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 #3

식이 2020. 10. 5. 16:27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youtu.be/LHJtoA5pFCY

 

1- https://oceanrose.tistory.com/1202

2- https://oceanrose.tistory.com/1205

 

 

 

 

 

1) 자연산 광어와 양식 광어 중 뭐가 맛있느냐는 이야기가 가끔 나옵니다. 별로 맛 차이 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에 관한 나의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연산 광어와 양식 광어는 먹는 음식도 다르고, 운동량도 다르기 때문에 맛이 다릅니다. 자연산 광어가 복합적인 맛이라면, 양식 광어는 상대적으로 잘 조절된 맛입니다. 비유하자면 자연산 광어 맛은 구세계 와인에 가깝고, 양식 광어는 신세계 와인에 가깝습니다.

 

 나한테는 평균적으로는 자연산 광어가 더 맛있습니다. 그런데 광어가 맛없는 하절기에는 양식 광어가 낫습니다. 그리고 내가 먹어본 광어 중 가장 맛있던 1, 2위는 양식 광어였습니다. 광어는 개체마다 맛 차이가 큰 편인데, 나는 양식 광어 쪽을 자연산보다 훨씬 많이 먹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2) 외국에서는 잘 먹지 않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즐겨 먹는 대표적인 생선 중 하나가 참조기입니다. 참조기는 매우 맛있는 생선인데, 왜 일본이나 중국에서 잘 안 먹는지는 모를 일입니다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부세를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참조기가 분명 예전에는 흔한 서민생선이었는데 요샌 귀해져서 무언가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게 되었습니다

 

 참조기는 황강달이(황석어/황새기)와 외모가 매우 흡사합니다. 상인들도 참조기 새끼를 황새기라고 팔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맛을 보면 참조기와 황새기는 맛이 다릅니다. 구분을 잘 안 하는 경향이 있어서, 황석어젓이라고 담근 걸 보면 참조기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나는 참조기 쪽을 좋아하는데 어린 참조기 젓갈이 적당히 삭았을 때는 매우 맛있습니다만, 나는 생선뼈를 먹지 않기 때문에 발라 먹는 게 일입니다. 그리고 너무 삭으면 나에게는 먹기 힘든 냄새가 되어서 잘 먹지 못합니다.

 

 

 

 

3) 인천 지역 어시장에 가면 갯가재를 많이 팝니다. 어느 지역에서나 쏙과 갯가재를 구분 안 하고 부를 때가 많은데, 쏙과 갯가재는 다릅니다. 쏙은 갯가재처럼 생겼지만 새우의 일종(또는 매우 가까운 친족)이고요. 갯가재는 그냥 가재라고 팔 때가 많습니다.

 

 갯가재는 저렴하고 잘 까져서 먹기 편합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봐서 별 감각이 없는데, 안 보던 분들은 무슨 벌레나 외계생물체처럼 생겼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쪄 먹으면 맛은 평범하고 슴슴하게 맛있고, 갑각류가 원래 좀 그렇지만 껍데기에 비해 살이 별로 없어서 한참 먹다보면 배는 별로 안 부른데 껍데기는 엄청나게 쌓이는 먹거리입니다.

 

 주관적으로는 동일하게 바닷가재로 불리는 랍스타보다는 갯가재가 훨씬 맛있습니다. 랍스타는 비싸기만 하지 진짜로 맛이 없어요. 괜히 옛날에 미국 노예나 하인들이 랍스타를 계속 식사로 주면 어찌 사람에게 그런 걸 줄 수 있느냐고 싸웠던 게 아닙니다.

 

 갑각류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갯가재를 사서 해 드셔보시길 바랍니다. 가성비가 좋은 갑각류입니다. 문제는 직접 사서 해 먹지 않는 한 별로 먹어볼 일이 없는 식재료라는 겁니다. 어시장에는 매우 흔한데요.

 

 

 

 

 

4) 병어는 세꼬시로 많이 먹습니다만, 주관적으로는 조림을 할 때 맛있는 생선입니다. 조려 먹을 때는 내가 아는 생선 중 가장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삼치를 꼽겠습니다.

 

 생선조림은 좋아하는데 병어조림은 안 드셔보신 분들은, 병어조림을 꼭 드셔보셔야 합니다. 조림을 위해 태어난 생선인 것처럼 맛있습니다.

 

 물론 병어는 뫼니에르를 해 먹어도 맛있습니다. 프랑스식 레시피지만 별로 어려울 건 없고, 레몬즙을 바른 다음에 밀가루를 잘 묻혀서, 버터에 구우면 됩니다. 생선 요리를 할 때 레몬즙을 쓰면 비린내를 잡아줍니다.

 

 여담인데 예전에는 인천 앞바다에 병어가 제법 흔했습니다. 그런데 매립을 하다 보니 귀해졌고, 큰 병어(:덕자병어)는 이제 비싼 고급생선이 되어버렸지요. 간척사업이 병어 같은 어종을 죽이는 건, 매립을 하는 데 필요한 흙을 바로 옆의 바다에서 조달하기 때문입니다. 간척사업에는 어마어마한 흙이 필요한데, 인근 바다 모래나 개흙 같은 걸 이용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그걸 조달할 방법이 없습니다. 위험하게 오염 위험 있는 물질 함부로 쓸 수도 없고요. 그러니까 병어 같은 생선의 산란장이 광범위하게 파괴되는 겁니다. 사실 대도시에 국제공항 건설한 인천 앞바다는 둘째 치고 새만금이나 조력발전소 같은 게 진짜 문제입니다. 특히 조력발전소는 말이 친환경이지 바다에 말도 안 되는 대미지를 줍니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방식입니다. 친환경 이름 붙은 것 치고 제대로 된 거 거의 없습니다. 지열발전은 포항지진의 주원인이라는 설이 유력해서 공식적으로 중단되었고, 풍력은 보긴 좋지만 소음이 크고 철새 대량 학살 중이며, 문제의 태양광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농담이 아니고 원전이 제일 친환경 같습니다.

 

 

 

 

 

5) 우리나라 사람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은 다른 문화권보다 다양한 생선을 곧잘 먹는 편입니다. 그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젓가락인 것 같습니다. 젓가락은 생선살을 바르는 데 매우 유용한 도구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주로 쓰는 금속 젓가락은 정교한 살 바르기를 용이하게 합니다.

 

 대조적으로 서구 사람들은 포크를 쓰니까, 생선살을 발라먹을 방법이 없습니다. 손으로 잡고 뜯거나, 미리 조리할 때 살을 발라내야 합니다.

 

 여담인데 흔히 젓가락질 방식으로 II(또는 V자로 묘사)를 정석이라 합니다. 그런데 II자는 원래 일본식입니다. 일제 이전 조선 시대에는 X자를 많이 썼습니다. 양반은 겸상을 안 하는 문화였는데 남의 젓가락질에 신경 쓸 필요도 없었지요. 중국도 X자 젓가락질을 많이 합니다.

 

 사담으로 나는 II자와 X자를 모두 할 수 있습니다만, 꽤 오래 전부터 나무젓가락을 주로 사용하고 있고(일회용은 안 씁니다), 나무젓가락을 사용하다 보니 X자를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X자 젓가락질은 젓가락끼리 미끄러지며 움직이다 보니 마찰이 적은 금속 젓가락을 사용할 때 더 용이한 것 같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나무젓가락이 주류인데, 그래서 II자 젓가락질이 정석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II자 젓가락질이 생선을 먹는 데 더 유리해서 그렇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나는 X자로도 생선을 먹는 데 별 불편을 느끼지 않으며 X자 사용자들은 대체로 불편이 없다고 생각할 겁니다.

 

 

 

 

 

6) 요새는 꽤 줄어들었습니다만, 아직도 좌식 테이블인 음식점들이 꽤 있습니다. 집에서도 좌식생활을 하는 분들도 있고요. 그런데 좌식생활은 발목, 무릎, 고관절, 골반, 허리 등에 모두 좋지 않습니다. 가급적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게다가 신발을 벗는 음식점은 냄새 문제도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조선 초기까지는 입식 생활권이었습니다. 그런데 온돌이 보급되면서 바닥에 몸을 지질 수 있는 좌식 생활이 일반화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현대 들어 다시 입식으로 변하는 중이지요. 몸에는 입식이 좋습니다.

 

 가끔 오래 된 음식점을 보면 처음에는 좌식으로 인테리어를 했다가 입식으로 개조를 하거나, 일부만 입식으로 바꾼 경우를 봅니다. 좌식 인테리어가 전통 한식답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겠으나, 나는 무조건 입식이 좋습니다.

 

 요새는 각 지자체에서도 좌식 식당을 입식 식당화하는 걸 지원해준다고 합니다. 세금을 그런 데 써도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식당들이 입식화되는 건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7) 식당 공기밥의 기원은 박정희 유신 시절입니다.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금 기준으로는 조리용 bowl이나 면기 정도에 해당하는 사이즈의 그릇에 밥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밥을 많이 먹다 보니 쌀이 부족해서, 박정희 시절에 스테인리스 밥공기의 규격화를 강제합니다. 그래서 블루컬러 성인남성 기준, 11공기로는 어림도 없는 미니 밥공기가 표준 규격이 되었지요. 스뎅 밥공기는 작기도 한데 더운밥을 담으면 너무 뜨겁기 때문에 사용하기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한국도자기나 행남자기 같은 국내 도자기 브랜드에서 스뎅 밥공기 사이즈에 맞춰 밥공기를 제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나는 2년에 한 번 정도는 새 공기를 구매하고 있는데, 밥그릇 구매는 가심비가 매우 좋은 것 같습니다.

 

 사견으로 한식당은 가격대가 조금 있는 정식을 제외하면 식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경향이 강한데, 플레이팅까지는 신경을 쓰지 않더라도 식기와 수저 정도에는 신경을 쓰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세척의 어려움이나 파손, 도둑질 등의 위험이 높은 것은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양식당, 일식당에 비해 한식 이미지가 낮은 요인 중 하나로 봅니다.

 

 

 

 

8) 우리나라는 거의 유일하게 조리용 가위를 식탁 위에서도 사용하는 나라입니다. 커다란 고기를 잘라가면서 테이블에서 직접 구워 먹거나, 냉면같이 질긴 면을 자르는 식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추정하는데, 쓰다 보니 응용의 폭이 넓어져서 식사용 나이프보다 조리용 가위를 선호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이쯤 되면 게가위 외 일반 식사용 가위를 보기 좋게 따로 만들어도 될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미개발 상품인 것 같습니다.

 

 

 

 

 

9) 돈까스는 흔히 경양식 돈까스라 부르는 건 뭔가 이젠 본격 한식이 된 기분입니다만, 사실 일본에서 처음 개발된 방식이 경양식 돈까스입니다. 한국에서는 원조 스타일이 잘 유지되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고기가 두꺼워지는 방향으로 변했다고 할 수 있지요.

 

 나는 일본식 돈까스를 (있으면 잘 먹긴 합니다만) 그리 선호하지 않고, 그게 좋은 조리법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싸면 모르겠는데 요즘 잘 나간다는 일식 돈까스집 보면 가격도 비싼 게 사람들이 줄까지 서서 먹어서 좀 어이가 없습니다. 조리원리로 보면 규카츠가 더 나은 요리일 겁니다. 양감 있는 돼지고기를 적절하게 익힌 걸 즐기고 싶다면, 뼈등심 스테이크가 더 나은 조리법이라 생각합니다.

 

 경양식 돈까스 소스의 기본형은 데미글라스+우스터인데, 데미글라스는 제대로 만들면 시간과 노력이 상당히 들어갑니다. 그래서 제대로 힘줘서 만든 경양식 돈까스는 고급요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경양식 돈까스의 현 위상을 생각하면 제대로 만든 경양식 돈까스를 만들어 파는 곳이 드물 수밖에 없습니다만.

 

 

 

 한편으로 경양식 돈까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입맛을 유행에 뒤진 옛날 취향이라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만화 맛의 달인작가 카리야 테츠도 돈까스는 얇은 게 맛있다고 주장합니다. 참고로 일본에서 덴푸라에 쓰는 참기름은 튀김용 냉압착 참기름이라 우리나라에서 먹는 조미용 열압착 참기름과는 다릅니다.

 

 

 

 

 

10) 당면은 음식 가공 기술이 발달한 후에 등장한 식재료입니다. 등장 이후 워낙 광범위한 분야에서 인기를 끌어 뭔가 제법 전통적인 느낌입니다만, 당면은 공업기술 없으면 만들기 힘듭니다.

 

 그러니까 당면이 들어가는 모든 음식은 전통방식이 아닙니다. 만두, 순대는 전통방식은 당면 안 넣습니다. 잡채도 원래는 고추잡채처럼 채썬 채소와 고기를 볶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당면을 넣기 시작하면서 아예 당면 요리가 되어버렸지요.

 

 조선시대 고급 요리의 맥을 이으려던 분들은 당면이 들어간 양 늘린 요리들을 영 나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만, 현실 대한민국은 당면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당면은 별 맛이 없는 대신 소스를 잘 흡수하고 특유의 식감이 있는 재료인데, 생각해보면 샥스핀도 별 맛이 없고 특유의 식감으로 먹는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긴 합니다.

 

 당면 그 자체의 매력을 최대한 살린 요리는 김말이튀김일 겁니다. 내 기억으로 김말이튀김은 90년대 초중반의 어느 날에 등장한 것 같은데, 워낙 매력적인 맛이었기 때문에 나오자마자 고전이 되었습니다. 이젠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야끼만두(납짝당면만두튀김)를 대체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야끼만두가 더 좋습니다만.

 

 그리고 근래에는 납작하고 두꺼운 당면이 나와 찜닭의 2대 주재료로 활약 중입니다. 물론 다른 주재료는 닭입니다. 찜닭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태반은 그 납작 당면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찜닭을 매우 좋아합니다만 납작 당면에 대한 선호는 애매한데, 노골적으로 납작당면을 많이 넣어 양을 불리는 곳을 몇 번 접한 악영향인 것 같습니다.

 

 

 

 

  

 

11) 우리나라는 일제 이전에는 밀 음식이 거의 발달하지 않았는데, 보리와 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환경에서 보리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보리와 밀은 근연종이고 우리나라 기후에서는 둘 다 동절기에 키울 수 있는데, 보리 쪽이 수확이 빠릅니다. 모내기해서 벼 - 보리 2모작 돌리는 게 생산성이 좋았고, 밀을 키우게 되면 벼를 키우기가 보리보다 어려웠기 때문에 밀이 귀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 때는 밀 요리가 고급품이었습니다. 유밀과(약과)는 거의 최고급 요리였지요. 잔치국수도 말 그대로 잔칫날이나 먹을 수 있는 요리라 잔치국수였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 이후 미국이 우리나라에 밀을 많이 원조해줘서 본격적으로 밀 요리가 발달하게 됩니다. 사실 밀도 완전히 분도하지 않고 살짝 속껍질을 남긴 상태에서는 현미처럼 밥을 지어 먹을 수 있긴 한데, 그렇게 해 먹으면 맛이 꽤 괜찮음에도 불구하고 밀가루를 원조 받았다 보니 그런 방식은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밀은 속껍질을 다 벗기면 바스라져서 그냥 적당히 벗기고 가루를 내는 게 가공하기 편합니다.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유럽 서민들은 밀을 통밀가루 형태로 주로 먹었지요. 백밀가루는 귀족이나 부자가 먹던 겁니다.

 

 우리나라는 빵을 주식으로 먹는 문화가 없었기 때문에, 원조받은 밀가루로 면을 주로 만들게 된 것 같습니다. 면 요리는 대단히 성공적으로 발전했습니다. 밥보다 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지요.

 

 

 

 

 

12) 가래떡은 굳이 분류해보자면 면입니다. 떡볶이는 양식으로 치면 일종의 숏파스타 요리에 해당합니다. 밀떡을 쓰면 기분상 뭔가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떡볶이에도 푸실리나 펜네 같은 모양 성형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기능미보다는 조형미를 중심으로 모양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긴 떡이 유행하는 걸 보면 뭔가 다른 방향으로 모양 변화 트렌드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주관적으로 대다수의 떡볶이는 씹는 감각에 의존적인 요리입니다. 떡볶이의 매끄러운 표면과 떡볶이의 표준적인 소스로는 떡볶이의 떡에 충분한 소스 맛을 배게 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소스 맛을 충분히 배게 하려면 떡을 많이 익혀야 하는데, 그러면 떡이 좀 퍼져버리기 쉽습니다.

 

 표준적인 선택은 소스의 점도를 올리는 겁니다. 떡이 퍼지도록 익히면 사실 떡의 전분이 소스의 점도를 올리기도 합니다만, 그건 아주 고전적인 스타일이고 요새 인기 있을 타입은 아닙니다. 중화요리처럼 따로 전분물을 넣거나 프랑스 음식처럼 루를 넣는 것도 방법이긴 한데, 어떤 방식이건 표준적인 떡볶이 소스에 잘 어울린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젤라틴을 넣는 방식은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습니다.

 

 

 

 사견으로 조리원리를 보자면 떡꼬치가 더 좋은 조리법이고, 나는 그 쪽을 선호합니다. 가래떡은 삶는 것보다는 굽거나 튀기는 게 더 맛있고, 소스는 충분한 점도를 확보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마진율을 자랑하게 된 떡볶이와는 달리, 떡꼬치는 만드는 데 손도 많이 가고 조리난이도도 있어서 그런지 거의 사라졌고, 마이너한 음식으로 전락하였습니다. 대신 떡볶이는 엄청나게 매워졌는데, 무식하게 매우면 소스맛이 떡에 덜 붙는 현상 같은 건 그냥 무시할 수 있긴 합니다.

 

 여담인데 떡꼬치 해먹고 싶다고 떡볶이용 떡 그냥 튀기면 폭발합니다. 떡꼬치가 괜히 그런 모양인 게 아니고, 괜히 사라진 게 아닙니다.

 

 

 

 

 

13) 면에 대한 취향은 각자 좀 다를 텐데, 나는 매끄럽고 부드러우며 단단하지 않은 면을 좋아합니다. 건파스타도 알덴테에 집착하지 않는 편이고요.

 

 그래서 나는 소다를 넣은 중화면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중화면은 간수를 넣거나 베이킹 소다 등의 첨가제를 넣습니다. 그런 알칼리를 넣으면 색이 노랗게 되고, 단단해지고, 주관적으로는 풍미가 나빠집니다. 그리고 소화가 잘 안 됩니다. 알칼리성이라 위산을 중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중화요리 먹으면 소화 잘 안 된다는 사람이 괜히 많은 게 아닙니다.

 

 내가 스스로 중화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크게 실감할 때는 중화냉면을 먹을 때입니다. 특히 중화냉면을 먹을 때는, 이게 면만 중화면이 아니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꽤 자주 있습니다. 내가 중화냉면은 좋아하는데 중화면은 별로 안 좋아해서 그렇습니다.

 

 간짜장 애호가들 중에도 첨가제가 들어가지 않은 면을 선호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일단 배달을 하면 첨가제 써야 합니다. 홀에서만 파는 집이 첨가제를 안 쓸 수 있는데, 문제는 그게 유행이 아니라는 겁니다. 탕수육 찍먹이 유행하다가 홀에서 파는 중화요리집에도 영향을 줬는데, 면에도 유사한 트렌드 변화가 있는 것인지 요즘은 고급 중화요리집도 대체로 면에 첨가제를 씁니다. 첨가제 쓴 중화면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트렌드입니다.

 

 

 

 

  

 

14) 탕수육은 기본형이 부먹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찍먹파들이 불만을 가질지 모르겠습니다만, 클래시컬은 부먹입니다. 원래 고전적인 탕수육은 소스를 붓는 요리기 때문입니다.

 

 

 

 고전적인 옛날 스타일 원조 탕수육은 2020년 현재 거의 먹기가 힘듭니다. 아직 하는 곳은 한 군데 알고 있네요. 고전 탕수육은 내 생각엔 튀김옷이 바삭하거나 아삭하지 않고 부드럽습니다. 폭신하다고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탕수육 소스도 맛이 강하지 않습니다. 슴슴하고 고기튀김 맛을 보조하는 정도지요. 기본 탕수육 소스의 주재료는 식초와 간장인데, 식초와 간장은 농도가 높아지면 다분히 불쾌하기 쉬운 맛이 납니다. 그러니까 별로 짜지도 시지도 않게 소스를 만드는 게 고전 스타일의 정석입니다. 그래서 고전 탕수육은 부먹입니다만, 간이 강하지 않고 간장을 추가로 찍어 먹는 게 그리 이상하지 않는 부드러운 고기튀김입니다. 고전 탕수육은 소스가 큰 역할을 하지 않다 보니 옛날엔 그냥 고기튀김만도 많이 팔았는데, 덴뿌라라 불렀습니다. 덴뿌라는 소스로 맛을 가릴 수 없기 때문에 중식당의 실력과 퀄리티가 직설적으로 드러나는 요리입니다. 굳이 보자면 현대에는 일식 돈까스가 덴뿌라의 후계음식 같기도 합니다. 덴뿌라라는 말이 애초에 일본 요리 이름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고전 스타일은 홀에서는 좋은데, 배달로는 구현이 어려웠습니다. 배달 탕수육이 일반화되고, 중화요리가 서민음식화되면서 점차 고기튀김은 바삭하다 못해 딱딱한 게 많아졌고, 소스도 맛이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찍먹이 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소스가 간이 강해지고, 탕수육 고기는 바삭한 느낌이 주가 되다보니 찍어 먹는 게 좋아졌단 말이지요. 나도 배달 탕수육을 먹을 때는 부먹파보다는 찍먹파에 좀 가깝긴 합니다. 요새는 찍먹파가 많다 보니 홀에서도 찍먹용 탕수육을 내놓는 곳이 생기고 있습니다. 홀에서도 소스를 따로 주는 곳은 소스의 간과 농도를 체크하고 부을지 찍을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볶먹은 정석이나 고전은 아니고 응용편입니다. 볶는 탕수육 잘 해주는 집은 맛있다고 생각하고, 선호합니다. 보통은 일반 탕수육은 잘 안 볶아주는 것 같고, 사천탕수육이 볶먹이 많은 것 같습니다.

 

 

 

 

 

 

15) 자장면은 맛있게 만들기 힘든 음식입니다. 맛있게 만들려면 재료비가 꽤 들어가며, 품도 많이 들어가고, 심지어 손맛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짬뽕은 어느 정도 맛을 내기가 더 쉽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21세기 들어 짬뽕의 시대가 열리게 된 두 가지 요인을 매운맛 유행과 일정 이상의 맛을 내기 쉬운 레시피라는 특성으로 봅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중식당에서 짬뽕보다 우동을 많이 먹었고, 기스면이나 울면도 제법 많이 팔렸습니다.

 

 사견으로 짬뽕은 레시피 자체가 크게 실패하기가 힘든 레시피입니다. 양념이 강한 국물 요리니까요. 심지어 짬뽕은 인스턴스화된 액상 농축액에 해물을 어느 정도 넣고 끓이기만 해도 그럭저럭 짬뽕같은 게 나옵니다. 중식당이 아닌 호프집 같은 데서도 맛이 좀 어설프긴 하지만 짬뽕 계열 메뉴가 있을 수 있는 이유지요. 베리에이션을 늘리기도 쉽습니다. 낙지 짬뽕, 갈비 짬뽕, 전복 짬뽕 등 고급 재료를 올리면 됩니다.

 

 그러나 짬뽕은 어쩔 수 없이 맛의 상향 한계치가 낮은 편이라 생각합니다. 일정 이상 맛있기는 쉽지만, 딱히 엄청나게 맛있기도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예 고급화시키려면 일반 짬뽕보다는 백짬뽕 쪽이 더 맛있어질 가능성이 있을 겁니다.

