쉽게 자를 수 있는 절단 키트 같은 것도 있긴 합니다.

 

 

 

 

 

다양한 빵칼

*) 빵칼

 

 빵칼은 대표적인 서레이티드 나이프입니다. 톱날이 달려 있지요. 케잌 사면 주는 플라스틱 칼을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쇼트케이크는 단단하지 않으니까 플라스틱 소재로도 충분하지만, 바게뜨 같은 걸 자르려면 제대로 금속으로 만든 서레이티드 나이프가 필요해지지요. 보통 빵집에서 바게뜨나 깜빠뉴를 사면서 잘라달라고 하면 빵칼로 잘라 줍니다만, 빵을 즐겨 사먹다보면 직접 잘라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레이티드 나이프는 단단하고 매끄러운 음식물을 효과적으로 자를 수 있습니다. 대신 자른 표면이 지저분해지기 쉽고요. 대통령이 되기 이전 윤석열이 계란말이를 빵칼로 자르는 걸 보여준 적이 있는데, 서레이티드 나이프로 썰 때의 절삭력을 이용한 겁니다.

 

 예전에 유행했던 백년장미칼은 서레이티드 산토쿠였습니다. 뭐든 슥슥 써는 칼로 광고되었지만, 사실은 빵 썰기 적합한 칼이었지요. 당연히 그런 칼은 위아래로 눌러 자르기(쵸핑)는 잘 안 됩니다. 당겨서 썰어야지요. 그래서 보통 풀사이즈 빵칼은 가늘고 길게 나옵니다. 한편으로 빵칼을 구매하고 사용할 때는 톱날 부분은 갈기 어렵다는 걸 고려해야 합니다. 톱날 가는 도구는 따로 있는데, 톱날 사이를 하나하나 갈아줘야 해서 손이 많이 갑니다.

 

 

 

 

 

 

*) 야나기

 

 정식 명칭은 야나기바보초. 줄여서 야나기바. 통칭 야나기로 부릅니다. ‘쇼부’라고도 합니다. 원래 일본어로 야나기는 버드나무라는 뜻인데, 버드나무 잎을 닮았다 하여 야나기바보초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회칼입니다. 사실 회칼도 종류가 많은데, 대중적으로 알려진 회칼은 야나기입니다. 끝이 뾰족하고, 날폭이 얇고 깁니다. 대신 칼등을 보면 일반적인 주방칼보다 제법 두껍습니다. 길고 칼등이 두껍기 때문에 무게도 제법 있습니다. 야나기가 괜히 이 시대의 전투도검이 아닙니다. 야나기의 절삭력은 어느 정도는 날의 질량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야나기같은 회칼은 양쪽 면을 모두 갈아 단면이 V자 모양인 날을 세우는 일반적인 날과는 달리, 날을 한쪽만 세워 단면이 │/ 형태가 됩니다. 장점이 있지만, 갈아서 날을 세우려면 숫돌을 써야 합니다. 간이 칼갈이로는 갈 수 없어요.

 

 많은 경우 V자 모양 날을 양날, │/ 자 모양 편삼각 날을 외날이라고 하는데 이런 표현은 주방칼에 제한되는 표현입니다. 일반적인 도검은 양날이라 하면 아밍소드나 롱소드, 대거(Dagger)처럼 칼등이 없고 블레이드 양쪽에 날을 세운 걸 의미하고, 외날이라 하면 칼등이 있고, 카타나처럼 한쪽에만 날이 있는 걸 의미하지요. 무협지에 한정한 표현으로 전자는 검, 후자는 도입니다만, 실제로는 도와 검을 양날이냐 외날이냐로 구분해서 부르지 않았었습니다. 그냥 유의어였고, 굳이 구분하자면 칼집이 있는 쪽을 검이라 불렀었지요.

 

 물론 주방칼은 거의 다 칼등이 있기 때문에, 날의 단면에 외날/양날 같은 표현을 해도 딱히 혼동될 건 없습니다. 다만 본문에서는 더 정확한 표현을 추구하여 편각날/양각날로 이야기하겠습니다. 한편으로 편각날물 자체는 모든 분들이 사용하고 계신데, 가위는 대칭을 이루는 두 편각날물로 구성되어 있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흰살생선회는 표면이 매끄러울수록 맛있습니다. 그래서 날을 잘 세운 긴 야나기 같은 걸로 떠야 맛있게 떠집니다. 날길이를 이용해 쭉 당기면서 질긴 생선살을 떠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실제 흰살생선회를 떠보면 날을 잘 세운 야나기를 써도 매끄럽게 뜨는 데 꽤 품이 들어갑니다. 생선이 질길수록, 뜨는 횟감이 클수록 깔끔하게 떠내려면 더 긴 야나기가 필요합니다. 힘을 줘서 눌러 자르는 게 아니고, 한번의 당기는 동작으로 떠내야 제대로 떠지기 때문입니다.

 

 야나기는 살덩이를 저미는 용도의 칼이기 때문에, 날의 경도가 중시되고 대조적으로 인성이나 내부식성은 덜 중요하게 취급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야나기의 이런 특성은 일본식 주방칼의 특성 전반에도 꽤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주방칼에 가장 신경쓰는 그룹이 야나기 사용자들이기 때문입니다.

 

 

 

 

 

 

*) 데바

 

 생선 잡는 칼입니다. 사진으로 얼핏 보기에는 규토나 막칼처럼 생겼지만, 실제로 보면 칼등이 두껍고 편삼각으로 날을 세우는 회칼이고 전체적인 형태도 다릅니다. 생선 비늘이나 점액질을 긁을 때, 그리고 생선 머리를 떼어낼 때 씁니다. 묵직한 칼이지만 동시에 제법 예리하게 날을 세우는 칼입니다. 이 데바로 생선 껍질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분리하고 살덩이로 만드는 작업(오로시)까지, 심지어 회를 저미기까지 다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미오로시데바

 데바는 세세하게 들어가면 종류가 많은데, 미오로시데바라고 오로시 작업을 위해 야나기처럼 날의 폭이 얇게 나오는 것도 있고, 아지키리(코데바)라고 전갱이(아지)같은 작은 생선을 작업하기 위한 소형 데바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데바는 본 초퍼나 부처 나이프처럼 묵직한 칼입니다. 내려쳐서 생선 머리를 떼어내거나 토막낼 수 있는 칼인 것이지요.

 

 회칼의 일종이지만 야나기와는 용도가 다르기 때문에 데바의 날은 높은 경도가 아닌 높은 인성 및 강도가 요구됩니다. 그래서 일본식 주방칼은 날물의 경도가 중시되는 경향이 있음에도 유독 데바는 예외적으로 경도가 덜 중시되는 편입니다.

 

 

 

 

 

 

키리츠케 회칼

*) 키리츠케

 

 뜻은 앞코를 사선으로 잘라놓은 칼을 의미합니다. 그냥 키리츠케라고 하면 보통 야나기의 키리츠케 버전을 뜻할 때가 많고, 규토의 키리츠케 버전인 키리츠케 규토도 많이 쓰입니다. 키리츠케는 곡률이 가장 큰 앞부분이 잘려있는 형상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야나기나 규토에 비해 끝부분의 곡률이 덜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회칼의 경우 회를 뜰 때는 날물의 길이가 실질적으로 야나기보다 키리츠케가 약간 더 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키리츠케 규토

 규토의 경우, 키리츠케 규토는 일반 규토보다 칼끝이 훨씬 뾰족해지게 됩니다. 야나기는 원체 날카로운 칼이다보니 키리츠케 회칼이 야나기에 비해 칼끝이 덜 날카로운 반면, 규토는 날끝이 많이 뾰족해져서 공격적인 모양새가 됩니다. 날끝으로만 음식물을 자를 때 얇은 날폭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대신 규토의 특징인 곡률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곡률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는 크게 줄어듭니다. 정리하자면 곡률은 서양식 셰프 나이프 > 일본식 규토 > 키리츠케 규토입니다. 날카로운 칼끝을 활용할 때는 키리츠케 규토가, 곡률을 이용한 절삭력이 필요할 때는 서양식 셰프 나이프가 좋습니다.

 

키리츠케 페티

 다소 드물지만 페티에도 키리츠케 버전이 있는데, 끝이 매우 예리하고 날폭이 좁기 때문에 가지고 있으면 다용도로 쓰기 좋습니다. 짧은 칼일 경우 예리한 칼끝의 활용도가 올라갑니다. 산토쿠도 키리츠케 버전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그건 보통 분카로 부릅니다.

 

 가격은 일반 야나기나 규토보다 키리츠케가 좀 더 비싼 경향이 있습니다. 제작 방식이 긴 칼을 만든 다음 앞코를 잘라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 사키마루

 

 뜻은 둥글다는 뜻입니다. 전통적인 회칼로 알려져 있습니다. 회칼 끝을 사키마루로 만들면 외형이 카타나와 유사해지는데, 진짜로 우치가타나나 와키자시처럼 날물 전체에 곡률을 줘서 만드는 경우도 있고, 그런 건 검을 닮았다는 뜻의 ‘켄카타’같은 이름을 붙이곤 합니다. 사실 날 길이가 어느 정도 이상 되는 켄카타 사키마루는 진짜 와키자시와 별다를 게 없는 칼이긴 합니다. 진짜로 무기로 쓰려면 찌르기가 되는 야나기 쪽이 더 고성능입니다만.

 

450mm 사키마루 켄카타. 일단 합법적으로 주방칼입니다.

 한편으로 관점에 따라서는 키리츠케도 검을 닮았다고 볼 수 있고, 실제 키리츠케 켄카타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것들도 있는데, 키리츠케 켄카타는 보통 사키마루 켄카타에 비해 곡률이 없는 편이고, 대신 도드라지는 하몬(전통방식으로 카타나를 담금질할 때 생기는 무늬)을 만들어두곤 합니다.

 

 사키마루는 키리츠케와는 정 반대로 칼끝이 둥글기 때문에 찌르거나, 칼날 끝까지 이용해서 절삭을 한다거나 하기는 어렵습니다. 카타나를 닮았지만 좀 더 다루기 안전한 칼이 됩니다.

 

 참고로 카타나는 일본도의 통칭이고 우치가타나는 가장 일반적인 일본도로, 그냥 카타나라고 하면 우치가타나를 의미할 때도 많습니다. 그리고 와키자시는 좀 짧은 일본도입니다.

 

 

 

 

 

 

*) 스지히키 / 슬라이싱 나이프 / 슬라이서

 

 칼을 잘 모르는 분들이 슬라이서(스지히키)를 사진으로 얼핏 보면 야나기와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이 다른 칼입니다. 슬라이서는 단면이 V자인 양각날이고, 야나기에 비하면 칼등 폭이 꽤 얇습니다. 실물을 보면 유틸리티 나이프가 날이 길어진 형태에 가깝습니다. 그렇지만 유틸리티 나이프로 쓰기에는 깁니다.

 

 슬라이서는 기본적으로는 육고기를 작업하는 데 쓰입니다. 육사시미를 뜨거나 고기덩이에서 포를 뜰 때, 또는 생고기 덩어리나 바베큐를 자를 때 쓰지요. 물론 야나기와 비슷하게 칼날폭이 얇고 기니까 야나기 대용으로 생선회를 떠도 되는데 (다만 양각날 특성상 야나기만큼 잘 떠지게 연마하기는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무언가를 떠낼 때 적합합니다. 생선 껍질을 벗기고 살덩어리를 떠내는 오로시 작업을 하는 칼로도 많이 씁니다.

 

 보닝 나이프와 슬라이서를 비교하면, 보통 슬라이서가 더 길고 보닝 나이프는 칼날의 폭이 더 좁습니다. 그래서 용도가 달라집니다. 보닝 나이프는 복잡한 형상의 고깃덩이와 뼈 사이를 다듬기에 좋습니다. 슬라이서는 대조적으로 살덩이를 자르거나 생선 밑작업을 하는 데 적합합니다. 보통 슬라이서가 보닝 나이프보다 길기 때문에, 큰 살덩이를 자를 때는 보닝 나이프보다 슬라이서가 적합합니다. 절삭력 자체는 더 무겁고 곡률도 더 있는 셰프 나이프가 더 나옵니다만, 슬라이서의 날폭이 좁기 때문에 큰 고기를 자를 때 슬라이서가 더 유리한 경우도 있습니다.

 

 

 

 

 

 

끝이 둥근 카빙 나이프

*) 카빙 나이프

 

 서양 문화에서는 때때로 슬라이서와 카빙 나이프를 딱히 구분하지 않는데, 일본식 명칭 스지히키와 카빙 나이프는 용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스지히키가 상기하였듯 생고기를 저미기 위한 칼이라면, 카빙 나이프는 구워놓은 고기를 자르기 위한 칼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바베큐를 저미기 위한 거지요.

 

 그래서 카빙 나이프는 서레이티드 처리가 된 것도 많고, 끝이 뾰족하지 않은 타입도 많습니다. 식탁에서 직접 서빙할 때 쓸 수 있게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건 식탁에서 스테이크나 돈까스를 잘라도 괜찮게 생겼습니다. 구매할 때는 칼의 형상을 보고 용도에 맞춰 구매하면 됩니다. 물론 슬라이서나 길이가 좀 있는 페티로 카빙 작업을 해도 문제없고 잘 어울립니다. 다만 식탁에 길고 날카로운 슬라이서를 가져가면 카빙 나이프에 비해 다소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전형적인 부처 나이프의 한 형태

*) 부처 나이프

 

 도축업자 칼이라는 뜻입니다. 딱히 정해진 모양이 있지 않고, 몇 가지 유형을 부처 나이프라고 하는데요. 일단 서구에서 부처 나이프로 부르는 칼은 곡률이 있는, 영화에 나오는 해적칼을 닮은 칼을 뜻할 때가 많습니다. 곡률이 있으면서 끝이 좀 둥그스름한 타입도 많고요.

 

세르비아 나이프

 또 세르비아 나이프라는, 특유의 형태를 가진 칼을 부처 나이프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또한 클레버를 부처 나이프라 부를 때도 있고요. 세르비아 나이프를 세르비아 클레버로 부르기도 합니다.

 

부처 나이프의 한 전형적인 형태

 그 외 드물지만 슬라이서나 보닝 나이프를 부처 나이프로 부르기도 합니다. 실제로 도축업자들이 슬라이서와 보닝 나이프를 사용하니까 그럴 것입니다만, 일반적인 용례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코쟁이칼을 닮은, 곡률이 큰 부처 나이프. 이런 타입의 부처 나이프는 Cimeter라 부릅니다. 이름의 기원은 중동의 도검 Scimitar.

 

 

 

 

 

 

 

*) 타코히키

 

 예전에 관동에서는 야나기가 아니라 타코히키가 일반적인 회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야나기를 주로 쓰고요. 회 전반에 사용할 수 있는 칼인데, 야나기와는 달리 끝이 네모납니다. 찔려서 다칠 위험이 없지요. 다만 끝모양을 다듬으면 사키마루가 되기 때문에, 사키마루 중에는 사키마루 타코히키 같은 이름이 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름 뜻은 문어칼인데, 문어만 잘라야 하는 칼은 아닙니다.

