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고 있는 일과 일어날 일

경제 2019. 5. 13. 19:08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youtu.be/qIIOza9ZaXw

 


 

 환율 움직임 근사하네요.


 

 코스피도 이 정도면 이니 보유국답고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 답습니다.


 

 그런데 채권 시장은 이렇네요.

 

 원화가치가 이렇게 떨어지는데 외인들이 채권을 팔지 않고 홀딩중입니다.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떨어지는 만큼 채권을 쥔 외인들은 손해를 보는데, 팔지 않고 버티고 있다는 것이지요. 만약 외인들이 우리나라 채권을 팔고 떠나는 분위기가 되었다면 이미 경제위기가 터졌을 겁니다.

 

 그럼 외인들이 왜 홀딩하고 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조만간 한국은행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할 거라는 아주 강한 기대를 가지고 있단 말이지요. 현재 한국 경제상황을 보면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엉망이고, 외인들이 채권 홀딩하면서 기다려준다는 시그널도 보내고 있습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계속 기준금리를 하회하고 있기도 합니다. 한미금리역전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던 걸 생각해보면 참으로 웃픈 상황이지요.

 

 자. 그런데 알 만한 분들이나 본 블로그를 쭉 보신 분들은 알 겁니다. 왜 지난 11월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렸는지요. 금리 올릴 경기 상황이 전혀 아니었는데도 올렸던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한미금리역전이 이미 일어난 상황에서 더 심화될 확률이 낮지 않았던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부동산 잡기입니다.



 이 중 첫 번째 이유는 해소되었습니다. Fed는 더 이상 금리를 올리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앞으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도 낮지 않습니다. 여러 모로 한은에 엄청난 금리인하 압박이 들어가는 시장 상황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유가 남지요. 부동산.

 

 나는 한은이 아직도 금리인하를 못 하고 있는 주된 이유가 이 정권의 부동산 억제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집착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국 반시장적이고 비현실적이며 무리한 정책을 반복한 끝에 코너에 몰린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견딜 수 없어진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어떻게 될까요? 냉각되었던 부동산 투심이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번에도 강남 부동산 위주로 오를 겁니다. 김수현미가 3기 신도시 폭탄을 던져놨잖아요. 3기 신도시 발표를 요약하면 이겁니다. ‘서울 밖에 부동산 샀다가 잘못되면 이렇게 X됩니다.’ 발표하면서 김현미 장관이 말했었지요. “강남이 좋습니까?” 이 말의 올바른 해석은 이것입니다. “강남이 킹왕짱입니다.” 정부가 나서서 다 알려줬는데 잘못 이해하면 안 됩니다.


 

 알 사람은 다 압니다. 이제 한은이 금리 인하하면 강남은 또 달릴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 금리 인하 안하고 버티다가 외인이 인내심을 잃으면? 우리나라 금융 자체가 새됩니다. 이 얼마나 스릴 넘치고 재미있는 상황인가요. 역시나 강남좌파에 의한, 강남좌파를 위한, 강남좌파 정부는 강남좌파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다수한텐 노무현의 추억이 있습니다. 이제 서울 부동산이 다시 랠리를 시작한다고 가정할 때, 정권이 부동산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남아있을까요? 쓸 수 있는 수단은 이미 다 쓴 게 아닐까요? 금리를 올리지도 못하고요. 그렇게 시장에 온기가 다시 피어나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때를 떠올리게 될 겁니다. 문재인은 어쨌든 노무현의 후계자고, 노무현 때와 비슷한 부동산 억제책을 썼는데 노무현 때는 부동산이 많이 올랐거든요. 이 정권이 그 심리를 다시 한 번 찍어 누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이걸 아니까 이 정부 요인 중에는 금리를 안 올리고 싶은 사람도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예 우리나라 경제를 이번에 박살낼 가능성도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금리인하하라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고 있긴 합니다만, 이 정권은 정말 많은 부분이 김영삼 정권을 닮았습니다. 지금은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습니다. 문재인 시대는 예측하기 힘든 가능성의 시대입니다

다음 경제위기가 온다면 어떻게 오게 될까요?

경제 2019. 5. 8. 16:34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youtu.be/cLDVYS9vcaM




 경제위기가 올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있긴 한데, 어디서 어떻게 어떤 형태로 올지 막상 오면 제 때 감지가 안 될 것 같아서, 미리 시나리오를 떠올려봐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분명한 건 다음에 경제위기가 온다면 IMF 외환위기 때와 같은 형태는 아닐 거라는 겁니다. 그런데 나는 경제위기가 어떤 형태로 올 수 있는지, 지난 해 4분기에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연장선상에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경제가 굴러가는 양상은 사륜차보다는 이륜차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오토바이처럼 일정 이상의 속도로 주행을 해야 쓰러지지 않고 갈 수 있단 말이지요. 그러니까 경제는 무조건 성장을 해야 하고요. 성장을 못 하면 쓰러지게 됩니다. 경제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없는 사람들은 경제성장을 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절대 아닙니다. 적어도 쓰러지지 않을 정도의 성장은 반드시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오토바이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은, 오토바이라는 게 넘어져도 별 문제가 없는 물건이라고 오해하시기도 합니다. 자전거는 넘어져도 괜찮으니까요. 그렇지만 오토바이는 제조가 끝난 시점부터는 절대로 넘어지면 안 됩니다. 자전거랑 달리 오토바이는 보기보다 무겁기 때문에 넘어지면 거의 무조건 파손되거든요. 좀 무거운 오토바이는 공차중량이 300kg에 육박할 정도라서, 넘어지면 그냥 일으켜 세우는 것조차 힘들기도 합니다. 물론 국가경제가 넘어지는 것에 비하면 쓰러진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우는 건 훨씬 쉬운 일이지만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 성장이... 멈췄습니다. 1분기 GDP 성장이 -0.3%라고 시끄러웠잖아요. 그렇지만 1분기가 떨어진 것보다 문제가 YoY, 20181분기부터 20191분기까지의 성장이 1.8%라는 겁니다. 진짜 심각한 건 이겁니다.

 

 지금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1.75%지요. 경제의 기초를 이해하려면 어떤 통화의 금리라는 게 왜 양수일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합니다. 기준금리가 1.75%. 이건 원화라는 크레디트가 1년이면 1.75% 가치감소를 겪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가치감소를 커버하는 게 GDP성장이고요. 그러니까 기준금리만큼 성장하면 그냥 딱 본전이고요. 올 1분기의 YoY 성장률은 현재의 기준금리를 그냥 딱 맞추는 정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건 굳이 비유하자면 딱 오토바이가 쓰러지지 않는 정도의 최저속도입니다. 만약 1.75%보다 낮아지게 되면? 그 때부터는 비틀거리며 쓰러지려고 하게 될 겁니다.


 

 물론 기준금리가 경제성장률보다 반드시 낮아야 하는 건 아닙니다. 필요에 따라 더 높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건 경기가 너무 과열되어버려서 아래쪽으로 좀 꺾어 줄 필요가 있을 때거나, 아니면 경제가 너무 폭망해서 다른 방식으로는 수습이 거의 불가능할 경우에 쓰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쓰는 원화라는 통화의 신용도를 고려할 때, 지금처럼 성장률이 내려가서 기준금리 수준이 되려고 하면 그 자체로 위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위기가 아니라고 우기고 있지요. 물론 정부는 경제가 안 좋을 때도 좋다고 할 필요가 있는 입장이긴 합니다만, 전반적인 스멜이 어째 YS때가 연상됩니다. 경제가 안 좋은 걸 정권이 어처구니없이 부정한다는 점에서는 완전히 똑같습니다.


 

 한국은행은 아직도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2.5%를 달성할 거라고 주장하고 있지요.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거의 가능성이 없습니다. 이례적인 변수가 없는 한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금리를 내리자니 한미금리역전이 지속중이기도 하고, 경제성장률도 나쁜데 금리 내렸다가 채권시장에서 외국자본 빠져나갈까봐 겁나기도 하지요. 가뜩이나 요새 환율도 엉망입니다. 지난달부터 원화가치가 살짝 맛이 갔어요.

