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론 비판

경제 2016. 1. 31. 22:18 Posted by 해양장미

 사실 근래 문재인 등이 이야기하는 소득주도성장론 같은 건 진지하게 비판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핵심적인 요지가 빠져있고, 결국 논리적 완결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소득주도성장론은 정치적 수사이자 완성되지 않은 담론의 제안일 뿐, 완성도가 있는 정책적 계획안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 수사가 적잖은 이들을 솔깃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으니 조금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굳이 소득주도성장론의 주류경제학쪽 기원을 찾자면,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할 수 있는 온갖 조치들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시민들의 소득이 충분히 개선되지 않는 현상이 발견된 것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낙수효과가 (여러 문제들에 의해, 충분히)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평도 있었는데, 이 표현을 좌파들이 낙수효과는 없다는 식으로 왜곡해 전달하기도 했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더 강력한 재분배 정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는 나올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문제는 큰 부작용이 없고, 실효성이 있다고 보편적으로 생각되는 정책은 이미 웬만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이지요. 정부는 전능한 무언가가 아니기 때문에, 경기 후퇴 국면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소거하는 기적을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세계 경제는 네트워크화 되어있기 때문에 한 정부가 제어할 수 있는 범위도 한정적입니다.

 

 이 이야기를 자세히 풀자면 꽤 길어질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국내문제 및 한국에서 회자되는 소득주도성장론에 한해 가능한 간단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중요한 사실부터 이야기하자면, 일단 한국은 위에 이야기한 기원에 해당하는 현상이 그다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의 소득은 가시적인 지표로 볼 때 개선되어 왔고, 디레버리징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딱히 경제위기라 할 만한 걸 겪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글로벌 금융위기와 불황으로 인해 오랫동안 호황이 아닐 뿐입니다. 이건 겨울에 아무리 난방을 해도 봄처럼 따스하게 살 수는 없는 것과 비슷한,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문제지요.

 

 그렇지만 시민들 사이에 어느 정도 불만이 생기는 것 역시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럴 때 잘 하는 정부라면 시민들을 다독이고 어떻게든 심리적 만족감을 제공해야 합니다만, 박근혜정부는 이런 면에서는 무능하기 그지없기 때문에 여러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재인측이 이야기하는 소득주도성장론이 비록 말은 안 되지만, 정치적 구호로는 유용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정치적 구호로만 유용한 걸 진지하게 실행하면 안 됩니다.

 

 문재인발 소득주도성장론의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가계소득을 임의로 증대시킬, 부작용 없고 효과적인 수단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원천적으로 가계로 흘러가는 재화는 시장에서 결정됩니다. 정부가 그 흐름에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은 한정적이고, 섣부르고 무리한 개입은 혼란과 충격을 가져옵니다.

 

 실제 문재인측에서 소득주도성장론의 구체적인 방식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최저임금의 지속적인 두 자릿수 인상 (매년 10%이상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및 차별 해소 같은 겁니다. 물론 뭐라 말할 가치도 없지요. 최저임금의 가파른 상승이 문제소지가 많다는 건 본 블로그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습니다. 개인 사업자와 영세 사업체에 커다란 인건비 부담을 가져오게 되어 사업자의 가계를 어렵게 하고, 사업체의 도산 위험을 높이며 창업과 고용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게 주 문제소지입니다. 한국 현실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건 근거 없는 이야기일 뿐더러, 성장은커녕 실제 평균 가계소득에도 도움이 안 될 가능성 또한 높습니다. 더구나 객관적인 자료로 볼 때 한국 근로자의 소득은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온 반면, 개인 사업자의 소득은 거의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폐업 등과 관련한 데이터를 보면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게 현실입니다. 어느 쪽이 지원이 급한 계층인지는 명백합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참여정부 시절 비정규직 문제가 본격화되었고 문재인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건 과거의 잘못으로 넘어가더라도,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강제화할 때 기업이 어떻게 대응할지 정도는 미리 생각을 해봐야합니다. 기업은 노동자에게 노동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을 장기적으로 지불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런 현상이 빚어진다면, 누군가 부당하게 수탈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 귀족노조는 비정규직을 부당하게 수탈하는 방식으로 본인들의 노동생산성을 한참 초과하는 임금을 장기적으로 받고 있긴 합니다만, 그건 균형과는 거리가 먼 강압에 의한 것으로 여러 큰 부작용을 만들어내고 있지요.

 

 만일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면, 많은 기업은 현재 수준의 정규직 임금을 보장할 수 없으며 많은 노동자를 해고해야합니다. 어떤 기업은 도산을 하거나 다른 나라로 일부라도 이전을 하는 게 차라리 나은 상황에 처하게 되며, 많은 업무 과정에 자동화 압력이 극대화됩니다.

 

 쉽게 말하면 비정규직 싸게 쓰지 말라고 정부가 강제하는 순간, 기업은 그 강제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고 그 제한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라는 겁니다. 그 결과는 기업의 해외 이전, 창업 포기, 해외지사 이용, 공정 자동화, 인력 감축, 정리해고, 사업 매각 등이 될 확률이 매우 높고요.