 

 전근대 시기에는 일본의 주방 환경이 현대와 많이 달랐기 때문에 타코히키를 썼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현대에는 뾰족한 야나기나 키리츠케를 주로 쓰게 되었지요. 물론 타코히키는 현대에도 생산되고 있고,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부 짧은 타코히키는 야나기에 비해 현저하게 칼등 두께가 얇은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는 후쿠히키와 기능적으로 유사한 칼이 됩니다. 다만 모든 타코히키가 칼등이 얇은 건 아닙니다.

 

 

 

 

 

 

후쿠히키. 칼등을 보지 않으면 야나기와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칼등을 보면 야나기보다 훨씬 얇습니다

*) 후쿠히키

 

 복어칼입니다. 복어는 살이 단단하기 때문에 회를 뜰 때 일반 생선회보다 얇게 뜹니다. 그래서 후쿠히키는 일반적인 야나기 등에 비해 칼등 쪽이 얇습니다. 그 외 생긴 건 야나기와 같습니다. 일반적인 야나기는 칼등이 꽤 두꺼운 칼이기 때문에 회를 아주 얇게 뜨는 데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관동식 우스바

*) 우스바

 

 채소 써는 일본식 칼입니다. 채썰기, 돌려깎기 등 다양한 채소 작업에 씁니다. 곡률이 전혀 없고, 한 면만 날을 세운 편삼각 날입니다. 관동형과 관서형이 있는데, 관동형은 끝이 네모지고 관서형은 끝 쪽 날 반대쪽이 둥급니다.

 

관서식 우스바

 

 

 

 

 

*) 나키리

 

 우스바처럼 채소칼입니다. 다만 편각날인 우스바와는 달리 나키리는 일반적인 양각날입니다. 좀 작은 중식도에 가까운데, 중식도 같은 걸 쓰고 싶지만 중식도는 너무 무겁고 투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키리를 쓰면 됩니다. 또한 산토쿠 대신 나키리를 써도 됩니다. 일부 브랜드에서 만드는 나키리는 관서형 우스바의 양각날 버전인지 산토쿠와 거의 흡사하게 생긴 것들도 있습니다. 나는 채소나 김치 등을 썰 때 나키리를 가장 선호하고 있습니다. 나키리 중에는 꽤 작고 짧은 것도 있는데, 그런 건 간단하게 작은 채소를 썰 때 사용하기 좋습니다.

 

 

 

 

 

 

*) 무키모노

 

 작은 채소칼. 끝쪽은 키리츠케처럼 사선이며, 날은 편각날입니다. 채소를 기술적으로 잘라 장식 등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칼입니다. 일반적으로 쓰기에도 우스바 대비 작아서 사용하기 편하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용예

 

 

 

 

 

*) 하모키리

 

 갯장어 칼입니다. 교토에서는 전통적으로 갯장어를 요리해 먹는데, 갯장어는 잔뼈가 많아서 잘게 칼집을 내서 뼈를 끊어 먹기 좋게 만들어 요리합니다. 그 칼집을 넣을 때 쓰는 칼이 하모키리입니다. 갯장어에 칼집을 내는 과정은 호네키리라고 합니다. 호네스키와 혼동하지 말 것.

 

 

 

*) 우나기사키

 

 뱀장어용 칼. 붕장어에도 씁니다. 일본에서 장어는 인기 있는 생선이고, 지역마다 다른 형태의 장어칼이 있습니다. 장어를 잡고 가르는 데는 짧은 전용 칼이 작업하기 좋아서 따로 발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장어칼이라 부를 때가 많습니다.

 

 

 

 

*) 분카

 

 일반적인 형태는 키리츠케 산토쿠에 가깝습니다. 길이는 보통 짧고 길이대비 날물 폭은 있는 편입니다. 산토쿠처럼도 쓰고, 아지키리 대신 쓰기도 합니다. 다용도 칼입니다. 가끔 키리츠케 규토에 가까운 걸 분카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사용하지 않지만 세계적으로는 꽤 인기 있는 칼로 보입니다. 짧은데 끝이 날카롭기 때문에 범용성도 있고, 섬세한 작업을 할 때 끝쪽을 활용하는 식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조개칼 / 오이스터 나이프

 

 굴을 포함한 조개의 껍질을 열고 살을 분리하기 위한 칼입니다. 형태는 다양한데, 쓰기 편하게 아주 짧은 것들도 많습니다. 주관적으로 조개칼은 좋은 것보다는 가격이 저렴한 걸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조개를 까는 작업은 어떻게 생각해도 칼에 부담을 많이 주기 때문에, 좋은 칼을 쓰는 것보다는 칼을 자주 바꾸는 게 현대기술 생산성 생각하면 더 나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 막칼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통칭 무쇠칼,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대장간 단조칼중 일반적인 건 분류하자면 규토입니다. 그렇지만 막칼이라고 좀 더 큰 칼도 만듭니다. 외형은 데바와 흡사하고, 용도를 분류하자면 데바/부처 나이프/본 초퍼 정도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재래시장. 막칼로 생선 머리를 날리거나 닭뼈째 치는 걸 볼 수 있지요. 물론 날을 세우면 회칼로도 쓸 수 있습니다. 실제로 회를 뜨기도 합니다.

 

 막칼은 기본적으로 저렴한 칼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막 자유롭게 다루기 좋은 칼입니다. 이건 막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무쇠칼이 다 그렇습니다. 실제로는 이름답지 않게 강철칼이고 대체로 품질이 엉망이라 날 자체가 어긋나게 달려있는 것들 투성이입니다만, 우리나라 대장간 강철칼은 대체로 경도는 낮고 인성은 높기 때문에 마구 내리치면서 써도 날이 깨져나가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 오로시칼

 

우리나라에서 개발/개량된 것으로 추정하는 생선 작업용 칼입니다. 일본식 칼 분류로 치면 미오로시데바의 한국형으로 봐야 할 겁니다. 오로시는 생선 껍질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분리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또한 강판에 무나 와사비 등을 가는 것도 오로시라고 하니 참조로 알아두면 좋습니다.

 

 오로시칼의 특징은 날의 곡률이 전혀 없고, 프로파일 테이퍼는 있다는 겁니다. 즉 칼끝으로 갈수록 날물의 폭이 좁아집니다. 날길이는 미오로시데바처럼 깁니다. 우리나라 일식 요리사들이 이와 같은 모양의 칼이 오로시를 하기 좋다고 생각하여 이러한 칼을 쓰게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 이도기리 / 나라비(나래비)

 

 일본어로 이토기리는 본래 가늘게 채를 써는 걸 의미합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어쩌다보니 뜻이 와전되어 나라비와 같은 뜻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나라비는 줄을 세운다는 뜻으로, 넘어진 도미노처럼 썰어놓는다는 정도의 의미로 통용되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도기리 칼이라고 하면 그런 식으로 써는 데 특화시켜 개조하거나 제작한 칼을 의미합니다. 오징어회나 비교적 저렴한 회를 많이 파는 횟집에서 빠르게 썰어 내놓다보니 그런 작업에 특화된 칼로 야나기를 개조하는 문화가 생겼고, 많이 쓰다 보니 통칭 이도기리(칼)가 시판도 되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처음에 이도기리 칼은 야나기를 오랜 시간 연마하면서, 다만 본래의 형태를 유지하는 걸 신경쓰지 않는 방향으로 마구 갈아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 결과 폭이 얇아졌고, 형태도 다소 달라졌습니다. 그런 칼이 회를 마구 빠르게 써는 데 유리했고, 실제 빠르게 마구 써는 데 숙련된 사람들이 그런 칼을 쓰니까 더더욱 그런 작업에 좋아 보인 면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비해 회 소비량이 많고, 회를 썰어낸 퀄리티에는 덜 민감합니다. 그러니까 일본과 다소 다른 식으로 칼 문화가 발전한 면이 있습니다.

 

 본래 야나기는 회를 당겨서 깔끔하게 썰게 발달한 칼입니다. 그런데 이도기리는 회를 빠르게 눌러 썰기 쉬운 방향으로 개량되었습니다. 야나기에 비해 날물의 폭이 좁고, 곡률이 전혀 없습니다. 오로시칼과 비교하면 얼핏 보면 매우 비슷하지만, 날물의 폭에서 차이가 납니다.

 

 

 이상 종류 설명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종류 외의 요소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소재부터 이야기해보지요.

 

 

 

 

 

 

*) 스테인리스 스틸

 

 이녹스(아이녹스/Inox)라고도 합니다. 대부분의 현대 주방칼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듭니다. 녹에 강하니까요. 스테인리스 스틸은 ISO 기준 크롬함량 10.5% 이상, 탄소함량 1.2% 미만인 크롬합금강입니다. 다만 실제로는 탄소함량이 1.2%보다 높더라도 그만큼 크롬이 더 들어가면 스테인리스로 취급됩니다. 섞인 크롬이 공기에 노출되면 철보다 빠르게 부식되면서 아주 얇고 투명한 피막을 만들어, 스틸에 녹이 슬지 않게 보호합니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크게 오스테나이트계와 페라이트계, 그리고 마르텐사이트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 오스테나이트계나 페라이트계는 별로 탄소를 함유하고 있지 않고, 열처리를 통해 경화시켜 사용하는 용도가 아닙니다. 경도를 얻을 수 있는 스테인리스는 마르텐사이트계고, 그러니까 주방칼같은 날물을 만드는 데는 기본적으로 마르텐사이트계를 사용합니다. 다만 후술할 카스미 방식에서 가운데 날 부분이 아닌 바깥쪽에는 페라이트계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부 주방칼은 오스테나이트계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칼을 전문으로 만들지 않는 주방용품 회사에서 출시하는 것들 중에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오스테나이트계로 칼을 만들면 녹은 정말 안슬지만 날 유지력은 논할 가치도 없는 수준이 됩니다. 오스테나이트계와 마르텐사이트계를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자석을 붙여보는 겁니다. 마르텐사이트계와 페라이트계는 자석이 붙지만 오스테나이트계는 붙지 않습니다.

 

 강철칼 대비 스테인리스 칼의 기본적인 특징은 높은 내부식성, 높은 칼날 유지력, 그리고 연마의 어려움 및 상대적으로 낮은 인성으로 요약 가능합니다. 기본적으로 철은 탄소를 넣어 담금질을 하면 탄화물(카바이드)이 생겨서 경도가 올라가는데요. 순수하게 철과 탄소만 함유된 강철은 철 카바이드(시멘타이트)만 생긴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스테인리스는 크롬 카바이드가 꽤 생기게 되지요. 내식성을 제외하면 이게 가장 기본적인 차이입니다.

 

 크롬 카바이드는 시멘타이트보다 경도가 높습니다. 그래서 사실 강철칼보다 스테인리스 칼이 비슷한 탄소함량에서 더 높은 경도를 확보하기 쉽고, 제대로 세우기만 한다면 칼날 유지력이 더 높습니다. 대신 문제는 연삭성에 있습니다. 크롬 카바이드는 너무 단단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저렴이 숫돌에는 제대로 안갈립니다. 이게 스테인리스 칼에 대한 인식이 나쁜 주된 한 이유입니다. 적당히 대충 갈면 날이 깔끔하게 서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크롬 카바이드가 깔끔하게 갈리지 않고 부분부분 떨어지거나 해서 제대로 된 날이 서지가 않습니다. 게다가 크롬 카바이드가 많아지면 후술할 인성(Toughness)이 떨어지기 쉽습니다. 그 외 칼이 너무 저렴할 경우, 스테인리스 칼은 아예 뭐라 평가할 만한 수준이 아닌 것이 되기 쉽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스테인리스는 탄소강보다 비쌉니다.

 

 그리고 문제는 또 있습니다. 스테인리스는 탄소함량이 높아질수록 크롬 카바이드가 많이 생기는데, 크롬은 카바이드가 되면 내부식성에는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카바이드가 되지 않고 남아있는 크롬만 부식을 막아줄 수 있다는 건데요. 그래서 스테인리스를 고탄소강으로 만들려면 기본적으로는 크롬도 더 넣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비싸지기도 하고, 인성도 떨어지기 쉽습니다.

 

 또한 스테인리스는 탄소강에 비해 가공성이 떨어집니다. 탄소강처럼 뚝딱뚝딱 고전적인 방식으로 두들기고 열처리해서는 제대로 만들 수가 없고, 좀 더 공학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건 바꿔 말하면 전통적 기법을 사용하는 데 제한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저렴한 스테인리스를 적당히 갈아 쓰면 내부식성 빼면 별로 성능적으로는 기대할 게 없습니다. 이는 전문 요리사들이 강철칼을 선호하게 하는 주된 요인입니다. 그러나 스테인리스도 돈을 들이면 많이 좋아집니다. 세상에는 좋은 스테인리스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대부분의 주방칼은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지고, 사용됩니다.

 

 

 

 

 

*) 탄소강

 

 전문 요리사들이나 시장 상인은 스테인리스가 아닌 강철칼을 사용한다는 이미지가 있고, 실제로도 많이 사용합니다. 실제 써보면 이런저런 장점이 있습니다.

 

 보통 탄소강으로 부르는 범주의 강재는 철과 탄소 외의 다른 비철금속의 함량이 매우 낮아서 순수한 강철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이거나, 아니면 비철금속의 함량이 별로 높지 않은 저합금강입니다. 대조적으로 크롬 외 비철금속의 함량이 제법 높은 합금강도 있는데, 그런 건 고합금강이라 부릅니다. 고합금강에 대해서는 따로 후술하겠습니다.

 

 탄소강의 최대 장점은 높은 가공성입니다. 칼 제작자가 만들 때도 가공성이 좋고, 사용자가 날을 갈아서 쓰기도 좋습니다. 날을 예리하고 깔끔하게 세우기 쉽기 때문에, 조리사나 시장 상인 등이 사용하는 보편적인 조건에서 탄소강 칼은 스테인리스 칼보다 ‘잘 듭니다.’ 또한 단조과정을 거쳐 만드는 탄소강 칼은 보통 스테인리스 칼보다 두껍고 무겁기 때문에, 그 질량 때문에 절삭력이 높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시장에서 파는 통칭 무쇠칼은 상기하였듯 사실 강철단조칼입니다. 보통 저합금강에 속하는 스프링강이나 레일강을 사용해서 경도는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고, 대신 인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 특성 때문에 시장칼은 날을 세우기가 매우 쉬운 편입니다. 시장칼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딱히 숫돌을 꺼낼 것도 없이 항아리나 도자기 컵 등의 유약이 발리지 않은 면을 이용해 날을 세우기도 합니다. 그런 데 갈아도 곧잘 갈릴 만큼 갈기가 쉽습니다. 또한 인성이 높기 때문에 마구 내리치면서 사용해도 날이 잘 깨지거나 하지 않고요.

