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태 사건에 관한 이야기

사회 2013. 3. 23. 01:02 Posted by 해양장미


 별로 좋은 사건이 아니지만, 짧게 조금만 언급하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사건을 잘 모르시는 분을 위해 사건 정황에 관한 기사를 하나만 링크하겠다.


 나는 비신론자이며 세상의 모든 공공의 법률과 규칙은 비신론을 기준으로 규범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는 천부인권 개념은 현대에 폐기되어야 할 개념이라 생각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이고도 감성적인 합의의 영역에서 인권은 중요하다 생각한다.


 평소 고은태의 글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아왔고, 엠네스티가 딱히 공정하게 정의만을 수호하는 단체라 여겨오지도 않았다. 또한 고은태가 DS를 즐기는 돔인 것에 대해서도 들어본 적 없었다. DS가 뭔지에 대해 조금 이야기하자면, DS는 지배-피지배를 의미하는 것으로, 통상적으로는 SM행위가 수반되지만 가학-피가학의 SM과는 개념상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다만 문화적으로 한국에선 SMer들이 대부분 DS관계를 맺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본 사건에서 고은태의 DS취향 자체를 문제시 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비신론적 인권은 본질적으로 합의의 문제고 오히려 DS같은 소수취향을 존중하는 것 또한 인권의 범주라 생각한다. 이 문제를 보수적 윤리성의 문제로 재단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근본적으로 인권은 관습보다 상위 관념이다. 다만 고은태가 저지른 핵심적인 잘못이라면 역시나 눈치와 합의의 부재 및 이로 인한 준성범죄 행위일 것이다.


 사실 대부분 피지배욕구를 가진 서브들은 마조히스틱한 성향을 가지고 있고, 그러다보니 소위 돔들은 서브들이 강제적이거나 반강제적인, 공격적인 성적 언행을 좋아하거나 보다 쉽게 받아들일 거라는 기대를 하고 실행에 옮기곤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브건 마조히스트건 개인차는 크고, 대부분의 서브는 자신을 아무나 함부로 대하는 걸 잘 용납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공인으로 고은태는 충분히 조심하지 않았고, 성적 희롱 및 언어적 추행행위를 했다.


 널리 퍼진 착각에 대해 다시 한 번 이야기하자면, 여자가 쉬워 보인다고 무조건 들이대는 것은 범죄다. 식탐이 강한 사람이라고 아무거나 막 먹는 것은 아니듯, 마찬가지다. 그런데 여기에 고종석까지 여자가 정숙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그래서 혐오스럽다고 한 마디 거들었으니, 참으로 자칭 ‘진보적인’ 남자들의 마초적 수구성은 골치 아픈 문제라 해야만 할 것 같다.


 고종석 관련은 여길 참조. 세상에 참 믿을 놈 하나 없다.


 혹자는 ‘여자라서’ 박근혜를 찍은 여자들을 비난하곤 한다. 그런데 나꼼수건 (참조)  고은태건 고종석이건 여성 문제에 관해 이 모양 이 꼴인데, 어쩌겠는가. 얼마 전 인터뷰에서 나경원 전 의원이 한 말이 좀 인상 깊었는데, 이번 사건에서 다시 떠올라서 인용해본다. ‘(서울법대에 다닐 때) 1학년 때부터 선배들에게 불려가 의식화 교육받았다. (중략) 자유로운 토론이 아니라 한 가지 답을 정해놓고 강요하는 분위기가 싫었다. 웃기는 게 그때는 선배들이 여학생들 치마도 못 입게 했다. 어떻게 법대 여학생이 치마를 입고 다니느냐는 거지. 정말 비민주적이었다. 여전히 야당의 문제가 그런 것 아닌가?’


 어쩌면 맞는 것 같다. 지금도 좀 그런 것 같다.



상편 링크


 전편에 깜빡하고 말하지 않고 넘어간 게 있는데, 우고 차베스는 윤리적 기준에서 보면 나쁜 사람이 맞다. 내 말은 그와 같은 사람도 세계의 균형을 위해서는 하나쯤 있는 것도 괜찮다는 거였다. 그럼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서,


 현대 산업ㆍ정보 사회는 화석 연료로 만들어졌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화석 연료 없이 우리는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수준의 물질문명을 결코 누릴 수 없다. 특히 석유는 석탄보다 정치적으로 더 중요하다. 석탄은 석유에 비해서 덜 자본집약적이고, 권리가 분산되어있는 편이다. 그러나 석유는 그렇지 않고, 활용도는 석탄보다 높다.[각주:1]


 한편으로 흔히 한국을 석유 산업과는 관련 없는 나라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한국은 나름대로의 석유ㆍ화학 산업 강국이다. 한국의 3대 산업은 IT와 중화학공업, 그리고 석유다. 한국의 전체 수출비중 중 석유가 차지하는 비율이 그리 낮지 않다. 의외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말 그렇다. 한국은 유전을 소유하지 못한 나라이지만, 대신 원유 가공 기술과 설비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한국은 원유를 수입해서 그것을 분리ㆍ가공한 후 수출해서 돈을 번다. 이 때문에 흔한 통념과는 달리 한국 정유회사들은 유가가 오르는 게 유가가 떨어지는 것보다 경영에 유리하다. 유가 하락 시 주유소의 기름 값이 빠르게 떨어지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이것이다. 또한 한국은 해양시추에 필요한 드릴쉽을 건조하는 (실질적인) 세계 유일의 국가다.[각주:2]


 21세기 초의 석유 가격 상승은 다양한 효과를 일으켰다. 높은 가격에서 유가가 안정되었고, 가격 상승의 요인 중 하나로 석유의 매장량 문제가 주목받게 되었다.[각주:3] 또한 지구온난화 문제도 점점 심각하게 인식되게 되었기 때문에, 세계는 대안 에너지를 찾아 나서는 움직임이 가속화되었다. 그 중 현재까지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천연 가스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선 천연가스 위주의 에너지 재편은 일어나고 있지 않다.


 상편에서부터 설명한 세계정세와 근래의 추세를 놓고 볼 때, 한국의 에너지 정책 및 시스템 특성을 정리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지리적ㆍ정치적으로 화석연료 수입에 높은 코스트가 든다.

2) 석유ㆍ화학 산업이 발달했지만, 유전에 대한 소유권이나 채굴에 관한 산업에서는 경쟁력이 없다.

3) 전기 가격, 특히 산업용 전기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

4) 전력 생산에 있어 원자력 비중이 높고,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원자력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5)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기술 경쟁력은 있지만 정부 보조가 들어가는 국가와 비교해 볼 때 신재생에너지 기업의 경쟁력이 모자라다. 사람들의 관심도 모자라다.

6)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의 한국식 아파트 주거형태는, 필연적인 전기 냉난방 수요를 가져온다.


 이 문제들을 핵심적으로 정리하자면, 에너지 문제에서 한국은 항상 불안정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장기적으로 해결할 만한 방안을 만드는 데는 실패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에는 애초에 불리한 조건, 정권교체로 인한 기존 정책의 대규모 수정, 근시안적이고 부실한 주택 건설, 지구온난화 등이 주된 원인이 되어 왔다.


 우선 한국은 중동의 주된 산유국에서 거리가 너무 멀다. 이는 높은 에너지 코스트를 불가피하게 한다. 자원의 수급이라는 면에서 기본적으로 입지조건이 나쁘다. 게다가 북조선 때문에 육로가 막혀 있어서, 도로나 철도를 통한 에너지 운송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천연가스를 직접 끌어올 수 있는 가스관 연결도 불가능하다. 만약 북조선과의 군사적 문제가 해결된다면, 한국의 에너지 수급은 훨씬 나아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무조건 선박으로 원유나 석탄, 천연가스를 실어 와야 한다. 그런데 또 동아시아는 여름은 너무 덥고, 겨울은 너무 추워서 전기냉난방 수요를 높게 한다.


