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전의 글, ‘마지막 남은 샛노란 맹신자들의 횡포에 대하여’에 부연한다.
한때 노무현을 지지했던 자유주의자들이 과거에 가졌던 태도는 쉽게 말하면 ‘주주자본주의’에 가까웠다. 이 방식이 군사독재 식 정경유착을 극복하고, 보다 선진적인 시장 경제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었다. 이는 과거의 소액주주운동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노무현의 선택은 중상주의였다. 비록 그 디테일을 보면 현대를 죽이고 삼성을 살리는 것이었지만, 그가 현대를 공격한 것은 (정몽준에 대한) 사적인 원한과 전 정권인 김대중 정권의 파벌을 몰아내려는 정치적 판단 - 당연히 매우 잘못되었던 것이지만 - 아래 있었던 것이고 전반적인 재벌에는 친재벌 정책을 폈다.
이것과 연관되어 자유주의자의 이탈은 복잡한 국면으로 나타났다. 우선 단순하게 노무현에 실망한 자유주의자들이 많기도 했다. 노무현은 철저하게 재벌개혁에 실패했다. 노무현이 5년 동안 해낸 재벌개혁보다는 지금 박근혜가 6개월간 한 재벌개혁이 더 양도 많고 질적으로도 강력하다.
그렇지만 노무현의 중상주의적 제안을 수용한 자유주의자들도 있었다. IMF로 인한 금융개방이 가져다준 한국의 현실은 많은 자유주의자들이 기존에 가진 생각을 바꾸게 하기에 충분했다. 때마침 노무현의 ‘선택과 집중’은 어쨌든 가시적으로는 성과를 낸 부분이 있다. 물론 이 면에서의 성과는 이명박 정권 쪽이 훨씬 더 우수한 성적을 내긴 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도 맞지만.
경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대부분의 좌파들은 미국식 신자유주의와 새로 등장한 한국형 자유주의를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계속 헛다리를 짚었다. 이것은 내 생각엔 다수의 좌파들이 과도하게 인문학적이고 사변적이기에 빚어진 참상이다. 신자유주의는 일종의 구호이자 복잡계 속의 대응이며, 또한 현상이다. 노무현 정권 이후 금융개방과 리먼사태의 여파를 본 자유주의자들 중 다수는 미국식 금융개방과 주주자본주의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현실을 인정하고 한국에 재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업데이트에 의한 것일 뿐, 사상의 기반이 변한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사회주의자들에 비해 그다지 관념적이질 않아서, 현상이 바뀌면 생각도 바꾼다. 자유주의는 태도의 문제이다. 1
사회의 흐름이 변하면서 끝까지 기존 입장으로 남은 주주자본주의에 찬성하는 자유주의자들은 가만히 있었는데 진보에서 보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별로 변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사회주의자들은 이 과정에서 심각한 착각을 저질렀는데,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자가 많아진 것은 중상주의를 수용한 거지 딱히 사회주의를 수용한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작년의 두 번의 선거에서 민주당의 과도한 좌클릭이 실패한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 이런 변화에는 IMF 외환위기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분석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일조하였다. 처음엔 많은 자유주의자들이 IMF가 한국 시스템의 구조적인 낙후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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