 

 다만 이는 나의 주관적인 의견이고, 짜장면 쪽이 더 아무 데서나 먹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있습니다. 내 생각엔 그다지 맛이 별로 없는 짜장면도 남들이 곧잘 맛있다고 먹는 걸 여러 번 경험하긴 했는데, 내가 짜장면을 별로 안 좋아하거나 까탈스러운 건지 남들이 짜장면을 너무 좋아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16) 간짜장의 (=dry)'입니다. 짜장은 작장(灼醬), 즉 장을 볶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만든 간짜장은 뻑뻑하도록 건조하며, 장을 많이 썼기에 춘장 맛이 많이 납니다.

 

 춘장은 첨면장이라는 중국식 된장의 변형판입니다. 색이 검도록 캐러멜색소와 약간의 조미료를 넣은 것이지요. 그래서 제대로 만든 간짜장은 된장 비슷한 풍미가 많이 나고, 별로 달지 않고, 꽤나 짭니다. 보다 대중적인 달달하고 농도가 연한 짜장에 비하면, 반드시 맛있다고 하긴 어려운 맛입니다. 면하고 먹을 때는요.

 

 경험적으로는 춘장향이 강하고 별로 달지 않은 간짜장은 면보다 밥하고 먹을 때 시너지가 좋은 경향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중식당에서 간짜장밥 같은 메뉴를 거의 팔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담으로 자장을 밥과 먹을 때 쌀 품종은 신동진이 좋습니다.

 

 

 

 

 

17) 내가 먹어본 쌀 중 가장 맛있었던 건 품종은 고시히카리였고, 생산지는 인천 강화군 교동면이었습니다. 완전히 햅쌀이었는데, 생산 과정의 실수였는지 좀 덜 마른 쌀이었던 걸로 추정합니다. 처음 샀을 때는 심히 비상식적으로 맛있었는데, 밥 자체의 풍미가 너무 강하고 달아서 별로 어울리는 찬이 없었던 게 단점이었습니다. 구운 쇠고기 같은 게 아니면 거의 어울리는 게 없었습니다. 구운 스팸하고 먹어도 스팸이 밀리고 밥맛이 스팸하고 따로 놀았습니다. 원래 고시히카리의 풍미가 많이 강하긴 합니다.

 

 문제는 쌀이 덜 말라서 보존성이 최악이었고, 그 엄청난 맛은 며칠 가지도 않았으며, 반쯤 먹고 나니 썩어버렸다는 겁니다. 콩도 완전히 말리면 맛이 없고, 덜 마른 걸 냉동하는 게 맛있는데 쌀도 그렇다는 걸 깨달은 경험이었습니다. 덜 마른 쌀을 냉동 유통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싶습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는 덜 마른 쌀을 사게 되면 바로 냉동, 최소한 냉장하기로 했습니다.

 

 

 

 

 

18) 쌀 품종 중 반찰계 품종이 있습니다. 멥쌀과 찹쌀의 중간 특성을 가지는 품종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밀키 퀸, 백진주, 진상 등이 반찰계입니다. 찰기 있는 밥을 선호해 찹쌀을 섞어 밥을 짓는 분들이 꽤 있는데, 그냥 반찰계 쌀로 밥을 지으면 찹쌀 섞은 것 같은 느낌이 납니다. 찹쌀을 대체해 사용도 가능하고요.

 

 반찰계 품종을 좋아하는 분들은 그 어떤 멥쌀 품종보다도 반찰계를 선호합니다. 특유의 찹쌀스러운 느낌이 있는데, 멥쌀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찹쌀밥 같지도 않고요.

 

 

 

 

19) 흔히 맛있는 쌀을 고르려면 혼합이 아니라 품종이 명시된 쌀을 사라고 합니다만, 나는 경험적으로 혼합쌀 중 어지간한 품종 명시 쌀보다 맛있는 걸 여러 번 먹어봤습니다. 혼합쌀은 품종 관리가 안 된 쌀이지, 키울 때부터 품종이 없는 쌀은 아닙니다. 실제로는 맛있는 품종이 꽤 들어있을 수 있단 말이지요. 혼합쌀의 품질은 꽤나 랜덤합니다. 운이 좋으면 제법 맛있는 혼합쌀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20) 우리나라 사람들은 옥수수를 매우 좋아합니다. 옥수수 재배량에 비해 소비량이 많아서, 세계 2위 옥수수 수입국입니다. 식빵에도 옥수수 가루를 넣어 옥수수 식빵을 해먹을 정도지요. 옥수수 식빵은 우리나라에서만 해먹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찰옥수수도 거의 우리나라에서만 먹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찰옥수수를 좋아해서 외국에서도 코리아 수출용으로 재배해서 파는 것 같습니다.

 

 100% 한식임이 틀림없는데 거의 아무도 한식이라 생각 안 하는 요리 중 하나로 속칭 콘치즈가 있습니다. 그 횟집 가면 사이드 메뉴로 나오는 거 말입니다. 원래는 캔 스위트콘에 마요네즈 레시피인데, 사람들이 콘치즈라고 부르다 보니 진짜로 치즈를 사용하는 경우도 늘어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통칭 콘치즈, 실체는 콘마요는 전혀 한식 같아 보이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만 먹는다고 합니다. 오래 된 노포 횟집에 가면 여전히 치즈를 쓰지 않은 클래시컬 콘마요를 주기도 합니다.

 

 

 

 

 

21) 아시아에서만 주로 먹는 과일인 감은 장년 이상 연령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과일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단맛과 짠맛을 느끼는 감각이 감퇴하고, 상대적으로 신맛과 쓴맛을 잘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대체로 신 과일을 더 좋아하고, 나이 든 사람들은 단 과일을 더 좋아합니다. 나이 든 사람들이 음식 간을 잘못 하면 과하게 짜지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입니다.

 

 

 

 감 중에서도 홍시(연시)는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만 거의 먹습니다. 일본에선 떫은 감 품종은 주로 곶감으로 소비됩니다. 감은 크게 단감 품종과 떫은 감 품종이 있고, 떫은 감은 형태에 따라 대략 반시와 둥시, 봉시로 구분합니다. 반시는 밑쪽이 넓적하고 단감 닮은, 작은 감입니다. 둥시는 반시보다 둥근 감으로 주로 곶감으로 만듭니다. 봉시는 아래쪽이 뾰족하고 위아래로 큰 대형 감이고요. 당도가 높게 올라갑니다.

 

 단감은 녹색에서 색이 변하고 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감입니다. 대조적으로 떫은 감은 익어서 홍시가 되기 전엔 떫어서 못 먹습니다. 단감도 오래 두면 연시화되긴 하는데, 연시화되고 나면 떫은 감 품종 대비 맛이 없습니다.

 

 홍시는 나무에서 홍시가 되도록 다 익히는 게 맛있긴 합니다만, 수확할 때는 익혀서 수확하지는 않습니다. 홍시는 얼리지 않는 한 보존성도 없고 운반이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홍시가 되기 전에 수확하는데, 감 수확철에 시장에 가면 아직 못 먹는 상태의 떫은 감들을 땡감이라고 좀 싸게 팝니다. 땡감은 별 거 안 해도 그냥 두면 저절로 홍시화되기 때문에, 사서 두고 홍시가 되는 대로 먹으면 싼 가격에 맛있는 홍시를 먹을 수 있습니다. 다만 제 때 먹어야 합니다. 과숙되면 홍시는 워낙 단 과일이라 금방 알콜 생성이 되면서 즙이 와인화됩니다. 먹으면 알콜이 생긴 만큼 당도가 떨어져 있고, 과일주 맛이 나고, 살짝 취기가 올라오게 되지요. 더 두면 썩거나 감식초가 되고요.

 

 곶감은 떫은 감이 아직 홍시가 되기 전에 껍질을 벗겨 말린 겁니다. 반쯤 말린 건 반건시고요. 조각을 내서 말리면 감말랭이라 부릅니다. 유행을 타고 인기가 좋은 건 반건시 쪽이지만 곶감은 잘 마를수록 맛있습니다. 보존성도 올라가고요.

 

 

 

 

 

22) 계피와 시나몬이 같은 거라는 이야기가 많이 퍼져있는데, 우리나라에서 흔히 먹는, 수정과 끓일 때 쓰는 계피와 카푸치노 위에 뿌리는 시나몬은 다릅니다.

 

 커피나 애플파이에 쓰는 시나몬은 실론 시나몬입니다. 바닐라를 연상시킬 만큼 부드럽고 달달한 향이지요. 시나몬 조직 자체도 더 부드럽고 크기가 작습니다. 그냥 시나몬이라고 부르면 보통 실론 시나몬을 의미합니다.

 

 대조적으로 수정과에 쓰는 계피는 카시아 시나몬입니다. 통칭 카시아라고 합니다. 중국 시나몬이라고도 부르고요. 실제 통계피를 보면 실론 시나몬에 비해 훨씬 크고, 거칠고, 향도 강하고 맵습니다. 애들은 먹기 힘든 계피맛 사탕은 이 카시아 맛입니다. 실론 시나몬 맛이었으면 애들도 잘 먹을 겁니다.

 

 커피 테이스팅 등을 할 때는 카시아와 시나몬을 분명히 구분합니다. 확연히 다른 풍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격은 시나몬이 비쌉니다.

 

 

 

 물론 수정과를 끓일 때는 카시아 계피를 써야 제맛입니다. 시나몬 같은 걸 넣어서는 수정과의 강렬한 맛을 낼 수 없지요. 한편으로 나는 수정과에 백후추와 육두구(넛맥) 가루를 더 넣는 걸 좋아합니다. 육두구 대신 시나몬 가루를 넣어도 나쁘진 않을 테지만, 내가 육두구를 더 좋아하기도 하고 시나몬 넣어봐야 카시아와 풍미가 겹치는 면도 많습니다.

 

 

 

 

 

23) 우리나라 사람들은 해산물은 다양하게 먹지만, 다른 고기는 그다지 다양하게 먹지 않는 편입니다. , 돼지, 닭만 거의 먹지요. 양은 그나마 근래 어느 정도 대중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아직 집에서 해 먹는 정도는 아니고요. 토끼나 사슴은 거의 찾아 먹기도 힘듭니다. 여담인데 우리나라에 그 많은 고라니가 멀쩡한 이유는 고기가 맛이 없어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와중에 그나마 90년대 이후 대중화된 고기가 오리고기입니다. 오리기름이 몸에 좋다는 식으로 홍보하는 데 성공해서 퍼졌지요. 사실 딱히 몸에 좋을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느 정도 대중화된 것에 비해 오리고기 조리법이 발달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익히 드셔 보셔서 알겠지만 집오리고기는 기름기가 많고, 껍질이 두껍고, 특유의 냄새가 있고, 육질이 단단한 편입니다. 철판 등에 그냥 로스구이를 하는 방식으로 오리를 즐겨 먹는 사람이 소수다보니 훈제요리가 발달했고, 오리훈제의 대중화와 함께 00년대만 해도 흔하던 칠면조 훈제육이 잘 안 보이게 되었습니다만, 훈제육은 뭘 해도 맛이 비슷해지기 마련이며 해당 분야 최고존엄 훈제연어를 따라가기는 무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입맛에 따라 훈제연어보다 훈제오리를 좋아할 수는 있습니다만.

 

 

 

 오리는 닭과 특성이 꽤 다르기 때문에, 오리만의 조리법이 필요합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오리 조리법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것이겠지요. 오리 요리는 오리기름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발달하는 게 좋을 텐데, 우리나라는 예전에는 동물기름을 잘 활용했으나 근래 들어서는 동물기름을 안 쓰는 추세라 오리요리가 잘 발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위의 사진은 오리기름을 활용하는 프랑스 요리인 오리 콩피입니다.

 

 

 

 한편으로 신선한 오리고기는 생고기 맛이 괜찮은 편이라, 미디움 레어같이 속을 덜 익히는 방식으로 익혔을 때 특유의 풍미가 좋습니다. 프랑스 요리에서는 일반적인데요. 그 풍미가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도 통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24) 파르미자노 레자노나 그라나 파다노를 가는 치즈강판은 한식 요리를 할 때도 유용합니다. 옛날에는 치즈 강판처럼 생긴 강판을 곧잘 팔았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사라졌습니다. 주관적으로 동그란 구멍에 구멍 주변에 뾰족한 돌기가 올라와있는 플라스틱 강판은, 갈았을 때 곱게 갈린다는 장점은 있습니다만 무언가를 갈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조적으로 치즈 강판은 다소 단단한 파르미자노를 갈게 만들어진 거라, 뭐든 잘 갈리는 편입니다.

 

 물론 치즈 강판은 동그란 구멍 강판에 비하면 완전히 갈리는 게 아니고, 잘게 채 썰리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아예 완전히 갈아버리는 건 믹서로도 할 수 있으니까, 강판을 사용한다는 목적에는 대체로 괜찮습니다. 무채칼에 비하면 구멍이 작습니다.

 

 

 

 

 

25) 우리나라에서는 지역마다 주로 먹는 오이가 다릅니다. 수도권과 충청권은 백다다기오이(조선오이), 전라도는 취청오이, 경상도는 가시오이를 먹습니다. 가시오이 같은 경우 백다다기오이에 비해 오이향이 강한 느낌인데, 영남권이 더워서 가시오이처럼 맛이 강한 오이가 인기가 좋은 것 같기도 합니다.

 

 수도권에서는 오이지를 많이 먹는데, 오이지는 대체로 백다다기오이로 담급니다. 영남권에서는 가시오이로도 오이지를 담그는 것 같습니다만.

 

 

 

 나는 풋오이보다는 노각을 좋아하는데, 노각은 대체로 노각용 품종이 따로 있습니다만 백다다기오이같은 일반 오이도 수확을 안 하고 키우다보면 노각화됩니다. 노각품종 노각보다 일반품종 노각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노각품종보다 더 아삭하거든요.

 

 

 

 

 

26) 참외는 멜론의 일종으로 기원을 보면 외래종입니다만, 근래엔 거의 우리나라에서만 키우고 먹습니다. 그래서 국제표준명이 코리안 멜론입니다. 끊임없는 품종개량과 애호가들의 무시무시한 충성심, 그리고 봄 과일 공백기(금귤과 만감류가 들어가고 살구가 나오기 이전 늦여름~초봄)에 대한 성공적 공략 등에 힘입어 매년 단 맛이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참외 맛이 너무 좋기 때문인지 다른 민무늬 멜론들은 우리나라에서 힘을 별로 못 쓰고 있습니다.

 

 

 

 참외는 주로 생과일처럼 먹습니다만, 엄연히 박과식물이기 때문에 절여서 먹어도 맛있습니다. 씨앗 부분은 빼고 과육 부분만 장아찌로 만들면 됩니다. 내가 먹었던 건 좀 말려서 만들었는데, 참외향이 나고 달기도 해서 맛이 매우 좋았습니다. 다만 뭔가 일식 계열 맛이고 쌀품종을 좀 가린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주관적으로는 일식 계열 또는 일식스러운 맛이 나는 밥반찬에는 히토메보레가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물론 참외장아찌는 일식스타일 맛이 날 뿐, 완벽한 한식입니다. 일본에서는 참외를 거의 키우지도 먹지도 않는걸요.

 

 

 

 

 

27) 울외라는 박과식물이 있습니다. 근래엔 잘 안 먹는 열매입니다만, 조선 시대 때는 월과 등의 이름으로 부르면서 제법 일반적이었던 작물인 것 같은데요. 요새는 큰 참외나 오이참외 같은 식으로도 부르는 것 같습니다. 일본 나라 지방에서는 울외를 술지게미에 절여서 많이 먹는데, 나라즈케라 부릅니다. 이 나라즈케는 우리나라에서는 군산에서 여전히 주로 생산하고 먹고 있는데요. 맛이 꽤 좋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나나스끼나 나나쓰께라고 부를 때가 많습니다.

 

 

 

 군산에서 주로 생산하게 된 건 일제시대 때 일본인이 군산에서 많이 살았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시대가 지나면서 군산 사람들이 인천에 꽤 이주해 왔기 때문인지 1990년대쯤만 해도 인천에서도 나라즈케를 볼 수 있었는데요. 어느 때서부터인가 인천에서는 사라졌습니다. 경쟁자 격인(?) 무 간장절임에 밀린 건지 모르겠는데, 나는 나라즈케가 더 맛있습니다.

 

 

 

 

 

28) 한국식 피자를 사람들은 잘 한식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엄연히 한식입니다. 특히 불고기피자는 이름부터 한식이고, 한국 피자헛에서 시작한 리치골드같은 고구마무스 피자도 한국식입니다. 사람들이 왜 김치 피자는 한식스럽다 느끼는데 불고기피자는 그만큼 한식스럽다 잘 못 느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옥수수 토핑도 한국식입니다. 옥수수를 전천후로 어떤 요리에나 다 쓰는 건 코리안 스타일입니다.

 

 

 

 저렴한 피자 브랜드들 중 59쌀피자나 피자마루 같은 경우 무척 많이 한식화된 피자입니다도우가 그야말로 한국인 입맛에 맞춰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59쌀피자는 쌀, 보리, , , 검은깨를 섞은 도우고 피자마루는 녹차가루와 깨를 섞은 도우지요. 두 브랜드 다 깨맛이 많이 나고, 도우 질감도 아시아인 취향입니다.

 

 한국식 피자가 토핑 위주로 발달한 건, 처음에 피자가 매우 비싼 요리로 들어와서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요새는 생물 오징어나 뱅어포, 또는 알배기 조기가 피자보다 더 고급스러운 기분입니다만, 90년대 초만 해도 오징어나 뱅어포는 흔한 서민음식이었고 피자는 특별한 날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비싸니까 비싼 만큼 만족감을 줘야 했고, 토핑이 점점 늘어나다가 리치골드같은 것도 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여담인데 피자를 시키면 오는 1회용 핫소스는 진정한 타바스코 소스가 아닙니다. 타바스코 소스를 좋아하는 분들은 다 알겠지만, 병에 든 정품 매킬러니 사의 타바스코 소스와 1회용 번들 타바스코 소스의 맛은 매우 다릅니다. 피자에 핫소스를 좋아하는 분들은, 반드시 정품 병소스를 사서 드시길.

 

 물론 치즈 가루도 번들이나 저렴한 플라스틱 병에 들은 걸 사용하기보다는 파르지마노 레자노를 사서 강판으로 갈아 뿌려 먹는 쪽이 맛있습니다.

 

 

 

 

 

29) 국물 요리를 만들 때 감자를 넣으면 전분물을 푼 것과 유사한 효과가 가볍게 발생합니다. 국물이 걸쭉해진다는 겁니다. 쌀뜨물로 국물 요리를 만들어도 비슷한 효과입니다. 국물이 살짝 젤리화되면서 먹었을 때 더 달라붙는 느낌이 난단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국물 요리에 감자를 넣는 것과 감자를 넣지 않는 건 꽤 다른 맛이 납니다. 집된장찌개 같은 경우는 감자를 넣어야 제대로 된 맛이 난다고 생각합니다. 잔치국수 국물을 끓일 때도 괜히 감자를 넣는 게 아닙니다. 감자 자체는 별다른 맛이 아닙니다만, 감자가 들어가지 않으면 점도가 지나치게 맑아집니다. 물론 맑은 국물을 내는 요리에는 감자를 넣으면 안 됩니다.

 

 한국식 카레에도 거의 감자가 들어가는데, 감자를 충분히 넣고 잘 익히면 감자 때문에 점도가 생깁니다. 굳이 루를 만들어 넣지 않더라도 감자가 점도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한편으로 익히 드셔보셔서 알겠지만 인도 커리에는 거의 감자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들어가는 커리가 따로 있는 정도입니다. 오히려 한국식 카레와 비슷한 맛을 내는 요리는 인도식 만두인 사모사 쪽이라고 생각합니다.

 

 

 

 

30)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 맛을 대체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신 맛은 향기와 상관이 있는데, 그래서 향기에도 좀 둔감한 편이라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소득이 올라가도 와인이나 에일이 대중화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요. 21세기 들어 우리나라 요리는 달고 매콤하며 차진 방향으로 줄곧 진화중이라 생각합니다. 달고 매콤하고 차진 대표적인 요리를 둘 꼽으라면 떡볶이와 매운 닭강정이겠지요.

 

 과일 선호에서도 우리나라 과일은 매우 단 맛 위주입니다. 향기는 별로 중시되지 않는 편이고요. 사과 품종 중에 우리나라에 남은 신 맛 품종은 아오리와 홍옥 정도인데, 아오리야 계절과일이라 그렇다 치고 홍옥생산은 매년 쇠퇴하는 중입니다. 홍옥을 대체할 만한 신품종들은 거의 보급도 안 되고 있고요. 홍옥은 대표적인 조리용 사과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과를 사용한 요리가 별로 발달하지 않고 있기도 하지요. 사과를 사용한 요리라 하면 감을 잘 못 잡을 수도 있으실 텐데, 버몬트(바몬드) 카레만 해도 사과를 사용한 요리입니다.

 

 

 

 노리마키(김초밥)가 김밥으로 진화하는 과정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을 단적으로 드러냅니다. 김밥은 노리마키에서 변화하여 한식이 된 것인데, 노리마키는 초밥의 일종이라 밥에 식초가 들어갑니다. 김밥도 예전에는 식초를 넣는 경향이 있었지요. 그러나 시대가 지날수록 식초를 넣는 레시피는 사라졌고, 21세기 들어서는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이젠 김밥과 노리마키는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되어버렸지요. 위의 사진은 김밥이 아니라 노리마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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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 #2

식이 2020. 9. 6. 18:15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youtu.be/HC_LJHAA6LQ

 

 

1편 - https://oceanrose.tistory.com/1202

 


 사견이고오류 가능성 있으며시간 날 때마다 30개 정도씩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1) 생선회를 쌈싸드시는 분들이 많은데, 주관적으로 대부분의 흰살생선은 쌈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쌈싸먹기엔 조각은 너무 작고, 맛은 여리며, 쌈싸먹으면 흰살생선의 섬세한 풍미를 제대로 즐길 수 없습니다.

 

 다만 사견으로 쌈을 싸먹는 게 나은 흰살생선이 둘 있습니다. 놀래미(쥐노래미)와 숭어입니다. 이 두 생선은 살 자체가 별로 맛있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살이 양감이 있는 편입니다. 그리고 특유의 질감이 쌈에 어울립니다.


 

 그래서 나는 놀래미와 숭어는 회를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평이 많이 다르기 쉬운 생선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상추쌈은 좋아합니다만 생선회를 싸먹는 건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 놀래미와 숭어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먹을 일이 있으면 쌈을 싸먹고요.

 


 

2) 흔히 도다리로 팔리는 생선은 표준명 도다리가 아니라 문치가자미입니다. 경남 통영에서는 문치가자미를 도다리로 불러왔는데, 이게 전국에 퍼진 겁니다.

 

 봄의 문치가자미 세꼬시는 어느 정도 비싸게 취급됩니다만, 주관적으로는 여러 모로 그다지 돈값을 못 한다고 생각하는 분야입니다. 일단 문치가자미가 맛이 오르는 시기는 봄이 아닙니다. 여름부터 초가을이 제철이지요. 게다가 세꼬시로 먹는 건 너무 어린 개체들입니다. 가자미도 살이 잘 오르고 크게 자란 개체가 맛있습니다.

 

 또한 넙치(광어)가 대량 양식되기 이전엔 기본적으로 넙치가 가자미보다 고급 어종 취급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광어가 대부분의 가자미들보다 더 맛있는 생선입니다. 줄가자미, 노랑가자미, 범가자미는 예외로 넙치보다 맛있다고 합니다만 희귀어종들이고요. 회로 먹을 때는 넙치보다 맛있는 흰살생선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3) 회로 많이 먹는 통칭 우럭의 정식 명칭은 조피볼락입니다. 쏨뱅이목 양볼락과 볼락속으로 볼락 중 가장 대형 볼락이라고 알려져 있지요. 그러니까 볼락의 일종이란 말이지요.

