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은 어떤 의미일까

정치 2011. 5. 9. 00:02 Posted by 해양장미


 며칠 전에 빈 라덴이 죽었단다. USA의 타켓이 된 것치고는 그만하면 짧게 산 것은 아닐 거다. 그렇지만 나는 그의 죽음이 마땅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빈 라덴이 그냥 사살되었다는 것. 그는 후세인과는 다른 죽음을 맞았다. 어떤 관점에서 볼 때, 그는 USA라는 악에 맞서 순교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911 테러는 높은 확률로 빈 라덴의 행위일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에는 별 감흥이 없다. 나는 이슬람을 USA보다 몇 배는 싫어한다. 그러나 빈 라덴에게 충분한 항변의 기회가 주어진 것 같지는 않다. USA가 현명한 대응을 한 건지 의문이다.


 USA는 정의를 표방하는 것 치고는 정의롭지 못한 행위를 너무도 많이 했다. 비록 USA에게 복수의 명분은 있겠지만, 그들은 힘의 승부로 상황을 몰고 갔다. 결국 빈 라덴의 사살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테러를 막는 데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수 있다. USA가 폭력적인 행위를 멈추지 않는 한 항전의 가능성은 계속 남아있다. 또한 빈 라덴을 어느 정도 ‘자신의 편’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USA는 다시 한 번 건드렸다.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 오바마는 많은 이들을 실망시켰다. 힘들더라도, USA는 ‘용의자’ 빈 라덴을 법정에 세워야했다. 어떤 사람들은 빈 라덴이 911 테러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911 테러는 뭔가 이상하다는 기분은 있다.) 그런 사람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할까? 또한 USA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이번 사건을 어떻게 느낄까? 용의자를 자의적으로 범인으로 규정한 것은 정당할까?


 과격한 무슬림들이 그리 대단한 행위를 할 필요는 없다. 파괴적인 테러 한 번이 USA 본토에 한 번 더 발생한다면, 그것으로 많은 것은 충분하다. USA의 체질은 충분히 건강하지는 못하다. 그들은 이미 과다한 국방 지출로 허덕이고 있다. 또한 USA의 부채는 엄청나다. 부덕한 자의 파멸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은 USA가 정의를 표방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USA가 세계 질서에 공헌하는 부분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충분히 정의로운 경찰이 못 된다. 지금이라도 오바마가 이슬람 세력에 많은 혜택을 베풀어 국제적인 갈등을 늘리지 않았으면 한다.


 촘스키가 그러더라. 이라크 특공대가 부시를 암살한 후 대서양에 버리면 어떻겠냐고. 그 말을 듣고 문득 든 생각은, 부시는 그래도 그렇게 비싸지는 않을 것 같긴 한데 별로 보고 싶은 광경은 아니라는 것. 부시의 죄가 빈 라덴의 죄보다 가볍다 할 수 없다. 빈 라덴은 용의자일 뿐이지만 부시는 확실하게 범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이번 사건이 오바마의 재선 가능성을 높여놨으니, 이걸 씁쓸하다 해야 할지 반겨야 할지. 

반대의 정치와 그 종결

정치 2011. 5. 1. 06:09 Posted by 해양장미


 보궐선거는 끝났다. 이제 다음 선거는 총선이다. 이제 ‘이명박에 반대하는’ 방식의 정치도 끝날 때가 되었다. 물론 반 MB의 구호 자체는 다음 선거까지 살아있을 테지만.


 사실 이 불쾌한 흐름은 지난 지방선거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여당이 보여준 모습은 전혀 쇄신이 없었고, 오히려 이전보다도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정말 환상적으로 짜증나는 시간이었다.) 이번 선거를 한 마디로 평하자면 자업자득. 여기엔 당연히 유시민도 포함.