 

 우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당장 채권시장이나 주식시장 등에 위험한 흐름이 보이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건 관측이 되고 나면 확실하게 늦어서 수습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경제 나쁘다.’ 라는 표현에는 일정 정도 어림짐작이 들어가게 됩니다. 이게 어림짐작이 아닐 수 있는 때는 우리나라 경제가 망했습니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때가 되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나라 경제는 활력이 죽은 상황입니다. 시장에 어떤 시그널이 주어지면, 그 시그널에 의해 피드백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면서 현금흐름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집권 후 시장에 신뢰성 높고 긍정적인 시그널을 준 적이 없습니다. 세금을 더 걷고 인건비를 올릴 뿐이었지요. 지속적으로 마이너스 시그널을 줬기 때문에 마이너스 피드백이 걸렸고, 지금은 골든타임을 넘겨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지금 시장이 어떤 식이 되어있느냐 하면, 다들 가능한 국내에서는 아무 것도 안 합니다. 일단 창업 안 합니다. 했다가는 망하니까요. 오직 이 정권이 뿌리는 눈먼 돈을 뜯어낼 수 있는 입장들만 창업을 합니다. 직원을 안 뽑습니다. 최저임금이 2년 만에 30% 올라가는 상황을 겪었는데 어떻게 뽑나요. 있던 직원도 자릅니다. 창업이 없으니까 입점도 없습니다. 건물주들은 공실 때문에 재정이 날로 나빠집니다. 인테리어 업체들도 장사가 안 되고요. 금융권은 대손상각을 늘리고 있습니다. 악성부채가 날로 늘어나거든요. 악성부채의 위협이 주택부터 올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보거나 망상꾼입니다. 소비자들은 경제상황이 영 나쁜 것 같으니까 최대한 저렴하게 최저가로 물건을 삽니다. 유통업체들은 최저가 경쟁하느라 적자를 봅니다.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최대한 생산자에게 물건을 싸게 떼옵니다. 돈을 못 버는 사람이 나오고, 돈을 못 버는 사람들이 돈을 안 쓰니까 소비 전반이 줄어듭니다. 소비 전반이 줄어드니까 생산자들도 돈을 못 법니다. 끊임없이 나쁜 피드백이 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다 못해 -까지 보이는 겁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엔 경제가 그럭저럭 굴러가는 정상 범주가 있습니다. 원래 내수 의존도가 낮고, 원화가치가 낮아지면 수출 환차익이 높아져서 만회가 되는 구조였거든요.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 전반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잘못된 흐름이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왔는데, 정권이 바뀐 지금도 충분히 개선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게 진짜 문제입니다. 이 잘못된 흐름은 사농공상 스타일의, 사회주의적이고 질투가 심한 문화적 결함에서 비롯된 게 많기 때문에 이 강남좌파 정권은 원천적으로 개선하기가 어렵습니다. MB가 괜히 그렇게 정치를 못했는데도 경제성적은 선방했던 게 아닙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우리나라에 투자합니다. 우리나라 기업이 돈을 잘 벌 것 같으니까 투자하고, 원화가 싸지면 다시 비싸질 거라고 기대하니까 투자합니다. 그런데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우리나라 기업이 돈을 못 벌고, 원화가치가 반등을 잘 못 하고 흘러내리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투자를 줄이게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고려해야 할 게, 우리나라는 외국인이 투자한 돈을 빼가기 쉬운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는 겁니다. 투자한 돈을 빼가기 쉬운 구조여야 투자가 잘 들어오기 때문에 이런 구조를 채택한 건데요. 이게 평소엔 좋은데 유사시엔 문제가 일어나기 쉽습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앞으로도 계속 안 좋게 나온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슬금슬금 자금을 뺄 겁니다. 투자자금 뺄 때는 먼저 뺄수록 손해를 덜 보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빠지는 국면이 일어나게 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보통은 야금야금 빼는데, 이것도 임계점 같은 게 있습니다. 일정 이상 심리가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이 확 빠집니다. 당장 확 빠질 확률이 높거나 한 건 아닙니다만, 만약 본격적으로 투자금이 빠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나는지 이야기해볼게요.

 

 평소에는 한국경제전망이 안 좋으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나라 주식을 내다팔고 우리나라 채권을 삽니다. 채권이 주식보다 안전한 상품이니까 그런 건데요. 이건 그래도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때의 이야기입니다. 정말 안 좋아지면 주식뿐만 아니라 채권까지 내다 팔게 되겠지요.


 채권은 매수세가 붙으면 금리가 내려가고요. 매도세가 붙으면 금리가 올라갑니다. 그러니까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의 경제를 비관해서 한국채를 마구 내다파는 상황이 오면, 일단 채권금리가 치솟으면서 환율이 폭등하게 됩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면 고금리에 싼 채권을 매수하려는 투자자들이 많으니까 이렇게 되지 않는데, 한국 경제가 정상이 아닌 걸로 시장 참가자들이 생각하게 되면 다 소용없어지는 것이지요.

 

 채권금리는 곧 시중금리입니다. 코픽스같은 시중금리는 기준금리가 아니라 채권금리에 더 영향을 받게 되고요. 채권금리가 치솟으면 기준금리는 채권금리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채권금리가 치솟으면 시중 변동금리도 치솟고, 결국 기준금리도 치솟는단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냥 싹 다 망합니다. 우리나라에 한계기업 아주 많고, 가계부채도 많잖아요? 하우스푸어도 많고요. 시중변동금리가 급등해 버릴 경우 감당이 안 되는 곳이 많단 말이지요. 그러면 곳곳에서 채권회수를 못합니다. 채권은 국채나 지방채, 회사채 같은 것만 채권이 아닙니다. 금융기관에서 빌려준 돈, 일반 회사의 외상매출이나 받아둔 어음, 전세보증금 같은 게 다 채권입니다. 이 채권들이 상각되면서 소멸하게 됩니다. 전세금 날아가고 어음 휴지조각되고 외상 떼인단 말입니다. 부동산들 경매에 줄줄이 나오는데 낙찰도 안 되고요. 그로 인해 연쇄적인 부도, 파산, 채권상각이 이어집니다. 이게 금융위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건 기준금리를 낮출 수 없다는 겁니다. 투기적인 외국인 투자자라도 잡아야 하니까 높은 금리라는 떡밥을 줄 수밖에 없단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상황이 오게 되면 결국 우리나라 부동산과 우량기업 등을 외국 자본에 헐값에 넘겨주면서 마무리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몇 번 당하면 남아나는 게 없어지지요. 그렇게 한 번 착취당하는 입장이 되고 나면 역사의 패러다임이 바뀌거나, 전쟁을 벌이기 전에는 헤어 나올 길이 사라집니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결국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우리나라 경제가 큰 문제없이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별 문제가 없을 거라는 믿음을 주고 증명해줘야 합니다. 그렇지만 현 시점에서 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우리나라의 경제 전반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것 같고, 삼성전자 등 몇몇 기업에 한해서만 긍정적인 것 같습니다. 재벌에 대해 엄혹한 정권이 재벌 덕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나는 우리나라 경제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구구조와 저출산으로 인해 잠재성장률의 하락이 빠르고, 반전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또한 청년들 사이에 사회주의적이거나 냉소적인 문화가 꽤 퍼져있는 영향으로 노동생산성을 개선하기 쉽지 않을 걸로 생각합니다. 또한 인구구조 문제로 세율이 계속 오를 수 있고, 그로 인해 가처분소득의 증가가 장기적으로 부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회 분위기 및 세제, 상법, 각종 규제 등을 고려할 때 갑자기 우리나라에 기업가정신을 가진 사람이 늘고 창업이 많아질 거라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많은 부분 이 정권과 여당이 초래한 것이지요.


 외국인 투자자들이 나와는 달리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경제가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계속 주행할 수 있을까요? 나는 앞으로도 별 문제가 없길 바랍니다. 그러나 바람대로 예측하고 판단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추천 브금

 

https://www.youtube.com/watch?v=WyiIGEHQP8o

 



 

 정치에 대해 비교적 최근에 관심을 가지게 된 분들 중 다수가, 근래 민주당의 행태에 대해 크게 실망하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은 그런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민주당의 구성원이 어떤 인물들인지,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 아는 사람들은 민주당이 뭘 해도 놀라지 않습니다. 원래 그런 족속인 걸 잘 아니까요. 그런데 요새 정치에 관심을 가진 분들은 민주당 구성원들의 성격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격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좀 더 중도적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데 능합니다.


 

 현재 민주당의 주요 구성원들은 80년대에 학생운동을 하던 86운동권과 90년대 학생운동권, 그리고 00년 이후의 소수 운동권과 래디컬 페미니스트들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운동권 + 급진페미정당이고, 이 두 부류에 속하지 않으면 당원이 된 후에도 위로 올라가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학생운동권은 NL이건 PD건 어떤 부류건 예외 없이 대단히 사회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입니다. 미국, 자유주의, 자유시장, 자유민주주의, 다원주의 등 모두에 대해 대체로 무척 부정적입니다. 이걸 분명하게 가장 먼저 알아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유로운부류는 운동권과 거리가 멉니다. 유시민 계열이나 강남좌파는 일견 자유스러워 보이는 데가 있을지 모릅니다만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에게 자유는 지향이나 신념이 아니고 패션입니다.