 한국은 이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석유화학 산업을 발달시키고, 원자력 기술을 익혔다. 또한 수력 발전도 적잖게 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의 원자력 발전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원자력 발전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원자력 발전의 사고율과 그로 인한 피해를 볼 때, 원자력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만인 것 같다. 실제 원전에서 작은 사고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후쿠시마나 체르노빌처럼 돌이킬 수 없는 사고도 약 20년 주기로 일어난다. 게다가 한국은 분쟁위험성이 현실적으로 있는 나라다. 과연 전시에, 또는 테러 위험에서 원전을 지킬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더구나 원전에는 저농축우라늄이 들어가야 하는데, 한국은 우라늄 농축을 못한다. 군사적 독립성을 가진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우라늄 농축 기술을 발전시키고, 그 권한을 얻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미합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핑계로 반대하고 있다. 즉 한국은 이미 농축되어있는 우라늄을 구입해야만 하는 나라다. 같이 원자력 발전을 해도 미합중국이나 프랑스, 일본 등에 비해 가격 면에서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다가올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논의하려고 한다지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각주:4]


 또한 현재 한국에 있는 적잖은 원자력 발전소가 설계수명을 이미 다했거나, 다해가고 있는 상황임에도 운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원자력 기술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는 기본적으로 중립적일 수가 없다. 한국에서 원자력 발전을 계속 해야만 괜찮은 일자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에너지 관리 입장에서도 막대한 전기를 생산하는 원전이 몇 개 정지해버리는 건 큰일이다. 지난겨울 에너지 수급난이 있었던 것 또한 원전 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이다. 원전이 동시에 몇 개가 문제가 일어나 작동을 멈췄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것을 어떻게든 고쳐서 계속 쓸 생각이다. 그밖에 ‘원전은 안전하다’고 광고를 하는 데도 꽤 돈이 들어가고 있기도 하다.


 왜 미리 제대로 대비를 안했냐고 불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전력 수급에는 복잡한 문제가 많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도 발전소를 안 지은 것은 아니다. 4대강 사업은 분명 수상한 사업이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력 발전소를 16개나 짓긴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전력은 현재 불안할 정도로 모자라다.


 근본적으로 전기냉난방이 증가한 게 에너지 사용증가의 큰 원인이긴 하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어딜 가나 에어컨이 있지는 않았고 난방에도 전기를 덜 썼다. 20년 전에는 아예 에어컨은 잘 안 썼고, 난방도 장작, 석탄, 기름, 가스 등을 직접 때는 곳이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지식경제부는 (일단 급한 대로) 석탄 발전소 12기와 가스 발전소 6기를 짓겠다는 계획을 지난 2월에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또한 제동이 걸렸다. 석탄 발전은 환경오염이 심하기 때문에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환경부에서 나온 것이다.[각주:5] 이에 대한 뾰족한 대책이 대통령에게 있을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결국 산업용 전기세의 가파른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세는 그 동안 인상을 미뤄오는 가운데 분명 너무 저렴하게 공급되고 있기는 하다. 실제 생산비보다 싸게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한국 산업의 경쟁력에 크게 일조하고 있긴 하다. 다만 이젠 모두가 산업용 전기 코스트를 공동 부담하는 게 버겁다.


 그리고 당장은 어쨌든 가스 발전소를 늘려서 전력수급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가스 발전은 석탄 발전에 비해 분명히 비싸지만, 온실 가스를 훨씬 덜 배출한다. 또한 향후 북조선과의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세계의 주된 천연 자원이 가스로 변화할 것을 감안하면 미리 가스 발전에 투자하는 게 바람직할 거라 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더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계속)


  1. 기술적으로는 석탄을 석유화시키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현 시점에선 그 과정은 금전적인 이익이 없다. [본문으로]
  2. 처음부터 드릴쉽을 한국에서만 건조한 건 아니다. 그러나 드릴쉽은 고도의 핵심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드릴쉽을 건조할 수 있는 국가는 그리 많지가 않다. 이런 드릴쉽은 군용함과 호화 여객선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함선으로, 척당 가격이 비싼 경우 1조원에 이른다. 다만 한국은 드릴쉽을 건조하는 국가임에도 드릴쉽에 들어가는 각종 핵심 기술과 브랜드는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드릴쉽 건조로 인한 이익을 다 가져가지는 못하고 있다. [본문으로]
  3. 실제로는 석유가격상승에 잔여 매장량의 팩트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심리와 투기자본이 주된 이유였다. 단, 심리에서는 지구상의 총 석유잔여량 위기설이 한 몫 하긴 했다. [본문으로]
  4. 참조 링크. http://www.segye.com/Articles/News/Politics/Article.asp?aid=20130313005110&subctg1=&subctg2=&OutUrl=naver [본문으로]
  5. 참조 링크. http://www.cnews.co.kr/uhtml/read.jsp?idxno=201302271643448430888 [본문으로]

담배값 인상안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

사회 2013. 3. 9. 21:29 Posted by 해양장미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파격적인 담배값 인상 법안을 발의했다. 평소 보행 및 노상 흡연과 금연구역 흡연 등에 적잖은 피해를 입어온 비흡연자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금연구역조차 제대로 단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감안할 때 김재원 의원의 담배값 인상안에 여러 모로 찬성한다. 담배는 비흡연자에게 적잖은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지울 뿐만 아니라, 2ㆍ3차 간접흡연 및 화재위험 등을 발생시키는 등 참으로 좋지 못한 물건이다. 특히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자신이 끼치는 피해에 대해 양심이 없다.


 다만 나는 한국의 흡연 문제가 좀 큰 게, 흡연 문화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한국은 성별과 나이에 관련 없이 모두들 시가렛을 피워대는 나라다. 이 시가렛은 휴대성이 좋고, 가격이 싼 데다 아무데서나 손쉽게, 짧은 시간 안에 필 수 있기 때문에 비흡연자에게 피해가 크다고 생각하고 있다.


 흡연자들도 탈출구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흡연 자체를 줄여나가는 게 좋겠지만, 그 주된 대상을 시가렛으로 하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시거나 파이프, 전자담배, 스누스[각주:1]등은 타인에게 피해도 안 주거나 거의 끼치지 않는 데다, 건강에도 시가렛보다는 훨씬 낫다.[각주:2] 또한 시거나 파이프의 경우 한 대 피우는 데 그만큼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흡연량 자체도 줄어들 거라 기대할 수 있다. 


 흡연자들을 대체로 좋아하기 어렵지만, 무언가 단속을 하고 제어를 할 때는 그로 인한 부작용을 예상하고, 탈출구를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 전자 담배를 피우거나, 집에서 조용히 파이프를 즐기는 것은 괜찮은 취미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특히 전자담배의 경우는 국가가 그것을 시가렛과 같은 수준으로 세금을 매길 마땅한 근거가 없다.


 또 한편으로 반드시 금연 구역을 늘리고, 공공 흡연실을 제공하는 것도 함께해야 할 것이다.


  1. 니코틴 캔디 같은 거라 생각하면 된다. 아직 한국에는 거의 보급되지 않아서 세금 규정이 없다. [본문으로]
  2. 시가렛의 경우, 흔히 속담배라고 말하는 방식으로 연기를 깊이 들이마시는 식으로 피우곤 하기 때문에 건강에 더 안 좋다. 상대적으로 시거나 파이프는 그런 식으로는 잘 피우지 않는다. [본문으로]

 지난 5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타계했다.


