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세요. 그러면 중간은 갑니다.

사회 2015. 3. 1. 12:58 Posted by 해양장미

 31일은 봄맞이하는 좋은 날이지만, 이 날에 보이는 극우들의 준동은 결코 아름답지 않습니다. 3.1절은 좋은 방향으로 해석되기보다는 한국인들을 극우적으로 만드는 날이 되고 있습니다.

 

 극우 민족주의는 사람들의 증오심을 부추기고, 분노를 일으키고, 공격성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그런 증오와 분노와 공격성은 대체로 특정 집단의 정치적 권익을 위해 이용됩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런 권익을 위해 역사를 날조하고, 상징을 왜곡하며 폭력을 합리화시킵니다.

 

 역사왜곡의 한 사례를 살펴보지요. 우리는 소양 없는 언론인들이나 네티즌, 심지어는 공무원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신채호같은 말을 하고 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정말 한심한 일이지요. 신채호는 그런 말 한 적이 없습니다. 조선상고사에서 신채호가 그런 말을 했다고 사람들은 그러지만, 대체로 그 사람들은 조선상고사 한 페이지도 안 봤을 겁니다.

 

 신채호는 그저 독사신론의 첫문단에서

 

國家(국가)歷史(역사)民族(민족) 消長盛衰(소장성쇠)狀態(상태)閱敍(열서)(). 民族(민족)()하면 歷史(역사)()할지며, 歷史(역사)()하면 民族(민족)其 國家(기 국가)()觀念(관념)不大(부대)할지니, 嗚呼(오호), 歷史家(역사가)責任(책임)其亦 重矣哉(기역 중의재)인저.’

 

 라고 기술했을 뿐이지요. 이게 어딜 봐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 가 됩니까?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이야기지만, 저 말에 가장 가까운 말을 남긴 사람은 처칠입니다. ‘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라고 했지요.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nation을 민족이라고 해석하면 꽤 곤란합니다. 브리튼 특성 상 민족 운운할 수가 없어요. 굳이 해석하자면 저 말은 과거를 잊은 국가에 미래는 없다.’ 정도입니다. 어감이 완전히 다르지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당신들을 조종하기 위해 누군가가 만들어낸 문구입니다. 그리고 대체로 저 말을 따라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역사를 정말 모릅니다. 편향적으로 추린 사실들과 거짓들에 의존하여 조작된 상징을 받아들이고, 폭력성을 발휘하기 좋은 인간이 되는 것이지요.

 

 역사를 잘 모르면 가만히 있으세요. 그러면 중간은 갑니다. 이용당하고, 나쁜 사람이 되지 마세요.

 

 역시나 오늘도 폭력적인 말들이 3.1절 기사 베플마다 달려 있습니다.

 

친일파를 처단하자

아베 정수리에 태극기를 팍 꽂고 싶다.’

‘3.1절에 동반자라니 ..미쳤내’ - [대통령 "한일, 미래 50년 동반자로 새역사 써나가야"] 기사

덮고가긴 복수해야할 상대데’ - ['과거사는 덮고가자'..··일에 작심하고 촉구] 기사

 

 이 사람들은 이런 걸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당장 수천 명이 동의하고 있고요. 저런 게 나쁘다는 생각을 못할 정도인 겁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극우성과 폭력성을 주의해야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미래를 진짜로 나쁘게 만들 수 있습니다. 3.1절마다 사람들이 증오와 분노를 불태운다면, 그런 날은 없는 게 차라리 낫겠지요. 96년 전에 이러라고 독립운동 한 게 아닐 텐데 말입니다.

 


조선일보는 어떻게 대중을 기만하는가?

