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권 이후, 김대중 정부의 모든 통치행위는 IMF시대라는 명분 아래 가려졌다. 수많은 개혁진보 세력은 IMF를 극복하고 노무현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자신들의 이념적 선택을 충분히 드러내기가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래도 ‘재벌을 개혁한다.’는 명분은 유지되었던 것 같다.


 당시 개혁진보 세력은 자유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의 연대 형태에 가까웠다고 본다. 둘은 재벌과 과거 군사정권식의 발전 모델에 대한 적대감으로 엮여 있었다. 참여정부의 각종 정치적 선택에 크고작은 영향을 줬다고 추정하는 자유주의자들은 군사 정권이 한국에 너무 많은 부패를 만들었기에 큰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재벌이 소유한 각종 특권들을 빼앗고, 기업 지배 구조를 소위 ‘선진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 움직임은 이미 노무현 집권 이전 소액주주운동부터 시작하여, 근래의 경제민주화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노무현 정권 자체는 자유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니었다. 퇴임 이후 노무현이 밝힌, 현재는 사라져버린 그의 항변에 의하면 그가 따른 이념 체계가 따로 있었던 것 같다[각주:1]. 그나마도 취임 시기부터 단일한 노선을 잡은 것은 아니고, 충분히 잘 검증된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사상이라는 것은 통치자로서 가져야 할 정치철학 및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노무현 본인은 자신을 역사의 과오를 바로잡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대통령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노무현 지지자들과 노무현의 공통점은 기존 군사정권과 한국식 문제점들에 대한 적대감이었다고 본다. 노무현이 대중적 인기를 잃는 가운데서도 소위 노빠들에게 지속적이고도 열광적인 지지를 계속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적대감을 충족하는 데는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모습을 계속 보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비록 그것은 이성적인 통치행위라고 보긴 어려웠지만.


 그런데 실제로 노무현의 통치가 성공적이었냐 하면 그것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노무현 정부는 총체적인 실패를 거듭했고, 거의 완벽하리만큼 민심을 잃었다. 노무현 정부의 과오를 적자면 여기서부터 몇 페이지를 할애해도 모자라다. 시기별로 차이는 있지만 한 때 노무현을 좋아했던 사람들 중 대부분은 노무현에게서 어떤 형태로든 이탈하였다. 문제는 남은 세력이 굉장히 광신적이었다는 데 있다.


 노무현과 친노세력을 선으로, 한나라당-새누리당과 범보수세력을 악으로 규정하려는 행위는 굉장히 일반적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이건 논리적 근거를 가지지 못한, 전형적인 편 가르기 행위인 동시에 광신 종교적인 양상을 띤다는 데 있다.


 만일 새누리당과 조중동, 그리고 삼성이 단순한 악이라면 당연하게도 노무현 역시 악이 된다. 노무현은 대북송금특검, 사학법 투쟁 등 여러 번에 걸쳐 한나라당의 편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대연정까지 제의했다. 또한 중앙일보나 삼성과도 굉장히 가까웠고,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을 주미대사로 임명했을 뿐만 아니라 삼성 문제가 터졌을 때도 삼성 편을 들면서 노회찬과 대립했었다. 이런 행위들은 당시에 수많은 노무현 지지자들을 이탈하게 했었지만, 광신적인 비호세력 쪽이 더 입심이 강했었다. 그리고 노무현의 죽음과 함께 이 광신성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기묘하게 좋은 쪽으로 포장되어서.


 이명박 대통령이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로 정치력이 부족했던 것은 맞다. 그는 여러 번에 걸쳐 반대 세력이 힘을 얻을 만한 빌미를 제공하였다. 자살한 전 대통령의 이름과, 슬픔 속에 명을 달리한 것으로 보이는 전전 대통령의 이름이 반대파의 구심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사실 한동안 드셌던 Anti MB 연대는 생산적인 사상을 가지거나 뚜렷한 대안을 가진 게 아니었다. 죽은 노무현은 신격화되었기 때문에 생전에 저질렀던 과오와 잘못들은 묻혔다. 광신적인 지지자들은 여러 곳에서 목소리를 높였고, 반론과 반성을 제기하는 자들을 ‘알바’로 매도하고 비아냥거리곤 했다. 이 매도와 비아냥은 지금도 어디서나 일상적이다. 다만 ‘알바’라는 말이 ‘일베충’이나 ‘국정원 직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과거 한 때 자칭 진보개혁 세력은 토론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더 나은 사회적 대안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오래 전에 끝났다. 이성적인 이들은 더 이상 친노세력을 지지하지 않는데, 인터넷에서 친노세력과 적대하게 되면 금방 ‘일베충’같은 소리를 듣는다. 소위 깨시민들이 공공연하게 일삼는 비아냥과 매도, 광신성은 도를 넘은 지 오래고 토론이나 논의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다. 이로 인해 인터넷은 같은 비아냥과 매도에 능한 일베충 등과 친노세력이 각종 세뇌와 선전을 일삼는 각축장이 되었다.


