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현생 인류는 전체 포유류 중 성차가 꽤 큰 편에 속한다. 특히 여성은 다른 대부분의 포유류에 비해 상당히 이질적인 특성들을 지니는데, 전반적으로 보면 하나의 이질적 특성이 다른 이질적 특성을 재생산하는 식이 된 것 같다.
현생 인류 여성이 가진 특성은 자연 상태에서의 생존에 그리 적합하지 않아 보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여성은 사냥을 잘 못한다. 물론 다큐멘터리 등을 보면 여성이 수렵생활을 무난하게 하는 부족도 있지만, 그런 부족은 거의 예외 없이 열대의 밀림에 살고 있다. 밀림은 여자들도 충분히 사냥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먼 조상은 밀림 출신이 아니었다. 인류는 사바나 출신이다.
그러니까 이런 곳.
사냥을 꼭 해야 하느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텐데, 인간은 본질적으로 육식 동물에 가깝다. 살던 곳이 이런 곳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영양이나 소처럼 풀을 뜯어먹을 수 없다.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식물은 열매나 새순, 알뿌리 같은 비교적 한정적인 것이다. 인류의 기준에서 사바나에는 먹을 수 있는 식물이 충분하지 않다. 한편으로 원시 인류부터의 긴 진화 과정 속에는 식물의 뿌리를 주로 먹는 종도 있었지만, 그런 종은 멸종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고기를 먹는 게 여러 모로 우월했기 때문이었다.
채식주의는 철저한 현대의 유행 현상이다.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는 수십만년의 역사 동안 고기를 안 먹어온 적이 없었다. 그 어떤 원시 부족도 절대로 채식 생활을 하진 않는다. 그런 만큼 사람은 채식을 거의 안 해도 제법 건강하게 살 수 있다. 풀을 거의 안 먹는 유목민족들도 건강하게 잘 산다. 대부분의 성인병과 비만, 대사 증후군 등은 육류가 아닌 곡류(당)의 과잉 및 단백질의 부족으로 인해 발생한다. 또한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채소는 원시 그대로의 것이 아니다.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 집념과 욕망을 불태우며 개량하고 개발해온, 식물계의 가축들이다.
여성이 사냥을 잘 못 하는 이유는 근력이나 체력 탓이 아니다. 어차피 남자라 해도 야생 동물에 비하면 힘이 많이 약하다. 우리 인류의 사촌, 침팬지는 우리랑 유전자가 98.4%나 일치한다. 그리고 인간이 침팬지보다 체격이 크다. 그러나 침팬지는 인류와 비교할 수 없이 힘이 세다.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근력을 포기한 종에 가깝다. 그리고 어차피 인류는 몽둥이를 들고 야생 동물을 때려잡는 식으로 사냥을 하지 않았다.
인류는 다른 포식자들과는 다른 유형의 특별한 능력들을 개발했다. 그리고 그 결과 생태계의 최고 포식자에 오르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것을 들자면 이 능력이다.
이 특별한 능력은 인류를 지구 역사상 최강ㆍ최악의 포식자로 만드는 데 크게 일조했다. 인류를 제외한 지구 역사상의 그 어떤 종족도 물체를 그렇게 빨리, 멀리 던지지 못한다. 잘 던지는 사람은 물체를 140 km/h 이상으로, 70미터 이상 던질 수 있다. 살펴보면 사냥 과정에서 원거리 공격을 하는 여러 종족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그 거리는 2 m 정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대표적인 맹수인 고양이과 동물들도 약간의 거리 차이로 사냥감을 놓칠 때가 많다. 인간만큼 편하게, 높은 확률로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는 종족은 그 이전엔 없었다.
그런데 여자는 물건을 잘 못 던진다. 대부분의 정교한 동작은 여성이 남성보다 잘하는데, 굉장히 정교하게 신체를 제어해야 하는 투척 활동만큼은 남자가 잘한다. 물론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여성의 투척 능력은 남성보다 많이 떨어진다. 여기엔 여러 연구가 있었고, 결론은 여자들이 투척에 필요한 엉덩이 회전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걷기처럼 던지기도 가르쳐서 하는 게 아니다.
던지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이런 차이는 신체적 둔부 무게비율 차이 때문이 아니다. 2차 성징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전에도 차이가 난다. 이것은 쉽게 말해 소프트웨어 차이다. 공을 유독 잘 던지는 여자는 예외적으로 이 소프트웨어를 타고났다고 보면 된다.
물론 덫이나 활 같은 하이테크 병기가 나온 후에는 여성의 사냥도 훨씬 수월해졌다. 그러나 초기 인류는 그 정도의 기술력은 없었다. 투척은 오랜 기간 동안 인류를 먹여살려온 종족 특성이다. 그런데 여성은 남성에 비해 이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상대적으로 사냥을 하기 어렵고, 해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월경과 인류의 지속적인 임신 능력도 사냥에는 큰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 인간 여성만큼 자주 많이 오래 피를 흘리는 생물은 없다. 맹수들이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들 수 있다는 걸 감안할 때, 인간 여성의 이런 형질은 사실 생태계에서 도태되기 쉬운 형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영하였다. 모든 진화는 생존의 결과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편으로 인류의 사촌인 침팬지 암컷은 한번 출산을 하고 나면 5년 동안 발정기를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 여성은 딱히 발정기가 없다. 발정기가 없는 포유류는 아마도 인류뿐이다. 그리고 이 특성은 인간 여성에게 연속되는 임신을 가능하게 한다. 아마도 인간이 번성한 이유 중 하나다.