 자유주의 좌파라거나, 사회적 자유주의라거나. 이런 건 사실 엄밀하게 보면 안정적으로 성립할 수가 없는 개념입니다. 물론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많습니다만, 불안정한 방사성 원소처럼 유해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붕괴되기 쉬운 관념입니다. 보통 자유주의 좌파 및 사회적 자유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은 논리적 일관성이 충분하지 못한데,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는 개인을 중시하는데 사회주의는 집단성과 공동체를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이상적으로야 개인도 공동체도 다 잘 챙기면 좋습니다만, 현실적으로는 개인을 중시하면 집단은 약해지고 집단을 중시하면 개인이 약해집니다. 특히 사회주의자들처럼 집단과 공동체를 중시하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개개인 중엔 피해 입는 사람이 꽤 많이 나오게 됩니다. 근래 정치판에서 이걸 정말 잘 상징하는 말이 ‘(2년만에 30%오르는) 최저임금 못 줄 사업자들은 그냥 망해라입니다. 사회주의자들의 집단적 성향은 쉽게 전체주의화 되고, 개개인의 희생엔 둔감하고 무감각해지다 못해 폭력적이고 가학적으로 발달하기 쉽습니다.

 

 민주당 운동권은 옛 운동권 사고방식의 사회주의적 순수성이 비교적 잘 보존된 집단입니다. 공산권 몰락을 보면서 생각을 고쳐먹은 부류는 대체로 김영삼을 따라 한나라당에 갔었지요. 정계은퇴를 했다 DJP연합으로 집권한 김대중은 정치세가 약해서 이런저런 세를 끌어들였었는데, 이 과정에서 신한국당 출신 이인제와 이기택과 갈라진 노무현도 민주당에 들어갔고, 사회주의 성향을 가지던 운동권 다수도 민주당에 합류했습니다. 이후 노무현이 집권하면서 김대중을 따르던 옛 민주당 파벌과 86운동권은 번번히 충돌하게 되었는데, 10년 넘게 싸운 끝에 결국 더 젊은 운동권이 DJ파벌을 거의 몰아낸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 운동권들은 노무현한테도 꽤 골치거리였습니다만, 결국 문재인을 옹립하면서 86천하를 만들어내지요.

 


 페미니스트들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네요. 우리나라 페미니즘에는 정말 크게 3갈래가 있었습니다. 리버럴, 래디컬, 보수-교회 세력으로 뭉뚱그려 나눌 수 있는데요. 이 중 리버럴은 여성 권리가 올라가면서 실질적으로 사라졌습니다. 남은 건 래디컬 페미들과 교회아줌마 여성단체 정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전자는 민주당에, 후자는 자유한국당 계열에 많지요. 후자도 답 없긴 한데 전자에 비하면 귀엽습니다. 요새 래디컬 페미니즘 천하가 된 건 더 이상 운동권들의 망상이 새 피를 수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메갈이 대중성은 없지만 광신도를 늘리면 돈도 사람도 모여듭니다. 갈 데까지 간 건데 운동권에게 현실감각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곧 죽어도 지들이 무조건 옳다 하는 게 사회주의자들입니다.


 

 이래서 YS때부터 좀 무난하고, 정상적인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싶으면 신한국당, 한나라당 입당했었습니다. 교회 인맥 따라 들어가기도 했었고, 운동권하고는 뭘 제대로 못 하니까 입당하기도 했었지요. 민주당에선 운동권 라인 안 타면 위로 올라가기도 힘들고요. 무언가 자리를 맡았을 때 뭔가 더 해볼 여지도 있었고요. 새누리당 된 후에는 시대도 당도 좀 이상해지긴 했는데 그래도 김무성 유승민 뽑을 정도로는 정상적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도록 김무성을 당대표로, 유승민을 원내대표로 뽑는 당이 더 정상적일까요, 아니면 진선미 실질적 최고존엄 만들고 이해찬이 대표 되고 홍준연 제명하는 당이 정상적일까요? 상식과 개념이 있다면 어떤 당 구성원이 더 정상적인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근래 5.18 망언으로 분노하는 분들이 많은데, 자유한국당 내에도 그런 망언에 분노하는 사람 많습니다. 상도동계 막내였던 김무성부터 당연히 분노하지요. 박근혜 체제에서 그런 김무성을 대표로 뽑았던 게 당시의 새누리당 당원들이었고요. 5.18 망언의 대표주자 지만원은 조갑제나 박근혜보고도 빨갱이라고 하는 위인입니다. 물론 조갑제 옹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5.18에 대한 헛소리 일체를 강력 부정합니다. 그래도 그나마 자유한국당은 마이너가 헛소리를 하는 거잖습니까. 헛소리쟁이 한 명 탈당도 시켰고요. 그런데 민주당은 당대표가 헛소리를 남발하고 있지요. 징계도 안 받고요.

 

 진짜로 사회를 현실적으로 개선하고 싶은 사람들은 민주당이나 다른 진보정당에 가지 않습니다. 거기 가 봐야 아무 것도 안 됩니다. 항상 말하지만 사회주의의 가장 큰 단점은 현실을 거의 개선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상식과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경제 2018. 11. 11. 11:09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은 IMF가 오던 해의 히트곡 중 하나입니다.

 

https://youtu.be/O8i3iKcm5dI

 



 상식과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경질당한 경제부총리가 이런 표정을 짓는 데 대해 조금이나마 공포를 느껴야만 합니다. 문재인버스 본격 탑승자는 제외하고요. 무슨 군대 전역하는 청년의 표정 같습니다.

 

 공포를 느낀다면, 할 수 있는 대응을 하세요.

 

 좌파 포퓰리즘으로 경제가 망가질 때 시민들이 잘 대응해서, 올바르고 실력 있는 차기 정권을 뽑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꼬이고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오판을 반복하게 됩니다. 박근혜를 몰아내고 문재인을 뽑은 것부터 이미 시민 사회의 큰 오판이었습니다. 언제쯤 좋은 판단을 하게 될 지는 기약이 없습니다.

 

 여력이 거의 없더라도 대응하지 않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대응이라도 하는 게 낫습니다. 이 정부의 단점은 마치 김영삼과 박근혜의 단점을 곱한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결과 역시 김영삼 X 박근혜일 확률이 높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998년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IMF여 영원하라! 라는 말이 있었지요. 당시의 기사를 링크합니다.

 

http://www.hankookilbo.com/News/Read/199811180055334162

김종필을 생각하며

정치 2018. 6. 23. 13:14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youtu.be/Wxw2fnQn8YI

 



 3김 중 마지막 생존자였던 김종필이 타계하였습니다.

 

 그는 뛰어난 정치인이었고,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근래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청년들은 그에 대해 성급하고 단편적이며 부정적인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지만, 그는 복잡하고 다면적인 인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의 공이라 생각하는 건 사실은 많은 부분 김종필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박정희가 그토록 권력욕을 부리지 않았다면, 김종필은 박정희보다 나은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김종필의 부정적인 면은 근래의 민주당도 거의 유사하게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차라리 김종필이 훨씬 신사답고 사려 깊고 도덕적이었지요. 김종필보다 민주당 운동권들이 덜 독재를 사랑한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3김 중 김종필만이 여자관계가 깔끔한 애처가였고 가족들 비리가 터지지 않았습니다. YS, DJ와도 꽤 가까웠고, DJ와 가깝지 않았다면 DJP 연합은 없었을 것입니다.

 

 김종필은 5.16의 주역이었습니다. 박정희보다 김종필이 5.16을 주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당시 그런 1인 장기 독재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박정희와 친인척 관계였고 가까웠으며 박정희 정부의 핵심 요인이었지만, 3선 개헌과 유신은 김종필의 뜻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유신 정권 아래에서 김종필은 강한 권한이 있는 책임총리를 맡았으나, 원하지 않는 자리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75년에 박정희에게 큰 소리로 따지면서 징징까지 시전하면서 그만뒀습니다. 이후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에 맞자 YS, DJ와 직선제 개헌에 합의했고, 제대로 된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 임시 대통령직엔 출마를 안 해 최규하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 바람에 1212가 터지고 신군부한테 당했습니다.

 

 만일 박정희가 3선 개헌을, 유신을 강행하지 않았다면. 또는 김종필에게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다면 최소한 신군부는 없었을 것입니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던 시점까지 김종필이 총리였다면,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킬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두환의 신군부는 몇 년 지속되지 않았지만 그 시기는 우리 시대에 끔찍한 문제를 안겼습니다. 현 민주당계-진보계 수뇌인 NL/PD 학생운동권이 탄생한 게 그 시기거든요. 신군부 쿠데타가 아니었다면 그런 끔찍한 게 나올 일도 없었습니다.

