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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1.03 공동체주의 설명부터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간략 설명. (10)

 본문과 함께 보면 좋은 영상

 

https://youtu.be/kY20wLISPgI

https://youtu.be/hFX3wf7Da7M

 


 

 그러고 보니까 나는 본 블로그에서 거의 공동체주의 비판만 해 왔는데, 지난 글에서 공동체주의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니까... 아예 공동체주의가 뭔지 잘 이해를 못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요지부터 이야기하고 시작하자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관계와 공동체주의와 집단주의의 관계는 거의 같다는 것입니다. 개인주의이기주의 이듯, 공동체주의집단주의 입니다.


 

 현대정치철학에서 공동체주의가 주요담론이 된 건 최근의 일이고요. 단어의 어감만으로는 별로 그렇게 생각이 안 되겠지만, 공동체주의는 메이저 정치철학 중 가장 새로운 것입니다. 근현대 정치철학 발달 및 등장 계보를 보면 대략 공화주의 - 고전적 자유주의 - (아나키즘 등이 난립하는 혼세) - 현대적 자유주의 - 공동체주의 순으로 등장합니다. 결국 이 시대의 메이저 정치철학 담론은 현대적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만 남았다고 정리해도 됩니다. 나는 자유주의자라서 그 동안 현대적 담론의 관점에서 공동체주의를 비판해온 건데, 어쩌다보니 본문에서는 내가 공동체주의를 앞장서서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나는 자유주의자이다 보니 공동체주의자의 입장에서 공동체주의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한나 아렌트. 출처 https://brunch.co.kr/@kibokk/14

 

 계보로 볼 때 공동체주의는 공화주의의 후예이자 유사 관념(공동체주의공화주의)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동시에 서구 기독교 민주정체(기민주의)의 현대적 버전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현대 공동체주의는 이미 현대적 자유주의가 등장한 이후에 본격적으로 논의된 만큼, 자유화된 세계관을 기반에 두고 있으며 집단주의적인 것, 특히 전체화에는 분명히 반대하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현대적 자유주의가 이기주의나 방종, 더 나아가 고전적 자유주의에까지 비판적인 것과 유사합니다. 그래서 뭉뚱그려보자면 현대적 자유주의와 현대적 공동체주의는 많은 부분 목표나 결과가 아주 크게 다르지는 않고요. 합의 가능한 개념들이 많은데, 현실적으로는 주로 각론에서 이견을 보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마치 주류경제학이라는 범주를 볼 때, 적어도 외부에서 (비주류경제학의 관점 등으로) 보기에는 이견이 그리 심하지 않은 것과 다소 유사합니다.


 

 예를 들어 근래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을 두고 이야기를 해 보지요. 1인가구가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지요. 각자가 1인가구로 살면 장점도 있지만 이런저런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것에는 개인의 문제도 있고, 사회적 문제들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개선과 해결이 필요합니다.


  

 현대적 자유주의자로서의 나는, 해당 문제의 본질을 각자의 자유를 충분히 존중하지 못하는데서 일차적으로 비롯되었다고 가정합니다. 즉 사람들끼리 어울려 살려면 각자의 개성을 충분히 존중하고, 간섭을 과도하게 하지 마는 등의 배려가 필요한 것인데 서로의 개인성을 충분히 존중하지 못하고, 불편하게들 굴면서 정의로운(일상어휘로는 평등한이라는 단어로 대체하는 게 좀 더 이해가 쉽겠습니다.) 관념적 교집합을 이끌어내지 못하다 보니 (어떤 집단이 형성되면 자체적인 집단문화가 형성되기 마련이라 생각합니다. 2~4명이 모인 친구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각자가 충분히 교감할 수 집단문화가 형성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구성원 각자가 쉽게 파편화된다는 가정을 하고 있습니다. 즉 이는 자유와 다원성의 증진으로 개선이 가능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우리 각자는 숙명적으로 짊어져야 하는 외로움이 있다고도 생각하지요.



 그런데 공동체주의의 렌즈로 이 상황을 보면 조금 다른 방향부터 접근하게 됩니다. 즉 우리가 파편화되고 외로운 건 공동체의 유대감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며, 이러한 유대감은 구성원에 대한 개방성, 따스함, 존중 등으로 유지될 수 있는데 그런 게 불충분하니까 공동체가 파괴되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각자를 서로 존중하고, 따스한 시각으로 서로를 바라봐주면서 공동체의 회복을 도모해야 한다 할 수 있지요. 특정인(대체로 윗사람)의 이익을 위해 각각의 권익이 침해된다거나, 공동체 내의 특정인에게 냉혹하게 군다거나, 누군가가 권력으로 찍어 누르면 당연히 공동체는 부서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위에 말했듯 약간 차이입니다. 각자의 개인성을 존중한다는 결과는 같지만, 존중하게 되는 접근방식은 조금 다른 정도랄까요. 우리나라는 집단주의적인 나라긴 해도, 현대적 공동체주의가 있는 나라는 아닙니다. 권위에 대한 추종, 공격적 오지랖, 이기심은 있지만 (이 모든 걸 다 높은 수준으로 갖춘 집단도 있지요.) 공동체도 자유도 영 모자란 나라라고 할 수 있지요.


