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링크 : (상) 기원부터 등장까지



 아마도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불을 사용하는 사람속 중에서도 매우 개성적인 특성과 능력을 지녔을 것이다. 물론 우리 외에 다른 가까운 친척들은 실질적으로 멸종되었기 때문에, 그들과 우리를 정확히 비교하는 것은 좀 어려운 면이 있다. 현재 인류의 분화도 외형적으로 복잡하긴 하지만, 그 DNA의 차이를 분석해보면 극히 미미하다. 그렇지만 정말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추론되는 많은 것들이 있다.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과거에 학자들은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사람속보다 단순하게 잘난, 선형적으로 발달 진화한 종일 거라 추측하였다. 쉽게 말해 키도 더 크고 뇌도 더 큰 쪽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이후 알고 보니 별로 그렇지가 않았다. 알고 보면 우리의 친척들은 우리보다 잘난 면이 많았다. (아마도) 말도 잘 했고, 머리도 비슷하게 좋았고, 때로는 힘도 더 세거나 키도 더 컸다. 예를 들어 잘 알려진 우리의 친척,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는 우리 기준에서 이야기하면 소위 약을 빨아야 나올 수 있는 엄청난 근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아마도 네안데르탈렌시스가 어떤 몸일지를 암시할 수 있는 예를 들어보자. MMA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 법한 알리스타 오브레임은 도핑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 인물이다.[각주:1] 2007년까지만 해도 오브레임은 90~100kg 정도의 체중을 가지고 있었고, 일류 선수 반열로 평가받았지만 탑 수준 선수와의 경기에서는 연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오브레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근육 증량과, 그 근육 증강만큼의 경기력 향상을 보이게 된다.




 그 최종 결과는 위의 사진과 같았다. 사실 이건 도저히 정상적인 사피엔스가 가질 수 없는 몸이다. 인간이 자연적으로 늘릴 수 있는 근육량은 타고난 골격에 맞춰 일정한 한계가 있다. 자연적으로는 무리하게 근육을 붙이려 해 봐야 일정 이상은 잘 안 붙는다.[각주:2] 그런데 오브레임의 근육 및 근력 증가는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영역이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도핑을 의심했지만, 그 도핑이 적발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동안 오브레임은 챔피언이 되었고, 그 후에야 도핑이 적발되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걸릴 만한 게 걸렸다는 생각을 했다. 도핑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변화였기 때문이었다.[각주:3]


 그런데 네안데르탈렌시스는 이렇게 우리 사피엔스가 도핑을 해야 나올 수 있는 근육량을 자연적으로 가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유전적 변이에 따라 우리 사피엔스보다 훨씬 강인한 몸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살아남은 것은 힘이 약한 우리다. 사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현생 사람족 중에 유독 힘이 약한 편이다.[각주:4] 결국 근력이 약하고 보다 슬림한 몸을 가진 게 생존에 유리했다는 의미다. 이것에 대해서는 후에 더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또 한편으로 우리 사피엔스는 성차, 그러니까 여성과 남성 간의 차이가 상당히 크다. 다른 사람속을 실제로 본 생존자가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속의 성차가 어땠을지는 미지수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리 사피엔스만큼의 성차는 다른 사람속에는 없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많은 근거들로 미루어볼 때 우리의 큰 성차가 우리를 다른 사람속과는 달리 한 차원 더 발달한 종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 인류 여성은 외형적으로 매우 두드러지며, 각종 독특한 특성들을 지닌다. 부푼 젖가슴과 양이 많고 각종 문제소지를 가진데다 잦은 월경, 본인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가임기[각주:5], 매우 정교한 신경 및 근육 체계 등이 그렇다. 사실 이런 특성들은 오랜 논쟁거리를 제공하는데, 일견 큰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이런 특성들이 우리의 생존과 발달에 매우 유리한 요소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내가 지지하는 가설은 다음과 같다.


