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늙은 망집, 환단고기

정치 2025. 12. 16. 23:51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youtu.be/-emOUYX35ZY?si=bhDai7L8Rlgy_Eoi

 

 

 

 

 

 

 더듬어만진당 최고존엄이시며 디스토피아 트루 헤븐조선 총통이시며 손가락빛의혁명군 최고사령관이신 1등 인민들의 위대한 령도자, 친애하는 리재명 두령 동지는 애지중지 만사현통과 폭동덕 호걸들의 수호자이십니다. 그리고 여기에 환단고기의 수호자라는 칭호도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칼로도, 법으로도, 펜으로도, 굶주림으로도 죽일 수 없는 존재 자체가 죽음이신 두령님이 NL의 코어인 경기동부연합과 일정 이상 가까운 사이라는 의혹은 꽤나 전부터 있어왔는데, 이번에 환단고기를 옹호하면서 적어도 꽤나 유사한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봅니다.

 

 감히 단언컨대 환단고기에 대한 두령동지의 태도는 무지하며, 몰상식하고, 교만하며, 스스로에 대해 무비판적이고, 반지성주의적입니다. 물론 환단고기에만 그런 양반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전반적으로 그렇고, 그건 만진당 구성원으로는 독특하다거나 이례적인 무언가가 아니지요. 원래 만진당 구성원들과 광신자들 성격이 그렇습니다.

 

 조금 이야기를 풀자면, 그냥 문헌만 서지적으로 분석해봐도 환단고기는 두말할 것도 없는 위서입니다. 심지어 딱히 역사가 있는 신화조차 못됩니다. 환단고기가 출판되고 이슈화된 역사는 꽤 짧아요.

 

 그냥 상식적으로 조금만 생각해봐도 환국은 말이 안 됩니다. 기원전 67079년은 말할 가치도 없으니까 넘어가고, 기원전 7197년부터 환국이 있었다는 설을 보면, 그 환국이 수메르까지 영토가 뻗어있었다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전근대 국가는 대략 각 도시와 도시를 잇는 점과 선의 개념으로 봐야지, 지도에 그리는 면의 개념으로 보면 안 됩니다. 그리고 기원전 7200년전 경이면 단적으로 이야기해서 말이 가축화되기 한참 전입니다. 말은 기원전 3500년보다 좀 이전에 중앙아시아에서 가축화되었다는게 통설입니다. 나귀는 그보다 좀 더 오래 전이라 기원전 4000년 정도에 이집트에서 가축화되었고요. 말도 나귀도 없던 시절이란 말이지요. 또한 이 시절에는 철기건 청동기건 없습니다. 신석기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인류가 아직 금속을 쓰기 전입니다.

 

 동쪽으로는 사할린, 북쪽으로는 바이칼 넘어 툰드라 지대, 서쪽으로는 바그다드, 남쪽으로는 베트남까지 환국 영토였다고 환빠들은 주장하는데요. 같은 나라면 최소한 왕래는 있고 세금도 거둬서 전달하고, 문제 해결도 해주고, 여하튼 그런 게 있어야 같은 나라 아니겠습니까.

 

 그 모든 왕래를 이 시대엔 전부 걸어서해야했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서요. 말이 없으니까요. 물론 그 시대에 만들 수 있었던 신발은 원시적인 가죽신이나 짚신 계열밖에 없었고요. 또 알 만한 분들은 다 아시다시피 중국 서부로 넘어가면 길이 장난이 아닙니다. 그나마 제일 쉬운 길이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지대인 타클라마칸 사막 외곽을 지나 해발평균고도 5000m의 파미르 고원을 넘는 겁니다. 이 시기에는 당연히 낙타도 못 씁니다. 낙타는 말보다 늦게 가축화되었습니다. 건조지대와 고산지대를 수천킬로미터 다녀야 하는데, 물도 사람이 지고 다녀야 합니다.

 

 물론 먼 길을 다니면 아주 많은 해프닝이 일어날 겁니다. 고대에 이미 멸종된지 오래인 온갖 거대하고 위험한 동물들이 있을거고, 곳곳에 산적한 다양한 민족들이 창을 들고 덤비게 되어있지요. 설령 백번 양보해서 사할린부터 수메르까지 다 환국 영토라고 가정하더라도, 기원전 7000년경을 가정한다면 절대로 영토로 선언한 지역 내에서 반기를 드는 온갖 부족들을 정리할 수가 없습니다. 석기가지고 무슨 정복전쟁을 벌여봐야 얼마나 하겠습니까. 정복전쟁은 커녕 나무베기도 어렵습니다. 철은 커녕 구리도 없는데, 돌도끼로 무슨 나무를 베겠습니까?

 

 이 시기의 농경은 그리 대규모일 수가 없었고, 소모적이었으며, 효율이 나빴고, 한정적인 지역에서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금속 없이 석기로 지을 수 있는 농사의 인구부양능력은, 대다수의 토지에서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그냥 씨만 뿌려둬도 알아서 작물이 잘 자라는 A급 토지가 아닌 이상 수렵채집이 나은 수준이 됩니다.

 

 그래서 만일 한반도에서 누군가가 출발해서, 수메르에 명령을 내리고자 육로로기원전 7000년경에 간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애초에 도착은 할 수 있을까요? 대략 현 시대의 우주여행에 필적하는 난이도라 봐야 합니다.

