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으로 민주주의는 흠이 많은 제도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 점을 지적해오며 민주정에 반대해왔다. 그렇기에 사려 깊은 민주주의자라면 민주주의의 단점을 쿨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더라도 아직까지 인류가 만든 제도 중 민주공화정보다 나은 제도는 없다.
현 한국 민주정의 문제는 어느 정도 이상 87체제 자체가 가진 단점에 기인한다. 일단 일정 수준 이상의 진정한 민주화를 이룬 선진국가 중엔 대통령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 자체가 많지가 않다. 또한 거기에 더해 한국처럼 연임이 불가한 나라는 거의 없다. 이런 제도적 특수함은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는 동시에 필연적으로 매번 미숙한 정부를 출범시키게 한다. 대통령이 정당 위에 있는 존재이다보니 정당의 성장에 문제가 있고, 매 정부는 정권 운영의 경험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지금 박근혜 정부가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는 민주당이 더 문제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선택으로 탄생한 정부다. 필연적인 시작단계에서의 미숙함이 있더라도, 야당의 바람직한 역할은 박근혜 정부의 잘못하는 점을 바로잡는 정도여야 한다. 정치에선 가장 나쁜 상황이 통치의 부재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은 통치 자체를 존재하지 않게 하고 있다.
대략 현재의 상황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의 인선에 대해 강력한 제제를 하면서 정부 출범에 필요한 각종 법안 통과를 막고 있다. 물론 박근혜 정부의 인선에 문제가 없진 않고, 법안에도 문제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좋은 통치를 위해선 어느 정도의 관용이 필요하다. 야당은 박근혜 정부의 미숙함을 보조해주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게 바람직하고, 그 과정에서 현명한 딜을 통해 야권의 이념에 맞는 각종 좋은 법안들을 통과시키는 게 본래의 역할이다. 그러나 현재 민주당은 그런 모습으로 보이질 않는다. 민주당은 작정하고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바라는 것 같다. 그 떡고물을 얻으려는 셈으로. 1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을 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아무 것도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각종 사안들 또한 제 때 진행이 되지 못하고 있는데다 인선도 너무 변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현안을 바라보고 있는 각종 현장에서 적잖은 혼란과 스트레스가 있는 게 현실이다. 2
이런 행위는 결국 참여정부-열린우리당 시절 한나라당이 하던 행위와 본질적으로 같다. 그 때 박근혜가 열린우리당을 공격했던 방식과 비슷하게 지금 민주당이 그러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사태는 박근혜의 자업자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정치권이 그래버리면 고생하는 건 국민이라는 거다.
참여정부 땐 사실 국제적으로 경기가 워낙 좋았기에 정치권 대응이 좀 나빠도 사회는 어떻게든 어느 정도 돌아갔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좀 더 섬세하고 전문적인 각종 대응들이 시시각각 필요한 시기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대국민 담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는데, 이 또한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여러 번 시도하던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현재의 친노에게서 나는 10년 전 참으로 밉상이었던 한나라당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들이 지금처럼 하면 한줌밖에 안 되는 노빠 깨시민들은 환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친노가 또 그런 걸 중요하게 받아들인다면, 또 한 번 크게 망할 것이다. 침묵하는 다수는 결코 현재의 민주당을 좋게 바라보지 않는다. 적어도 새누리당은 그런 실수는 덜 한다. 그들은 지만원, 일베충 등의 세력을 이용은 하지만 결코 거기에 휩쓸리지는 않는다.
어차피 기대하지도 않지만, 한번이라도 포지티브한 위치의 친노세력을 보고 싶다. 그들에겐 언제나 네거티브만 있다. 지금껏 친노가 스스로 해낸 건 없지만, 남이 뭘 하려는 걸 막는 데는 빼어난 재능이 있다. 으쌰으쌰하면서 새누리당이 하는 걸 사력을 다해 태클걸 힘이 있다면, 그럴 힘으로 자영업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이라도 한 번 돌아봐줬으면 한다. 물론 그들은 지금껏 그런 적이 거의 없었다. 친노에 의해 이미지가 완전히 버려진 정동영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 좀 돌아봐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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