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퇴임을 앞두고

정치 2013. 2. 22. 14:12 Posted by 해양장미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도 이제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집권기간은 체감 상 참 길게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도저히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고, 그의 정책에 의한 개인적인 손해도 여러 번 입었다. 그러나 그 역시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진보시킨 면이 있다. 문득 그 점을 느껴서 놀랍다고 느끼고 있다.


 퇴임을 4일 앞둔 오늘, 이명박 대통령은 아직도 새누리당 당적을 유지하고 있다. 그가 부덕하여 많은 욕을 먹은 대통령이라는 것을 감안해 볼 때,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물론 박근혜가 당의 패권을 쥐면서 당 이름도 바꾸고, 로고 색깔도 바꿨지만 그 과정에서도 이명박은 당적을 유지하였다. 이는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에 충분히 기여했으리라 생각하며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있어 또 한 번의 발전이 이루어진 거라 볼 수 있다.


 이걸 보면서 친노 노빠 깨시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도저히 안 할 수가 없다. 노무현 정권은 임기 중 여당을 두 번이나 깨먹었다.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으로, 그리고 열린우리당을 깨고 통합민주당으로. 그것도 모자라 노무현의 후계자(취급을 받았던) 유시민은 이명박 당선 이후 통합민주당에서도 탈당하더니, 지역도 옮기고 국민참여당도 만들고는 민주당에 몽니를 부리다가 유력 대선 후보에서 낙마하고는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으로 옮겨가는 희대의 철새짓을 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해 무지하고 자기반성능력이 없는 소아적 행태를 보이는 깨시민들은 그런 유시민에 대해 바른 말을 거의 하지 않았고, 오히려 유시민의 낙마 이후 정치할 생각도 없던 문재인을 소환하여 지난 4년간 민주당을 지키던 사람들을 물리치고, 부활의 조짐이 보였던 민주당의 생명줄을 끊어놓고 말았다.


 민주당은 지금도 친노 문희상이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고, 친노가 문제가 아니라는 둥, 친노는 실체가 없다는 둥의 물타기를 넘어선 은폐조작까지 저지르고 있다. 새누리당 세력이 법치와 공화를 파괴한다면, 노빠 깨시민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주범인 동시에 새누리당이 저지르는 모든 범죄적 행위의 공범이라 할 수 있다.


 이명박 시대 내내 깨시민들은 반MB만 외쳐댔다. 딱하나 자기 목소리 낸 게, 무상급식이다. 그 어줍잖은 이슈가 나름 잘나가던 오세훈을 반영구적으로 정계에서 퇴출시켰고, 박원순을 시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거기에 도취해서 깨시민들은 총선과 대선을 모두 박근혜 여왕폐하께 헌납했다.


 퇴임을 앞둔 현재, 이명박은 거의 지지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지만 5년 전의 노무현에 대한 지지보다는 통계 조사 결과 낫다. 이명박이 잘한 게 있다면 정책이 꽤 일관적이었다는 데 있다. 일관성이 있다는 건 예측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명박은 작정하고 나라 곳간 한번 털어먹자는 식으로 정치한 면이 있지만, 그 착취가 대한민국의 기둥뿌리를 뽑아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어쨌든 정책이 갈팡질팡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능력 있는 사람들은 비교적 살아남기 쉬웠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 때와 비교하면 비록 그지같더라도 질서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민중은 혼란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명박은 남탓을 하지도, 자기연민을 보이지도 않았다.






 이 시대의 나쁜 남자, MB. 그는 털어먹어도 일관성 있게 당당하게 털어먹으면 사람들이 그나마 덜 싫어한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보인 대통령이었다.

 

 이제 들어설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와 얼마나 다를지, 더 나을지는 잘 모르겠다. 인수위를 보면 물론 기대가 별로 안 되긴 한다. 그런데 박근혜건 친박이건 원래 그런 사람들이고, 정권교체를 위한 열망이 가득했던 작년 분위기를 감안해볼 때 이런 결과를 초래한 건 누가 뭐래도 노빠 깨시민들임을 부정할 수 없다. 노무현 정권을 넘어, 이명박 정권 내내 노빠 깨시민들은 한국 사회의 진보적인 열망을 잠식하고, 새로운 개혁세력의 등장을 찍어 눌렀다. MB를 방패삼아 새로운 수구세력이 자라난 것이다.




 유시민의 다음 수가 뭘까 조금은 궁금했었는데, 역시나 정계은퇴.


 그가 진정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 이번 정계은퇴도 신뢰하지는 않는다. 몸 피해 있는 게 현재의 그에게는 최선일 테니.


 그나마 노회찬 옆에라도 붙어 있으려고 했을 텐데, 노회찬 의원직까지 잃어버리니 이용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노무현 정부 때 그 또한 삼성 X파일 관련 사건을 그 모양으로 처리하는 데는 일조했다고 보고 있는데, 그야말로 온갖 철새짓과 몽니를 거듭하다가 스스로에게 뒤통수 맞은 셈이 아닌가.


 결국 그의 이력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조순 옆에 붙어서 김대중을 공격.


2) 개혁당 창당, 노무현 지지, 2003년, 개혁당 의원이 됨.


3) 수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혁당 붕괴시킴. 열린우리당 입당.


4) 노무현의 온갖 실정을 열심히 실드치고 다님. 절대로 바로잡을 생각을 안 함.


5) 그 중 하나 대표적인 거. 선거구제 개편을 위한 거라고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찬성. 그 전에 그는 "나는 한나라당 박멸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라고까지 한 적이 있음. 물론 민노당에 대해서도 민노당 찍는 건 사표라고도 해서 양쪽에서 다 까임. 그리고는 선거구제 개편을 하면 5개 정당이 경쟁하는 다당제가 될 거라고 망상 가득한 발언을 함. 몽상을 넘은 망상가 기질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짐. 결국 선거구제 개편도 못함.


6)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는 과정부터 잡음이 많았음. 애초에 노무현이 다소 무리하게 시켜준 셈. 이후 장관 시절, 온갖 시민단체 및 의사들의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약사들 말만 듣고 자기 멋대로 각종 건강보험 관련 제도를 변경. 당시 상황을 조사해보면 그야말로 아마추어리즘의 극치. 그것도 모르고 노-유-문빠 깨시민들은 그가 장관 일 잘했다고 실드침. 절대 인정 안함. 물론 잘한 게 전혀 없다고는 안하겠음.


7) 열우당 해체에 반대하면서 고건 앞길을 막는 데 일조하다가 또 돌변, 열우당 해체에 앞장섬. 그 다음 통합민주당에서 대통령 후보에 나섰다가, 같은 친노계열인 이해찬 쪽에 붙지만 그마저도 실패하자 대선 후 통합민주당을 탈당. 민주당 의사결정구조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발언.