 

 볼락 계열을 포함한 쏨뱅이목 생선들은 대체로 탕을 끓이면 맛있다고 알려져 있고, 실제 탕용으로 주로 먹는 생선이 많은데요. 꼼치(물메기), 양태(장대), 삼세기(삼식이) 등이 있습니다. 조피볼락 매운탕이 괜히 맛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조피볼락이라 그러면 어지간히 생선 잘 아는 사람이나 알고, 보통은 우럭이라 해야 알아듣습니다. 참고로 정식 명칭 우럭은 조개의 한 종류입니다. 그냥 우럭이라고 하면 다들 조피볼락을 떠올리니까 거의 우럭조개라고 부르는 것 같지만요.


 누루시볼락이라는 다른 어종도 우럭이라고 부르긴 하는데, 조피볼락과 구분해서 부를 때는 참우럭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우럭볼락'이라는 종도 있는데, 우럭볼락은 우럭이 아닙니다.

 


 

4) 참치회를 먹을 때... 다랑어별 또는 생선별 구분이 가능하고 맛을 아시는 분이야 해당사항이 없겠지만, 아직 잘 모르시는 분들이 일단 단적으로 품질을 알아볼 수 있는 기준이, 해동을 제대로 해서 내놓느냐입니다.

 

 제대로 된 참치집 참치는요. 해동이 되서 나옵니다. 모 고급 부페에서 설녹인 참다랑어를 내놓은 걸 경험해본 적이 있긴 합니다만. 일단 얼은 채 그대로 썰어 내놓는 참치회는 제대로 된 양품이 아니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냉동 다랑어 녹이는 법 아시는 분들은 익히 아시겠지만, 그것도 꽤 귀찮은 작업이고 잘 하려면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그걸 안 한다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지요.

 

 실제 아주 저렴한 참치집에 갔다가 어떤 내가 아는 종류의 다랑어도 새치도 아닌, 내가 알지 못하는 정체불명의 꽝꽝 얼은 생선회를 한 접시 먹고 나온 경험도 있긴 합니다. 바다는 넓고, 나 역시 해양생물입니다만 내가 모르는 맛없는 생선은 많더라고요.

 

 주관적으로는 참치회로 취급되는 것들 중 회로 먹을 가치가 있는 건 참다랑어뿐입니다. 참다랑어 외의 다른 다랑어나 새치를 회로 먹는 것보다는 방어가 맛있습니다. 눈다랑어나 황새치 정도 되면 회로는 아주 맛있진 않아도 스시로는 괜찮게 먹을 만 한 것 같고요. 다른 다랑어나 새치 계열은 조리해 익혀서 먹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생선회는 회로 먹을 때 맛있는 것만 회로 먹는 겁니다. 익혀 먹는 게 더 맛있으면 익혀 먹는 게 여러 모로 좋아요.

 


 

5) 내가 등푸른 생선횟감중에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건 참다랑어입니다. 그 다음은 방어. 그 다음은 밴댕이... 표준명으로는 반지입니다. 밴댕이(반지)회는 매우 맛있는 편인데, 등푸른 생선회 좋아하시는 분들은 대체로 좋아할 거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안 드셔본 분이 많더라고요. 밴댕이(반지) 특성상 선어로만 유통되긴 합니다.

 

 내가 알기로 인천/강화지역에서 먹는 밴댕이반지입니다. 그런데 인천지역에서는 표준명 반지를 밴댕이로 부르고, 반지라는 이름은 알지도 못합니다. 호남쪽에서 밴댕이라 부르는 생선이 표준어 밴댕이고, 그건 반지와는 다른 생선이라고 합니다.

 

 말린 밴댕이는 디포리라 부릅니다그 국물 우리는 멸치 비슷한 것 말이지요지역에 따라서는 안 말린 밴댕이도 디포리라 부릅니다. 그런데 인천지역에서는 말린 반지를 디포리라 부릅니다. 인천쪽에서는 반지를 그냥 밴댕이라 생각한다는 겁니다.

 

 실제 밴댕이라 부르는 생선이 2종류다보니 지역에 따라 좀 인식의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인천/강화지역 토박이들은 밴댕이를 맛있는 횟감 생선으로 생각합니다. 선어로만 유통되는 특성 상 인천 토박이가 아니면 잘 먹지는 않지만요. 그런데 예전에 알던 호남 사람은, 밴댕이회는 서민 아저씨들이나 먹는 거고 인기가 없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왜 밴댕이회처럼 맛있는 게 푸대접받나 이해를 못했었는데, 알고 보니 사실 다른 생선을 밴댕이라 부르고 있는 거였습니다. 표준명 밴댕이는 회로 먹으면 별 맛이 없다고 합니다. 나는 먹어보지는 못했지만요.

 


 

6) 근래에는 우리나라에 쇠고기보다 돼지고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많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 돼지고기가 인기를 끌게 된 건 일제 이후의 일로 알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엔 소를 농사에 써야 하니까 소를 못 잡아먹게 했는데, 사람들이 워낙 소고기를 좋아해서 소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잡아먹을 이유를 만들어서 잡아먹었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조선 조정은 돼지고기를 보급하려 했지만, 인기가 없어서 계속 실패했다고 합니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싶은 게, 조선 시대엔 주로 소로 고깃국을 해 먹었을 텐데... 소고기로 국 끓이는 레시피에서 소 대신 돼지를 넣으면 그게 먹을 만한 게 될 수가 없거든요. 시대가 지나 왜간장(양조간장)으로 양념해서 구워 먹는 레시피가 보급된 후에야 돼지고기도 인기를 끌게 된 것 같습니다.

 




7) 한우가 비싼 원인 중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풀을 뜯도록 방목한 소고기의 냄새를 별로 안 좋아한다는 데 있습니다. 수입 쇠고기, 특히 호주 쇠고기는 한우하고 냄새가 다르잖아요? 특유의 냄새가 있지요. 그게 품종 차이도 있습니다만, 소가 생풀을 뜯어 먹으면 고기에 그런 냄새가 생깁니다. 미국소도 공장식 축산이니 뭐니 욕은 먹지만 웬만하면 일단 풀어서 풀 뜯게 합니다. 가둬놓고 사료만 먹이니 뭐니 하지만, 소는 반추동물이라 곡물사료만 먹이면 건강에 이상 생기고 제대로 못 큽니다. 풀을 먹여야 해요. 사람도 섬유질 안 먹이고 백미나 백밀가루만 먹이면 탈나는데, 소는 더 금방 탈나요.

 

 그럼 한우는 어떻게 하느냐면, 건초 위주로 먹입니다. 생풀하고 달리 건초를 먹이면 고기에서 그 냄새가 잘 안 난다고 하거든요. 알팔파나 티모시 건초 같은 거 많이 먹이는데, 애완토끼 키워보신 분들은 뭔지 잘 알 겁니다. 그걸 소 체격 사이즈로 먹인다고 생각을 해 봐요. 돈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볏짚도 먹입니다. 쇠죽 쒀서 먹이면 흡수율이 좋지요. 소도 좋아하고. 물론 다 돈입니다.

 

 그렇게 키워진 한우의 최대 장점은 냄새에 있습니다. 말고기 수준은 아니라도, 한우는 여느 쇠고기에 비하면 반추동물 고기 특유의 냄새가 매우 없는 편입니다. 이 특성은 후추 같은 걸 쓰지 않는 레시피에도 한우를 적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래서 쇠고기미역국에는 한우를 쓰라고 나는 이야기합니다. 나는 후추를 매우 좋아하고 많이 먹습니다만, 미역국엔 후추를 치지 않아요. 미역국에 후추 치는 분은 얼마 없지요?

 


 

8) 고기 조리법의 발달은 고기 자체가 달라지면서 생긴 면도 많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일하던 소를 잡아먹었기 때문에, 고기가 많이 질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냄새도 났을 거고요. 그러니까 푹 끓여 먹는 방식이나 너비아니처럼 저미고 다지고 양념해서 굽는 방식이 발달했었지요.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고기를 기준으로 하면, 좋은 부위는 양념한 후 구워먹는 것보다는 그냥 구워먹는 게 더 맛있습니다. 양념 맛을 즐기고 싶으면 구운 후 찍어먹거나, 아니면 추가적인 조리과정을 거치는 게 낫고요. 양념은 수분이기 때문에, 양념한 고기는 구웠을 때 제대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고기 표면에 수분이 많으면 온도가 잘 안 올라가서 쪄지듯 구워진단 말이지요. 고기를 제대로 구우려면 고기 표면을 최대한 말려야 합니다. 그래서 양념한 고기는 그나마 석쇠에 구워야지 수분이 잘 날아가서 맛있게 구워지고요. 가능하면 양념된 고기 표면을 키친타올 등으로 잘 닦아준 후 구우면 좀 낫습니다.

 


 

9) 한우는 특유의 풍미 때문에 다른 소고기에 비해 핑크페퍼가 유독 어울립니다. 신선하면 블랙페퍼가 필요 없을 정도고요. 핑크페퍼를 사용한 쇠고기 요리를 할 때는 한우를 추천합니다. 핑크페퍼의 풍미는 사견으로는 블랙페퍼보다는 로즈마리에 가깝습니다.



 

10) 불고기를 만들 때, 한우는 육질이 부드러운 편입니다. 그래서 한우 양념은 배로 충분합니다. 배는 매우 약한 연육작용만 가지고 있고, 주로 맛을 내기 위해 넣는 것입니다.

 

 대조적으로 호주산 쇠고기 불고기감은 보통 고기맛 자체는 괜찮지만 질깁니다. 그러니까 더 강력한 양념 재료를 넣어 주는 게 좋습니다. 나는 키위를 추천합니다. 키위는 매우 강력한 연육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질긴 고기도 부드럽게 만들어 줍니다.





11) 알 만한 분들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만, 미역은 미역귀가 맛있습니다. 그런데 일반 미역엔 그게 별로 안 들어가요. 산모미역이라고 따로 파는 게 있는데, 그걸 사서 국을 끓여먹는 게 맛있습니다. 일반 미역하고 산모미역은 품질이 다릅니다.

 



12) 마른 김을 굽기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나는 김을 구울 때 두 장이 겹쳐진 접석쇠를 씁니다. 두 장의 석쇠 사이에 김을 한 장씩 넣고 구우면 쉽게 구울 수 있습니다.

 

 김을 굽는데 익숙하지 않으면, 김을 굽는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불로 말린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신선하고 잘 마른 햇돌김은 굳이 굽지 않고 그냥 먹어도 맛이 좋은데요. 보관하다 보면 신선도도 떨어지고 습기도 차기 때문에 불로 다시 말려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물론 조금 익숙해지면 취향이나 김 상태에 따라 굽는 정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됩니다.

 



13) 우리나라에서 먹는 김의 상세한 종은 아주 다양합니다만, 대략 우리가 먹는 김에 들어가는 건 크게 대략 돌김, 참김, 파래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 같습니다.

 

 돌김은 김 조직 자체가 두껍습니다. 그래서 돌김은 마른김으로 떠서 만들 때 충분히 두껍게 만들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뻥뻥 구멍이 난 상태고, 그래도 두께가 두껍습니다. 돌김 품종도 여럿 있는데, 고급품종으로 만든 건 곱창()김으로 부릅니다. 상기하였듯 신선할 때는 굽지 않아도 맛있고, 살짝 구워서 밥을 싸 간장 양념으로 먹으면 참 맛있는 김입니다.

 

 참김은 돌김보다 얇고 부드럽습니다. 그래서 참김으로 뜬 김은 구멍이 없게 만들 수 있습니다. 참김만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김이 김밥김입니다. 김밥김은 구멍이 없도록 참김을 좀 두껍께 써서 만듭니다. 경험적으로는 김밥김을 써서 김밥을 만들어야 맛있는 건 아닙니다만, 적어도 시판하는 김밥에는 무조건 김밥김을 씁니다. 김밥김을 써야 옆구리가 잘 안 터지기 때문입니다. 주관적으로는 옆구리가 좀 터지더라도 맛이 더 나은 쪽이 좋습니다만.

 

 재래김은 주로 참김으로 만든다고 알고 있습니다. 김밥김과는 달리 약간 파래가 들어가고, 대체로 김밥김보다는 조금 얇습니다. 그냥 구워서 먹는 데는 돌김보다 적합하지 않고, 흔히 먹는 방식으로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려 굽는 쪽이 맛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재래김을 그냥 구워 먹는 분도 많고, 실제 한정식집 가면 재래김을 그냥 살짝 구워서 내놓는 것도 곧잘 봅니다. 그런데 그렇게 먹으려면 돌김이 압도적으로 맛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파래김은 파래 비율이 높은 겁니다. 얇고, 값이 싸지요. 나는 기름바르고 소금뿌린 김은 파래김을 선호하는데, 얇은 질감에 파래맛 많이 나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파래김은 안 재우고 그냥 구워서 먹으면 정말로 맛이 없습니다. 무조건 재워야 합니다.

 

 그리고 고급 김에는 지주식으로 적혀 있는 게 있습니다. 김 재배법은 지주식과 부유식이 있는데, 지주식이 고급입니다.




 

14) 나는 참치김밥이나 새우튀김김밥을 좋아합니다. 캔참치와 김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참치에 중금속이 많다고 캔참치도 안 드시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금속이 많기 쉬운 건 크게 자란 참다랑어고, 캔참치에 쓰는 건 대체로 가다랑어입니다. 고급품에는 황다랑어도 씁니다만 그건 황다랑어참치라고 써있고요. 외국산에는 날개다랑어나 백다랑어도 씁니다만, 여하튼 시중의 참치캔 99%는 가다랑어입니다. 그리고 가다랑어는 그렇게 크게 자라는 어종이 아니고, 참다랑어만큼 상위포식자가 아니라서 별로 중금속이 많지 않습니다. 가다랑어의 사이즈는 삼치보다 조금 더 큰 정도입니다.

 


 

15) 굴비는 말린 조기를 의미합니다만, 근래 유통되는 냉동 굴비는 거의 말리지 않은 것들입니다. 요새는 말린 굴비를 통칭 보리굴비라고 하지요.

 

 제대로 만든 보리굴비는 강한 감칠맛과 숙성된 냄새를 가지는데, 주관적으로는 올드 하우다(고다)나 에쁘아스, 숌므 르 크르미에 같은 워시드 연성 치즈에 비견할 만한 맛입니다. 아주 맛있지요. 문제는 비싸다는 겁니다. 완전히 말린 굴비는 아무래도 살이 쪼그라드니까 큰 조기로 만들어야 하는데, 큰 조기는 원체 비싸기 때문입니다.

 


 

16) 꽃게는 봄 암게가 가장 맛있습니다. 초여름까지 암꽃게는 몸속에 알을 키우고 있는데, 알이 다 차고 나면 옆의 뾰족한 부분까지 알이 찹니다. 알이 다 찬 암게는 뒤집어 보면 붉은 빛이 돌지요.

 

 산란이 임박하면 암게는 알을 몸 바깥에 꺼내고 붙이고 다닙니다. 이를 포란꽃게라 하며, 잡아 파는 게 금지되어 있습니다. 꽃게는 621일부터 두 달간 금어기입니다. 먹어 보지는 못했는데, 포란꽃게는 어차피 잡아먹어도 별 맛이 없다고 합니다.

 

 꽃게는 4년 정도를 산다고 하는데, 나이가 먹을수록 커지고, 워낙 잡아 먹혀서인지 오래 산 큰 개체는 드뭅니다. 작은 개체가 많이 잡히고, 더 저렴하지요.

 

 간장 게장을 담글 때는 큰 게가 좋습니다. 꽃게 살은 간장게장을 담그면 맛은 좋지만 쉽게 녹아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아무래도 그믐때 잡힌 큰 꽃게를 담가 먹는 쪽이 먹을 게 많아 좋습니다. 꽃게는 통상적으로 보름에 살이 빠지고, 그믐에 살이 오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조적으로 양념 게무침을 하려면 작은 게가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꽃게는 껍질이 덜 단단해서 잘 잘리고 무쳐서 먹기 편한 편입니다. 저렴하기도 하고요.

 

 꽃게의 친척인 민꽃게(박하지)는 꽃게보다 저렴합니다. 게를 먹고 싶은데 꽃게는 비싸면 민꽃게를 먹으면 됩니다. 민꽃게는 껍질이 단단해서 게무침은 안 해먹고, 간장게장은 많이 해먹는데 꽃게에 비해 살이 잘 녹지 않는 건 장점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맛은 꽃게에 비해 별로 달지 않고 담백합니다. 대신 간장게장으로 만들었을 때 꽃게 대비 더 보존성이 좋고, 더 삭힐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민꽃게를 이로 깨 드실 생각은 안 하시는 게 좋습니다. 치아 다 나갑니다. 껍질이 단단해서 붙은 이름 중 하나가 돌게입니다. 물론 꽃게를 드실 때도 치아를 적게 쓰시는 게 좋습니다.




17) 멍게는 상태가 좋은 건 굉장히 맛있습니다. 문제는 상태 좋은 멍게 먹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상태 좋은 멍게 못 드셔보신 분들은 멍게 자체를 별로 맛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확률도 높다 생각합니다. 여러 모로 굴과 비슷한 면이 있지요. 생물학적으로는 아주 다른 종입니다만.

 

 멍게는 그래 보여도 척삭동물입니다. 척삭동물은 척추동물보다 살짝 큰 분류입니다. 척추의 원시적인 형태가 척삭이지요. 멍게는 어릴 때는 올챙이 비슷한 생물입니다. 뇌도 있고, 근육도 지느러미도 척삭도 있고. 그런데 성체가 되면 우리가 익히 아는 식물화된 멍게가 됩니다. 뇌까지 사라지지요. 사실 인류도 어릴 땐 엄청나게 뛰어다니는데, 다 크고 나면 움직이기 귀찮아하는 사람이 많은 거 보면 유사성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18) 굴은 산지 쪽에서 안 깐 것을 사면 정말 쌉니다. 게다가 엄청나게 맛있습니다. 바다에서 나오면 맛이 실시간으로 퇴화되는 굴 특성상 당연한 건데... 대도시로 오면 맛은 감퇴됨에도 가격은 몇 배나 올라갑니다.

 

 굴 나오는 지역 사람들은 그런 굴을 잔뜩 사다가 까서 냉동해 둡니다. 그리고 요리할 때 쓰지요. 굴전이나 굴떡국도 매우 맛있긴 합니다만, 가능한 신선할 때 생굴을 먹는 게 가장 맛있습니다



  

19) 파래, 매생이, 김은 전으로 부쳐 먹으면 맛 자체는 그렇게까지 다르지 않습니다. 질감이 주로 다르지요. 여기서 이야기하는 김전은 마른김이 아닌 아직 말리기 전의 김, 통칭 물김을 전 부쳐 먹는 겁니다. 그런데 김은 전으로 부치면 맛은 괜찮지만 질감이 억세서 나는 별로고요. 매생이가 맛있긴 합니다만, 전으로 만들 거면 파래 대비 비싼 가격을 납득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결론은 파래로 전 부쳐 먹으면 맛있다는 겁니다.



 

20) 은갈치와 먹갈치는 같은 갈치입니다. 낚시로 잡으면 은갈치, 그물로 잡으면 먹갈치지요. 그런데 통상 먹갈치가 더 맛있고, 은갈치는 보기가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보통 은갈치는 제주쪽에서 잡고, 먹갈치는 전라도나 경상도 쪽에서 잡는데요. 서해 근해 쪽에서 잡는 갈치가 더 맛있다는 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21) 사골은 다리뼈입니다. 보통은 소의 사골을 사골이라 하지만, 사지상강에 속한 다른 동물들도 거의 다 있지요. 물론 뱀은 제외입니다.

 

 사골은 커다란 통뼈고, 안에 골수가 많이 차 있어서 가장 먹을 게 많은 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국물을 우립니다만, 프랑스 요리에는 구워서 작은 스푼으로 골수를 파먹는 것도 있습니다. Os à moelle이라는 요리지요.

 

 사견으로는 닭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는 사골입니다. 닭을 끓이는 요리가 맛있는 게, 닭뼈육수가 잘 우러나서 그렇습니다. 살 자체는 오버쿡을 피해 적절하게 익힌다면 굽는 게 더 맛있지만요.

 

 그런데 닭을 그냥 끓여서는 뼈 안의 조직이 어지간해선 충분히 우러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닭을 최대한 활용해 조리하려면, 소나 돼지고기를 다루듯 살을 발라서 따로 조리하고, 뼈는 따로 국물을 내야 합니다. 그렇지만 어지간히 익숙하지 않는 이상 닭을 직접 발골하는 건 상당히 귀찮습니다. 시장 닭집이나 정육 코너에서 생닭을 살 때 발골을 부탁할 수 있는데요. 뼈도 달라고 하면 안 버리고 줍니다. 생오리를 발골해 파는 곳에서는 닭도 발골해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닭뼈육수를 직접 만들어보면 꽤 오래 끓여야 합니다. 상당히 오래 끓인 후에도 뼈를 쪼개 골수를 파 먹어보면 먹을 게 있지요.

 

 여담인데 닭을 염지해 조리하면 그다지 신선하지 않은 닭도 어느 정도 맛을 낼 수 있긴 합니다만, 닭의 골수까지 어쩔 수는 없습니다. 닭의 윗 다리뼈를 쪼개 골수를 맛보면, 닭의 신선도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주관적으로는 직접 신선한 생닭으로 요리를 할 때가 아니면 골수는 손 안 대는 게 좋습니다.

 



 

22) 통닭구이는 잘 만들면 매우 맛있는 요리입니다. 그렇지만 닭의 특성상 오버쿡이 발생했을 때 옷이 없는 통닭구이는 워낙 맛이 떨어지는데다, 상태 나쁜 생닭을 쓰는 저렴한 노점 통닭이 일반적이다보니 음식 자체의 위상이 심히 낮은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육질 특성 상 닭은 오버쿡에 많이 약합니다. 그나마 다리, 날개살은 괜찮은 편이지만 가슴살은 엄청나게 뻑뻑해지지요. 이는 튀긴 치킨도 동일합니다. 튀김옷을 입혀 한 번에 적절하게 튀겨낸 치킨은 매우 맛있습니다만, 그렇게 맛있는 치킨을 먹을 기회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프라이드 치킨집에서는 초벌 이후 재벌튀김하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그렇게 만들면 닭 살에서 수분이 많이 빠지기 때문에 맛이 많이 떨어집니다. 물론 아무리 맛있게 튀겨 놓은 치킨도 시간 지나면 수분이 날아가 맛이 없어집니다.

 

 그나마 튀긴 치킨은 오버쿡이 되더라도 기름기가 많기 때문에 덜 뻑뻑합니다만, 구운 닭은 맛이 심하게 없어집니다. 조각을 내서 굽는 숯불 닭 바베큐 같은 요리는 숙련자가 적절하게 구워 내기 때문에 대체로 문제가 없습니다만, 통닭구이는 서빙 시점에 오버쿡이 발생하기 매우 쉬운 편입니다. 적당하게 구워진 시점에 서빙을 할 수 있어야만 오버쿡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주문을 받은 후 굽기에는 너무 조리시간이 길고요.

 

 그렇기 때문에 통닭구이는 트럭보다는 가게를 차려서 하는 곳에서, 그리고 일정 이상 통닭 장사가 잘 되는 곳에서 사 먹는 게 맛있습니다. 회전율이 나쁘면 맛이 심하게 떨어지는 요리입니다. 직접 해먹기에는 오븐을 오래 써야 하니까 효율이 많이 안 나옵니다.




 

23) 대파는 보통 씨로 번식하고, 쪽파는 구근으로 번식합니다. 쪽파구근은 마늘처럼 생겼는데, 보통 구근을 먹지는 않고 키워서 쪽파를 먹습니다. 쪽파 구근은 맛없지는 않지만, 딱히 일부러 키워 먹을 정도로 맛있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실파는 어린 대파입니다. 대파는 씨를 많이 파종한 후 솎아주기를 한 후 남긴 걸 키우는데, 이 솎은 대파가 실파입니다. 그러니까 쪽파와 실파를 구분하려면, 뿌리 쪽을 보면 됩니다. 쪽파는 구근식물이라 뿌리 쪽이 둥그스름하고 큽니다. 실파는 뿌리가 가늘고요.