 그는 사담 후세인과 함께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항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지도자였고, 세계적인 독재자 중 한 명으로 평가가 교차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좀 더 잘하길 바라는 편이었고, 나름대로 그가 하는 행동이 세계에 어느 정도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었다.


 차베스가 반미세력의 핵심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석유였다. 베네수엘라는 사우디 이상의 풍부한 매장량을 가진 산유국인데, 차베스는 석유 자원을 국유화시키고 카리브 해의 17개 국가에 2005년부터 국제 유가의 절반 가격으로 석유를 공급해오고 있었다. 차베스의 계획은 대략 유로존과 같은 중ㆍ남아메리카의 연대를 구성하여 미합중국의 패권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정치인으로는 젊은 나이에 암으로 사망했다. 세계는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한 강력한 도전자 하나를 또 잃었다.


 개인적으로는 팍스 아메리카나에 의한 질서를 어느 정도 이상 좋게 생각한다. 그러나 팍스 아메리카나는 정말 나쁜 짓을 많이 해 왔다. 다만 내가 그들을 그나마 좋게 생각하는 건, 그래도 소비에트나 나치에 비하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도 경쟁자가 필요하다. 소비에트 주도의 공산권이 사라진 이상, 어쨌든 경쟁자가 있어야 질서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차베스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향후 베네수엘라의 석유와 정치가 국제 정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모를 일이다. 한편으로 그는 사회주의자들의 아이콘이기도 했다.[각주:1]


 중요한 건 21세기 이후 천연 자원이 세계의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판세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데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 시작은 닷컴버블붕괴와 엔론사태였다고 본다. 이 중 엔론사태는 세계 경제사에 길이 남을 대형 사건이었다.


 엔론은 미합중국의 7대 대기업이었다. 갑작스레 파산하기 전 종업원 수만 해도 2만 2천명에 이르렀다. 포춘지는 1996년부터 파산을 맞이하는 2001년까지 엔론을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았다. 이 엔론은 미국 최대의 에너지 회사였다.


 문제는 엔론이 실제 재정 상태가 엉망임에도 불구, 회계를 조작하여 건실한 기업으로 위장하고 있었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엔론은 광케이블 사업에 과다한 투자를 해놓은 상태였다. 문제는 2000년에 닷컴버블 붕괴가 있었다는 데 있다.


 90년대엔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문제는 이것이 주식시장에서 과도한 버블을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 이 위험을 피해갔던 투자자는 그리 많지 않다. 워런 버핏이 큰 명성을 쌓게 된 건 이 닷컴버블과 이후의 엔론사태에서 위험을 회피하고, 합리적인 리스크를 감수함으로 인해 막대한 돈을 벌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닷컴버블붕괴는 미합중국의 경제적 상황 자체를 아주 나쁘게 만들었다. 엔론사태 이후 엔론과 비슷하게 많은 기업들이 무너졌다. 회계조작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가 내려갔다.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IT와 주식시장은 신뢰를 잃었다. 또한 회계부정 사태로 인하여 기업 상장 절차가 강화되었다.[각주:2] 그에 각종 파생상품과 금융업이 주목받게 되고, 자본은 주식시장이 아닌 원유와 귀금속, 그리고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갔다. 이 시기의 유가, 금, 그리고 부동산 폭등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아직도 선명할 것이다.


 자본이 기술과 혁신에 몰리는 게 아니라 원자재와 부동산에 몰린다는 건 기본적으로 불운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시장은 심리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이 시기가 많은 국가들에게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기술과 좋은 시스템을 가진 국가보다 자원을 가진 국가가 더 빠른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브릭스로 불리는 국가 중 브라질과 러시아의 성장은 원자재의 가격상승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그 밖에 자본의 유동성이 높아지면서 세계 경제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그 시기는 한국 기준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임기와 거의 일치하였다. 발전한 IT기술은 IT자체의 성장보다는 유동성의 증가에 활용되었다. 이젠 누구라도 쉽게 외국에 투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축구에 오일머니가 등장하게 된 것도 이 시기다.


(계속)



  1. 가끔 차베스는 좋게 평가하면서 박정희는 나쁘게 평가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건 좀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은 한다. 내국인 입장에서는 차베스나 박정희나. [본문으로]
  2. 한국도 이 점에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미합중국의 경우 엔론 이후 한동안 이런 규제를 가했지만, 2012년에 다시 규제를 완화하여 소기업에 대한 금융 혜택을 제공했다. 상대적으로 각종 리스크와 버블을 두려워하여 규제를 강화해놓은 한국 방식은, 강력한 신생 기업이 생기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할 수 있다. 주식시장과 실질적인 기업 투자에 관한 이야기는 언젠가 따로 할 생각이다. [본문으로]

 스스로를 마초라 부르는, 그러나 진실은 찐따에 좀 더 가까운 이 시대의 다수 남성들은 그들의 ‘평균적으로 박약한’ 지적 수준 때문에 남자는 원래 가사노동을 안 하는 거라고 믿으며 - 그러나 종종 마지못해 하며 - 숨을 쉬고 있다. 그러나 남자들이 집안일을 안 하게 된 것은 지극히 최근의 일이었다.


 ‘사랑방’이라는 단어는 다들 알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이 단어가 정확히 뭘 뜻하는지 잘 모른다. 전통한옥의 구조를 보면, 사랑방은 안방보다 대문 쪽에 가까이 있는 일종의 손님 접대용 방으로, 남성이 사용하였다. 대조적으로 안방은 여성의 공간이었고 부엌과 접해 있었다.


 조선 문화에서 남성들은 안채의 주인은 아니었지만, 사랑채의 주인은 되었다. 그런 만큼 노비를 충분히 둘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자들이 아니라면, 당연하리만큼 ‘가사노동’을 했다. 이 가사노동은 여성들이 하던 요리, 빨래 등은 아니었지만 보다 중요할 수 있는, 남성적인 노동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건축, 건물 보수, 장작 패기, 장작 마련, 쇠죽 쑤기 등등.


 이런 일들을 옆에서 구경이라도 해 보면 알겠지만, 남성들의 가사노동량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었다. 옛날엔 어지간한 집은 거의 가장 본인과 일가친척, 이웃 등이 힘을 합쳐 직접 지었고 끊임없는 보수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초가집은 매년 지붕의 건초를 갈아야 하는데, 그것은 주로 남자들의 일이었다. 또한 진흙으로 쌓은 벽은 시간이 지나면 쉽게 무너지기 때문에, 그 역시 지속적인 보수가 필요하다. 농사에 필요한 소를 키우고 다루는 것도 주로 남자들의 몫이기 때문에[각주:1], 가정에서 남성들의 노동력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당시 남성들이 가정 내에서 대접을 잘 받았던 건 어느 정도 이상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또한 당시엔 남자들이 아들들을 교육시켰다. 남자의 일들을 남자에게 배우면서 자랐던 것이다.