8) 대구에 뼈를 묻겠다는 식으로 18대 총선 무소속 대구 출마, 낙선.


9) 노무현 사망. 유력 차기 대선후보로 떠오름.


10) 국민참여당 창당. 본인이 만든 거 아니라고 표면적으로는 그러지만, 유시민 개인 정당이나 다름없던 거 알 만한 사람은 다 암.


11) 국참당 몽니 1차전. 2010년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 후보로 김진표를 꺾음. 민노당하고도 손을 잡음. 이후 유시민빠들은 심상정까지 뒤에서 엄청나게 공격해서, 결국 심상정 사퇴. 그러나 유시민은 패배. 대구 시민들부터 민주당 지지자, 진보신당 및 심상정 지지자 등등에게 총체적으로 까이기 시작. 그러나 유시민빠의 무한실드는 이때부터가 본격적이었음.


12) 국참당 몽니 2차전. 2011년 보궐선거에서 그 지역과는 별 관련 없는 ‘이봉수’라는 낙하산을 김해을에 추대함. 그리고는 민주당에 본격적으로 몽니를 부려, 100% 여론조사라는 전례 없는 방식으로 단일후보를 따냄. 그리고는 패배. 한편으로 이 모든 과정에서 국참당은 지지자들에게 많은 일을 시키고, 돈은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다고 알려지기도 함.


13) 전설적인 정당 브레이커의 명성답게 2011년 12월, 국참당 깨짐. 통합진보당 출범. 국참당은 딱 만으로 2년 간 정당이었음. 그 동안 온갖 몽니와 수금, 온라인에서의 깽판 등으로 수많은 사람에게 학을 떼게 만듬.


14) 2012년 1월부터 바로 유시민은 특정 계파의 패권주의를 비난하고 나섬. 이후 총선 과정부터 큰 문제로 확대됨. 그러나 비리는 NL계열만 저지른 게 아니었음. 유시민 쪽이 더 많이 저지름. 그러나 깨끗한 척하다 결국 통진당은 1년도 못가서 찢어짐. 이후 진보정의당 창당.


15) 노회찬 국회의원 자격 박탈 이후 곧바로 유시민 정계은퇴 선언.



 이 중 당적 변화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개혁당 -> 열린우리당 -> 통합민주당 -> 무소속 (대구출마) -> 국민참여당 -> 통합진보당 -> 진보정의당


 가히 이인제 이후 최고의 철새이자, 지역까지 옮겨 다니면서 스스로 정당까지 몇 번이고 만들고 깬 당대의 기회주의자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남들은 지금까지 해내지 못한 탁월한 몽니까지 보여줬었다.


 그는 노무현의 매력은 가지고 있지 못하고, 노무현의 단점만을 너무나도 많이 닮은 데다 노무현을 옆에서 바로잡지도 못한 정치인이었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굉장히 유교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다. 유교적인 관점에서 유시민은 장점이 있는 정치인이다. 그러나 근현대적인 정치학의 관점으로 그를 평가하자면, 그는 최악의 인물에 가깝다.


 심형래, 황우석과 그는 참으로 비슷한 인물이다. 수많은 팬들이 광적인 변호를 했다. 그러나 시간은 그의 진실을 하나하나 드러내고 있다. 물론 그는 아직 심형래나 황우석만큼 죽지는 않았다. 깨시민들이 트위터에 올리고 있는 글을 보면 개인적으로는 한숨이 나온다. 특히 호남 탓을 하면서 유시민을 뭐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처음부터 그를 싫어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흠이 있다고는 생각했으나 나 역시 처음에는 그에게 어느 정도 기대를 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도 여러 번 나와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그의 요구대로 그가 정계은퇴를 해 있는 동안은 그를 용서해보려 한다. 그는 열 중 하나도 보답을 못한 게 아니고, 백 중 하나도 해낸 게 없다. 덤으로 패악질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는 오직 저래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줬을 뿐이다. 많은 이들이 그를 타산지석으로 삼길 바란다. 정치는 현실이다. 그리고 깨시민은 좀 자라.




노회찬 의원에 관한 이야기

정치 2013. 2. 17. 21:32 Posted by 해양장미

 ‘원래 그런 것들’은 아예 언급할 가치도 없고, 노회찬 죽이기에 동참했던 깨시민들의 의도적 기억 말살 또는 무지를 보면서 역시나 그들이 진정한 이 사회의 문제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삼성 X파일 사건을 묻어버렸던 건 다름 아닌 노무현과 친노세력이었다.


 노무현 정권은 시작부터 친 삼성이었고, 반 현대였으며 집권 기간 내내 한국을 삼성 공화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깨시민들은 이 사실을 의도적으로 망각하거나 무시하고 있거나 또는 모르고 있으며, 그들이 지난 2010년 서울시장 선거 때 노회찬에게 가했던 가혹한 폭력적 언행들 또한 반성하지 않은 채 잊어버리고 있다.


 친이도, 친박도, 친노도 노회찬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과거의 DJ세력도 분열되고 뒤로 물러난 이상 노회찬 근처에 남은 것은 거의 없다. 유시민이 그의 옆에 지금 서 있다는 건 그야말로 아이러니를 넘어, 어쩔 수 없는 동맹상황에 가깝다. 유시민은 어차피 진정성 없는 정치인이지만, 친노세력과 깨시민들은 언제든 그를 다시 후계자로 복권시킬 수 있다. 노회찬은 그와 같은 자와 적극적으로 함께함으로 인해 본인의 진정성을 훼손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노회찬과 나는 가진 이념이 다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회에는 그가 필요하다. 그가 제시했던 여러 입법들에 대해, 구체적인 사안들까지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 정신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그가 얼마 의정활동도 못 한 채 국회를 떠나게 되어 유감스럽다.


 이번 노회찬에 대한 판결은 범죄 제보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처벌한 격이다. 이 또한 부끄러운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깨시민들만 제대로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다.


 참조. 삼성 X파일 사건은 절대로 삼성 하나에 연관된 일이 아니다. 한국의 지배 계급 전반과 관련된 문제다. 괜히 이런 무리한 판결이 나오는 게 아니다. 이것은 권력과 생존의 문제다. 






 이니스프리 50% 디스카운트 이벤트가 북조선 3차 핵실험을 제치고 실시간 검색 1위에 오르자, 남 일에 관심 지독히도 많은 깨시민 & 넷우익들이 대동단결하여 욕을 하고 있다. 교련 과목을 부활시키자는 둥, 안보교육이 시급하다는 둥.


