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이 취임 후 1년도 안 되어 서울시 빚을 무려 1조 2천억이나 줄였다는 말은 어느 정도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런데 나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좀 의아했던 게, 도대체 어떻게 그 시간 동안에 그런 막대한 빚을 갚을 수 있었을까?였다. 1조가 넘는 빚이라는 건 정말 엄청난 액수다.


 그런데 이게 숫자놀이라는 공방이 이미 시의회에서 있었던 것 같고, 나는 좀 뒤늦게야 이 내용의 상세한 것들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는 참으로 황당하다는 기분이 들어 블로그에 글을 적으려 한다.


 서울시의 채무[각주:1]는 2011년 말 기준 18조 6844억원이었다. 그리고 이중 SH공사의 채무가 66%인 12조 2672억원 이었다. 박원순이 줄였다는 1조 2천억원은 이 SH공사의 채무를 줄인 것이었다.


 그런데 SH공사의 채무가 별 문제를 일으키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SH공사는 신용등급이 무려 AAA에 이르는, 채무 자체는 많지만 그 채무가 문제를 일으킬 확률은 삼성전자 수준으로 낮은 (실제 동일 신용등급인) 공사다. 그런데 박원순은 이 SH공사의 채무를 ‘회계적으로’줄였다.


 이것을 요약해 이야기하자면 박원순이 줄였다는 채무는 다음과 같은 분야로 이루어져 있다.


1) ABS발행 5300억

2) 마곡지구 택지 매각 3000억

3) 현금 상환 2000억

4) 투자 지연 2000억


 이렇게 합쳐서 1조 2천억 이상의 채무를 ‘회계적으로만’ 줄였다.


 회계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는 분들은 이미 이게 무슨 뜻인지 대략 감을 잡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곡지구를 매각해 빚을 갚거나 가지고 있던 현금성 자산으로 빚을 갚은 건 말 그대로 그냥 원래 있던 자본으로 채무를 상환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일정 이상 정치적 고려로 나온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 위에 이야기했듯 SH공사는 채무가 문제를 일으키던 공사는 아니다. 이익잉여금도 1조원이나 쌓아둔, 아주 건실한 회사다. AAA라는 신용등급은 정말 쉽게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이런 행위는 원래 적금도 꽤 있고, 집도 있고, 은행 대출도 좀 있던 사람이 적금 깨고 집 팔아서 대출 갚은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선택이 과연 순수하게 SH공사의 경영상의 이유로 이루어진 것일지는 의심해볼만 하다. 박원순은 부임 이후 채무를 줄이라고 지속적으로 막무가내 압력을 넣었고, 그 결과 올 2월 SH공사 사장이 사임하겠다고 했다가 박원순이 붙잡아서 무마되기까지 했었다.[각주:2] 2천억의 투자 지연 또한 원래 마곡에 하려고 했던 투자자금을 안 넣은 것이니, 채무를 줄였다고 기뻐할 것도 아니다. 이건 마치 돈 좀 있던 이혼녀가 새 결혼을 했는데, 새 남편이 대출 없애라고 우겨서 있던 집도 팔고, 적금도 깨고, 투자 하려던 것도 안 해서 대출금이 줄어든 것과 마찬가지다. 이걸 가지고 채무를 줄였다고 기뻐할 수 있을까? SH공사는 어차피 AAA 신용 회사라 공사채를 발행해도 이율이 상당히 낮을 뿐더러, 원래 SH공사가 하는 사업 자체가 굉장히 장기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 본래는 장기적 계획 하에 모든 행동을 해야 한다. 그러나 박원순은 자신의 치적을 쌓기 위해 정치논리를 적용해 버렸다.


 그렇다면 나머지 5300억의 ABS는 뭘까? 이건 회계적으로 좀 복잡한 개념이라 설명하기가 좀 곤혹스럽다. 쉽게 이야기해 채권 만기가 다가온 상태에서 새로운 차입을 좀 복잡하게 했다는 걸로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이게 SH공사가 쓰고 있는 K-GAAP 회계방식에서는 부채가 줄어든 것으로 기록된다.