 긴 시간이 지나 새로운 가치와 미래를 지향하는 정치적 무대는 이제야 다시 열리게 되었다. 사실 현 정부의 문제가 지나치게 심각하기 때문에 지방선거고 보궐선거고 정부 심판론이 득세하면서 본래의 의미를 제대로 찾기가 어려웠다.


 현재 날아오른 정치인들은 주로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밝히고 미래를 지향하면서 부상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변화한 시대와 조건에 맞춰 차기 총ㆍ대선 후보들은 미래지향적인 제시를 하고 선거에 나서야 한다. 보다 튼실한 내적인 준비는 물론이고, 보다 잘 엄선된 선거 타이틀과 시민들의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자세 또한 갖춰야 한다.


 문제라면 여권이고 야권이고 꾸준한 세력 확대가 없었다는 것. 오히려 정치 혐오만 잔뜩 늘어난 게 최근의 추세랄까. 해온 걸 보면 정치에 관심과 희망을 가지는 사람이 늘어날 리가 없긴 하다. 지지층의 확대가 없고, 분명한 정치색의 매력을 발휘하여 유권자를 확보할 수 없을 때 단순다수 양당제 민주주의 정치는 타락하기 쉽다. 평소에 여기저기 연줄 닿는 데로 발 넓혀놓은 후 선거국면이 되면 부동층을 잡기 위해 총력전을 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변화한 조건이라면 빈부격차의 확대와 빈자의 증가. 어차피 양당 모두 부자에서 멀어질 수는 없다. 만약 민주당이 이걸 실패하면 처참하게 패배하게 될 거다. 일례로 노무현 정부가 종합부동산세를 밀어붙임으로 인해 야권이 받아야 했던 피해를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통치 권력은 사회에 대한 신뢰와 윤리를 회복시켜야 한다. 전체주의적인 사고를 할 필요는 없지만, 쓸데없는 분열을 늘리는 것은 좋을 게 없다. 이 나라의 현실은 더욱 강한 공공성을 요구한다. 또한 시대적인 대세 중 하나인 공공복지와 사회신뢰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개념이다. 믿을 수 없는 정부에 누가 기꺼이 세금을 내려고 할까? 세금이 없으면 복지는 불가능하다. 조세저항은 복지의 수준을 낮추기 마련이다.


 또한 복지는 넓은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복지를 단순히 직접적인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고, 사회의 책임이라는 부분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이야기를 굳이 해야 하는 건 참 따분한 일인데, 안타깝게도 그럴 필요성이 있다. ‘복지’라는 한국어가 워낙에 추상적이고 뜬구름 잡는 어감을 가지기 때문이다. 언제 뭐 제대로 해본 적이 있어야지. 사실 복지라는 한국어는 ‘행복한 삶’ 정도의 뜻을 지니는 단어다. 흔히 쓰는 용례가 ‘공공복지’에 해당하는 의미일 뿐이고.


 사회를 좀 더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건 복지라는 사회적 건축물을 만드는 데 있어 일종의 기초공사라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에 필요한 사람은 분배의 정의를 한국 현실에 잘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서로간의 이익 배분을 잘 조절하면서 증세를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할 때다. 토건은 좀 적당히 그만 하고.




꼬리 - 민주주의의 성지라던 김루살렘의 주민들이 대한민국의 바울, 시티즌 유의 수하를 뽑지 않은 죄로 노리스도의 열혈 신도들에게 불로장생할 정도로 욕을 잡수시고 계시니 참으로 안타깝다. 깨어있던 시민들이 한 순간에 국개가 되는 거지. 그나저나 이대로 포기할 시티즌이 아니니 다음엔 뭘 할까 진심 무서울 정도. 나름 예상되는 다음 패 중 하나는 친구 몇에게 말해놨는데 아주 끔찍하단다. 그가 최소한의 품위는 지켜주길 바란다.

꼬리 2 - 내 생각엔 아마도 내년 대선에서 복지라는 이름의 이슈를 밀어붙이는 사람은 필패할 것 같다. 시티즌 유에게도 배울 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