 아니 그런데 아직 핵실험일 뿐이고, 이니스프리 바겐세일이 더 중요한 게 평범한 인생이 아니던가.


 사실 북조선이 핵실험을 하건 뭘 하건 일반인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90년대처럼 북조선에 무슨 문제 터지면 라면, 생수, 쌀 같은 거 사재기하는 게 좋은가? 그런 게 바람직한가?


 아니다. 어차피 북조선 3차 핵실험은 예견되었던 일이고, 시민들은 성숙한 자세로 침착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이번이 처음 핵실험도 아니고 어차피 인생이란 내일 죽어도 오늘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게 아니던가.


 핵실험 같은 문제는 어느 정도 전문가에게 맡겨두는 게 좋다. 물론 관심 많은 사람은 관심 가져도 좋다. 군사주의, 극우적 발언도 정도껏 해야 한다. 수많은 친노주의 깨시민들이 알고 보면 대체로 마초에 극우적이라는 걸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바람직한 인간상은 자기 일부터 충실한 사람이다. 오지랖 넓어봐야 그게 배려심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핵실험이 사회문제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아마 인터넷에 득실대는 여성비하와 혐오발언일 거다.




 인터넷에서 야권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 절대 다수는 친노다. 좀 더 제대로 표현하자면 ‘친노주의’적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대부분 그들은 친노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친노가 그 어떤 다른 세력보다도 낫다고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친노가 잘못을 좀 저질렀기로서니 그들의 적인 새누리-친일파보다는 훨씬 낫지 않느냐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런 의문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참고 자료를 제시하고자 한다. 친노가 그 동안 해 온 업적과 잘못을 좀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애초에 친노가 왜 태어났는지,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리고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와 헌법은 1987년의 민주화로 탄생되었다. 그래서 현재의 체제를 87체제 및 제 6공화국이라 한다. 그러나 이 87체제는 시작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민주화의 두 영웅, 김대중과 김영삼이 단일화를 이뤄내지 못함에 의해 전두환의 친구였던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당시에 민주화 항쟁을 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극심한 정신적 피해를 입었고, 그 때 정신줄이 나가버린 사람은 그야말로 셀 수 없이 많았다. 당시 노태우의 득표율은 36.6%에 불과했다. 그리고 김영삼과 김대중이 각기 28%, 27%을 나눠 먹었다. 단일화를 했다면 절대로 질 수 없는 선거였다.


 그러나 이 87년의 오점은 이후 흑역사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는 김영삼의 3당 합당으로 한 단계 진화하고야 만다. 김영삼은 민주화 세력의 반을 이끌고 박정희 잔여 세력 및 전두환 잔여 세력과 합치고 만다. 그리고는 92년에 평생의 동반자이자 라이벌이었던 김대중을 꺾고 대통령이 되면서 미래로 이어질 단단한 흑역사의 구도를 완성 짓는다.


 이 때 김대중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것은 단순한 좌절 탓은 아니었다. 87년의 패배엔 김영삼보다는 그의 책임이 더 컸다. 3당 합당을 저지른 것은 김영삼이었지만, 김대중도 그럴 만한 배경은 제공한 상태였다. 그리고 김대중의 적들은 김대중을 두려워했다. 그는 완벽한 인물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너무 큰 인물이었다. 이때의 비극은 5년 후에 반전 드라마가 되긴 하지만, 그가 정치에서 떠나있던 동안 민주화 세력은 참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


 또한 3당 합당이 일어나던 시기에 세계사도 큰 변화가 있었다. 도이칠란트가 통일되고,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고, 중국 또한 본격적으로 자본주의의 길로 가면서 한중수교가 대선을 약 4개월 앞둔 시기에 이루어졌다.


 김문수와 이재오는 다들 높이 평가하던 민주화 투사였다. 그러나 이들은 공산주의의 붕괴를 보면서, 자신들이 믿던 가치가 붕괴하는 것을 보았다. 뉴라이트는 믿음의 붕괴로 탄생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180도 선회했다. 그들은 여전히 치열하지만, 과거의 동지들과 함께 하지는 않은 지는 오래되었다.


 손학규가 김영삼의 밑으로 들어간 것은 저 김영삼 정권 때의 일이었다. 그는 민주화 투사였으며 김근태의 친구였고, 김대중을 더 존경했다. 그러나 김대중은 그 때 정계에 없었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김영삼 쪽이었다. 친노들은 아직도 그가 한나라당 출신이었다고 낙인을 찍는다. 그러나 그의 입장에서는 그럴 만 했다.


 김대중이 없는 5년간 민주당을 일으켜보고자 고생한 사람들은 여럿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나름대로의 야심이 있었다. 그러나 5년 후 복귀한 김대중의 거대한 존재는 그들의 지난 노력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김대중은 그들과 충분히 타협하질 못했다. 민주당의 잠재력은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도 충분히 하나가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이 승리한 것은 김종필과의 연합 및 이인제의 이회창 표 나누기, 그리고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상황과 이회창이 영남 출신 후보가 아니었던 배경 등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이후 집권한 김대중은 자신에게 충성했던 측근들을 제대로 챙겨주거나 키워주지 못했다. 그는 위대한 정치인이었지만 현실적인 통치자로 충분히 단련되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또한 그는 이상주의적인 면이 있는 인물이었고, 그가 처한 현실은 현실주의적인 복수를 어렵게 했다. 그는 악을 철혈로 심판하려고 하기보다는 용인하였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필요한 계파와 정당의 발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결과 소위 동교동계는 김대중의 5년이 흐르면서 구태의 상징이 되었다. 김대중조차 막지 못한 측근비리가 터지면서는 더더욱. 그는 한국의 눈부신 민주화와 새로운 번영의 길을 만드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신질서를 만드는 데 실패한 것이다.


 노무현은 이러한 조건에서 대선 후보로 등장했었다. 그의 개인적 정치사도 꽤 복잡한 편인데, 그는 처음에는 김영삼 쪽의 인물이었으나 3당 합당 때 그 유명한 ‘이의 있습니다!’를 외치면서 떠났다. (그 결과 김영삼은 노무현의 장례식에서조차 그를 제대로 추모하지 않았다.) 이후 노무현은 민주당계로 들어갔고, 부산과 종로 등지에 여러 번 출마했으나 두 번을 제외하고는 낙선을 거듭했었다. 2000년엔 종로 공천을 거절하고 부산에 출마했었는데, 여기서도 낙선했지만 결국 이 과정에서 노사모를 얻었었다. 그 후 그는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해수부가 없어진 것과, 이번 대선 과정에서 해수부 이야기가 많이 나온 것은 실질적으로 노무현의 발자취 때문이라 할 수 있다.