 그러던 조선 남자들이 집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 건 일제시대와 그들에 의해 시작된 급속한 산업화 때문이었다. 일본은 제국주의 시대의 그 어떤 다른 국가보다도 자신들의 식민지를 체계적으로 근대화시키고자 했다. 당시 일본 내에는 크게 두 가지 세력이 있었는데, 그 중 한 세력은 장기적으로 조선 등의 식민지를 일본 제국의 영토로 만들 계획을 품고 있었다.[각주:2] 일본이 당시 조선인들에게 했던 행동들을 돌아보면 비난할 만한 것들이 꽤 있지만[각주:3], 그들은 그런 여러 가지 어이없는 ‘근대적인’ 행위들을 자국민에게도 했었다. 일례로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일본인이 서양인들에 비해 유전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본을 들른 서양인 남자들의 유전자를 최대한 받아 일본인을 유전적으로 개량하려고 들기도 했었다. 이 시대에 그런 행위를 하면 막장국가 소리 듣기 딱 알맞겠지만, 그때의 일본인들은 진지했었다. 그리고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조선을 점령한 후 근대화를 시키려 들었으니, 딱히 악의가 크게 없었을지는 몰라도 당하는 쪽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긴 했다.


 여하튼 산업화 과정에서 일본은 일단 남자들을 집에서 내보냈다. 농경 사회는 급속도로 붕괴하기 시작했고, 남자들은 일터에서 일을 하고 돈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제는 학교를 세워 그 동안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던 여성들을 교육시켰고, 그 여성들은 일제에게 교육받은 방식으로 아들들을 가르쳤다. 나쁘게 말하면 식민지형 찐따들의 최초 생성이었다.


 아버지들이 아들을 교육시키지 못하게 되면서, 남성들의 문화는 급속도로 단절되었다. 조선 시대에 남자들은 상투를 틀고 귀고리를 했고, 집안에 두루미와 매를 키우며 시와 서화와 활쏘기를 즐겼다. 그러나 일제시대 이후엔 윤리적이고도 바람직한 취미들은 거의 사라졌고, 문화적 빈자리를 차지한 것은 대단히 퇴폐적이고 말초적인 유흥 문화였다.[각주:4]


 새로운 식민지 남성들은 바람직한 삶의 모델을 새로 만들어야만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일제가 시작된 지 100년도 더 지난 오늘날에도 평균적인 한국 남성들의 문화는 다분히 불건전하다. 한국은 세계 최고액의 스카치위스키 소비국이다.[각주:5] 그리고 이 위스키는 대부분 룸살롱에서 소비된다. 알려지기론 한국의 GDP의 5%정도가 성매매 또는 유사성매매가 포함된 유흥업에 사용되고 있다. 통계 조사 결과 한국 남성의 성매수율은 50%가 넘는다. 그에 비해 도서구매율은 여성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다 해도 당장 그때부터 남성들이 집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은 것은 아니었다. 그때까지도 남자들이 집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 시기는 오래 이어졌다. 집이 전통가옥인 이상, 남자들은 집안일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다. 끊임없이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박정희 시대에 들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박정희는 노동 시간을 대폭 늘렸고, 남성들을 반영구적으로 가정에서 쫓아냈다. 물론 남성들만 집에서 쫓겨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때는 기혼 여성의 근로비율이 낮았다. 또 박정희 시대에 시멘트를 사용한, 전문 건설업자들이 지을 수 있는 그런 주택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급속한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공동 주택이 보급되었다. 이 새로운 주택들은 남성을 완벽하게 집안일에서 해방시켰다. 난방 방식도 연탄으로 바뀌었다. 이젠 남자들이 집을 짓고, 고치고, 장작을 패고, 쇠죽을 쑬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 시기는 대략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 정도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는 여성들의 본격적인 사회 진출이 이루어졌다. 그로 인해 남성들은 기존에 여성들이 하던 집안일을 분담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러나 아직 남자들은 그런 것들에 익숙하지 않다. 이미 그 때로부터 근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젊은 남자들조차 여자가 밥상을 차려주지 않으면 식사를 제대로 못 챙기곤 한다. 수많은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남편을 ‘우리 집 큰애’라고 부른다. 그런 소리를 듣는 남자들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화신처럼 행동하곤 한다. 그들이 원하는 건 ‘내 여자가 된 엄마’쯤 되는 것 같다.[각주:6]


 한국에 널린 아파트들은 집주인이 직접 고치고 보수할 필요도 없고, 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거나 위험한 경우가 많다. 난방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장작을 패기는커녕, 연탄을 갈 일조차 없어졌다. 한편으로 가사 도구들의 발전은 어쨌든 집에서 여성이 하던 일을 줄였기 때문에, 여자들은 투덜대면서도 혼자 힘으로도 가사 일을 어느 정도 다 할 수는 있다. 남자들은 굳이 자신까지 나서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곤 한다.


 가사 노동에 있어 아파트 주거가 일반화되지 않은 외국은 남자들 일이 여전히 많다. 그들은 잔디를 깎고, 정원을 가꾸고, 집과 차를 고친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집에 애정을 가지고, 가족들에게 가정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진다.


 대조적으로 박정희식 산업 모델은 남자들을 거의 완벽하게 집 밖으로 몰아내 버렸다. 그 과정 속에서 야근은 일상화되었고, 남자들은 집안일에 면책 특권을 받았다. 그러나 그 세월은 불과 2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다. 이젠 시대가 변했지만, 남자들은 여전히 그 면책 특권을 행사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이 잘 통할 리 없다.


 당장은 집안일을 안 하는 게 남성들에게 이득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대가는 참혹하다. 무엇보다도 자식들이 문제다. 자식들이 보기에,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집에서 아무 것도 안 하고 빈둥거린다. 그들의 어머니가 뼈 빠지게 바깥일을 하고, 집안일까지 해서 식탁까지 차려주는 동안 아버지들은 잔소리나 안 하면 다행인데, 보통은 일은 안 하면서 잔소리까지 한다. 음식이 맛이 없다는 둥, 요즘 너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둥.


 물론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건 가정을 지켜나가고 화목함을 유지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아내는 그것을 이해할지 몰라도, 자식은 아니다. 자식들은 꽤 나이가 들기까지는 돈의 흐름을 체감 상 잘 이해하지 못한다. 자식들의 눈에 비치는 아버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기에 가정의 진정한 구성원이 아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그렇게 된다.


 직장에서 괜찮은 사람인데 집에서 폭군이 되는 아버지는 흔하다. 집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세월이 결국 그들이 집에 있는 것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직장에서 은퇴한 남성의 삶은 많은 경우 비참하다. 대체로 그들은 평생 집에 돈을 벌어다 줬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가족들에게는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집 안에 와서는 오직 받기만 하고, 다른 가족들을 불편하게 해왔기 때문이다.


 대화가 안 돼서? 그 이유도 중요하다. 그러나 어머니와 자식들 사이에도 대화가 잘 안 되는 집은 흔하다.[각주:7] 그렇지만 그 갈등 관계는 보통 가족이라는 범주 안에서 이루어질 뿐, 가족으로 못 느끼는 양상으로 치닫지는 않는다. 어쨌든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물론 예외도 있지만) 집안일을 도맡아 하기 때문에, 자식들 입장에서는 갈등의 요소가 있더라도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먹을 식사를 해주고 내가 입을 옷을 빨아주는 사람과는 밀접할 수밖에 없다.


 가정이라는 곳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남자들은 결국 가정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의 역할과 일을 가정 내에서 만들 필요가 있다. 잔소리쟁이나 자기자랑꾼처럼 모두가 싫어하는 위치에 있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도 자식들에게 무언가 필요한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좋은 아버지의 조건이다.


