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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지역 소개 - 4. 서구 - 1) 옛 서구 지역

사회 2020. 5. 5. 20:15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은 이 지역에서 뮤비를 찍은 2NE1 Ugly

 

https://youtu.be/NGe0hHvAGkc

 


 이전 화


1. 계양구 - 1) 계산, 작전동 일대

1. 계양구 - 2) 외곽 및 산악지대

2. 부평구

3. 남동구 - 1) 구월, 간석, 만수동 일대

3. 남동구 - 2) 남촌도림동, 장수서창동, 논현동 및 고잔동





 원래는 남동구 다음에 연수구를 다루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연수구는 인천 동부라기보다는 서부에 가깝다고 판단하여 나중 차례로 돌리려고 합니다.


(인천광역시 서구 행정동 지도입니다. 오류동 가운데의 흰 부분은 쓰레기매립지 일대.)

 

 이번에 이야기하려는 서구는 섬 지역을 제외한 인천 본토에서는 가장 넓은 지역입니다. 좀 과하게 넓어서 총면적이 현재 무려 137.12인데요. (서구 공식 면적) 인천이 워낙 넓은 광역시라 인천광역시의 10개 자치단체 중에선 총면적이 4위고 순위로는 중간 정도밖엔 못 하긴 합니다. 섬지역이 많이 넓거든요. 그래도 서구 면적도 상당히 넓은 거라 수원시 전체보다 넓고 성남시 전체와 비슷한 면적입니다. 이 큰 넓이 때문에 향후 분구가 거의 확정적입니다.


 

 조선시대에 서구는 검단 지역을 제외하면 부평도호부에 속했고, 인천 편입 직후엔 북구의 서쪽 일부였습니다. 옛날엔 산 넘어 바닷가 마을 정도인 곳이었지요. 그러나 시대의 흐름과 함께 현재의 주안산단 및 청라국제도시 지역이 매립되고, 김포 검단면이 인천으로 넘어오면서 현재의 광활한 면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넓어진 후에도 한동안 광활한 지역이 시골이었지만, 느리게나마 점차 개발이 되면서 이젠 인구가 50만 명이 넘는 자치구가 되었고요. 개발과 인구유입이 계속되는 지역이다 보니 2020년 현재는 남동구보다 인구가 많아져서, 인천 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자치구가 되어 있습니다. 이 넓은 지역이 아직도 국회 의석수는 겨우 2개여서 문제가 많기도 합니다. 인천광역시의 시급한 과제 중 하나는 정치력과 정치적 지분을 확보하는 겁니다.


 

 현재의 서구는 본래 육지였던 옛 서구지역과 매립지인 인천 북항 및 공장지대, 청라국제도시. 그리고 검단의 4지역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중 검단은 하나의 자치구만큼이나 넓은 지역이라 향후 분구될 가능성이 높고요. 본래 김포였던데다 아라뱃길로도 나뉘기 때문에 생활권이 좀 다른 지역입니다.


 

 서구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먼저 옛 부평도호부의 지리부터 이해해야합니다. 김포-부평평야 서쪽엔 가현산-계양산-천마산-원적산-철마산-법성산-만월산으로 이어지는 한남정맥이 있는데요. 1960년대만 해도 이 산맥이 바닷가 산맥이었습니다. 물론 산맥 넘어 바닷가에도 마을들이 있었는데요. 이 지역이 현재의 연희동 일대 및 가정동, 신현동, 석남동, 가좌동 등의 지역으로 예전부터 있었던 서구 일대입니다. 그리고 가좌동 남쪽으로는 만조 시 바다, 간조 시 갯벌인 만(bay)이 있었고, 이 곳에 주안염전이 있었지요. 주안염전은 조선 최초로 천일염을 생산한 지역이었고, 광복 이후에도 한동안 전국적인 천일염 생산지였습니다. 근래의 신안군 천일염 같은 지역 브랜드 이미지를 주안이 가지고 있었다고 할까요.


 

 그렇지만 인천은 타 지역보다 빠르게 산업화되었습니다. 60년대부터 주안염전 일대 및 서구 서쪽이 매립됩니다. 그리고 거대한 공단과 항구(인천 북항)가 생기지요. 바다를 접한 큰 공단이 있으니 서구의 주거지역은 동서로는 좁게, 남북으로는 길게 들어서게 됩니다. 시대적 특성이 있고 지리적 특성이 있으니 재래시장이 여럿 들어섰고, 옛 부평도호부였음에도 불구하고 생활권이나 문화는 남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옛 인천도호부쪽에, 그러니까 십정동/간석동/주안동에 훨씬 더 가깝게 발달한 곳이 되었습니다.


 

 이 지역과 부평 지역을 오고가려면 언덕을 넘거나 터널을 지나야 합니다. 남쪽 길부터 언급하자면 산곡동 한양아파트 옆으로, 지역 명문고인 명신여고를 끼고 철마산을 넘는 원적로가 일단 있고요. 그 바로 북쪽에는 인천의 세 자동차전용 유료터널 중 하나인 길주로의 원적산터널이 있습니다. 이 세 터널들은 하이패스가 안 되고 거리대비 비싼 걸로 악명 높습니다. 다른 두 터널은 부평과 구월동을 잇는 만월산터널, 그리고 미추홀구 학익동과 연수구 청학동을 잇는, 문학산을 관통하는 문학터널입니다.


 

 원적산터널 북쪽으로는 장수산과 천마산의 골짜기에 경인고속도로가 지나는, 계양구와 부평구와 서구 세 구의 경계가 있습니다. 여기에 경인고속도로의 현 시작점 서인천IC가 있고, 그 남북으로 일반도로가 지나가는데 남쪽 일반도로는 장수산 자락을 지나가는 서달로고, 북쪽 일반도로는 동쪽으로 부천을 횡단해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월동까지 이어져 화곡로에 직결되는 봉오대로입니다. 봉오대로의 옛 이름은 봉화로이며, 이 도로는 부천에서는 오정대로였는데 이름이 합쳐져서 봉오대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구청 북쪽에는 계양산과 천마산 사이의 징매이고개를 넘는 경명대로가 지나갑니다. 이 징매이고개는 고려 충렬왕 시대에 이 곳에 사냥용 매를 징집하는 국영 매방을 이전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후 양녕대군도 이 지역에서 매사냥을 즐기다 결국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줬다고도 전해집니다.