 10년 전, 민주당 경선 시작 당시 가장 유력하던 후보는 이인제였다. 지금이야 이인제가 좀 개그 이미지로까지 전락했지만, 그 때만 해도 이인제는 작년의 문재인이나 안철수 이상의 인지도를 지닌 유력 대선 후보였다. 대조적으로 당시 경선에 나선 노무현은 사실 충분히 준비된 후보는 아니었고, 안티 이인제에 가까웠다.


 이인제의 최종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뜻밖의 변수는 여론조사에서 나왔다. 여론조사 결과 노무현이 이회창과의 1:1 구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고, 이후 민주당 경선에서 엄청난 세몰이를 하며 최종 승리에 이르렀다. 한편으로 당시 김해 출신이던 노무현은 영호남으로 갈라진 한국의 지역 구도를 타파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안고 호남의 지지를 받는 영남 후보로 올라서게 되었다. 여론조사가 정당 정치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 이 때였다.


 그러나 경선을 승리한 노무현이 대선을 맞이하기엔 아직 긴 시간이 남아있었다. 당시 민주당의 경선은 4월 말에 끝났고, 대선까지는 무려 8개월이 남은 상황이었다. 더구나 그 중간의 여름엔 지방 선거와 한일 월드컵이 끼어 있었다. 거기에 더해 노무현은 쉽게 말해 갑자기 툭 튀어나온 후보에 가까웠다. 노무현은 호남 출신도 아니었고, 명성도 다소 부족했고, 기반도 충분하지 않았다.


 당시에 노무현을 견제했던 민주당 사람들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정치는 현실이고, 현실적인 조직에서 갑자기 위로 확 올라와 튀는 사람이 있으면 견제하는 게 사람 심리다. 특히 한국은 그런 문화가 강하다. 그리고 노무현은 기반이 충분하지도 않았고, 그런 현실에 적응하기보다는 그런 현실과 맞서는 사람이었다.


 노무현 같은 유형의 사람이 실질적으로 최고 지도자에 오르는 것은 인류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그리 흔한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발달한 문명과 기술, 그리고 노무현이 가진 정치인으로의 매력은 그런 낮은 가능성을 실현시켰다. 노무현은 21세기식 통신 테크놀러지를 활용해 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자신의 매력을 어필했고, 이후 벌어진 각종 갈등들을 정면으로 맞상대했다.


 당시 야권의 갈등은 심각했다. 반대쪽의 상수로는 이회창이 있었고, 야권은 시끄러웠다. 심지어 민주당 경선 당시엔 박근혜조차 이인제와 연대할 가능성이 있었다. 2002년 4월에 박근혜는 이회창에 반대하여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후 신당 창당 작업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때 DJ 정부 출신인 김종필도 연합할 수 있었다. 이는 당시 대선 레이스의 중대 변수였다. 이후 박근혜는 정몽준과 연대하여 제3의 세력을 만들려다 실패하고 10월에 한나라당으로 돌아가게 된다. 박근혜는 이로 인해 많은 것을 배웠고, 이후 2007~2008년에는 모든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가 만약 또 한 번 한나라당에서 탈당했었다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인제는 경선 패배 후 결국 민주당을 탈당했다. 노무현이 이끄는 민주당은 6월의 지방선거에서 참패했고, 노무현은 그 책임을 져야 했다. 그는 재신임 투표를 이야기했지만, 민주당의 반노 세력은 노무현의 퇴진을 요구했다.


 친노와 반노라는 갈등의 싹은 이미 이 때 틔어졌다. 노무현이 민주당에서 기반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정당 기반의 대의민주제라는 체제를 파괴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민주당이 가진 여러 문제점을 봉합하는 대신, 기존의 정당 체제에 구체제라는 도장을 찍었다. 그 대신 온라인을 이용한 준-직접 민주주의를 추구하였다. 이는 노무현 집권 내내 일어난 현상이었다. 아직도 온라인에 가득한 친노주의자-깨시민들의 의식은 저 노무현식 프레임의 연장선상이나 다름없다. 노무현은 저게 옳은 길이라 믿었던 것 같지만, 저것은 현실적으로 무모한 시도였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본인에게는 이익이 되는 사고방식이기도 하였다.


 애초에 당시의 민주당에는 갈등의 씨앗이 심어져 있었다. 정당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면, 김대중을 보좌했던 사람들이 민주당에서 충분한 대접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사람들은 계파와 정당, 인물 중심이라는 현실 정치의 여러 요소들을 무시하기에 바빴다. 그들은 군사정권을 부수는 데는 전문가였지만, 어떤 것이 현실적으로 훌륭한 정치 구조인지를 성찰하는 데는 모자람이 있었던 것 같다.


 헌신과 노력이 정당한 보답을 주지 않을 때 사람은 좌절하고 분노한다. 이는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정치인들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오직 사회와 정의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굉장히 폭력적인 발상인 동시에 비현실적이고도 도덕주의적인 관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김대중은 험한 시대를 헤쳐 나갔고, 워낙 많은 짐을 지고 있었기에 모든 행동에 있어 충분히 가벼울 수가 없었다. 그 무거움은 주변 사람들을 버겁게 했고, 분열의 씨앗을 낳았다.


 노무현은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할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지 않았다. 애초에 그러기 힘든 위치이기도 했지만, 애초에 그는 본인이 믿는 바에 충실한 사람이었고 그의 관념 속에 소위 ‘구태정치인’들은 들어있지 않았다. 그는 국민을 소환하여 구태정치인과 싸우는 소환술사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전쟁은 시작되었고, 그는 정몽준을 꺾고 이회창을 꺾었다. 그러나 그의 승리는 기본적으로 엄청난 갈등의 싹을 안고 있었다. 너무 많은 적을 만들었던 것이다.


 잘나고 윤리적인 인간이 타인을 이해하려면, 우선 보편적인 인간의 모자람과 어리석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최소한의 관용이 생긴다. 그러나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이걸 잘 하지 못하기에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곧잘 관념의 척도로 사람을 상상하고 재단한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보기엔 노무현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보통 사람의 욕망과 질투, 추악함, 어리석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면해버렸다. 그는 사람을 믿어주면 보답한다는 식의, 손을 내밀면 잡아줄 거라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불행하게도 대통령이 되었다.


 

박근혜 정부, 정부 이름 붙이기의 문제

정치 2013. 2. 7. 17:15 Posted by 해양장미


 박근혜 인수위가 출범하는 정부의 공식 이름을 ‘박근혜 정부’로 하겠다는 발표를 내 놓았다. 나는 이 이름에 대해 아무 불만이 없지만, 역시나 트위터 깨시민들은 불만이 많은 것 같다. 박근혜라는 이름을 정부에 붙이는 게 마음에 안 드는가 보다.