 

 이후 김종필은 DJP연합에 성공하여 내각제 개헌 후 집권에 가까워집니다만, 결국 김대중과 뜻이 어긋나고 2000년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야심과 멀어집니다. 그리고 그의 정치는 2004년에 끝나는데, 노무현 탄핵 정국에서 그는 자민련 비례 1번으로 나섰지만 - 여성이 아닌 남성인 그가 1번이었습니다. - 자민련이 전국비례 3%를 못 얻어서 그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끝나고 맙니다.

 

 그는 박정희 시대의 실무적인 업적의 주역이며, 한 개인으로는 깔끔하고 멋지며 지적인 예인이었습니다. 5.16을 그의 과오라 할 수는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5.16에 대한 주책임은 장면과 윤보선에 있다 생각하는 쪽입니다. 그렇게 무능하게 당하는 정권이 나라를 지킬 수는 없습니다. 김종필과 박정희가 권력욕은 있어도 사회와 국가에 대한 악의는 없었기에 다행입니다. 바꿔 생각하면, 당시 상황은 박정희보다 훨씬 나쁜 놈이 국가권력을 탈취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김종필은 다른 정치인들보다 도덕적이었고 유능했습니다. 김영삼도, 김대중도, 노무현도 가족들이 비리를 저지르고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대통령과 대통령이 아니었던 자의 권력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김종필만이 그런 게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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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 최악의 한 해도 저뭅니다.

정치 2017. 12. 31. 17:08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우클릭 반복재생 가능합니다.

 

 https://youtu.be/P4nf5WQrtIo


 


 자연적으로는 동지가 한 해의 끝이지만, 그레고리력으로는 오늘이 한 해의 끝입니다. 이렇게 양념과 문트릭스의 한 해도 저뭅니다. 아직도 많은 시민들은 문트릭스에 빠져있습니다만, 실제 내용상으로 이번 정권은 거의 논란의 여지없이 87체제 최악의 정권이라 할 수 있어서 모두들 피해를 체감하는 건 그저 시간문제가 될 상황입니다. 물론 이미 피해를 체감하면서도 그게 현 정권 탓은 아닐 거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만.

 

 많은 사람들은 천천히 깨달아갈 것입니다. 정권이 바뀌고 시간이 지나도 내 삶은 전혀 나아지는 게 없다는 것을요. 문재인 정권의 정책으로 인해 많은 자영업자가 더 도산할 거고,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며, 외국자본은 한국에 덜 들어올 것이고, 부동산 양극화가 심해지고, 대출이 어려워져 많은 사람들이 불법사채에 손을 댈 것이며, 많은 국내자본이 해외로 더 나갈 상황이고 이미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물론 환율 문제로 인해 내년 1인당 GDP3만 달러를 넘길 겁니다. 문재인 정권은 자축하겠지만, 동시에 환율 문제로 인해 기업들의 수익은 줄어들 것이고, 각 산업분야마다 중국 등과의 치킨게임이 불가피한 현실에서 법인세까지 올라 상당히 버거운 투쟁이 예상됩니다. 글로벌 경기회복은 이 형편없는 정권의 숨통조차 트이게 할 것입니다만, 그로 인한 금리인상과 유가상승, 고용불안정, 인건비 상승 등은 수많은 서민들의 숨통을 조일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도 정권은 증세에 나설 것이 예상되므로 고통을 피할 방법은 없을 겁니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정책의 내용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그 영향을 미리 인지할 능력은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만 그런 게 아니고, 어느 나라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감정대로 판단하고 이후 그것을 합리화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사회는 여러 안전장치들이 있습니다만 현재 한국 사회는 그러한 안전장치들이 너무나도 많이 해제된 상황인 것 같습니다. 박근혜가 만들어낸 불신이 너무나도 크고, 그 불신이 문재인에 대한 묻지마 지지 및 정치무관심으로 어느 정도 이어지는 모양새인데, 문재인은 그 실제 정책 내용이나 행보는 최악인 반면 그럴싸한 모습을 연출하는 데는 매우 능한 인물인 것이 국가적인 불행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한편으로 나는 우리나라 시민들이 상냥하고 진중한 이미지의 지도자에 매우 굶주려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는데, 이는 아직도 한국 사회의 이면에 뿌리박힌 유학 세계관의 연장선상으로 추측하며, 한국의 민주정 스코어가 아무리 나쁘지 않은 수준으로 측정될지언정 자유주의가 없는 데모크라시는 결국 사상누각인 면이 있음을 드러낸다고 생각중입니다. 다만 문재인은 부덕한 면이 많아 유학 세계관을 적용하더라도 좋은 지도자라 하기 어려우며, 한국인들의 유학 세계관은 실제 유학의 이성적 가치관이 아닌 막연한 이미지나 관습이 남은 것으로 이해하는 게 옳을 것입니다.

 

 근래 문재인정권의 인기를 보면 김영삼 때가 생각나기도 하는데, 김영삼은 문재인과 의외로 비슷한 점이 많았습니다. 김영삼정권도 초기에 다른 정치세력이 없었고, 인기는 현재의 문재인보다 꽤 높았습니다. 김대중도 은퇴상태에 국정지지율 80% 상회하는 시간이 꽤 길었고, 90%까지 달성했었으니까요. 김영삼도 문재인처럼 반일감정을 잘 이용했었기도 합니다. 김영삼 지지율이 가장 높던 순간은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하던 때였습니다. 그러고는 일본놈들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선언했었지요. 물론 김영삼이 실제 고친 일본놈들 버르장머리는 하나도 없었고, 최악의 관계가 지속되다가 결국 외환위기 때 외채 회수로 복수 제대로 당했습니다만. 반일 정치쇼는 예나 지금이나 잘 통하는 것 같습니다. 막무가내인 면도 김영삼이나 문재인이나 좀 비슷합니다. 심지어 둘은 거제 출신에 나온 고등학교도 같습니다.


 

 정치인의 인기란 허상 같은 것입니다. 국정지지율이 높으면 좀 더 막무가내로 할 수 있긴 합니다만, 독단적인 언행의 대가는 결국 돌아옵니다. 김영삼은 IMF원흉으로 죽을 때까지 기 한번 제대로 못 폈고, 노무현은 퇴임 15개월 후 자살했고, MB도 영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박근혜는 구치소에 있는 게 현실입니다. 현재 문재인은 너무나도 적이 많은 점, 심각하게 독단적인 점, 그의 광신자들이 온라인 정치깡패나 다름없이 광범위한 폭력과 강압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볼 때 훗날이 무탈할 가능성은 매우 낮은 상황입니다. 비록 지금은 그의 시대고, 그의 만행을 견제하기 힘든 게 이 순간의 현실이긴 합니다만, 저항은 날로 강해질 것이며 과거의 권력자들이 어떤 미래를 맞이했는지를 미리 현명하게 보고, 조금이라도 겸손하고 제대로 된 정치를 하길 바라봅니다.

 

 물론 근래 외신에서 균형자라고 비꼰 것도 이해 못하고 청와대에서 부대변인이 나서 우리가 균형자라고 미국 언론에서 칭찬했다고 자랑하다가 국제적 조롱거리가 된 걸 보면 (심지어 미국 언론도 아닙니다.), 나의 바람은 거의 쓸모없을 확률이 아주 높겠고, 솔직히 이런 정권 아래서 과연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이 안녕할 수 있는가가 심히 의심될 정도입니다만 뾰족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으므로 일단은 바라봅니다.


자유한국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정치 2017. 12. 14. 11:35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youtu.be/M8VvGsmb4dU

 

 자유한국당의 몰락과정에 대해 조금 상세하게 설명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일단 그건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 김성태가 원내대표 되고 친박세력을 좀 몰아낸 걸 기념하여 이야기를 좀 하자면요. (오늘의 추천 브금은 축포에 매우 어울리는 곡입니다.)



 자한당의 몰락은 당연히 박근혜의 폭주와 잘못이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그런데 애초에 자한당 지지층 또는 지지자 중 다수는 그다지 박근혜에 호감을 가진 적도, 믿은 적도 없었습니다. 최대한 이 이야기를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이후 신한국당이 되는 민주자유당계는 본래 3당 합당으로 결성되었고, 김영삼정권 때 전성기였으며 그 땐 민주계가 득세했습니다. 원래 신한국당에서 군부 세력은 찌그러져 있었고, 다수의 시민들은 그런 신한국당을 좋아했었단 말이지요. 김영삼과 김대중 사이가 그리 꼭 가깝다고 하긴 어려워도 어쨌든 민주화 동지였던 만큼 김영삼의 신한국당과 김대중의 국민회의, 그리고 그 사이에 있었던 이기택의 민주당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었습니다. 실제 신한국당에서 일하다 김대중 집권 후 김대중정부에서 일했던 정치인도 많아요. 그 유시민도 한나라당 초기 땐 한나라당 편이었습니다. 이회창의 한나라당 시절, 어쨌든 한나라당은 수구정당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유독 손학규는 좀 늦게 민주당으로 넘어와서 수난을 많이 겪었습니다.