 

 옛 서구의 거주지는 바닷가이면서 산자락이었기 때문에, 낮은 고개가 많은 지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석남동이나 가좌동 일대의 고갯마루에 서서 남쪽이나 서쪽으로 길이 뚫린 쪽을 바라보면, 지평선 가까운 저 멀리까지 시야가 트입니다. 물론 그 끝에 있는 것은 어디에서 봐도 공장 지대입니다. 인천 어느 지역보다도 연희동 쪽을 제외한 옛 서구지역이 오래된 항만 공업도시로의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선 산업 지역 특유의 지저분함과 활기와 난개발과 오래 되고 낡은 지역을 동시에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공단이 있는 부평구나 남동구 쪽과 비교하면 옛 서구 지역은 좀 더 오래된 느낌입니다. 어쩌면 이 지역이 인천 밖에서 인천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는 이미지에 꽤나 근접한 지역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인천에서 이런 지역은 옛 서구뿐입니다. 미디어에 나오는 오래 된 항만공업도시의 모습을 체험하고 싶으면 옛 서구 지역을 다녀보시길 권장합니다.


 

 북쪽에서부터 가정동, 신현원창동, 석남동, 가좌동은 남북으로 쭉 이어지는 연담화된 도시지역입니다. 가좌동은 한 때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살았다고 할 정도로 인구밀도가 높았던 동이라고 하는데요. 실제 옛 서구 거주지역은 반듯하게 길이 뚫려있는 곳이 많고, 다가구나 다세대 주택이 아주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동네 생긴 걸 보면 한 때는 골목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동네였을 거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지요.


 

 이 옛 서구 주거지역 동쪽으로 ()경인고속도로가 지나갑니다. 지금은 규정상 일반도로가 되었지만, 아직 생긴 거나 차량 달리는 모습은 그냥 지상에 깔린 고속도로입니다. 이 때문에 원적산 서쪽 자락, 경인고속도로 동쪽에는 동서로 아주 좁고 남북으로는 긴 주거지역이 있는데, 고립지형이고 산 근처라 그런지 고속도로 서쪽과는 달리 아주 조용하고 공기 괜찮은 분위기의 동네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대조적으로 경인고속도로 서쪽은 난개발이 끊임없고 유동인구도 꽤 되고, 공기는 나쁩니다.


 

 서구청이 위치한 연희동은 중간에 산이 있어 남쪽의 가정동과는 떨어져 있습니다. 연희동 일대는 옛날엔 곶(cape)이었고, 계양산과 천마산 사이의 고개를 넘으면 부평도호부의 중심이었던 계산동과 바로 이어지는 지역입니다.


 

 고종 때 곶이었던 현재의 연희동에 진지와 포대를 설치하고 연희진지라 불렀습니다. 이후 연희진지는 개항되면서 쓸모가 없어졌고 진지의 모습은 거의 사라졌지만, 지형이 곶이었던 만큼 현 서구 지역의 중심지가 되었지요. 여담입니다만 원인천 쪽도 본래는 곶이었고, 연희진과 함께 그 쪽에도 진지를 설치했었는데 그게 화도진입니다. 이건 중구, 동구 이야기할 때 더 해보지요.


(인천광역시 서구 법정동 지도입니다.)

 

 연희동 일대는 지금도 서구의 행정 중심지입니다. 거대한 면적을 가진 서구에서 마침 지리적으로 가운데 쪽이기도 하거든요. 인천 아시안게임에 사용했던 아시아드 주경기장과 보조경기장이 있고, 서구에서 가장 큰 병원인 가톨릭관동대학교국제성모병원도 이 곳에 있습니다.


 

 서울 논현동도 그렇지만 서울 연희동도 동 이름이 꽤 유명하다 보니, 인천 사람들도 연희동이라고 하면 서울 연희동을 먼저 떠올리기도 합니다. 또 인천 서구 행정동 연희동은 법정동으로는 심곡동 + 공촌동 + 연희동 일부인데, 심곡동이라고 하면 또 부천 심곡동이 더 유명합니다. 그래서 인천 사람들도 구분해서 굳이 인천 연희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동명이 그래서인지 서구청 쪽이라고 부를 때가 가장 많습니다. 현재 아시아드경기장역이 있는 공촌사거리가 유명해서 공촌사거리 쪽이라고 지칭하기도 합니다.


 

 연희동에 있는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은 인천지역에서 가장 큰 종합경기장입니다만, 현재 거의 방치나 다름없는 상태의 문젯거리입니다.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 문제는 좀 스토리가 복잡한데요.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안상수 시장 재임 당시 인천은 꽤 잘 성장 중이었습니다. 빚더미라는 이야기는 민주당의 언론 플레이였고, 실질적으로 재정 문제가 그 때는 없었습니다. 민주당의 부채 관련 언론 플레이는 너무나도 지저분했고 인천광역시의 이미지 및 미래에 큰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결코 이 문제에서 민주당을 용서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부망천 같은 소리는 그것에 비하면 완전히 애교지요. 여하튼 안상수의 인천은 2007년에 2014년 아시안게임을 유치하는데요. 여기서 7만석 규모의 주경기장 신축 계획이 생깁니다.


 

 당시 노무현 정권은 신규인프라 건설에 부정적이었습니다만, 그래도 안상수는 역시 행정에 있어서는 뛰어난 인물이라 20091, 포스코건설이 4,460억 원의 건축 비용 중 70%를 부담하고 나머지 30%는 인천시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주경기장을 신축하기로 비공식 합의를 했었습니다. 혹자는 포스코건설이 인천아시아드를 지으려다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포기했다고 주장합니다만, 포스코건설과 인천시가 합의한 시점은 2009년이라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이후입니다. 대신 포스코건설이 경기장을 30년간 운영하고, 인근에 주상복합도 지어서 투자금+이익을 회수하려고 했었지요.