 회계나 투자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으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K-GAAP는 구식 회계방식으로 이제는 더 이상 상장회사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새로운 회계기준인 K-IFRS 연결회계방식을 쓰면 ABS를 한다고 해서 부채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SH공사는 상장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아직 K-GAAP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방식에서는 ABS로 차입을 돌리면 그만큼 부채가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회계표시방식의 문제일 뿐, 실제론 전혀 부채를 줄인 게 아니다.[각주:3]


 즉 박원순이 서울시 빚을 1조 2천억 줄였다는 건 그냥 포퓰리즘 숫자놀이다. 그는 가진 자본으로 채무를 줄이고, 회계방식의 단점을 활용해 채무가 줄어든 것처럼 보이게 했을 뿐이다. 물론 이런 걸 일반 회사 사장이 해서 ‘우리 회사 채무 줄였다!’ 라고 하면 사기꾼 소리 듣기 딱 알맞다.


 결국 박원순은 대국민 사기를 치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9호선도 그렇고, 서울시 채무 문제도 그렇고 제돌이도 그렇고... 아직 이야기 안 했지만 새빛둥둥섬도 그렇고 도무지 제대로 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다른 이야기들은 다음 링크에서 다뤘다.


9호선 이야기[각주:4] 

제돌이 이야기 


 현실적으로 서울시 최대 부채 문제는 지하철 양 공사의 누적적자 문제다. 지하철 요금이 저렴하고, 무료로 지하철을 타는 노인 등의 문제로 누적채무가 이미 2011년에 3조원을 넘어선 상황이다. 이걸 해결하려면 지하철 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박원순은 실제 양 공사의 적자누계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민자가 손해보고 있는 9호선을 건드리면서 이미지 관리를 하는 중이다. 현재 박원순이 사실 그 나름대로 유력한 차후 대선 후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볼 때,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과연 어떤 행위를 할까 심히 우려가 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박원순이 처한 문제도 있다. 경기침체, 특히 부동산 경기침체와 그에 따른 각종 대응 등으로 예상 수익보다 실제 지자체 수입이 줄어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행보가 진정성이 충분하다 보기도 어렵다. 눈에 당장 보이는 정치적 파격의 대가는 참으로 비쌀 수 있다.


 실제 서울시의 채무는 줄었을지 몰라도, 부채는 늘었다. (이에 대해서는 각주 1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박원순은 결코 서울시의 빚을 줄인 게 아니다. 모두들 진실을 알 필요가 있다.


  1. 채무와 부채 사이엔 좀 차이가 있다. 회계에서는 사실 채무가 아닌 부채를 다루는데, 박원순이 줄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채가 아니라 채무다. 쉽게 이야기해서 부채 중 상환기간이 정해져 있고 이자가 발생하는 것을 채무라 보면 된다. 서울시의 실제 부채는 박원순 취임 이후 늘어났다. SH공사 임대보증금, 퇴직금 충당금 등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채무가 아닌 부채는 채무보다는 덜 부담스러운 것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부채가 늘어났기에 서울시의 재정이 좋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관련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5152229185&code=950201 [본문으로]
  2. 관련 기사. http://news.einfomax.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560 [본문으로]
  3. SH공사 사장의 주장에 의하면, ABS로 채무를 돌려서 25억 정도 이익을 볼 거라 기대하고 있다고는 한다. 물론 의원의 질의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다보니 변명일 수도 있고, 진짜라 해도 시장 이율은 계속 변하기에 계획대로 될 지 미지수이지만, 말대로 성공한다면 조금은 득을 봤다고 칭찬해줘도 좋을 거다. 물론 이 경우 금액은 5300억이 아닌 25억이다. [본문으로]
  4. 지난 포스트 작성 후 9호선 관련 1차 판결문 내용을 볼 수 있었다. 그 결과 판결에 대해 좀 긴가민가한 부분이 해결되었고, 당장은 일단 맥쿼리 측이 실수를 저지른 게 있어 서울시가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서울시 또한 큰 실수를 저지른 게 있어 어쩌면 차후 서울시가 큰 손해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것에 대해서는 차후 시간이 나면 추가 포스팅을 쓸까 한다. [본문으로]