 

 쉽게 요약하자면 오래 전부터 한나라당을 지지해오던 사람들과, 근래 정치에 관심가지고 지극히 편향된 팟캐스트 등의 루트로 정치 알게 된 청년들의 관점 사이엔 엄청난 차이가 있단 말입니다.

 

 모든 게 꼬인 건 대략 노무현 당선되면서부터인데, 노무현에 패배한 엘리트한나라당은 일단 멘탈이 깨져버립니다. 그래도 거기까진 괜찮았는데, 그 다음엔 그 유명한 차떼기 게이트가 터집니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 사이에 한나라당은 나쁘다는 인식이 퍼져요. 여야가 서로 불법정치자금으로 싸우는 와중에 한나라당은 거의 궤멸되고, 당시의 여당도 일정 정도 피해를 받고 안희정이 감옥가게 되면서 정치판이 크게 달라집니다. 여당은 물갈이 되서 운동권으로 채워지고, 야당도 물갈이되는데 그만 박근혜의 군부세력이 권력을 잡게 된 겁니다. 대략 기존 정치인들 썩었으니 갈려고 하다가 훨씬 함량 미달인 인간들이 들어온 셈이랄까요. 그리고 대략 이 시기부터 제대로 된 인간들은 거의 정치판에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박근혜는 김영삼, 이회창 쪽 지지층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거지요. 다만 쓰잘데기가 없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는 게 문제입니다. 당시 노무현도 좌충우돌하고 있었는데, 망해가던 한나라당에 인공호흡한 건 어쨌든 탈당했던 (몇년 후 복당녀라는 별명이 붙게 되는) 박근혜였단 말이지요. 박정희 신화를 부활시키려던 박근혜는 경북지역에서 인기를 끌며 군사정권 때부터의 오랜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나서는 선거마다 이겼습니다.

 

 그래도 박근혜는 바로 대통령이 되진 못합니다. 당시의 한나라당은 박근혜 정당과는 정말 거리가 너무 멀었으니까요. 결국 일종의 타협점이 이명박이었지요. 사실 김영삼, 이회창을 좋아하던 사람들에겐 이명박도 눈에 차진 않았었습니다. 그래도 박근혜보단 나았던 것이지요. 물론 이후 이명박은 여러 사람 머리 아프게 하면서 순식간에 지지를 잃고 맙니다. 그리고 한나라당의 권력은 서서히 박근혜에게로 넘어가지요. 이 시점부터는 한나라당의 수구화를 막기 힘들어졌고, 이름도 새누리당으로 바뀌게 되었고, 때맞춰 문재인이 권력에 대한 탐욕을 부리면서 결국 박근혜를 당선시키는 바람에 - 2012년 대선에 안철수가 나왔고, 민주당이 안철수를 지원했다면 박근혜가 이기기 힘들었을 겁니다. - 새누리당 내 민주계 세력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민주자유당계의 기반은 대략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군사정권 때부터 지지해온, 많이 보수적이고 다소 수구적인 성향이 있는, 평균연령대가 높고 그래서 학력이나 소득도 낮게 측정되는 일파입니다. 이들은 안보, 반공을 중시하고 민자당계만 찍는 성향이 강해서, 지난 대선에서도 주로 홍준표를 찍었다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그런데 다른 하나가 더 있습니다. 고소득, 고학력, 전문직, 사업가, 자영업자, 투자자 등이 다수 속해있고 김영삼, 이회창, 이인제, 박찬종 등을 지지해왔으며 자유주의와 합리주의 성향이 강한 집단입니다. 이들은 잘 나서진 않지만, 전체 숫자가 아주 없진 않고 주변에 영향력도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득표를 만들어내는 힘은 어느 정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조선일보는 이 중 전자를, 중앙일보는 후자를 다소나마 대변하던 경향도 있겠고요.

 

 문제는 이명박도 비합리성과 권위주의, 부정부패를 드러내며 후자를 실망시켰는데, 박근혜는 아예 용납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나마 새누리당 당원들은 박근혜의 폭주를 막기 위해 상도동계 막내 김무성을 대표로, 이회창 계파였던 유승민을 원내대표로 만듭니다. 이후 김무성은 두 번의 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차기대선후보로 지지율 1위를 달리게 되지요.

 

 그러나 박근혜의 파괴본능 앞에선 다 소용이 없었습니다... 유승민 쫓아내기, 메르스 파문, 가습기살균제 사건 대처 문제, 역사교과서 국정화, 옥새런을 보다 못한 새누리당 지지층 다수는 결국 돌아섭니다. 그리고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엔 모두들 아시다시피 그렇게 됩니다. 박근혜가 이미 당 내 정치인을 친박 위주로 물갈이해놓은 상태라, 현재 자유한국당은 덩치 큰 아기나 다름없으며 당면 문제를 해결하고 개혁하는 게 정말 힘든 상황입니다.

 

 요약하자면 자유한국당이 되살아나려면 이명박근혜의 정당에서 김영삼, 이회창의 정당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홍준표도 아주 생각이 없는 건 아닌지 당사에 걸린 사진 중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만 남겨놓긴 했던데, 사실 이 세 명도 원체 일관성이 없어서 효과가 있을진 모르겠습니다.

 

 유승민이 못 뜨는 이유도 자명합니다. 유승민은 이회창계 출신이긴 합니다만, 전반적인 성향이 위에 이야기한 민자당계 두 지지층 중 전자 쪽에 더 가깝습니다. 자유주의보다는 집단주의적 - 공화주의 - 이고, 자유주의적이거나 합리성이 두드러지는 편은 아니며, 각 분야 전문가나 기업이나 상인들이 좋게 볼 만한 요소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또 전자 쪽 지지층이 볼 때 유승민은 배신자라는 인상이 강하고, 믿음직스럽지 못하단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사실 유승민 지지층은 민주당 지지층과 성향이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사회문화적으로 좀 더 보수적이면서 주로 군사외교적 견해에서 차이가 나는 편이지요.

 

 위에 이야기한 후자 유권자들은 지난 대선에선 주로 안희정-안철수 쪽으로 표가 움직였습니다. 이명박근혜 시대를 거치면서 자한당엔 자유주의, 합리주의적인 세력이 많이 위축되었거든요. 자유한국당엔 자유주의가 없고, 더불어민주당엔 민주적인 게 없지요.



 굳이 보면 이 사태는 차떼기 이후 제대로 당을 개혁하지 못하고, 박근혜 같은 인물에게 당의 회복을 맡긴 대가이기도 합니다. 비유하자면 올바르게 영양을 섭취하고 운동을 해서 건강을 되찾고 경기에서 이긴 게 아니고, 도핑을 해서 성적을 내다가 쓰러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박근혜가 선거의 여왕이던 시절, 한나라당은 노무현에 실망한 자유주의 세력을 기본적으로 흡수한 상태에서, 영남-보수-고연령층 유권자를 최대한 많이 투표소에 불러냄으로 연승을 거뒀습니다. 그런데 이건 한나라당의 지지층을 넓혀서 이긴 게 아니었다는 이야기이도 합니다. 본래 한나라당 지지하던 사람들 쥐어짜내서 이긴 겁니다. 그게 박근혜 효과였고요.



 당연히 이런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나라-새누리당은 제대로 된 지지층을 잃어갔습니다. 이명박근혜는 국정원과 일베를 동원할 정도로 타락했고, 평범한 청년층은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 되어갔고, 나중엔 자유주의자들까지 등을 돌렸습니다. 영남-보수-고연령층에 베이스를 둔 박근혜가 당권투쟁에 열을 올리면서 새누리당의 확장성은 더욱 더 축소되었습니다.

 

 이제 자유한국당이 부활하고 싶다면 그 동안의 과오를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선거에서 이기는 정당은 기본적으로는 코어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확장성을 가지는 정당입니다. 그런데 아직 자한당은 코어 지지층을 잃지 않는 데만 주력하고 있고, 확장성은 염두에 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영남-보수-고연령층은 자한당 지지층입니다. 그건 쉽게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자한당이 부활하려면 자유주의자들을 잡아야 합니다. 이름값을 해야 한단 말이지요. 그러나 올해 자유주의자들은 안희정과 안철수를 주로 보고 있었습니다. 내년엔 자한당이 자유주의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요? 지선에서 또 한 번의 처참한 패배를 겪어야 조금 변할까요?