 

 쪽파의 유명한 친척 중 하나로 염교(돼지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염교라는 이름을 아는 분은 많지 않지요. 이 염교는 쪽파보다 구근이 좀 더 크게 자라는데, 구근을 주로 먹습니다. 절여서요. 일본식 염교 절임을 보통 부르는 이름이 락교입니다. 염교가 일본어로 랏쿄(ラッキョウ)거든요.



 염교는 지역에 따라 에샬롯으로도 불리며 셜롯과 혼동을 일으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둘은 생긴 것도 다르고 풍미도 다릅니다. 종종 구분 힘들게 생긴 사진도 보긴 합니다만... 단순히 품종 차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레시피에 셜롯 또는 에샬롯이 표기되어 있을 경우, 그것이 실제 셜롯인지 염교인지 확인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24) 음식점에서 김치를 먹다 유난히 시원하고 맛이 좋다고 느껴보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보통은 그런 맛은 신화당/뉴슈가 등을 넣은 영향입니다. 사카린 기반의 감미료 상품명이지요. 삶아 파는 옥수수를 조리할 때도 뉴슈가를 곧잘 넣습니다. 사카린이 몸에 나쁘다는 주장은 딱히 근거가 없으니까, 건강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사카린 계열의 감미료는 김치가 익는 과정에 전반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유산균은 당을 먹고 산을 뱉는데, 사카린은 당이 아니기 때문에 유산균이 먹어도 산을 못 뱉습니다. 대조적으로 김치에 밀가루풀이나 쌀풀, 설탕 등을 넣으면 유산균이 먹고 산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사카린을 쓴 김치는 원리상 잘 시어지지 않습니다. 대조적으로 밀가루풀이나 설탕을 쓴 김치는 충분히 익힐 수 있고, 적절하게 익은 시점에서 충분한 탄산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잘 익어서 맛이 절정일 때의 포기김치가 내는 맛의 핵심요소는 탄산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세한 이산화탄소 방울들이 김치 포기 사이사이에 있는 것이지요.

 

 



25) 소금은 호수소금이나 암염 계열이 고급품이고, 천일염은 하급품입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으면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다음과 같이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천일염은 간수를 오래 뺀 소금일수록 고급이지요. 그리고 호수소금은 시간적으로 지질시대 단위로 간수를 뺀 천일염입니다. 호수소금, 돌소금도 처음에는 해수소금이었지요.

 

 비교적 저렴하게 호수소금과 비슷한 건 정제염입니다. 호수소금은 시간적으로 간수가 오래 빠진 거고, 정제염은 해수를 전기분해해 염화나트륨을 해수에서 분리해낸 겁니다.

 

 단점이라면 정제염은 엄청나게 짜다는 겁니다. 호수소금도 입자가 작은 건 많이 짭니다. 염화나트륨 비율이 높으니까요. 그러니까 고기를 고운 정제염에 그냥 찍거나 하면 너무 짜서 먹기가 좀 그래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음식할 때도 짠 정도를 감안해서 넣어야 간이 맞습니다.

 



 

26) 소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런저런 미네랄이 많아 천일염이 좋다는 이야기가 곧잘 나오는데, 염화나트륨이야말로 대표적인 미네랄입니다. 천일염의 주성분은 염화나트륨이고 그 다음으로 많은 성분이 염화마그네슘인데, 이 염화마그네슘이 간수의 주성분입니다. 맛이 쓴 성분이지요. 간수가 충분히 빠지지 않은 천일염으로 김치를 담그면 크게 망쳐버리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뢰성이 부족한 천일염으로 김장담그면 안 됩니다. 보통 김장을 아예 망쳤을 때의 주 원인은 간수가 덜 빠진 소금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천일염은 많은 경우 제법 불순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스타를 삶을 때 질이 좀 낮은 천일염으로 간을 하면 불순물을 쉽게 볼 수 있는데요. 그래서 천일염을 한 번 씻고 녹여서 여과하고 재결정화한 것을 흔히 파는데, 그게 제재염입니다.

 

 물론 천일염이 꼭 나쁜 소금은 아닙니다. 고급 천일염도 있지요. 대표적으로 프랑스 게랑드의 플뢰르 드 셀이 있는데, 이건 뜬 천일염입니다염전에서 천일염이 생길 때는 우선 소금결정이 함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게랑드 플뢰르 드 셀은 이 결정이 가라앉기 전에 뜬 소금을 모아 만드는데, 일반 천일염 결정처럼 단단하지 않고 씹으면 큰 저항 없이 씹힙니다. 그 질감 때문에 다양한 요리에 활용할 수 있게 되지요.

 

 단순히 맛 때문에 천일염을 선호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천일염은 해수에서 나온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소금이기 때문에, 해수에서 비롯된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네랄 맛이라는 식으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실제로는 플랑크톤 등에서 비롯된 아미노산 맛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게 극대화된 소금은 따로 있습니다. 자염입니다.

 

 자염은 조선시대까지 먹던 진짜 우리나라 전통 소금입니다. 천일염은 일제 시절 무렵 들어온 거고요. 이 방식은 갯벌에 임시 염전 같은 걸 만들어서 해수를 농축시킨 후, 그 해수를 머금은 개흙을 퍼서, 개흙에서 여과장치를 이용해 함수를 추출한 다음, 함수를 솥에 넣고 끓여 소금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으로 만든 자염에는 아미노산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천연 맛소금이라 할 수 있지요. 물론 자염도 해수소금이라 염화마그네슘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만큼, 보존해서 염화마그네슘을 빼면 더 맛있어지긴 하는데 이건 잘 알려지진 않은 것 같고요. 좀 비싼 게 단점입니다.

 

 여담인데 천일염은 구워도 염화마그네슘 같은 간수 성분이 빠지지는 않습니다. 주로 날아가는 건 아황산가스와 탄산가스, 그리고 수분입니다.

 


 

27) 중국에서는 만두를 크게 속이 없는 만터우, 피가 두꺼운 찐빵 같은 포자(파오쯔), 그리고 피가 얇은 교자(자오쯔), 교자보다 피가 얇고 꽃 모양으로 빚는 사오마이(슈마이), 길게 마는 춘쥐안(춘권) 등으로 나눕니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만들어 먹는 만두는 교자인데, 일본에서도 교자는 교자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자를 만두라 부르고, 포자는 보통 왕만두라 부르지요.

 

 근래 우리나라의 만두 유행은 사오마이처럼 피가 얇아지는 방향으로 보입니다. 교자라 해야 할지 사오마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사오마이(슈마이)라 하면 남부 중국식 소가 들어간 것만 의미하니까, 구분할 이름이 없는 상황입니다.

 

 가정식 만두에서는 반대로 좀 두꺼운 피가 선호되기도 합니다. 포자와 교자의 중간 형태라 할 수 있는데, 교자라기에는 피가 두껍고 살짝 반죽이 숙성도 진행되었지만 포자처럼 아예 빵 같지는 않은 정도 말이지요. 얇은 수제비 정도의 피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경험적으로 피가 두꺼운 만두는 튀겨 먹으면 맛있습니다. 당면만두도 딮프라잉 쪽이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28) 세계적으로는 인기가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인기가 없어서 이젠 먹기도 힘들어진 음식이 피쉬버거입니다. 유사품인 생선까스도 인기가 별로 없는 편이지요. 물론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합니다. 나는 생선까스를 좋아하는 편인데, 일식 스타일 돈까스보다 생선까스를 좋아합니다. 생선까스보다 경양식 돈까스를 더 좋아합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선을 안 먹는 편은 아니고, 튀김도 좋아하는데 묘하게 튀긴 생선 요리는 선호가 없는 편입니다. 학교나 군대 등에서 맛없는 생선튀김이 많이 나오는 탓일까요. 생선 요리가 다 그렇듯, 생선튀김도 좋은 생선으로 잘 튀길 수록 맛있습니다.

 


 

29) 가지는, 흐물하게 나물 만든 걸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지나물만 먹어보고 가지를 안 좋아하다가 나중에 가지튀김을 먹어 보고 놀라워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나는 가지나물은 좋아하는 편인데, 그건 너무 푹 익히면 맛이 없고, 익힌 정도를 잘 조절해서 만들자마자 먹어야 맛있습니다. 만들자마자 안 먹고 냉장고에 들어가는 순간 맛이 많이 떨어지고요.

 

 가지 자체는 옷을 입혀 전 부쳐 먹건, 옷을 입혀 튀기건, 아니면 그냥 잘라서 기름을 충분히 이용해 잘 구워 먹건 맛이 좋습니다. 왜 맛있게 만들기 어려운 가지나물이 일반 레시피가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주관적으로는 튀겼을 때 가장 맛있는 채소 후보로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0) 외국에선 거의 안 먹는데 거의 우리나라에서만 먹는 식재료로 먹장어(꼼장어)와 골뱅이가 있습니다. 먹장어는 생긴 걸 보면 못 먹게 생겼으니까 그럴 만 한데, 골뱅이는 이상하게 우리나라에서 전 세계 소비의 90% 정도를 담당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골뱅이라고 먹는 건 사실 꽤 다양한 종류의 조개라고 합니다. @모양으로 생긴 건 다 골뱅이라 하니까, 맛있는 고급 골뱅이 종과 맛없는 저급 골뱅이 종을 그냥 다 골뱅이라 하고 있는 현실인 것 같습니다.

 

 주관적으로는 달팽이(에스카르고)와 골뱅이 맛은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습니다. 해양생물이냐 육지생물이냐 정도의 맛 차이인 것 같습니다. 달팽이가 좀 더 부드럽고, 골뱅이가 좀 더 단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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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 #1

식이 2020. 8. 28. 05:38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youtu.be/We3KG0lem54

 

 

 사견이고, 오류 가능성 있으며, 생각날 때마다 30개 정도씩 이야기할까 합니다.

 



1) 근래 한정식집이 문을 닫는 걸 많이 봅니다. 특히 가격대가 좀 있는 곳들, 다이닝에 가까운 곳이 그러한데, 한정식을 꽤 좋아하는 나로서는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독립적인 건물을 가진 가든형 한정식집은 김영란법에 타격을 크게 입었었는데, 올해 들어 COVID-19까지 터지면서 견딜 수 없는 곳이 많아진 걸로 보입니다.


 

2) 한식을 먹으러 다니다보면 가장 유감스러운 건 역시나 밥입니다. 근래 곧잘 하는 한정식집은 창의적인 음식을 곧잘 만들고, 맛도 좋아서 만족스럽습니다만 밥만큼은 일정 수준 이상인 곳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신경을 제법 쓴 곳들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추청같은 개발된 지 오래 된 품종 쌀을 쓰면 밥이 맛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3) 드물게 밥이 맛있다고 인정하는 식당 중 하나는 흥미롭게도 저렴한 무한리필 고깃집이었습니다. 밥도 인당 1공기를 시키면 무한리필을 해 주는데, 밥이 쓸데없이 맛있다보니 고기보다 밥을 많이 먹게 되는 곳이었지요.




4) 한식은 여러 모로 발전 중이긴 합니다만, 결정적인 단점을 꼽자면 맛의 세밀함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프랑스 요리나 이탈리아 요리에 셜롯 써야 할 때 양파 쓰면 맛이 망가지는데요. 한식에는 셜롯 쓸 일이 없습니다. 셜롯과 양파의 맛 차이를 반영할 만한 요리가 실질적으로 없어서입니다. 이게 한식이 양식보다 맛없다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림으로 치면 양식이 더 가늘고 세밀한 선을 사용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지요.



5) 근래 한우가 육종이 이상해서인지 키우는 게 이상해서인지, 한우 위주로 소고기를 학습하신 분들은 쇠고기를 좀 이상하게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쇠고기의 일반적인 특성이 등급 높은 한우에서는 잘 발현이 안 되서 그런데요. 일단 기본적으로 채끝은 아래등심보다 질이 낮은 고기로 취급됩니다. 아래등심은 채끝에서 멀고 꽃등심에 가까운 부위일수록, 새우살이 크게 붙어있을수록 고급부위고요. 그런데 요새 한우는 채끝이 같은 등급의 등심보다 비싼 경우가 많습니다. 채끝은 원래 기름이 없는 부위인데, 등급이 높은 한우는 부채나 채끝처럼 기름이 원래 없는 부위도 근내지방이 많이 껴서 강렬한 쇠기름 풍미를 가지는 부위가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6) 경험적으로 한우의 품질은 편차가 매우 크고, 육안으로 잘 고르는 게 거의 불가능하며, 조리난이도도 매우 높습니다. 맛있어 보인다고 맛있지가 않아요. 신뢰할 만한 공급처 또는 판매처에서 구매하는 게 좋은 것 같고, 스테이크용으로는 어떻게 실험해 봐도 가성비가 안 나옵니다.




7) 주관적으로 한우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육사시미를 타다키해먹는 겁니다. 육사시미 및 육회용을 제외하고 맛있는 부위라면 역시나 꽃갈비일까요. 나는 아래등심의 알등심이나 채끝에 마블링이 가득한 건, 심지어 안심까지 지방이 끼어있는 건 아무리 먹어봐도 이상하고 가격대비 충분히 뛰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 계열이라면 꽃갈비가 최고라고 생각하네요.

 

8) 세상에서 가장 이해 못하는 조리법 중 하나는 등급이 높은 한우 국거리를 사서 국을 끓인 후, 뜨는 기름을 건져 버리는 겁니다. 한우 등급은 맛하고 상관이 없어요. 기름 많은 게 등급이 높습니다.

 

9) 어지간한 요리에는 한우 안 써도 되는데, 한우 써야 하는 요리를 딱 하나 꼽자면 미역국입니다. 미역국엔 기름이 적은 한우를 쓰는 게 최고입니다. 국거리라고 파는 게 기름이 많으면, 육회용이나 육사시미용 고기를 찾으면 됩니다.

 



10)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회는 광어회입니다. 광어(넙치)는 주관적으로 내가 아는 생선 중 회로 먹을 때 최고 수준의 맛을 가진 생선입니다만, 별로 맛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광어는 특성 상 날이 추울수록 맛있고 더워지면 맛이 없습니다. 그런데 회는 찬음식이기 때문에, 하절기에 생선회를 드시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문제는 여름 광어는 겨울 광어에 비하면 맛이 정말 없어요. 물론 쌈싸먹으면 광어회는 아무 맛도 없습니다.



 

11) 쌀은 차지고 부드럽고 맛있는 쌀일수록 볶음밥이 안 됩니다. 찹쌀로는 볶음밥을 만들지 않아요. 그래서 백반과 볶음밥에 적합한 쌀 품종은 각기 따로 있습니다. 볶음밥용 품종으로 많이 재배되고 팔리는 품종이 신동진입니다. 별로 맛은 없어요. 볶음밥엔 좋지만. 전천후로 쓰기 좋은 품종을 하나 꼽자면 오대고요.

 



12) 양념치킨은 한식입니다. 한식으로 취급되지 않을 뿐. 한국식 토핑 많은 피자도 한식입니다. 한식으로 취급되지 않을 뿐. 자장면, 짬뽕도 당연히 한식입니다. 중식으로 아예 법적으로 정해놨지만요.

 



13) 서구에서 돼지고기 부위 중 가장 비싼 건 뒷다리입니다. 햄을 만드는 부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선 가장 싼 부위지요.

 



14) 삼겹살이 한식이냐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곤 하는데, 분명한 건 삼겹살을 쌈싸먹으면 그건 한식이라는 겁니다. 쌈용 상추는 다른 나라에선 안 먹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 먹는 게 쌈용 상추랑 깻잎입니다.

 



15) 우리나라에서는 무가 흔하니까 보통 다른 나라에서도 무를 많이 먹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세계에서 우리가 먹는 길고 하얀 무를 먹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 헤븐조선, 북조선, 일본만 그런 무를 먹고요. 중국 일부지역에서도 먹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동아시아 외의 지역에서는 무보다 순무를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아는데, 순무하고 무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다른 식물입니다. 순무는 무가 아닌 배추와 같은 식물 종이고 다른 품종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순무를 즐겨 먹는 지역은 강화, 김포, 계양 일대 정도입니다. 순무김치는 매우 맛있으니까 꼭 드셔보시길



 

16) 1950년대만 해도 우리가 현대에 흔히 먹는 대형 결구배추는 우리나라에서 먹지 않았습니다. 얼갈이에 가까운 걸 주로 먹었지요. 대형 결구배추로 담그는 포기김치는 근대화 과정에서 개발된 한식입니다. 우리가 먹는 형태의 배추는 우장춘 박사가 개량했지요. 여담인데 청경채도 배추입니다. 품종이 다른 소형 배추지요. 알타리도 무인 것과 비슷합니다.



 

17) 찐 호박잎으로 쌈싸먹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이 꽤 있을 텐데, 단호박잎은 드셔보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맛이 없습니다. 생긴 건 거의 구분이 안 가는데 맛은 매우 차이납니다. 주키니로 호박전 해먹는 게 더 나을 수준입니다.




18) 양배추는 배추하고 닮아서 그렇게 부르는 거지, 배추하고는 다른 식물입니다. 배추하고 같은 식물은 순무, 청경채(청경채는 생긴 것도 그냥 미니 배추인데 사람들이 배추라 생각을 잘 못합니다.), 다채(비타민) 등이고요. 양배추는 브로콜리, 컬리플라워, 케일, 콜라비와 동일 식물입니다. 그러니까 대형 결구배추값 비싸지면 양배추로 김치 담글 게 아니고, 일단 청경채로 담그면 됩니다.



 

19) 우리나라에서 흔히 먹는 식물 중 종류가 나름대로 복잡해서 파악이 어려운 것 중 하나가 갓입니다. 갓의 씨앗이 겨자인데, 식물 자체를 겨자라고 부를 때도 많지요. 갓은 들깨와 함께 텃밭에서 야생으로 곧잘 자라는데, 잎과 종자 모두를 많이 이용한다는 점도 유사합니다. 굳이 갓김치를 먹지 않아도 적갓을 갈아 김장 양념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 주로 된장국을 끓여 먹는 근대와 비트는 같은 식물입니다. 잎을 주로 먹는 품종을 근대라 부르고, 뿌리를 먹는 품종은 비트라 부르지요. 비트 중 유독 달콤한 건 설탕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슈거비트라 부르는데, 우리나라에선 사탕무라는 역어로 주로 부릅니다만 사실 무가 아니라 비트입니다

 



21) 우리나라에서 주로 키우는 콩은 대략 다음과 같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완두, 강낭콩, 대두, , 동부, 녹두, 땅콩. 이 중 팥, 동부, 녹두는 비슷하게 생겼고 야생의 것은 때때로 구분하기도 힘든데 뭉뚱그려 부르는 이름이 없습니다. 작은 콩들이지만 소두라고 부르면 팥을 의미하고요. 대두는 영어 Soy인데 종류가 다양합니다. 백태, 흑태, 서리태, 서목태(쥐눈이콩), 오리알태, 청태 등이 있지요. 두부, 두유, 메주, 간장, 된장, 청국장 등을 만드는 건 이 대두 계열입니다.


 완두는 옥수수와 특성이 꽤 비슷합니다. 잘 말려서 보존하면 오래 보존되긴 하는데, 그렇게 하면 맛이 전혀 없습니다. 말 그대로 아무 맛도 없는 무미(無味)가 되지요. 다 영글어도 맛이 없고요. 조금 덜 익어서 아직 풋풋한 걸 수확하자마자 해 먹어야 제 맛을 볼 수 있습니다. 옥수수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옥수수가 적절한 시각에 수확되어 최고의 상태일 때 갓 쪄 먹을 경우, 일반적으로 옥수수라 부르는 것과 얼마나 다른 맛을 내는지 알고 계실 겁니다. 햇옥수수 택배연착은 죄악입니다. 농담이 아니고 연착된 옥수수는, 개념 있는 판매자는 환불해줍니다. 그런데 완두도 그렇습니다. 주관적으로는 맛의 감소정도건 감소속도건 옥수수보다 더합니다. 완두의 맛은 본체에서 떨어지는 순간 실시간으로 사라집니다. 맛을 조금이라도 보존하려면 마르기 전에 얼리는 게 최선이고, 마른 완두는 완두의 형태와 영양소만이 남아있을 뿐 맛이라고는 남아있지 않은 것이 되지요.

 

 강낭콩도 마르면 맛없는 건 완두와 비슷합니다. 그나마 완두 수준으로 맛이 빠르게 사라지지는 않는 것 같지만, 제대로 맛있는 걸 먹으려면 마른 강낭콩은 쳐다도 안 보는 게 좋습니다. 강낭콩 철일 때 재래시장에 가면 아직 안 말린 강낭콩을 파는데요. 그걸 사서 얼려야 합니다. 울타리콩, 호랑이콩 같은 건 강낭콩의 일종입니다. 과자류에 들어가는 백앙금은 보통 강낭콩 앙금입니다. 팥이 아니에요.

 

 동부는 생긴 건 팥, 녹두와 거의 같습니다. 팥처럼 생긴 게 팥색이면 팥이고, 녹색이면 녹두고, 희거나 검거나 하면 동부입니다. 동부는 묵을 많이 만드는데, 시중의 백색 묵은 대체로 청포묵이 아니라 동부묵입니다. 청포묵은 녹두로 만드는 건데, 녹두보단 동부가 싸기 때문에 가까운 친척인 동부를 주로 씁니다.

 

 대두 중 오리알태는 크기가 좀 작습니다. 그래서 콩나물을 주로 만듭니다. 일반적인 대두인 백태로 콩나물을 만들면, 일반 콩나물보다 큰 찜용 콩나물이 됩니다. 아구찜에 쓰는 그거요.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숙주나물은 녹두로 만드는데, 조선시대때는 팥으로 만든 팥나물도 많이 먹었다고 합니다. 숙주나물이 제일 고급이고 그 다음이 팥나물. 콩나물은 하급품이었다나요. 그런데 어쩌다보니 팥나물은 안 먹게 되고 숙주나물보다 콩나물을 많이 먹게 되었습니다. 한국인들이 콩나물의 아삭한 식감을 즐기게 된 게 주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견으로 대두 중 맛있는 콩은 서리태와 청태입니다.

 

 땅콩은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데 콩의 일종입니다. 맛이 다른 콩들하고 좀 다르고, 콩깍지가 땅 속에서 열리긴 하지요. 가장 맛있는 콩을 하나만 꼽자면 땅콩을 꼽겠습니다. 주관적으로 갓 수확한 완두가 땅콩보다 맛있긴 합니다만, 그 맛은 몇 시간 못 가고요.



 

22) 족발을 드실 때 흔히 미니족발로 불리는 발 부위보다 살이 많은 부위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껍질이 붙은 앞다리살이나 뒷다리살을 수육해 드시는 게 가격대비 저렴합니다. 나는 돼지고기 앞다리살은 삶아 먹기에 최적의 부위라 생각하며, 족발과 유사한 맛을 내고 싶으면 삶는 양념을 조절하면 됩니다. 사태도 다리살이기 때문에 (다리살과 발 사이의 근육 부위) 사태를 쓰는 것도 좋은데, 껍질이 붙은 사태는 구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만일 다리살 수육과 족발 살 부위의 맛 차이가 크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삶는 양념의 차이에서 주로 기인한 것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족발을 삶을 때는 수육과 달리 간장, 콜라, 한약(쌍화탕), 설탕, 올리고당, 물엿 등이 들어갑니다.

 



23) 돼지수육(보쌈)은 어느 때서부터인가 다리살도 목살도 아닌 삼겹살을 삶는 게 일반화되었는데, 삶은 삼겹살이 나름대로 맛있긴 하고, 과도한 지방도 줄여 먹을 수 있는 방법이긴 합니다만, 굳이 삼겹으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 요리인지는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24) 돼지 목살은 돼지의 품종이나 상태 등에 따라 마블링이 많이 차이 납니다. 나는 마블링이 좋은 돼지 목살을 좋아하는데, 마블링이 좋은 돼지 목살과 마블링이 거의 없고 살코기 위주인 목살은 이름이 같을 뿐 특성은 매우 다른 고기가 됩니다.