 

 사실 이런 이야기는 현실을 어느 정도만 알면 굳이 할 필요도 없는 수준입니다. 가계 소득의 증대가 곧 소비로 이어지고, 선순환 사슬의 한 고리가 된다는 건 경제관념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압니다. 모든 경제학자는 가계소득의 증대를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를 탐구합니다. 문재인 같은 부류는 자신들만 유난히 가계의 어려움을 챙기는 것처럼 이미지 마케팅을 하지만, 멍청이가 아닌 이상 가계 소득이 중요한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류경제학이 문재인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처방을 내리지 않는 건 그게 거의 무용하며 부작용만 크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류의학계가 특정 환자의 특정 증상에 처방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고통스럽고 병이 빨리 낫지 않는다고 주류의학계가 반대하는 약물이나 시술을 선택하면, 보편적으로 높은 부작용 위험이 있다는 건 동의하는 분이 많을 겁니다. 물론 개개인은 곧잘 잘못된 선택을 하긴 합니다만, 한 국가의 지도자가 잘못된 선택을 하면 정말 많은 사람이 고통 받습니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주류의학을 거부하고 잘못된 방식을 택했던 사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있습니다. 넬슨 만델라를 이어 대통령이 되었던 타보 음베키는 에이즈가 HIV 바이러스에 의해 전염되는 질환이 아니라, 가난과 영양실조에 의해 걸리는 질환이라는 에이즈 음모론을 진지하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에이즈를 마늘과 홍당무로 치료하겠다는 정책을 펼칩니다. 남아공은 에이즈 감염률이 매우 높은 나라였는데 말입니다. 음베키 정부는 HIV 치료제에 대한 부작용을 홍보해서 약 사용을 막았고, 심지어 콘돔 사용까지 흑인 수를 줄이려는 백인의 음모라는 식으로 접근해 버립니다.

 

 그런 멍청한 정책의 결과는 당연히 참담했습니다. 하버드의 연구에 의하면 2000-2005년 사이 음베키의 정책에 의해 적어도 33만명 이상의 에이즈 추가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전해집니다. 2012년 기준 남아공엔 570만명에 이르는 에이즈/HIV 환자가 발생했으며, 전체 사망자의 40% 이상이 에이즈로 죽는 지옥이 펼쳐졌습니다. 백인이 통치하던 1990년 남아공 국민의 평균수명은 63세 이상이었지만, 음베키 집권 후인 2009년에는 47세로 곤두박질칩니다. 여담입니다만 백인들은 음베키의 정신 나간 소리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남아공 흑인 전체 인구의 13.6%가 에이즈/HIV에 걸리는 와중에도 백인의 에이즈/HIV 감염률은 0.3%에 불과했습니다.

 

 이 사례가 극단적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주류 전문가들의 말을 거부하고, 정치 지도자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비주류를 선택할 때는 이런 일도 빚어질 수 있는 게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음베키가 자국민들을 몰살시킬 생각으로 저런 바보짓을 한 건 아니겠지요. 의도가 좋은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정치는 현실입니다. 정치가는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만 하지요. 그것이 안 되는 사람은 정치를 해서는 안 됩니다.

 


깨시스트들이 파시스틱한 이유에 대하여

정치 2016. 1. 22. 17:57 Posted by 해양장미

 사람들은 파시즘에 대해 여러 가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파시즘은 좌파의 한 대표적인 갈래이자 계보입니다. 한 때 파시즘은 긍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었고, 그렇기에 몇몇 국가에서 주류가 될 수 있었습니다. fasi라는 언어의 뜻은 단결이라는 뜻입니다. 좌파가 근래에도 자주 하는 말이지요. 그 말을 이탈리아어로 쓰면 파시가 됩니다.

 

 20세기 중반까지 전성기였던 파시즘은 세계대전 끝에 불명예스레 끝났고, 이후 좌파의 주류는 소비에트를 중심으로 한 공산권 세력이 됩니다. 그렇지만 20세기 후반에 공산권은 무너졌지요. 좌파의 한 후계인 사민주의자들은 실질적으로 자유 세력의 이질적인 분파가 되었고, 그들 중 온건한 부류는 사회적 자유주의 계열로 편입되었습니다.

 

 공산주의가 틀렸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된 시점에서, 좌파의 주류는 점차 파시스틱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도 공산주의적인 좌파는 꽤 있습니다만, 이젠 그들이 주류가 아닙니다. 일단 현 시점에서 한국 좌파의 주류는 깨시스트들입니다.

 

 이번 글에서 나는 파시스트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다시피, 깨시민들은 어쨌든 많은 경우 선한 동기를 가지고 정치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또 어쨌든 그들은 본인들 스스로는 정의롭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남들이 보기엔 미쳐있지만 말이지요.