최저임금 문제에 대한 이야기

경제 2013. 6. 17. 21:02 Posted by 해양장미

 한국은 한 해의 최저임금을 그 전 해의 6월 29일에 정한다. 그러다보니 올해도 최저임금 논란이 좀 있는 것 같다. 최저임금 논란은 많은 이들에게 생존이 달린 문제다. 그러나 좀처럼 좌우 양측의 입장을 대변한 최저임금 이야기는 잘 없는 것 같다. 본문에서는 한국의 최저임금 문제에 대한 다면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선 올해 한국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4860원이다. 이는 OECD 국가들 중 분명 낮은 수준의 최저임금으로, 2011년 기준 24개국 중 16위이다. 좌파세력이 주장하는 것처럼  OECD 최저이거나 그렇지는 않지만 결코 높다고 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한국의 소득분배지수, 즉 지니계수는 어떨까? 한국이 불평등한 나라라고 굳게 믿고 있는 수많은 젊은 층에게는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도표도 못 보는 어리석은 기자들이나, 권력에 대한 탐욕을 가진 좌파들에게 너무 속으면 안 된다. 한국의 지니계수는 OECD 평균치보다 낮다. 지니계수가 높을수록 불평등한 것이다. 한국의 소득분배율은 미합중국, 일본은 물론 캐나다나 뉴질랜드보다도 평등하다.[각주:1]




 다만 한국은 최하위 소득군, 특히 농촌 인구나 고연령층의 소득이 매우 낮다. 그렇기에 10분위 최고위 소득군과 최저위 소득군의 소득 차이는 좀 있는 편이다. 그러나 이는 한국의 낮은 최저임금과 꼭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 실제 이 경우는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소위 풀타임을 제대로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이나 전업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의 저소득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낮은 최저임금은 우선 상대적으로 낮은 한국의 1인당 GDP와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다. 한국의 1인당 GDP는 2012년 기준 $23679인데, 한국보다 시급이 높은 국가들은 대체로 한국보다 1인당 GDP가 월등하게 높다. 예를 들어 일본의 2012년 1인당 GDP는 $46972이다. 이 정도면 최저임금 차이도 제법 날 수밖에 없긴 하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의 대기업 정직원 평균 초임은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근래 엔화가 떨어져서 한국이 실제 더 높은 상황이다.)


 물론 한국의 최저임금이 실제 생존에 어려움을 줄 정도로 낮기는 하다. 나라고 최저임금 근접하게 받으면서 일해보지 않은 게 아니다. 그런데 실제 최저임금을 올리려 하기엔 걸림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요소들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한국 도시민들 중 제일 못 사는 사람들이 누굴까? (농촌은 빼자. 한국 농촌은 정말 가난하다. 가난해도 어느 정도 생존이 되니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우리는 이 답을 대체로 알고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 외면한다. 한국 시민들 중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영세 자영업자다. 그리고 한국인들 중 자영업자나 그 가족의 비율은 무려 30% 정도다. 문제는 이 30%중 60%는 평균적으로 3년 내에 망한다는 데 있다. 특히 숙박 및 음식업종의 5년 생존율은 불과 17.9%다.




 그런데 최저임금으로 알바를 고용하는 업체는 대체로 저런 개인 사업장 또는 소기업이

다. 당장 내년의 생존을 보장 받을 수 없는 곳들이라는 것이다. 적잖은 업체들이 최저임금조차 주기 어려워한다. 최저임금도 못 줄 거면 왜 사업을 하느냐는 말도 많지만, 실제 주변에서 자영업을 시작 또는 재시작하려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사정이 다르다.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은 일자리의 수 자체는 풍부한 나라지만, 일자리의 질이나 실제 고용이라는 면, 그리고 각 회사 내부의 사정을 보면 꽤 심각한 문제들이 많은 나라다. 이 모든 문제들을 요약해보면 ‘좋은 직장이 너무 없다.’ 와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일할 직장이 없다.’ 다.