 

 그래서 안상수의 인천시는 개발제한구역이던 현 인천아시아드 부지의 개발제한을 해제하고, 토지보상까지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착공 직전까지 간 게 2010년 지방선거 무렵으로 압니다. 그런데... 그 시점에 뜻밖에도 안상수가 져버립니다. 안상수가 모든 걸 잘한 건 당연히 아닙니다만, 그래도 나는 아무리 복기를 해도 안상수가 최고의 인천시장이었다 생각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안상수는 이미지가 너무 많이 부당하게 더럽혀져버려서, 나는 종종 안상수가 왜 좋은 시장이었는지를 설명하는데 시간을 사용하곤 합니다. 이번 총선에서 잘못된 공천으로 정치생명이 허무하게 다한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지요.


 

 송영길은 처음부터 인천아시아드경기장 신축에 회의적이었습니다. 당선된 후 시장 취임식도 하기 전에 쿠웨이트로 떠났지요. 그리고는 아흐마드 알사바 OCA 회장을 만나 인천은 7만석짜리 신축경기장을 지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5만석 규모의 문학경기장을 증축하여 5천석을 추가하고 이런저런 인프라로 지원하겠다고 협의합니다. 그에 아흐마드 알바사 회장의 동의를 얻어내고 인천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난리가 납니다. 서구 주민들이 이걸 그냥 받아들일 리가 있습니까.



 이 때 적극적으로 나섰던 인물이 그 때도 서구 국회의원이었고 (이번에 낙선은 했지만) 지금도 국회의원 신분인 이학재 의원입니다. 송영길은 취임도 하기 전부터 국회의원과 구의원이 낀 강경한 시위대를 마주하게 되었지요. 취임식까지 엉망이 될 뻔한 걸 이번에 12년 만에 총선에서 이겨 국회의원이 된 김교흥이 중재하여 겨우 수습하기도 했었습니다.


 

 송영길은 처음부터 불리한 입장이었는데, 애초에 안상수를 꺾기 위해 송영길과 민주당측에서 펼친 인천 부채 언플이 말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프로파간다와 프레임으로 선거판을 뛸 때는 몰라도, 취임 후 팩트와 숫자로 싸우면 불리할 수밖에 없었지요. 게다가 안상수의 인천아시아드건립계획은 인천시가 큰 비용지출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난리가 났으니 포스코건설도 발을 뺍니다. 70% 건축비를 분담해 직접 짓겠다던 포스코건설이 발을 뺐으니, 당연히 정치적으로 더 난리가 났고 송영길은 크게 지탄 받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바보짓이 된 겁니다. 송영길의 정치적 거점이 서구였으면 그런 행동을 못 했을 것입니다만, 송영길은 동쪽 계양을이 본거지고 거긴 서구아시아드 경기장 같은 덴 아예 별 관심이 없었지요.


 

 어쨌든 이 상황에선 당시 긴축 중이던 인천은 문학경기장을 증축할 수밖에 없게 되었었습니다만... 그렇게 안됐습니다. 갈등이 심해지니 결국 55,000석짜리 주경기장을 서구에 짓는 것으로 중재안이 나왔고, 인천시는 그 부담을 할 수 없었으니 중앙정부에 징징을 시전했고, 서구 주민들의 필사적인 징징에 이명박 중앙정부는 어쩔 수 없이 건설비의 27%. 1,326억원의 지원을 해줍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정말 거지같은 사건이었지요. 송영길은 위대합니다.


 

 이후의 전개도 참 씁쓸했는데요. 당초 계획이 4,460억으로 7만석이었던 반면 실제 지은 건 55,000석인데도 어째 같은 예산이 들어간 걸로 보입니다. 이건 뭔가 내가 본 자료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포스코건설이 직접 주도해 짓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가 있었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잘 이해는 안 갑니다. 그리고 주변 개발이 늦어지고 인천도시철도 2호선의 완공도 늦어져, 아시안게임 당시에는 너무 외지에 경기장만 있는 셈이 되었고 그나마도 육상 경기밖에 치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시안게임이 끝난 이후 6년이 지나도록 이 경기장은 지금도 거의 버려져 있다시피 합니다. 외형은 참 멋진데 막상 가 보면 휑합니다. 당초 계획대로 포스코가 운영을 담당하고 근처에 주상복합을 지었다면, 어쩌면 달랐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지금은 유지비로 세금만 1년에 수십억씩 들어가는 상황입니다. 물론 송영길은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질 수가 없지요. 시장 재선 실패 이후 서구 의원도 아니고 계양구 의원인데.


 

 나는 이런 거액을 들인 도시 인프라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좋은 인프라가 활용되지 못하는 데는 복합적인 사회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거리마다 번화하고 도시 인프라마다 사람이 몰리던 시기가 있었는데 가끔 그 때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너무나 잘못된 길로 가고 있습니다.


 

 서구청 일대의 주거 및 상업지역은 서구의 중심이라기엔 그다지 넓지 않고, 모든 방향으로 다소 고립되어 있으며, 언덕 지형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 구의 중심지가 이렇게 고립지형에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데, 북쪽과 서쪽으로 부지가 없는 게 아님에도 개발제한이 장기간 걸려있던 탓이 큽니다. 그나마 서구청 일대 자체도 90년대 이전에는 지금보다 개발이 훨씬 덜 되어있던 지역이고, 서구는 서구청 일대보다 더 남쪽에서 우선적으로 발달하였었습니다.


 

 서구청 일대는 90년대 중후반에 개발된 곳이 많습니다. 아파트들이 꽤 있는 동네인데, 아파트들 준공년이 대체로 94~98년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예전부터 서구의 중심지이긴 했지만, 동네는 아주 오래 된 동네는 아닙니다. 90년대 후반까지도 연희동 일대는 한참 개발 중에 있었습니다.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 서쪽에는 현재 제법 조성을 해둔 연희공원이 있습니다. 이 연희공원이 본래 연희진이 있던 곳이라, 지금도 가 보면 포대의 흔적이 있습니다.