정치 2015. 2. 20. 17:07 Posted by 해양장미

 몇몇 커뮤니티들에서도 회자되고 있는 것 같은데, 조선일보에서 ‘19대 국회 이념분석이라는 기사를 냈습니다. 해당 기사를 링크합니다. 세 기사로 나뉘어 있습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2/18/2015021800214.html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2/18/2015021800208.html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2/18/2015021800220.htm

 

 그런데 저로서는 이 기사를 보자마자 분석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양당의 이념차는 저렇게 크지도, 분명하지도 않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조사하면 저런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건가 싶었지요.

 

 조금 보니 조사방법은 간단했습니다. ‘의원 多數 찬성한 법안에 찬성했다면 '保守 점수' 부여의 방식을 썼다고 두 번째 링크의 시작부분에 적혀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새누리당 의원 다수가 찬성한 법안은 그 내용과 무관하게 보수점수가 올라가도록 계산되는 방식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방식은 역으로 새누리당 의원들이 찬성한 법안에 찬성을 안 할수록 진보로 나오고, 새누리당의 당론 및 경향을 따를수록 보수로 나오는 분석입니다. 역시나 조선일보답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기사 및 이에 대한 커뮤니티들의 반응을 보니 정말 어이가 없더군요.

 

 일단 이 기사는 프레임 및 해석부터가 문제입니다. 새누리당 당론 = 보수이념이라는 전제부터가 틀렸습니다. 새누리당이 무슨 보수이념의 화신이라도 되나요? 당의 평균 성향을 보수이념으로 규정한 것부터 문제가 많은 겁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기만당합니다.

 

 전제가 잘못되었으니 그 반대 - 즉 진보성향에 대한 분석 - 도 어이없는 결과가 나옵니다. 새누리당의 주장에 반대할수록 진보입니까? 이는 진보에 대한 모독과 왜곡입니다. 일단 새누리당이라고 진보적인 당론이 없는 게 아닙니다. 또한 진보는 안티질이 아닙니다. 주도적인 변화 이념은 진보여야 하고 보수는 그에 맞서 기존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되어야 본래의 뜻에 맞습니다. 한국의 속칭 진보가 전혀 진보답지 못한 건, 진보가 스스로 가치를 추구하는 게 아니고 안티질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본 분석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분석은 새누리에 비해 새민련이 덜 결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동시에 양당이 잘 화합하고 있지 못하다는 걸 보여주기도 하지요. 어떤 의원이 비교적 당론과 다른 방향의, 비교적 온건한 찬반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려줍니다. 그렇지만 그뿐입니다. 이 분석은 각 당이 어떤 이념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려주지 못합니다.

 

 원천적인 문제는 새누리와 새민련간의 이념 차이가 크지 않고, 둘을 보수와 진보로 명료하게 나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착한 FTA니 좌파 신자유주의니 이런 말들이 자꾸 나오는 건, 새민련이 본질적으로 이념이 없는 정당이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도 보수정당이라기엔 그다지 보수적이지 않고요. 그러니 본 기사와 같은 분석이 유효하려면 먼저 양 당의 이념 문제부터 정리가 되어야합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에 연이은 현실적인 문제는 이 기사를 보는 사람들의 인식입니다. 본 기사는 결코 각 법안의 내용과, 그 내용이 사회에 주는 영향을 다루지 않고 그것을 은폐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념을 가지고 있는지 드러내지 않고, 본질을 오도하는 기사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본 기사를 이념적으로받아들입니다. 분석의 본질에 대해서는 이해 없이 말입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보이는 해당 기사에 대한 발언들 또한 조사 방식에 대한 논란이 거의 없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이런 기사에 기만당하기 쉬운지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커뮤니티에 저런 기사를 올리고, 보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기사엔 너무나도 무력하게 농락당한다는 것이지요.

 

 이런다고 제가 딱히 조선일보를 싫어한다거나 안티조선운동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조선일보가 찌라시 소리를 듣는다지만 사실 정치면 빼면 품질이 좋은 신문이거든요. 조선일보만 대중을 기만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다만 조중동은 찌라시!’를 외치던 사람들이 이런 간단한 기만에도 속아 넘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실소가 나오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