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의 교훈

정치 2011. 3. 17. 03:13 Posted by 해양장미


 원자력 발전은 언제나 논란거리일 수밖에 없다. 나는 사람이 하는 일을 그리 신뢰하지는 않는 편인데다, 내가 아는 한 우라늄 235의 매장량과 그 농축 및 운반, 관리, 폐기에 필요한 에너지는 원자력의 효율성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게 하기에 나는 다소 유보적인 반핵주의자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번 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고, 이에 대해 나는 어느 정도 올 게 왔다는 느낌인 동시에, 원자력 전문가들이라는 분들의 ‘안전하다는’ 홍보가 상업적인 의도를 다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원자력 발전소는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반드시 일어나는 성질의 것에 가깝다. 이론적으로 인류가 원자력 에너지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러나 이론 또한 핵폐기물 문제와 우라늄 매장량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지는 못한다.) 사람이 하는 일은 반드시 실수가 있기 마련이며 건축 및 수리는 결코 과학자가 하는 것이 아니다. 멀쩡한 백화점이나 다리도 갑자기 무너지는 게 인간이 하는 건축이 아니었던가.


 한편으로 사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좀 불쾌했던 부분은 여럿 있다.


 우선 원전의 내진 설계가 리히터 스케일 7.9까지만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리히터 스케일 8정도의 대지진이 10년에 한 번 꼴로 일어나는 나라다. 일본과 원전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7.9의 내진설계는 애초에 위험성이 있었다. 또 한편으로 설계가 어떻게 되건 실제의 시공은 그보다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는 지진이 일어난 후 요미우리 신문에서도 지적한 부분인 듯하다.


 그 외 일본 정부나 한국의 전문가들이 ‘안전하다’, ‘문제없다.’ 라고 계속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 너무나 빤히 보이게 원전의 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는 점은 대중의 관점에서 그들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기 어렵게 한다. 물론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고, 낮은 강도의 방사능이 인간에게 얼마나 해로운지 아직 미지수인 부분은 있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소위 원자력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사고방식이 우선적으로 있으며, 낙관적으로 상황을 전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고는 재수가 없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거라 정상적이고도 낙관적인 전망과는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알기로는 한국 원자력 발전소들 또한 여러 번의 사고가 있었다. 이미 원자력이 안전하다고 홍보하는 데 소비되는 세금도 적지 않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원자력 비중이 상당히 높은 국가이기도 하다.


 물론 화력이나 수력 발전 등도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아직까지 개발된 소위 친환경적인 발전 방식들은 충분한 발전량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또한 원자력에 대한 대중의 공포는 쉽게 과장될 수는 있다. 이번 사고도 체르노빌처럼 극단적인 사고로 확대될 확률은 아직 그리 높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근본적으로 유일한 대안은 전기를 - 더 나아가서는 에너지를 덜 쓰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에너지 소비에 관해서 한국의 현재 상황이나 정책은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다. 한국은 굉장히 인구가 밀집되어있는 주거 형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균적인 출퇴근 거리는 멀고,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대부분의 회사는 특정 지역에 몰려 있다. 또한 건축물들은 전체적으로 부실하게 설계되어 충분한 단열 효과를 가지지 못하고 과도한 도시화는 여름에 열섬 현상을 심하게 한다. 난방 방식 또한 전기에 의존하게 되는 세수 형태를 지니고 있고, 정책적으로도 전기 소모를 절약하려는 의도가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화석 연료의 고갈을 생각해볼 때 대체에너지의 개발이 지금처럼 지지부진하다면, 결국 인류는 플루토늄처럼 위험한 연료를 사용하거나 아니면 전기 소모를 줄일 수밖에 없으리라 예상한다. 조금 더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하고 각자 풍요를 덜 누리면 각자 조금 더 안전해질 수 있고, 타인을 사지로 덜 몰아넣어도 되지 않을까? 내 생각에는 이것이 답이지만, 오만한 욕심쟁이들이 양산되는 시대이기에 과연 안전한 길로 인류 또는 이 나라의 국민들이 접어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바꿔 말하면 현대한국의 전기적 풍요를 온전히 누리려면 당분간 원자력은 존속될 수밖에 없다.




2011년, 반 MB를 넘어서

정치 2011. 1. 4. 19:31 Posted by 해양장미


 새해가 되었다. 근래의 정치사회적 움직임은 이명박의 통치시기를 넘어서는 기점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려하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어떠한 커다란 악이 있을 때, 어쩌면 그 악과 싸우는 것은 차라리 쉽다. 그렇지만 악이 남긴 파괴를 딛고 그 다음을 기약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물며 지금까지 해온 게 싸움밖에 없다면 더더욱.


 담론은 이미 옮겨지고 있지만 중앙 정부의 정치적 힘은 한나라당이 독점하고 있다. 다른 정치세력들은 반 MB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았으며, 지금도 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다. 오히려 거대담론들은 민주주의의 확산에 좋지 않게 작용했고, 지난 2010년에 민주당계를 제외한 진보세력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 분위기가 지독하게 나빠진 것은 여러 정치사회 담론과 문화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거대담론과 네가티브에 휘말리기 쉬운 상황이 반복해 발생했고, 문화는 날이 갈수록 빠르게 천박해졌다. 심해진 배금주의는 더 심한 배금주의로의 악순환을 반복시켰고, 내 주변의 거의 모두가 몇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가난해졌다.