 그러나 특별한 정부 이름을 붙이는 건 사실 그다지 오래 된 일이 아니다. 김영삼이 ‘문민정부’라는 이름을 건 게 그 시초다. 이후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노무현의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 초기의 ‘실용정부’까지 정부 이름 붙이기가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곧 그 이름을 폐기하고 ‘이명박 정부’로 돌아갔다.


 공화정 체제가 안정된 이상, 대통령제에서 대표자가 바뀌는 건 일반적인 일이다. 국가의 헌법이나 아이덴티티가 바뀌지 않는 이상 굳이 하나하나의 정부에 차별화된 이름을 붙일 필요는 없다. 단지 김영삼은 87체제의 수립에도 불구하고 군인인 노태우가 가져갔던 정권을, 군인이 아닌 ‘문민’이 되찾았음을 선언하는 의미에서 그런 이름을 붙인 거였다. 이후엔 그게 이어져왔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건 일시적인 현상이 되어야 한다. 일단 저런 식으로 오래 가다보면 금방 쓸 말이 없어진다.


 또한 정부는 단일한 하나의 가치만을 내걸 수 없다. 복잡한 현실에 맞춰 정말 많은 일을 다양하게 해야 한다. 그렇기에 정권을 구분하여 지칭하려면, 대통령의 이름을 앞에 거는 쪽이 합리적이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이명박 정부 초기까지 붙여왔던 이름은 민주화 시기 초기의 구분 짓기라 보는 쪽이 더 옳을 것이다. ‘문민’, ‘국민의’, ‘참여’, ‘실용’. 사실 이런 건 모든 정부가 다 해야 하는 거다.


 박근혜를 비판하려거든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통할만한 방식으로 하는 게 좋겠다. 본인의 이름을 정부에 붙인다고 독재자인 것이 아니다. 결국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초기단계를 넘어 통상적인 네이밍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괜히 매사에 투덜투덜해봐야 절대 깨시민 이미지가 나아질 일이 없다. 항상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생각해야한다.


 어차피 박근혜 인수위가 지금 잘못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많다. 이름가지고 뭐라 하는 것보다는 행동가지고 뭐라 하는 게 훨씬 낫다. 그리고 그것보다는 사실 지금 민주당이 뭘 하고 있는지를 보는 게 더 생산적이다. 지금 민주당 돌아가는 꼴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북조선 제제와 미래 전망

정치 2013. 2. 2. 15:02 Posted by 해양장미


 북조선이 곧 망할 거라는 전망은 꽤 오래 전부터 계속 있었던 기대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까지는 김정일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의 최우선적인 목적이 체제 유지라는 것을 감안해 볼 때 그들은 성공적인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정세의 변화는 결코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지는 않다.


 애초에 북조선은 자생이 불가능한 나라다. 충분한 식량자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디든 땅 힘에는 한계가 있고, 북조선의 지력은 완전히 죽은 지 오래이며 그것을 되살릴 만한 여유가 없다. 더구나 공산주의식 국영농장 제도는 개개인의 위기 탈출 가능성마저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문제점이 있다. 물론 기술적인 수준도 뒤떨어지기도 한다.


 본래대로라면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북조선 또한 체제를 변경했어야 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고립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현재의 북조선을 만들었다. 세계적으로 보면 북조선은 과거 냉전 시대에는 양 진영 대립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었고, 지금은 G2의 완충지대이자 골칫거리이다.


 중국에게 있어 북조선은 더 이상 밀접한 동맹국이라 하긴 어렵다. 그보다는 어쩔 수 없이 관리해야하고, 챙겨줘야 할 대상에 가까운 상황이다. 중국은 북조선의 붕괴를 두려워한다. 엄청난 난민이 중국으로 넘어올 수 있고, 미국과 국경을 맞대는 거나 다름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래 들어 중국은 여러 변수를 맞이하고 있다. 오랜 숙원인 타이완과의 통일 문제도 점점 더 가시화된다 할 수 있고, 경제성장으로 인해 민주화에 대한 압력은 높아질 수밖에 없으며, 위구르ㆍ내몽고ㆍ티벳 등지의 자치구들의 독립 시도도 없어질 수는 없다. 그리고 근래 일본이 극단적인 우경화가 일어나면서 중국과의 영토분쟁까지 일으키다 보니, 중국은 이 연장선상에서 미ㆍ일 동맹에 생기는 틈을 이용하여 미국과 좀 더 직접적인 딜을 시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한편으로 러시아의 푸틴은 이미 북조선과의 친교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상황이라 할 수 있으며, 대신 대한민국과 영토를 맞대고 싶어 한다고 파악하고 있다. 푸틴은 동부 시베리아를 개간하는 데 관심이 많은 듯한데, 그에 적합한 국가로 대한민국을 꼽고 있는 듯하다. 일본과는 영토분쟁이 있기도 하고, 중국은 견제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일본은 대북 관련한 6자 중 가장 통일을 원하지 않을 세력이다. 그러나 근래 일본은 극우화되면서 미국과의 친밀함도 줄어들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특히 아베의 엔화에 대한 정책은 일본인 외에는 반기는 사람이 거의 없다. 경제적인 면에서 일본이 죽어줘야 세계가 사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합중국은 오바마가 재선된 상황이며, 전반적인 추세를 볼 때 민주당의 장기집권을 예상하고 있다. 민주당은 공화당에 비해 쓸데없는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낮고, 각종 카드를 사용하는 데는 좀 더 유연하다. 또한 미국은 군 감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북조선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고자 노력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조선은 작년 12월, 로켓 발사를 강행했다. 이는 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결의에 어긋나는 행위였고, 1월 23일 UN은 대북제제 강화 결의를 체결했다. 이 새로운 제제 결의에는 북조선의 오랜 우방인 중국까지 동참했으며, 내용을 보면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제제라 할 수 있다.


 이에 북조선은 3차 핵실험을 강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이런 파국은 오래 전부터 예상할 수 있었던 흐름이다. 김대중-클린턴 때만 해도 사실 북조선 문제는 잘 해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된 건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하고 후세인을 사형시킨 것을 이야기해야한다. 후세인도 한 때는 미국에 협력했었다. 그러나 결국 미합중국은 역사에 남을 오판으로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라크는 10년이 거의 다 지난 아직도 혼란상태다. 미국이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북조선은 제제를 받더라도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해 힘의 균형을 맞추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그들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의 대북송금특검 및 나빴던 초기 대북정책도 한 몫을 한다. 물론 2002년에 연평해전을 일으키는 등 북조선의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의 대북송금특검은 그나마 부시정권 하에서 나빠지고 있던 남북관계를 급속히 냉각시켰다.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는 달리,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와는 다른 대북정책을 펼쳐나갔다. 이에는 노무현의 정몽준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도 있다고 확신한다. 다들 알다시피 대북사업 관련하여 가장 적극적이었고 가장 투자를 많이 했던 기업은 현대다. 노무현 정권 하에서 현대는 정몽헌 회장이 자살하는 참극을 맞으며 무너져 내렸다. 대신 참여정부는 노골적으로 삼성편을 들었다.