 물론 자식들만 문제는 아니다. 황혼이혼율이 괜히 높은 게 아니다. 아내 입장에서도 남편이 밖에서 일을 하는 게 고생스러울 거라 상상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눈으로 직접 보지 않는 한 공감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게다가 요즘은 여자들도 거의 일을 한다. 같이 일하고 피곤한 상태인데 집에선 남자 쪽만 주로 놀면 여자 눈에 좋아 보일 리가 없다. 처음에야 애정으로 봐 준다 쳐도, 수십 년 그런 세월이 쌓이면 싫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남자도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건 딱히 페미니즘 같은 게 아니다. 남성은 농경 사회 이후 언제나 집에서 일을 해왔다. 다만 아주 짧은 기간,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아주 잠시 남성이 집안에서 몰아내졌을 뿐이다. 그러나 그 혼란기도 이제 끝났다. 남성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집안들을 찾음으로 가정의 일원으로 복귀해야한다. 안타깝지만 가정에서 자신의 일자리가 없는 남자는 결국 돈 벌어오는 기계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스스로 그렇게 보이게끔 행동하기 때문이다.

 


  1. 일소를 다루는 건 다소 위험성이 있는 일이고, 여성에게는 쉽지 않은 면이 있다. [본문으로]
  2. 만일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지 않았다면, 이 계획은 실제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본문으로]
  3. 향후 부패한 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일본 제국은 좀 다른 성격의 국가가 되어버려서, 전쟁의 확대와 함께 조선을 처참하게 수탈하게 된다. 그러나 조선을 처음 합병할 당시의 일본은 딱히 꼭 그런 성격의 국가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결과 2차 대전 이후 다른 서구에게 점령당했던 식민지들보다는 일제에게 지배당했던 식민지들의 경제 성장이 두드러지게 빨랐다. 물론 일본이 서구보다 더 못한 점도 있다. [본문으로]
  4. 정확히 말하면 그 보편성에서는 민주화 이후 시대가 더 심하다. [본문으로]
  5. 소비 양상을 보면 더 나쁘다. 에이지드(숙성년수)가 높은 위스키가 많이 팔리고, 싱글 몰트 시장은 작다. 위스키를 음미하기보다는 원샷을 하고 폭탄주를 만들어 먹기 때문인데, 그 때문에 일부 브랜드의 위스키는 아시아 수출용이 내수용보다 도수가 낮다. [본문으로]
  6. 설명을 하기 위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개념을 이야기했을 뿐,, 나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본문으로]
  7. 물론 보통 아버지들이 더 심각하다. 평균적인 한국 아저씨들의 화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 대체로 말 자체를 잘 못하는데다 상대의 감정도 잘 못 헤아린다. 전반적인 문화적 결함 탓으로 보고 있다. [본문으로]

성차와 성차별, 그 오랜 기원과 역사

사회 2013. 2. 23. 00:52 Posted by 해양장미

 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현생 인류는 전체 포유류 중 성차가 꽤 큰 편에 속한다. 특히 여성은 다른 대부분의 포유류에 비해 상당히 이질적인 특성들을 지니는데, 전반적으로 보면 하나의 이질적 특성이 다른 이질적 특성을 재생산하는 식이 된 것 같다.


 현생 인류 여성이 가진 특성은 자연 상태에서의 생존에 그리 적합하지 않아 보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여성은 사냥을 잘 못한다. 물론 다큐멘터리 등을 보면 여성이 수렵생활을 무난하게 하는 부족도 있지만, 그런 부족은 거의 예외 없이 열대의 밀림에 살고 있다. 밀림은 여자들도 충분히 사냥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먼 조상은 밀림 출신이 아니었다. 인류는 사바나 출신이다.






 그러니까 이런 곳.[각주:1]


 사냥을 꼭 해야 하느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텐데, 인간은 본질적으로 육식 동물에 가깝다. 살던 곳이 이런 곳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영양이나 소처럼 풀을 뜯어먹을 수 없다.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식물은 열매나 새순, 알뿌리 같은 비교적 한정적인 것이다. 인류의 기준에서 사바나에는 먹을 수 있는 식물이 충분하지 않다. 한편으로 원시 인류부터의 긴 진화 과정 속에는 식물의 뿌리를 주로 먹는 종도 있었지만, 그런 종은 멸종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고기를 먹는 게 여러 모로 우월했기 때문이었다.






 채식주의는 철저한 현대의 유행 현상이다.[각주:2]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는 수십만년의 역사 동안 고기를 안 먹어온 적이 없었다. 그 어떤 원시 부족도 절대로 채식 생활을 하진 않는다.[각주:3] 그런 만큼 사람은 채식을 거의 안 해도 제법 건강하게 살 수 있다. 풀을 거의 안 먹는 유목민족들도 건강하게 잘 산다. 대부분의 성인병과 비만, 대사 증후군 등은 육류가 아닌 곡류(당)의 과잉 및 단백질의 부족으로 인해 발생한다.[각주:4] 또한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채소는 원시 그대로의 것이 아니다.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 집념과 욕망을 불태우며 개량하고 개발해온, 식물계의 가축들이다.


 여성이 사냥을 잘 못 하는 이유는 근력이나 체력 탓이 아니다. 어차피 남자라 해도 야생 동물에 비하면 힘이 많이 약하다. 우리 인류의 사촌, 침팬지는 우리랑 유전자가 98.4%나 일치한다. 그리고 인간이 침팬지보다 체격이 크다. 그러나 침팬지는 인류와 비교할 수 없이 힘이 세다.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근력을 포기한 종에 가깝다. 그리고 어차피 인류는 몽둥이를 들고 야생 동물을 때려잡는 식으로 사냥을 하지 않았다.


 인류는 다른 포식자들과는 다른 유형의 특별한 능력들을 개발했다. 그리고 그 결과 생태계의 최고 포식자에 오르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것을 들자면 이 능력이다.



 

 이 특별한 능력은 인류를 지구 역사상 최강ㆍ최악의 포식자로 만드는 데 크게 일조했다. 인류를 제외한 지구 역사상의 그 어떤 종족도 물체를 그렇게 빨리, 멀리 던지지 못한다. 잘 던지는 사람은 물체를 140 km/h 이상으로, 70미터 이상 던질 수 있다. 살펴보면 사냥 과정에서 원거리 공격을 하는 여러 종족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그 거리는 2 m 정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대표적인 맹수인 고양이과 동물들도 약간의 거리 차이로 사냥감을 놓칠 때가 많다. 인간만큼 편하게, 높은 확률로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는 종족은 그 이전엔 없었다.


 그런데 여자는 물건을 잘 못 던진다. 대부분의 정교한 동작은 여성이 남성보다 잘하는데, 굉장히 정교하게 신체를 제어해야 하는 투척 활동만큼은 남자가 잘한다. 물론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여성의 투척 능력은 남성보다 많이 떨어진다. 여기엔 여러 연구가 있었고, 결론은 여자들이 투척에 필요한 엉덩이 회전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걷기처럼 던지기도 가르쳐서 하는 게 아니다.






 던지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각주:5] 이런 차이는 신체적 둔부 무게비율 차이 때문이 아니다. 2차 성징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전에도 차이가 난다. 이것은 쉽게 말해 소프트웨어 차이다. 공을 유독 잘 던지는 여자는 예외적으로 이 소프트웨어를 타고났다고 보면 된다.


