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5월, 나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한 정치쇼 (링크 클릭)’라는 포스트에서 그가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독단적으로 방생하려는 것에 대한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다행히 제돌이의 방생은 성공적이었던 거 같지만, 이후 서울대공원에 다른 문제가 터졌다. 지난 연말 있었던 호랑이의 사육사 공격이 그것이었다.


 제돌이 방생이 개인적으로 정말 불편했던 이유는 그것이 너무 뻔히 보이는 포퓰리즘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동물원은 열악한 예산으로, 굉장히 타이트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직원들은 위험 속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고, 동물권도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동물원은 영리목적에서 운영할 수 있는 유원지가 아니다. 그 얼마 안 되는 입장료로는 사실 동물원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다. 서울대공원 같은 곳은 보조금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박원순은 엄청난 반영구적 재정지출을 독단적으로 결정하면서 제돌이의 방생에 시 예산까지 동원했다.


 동물원의 직원들과 다른 수많은 동물들의 권익에 사용될 수 있는 거액이 제돌이에게 소모되었다. 더구나 제돌이만 방생된게 아니고, 그나마 수익을 안겨주던 돌고래쇼도 민심에 어긋나게 폐지되었다. 나도 돌고래 좋아하고, 제돌이가 바다에서 노는 다큐를 보니 좋은 기분이 드는 것은 있었지만 이성적으로 볼 때 박원순의 방식은 반민주적이었고, 일종의 전횡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래도 바보들과 박원순 광신도들은 그저 좋단다. 항상 말하지만 소위 친노 깨시민들이야말로 극단적인 파시스트라 할 수 있다.


 호랑이의 사육사 공격 사건 같은 비극적인 사건은 이런 어이없는 운영의 한 극단적인 결과물이라 할 수 있었다. 예산을 더 얹어주고 제대로 경영이 되고 있는지 감시하지는 못할망정, 서울대공원에 낙하산 인사를 하고, 그나마 있던 자금줄까지 빼앗아간 것이다. 결국 사육사가 죽은 후에야 서울시는 서울대공원 예산을 증액하기로 결정했지만, 이미 제돌이의 방생으로 재정이 나빠진 후에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고래를 앞세우는 건 본래 극단적인 환경운동단체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이 유독 고래를 좋아하기 때문에, 고래를 보호한다거나 하는 명분을 앞세우면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다. 내가 보기엔 박원순은 그런 심리를 잘 이용하여 좋은 이미지를 얻으려 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내용을 보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런데 박원순은 여기서 한 발을 더 가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동물원 관리에 중앙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자체의 사정상 충분한 동물원 관리가 어렵다는 게 그 이유다. 관련 기사를 링크한다. (클릭)


 사실 이 기사를 보고 나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건 그야말로 공은 챙기고, 책임은 떠넘기는 비열한 행태가 아닌가. 낙하산 보내고, 가뜩이나 예산 부족한데 독단적으로 제돌이 방생하고, 돌고래 쇼 폐지하고, 그러고 돈 부족하니까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 보니 이걸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박원순은 최악의 정치인이다.


 정치인은 본인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전횡을 일삼지 말아야하며 포퓰리즘으로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시민은 선거 과정에서 바른 선택을 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당선된 정치인이 잘 하는지 감시를 해야 한다. 이것이 바른 민주주의다. 그런데 박원순은 무책임하고, 전횡을 일삼으며 포퓰리즘으로 정치쇼만 해 댄다. 또한 박원순 광신도들은 - 혹시 돈이라도 받는 건지 - 인터넷에서 박원순 찬양을 매일같이 할 뿐만 아니라, 박원순을 비판하는 시민에게 비아냥과 욕설을 날려대면서 일종의 파시스트 친위대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행위가 적어도 온라인상에서는 너무 광범위하게,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중이다.