 또한 북조선은 한국을 절대로 군사적인 대등한 협상 상대로 여기지 않는다. 사실 이것은 당연하다. 한국은 군사적인 면에서는 독립국가라 할 수 없다. 전시 작전 통제권이 없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별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그냥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대한민국은 엄밀히 말해 독립국이 아니다. 그보다는 미합중국이라는 제국 아래 속해있는 자치령에 가깝다. 아마 역사는 이런 식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몫이고,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상태도 그리 꼭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북조선이 ‘남쪽 정부는 괴뢰정부다.’ 라고 주장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는 건 알아두는 게 좋겠다.


 어쨌든 북핵 이후 남북 또는 북미 관계는 그리 좋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무한정 미뤄둘 수는 없다. 곧 북조선은 어쨌든 ‘대륙간 탄도 미사일’과 ‘핵무기’를 갖춘 나라가 된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미국 본토에 핵을 날릴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합중국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이에 대해 미국은 여러 가지 카드가 있다. 그들이 어떤 방향을 선택할 진 알 수 없지만, 다행히도 박근혜는 이명박에 비해 외교적 감이 좋아 보인다. 북조선 문제는 다자간의 문제고, 한국은 이미 남북관계에서의 주도권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미국은 중국과 딜을 할 수 있다. 중국은 어떻게든 대만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 대만이 중국 앞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은 미국에 있다. 대만과 북조선을 거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이 근래 극우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어느 정도 미국의 힘을 믿기 때문인데, 그 또한 미국이 선을 그으면서 동아시아 정세를 제어할 수 있다.


 결국 북조선 문제는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북조선이 보다 온전한 국가로 인정을 받고 종전이 되던지, 북조선 체제가 급속도로 무너지던지. 결국 그들이 ‘정상적인’국가가 아닌 이상 결과는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쨌든 현재의 체제가 그대로 유지될 수는 없을 것이다. 종전이 되고 북조선에 대한 제제가 풀린다면, 자본의 유입으로 인하여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행보를 보이고 있는 박근혜

정치 2013. 2. 1. 14:37 Posted by 해양장미


 현실 정치에서 통치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은 통치 자체를 와해시키고, 예상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는 것이다. 개혁적이냐 보수적이냐는 그 다음 문제다. 대체로 민중들은 언제나 ‘태평성대’를 원하지 ‘난세’를 원하지는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최악의 정부인 것은 통치의 정당성을 잃어버림으로 인해, 통치 자체의 약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도 이명박의 길을 걷고 있다. 그것도 훨씬 빠르게.


 박근혜가 지난 대선에서 질 뻔했던 것은, 박근혜의 기본적인 리더십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정치적 감은 뛰어난 편인 것 같지만, 누가 봐도 머리는 나쁘다. 물론 머리가 나빠도 좋은 지도자는 될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는 매번 자신의 머리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습관일 수는 있는데, 많은 걸 혼자 고민하고 독단적으로 처리한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통치하기엔 박근혜는 충분히 똑똑하지 못하다.


 박근혜의 통치 권력은 시작부터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상대 후보가 48%나 가져갔기 때문이다. 5년 전 이명박과는 기본 출발이 다르다. 그런데 박근혜는 초기의 인선과 입법부터 심각하게 꼬여가고 있다. 그 상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인물>


윤창중 : 인수위 수석대변인. 공개석상에서의 심한 막말로 여러 번 구설수에 올랐던 인물.

하지원 : 인수위 청년특위. 뇌물 수수 혐의로 벌금형 전력.

윤상규 : 인수위 청년특위. 게임업체 대표였는데 불공정거래 전력이 있음.

장순흥 : 인수위 교육과학분과위원. 창조과학회 활동. 전공은 핵공학.

이동흡 :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각종 불법 의혹으로 낙마 직전.

김용준 : 국무총리 후보였으나 각종 의혹으로 5일 만에 자진 사퇴.


<사건>


1) 카드 무이자 할부 폐지 사건


: 12월 21일, 거의 몰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날치기성 법이 통과됨. 주된 내용은 카드사가 전액 부담하는 무이자 할부가 없어진다는 것. 시행일은 불과 열흘 후인 1월 1일. 그로 인해 며칠 간 대란이 터졌었음. 결국 여론 악화 및 카드사 측의 대응 등으로 열흘 만에 실질적 폐지. 개인적으론 이 사태엔 박근혜 인수위가 개입되어있다고 추정. 엄청난 무능을 보여주는 헛발질이었음.


2) 영광원전 3호기 용접 운행 재개 방침


: 비리로 인해 불량부품이 들어간 걸로 알려진 영광원전 3호기는 제어봉 안내관 균열이 발견되어 가동 중단 상태. 그러나 용접 후 운행 재개를 추진해오다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방침이 거의 확정적이 되었음. 인수위에 사이비 창조주의자이자 핵공학 교수인 장순흥이 포함되어있다는 데서 많은 걸 짐작할 수 있음. 새누리당이 소위 ‘핵마피아’랑 유착되어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암. 한국 원전은 현재 엄청난 위험을 잠재한 상태. 설계수명을 넘은 상태로 운행되는 원전도 좀 있다.


3) 게임업계 셧다운제 강화 법안 추진


: 박근혜의 당선으로 위상이 올라간 여성가족부와 관련 국회는 신난다는 듯 셧다운제 강화 법안을 추진. 이 법안은 기존 셧다운제의 문제를 넘어서서, 게임회사들에 대한 ‘총매출’의 1~5%를 게임중독치유기금으로 걷을 수 있도록 되어 있음. 당연히 총매출의 5%를 뜯긴다면 삼성전자라 해도 바로 쓰러짐. 발의자인 친박계 손인춘 의원은 국민의 소리를 듣겠다고 열어놨던 게시판 글을 며칠만에 모두 지우고 게시판 폐쇄. 상장 게임회사들 주가는 박근혜 당선 후 연일 폭락하다가 아주 땅으로 떨어짐. 관련업계 사원들, 입사 지망자들, 각종 관계자들, 주주들 모두 대분노. 수많은 군소 게임업체들 법인 해외로 단 며칠만에 도피 완료. (첫 셧다운제 이후 이미 추진중이었다가 셧다운제 강화법안으로 결정한 곳이 많음.) 위메이드부터 시작해서 부산 지스타 보이콧 추진. 지스타는 게임업체 박람회 같은 건데, 수익이 상당함. 그런데 부산 국회의원들이 이 법안에 참여해서 보이콧 추진. 결국 대전쟁 시작이라 할 수 있음. 문제는 심각한 비상식과 게임업계 자체를 죽이려는 데 있음. 물론 박근혜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음. 수많은 관련자들은 한국을 떠나려고 계획 중.



