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예산과 여성부의 상관관계

사회 2013. 9. 19. 23:02 Posted by 해양장미

 국방은 현실적인 문제다. 나는 평소에 국방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징집 제도도 민병제 형태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말하고 싶은 건 정말 쉽게 볼 수 있는 ‘여성부를 없애면 이런 첨단 무기를 들여올 수 있을 텐데!’ 라는 뻘소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단언컨대 국방 예산에 여성부를 걸고넘어지는 건 찌질한 투정 이상은 될 수가 없다. 우선 무엇보다도 여성부 예산이 너무 적다. 2013년 기준 국방부 예산은 34조 3453억원인데, 여성부 예산은 그나마 작년보다 많이 는 게 5239억원이다. 애초에 올해 기준 두 부처는 예산 액수가 65배 이상 차이난다. 만일 여성부 예산을 전부 없애고 국방부 예산에 넣어봐야 국방부 예산은 그야말로 조금 올라갈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국방예산 증액에 별 도움이 못 될 여성부 이야기를 하는 것은 갓난아기 같은 칭얼거림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여성부가 저 금액으로 하는 행정은 흔한 이미지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 성범죄자 관리, 자녀양육지원, 경력단절여성 취업지원, 다문화가정 지원 등이 현재 여성부가 주로 하는 업무다. 이런 것들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마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 바보들일 것이다. 물론 바보들이 국방을 논할 자격은 없다.


 개인적으로도 여성부가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정부 기관의 특성이다. 원래 정부 기관들은 수많은 뻘짓과 실수를 반복하는 집단이고, 국민들은 그들이 일을 더 잘하도록 감시하고 민원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 여성부가 잘못한다면 여성부가 일을 더 잘 하도록 압력을 넣는 게 옳다. 덮어놓고 여성부를 없애라는 건 찌질하게 악감정을 앞세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여성부가 독립부처의 직위를 상실하더라도 별로 변하는 게 없을 것이다. 저 업무는 어디서든 해야 하고, 여성을 위한 부처 또는 행정청이 없는 선진 국가는 없다.


 실제로 현 정부 들어 여성가족부는 여성부가 되었고, ‘가족’의 업무는 보건복지부로 넘어가 보건복지가족부가 되었다. 특정 부처를 독립부처로 분리하느냐 합치느냐의 문제에는 여러 가지가 고려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여성부를 없애자는 주장에서 이런 것들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예를 들어 문화체육관광부를 ‘문화부’, ‘체육부’, ‘관광부’로 나눌 수 있다. 반대로 통일부를 외교통상부에 합쳐서 ‘외교통일통상부’ 같이 합칠 수도 있다. 단편적으로 여성부를 없애자는 사람들은 초등학생이나 할 발상을 하고 있다. 그냥 한 부처가 하던 행정을 없애버리는 게 정말 옳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특히 ‘복지 늘려라’고 주장하면서 여성부 없애라는 사람들은 밤새도록 욕을 먹어도 싸다.


 소인배같이 칭얼거리는 걸로 결코 강력한 국방력을 가질 수 없다. 국방비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찌질하게 찡찡거리지 말고 현실적인 방안을 이야기해야 한다. 참고로 나는 VAT를 올리는 게 더 많은 국방비를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 생각한다. 현재 한국의 국방비는 GDP의 2.59%정도인데, 한국의 상황을 생각할 때 4%수준으로는 올려야 한다. 그래야 징병제도 없애고 충분한 국방력을 가질 수 있다.


 차기 전투기사업 관련해서 자료 좀 보려는데 애먼 여성부 없애라는 찡찡이들이 널려있기에 본문을 작성하였다.



 만일 흡연자에 의한 각종 피해가 없다면, 내 삶은 지금보다 10~20%는 더 행복해질 것 같다. 장기적으로 나는 각종 원하지 않는 간접흡연에서 최대한 벗어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만약 내가 간접흡연에서 거의 완벽하게 벗어난다 해도, 흡연자들에 의한 내 피해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 가족이나 이웃들이 간접흡연에 피해를 입으면서 건강을 잃을 테고, 나는 흡연자들 때문에 결국 더 많은 건강보험료를 납부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담배는 막대한 이권을 쥐고 있는 사업이다. 향정신성의약품으로서 담배는 그 효능은 미약하고 그다지 좋은 감각을 불러오지 않는 편이지만, 그 중독성이나 폐해는 심각하다. 특히 다른 항정신성의약품에 비해 타인에게 주는 피해가 막대하기 때문에 빠르고도 강한 규제가 필요하지만, 이권과 중독자들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담배는 너무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흡연자는 자신의 의지로는 담배를 끊을 수 없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사람이 금연에 여러 번 실패했다면, 당신의 의지력은 지극히 정상 범주다.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보편적인 인식과는 달리, 의지로 담배를 끊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냥 스스로의 의지로 금연을 시도했을 경우, 6개월 금연 성공률은 겨우 3~5% 정도다. 이 정도면 그냥 못 끊는다고 봐도 된다. 나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향정신성의약품을 강하게 규제하는 것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편이지만, (나는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중독성이 너무 강하고 부작용이 심한 약물은 규제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의 약물 규제는 그 정도가 아니다.) 담배는 유달리 타인에게 피해를 광범위하고도 크게 끼치는 일종의 환경 오염원인데다, 이권에 의해 너무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품이 되어 있기에 이 사회가 얼른 담배를 강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다 본다.


 흡연자는 아무리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줄이려 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흡연은 무조건 타인에게 민폐를 끼친다. 그나마 개념흡연자는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잘 안보이고, 적잖은 흡연자는 타인에게 매우 큰 피해를 주고 있다. 흡연이 다른 공기 오염원에 비해 차별화된 피해를 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에 의해서이다.


1) 담배 연기는 그 강력한 독성에 비해 너무나도 규제가 적고, 흡연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동하면서 담배를 피워댄다.