 


 사람들이 경제에 관한 논의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안타까울 때가 많다.


 역시나 일반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뭐가 신자유주의고 뭐가 케인즈주의고 뭐가 사회주의인지 잘 모른다는 데 있는데, 케인즈주의는 거의 언급도 안 되니 일단 뒤로 접어둔다 쳐도 자칭 진보라는, 달님을 외치는 깨시민들이 걸핏하면 신자유주의적인 주장을 하는 걸 보면 참 기가 막히곤 한다.


 예를 들어서 현 한국 경제 상황에서.


 대체로 케인즈주의자라면 기준금리가 9개월째 유지인데 경기가 살아나는 양상이 지지부진하고 원화가 너무 강세니 금리 좀 내리고 하우스푸어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할 건데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밖에까지 잘 안 퍼지는 안습한 현실 앞에 있고,


 대체로 신자유주의자라면 새로운 일자리 등을 위해 의료 영리법인 세울 수 있게 규제 풀고, 경제민주화를 위해 기존 순환출자구조도 해소하고 주주의 권한을 늘려야 한다고 지금까지 해왔듯 착한 척을 앞세워 주장할 것이고,


 대체로 사회주의자라면 보편적 복지를 얼른 하라고 주장하는 동시에 뭘 몰라서 경제민주화 움직임에 동참할 것이고,


 대체로 제도주의자라면 바이오, 항공, 에너지 등의 신산업 육성을 위해 국가적 지원과 정책이 더 강하게 있어야 할 것이라 주장할 것이고 + 추가로 실제 보면 사회주의자와 함께 복지론 주장 중


 대체로 깨시민이라면 다 됐고 부정선거! 박근혜 아웃! 안철수 양보해라! 등을 외칠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좌우파로 저 사람들을 구분하자면 좀 복잡해지는데...


 우선 사회주의자는 좌파로 확실하게 구분되긴 하는데 나머지는 아니다.


 케인즈주의자나 제도주의자는 어이없게도 수꼴 취급을 받기 일쑤고, 신자유주의자가 자칭타칭 진보로 불리는 것은 일상다반사고 소위 우파정당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내에서도 저런 온갖 소리들이 짬뽕 및 잡탕 되어서 내부갈등을 일으키는 게 현실.


 어쩌다 상황이 이리 되어가지고 사람들이 좌우파 구분도 하기 힘든 나라가 되었는지를 보자면 역시나 당연히 복잡한데, 시작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주 먼 과거로 올라가야 한다.


 일단 일제가 끝난 시점에서 한반도 남쪽, 그러니까 대한민국이 될 지역에서 공산주의자가 모두 제거되었다는 건 모두들 알 것이다.


 이승만 시절 한국의 정당은 이승만의 자유당과 아직까지 생존 중인 민주당이 있었다. 그런데 자유당이 민주당보다 좀 더 진보적이었다. 그리고 이승만이 물러난 이후 자유당은 부서져 버렸고, 민주당이 실질적으로 유일한 정당이 되었었다.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는 달리, 민주당은 딱히 진보주의적인 색채를 가진 적이 없었다. 다만 민주당의 역사를 보면 워낙에 많은 이합집산을 거듭했고 그 과정에서 운동권 세력이 참여하곤 하여 군사정권 시절 어감으로 ‘좌파’ 소리를 들어왔던 것이다.


 박정희가 쿠테타 이후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민주당의 보수주의적 색채는 선거에서 지는 요인이 되었다. 흔한 오해와는 달리 당시에 시민들은 박정희를 선택했고, 박정희가 서민의 편이었다.


 비록 박정희가 권위주의적이긴 했으나 서민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고 삶을 안정되게 했다. 또한 유신 이전의 박정희는 선거로 당선된, 민주 체제 아래에서의 대통령이었다. 쉽게 말해 당시 구도는 박정희와 민주공화당의 제도주의적 진보 대 윤보선이나 김영삼, 김대중 등 민주당 계열의 자유주의 우파 구도였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박정희의 통치방식은 엄청난 경제적 성공을 가져왔다. 심지어 결국 정치적으로 실패한 유신체제조차 경제적으로는 기적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대조적으로 당시 김대중 등이 박정희의 방식에 반대하며 주장하던 소위 ‘대중경제론’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 내용을 보면 박정희가 오래 집권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점이 많았다.


 박정희의 방식은 정부가 산업 육성을 돕고 금융을 제한하며 무역을 장려하는 방식이었다. 정부가 나서서 산업을 육성하고 강력한 보호무역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는 방식을 흔히 제도주의라 한다. 이 방식으로 박정희는 집권 내내 엄청난 투자를 하고, 무역 국가로 발돋움시켜 한국을 20세기에 가장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로 만들었다.


 그런데 윤보선이나 박현채, 김대중이 주장하던 방식 - 대중경제론 - 은 이것과 반대의 방식으로, 수많은 국가들이 채택했다 실패한 방식이었다. 이 방식대로 하면 중앙은행은 강력하지 않아 금융통제가 안 되고, 산업이 제도주의처럼 발달하지도 못하며 무역 국가로 발돋움할 수도 없다.


 지금은 각종 방안들을 여러 국가들이 실험해본 끝에 뭐가 좋은지 증명이 되어있지만, 그 때는 그렇지 않았다. 박정희는 정말 가기 힘든 노선을 택했고, 엄청난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러고 나서 그 열매를 제대로 보기도 전에 죽었지만.


 박정희 사후 박정희의 투자가 이루어낸 결과물들과 공산권의 몰락 등을 보면서 기존에 박정희의 정책에 반대하던 사람들도 의견을 달리하게 되었다. 김대중마저 90년대 들어선 기존의 대중경제론을 버리고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도 김대중의 경제에 대한 이해는 다소 부족했던 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가 좀 더 경제를 잘 이해했다면 IMF로 인한 타격을 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IMF를 유발한 건 전적으로 김영삼 책임이다. 다만 김대중은 IMF와 좀 더 치열하게 싸워 피해를 줄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차피 멍청한 김영삼한텐 아무 기대도 안 한다. 그런데 김대중은 그래도 똑똑하니까. 똑똑한 사람은 똑똑한 사람의 몫이 있는 건데, 그 몫을 다하지 못했다는 거다.


 비극적인 문제는 민주정권의 태도 및 이해에 있었다. 박정희식 제도주의는 엄청난 발전을 만드는 동시에 필연적인 부작용을 낳는다. 정부의 혜택을 받는 쪽이 집중적으로 성장하다보니 덜 공평하고, 게다가 박정희는 권위주의적인 독재 통치를 했기에 자유에 대한 사회의 갈망도 컸기 때문이다.


 사실 자유에 대한 문제는 문화적인 면에서 두드러졌고, 지금도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 유교식ㆍ군대식 권위주의 및 압축 근대화 과정 속에서 해소되지 못한 고간섭 문화는 아직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위의 문제들은 충분히 해결되지 못한 반면, 경제 체제는 제도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급속도로 흘렀다. 특히 민주화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김영삼부터 세계화니 선진화니 뭐니 하면서 대책 없는 신자유주의 판을 벌이다 나라를 말아먹었다.


 분배나 기타 등등의 이야기는 사실 김대중 때까지만 해도 잘 나오지 않았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지역주의를 앞세웠고, 이념에 있어 그리 큰 차이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김대중은 IT산업을 육성하는 등 제도주의적인 방안을 선택했지만 김영삼과 이후의 노무현은 아니었다.


 소위 좌우파 갈등이 빚어지기 시작하던 시점은 노무현 때부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모두들 알다시피 노무현이 ‘좌측 깜빡이를 키고 우회전’을 해버리면서 모든 게 심각하게 꼬여버렸다. 대략 이때부터 노빠들은 제도주의와 케인즈주의 등을 ‘보수, 수꼴’등으로 낙인찍고 노무현의 신자유주의정책을 무한 실드치는 반지성주의적 궤변을 일삼게 된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욕먹기 시작한 이후에 깨시민들은 ‘노무현의 신자유주의는 시대적 흐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무한반복하고 있고. 그런 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고 혹세무민이다.