 

 일제 주방칼에서 애용되는 백강(=백지=시로가미=White Steel)은 정제를 많이 한 거의 순수한 강철입니다. 그래서 백강은 거의 시멘타이트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백강으로 만든 칼은 열처리를 통해 경도를 높이더라도 고경도의 비철금속 카바이드가 거의 없어 아주 깔끔하게 날을 세울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백강 칼은 흔히 ‘절미(絶味)’가 좋다고 합니다. 1095라는 강철도 백강과 비슷하게 철과 탄소 외에는 별다른 비철금속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 백강 대신 쓰이곤 합니다. 1095는 미해병대의 제식 총검과 단검의 소재이기도 합니다.

 

 시멘타이트는 크롬 카바이드에 비해 경도는 낮지만, 상대적으로 입자가 작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카바이드의 입자는 작고 균일할수록 좋습니다. 기본적으로 크고 불균일한 카바이드는 날의 강도와 인성을 떨어뜨리고, 날을 세우기도 어렵게 만듭니다.

 

 또한 열처리가 쉬운 탄소강의 특징은 칼날과 칼등 부분을 서로 다르게 열처리할 수 있는 여지를 줍니다. 칼날 부분은 담금질로 경화시키고 칼등 쪽은 부분적인 가열 후 담금질을 하지 않고 풀리게 만듬으로 더 높은 인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단적인 인성을 확보할 경우, 아주 극단적인 충격과 변형에 강해집니다.

 

 그러나 탄소강은 부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비철금속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강철일수록 더 쉽게 녹이 습니다. 그러니까 탄소강 칼은 익히지 않은 생선이나 육류 등, 기름기가 있고 잘 잘리지 않는 걸 다룰 때 적합합니다. 지방질은 탄소강 칼의 부식을 억제해줍니다. 대조적으로 과일이나 토마토, 김치 등 산이 있는 걸 탄소강 칼로 자르면 날이 쉽게 부식됩니다. 적어도 산을 묻힌 상태로 오래 두면 좋지 않습니다.

 

 부식을 줄이려면 탄소강 칼은 항상 건조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개수대에 오래 두거나 하는 건 당연히 안 되고, 설거지 이후 곧바로 물기를 닦아내야 하는 것은 물론, 보관 장소도 가능한 건조해야 합니다. 싱크대 밑 선반 안쪽같이 습기가 차기 쉬운 곳에 오래 두면 쉽게 녹이 납니다. 바람이 잘 통하는 칼꽂이를 사용하는 게 좋으며, 나는 설거지 이후 키친타올로 물기를 닦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생각하여 키친타올로 닦고, 헤어드라이어로 말린 이후 외부 공기가 통하고 자석 접촉이 없는 환경에 보관합니다.

 

 그렇게까지 신경써야 하나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테지만, 탄소강 칼은 상기한 것처럼 해도 실내가 습하거나 하면 녹이 피어오르곤 합니다. 연마중에도 녹이 피어오른다는 말까지 나오는 게 순수한 탄소강입니다. 쓰다 보면 녹을 전혀 경험하지 않을 수는 없으므로, 녹에 좀 무심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붉은 녹이 표면에 스는 정도는 괜찮지만, 안쪽으로 슬다 보면 아예 칼의 수명이 끝나기 때문에, 녹이 피어오르면 문질러서 제거해줄 필요는 있습니다. 붉은색이 보이면 일단 철수세미로 문지르기라도 하면, 붉은 녹이 더 피어오르는 건 억제할 수 있습니다. 보기엔 안 좋지만 철의 녹이 딱히 몸에 나쁘지는 않기 때문에, 붉은 녹만 제거하면서 쓰면 사용하는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녹으로 인한 칼의 손상이 문제입니다.

 

 한편으로 탄소강 칼을 다룰 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녹이 안 슬도록 기름을 먹이고 팬 시즈닝하듯 굽는 경우가 있는데, 구우면 안 됩니다. 구우면 열처리한 게 풀릴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음식 정도의 온도는 칼날의 열처리를 풀 만큼 뜨겁지 않지만, 불꽃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탄소강 칼을 보관할 때는 녹 방지를 위해 산패하지 않는, (먹어도 문제없게) 정제된 미네랄 오일을 바를 수 있습니다. 반드시 정제된 걸 사용해야합니다. 도마 오일을 사용하면 됩니다. 아니면 더 강한 방청효과가 있는 것도 있습니다. 바셀린입니다. 바셀린은 먹어도 됩니다. 챕스틱같은 립밤도 바셀린 베이스로 만드는 겁니다. 소화가 안 되니까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날 확률이 높겠습니다만, 바셀린을 처음 개발한 사람은 바셀린이 몸에 좋다고 믿어서 매일 1큰술씩 먹었는데 만 96세까지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 고합금강/분말강/공구강

 

 일반적으로 철과 탄소 외 다른 원소가 많이 들어가지 않은 철강은 탄소강이라 부릅니다. 백강이나 10XX같은 걸 제외한 통칭 탄소강은 저합금강(Low Alloy Steel)이라 부르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고합금강(High Alloy Steel)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철과 크롬 외의 다른 비철금속이 많이 들어간 것들을 의미합니다. 크롬이 많이 들어가면 스테인리스고요. 엄밀히 보면 모든 스테인리스는 고합금강입니다만, 편의를 의해 구분해 부르곤 합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스테인리스인 고합금강과, 스테인리스가 아닌 고합금강이 있습니다. 물론 스테인리스 중에도 크롬 외의 비철금속이 많이 들어간 것들이 꽤 있고요.

 

 대다수의 고합금강은 가공용 공구를 만들기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공구를 만들기 위한 강재를 공구강이라 합니다. 절삭공구 같은 걸 만드는 데 쓰는 금속이다보니 단단하고 마모에 강해야 합니다. 특히 철강재료를 고속절삭하기 위해 개발된 건 고속도공구강(=하이스강)이라 하는데, 용도가 용도인만큼 높은 경도를 요구합니다.

 

 바나듐, 텅스텐, 니오븀 등의 일부 금속 원소는 탄소와 결합하여 카바이드가 되면 아주 높은 경도를 지니게 됩니다. 커런덤(=사파이어=산화알루미나)보다 경도가 높은 카바이드를 형성하지요. 이런 원소가 많이 들어간 합금으로 도검을 만들면 높은 경도와 칼날 유지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상기하였듯 카바이드는 작고 균일할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전통적인 야금법을 사용할 때 비철금속을 너무 많이 섞으면 크고 불균일한 카바이드를 형성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더 작고 균일한 카바이드 형성을 위해 고합금강을 야금할 때는 분말야금법을 사용하곤 합니다. 분말야금법으로 야금하는 강재를 분말강(Powder Steel)이라 부릅니다.

 

 분말야금법은 금속가루를 섞고 가압하여 원하는 형태를 만든 후, 녹는점 이하의 온도로 가열하여 소결시키는 방식입니다. 녹는점이 높은 금속에 대한 야금법으로 유용한 방식인데, 카바이드를 작고 균일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습니다.

 

 고경도 고합금 파우더 스틸로 도검을 제작할 경우, 매우 날을 세우기 어려운 대신 그만큼 칼날 유지력도 높은 날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웃도어 나이프는 고경도 분말합금강의 사용에 적극적인 편입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주방칼 분야에서 고경도 분말합금강의 사용은 일부 강종에 한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웃도어 나이프에서만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웃도어 나이프는 주방칼에 비해 보다 다양한 걸 자르게 됩니다. 나무나 밧줄처럼 음식물에 비해 단단하고 질긴 걸 자를 때가 많지요. 고성능 아웃도어 나이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이프를 쐐기처럼 사용해 나이프를 나무에 꽂고 망치질을 해 나무를 쪼개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리사들처럼 섬세한 절삭을 하는 경우는 적습니다.

 

 대조적으로 조리사들은 아웃도어 캠퍼들만큼 단단한 걸 작은 칼로 잘라대지는 않습니다. 뼈를 자를 때는 인성이 좋은 칼을 쓰거나 아예 톱을 쓸 때가 대부분이고, 칼을 보다 조심스럽게 다루고, 더 자주 갈기도 합니다. 요리사들은 날을 제대로 세운 주방칼로는 도마를 긁는 것도 기피합니다. 그리고 주방칼의 칼날은 평균적으로 아웃도어 나이프보다 크고 깁니다. 그러니까 조리사들은 보통 연마가 어렵고, 소재비와 가공비만으로도 값비싼 고경도 분말합금강에 대한 선호가 덜합니다. 나는 그런 거 좋아합니다만, 굳이 보자면 주방칼로 사용할 때 고합금강의 장점은 날을 한 번 세워놓으면 그게 거의 무뎌지지 않고, 일정 이상의 날카로움이 장기적으로 유지된다는 것 정도입니다. 이 자체만 놓고 보면 멋진 장점이긴 하지만, 가격과 연마의 어려움, 그리고 고가의 주방칼 이용자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고합금강 주방칼이 많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자세한 내용은 후술하겠지만 편각날 칼의 우라면이 고경도 고합금강이면 갈기가 불가능에 가까워서 실질적으로 이상적인 예각날을 세우는 게 불가해지기도 합니다.

 

 

 

 

 

*) 다마스커스

 

 다마스커스는 강재는 아닙니다만, 따로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마스커스 식칼이라는 걸 많이 팔거든요. 물론 주방칼만 다마스커스가 있는 건 아니고요. 소재를 다마스커스 강이라는 식으로 표기하고 파는 칼도 많습니다.

 

 원래 다마스커스는 시리아의 수도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도시는 다마스커스 검으로 더 유명합니다. 현재의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요르단 등지에서 만들어지던 검을 그렇게 불렀지요. 그냥 다마스커스라고 하면 시리아의 수도보다도 다마스커스 검을 이야기할 때가 더 많을 정도입니다. 역사적으로 살라흐 앗 딘이 사용하던 검으로도 유명합니다. 미디어에서는 대표적으로 총몽(Gunnm/Battle Angel Alita)에 다마스커스 블레이드가 나옵니다.

 

 다마스커스 검은 인도에서 생산되던 우츠강으로 만든 검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전승으로 그 검은 당시 유럽에서 사용하던 검에 비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마스커스에 대한 이런저런 전설이 전해져오는데, 다마스커스에는 모하메드의 사다리로 불리는 독특한 무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18세기 들어 우츠강을 만드는 인도 철광석이 고갈되면서 다마스커스는 맥이 끊기게 됩니다.

 

 이와 별개로 패턴 웰디드라는 게 있습니다. 제강기술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던 옛 시대에는 철에 들어가는 탄소의 양을 조절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탄소함량이 균일한 철을 원하는대로 만들 수가 없었고, 차선책으로 탄소함량이 낮은 철(연철/연강)과 높은 철(고탄소강/주철)을 섞어 열간단조 접쇠를 반복하면서 원하는 특성을 만들곤 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접쇠단조강철이 부식되면 강철 또는 주철과 연철 또는 연강이 레이어를 이루면서 다른 색깔을 띠고 무늬를 만들게 되는데, 그 모양이 아름답기 때문에 도검장인들은 의도적인 무늬를 만드는 기술을 터득하게 됩니다. 접쇠로 그런 무늬가 생긴 도검을 패턴 웰디드 도검으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위에 이야기했듯 다마스커스 검도 독특한 무늬가 있었습니다. 다마스커스 검을 동경하던 유럽인들은 패턴 웰디드에서 다마스커스의 비밀을 밝히려고 했거나, 패턴 웰디드 도검을 다마스커스라고 팔았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다가 패턴 웰디드를 다마스커스로 부르는 게 일반화되었고, 현대에는 다마스커스와 패턴 웰디드가 거의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시대가 지나 다마스커스를 만들던 우츠강에 대한 현대적인 연구가 있었습니다. 우츠강에는 바나듐, 몰리브덴, 망간, 크롬, 니오븀 등이 약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원래 철광석에 그런 비철금속이 포함되어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함량이 높지는 않아도 우츠강은 자연적인 합금이었단 말이지요. 당시 기술을 사용해 그런 합금으로 도검을 만들게 되면 독특한 무늬가 생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바나듐과 망간이 독특한 무늬를 만드는 게 주로 기여했다는 것 같고요. 지금이야 바나듐 합금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사용할 수도 있지만 옛날에는 아니었지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마스커스 강’으로 만들었다는 칼들이 있습니다만, 실제로 ‘다마스커스 강’은 딱히 없습니다. ‘우츠강’은 있었지만 본래의 우츠강은 다 캐서 사라진 지 오래고요. 우츠강을 재현할 수는 있지만 의미는 없습니다. 비철금속 합금은 현대에 드문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츠강보다 훨씬 좋은 합금강이 널린 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21세기입니다. 종종 우츠강을 개인적으로 재현했다거나, 재현된 우츠강으로 칼을 만든다거나 한다는 칼 상인들도 있는데 그냥 무시하면 됩니다.

 

 현대에 다마스커스 칼이라는 건 접쇠단조와 부식으로 무늬를 만든 패턴 웰디드 도검입니다. 그 무늬는 절삭성능 자체에는 딱히 의미있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장식적인 의미가 크지요. 주방용품은 예쁜 게 좋으니까 주방칼이 다마스커스인 건 당연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외의 의미는 크지 않습니다.

 

 만약 시판하는 주방칼의 소재가 그냥 ‘다마스커스 강’으로 적혀있다면, 그건 제작자가 다마스커스 무늬가 나오도록 이미 접쇠과정을 거쳐 나온 강재를 구매해서 칼을 만들었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칼을 만드는 단조사가 직접 접쇠를 하지 않은 겁니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다마스커스 강’을 구매해서 만들었으니까, 다마스커스 강으로 만들었다고 표현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이지요. 실제 단조사가 직접 접쇠공정을 거치게 되면 시간과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많은 경우 이미 접쇠공정을 거친 제품을 이용해서 만든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스테인리스제 다마스커스 주방칼은 많은 경우 칼날에 해당하는 중심부 강재와, 다마스커스 무늬를 만드는 옆면 강재가 다른 구성입니다. 이미 접쇠가 되어 있는 다마스커스 강과 중심 강재를 구매해서 만들기도 하고, 단조사가 직접 바깥쪽 패턴웰디드 부분을 만들기도 합니다.

 

VG10 - VG2 코어리스 다마스커스 켄카타 스지히키. 제작자 사카이 타카유키

 그렇지만 날물을 구성하는 금속을 따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다마스커스는 코어리스라고 부릅니다. 전체를 좋은 소재로 만든 코어리스 다마스커스는 후술할 혼야끼처럼 고급품입니다. 스테인리스에 비해 탄소강 다마스커스는 코어리스인 경우가 많은데, 탄소강 쪽이 단조 가공이 쉽다 보니 코어리스를 만들기도 쉬운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좀 더 간단하게 그냥 패턴 무늬를 칼에 새겨서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 단점은 겉면이 부식되거나 갈거나 해서 나가면 무늬가 사라지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대조적으로 제대로 접어서 만든 다마스커스는 표면을 좀 갈아내도 안쪽도 패턴이 있으니까 무늬가 유지됩니다. 산화가 제대로 안 되면 무늬가 잘 안보일 수 있기는 한데, 부식을 좀 시켜주면 무늬가 다시 드러납니다.