 이것은 박근혜 당선 후 40일 동안 일어난 일들이다. 그 결과 현재 박근혜 인수위는 역대 인수위 중 지지율이 최저다. 여기에 부정 선거 의혹까지 발생했기 때문에, 심각한 수위의 지지율 하락을 겪으며 정권이 출범하게 될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일하는 세대라 할 수 있는 20대부터 40대는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았다. 박근혜는 한국에서 장ㆍ노년층의 지지로 대통령이 된 첫 번째 인물이다. 이는 실제 한국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세대가 박근혜의 통치를 거부하기 쉽다는 것이다.


 시작도 하기 전부터 박근혜는 통치를 해나갈 수 있는 힘을 잃고 있다. 물론 그녀는 억압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끌고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억압보다는 동조를 얻는 게 힘도 강하고 사회도 무난하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높은 지지를 얻던 이명박도 불과 반 년 만에 지지율을 거의 까먹고 말았다. 그에 비해 박근혜는 훨씬 나쁜 조건이고, 훨씬 나쁜 길로 가고 있다. 한국인들은 또 한 번 통치의 부재 속에 놓여야 할지도 모른다. 이미 박근혜 인수위는 무려 조선일보한테까지 욕을 먹고 있다. 명비어천가를 부르던 5년 전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별일이다.



국정원 직원 사건에 대한 이야기, 간단하게

정치 2013. 1. 31. 22:12 Posted by 해양장미

 결론적으로 보자면.


 민주당 측은 어이없는 승부수를 던져서 자충수를 만들고, 가벼운 망신까지 당한 상황이 되었고.


 국정원 측은 한심 그 자체. 뭐라 할 말이 안 떠오를 정도로 한심함.


 경찰은 이쪽이 제일 문제 같다. 작정하고 편파적으로 군 셈. 민주당이 지금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경찰이 편파적으로 불법선거를 자행했다고 강하게 싸우고 나설 수 있었을 거다.


 그렇지만 민주당은 친노패권 때문에 안 될 거야.


 국정원 직원이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쓴 글은 지금까지 알려지기론 사실 그다지 별 내용이 아니다. 그냥 보면 인터넷에서 반북주의 여론을 퍼뜨리는 정도의 행위. 다만 그걸 공무원이 했다는 점에서 불법성이 있는데, 그렇다고 그것 자체가 ‘정부가 선거에 개입함.’ 정도로 이야기할만한 건 아닌 것 같다. 물론 통합진보당 측에 대한 공격이라 볼 수는 있는데, 만약 직원이 썼던 글이 선거 전에 공개되었다면 파장이 더 컸을 거라 생각한다. 민주당에 나쁜 쪽으로.


 아무리 봐도 선거부정을 이야기하기엔 경찰의 발표 정도만이 개연성이 있을 텐데, 이것만으로는 약하다. 십알단까지 합쳐도 부정선거는 맞는데, 객관적으로 재선거를 하자 할 정도로 뒤엎을 정도는 못 된다.


 뒤엎을 거면 차라리 화끈하게 뒤엎는 게 낫다. 이래서야 시작부터 레임덕만 가지고 출발할 것 같다. 박근혜가 잘 하기 힘들 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딱 정권을 잡는 데까지만 성공하고 그 이상은 뭘 제대로 하기가 힘들 것 같다는 게 현재의 인상. 인수위 시작부터 꼬일 대로 꼬인다. 만약 야당이 제대로 된 정당이었다면 기둥뿌리 뽑히고 정권 출범하게 될 판인데, 그 정도는 아닐 거 같고.



 ‘이번에도 네거티브만 하다가 졌다.’


 이는 문재인 지지자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제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볼 때, 이번에도 친노 세력은 네거티브만 하다가 졌다. 물론 새누리당이 더 네거티브하지 않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애초에 입장이 다르다.


 할 만 해서 네거티브를 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할 만 해서 하건, 어거지로 하건 네거티브는 네거티브일 뿐이다. 어차피 네거티브를 해서 얻을 것과 잃을 것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아무리 네거티브를 할 만한 상황이라도, 대체로 네거티브는 민주당에겐 득이 못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대로 민주당계는 네거티브를 해 왔고, 그 결과 민주당은 거의 예외 없이 참담한 실패를 맞이하곤 하였다. 질 만한 선거는 어쩔 수 없지만, 이길 만한 선거도 네거티브만 하다 지는 건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민주당계가 네거티브를 좋아하는 건 기본적인 인간적 경향 때문인 것 같다. 기본적으로 민주당 지지자들은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편이다. 아무래도 새누리당 지지자에 비해 개개인의 불행 원인을 사회 구조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민주당 지지자들끼리는 사회의 부정부패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방식이 어느 정도 잘 통한다. 정서 자체가 좀 그런 것이다.


 물론 사회 정의라는 면에서만 본다면 이런 정서도 필요하다.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적ㆍ사회적 행위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시민단체가 아니고 정당이다. 그리고 애초에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민주당을 지지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사회적인 관심이 높은 사람의 비율이 처음부터 높다면, 민주당이 매번 번번이 패배할 이유는 딱히 없다. 그러나 기본 지지자 수는 항상 새누리당이 민주당보다 많다. 결국 승리를 위해서는 현실 지형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지난번에 나는 민주주의가 ‘공화’가 꼭 우선시되는 시스템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소위 ‘깨어있는 시민’이라거나 비슷한 말이지만 친노주의자라거나, 아니면 수많은 야권 지지자들은 공화와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짙다. 그리고 남들 또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것은 그들이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이거나 사악하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끊임없이 계몽을 시도한다. 물론 전편에 말했듯 그런 시도는 잘 될 리가 없다.


 그런데 민주당계 지지자들이 이런 성향이 유독 강한 건 내 생각엔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라 할 수 있는 유교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유교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왕도정치론은 통치자의 심정윤리가 강조되며, 또한 민주주의에 접목되었을 경우 다분히 공동체주의적이다. 이는 플라톤 식의 철인정치론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조선만큼 현실에서 철인정치를 하기 위해 노력했던 나라가 또 있을까?