 이야기가 꼬여버린 데는 이명박도 일조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말로는 신자유주의의 화신처럼 등장을 해서는, 막상 정치는 딱히 신자유주의적으로 안 했다. 이러니 사람들의 경제적 좌우에 대한 착각이 더 심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근래의 경제민주화 논의는 아주 이런 혼동에 화룡정점을 찍어버렸다. 신자유주의자들이 경제민주화 타이틀을 걸고, 우린 착한 진보 ^^ 놀이를 해서 적잖은 사람들을 아스트랄하게 만들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혹세무민해 버렸다. 도무지 이게 언제쯤 어떻게 교통정리가 될지는 미지수다. 전문정보와 대중정보 사이를 이어줘야 할 기자라거나 시민 사회 등은 소양이 지극히 부족하고, 정치적 의도를 가진 뻘소리들만 해대면서 혼란을 가중시켜버렸다. 여기에 보편적 복지론이니, 선별적 복지론이니 하는 복지론이 앞서는 상황이 되다 보니 혼란은 더 심해졌다. 현실적으로 민중들은 뭐가 자기 자신에게 득이 될지를 감으로 대략 맞춰야 하는 입장이다.


 양당제에서 시민들이 명료하게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으려면, 신자유주의 & 작은 정부 정당과 케인즈주의 & 제도주의 정당이 대립하는 게 편하다. 그런데 한국에선 제도주의를 박정희가 선점해버렸고, 그것이 극단적인 보수주의적 이미지로 자리 잡혀 있기에 이러한 이념적 균열이 일어나는 게 지극히 어렵다. 현재 박근혜정부는 적당한 제도주의와 적당한 케인즈주의, 그리고 적당한 신자유주의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을 잡고 있다는 느낌인데 참 그것도 능력이라는 감상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확 좀 땡겨 줬으면 좋겠다. (새누리)당내 신자유주의자들은 좀 치우고.


 여담인데 근래의 신자유주의는 ... 실제 경제학에선 그리 투철하고 극단적인 관념 속 신자유주의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게 이미지 그대로의 신자유주의는 이미지로나 존재할 뿐, 그게 학술적으로 맞는 말이 아니라는 건 이미 어느 정도 검증된 거고 이게 신자유주의만 이런 것도 아니고, 실제론 학자마다 서로 좀 다른 입장이긴 하지만 절충하고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가면서 이론을 만들고 현상을 살펴보고 그러는 게 현실인데, 굳이 보자면 학계에선 더 완성도 높은 수학적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다 보니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꽤 있었고 그걸 막상 현실에 적용했을 때 패망한 사례도 많고 ... 오히려 리얼 ‘신자유주의’는 경제학계 외부에서 더 많은 것 같다. ‘학술적으로 맞는 말’이 아니고 ‘지들 돈 벌려고 하는 말’ 또는 ‘지들 권력 잡으려고 하는 말’을 하게 되면 사람은 완전히 이야기를 다르게 하는 법이다. 물론 저런 말들 중에는 도무지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이 하는 말들도 제법 많이 섞여 있으니 사람들이 더 혼동하기 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이념적 균열이 명료하지 못하고, 서민들이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정치적 선택을 하기 어렵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서민들은 삶의 개선을 위해 보다 케인즈주의적이거나 보다 제도주의적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주의는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당이나 근래의 안철수 신당 모두 케인즈주의나 제도주의적인 대안을 보여준다고 하기 어렵다. 실제 케인즈주의적인 것은 학계와 관료이며, 제도주의적인 방안을 구상하는 쪽도 새누리당 내에 있다. 새누리당은 꽤나 광범위한 이념을 포괄하고 있는 정당인데, 소위 깨시민이나 진보좌파들은 이에 대한 이해가 없기에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


 서민들, 특히 나이가 좀 있는 서민들은 어떤 정책과 제도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지 어렴풋이나마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들을 향해 무식하다고 비난하고 국개론을 설파하는 깨시민들이야말로 실제로는 경제에 대한 이해가 없고 무식한 경우가 많다. 실제 깨시민들 많은 곳에서 자료와 근거를 제시하며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는 경우, 돌아오는 건 비아냥과 매도 또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거짓말인 경우가 99%이상이다.


 다만 새누리당이 서민들의 입장을 잘 대변해줄 수 있는 정당이 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너무 많은 이념을 포괄하는 정당이 되어 있고, 당 내부에서 파워게임이 이루어지는 경우 누가 이길지는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한국 정치 현실에선 대통령의 정치 감각과 결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대통령 주변의 이너서클이 제 역할을 못할 경우 정치 실패가 일어나기도 쉽지 않나 생각한다.



87년 체제 각 정부 평가

정치 2014. 1. 22. 17:48 Posted by 해양장미

87년 체제 각 정부 평가



 본문에서는 2014년 1월 현재, 87년 체제 이후 각각의 대통령과 그들의 정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견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87년 체제의 역사는 결코 오래 되지 않았지만, 수많은 이해관계와 포장에 의해 왜곡이 발생해있다. 여기에 더해 각자 가진 사고방식 및 철학에 의한 평가의 차이도 크다.


 내가 생각하는 관점은 다음과 같다. 정치는 결과로 말해야 하며,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과 현실적 이익을 줘야 한다. 아집과 불통으로 국민들의 삶을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 이런 관점에서 잘 한 정부부터 서술해볼까 한다.




1위) 노태우 정부


: 노태우 정부는 많은 이들이 군사정권의 연장선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노태우 정부가 87체제 최고의 정부였다고 본다. 또한 그는 실질적인 한국 민주정치사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들의 피상적인 인식보다 노태우 정부는 훨씬 눈부신 업적을 쌓았다. NLL논란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고, 한반도에서 핵을 없애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끌었으며 (당시 주한미군은 핵을 가지고 있었다.),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가운데 온갖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를 맺었다. 공산권이었던 중국 및 러시아와의 수교도 이 때 이루어진 것이다. 대북정책은 북조선을 고립시키는 동시에 관계개선에도 성공하였다. 평시 작전 통제권의 환수도 추진하여 김영삼 때 완료되었다.


 민주주의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의 일차적인 책무는 외교와 국방에 있다. 원칙적으로 볼 때,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사회를 개선시켜나가는 것은 의회의 몫이 더 크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노태우는 좋은 대통령이었다. 엄청나게 정세가 급변하던 시대에 그는 최고의 선택을 했다. 또한 이 시기에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수준 또한 크게 발전하였다. 노태우의 시대에 한국은 최초로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발돋움한다. 장준하의 명예회복과 지방자치제의 부활도 그 때 이루어졌다. 여성 권익도 신장되었다.


 여러 시대적 불행 위에 있었지만, 노태우는 인품이 훌륭한 편이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성격이 유순하고 어른스러워 화도 잘 내지 않고, 친구들의 싸움도 중재했다고 한다. 이런 성격은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그가 대통령이 된 후에도 유지되었던 것 같은데, 그의 그런 성품이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87년의 민주화를 결단한 것 또한 그의 공이 크다.

 

 이른 80년대 초에도 그는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이긴 했지만, 김종필 등 구 군부 세력 등에게 예의를 갖춤으로 추가적인 갈등을 무마하였다. 또한 안하무인인 전두환의 하대와 핍박에도 불구, 인내와 웃음으로 위기를 이기고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장관시절엔 상사 눈치를 보느라 퇴근을 못 하는 관례를 없애도록 한 개혁적 인물이기도 했다.


 비록 불법정치자금 수수 문제로 불명예스레 무기징역까지 선고받고 지금은 병상에 누워있지만, 사실 금융실명상태가 아니었던 그 시대에 불법정치자금은 당연시되었던 관례였고, 실제 후임인 김영삼에 의해 정치적으로 제거된 면 또한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불법정치자금에서는 김대중도 노무현도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또한 노태우는 전두환과는 달리 추징금을 꾸준히 납부해오기도 했다. 지금은 거의 완납상태다.

 

 개인적으로 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역사적으로 재조명될 필요가 있는 인물이라 본다. 보안사 사찰 사건 등은 분명한 과오이지만, 그로부터 한참 지난 시대에도 그와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으니 그 시대를 감안하면 꼭 이해 못할 것도 없다. 한편으로 인천공항과 1기 신도시 또한 그의 계획이다.


 여담인데 두 명의 노씨 대통령 중 실제 많은 업적을 세운 노태우는 인기가 가장 낮고, 온갖 과오를 저지른 끝에 자살한 노무현은 최고의 인기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치는 결과로 말하는 것이다. 노태우가 아니었다면 민주화에 얼마나 더 많은 피가 필요했을지 모르고, 어쩌면 신군부와 기존 군부의 투쟁으로 나라꼴이 엉망이 되었을 수도 있었으며,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 잡히기 전에 붕괴할 수도 있었고, 기존 공산권 국가 및 북조선과의 관계도 훨씬 나쁘게 자리 잡을 수도 있었다. 이룬 업적과 행동으로 보면 노태우야 말로 민주화 이후 가장 현실 속에서 진보적이고 상식적인 대통령이었다.