 물론 덫이나 활 같은 하이테크 병기가 나온 후에는 여성의 사냥도 훨씬 수월해졌다. 그러나 초기 인류는 그 정도의 기술력은 없었다. 투척은 오랜 기간 동안 인류를 먹여살려온 종족 특성이다. 그런데 여성은 남성에 비해 이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상대적으로 사냥을 하기 어렵고, 해오지 않았다는 뜻이다.[각주:6]


 월경과 인류의 지속적인 임신 능력도 사냥에는 큰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 인간 여성만큼 자주 많이 오래 피를 흘리는 생물은 없다. 맹수들이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들 수 있다는 걸 감안할 때, 인간 여성의 이런 형질은 사실 생태계에서 도태되기 쉬운 형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영하였다. 모든 진화는 생존의 결과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각주:7]


 한편으로 인류의 사촌인 침팬지 암컷은 한번 출산을 하고 나면 5년 동안 발정기를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 여성은 딱히 발정기가 없다. 발정기가 없는 포유류는 아마도 인류뿐이다. 그리고 이 특성은 인간 여성에게 연속되는 임신을 가능하게 한다. 아마도 인간이 번성한 이유 중 하나다.[각주:8]


 현생 인류가 아닌 다른 인류들, 예를 들어 호모 에렉투스 들도 뚜렷한 성차가 있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마도 현생 인류와 같이 극단적인 차이들이 생겨난 지는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각주:9] 인간 여성이 가진 특징은 대단히 개성적이고, 인간의 특수함을 만들어내는 데 크게 일조했을 것이다.


 잦고 오래 지속되며 하혈량이 많은 월경은 직접 사냥을 하는 데는 불리한 특징이지만, 반대로 육류 섭취의 필요성은 높인다. 생리혈로 잃어버린 철분을 공급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건 고기다. 그리고 여성은 자신의 안전을 지키고, 남성을 제어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개발하였다. 이 또한 지금껏 그 어떤 종족도 가지지 못했던 능력이다.





 “싫어.”


 이건 여자라면 거의 다 가지고 있는 초능력, ‘성관계 거부’다.[각주:10] 지금껏 이런 생물은 없었다. 스스로의 의지와 발달된 감정 능력[각주:11]으로 번식의 본능을 거부할 수 있는 종족은 그야말로 인간 여성뿐이다. 젊은 남자는 이런 능력이 상대적으로 희박하다.[각주:12] 남성이 투척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동안, 여성은 거절 소프트웨어를 키웠다.


 당연히 남성에겐 여성의 이런 진화는 날벼락이었을 수밖에 없다. 발정기도 없고, 성관계를 지속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혁명적 신종의 출현은 동족 수컷에게 가혹한 변화를 요구했다.[각주:13] 이 변화는 현대에도 계속되는 중이고, 그 숙명을 거부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패배자(!)들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물론 결국 진화와 번영은 승자의 몫이다.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 남성은 여신을 숭배하고, 여제사장을 받들어왔으며 여성에게 제법 효과적으로 통제되었던 것 같다.[각주:14] 남성이 쿠테타를 일으켜 남성주의적인 사회를 만든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지역마다 꽤 편차가 있었는데,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미합중국 백인들의 서부 개척(이라고 쓰고 침략이라고 읽을 수 있다.) 시대까지도 모계 전통을 짙게 가지고 있었다. 7만년이 넘는 현생 인류의 긴 역사[각주:15]에서 남성 패권이 강했던 시기는 대략 근래 5000년 정도에 불과하다.


 남성이 여성에게서 지배력을 빼앗을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농경과 목축이었다. 수렵 사회에서의 식물 채집 활동은 주로 정착 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남자들이 본격적으로 농사와 가축 키우기에 뛰어들면서 모든 것이 크게 변해버렸다. 여성들은 원래 하던 일을 빼앗겼고, 일부일처제가 정착되면서 여성들의 초능력도 그 힘이 약해졌다. 그와 함께 여제사장들은 종교적 권능까지 잃어갔다. 새로운 최고신은 많은 경우 남성이었고, 더 나아가 남성 유일신까지 등장했다. 이 시대에 역사는 ‘남성들의 이야기(His+story=History)’가 되었고, 여성들은 뒤에서 암약할 수밖에 없었다.


 근대 이후 여성들이 다시 권리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가족농업의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다시 아침마다 집을 나서는 사냥꾼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새로운 사냥터는 근래 들어 여성들에게도 나름대로의 기회를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농경 시대의 초반, 남성들이 여자 일을 가져갔던 것처럼 이젠 여성들이 남자의 일을 하나하나 가져가고 있다. 게다가 이번 일들은 여자들이 꽤 잘한다. 사냥이나 과거의 농경과는 달리. 여자들은 축적된 자본을 운용하는 데 있어 남자들보다 평균적으로 뛰어나다.[각주:16]


 남성들은 보다 평등한 관계를 받아들이거나 여성들과 차별화되는 장점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과거 농경 사회처럼 여성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조건은 끝났다. 애초에 그런 불평등함은 자연 상태에도 별로 없다. 많은 수컷들은 공작의 깃털이나 사슴의 뿔처럼 멋진 기관을 진화시키고,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면서 암컷을 꼬드긴다. 일부일처제 또한 농경 사회의 붕괴와 함께 막을 내려가는 중이다. 이 제도는 정착하게 된 남성들에게 필요한 장치였다. 여성을 보다 공정하게 분배하고, 아이들이 자신의 자식인지를 확신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러나 이제는 조건이 변했다.


 여성이 남성을 제어하던 장치는 다시 힘을 되찾고 있다. 현대의 반전은 과거보다 더욱 극적이다. 여자들은 이제 스스로 노력해서 고기와 가죽을 얻을 수 있다. 이는 남성들에게는 과거의 수렵 사회보다 더한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 땐 여자들이 사냥을 못하기라도 했다.






 물론 여자들은 여전히 고기와 가죽을 선물받길 원하곤 한다. 그것은 오랜 세월 여성들이 살아온 방식이기에 어느 정도는 본능에 가깝다. 한편 근래 들어 대한민국에는 여성들의 이런 면을 욕하는 찌질남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마초도 뭣도 아닌[각주:17] 여성 혐오자들은 남성성의 추락과 소멸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이들은 남자들이 과거에 가졌던 특권을 그리워하지만, 그 시절에 남성들이 가졌던 여러 긍정적인 요소들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이들은 새로운 사냥터에서 충분히 활약하지 못하고 있고, 그렇다고 다른 장점을 가지지도 못했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을 자신이 없다. 더구나 심리적으로 성숙하지 못했기에 좌절을 이겨내지 못하고, 여성들을 혐오하는 식으로 자기위안을 삼고 있다. 물론 생태계에서 이런 패배자들을 기다리는 것은 대량사멸의 숙명뿐이다. 이들은 어쩌면 멸종위기 관심 필요종[각주:18]일지도 모른다.