 

 양질로 조성 중인 공원임에도 인접한 아시아드와 마찬가지로 연희공원은 적어도 평일 기준으로는 사람이 별로 없는 편입니다. 청라국제도시의 바로 인근에 있지만, 실제 청라 거주지에서 도보 접근성이 좋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조금 더 신경 써서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해 보이지만, 아직은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좋은 공원인데요. 서구가 워낙 넓고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보니, 인프라는 갖춰가는데 아직 그걸로 뭔가 꾸려 나갈 행정력 등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연희공원은 바닷가에 나름 제법 격지라 그런지 계절 잘 맞추면 철새를 보기 쉽습니다. 나는 2019년에 이 곳에서 대형 조류를 목격한 적이 있는데, 정확한 형태를 본 것은 아니라 확신은 못합니다만, 어쩌면 두루미를 봤던 것이 아닐까 생각 중입니다. 예전에 연희동경서동 일대는 두루미도래지로 천연기념물 지정이 되었다가 간척사업으로 지정해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1977년 지정, 1984년 지정해제)


 

 본격적인 옛 서구지역은 서구청 쪽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현재의 루원시티에서 시작됩니다. 루원시티는 본래 가정오거리로 불리던 곳이었고, 한 때는 재개발이 지체되면서 인천 최악의 슬럼으로 전락했었습니다. 루원시티는 아직 개발이 끝나지는 않았습니다만, 재개발의 지체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 재개발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 지 알 수 있는 아주 좋은 샘플이지요. 다만 이름이 루원이라 처음 들으면 중국 지명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루원시티라는 이름은 본래의 동 이름인 佳停’, 아름다울 에 머무를 과 연관이 있는 이름입니다. 루원이 한자로 樓苑인데 다락 루에 (누각이나 망루에 쓰는 한자) 나라동산 원입니다. 나라동산 은 우리나라에서 잘 쓰는 한자는 아닌데, 왕족이나 귀족이 울타리를 치고 짐승과 식물을 키우며 종종 사냥을 하는 곳을 이라 합니다. 역사와 문화의 차이로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많이 쓰는 한자고, 우리나라에서는 궁궐에나 써왔습니다. 가정동 루원시티라 하면 즉 아름다움이 머무는, 누각이 있는 나라동산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 루원시티는 청라와 연담된 신도시 지역이니 나중에 따로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북단의 옛 가정오거리부터 시작되어 남쪽으로는 가좌동까지 이어지는 옛 서구 주택지는, 바다에 인접한 지역임에도 주민들이 바다를 보고 살거나 하진 못합니다. 인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인천 시민들이 바다와 가까이 산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대다수의 인천 사람들은 거의 바다를 잘 보지 못하고 삽니다. 인천 바닷가는 월미도나 정서진, 그리고 항구와 포구 같은 극히 일부의 지역을 제외하면 예외 없이 공장지대라서 일반 시민들이 굳이 갈 일이 없습니다. 막상 가도 대체로 볼만하지가 않고, 바닷가는 철조망 같은 걸로 막혀 있기 일쑤입니다. 부두에 가도 거의 컨테이너선 같은 게 많고, 관계자 외 출입제한지역도 많고, 군사시설도 곳곳에 있고, 유람선 같은 건 별로 없으며 여객선이 다니는 항구도 제한적입니다. 인천 시민들의 수상 레저는 공업이 발달한 바닷가보다는 어째 아라뱃길과 한강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옛 서구지역 바닷가의 산업 단지는 규모도 크고 항구까지 있는데도, 별로 인천 내에서 존재감이 있는 편은 아닙니다. 이 지역은 본래 육지가 아닌 바다라 할 수 있었고, 염전이나 수산업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관련 직업을 가지거나 한 게 아니라면, 그냥 일반적인 길로 다니면 굳이 가볼 일이 거의 없는 지역입니다. 운전을 하다 잘못해서 들어가도 길을 잘못 들어서 엉뚱한 곳으로 왔다고 생각하게 되는 지역이지요. 주안산업단지와 쭉 이어져 있는데, 넓이로 보면 이 주안산단이 인천 내 최대 규모의 산업단지임에도 인천시민들에게는 남동공단이나 부평공단 등에 비해 존재감이 없는 편입니다. 현대제철, 한진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GS칼텍스 같은 대기업 공장들과 듀오백 같은 유명 브랜드가 이 지역에 있지만 굳이 찾아가지 않는 이상 들어갈 일이 없거든요. 그나마 송림동에 이마트 트레이더스가 생긴 후에는 공단을 통과할 일이 좀 늘긴 했지만요.


 

 이렇게 해안 산업단지와 산지 사이에 있다 보니, 옛 서구지역은 공기 질이 그리 좋은 편은 못 됩니다. 물론 이것도 세부 지역마다 다르긴 한데, 아예 산지에 가깝거나 지대가 높은 쪽은 교통이 조금 나쁜 대신 공기 질은 그래도 괜찮은 편인 것 같습니다. 경험적으로는 공단이나 대로 근처라도 지대가 높으면 공기 질은 괜찮아집니다.


 

 옛 서구 지역의 산업단지와 주거지대가 완전히 대책 없이 붙어 있는 건 아닙니다. 서구 주거지역과 산업단지 사이에는 완충녹지가 있긴 합니다. 신현동 주거지역 서쪽은 구릉지이고, 석남동 쪽부터는 동서로 100m 정도 되는 공원 및 녹지가 남북으로 1.5km 정도 이어지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가재울역에도 완충녹지공원이 있고요. 사실 이런 완충 녹지가 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공장 지대에 가볼 일이 더 없기도 합니다.