 이 면에서 또 하나의 문제는 평균 수명이 너무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는 데 있다. 근래 40년 동안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20년이나 올라갔다. 그런데 이런 장수는 그다지 꼭 축복은 아니다. 많은 노인들에게 노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재산도, 일자리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IMF 이후 수많은 대기업이 문을 닫고, 외국 자본에 팔려버렸다는 것도 문제다. IMF 이전과 이후 한국 기업의 양상은 분명 달라졌다. 이 과정에서 노년이 일할 일자리는 더 없어졌다.


 은퇴자들이 자영업에 뛰어드는 빈도는 상당히 높다. 평생 모은 돈으로 자영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성공하는 사람의 비율은 상당히 낮다.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쉬기 위해 최저임금 수준으로 알바를 고용하지만, 정작 본인이 시간당 가져가는 돈은 최저임금만도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최저임금도 주기 힘들다면 사업을 하지 말라’고 쉽게 말하는 것은, ‘그러게 왜 겨우 최저임금을 받고 일을 하느냐’라는 말과 차이가 없다.


 결국 최저임금 문제와 직결되는 저소득층 문제는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좋은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중견기업의 부족과 너무나도 많은 개인 사업자 및 소기업, 그리고 낮은 물가 등으로 인해 발생한다.


 특히 낮은 물가라는 말에 발끈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한국은 대부분의 물가가 싼 나라다. 한국만큼 돈을 적게 쓰려면 적게 쓰고도 살아갈 수 있는 선진국이 그리 많지가 않다. 다만 한국 물가가 체감 상 비싸게 느껴질 수 있는 면도 있는데, 이 또한 좀 복잡하다. 예를 들어 한국의 기후는 그다지 안정적인 편이 아니고 농업 또한 가정농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체로 국민들의 식생활 기호까지 비슷하다보니 신선식품 물가가 좀 널을 뛰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사실 그 시기마다 저렴한 걸 골라서 사 먹어도 해결되는 문제이지만, 배추나 고등어 같은 일부 품목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한국인의 취향 상 해결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또한 한국에는 장마가 있기 때문에 농업의 효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벼처럼 애초에 습지에서 키우는 식물은 제외하고.





 한반도는 옛날부터 영농기술이 상당히 발달한 곳이었는데, 안 그러기가 어려웠다. 장마는 한국인에게 있어 복잡한 시련을 가져다준다.[각주:2] 농업 이후 한반도는 결코 한국인에게 평온한 자연을 선사해주는 곳이 아니었고 한국인은 오랜 세월 동안 기술로 그 자연적인 난관을 극복해 나갔다.[각주:3]


 한국산 농작물이 비싸다고 해서 결코 농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오히려 한국 농업은 더욱 더 진흥시켜 발전해 나가야 한다. 식량 안전문제도 있고, 식량 안보문제도 있고, 기타 환경문제 등 복잡한 여러 사안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마구잡이로 식량을 수입해서는 안 된다는 데에는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이는 물가와 바로 연동된다. 전반적인 물가가 낮더라도 이따금 비싸지는 특정 식료품 가격은 어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물가에 대단히 민감하다. 그런데 사실 물가를 잡는다는 것은 디플레이션을 촉발하는 행위일 수 있다. 호황은 인플레이션이고, 인플레이션은 필연적으로 물가를 올린다. 그런데 물가를 우선적으로 억제하려 하면 결국 경기가 가라앉게 된다.