현생 인류가 아닌 다른 인류들, 예를 들어 호모 에렉투스 들도 뚜렷한 성차가 있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마도 현생 인류와 같이 극단적인 차이들이 생겨난 지는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 여성이 가진 특징은 대단히 개성적이고, 인간의 특수함을 만들어내는 데 크게 일조했을 것이다.
잦고 오래 지속되며 하혈량이 많은 월경은 직접 사냥을 하는 데는 불리한 특징이지만, 반대로 육류 섭취의 필요성은 높인다. 생리혈로 잃어버린 철분을 공급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건 고기다. 그리고 여성은 자신의 안전을 지키고, 남성을 제어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개발하였다. 이 또한 지금껏 그 어떤 종족도 가지지 못했던 능력이다.
“싫어.”
이건 여자라면 거의 다 가지고 있는 초능력, ‘성관계 거부’다. 지금껏 이런 생물은 없었다. 스스로의 의지와 발달된 감정 능력으로 번식의 본능을 거부할 수 있는 종족은 그야말로 인간 여성뿐이다. 젊은 남자는 이런 능력이 상대적으로 희박하다. 남성이 투척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동안, 여성은 거절 소프트웨어를 키웠다.
당연히 남성에겐 여성의 이런 진화는 날벼락이었을 수밖에 없다. 발정기도 없고, 성관계를 지속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혁명적 신종의 출현은 동족 수컷에게 가혹한 변화를 요구했다. 이 변화는 현대에도 계속되는 중이고, 그 숙명을 거부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패배자(!)들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물론 결국 진화와 번영은 승자의 몫이다.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 남성은 여신을 숭배하고, 여제사장을 받들어왔으며 여성에게 제법 효과적으로 통제되었던 것 같다. 남성이 쿠테타를 일으켜 남성주의적인 사회를 만든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지역마다 꽤 편차가 있었는데,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미합중국 백인들의 서부 개척(이라고 쓰고 침략이라고 읽을 수 있다.) 시대까지도 모계 전통을 짙게 가지고 있었다. 7만년이 넘는 현생 인류의 긴 역사에서 남성 패권이 강했던 시기는 대략 근래 5000년 정도에 불과하다.
남성이 여성에게서 지배력을 빼앗을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농경과 목축이었다. 수렵 사회에서의 식물 채집 활동은 주로 정착 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남자들이 본격적으로 농사와 가축 키우기에 뛰어들면서 모든 것이 크게 변해버렸다. 여성들은 원래 하던 일을 빼앗겼고, 일부일처제가 정착되면서 여성들의 초능력도 그 힘이 약해졌다. 그와 함께 여제사장들은 종교적 권능까지 잃어갔다. 새로운 최고신은 많은 경우 남성이었고, 더 나아가 남성 유일신까지 등장했다. 이 시대에 역사는 ‘남성들의 이야기(His+story=History)’가 되었고, 여성들은 뒤에서 암약할 수밖에 없었다.
근대 이후 여성들이 다시 권리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가족농업의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다시 아침마다 집을 나서는 사냥꾼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새로운 사냥터는 근래 들어 여성들에게도 나름대로의 기회를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농경 시대의 초반, 남성들이 여자 일을 가져갔던 것처럼 이젠 여성들이 남자의 일을 하나하나 가져가고 있다. 게다가 이번 일들은 여자들이 꽤 잘한다. 사냥이나 과거의 농경과는 달리. 여자들은 축적된 자본을 운용하는 데 있어 남자들보다 평균적으로 뛰어나다.
남성들은 보다 평등한 관계를 받아들이거나 여성들과 차별화되는 장점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과거 농경 사회처럼 여성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조건은 끝났다. 애초에 그런 불평등함은 자연 상태에도 별로 없다. 많은 수컷들은 공작의 깃털이나 사슴의 뿔처럼 멋진 기관을 진화시키고,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면서 암컷을 꼬드긴다. 일부일처제 또한 농경 사회의 붕괴와 함께 막을 내려가는 중이다. 이 제도는 정착하게 된 남성들에게 필요한 장치였다. 여성을 보다 공정하게 분배하고, 아이들이 자신의 자식인지를 확신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러나 이제는 조건이 변했다.
여성이 남성을 제어하던 장치는 다시 힘을 되찾고 있다. 현대의 반전은 과거보다 더욱 극적이다. 여자들은 이제 스스로 노력해서 고기와 가죽을 얻을 수 있다. 이는 남성들에게는 과거의 수렵 사회보다 더한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 땐 여자들이 사냥을 못하기라도 했다.
물론 여자들은 여전히 고기와 가죽을 선물받길 원하곤 한다. 그것은 오랜 세월 여성들이 살아온 방식이기에 어느 정도는 본능에 가깝다. 한편 근래 들어 대한민국에는 여성들의 이런 면을 욕하는 찌질남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마초도 뭣도 아닌 여성 혐오자들은 남성성의 추락과 소멸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이들은 남자들이 과거에 가졌던 특권을 그리워하지만, 그 시절에 남성들이 가졌던 여러 긍정적인 요소들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이들은 새로운 사냥터에서 충분히 활약하지 못하고 있고, 그렇다고 다른 장점을 가지지도 못했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을 자신이 없다. 더구나 심리적으로 성숙하지 못했기에 좌절을 이겨내지 못하고, 여성들을 혐오하는 식으로 자기위안을 삼고 있다. 물론 생태계에서 이런 패배자들을 기다리는 것은 대량사멸의 숙명뿐이다. 이들은 어쩌면 멸종위기 관심 필요종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