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 흡연에 대하여

사회 2011. 1. 2. 17:05 Posted by 해양장미


 보행 흡연자들은 많은 경우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얼마나 극심한 폭력이 될 수 있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보행 흡연자가 갑자기 뒤통수를 맞는 등의 테러를 당하더라도 너무 억울해할 건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런 폭력을 일상적으로 이미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 내 경우 길에 지나다니다가 보행 흡연자를 저 멀리서 발견하면 반사적으로 욕이 나온다. 이는 내가 유일하게 비속어를 쓰는 순간이다. 그 후 숨을 깊게 들이쉬고, 상대에게 불쾌감을 품은 시선을 맞추고는 이동 방향과 호흡 간격을 보면서 숨을 멈추고 최대한 연기의 방향을 피한다. 만일 실수로 숨이라도 들이쉬면 바로 기침과 함께 참을 수 없는 스트레스로 폭발할 지경이 되니까.


 사실 그나마 나는 나은 편이다. 나는 호흡기가 좀 약하긴 하지만 천식 환자는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천식 환자들에게 밀도가 높은 담배 연기는 위협 그 자체다. 바로 천식 발작이 일어나면서 길에 쓰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천식 환자들은 길에서 담배 연기에 의해 발작이 일어나본 경험을 한번 씩은 다 가지고 있다.


 그래도 나에게 연기는 지극히 불쾌하고 순간 고통스러울 뿐 아주 위협적이지는 않다. 암환자도 아니고. 그렇지만 나는 앞에 걸어가는 보행 흡연자의 불붙은 담뱃재가 강풍에 날려온 걸 맘보를 하듯이 피한 기억이나, 보행 흡연자가 불붙은 담배를 휘두르고 지나가는 걸 몸을 휙 비틀어서 피한 기억들이 몇 번 있다. 기어이 올해에는 새해 첫 날부터 날아온 담뱃재에 가벼운 화상을 입은 것 같은데, 이런 경험들은 나에게 보행 흡연자에 대한 혐오감을 키울 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 된다. 일본에서는 이미 2003년에 보행 흡연자의 담뱃불에 실명된 아동이 나와 보행 흡연이 많은 지역에서 조례로 금지되어 있다.


 한국이 만약 제대로 정치가 동작하는 사회였거나, 윤리적인 개념이 있는 사회였다면 벌써 보행 흡연 문제는 해결되었을 것이다. 한국은 서구에 비해 인구 밀도가 높고, 길은 좁으며 워낙 바쁘게들 돌아다니는데다 흡연율이 매우 높고 남자들이 시가렛을 일상적으로 피우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체감상 근래 보행흡연율은 다소 높아진 편이다. 어쩌면 곳곳의 실내 흡연 금지가 보행 흡연율을 높인 것 같기도 하다.


 이 문제를 현재 한국이 윤리적인 영역에서 해결할 방법은 없다. 보행 흡연자에게 윤리적인 시민 의식을 이야기하는 건 대부분의 경우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유일한 해결 방안은 이 문제를 법률로 불법으로 규정하고, 거리에 공중전화박스 같은 흡연 부스를 설치하고, 한동안 길에서 집중적인 단속을 벌여 벌금을 부과하고 누적 시 벌금을 과중하거나 구류 등의 조처를 취하는 게 옳다고 본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한국의 정치와 시민 사회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정치는 주로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들의 영역이고, 이들은 굳건한 권력을 쥐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자신들의 세계에서 정치를 하고 있다. 정치를 하는 부유층은 길을 잘 걷지도 않고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담배 회사는 로비를 통해 금연 관련 법안들을 막는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내 생각에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이 조금 더 정치 세력화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당연히 이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만한 정치 세력도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진보 정치가들이 무능하다고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로, 이런 민감하고도 당장 필요한 사회의 잠재적 요구들에 대한 응답이나 발굴이 없다는 것을 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