 

25) 경남 지방에서 주로 먹지만 수도권에서는 거의 존재감조차 없는 방아잎의 정식 명칭은 배초향입니다. 약재로도 쓰는데, 약재명은 곽향입니다. 물약 소화제 성분 보시면 곽향이라는 약재명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주관적으로 배초향은 회향(펜넬/산미나리)과 풍미의 유사성이 있습니다. 아니스, 스타아니스(팔각), 딜 시드, 쿠민과도 유사성이 있고요. 그러니까 미나리과 스파이스와 비슷한 풍미인데, 특이한 건 배초향은 꿀풀과 허브라는 겁니다.

 



26) 참깨와 들깨는 둘 다 깨로 불리긴 합니다만, 그다지 가까운 식물이 아닙니다. 참깨는 꿀풀목 참깨과 참깨속이고, 들깨는 꿀풀목 꿀풀과 들깨속입니다. 과 수준에서 다르지요. 참깨는 전 세계적으로 많이 먹지만 들깨는 아닙니다. 특히 들깻잎은 거의 우리나라에서만 먹는데,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깻잎은 참깨가 아닌 들깨의 잎입니다.

 

 들깨는 이름답게 야생화가 잘 되고, 텃밭이 있으면 굳이 심지 않아도 야생들깨가 곧잘 자라나는데요. 야생들깨는 일반 들깨보다 잎이 억세고, 향은 강하며, 씨앗인 들깨는 매우 작고 기름기가 별로 없습니다. 향이 강하기 때문에 깻잎향을 좋아하는 분들은 선호할 수 있습니다만, 재배 깻잎보다 질기고 억세기 때문에 사용용도가 다소 제한됩니다.

 



27) 다니다 보면 깻잎하고 생긴 건 똑같은데 깻잎보다 작은 식물을 볼 수 있는데요. 소엽(차즈기/차조기)입니다청색인 것과 자색인 게 있는데, 자색인 건 자소엽이라 부르고 청색인 건 청소엽입니다. 소엽은 생긴 건 깻잎하고 비슷하지만 깻잎처럼 강한 풍미를 가지지는 않고, 나름대로 특유의 풍미는 있습니다. 식물 종으로 보면 들깨와 같은 종이고, 품종이 다른 것이라 하고요. 경험적으로는 야생에서 들깨보다도 잘 자라고요. 일본에서는 깻잎이 아니라 이 소엽을 주로 먹는데, 스시를 만들어먹으면 어울리는 맛입니다. 대조적으로 한식에는 소엽을 주로 쓸 만한 요리가 없습니다. 한식 스타일로 먹고 싶으면 옷을 입혀 튀김을 하는 게 무난합니다. 깻잎튀김도 맛있잖습니까.

 



28) 상추는 색에 의한 구분과 품종에 의한 구분이 있습니다. 주로 재배하고 시판되는 종류는 축면, 치마, 담배, 생채, (결구), 오크, 로메인 정도입니다. 이 중 축면상추와 오크상추, 로메인상추는 적/청 바리에이션이 있고, 치마상추는 적/청에 더해 흑색 바리에이션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잎상추는 축면상추와 치마상추입니다. 이 둘을 의식해서 구분하는 분은 드문데, 통상적으로 축면상추는 적축면이 유통되고 치마상추는 청치마가 많이 유통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적상추라 하면 축면상추를 떠올리고, 청상추라 하면 청치마를 떠올리기도 합니다만 실제로는 청축면도 있고 적치마도 있습니다.

 

 축면상추는 포기째 수확하며 잎에 굴곡이 많습니다. 가장 흔하며 야들야들하며 부드러운 식감입니다. 치마상추는 보다 아삭하며, 잎에 굴곡이 적습니다. 담배상추는 치마상추보다 잎이 매끄럽고 다소 배추를 닮았습니다.

 

 오크상추는 잎이 가늘고 말 그대로 오크나무 잎을 닮았습니다. 맛이 좋은 상추인데, 잎 면적이 좁은 게 유일한 단점입니다. 생채상추는 양상추와 흡사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결구가 되지는 않고, 양상추보다는 얇습니다. 아삭이상추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결구형 양상추는 다들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샐러드나 햄버거/샌드위치용으로 주로 씁니다만, 일반 상추처럼 쌈용으로 써도 좋습니다. 특히 좀 두께가 있는 돼지고기수육에 잘 어울립니다. 로메인은 샌드위치용으로 주로 씁니다.


 모든 식물이 그렇지만 상추의 색도 맛과 연관이 있습니다. 상추의 붉은색은 안토시아닌인데, 안토시아닌의 맛은 쓰고 떫습니다. 그러니까 청상추보다는 적상추가, 적상추보다는 흑상추가 더 쓴맛이 나고, 전반적으로 강한 상추 풍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주관적으로는 생오리처럼 좀 풍미가 있는 고기를 먹을 때 흑상추처럼 강한 상추가 어울립니다.




29) 식문화의 발달은 거주양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조선은 주로 흙으로 지은 집에 살면서 구들장까지 이용했기 때문에, 불과 솥을 사용한 음식이 발달했습니다. 화재위험이 적으니까 불을 마음껏 쓸 수는 있었는데, 무쇠가마솥 외의 조리도구가 발달하지는 않았었지요. 아직도 한식은 그 영향이 크게 남아있습니다. 중국은 석탄을 일찍부터 사용했는데, 숯에 비해 화력이 강한 석탄을 사용했기 때문에 강한 화력에 볶는 요리가 발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 같은 경우는 목조건축물이 밀집해 있는 구조로 도시가 일찍 발달하면서 불 사용이 덜 적극적이고, 날도 덥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식혀 먹는 음식이나 날음식이 발달했다는 쪽으로 이야기되기도 합니다.



 

30) 송어와 숭어를 혼동하는 분들이 어쩔 수 없이 많은데, 송어는 연어의 일종입니다. 그래서 살 색깔도 연어 색깔이고, 맛도 연어 맛입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연어송어는 다른 종이긴 하니까 약간 차이는 나지만요. 숭어는 잉어처럼 몸이 길쭉한 생선인데, 바다 생선이지만 담수에도 강해서 강 중하류까지 올라오기도 합니다. 저렴한 편인 흰살생선이지요. 여담으로 슈베르트의 가곡은 숭어로 알려졌습니다만, ‘송어가 맞습니다. 숭어도 강에 올라오긴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강에서 뛰는 건 송어입니다.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우리나라 내륙지방에서는 송어를 많이 먹습니다.


 (본문은 댓글 피드백을 반영하여 부분 수정하였습니다.)

커피 생두 가공법

식이 2020. 7. 5. 17:38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youtu.be/3J0TLOg621g

 

 

 지난 포스트, ‘두서없는 커피 이야기에서 이야기하지 않은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싱글 오리진 원두나 생두를 구매하시는 분, 또는 카페에서 싱글 오리진 커피를 오더하시는 분께 유용합니다. 블렌딩된 커피를 사 드시는 분께는 의미가 없는데, 블렌딩을 할 때 워시드와 내추럴을 섞는 등의 행위를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커피를 조금 디테일하게 골라 드시고 싶다면, 대략 다음과 같은 변수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소비자가 다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식품이자 기호품인 만큼 대략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있다고 봐두시면 됩니다. 물론 첨가물이 없는, 베리에이션 커피가 아닌 순수한 커피가 기준입니다.

 

1) 품종

2) 생산지 및 생산/유통방식

3) 생두 가공법

4) 종합적인 생두의 품질과 유통과정에서의 관리/보관

5) 생두를 원두로 로스팅하는 과정에서의 열원 비율 (복사/전도/대류)

6) 로스팅 정도 및 로스팅에 걸린 시간

7) 추출 방식

 

 본문은 이 중 3) 생두의 가공법을 다룹니다. 요새 스페셜티 커피 트렌드가 온갖 실험적인 생두 가공이기도 하고, 소비자들도 좀 아는 게 좋을 것 같거든요. 가공법마다 풍미의 기본적인 특성이 다릅니다. 카페에서 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할 기회가 있다면, 원두가 워시드냐 내추럴이냐만 물어도 커피를 드시는 분이구나 하고 가능한 신경을 써 줄 겁니다.

 

 이하 사견이 대단히 듬뿍 담긴 글이고, 질적으로 모자람이 많을 것이니 감안하고 봐주시길 바랍니다. 모자란 글이라 써 놓고 올릴까 말까 고민을 꽤 했는데, 일단 그래도 올려보기로 했습니다. 향후 이해와 견해가 업데이트되면 글도 업데이트할 생각입니다.

 

 원래 스페셜티 또는 싱글오리진 커피를 드시던 분이 아니면 글이 좀 어려울 수 있으니까 양해하고 봐주세요.

 


 

1. 워시드



 워시드 방식(수세식)은 양질의 커피를 만들 수 있는 가장 표준적인 가공법이자 모든 스페셜티 커피의 기준이 되는 가공법입니다. 내가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다만 뭔가 좀 트렌드는 아닙니다. 나는 이 트렌드에 불만이 조금 있어요.


 기본적으로 생두 가공이라는 건 커피체리 안의 커피 씨앗을 체리 및 점액질(뮤실리지/팩틴 레이어)과 파치먼트(씨앗을 둘러싸고 있는 속껍질)와 분리하고 건조시키는 과정입니다. (곰팡이의 증식이 수분 13%이하에서 억제되기 때문에 모든 건조식품은 수분함량이 13%보다 낮은 상태여야 합니다.) 그걸 어떻게 하느냐의 차이인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구분을 하는 겁니다.

 

 워시드 방식은 일단 커피체리를 벗깁니다. 점액질이 붙은 파치먼트 째 물에 담가서 발효시킨 후 점액질을 제거합니다. 점액질은 그냥은 쉽게 제거되지 않는데, 물에 담가서 발효시키고 나면 제거가 잘 됩니다. 그리고 잘 씻어서 말려줍니다. 물이 많이 필요하고, 점액질을 씻어낸 물이 물을 오염시킨다는 말도 나오는 편이긴 합니다. 다만 농사라는 게 환경오염이 없을 수가 없지요.

 

 이 방식의 장점은 명백합니다. 일단 품질관리가 제일 쉽습니다. 결점두가 적어지고, 과발효 등으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가 줄어듭니다. 그리고 커피씨앗 자체의 품질과 개성이 단적으로 강조됩니다. 좋은 품종과 생산지, 경작과 수확을 했다면 그 결과물을 제일 잘 드러내주는 방식이 워시드란 말이지요. 또한 클린컵, 그러니까 깔끔함이 최고로 잘 나오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커머셜 커피를 생산하는 데도 좋고, 최고의 스페셜티 커피를 생산하는 데도 좋습니다. 심지어 보존성도 좋습니다. 생두일 때나 원두일 때나 다른 가공법보다는 보존성이 더 좋은 편입니다.


 

 워시드 커피의 특성은 깔끔한 풍미, 명백한 품종향과 떼루아 느낌, 밝고 강한 산, 좋은 의미로 클래시컬한 느낌 등입니다. 컵노트로 치면 다른 어떤 가공방식보다도 플라워리함이나 시트러스향, 사과산의 느낌 등을 잘 살린다고 생각합니다. 단점은... 유행이 아니라는 걸까요. 사실 그보다 워시드의 진정한 장점을 알려면 내 생각엔 생두부터 좋아야 하고 잘 볶고 잘 추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다수의 바리스타들도 워시드 커피의 장점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보통은 워시드 커피 하면 평범한 커피구나 생각들 하는 거 같아요. 그렇지만 평범한 거 같은 데 돌아보면 최고인, 그런 게 워시드 프로세싱입니다.


 

 첨언하자면 워시드 방식으로 가공된 좋은 생두는 대체로 적용 가능한 볶음 정도의 폭이 넓은 편이라 생각합니다. 생두는 대체로 워시드에 가까울수록 다양한 볶음 정도를 적용 가능한 편이고, 내추럴에 가까울수록 어려워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품종과 생산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후술할 웻 헐드는 워시드의 일종이지만 예외입니다.) 그런데 워시드라도 각각의 생두가 가진 최적의 볶음 정도는 정해져 있습니다. 어떻게 볶아도 대체로 맛있는 편인 게 워시드지만, 워시드의 진정한 장점은 각각의 생두가 가진 최적의 포인트를 찾았을 때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2. 더블 워시드


 

 워시드의 일종입니다. 많은 경우 1번 방식과 딱히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더블 워시드는 생두 보면 따로 표기하는 경향도 있고, 좀 구분해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 번호를 구분하여 기술합니다. 이 방식은 케냐식 워시드, 풀리 워시드 같은 식으로도 부릅니다.

 

 명칭 그대로 더블 워시드는 두 번 물에 담가 발효합니다. 그러니까 일반 워시드 방식이 물에 한 번 담가서 24~48시간 정도 발효하고 점액질과 파치먼트를 제거하고 끝이라면, 더블 워시드는 일단 첫 번째로 점액질을 제거한 후 24~48시간동안 또 물에 담가 발효하고 다시 한 번 점액질을 깔끔하게 제거해 줍니다. 이후 또 물에 담가 더 발효하기도 합니다. 총 발효시간을 합쳐 72시간이 넘지는 않게 한다고 합니다.

 

 이 방식은 주로 케냐 및 탄자니아, 르완다, 브룬디 등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사용합니다. 생두 가공에 신경 많이 쓰는 코스타리카에서도 사용하기도 합니다. 케냐 커피가 특별한 건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텐데, 이 가공법에서 많은 게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강한 산미와 깔끔함은 물론 약//강배전에서 모두 좋은 커피가 되는 경향이 있지요. 대신 가격이 좀 비싸집니다. 돈과 시간과 인력이 들어가는 프로세싱이니까요.


 

 케냐 커피를 좋아하면 풀리 워시드를 좋아한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케냐에선 다른 가공을 거의 안 해요. 케냐 커피에 대한 호오는 커피 애호자 각각의 입맛을 체크할 수 있는 포인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3. 세미 워시드


 

 워시드의 일종입니다. 일반 워시드 커피는 물에 담가 발효시켜 점액질을 제거하는데, 세미 워시드는 과육을 제거할 때 기계를 사용해서 물리적인 방식으로 아예 점액질까지 제거합니다. 그러니까 물에 담가 발효시켜 점액질을 제거하지 않아요. 물에 담가 발효하는 과정이 없으니까 결과적으로는 일반 워시드와는 살짝 다른 맛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을 덜 소모하기 때문에 환경에 좋은 면이 있고, 물에 담가 커피를 발효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들 (생두 가공은 많은 지역에서 가난한 소농들이 하는데, 이 사람들은 잘 배운 고학력 기술자들이 아닙니다.) 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요즘은 고급 커피에도 곧잘 사용합니다. 다만 세미 워시드 방식을 사용했다고 꼭 그렇게 표기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이 방식은 아시엔다 라 에스메랄다의 스페셜급 워시드 랏 가공에도 사용합니다. 다만 그냥 세미 워시드라 하면 없어보여서 그런지 이름을 다르게 붙입니다. 에스메랄다에서 붙이는 이름은 아쿠아펄프드(Aquapulped) 입니다. 보통 유통될 때는 그냥 워시드로 표기하고요.

 

 나는 일반 워시드와 세미 워시드 방식은 조금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뮤실리지까지 물에 담가서 발효를 시키는 과정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생두에 영향을 꽤 줍니다. 두 방식은 둘 다 워시드로 불리지만 다르고, 장단점이 있습니다. 사견으로는 잘 되는 경우에는 워시드나 더블 워시드가 낫고, 잘 안 되는 경우에는 세미 워시드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세미 워시드 쪽이 발효로 인한 부정적인 특성이 생길 리스크가 적은 대신, 특별히 잘 될 기회도 없다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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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내추럴

 

 워시드와 함께 2대 클래시컬 가공법입니다. 어디서 커피 배우면 일단 워시드와 내추럴 가공법을 배우지요. 그런데 상세한 건 잘 안 가르쳐줍니다.


 

 내추럴 커피는 커피체리를 그냥 말립니다. 말린 후에 과육을 제거합니다. 체리를 말리면 생것일 때보다 과육 제거가 쉬워집니다. 이 과정에서 발효도 일어나고, 체리의 각종 성분들이 씨앗 부분인 생두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워시드 커피를 세계 곳곳에서 생산하는 반면, 내추럴 커피는 스페셜티를 제외하면 생산 국가가 한정된 편입니다. 이유는 기후입니다. 건조하고 쨍쨍한 날씨가 있는 나라/지역에서만 내추럴 커피를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어요. 에티오피아, 예멘, 브라질이 내추럴 커피를 많이 만듭니다. 특히 아라비카 커피의 원조국가 에티오피아는 오래 전부터 내추럴 가공을 많이 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전통적으로 내추럴 커피의 품질은 워시드만큼 인정받지는 못했었지요.


 

 커피가 아직 유럽에 전해지기 이전, 이슬람권에만 유통되던 커피는 생두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말린 커피체리를 그냥 유통했었지요. 그러니까 내추럴 방식은 아주 오래 된 방식입니다. 참고로 체리를 수확해 말린 것만 내추럴입니다. 따기 전에 말린 다음 따면 파체라고 따로 부르는데,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상업용도로 유통하지는 않습니다.

 

 내추럴 커피의 기본적인 단점은 상기하였듯 워시드에 비해 결점두가 생기기 쉽다는 것입니다. 클린컵도 떨어지기 쉽고요. 그러니까 결점두를 기준으로 등급을 매기면, 워시드에 비해 등급이 쉽게 떨어집니다. 그렇지만 잘 수확하고 잘 가공하면 등급은 얼마든지 올릴 수 있습니다.

 

 기후가 따라주지 않는 나라에서도 내추럴 커피를 만듭니다. 시설을 좀 이용하면 가능하니까요. 내추럴은 워시드와는 다른 매력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내추럴 커피의 장점을 좋아합니다.


 

 커피도 나무열매입니다. 과일이란 말이지요. 내추럴 커피는 커피 과육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그 때문인지 좀 더 과일스러운 커피가 나옵니다. 워시드와 비교하면 덜 시고, 더 달콤하고, 더 과일 향이 나고, 조금 더 복잡성이 있기 쉽고 그렇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좋아하기 쉬운 특성이지요? 에티오피아나 브라질 같이 기후가 따라주는 나라 아니고선 내추럴 가공하면 생두가 비싸지는데, 비싸니까 더 좋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게 내추럴이 각광받는 한 원인이라고 생각도 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자칭타칭 매니아라도 비싸면 맛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품질이 좋은 내추럴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워시드보다 좋아할 만한 풍미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워시드를 좋아합니다만, 근래 가장 맛있게 마신 커피는 내추럴 가공된 것이었습니다. 근래 내추럴 커피가 인기가 좋아서 좋은 게 많이 들어옵니다. 내추럴 가공을 예전보다 더 많이 하고요. 그렇지만 나는 기본적으로는 워시드가 더 좋습니다.


 

 좋은 품질로 완성된 내추럴이라도 다음과 같은 단점은 있습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일단 워시드에 비해 플라워리 노트가 감쇄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리고 산의 밝음이나 발랄함, 그와 연관된 각종 노트가 곧잘 억제됩니다. 이는 신 커피를 싫어하는 분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만... 샤르도네 와인을 좀 드셔보신 분들은 의도적인 말로락틱 발효나 오크통 숙성이 주는 주는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이해가 있을 겁니다. 워시드는 의도적인 말로락틱 발효 및 오크통 숙성을 안 한 느낌에 가깝고, 내추럴은 한 느낌에 가깝습니다. 말로락틱 발효 / 오크통 숙성한 샤르도네가 더 고급에 비싼 거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나는 샤블리와 상파뉴를 좋아하는데, 그래서 워시드 커피를 좋아할지도 모릅니다. 여담인데 요새는 커피에 말로락틱 발효를 적용하기도 합니다. 그런 커피를 들고 나온 바리스타가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고 있고요. 좋은 트렌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그리고 내추럴 가공은 떼루아 특유의 느낌도 워시드 대비 감소합니다.

 

 한편으로 나는 내추럴 커피가 워시드에 비해 최적의 볶음 정도가 더 타이트한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좋은 내추럴 커피는 (일본식 기준) 미디엄 로스트에서도 매우 훌륭한 특성을 보입니다만, 보통은 하이에서 시티 정도가 최적이고 풀시티 수준으로 볶았을 때는 그야말로 아무 장점도 없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내추럴 생두는 수분은 낮고 더 많은 당분과 체프를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해도 타기 쉽고 클린컵도 워시드만큼 잘 안 나오고, 어차피 산도 억제되어 있으니까 하이에서 시티 정도가 최적이 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상기하였듯 내추럴 생두는 볶을 때 워시드보다 쉽게 타버립니다. 특히 대류열이 강하게 걸리는 머신일수록 내추럴 생두의 속을 태워버리기 쉽지 않나 생각합니다. 로스터의 의도보다 더 타버린 내추럴 생두는 부정적인 특성을 쉽게 드러냅니다. 그러니까 더 신경 써서 볶아야 하고, 실력 있는 로스터가 볶아도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존성 나쁜 건 내추럴의 최대 단점입니다. 원두는 물론 생두도 보존성이 워시드보다 나쁩니다.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과육의 당 성분이 스며들어 보존성을 나쁘게 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만 싱글오리진 커피 입문하시면 내추럴 커피 드세요. 강력 추천합니다. 상기하였듯 바리스타들도 대체로 워시드 좋은 줄 모릅니다. 내추럴이 대중적으로 훨씬 잘 통하는 맛입니다.

 

 여담으로 코스타리카 라스 라하스 농장에서는 펠라 네그라알마 네그라라는 가공법의 커피를 팔고 있는데, 나는 일단 이 방식을 내추럴의 일종 같다고 보고 있습니다.

 



5. 펄프드 내추럴

 

 브라질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커피체리는 제거하고 점액질은 남겨둔 상태로 만드는 것까지는 워시드와 같은데, 물에 담가 발효하는 대신 내추럴 가공 방식처럼 그냥 말립니다. 일반 내추럴과 비교하면 말리는 시간도 짧아지고, 실패율도 줄어듭니다.


 

 브라질에서 이 방식이 개발된 이유는 워낙 커피 생두 생산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생산성을 높일 필요가 있었지요. 워시드는 물이 많이 필요하고, 내추럴은 너무 오래 말려야 하는데다 품질이 떨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니까 과육만 벗겨서 말리는 방식이 개발된 것입니다. 생산성과 품질을 모두 잡는 좋은 방식이다 보니 90년대 초반에 개발된 방식인데 현재는 브라질 생두 중 40% 정도가 펄프드 내추럴로 가공됩니다.

 

 


6. 허니



 코스타리카에서 개발되어 사용되는 방식인데, 장점이 있다 보니 라틴아메리카 지역 스페셜티에 많이 적용되는 중입니다. 사견으로는 이름이 맛있어 보인다는 게 최고 장점 같습니다.

 

 기본적인 방식은 일단 펄프드 내추럴처럼 커피체리를 제거합니다. 그리고 이후 점액질(뮤실리지)도 일부 제거합니다. 점액질을 다 물리적으로 제거하면 세미 워시드인데, 허니는 다 제거하진 않습니다. 제거하는 정도는 다양하고, 어느 정도의 온도에서 얼마나 발효시키는지도 다양합니다.