 


 다만 남부의 가좌동 쪽은 가재울역 근처를 제외하면 주거지역과 산업단지가 별다른 경계 없이 이어집니다. 가좌동은 80년대엔 거주인구수가 전국적으로 많았던 동네고, 당시엔 딱히 공장지대와 주거지대를 나눌 여유가 없던 시대였고, 사람들도 신경을 많이 안 썼는데 그 시대 모습 그대로 세월이 지나 그런 것 같습니다. 실제 공단에 인접한 가좌동에 가 보면 정말 옛날 중공업도시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주거지역보다는 공단이 훨씬 넓은 동이지요.


 

 현대 도시에서 공장을 뺄 수는 없습니다. 제조업은 산업의 근간이고, 중공업 없는 세련된도시를 많은 이들이 꿈꾸는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는 아직 어렵습니다. 굴뚝이 없는 도시는 전국에서 서울과 세종시 뿐입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하면서 아이를 많이 키웠습니다. 서구 옛 지역들에는 그런 흔적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이젠 시대가 변했고, 청년들 중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공장들도 노동자를 꾸준히 고용하기 어렵게 되었고요. 인천은 일자리 자체는 널렸음에도 실업률이 높은 도시가 되었지요.


 

 앞으로 인천에 있는 공장들이 지속적으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2020년 현재 공업 도시로의 인천이 가진 경쟁력은 그다지 특별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게 될 것입니다. 옛 서구지역의 과거와 현재는 공업이 우리나라에서 차지하는 역할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옛 서구지역에서 꽤 넓은 지역을 차지하는 주안산단은 동구 및 미추홀구와도 밀접한 관계이므로, 차후 미추홀구를 다룰 때쯤에 다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현 시점에서 옛 서구 지역은 인천의 대표 할렘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인천에 이런 곳이 좀 더 많았지만 시대가 지나고 현대화되다 보니 줄어들어서, 이젠 옛 서구지역만 좀 특별해진 상황입니다. 특히 석남동 일대가 유명합니다. 좀 시끄러운 거 좋아하고 밤을 사랑하는 분들이 지내기 좋은 동네라고 할까요.


 

 한편으로 최근 옛 서구지역엔 인천 2호선을 따라 역세권에 오피스텔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옛 경인고속도로 길을 따라 함께하는 인천 2호선은, 옛 서구지역에서는 역 입구들이 꽤나 외진 데 있다는 느낌인데요. 그래서 독특한 모습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낡은 동네 외각, 고속도로 인근에 신축 오피스텔들이 들어서고 있는 것이지요. 인천에는 아직 서울 수준으로 역이 많지는 않기 때문에 역세권은 꽤 가치가 있는 편입니다.


 

 외부에서 인천을 보는 이미지와 실제 인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인천은 많이 다릅니다. 그러나 그나마 비슷한 지역은 있지요. 항구도시 인천의 역사적 이미지가 남은 곳이 원인천이라면, 항만공업도시 인천의 이미지에 제일 부합하는 지역은 이 옛 서구지역일 겁니다. 그런데 옛 서구 지역도 근 몇 년 사이 빠른 개 중에 있고, 꽤나 생기가 있는 지역이라 몇 년 후의 이 지역은 좀 다른 모습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천 지역 소개 - 2. 부평구

사회 2018. 6. 22. 23:58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부평구민의 노래.

 

http://www.icbp.go.kr/open_content/file/symbol_song2.wav

 


 전편은 다음 링크로


인천 지역 소개 - 1. 계양구 - 1) 계산, 작전동 일대

인천 지역 소개 - 1. 계양구 - 2) 외곽 및 산악지대




 계양구를 이어 부평구 소개입니다.



 

 인천 부평구는 인천 외 다른 지역에도 어느 정도 이상 알려진 구로, ‘부평이라 하면 현대에는 부평역 일대 및 부평동을 뜻합니다. 조선 시대에 부평의 중심은 계양구 계산동이었지만, 경인선 전철이 깔린 후 시간이 지나면서 부평역 일대가 중심지화된 것이지요.

 

 90년대 중반까지 같은 구였던 계양구가 도서지역을 많이 포함한 베드타운이 주인 반면, 부평구는 연담화된 메갈로폴리스의 한 중심지이면서, 교통의 요지이며 주거 상업 산업이 모두 발달한 곳입니다. GM대우 인천공장이 부평구에 있고, 옛날엔 삼익악기 공장도 이 곳에 있었습니다. 인천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곳도 부평구에 있습니다.

 

 부평구 지역의 역사는 좀 복잡한데, 간단하게만 설명하면 본래 조선 시대엔 부평도호부에 속했던 곳이 일제 이후 부천군이 되었었습니다. 이 땐 현 인천 중구, 동구 일대를 제외한 부평과 인천지역 모두를 부천군으로 묶었었는데요. 부평역 주변은 1940년대에 미쓰비시 공장이 들어서면서 다시 인천에 편입됩니다.


 

 이 시대에 미쓰비시가 현 부평구 지역에 끼친 영향은 아주 컸습니다. 어두운 역사인 면도 있었지만, 번영도 함께했었지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제가 망하고, 미쓰비시가 떠나고, 전쟁이 터지면서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후 1970년대 들어서야 부평공단이 발달하면서 다시 번화한 곳이 될 수 있었습니다.

 

 계양구 이야기할 때도 다뤘지만 1980년대까지 부평-계양 일대는 많은 부분이 농경지였습니다. 타 인천지역과는 달리 평야지대이면서 하천도 발달해 있는 지역이었지요. 비가 많이 오면 굴포천이 범람해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었는데, 예전부터 수해를 많이 입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옛날에 계양-부평 일대 농경지가 어떤 곳이었는지 감 잡을 수 있는 옛 뉴스를 하나 링크할게요.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87/1794480_19322.html

 

 옛 기록들을 보면 계양-부평 일대의 범람은 적어도 고려 시대 때부터는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경인아라뱃길을 공사한 후에야 거의 완전하게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서구 다룰 때 이야기를 좀 더 할게요.