  1. 사진 출처.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80&contents_id=2112 [본문으로]
  2. 사진 출처.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2316&idxno=533999 [본문으로]
  3. 애초에 농사를 짓지 않고 채식으로 충분한 에너지를 섭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본문으로]
  4. 혹시 오해가 있을까봐 강조하자면, 육식으로 충분히 균형 있는 영양을 섭취하려면 날고기를 먹고 생피를 마셔야 한다. 익혀 먹으면 비타민 등이 많이 파괴되기 때문에 꼭 채소를 같이 먹어야 한다. 한편으로 채식을 하면 체감상 건강해진다는 수많은 증언들의 주된 요인은, 곡류와 저장식에 의존하던 식단에서 신선한 채소를 많이 먹는 식단으로 변하는 데 있다. [본문으로]
  5. 출처. http://www.washingtonpost.com/national/health-science/throw-like-a-girl-with-some-practice-you-can-do-better/2012/09/10/9ffc8bc8-dc09-11e1-9974-5c975ae4810f_story.html [본문으로]
  6. 사자 같은 경우는 반대다. 숫사자는 사냥을 잘 못한다. 그 이유엔 여러 설명이 있는데, 갈기 때문에 너무 더워서 (뛰면 체온이 많이 올라가니까) 사냥을 잘 못한다는 주장이 가장 일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외적으로 숫사자가 사냥을 잘 하는 지역도 있는데, 그 지역 숫사자들은 갈기가 별로 없다. 프라이드가 없는 숫사자들은 암사자들을 거느리지 못하기 때문에 먹이를 구하는 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는다. [본문으로]
  7. 진화의 구조적 특성에 대해 무지한 자들은 쉽게 오인하는데, 모든 진화는 변이가 먼저고 그 다음이 생존이다. 즉 변이의 방향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특성을 만들어내고, 그 특성 중 생존한 게 누적되다보면 가시적인 진화가 이루어진다. 현재 생존한 변이의 모든 결과물들은 그것이 생존할 만 했기에 생존한 것이다. 현생인류 여성의 월경이 얼핏 생각하기에는 생존하기에 불리한 특성이겠지만, 결과물을 놓고 보면 오히려 생존과 번성에 유리했다는게 진실이다. 한편으로 월경으로 인한 혈액 손실이 건강에 좋다는 통설은 사실이 아니다. [본문으로]
  8.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이 연장선상에서 인간 여성은 배란기를 감췄고 그럼으로 인해 대부분의 포유류 수컷이 자행하는 ‘암컷 탈취 후의 기존 자식 살해’에서 해방되었다 할 수 있다. 농경 사회 이전의 자연 상태에서는 성관계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인데, 인간 남성 입장에서는 여성이 언제 배란기인지 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자신과 성관계를 맺은 적이 있는 여성이 키우고 있는 자식을 자기 자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인류의 번성에 기여하였다. [본문으로]
  9. 아마도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일 거라 보고 있다. [본문으로]
  10. 초능력이라는 말이 농담 같을지 몰라도, 진짜로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건 더 적합한 말이 없다. 모든 개체는 유전자의 생존 노예라는 도킨스식의 전제를 놓고 볼 때, 번식을 자의로 통제할 수 있게 된 인간 여성은 그야말로 ‘새로운 유형의 다세포 생명체’ 쯤에 가깝다. 한편으로 사진 속의 여성은 이 능력을 활용해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중이다. 참조 링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5778371 [본문으로]
  11. 흔히들 이성은 발달된 두뇌로 인한 것이고, 감정은 열등한 걸로 생각하곤 하지만 절대 사실이 아니다. 발달한 감정 능력, 감수성 등은 그야말로 고도로 발달한 지성의 산물이다. [본문으로]
  12. 나이든 남자는 상대적으로 제어가 잘 되는 편이다. 그러나 수렵사회 인류의 평균 수명은 30살 정도로 지극히 짧았기에 그런 남성은 극소수였다. [본문으로]
  13. 다른 영장류에 비하면, 현생인류 남성은 대단히 부성도 강하고 감수성이 발달한 편이다. 이렇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14. 그러나 이 시대에 남자들이 대접을 못 받았던 것은 아니다. 뛰어난 사냥꾼은 영웅이 되었고, 미녀의 사랑을 차지할 수 있었다. 비록 대머리일지라도. [본문으로]
  15. 이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생긴 시기 기준이 아니고, 대략 현생 인류의 공통조상이 아프리카에서 대이동을 시작한 시기 기준이다. [본문으로]
  16. 한 번에 말아먹는 투자나 망할 사업 벌이기는 거의 남자들의 특성이다. 리스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법칙에 의해 남자들이 더 대박을 잘 내긴 한다. 그렇더라도 근현대의 자본주의는 여성에게 더 많은 평등을 가져다주었다. 60년짜리 한국사만 봐도 아줌마들의 부동산 투자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본문으로]
  17. 좀 단순화시켜서 이야기하자면, 내가 판단하기엔 한국 남성들의 주된 문제는 남성성 부족 -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바람직한 남성상의 부재 - 에 있다. 지구촌 남자들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우월한 가치. 즉 관대함과 지성, 도전 정신과 용기, 성찰, 생존 본능, 강인한 자아 같은 게 다분히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물론 역사적인 이유가 있지만, 설명하자면 길기에 본문에서 이야기하기는 어렵겠다. [본문으로]
  18. 가시적으로 잘 보이는 문제 요소는 여성 혐오자지만, 그보다 잠재적으로 큰 문제는 소위 초식남의 증가에 있다. 일본과 한국에서 초식남의 증가는 가시적이면서도 심각한 사회문제라 할 수 있다. [본문으로]

정은지 귤 사건 이야기

사회 2013. 1. 28. 15:11 Posted by 해양장미





 화낼 만한 일이 많은 세상이지만, 이런 일에 광견처럼 날뛰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해서 화풀이를 할 데가 필요할 뿐.


 그들은 하이에나처럼 까고 부수고 욕을 할 대상을 찾으러 다닌다. 이번에는 운 없게 정은지가 걸렸을 뿐이다. 유명세가 좀 있는 인물이라면, 누구도 이런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마녀사냥을 좋아하는 전근대인들에게 항상 새로운 마녀를 제공해준다. 누구나 잘못은 저지를 수 있으니까.


 본래 인생은 문제의 발생과 해결의 연속이고, 누구나 그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문화적 결함으로 인해 문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해결해 나가질 못한다. 항상 겁 많은 개가 더 시끄럽게 짖기 마련이다. 왈왈왈.



내셔널리즘과 유관순 코스프레에 대한 사견

사회 2011. 6. 13. 00:07 Posted by 해양장미

 

 평소 유관순에 대한 이야기가 가끔 나올 때 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시대가 그랬으니까 그랬지. 요즘 시대에 유관순이 태어났다면 전설적인 운동권이 되었을 거야.’


 우리는 진실로 유관순을 추모해 왔는가? 그렇게 ‘저항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해 관용을 가질 수 있는가? 유관순의 경우 그 대상은 스스로 망해버린 조국이었다. 그녀가 단순한 내셔널리스트였는지 아니면 소셜한 억압에 대한 저항인이었는지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가혹한 억압 앞에서 더욱 강해지는 인간. - 소위 굽힐 줄 모르는 독종 - 이었음에는 분명하다. 어디에나 그런 사람은 있다.


 내셔널리즘은 유관순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 헤로인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유사시 ‘너’‘우리’를 위해 처참하게 죽어갈 수도 있어야 한다.”


 사실 이것은 ‘우리’에 대한 애정과 인식에 도움이 되는 교육 방식이 아니다. 그보다는 ‘충성하라.’ 라는 국가주의적이고도 군사주의적인 억압에 가깝다. 그러나 조선이 민중의 충성심이 모자라기에 망했던 국가였던가. 그리고 한국은 어떻게 광복되어 건국되었던가.


 누군가 유관순을 그런 식으로 코스프레했을 때, 그것은 천상의 영웅을 웃기는 대지, 즉 희화화된 현실로 끌어내는 행위이다. 죽은 자는 할로윈 파티에서 죽은 자에 불과하다. 영웅적인 죽음을 경배한다면, 모든 사망자는 파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귀신은 원한에 맺혀 있어야 하고, 민족적인 문화병인 화병은 유지될 가치가 있다. 해학은 버려야 하지만 한은 숭고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영웅적인 죽음을 경배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안중근도 유관순도 영웅은 아니다.