 혹자는 사람들이 보수화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거 소액주주운동을 하던 자유주의자들을 기준으로 할 때는 단순히 붙는 Tag가 바뀐 게 맞다. 한 때 진보 소리를 듣던 사람들이 그 태도 그대로 살면서 보수로 이름이 바뀌었다. 전성기에 친노세력은 근본적으로 단일 이념집단이 아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얽혀 있었다. 그리고 그 중 사회주의적인 자들이 결국 노무현 사후 주도권을 잡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자유주의자들은 한 때 다수가 MB로 갈아탔지만, MB는 자유주의자들을 실망시켰다. 물론 갈아탔던 건 자유주의자들뿐만은 아니었다.[각주:2]


 금융위기 이후 정치권의 언어들은 보다 왼쪽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친노세력의 언어와 사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이런 언어들과 관념들이 어떠한 현실성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세력을 유지하고 키우기 위해 보다 인기에 영합하는, 자극적인 말들이 나돌아 다녔고 반 MB 정서는 이런 자극적인 말들과 잘 융합되었다. 그러나 그 한계는 결국 본선에 가서는 분명해졌다. 현실적인 이야기에서는 약할 수밖에 없는, 반성도 회고도 없는 사상누각의 이념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자칭 진보개혁세력은 진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만이 옳고, 자신들만이 민주주의를 대변하며 과거의 과오들은 저 멀리 치워 놓는다. 보편적인 시민들은 과거를 대하고 반성하는 면에서도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지율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진보세력은 김대중 이후 빠른 속도로 낙후되고 고립되었다. 한 때 진보세력에 포함된 것으로 인지되던 비교적 유능한 사람들은 거의 다 떠났다.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에 만족하거나, 안철수를 지지하거나, 아니면 다른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또는 이 모두를 동시에 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도 박근혜 대통령에 만족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에 제 2의 박근혜가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기에 대안 또한 찾고 있다.


 진보개혁세력이 나아질 여지가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좀 어려운 면이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깨시민들의 안철수 견제가 너무 강하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장기집권을 위해 계속 깨시민과 일베충이라는 적대적 공생집단을 계속 안고 갈 수가 있다. 깨시민이 날뛰는 한 새로운 대안 개혁세력이 힘을 얻는 게 쉽지 않다. 그들의 광신성과 비아냥과 매도를 이겨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새누리당이 본선에서 그들을 꺾는 건 결코 어렵지 않다. 모든 면에서 상대 자체가 안 된다. 절대적으로 불리했던 탄핵 정국에서도 당시 한나라당은 나름 선방하면서 의석을 따냈었고, 그 다음부터는 친노세력을 상대로는 불리하건 유리하건 간에 일방적인 승리를 따냈다.


 첨언하자면 민주 공화정에서 정치인이란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매우 곤란하다.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탐욕스럽고 언제든 변할 수 있다고 전제해야 한다. 그러나 노빠 깨시민들은 이 기본 원칙을 너무 심각하게 어기고 있다.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 노빠들이 원하는 정치 제도는 일종의 전제정이다. 그들은 왕을 섬기길 원하며, 친노 왕가가 지속되기를 원한다. 노무현에 가깝냐 아니냐가 그들이 정치인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또한 이들은 민주주의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걸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고 선거 패배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은 대통령 후보를 안철수에서 문재인으로 바꿔버릴 정도의 힘이 있다.