2) 담배 연기에 섞인 타르는 아무 데나 그대로 달라붙고, 잘 떨어지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독을 내뿜는다. 방사성 물질보다 해는 더 큰데, 흡착까지 잘 된다.

3) 담배는 연기뿐만 아니라 불꽃과 담뱃재를 동반한다. 담뱃불은 산불의 주된 원인 중 하나이며, 보행 흡연자에 의한 불꽃, 재 피해도 많다. 건조하고 강풍이 부는 날엔 당연히 위험하지만, 대다수의 흡연자들은 그런 건 결코 고려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자동차 매연 등은 이미 디젤차의 경우 매연 저감 장치가 의무적으로 부착되어있고, 현재 발생하는 매연은 분진을 만들 뿐 그것이 담배 연기 같은 흡착성을 가지지도 않고, 그만큼의 악취를 만들지도 않는다. 독성 자체도 큰 차이가 있다.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보다 니코틴은 훨씬 강력한 맹독이다. 사석에서 이야기할 때 나는 ‘우리가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독은 담배’ 라고 이야기한다. 농담이 아니고, 담배 한 갑엔 사람을 여러 명 죽이기에 충분한 독이 들어있다. 니코틴의 독성은 고독성농약에 준하며, 청산가리보다도 강한 맹독이다.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워도 한동안 멀쩡한 것은 어느 정도 이상 필터의 위력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필터를 통하지 않은 연기, 즉 부류연은 독초를 그대로 태우는 것과 동일한 독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당장 치명적이지 않은 이유는 연소 과정에서 독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낙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고, 다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흡연자들은 번화가에서도 우리들 사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독초를 태우면서 지나다닌다. 만약 다른 독초를 그렇게 태우고 다니면 바로 경찰에 잡혀갈 것이다. 실제론 담배보다 더 심한 독을 가지고 있는 풀도 그리 많지가 않다. 농업에서는 실제로 담배나 니코틴 제제를 농약으로 쓰고 있다. 물론 담배에 들어있는 독은 니코틴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담배 연기는 온갖 심각한 독들의 집합체이다.


 담배 연기는 그대로 흩어져 사라지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것은 눈의 착각일 뿐이다. 담배 연기는 타르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닿는 모든 것에 달라붙는다. 그리고는 그 곳에서 지속적인 악취와 독성을 뿜어낸다. 특히 주변 사람의 머리카락이나 눈, 입 안의 점막에 잘 달라붙는다. 흡연자들은 잘 모르지만, 민감한 사람들은 그로 인해 큰 고통을 느낄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 급성 증상을 일으켜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천식환자 등의 경우다.


 이뿐만이 아니다. 옷이나 머리카락, 피부 등에 달라붙은 담배 연기는 다른 곳으로 쉽게 옮겨진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담배 연기는 본질적으로 ‘끈적이는 복합적 독성 물질’에 가깝기 때문이다. 담배 연기 근처에 없던 사람들도 그로 인해 3차 피해를 입게 된다. 흡연자가 사는 집의 벽면이나 가구, 카펫 등이 오염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다. 연구에 의하면, 흡연자가 집을 떠난 뒤 2개월 후에 측정해도 독성물질들이 검출된다. 실제 잔류농약검사에서 농약이 거의 안 나오는 농산물, 과학적으로 피해가 크지 않은 미량의 방사성 물질들에는 과도할 만큼 신경 쓰면서, 훨씬 강하고 문제여지가 많은 담배의 독이 아무 데나 돌아다니는 데 신경 쓰지 않는 건 일종의 넌센스다.


 흡연의 광범위한 폐해를 보면 흡연은 결코 존중 받을 수 있는 자유가 아니다. 길거리에서 아무렇게나 독극물을 살포하는 테러와 같은 행위다. 물론 옛날에는 연막소독차를 따라다니는 아이들도 많긴 했지만, 이제는 그런 아이를 방치하는 부모가 없듯 무식한 행위는 개선되어야 한다. 사실 연막소독 자체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쓸데없다 못해 해선 안 되는 짓에 가까운데, 시민들의 무지로 인해 아직까지 시행되고 있는 전시행정이기도 하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흡연을 규제하는 데 있어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다른 OECD 국가에 비교해보면 한국의 담배 가격은 가장 저렴한데, 흡연율은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10대 흡연율은 사회적으로 우려할만한 정도가 되었으며 우리나라 국민의 제 1 사망원인은 암이다. 물론 이 높은 흡연율이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건 따로 말할 가치조차 없다.


 한국의 금연 정책은 지난 몇 년간 금연 장소를 늘리는 수준에서 멈춰 왔다. 그보다 강력한 조치들은 이루어지지 않아왔고, 그로 인해 여성 흡연자와 10대 흡연자가 증가하였다. 10대 흡연의 증가는 참 곤혹스러운 일인데, 여기엔 지나치게 낮은 담배 가격이 크게 일조하고 있다.


 흡연을 비호하는 별 해괴한 멍멍이 소리들도 문제다. 특히 참 골치 아픈 비호는 흡연자가 대체로 서민이라는 이야기다. 담배라도 있어야 서민이 애환을 달랜다는 이야기 및 서민 주머니를 턴다는 말들이다. 그러나 이런 건 그야말로 멍청하고 비양심적인, 또는 그야말로 중독자들이나 할 법한 말이다. 일단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 담배에 찌들어 건강을 망치면 진짜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딱 알맞다. 없는 집에서 암환자 잘못 나오면 집안 기둥뿌리가 뽑힌다. 더구나 담배를 피우지 않는 다른 서민에 대한 피해는 이루 말할 것도 없다. 돈이 없으면 간접흡연도 피하기 더 힘든 게 현실이다. 그리고 흡연자는 흡연으로 애환을 풀지 몰라도, 비흡연자는 흡연자들 때문에 안 받아도 될 스트레스를 더 받고 있다. 한국의 흡연자 문화는 문화랄 것도 없다. 평균적으로 보자면 최악이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이기주의 및 불결의 끝을 달린다.


