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네거티브만 하다가 졌다.’


 이는 문재인 지지자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제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볼 때, 이번에도 친노 세력은 네거티브만 하다가 졌다. 물론 새누리당이 더 네거티브하지 않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애초에 입장이 다르다.


 할 만 해서 네거티브를 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할 만 해서 하건, 어거지로 하건 네거티브는 네거티브일 뿐이다. 어차피 네거티브를 해서 얻을 것과 잃을 것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아무리 네거티브를 할 만한 상황이라도, 대체로 네거티브는 민주당에겐 득이 못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대로 민주당계는 네거티브를 해 왔고, 그 결과 민주당은 거의 예외 없이 참담한 실패를 맞이하곤 하였다. 질 만한 선거는 어쩔 수 없지만, 이길 만한 선거도 네거티브만 하다 지는 건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민주당계가 네거티브를 좋아하는 건 기본적인 인간적 경향 때문인 것 같다. 기본적으로 민주당 지지자들은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편이다. 아무래도 새누리당 지지자에 비해 개개인의 불행 원인을 사회 구조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민주당 지지자들끼리는 사회의 부정부패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방식이 어느 정도 잘 통한다. 정서 자체가 좀 그런 것이다.


 물론 사회 정의라는 면에서만 본다면 이런 정서도 필요하다.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적ㆍ사회적 행위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시민단체가 아니고 정당이다. 그리고 애초에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민주당을 지지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사회적인 관심이 높은 사람의 비율이 처음부터 높다면, 민주당이 매번 번번이 패배할 이유는 딱히 없다. 그러나 기본 지지자 수는 항상 새누리당이 민주당보다 많다. 결국 승리를 위해서는 현실 지형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지난번에 나는 민주주의가 ‘공화’가 꼭 우선시되는 시스템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소위 ‘깨어있는 시민’이라거나 비슷한 말이지만 친노주의자라거나, 아니면 수많은 야권 지지자들은 공화와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짙다. 그리고 남들 또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것은 그들이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이거나 사악하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끊임없이 계몽을 시도한다. 물론 전편에 말했듯 그런 시도는 잘 될 리가 없다.


 그런데 민주당계 지지자들이 이런 성향이 유독 강한 건 내 생각엔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라 할 수 있는 유교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유교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왕도정치론은 통치자의 심정윤리가 강조되며, 또한 민주주의에 접목되었을 경우 다분히 공동체주의적이다. 이는 플라톤 식의 철인정치론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조선만큼 현실에서 철인정치를 하기 위해 노력했던 나라가 또 있을까?


 유교적 관념은 정치 현실을 이해하는 데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유교적 윤리성을 관념의 척도로 삼고, 그 어긋난 척도로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재단하려 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치철학으로의 유교는 매우 더디게 발달했으며, 현 시대에서는 폐기해야 할 과거의 유물이다. 그러나 유교적 관념은 아직도 한국인의 머릿속을 적잖게 지배하고 있다.


 유교 사상은 한국인의 의식에서 윤리성의 일면을 담당하기 때문에, 사실 이 유교적 한계를 극복하려면 덜 윤리적인 편이 유리하다. 스스로의 관념을 무너뜨리고 처음부터 다시 쌓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윤리적 관념은 주입되거나 주변에서 무의식중에 모은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윤리적 관념을 무너뜨리면서 현실화되어간다. 그렇기에 윤리성을 강조하는 민주당계 지지자의 태도는 현실주의적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때가 많다.


 도덕주의적인 태도에 수정을 가할 필요가 있다. 저 옛날 민주화의 과정은 도덕주의로도 충분했을지 모르지만, 민주주의 체제에서 경쟁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민주주의에서 이기고 싶다면 내가 믿는 정당함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지 않는 것이 좋다. 물론 그런 주장을 하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남에게 통하지 않는 주장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현실에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정당함을 현실에 실현하고 싶다면, 그것을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사고방식을 존중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상대를 설득하는 게 필요하다. 상대를 바보로, 악당으로 폄하하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보통선거의 원칙 상, 적어도 표를 행사하는 권리 앞에서는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게 상대에 대해 이해하고 나면 왜 네거티브가 효과가 없는지 좀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의 3당 합당 이후 한국 선거는 대략 4:3:3 비율의 경쟁이다. 새누리당계 지지가 4고, 민주당계 지지가 3이다. 그리고 유동적이거나 정치에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나머지 3이다. 이 비율은 애초에 지역 인구 비율로 갈라진 것이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변하기가 어렵다.