 한편으로 근래의 정치권 모습을 보면 누가 진보고 누가 보수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박근혜정부’는 고용률을 높이고, 정규직 4만명 늘리고, 재벌 총수들을 입건하고, 각종 산적해 있는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는 가운데 증세를 통해 현실적으로 복지를 늘리려 하고 있다. 게다가 이민자 문제, 여성 문제 같은 데도 새누리당이 더 진보적이다. 솔직히 박근혜정부는 미국으로 치면 공화당 정부보다는 민주당 정부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데 한국 민주당은 도대체 뭐하는 정당인지 모르겠다. 그나마 차별금지법 입법한다 했을 때는 조금 좋게 보려고 했는데, 반대에 좀 부딪쳤다고 패기도 신념도 없이 패망 정당 인증하는 것처럼 그냥 접어버리고, 증세안에는 세금폭탄이니 뭐니 하면서 일단 반발부터 하고, 이민자 문제나 여성 문제 등은 아예 안중에도 없어 보이고, 고용률을 늘리는 방안 같은 건 꿈도 못 꾸니 하는 짓 보면 어느 쪽이 과연 진보인가? 싶다. 혐오스러운 깨시민들은 걸핏하면 저소득층이 어째서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거냐는 식으로 비아냥거리지만, 도대체 친노세력이 서민을 위해 해준 게 얼마나 있는지부터 먼저 묻고 싶다.



이어지는 부연글 : 자유주의자의 변화와 노무현의 영향 (클릭)




  1. 당시 ‘민주주의 2.0’이라는 홈페이지에서 퇴임 후 노무현이 잠시 직접 활동했었다. 이 과정에서 심상정 의원과의 참여정부에 대한 토론이 있었는데, 조금 진행되려는 와중에 노무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중단되었고, 이후 그의 투신으로 다시는 재개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노무현은 민족주의, 국가주의, 중상주의 정도의 노선을 가진 것 같다. [본문으로]
  2. 다양한 국면에서 바라볼 때, 노무현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게 스스로 바톤을 넘겼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노무현 정부는 반쯤 노골적으로 고건의 출마를 막고, 정동영의 발목을 잡았다. 또한 노건평과 이상득 간의 밀약이 있었다는 썰도 공공연했다. 개인적인 추론으로는 만약 2008년에 이재오가 낙선하지 않고 촛불시위가 그리 커지지 않았다면, 그리고 노무현이 자살하지 않았다면 많은 상황이 변했을 것이다. [본문으로]



 46억년이나 되는 지구의 역사는 생명의 역사와도 같다. 확인된 최초의 생명체의 출현 연대는 38억 7천만 년 전이지만, 이보다 오래 된 암석은 지구상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생명체의 출현은 그보다 빨랐으리라 추정된다. 그렇다면 그 오랜 생명의 역사 속에 가장 위험하고, 포악하며 강력한 포식자는 누구였을까?





 이 답은 정해져 있다. 우리 인류, 호모 사피엔스다.


 인류의 지구정복은 결코 근현대의 산업 문명이 이루어낸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미 아주 오래 전에 다른 종이 이르지 못한 영역에 이르렀고, 차별화된 장점을 가졌다. 그리고 모든 다른 종들을 발밑에 두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우리는 새로운 시련 앞에서 또 다른 도전을 했고, 그 결과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너무 많이 변했기 때문에 우리는 사실 우리가 어떤 종이었는지도 거의 잊었다. 그러나 결국 극히 최근에 들어 우리는 본래의 모습을 조금씩 발견해가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왜 이토록 가진 게 많음에도 불구, 왜 그리도 불안하고 불행한지를 넌지시 일려주는 본질이다.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원과 식생의 변화, 그리고 돌아가야 할 곳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다. 생물학적으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그 기원을 찾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아보자.


 우리의 가장 먼 직접적인 조상의 기원은 약 3억 2400만 년 전, 고생대 석탄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완벽한 육상 네발동물인 파충강은 꽤 초기부터 복잡한 분화를 보이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들로는 무궁아강과 단궁강, 그리고 이궁아강을 들 수 있었다. 무, 단, 이라는 것은 두개골 뒤에 있는 측두창의 개수를 의미하는데, 무궁아강은 측두창이 없고, 단궁강은 하나며 이궁아강은 두 개다.


 이 중 단궁강은 전통적으로는 파충강 내의 단궁아강으로 분류하였으나, 현재는 그보다는 단궁강이라는 독립된 강으로 분류하는 추세인 것 같다. 단궁강의 초기 형태는 반룡목이라 불리는데, 고생물에 조금만 관심이 있더라도 많이들 봤을 법한, 등에 돛이 커다란 고생대 생물들이 그들이다.