 코스타리카 등지에서는 점액질을 제거하고 발효를 얼마나 시키는지에 따라 다양한 컬러 이름을 붙이곤 합니다. 점액질을 아주 조금만 제거하고 비교적 오래 발효한 건 블랙 허니고, 아주 조금만 남겨둔 건 화이트 허니입니다. 대략 점액을 많이 남기고 많이 발효한 쪽부터 블랙 - 레드 - 골드 - 옐로우 - 화이트입니다. 그러니까 블랙 허니는 펄프드 내추럴에 가까운 맛이고, 화이트는 세미 워시드에 가까운 맛입니다. 다른 가공 방식까지 포함하여 여기까지 언급한 걸 일렬 정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더블 워시드 - 워시드 - 세미 워시드 - 화이트 허니 - 옐로우 허니 

- 골드 허니 - 레드 허니 - 블랙 허니 - 펄프드 내추럴 - 내추럴

 

 앞쪽일수록 워시드스러운 거고, 뒤쪽일수록 내추럴스러운 겁니다. 여담으로 오렌지 허니라는 방식도 있는데, 그건 설명을 보면 아예 다른 프로세싱이라 세미 워시드의 일종으로 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주관적으로는 대체로 허니 프로세스는 워시드보다는 내추럴에 좀 더 가까운 느낌입니다. 그러니까 워시드같은 장점을 어느 정도 잡으려는 내추럴의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물에 담가 발효하는 게 아니고, 점액질을 어느 정도 유지한 채 말려서 발효하다 보니 펄프드 내추럴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허니 프로세싱은 때때로 펄프드 내추럴과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걸로 보이는데, 사실 펄프드 내추럴을 하다 보면 점액질도 일부 제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화이트 허니쯤 되면 워시드스러운 느낌도 어느 정도는 있는 것 같습니다. 세미 워시드보다는 살짝 내추럴 느낌이 있는 정도라고 할까요.

 

 허니 가공된 생두는 대체로 워시드에 비해 가격이 살짝 높은 편입니다. 그런데 딱히 워시드에 비해 품질이 좋다고 생각하진 않아서, 나는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종종 아주 멋진 허니 가공의 결과물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허니 프로세싱도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7) 웻 헐드

 

 현재진행형으로 웻 헐링, 현지어로 길링 바사라고도 합니다. 인도네시아 커피의 전통적인 가공법입니다. 인도네시아 생두를 보면 보통 웻 헐드의 처참한 흔적을 볼 수 있지요. 분류하자면 워시드의 일종입니다.


 

 일반 워시드와 웻 헐드의 차이는 파치먼트(씨앗을 둘러싸고 있는 속껍질)를 언제 벗기느냐에 있습니다. 일반 워시드는 세척을 끝낸 커피씨앗을 다 말리고 난 후 벗깁니다. 파치먼트가 남아있는 상태가 보존성이 좋아서, 일단은 파치먼트가 붙은 상대로 보관하다가 팔기 전에야 벗긴다고도 하고요. 그러니까 깔끔하게 벗겨집니다. 그런데 웻 헐드는 다 안 마른, 아직 젖은 커피씨앗에서 파치먼트를 벗깁니다. 젖은 커피씨앗은 조직이 약한데, 파치먼트는 아직 분리가 잘 안 되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물리적인 힘으로 벗기게 되면서 커피씨앗이 쉽게 손상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생두를 가공하는 이유는 인도네시아의 기후와 생두 생산/유통구조에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날씨는 에티오피아와는 정 반대입니다. 에티오피아는 커피체리를 그냥 내다 말려도 될 정도로 건조한데, 인도네시아는 걸핏하면 비가 옵니다. 잘못하면 생두가 제대로 안 마르고 가공에 실패해서 완전히 망할 위험이 있단 말이지요.

 

 그래서 인도네시아의 커피농부는 과육만 제거한 상태로 중간 상인에 빨리 팔아넘기고, 이 중간 상인은 가공소에 넘기고, 가공소에서는 웻 헐드로 빨리빨리 가공하면서 서로 리스크를 회피하는 방식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웻 헐드된 커피는 아무래도 결점두가 많이 나옵니다. 최대한 잘 가공하고 골라낼 만큼 골라낸다 해도 보통 약간은 남지요. 일반적인 워시드 가공 수준의 클린함은 보장될 수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웻 헐드된 특성이 꼭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나름대로 많은 애호가들을 가지고 있고, 계속 웻 헐드된 커피가 생산되어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웻 헐드된 커피의 기본적인 특성은 낮은 산미와 다소의 결점두에서 비롯되는 흙 같은 독특한 풍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웻 헐드된 생두는 일반 워시드에 비해 파치먼트가 붙은 상태에서 발효되는 시간이 짧습니다. 워시드 생두는 발효과정에서 산과 각종 향기 성분이 많이 생기는데요. 커피의 새콤함은 싫어하는 분들도 많고, 새콤함에 동반되는 향기 성분들은 사실 풀시티 수준으로 커피를 볶으면 거의 다 날아가서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니까 웻 헐드된 커피는 하이 이하의 로스트에서는 별 장점이 없는 걸 넘어 거의 쓸모가 없는데, 원천적으로 산미와 생두 자체의 향기를 포기하는 시티 중후반 이상의 로스트에서는 매력적인 커피가 되어버립니다.

 

 흙 같은 느낌은 기본적으로 결점두의 특성이긴 한데, 인도네시아 만델링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은 흙 같은 느낌이 조금 있는 걸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드문 게 아니라서, 와인에서도 구세계 와인과 신세계 와인에 대한 취향을 판별하는 데 하나의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신세계 와인이 부정적인 특성을 완전히 없애는 데 주력한다면, 구세계 와인은 부정적인 특성도 포함하여 개성과 복합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나쁜 풍미라는 건 누군가 정해줄 수 있는 게 아니고, 각자가 좋아함과 싫어함이 있는 것입니다.

 

 

8) 애네어로빅

 

 요새 스페셜티 커피에 유행하는 방식입니다. 영어로는 Anaerobic. 대중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영단어라서인지 각자 개성적으로 읽는 경향이 있는데, 영국식으로 읽으면 애네어러우빅이고 미국식으로 읽으면 애너로우빅입니다. 나는 영국식에 가깝게 애네어로빅으로 읽습니다. 그런데 아나에어로빅이나 언에어로빅 같은 식으로 읽는 분들이 많습니다. 뜻은 무산소성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무산소발효 방식을 의미합니다.


 

 애네어로빅 발효라고 칭하는 것들은 매우 다양하고, 아직 일관적인 방식이라 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공통점은 있습니다. 사견으로 공통된 특징이라면 내추럴에서 더 나갔다는 겁니다. 쉽게 이야기해 내추럴보다 더 내추럴스럽습니다. 때때로 과발효를 감수하기도 하는데, 일단은 기존 내추럴과는 달리 실패를 통제하려는 시도들이긴 합니다. 요약하자면 워시드와는 아주 반대 느낌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애네어로빅 퍼멘테이션(발효) 프로세싱을 나는 일단 내추럴 방식의 연장선으로 봅니다. 어떻게든 커피과육을 활용할 방안에서 기인한 것 같단 말이지요. 좋은 커피체리를 재배하면, 당연히 과육의 품질도 좋아집니다. 커피 과육을 먹어도 됩니다. 그것도 카페인이 있지요. 양질의 커피과육 맛을 생두에 담을 수 있는 방식은 워시드가 아닌 내추럴입니다. 그런데 커피체리과육 맛을 최대한 생두에 담으려 하다 보니까 잘 알려진 과실주 양조법이 적용되었고, 그 과정에서 애네어로빅이 나왔다는 게 나의 추정입니다. 아무리 봐도 현대적인 와인 담그는 방식이거든요.

 

 현대적인 와인 양조방식일수록 산도가 낮은 경향이 있습니다. 커피의 애네어로빅 퍼멘테이션도 이와 비슷한데, 일단 유명해진 코스타리카 코르디예라 데 푸에고의 경우 과육을 제거한 커피씨앗에, 커피과육과 점액을 (본래 커피씨앗에 붙어있는 것 외의 것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섞어 스뎅 통에 넣고,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무산소 공간을 만든 후 발효합니다. 이후 그대로 말리면 무산소 내추럴. 씻어 말리면 무산소 워시드라나요. 사견으로 애네어로빅 퍼멘테이션은 워낙 효과가 강해서그 이후 워시드 가공을 하건 내추럴 가공을 하건 대동소이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좀 더 단순하게 커피체리를 비닐로 싸서 공기접촉을 차단한 채 발효시키거나, 발효시간을 길게 가져가기 위해 저온 장시간 발효시킨다거나 하는 방식도 있고 그렇습니다. 여담인데 그나마 커피체리만 사용하면 다행인데, 요새 가공한다고 하는 것들 보면 온갖 것들을 다 넣어서 이미 순수한 커피의 영역은 넘어서는 것들도 제법 있는 것 같습니다. 가공할 때 뭘 하건 자유지만 명시는 제대로 해줬으면 합니다.



 일반적인 커피 프로세스에서는 호기성 발효와 혐기성 발효가 같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애네어로빅 프로세스에서는 거의 혐기성 발효만 일어나지요. 그 결과는 내가 판단하기엔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시트러스의 느낌이 대체로 없습니다. 구연산 형성이 잘 안 되거나 손실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산미도 감소합니다. 사견으로는 아마도 사과산의 손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대신 황도나 열대과일처럼 산도가 낮고 달달한 과일 느낌이 두드러지고, 생강이나 시나몬 같은 스파이시한 특성도 강해집니다. 본래 커피체리가 가졌을 플라워리한 느낌도 클로브(정향)처럼 스파이시한 방향 또는 마르고 커다란 꽃의 (다 피고 시들어버린 꽃의) 느낌에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품종향과 떼루아 느낌이 많이 감퇴합니다. 과발효된 뉘앙스가 쉽게 생기고, 관련하여 현저한 부정적인 노트(된장이나 청국장 같은)가 거의 예외 없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애네어로빅에 대한 나의 사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멉니다. 싸면 모르겠는데 비싸기까지 합니다. 품종향과 떼루아를 날려버리는 커피에 대해 왜 많은 돈을 줘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저 그런 품종에 그저 그런 지역의 커피라면 적극적으로 해볼 만 합니다. 문제는 이제 게이샤 같은 고급 품종 + 좋은 지역 커피에도 이런 발효를 적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품종향과 떼루아가 많이 날아가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좋은 품종, 좋은 지역 커피에 하는 게 더 결과물이 맛있긴 합니다만... 와인에서 비롯된 가공방식이라는 걸 감안하면 왜 피노 누아나 리슬링이 고급 품종 취급받는지, 그런 품종들이 어떤 방식으로 양조되고 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애네어로빅은 가공하는 데 돈이 많이 들어가서 커머셜 커피엔 영 적용할 만한 방식이 못 되기도 합니다.

 

 장점이라면 일단 향기의 강도가 강하다는 겁니다. 이는 컵노트를 자세히 적지 않고 향기의 강도 등을 우선적으로 적는 비즈니스 커핑 폼에서 좋은 평가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어택이 강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가공법과 1:1 비교를 하면 좋게 느끼기 쉽습니다. 따로 마시면 향기의 퀄리티 좋은 게 좋지만 같이 마시면 강도 높은 게 이깁니다. 그 외 차갑게 마실 때 퍼포먼스가 좋습니다. 차가운 커피를 선호하시는 분은 애네어로빅에 대해 긍정적이기 쉬울 걸로 생각합니다. 애네어로빅 특유의 부정적인 느낌이 차가운 온도에서는 덜 느껴집니다


 

 한편으로 카보닉 마세라시용(CM)이라는 방식도 있습니다. 영어식으로 읽으면 카보닉 메서레이션입니다. 탄산 침용. 와인 좀 드신 분들은 읽자마자 뭔지 알 겁니다. 보졸레누보 만드는 그 방식입니다. 커피체리에 카보닉 마세라시용을 적용하면 사실 양조개념으로 보면 그냥 무산소발효인데, 좀 더 철저한 무산소발효입니다. 현재 커피업계에서 카보닉 마세라시용 프로세싱은 따로 표기되고 있는데, 아무래도 좀 더 비싼 가공법이라 그런 거 같습니다.

 


 

9) 이스트 첨가 발효 커피

 

 상기하였듯 나는 애네어로빅 퍼멘테이션 프로세싱에 부정적입니다. 가공법 자체는 한 개성으로 긍정적인 면이 있다 쳐도 고급 커피에 적용하기엔 품종향과 떼루아를 너무 많이 잃어버리게 하는 동시에, 커머셜한 커피에 적용하기엔 가공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입니다.

 

 이런데 이번에 기술할 이스트 첨가 발효 커피는 어쩌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웃풋에 비해 비용이 싸거든요. 최고급 커피에 적용하기엔 여전히 부적절하다 생각합니다만.


 

 커피는 발효과정에서 커피에 있는 본래의 천연 효모가 기능합니다. 빵을 굽거나 와인을 담글 때도 따로 이스트를 쓰지 않아도 본래의 천연 효모만으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공장제 이스트를 첨가하는데, 그 쪽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쉽기 때문입니다. 커피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쓸 만한 커피용 이스트가 유통되고 있는지는 모르겠고요. 물론 인공적인 이스트를 첨가할 때 잃는 개성을 생각한다면, 최고급 커피에는 이스트 첨가를 절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호품은 일정 품질 이상에서는 개성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와인과 달리 커피는 알콜생성으로 인해 알콜에 약한 이스트가 일찍 죽어버리는 문제 같은 것도 없지요.

 

 이스트 발효 커피가 아직 일반적이지는 않습니다. 나도 접해본 게 매우 제한적입니다. 접해본 결과물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단 애네어로빅이 유행 중이라, 이스트 발효한 커피들은 애네어로빅도 적용하는 경우가 많기도 합니다. 무언가 손을 많이 댄 커피가 많이 나오고 있는 중입니다. 게다가 싸게 만들 수 있는 방식임에도 아직은 실험적인 단계라 비쌉니다.

 

 그래도 나는 아마 앞으로 언젠가는 커피 가공에 상업용 이스트를 많이 사용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건 그저그런 맛을 내는, 그저그런 떼루아 커피의 품질을 균등하게 올릴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계 대부분의 커피 생두는 그저그런 품질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 비해 현대의 커피 생두 품질이 많이 올라갔다고는 하지만, 중남미에서 주로 티피카와 부르봉 키우던 시절엔 가공이 문제였지 품종은 지금보다 훨씬 좋았지요.

 

 종합적으로 요새는 기존에 없던 생두 가공법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와인이 옛날에 지나왔던 변화를 커피가 뒤늦게 따라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론 최고급 생두에 CM이나 인공 이스트 첨가를 하고 있는 걸 보면, 아직 꽤 발전과정을 거쳐야겠구나 싶긴 합니다.

두서없는 커피 이야기

식이 2020. 5. 13. 03:30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youtu.be/srEz0awS--U

 

 

 커피 애호가가 아닌, 만인의 음료인 커피에 대한 대중적(?) 이야기입니다. 커피라는 게 용어가 많은 분야라 쉽게 적으려 해도 가독이 어려운 부분이 많을 것입니다만, 별로 어려운 내용들은 아닙니다. 모르는 단어는 일단 스킵하고 보시면 됩니다.

 

 사견이 듬뿍 들어간 글입니다. 틀린 내용 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니 자유롭게 의견 및 보완해주셔도 좋겠습니다.

 



 

1) 다른 첨가물이 없을 경우 브루잉한 커피(추출을 마친 커피)은 세 가지입니다. 신맛, 쓴맛, 지방맛. (최근의 연구를 참조하면) 사람의 미각은 6가지 맛을 느끼는데, 커피에는 그 중 단맛과 짠맛과 감칠맛은 빠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외 커피의 바디감을 구성하는 감각은 주로 떫은 느낌의 촉각입니다.

 

 커피의 감각적인 부분 중 가장 많은 부분은 향기, 즉 후각에 해당합니다. 설탕 등을 넣지 않은 커피에서 달콤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후각적인 감각입니다. 생두에는 꽤 많은 당분이 들어있긴 합니다만, 대부분은 다당류고 단당 또는 이당류는 로스트 과정에서 크게 손실되며, 아무리 약하게 볶더라도 원두에 남아있는 단당/이당은 추출 후에 의미 있는 단맛을 낼 정도의 양이 아닙니다.



 

2) 인스턴트커피를 좋아하는 취향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한국식 인스턴트 커피믹스는 세계적으로 인기가 괜찮은 편이고, 입맛은 각자의 개성입니다. 물론 설탕을 넣은 카페라떼나 플랫화이트, 카페오레 등을 인스턴트 커피믹스보다 맛있게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만, 아무래도 노동력과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들어갑니다.

 



3) 커피는 커피나무라는 꼭두서니과 나무의 열매 안에 들어간 씨앗을 말린 다음, 익히고 가루내서 물로 추출(브루잉)한 것입니다. 인스턴트커피는 추출이 끝난 커피를 동결건조한 거고요. 커피나무의 열매를 커피체리라 부르긴 하지만 실제 체리와는 별 관련이 없고, 커피 씨앗을 콩(/Bean)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실제 콩하고는 별 관련이 없습니다.

 

 익히지 않은, 마른 상태의 커피콩을 생두(Green Bean)라 합니다. 생두는 볶기 시작하면 노란 색으로 변하다가 점차 갈색을 띠고, 이후 많이 볶을수록 검어집니다. 다 볶은 커피콩을 원두라 하며, 많이 볶지 않은 원두는 신맛이 강하고 향기 성분이 화사합니다. 이후 더 볶으면 신맛이 줄고 고유의 향기 성분은 감소하지만 달콤한 향과 맛이 더 생겨나고요. 동시에 쓴맛도 강해집니다. 이후 더 많이 볶으면 신맛은 거의 사라지고 쓴맛이 많이 증가합니다.



 

4) 커피의 볶은 정도(배전도)를 표현하는 방식이 일본과 미국이 다릅니다. 이건 커피를 어느 정도 잘 아는 사람한테도 혼동을 줄 있습니다. 정확하고 표준적인 표현법이 있다고 하긴 어렵습니다만, 대략 낮은 로스트(볶은) 정도부터

 

 일본식은

라이트 - 시나몬 - 미디엄 - 하이 - 시티 - 풀시티 - 프렌치 - 이탈리안 입니다.


 미국식은

익스트리밀리 라이트 - 베리 라이트 - 라이트 - 미디엄 라이트 - 미디엄 - 미디엄 다크 - 다크 - 베리 다크 - (익스트림 다크) 입니다.

 

 정리하자면

 

라이트() = 익스트리밀리 라이트()

미디엄() = 라이트()

시티() = 미디엄()

 

 가 되는데, 혼동이 안 될 수가 없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부터 일본식 표현을 많이 써 왔고, 일본식 표현이 더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면이 있습니다만, 근래 SCAA같은 미국 협회의 영향을 우리나라도 많이 받다 보니 미국식 표기를 하는 사람/카페/회사도 늘어나고 있긴 합니다. 게다가 저런 SCAA기준 말고 또 다른 기준으로 라이트, 미디엄이니 약배전이니 등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도 요새는 많습니다. 또한 미국은 그 나라 자체적으로도 로스트 단계를 부르는 기준이 통일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참조해야 하는, 그나마 통일된 기준이 아그트론(Agtron) 넘버입니다. 한중일이 같은 한자를 다 다르게는 읽어도, 뜻은 대략 통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까요. 아그트론 넘버는 커피의 볶은 정도를 판별하는 색도계로 SCAA가 제시하는 가장 표준적인 것입니다.

 

 아그트론은 숫자가 높을수록 밝고(덜 볶은) 거고, 낮을수록 어두운(많이 볶은) 겁니다. 일본식 볶음 정도에 대응하는 아그트론 넘버는(NCS학습모듈 기준) 다음과 같습니다. 라이트(90~95) - 시나몬(80~90) - 미디엄(70~80) - 하이(60~70) - 시티(50~60) - 풀시티(40~50) - 프렌치(30~40) - 이탈리안 (20~30).

 

 그러니까 어떤 원두 판매처에서 아그트론 넘버 55 정도의 미디엄 볶음입니다. 라고 한다면 그건 미국식 표현이고, 일본식으로는 시티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그런데 실제 원두를 볶다 보면 라이트나 시나몬로스트는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고, 1차팝 절정기 쯤에 배출한 걸 약배전이나 미디엄이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면 실제 아그트론은 통상 65~60 정도가 됩니다. 그리고 하이는 1차팝 이후 휴지기로 보기도 하는데, 이러면 아그트론이 55~50 정도가 되지요. 이렇게 치면 시티는 기준점이 43~45 정도. 풀시티는 40+. 그래서 실제로는 미디엄-하이-시티 표현에 혼란이 많은 상황입니다.)

 

 참고로 앞으로 본문에서 쓰는 모든 로스트 기준 표현은 일본식입니다. 나는 일본식 로스팅 표현법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5) 커피콩을 볶다 보면 2번 터집니다. (Pop) 또는 크랙(Clack)이라고 하는데, 이 팝이 커피콩에 주는 영향이 매우 큽니다. 팝은 반드시 일어나는 건 아닙니다만, 웬만하면 일어납니다.

 

 대략 라이트나 시나몬은 1팝을 아직 (거의) 안 시킨 거고, 1팝을 시킨 상태가 미디엄에서 하이, 그리고 대략 시티부터는 2팝을 시키기 시작한 걸로 여겨도 됩니다. 그래서 시나몬과 미디엄, 하이와 시티는 차이가 꽤 있고 시티와 풀시티도 실제로는 차이가 꽤 있습니다. 2차 크랙이 시작되는 정도에서 배출하면(로스팅을 마치면) 대략 시티가 되고, 2차 크랙이 진행되고 배출하면 풀시티 이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정리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대략적인 정리입니다.)

 

 라이트나 시나몬 로스트 커피는 적어도 대중적으로는 잘 안 마십니다. 팝이 전혀 안 터진 원두를 실제 핸드밀(손으로 돌려서 원두를 가는 도구)로 갈아보면 잘 안 갈립니다. 힘을 꽉꽉 줘서 돌리면 아예 안 갈리는 건 아닙니다만, 힘이 많이 들어가긴 합니다.

 

 그러니까 근래 한국에서 보통 마시는 원두커피는 4단계 로스트 정도입니다. 1팝을 시킨 미디엄 및 하이, 2팝을 시키기 시작한 시티, 2팝을 충분히 시킨 풀시티. 이렇게요.

 

 미디엄이나 하이로스팅에서는 커피가 신맛이 꽤 있습니다. 그리고 핸드밀로 갈아보면 상대적으로 단단합니다. 대조적으로 풀시티 정도로 볶은 원두는 신맛은 미미하거나 거의 없고, 핸드밀로 갈면 쉽게 갈립니다. 시티는 그 중간 정도지요.

 

 나는 주관적으로 미디엄은 가볍게/약하게/적당히 약하게 볶았다. 하이는 스페셜티(고급커피) 기준 표준적으로/조금 많이 볶았다. 시티는 많이/충분히 볶았다. 풀시티는 강하게 볶았다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커피를 많이 안 드셔보신 분들이 생각하는 블랙커피 풍미는 풀시티 이상 볶음에 가깝습니다. 생두는 조금 볶을수록 고유한 특성을 많이 드러내면서 신맛이 강한 반면, 많이 볶을수록 볶아서 생긴 표준적인 풍미가 나고 신맛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6) 이브리크(터키식 커피)나 커핑 볼을 사용한 커핑을 제외한 브루잉된 커피는 커피가루를 걸러주는 필터를 통과합니다. 그런데 이 필터의 소재에 따라 브루잉된 커피의 특성도 달라집니다.

 

 필터의 소재는 크게 3가지입니다. 종이, , 금속입니다.

 

 종이 필터와 천/금속 필터는 필터링 성능이 다릅니다. 종이 필터 쪽이 여과능력이 더 좋지요. 그래서 종이 필터를 통과한 커피는 커피의 오일 성분이 필터링됩니다. 커피콩도 식물의 종자라 기름기가 꽤 있는데, 종이 필터를 통과한 커피는 기름기가 없는 커피가 된단 말이지요. 그리고 여과력이 좋으니까 미세한 커피분말도 다 걸러줍니다. 결과적으로 깔끔한 커피가 됩니다.

 

 그런데 종이 필터는 종이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커피필터지가 우러난 맛은 떫은 맛 쪽인데, 취향에 따라서는 이 떫은맛이 커피의 구조감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기도 합니다만, 나는 꽤 싫어하는 편입니다. 이 종이 필터맛은 미리 뜨거운 물로 필터지를 헹궈주는 린싱을 하면 많이 줄어들긴 합니다. 그리고 갈색 종이필터보다는 표백된 흰색 종이필터가 종이맛이 덜한데, 흰색 종이필터가 미세하게 비싸기도 하고, 표백을 하면 나쁘다는 오해가 있기도 하고, 커피필터지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해서 시중에는 갈색 필터가 더 많습니다. 실제 커피필터지의 표백은 인체에 무해합니다.