 나쁜 쪽으로 가속화된 정치사회적 흐름은 대안으로 거론되는 여러 담론들을 포퓰리즘에 가까운 것으로 만든 것 같다. 물론 그런 조짐은 계속 있었지만, 이 시대의 정치적 퇴행은 무시하기 어려운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근래의 군사적인 갈등은 이념적 균열에 매우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문제는 몇 년 내에 어떤 식으로든 해결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현재는 아주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


 그렇더라도 이제 네가티브는 끝났다. 이명박 정권 다음을 논의할 때가 이미 다가왔으며 그렇다면 반 MB를 넘어 새로운 대안을 이야기해야 한다. 복지 이야기도 좋지만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어지간한 수준의 복지가 자신의 삶을 우선적으로 개선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복지가 세금을 늘릴 거라 생각한다. 정치는 윤리적 욕구뿐만 아니라 실질적 욕구도 충족시켜줘야 한다.


 MB의 비윤리적 권위주의식 통치 시기는 필연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끝을 맺게 되어있다. 막상 그 끝을 앞둔다면, 사람들은 결코 윤리적 욕구만을 고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누가 더 나은 비전을 제시하고 더 포괄적인 시민들을 돌보고 포용할 것인가? 이 의문의 답은 아직 변수가 많다.


 한편 개인적으로는 근래 시민들의 이성적, 윤리적인 수준이나 욕구가 전반적으로 저하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부분이 많은데, 이는 결과적으로 앞으로의 정치사회문화적 양상에 일정 부분 이상 변수로 작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반적으로 사회의 여러 건강한 모습이 사라진 양상이라 할 수 있다.


 너무 많은 것이 파괴되었다. 많은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고, 사람들은 적어도 무언가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은 느끼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열망이 단순한 포퓰리즘으로 기울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지만 이 나라에 앞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은 포퓰리즘 시대를 이겨낼 수 있는 가능성이 어느 정도나 있을까?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또한 이것과 별개로 아직도 야권에서 주로 논의되는 이야기는 반MB연대이며, 안타깝게도 이런 연대는 박근혜의 좌향좌에 의해 이념적, 정책적 차별을 유의미하게 확보하지 못하게 된 게 현실이다. 올해는 나에게 보이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 및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천천히 해나가게 될 것 같다.


 내 생각에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이 자유민주주의의 틀을 일차적으로는 유지하는 가운데 문제점 하나하나를 충실하게 보완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은 절차적 민주주의 체제를 보완해가면서 정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 노력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물론 반 MB담론은 이런 것을 기본적으로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현재의 추세로 정권을 교체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무엇이 나아질 것인가? 물론 MB정권에 비해 더 윤리적인 행정 절차를 밟을 수 있고, 언론은 좀 더 자유로워져 노무현 때 수준으로 수구언론의 권력은 내려갈 것이며, 새만금은 하더라도 4대강 같은 수준의 어이없는 공사는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사회 분위기는 현재보다는 나아질 것이며 서민이 구제받을 확률이 2%내지 5%는 더 생길 것이다. 북조선과는 지금처럼 냉전으로 달려가지 않을 것이며, 제국주의적인 군사주의의 망령도 덜 소환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훨씬 더 나은 기회들이 생길 거다. 국민들끼리의 사회적인 신뢰도 아주 약간은 회복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변화는 근본적으로는 거의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성장 및 그 부수효과들 외엔 뚜렷한 업적 없이 정권을 빼앗기고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켰음에도 그런 실수는 반복될 가능성이 적지 않고, 노무현과 유시민의 신도들은 노무현 정부 및 관련 인사들에 대한 비판 자체를 불허하면서 매우 폭력적인 대응을 일삼고 있다. 국민참여당은 이제 민주당보다 정치학적으로 진보적인 특색이 없다고 판단됨에도 그들이 더 진보적인 것처럼 이미지를 관리하고 있으며, 좌파 정당들은 호남의 민주당보다는 영남패권주의적인 국민참여당과 함께하려고 하고 있다.


 사실 내 생각엔 이제라도 가장 기초적인 것을 해야 한다. 정당이 좀 더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젊은 정치인을 성장시키며 이념적으로 포괄해야 할 계층에게 어필하고 요구를 수용하면서 세력을 늘려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렇게 하려면 현실적이고 시대의 변화에 어울리는 진보적 변화와 행동이 필요하다. 쉽게 말하면 이는 민주주의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정당이 시민의 요구사항을 수용하지 않으면, 절차적 민주주의 정치는 뼈대만 남은 통치에 불과하다.


 한편으로 현재의 복지 담론은 저도의 포퓰리즘성 시혜적 복지에 불과하기 때문에, 바람직하고 수준 높은 복지로 연결될 확률이 낮다. 박근혜도 오세훈도 유시민도 복지를 말하지만, 그것은 아주 낮은 단계의 - OECD 국가 중 형용할 수 없이 최저인 - 복지에 불과하다. 그리고 시간에 따라 복지 레벨은 높아질 것이지만, 그 복지 양상은 각각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포퓰리즘 성향을 가질 확률이 높다. 보다 민주주의적인 변화가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