 

 그들이 그렇게 이상한 이유를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온갖 문제와 부조리가 주로 기득권의 사악함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 부족, 그리고 각종 기득권 답합과 게으름 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꿔 말하면 선한사람이 강인한 의지를 가지고 정의로운 권력을 행사하면 세상의 온갖 문제가 정말 많이, 기적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기대를 품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파시즘의 본질입니다. 파시스트들은 딱히 크게 이상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20세기 이탈리아, 프랑스, 도이칠란트, 로므니아 등지에서도 그랬고 지금 한국에서도 그렇습니다. 그저 그들은 민주정 위에서 민주정을 전복하려는 철인정치론자 또는 수호자주의(가디언쉽)자일 뿐이며, 본성이 사악하다기보다는 멍청하고 광신적이 되기 쉬운 부류일 뿐입니다. 물론 진짜 악당들 이상으로 이런 친구들이 많이 위험하긴 하지요.

 

 파시스트들은 위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선악에 집착합니다. 선악을 매사에 구분하려고 하는 성향이 강하지요. 물론 자신들이 선입니다. 실제로 선악을 나누거나 판단하기 애매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내 편이 선이 됩니다. 인류의 원시적 선악구분법이지요.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영도자가 무슨 일을 해도, 그것이 선한 동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악행을 해도 본심은 선할 것이며, 선한 큰일을 이루기 위해 작은 악을 행했다는 식이 되는 것이지요. 사실 엄밀히 말하면 파시스트들에게는 선악을 구분할 능력이 없습니다. 선악을 성찰하고 구분할 정도가 되면 파시스트가 되지 않아요. 선악을 성찰하고 구분하는 건 통념보다 훨씬,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때때로는.

 

 그리고 또 파시스트들은 위에 이야기한 이유로 권력에 집착합니다. 이들의 사고 구조는 기본적으로 선한사람이 권력을 잡고 모든 걸 개혁해야 한다는 식이거든요. 권력 없이는 개혁이 안 될 테니까요.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영도자가 권력을 잡는 것을 돕는 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들의 세계관에서 자신들은 선이고, 선한 영도자가 권력을 잡는 것도 선이기에 그것을 방해하고 막는 건 악이 됩니다. 이게 외부인들이 보기엔 정말 말도 안 되고 미친 짓이지만, 본인들에게는 정당하며 논리적인 행위입니다.

 

 사람의 믿음과 상상은 가시적이고 뚜렷하며 강하기까지 한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명료한 한 예로 상상임신을 들 수 있지요. 상상임신은 (본인의 인식 상) 가임기인 여성이 스스로 임신했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상상임신이 되면 실제 임신처럼 월경이 멈추고, 입덧이 생기고, 유방 및 유륜이 변화하고, 아랫배도 부풀어 오를 수 있습니다. 진통과 태동을 느끼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실제 임신하고 똑같은 거의 모든 현상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저 초음파로 찍어보면 태아가 안 보일 뿐이지요. 임신테스트기에도 음성이 뜨고요. 실제로 기기 없던 옛날에는 의사들도 상상임신과 실제 임신을 잘 구분 못하곤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사람이 아니라 인류의 동반자 개들도 상상임신을 하곤 합니다.

 

 파시스트들 역시 상상임신처럼 강한 믿음 아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들만이 선하고 옳고, 그렇기에 자신들이 꼭 권력을 쟁취해야만 이 세상을 바람직하게 만들 수 있다는 그런 믿음 말이지요. 물론 그것은 망상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망상에 근거하여 온갖 사악한 짓들을 서슴잖게 됩니다.

 

 이들 중 심각한 경우는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것과 같아서, 치유가 거의 어렵습니다.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들은 대체로 의존할 만한 걸 찾기 마련입니다. 파시즘은 열광적인 종교와 같기에 많은 사람들을 홀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잖은 깨시스트들의 착각은 단순한 어리석음과 무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는 시간을 두고 진실을 깨닫게 하면 파시스틱한 언행을 그만둘 가능성이 있지요. 일단 그들은 세상의 여러 가지 현상이나 문제들이 실제로는 매우 복합적이며, 선악을 판단하는 것은 많은 경우 어렵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어려울 때가 많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사회에 관심을 가지려는 사람들은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고, 정부의 의도를 시민들은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을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시민의 반발이 많을 정책을 정부가 반복해 밀어붙일 경우, 그 시도는 실패율이 매우 높을 뿐더러 정부가 힘을 앞세워 강행하려 들면 독재가 되기 쉽다는 것 또한 이해해야 합니다. 파시스트들이, 그리고 더 나아가 대부분의 좌파들이 결국 독재를 지향하게 되는 건 이런 세상의 복잡성이나 각자 다른 입장, 판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현상은 떠민당이나 정의당 등의 공식적인 논평이나 정책, 그리고 대표 정치인들의 발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현실을 개선할 만한 설득력 있는 방안을 내놓지 못합니다. 현실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내 방식대로 하면 잘 될 것 같은 거지요. 마치 많은 초보 게이머들이 각 종목의 정석에 대한 이해 없이, 내 방식대로 하면 잘 될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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