 

 다마스커스 주방칼은 일반적으로 칼등 두께가 조금 두꺼운 편입니다. 접쇠 열간단조 공정이 들어가니까 칼등이 두꺼워지는 경향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부의 다마스커스는 부식시켜 무늬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두 종류의 강재가 서로 다른 정도로 부식되면서 칼 표면에 손으로 만지면 만져지는 요철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경우 칼날 표면이 매끄럽지 않기 때문에 음식물을 썰 때 잘 달라붙지 않습니다. 다만 요철이 있어야 제대로 접어 만든 다마스커스인 건 아닙니다. 요철이 만져지지 않을 정도로 살짝 부식되더라도 패턴은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는 다마스커스는 요철이 있는 쪽을 선호합니다.

 

 

 

 

*) 비철금속

 

 보통 주방칼은 강철이나 강철합금으로 만듭니다만, 아예 강철이 아닌 비철금속으로 칼을 만들기도 합니다. 주방칼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비철금속 소재로는 티타늄과 리퀴드 메탈이 있습니다. 리퀴드 메탈은 지르코늄, 티타늄, 니켈, 구리 등의 합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둘 다 일반적인 주방칼 소재는 아니기 때문에 나는 아직 사용해보지 못했습니다. 티타늄은 흔한 이미지로는 강철보다 강한 소재인 것처럼 알려져있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티타늄 합금은 무게에 비해 강도가 강하고 녹이 슬지 않아 항공기나 자전거 등에 사용됩니다만, 도검에는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가공하기도 어려운데 강철에 비해 강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극단적으로 부식이 잘 일어나는 조건, 즉 바닷속 작업용 날붙이 같은 걸로 사용되긴 합니다만, 그 용도로도 고질소 스테인리스강이 나온 이후에는 의미가 크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세라믹

 

 세라믹으로 만든 식칼도 시판되고 있습니다. 세라믹은 경도가 높고 부식이 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금속이 닿으면 맛이 변질되는 예민한 식재료를 다룰 때 이점이 있고요.

 

 단점은 인성이 없어서 충격을 받으면 깨진다는 겁니다. 떨어뜨려도 깨지고, 얼은 음식처럼 너무 단단한 것도 안 자르는 게 좋습니다. 호쾌하게 내리쳐서 닭뼈 같은 걸 가르는 식의 사용도 안 됩니다. 비트는 데도 철제 칼보다 약합니다. 금속에 비하면 세라믹은 인성이 거의 없는 수준입니다.

 

 경도가 워낙 높다 보니 세라믹 칼은 날이 잘 닳지는 않지만, 한 번 닳고 나면 다시 날을 세우는 게 어렵습니다. 좋은 세라믹 칼날은 고급 숫돌 수준의 경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숫돌 같은 거 아니면 세라믹 날 세울 생각을 하질 말아야 합니다. 다만 세라믹 식칼로 유명한 교세라에서는 날을 세우는 툴을 팝니다. 그런 걸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세라믹은 철 대비 비중이 가볍다 보니 결과적으로 칼도 가볍습니다. 그래서 질량을 이용한 절삭에는 불리하지만, 작은 과도 같은 걸 장시간 사용할 때는 좋습니다. 한참 무언가 벗길 때는 칼이 가벼울수록 피로가 덜합니다. 다만 세라믹 필링 나이프 수준이 되면 워낙 가볍다 보니 세게 쥐고 있지 않게 되고, 그래서 더 떨어뜨리기 쉽기도 합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칼날의 이 정도는 나가 버리곤 합니다.

 

 녹이 절대로 안 스는 건 세라믹의 두드러지는 장점 중 하나입니다. 그 어떤 금속도 내부식성에서는 세라믹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칼을 만약 매우 뜨거운 것에 사용해야 한다면, 그나마 세라믹 칼이 낫습니다. 금속 도검은 열처리가 풀릴 수 있지만 세라믹은 그런 문제는 없습니다.

 

 

 

 

 

 

하몬이 두드러지는 혼야끼

*) 혼야끼와 카스미

 

 일본식 주방칼은 날 부분의 중심강재와 날물 바깥쪽 강재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단일 소재로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단일 강철(하가네)계열 소재로 만든 일본식 주방칼을 혼야끼(혼야키)라고 합니다. 대체로 고급품으로 취급되며, 특히 물로 담금질한 미즈야끼 혼야끼를 더 고급품으로 칩니다. 기름으로 담금질한 건 아부라 혼야끼라 부릅니다. 미즈야끼 대비 조금 저렴합니다.

 

 혼야끼는 진흙을 발라 담금질해 제작하는데, 이 과정에서 진흙을 바르는 모양에 따라 하몬이라고 부르는 특유의 무늬가 생깁니다. 카타나가 현대 일본에서 미술도검 취급받듯, 혼야끼도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물론 실제 사람 벨 일이 없을수록 좋은 카타나에 비해 (와키자시는 야쿠자들이 진짜로 쓰긴 합니다.) 혼야끼 주방칼은 주방에서 실전을 뛰긴 하지요.

 

 여담으로 강철이 아닌 스테인리스 등으로 일본에서 단일소재 칼을 만들면 젠코우라고 합니다. 강철제를 젠코우라 해도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보통 혼야끼라 부릅니다. 그리고 중심강재와 날물 바깥쪽 강재가 다른 일반적인 것은 카스미 또는 아와세라고 합니다.

 

 카스미는 양각날 칼의 경우 중심강재를 바깥쪽 강재가 양쪽에서 감싸게 됩니다. 이 경우 세 겹으로 강재가 구성되기 때문에 산마이(三枚)라는 표현도 씁니다. 그런데 대조적으로 편각날 칼은 우라면은 중심강재 그대로고, 반대쪽만 연한 강재를 쓰게 됩니다. 그래서 이 경우는 니마이(二枚)라는 표현을 씁니다.

 

 산마이를 만들 때 날물은 백강이나 청강같은 강철제를, 그리고 바깥쪽 금속은 스테인리스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만든 칼을 스텐클래드라고 표현하며, 날은 강철칼이기 때문에 절삭 특성과 날 관리법은 강철칼과 같으나 칼몸쪽은 부식이 억제됩니다. 이런 칼은 날이 부식되면 갈아서 쓰면 되기 때문에 관리가 편한 게 장점입니다.

 

 이상 재질 설명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주방칼에 사용되는 강재들을 설명해보겠습니다.

 

 

 

백강 (=백지=시로가미=White Steel)

 

: 본문에서 몇 번 언급한 탄소강입니다. 철과 탄소 외의 다른 성분을 거의 제거한 것으로, 망간 0.2~0.3%, 실리콘 0.1~0.2%, 인 0.025%, 황 0.004% 정도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조사는 히타치이며 포장지가 백색이라 시로가미라 부릅니다. 일본식 단조 주방칼에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백강은 종류가 3종류 있습니다. 기본적인 백강은 탄소함량이 1.0~1.2%입니다. 이것을 백2강 또는 시로가미 #2같은 식으로 부릅니다. 여기서 탄소함량을 1.2~1.4%로 높인 버전은 백1강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탄소함량을 0.8~0.9%로 줄인 버전이 백3강입니다.

 

 강철은 탄소함량이 높아지면 경도가 올라가고, 대신 인성이 떨어집니다. 세 버전 중 백1강의 경도가 가장 높지만, 인성은 가장 낮습니다. 인장강도가 가장 높은 건 이론적으로 백3강입니다. 탄소강의 인장강도는 탄소함량 0.86~0.87% 정도인 공석강에서 가장 높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공석강보다 탄소가 더 들어가면 인성이 부족하여 취성(깨지는 성질)이 생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백강은 써는 맛(절미)이 좋기로 유명하고, 연마가 쉬우며, 백강으로 만든 칼들은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나는 내가 가진 백강 칼들을 좋아합니다. 나는 백강보다 절미와 절삭 후의 완성도가 좋은 강재를 알지 못합니다.

 

 

청강 (=청지=아오가미=Blue Steel)

 

: 백강에 약간의 텅스텐(1.5~2%)과 크롬(0.3~0.5%)을 넣은 버전입니다. 백강과 함께 일본식 강철칼 소재로 세계적으로 널리 쓰입니다. 텅스텐이 좀 들어가기 때문에 텅스텐 저합금강이라 할 수 있고, 그래서 백강과의 차이가 생깁니다. 더 높은 칼날 유지력을 기대할 수 있지만, 더 쉽게 깨지고 연마가 어려워지고, 현실적으로 절미와 절삭 후의 결과물이 거칠어집니다.

 

 청강은 1강과 2강만 있고, 3강은 없습니다. 그리고 후술할 슈퍼청강이 있습니다.

 

 

슈퍼청강 (=슈퍼청지=아오가미 슈퍼)

 

: 청강의 경도 업그레이드 버전격입니다. 탄소 1.4~1.5%, 크롬 0.3~0.5%, 텅스텐 2.0~2.5%, 몰리브덴 0.3~0.5%, 바나듐 0.5%의 저합금강. 청1강보다 탄소함량과 텅스텐 함량이 조금 더 높고, 몰리브덴과 바나듐이 약간 들어간 강재입니다.

 

 슈퍼청강은 제법 높은 탄소함량에 텅스텐과 바나듐이 들어있어 경도가 꽤 높이 올라갑니다. 그렇지만 크기가 큰 카바이드가 제법 섞여 있기 때문에 연마가 어렵고, 취성이 있으며, 단단한 걸 자를 때도 칼날이 유지되는 타입은 아닙니다. 고전적인 방식으로 야금되는 슈퍼청강의 미세조직은 균일하거나 입자가 작지 않습니다. 충격을 주는 방식으로 사용하면 안 되고, 섬세하게 다뤄야 합니다.

 

 나는 주관적으로 청강계열 칼들이 독특한 절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식물을 자를 때 백강처럼 매끄럽지는 않지만 잘 파고드는 느낌이 있는데, 아마 성분을 생각해보면 백강이나 파우더 스틸 계열과는 달리 칼날의 미세 구조가 썩 균일하지 않을 겁니다. 이로 인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미세영역에서 미미하게 써레이티드 효과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1084

 

: 10XX는 상표권 없는, 거의 순수한 강철입니다. 그리고 그 중 1084는 공석강입니다. 백3강과 비슷하게 잘 만들면 준수한 경도와 인성을 확보 가능합니다. 1095에 비해 망간 함량이 좀 높기도 합니다.

 

 

1095

 

: 1084에 비해 탄소함량이 높습니다. 탄소 0.9~1.0%. 1084보다 높은 경도를 확보 가능하지만, 상대적으로 인성은 낮아집니다. 미해병대의 제식 총검 소재. 우리나라에서는 백강을 대체하여 사용합니다.

 

 서구에서는 핸드메이드 주방칼에 널리 쓰이는 탄소강으로, 15N20같은 다른 강재와 함께 코어리스 다마스커스를 만드는 데도 많이 쓰입니다.

 

 

5160

 

: 탄소 0.64%, 크롬 0.9%, 망간 1%, 규소 0.3%

 

 대표적인 스프링강입니다. 트럭 같은 데 사용되는 서스펜션용 판 스프링을 만드는 용도가 기본용도라 생각하면 됩니다. 인성이 매우 좋은 강재고, 1095나 백강에 비하면 크롬과 망간이 들어있어 녹이 살짝 덜 습니다.

 

 구하기 쉽고, 저렴하고, 인성이 매우 높은 특성 덕에 현대에 롱소드나 아밍 소드, 카타나, 사브르 같은 걸 만들 때 가장 많이 쓰는 강종 중 하나입니다. 히스토리 채널의 ‘최강의 검 더 마스터’ 같은 프로그램 보면 5160으로 검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여담인데 5160으로 만든 검 가지고 중근세로 가면 성검이나 신검 소리 들을 겁니다. 옛날 강재와 현대 강재의 품질차는 정말 큽니다.

 

 주방칼에 5160은 잘 사용되지는 않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많이 씁니다. 소위 무쇠칼이라 불리는 대장간 단조칼을 만들 때 5160을 곧잘 씁니다. 물론 시장에서 파는 단조칼은 강종을 거의 밝히지 않습니다만, 5160으로 만든 것도 시중에 제법 돌아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15N20

 

: 탄소 0.75~0.8%, 니켈 1.4~2%

 

 니켈이 포함된 탄소강입니다. 주방칼에서는 보통 탄소강 코어리스 다마스커스 제작에 쓰이는 강재로, 보통 1095와 함께 씁니다. 15N20에 포함된 니켈은 다소의 내부식성을 가지기 때문에, 1095와 함께 층을 이루도록 접쇠 열간단조를 한 이후 부식시키면 1095쪽이 더 많이 부식되고, 15N20은 덜 부식되고 보다 밝은 빛깔을 냅니다.

 

 

X50CrMoV15 (=1.4116≒X45CrMoV15)

 

: 탄소 약 0.5%, 크롬 13.8~15%, 실리콘 0.5~1%, 망간 1%, 몰리브덴 0.5~0.8%, 바나듐 0.15~0.2%

 

 거의 모두가 좋아하는 헹켈 즈윌링(쌍둥이) 및 인터네셔널(외둥이) 라인업에 속한 대부분의 주방칼을 만드는 강재. 다른 독일산 및 유럽산 칼을 만드는 주요 강재이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가격대가 있는 중국산 주방칼에도 많이 씁니다.

 

 탄소함량이 낮은 편이고, 크롬 함량은 높은 스테인리스입니다. 그리고 망간과 몰리브덴도 들어가있기 때문에 내부식성이 높은 편입니다. 이 소재의 헹켈칼은 실제 사용해보면 녹이 잘 슬지 않습니다.

 

 다만 탄소함량이 낮기 때문에 경도가 많이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의외로 인성도 좋은 편이 아닙니다. 주방칼은 강종을 표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강종을 표시하는 금속 중에는 경도, 인성, 강도가 모두 낮은 편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물론 강종을 표시하지 않는 칼보다는 표시하는 칼이 더 좋은 강재를 사용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은삼강 (=긴산코=실버3)

 

: 탄소 0.95~1.1%, 크롬 13~14.5%, 망간 0.6~1%, 실리콘 0.35%

 

 히타치의 스테인리스. 백강에 크롬과 망간이 들어간 것과 유사합니다. 탄소강과 유사한 절미를 가지는 스테인리스라 불리며 일본식 칼에 많이 쓰이는데, 텅스텐이나 바나듐같은 고경도 카바이드가 생기는 비철금속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일식 요리사들이 많이 쓰는 합성커런덤 숫돌로 깔끔하게 날을 세울 수 있습니다. 백강만큼의 절미는 아니지만, 백강에 비해 칼날 유지력이 높고, 스테인리스니까 탄소강에 비해 사용이 편합니다.