 이런 조건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려면 새누리당의 4를 가급적 쪼개거나 이들이 위기감을 갖지 않게끔 하고, 중도적인 3을 많이 잡아야 한다. 민주당을 찍을 3은 어차피 민주당계를 찍는다고 봐도 된다. 물론 평소에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사람도 10번 선거를 하면 1~3번 정도 민주당을 찍기도 한다. 이런 것도 감안을 해야 한다.


 그런데 네거티브는 위의 구도를 놓고 볼 때 별 효과가 없다. 새누리당 지지자들에게 새누리에 대한 네거티브는 애초에 큰 효과가 없고, 오히려 역효과를 부르기 쉽다. 새누리계를 오래 지지해온 사람 중 새누리당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말과 글을 보고 그 지지를 철회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오히려 새누리에 대한 강한 공격은 지지층의 강한 결집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대선은 그런 모습이 전형적으로 드러난 대선이었다.


 또한 중도층에게도 네거티브는 별 효과가 없다. 중도층은 아무래도 정치에 관심이 덜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네거티브는 양쪽 다 한다. 정치에 별 관심 없는 사람이 그런 네거티브의 상세한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그들은 모든 네거티브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네거티브의 근거를 찾는 건 중도층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다. 또한 중도층은 정치에 기본적으로 관심이 덜한 만큼, 굳이 정치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추한 꼴을 보고 싶지 않아하기도 한다. 이런 데 대고 네거티브를 많이 하면 그나마 조금 있던 관심조차도 끊기기 쉽다. 애초에 고정지지층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중도층이 정치에서 멀어질수록 피해를 보는 건 민주당계다.

 

 더구나 강한 네거티브는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와버린다. 쉽게 말해 ‘박근혜는 안 된다!’ 라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사람들의 눈과 귀에 들어오는 후보는 박근혜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CF나 다름없다.


 예를 들어 신상품 과자 광고를 낸다 쳐보자. TV CF로 과자 광고를 내보낼 때, 절대 맛없다고는 하지 않는다. 솔직히 공산품 과자가 맛있어봐야 얼마나 맛있을까? 그러나 CF에서는 무조건 아주 맛있다고 한다. 환상의 맛이라는 식으로 표현하기도 하니, 그야말로 작정하고 과대광고를 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런 광고를 볼 때 ‘어디 진짜 그런지 따져보자.’ 같은 식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대체로 CF의 효과는 무조건적이다. 사람들은 CF에서 본 과자, 유명한 과자를 많이 산다. 특히 자기 혼자 먹을 과자가 아니고, 남들하고 파티에서 나눠 먹을 과자를 산다면 더욱 그렇다.


 브랜드라는 면에서 문재인은 애초에 박근혜에 많이 밀렸다. 박근혜가 훨씬 더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문재인은 대선 기간 내내 잘 보이지도 않았다. 문재인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걸 잘 체감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안철수가 문재인보다 훨씬 많이 보였다. 심지어 경선에서 이긴 후에도 문재인보단 안철수가 더 보였고, 안철수가 사퇴한 후엔 새누리와 박근혜는 안 된다는 식의 말이 시끄럽도록 온갖 곳에 가득했다. 이리 해서 이기면 그게 이상하다.


 좀 떨어져서 생각해보자. 만약 펩시가 펩시 많이 팔고 싶다고 코크를 신나게 네거티브한다면 어떻겠는가? 펩시가 많이 팔리겠는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애초에 펩시를 많이 팔고 싶으면 코카콜라 맛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펩시 광고를 하는 게 맞다. 옛날에 펩시맨~!이 얼마나 펩시 판매를 높였는지를 기억하라. 네거티브보단 언제나 그런 게 효과가 있다. 항상 CF효과를 염두에 둬야 한다.


 만일 시장에 이성적이고 합리적 소비자만 있다면 브랜드나 CF의 위력은 지금보다 비교할 수 없이 낮아야 한다. 그러나 소비자는 기본적으로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나마 시장은 피 같은 ‘내 돈’을 쓰는 곳인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한다. 그리고 투표는 일반 시장에 비하면 공돈시장에 가깝다. 훨씬 더 마케팅 효과가 강한 판이다. 더구나 모든 박빙의 선거는 정치를 잘 모르고, 관심도도 낮은 사람을 잡아야 이긴다.

 

 그나마 이번 대선에서 이 정도 결과가 나온 건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 그리고 박근혜 캠프가 너무 못난데다 약점도 많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가 박근혜이기에 얻은 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박근혜의 모자람 때문에 잃은 표도 꽤 된다.


 상대적으로 문재인과 민주당은 한 것에 비하면 정말 많은 표를 받았다. 만약 박근혜가 진짜 괜찮은 후보였다면, 그리고 다수의 국민들이 정권교체의 열망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표 차이는 훨씬 크게 벌어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