 

 대조적으로 천 필터나 금속 필터는 오일을 걸러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천이나 금속 필터만 통과한 커피는 기름기가 남아있는 커피가 됩니다. 기름기가 있는 커피와 없는 커피는 맛, , 바디가 다 다릅니다. 그리고 여과능력 차이가 있으니까 미세한 커피가루가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촘촘한 천 필터는 미분을 잘 잡아주는데, 금속 필터는 영락없이 미분이 통과합니다. 이 미분도 맛 등에 영향을 꽤 줍니다.

 

 카누 같은 인스턴트 원두커피는 95% 인스턴트커피에 5% 정도의 원두 미분을 넣은 겁니다. 그러니까 카누를 좋아하는 분은 미분이 좀 있는 커피도 좋아할 확률이 높습니다. 미분은 물속에 혼합될 뿐, 절대 용해되지 않습니다.

 

 추출법에 따라 어떤 소재의 필터를 쓰느냐를 정리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에스프레소 : 금속

핸드드립 : 주로 종이. ()이나 금속망을 쓰기도 합니다.

드립식 커피메이커 : 종이, , 금속 모두 사용

프렌치프레스 : 금속

더치(콜드브루) : 종이, , 금속 모두 사용

모카포트 : 금속 (종이 필터 적용 가능)

에어로프레스 : 종이 (금속 필터 적용하는 경우도 많음)

사이폰 : (종이 필터 적용 가능)

파드 : 종이

캡슐 : 원리상 금속

티백 : 종이




7) 커피에 설탕이나 시럽을 넣어 마시는 취향은 존중받아야합니다.

 

 에스프레소의 원조인 이탈리아에서는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어 마시는 게 표준입니다. 다만 설탕을 데미타세(에스프레소 잔)에 넣기만 하고, 젓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첫맛은 쓰고 끝 맛은 매우 달게 마십니다.

 



8) 커피는 많은 단점을 가진 음료입니다.

 

 큰 단점 중 하나는 커피는 결점두의 영향이 너무 크다는 겁니다. 한 잔의 커피에 상태 많이 나쁜 콩 한두 개만 섞여도 티가 납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로 팔리는 원두에 들어가는 에티오피아나 인도네시아 생두, 완벽하게 핸드픽하려고 보면 이걸 대체 어떻게 마실 수 있는 건가 싶은 수준일 때도 꽤 많습니다. 결점두가 너무 많아서 다 골라내면 남는 게 얼마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딱 봐도 심각한 결점두만 골라내고 미미한 결점두는 그냥 마시게 됩니다.

 

 결점두에서 오는 나쁜 향미를 커버하는 방식은 정말 다양합니다. 사실 그게 상업적인 커피의 첫 번째 핵심일지도 모릅니다. 숙련된 커피 로스터는 그저 그런 생두로도 제법 마실만한 커피를 만들어냅니다.

 

 그래도 나는 단점이 있는 커피는 2차팝을 시킨 후 스팀밀크와 시럽을 쓰는 커피를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쪽이 더 맛있어집니다.

 



9) 커피는 감성이라 하는데요.

 

 핸드드립 감성으로 한다고 동드리퍼나 동드립포트 같은 거 장만하는 건 어지간해서는 커피맛에 도움이 되기 어렵습니다. 구리는 열전도율이 높습니다. 온도변화가 빠르고 빨리 식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프라이팬 소재로는 좋지만, 드리퍼 소재로는 별로 안 좋습니다. 저렴한 플라스틱 드리퍼 쪽이 어지간해선 맛이 더 좋게 나옵니다. 플라스틱은 열전도율이 낮기 때문입니다.

 

 감성은 커피 브루잉/제조 끝나고 즐겨도 됩니다. 커피도 요리입니다. 맛있는 음식 만드는 건 다분히 과학적인 영역입니다.



 

10) 커피를 추출할 때는 대략 다음과 같은 순서로 풍미가 추출됩니다. 신맛 - 단맛(실제론 단향) - 쓴맛. 그러니까 커피를 너무 길게 추출하면 쓴맛이 더 많은 커피가 됩니다. 재추출하면 안 되는 것도 그래서고요. 다만 커피추출이 길어지면 묽은 커피가 되기 때문에, 농도 차이로 쓴맛을 덜 느낄 수는 있습니다. 농도를 맞춰야 정확하게 비교할 수 있습니다.

 



11)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여기서도 이야기하자면 커피믹스를 드실 때는, 믹스 포장으로 커피를 젓지 않는 게 좋습니다. 믹스 포장에는 이런저런 인쇄가 되어있는데, 그 인쇄에 사용한 성분이 용출될 수 있습니다. 그건 먹을 게 아니지요.

 



12) 베리에이션 커피 트렌드는 라떼아트입니다. 라떼아트는 카페라떼/카푸치노의 전반적인 스타일에 영향을 많이 줬습니다.

 

 라떼아트가 잘 되려면 좀 낮은 온도의 벨벳밀크가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라떼아트가 잘 되는 우유거품은 거품의 크기가 곱고 미세해서, 표면이 벨벳처럼 윤이 나야합니다. 그리고 온도가 좀 낮아야 해요. 여기에 색이 진한 커피를 써야 라떼아트가 근사해 보입니다.

 

 이렇게 벨벳밀크를 사용한 카페라떼의 텍스춰는 결코 나쁘지 않습니다만, 모두의 취향에 들어맞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 크리미하고 풍성한 거품과 더 뜨거운 온도를 좋아합니다. 라떼아트의 유행 이후 카푸치노 위에 시나몬가루를 뿌려주는 케이스도 줄어들었고요. 보통은 말하면 뿌려주긴 합니다만.

 




13) 카페라떼와 카푸치노의 차이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통상 둘 다 파는 곳은 커피 비율이 더 많으면 카페라떼, 스팀밀크 비율이 더 높으면 카푸치노라 합니다. 그리고 카페라떼보다 커피 비율이 더 높으면 플랫 화이트라 합니다. 카페라떼를 중간으로 보고, 우유가 더 많이 들어간 건 카푸치노, 우유가 덜 들어간 건 플랫 화이트라 생각하면 됩니다.

 



14) 마끼아또는 이탈리아어로 점을 찍는다는 뜻입니다.

 

 일반 카페라떼는 카페라떼 잔에 에스프레소를 먼저 받은 후, 스팀밀크를 부어 만듭니다. 결과적으로 우유와 혼합된 에스프레소 위에 우유거품이 얹어지게 됩니다.

 

 라떼 마끼아또는 반대입니다. 먼저 스팀밀크를 마끼아또 잔에 받고, 그 위에 에스프레소를 붓습니다. 그러면 우유거품을 뚫고 에스프레소가 안으로 들어간 후, 우유와 우유거품 사이에 자리잡습니다. 그래서 우유거품에는 에스프레소가 들어간 점이 남습니다. 라떼 마끼아또는 여기서 믹스하지 않고 그냥 층이 있는 걸 마십니다.

 

 잘 알려진 카라멜 마끼아또는 이 변형판입니다. 원조인 스타벅스 카라멜 마끼아또 레시피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마끼아또 잔에 바닐라향 시럽을 담습니다. 그 위에 스팀밀크를 담습니다. (우유와 바닐라향 시럽이 혼합됩니다.) 그 위에 에스프레소를 붓습니다. 우유와 우유거품 사이에 에스프레소가 자리잡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카라멜소스를 드리즐합니다. 즉 우유거품 위에 카라멜소스를 모양내 뿌려줘서 완성합니다

 



15) 모카라는 말을 커피에서 많이 쓰는데, 뜻이 여러 가지입니다.

 

 일단 본래 모카는 예맨이라는 나라의 서남부에 있는 항구도시 이름입니다. 영어 표기는 Mocha도 쓰고 Moka도 씁니다. 15~18세기에는 홍해에 접한 이 항구가 예맨 최대의 항구였고, 당시엔 세계 최대의 커피 거래장이 이 모카였습니다.

 

 이 모카 항을 통해 당시 거래되던 커피를 모카커피라 불렀는데, 모카가 세계 최대의 커피거래소였던 시간이 길었다 보니 커피를 그냥 모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런 용례로 사용되는 말이 모카포트(Moka Pot)나 모카빵입니다. 나는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의 모카도 이 뜻으로 사용된 걸로 판단합니다.

 

 그리고 예맨의 커피에는 모카라는 이름이 곧잘 붙습니다. 예맨 모카 마타리가 대표적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세계 3대 커피라는 이야기를 듣고, 실제 가격도 꽤 비싼데... 현대적인 커피 평가 기준으로 보면 일반적인 예맨 모카 마타리를 좋은 원두라 하긴 어렵습니다. 대신 개성적이고, 매력이 있긴 합니다. 또한 에티오피아의 하라(:Harrar)’ 지역 커피나 옛 지명 시다모(:Sidamo)’지역의 커피에도 모카라는 이름이 붙곤 합니다.


 그 외 카페모카라는 베리에이션 커피가 있는데 이건 위의 예맨 모카와는 전혀 상관없는, 카페라떼에 초콜렛 시럽/소스 들어간 베리에이션 커피입니다. 그러니까 모카시럽이니 모카소스니 이런 건 초콜렛 시럽/소스입니다. 어쩌다 이리 되었느냐 하면 예맨 모카커피에서 초콜렛 향이 나는 경향이 있어서 그리 되었다는데... 여하튼 커피에선 초콜렛 시럽/소스를 모카라고 표현을 합니다.

 

 또 모카라는 품종들도 있습니다. 일단 Mocca라는 품종이 있는데, 이건 부르봉(Bourbon:버번)의 변종입니다. 몇 년 전 생두 최고가 기록을 세웠던 엘 인헤르토의 판테레온 마이크로 모카가 그 품종이었지요. 그리고 에티오피아 하라 지역에서 키우는 Mocha라는 품종이 있다고 합니다.



 

16) 인스턴트커피는 참 좋은 발명품입니다. 그렇지만 인스턴트커피는 어쩔 수 없이 맛이 없습니다. 프림이건 크림이건 우유건 설탕이건 다 뺄 때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커피 원두에 직접 손대면 귀찮아지는 게 하나 둘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나는 캡슐 커피가 괜찮다고 생각하고요. 그 중 네스프레소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근래 나온 버츄오 말고 일반 캡슐이 좋다고 생각하고요. 네스프레소 머신 용 호환 캡슐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호환 캡슐을 구하기도 쉽습니다.

 

 네스프레소를 접함에 있어 가장 주의하고 싶은 건 룽고는 절대 비추라는 겁니다. 내 생각엔 그건 시음도 안 하는 게 좋습니다. 머신을 구매한 후라면 모를까, 머신을 들이기 전에 룽고 마셔보면 인상이 매우 나빠질 확률이 높습니다.

 

 좋은 캡슐을 사용할 경우, 네스프레소는 참으로 훌륭한 수준까지는 아니라도 그럭저럭 맛있게 마실만한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줍니다. 머신의 저렴한 가격과 관리/추출의 용이함을 생각해보면 강력추천할 만 한데, 단점은 많이 마시면 캡슐 값이 은근히 제법 들어간다는 겁니다.

 




17) 원두로 직접 집에서 커피를 해 드시고 싶다면, 가장 중요한 건 집에 핸드밀이건 전동밀이건 자체적으로 밀이 포함된 전자동 기계건, 여하튼 커피를 원두상태로 사서 갈아먹을 수 있는 장비를 갖춰야 한다는 겁니다. 절구나 믹서로 가는 건 안 됩니다. 일정한 굵기로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커피 원두는 추출 방식에 맞춰 일정한 굵기로 갈아야 합니다.

 

 갈지 않은 원두의 보존성도 충분히 나쁩니다만, 갈은 원두의 보존성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카페 매장에서도 원두를 미리 갈아서 쓰는 건 절대엄금입니다. 편하려고 그렇게 하다간 금방 망합니다. 엄청난 속도로 증식하던 카페베네가 순식간에 망한 이유 중 하나가, 그런 식으로 무개념하게 하는 매장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핸드밀로 커피 가는 건 꽤 귀찮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전동밀에 비해 가성비가 좋고, 커피를 매일 한두잔만 마시는 분에겐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추출 전에 원두의 단단한 정도를 감각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것도 한 장점이고요.

 

 전동밀은 편한데, 좋은 전동밀로 갈수록 많이 비싸집니다. 단순히 커피를 가는 데 돈을 많이 투자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아주 본격적으로 커피를 드시는 분이 아니면 가성비가 좋다고 하긴 어렵지요.

 

 원두를 넣으면 자동으로 드립커피나 에스프레소가 추출되는 가정용 머신들이 있는데, 가정 내 커피소비량이 많으면 나쁘지 않습니다. 커피소비량이 적으면 캡슐이 낫고요. 캡슐이 좋은 게, 갈아놓은 원두지만 캡슐 안에 넣어뒀기 때문에 산패에 어느 정도는 저항력이 있습니다.




18) 커피를 마실 때 가장 유의해야 할 것 중 하나는, 갓 볶은 커피는 맛이 없다는 겁니다. 이건 실제 카페를 차리는 사람들도 잘 모르고 차려서 당황하는 경우까지 있다는데, 원리를 이해해야합니다.

 

 볶은 지 얼마 안 되는 커피를 갈아서 핸드드립을 해 보면 거품이 물을 붓는 대로 심하게 부글부글 올라옵니다. 볶은 정도가 강한 커피일수록 그렇지요. 이런 상태의 원두를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뽑으면 크레마가 엄청나게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맛은 없습니다.

 

 볶은 커피는 조직이 부풀어 오르면서 안에 이산화탄소 등의 가스 성분이 많이 찬 형태가 됩니다. 이 가스가 커피빵이나 과한 크레마를 만드는 주 원인인데요. 가스가 빠지지 않은 상태로 커피를 추출하면, 가스 때문에 커피 알갱이에서 물이 커피 성분을 잘 용출하지 못하게 됩니다. 기체가 있는 곳엔 물이 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갓볶은 원두를 봉투 안에 밀봉해두면 원두에서 가스가 빠지면서 부풀어 오릅니다. 이렇게 가스를 빼는 과정을 디개싱이라 하고요. 디개싱에 걸리는 시간은 원두마다 다르고 각자 의견도 다릅니다만, 보통 3~7일 정도 걸린다고 생각들 하시는 것 같습니다.

 



19) 고급 커피의 트렌드는 하리오 V60같은 드리퍼로 추출한 약배전 새콤 커피입니다. 내가 주로 마시는 커피도 이 쪽이고요. 그러나 나는 남들에게 어지간해선 내가 즐겨 마시는 타입의 커피를 권하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신 커피를 싫어합니다. 커피 좀 드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과테말라 안티구아 시티를 에스프레소 추출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든 정도도 시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요.

 

 한국인들은 원래 신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긴 합니다. 평균적인 입맛이 그렇습니다. 김치가 피크를 지나 시어지면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신 것 = 나쁜 것으로 관념이 생긴 것일지, 평소 음식에 향기가 풍부하거나 섬세한 경향이 없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우리나라 커피 시장은 신 커피(약볶음 스페셜티)와 안 신 커피(보다 커머셜한, 베리에이션 위주의 커피)의 이분화가 어느 정도 되어 있고, 시장 내 점유 비율은 안 신 커피가 우월합니다. 문제는 스페셜티 애호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신 커피를 좋아한다는 겁니다. 이건 스테이크 애호가들이 남들 다 웰던으로 소고기 구워먹던 시절에도 레어-미디엄레어 먹던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신 커피를 보급하려는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20)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대중화와 함께 평균적인 원두의 볶은 정도는 내려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프렌치나 이탈리안 정도로 볶은 원두도 흔했지만, 요새는 많이 볶아봐야 풀시티 정도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시티 정도로 내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나는 평소에 마시는 건 미디엄 수준으로 볶은 원두가 좋지만, 이탈리안 수준으로 볶은 원두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요샌 진짜 강배전 원두는 잘 없습니다. 이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큰 요인은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생두의 품질이 좋아졌다는 겁니다. 세계 시장 전반의 생두 품질이 올라간 덕도 있을 거라 생각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좋은 생두 수입에 힘쓴 덕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프렌치 이상으로 볶으면 생두의 특성이 많이 사라지기 때문에, 낮은 품질의 생두에 적용하기 쉬운 게 아주 강한 볶음입니다.

 

 또한 로스터 입장에서는 강배전을 잘 하는 게 쉽진 않습니다. 일단 강배전을 하면 일부분만 타버리는 티핑이나 치핑이 잘 발생합니다. 볶는 실력이 좋으면 줄일 수는 있지만, 많이 볶을수록 결점두가 잘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결점두 중 쉘빈도 나쁜 맛을 내게 됩니다. 티핑을 다 골라낼 필요는 없지만, 저렴한 생두에 주로 적용하는 게 강배전인데 인건비도 비싸진 시대에 핸드픽이 늘어나는 건 효율이 안 나오는 행위입니다.


 많이 볶은 원두는 신선도를 유지하는 시간도 짧습니다. 약배전과 강배전 원두를 비교해보면, 강배전 원두가 좀 더 빨리 상하는 감이 있습니다.

 

 그 외 사견으로는 담배가 한 요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00년대 초중반만 해도 담배를 피우면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요새는 카페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아예 금지되어있지요. 나는 흡연자가 아니기 때문에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흡연자들은 강하게 볶은 커피를 마시면서 담배를 피우는 걸 즐기는 경향이 강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젠 담배를 피우면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이 또한 커피의 약볶음 추세의 한 요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21) 더치커피(Dutch Coffee)와 콜드브루(Coldbrew)는 유의어입니다.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구분을 할 때는 콜드브루는 찬 물에 원두가루를 장시간 우려낸 것, 더치커피는 더치커피 기구로 장시간 소량의 찬물을 드립해 만든 것을 의미하긴 합니다. 그런데 더치커피는 일본식 조어에 가까워서, 영어로는 워터드립(Water Drip) 정도로 표현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콜드브루가 더 넓은 범주의 표현이며, 더치커피 또는 워터드립은 콜드브루의 한 종류라 할 수 있겠습니다.

 

 콜드브루는 특유의 맛이 있는데, 찬물의 특성 상 커피 원두의 성분을 충분히 용출시키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가지는 최대 장점이, 상태가 좀 나쁜 원두를 사용하기 쉽다는 겁니다. 핸드드립을 해 마시기엔 신선도가 좀 떨어지는 올드크롭 생두나, 로스팅한지 조금 지나서 맛있게 마실 시기는 지난, 그러나 산패되었다고 하기엔 애매한 원두, 또는 로스팅이 좀 실패한 원두를 비교적 맛있게 마실 수 있는 방식입니다. 비유하자면 스테이크용 고기 샀는데 조금 오래 되서 스테이크 해먹기 뭐하면 양념 재우거나 국 끓여먹는다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한동안 콜드브루는 카페인이 없다는 오해나 홍보가 있었습니다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콜드브루도 카페인이 꽤 많습니다. 카페인이 없길 기대하면서 콜드브루를 마시면 안 됩니다. 카페인을 피하고 싶으면 디카페인 커피를 마셔야 합니다.

 

 콜드브루 커피의 최대 문제는 오염입니다. 일반적인 커피는 뜨거운 물에 추출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살균됩니다. 그렇지만 콜드브루 커피는 추출과정을 거치면서 오염되기 비교적 쉽습니다. 그리고 차게 장시간 보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찬 온도에서도 세균은 번식합니다. 그러니까 콜드브루 커피는 철저하게 관리/보관되어야 합니다.

 



22) 커피는 카페인을 가진 대표적인 식물/음료입니다. 카페인에 대한 내성은 각자 다릅니다만, 커피를 좋아하면서 카페인에 약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루에 마시는 카페인 양을 신중히 계산하면서 섭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카페인을 가진 식물은 대략 커피, , 카카오, 콜라, 과라나, 마테 정도입니다. 이 중 차는 차나무(Camelia Sinensis)Camelia Taliensis라는 (중국어로는 大理茶) 차나무의 친족으로 만든 본래의 (:)’만 해당합니다. 그러니까 녹차, 백차, 황차, 오룡차(:우롱차/청차), 홍차, 흑차 및 보이차만이 해당됩니다. 흔한 오해 중 하나로 장기간 숙성된 보이차/흑차/백차는 카페인이 줄어든다는 통념이 있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카페인은 그냥 둔다고 분해되지 않습니다.

 

 초콜렛은 카페인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거기 카페인이 있다는 걸 망각하곤 합니다. 물론 카페인 성분은 카카오매스 같은 것에 들어있기 때문에, 카카오매스 함량이 낮은 밀크초콜렛 계열은 카페인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카페인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무시할 정도는 아니며, 다크초콜렛은 카페인이 꽤 많습니다. 초콜렛이 들어간 모든 음식물은 카페인이 들어가 있습니다.

 

 콜라는 본래 목본성 식물 이름입니다. 코카콜라는 처음엔 코카 잎과 콜라 열매로 만드는 음료라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고요. 그런데 코카 잎이 건강에 나쁘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그건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지요. 콜라 열매는 계속 사용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최근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어서요. 여하튼 콜라 열매에는 카페인이 들어가 있는데, 근래 출시되는 콜라에 콜라열매를 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카페인은 들어가 있습니다.

 

 과라나는 브라질 원산의 식물로 씨앗에 카페인이 많습니다. 과라나 음료는 주로 브라질과 홋카이도에서 소비된다고 합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들도 과라나에서 비롯된 카페인은 많이 섭취합니다. 핫식스, 레드불, 몬스터 같은 에너지음료에 과라나 추출 카페인을 쓰거든요.

 

 마테는 차처럼 잎을 우려마시는 식물입니다. 남아메리카에서 많이 마시는데, 카페인이 없다는 이야기도 나돕니다만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마테라고는 잘 안 부르고, 마테차라고 주로 부릅니다. 국내에 수입되는 건 갈아놓은 잎도 있고, 티백도 있고, 인스턴트도 있고, PET음료도 있습니다. 맛은 담배 맛 비슷한데 나는 비흡연자이지만 마테는 그럭저럭 맛있는 음료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스턴트 마테는 찬 물에도 잘 녹습니다.

 

 의약품에도 카페인은 많이 쓰입니다. 카페인 정제도 있고, 펜잘이나 게보린 같은 진통제에도 카페인이 들어가 있습니다.

 



23) 디카페인 커피는, 커피는 좋아하지만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좋은 음료입니다. 다만 카페인 또는 커피에 매우 민감한 사람들은 디카페인 커피를 마셔도 수면에 지장이 있다고들 합니다.

 

 디카페인 커피는 일반적인 커피에 비해 풍미가 뒤떨어지고, 가격은 더 비쌉니다. 카페인을 빼는 공정은 어떻게 해도 커피의 풍미에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공정이 추가되니까 가격도 올라가고요. 심지어 인체에 유해하다는 주장도 있는데, 옛날 방식의 공정이라면 모를까 요새 공정은 건강에 해롭다는 근거가 없습니다.

 

 디카페인 커피가 가지는 장점도 있긴 합니다. 디카페인 커피는 가공 과정에서 카페인 외에 오일 성분도 일부 잃어버립니다. 그러니까 그 결과 일반 커피보다 오일이 적은 커피가 됩니다. 프렌치프레스 같은 간편한 툴로 브루잉해도 그다지 오일리하지 않은 커피가 나온단 말이지요. 또한 산패에도 일반 원두보다 강한 편입니다.

 


 

24) 커피에 넣을 수 있는 밀크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일단 예전부터 많이 쓰던 프림(크리머)은 팜유를 주성분으로 한 식물성 크림입니다. 과거에 비해 요새는 프리마를 직접 사서 먹는 사람은 꽤 줄어들었지만, 나름대로 맛있고 싸고 보존성이 좋습니다. 사실 여전히 사람들은 프림을 많이 먹고 있는데, 일단 맥심이나 맥스웰 하우스 커피믹스에 프리마가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냥 우유를 넣는 건 간편하면서도 좋은 선택입니다. 인스턴트 다방커피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뜨거운 커피엔 적당히 데운 우유가 어울립니다. 물론 우유 대신 가당한 연유를 사용하는 것도 일반적인 레시피입니다.