 

 

 

420HC

 

: 탄소 0.45%, 크롬 13%, 망간 0.8%, 실리콘 0.4~0.8%, 몰리브덴 0.4~0.6%, 바나듐 0.2%

 

 마르텐사이트계 420중 탄소함량이 높은(HC) 상표권 없는 스테인리스입니다. 고급강재라 할 수는 없지만, 열처리를 잘하면 경도도 어느 정도 나오면서 매우 높은 인성을 가진 도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성분이 얼핏 비슷해보이는 X50CrMoV15와 비교하면 인성 차이가 크게 측정된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의아해서 X50CrMoV15의 현미경 사진을 찾아본 결과 크고 불균일한 카바이드가 발견되는 반면, 420HC의 현미경 사진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440C

 

: 탄소 0.95~1.2%, 크롬 16~18%, 망간 1%, 실리콘 1%, 몰리브덴 0.75~0.8%

 

 상표권 없는 마르텐사이트계 고경도 스테인리스. 경도와 칼날 유지력이 제법 높게 나오고, 포스코에서도 만들다보니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쉬운 편에 속하는 금속이고, 어느 정도 고급품 칼을 만드는 데 쓰입니다.

 

 440C의 장점은 칼날 유지력이 제법 높으면서도 바나듐이나 텅스텐 같은 고경도 비철금속 카바이드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커런덤 숫돌로도 충분히 날이 깔끔하게 섭니다. 그리고 탄소함량이 높은 것 치고는 녹이 잘 안 습니다. 크롬함량이 높고 망간과 몰리브덴도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440C보다 칼날 유지력이 높은 강재는 초고경도 카바이드를 포함한 것들이라, 연마 난이도도 높아집니다.

 

 

 

AUS8

 

: 탄소 0.7~0.8%, 크롬 13~14.5%, 몰리브덴 0.1~0.3%, 바나듐 0.1~0.25%, 망간 0.5% 이하, 니켈 0.3% 이하, 실리콘 0.8% 이하

 

일본 아이치에서 만드는 강재. 일본식 주방칼에 종종 씁니다. 탄소대비 크롬함량이 높아 내부식성이 좋고, 탄소함량 대비 준수한 칼날 유지력에 가격도 그리 높지 않은 편입니다.

 

 

AUS10

 

: 다른 건 AUS8과 같고 탄소함량이 0.95~1.1%, 망간 1% 이하입니다. 경도가 더 올라가고, 인성 및 내부식성은 살짝 낮아집니다. VG10과 종종 비교됩니다만, 일반적으로는 코발트가 들어간 VG10쪽의 평가가 더 높습니다.

 

 

VG10

 

: 탄소 0.95~1.05%, 크롬 14.5~15.5%, 망간 0.5%, 바나듐 0.1~0.3%, 몰리브덴 0.9~1.2%, 코발트 1.3~1.5%

 

 일본 타케후 사의 강재. 일본 상급 주방칼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강재입니다. 단조사들이 좋아하고,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기가 있어서 업그레이드 변형판이나 유사품도 꽤 있습니다. 중국에서 만드는 유사품은 10Cr15CoMoV라 부르지만, 오리지날 VG10과 같은 품질로 인정받고 있지는 못합니다.

 

 VG10의 코발트는 담금질하는 과정에서 물성을 좋게 만듭니다. 몰리브덴 함량도 높은 편이라 내식성을 확보합니다.

 

 

 

코발트스페셜

 

: 탄소 0.95~1.15%, 크롬 15~17%, 망간 0.3~0.5%, 바나듐 0.2~0.3%, 몰리브덴 1~2%, 코발트 2~3%, 실리콘 0.6~0.7%

 

 VG10에서 코발트 함량을 높이고, 그 외 크롬, 몰리브덴 등을 더 넣은 강재입니다. VG10만큼 많이 쓰이지는 않고, VG10의 업그레이드 강재쯤으로 취급됩니다.

 

 

 

VG10 MAX

 

: 탄소 1.1%, 크롬 16%, 몰리브덴 1.5%, 텅스텐 2.5%, 바나듐 3%, 코발트 2.5%

 

 일본의 칼 회사 슌(Shun)에서 독점 사용하는 강재. VG10의 업그레이드판으로 홍보되며, 알려진 성분은 위와 같습니다.

 

 파우더 스틸로 만들어야 할 것 같은 조성인데, VG10은 파우더 스틸이 아닙니다. VG10 MAX도 파우더 스틸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일반적인 강재로 위의 성분을 만들면, 내마모성은 확보할지언정 취성이 커지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슌 칼을 쓰다가 날이 깨졌다는 말이 드물지 않게 나옵니다.

 

 나도 VG10 MAX 강재를 사용한 슌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상기한 이유로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N690

 

: 탄소 1.08%, 크롬 17.3%, 몰리브덴 1.1%, 바나듐 0.1%, 코발트 1.5%

 

 오스트리아 뷜러사의 강재. 처음 개발된 버전은 코발트가 없었습니다. 초기버전과 구분해 부를 때는 N690Co라고 합니다. 조성이 VG10과 비슷하여 VG10과 비슷한 금속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크롬함량이 VG10보다 높습니다.

 

 

SKD11 (=D2=SLD=1.2379)

 

: 탄소 1.4~1.6%, 크롬 11~13%, 망간 0.6~0.9%, 몰리브덴 0.8~1.2%, 바나듐 0.2~0.6%, 실리콘 0.4%

 

 오래 된 고크롬 냉간단조용 공구강으로 상표권이 없습니다. 서양에서는 주로 D2로 불리고,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SKD11로 주로 불립니다. 크롬의 함량 자체는 스테인리스에 준하지만, 탄소함량이 높아서 스테인리스에 해당하는 내부식성을 가지지는 못합니다. 스테인리스라기에는 내부식성이 살짝 모자란 수준입니다. 그렇지만 가격에 비해 칼날 유지력이 좋아서 서양에서는 도검용 강재로 많이 쓰이는 편입니다.

 

 일반적인 D2는 인성이 나쁘기 때문에 미국 크루서블사에서는 분말강으로 D2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건 CPM D2라는 이름이고, 일반 D2보다 인성이 훨씬 높습니다.

 

 

SKD12 (=A2=1.2363)

 

: 탄소 0.95~1.05%, 크롬 4.75~5.5%, 망간 0.4~1%, 몰리브덴 0.9~1.4%, 바나듐 0.15~0.5%, 실리콘 0.1~0.5%

 

 D2(SKD11)에 비해 탄소함량과 크롬함량이 낮은 냉간단조용 공구강입니다. 비철금속 함량이 높지 않고, 크롬함량은 스테인리스의 절반이 좀 안 되는 수준이라 전반적으로 탄소강과 스테인리스의 중간적인 조성입니다. 일반적인 사용자 입장에서는 녹이 잘 슬지 않는 탄소강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AEB-L

 

: 탄소 0.67~0.68%, 크롬 13~13.5%, 망간 0.6%, 실리콘 0.4%

 

 스웨덴 우데홀름사의 강재입니다. 별 특색없는 조성 같아 보이기도 하고, 파우더 스틸도 아니지만 좋은 강재입니다.

 

 AEB-L이전에 우데홀름사가 개발했던 AEB라는 강재가 있었습니다. 그건 조성이 은삼강하고 비슷합니다. AEB는 질레트 면도기 날 제작용으로 쓰였었는데, 이후 후술할 산빅의 12C27에 영향을 받은것인지, 아마도 특성을 개선하기 위해 탄소함량을 줄입니다. 그래서 Low carbon이라는 뜻의 L이 붙어 AEB-L이 개발됩니다. AEB-L은 면도칼날을 만들면서 개량된 강재라, 꽤 드물게 칼날용으로 개발된 강재라 할 수도 있습니다.

 

 AEB-L의 특징은 탄화물 크기가 작다는 겁니다. 현미경으로 보면 전체적으로 작고 고른 탄화물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스테인리스에서 이보다 탄소함량을 높이면 큰 탄화물이 생기기 쉽기 때문에 물성이 불균일해지고 깨지는 성질이 생기기 쉽고, 매끄럽게 연마하기도 어려워집니다. 이 문제를 개선하려면 분말야금법이 필요해지고요. 극단적인 절삭력이 필요한 면도날은 깔끔하게 날을 세울 수 있어야 함은 물론, 면도기 카트리지는 소모품이다 보니 단가가 높아도 안 됩니다. 그 조건을 충족하는 금속 중 하나가 AEB-L입니다.

 

 AEB-L은 그리 높지 않은 탄소함량에도 불구하고 경도를 꽤 높게 올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도대비 인성이 높습니다. 또한 연마하기도 쉬운 편입니다. 단단한 걸 벨 때의 칼날 유지력도 탄소강보다는 현저히 높은 편입니다.

 

 단점이라면 AEB-L로 만든 칼들은 가격이 저렴한 느낌은 아니라는 겁니다. AEB-L이 좋긴 한데, AEB-L자체는 개발된지 오래 된 편이라 비싸게 살 거면 대안이 없지 않습니다. 그리고 스테인리스에 속하기는 하지만, 스테인리스치고 내부식성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12C27

 

: 이 강재에는 두 버전이 있습니다. 12C27™은 탄소 0.6%, 크롬 13.5%, 망간 0.4%, 실리콘 0.4% 입니다. 그리고 12C27M은 탄소 0.52%, 크롬 14.5%, 망간 0.6%, 실리콘 0.4% 입니다. M버전은 탄소를 약간 줄이고 크롬과 망간을 늘려 내부식성에 집중한 버전입니다. ™버전이 일반적인 12C27입니다.

 

 스웨덴 샌드빅의 강재. 상기하였듯 AEB-L의 탄생에 일조하였습니다. 샌드빅사의 강재를 스웨덴강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12C27을 뜻할 때도 있습니다.

 

 

13C26 (≒FC61)

 

: 탄소 0.68%, 크롬 12.9%, 망간 0.6%, 실리콘 0.4%

 

 샌드빅사의 강재. AEB-L과 실질적으로 같은 강재 취급받습니다. 그리고 헹켈에서 FC-61이라고 표기하면서 고급품에 사용하는 강재가 있는데, 그게 13C26이나 AEB-L아니냐는 게 일반론입니다.

 

 

14C28N

 

: 탄소 0.62%, 질소 0.11%, 크롬 14%, 망간 0.6%, 실리콘 0.2%

 

 질소를 함유한 샌드빅사의 신형 강재입니다. 질소를 이 농도보다 더 합금하려면 비싼 설비가 필요합니다. 양산형으로는 최대한의 질소를 함유하여 우수한 특성을 가지게 개발한 강재라 할 수 있습니다.

 

 면도칼용 강재답게 13C26보다 주로 개선된 건 내부식성입니다. 상기하였듯 13C26 및 AEB-L의 내부식성은 스테인리스의 기준은 충족합니다만, 스테인리스 중 높은 내부식성은 아닙니다. 14C28N은 화장실에서 물에 적신 채 두는 면도날 카트리지에 사용하기 좋도록 내부식성이 높아졌습니다. 이 특성이 주방칼에도 잘 어울리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19C27

 

: 탄소 0.95%, 크롬 13.5%, 망간 0.65%, 실리콘 0.4%

 

 샌드빅사에서 내마모성을 위주로 개발한 강재입니다. 본래의 용도는 질긴 섬유나 택배박스용 종이를 자르라고 내놓은 건데, 고경도에 스웨덴 강재를 좋아하는 일본식 주방칼에도 사용합니다. 성분을 보면 은삼강하고 유사하기 때문에, 흡사한 강재로 생각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BD1N

 

: 탄소 0.85~0.95%, 질소 0.1~0.15%, 크롬 15~17%, 망간 1%, 몰리브덴 0.5%, 실리콘 1%

 

 미국 카펜터 사에서 만드는 질소강. 높은 내부식성과 경도를 동시에 확보한 스테인리스로, 질소강답게 내식성이 높으면서도 경도 또한 제법 높게 올라갑니다.

 

 

 

SG2 (=R2≒FC63)

 

: 탄소 1.25~1.45%, 크롬 14~16%, 몰리브덴 2.3~3.3%, 망간 0.4%, 바나듐 1.8~2.2%, 실리콘 0.5%

 

 일본식 주방칼에서 널리 사용하는 타케후의 분말강. SG2는 Super Gold 2의 약어입니다. 이 강재는 아마 주방칼에 가장 많이 쓰는 분말강일 겁니다. VG10과 경도는 유사하게 나오지만, 분말강이고 바나듐 함량이 의미있게 높은 만큼, 칼날 유지력에서 장점을 가지며 인성도 VG10보다는 미미하게 더 높습니다.

 

 파우더 스틸이다보니 전통적인 단조 공법을 좋아하는 일본에서는 주로 카스미의 날물용 강재로 이 강재를 쓰곤 합니다. 그런데 편각날 칼의 경우, 카스미로 만들더라도 우라면은 날물용 강재가 그대로 노출됩니다. 그래서 우라면을 연마해야 하는 편각날 칼에 SG2를 사용하게 되면 우라면의 연마가 어렵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합니다. 바나듐 카바이드를 연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텅스텐이 제법 들어가는 슈퍼청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슈퍼청강과 비교하면 SG2는 경도도 덜 올라가고, 연마는 그나마 쉽습니다. SG2에 포함된 크롬은 바나듐이 카바이드로 변하는 비율을 줄입니다. 그리고 SG2는 분말강이기도 하고, 바나듐은 텅스텐에 비하면 카바이드의 크기가 작습니다. 카바이드가 작고 균일하면 연마가 용이해지고, 강도가 올라갑니다.

 

 한편으로 헹켈의 미야비 및 밥 크라이머 라인업에 많이 사용하는 FC63이라는 강재가 있는데, 이 SG2와 같은 강재라는 게 통설입니다.

 

 

 

SRS13

 

: 탄소 1.3%, 크롬 13%, 망간 0.3%, 몰리브덴 2.75%, 텅스텐 1.25%, 바나듐 1.5%, 실리콘 0.3%

 

 산요에서 만드는 파우더 스틸. 같은 라인업에 SRS15라고, 탄소 1.5%에 크롬 15% 버전이 있는데 그건 SG2의 유사 강재 취급받습니다. 그러나 SRS15는 텅스텐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SRS13은 그보다 탄소와 크롬이 조금 적은 버전입니다.

 

 

 

ZDP189 (≒MC66)

 

: 탄소 3%, 크롬 20%, 몰리브덴 1.4%, 바나듐 0.1%, 텅스텐 0.6%

 

 히타치의 파우더 스틸. 이 강재는 물성이 Steel이긴 합니다만, 사전적인 Steel의 범주는 벗어나 있습니다. 탄소가 3%나 들어가있기 때문에 고전적인 분류법으로 보면 이 철은 Steel이 아니라 Cast Iron(주철) 입니다. 그러나 20%의 크롬이 들어가 있고, 분말야금법이 사용되기 때문에 강철이라 할 만한 물성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극단적이라 할 만큼의 탄소함량으로 경도를 높이 올린 고크롬강. 크롬이 20%나 들어가 있지만, 탄소가 너무 많아서 스테인리스가 아닙니다. 이 정도 탄소 대 크롬 함량에서는 너무 많은 크롬이 카바이드로 변해서, 남아있는 크롬으로는 충분한 내부식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탄소강 수준으로 녹이 스는 건 아니고, 세미 스테인리스 정도로 부를 수 있는 정도의 내부식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ZDP189의 특징은 엄청나게 경도를 올릴 수 있는데, 그 경도에 비해 날을 세우기 쉽다는 겁니다. 바나듐이나 텅스텐이 많이 들어가 있지 않고, 대체로 시멘타이트나 크롬 카바이드가 경도에 기여하고 있는데다 파우더 스틸이라 그럴 것입니다. 경도는 ZDP189가 슈퍼청강이나 SG2보다 높고, 칼날 유지력은 그 이상으로 격차가 크게 높지만 커런덤 숫돌로 날을 깔끔하게 세울 수 있는 쪽은 ZDP-189쪽이고, 슈퍼청강이나 SG2는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한편으로 헹켈 케맥스 및 미야비 일부 칼에 사용하는 MC66이라는 강재는 ZDP189라는 게 통설입니다.