 

 1948년에 부평 미군 기지에서 찍었다는 사진입니다. 저 멀리 아마도 계양산인 것 같은 산까지 쭉 평야지요. 원래 부평은 이런 지대였습니다. 그렇지만 산업화 이후 부평은 완전히 다른 곳이 됩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부평구에는 고층아파트가 다수 생겨났습니다. 1기 신도시보다 빠른 시점에 고층아파트 단지가 크게 들어서면서 신도시화 되었던 것이지요. 이 때 인구가 급증했고, 번화도가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1990년대에 부평구는 번화하고 시끄럽고 항상 길이 막히는 곳이었는데, 이 때 사실 길이 막혔던 이유 중 하나는 인천지하철 1호선 공사 탓이었습니다.

 

 1990년대까지 인천의 중심은 동인천과 주안이었고, 부평역 일대는 그 때도 번화했지만 부도심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인천지하철 1호선 공사가 끝나고 동인천 일대가 쇠퇴하면서 부평과 남동구 구월동 일대가 도심화됩니다. 특히 부평은 경인선 1호선과 인천지하철 1호선이 교차하는 유일한 역이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번화해져갔습니다. 2000년대부터는 부평과 구월이 인천의 2대 도심이 되었으며, 부평역 인근 상권은 인천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형성한 곳이 되었습니다.


 

 보통 인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부평구의 넓이는 좀 넓습니다. 외곽 쪽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오지여서 그런데요. 북서쪽으로 인천 나비공원 쪽, 청천 1동에 속하는 작은 분지가 있고요. 북동쪽으로는 삼산도매시장 동쪽, 서운JC 남쪽으로 농경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남동쪽으로는 인천시립공설묘지 및 광학산, 거마산의 북쪽 많은 부분과 부천 송내역 남쪽 폴리텍대학 인천캠퍼스까지 부평구에 속합니다. 남서쪽으로는 동암역 부근이 부평구에 속하는데, 행정구역만 그렇지 이 쪽은 부평 생활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부평 생활권은 행정동 부평 3동에 속하는 백운역까지이며, 백운역 남쪽부터는 간석 생활권으로 봅니다. 옛날부터 십정동 쪽은 부평도호부가 아니기도 했고요.


 

 부평의 지형은 서-남쪽으로는 한남정맥에 속하는 산맥으로 막혀있고, 북쪽으로는 경인고속도로로 계양구와 나뉘며, 동쪽으로는 부천과 연담화 되어있는 지형입니다. 본래 서-남쪽의 산에서 조금 내려가면 곧 바다가 나왔었기 때문에, 부평 서쪽의 서구는 그리 크지 않았고 옛날에는 같은 부평도호부에 속했으며 1980년대까지는 같은 북구로 분류되었었습니다만 지금은 간척사업과 검단 편입 때문에 서구가 훨씬 커졌고, 남구(미추홀구)쪽으로 연담화가 되면서 생활권도 좀 나뉘었습니다. 그래도 석남동, 가좌동 쪽과 부평구는 아주 왕래가 없는 편은 아닌데, 서구의 서쪽과 남쪽은 거대한 공장지대이기 때문입니다.

 

 부평의 지역은 북서쪽의 커다란 공장지대를 포함하는 청천동, 백마장으로 불리던 서쪽의 산곡동, 동북쪽의 삼산동, 삼산동과 청천동 사이의 갈산동, 부평역 인근의 부평동, 부평동 동쪽의 부개동, 동남쪽 외곽의 일신동, 그리고 동암 근처의 십정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동에 따라 분화가 잘 된 지역이라 부평 사람들은 XX동이라 그러면 대략 어느 쪽인지 아는데, 청천동은 동 이름보다는 공단 쪽이라고 아는 사람들이 많고 부개동은 정확한 범위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한 십정동의 경우 의외로 이름만 들어봤고 어딘지 모르겠다는 경우가 많은데, 백운역 다리 넘어서라고 설명하는 게 쉽습니다.

 

 청천동은 일부 지역이 과거에는 효성동이었습니다. 북구에서 계양-부평구로 분구되면서 고속도로 남쪽은 다 청천동에 들어가게 되었지요. 고속도로가 중간을 가로지름에도 효성동과 분위기가 비슷하고 실질적으로 연담화 되어있습니다. 넓은 지역입니다만, 공장지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안쪽 주거지역엔 꽤 오래 된 건물들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산곡동과 함께 재개발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고요.



 과장 좀 보태 300만 인천 시민의 자랑거리라 할 수 있는 소성주를 만드는 인천탁주의 본사 및 제1공장이 청천동에 있기도 합니다. 생탁 좋아하시는 분은 인천에 오면 반드시 소성주를 드셔보시길 권장합니다. 인천 지역 내에선 거의 아무 데서나 구할 수 있는데, 인천을 벗어나면 잘 구할 수 없는 생탁입니다.

 

 산곡동은 아주 오래 전부터 백마장으로 불리던 곳입니다. 조선 시대 때는 말을 먹이던 곳이었다나요. 공식적인 이름에는 백마장을 잘 안 쓰기 때문에 토박이들은 백마장이라 하면 산곡동 일대를 떠올리는 반면, 인천에 온지 오래 안 된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산곡동이 꽤 번화한 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일부 지역은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굉장히 오래 된, 옛날 영화를 찍을 수 있을 만한 건물들을 볼 수 있지요. 인천광역시 공식 블로그에서도 백마장은 관광지로 소개 중이니, 여기서도 소개해보겠습니다. (클릭)

 

 지금은 청천동과 함께 산곡동도 꽤 넓은 지역이 재개발에 들어갔습니다. 역사의 흔적을 보고 기록하고 싶은 분들은 서둘러 청천동, 산곡동을 찾아가보시길 권장합니다.