 사실 정치인을 믿느니 어리버리한 내 밑 신입 사원이나 보험 팔러 온 옛 친구, 아니면 동상이몽일 수도 있는 동업자를 믿는 게 더 낫다. 확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감시가 사라지고, 추종자들이 붙은 정치인은 엄청난 전횡을 해댈 수 있다. 내가 근래 가장 우려하는 것은 정치인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사라졌다는 데 있다. 특히 친노-민주당 정치인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온라인에서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감시와 비판을 하게 되면 바로 일베충 소리 듣는 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커뮤니티를 정신 나간 근본주의적 노빠 파시스트들이 장악하고 있다. 무엇이 진짜 민주주의인지, 무엇이 진짜 진보인지 성찰이 필요한 시대다.




진보세력의 박정희 컴플렉스와 신자유주의

경제 2014. 1. 1. 23:58 Posted by 해양장미

 2014년이 시작되는 현재, 한국에서 ‘진보’의 정의는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소위 '민주화 세력'으로 인식되는 범주와 유의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민주화는 과거에 이미 완성되었고, 모든 정당에 나눠져서 들어갔으나 많은 이들에게 그것은 무시되고 있다. 실제 DJ만 하더라도 DJP연합을 이룸으로 과거 군사정부와 손을 잡는 등, 이미 민주화 세력을 기준으로 한국 정당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나누는 것은 무의미할 정도로 어렵다.


 실제 현 시점에서 소위 한국의 진보세력이 소위 보수 세력에 비해 철학적으로 딱히 진보적일 건 없다. (좀 더 진정한 의미에서의) 진보주의자들은 어디에나 있지만, 절대적인 수는 적고 오히려 민주당계나 NL의 경우 진보 이미지를 앞세워 마케팅을 할 뿐, 그 내용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이다.


 오히려 깨시민이나 진신류로 표상되는 진보세력은 정말 많은 경우 구체적인 정책에 너무 무지하고, 더 나아가 정말 많은 경우에 아예 관심이 없다. 그들은 대체로 어떤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통찰하지 못하고, 그것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태도도 없으며 자신의 믿음이나 감정, 또는 특정세력에 대한 광신적 지지를 앞세우기에 바쁘다. 더 나아가 그들의 이런 양상은 단순히 지지자들에서 끝나지 않고, 그들이 지지하는 정치인들 또한 그들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치기 어린 정의감으로 그 결과를 충분히 숙고하지 않거나, 심각한 확증편향에 가득 찬 정책을 매번 주장하고 밀어붙이는 게 그들의 현실이다.


 이런 세월이 누적되면서, 한국 국민들의 실제 삶은 여러 부분에 걸쳐 큰 피해를 입었다. 비록 한국이 잘 나가는 나라이긴 하고, 그 과실을 어느 정도씩은 모두가 누리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것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다가오기에 크게 체감되는 경우는 드물다. 사람은 손익을 결코 동등하게 느끼지 않고, 누구나 이익보다는 손해에 대해 훨씬 민감하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손해를 보고 있는 자들을 적극적으로 구제하고, 문제를 해결해줄 필요가 있다. 또한 손해를 보는 자들을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다. 한국 진보정치의 부재는 이런 면에서 큰 문제를 낳고 있다.


 구체적으로 사안을 보면, 소위 보수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오히려 실제로는 진보적인 포지션에서 정책을 펼쳐나갈 때가 적지 않다. 이것은 한국의 진보ㆍ보수 구분법과 인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인터넷 노빠들의 등장 이후, 한국 정치 분위기는 지나치게 적대적이고 말이 험악하며 진영논리가 앞서기에 올바른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고, 그렇기에 실제 사안들과 정책들의 효과나 영향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기에 진보ㆍ보수의 구분은 별 의미 없는 라벨링이 되어버렸다. 실체 없이 이미지만 나도는 게 작금의 상황이기에, 그런 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는 사람들은 대체로 부동층이 되어있으며 별 말을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해져있기도 하다. 나만 해도 친노세력이나 민주당계의 어이없는 정책 등을 비판하다 보니 일베충, 알바, 수구꼴통 같이 어처구니없는 공격적인 말을 종종 듣는데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다. 그들은 과거 군사독재세력의 ‘빨갱이’ 낙인을 완벽하게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어이없는 적대적 대립과 무책임함, 그리고 진영논리와 철학 부재 등이 현실적으로 한국 국민들에게 너무도 큰 고통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조금이나마 이야기해보고 싶다.