 월경이라는 언어 자체가 그렇듯, 우리 사피엔스의 평균 월경주기는 묘하게도 달의 주기와 일치하는 28일이다. 침팬지의 경우 월경 주기는 36일이라 달의 주기와 일치하지 않는다. 사람의 경우도 실제 달의 주기와 월경의 패턴은 관련이 없다. 단 사람은 생리불순이 없는 한 달의 모양을 보고 대략 언제 월경이 시작될지, 언제 끝날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우연일지 몰라도 엄청난 결과를 불러오게 되었다. 우리는 사실 잘 공감할 수 없는 것이지만, 수많은 동물들은 단순히 현재만을 살아간다. 그들의 지성으로는 ‘현재’외엔 과거의 기억도 없고 미래 또한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보다 지능이 발달한 동물들은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학습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 인류는 그것보다 한 단계 발전한 시간적 인지 구조를 가진다.


 동물 중 오직 우리 인류만이 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지능의 영역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보다는 상상과 통찰, 더 나아가서는 창조성의 영역인 것이 미래다. 미래는 과거와 같지 않고, 경험해본 일도 아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 인류는 엄청난 지적 도약을 해냈다.


 나는 28일 주기의 월경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하나다. 대략 보름달이 뜰 때마다 월경을 하는 여성이라면, ‘다음 보름달이 뜰 때쯤 또 월경이 시작될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인지적 확장은 지구 역사상 처음 등장하는, 차원이 다른 포식자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특성은 아마도 온전히 사피엔스의 것이리라 추측한다. 우리의 인지 속에 미래가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엄청난 일들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계획’과 ‘상상’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우리에 비해 별로 모자랄 것 없었던 다른 인류들이 모두 실질적으로 멸종하고 우리만이 남게 된 것은 분명 현격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아마 이것이었을 것이다.


 미래를 인지하게 되면 우리는 계절의 흐름과 동물의 이동 경로 등 자연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된 이상 우리는 이제 별 생각 없이 돌아다니면서 동물을 잡을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언제 어느 때, 어떤 동물이 어느 방향으로 어디로 이동할지를 알게 되었다. 이것은 더 강한 근육이나 더 큰 키보다 훨씬 강력한 것이었다. 사피엔스 여성들은 생리혈이 많아도, 사냥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기가 어려워도 별 문제가 없었다. 이제 인류 남자들은 최고의 사냥꾼이 되었고, 시간감각의 확장이 먼저 일어났으리라 추정되는[각주:6] 여성들의 식량 자급률은 남성이상으로 뛰어난 효율을 가지게 되었다.[각주:7] 성별 간에 분업이 일어났고, 그것은 인류의 번성에 기여하였다.


 나는 분업이 일어나고 그것이 강화되는 동안이 우리 사피엔스 개개인의 전성기였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모든 신체적, 심리적 양상들은 이 시기를 기준으로 완성되었다. 다른 종보다 차별화된 능력을 지니게 된 사피엔스는 풍족한 식사를 누리며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었다. 그 시기의 선조들에게는 충치도, 정신병도, 심한 전염병도, 영양 결핍으로 인한 성장 장애도, 대규모 전쟁도 거의 없었다. 훨씬 더 적은 시간을 일하고, 훨씬 많은 자유와 주변인과의 친밀함 및 애정 관계를 누리면서 지낼 수 있었다. 식단만 봐도 현대인보다 훨씬 많은 고기를 먹었다.