 청천동 동쪽의 갈산동은 부평대로와 장제로라는, 부평구의 큰 두 대로를 사이에 둔 주거지역입니다. 삼산동과 함께 인천에서 드물게 하천이 지나가는 지역입니다. 계양구 계산동 쪽은 주거지역의 하천을 모두 복개한 반면, 부평구는 청천동 쪽 하천의 상류만 복개하고 갈산동 쪽은 그냥 공원화시킨 차이인데요. 결과적으로는 공원화시킨 게 더 좋았습니다. 아라뱃길 공사 이전에는 범람 위험이 있었지만 이젠 조절도 잘 되는 편이고, 공장 지대 옆의 주거지역을 조금 덜 삭막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갈산동 동쪽에는 삼산동이 있는데, 90년대 초반까진 갈산동인 시절도 있었던 외곽 지역 느낌이었지만 신도시화 되면서 인천에서 송도 빼면 제일 집값이 비싼 동네가 되어버렸습니다. 삼산동과 부천 상동은 2000년대 이후에야 개발되었는데, 원래는 농경지로 분리되어있던 도시 지역이 양쪽에서 확장되면서 연담화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꽤 드문, 완전한 평야 지대의 연담화된 신도시이면서 서울접근성까지 좋다 보니 비싸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인데, 번화하게 이어진 신도시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광역자치단체가 다르다보니 갈등이 꽤 첨예화되고 있기도 합니다. 삼산체육관역 같은 경우 일부 출구는 인천광역시이고, 일부 출구는 경기도 부천시일 정도로 눈에 보이는 경계가 없지요.


 

 이 사진의 가운데 길 왼쪽은 인천 부평구, 오른쪽은 부천입니다.



 삼산동 남쪽, 부평구의 동남쪽 일대는 부개동입니다. 삼산체육관-굴포천 7호선 라인을 경계로 남쪽은 부개동, 북쪽은 삼산동인데 동서로는 평균 800미터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좁고 남북으로는 3km가 넘는 긴 동이라, 부개동 쪽에 거주하는 사람을 빼면 부개동 영역을 잘 모릅니다. 보통 사람들은 부개동을 남북으로 왔다 갔다 할 일은 없고, 인천과 부천을 오갈 때 지나가는 정도인데 동서로는 1블럭 밖에 안 되거든요. 그래서 부개동은 좁은 동이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은 부개동 하면 부개역 근처겠거니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상동호수공원, 웅진플레이도시 서쪽은 다 부개동입니다. 그리고 부평동과 부개동의 경계는 굴포천역 주변을 제외하면 대체 무슨 기준으로 나눴는지 현 시점에서는 전혀 알 수가 없어서, 막상 지나가면 어디서부터 시작인지도 알기 어렵습니다. 그냥 주택가 한복판 골목길을 경계로 나뉩니다.


 

 부평구 남동쪽 외곽의 일신동은 행정동 일신동과 법정동 일신동이 좀 다른데, 법정동으로는 일신동과 구산동 두 구역인 게 행정동으로는 일신동 한 구역입니다. 실제 둘을 나누는 데 무슨 의미가 있나 싶으니, 행정동 일신동으로 묶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지역은 이름 들어본 사람도 별로 없고, 거기도 인천이었느냐 정도로 취급됩니다. 실제 대부분의 면적이 광학산, 거마산 쪽 군부대고 보통 사람들은 그 쪽을 부천 송내 쪽이라 생각하지, 인천일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인천 폴리텍대학이 있다 보니, 그걸 보고서야 여기도 인천인가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부평동은 부평구의 중심지이며 번화도가 상당히 높은 곳입니다. 상업지구가 매우 발달해있고, 주거지역도 많으나 좀 오래 된 아파트가 많은 건 단점입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최근에는 부평구에 도시형생활주택이 좀 들어섰는데, 관련해서 말이 좀 나오네요. 대조적으로 계양구는 도시형생활주택이 들어오는 걸 거의 막고 있습니다.



 부평동에는 인천북구도서관이 있는데, 분구 이전의 흔적입니다. 최근에는 이름을 바꾸려고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부평구청 건너의 인천세림병원은 예전 이름이 안병원이었는데, 부평구청이 들어서기 전부터 해당 지역의 랜드마크였기 때문에 한동안 부평구청 일대를 안병원 쪽이라 불렀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오래 지나서 그렇게 잘 안 부르는 것 같지만요. 같은 예로 계양구 계산삼거리의 홍진아파트가 있습니다. 랜드마크는 사라지고 나도 한동안 그 지역을 랜드마크 이름으로 부를 때가 있습니다.


 

 부평역 일대에는 유명하고 거대한 지하상가가 있습니다. 상당한 규모의 지하던전이라 마계인천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기는 데 일조하기도 했지요. 옛날에 부평역 일대에 몇 개의 지하상가가 따로따로 생겼고, 그게 합쳐지면서 현재의 거대한 지하상가가 되었는데 출구 숫자가 33개입니다. 그나마 요즘에는 지도가 생겨서 길 찾기가 참 쉬워졌는데, 옛날엔 지도도 출구번호도 없고 생긴 것도 더 복잡해서 현지인이 아니면 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평역 일대의 분위기는 아주 젊습니다. 실제로는 장년과 노년도 많이 다니지만, 분위기로 보면 10대에서 20대 초반을 위한 번화가라 할 수 있지요. 지하상가에서는 저렴한 보세 의류를 많이 팔고, 토요일이 되면 주변 학교를 마친 학생들이 많이 몰려듭니다. 인천지하철 1호선이 생기기 전엔 주변 사람들 모두 부평에서 버스를 타고 움직였기 때문에, 그야말로 유동인구가 엄청나게 많은 곳이기도 했지요.


 

 부평역 주변엔 꽤 크고 오래된 시장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3개의 시장이 한 군데 있는 건데, 일반 이용자가 굳이 구분할 건 없고 크고 잘 되는 시장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백화점도 두 곳 있었는데, 현대백화점은 닫고 아울렛으로 바뀌었습니다. 부평 일대의 상권은 여전히 번화합니다만, 고급 상권은 연담화된 부천 상동 일대로 넘어가는 양상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 중에 있습니다. 부천과 부평의 상권 다툼이 근래 꽤 있는데 이건 부천 이야기할 때 더 해보겠습니다.