 담배는 더 이상 사회에서 용인될 만한 것이 아니다. 물론 담배를 강력하게 금지시킬 필요는 없다. 위에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나는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향정신성의약품을 규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담배보다 훨씬 덜 위험하고 효능도 좋은 향정신성의약품이 많이 있다. 쾌락이나 더 명료한 정신상태, 또는 특별한 고양감을 추구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고, 그것의 부작용이 잘 조절된다면 인생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담배같이 저효율-강한 중독-고부작용인 특정 향정신성의약품에는 과하게 관대하고, 매우 다양한 다른 향정신성의약품군에는 과하게 엄격하다.


 결코 담배가 지금처럼 편하게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우선 담배를 너무 편하게 살 수 있는 여건부터 바꿔야 한다. 담배의 부작용이나 각종 폐해를 생각해보면, 적어도 담배는 의사 처방 후 살 수 있는 전문의약품으로 취급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니면 가격이라도 대폭 올려야 할 것이다. 한국의 담배 가격은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낮다. 사람들은 최저시급 1만원을 외칠 것이 아니라, 담배 1갑 1만원을 외쳐야 한다. 담배 가격 인상은 흡연율을 유의미하게 떨어뜨리고, 특히 신규 흡연자의 발생을 막는다. 그렇지만 찔끔 올려서는 효과가 없다. 한 갑에 만 원 정도는 해야 흡연자가 가시적으로 줄어든다.


 한편으로 흡연자들은 자신들이 세금을 많이 낸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흡연자들 때문에 소모되는 사회적 비용이 훨씬 크다. 또한 단순히 비용으로 계산할 수 있는 타인의 생명과 건강에 집계되기 어려운 피해를 준다는 점 또한 고려해야 한다.


 다만 강력한 금연 정책을 위해서 먼저 해결해야 할 핵심적인 문제가 하나 있는데, 현재 담배를 구매할 때 돈을 버는 쪽과 흡연자로 인해 돈을 쓰는 쪽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그것이다. 2500원짜리 담배를 사면 그 중 약 935원은 세금을 제외한 가격이고 대략적으로 담배소비세가 641원, 지방교육세가 321원, 부가가치세가 227원, 폐기물 부담금 7원,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이 354원, 연초안정화부담금이 15원 정도 들어간다. 그런데 이 중 가장 큰 담배소비세가 전액 지방세로 들어간다. 지방교육세는 말할 것도 없고.


 실질적으로 현재 담배소비세는 가장 중요한 지방세원 중 하나다. 재정 문제가 만성적인 지방 정부들은 이 담배소비세에 어느 정도 이상 의존적인 게 현실이다. 한편으로 담배가 만들어내는 온갖 해악에 비하면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은 너무 낮고, 건강보험공단이나 보건복지부는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 보면 된다. 또한 담배에 관련된 정부 부처가 너무 많기도 하다.


 현재와 같은 조세 체계에서 각 지방 정부들은 결코 금연 정책에 열심일 수가 없다. 오히려 담배를 많이 피우라고 권장해야 할 상황이다. 불법 흡연을 단속해야 하는 것도 지방 정부 몫인데, 그런 걸 제대로 할 리가 없는 거다.


 금연 정책에 들어가는 비용 자체도 문제가 많다. 1년 동안 담배에서 얻는 총 세수는 7조원 정도다. 그러나 금연 정책에는 불과 200~300억 정도만 쓴다. 이러니 금연 정책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자기 관리 열심히 하고, 잘 살려 노력하는 더 바른 시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내 생각엔 담배에 관련된 조세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 담배에 관련된 세금 및 관리를 주도적으로 하는 부처가 명료하게 정해져 있어야 한다. 담배로 지방 세수를 충당하도록 하는 시스템도 바꿀 필요가 있다. 지방 세수를 위해 다른 인센티브를 주고, 담배로 얻는 세금은 중앙 정부의 특정 부처에서 일원화하여 관리하는 게 좋다고 본다. 그리고 높아진 담배값으로 인해 들어오는 수익은 보다 강력한 금연 정책과 의료, 그리고 분리된 흡연 구역 설비 및 불법 흡연 단속 등에 쓰여야 한다고 본다.


 위에도 이야기했지만 실질적으로 금연은 혼자, 스스로의 의지로 실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담배의 중독성은 너무 강하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끊기 위해서는 클리닉과 약품의 도움이 필요하다. 클리닉에 다니면서 전문의약품을 사용할 경우, 3~5%에 불과한 금연 성공률을 40~60%까지 올릴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이걸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흡연자들에게 꼭 말하고 다닌다. 그렇지만 문제는 현재 이런 금연 전문의약품이 비보험 대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는 가급적 담배를 보기 힘든 사회일 것이다. 길거리에서 담배의 악취가 아닌, 보다 좋은 향기를 맡을 수 있었으면 한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담배 가격 인상을 요구해야 한다. 싼 담배는 한국의 의료 재정을 파탄낼 뿐만 아니라, 사회 분위기도 망치고 있다. 그리고 흡연자들을 위해 금연 전문의약품에 대한 건강보험 보조를 해줄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격리된 흡연구역을 만들어야 한다. 담배 가격을 크게 높이면 그 돈으로 그런 흡연구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흡연구역 외에서의 흡연은 모두 불법으로 규정하고, 그 경우 무거운 과태료를 물려 건강보험 재정에 보태자.




모두의 문제, 성 불평등과 유리천장

사회 2013. 7. 14. 01:01 Posted by 해양장미


 한국은 성차별이 극단적으로 강한 나라다. 한국의 성차별은 WEF(세계경제포럼)가 발표하는 성격차지수로 볼 때 2012년 기준 135개국 중 108위라는 처참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는 아랍의 이슬람 국가들과 유사한 수준의 성적으로, 한국은 그 정도의 성차별이 존재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수많은 찐따들이 게거품을 물면서 온갖 되지도 않을 반박을 해 댄다. 그런데 사실 이슬람교도들한테 성차별 문제를 꺼내도 하는 말은 거의 똑같다. 이슬람교는 여성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항변을 한다.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자료에서 한국의 성차별이 심하다는 것이다.