 이런 등지느러미는 체온 조절을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시대가 흘러 페름기가 되자 더 진화된 단궁강 생물인 수궁목이 등장하게 된다. 수궁목은 흔히 ‘포유류형 파충류’로[각주:1] 알려진 생물들로, 다리뼈가 바로 몸통에서 아래로 떨어져 보다 활동적인 몸을 가지게 되었으며 또한 강화된 체온조절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페름기에 수궁목은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지구생물 역사상 최악의 참사인 페름기말 대멸종이 찾아오면서 그 전성기도 한풀 꺾이고 만다.


 지구 생물의 95%가 멸종한 페름기말 대멸종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근래 나온 가장 유력한 가설은 시베리아에서 거대 화산이 폭발해 오존층이 크게 파괴되면서 지구 기온이 너무 올라갔다는 것이다. 당시 열대지역 해수온도는 섭씨 40도까지 올라갔고, 식물이 살 수 없게 되면서 생태계의 고리가 끊어졌다고 추정된다. 이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가 오면서 많은 것이 변하게 된다.


 단궁강의 명맥이 페름기에 끊긴 것은 결코 아니다. 수궁목도 트라이아스기 초기만 해도 강성했다. 그런데 중생대는 고생대와는 전혀 다른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페름기 때 산소농도는 현재의 115%에 이르렀다. 그런데 트라이아스기가 되자 산소농도가 현재의 80%수준으로 떨어졌다. 아마도 산소를 만들어내는 식물이 많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균 기온은 더 올라갔다.


 이런 상황에서 수궁목이 가졌던 체온 유지 능력과 커다란 체격은 더 이상 그리 유리한 조건이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굉장히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게 되는데, 그들은 위에 이야기했던 이궁아강의 후예들이었다.


 단궁강에 비해 이궁아강은 굉장히 다양하게 분화하였다. 복잡한 분화 속에 현재까지 그 후예가 살아있는 두 하강은 인룡하강과 조룡하강인데, 이 조룡하강 중에서 경이적인 생명체가 등장하게 된다.


 이 새로운 생명체들은 희박한 산소농도에서도 민첩한 움직임을 가져갈 수 있는 특수한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폐에 달려있는 기낭이라는 주머니가 그것인데, 이 기낭은 혈관처럼 뼈와 근육 속으로 이어져 굉장히 효율적으로 산소를 공급할 수 있는 기관이었다. 기낭을 가진 그들은 체격이 작고 빨랐고, 수궁목들은 그 민첩한 움직임을 따라갈 수 없었기에 진화 경쟁에서 한 발짝 뒤쳐지고 말게 된다. 이 조룡하강의 새로운 강자는 다름 아닌 공룡이었다.





 공룡은 잘 알려진 대로 곧 거대화되었고 이후 쥐라기에 접어들면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단궁강 또한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쥐라기에 단궁강은 거대화된 공룡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지만, 보다 효율적인 생존 방식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치아의 종류를 다양하게 만들고, 입과 코 사이에 구멍을 뚫었다.[각주:2] 이로 인해 단궁강은 보다 효율적인 음식 섭취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대신 치아의 복잡한 진화는 연속적인 치아의 교체를 어렵게 만들었다[각주:3].


 또한 단궁강은 공룡이 잠든 야간에 주로 활동하게 되면서 청각과 후각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지능이 높아졌고, 보다 활동적인 심장과 숨을 보다 효율적으로 쉴 수 있는 횡격막, 그리고 추운 밤에도 추위를 타지 않게 하는 체모, 자손을 보다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가죽 주머니 등이 생기게 된다. 이런 진화 후의 모습은 단궁강이라는 이름보다는 현대의 포유강이라는 이름에 보다 어울린다. 단궁강과 포유강은 사실 다른 분류가 아니다. 단궁강이 진화해서 그대로 포유강이 된 것이다. 겉보기엔 좀 많이 변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포유강의 알껍질은 점점 얇아지다가 아예 알이 없어지는 쪽이 대세가 되고 만다. 진화 과정에서 육아 주머니 대신 횡격막 밑의 공간을 활용해 아예 몸속에 육아를 시키는 공간을 만드는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태반을 가진 포유강, 진수하강이 생긴 것이다. 한편으로 공룡 또한 굉장히 다양하게 분화하면서 털이 있는 종류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이들을 깃털공룡이라 부른다.