 

 

 

HAP40 (≒CPM Rex 45)

 

: 탄소 1.27~1.37%, 크롬 3.7~4.7%, 몰리브덴 4.6~5.4%, 텅스텐 5.6~6.4%, 바나듐 2.8~3.3%, 코발트 7.5~8.5%

 

 히타치의 파우더 스틸. 고합금 고속도공구강으로 고도의 내마모성뿐만 아니라 내열성까지 갖추기 위한 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텅스텐과 코발트를 섞는 건 초경합금의 일반적인 조성입니다. 비율이 높은 코발트는 텅스텐 카바이드를 소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날물에 사용할 경우만 생각하면 바나듐 함량이 더 높은 게 좋습니다. 바나듐 카바이드는 텅스텐 카바이드에 비해 입자가 더 작고, 경도는 약간 더 높습니다. 그러나 텅스텐 카바이드는 상대적으로 열에 강한 편입니다. 그래서 고속도공구(하이스)강에는 텅스텐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고합금강은 경도가 높게 나오고, 칼날 유지력도 우수합니다. 그리고 HAP40은 고합금강 중 주방칼을 만드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강재일 겁니다. 이 강재의 조성은 미국 크루서블사의 CPM Rex 45라는 강재와 유사하여, 거의 같은 강재로 취급받기도 합니다.

 

 HAP40은 저합금 탄소강에 비하면 크롬함량이 높고, 몰리브덴이 많이 들어있으므로 어느 정도의 내부식성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테인리스 수준은 아닙니다.

 

 이 강재로 만든 주방칼은 실제 사용해보면 절삭하는 느낌이 다소 독특합니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Steel이나 Stainless Steel과는 조성이 많이 다르다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이쯤되면 강철로 부르기 힘든 합금이라 봐도 될 것 같습니다.

 

 

 

CPM S35VN

 

: 탄소 1.4%, 크롬 14%, 몰리브덴 2%, 바나듐 3%, 니오븀 0.5%

 

 미국 크루서블사의 파우더 스틸. 개발과정에서 나이프를 위해 제작된 드문 강재 중 하나입니다. SG2에 필적하는 칼날 유지력인데, 인성은 SG2보다 현저하게 더 높습니다. 니오븀은 작은 크기의 카바이드를 형성해서 날물에 좋은 특성을 부여합니다. S35VN은 아웃도어용 나이프를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됩니다만, 미국에서는 고성능 주방칼 제작에도 사용합니다. 나는 S35VN과 후술할 Elmax를 유사한 레벨의 강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평가는 Elmax가 더 좋은 것 같습니다만.

 

 

 

Elmax SuperClean

 

: 탄소 1.7%, 크롬 18%, 몰리브덴 1%, 망간 0.3%, 바나듐 3%, 규소 0.8%

 

 스웨덴 우데홀름의 파우더 스틸. 통칭 ‘슈퍼 스틸’로 불리는 강재 중 하나입니다. 높은 경도, 높은 칼날 유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SuperClean’은 우데홀름의 파우더 스틸에 붙는 이름입니다.

 

 S35VN과 비교하면 칼날 유지력이 좀 더 높고, 인성은 조금 떨어집니다. M390과 비교하면 칼날 유지력은 다소 부족하고, 인성은 조금 더 높습니다.

 

 

 

M390 (≒20CV≒204P)

 

: 탄소 1.9%, 크롬 20%, 몰리브덴 1%, 망간 0.3%, 바나듐 4%, 텅스텐 0.6%, 규소 0.7%

 

 오스트리아 뷜러사의 파우더 스틸. 본래 공구강으로 개발되었으나 도검에 사용했을 때 판타스틱한 성능이 나오기 때문에 미국의 크루서블과 카펜터에서 복제를 만들어 나이프용 강재로 사용하게 됩니다. 크루서블에서 만드는 게 20CV, 카펜터에서 만드는 게 204P입니다.

 

 이 슈퍼 스틸은 매우 높은 칼날 유지력과 내부식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탄소함량이 강철의 범주를 초월하는 수준(사전적인 강철의 탄소함량은 0.035~1.7%)으로 높은데다, 20%나 되는 크롬을 가지고 있어 카바이드도 많이 만드는 동시에 충분한 내부식성을 가질 만큼 크롬이 남는 것으로 보입니다. M390은 고탄소 마르텐사이트계 스테인리스 중 최고 수준의 내부식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나듐 함량도 높은 편이다 보니 일반적으로 주방칼에 사용되는 스테인리스 중 M390은 가장 높은 칼날 유지력을 가진 것으로 추정합니다. M390보다 더 높은 칼날 유지력을 가지는 강재는 대체로 스테인리스가 아니거나, 주방칼을 만드는 데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상기한 ZDP189나 HAP40은 M390에 필적하거나 어쩌면 그 이상의 칼날 유지력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만, 그것들은 스테인리스는 아닙니다.

 

 다만 인성은 낮은 편이기 때문에 거친 작업용 식칼 소재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Cronidur 30 (=LC200N=Z-FiNit=1.4108=N360)

 

: 탄소 0.25~0.35%, 질소 0.3~0.5%, 크롬 14~16%, 몰리브덴 0.85~1.1%, 망간 1%, 니켈 0~0.5%

 

 고질소강. 강철에 섞인 질소는 탄소를 대신할 수 있지만, 일정농도 이상의 질소를 철과 합금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크로니두르 30은 질소를 철과 합금하려는 시도 끝에 개발되었고, 획기적인 내부식성과 높은 인성을 가지는 강재입니다. 또한 인성에 비해 칼날 유지력도 나쁘지 않습니다.

 

 마르텐사이트계임에도 오스테나이트계 수준의 내부식성을 가진 강재인만큼 도검에 사용될 때는 부식이 쉬운 환경에서 아웃도어 나이프용으로 많이 쓰입니다만 헹켈에서 창립 280주년 기념칼, 트윈 1731에 크로니두르 30을 사용하면서 일부에게나마 보급되었습니다.

 

 통용되는 이름이 꽤 많은 강재인데 아웃도어 나이프 사용자에게 주로 알려진 이름은 LC200N입니다. 대조적으로 주방칼 사용자에게 알려진 이름은 크로니두르 30 쪽입니다.

 

 

 

CPM MagnaCut

 

: 탄소 1.15%, 크롬 10.7%, 질소 0.2%, 몰리브덴 2%, 바나듐 4%, 니오븀 2%

 

 높은 칼날 유지력, 칼날 유지력에 비해 꽤 높은 인성, 높은 내부식성을 동시에 가지는 파우더 스틸. 원래 이 셋이 같이 높기가 어려운데, 그걸 실제로 구현해낸 나이프용 강재입니다.

 

 탄소함량이 높지 않고, 탄소함량 대비 크롬 함량도 높은 편이 아니지만 크롬 카바이드의 형성을 최소화하는 배합으로 개발되었고 몰리브덴을 함유하여 내부식성이 높은 편입니다. 최근에 개발된 인기높은 강재. 제조사는 크루서블이고 개발자는 Larrin Thomas입니다.

 

 

 

 

 다음 차례로는 칼의 각 부분 및 그 형태 등에 대한 특성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ㄱ) 칼날

 

 날붙이는 물리력을 날끝에 집중시켜 무언가를 자르는 도구입니다. 잘 드는 칼은 칼끝의 두께가 얇고, 칼날 부분의 단면 형상이 예각이고, 베는 동안 날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완벽하게 날을 세운다고 한다면 날끝이 분자 하나만큼의 두께가 되면 이상적인 두께입니다만, 금속 칼의 경우 그 정도로 날을 세우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그런 두께의 칼날은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상적으로 간 금속 칼날은 실제로 수십 나노미터 수준의 날끝 두께를 가질 수는 있습니다.

 

 금속이 아니라 흑요석이나 유리, 석영을 사용한다면 극단적인 날끝을 만들 수 있긴 합니다. 흑요석은 날을 완벽하게 세우면 진짜로 3나노미터 수준의 날끝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물론 주방칼에 흑요석을 쓸 일은 없습니다만.

 

 칼날 단면의 각도는 실질적으로 칼의 절삭력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칼끝의 단면은 쐐기 형태기 때문에, 각도가 예리할수록 잘 벨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각도가 예리할수록 날이 약해지고, 손상되기 쉽습니다.

 

 주방칼은 종류에 따라 날을 V자 모양의 양각날로 세우기도 하고, │/ 모양으로 편각날을 세우기도 합니다. 보통 편각날이 더 잘 든다는 인식이 있지만, 실제 절삭력을 측정해보면 동일 각도에서는 양각날 쪽이 더 절삭력이 높게 측정됩니다. 아마 │/ 모양의 / 부분이 자르는 대상에 대해 더 둔각이라 그럴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실제로는 회칼 등에는 │/ 모양의 편각날이 선호되고 있는데, 익히지 않은 생선살과 같은 부드러운 물성을 가진 음식물에는 편각날이 음식물을 우라면 반대 방향으로 밀어내면서 단점이 상쇄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양각날 칼은 일반적으로 편각날 칼에 비해 둔각으로 세워집니다. 편각날 칼은 우라오시쪽은 0°이기 때문에 15~20°수준으로 날을 세우는 게 어렵지 않은 반면, 양각날 칼은 20°수준으로 날을 세우려면 한쪽마다 10°로 연마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편각날은 손잡이 쪽에서 볼 때 │/ 모양으로, 왼쪽에 우라면이 있는 게 일반적이고, 그게 오른손으로 쓰는 칼입니다. 그런데 왼손잡이도 있기 때문에, 왼손잡이를 위한 반대 방향의 편각날도 있습니다. 왼손잡이용 편각날 칼은 사용자가 적다보니 아무래도 더 비싸고, 공급도 적은 편이긴 합니다.

 

 칼날은 매끄럽게 세워질 수 있으면 좋지만,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매끄럽고 이상적으로 칼날을 세우기는 어렵습니다. 칼날 끝은 나노미터 단위의 세계고, 그보다 조금 두꺼운 부분도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세계라 육안으로는 보이지도 않고 미립자는 만져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미세 영역이 자르는 데는 영향을 줍니다.

 

 날을 세우는 방식은 칼날의 완성도에 영향을 줍니다. 일반적으로 추천되는 방식은 방수가 낮은 숫돌부터 시작해서 점차 높은 (고운) 숫돌로 손으로 갈아 마무리하는 겁니다. 다른 방식으로 날을 세우면 그렇게까지 매끄럽게 완벽하게 날을 세우기 어렵고, 기계적인 건식 연삭 도구를 사용하면 아예 마찰열로 온도가 너무 올라가서 열처리가 풀려버릴 수가 있습니다. 간이 칼갈이는 칼날 끝쪽만을 갈아버리고 보다 위쪽은 갈지 못하기 때문에 과도하게 사용하면 갈아도 잘리지 않는 무딘 날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이상적인 내구성을 가지는 양각날의 단면은 볼록한 모양이어야 합니다만, 느슨한 벨트 샤프너를 이용해 숙련자가 갈 때만 구현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숫돌로는 바나듐이나 텅스텐 카바이드를 갈아낼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다이아몬드 숫돌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면, 커런덤 숫돌로는 바나듐이나 텅스텐 카바이드는 갈아내는 게 아니라 떼어내게 됩니다. 커런덤이 경도가 더 낮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장표 숫돌로는 스테인리스의 크롬 카바이드도 갈아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실질적으로는 카바이드의 입자 크기가 연마 난이도에 영향을 줍니다. 숫돌 등 연삭재의 요철 크기보다 카바이드가 작을 경우, 카바이드를 통째로 떼어내기 쉬워집니다.

 

 즉 경도가 높은 비철금속 카바이드가 큰 입자 크기로, 분균일하게 생길 경우 일반적인 연마로는 매끄러운 칼날을 세우기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카바이드와 주변 강철 조직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큰 카바이드는 경계부분을 따라 칼날 끝이 안 보이게 깨져나가게 만들기 쉽습니다.

 

 한편으로 칼날 끝은 너무나 얇고, 금속은 어느 정도 충격이 가해져도 휘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실제 미세영역에서는 칼날 끝이 휘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발생합니다. 그러나 금속은 굽힘이 반복되면 피로파괴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저항성(피로강도 및 인성)이 실제 매끄러운 날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카바이드는 인성을 떨어뜨립니다. 카바이드의 양이 많을수록, 입자의 크기가 클수록 인성이 떨어집니다.

 

 부식과 광물질의 형성 또한 칼날의 이상적인 날카로움에는 악영향을 줍니다. 부주의하게 다룰 경우 스테인리스도 조금씩 부식되며, 물에 녹아있던 광물질 성분들이 칼날 끝에서 말라 굳을 경우, 보이지 않는 크기의 결정을 만들어내 날카로움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일상적으로 사용할 때는 아무 문제 아닌 게, 칼날 끝과 같은 나노미터 단위의 세계에는 악영향을 줍니다. 흔히 강철칼이 스테인리스보다 잘 든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가 강철칼 사용자들의 관리 방식에 있을 걸로 추정합니다. 강철칼 사용자들은 녹 방지를 위해 칼을 적신 상태로 방치하지 않습니다. 대조적으로 스테인리스 칼 사용자들은 칼을 더 편하게, 부주의하게 다루는 편이기 때문에, 아무리 날을 잘 세워놔도 그게 유지가 충분히 잘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동일하게 주의하여 다루면 스테인리스 쪽이 더 날 유지가 잘 됩니다. 부식에 강하기 때문입니다. 칼날은 보이지 않는 수준의 부식으로도 보이지 않게 손상됩니다.

 

 다만 칼날은 이상적으로 매끄러운 날카로움을 유지하지 않더라도 어지간해서는 절삭은 됩니다. 때때로 손상되거나 잘못 연마되어 거칠어진 칼날이 소재에 따라 더 나은 절삭력을 보이기도 하는데, 보이지는 않아도 미세영역에서 톱날과 같은 모양이 될 경우 어떤 소재에는 더 잘 파고들면서 잘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음식물은 그저 자른다고 다가 아닙니다. 절삭하여 얼마나 깔끔한 절단면을 만들어냈는가에 따라 다른 결과물이 나옵니다. 물론 음식에 따라 완전히 매끄러운 절단면이 무조건 좋은 건 결코 아니기도 합니다.