 WEF가 편향적인 결과를 낸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코노미스트에서 올해 3월 발표한 2011년 기준 OECD 유리천장지수를 보면 한국이 압도적으로 꼴찌다. 꼴찌도 그냥 꼴찌가 아니고, OECD 국가가 맞나 싶을 정도의 꼴찌다. 왜 WEF에서 한국의 성격차지수가 아랍 국가 수준인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자료다.





( 유리천장이란 ‘여성이나 소수민족 출신자에 대해 고위직 승진을 가로막는 조직 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소수민족에 대한 이 문제는 아직까지 두드러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주로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


 이코노미스트가 자료 조사를 편향적으로 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코노미스트의 자료에 비해 좀 더 단순하게, 여성임원 비중만 미국의 GMI 레이팅스에서 조사하여 유리천장 순위를 매긴 결과 한국은 뒤에서 2위였다. 다행히 꼴찌는 면했는데, 꼴찌는 일본 몫이었다. 그렇더라도 태국, 홍콩, 중국,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보다도 낮은 불명예를 떠안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실 내부를 들여다보면 한국의 성차별 밑 유리천장 문제는 더 심각하다. 한국은 이미 대학진학률에서 2009년부터 여성이 남성을 앞질렀다. 그와 함께 평균 수능 성적도 유의미한 정도로 여성이 더 높아졌다. 이 점은 이코노미스트의 자료 등에서는 유리천장지수 점수를 높이는 쪽으로 집계되었으나, 한국 현실은 굉장히 역설적이라 다른 국가의 표준적 기준이 안 맞을 정도다. 실제 한국은 ‘학력은 여성이 높지만, 소득은 여성이 지나치게 낮은’ 극심한 불평등이 드러나고 있다.


 예외적인 자료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유독 예외적으로 UNDP(유엔개발계획)에서 내놓는 성불평등지수(GII)는 2011년 기준, 한국이 146개국중 11위로 나온다. 굉장히 평등한 국가라는 쪽으로 나온 것이다.


 그런데 GII가 예외적으로 평등하게 나오는 것은 UNDP가 다른 기관들과는 달리, 유엔 산하기관이라 평등의 눈높이가 지극히 낮다는 데 있다. 또한 GII는 WEF의 성격차지수, 즉 GGI에 비해 비교적 단순한 몇 가지 기준 - 모성사망률, 청소년 출산율, 여성의원 비율, 중등이상 교육받은 인구비율, 경제활동 참가율 - 만을 다룬다. 애초에 맞춰진 시각이 아프리카 못 사는 국가들 같은 데 있기 때문이다.


 저런 기준에서 보면 한국은 모성사망률도 낮고, 여성의 고등교육 이수율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순위가 상당히 올라간다. 또한 한국의 미혼모에 대한 폭력적 시각은 청소년 출산율을 크게 떨어뜨리기 때문에, GII의 자료에서는 오히려 성평등을 더 이룬 것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외 여성의 저임금노동 또한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이는 기준 자체가 선진국 기준이 아닌 후진국 기준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 기준에서는 청소년의 출산율이 낮은 게 성평등과 딱히 비례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WEF는 경제 및 기회, 교육, 건강과 생존, 정치적 권한 항목에서 다양한 관점으로 조사를 하고, 성평등 자체에 보다 중점을 둔 자료를 만든다.


 즉 요약하자면 UNDP의 자료가 여성의 생존과 최소한의 존엄에 중점을 둔다면, WEF는 절대빈곤보다는 해당 사회 내에서의 성격차를 폭넓은 기준에서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선진국 반열에 든 한국이 참조할 만한 자료로는 UNDP의 자료가 잘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또 있다. 이런 성 불평등이 한국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에서 이루어지면, 그 불평등 문제는 당사자인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한테도 불똥이 튀게 되어있다. 수많은 남성 찐따들이 여성 불평등에 대해 말만 꺼내도 게거품을 무는 것 또한 그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다. 물론 그들의 지극히 감정적이고도 위법성 짙고 유아틱한 반응들은 현실 문제를 더욱 심각한 개판으로 만들어버리고 있긴 하지만.


 사람의 기본적인 속성 중 하나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합리성을 가지고 대응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어떠한 관념적 윤리성보다도 우위에 있다. 성차별에 대항하는 여성들의 태도는 과연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까? 중요한 것은 한국 여성들의 관념과 현실 차이엔 엄청난 격차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 여성이 다른 나라 여성들보다 크게 차별받는 주된 요인은 30대부터의 소득에 있다. 혼인, 출산, 양육이라는 과정을 거치다보면 여성의 주체적인 기득권이 저 멀리 내던져지는 구조에 있는 것이다. 이 문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크기 때문에, 관련되는 문제들도 커진다.


 출산으로 인한 커리어 단절은 한국 여성들에게 심각한 문제다. 슈퍼우먼이 아닌 이상 개개인이 이 난관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어떠한 사회에서 젊은 여성들의 역할은 그 지속 가능성이나 전체적인 건강함을 구성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젊은 여성들의 문제는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산되고 만다.


 결국 여성들의 합리적인 선택은 다음과 같다. 애초에 갑으로 태어나거나, 어떠한 난관이라도 뚫고 갈 만한 슈퍼우먼이 되거나, 경제적으로 충분한 능력을 가졌거나 좋은 집안을 가진 남자, 아니면 최소한 앞으로의 싹수가 파릇파릇한 남자와 혼인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거나, 아니면 남성과 혼인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경우 전반적인 인생 과정에서의 각종 손해를 떠안아야 한다.


 물론 이런 모든 합리적인 선택들은 당연히 사회 전체에 부담을 지운다. 현 상황에서, 젊은 남성들은 대체로 젊은 여성들을 충분히 만족시켜줄만한 소득 수준이나 재산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한편으로 한국은 양육 부담이 큰 국가이기에 이런 문제는 더욱 커진다. 물론 출생성비 문제도 있고, 여성들이 애초에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더 높이 올라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애진작에 포기하는 문제들도 있다.