 

 고대 문명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강이나 하천을 따라 발달합니다. 이건 상식입니다. 애초에 물이 충분하지 않으면 사람이 많이 살 수가 없고, 농사도 불가합니다. 토지가 비옥한 범람원도 강가에 생기고요. 또 육로는 가기 힘들어도 강 따라 배를 모는 건 원시인도 합니다. 그러니까 고대문명은 특정 강 유역의 문명인 겁니다. 메소포타미아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이집트는 나일강. 다들 배웠을 겁니다.

 

 고대 중국은 황하 문명입니다. 여기에 본래는 중원이 아니었던 남부의 양쯔강 문명이 합쳐진 게 우리가 아는 중국이고요. 유럽과 달리 중국이 분열을 하더라도 결국 통일되었던 건 중국은 황하, 회수(회하), 양쯔강이라는 물길로 연결된 하나의 땅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라 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소위 4대 문명이니 그런 게 강가에서 시작하는 거고요. 문명이 발달하고 도시국가가 생기고 주변과 다툼을 벌이고 복속하고 그런 게 상식선의 역사입니다.

 

 강이 없고, 금속도, 대규모 농경도 없으면? 그런 문명 있지요. 마야 문명. 유카탄 반도 일대에서 수천년 동안 도시국가가 난립하면서 흑요석 무기로 끝도 없이 싸우다가 정글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나마 마야 문명은 그래도 청동기라도 썼습니다. 환빠들이 말하는 환국 시절 초기는 청동은 물론 황금조차 쓰지 못하던 시절입니다. 참고로 마야 문명이 수천년동안 다투던 지역의 넓이는 한반도보다 좀 넓은 수준입니다. 진정한 제국은 말과 수레바퀴가 등장한 이후에나 가능해진 겁니다.

 

 즉 환단고기는 그저 판타지이며, 신흥종교의 신화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환단고기가 꽤 폭넓게 받아들여진 것에는 단군신화와 천도교, 대종교, 증산계통같은 민족주의 계열 종교, 그리고 내셔널리즘이 큰 역할을 했다 할 수 있습니다.

 

 조선 세조 시절 편찬된 사서 동국통감에서 최초로 기원전 2333년의 단군기원을 제시했습니다. 이후 일제시대를 거치며 민족의식이 높아졌고,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 역법으로 단기를 사용했었는데, 1961년까지 그러하였습니다. 서기 년도에 2333년을 더하면 단기 년도가 됩니다. 박정희가 집권하고 사용하지 않게 된 이후에도 1980년대까지는 단기 년도를 달력이나 졸업앨범 등에 병기하기도 했었습니다. 여담으로 쌍팔년도라는 말은 본래 1988년이 아니라 단기 4288, 그러니까 서기 1955년을 의미하였습니다.

 

 물론 기원전 2333년에 단군조선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는 신화에 불과합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확실히 고조선이 존재했던 시기는 기원전 4세기 정도에는 있었고, 아마 그보다는 더 오래 전부터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정도가 통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원전 2333년을 기준으로 하는 단기 역법을 실제로 썼었고,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반만년이라 표현하는 게 일상적이었습니다. 이런 표현을 최근에도 쓰긴 하지요. 환단고기의 역사는 여기에 과장을 보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성기 고구려나 발해의 영토가 제법 넓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신라의 삼국 통일을 아쉬워하고, 발해가 멸망한 것을 아쉬워하는데 이런 사관은 대략 신채호부터 이어졌습니다. 신채호는 투쟁적인 독립운동가였고 역사에도 열정이 많았지만, 우리나라 역사관에 끼친 악영향도 꽤 큽니다.

 

 신채호는 고구려가 감숙성 서북쪽까지 진출했다고, 그의 저서 조선상고사에서 주장했었습니다. 감숙성이 어딘지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이야기하자면, 위구르 근처까지 고구려가 정복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삼국지 기준으로는 양주 또는 서량. 코에이 게임 기준 마등 있는 곳이 감숙성입니다.

 

 이런 신채호와 같은 계열의 주장을 하던 사람들이 과장을 보태가면서 만들어낸 게 환빠 세계관입니다. 고구려는 서량까지 진출했고, 고조선은 고구려보다 더 컸고, 고조선보다 앞서 있었던 환국과 배달국도 있었는데 환국은 고조선보다 훨씬 더 컸다. 이런 식으로 확장된거고 그게 대중적으로는 매력있는 이야기다보니 어느 정도 폭넓게 받아들여지기도 했었습니다.

 

 인터넷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환빠는 꽤 득세했습니다. 그러다가 인터넷 시대가 시작되고 한동안 치열한 대토론의 시대가 열렸고, 그 과정에서 환빠들은 패배를 거듭하고 쇠퇴하게 됩니다만... 아직도 고연령층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남아있고, 유감스럽게도 친애하는 지도자 리재명 두령 동지께서도 환빠 중 하나가 되시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내셔널리즘 망상은 현대의 헤븐조선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아프고 어려웠던 우리 역사가 남긴, 낡아서 버려야 할 망집이라 할 수 있지요. 한편으로 최근에는 인근의 모 국가가 발달을 덜해서인지 괴악한 내셔널리즘을 보이고 있기도 한데요. 이제 그 나라 욕하면 잡혀간다 하니 차마 무슨 국가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현재의 우리는 그런 나라와는 수준이 다르지 않습니까? 클래스가 다르면 다르게 놀아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