 

 

 

 

 

일본식 편각날의 단면과 우라의 구조

ㄴ) 우라

 

우라는 양각날 칼에는 없고, 일정 이상 가격대의 편각날 칼에만 있습니다. 가격대가 좀 있는 편각날 칼은 얼핏 보기보다는 구조가 복잡한데, 편각날 칼의 단면을 │/라고 할 때, 왼쪽 │면은 실제로 평면이 아닙니다. 미미하게나마 오목하게 연마를 해 둡니다. 과장하여 표현하면 )/ 같은 모양이란 말이지요. 이 오목한 것을 우라, 오목한 면을 우라면, 오목한 곳을 우라스키, 연마로 생기는 우라스키 위아래의 평평한 영역을 우라오시라고 합니다.

 

 편각날 칼을 연마할 때는 │/ 모양의 오른쪽, 그러니까 /면을 통째로 가는 게 아닙니다. 모든 칼이 그렇듯 기본적으로는 날끝을 갈게 되지요. 그런데 │면이 평면이면 면을 통째로 갈아야 합니다만, 담금질로 경도가 올라간 날물을 통째로 가는 건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면이 평면이면 어지간히 연마를 해서는 제대로 갈리지를 않고, 날을 편각날로 유지시키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라가 있습니다. 우라가 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날끝을 편각날로 세울 수 있는 겁니다.

 

 우라가 있기 때문에 편각날 칼은 숫돌을 이용해 손으로 연마를 해야 합니다. 우라면을 숫돌에 갈아 우라오시를 먼저 연마해주는 게 편각날 칼의 연마방식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편각날을 세우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 외 우라는 음식물이 칼날에 덜 붙게 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날면이 오목하니까 아무래도 덜 붙게 됩니다.

 

 편각날 칼도 저렴한 건 우라가 없습니다. 우라는 일단 단조 과정에서 숙련된 단조사가 직접 망치로 때려 만듭니다. 그 다음에 수공연마과정에서 우라를 완성하고요. 그러니까 기본적으로는 제대로 만든 수공단조제품이어야 우라가 있다는 겁니다. 그냥 판 강재를 잘라 만드는 편각날 칼은 우라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일본식 주방칼에서 수공 단조가 중요하게 취급되는 한 이유입니다.

 

 우라가 없는 편각날 칼은 실질적으로 날끝은 1:9 정도의 비대칭 양각날이라 생각해도 됩니다. 우라가 있는 칼도 완벽하게 편각날을 세우면 날끝이 쉽게 손상되는 경향이 있어, 끝부분이 둔각인 이중날(이토)을 만들거나 날끝의 우라오시를 살짝 갈아 비대칭 양각날을 만들어놓기도 합니다. 절삭력을 포기하고 내구성을 확보하는 식의 연마를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거지요.

 

 탄소강 편각날 칼은 우라스키에 녹이 스는 걸 신경써야합니다. 우라면을 숫돌로 문지르더라도 오목한 우라스키에는 숫돌이 닿지 않으므로 직접 제거를 해 줘야 합니다. 우라스키에 붉은 녹이 깊이 파고들다보면 칼의 수명이 끝납니다.

 

 그리고 우라의 존재 때문에라도 일식 요리사들은 다이아몬드 숫돌같은 연마력이 강한 숫돌의 사용을 피하거나 최소한으로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편각날 칼은 날 부분의 우라오시를 소모하면서 사용하는 거고, 그러니까 날 부분의 우라오시를 아껴 사용해야 칼 자체를 제대로 오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 숫돌처럼 연마력이 강한 건 우라를 너무 많이 소모시키기 쉽습니다. 우라가 다 소모된 편각날 칼은 상기하였듯 비대칭 양각날을 세워 쓰게 되는 게 보통입니다. 우라를 다시 파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라가 있는 편각날 회칼은 양각날 칼에 비해 탄소강이 장점을 더 가집니다. 아무리 칼날 유지력이 높은 고합금강을 사용한다 해도, 경도가 높은 금속으로 만든 날은 취성이 있고 칼날의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칼날 끝이 미세하게 깨지게 되고, 사용하다보면 미네랄 결정이나 부식에 의해서도 미세하게 손상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절삭력은 유지될지언정 절미나 절단면의 매끄러움이 유지될 수는 없습니다. 생선회의 특성상 절단면은 매끄러울수록 좋고, 그렇기에 회칼은 가능한 매끄럽고 완벽한 날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결국 자주 연마하는 게 답이고, 우라면이 있는 편각날 칼을 자주, 완벽하게 갈면서도 최대한 오래 날쪽 우라오시를 보존하려면 탄소강만한 게 없게 됩니다. 파우더 스틸 같은 경우 애초에 우라를 만드는 게 어렵기도 합니다.

 

 

 

 

 

ㄷ) 칼등 두께

 

 칼등 두께는 주방칼의 특성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두께가 두꺼운 칼은 같은 날폭과 길이일 때 보다 무겁고 튼튼합니다. 그리고 음식물을 자를 때 쐐기처럼 파고들면서, 절삭과정에서 절삭이 끝난 부분을 벌려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공 단조작업이 들어가는 칼들은 칼등 두께가 두꺼운 편입니다. 단조를 통해 칼날 부분은 얇게, 칼등 부분은 두껍게 만듭니다. 다마스커스의 경우 대체로 접쇠공정 덕에 두께가 어느 정도 있고요. 대조적으로 얇은 철판을 절삭가공해서 수공단조 없이 만드는 방식의 날물은 보통 두께가 얇습니다.

 

 도마 위에서 음식물을 자를때, 칼날의 질량은 절삭력에 제법 영향을 줍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칼날이 무거우면 잘 잘리고, 가벼우면 잘 잘리지 않습니다. 칼등 두께가 두꺼운 칼은 동일 조건에서 더 무겁기 때문에, 들어올리는 동작에 힘이 더 들어가지만 더 잘 잘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이런 경향은 음식물의 딱딱한 정도에 따른 차이가 심한 편인데, 예를 들어 부피가 크고 단단한 뿌리채소 같은 경우 형태변형이 어려우므로 칼등 두께가 얇은 쪽이 쉽게 파고듭니다. 두꺼운 칼은 무처럼 큰 뿌리채소를 자르는 데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익히지 않은 생선살이나 육류 같은 경우 질기긴 하지만 모양변형은 쉬우므로 칼등 두께가 두꺼운 칼로 당겨 잘라도 문제가 없고, 오히려 질량 때문에 얇은 칼보다 쉽게 잘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칼이 아예 파묻힐 정도로 부피가 큰 육류나 생선을 다룰 때는 칼날이 얇고 폭도 좁으면서 표면은 매끄럽지 않은 게 좋습니다. 그런 조건에서는 칼날과 음식물의 마찰을 줄일수록 칼이 잘 나갑니다. 어떤 음식물을 자르냐에 따라 잘 드는 칼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수공 단조작업을 거친 날 면의 한 형태

ㄹ) 날 면의 매끄러운 정도

 

 수공 단조작업이 있는 칼은 많은 경우 칼날 면이 매끄럽지 않게 마무리됩니다. 다마스커스가 아니라도 일부러 장식적인 모양을 만들어놓는 경우도 제법 많은데, 심미적인 이유도 있습니다만 실제 사용할 때도 특성이 달라집니다. 칼날 면이 매끄럽지 않고 우둘두둘한 부분이 많을수록 절삭시 음식물에 접촉하는 면적이 좁아집니다. 즉 마찰이 더 적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칼날의 면적 대비 부피가 큰 음식물을 자를 땐 날면이 음식물에 덜 마찰할수록 쉽게 절삭됩니다. 다만 날면이 매끄럽지 않게 처리되는 칼은 보통 수공단조를 거친, 칼등 두께가 일정 이상 두꺼운 칼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두께가 얇은 게 이익인지, 아니면 날의 표면이 매끄럽지 않은 게 이익인지는 자르는 음식물의 특성에 따라 달라집니다.

 

경면 처리를 한 야나기

 반대로 경면처리라고, 날의 면을 거울처럼 가공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이는 고방수의 숫돌에 연마를 해서 아주 매끄러운 표면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위해 만드는 작업이고, 그래서 가격대가 좀 있는 수공단조도검에 시도되곤 합니다. 이 경우 보기엔 좋지만 음식물에 대한 마찰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부피가 큰 음식물을 자르기에는 덜 적합해집니다.

 

 참고로 수공단조 공정이 있는 쪽이 꼭 고급칼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날물 전체가 파우더 스틸인 경우에는 수공단조공정이 들어갈 여지가 없습니다. 일본식 주방칼은 날물은 파우더 스틸로, 바깥쪽은 수공단조로 만드는 카스미도 많습니다만 그게 날물 전체를 파우더 스틸로 만드는 것보다 우월한 방식은 아닙니다. 그런데 날물 전체를 고합금 고경도 파우더 스틸로 만들게 되면 대체로 칼등이 얇고, 날면은 매끄럽게 마무리됩니다. 워낙 비싸고 가공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테이퍼가 두드러지는 가라스키

ㅁ) 테이퍼와 곡률

 

 테이퍼는 도검에서 칼날이 핸들에서 끝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거나 얇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방칼은 보통 칼날의 두께는 일정하므로, 폭이 좁아질수록 테이퍼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곡률은 칼날이 휜 정도입니다.

 

 테이퍼는 주로 무게중심에 영향을 줍니다. 칼날이 길수록 무게중심이 손잡이 쪽이 있는 쪽이 다루기 편한데요. 테이퍼는 칼끝 부분을 가볍게 하고 손잡이 부분을 무겁게 해 다루기 편하게 만들어줍니다.

 

곡률이 큰 빅토리아녹스의 cimeter

 곡률은 절삭력과 상관이 있습니다. 곡률이 없는 주방칼은 음식물에 날이 1차원적으로, 그러니까 하나의 선으로 닿게 됩니다만 곡률이 심한 경우에는 0차원적, 그러니까 점의 형태에 가깝게 음식물이 날이 닿고 힘이 집중됩니다. 그래서 곡률이 있는 칼과 없는 칼은 절삭력이 좀 차이납니다.

 

 셰프 나이프/규토는 곡률이 있는 대표적인 칼입니다. 대조적으로 산토쿠는 곡률이 별로 없고, 나키리는 그보다 더 적거나 아예 없으며, 중식도는 거의 아예 곡률이 없습니다. 대조적으로 시미터는 셰프 나이프보다 큰 곡률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르기 어려운 걸 자를 때는 곡률이 있는 칼의 곡률을 이용하면 보다 쉽게 자를 수 있습니다. 밀거나 당기는 동작으로 자를 때 곡률의 효과가 커집니다.

 

 

 

 

손잡이에 가까운 부분의 날끝 모서리를 사용 가능한 타입의 6인치 셰프 나이프

ㅂ) 날의 뾰족한 부분

 

 뾰족한 칼끝이 필요한 작업들이 있습니다. 그냥 칼날로는 해결이 안 될 때가 있지요.

 

 키리츠케 규토나 페티의 경우 칼끝이 매우 뾰족하기 때문에, 뾰족한 칼끝이 필요할 때 유용합니다. 대신 그만큼 위험하니까 조심해야 하고요.

 

 일부의 칼은 손잡이쪽 칼날 끝이 뾰족하게 처리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도 사용 가능합니다. 그런데 다칠 확률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이 뾰족한 걸 선호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아예 갈아내서 뾰족하지 않게 처리하기도 합니다. 후술할 볼스터가 이 부분을 덮는 경우도 있고요.

 

 

 

 

 

풀탱

ㅅ) 슴베

 

 슴베(Tang)는 손잡이에 들어가는, 날물에서 이어지는 부분을 의미합니다. 손잡이가 슴베를 완전히 감싸서 슴베가 보이지 않는 타입은 히든탱 또는 하프탱, 슴베가 손잡이 끝부분까지 이어져서 손잡이가 슴베를 감싸는 형태면 풀탱이라고 합니다. 둘은 특성이 좀 다릅니다.

 

 내구성이 좋은 건 당연히 풀탱 쪽입니다. 풀탱을 실제 본 적이 없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철판이 날 뿐만이 아니라 손잡이까지 쭉 이어지고, 손잡이는 그 철판을 감싸는 형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떤 풀탱 도검은 별다른 손잡이 없이 그냥 슴베에 마끈 등을 감아서 사용하는 타입도 있습니다. 주방칼은 그런 타입이 없지만, 아웃도어 나이프에는 그런 타입도 있지요.

 

끈을 감아 핸들을 처리한 풀탱 아웃도어 나이프

 풀탱 칼은 대략 유럽식입니다. 풀탱이 히든탱과 가장 다른 점은 무게와 무게중심입니다. 손잡이 끝부분까지 철판이 이어지기 때문에, 히든탱 대비 더 무겁고 무게중심이 더 손잡이 쪽에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더 묵직하고, 무게균형이 잘 맞는 편입니다. 풀탱은 많은 경우 슴베가 드러나 있고, 슴베 면을 포함하여 쥐게 됩니다. 나는 슴베가 드러난 풀탱 핸들의 쥐는 감각을 좋아합니다.

 

 히든탱은 풀탱 대비 칼의 전체 무게는 보통 가볍습니다. 대체로 철제 슴베보다는 핸들 소재가 가볍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히든탱은 무게중심이 날 쪽에 있습니다. 긴 칼일수록 더 그러합니다. 그래서 쥐었을 때 느낌이 다릅니다. 일본식 회칼 계열은 칼등이 두껍고, 길이도 긴데 히든탱이기 때문에 무게중심이 현저하게 칼날쪽에 있습니다.

 

레이피어의 핸들 부분. 풀탱입니다.

 과거 전투용 도검은 풀탱이 많을 것 같아도 의외로 히든탱이 많았습니다. 풀탱은 히든탱 대비 도검으로 무언가를 베거나 할 때 손에 전해지는 충격량이 크기 때문입니다. 강재에 비해 연한 소재인 핸들이 충격을 흡수해줘야 손목이 덜 아프단 말이지요. 손에 닿는 탱 사이드가 부식될 여지도 있고요. 일본식 식칼은 카타나의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이라 전통적으로 히든탱을 쓴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조적으로 서양 도검은 근대를 거치며 레이피어와 사브르로 발전하는데, 레이피어와 그 이후에 등장한 스몰소드, 에페, 플뢰레 등은 중세도검에 비해 날이 가느다란 도검이다보니 풀탱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서양식 나이프는 풀탱이 많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식 팔각핸들. 히든탱입니다.

ㅇ) 핸들의 모양

 

 주방칼 손잡이의 모양은 실제 칼을 사용할 때 느낌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일본식 칼은 단면이 팔각으로 각이 져 있는 게 특징입니다. 히든탱 팔각핸들이 일본식 주방칼의 아이덴티티입니다. 각이 있기 때문에 원형계열 핸들이나 측면이 납작한 핸들과는 다른 그립감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만드는 일본식 칼도, 일본식이라는 특성을 강조할 때는 손잡이에 각을 줍니다. 완전한 팔각일수록 일본식 같아집니다.