 혼인 연령의 증가와 출산율의 극단적인 감소, 인구구조의 노령화, 잠재성장률의 저하라는 결과는 성차별의 가장 가시적인 결과물이다. 과거처럼 한국의 소득 자체가 낮고, 평균 교육수준도 낮다면 기대치 자체도 낮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국처럼 선진화된 국가에서 성차별이 극단적으로 크다는 건 그만큼 문제가 발생할 여지 또한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남성들은 문제를 직시하는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여성차별이 실제로는 남성들에게도 각종 막심한 손해를 안겨주고 있음에도 불구, 현실 문제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인해 문제를 더더욱 키우고 있다. 한편으로 여성들은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들은 하고 있지만, 그것이 충분한 성과를 이루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단기적으로 한국 사회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나마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식이라면 창업지원과 보육원 설립지원 같은 방식일 것이다. 어쨌든 여성 CEO, 여자 많고 잘나가는 직장이 많아져야 여성 소득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있고 - 군대문화가 강한 현실에서 남초직장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은 사실 몸만 여자인 경우가 많다. - , 믿을 수 있는 공립 어린이집이 많아져야 그나마 양육 부담이 줄어든다. 한편으로 젊은 사람들의 창업이 많아지고 기업이 많아져야 그래도 일자리가 많아서, 장기적으로나마 양육 부담이 줄어들 수 있으리라 본다. 물론 문화적 결함들을 해결해야 각종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고쳐지긴 할 것이다.


 


축구로 보는 한국인이 불행한 이유

사회 2013. 6. 12. 14:28 Posted by 해양장미


 어제 저녁, 축구 대표팀이 우즈벡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최강희 감독의 명예도 어느 정도 지킨 것 같아 더욱 기쁘기도 하다.


 현재 한국은 월드컵 최종예선 1경기를 남겨놓은 상태에서 조 1위이며, 본선 진출 확률이 대단히 높은 상황이다. 비록 전 경기를 이겨가면서 진출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재까지 무패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할 수 있다. 최강희 감독 부임 후 한국은 정식 경기에서는 무패다.


 그러나 만족을 모르는 한국인들은 이런 결과에도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특히 이동국에 대한 욕은 도가 지나치며,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는 수위의 공격을 시도하는 이들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과하게 욕하는 사람이 소수라면 정말 좋겠다. 그러나 아무리 축구가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기 좋은 스포츠라 할지라도, 한국 사람들의 대표팀에 대한 불만은 정상이 아니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는 게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이 수십 년 째 티켓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동안, 다른 나라들이 놀고 있었던 건 아니다. 본선에 나가보는 걸 소원으로 여기고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하는 나라들이 많다. 그에 비해 한국은 예선과정에서는 대표팀보다 사실 리그가 우선이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과 적잖은 실력 차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결코 쉽게 이길 만한 조건도 아니다.


 또한 축구란 기본적으로 이변이 곧잘 발생하는 종목이다. 강팀도 약팀한테 발목을 곧잘 잡히곤 하는 게 축구다. 그러나 대표팀에 대해 공격성을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분풀이를 대표팀에 터뜨린다. 문제는 이런 분풀이가 대표팀에게만 한정될 리가 없다는 데 있다.


 작은 것에 감사하거나 만족할 줄 모르고, 남과 매사를 비교하고, 무모하게 이상적인 것만을 남들이 해주길 바라고, 그것에 미달될 경우 화를 내는 모습은 한국인의 보편적인 자화상이다. 가까운 사이라고 예외가 결코 아니라서, 한국인들의 공격성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해치곤 한다.


 자식에게 과하게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도록 바보를 만드는 부모, 넘쳐나는 소위 블랙컨슈머 및 진상고객, 직원들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고 무조건 내 말을 들으라는 상사 등은 이 나라에 너무나도 흔하다. 혹자는 한국이 시민들은 수준이 높은데, 정치적 문제 때문에 선진국이 되는 거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한국은 정치가 아닌 시민들이 문제다.


 너무 많은 한국인들이 언제든 ‘甲질’을 할 준비가 되어 있고, 갑질을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대표팀 축구를 보면서 과도하게 화를 내는 것도 일종의 갑질이다. 나는 갑이고, 대표팀은 나를 만족시켜줘야만 하는 서비스 업종 을이라고 인지하면서 진상고객이 되는 것이다.


 한국인은 이미 많은 것을 가졌다. 그러나 한국인은 불행하다. 아시아의 수많은 축구팬들은 결코 왜 한국 사람들이 대표팀 때문에 불행한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너무 많은 갑돌이들, 갑순이들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을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리석은 피해자들과 후안무치한 사냥꾼들

사회 2013. 5. 14. 18:23 Posted by 해양장미


세상이 기억하는 2인자 홍진호




이름도 기억이 안 나는 김캐리




 그리고, 시크릿 전효성



 이들의 공통점은 이미지가 좋았다는 점.


 그리고 ‘민주화’라는 말을 부적절하게 사용해서 구설수가 되었다는 점.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극우+유해 사이트인 일베에서 ‘민주화’라는 말은 부정적인 표현으로 쓰인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아닌 군사독재를 추종하니까.


 그런데 일베를 직접 안 하는 사람들도 이 일베의 유해성에는 오염이 되고 있다. 어휘란 약속인데, 일베충들이 민주화라는 어휘의 어감을 이상하게 바꿔가면서 온라인 게임 등에서 쓰면서 수습하기 어렵게 퍼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어린 사람들이야 온라인 게임 하는 사람들이 많고, 언어는 그 자체로 생명이나 다름없기에 자기가 알아서 퍼져 나가게 되어있다. 문제는 ‘민주화’를 부적절한 의미로 사용하는 걸 들었을 때 알러지와 같은 반응을 보일 사람들이 꽤 된다는 데 있겠고.