 

 커피 대비 우유의 양이 너무 많으면 밀크커피가 아닌 커피우유가 됩니다. 커피우유도 맛있는 음료지요. 나는 커피 마시자고 누군가와 편의점에 갈 때면 커피우유를 곧잘 마십니다. 어지간한 PET병 커피나 캔커피보다는 커피우유가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카페에서는 주로 스팀밀크를 씁니다. 스팀밀크는 증기가 나오는 스팀완드를 이용해 우유를 데우면서 거품 낸 것입니다. 우유를 스티밍하면 단백질이 데워지면서 주입된 공기를 감싸게 됩니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으면 거기 있는 스팀완드를 쓰면 되지만, 스팀완드가 없어도 스팀밀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어쨌든 데운 우유에 공기를 넣으면서 믹싱하면 우유거품은 생기거든요. 머랭 만들 때 쓰는 거품기로도 만들 수 있단 말이지요.

 

 휘핑크림을 얹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물론 휘핑크림에도 식물성은 있습니다. 제대로 된 생크림을 쓰는 게 몸에도 입에도 낫습니다만, 식물성 크림이 더 싸지요.

 

 두유를 쓰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주로 비건들이 먹긴 합니다.



 

25) 카페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커피 브루잉 방식은 에스프레소입니다. 여담인데 Brew(ing)라는 영단어는 에스프레소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만, 편의상의 문제인지 한국에서 브루잉 커피라고 하면 에스프레소가 아닌 방식으로 추출한 커피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Espresso는 이탈리아어로, 영어 Express와 같은 뜻입니다. 그러니까 에스프레소 커피는 신속하게 추출한 커피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라틴어 Presso, 영어 Press는 누르거나 압착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에스프레소는 압력을 가해 눌러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에스프레소는 중의적인 어감입니다.

 

 카페 매장에서 커피를 주로 에스프레소로 추출하는 이유는 내 생각엔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빨라서. 다른 하나는 진해서 베리에이션 커피를 만들기 좋으므로. 마지막 하나는 얼음을 넣어 차갑게 마실 때의 퍼포먼스가 좋아서입니다.

 

 좋은 생두를 최적의 풍미가 나게 볶아서 추출한다고 가정하면, 핸드드립으로 추출해 따스할 때 마시는 게 가장 좋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방법일 겁니다. 어지간하면 그렇게 마시는 게 최고의 맛이 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드립은 추출 시간이 오래 걸리고, 베리에이션 커피에 약점을 보이며, 차갑게 마실 때의 퍼포먼스도 애매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견으로 일반적인 품질의 생두는 굳이 핸드드립으로 마실 만큼 충분히 좋은 맛이 나지 않거나, 맛은 좋더라도 뚜렷한 개성을 가지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에스프레소 추출 시 더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26)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에서 커피의 특성을 표현하는 말은 마일드입니다. 내가 보기에 모카는 그냥 가져다 붙인 말이고, 실제 모카골드 마일드 커피의 특성은 마일드 쪽입니다. ‘마일드와 노란색은 예맨이나 에티오피아 모카커피의 특색이 아닌 브라질 커피의 특색입니다. 브라질 커피는 아라비카가 많은 반면 맥심 모카골드는 메이비 로부스타라는 차이가 있긴 합니다만.

 

 마일드 커피는 대략 높이가 낮은 플레이버, 차분함, 좋은 밸런스, 낮은 개성, 신맛과 쓴맛이 동시에 약함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꿔 이야기하면 화려함이나 밝음이 없는 수수한 커피라는 뜻도 됩니다.

 

 인스턴트 커피라도 마일드보다는 오리지날쪽이 덜 마일드합니다. 그러니까 맥심 커피도 노란 모카골드보다는 붉은 오리지날이 좀 더 커피스러운 맛이 난다는 건데요.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카골드를 선호하게 된 건, 그다지 커피그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커피 그 자체보다는 커피가 들어간 음료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실제 바리스타 자격을 취득하는 사람들조차 순수한 커피 그 자체를 좋아하는 비율은 높지 않습니다. 드립커피보다 카페모카나 카라멜마끼아또를 좋아하는 경우가 훨씬 많지요. /전업 바리스타가 아닌 자격 취득자가 대상입니다.



 

27) 현재 우리나라에 카페는 정말 많습니다. 카페가 나름 블루오션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몇 년 전부터는 카페 수가 너무 늘어나서 심각한 레드오션이 되어버렸지요.

 

 2018년 기준 카페의 폐업률은 14.1%입니다. 치킨집은 10%니까, 치킨집보다 폐업률이 높은 겁니다. 게다가 2018년에 폐업한 카페 중 52.6%는 영업기간이 3년 미만이었습니다. 오래 하던 카페보다도 새로운 카페들이 문을 더 닫는다는 것입니다.

 

 카페가 많이 망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커피 소비량 대비 카페 수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만, 그 다음의 주된 이유 중 하나를 꼽자면 커피에 대한 이해와 애호가 부족한 채 카페를 차리는 경우도 많다는 걸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카페에서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 문제 중 하나가 얼음 관리입니다. 대체로 카페에서는 제빙기 및 얼음보관통을 쓰는데, 이 세트를 깨끗하게 관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온이니까 위생문제가 덜할 거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카페에서 가장 오염되기 쉬운 게 얼음입니다.

 

 얼음을 제대로 관리하고 사용하는 비용은 가벼운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만든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핫 아메리카노의 원가는 절대 같지 않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더 비싸다 해도 의문을 가질 것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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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금

 

https://youtu.be/BaQDN_Ex9L4

 



 호흡기 질환은 기본적으로 춥고, 목이 건조하고, 컨디션이 나쁠 때 잘 걸립니다.


 

 마스크는 바이러스가 포함된 비말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역할도 합니다만, 수분을 모아 목 안을 촉촉하게 하고 온도를 유지하는 역할도 합니다. 겨울철이니 투블럭 수준으로 머리가 짧거나 머리숱이 부족한 분들은 방한모를 쓰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스크를 답답해하거나, 장소에 따라 마스크를 쓰기 뭐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이런 것들도 괜찮습니다.



 

 목캔디 계열이 입에 맞으면 그걸 드시는 게 가장 좋을 것 같고, 아니면 입에 맞는 어떤 사탕이건 물고 있으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탕을 물고 있으면 침이 많이 나오고, 그걸 삼키게 됩니다. 타액의 역할 중 하나가 목을 촉촉하게 만들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다만 장시간 설탕이 든 캔디를 입에 물고 있으면 치아에는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치아를 생각한다면, 무설탕 캔디가 좀 낫습니다. 무설탕 캔디도 종류가 여러 가지인데, 치아에 해가 없으려면 칼로리가 없는 캔디여야 합니다.



 사람이 많은 곳을 다녀야 한다면 입에 캔디를 하나 물고,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돼지고기 뼈등심 소개

식이 2019. 11. 30. 19:44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youtu.be/L3HQMbQAWRc

 


 

 돼지는 스테이크로 먹기에 그리 나쁜 고기가 아닙니다만,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돼지를 정형해 파는 방식은 스테이크를 해 먹기에 좋지 못했습니다. 돼지등심 같은 경우 (스테이크용은 아니었지만) 예전에 로스구이용 정형을 한동안 몇몇 브랜드/업장에서 시도하기도 했었으나, 자리 잡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로스구이용 등심 정형을 좋아했었기 때문에 그것의 상업적인 실패가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들어 돼지 뼈등심이라는 게 살짝 보급되고 유행도 타게 되었는데요. 아직 대중적으로 알려진 정형은 아닙니다만, 나는 이것이 매우 마음에 들고, 대중화되길 바라기 때문에 소개해 보겠습니다.



 사진은 모처의 상품용 사진을 일단 빌려오겠습니다. 대략 이렇게 만화에 나오는 고기처럼 생겼고요. 여름엔 캠핑용 고기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보시다시피 등갈비에 등심이 붙은 형태로 정형하는데요. 많은 경우 등심덧살(가브리살)과 삼겹살의 일부, 그리고 쇠고기의 새우살에 해당하는 부위 같은 게 추가로 붙어있게 됩니다.


 

 돼지 뼈등심을 드실 때는 돼지고기는 다 익혀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레어에서 미디움정도로 구워 먹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돼지고기는 다 익혀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옛날에 생긴 거고, 현재 사육되는 돼지고기는 레어로 구워 먹어도 위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돼지 뼈등심 같은 고기는 웰던으로 다 익혀버리면 맛이 없습니다. 쇠고기에 비해 근내지방이 적고, 기본적으로 맛이 여리기 때문에 촉촉하고 부드럽게 익히는 게 조리 포인트입니다. 웰던으로 먹고 싶으면 소스를 사용해서 소스 맛으로 먹는 게 낫습니다.


 

 사견으로 마블링이 과도하지 않은 소의 아랫등심이나 채끝 또는 안심은 마이야르(표면 굽기. 고기 표면에 최대한 수분이 없어야 잘 일어납니다.)보다는 오버쿡을 시키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마이야르를 충분히 일으키려다 조금이라도 오버쿡을 시키면(속까지 너무 익히면) 맛이 많이 떨어집니다. 근내지방의 함유정도에 따라 다릅니다만, 마블링이 적은 타입이라면 기본적으로 블루레어(레어보다 덜익힘)를 만든다고 생각하는 쪽이 더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도 마이야르에 조금이라도 욕심내는 순간 팬프라잉 기준 레어이상으로 완성됩니다. 물론 이는 본 육식성 식물의 취향이고, 마블링이 있는 고기는 더 익혀야 하고 마이야르도 더 만들어주는 게 낫습니다.


 

 돼지 뼈등심은 돼지고기라 그런지 기름지지 않은 쇠고기보다는 오버쿡에 강하다는 인상입니다만, 그래도 오버쿡을 최대한 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돼지는 소보다 기본적인 맛이 약하고, 돼지냄새가 있는데다 나는 돼지고기의 마이야르는 쇠고기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최대한 많은 마이야르와 동시에 최대한 적은 익힘이 좋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돼지 뼈등심은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우리나라의 돼지고기 소비는 지나치게 삼겹과 목살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선호되는 등심, 안심, 뒷다리살은 비인기 부위고요.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뼈등심은 질 좋은 고기라도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좀 남아도는 등심을 소비할 수 있는 좋은 방식이기도 합니다.


 

 뼈등심은 돼지고기 스테이크의 장점을 한껏 즐길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소에 비해 촉촉하고 부드러우며 먹기 쉽습니다. 기본적으로 돼지고기는 쇠고기보다 연합니다. 또한 다양한 부위 여럿이 붙어있기 때문에, 한 덩이에서 좀 복합적인 특성이 나오기도 합니다. 모양이 그럴싸한 건 덤입니다.

런천미트 세균 검출 사건

식이 2018. 10. 24. 15:54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youtu.be/N3tjQ8tR7pw




 청정원 런천미트 사건으로 조금 시끄럽네요. 런천미트에서 세균이 검출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기사는 다음 링크입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10422489


 

 완벽하게 제조된 캔은 멸균식이 금속용기에 밀폐되기 때문에 유통기한과 무관하게 실보존기간은 엄청나게 깁니다. 서늘한 곳에 보존하면 수십 년 후에 먹어도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된 캔을 먹을 때는 항상 상하지 않았나 살필 필요가 있는데, 제조과정에서 멸균이 완벽하게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금속 용기의 손상으로 인한 문제도 있을 수 있긴 합니다. 상한 통조림은 보통 부풀어 오른다고 하고요.

 

 식품보존에 있어 살균과 멸균은 개념이 다릅니다. 미생물은 영양세포와 포자가 있는데, 일반 살균은 영양세포만 죽입니다. 그런데 미생물의 포자는 워낙 튼튼해서 일반적인 살균법으로 잘 죽지 않습니다. 30분간 100도로 펄펄 끓여도 안 죽습니다. 이것들까지 다 죽이는 게 멸균인데, 보통은 완벽하게 됩니다만 워낙 만만찮은 것들이다 보니 가끔 살아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한 통조림은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됩니다. 밀폐조건이기 때문에 혐기성 세균이 번식하는데, 많은 경우 최악의 독을 가진 보툴리누스라 요단강 익스프레스행입니다.

 

 통조림에서 세균이 검출되는 경우는 있습니다. 그것이 모든 통조림에 문제가 있다는 건 결코 아닙니다. 수상한 통조림은 먹지 않으면 됩니다.

 

 나는 어딘가에서 캔 햄 땡처리 안하나 보고 다녀야겠습니다. 싸게 살 기회가 있으면 잔뜩 사둘 기회입니다. 순돈육 캔 햄 330g짜리 2천원에 팔던 시절이 있었는데, 다시 그런 시절이 돌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동안 본 블로그 유입 중 많은 비중이 고지방 저탄수 열풍에 관련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저지방, 고탄수화물 다이어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고 그에 관련한 글을 몇 개 올려두었기에 그 글이 고지방 저탄수 하시는 분들에게 인기를 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들에 비추어볼 때 고지방 저탄수 방식에는 찬성하기 어려웠고, 근래에야 시간을 내서 관련 글들을 여럿 찾아보았습니다.

 

 이후 개인적으로 내린 판단은 고지방 저탄수는 내가 알고 있던 대로 위험성이 있으며, 내가 직접 시도해보거나 남들에게 추천하기는 어렵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표준적으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적정 비율로 챙겨먹되 단순당을 가능한 배제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남들에게도 추천하려고 합니다.

 

 한편 이런저런 문서들을 보면서 강하게 인지하게 된 것은, 대다수의 사람은 확률적으로 장기적 다이어트에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실험 결과에서 다이어트 방식과는 무관하게 감량한 체중을 유지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실험마다 그 구체적 %는 다릅니다만, 어떤 실험을 봐도 감량한 체중을 유지하는 비율은 매우 낮습니다.

 

 아무리 봐도 사람이 살이 찌는 이유는 본인이 어쩌기엔 너무나도 어려운, 유전적이거나 환경적인 요인들이고 감량 후 장기적으로 날씬한 몸을 유지할 확률은 빈자가 부자 되기보다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각종 다이어트 방식이 돌아가면서 유행을 타는 건, 다이어트가 장기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경우가 있듯, 장기적으로 감량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 비율은 너무나도 낮고 다이어트가 얼마나 어려운건지를 사람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정리하자면, 살찌는 건 팔자입니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이 만일 과체중이거나 비만이라면, 당신은 앞으로 살아갈 날의 많은 부분을 과체중, 비만인으로 살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당신이 만일 과체중, 비만을 탈출하고 날씬한 몸을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면, 당신은 빈자였던 부자만큼이나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살찜을 노력이나 의지의 문제로 폄하하기엔, 개인은 비만을 거의 극복할 수 없습니다. 통계적으로는 살이 많이 찐 사람일수록 극복확률은 낮아집니다. 사람의 유전자는 살찌는 데 특화되어있고 살빼는 덴 매우 무능합니다. 살찜에 대한 사회적 냉대는 줄어들어야 합니다. 빈자를 타박하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요.

 

 다이어트는 어쩌면 단기적 방식으로 제안되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살을 빼는 건 장기적인 저체중 유지보다는 훨씬 쉬운 과제입니다. 그리고 일단 줄인 체중은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단 저탄수 고지방 다이어트는 논외라고 이야기해야겠습니다. 저탄수 고지방은 단기 체중감량에 매우 유리하지만, 그 대가가 클 확률이 있기에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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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위한 와인 가이드

식이 2016. 12. 22. 19:41 Posted by 해양장미

 이미 동지도 지났네요. 연말이라 와인 구매하실 분들이 있을 것 같아 작성합니다.

 

 

*) 오래 된 와인이 좋은 와인이다?

 

 와인은 쉽게 말해서 병입 이후 기준으로 묵혀 마시는 와인과 신선할 때 마시는 와인이 따로 있습니다.

 

 물론 중간형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묵혀 마시는 와인이지만, 덜 묵혀도 맛있게 마실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와인은 묵혀 마셔야 더 좋긴 합니다. 그리고 묵혀 마실 와인이 아닌 것 같은데도 의외로 묵힐 때 감촉과 구조감이 놀라울 만큼 근사해지는 게 있습니다.

 

 그래도 중요한 건 대다수의 저렴한 와인은 묵혀 마시는 와인이 아니라는 겁니다. 보통 한국에서 파는 5만원 이하의 와인 중 묵혀 마시는 와인은 소수입니다. 그리고 묵혀 마시는 와인이 아닌 경우, 와인은 제조된 날짜에서 가까울수록 신선한 느낌이 살아있어 맛있습니다.

 

 특히 연말에 파티 분위기로 마시는 와인은 단순하고 청량한 맛이 나는 게 어울리는데, 이런 건 신선한 와인이 가지는 특성입니다. 물론 잘 병숙성된 와인이 그 가격과 무관하게 놀라운 만족감을 줄 때도 있습니다만, 그런 건 어디까지나 와인 애호가한테나 좋은 겁니다.

 

 

*) 스크류캡을 쓴 와인은 별로다?

 

 와인에서 가장 골치 아픈 게 저렴한 천연 코르크입니다. 코르크는 오염된 경우가 많고, 특히 유통과 보존이 잘못된 경우 와인을 잘 보호하지 못합니다. 스크류캡이 훨씬 좋습니다. 따기도 더 쉽고요.

 

 다만 비싼 와인은 이미지 때문에 스크류캡을 잘 쓰지 않습니다. 그래도 비싼 와인은 그나마 고급 코르크를 써서, 코르크로 인한 손상 문제는 덜한 편입니다. 싼 와인에 싼 천연 코르크를 쓸 때가 가장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고급 코르크라도 문제 확률은 항상 있습니다. 코르크 마개는 본래의 기능으로 보면 세상에서 가장 쓸모 없는 물건입니다.

 

 실제 코르크같이 생긴 거라도 플라스틱 수지로 된 마개나 가공 코르크로 된 게 더 안정적입니다. 문젠 이런 건 뭘 썼는지 따 봐야 안다는 겁니다. 스크류캡 추천하고 또 추천합니다.

 

 

*) 해산물엔 화이트 와인?

 

 해산물도 해산물 나름입니다.

 

 사실 보통 우리 한국인들 해산물 먹는 덴 화이트 와인이 거의 안 맞습니다. 해산물을 드시고 싶으면 청주 드세요. 구하기 쉬운 것 중엔 경주X주의 화X추천합니다. 와인을 마시고 싶으면 와인에 음식을 맞춰야 합니다.

 

 

*) 크리스마스에 근사한 와인을 마시고 싶은데요.

 

 당신이 와인 애호가가 아니라면, 근사한 와인 마셔도 그게 근사한지 보통 잘 모릅니다.

 

 그런 건 외국인에게 근사한 김치를 먹이는 것과 별 차이가 없어요. 고급 와인 맛은 일반적인 음식에서 맛볼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걸 이해하려면, 당신이 타고난 와인 애호가가 아닌 이상 (물론 가끔 타고난 사람도 있긴 합니다.) 경험이 필요합니다.

 

 일반인에게 근사한 와인은 따로 있습니다. 당신이 만일 단 맛을 좋아한다면, 백화점 와인 코너에 가서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를 달라고 하세요. 이름이 어려우면 적어가세요. TBA라고 약어를 말해도 보통 직원이 이해합니다. 병당 10만원 밑으로 살 수 있는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는 지구에서 가장 훌륭하면서도 보통 사람이 마실 수 있는 가격의 달콤한 음료입니다. 괜히 캐나다산 아이스와인 사지 말고, 도이칠란트산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를 사세요. 참고로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는 등급명이자 유형명이지 브랜드명이 아닙니다.


 다만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는 농밀하고 개성적인 단 맛입니다. 그런 게 싫다면, 이탈리아산 브라케토 다퀴를 강력 추천합니다. 와인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지 않는 한 만인이 좋아할 맛이거든요. 가격도 저렴하고요.

 

 

 

*) 와인하고 같이 먹을 안주 추천해주세요

 

 

 와인이란 게요. 마리아쥬 어쩌고 하긴 합니다만...

 

 와인은 정말 안주 맞추기가 힘든 주류입니다. 소믈리에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에요. 대부분의 음식은 와인의 풍미를 침해하다 못해 죽입니다. 치즈가 잘 어울릴 것 같지요? 아닙니다. 대부분의 치즈도 대부분의 와인 풍미를 저해합니다.

 

 와인 안주로 제일 좋은 건 가급적 맛이 별거 없는 겁니다. 바게뜨나 치아바타, 토스트 드세요. 그 담백함이 평소보다 맛있게 느껴질 겁니다. 아니면 조리과정에서 해당 와인을 쓴 요리가 잘 어울립니다.

 

 


*) 와인 같은 거 꼭 마셔야 합니까?

 

 취향에 따라 마시세요.

 

 와인 말고도 맛있는 술은 많습니다. 술 아니라도 맛있는 음료는 많습니다. 건강 생각하면 술을 안 마시거나 아주 조금만 마시는 게 더 좋고요.

 

 다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인류가 만들어낸 음료 중 와인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와인이 유독 비싼 이유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각자 입맛에 맞는 걸 마시면 됩니다.

 


*) 와인 마실 때 꼭 글라스 써야합니까?

  

 실제로 비싼 글라스 쓰면 더 맛있습니다. 특히 납이 포함된 글라스를 쓰면 입술에 닿는 감촉도 좋고, 향도 더 잘 표현해주고, 혀의 민감한 부분에 와인을 먼저 닿게 해줍니다. 종잇장처럼 얇은 게 날카롭고 우아하기도 하지요. 하나에 대략 10만원 전후 합니다. 전문 와인 바 가시면 조심하세요. 하나 깨먹으면 뭐라 하진 못해도 쥔장이 몰래 피눈물 흘립니다.

 

 글라스 아닌 거 쓸 때는, 큰 머그 같은 데 조금씩 따라 마시는 게 낫습니다. 와인은 향이 중요하거든요. 다만 이것은 10도 이상의 와인에만 해당됩니다. 저도수 와인은 잔이 별 상관이 없습니다.

 

 

*) 와인은 왜 그리 비쌉니까?

 

 비싼 와인 빼면 별로 안 비쌉니다.

 

 그냥 포도 주스도 농축액 안 쓰고, 와인처럼 순수 착즙해서, 유리병에 병입 하고 운송하면 꽤 비싸집니다. 실제 농축액 안 쓴 착즙 냉장유통 주스만 해도 꽤 비싸지요? 게다가 와인용 포도는 식용 포도보다 더 비쌀 만 합니다. 일단 한 송이 크기가 작아요.

 

 델라웨어 사 드셔 본들은 아실 텐데요. 그게 양조용/식용 겸용 포도입니다. 보통 양조용 포도가 그렇게 작아요. 더구나 델라웨어는 양조용 포도로 쓰는 것 중엔 덜 단 편입니다. 그거 그냥 먹으면 엄청 달지요? 그 정도는 달아야 양조용으로 쓸 만 합니다. 괜히 포도 외의 다른 과일로는 술 잘 안 담그는 게 아닙니다.

 

 

*) 단 와인과 달지 않은 스파클링 와인 구분법

 

 스파클링 와인엔 대부분 다음과 같은 표기가 있습니다. Brut, Sec, Demi Sec, Doux 같은 표기 말입니다. 일단 Brut은 거의 하나도 안 달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더 안 달다는 뜻으로 Extra BrutBrut Zero 같은 표기를 쓴 것들도 있습니다. 대조적으로 Doux는 달다는 뜻이고요. 이탈리아어 Dolce와 같은 단어입니다. SecBrutDoux의 중간형이고, Demi SecSecDoux의 중간형입니다.

 

 이런 표기가 없는 것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Asti인데, 그건 달콤합니다. 잘 모르면 직원한테 물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