노동 운동을 하다가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는가? 아니면 광주에서 억울하게 학살되었던 사람들은? 그들이 유관순보다 덜 숭고하게 죽어갔을까? 사실 나는 죽음에서 어떠한 숭고함도 발견하고 싶지가 않다. 숭고함은 살아 있는 자들의 몫이자 행위이다. 살아 있는 나는 아무에게도 희생을 요구할 생각이 없다. 희생을 숭고해하는 감정이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 수 있다. 희생자는 나에겐 영웅이라기보다는 동정의 대상이다. 그리고 희생 없는 진보가 가장 이상적이다. 또한 안타까워하기에 더욱 적합한 대상은 조선의 망국적 행위들과 그 분위기이지, 독립 운동가들이 아니다. 독립 운동가들이 추모받기 위해, 영웅이 되기 위해 싸웠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 시대에도 한국의 내셔널리즘은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 내셔널리즘이 한국을 보다 좋은 국가로 만들어주는가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하기 어렵다. 모든 내셔널리즘은 파시즘과 맞닿아있고, 부덕함과 비윤리성과 인민에 대한 억압을 함께 가지고 있다.


 내가 원하는 국가는 영웅을 희화화했다고 철퇴를 내리치는 국가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 내 민족들꽃이 아닌 칼을 들고 있지 않은가. 인식 속의 유관순은 소녀가 아닌, 소녀의 육체 속에 깃든 장군이자 [우리네] - (우리가 가진) - 처자가 처참하게 당했다! 라는 민족적 분노의 촉매, 동시에 선대의 할머니가 아닌 영원한 누나가 아닌가.




모범 흡연자 제도의 제안

사회 2011. 4. 14. 21:18 Posted by 해양장미


 호흡기가 약하거나 민감한 사람에게 한국의 도시는 정말 살기 힘든 곳이다. 특히 넘쳐나는 보행 흡연자들의 무차별적 테러는 날 불행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그래서 나는 보행 흡연을 금지하자는 주장을 하는 동시에 모범 흡연자 제도를 시행하면 어떨까 싶었다. 현재 한국의 정책은 금연을 권장하는 방향으로만 나아가고 있는데, 담배를 파는 이상은 흡연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책적으로 흡연자의 횡포를 통제하고 좋은 흡연 습관을 권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떠올리는 모범 흡연자 제도는 다음과 같다. 기본적으로 담배 가격을 더 올리고, 노상 흡연을 금지시키고, 거리에 공중전화 박스처럼 흡연자용 부스를 만들고, 음주운전 단속을 하듯 사복 경찰관이나 공공근로자를 이용해 거리에서 노상 흡연자를 단속한다.


 그리고 모범 흡연자 제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등록이 필요하다. 등록은 간단하게 인터넷으로 할 수도 있고, 보건소 등을 이용할 수도 있다. 아무래도 보행 흡연자는 대부분 남성 흡연자니 군 관련한 곳에서도 신청을 받으면 좋을 듯 하고.


 그렇게 해서 기본적으로는 매년 점수가 쌓인다. 다만 단속에 걸리면 점수는 말소. 그리고 모범 흡연자 제도에 참여하는 사람은 관련 건강 검진을 받아야 한다. 받으면 점수에 도움이 되지만, 받지 않으면 점수가 깎인다. 그외 금연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흡연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공 교육에 참여하면 약간의 점수를 줘도 좋겠다.


 그래서 일정 이상 점수를 쌓으면 구매했던 담배 금액에 대한 소득공제를 점수에 따라 차등하여 일정 비율 환급을 하는 제도를 만들면 어떨까? 즉 모범적인 흡연자는 담배를 저렴하게 피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제도는 여러 이점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선 거리에서 보행 흡연에 의한 피해가 적어지고, 전반적인 국민 건강을 올려 건강 보험 재정 등을 튼튼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구매한 담배의 금액이 관리되어야 하니 영수증 발급 등의 빈도가 늘어나면서 조세가 투명해질 것이고, 흡연자들은 자신이 담배 구매에 사용한 금액을 정리해 알게 되니 그 또한 흡연 양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위의 발상에 대해 아는 흡연자들에게 어떨까 물었더니 매우 긍정적인 답을 얻었다. 다른 분들이 느끼기엔 어떨까 싶어 글로 정리해 올려 본다.


보행 흡연에 대하여

사회 2011. 1. 2. 17:05 Posted by 해양장미


 보행 흡연자들은 많은 경우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얼마나 극심한 폭력이 될 수 있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보행 흡연자가 갑자기 뒤통수를 맞는 등의 테러를 당하더라도 너무 억울해할 건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런 폭력을 일상적으로 이미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 내 경우 길에 지나다니다가 보행 흡연자를 저 멀리서 발견하면 반사적으로 욕이 나온다. 이는 내가 유일하게 비속어를 쓰는 순간이다. 그 후 숨을 깊게 들이쉬고, 상대에게 불쾌감을 품은 시선을 맞추고는 이동 방향과 호흡 간격을 보면서 숨을 멈추고 최대한 연기의 방향을 피한다. 만일 실수로 숨이라도 들이쉬면 바로 기침과 함께 참을 수 없는 스트레스로 폭발할 지경이 되니까.


 사실 그나마 나는 나은 편이다. 나는 호흡기가 좀 약하긴 하지만 천식 환자는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천식 환자들에게 밀도가 높은 담배 연기는 위협 그 자체다. 바로 천식 발작이 일어나면서 길에 쓰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천식 환자들은 길에서 담배 연기에 의해 발작이 일어나본 경험을 한번 씩은 다 가지고 있다.


 그래도 나에게 연기는 지극히 불쾌하고 순간 고통스러울 뿐 아주 위협적이지는 않다. 암환자도 아니고. 그렇지만 나는 앞에 걸어가는 보행 흡연자의 불붙은 담뱃재가 강풍에 날려온 걸 맘보를 하듯이 피한 기억이나, 보행 흡연자가 불붙은 담배를 휘두르고 지나가는 걸 몸을 휙 비틀어서 피한 기억들이 몇 번 있다. 기어이 올해에는 새해 첫 날부터 날아온 담뱃재에 가벼운 화상을 입은 것 같은데, 이런 경험들은 나에게 보행 흡연자에 대한 혐오감을 키울 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 된다. 일본에서는 이미 2003년에 보행 흡연자의 담뱃불에 실명된 아동이 나와 보행 흡연이 많은 지역에서 조례로 금지되어 있다.


 한국이 만약 제대로 정치가 동작하는 사회였거나, 윤리적인 개념이 있는 사회였다면 벌써 보행 흡연 문제는 해결되었을 것이다. 한국은 서구에 비해 인구 밀도가 높고, 길은 좁으며 워낙 바쁘게들 돌아다니는데다 흡연율이 매우 높고 남자들이 시가렛을 일상적으로 피우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체감상 근래 보행흡연율은 다소 높아진 편이다. 어쩌면 곳곳의 실내 흡연 금지가 보행 흡연율을 높인 것 같기도 하다.


 이 문제를 현재 한국이 윤리적인 영역에서 해결할 방법은 없다. 보행 흡연자에게 윤리적인 시민 의식을 이야기하는 건 대부분의 경우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유일한 해결 방안은 이 문제를 법률로 불법으로 규정하고, 거리에 공중전화박스 같은 흡연 부스를 설치하고, 한동안 길에서 집중적인 단속을 벌여 벌금을 부과하고 누적 시 벌금을 과중하거나 구류 등의 조처를 취하는 게 옳다고 본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한국의 정치와 시민 사회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정치는 주로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들의 영역이고, 이들은 굳건한 권력을 쥐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자신들의 세계에서 정치를 하고 있다. 정치를 하는 부유층은 길을 잘 걷지도 않고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담배 회사는 로비를 통해 금연 관련 법안들을 막는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내 생각에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이 조금 더 정치 세력화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당연히 이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만한 정치 세력도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진보 정치가들이 무능하다고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로, 이런 민감하고도 당장 필요한 사회의 잠재적 요구들에 대한 응답이나 발굴이 없다는 것을 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