 이 면에서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이야기는 지속적인 경기의 냉각과 일자리 문제다. 이 두 가지 문제는 한국이 겪은 지난 10~15년간의 문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만드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은 소위 ‘진보적인’,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민주화 세력의 정신을 유지하거나 이어받은 사람들이다. 이런 진보적인 사람들은 새누리당 내에도 상당수가 있기 때문에, 실제의 문제 양상은 꽤나 복잡하게 일어나곤 한다. 그렇지만 현실을 요약해서 이야기하자면, 라벨이 진보적인 사람들이 실제로는 마인드건 사고방식이건 가진 이념이건, 주장하는 정책이건 대단히 보수적인 경우가 너무 많은 게 문제의 핵심이다.


 이 면에선 소위 인터넷 깨시민들이 ‘우리가 진짜 보수’라고 이야기할 때가 있는데, 그것이 핵심을 짚은 것일지도 모른다. 깨시민은 어딜 봐도 보수주의자가 맞다. 그것도 수꼴 극우파 수준으로 보수다. 수꼴들이 본인들을 진보로 라벨링해서, 서민 챙기는 척 하면서 온갖 개념을 어지럽히고 막말을 해대니 서민들의 삶이 엉망이 되는 거다.


 이런 문제의 기원은 안티 박정희, 즉 박정희 컴플렉스에서 비롯된다. 소위 민주화-진보 세력의 사고에는 박정희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자 하는 의식이 깔려있다. 그런데 박정희의 정책은 문화적이거나 정치적인 억압은 강했지만,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보수적이라 할 수 없었다. 박정희의 경제정책이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힘든 성공을 거둔 것은 훌륭한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소위 진보세력 중엔 박정희의 업적을 폄하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공과를 바르게 평하지 않는 데서 많은 문제가 시작된다. 이런 태도는 박정희의 딸인 현 대통령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역대 한국 대통령 중 가장 자주적이고, 미국과 거리가 멀고, 가장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와 산업을 성장시키고, 가장 신자유주의와 거리가 멀었던 대통령은 박정희다. 이것은 진보주의자에겐 불편한 진실이고, 모두들 박정희의 업적을 거짓말까지 동원해 폄하하는 데 바쁘다. 이런 시도는 지난 대선 때도 몇몇 단체에 의해 반복되었다.


 박정희가 했던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박정희와 다른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려 한 데서 비극이 시작되었다. 물론 박정희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단을 정당화시켰다. 그가 나쁜 짓을 많이 했다는 걸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객관적으로 평가될 필요가 있다. 모든 주변 이미지와 감정을 제외하고, 정책과 행위만을 놓고 본다면 박정희는 국가주도적 진보주의자가 되고, 노무현은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우파가 된다. 사람에 따라 불편하더라도 이것이 진실이다. 박정희는 금융을 억제하고 국가 및 관료 주도적으로 산업을 발달시켜 나갔다. 그 과정에서 적잖은 문제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폐허에서 그 정도의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는 지구촌에 한국뿐이다.


 심지어 박정희가 없었다면 삼성전자도 현대자동차도 포스코도 없었다. 옷 만들던 이병철에게 전자산업 하라고 시키고 건설업 하던 정주영에게 자동차 만들라고 시킨 건 박정희였다.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제철은 다들 못하겠다고 해서 박정희가 직접 국가 주도로 차린 것이다.


 세계적으로 봐도 커다란 한국의 중공업은 개개의 기업이 쉽게 시도할만한 게 아니다. 특히 한국 같은 철저한 후발주자는 더더욱 그렇다. 국가에서 안 시켰어도 한국이 반도체 만들고, 자동차 만들어서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국가가 될 수 있었을까? 냉정하게 말해 그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그냥 박정희가 잘했다는 식으로 마무리되어서는 정말 곤란하다. 진짜 문제는 박정희 사후에 있다. 박정희 사후 한국엔 제 2의 삼성, 제 2의 현대자동차가 나오기는커녕 있던 대기업들까지 하나하나 몰락하고 결국 지금은 안정적이고 성장세인 대기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커다란 암울함이다.