 

헹켈 밥 크라이머 브랜드의 굴곡이 있는 핸들을 가진 나이프

 일본식을 제외하면 대체로 핸들은 둥그스름합니다. 아예 동글동글한 계열도 있고, 좀 납작하게 동그란 것들도 있는데 아무래도 취향차가 큽니다. 이것저것 쓰다 보면 손 모양에 맞춰 약간의 굴곡이 있는 핸들이 쓰기 편하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어째 그런 건 저렴이 주방칼에 많고 고급 주방칼에는 상대적으로 덜 흔합니다.

 

 

 

 

 

흑단 핸들. 흑단은 수종과 부위에 따라 완전히 검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ㅈ) 핸들 소재

 

 소재를 크게 나누면 플라스틱과 나무가 있습니다. 플라스틱은 가볍고 부패하지 않는 게 장점입니다. 그래서 편하게 쓰는 칼일수록 플라스틱 손잡이인 게 좋습니다. 대부분의 가정 주방에서는 손잡이가 플라스틱인 칼을 쓰고 있을 겁니다. 일반적인 가정용 칼은 내식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날물이건 핸들이건.

 

흑단 핸들 데바

 그렇지만 고급 칼에는 나무 손잡이도 많이 씁니다. 좋은 나무를 쓰면 잡는 느낌도 좋고, 모양도 아름다워집니다. 대신 플라스틱에 비해서는 관리가 필요하고요. 나무 손잡이도 부패를 막기 위해 이런저런 처리는 합니다만, 어쨌든 물에 계속 담가두거나 하지는 않는 게 좋습니다. 나무는 수종에 따른 밀도차이는 있습니다만, 대체로 어쨌든 플라스틱보다는 무겁습니다. 흑단처럼 물보다 비중이 큰 수종을 쓰면 제법 무겁고요.

 

원피스 스테인리스 핸들

 스테인리스 같은 금속으로 손잡이를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날과 아예 결합부가 없이 원피스로 되어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속이 찬 스테인리스면 무겁고 비싸지니까 보통 속이 비게끔 만드는 것 같습니다. 다루기 편해서 이런 타입도 인기가 제법 있지요.

 

아크릴 핸들 풀탱 다마스커스 페티

 고급품 플라스틱 손잡이도 있습니다. 아크릴을 사용해서 고급스러운 무늬를 만든 것들입니다. 그리고 나무 손잡이도 함침 처리를 해서 색을 들이고 모양을 내곤 합니다. 함침 나무 손잡이는 비쌉니다. 부패에 강하고요.

 

함침목 핸들 규토

 주방칼 손잡이의 소재 제한은 거의 없기 때문에 다양한 고급 소재도 사용합니다. 자개(나전), 터키석, 라피스라줄리, 크리스탈, 사슴뿔, 물소뿔, 양뿔, 은 등등. 손에 닿았을 때 문제가 생기거나 쉽게 망가지는 게 아니라면 뭐든 써도 됩니다.

 

소뿔 핸들 풀탱 스테이크 나이프

 

 

 

 

 

핸들에서 칼날로 이어지는 부위가 볼스터입니다

ㅊ) 볼스터

 

 볼스터는 유럽식 칼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핸들과 날 사이에 있는 겁니다. 전투용 도검의 가드와 같은 역할입니다. 볼스터가 있으면 일단 사용 자체는 더 안전하고 편해지는 면이 있습니다. 손이 날로 갈 수 있는 여지를 막아주거든요. 무게중심도 좀 달라지고요.

 

 다만 문제는 볼스터가 날 있는 부분까지 크게 있는 경우 칼을 숫돌에 갈기 좀 어려워진다는 겁니다. 연마봉(야스리)이나 연삭기 등 다른 형태의 칼갈이로 갈아야 합니다. 그런데 칼을 가는 가장 좋은 방식은 숙련자가 숫돌에 손으로 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손해가 있긴 하지요. 이 문제 때문에 볼스터를 갈아내서 없애버리는 사람도 있긴 있습니다.

 

 물론 일반적인 사용자 기준에서 보면 볼스터가 큰 게 좋긴 합니다. 다칠 위험은 적고, 요새 일반인이 숫돌 쓸 일이 얼마나 있습니까. 높은 완성도로 갈리진 않아도 다른 걸로 갈아도 날은 서고요.

 

 

 이상 칼날의 형태적 특성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날물의 물리적 기본 특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본문 초판을 마치겠습니다.

 

 

 

 

 

 

A) 경도

 

 영어로는 Hardness. 딱딱한 정도입니다. 강도와는 다릅니다. 엄밀하게 정의된 개념은 아니지만, 통념으로 이야기하자면 ‘긁힘에 강한 정도’를 의미합니다. 대중적으로는 모스 경도가 잘 알려져 있지요.

 

 경도를 긁힘에 강한 정도라고 규정한다면, 경도는 칼날을 유지하는 능력에 개념적으로 비례합니다. 다만 문제라면 경도라는 개념이 엄밀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칼날처럼 매우 얇은 물질의 경도를 측정하는 건 일반적인 경도 측정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날물의 경도 측정은 일반적으로 록웰(록크웰) 경도 측정법을 사용하는데, 주방칼에 쓰는 경도 높은 금속의 경우 록웰 C측정법이라 하여 다이아몬드 콘을 유압기로 눌러 박아 얼마나 찍히느냐에 따라 경도 측정을 합니다. HRC로 표시하지요. 그런데 이 방식으로는 칼날의 긁힘에 강한 정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습니다. 카바이드 입자가 존재하는 날끝은 균일한 물성을 지니지 않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제 도검에 사용하는 금속은 칼날 유지력이라는 기준을 따로 측정합니다. 일정한 칼날각과 규격으로 칼을 만들고, 실제로 얼마나 벨 수 있는지 측정하는 건데요. 이론적으로 보면 칼날의 경우 이쪽이 더 올바른 경도 측정법일 수 있습니다만, 측정법이 복잡하기도 하고 현재 주로 참조되는 CATRA 칼날 유지력 측정법이 실리카가 함유된 종이를 이용하기 때문에 실리카보다 경도가 낮은(시멘타이트가 실리카보다 경도가 높다는 자료가 일반적이지만, 실제 CATRA 측정결과를 보면 시멘타이트의 경도는 실리카보다 경도가 낮다고 봐야 합니다.) 시멘타이트(철 카바이드)에 대한 유지력 측정을 할 수가 없습니다. CATRA 측정법을 기준으로 하면 440C가 슈퍼청강보다 현저하게 칼날 유지력이 좋은 걸로 측정되는 묘한 결과가 나와버립니다. 440C는 스테인리스라 크롬 카바이드가 많이 형성되어있기 때문에 (텅스텐이 좀 들어가긴 했지만) 시멘타이트에 의해 주로 경도가 나오는 탄소강(저합금강) 계열인 슈퍼청강보다 실리카에 마모가 덜 되는 걸로 추정됩니다. 또한 CATRA 칼날 유지력 측정법은 칼날에 어느 정도 충격과 같은 대미지가 가해지는 실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칼날 유지력 테스트는 특정한 칼이 아니라 특정한 금속의 특성을 파악할 때 사용되는 방식이다보니 실제 시판하는 주방칼들은 HRC만 표기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충분히 완벽한 측정법은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바나듐/텅스텐/니오븀 등의 초고경도 카바이드가 많이 형성되는 합금일수록, 그리고 카바이드의 크기가 작고 균일할수록, 인성이 높을수록 HRC 측정수치 대비 칼날 유지력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일제 고급칼에 많이 사용하는 VG10과 SG2를 비교하면, 경도는 비슷하게 나오더라도 SG2쪽의 칼날 유지력이 더 높습니다. SG2쪽이 바나듐이 많이 들어있고 또 분말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칼날 유지력’을 잘못 이해하면 안 됩니다. 경도와 칼날 유지력이 높은 칼들은 조심조심 주의해서 다뤄야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체로 인성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긁힘에는 강하지만 충격에는 약하단 말이지요. 단단한 걸 강하게 내려치거나, 도마를 긁어가면서 사용하거나 하면 잘못하면 칼날이 깨져버립니다. 칼날 유지력이라는 건 긁힘에 대한 저항력이지 깨짐에 대한 저항력이 아닙니다. 이를 오해하면 안 됩니다. 후술할 ‘인성’에 대한 부분을 참조해주세요.

 

 

 

 

 

 

B) 인성

 

 영어로는 Toughness. 쉽게 이야기하면 깨짐에 저항하는 성질입니다.

 

 단적으로 세라믹은 경도는 어지간한 금속보다 높습니다만 인성은 매우 낮습니다. 충격이 가해지면 깨져버리지요. 다이아몬드는 지구 최고의 경도를 지닌 물질이지만, 경도에 비해 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강한 충격을 가하면 깨져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세라믹이나 다이아몬드 뿐만 아니라 금속도 인성이 부족할 경우 허용이상의 충격이 가해지면 깨집니다.

 

 철은 탄소함량을 높이고 열처리를 통해 경도를 높일수록 인성이 낮아집니다. 그리고 카바이드가 많아질수록 인성이 낮아지고, 또한 카바이드 입자가 클수록 또 인성이 낮아집니다. 고경도 고합금을 분말강으로 만드는 이유는 카바이드의 입자를 작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물성의 균일성은 인성에 큰 영향을 줍니다. 날물의 일부분에 탄소함량이 너무 높다거나, 큰 카바이드가 있다거나, 야금 과정에서 미세한 공기 방울이 섞였다거나 하면 인성이 크게 떨어지게 됩니다. 야금 기술이 떨어지던 시절에 도검을 만드는 데 가장 어려운 요소는 균일한 인성의 확보였습니다. 현대에 들어 야금기술은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드물게나마 작은 공기방울이 섞이는 등 보이지 않는 불량은 발생하고, 그건 주로 날물 전체가 가지는 인성에 큰 악영향을 주게 됩니다.

 

 마구 내리치면서 쓰는 칼과 섬세하게 절삭하는 칼은 다른 물성을 가져야 합니다. 전자는 경도보다는 인성이 높아야 하고, 후자는 경도가 높은 게 좋습니다. 아무리 좋은 금속이라도 경도, 특히 칼날 유지력과 인성이 같이 높기는 어렵습니다. 같은 금속이라도 칼을 만들 때 경도를 조금 낮추면 인성이 높아집니다.

 

 경도가 아주 높은 칼들은 금속칼이라도 세라믹 칼처럼 인성이 없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마모에는 매우 강하지만 충격을 받으면 칼날이 깨지면서 아예 이가 나가버립니다. 대조적으로 우리나라 대장간 칼들은 경도는 낮고 인성 특화입니다. 생선을 토막내거나 닭을 자르려면 인성이 높은 칼이 필요합니다. 특히 냉동된 식재료를 자르려 시도할 때 인성이 부족한 칼의 사용을 피해야 합니다. 얼은 음식 자르려다가 세라믹 칼날 깨먹었다는 이야기가 드물지 않습니다. 대조적으로 경도가 낮고 인성만 높으면 깨지지는 않지만 칼날이 잘 닳고, 충격이 가해지면 날이 잘 뭉개지게 됩니다.

 

끝이 말려버린 칼날 단면의 사진

 인성은 칼날의 안정성에 영향을 줍니다. 칼날을 바짝 세울수록 그렇게 됩니다. 연마를 제대로 한 칼날 끝은 매우 미세한 두께를 가지고, 실제 사용을 하면 미세한 영역에서 계속 휘거나 하다가 파괴되곤 합니다. 높은 인성은 이런 피로파괴에 대한 저항성(피로강도)을 높여줍니다. 즉 인성이 높은 소재여야 날을 예리하게 세워서 쓰기에 적합하고, 높은 절삭력의 날물에 어울린다는 이야기입니다.

 

 한편으로 칼날이 일정 이상 길어지면 인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옛날 백병전 시대에 사용하던 전투도검을 만든다고 가정하면, 경도보다는 인성이 훨씬 중요합니다. 장검정도의 질량과 길이를 가지는 도검은 날을 바짝 세우지 않아도 인체에 치명적인 대미지를 쉽게 가할 수 있기 때문에 날 유지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인성이 부족하면 충격이 가해졌을 때 부러져 버립니다.

 

 

 

 

녹슨 스테인리스 주방칼

C) 내부식성

 

 실제 칼을 사용할 때 내부식성은 꽤 중요한 요소입니다. 칼 관리를 잘하더라도 녹이 잘 쓰는 칼은 시간을 더 쓰게 됩니다. 일반 가정은 칼을 원체 막굴리는 집이 많으니까 강철칼을 사용하는 주부는 별로 없고요.

 

 철에 합금했을 때 내식성에 가장 크게 관여하는 금속은 크롬이고, 그 다음이 니켈. 그 다음이 망간과 몰리브덴쯤 됩니다. 그리고 탄소는 크롬과 결합하기 때문에 내식성을 떨어뜨립니다. 즉 탄소를 많이 넣어 경도를 올리면 내부식성은 낮아집니다.

 

 스테인리스라도 냄비 만드는 오스테나이트계에 비해 칼 만드는 마르텐사이트계는 내부식성이 낮습니다. 경도확보를 위해 탄소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경도가 높을수록 녹이 잘 습니다. 그러니까 완전 저렴이 스텐 식칼은 보통 녹은 잘 안 습니다. 탄소함량이 낮고, 칼날 유지력이 떨어지는 대신 그나마 내식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내식성에 완전히 특화된 칼도 있긴 합니다. 세라믹이나 티타늄같은 소재 칼이요. 세라믹 칼은 아예 녹이 슬지 않지요.

 

 시중에 드물지만 내식성이 매우 높은 질소합금소재 칼도 있긴 합니다. 스테인리스에 탄소 대신 질소를 합금하게 되면 경도, 인성, 내부식성이 다 같이 일정 이상 높은 스틸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일정 이상 질소가 섞인 합금은 매우 만들기 힘들다는 겁니다. 그래서 비싸고요. 프라이팬 같은 거 만들 때 질화철을 표면에 만드는 공정은 그렇게까지 어렵거나 완성품이 비싸지 않지만, 질소합금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감자칩을 사도 봉지 안에 주로 들어있는 게 질소입니다만, 그 질소를 철과 합금하는 건 큰 규모의 장비를 필요로 합니다. 실제 질소합금 칼 써보면 좋긴 좋습니다. 비싸고 구하기 힘들다보니 추천은 못합니다만.

 

 대조적으로 내식성이 극단적으로 낮은 소재는 백강입니다. 철과 탄소 외에는 최대한 제거한 소재라서, 부식을 막아줄만한 성분이 없습니다. 나는 백강 칼은 젖은 상태로 두지도 않고 새콤한 걸 자르지도 않습니다.

'식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년 여름 주류 감상문  (31) 2023.09.02
2023년 여름 공산품 음식 감상문  (14) 2023.08.31
요리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 #8  (26) 2022.04.10
요리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 #7  (28) 2022.03.13
요리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 #6  (26) 2022.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