 실제 IMF 이후 한국 물가상승률은 대단히 낮은 수준으로 억제되었다. 10년 전 가격이나 지금 가격이나 고만고만한게 상당히 많다. 그런데 이는 사실 불경기가 지속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실제 좋은 시장은 물가를 빨리 올리는 경향이 있지만, 한국인들은 시장경제보다는 물가에 민감하다. 그렇기에 정부 또한 물가 억제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정부가 개입해서 물가를 억제시키는 데 가장 좋은 정책 중 하나는 임금 상승률을 저하시키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오른다면 물가가 뛰어오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저렴한 물가는 낮은 임금, 특히 낮은 서비스 업종 임금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정부가 강력한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발시키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여기서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한국은 제조업 국가다. 우리는 외국에서 원자재와 부품을 수입해서 전자제품, 자동차, 배, 석유 및 화학제품 등을 만들어서 수출함으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는 후발주자였기 때문에 브랜드나 기술은 뒤쳐진 상태였고, 그 대신 가진 장점은 가격 경쟁력이었다.


 그런데 서비스업 종사자의 분산된 힘과 달리 대기업 제조업 종사자들은 노동조합이 있고, 이 노조는 상대적으로 강한 임금상승 압력을 넣는 게 가능하다. 만약 물가가 빨리 상승한다면 노조의 임금 인상 압력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임금을 올려줘서 그것이 제품 가격에 반영된다면 아직 충분히 브랜드를 구축하지 못한 한국 제품들의 수출 경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시스템을 떠받드는 하부구조는 서비스업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리고 소위 ‘을’에 해당하는 제조업 종사자들의 낮은 임금에 있다. 이것을 건드리려면 전체적인 한국 경제 시스템을 건드려야 한다. 만약 시스템 수정이 어긋날 경우, 수많은 제조업 회사들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할 우려가 있다. 이 경우 한국의 전반적인 경제 시스템이 무너져 내릴 위험이 있다.


 일부 진보 경제학자들은 지자체가 최저임금을 보조해주는 방식으로 최저임금을 올리자는 주장도 한다. 이는 나도 꽤 솔깃하게 봤던 주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의 지자체 재정에 있다. 대체로 지자체들이 재정이 나쁘다. 그렇다고 증세가 해답도 아니다. 증세에 관련된 문제는 이 링크를 참조해보길 권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적으로는 밀턴 프리드먼이 주장했던 음의 세수, 즉 기본소득의 소액 도입에 찬성하고 있다. 내 주장은 세금을 0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고, 연 -100만 수준에서 시작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감세안 또는 양적 완화와도 같다. 다만 지금은 도입할 때가 결코 아니다. 한국 경제가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 후에야 적잖은 위험 부담을 안고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한국에 중견기업이 많아지고, 보다 폭넓은 고용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상할 만큼 젊은 사장이나 중견기업이 적은 나라가 되어 있다. 


 중소기업보다는 크고, 대기업보다는 작은 중견기업은 그 숫자에 비해 매우 많은 고용을 창출한다. 그런데 한국엔 중견기업이 정말 적다. 2011년 기준, 한국 중견기업 숫자는 1422개다. 많은 것 같지만 한국 전체 기업 수에 비하면 0.04%쯤 된다. 이 수는 오히려 대기업 수보다도 적다.[각주:4] 그러나 중견기업이 고용하는 인원수는 82만명이 넘는다. 전체 고용 퍼센테이지로는 7.7%정도의 비율이다.