 한국 대기업이 쓰러진다고 중견기업ㆍ중소기업이 잘나가고 있을까? 아니다. 한국 기업들은 어차피 대체적으로는 세트메뉴다. 그 동안 소위 민주화 진보좌파들은 박정희와 대기업에 대해 지극히 적대적이고, 시장 개방하고 주주중심 자본주의, 금융 자본주의로 경제체제 바꿔, 기존에 박정희가 만들었던 부정한 대기업 재벌이 무너지면 뭔가 자연적으로 새로운 기회들이 창출될 거라는 주장을 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이야기는 신흥종교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근거는 별로 없다. 본래 신앙엔 믿음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무엇이 신자유주의인지, 왜 신자유주의가 문제인지를 먼저 개념을 잡아야한다. 흔히 깨시민을 비롯한 민주당 지지자들은 노무현의 적극적인 신자유주의 노선을 시대적 한계라는 이유로 변호하곤 하지만, 노무현은 상당히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그런 움직임은 지금도 지속중이다. 노무현보다는 이명박이, 이명박보다는 박근혜가 덜 신자유주의적인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순간순간 했던 선택들을 보면 그 이념을 알 수 있는데, 대통령은 권한이 큰 직책이고 각자의 사고방식과 철학, 경험 등에 의해 선택이 이루어지게 된다. 외부의 압력으로 신자유주의적인 판단을 했다는 건 졸렬한 변명을 넘어 혹세무민하려는 거짓말에 불과하다.


 진짜 진보라면 국가가 나서서 신산업을 육성하자고 주장해야 한다. 또한 금융그룹을 자국민이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해야한다. 어설픈 코스모폴리탄이 진보일 수 있는 국가는 미국뿐이다. 미국은 최강대국이니까. 그렇지만 한국은 아니다. 타국인들에게 인류애를 나누고 돈도 나눠줄지언정, 경제 주권은 나눠줘선 안 된다.


 지금 자칭 진보들이 하는 짓은 글로벌 금융세력에게 경제 주권을 팔아넘기고, 그나마 맞설 수 있는 국내 대기업은 옥죄는 행위에 불과하다. 사실 난 조선 말에 친일, 친청, 친러하던 사람하고 그들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아무리 박정희를 만주국 장교출신 다카키 마사오라고 한들 박정희의 업적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그런 식으로 대통령에 반기를 드는 세력이 매국행위를 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원래 제국주의라는 거, 식민지라는 거 별거 아니다. 군함 끌고 가서 무역하자고 하고, 강대국에게 이익이 되는 법 통과시키고, 그 나라 재산들 싸게 싸게 매입하고, 그리고 그 나라 사람들한테 물건 팔고 노동력 착취하면 그게 식민지다. 이 연장선상에서 신자유주의는 일종의 현대식 경제제국주의라 할 수 있다.


 김영삼 정부가 치기어린 신자유주의로 한국을 IMF의 수렁으로 빠뜨린 후, 김대중 정부는 화끈한 결단을 하지 못하고 IMF에 끌려 다니며 국부를 빼앗겼다. 노무현 정부는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아예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국가 경제의 뿌리를 뽑아 놨다. 자칭 진보세력은 이런 흐름을 진정시키려는 데 있어 큰 방해가 되고 있다. 그들의 무지와 광신, 어리석은 오만, 끝없는 권력욕과 질투심, 박정희 컴플렉스 등이 그 원인이다.


 나와 이웃의 행복을 위해 좋은 선택을 하고 싶다면, 가슴은 뜨거울지언정 머리는 차가워야 한다. 내가 바른 판단을 하고 있는지 언제나 의심을 가져야 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의 말과 글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소위 진보세력들이 박정희에 대해 컴플렉스를 가지고, 그의 방식이 낡았다고 여기며 신자유주의에 동조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이상 현재와 같은 정치경제적 문제들은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