 

 두 이념의 차이는 주로 각론에서 나타납니다. 일단 도덕을 어떤 식으로 규정하느냐의 차이가 생기는데, 쉽게 설명해 자유주의는 개개인의 느슨한 동의와 교집합에 의해 도덕이 생긴다고 보는 경향이 있는 반면, 공동체주의는 도덕을 보다 관습적이거나 전통적인 것, 또는 어떠한 진리에 의한 것 - 서구에서는 기독교적 관점으로 설명합니다. - 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자유주의가 공공선을 파괴하고 개인의 파편화를 초래한다고 주장합니다. 대조적으로 자유주의자들은 공동체주의는 개인을 희생시키기 쉽다고 주장하지요. 나는 자유주의자이기 때문에 공동체주의자들을 현대적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다원주의에 따른 타협의 대상으로 본다는 이야기고, 올바른 공동체주의적 덕성을 유지할 경우 몇몇 각론이 아니면 크게 부딪칠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이지요. 다만 나는 자유의 증진을 공공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동체주의자들은 그렇지는 않지요.


 

 정치철학의 범주를 벗어날 때 공동체주의는 공공선을 규정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생기기 쉬워 잘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즉 공공선을 규정하기 쉬운 영역일수록 공동체주의적 관점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공동체주의는 공동체의 미덕을 규정하는 데 있어 약점을 드러내는데, 나는 그럴 때 결국 포괄적 교설을 이끌어내는 가운데 최대한 개개인을 존중하는 게 답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나의 시각에서 공동체주의는 관습에 대한 존중을 반드시 동반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공동체주의는 본질적으로 보수적입니다. 바람직한 공동체주의는 공동체의 관습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다듬어가야만 현실에 구현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각각 공동체의 존중받는 전통적 관습이 거의 상실되었고, 바람직한 형태라 할 만한 것이 별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공동체주의자들은 해야 할 게 정말 많습니다.


 

 한편으로 공동체주의는 공공선을 강조하고 샌델 같은 우파 공동체주의자의 경우 (샌델은 많이 심하게 우파입니다.) 공동체가 정의를 대체하거나 어떤 경우 공동체가 정의의 근원이라 주장할 뿐, - 사견으로 관습적이지 않은 사회 공동체는 정의를 규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 그 구체적 해결책으로 집단주의적인 방법론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이 무신경하게 공리(최대다수의 최대행복)를 들이밀 때, 공리가 반드시 공공선은 아니라고 주장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겠습니다만, 사실 어지간한 사람들은 누구나 공공선과 공리를 같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적으로는 공리보다 나은 공공선을 찾기 어려워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통상의 유권자가 아닌 통치자의 경우, 반드시 공동체주의적인 덕성을 함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순수한 자유주의 정치철학이 존립하기 어려운 딜레마라 할 수 있는데, 아나키한 상태가 아닌 이상 대의제의 대표자는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이 대표자가 공적 개념과 덕성이 없는 경우 이런저런 문제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통치자의 윤리로 공화/공동체주의는 언제나 탐구되어야만 하며, 시민들은 각자의 자유를 추구하는 가운데 좋은 공동체 의식이 있는 대표자를 찾아 뽑아야만 합니다. 권력이라는 게 존재하는 한, 권력을 쥔 사람이 가져야 할 공적 의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국가/시민공동체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이, 사적 이익만을 추구한 자가 권력을 가질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똑똑히 보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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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1.04 0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윈브라이트 2019.11.04 0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한때 유승민한테 마음이 갔었고 지금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는 외교안보 문제나 경제사회복지 문제에 있어서 일관되게 공화주의 및 공동체주의자라는 점입니다. 그의 정치적 입장의 70% 정도는 한나라-새누리 계열 보수정당의 입장과 충돌하고, 정치력은 바닥에 가까워서 더 이상 그를 대선후보로 지지할 수 없지만, 저는 건강한 공동체주의자가 우리 사회와 정치판에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유승민이 보수통합에 합류해서 그 안에서 계속 비주류 스펙트럼을 넓혀주고 외연을 확대하는 역할을 한다면 저는 반대하진 않을 거 같습니다.

    사견이지만 저는 2016년 9월에 있었던 유승민과 남경필의 징병제 vs 모병제 토론이 정말 바람직한 정치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런 건설적인 토론과 철학적 담론은 사라지고 박근혜 탄핵 찬반이니 적폐청산이니 반일불매운동이니 꼴사나운 뉴스들만 보고 있네요.

    • 해양장미 2019.11.04 02: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유승민의 현실감각을 매우 낮게 평가합니다만, 적어도 주관은 있는 인물이라고 인정합니다. 유감스럽게도 그 정도 사상적 주장조차 없는 정치인들이 너무 많지요.

      이야기하신 토론은 저도 기억나네요. 저는 남경필의 편이었지요. 그의 정계은퇴가 새삼 유감스럽습니다.