 한국 기업 중 불과 0.1%도 안 되는 수가 대기업이거나 중견기업이다. 그런데 이 기업들이 전체 고용의 30% 가량을 창출한다. 쉽게 이야기해 일자리를 늘리려면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영세기업이나 자영업자만 너무 많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데는 이런 이유도 크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이 기업하기 나쁜 나라라는 데 있다. 특히 중견기업하기가 유난히 나쁘다. 적잖은 중견기업들이 일종의 샌드위치 상태다. 중소기업이 잘 나가서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중소기업에 지원되던 각종 혜택들이 끊겨 버린다. 지원은커녕 대출 금리도 대기업 기준에 맞춰서 올라가고, 국가는 세금을 더 내라고 압박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대기업처럼 슈퍼 갑도 아니다. 중견기업 되었다고 채권 찍어서 자금 조달하기엔 신용등급 떨어져서 이율이 살인적이다. 여건이 이러니 잘나가는 중소기업 사장이 개인 지갑 아쉬울 것도 없는 입장에서 성장을 포기하고 그냥 중소기업으로 남아서 혜택이나 냠냠 해버린다. 그럼 당연히 일자리가 나올 리가 없다. 일부 중견기업은 중견기업 자리 포기하고 중소기업으로 돌아가 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하려면 일부러 사업 규모를 줄여야 하지만, 그렇게 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지금 있는 대기업들은 대체로 옛날에 어느 정도 이상 국가에서 뒤를 봐줘서 규모를 키웠다. 그런데 현재 중견기업들은 그렇지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중견기업의 각종 사정들은 시민 사회에서 뒷전이다. 한국 사회나 정치 의제 등이 여전히 너무 좌경화되어있고,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데 대단히 약하기 때문이다.


 시민 사회가 진영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시장 경제를 적대하지도 말아야 이런 문제들을 직시할 수 있다. 중견기업이 되는 중소기업, 대기업이 되는 중견기업이 많아져야만 한국에 넘쳐나는 자영업자 수를 줄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 물론 회사를 세우려는 청년이 많아져야 하기도 한다.


 한국의 교육 체계와 낙후된 문화 의식, 전체주의적인 분위기, 그리고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유난한 압력은 한국에 좋은 회사가 생기는 것을 매우 효율적으로 억제한다. 젊은이들이 사자의 심장을 가져야 나라의 장래가 밝다. 그러나 한국은 젊은이에게 세상의 두려움부터 먼저 가르치고, 무기력을 학습시킨다. 한국에서 가장 똑똑한 젊은이들은 부모 말을 잘 듣고 선비(士)가 되곤 한다. 다른 나라라고 안 그런 건 아니지만, 그 비율이 유난히 높은 것도 사실이다. 물론 세상에는 좋은 전문직이 많이 필요하지만 다 그래선 곤란하기도 하다.


 최저임금 문제 해결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최저임금을 대폭 높일 경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사업주들의 문제들은 결국 또 사회가 떠안아야 할 문제다. 많은 자영업자와 가족들이 최저임금에 한참 미달하는 수준의 이윤을 창출하는 노동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여기에 있다. 최저임금이라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은 이 사회의 최하위 계층은 아닌 것이다.



  1. 기자들이 얼마나 멍청한지 (또는 사악한지) 를 다음 기사에서 알 수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6282005 본 기사는 마치 한국의 지니계수 순위가 16위라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니계수 순위는 평등의 관점에서 본다면 낮을수록 좋은 것이다. 지니계수가 높을수록 소득이 불평등한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2. 장마와 집중호우, 태풍이 이어지는 한국의 여름 기후는 농부에게 가장 큰 재앙이다. 강풍은 둘째 치고 비가 너무 한 번에 많이 오면 밭이 침수되어 버리는데, 이 경우 물이 빨리 빠지지 않으면 대부분의 작물이 전멸하고 만다. 게다가 양분도 폭우에 씻겨 나가기 쉽기 때문에 토양이 금방 척박해지기 쉽다. 한반도가 풍요롭고 기름진 땅이라는 이미지는 일종의 민족주의적인 것일 뿐, 결코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한국산 농작물은 좀 비쌀 수밖에 없다. [본문으로]
  3. 한반도는 지형과 기후를 볼 때 무역과 기술을 중시해야만 잘 살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어긋났던 조선은 초기엔 아주 잘 사는 나라였지만, 결국 중기가 넘어가면서 세계적으로 못 사는 곳이 되고 만다. 대한민국 출범 이후에야 한반도 국가는 다시 원래의 위치를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본문으로]
  4. 대기업은 기업집단이기 때문에, 대기업 계열사 하나하나를 세 보면 숫자가 상당히 많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