 

 부평구는 정치적으로는 민주당계 우세지역입니다. 부평구가 생긴 이후 국회의원 당선기록을 보면 민주당계가 8, 자한당계가 5번 당선되었습니다. 근래 들어 민주당계 지지세가 점점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 추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


 

 지형적인 영향으로 인해, 부평역 일대는 북쪽이 발달했고 남쪽은 얼마 가지 않아 산지라 크게 번화하지는 못했습니다. 경인선 역도 정식 역사는 북쪽이고, 남쪽엔 옛날엔 간이역만 있다가 2000년대 들어서야 조금 개선되었지요. 다만 부평 일대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병원인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이 부평역 남쪽에 있습니다.


 

 동수역 일대는 처음 생겼을 때 부평 사람들이 거의 모두 그 이름을 다소 의아하게 생각했었습니다. 동수라는 지명을 아무도 몰랐거든요. 조선 시대에 동수쪽 일대의 행정명이 동소정면이어서 그렇게 되었다는데, 토박이가 그 일대를 부르는 이름은 사실 삼릉이었습니다. 미쓰비시 군수공장이 있던 지역이거든요. 미쓰비시 한자를 한국 발음으로 읽으면 삼릉입니다. 그런데 일제 기업 흑역사 이름을 역 이름에 붙일 수 없다고 반발이 있어서 조선 시대 이름을 가져온 거지요. 일단 역이 생기고 나니 동수 쪽이라고 부르게 되긴 합니다.



 부평의 경인선 1호선을 지나는 길은 영 교통이 좋지 않습니다. 경인선 지하화가 인천의 숙원사업 중 하나인 이유인데요. 부평구에서는 차를 타고 넘어갈 수 있는 길이 다섯 있습니다. 백운과 부개역 쪽에선 좀 넓은 고가도로를 타고 넘을 수 있고, 부평공원 남서쪽과 장제로 쪽은 경인선이 좀 높이 지나가서 굴을 뚫고 지나갑니다. 그리고 부평공원 동북쪽에서 동수 안쪽 골목으로 넘는, 좁은 남부고가로가 있습니다. 도보로는 부평역을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다만, 부평역을 바로 넘는 도로는 없습니다.


 


 부평동과 십정동은 법정동과 행정동 경계가 좀 다른데, 문화권으로 생각하면 행정동 경계가 좀 더 그럴싸합니다. 경계 사이에 있는 백운역은 행정동으로는 부평 3동이고, 법정동 및 지번주소로는 십정동입니다. 윗 사진의 경계는 법정동 기준입니다.


 

 백운역과 부평삼거리역을 넘어가는 길은 고갯길입니다. 옛 인천도호부와 부평도호부를 나누던 고개고요.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동암역과 십정동 일대는 행정구역으론 부평구지만 문화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고, 적잖은 부평 사람들은 그 쪽은 다른 지역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평삼거리역 근처, 만월산 위에는 인천시립공설묘지 및 시립승화원, 인천가족공원이 있습니다. 설명하자면 공동묘지, 화장터, 납골당입니다. 근래 인천 시민 중 누군가 돌아가시면 높은 확률로 찾게 되는 장소이지요. 인천에 많은 인프라를 의존하는 부천 시민들도 저렴하게 이용 가능합니다만, 이용 약정을 맺을 때 주고받기로 한 것에서 부천이 인천에 제공하기로 한 걸 잘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인천 쪽에서는 불만이 꽤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부평구와 서구를 나누는 산악 지대는 북쪽에서부터 계양구 천마산과 이어지며 주요 봉을 원적산, 철마산으로 부르는데 이 철마산이라는 이름이 문제가 됩니다. ‘천마산철마산이 머지않은 곳에 있는데다 천마산을 철마산이라 부르기도 하다 보니 구분이 영 안 가거든요. 부평 쪽에서 천마산이라고 하면 또 원적산 남쪽의 철마산을 뜻할 때도 많고요. 이 산들은 제일 높은 곳도 200미터가 안 되지만, 교통을 방해하기엔 충분한 높이라 원적산은 유료터널로 뚫어놨고 철마산 쪽은 본격 고갯길입니다.

 

 부평구 남쪽은 만월산과 광학산(=만수산=이 산도 철마산으로 부르기도 합니다.;)으로 막혀 있는데 광학산 북쪽은 군부대고, 만월산은 유료터널이 뚫려있어 이 길을 통해 남동구로 빠르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다만 인천의 산지를 넘는 세 터널인 원적산, 문학산, 만월산 터널은 하이패스가 안 되기 때문에 불만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는 편입니다. 지나가는 거리에 비해 비싸기도 하고요.

 

 한동안 번화하고 인구도 쭉 늘어왔지만, 근래 부평구는 인구유출지역입니다. 최근까지는 부평이 인천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자치구였지만, 올해 들어 인구증가세인 남동구에 추월당했습니다. 부평구엔 이제 낡은 주택이 많고, 부천 상동과의 경쟁에서 상권을 조금 뺏기고 있기도 하거든요. 7호선의 부평구청 연장은 부평구의 교통을 개선되게 했지만, 상권에는 마이너스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인구유출 중이지만 인천광역시 차원의 배려를 받지도 못합니다. 신도시 지역과 원인천 지역 과제에 밀려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부평이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인천광역시는 국제해양도시로 발전하고자 계속 추진 중이라, 바다에서 멀고 그럭저럭 살림이 괜찮았던 부평, 계양 쪽엔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그나마 계양구는 시장을 둘이나 배출하기라도 했지 - 배출하고도 소외받긴 했습니다만 - , 부평구는 그런 것도 없었지요. 워낙 입지가 좋으니 알아서 커왔지만, 인천광역시는 부평구도 신경을 좀 써야합니다. 그나마 최근에는 청천동, 산곡동의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어 부평 주거 낙후 문제도 어느 정도는 개선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부평의 많은 문제들이 잘 풀리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