  3. 대발290 2019.11.04 09: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과는 별 상관이 없지만 산소 벌초하는 사진을보고 올해 벌초가 생각났습니다
    종중에서 선산에 벌초를 하는데
    12대조 산소부터 5대조까지 해야되니까 엄청 넓은곳을 해야합니다
    10년전 즈음만해도 예초기가 10대 넘게 오고 사람들도 30명 넘게 모였는데
    올해 가보니 딱 예초기 4대에 사람 10명 왔더군요
    이게 강제성도 없고 돈을 주는것도 아니니까 한명씩 한명씩 나오지 않더니만 결국 올해처럼 확 줄어 버렸습니다
    지역이 지역이니만큼 옛 풍습을 지키자는 어른들이 많은 편인데 정작 힘든일들은 서로 바쁘다고 미루고 피하기 바쁘니 나오는 사람들의 선의에만 의지하는 형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과정을 몇년간 지켜보니까 무언가 인센티브없이 의무감이나 선의에만 의지해서 일을 하는게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었습니다
    대조적으로 일당20만원씩 주는 집안들은 그나마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잘 돌아 간다고 하더군요
    요즘엔 화장이 대부분을 차지할정도로 장묘문화도 많이 바뀌었지만 그걸 또 가족묘나 가족 납골당 형태로 봉분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평생 벌초로 매년 씨름을 해야되는 입장에서 이제 봉분형태의 묘지조성을 법으로 금지할때가 되지않았나 싶습니다 ^.~
    (여담으로 벌초로 고생을 엄청하신 집안 어르신의 유언이 절대 묘지 만들지 말고 내가 고생 많이 했으니 너희들은 벌초 나가지마라 였다고 합니다 ^.~)

    • 해양장미 2019.11.04 1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12대조까지 있군요... 힘드시겠습니다.

      저는 무언가를 법으로 금지하는 건 가능한 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봉분 같은 건 폐단이 있더라도, 그것을 만들고자 하는 개인의 자유를 국가가 침해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예외적인 관습법인 분묘기지권 같은 것은 손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봉분이건 평평한 무덤이건, 사실 집 가까이에 있으면 벌초 같은 게 그리 어려울 건 없을 것입니다. 만약 집 뒷마당에 무덤이 있으면 풀 깎는 것 정도 크게 어려울 게 있겠습니까. 우리나라는 조선 시대 들어 풍수지리의 영향을 받으면서 무덤이 산 위로 올라갔는데, 그러면서 무덤에 대한 인식이 무서운 걸로 바뀌어갔고, 벌초도 무척이나 힘든 작업이 되었습니다.

    • 대발290 2019.11.04 1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매년 벌초로 씨름을 하다보니 나온 푸념입니다. 국가가 그런것 까지 간섭해선 안되겠죠 ^.~
      말씀대로 분묘기지권은 이제 손을 봐야겠죠. 물론 2001년 이후 매장한 묘지에 대해서는 아예 분묘기지권이 인정되지 않지만 그 이전에 매장한 묘지에 대해서도 적절한 절차를 두어서 이장을 하게 해야될것 같습니다. 애초에 분묘기지권의 인정이 사유재산에 대한 너무 심한 제약이었습니다.
      더불어 전통적인 종중이나 친족집단이 결속력이 약해지고 와해되어 가면서 종래의 제례라던지 풍습 역시 빠르게 사라지는것 같습니다. 제가 어렸을적만해도 분명 그런것들을 중요시 하는 분위기에서 이제는 그 누구도 신경쓰지않는 시절이 되고 보니까 그 간극이 조금 씁쓸하기는 합니다.
      많은 나이가 아니지만 그런것들을 신경쓰는 제 자신이 구태의연한 인물인것 같아 더 씁쓸하기도 합니다
      이거 해양장미님의 공간에 제 푸념만 잔뜩 늘어 놓아서 죄송합니다 ^.~

    • 해양장미 2019.11.04 13: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고보면 예전에는 '내가 죽으면 내 제사는 누가 지내줄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아들을 낳고 키우려는 것도 있었지요.

      그게 그렇게 먼 옛날이 아닌데요.

  4. 차선 2019.11.05 22: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국 자유주의건 공동체주의건 개인에 대한 존중이 전제돼야 의미가 있는 것이군요. 좌파 우파를 막론하고 목소리 큰 사람의 말이 진리가 되어가는 근래의 한국 사회에서 개인에 대한 존중이라는 말은 너무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게 익숙하다 느껴질 때면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겠지요.

    https://m.nocutnews.co.kr/news/amp/5022133
    김무성도 공화주의를 주장한 적이 있었는데 그건 본문 마지막 문단과 일맥상통 하는 부분이 있네요. 유승민의 공화주의와는 디테일이 다른 것 같고요.

    • 해양장미 2019.11.05 2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누가 해주지 않습니다. 나부터 해야지요.

      김무성의 공화주의는 고전적 공화주의 느낌에 가까워 보입니다. 유승민은 기민주의에 가깝고요. 결국엔 현대적 공동체주의적 담론으로 정리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