 홍진호나 김캐리야 솔직히 이미 한물 간 (...) 상태에서 민주화 사건이 터졌고, 그들에 대한 관심사도 전효성에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에 이번 파문은 좀 커질지도 모르겠다. 일단 똑같은 짓해도 여자면 3배 이상 까인다는 건 이 나라의 법칙이기도 하고.


 여기에 굳이 한마디 하고 싶다면 알러지 보이는 니들 분노를 괜히 아이돌 하나에 돌리지 말라는 거다.


 전효성이 실수한 건 맞는데, 전효성 성격에 심히 문제가 있지 않는 한 일베충일 리는 없겠고, - 일베하는 여자는 정신 감정을 한번쯤 해볼 필요가 있을 테니까 - 어휘 감각이 좀 무뎌서 경솔한 발언을 한 것 이상은 아닐 거다.


 나는 문제의 원흉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휘가 오염된 건 일차적으로는 일베충 탓, 이차적으로는 바닥 민심을 얻지 못하고 있는 민주 세력 및 깨시민들에게 있다. 더 잘못한 쪽이 덜 잘못한 쪽의 사과를 못 받아들이는 밴댕이짓은 진짜 하지 말라. 알러지 보이는 당신들이 사실 더 잘못했다. 물론 실질적으로 기대는 안 한다. 진짜 밴댕이는 맛있기라도 하지.


 그리고 어부지리.





상편 링크중편 링크


 과거 맥시스의 심시티 시리즈를 즐긴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번에 신작이 나오긴 했지만) 특히 히트상품이었던 2000이나 3000 등을 해 보면, 기술의 발전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중간 과정에서의 환경오염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첨단 산업과 신재생 에너지들이 결국 꿈같은 유토피아를 만들어내곤 했다. 그러나 막상 실행단계에 들어간 현재,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라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각기 예를 들어보자면 우선 깨끗한 발전일 것 같은 수력 발전은 사실 생태계를 많이 파괴한다. 이명박 정권이 4대강을 강행하면서 16개나 되는 보와 수력 발전소를 지었지만, 그 결과 소위 녹조라떼 사건이 벌어질 정도로 참혹한 생태계 파괴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수력 발전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수량 관리를 위해 어느 정도의 댐이나 보는 필요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이 되면 얻는 것에 비해 잃는 게 너무 크다.


 풍력 발전은 실제 건설 후 많은 단점이 드러났다. 일단 너무 시끄럽다. 그리고 자꾸 새들이 와서 부딪쳐 죽는다. 친환경일줄 알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생태계를 파괴하는 소음덩어리인 것이다. 게다가 은근히 고장 빈도가 높고, 보수도 많이 필요한 편이다. 쉽게 말해 돈이 많이 들어간다.


 조력 발전은 갯벌과 해양 생태계를 광범위하게 파괴한다. 일례로 시화호 조력발전 결과 오이도 근처에선 매년 잡히던 꽃게는 잡히지 않고, 녹조류와 해파리만 엄청 늘어났다고 전해진다. 피해 규모를 보면 수력발전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 같다. 암만 봐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발전 방식이다. 현재 조력발전을 강행하려는 각종 움직임과 환경단체 및 지자체들의 반발로 인해 갈등이 꽤 있는 상황인데, 아직 대중적인 이슈로까지 발전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조력 발전소가 다수 건설된다면 그 피해는 4대강보다 더욱 클 것 같다.


 지열 발전은 좋은 발전이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지역이 드물다. 한국 같이 화산이 딱히 없는 지형에서는 실효성이 의심 간다 할 수 있다. 일본이라면 해 볼만 할 지도 모르지만. 실제 아이슬란드는 지열 발전 비율이 높다.


 태양열 및 태양광 발전은 그나마 여러 모로 가장 괜찮다. 다만 문제는 효율이 낮다는 데 있다. 이집트 같은 사막 국가라면 모를까, 한국 같은 곳에서는 결코 주력 발전수단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태양광 발전 자체에 대해선 긍정적이다. 특히 한국은 동일 위도에서 일조량이 높은 편이다.


 결국 현재 인류가 가지고 있는 가장 현실적인, 그리고 친환경적인 에너지 확보 방안은 가스 발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석유 발전도 근래 매연을 많이 저감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 나름대로 친환경적인 운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친환경적으로 하려면 코스트가 좀 더 들어갈 뿐이다.


 한국은 이제 원자력을 줄여가면서, 4대강 보도 헐고 풍력이나 조력 등에 가진 환상을 접는 가운데 화력 발전의 비중을 대폭 늘려갈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런 방안대로 나아갈 때, 현재와 같은 추세로 전력 사용량이 늘어난다면 정말 화력 발전소를 엄청나게 지어대야 한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한국의 전기 사용 양상은 꽤 특이한 데가 있다. 일단 한국 가정은 아마도 세계 유일이라 할 만한 누진세를 낸다. 한국인은 가정에서 정말 전기를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한국 가정의 전기 사용량은 일본, 유럽, 미합중국에 비교하면 1/3도 안 된다. 누진세 때문이다. 한전에서 생산하는 전기의 15% 정도만 가정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85%에는 누진세가 없고, 원가만큼의 요금 부과도 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가정용 전기는 대단히 비싸지만 산업용 전기는 원가에 못 미칠 만큼 저렴하다. 또한 유류세가 비싸기 때문에, 한국의 전기 소비 양상은 쉽게 말해 산업 기준에서는 낭비에 가깝다. 예를 들어 난방을 할 때, 기름을 그냥 때서 난방을 하는 게 당연히 기름을 태워 발전을 한 후 변전, 전송 과정을 거친 후 전기로 난방을 하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효율이 좋다. 그런데 한국에선 산업용 전기가 워낙 저렴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업소 및 회사에서는 마음껏 전기로 난방을 한다. 그게 더 싸고 편하고 효율적이다. 냉방도 마찬가지다. 반 우스갯소리로 여름에는 피서하러 출근한다는 사람들도 꽤 있다. 집에서는 못 돌리는 에어컨이지만, 사무실에서는 마음껏 돌릴 수 있다.