 이후 시간이 오래 흘러 백악기를 지나 중생대도 막을 내린다. 잘 알려진 공룡시대의 종말은 긴 추위와 함께 시작되었으며, 체온을 보존할 수 있는 종들만이 살아남았다.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공룡들은 통상적인 입과 이빨 대신 부리가 달려 있었는데, 덤으로 깃털까지 길게 기른 친구들이었다. 쉽게 말해 새가 되어 있었던 공룡들이었던 것이다.




 신생대에 들어서도 포유강과 조강의 경쟁은 계속된다. 거대한 육식성 새들이 정말 오랜 세월동안, 대략 6000만년동안 포유강과 포식자의 지위를 놓고 경쟁을 했다. 그리고 그 경쟁이 종결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라 할 만한 200만 년 전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결국 승리한 것은 보다 지능이 높고 민첩한 포유강이 되었다. 이제 거대한 포식성 새들은 더 이상 지상에 남아있지 않다. 언제든 이 상황은 다시 바뀔 수 있지만.


 한편 진수하강 중 우리가 속한 영장상목은 백악기에 분리되었다. 이 영장상목에는 흔히 설치동물로 묶이는 쥐목과 토끼목, 그리고 영장동물로 묶이는 나무두더지목, 날원숭이목, 플레시아다피스목, 영장목이 있다.


 이 중 영장목이 가진 개성은 시각에 있다. 다른 포유강에 비해 후각은 떨어지지만 기본적인 시력이 좋고, 일부 영장목은 포유강 중 거의 유일하게 적색을 볼 수 있다. 적색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붉은 색으로 익은 과실을 찾아 먹을 수 있는 재능을 가졌다는 것이다. 또한 잘 알다시피 대부분의 영장목은 기본적으로 나무 위에서 긴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이 영장목 중 직비원아목-협비원소목-사람상과에 속한다. 영장목의 분류는 대단히 복잡하고 특성도 다양한데, 사람상과는 이 중 독특하게도 꼬리가 없어진 원숭이들이다. 왜 나무 위 생활에 유리한 꼬리가 없어졌는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지만, 어쩌다 보니 없어졌는데 생존에 별 문제가 없었다고 하는 게 적당할 것 같다. 이 사람상과는 긴팔원숭이과와 사람과로 나뉘는데, 이 사람과는 우리와 우리가 잘 아는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 등의 유인원을 포함한다. 특히 이 중 사람과 더 가까운 침팬지속의 침팬지와 보노보는 사람족으로 따로 분류한다.


 최초의 사람아족, 즉 본격적인 인류의 분화는 약 7~800만 년 전부터 시작된 것 같다. 사람족에서 사람아족이 분화되는 과정은 뚜렷하거나 분명하지는 않은데, 현재까지 본 자료로는 아주 긴 세월 동안 분리되어서 소위 사람화되었다가 다시 침팬지와 섞이기도 하면서 복잡한 분화 과정을 겪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 된 사람아족은 사헬란트로푸스차덴시스다.




 사람아족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침팬지나 보노보와는 달리 직립보행을 하게 된다. 당시 분화를 촉진했던 것은 아마도 지구의 건조화였을 것이다. 모든 원숭이들은 숲 속에 산다. 그렇지만 당시엔 숲이 줄어들고 있었고, 건조한 열대 초원인 사바나가 늘어나고 있었다. 꼬리가 이미 없어진 상태에서, 숲을 나와 초원을 돌아다니는 세월 속에서 이족보행의 진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초기의 사람아족은 현생 인류보다 키가 훨씬 작았고, 사바나는 정글과는 달리 트여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두 발로 서 있는 게 유리했을 것이다.





 사람아족은 다른 영장목이 그렇듯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하게 분화하였으며 여러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하였다. 이 중 약 500만년 전부터 등장해 완벽한 직립보행에 성공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파란트로푸스 등이 성공적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성공적인 진화는 약 250만 년 전, ‘호모’로 표현되는 사람속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잘 알려진 초기 사람속인 호모 하빌리스의 등장과 함께 사람은 뗀석기를 사용하면서 구석기 시대의 서막을 연다. 이 사람속부터 인류는 본격적인 포식자로 발돋움하게 되는데, 육식 자체는 이미 침팬지를 포함한 사람족에게는 보편적인 일이지만, 사냥을 해서 충분한 고기를 확보하기엔 능력이 부족한 편이다. 특히 당시 인류가 살던 사바나의 동물들은 결코 만만한 사냥감들이 아니다. 그들을 사냥 할 수 있는 능력을 본격적으로 갖추기 시작한 것은 뗀석기를 개발한 후의 일로 보인다.