 이 시기에 우리는 그야말로 생태계 최강의 포식자였다. 미래를 예측하고 각종 상황을 상상하는 능력 외에도 여러 독특한 특성들이 우리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었다. 옆으로 확장된 동공과 상대적으로 작은 검은자위, 많은 부분이 드러난 흰자위는 내가 어딜 보는지, 상대가 쉽게 알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은 격투를 벌인다면 불리한 조건이지만 대신 소통에는 큰 이점이 있다. 사냥 중에도 내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동료들이 쉽게 알 수 있다. 연인 또는 가족과의 대화와 감정적인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우리의 극단적으로 줄어든 체모와 발달한 땀샘은 몸 전체를 방열판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어떤 종족도 사바나에서 인간처럼 오래 달릴 수 없다. 또한 인간의 잘 연계된 근육과 긴 팔다리, 발달한 신경계는 무기의 장거리 투척이라는 경이적인 행위를 가능하게 한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모든 동물이 두려워하는 불을 들고 다닌다. 원한다면 우리는 모든 동물을 사냥할 수 있었다. 잘 알다시피 거대한 매머드조차 인류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적당한 양의 근육은 사냥 및 생존에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너무 많은 근육은 에너지 소모가 많고, 운동 시 더 많은 열을 발생시킨다. 대신 우리는 대단히 정교하고 협응이 잘 되며, 매우 다양한 동작을 수행할 수 있는 복잡한 근육 구조를 발달시켰다. 우리는 야구공을 시속 150km 이상으로 던질 수도 있지만, 쌀알에 조각을 할 수도 있는 종족이다. 우리 외의 다른 종족들은 힘은 우리보다 세지만 절대 이런 난해한 동작들을 할 수 없다.


 포식자로서의 본능은 우리에게 깊숙이 각인되어있다. 예를 들어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에게 고기와 채소를 동시에 주면, 아이들은 고기부터 먹으려 드는 경향이 있다. 원래 우리는 그런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들은 어릴 때는 각종 잎채소들의 쓴 맛에 민감하고, 그런 것들을 잘 먹으려 들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본능적으로 달콤하게 잘 익은 열매와 고소한 견과류를 좋아한다. 원래 우리는 그런 것들을 주로 먹어왔다. 물론 쉽게 채집 가능한 소형의 새우, 게, 생선 등도 우리는 많이 먹었다.




 이 시기의 자유로운 사피엔스는 현대의 우리와는 달리 지속적인 갈등에 노출될 이유도, 더 높은 지위를 원할 이유도 별로 없었다. 당시의 우리는 그리 많은 수의 집단을 형성하지 않았다. 특정 지역에 너무 많은 사람이 살면 식량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이때의 우리는 사냥감의 움직임 및 기후의 변화에 따라 어느 정도 이상씩 돌아다녀야 했고, 갈등이 일정 이상 생기거나 하면 싸우기보다는 갈라지면 되었다. 쉽게 말해 서로 사이가 안 좋은데 계속 지지고 볶고 싸울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도 지속적인 다툼과 경쟁을 힘들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린 사실 수천 년 전까지만 해도 별로 그래본 적이 없었다.’


 영역 또는 영토의 개념도 이 시기엔 별 의미가 없었다. 우리 선조가 살던 아프리카 대륙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었고, 사냥감은 풍족했으며 사람은 적었다. 멀리 이동하다 보면 우리의 친척들은 볼 수 있었겠지만 사피엔스 자체는 그리 많은 수가 아니었다.


 본래 생태계에서 포식자의 수는 그리 많을 수가 없다. 실제로 사피엔스의 수도 압도적으로 긴 기간 동안 생태계 안에서 효율적으로 조정되었다. 한 때는 크게 쇠퇴하여 멸종 위기에 몰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사피엔스는 어려움을 항상 극복했고, 7만 년 전에는 아프리카를 떠나 다른 지역까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과정 속에서 번영의 마지막 시기에 우리는 새롭고도 묘한 식량자원을 이용하게 된다. 중동 등지에 있던 야생곡물들이 그것인데, 이 묘한 식물들은 한 계절에 집중적으로 보존성이 좋은 식량을 제공해주었다. 당시엔 빙하기가 끝나면서 식생이 크게 변하던 시기였는데, 풍부해진 야생곡물들은 당시의 인류에게 꽤나 매력적인 존재였을 것이다.