 한국의 심각한 도시화와 아파트 위주의 주거 형태, 근래 지은 건물이 많은 상업 지구 형태도 전기 사용 문제에 있어 별로 좋지 않다. 한국의 대도시는 심각하게 녹지가 부족한 편이고, 위성사진으로 보면 온통 시커먼 정도라 열섬 현상이 매우 심각하다 할 수 있다. 조경을 늘려 녹화율을 높이면 모를까, 현재 한국의 대도시는 한여름에는 못 견디도록 더운 게 맞다. 백엽상에서 측정하는 계측온도와 실온도간의 차이가 있다. 게다가 에어컨 사용비율이 높아질수록, 도시 전체의 온도는 그만큼 올라간다. 에어컨은 어디까지나 실내의 열을 실외로 배출하는 도구이며, 작동 과정에서도 적잖은 발열이 있다. 실내가 시원해질수록 실외는 그 이상으로 더워지기 때문에, 도시의 온도는 그만큼 더 올라간다.


 난방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게, 한국은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고층아파트가 많은데 이 고층아파트들은 한번 지어놓으면 손보기가 상당히 어려운 편이다. 일단 너무 높기 때문에 보수공사를 하려면 코스트가 많이 발생하는데다가, 간단한 공사만 하려 해도 이웃에 피해가 된다. 단독 주택에 주로 거주하는 서구인들이 자신의 집을 일상적으로 고쳐가면서 쓰는 것과 비교해볼 때, 한국 아파트는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으면서 사는 형태에 가깝다. 문제는 이것이 수동적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한국의 평균적인 아파트는 그 건축의 완성도나 설계에 있어 그다지 단열이 좋은 편이라 보기는 어렵다. 부실 공사율이 높고, 평균적으로 단열재를 충분히 넣었다 보기 어렵다. 그런데 단열재를 보강하거나 추가 공사를 하는 게 그리 쉽지가 않다. 설계 구조 및 화재 위험 등 때문에 직접 연료를 때는 방식으로 난방을 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결국 한국의 에너지 문제를 개선하려면 다음과 같은 조처들이 필요하다.


1) 풍력, 조력, 수력 발전소 등을 건설하지 말고, 원자력 발전소를 하나하나 폐쇄해가는 동시에 가스 발전소나 매연 저감 설비가 되어있는 석유 발전소를 늘려나가야 한다.


2) 가정용 전기의 누진세를 없애 전기 요금을 종량제로 바꾸고, 기본요금을 최소한 전기 원가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


3) 아파트 위주의 주거 양상을 완화하고, 도시의 확대를 제어하는 동시에 도시의 녹지율을 높인다.


4) 자가 태양광 발전 비중을 높이도록 목표를 세우고, 보조금을 더 지급하는 등 방안을 마련한다.


5) 유류세를 낮춘다. 한국의 유류세는 너무 비싸다.


6) 더욱 많은 가스 자원과 기술을 확보한다.

 이와 같은 조처를 취하면서, 현재 여러 모로 꼬여버린 한국의 에너지 문제를 보완해 나가야 한다.


 이젠 석유의 시대가 천천히 저물고 가스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기분이다. 몇십년 전만 해도 유전의 천연가스를 그냥 태워버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이미 가스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기존의 유전가스 외 새로 각광받고 있는 CBM, 셰일가스 등은 향후 수십 년간 인류의 주된 에너지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또한 이미 가스를 수입할 수 있는 루트가 다양해져가고 있고, LNG 가격도 낮아지고 있다 할 수 있다.


 가스를 직접 태우는 방식의 난방 비율을 늘리는 것 또한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안전관리 문제가 있긴 하지만, 잘만 관리한다면 전기 난방에 비해 훨씬 효율이 좋을 수밖에 없다. 물론 현재의 산업용 전기 가격을 유지한다면 절대 불가할 테니,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끝)

브루투스 홍세화

사회 2013. 3. 26. 15:34 Posted by 해양장미

 그의 트위터에서 펌.




 그냥 택시나 모시라. 혹시라도 노출도 있는 옷 입은 여자 탔다고 다 구경해놓고는 뒤에서 욕하진 말고. 


 이러다간 진보 코스프레라도 하면 마녀사냥 당하는 시대가 곧 오겠네. 




만약 피해자가 고은태를 고소했다면?

사회 2013. 3. 25. 09:48 Posted by 해양장미

 보다못해 너무 짜증나서 한마디 더 보탠다.


 상상력과 통찰력이 빈곤하다 못해, 난민 기아 수준인 자칭 진보좌파들이 자꾸 피해자한테 '왜 경찰서에 가지 않았는가?' '왜 법적으로 해결하지 않는가?' 운운하는데.


 앞으로도 당신들은 공인에 의한 어떤 성범죄 피해자라도 꼭 법적으로만 먼저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당신들이 적대하는) 새누리당 인간들에게 피해를 입었건 어떤 권력자에게 피해를 입었건 일관적으로 피해자를 까야만 이중잣대가 아니게 될 것이고,


 만일 피해자가 고은태를 고소했다면 그 다음 일어날 사태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해봤는가? 하긴 목 위에 달린 게 대가리가 아닌 머리라면 고은태 실드칠 생각 자체를 안하겠지.


 여하튼 고소를 하건 폭로를 하건 뭐가 달라지겠는가? 오히려 고소하면 한층 더 기자들이 맛있는 먹이감 취급하며 달려들겠지. 중요한건 성희롱을 한거고, 피해자가 그걸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는 것. 다만 폭로는 적당한 선에서 묻고 넘어갈 수가 있으나, 고소를 하게 되면 (합의로 빠져나가지 않는 한) 끝까지, 갈 데까지 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도 멍청해서 이해가 안가면 외워라.