 유교적 관념은 정치 현실을 이해하는 데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유교적 윤리성을 관념의 척도로 삼고, 그 어긋난 척도로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재단하려 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치철학으로의 유교는 매우 더디게 발달했으며, 현 시대에서는 폐기해야 할 과거의 유물이다. 그러나 유교적 관념은 아직도 한국인의 머릿속을 적잖게 지배하고 있다.


 유교 사상은 한국인의 의식에서 윤리성의 일면을 담당하기 때문에, 사실 이 유교적 한계를 극복하려면 덜 윤리적인 편이 유리하다. 스스로의 관념을 무너뜨리고 처음부터 다시 쌓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윤리적 관념은 주입되거나 주변에서 무의식중에 모은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윤리적 관념을 무너뜨리면서 현실화되어간다. 그렇기에 윤리성을 강조하는 민주당계 지지자의 태도는 현실주의적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때가 많다.


 도덕주의적인 태도에 수정을 가할 필요가 있다. 저 옛날 민주화의 과정은 도덕주의로도 충분했을지 모르지만, 민주주의 체제에서 경쟁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민주주의에서 이기고 싶다면 내가 믿는 정당함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지 않는 것이 좋다. 물론 그런 주장을 하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남에게 통하지 않는 주장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현실에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정당함을 현실에 실현하고 싶다면, 그것을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사고방식을 존중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상대를 설득하는 게 필요하다. 상대를 바보로, 악당으로 폄하하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보통선거의 원칙 상, 적어도 표를 행사하는 권리 앞에서는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게 상대에 대해 이해하고 나면 왜 네거티브가 효과가 없는지 좀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의 3당 합당 이후 한국 선거는 대략 4:3:3 비율의 경쟁이다. 새누리당계 지지가 4고, 민주당계 지지가 3이다. 그리고 유동적이거나 정치에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나머지 3이다. 이 비율은 애초에 지역 인구 비율로 갈라진 것이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변하기가 어렵다.


 이런 조건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려면 새누리당의 4를 가급적 쪼개거나 이들이 위기감을 갖지 않게끔 하고, 중도적인 3을 많이 잡아야 한다. 민주당을 찍을 3은 어차피 민주당계를 찍는다고 봐도 된다. 물론 평소에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사람도 10번 선거를 하면 1~3번 정도 민주당을 찍기도 한다. 이런 것도 감안을 해야 한다.


 그런데 네거티브는 위의 구도를 놓고 볼 때 별 효과가 없다. 새누리당 지지자들에게 새누리에 대한 네거티브는 애초에 큰 효과가 없고, 오히려 역효과를 부르기 쉽다. 새누리계를 오래 지지해온 사람 중 새누리당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말과 글을 보고 그 지지를 철회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오히려 새누리에 대한 강한 공격은 지지층의 강한 결집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대선은 그런 모습이 전형적으로 드러난 대선이었다.


 또한 중도층에게도 네거티브는 별 효과가 없다. 중도층은 아무래도 정치에 관심이 덜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네거티브는 양쪽 다 한다. 정치에 별 관심 없는 사람이 그런 네거티브의 상세한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그들은 모든 네거티브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네거티브의 근거를 찾는 건 중도층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다. 또한 중도층은 정치에 기본적으로 관심이 덜한 만큼, 굳이 정치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추한 꼴을 보고 싶지 않아하기도 한다. 이런 데 대고 네거티브를 많이 하면 그나마 조금 있던 관심조차도 끊기기 쉽다. 애초에 고정지지층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중도층이 정치에서 멀어질수록 피해를 보는 건 민주당계다.

 

 더구나 강한 네거티브는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와버린다. 쉽게 말해 ‘박근혜는 안 된다!’ 라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사람들의 눈과 귀에 들어오는 후보는 박근혜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CF나 다름없다.


 예를 들어 신상품 과자 광고를 낸다 쳐보자. TV CF로 과자 광고를 내보낼 때, 절대 맛없다고는 하지 않는다. 솔직히 공산품 과자가 맛있어봐야 얼마나 맛있을까? 그러나 CF에서는 무조건 아주 맛있다고 한다. 환상의 맛이라는 식으로 표현하기도 하니, 그야말로 작정하고 과대광고를 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런 광고를 볼 때 ‘어디 진짜 그런지 따져보자.’ 같은 식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대체로 CF의 효과는 무조건적이다. 사람들은 CF에서 본 과자, 유명한 과자를 많이 산다. 특히 자기 혼자 먹을 과자가 아니고, 남들하고 파티에서 나눠 먹을 과자를 산다면 더욱 그렇다.


 브랜드라는 면에서 문재인은 애초에 박근혜에 많이 밀렸다. 박근혜가 훨씬 더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문재인은 대선 기간 내내 잘 보이지도 않았다. 문재인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걸 잘 체감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안철수가 문재인보다 훨씬 많이 보였다. 심지어 경선에서 이긴 후에도 문재인보단 안철수가 더 보였고, 안철수가 사퇴한 후엔 새누리와 박근혜는 안 된다는 식의 말이 시끄럽도록 온갖 곳에 가득했다. 이리 해서 이기면 그게 이상하다.


 좀 떨어져서 생각해보자. 만약 펩시가 펩시 많이 팔고 싶다고 코크를 신나게 네거티브한다면 어떻겠는가? 펩시가 많이 팔리겠는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애초에 펩시를 많이 팔고 싶으면 코카콜라 맛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펩시 광고를 하는 게 맞다. 옛날에 펩시맨~!이 얼마나 펩시 판매를 높였는지를 기억하라. 네거티브보단 언제나 그런 게 효과가 있다. 항상 CF효과를 염두에 둬야 한다.


 만일 시장에 이성적이고 합리적 소비자만 있다면 브랜드나 CF의 위력은 지금보다 비교할 수 없이 낮아야 한다. 그러나 소비자는 기본적으로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나마 시장은 피 같은 ‘내 돈’을 쓰는 곳인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한다. 그리고 투표는 일반 시장에 비하면 공돈시장에 가깝다. 훨씬 더 마케팅 효과가 강한 판이다. 더구나 모든 박빙의 선거는 정치를 잘 모르고, 관심도도 낮은 사람을 잡아야 이긴다.

 

 그나마 이번 대선에서 이 정도 결과가 나온 건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 그리고 박근혜 캠프가 너무 못난데다 약점도 많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가 박근혜이기에 얻은 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박근혜의 모자람 때문에 잃은 표도 꽤 된다.


 상대적으로 문재인과 민주당은 한 것에 비하면 정말 많은 표를 받았다. 만약 박근혜가 진짜 괜찮은 후보였다면, 그리고 다수의 국민들이 정권교체의 열망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표 차이는 훨씬 크게 벌어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