 기존의 수렵채집생활이 풍족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때때로 식량이 모자라던 기간은 있었을 것이다. 곡물은 유난히 좋은 보존성을 가지고 있기에 곡물을 충분히 확보한다면 1년 내내 식량 걱정을 덜 수 있다. 물론 이런 야생곡물의 확보는 정말 오랜 기간 동안 지극히 부수적인 역할을 했겠지만, 점차 그 우수한 기능성에 매료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략 12900년 전에 지구에 큰 사건이 터지게 된다. 1300~1400년 정도 지속된 이 시기를 ‘영거 드라이어스’기라고 부르는데, 대단히 갑작스럽고 상대적으로 짧은 빙하기였다.


 당시는 빙하기가 끝나고 점차 따스해지던 시기였다. 그런데 빙하기 때 북미에는 엄청난 양의 빙하가 있었다. 이것은 날이 따스해지면서 점점 녹아서 거대한 규모의 호수가 되었는데, 그 크기는 현대의 오대호보다도 컸다고 한다. 그리고 남아있는 빙하로 인해 가둬져 있던 호수는 결국 마지막 빙하마저 녹아 일시에 엄청난 양의 담수가 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세계 대양의 해류흐름은 멈추었다. 그 결과는 극적인 기온 하강이었다.


 당연히 그 시기를 살던 우리 선조들은 황당한 경험을 해야 했을 거다. 불과 50년 만에 지구 평균기온이 7도나 떨어졌다. 평균기온 7도의 차이를 설명하자면, 한반도가 50년 만에 핀란드보다 더 추워진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이 쯤 되면 당연히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실제로 영거 드라이어스기에 멸종한 동물들이 꽤 있다.


 이미 다른 종에 비해 차별화된 능력을 지녔던 우리 사피엔스 중 일부는 이 시기에 생존을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되었다. 자연의 최고 포식자이던 인류가 급변하는 자연에 맞서, 자연을 통제하고 조정하며 더욱 파격적인 번영의 길로 나아가고자 마음먹게 된 것이다. 농경이 시작되었다.




(계속)


  1. MMA는 약물파동으로 한동안 시끄러웠던 MLB 등과는 다르게 옷을 벗고 하는 스포츠라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 아주 잘 보인다. [본문으로]
  2. 대부분의 바디빌더들은 약물을 한다. 약을 빨지 않고서는 그런 몸이 나올 수가 없다. 약을 쓰지 않는 바디빌드는 내츄럴 바디빌드라고 따로 부를 정도. 미국 등지에서 도핑은 생각보다 훨씬 일반화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약학 연구의 많은 부분조차 도핑에 투자되고 있다. 실제 심장병 연구보다 안 걸리고 강력한 도핑 연구에 더 많은 돈이 쓰인다는 건 공공연한 소문이다. [본문으로]
  3. 많은 프로 스포츠에서는 도핑 검사를 올림픽 수준으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종종 약물 파동이 일어난다. 물론 올림픽 수준으로 검사를 해도 나중에야 도핑이 밝혀지는 경우도 많다. [본문으로]
  4. 침팬지보다 훨씬 힘이 약하다는 뜻이다. [본문으로]
  5. 생리주기 내의 가임기간, 즉 배란부터 월경까지를 의미한다. [본문으로]
  6.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기엔 불충분할 수 있지만, 투자를 할 때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은 지금도 여자들이 더 좋은 편이다. 대신 뛰어난 사냥꾼이었던 남성의 공간 감각은 평균적으로 여성보다 뛰어나다. [본문으로]
  7. 의외로 많은 경우 여성들의 채집활동은 상당한 식량 자급 효율을 가진다. 실제 현대에 수렵채집 활동을 하는 부족들을 보면, 여성들의 채집 활동이 평균적으로는 남성들의 대형 동물 사냥보다 더 많은 칼로리를 확보하곤 한다. 대형 동물 사냥은 실패하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성들이 종종 잡아오는 대형 동물은 질적으로 더 나은 식량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여성들에게 필요한 철분을 확보하는 데 중요하다. 또한 근사한 사냥감은 남성에게 있어 수컷 공작의 꼬리와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