 한편으로 이런 언어적 성폭력 사건은 통상적으로 고소하고 그럴 정도의 성질은 아니다. 강제추행사건 정도 되어도 법률적으로 해결하려면 엄청 복잡하고 힘들다. 정황상 고은태가 유죄이기는 하나, 그것을 법률적으로 해결하건 안하건 어디까지나 그건 피해자의 권리다.


 기본적으로 고은태는 인권운동가면서 그런 처신을 한 게 기본적으로 욕먹다 못해 매장당할 수밖에 없는 거고, 그걸 무리하게 실드치고 있는 것들은 그냥 공범인 거다.


 자칭 진보좌파 것들이 가진 이런 양심실종과 통찰력의 빈곤함 덕에 이 땅에 사는 모두가 피해를 입는다는 게 참으로 안타깝다. 그냥 당신들은 사라져주는게 모두에게 득이다. 그대들 사라진다고 진보주의 할 사람 없는 거 아니다. 오히려 당신들이 먼저 그 위치를 점령하고, 뻘짓거리만 계속 하니깐 한국에서 진보주의가 자꾸 죽는거 아니겠나?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사태 돌아가는 걸 보니 글을 자꾸 여러 번 쓰게 된다.


 JS는 참으로 혐오스러운 폐기물성 낙서를 반복해 쓰고 있고, 그러다보니 유시민 이후 처음으로 내가 나랑 상관없는 사람을 싫어하게 될 것 같고, 이 연장선상에서 아무래도 근래 느끼고 있던 내 생각에 좀 더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된다.


 자칭 진보주의자들은 다분히 이중잣대에 실제로는 수구세력에 더 가까운 양상을 보이곤 한다. 보다 외국인 노동자나 한민족이 아닌 한국인, 조선족 등에 대해 적대적이고, 여성문제에 대해서도 딱히 더 진보적이라 할 만한 게 (평균치를 본다면) 정말 전혀 없다. 단지 좀 더 사회주의적이라는 것만이 그들이 진보 간판을 들고 있을 수 있는 증거인 듯 하나, 사회주의도 이미 낡은 관념이 된 지 오래인데다 그 외 딱히 프로그레시브하다거나 리버럴하다거나,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한때 담론을 지배했던 진보세력은 스스로의 무지와 비열함, 의식적 낙후성, 그리고 두드러지는 이중잣대 등으로 인해 스스로 쇠락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기에 더해 착한척까지.


 대조적으로 새누리당 세력은 간판이나 말은 보수인데 하는 행동은 오히려 진보적이다. 최초의 필리핀계 국회의원과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으니, 어쨌든 혁신을 하고 있지 않은가? 


 성추문을 일으켰을 때의 대응도 다르다. 과거 최연희, 강용석 등이 성추문을 일으켰을 때, 소위 자칭 보수세력이 지금 고은태를 비호하듯 행동했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고은태에 비해 그 의도에 있어선 별것도 아닌 말로 구설수에 올렸던 강용석의 예를 반대로 적용해보자. 만일 강용석의 아나운서 발언을 들었던 여성이 그걸 트위터에 터뜨렸다 치자. 그래서 강용석이 사과하고 잠수를 탔다. 그런데 소위 강용석과 친한 자칭보수 유명 트위터리안 누군가가 지금 고종석 하듯 여성에게 공격을 해대고, 보수 지지한다는 사람들이 나서서 지금 트위터리안들 고은태 실드치듯 행동했다면 어떻게 보였을까?


 내가 고은태 사건에서 보고 있는 것은 저열함과 공격성으로 점철된 혐오스러운 광경인 것 같다. 인권을 부르짖던 자들의 사악함에 경멸을 느낄 수밖에. 

 

고은태 사건에 대한 이야기 추가

사회 2013. 3. 23. 13:07 Posted by 해양장미

 의외로 고은태를 변호하는 사람이 많은 듯하여 이야기를 살짝 추가한다. 전편은 여기.


 내가 개인적으로 유독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이중잣대다. 물론 누구나 어느 정도의 이중잣대를 가지고는 있을 테지만, 이중잣대를 인정도 안하고 없애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사람을 정말 안좋아한다.


 그런데 지금 고은태를 변호하는 사람들은 매우 격차가 심한 이중잣대를 들이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이러던 사람이었고.


 강용석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현재 SNL에서 활약 중인 강용석은 정말 이번 고은태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었다. 강용석은 본래 나쁘게 말하면 경박하고, 좋게 말하면 가볍게 재미있는 성격인 것 같은데 그 경박함 덕에 지난 2010년에 입을 잘못 놀렸다고 본다. 그와 같은 유형이라면 나름 걱정해준다고 했던 게 아나운서 발언이었는데 결과적으론 그리 엉망이 될 수도 있어서. 


 강용석은 사실 마포구 의원일 때 마포구에 살지 않는 나에게도 좋게 보였던 사람이다. 그는 일반적인 일을 하기엔 과다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일 수 있고, 그 에너지를 잘 사용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 아나운서 발언 이후 정치인으로는 하향세를 타더니, 이후 정말 맛이 간건지 (...) 안철수와 박원순에게 무리수를 두다가 정치 인생을 실질적으로 마감하고 말았다.


 그런데 당시에 강용석을 비난하던 사람들이 지금 고은태를 비호하는 건 대체 뭔가?


 강용석의 말은 말을 고모양 고딴식으로 해서 그렇지 (...) 내용상으로는 우려 섞인 이야기는 맞았다. 물론 국회의원이 그런 말을 하면 안 되겠지만, 죄질로 치면 고은태에 비하면 가볍다 못해 새털같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강용석은 고은태처럼 보호받지 못했다. 아나운서 협회에 소송까지 걸렸었고.


 지금 시점에서 고은태의 저런 과거 발언을 보면 사실 뭐라 할말을 못 고르겠다. (...) 그는 한국의 문화적 진보주의자들에게 너무 큰 피해를 끼쳤다. 정말 지금 그를 변호할 때가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 그를 가급적 깔끔하게 사회적으로 묻어버려야만 (...) 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것이 본 사건의 피해자에게도 위로가 되는 일일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