 아직 호모 하빌리스는 현대 인류와 비교하면 눈에 흰자위가 없었고, 땀샘도 발달해있지 않았다. 성차도 심하지 않았고 키도 아직 그리 크지 않았으며 뇌용량도 600cc대 수준이었다. 얼핏 보면 인간과 침팬지의 중간 같은 정도다. 그러나 호모속의 등장은 다른 사람족과의 확연한 분리라 할 수 있었다. 돌연변이로 인해 혼혈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 무렵부터는 언어를 썼을 거라는 추측도 하고 있다. 그리고 본격적인 진화가 190~180만 년 전에 이루어진다. 호모 에르가스테르(에르가스터)가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호모 에르가스테르의 시대에 이르러 사람속은 불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분명하지는 않지만 에스가스테르가 분화되어 다른 종이 된 것으로 추정되는 - 그리고 훨씬 유명한 - 호모 에렉투스는 아프리카를 떠나 아시아에까지 퍼졌다.


 에르가스테르의 시대에 들어 사람속은 드디어 강력한 사냥꾼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 동시대에 다른 사람아족인 초식성의 파란트로푸스가 살았지만, 파란트로푸스는 멸종했고 호모 에스가스테르는 180cm 이상의 큰 키, 더욱 진보된 뗀석기, 초기에는 900cc, 후기에는 무려 1100cc에까지 이르는 현생 인류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의 커다란 뇌를 발달시키며 번성하게 되었다. 에스가스테르는 아마도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이다.


 불의 사용은 기적적인 결과를 안겨주었다. 불로 익힌 음식, 특히 영양가가 풍부한 고기는 더 작은 소화기로도 충분한 영양 공급을 가능하게 했다. 그로 인해 인류는 점점 장기가 작아졌고, 소화에는 작은 힘만 들여도 되게 되었다. 작은 소화기, 높은 에너지 효율은 전형적인 포식자의 특성이다. 충분한 영양은 또 키를 자라게 했고, 몸통은 짧아지면서 다리가 길어졌다. 골격은 튼튼하고 강해졌고, 남는 에너지는 더 성공적인 사냥을 위해 뇌와 지능, 감각 등에 투자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유형의 인류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인간이 다른 종과 차별화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불이다.


 이렇게 사람속은 영장목 중 거의 최초로 지배적인 포식자의 자리에 올라섰다. 어떤 생물 종이 진화를 거치면서 식성이 변하는 건 사실 드문 일은 아니지만, 사람속의 변화는 그 중에서도 포식동물로의 극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각주:4] 그리고 사람은 기존의 다른 포식자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유형의 사냥꾼이 되어갔다.


 이후 사람속은 다양하게 분화되고 여러 번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퍼졌다. 현생 인류인 우리 호모 사피엔스 또한 그런 분화 중 한 갈래에서 나왔고, 그 시작은 아마도 아프리카에서 약 20만 년 전부터이다. 이 세월동안 진화는 꾸준히 일어났고, 성공적으로 퍼져 나간 종은 우리 호모 사피엔스뿐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현재 유일한 생존 집단이라는 것이다.



(계속)


  1. 때때로 반룡목도 포유류형 파충류라 하지만, 그것은 형태가 그렇다기보다는 초기 단궁강 전체를 포유류형 파충류라 부르곤 하기 때문이다. 실제 포유류형 파충류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것은 수궁목이다. [본문으로]
  2. 우리가 음식을 한참 씹으면서도 숨을 잘 쉴 수 있는 것은 이 때 진화를 멋지게 해내서 그렇다. [본문으로]
  3. 그러니까 우리는 치과에 다닌다. [본문으로]
  4. 정 반대의 극적인 식이 변화 예로는 자이언트판다(팬더곰)를 들 수 있는데, 판다는 곰의 일종으로 식육목에 속하지만 거의 대나무만 먹는 초식동물이 되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