2위) 김대중 정부


: 굉장히 좋지 못한 상황에서 출발하였지만, 나는 김대중 정부가 노태우 정부에 비하면 여러 번 오판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대중은 분명 대정치인이고 국민에 대한 애정을 가졌으며 여러 방향으로 최선은 아닐지언정 차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쉬운 말로 김대중 정부는 노무현 정부와는 달리 진정성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와 전통적 제도주의에 양다리를 걸쳤다고 평하고 싶다. 내가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제도주의의 면, 즉 IT인프라를 깔고 벤쳐를 육성하며 나름대로 유동성을 강하게 공급한 면 등을 들고프다. 그는 IMF에 대해 충분히 패기 있는 선택을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호박씨 정도는 깠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신자유주의적인 사상과는 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망조와 오판 속에서 그나마 국민들의 고통을 줄이는 데 일조하였다. 스스로 강경한 신자유주의의 길을 걸었던 김영삼이나 노무현과는 달랐다.


 김대중의 시대 때, 소기업들은 마지막 꿈을 꿔볼 수 있었다. 현재 큰 기업이 된 신생 기업들이 그 때 탄생하였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와는 분명히 대조되는 점이다. 나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세트로 묶는 게 그릇된 인식이라 본다. 둘은 공통점이 별로 없다.


 그의 한계는 그의 사고방식에 있다. 그는 노벨 평화상을 받기에 적합한 인물일 것이다. 여성 권리도 크게 신장시켰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그는 다소 통찰력과 과감성이 떨어졌다. 그는 IMF의 요구를 묵살하고, 모라토리엄이나 디폴트 같은 카드라도 활용하여 좀 더 배짱 있게 재협상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IMF의 강경한 요구들을 수용하면서 신자유주의적인 흐름으로 나라를 이끌고 만다.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노력은 충분한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내가 보기엔 신자유주의에 대한 오판이 많이 섞인 탓이 크다. 또한 햇볕정책도 결과적으로는 실패였다.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이 충분한 인물도 아니었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잘 못 받아들인다는 지적을 받곤 했다.


 한편으로 그의 정권을 미화하는 부류들도 많지만, 그 또한 왜곡이 많다. 일례로 그의 정권 때 국정원 불법도청 사태가 터진다거나, 아들인 김홍업이 ‘최규선 게이트’라는 사건에 걸려 징역 1년 6개월 형을 받는다거나 하는 문제들이 있었다. 진영논리에 빠져있는 이들의 말을 귀담아들어서는 안 된다.





3위) 이명박 정부


: 개인적으로 이명박 정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나에게 개인적으로 손해를 안겨준 면도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나 김영삼 정부보다는 낫다. 나름대로의 현명한 선택으로 국난을 넘기기도 했고, 어려운 시대에 최선은 아닐지언정 차선을 다한 면도 있다. 비록 좀 어설픈 면이 있었지만, 잘 해보려고 한 것에 비해 과도하게 욕먹는 측면도 분명 있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의 딜레마 중 가장 큰 것부터 이야기해야겠다. 비록 이명박은 뉴라이트에게 지지를 받아 신자유주의를 말로 앞세우기는 했지만, 그는 사실 신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고 본다. 또한 극우파의 지지를 받았지만 이명박은 나름대로 꽤 평화주의적이고 겁이 많았던 것 같다. 다만 그의 그런 성정은 대북관계에 좋게 작용하지는 않았다.


 집권 내내 이명박은 자신의 사고방식과 주변 인물들의 사고방식 사이에서 갈등을 빚었던 것 같고, 인사문제에 시달렸다고 본다. 그는 평균적인 정치인보다 꽤 험한 인생을 살아왔고, 현장에서 단련된 감각이 있었다. 그런데 말을 잘 못하고 덕이 부족한 데가 있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주변의 과도한 충성경쟁과 미숙함도 더더욱 문제를 야기했다고 본다.


 사실 그나마 그의 현실 감각 덕에 리먼 위기는 최소화되었다. 그는 관치금융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까지 중소기업을 지원했고, 그 나름대로 진짜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위해 노력했다. 비록 다 잘 된 건 아니고, 일부 오판으로 영생토록 욕먹을 짓도 하긴 했지만 그나마 이명박이 좋은 결단을 내린 탓에 한국은 금융위기를 어느 정도 잘 넘길 수 있었다. 깨시민들은 노무현 정권이 돈을 많이 쌓아놔서 잘 넘겼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명박이 좋은 선택을 해서 잘 넘긴 거다.


 물론 이명박 정부는 4대강 같은 뻘짓에 더해, 친형인 이상득계를 전혀 컨트롤하지 못하게 되면서 (여기엔 이재오의 낙선이 큰 영향을 줬다. 괜히 중간에 이재오가 돌아온 후 잡음이 줄어든 게 아니다. 이상득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이재오였기 때문이다.) 측근비리가 심해졌고,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서 정국이 꼬인 상태로 5년을 보내는 비극을 겪었다. 그래도 한국은 이명박 집권 시기에 한 단계 더 성장했으며, 비교적 금융위기를 잘 넘겼다는 면에서 차선이나마 다한 정부라 평할 수 있겠다.


 


4위) 노무현 정부


: 깨시민들에 의해 태평성대였던 것처럼 포장되는 면이 있지만, 노무현 정부는 최악의 정부였다. 그나마 내가 김영삼 정부보다 나은 평을 하고 있는 건 IMF는 안 불러와서다. 그거 빼면 노무현 정부가 87체제 최악의 정부다.


 노무현 정부는 총체적인 좌충우돌을 저질렀다. 기존 민주당에 대한 공격을 강행하고,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의 정적들도 너무 처절하게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여당을 파괴하고 삼권분립을 침해하여 탄핵소추를 의도한다거나, 심지어 그렇게 새로 만든 여당도 임기 중 파당으로 치닫게 하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또한 그를 지지했던 세력을 배신하고 소위 ‘좌측 깜빡이를 키고 우회전하는’ 모습으로 많은 이들에게 고통과 절망을 주었다. 87체제 아래 아마도 유일하게 군부대까지 투입한 과격한 시위진압이 있었고, 폭력진압으로 사망자까지 나왔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시민 노빠들은 노무현 정부의 과오를 덮고, 그를 국민을 위했던 성군으로 역사왜곡을 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과정부터 뒷돈 부정을 저질렀던 정부로, 이미지와 실제 사이의 간극이 극단적으로 큰 정부이기도 하다.


 그의 집권 시기 동안 서민들의 삶은 크게 붕괴하였고, 국제적인 활황과 부동산 폭등에 맞물려 GDP는 크게 올랐지만 경기가 가라앉고 잠재성장률이 크게 저하되었으며 기조적인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또한 그는 의도적으로 정적이 속해있던 현대그룹을 제거하고 노골적으로 삼성의 편을 들었으며, 온갖 민영화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친재벌, 신자유주의 정책을 폈으며, 통찰력과 소통이 부족했고 오만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그의 일화들을 보면 어릴 때부터 성품이 바르거나 개념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어릴 때 잘 사는 친구의 가방을 몰래 칼로 찢어발긴다거나, 20대엔 지나가는 아낙네에게 성희롱을 한다거나, 노출을 한다거나 하는 문제행동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의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성품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고쳐지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나 공격적으로 행동해서 온갖 적들을 만들 걸 보면. 적어도 정치인은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


 결국 그는 마지막까지 고건의 발목을 잡으면서 자신의 편을 거의 모두 잃고 만다. 결과적으로 그는 죽음을 선택하게 되었고, 이후 친노-깨시민-노빠 세력은 근본주의적 종교집단의 행태를 보이며 역사왜곡을 강행하고 있다. 영화 ‘변호인’이 너무 흥행하는 걸 보면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5위) 김영삼 정부


 전두환-노태우-김영삼으로 이어지는 세 대통령에 대한 별명은 각기 ‘돌, 물, 깡’ 이라고 한다. 셋 다 그들의 언행과 품성을 잘 나타내는 단어다. 깡03은 집안의 재력과 패기와 깡으로 민주화를 이룩하고 그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는 머리가 나쁘기로 소문나 있기도 하다.


 3당 합당 이후 땡깡으로 민자당 대통령 후보가 되고, 평생의 라이벌인 김대중을 꺾은 그는 이후 노태우에게 처절한 칼날을 휘두른다. 이런 뒤통수치기는 이후 한 때 그의 적자 격이었던 노무현이 그대로 반복하기도 하는데, 손을 잡을 때는 미리 상대의 성품을 봐야 하는 법이다.


 흔히들 김영삼의 업적 중 하나회 척결을 높이 평가하는데, 그 속사정은 나름 복잡하다고 알고 있다. 굳이 보자면 경북 기반의 하나회를 제거한 대신 경남 기반의 모 조직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는 식으로 들었다. 물론 그 조직의 문제 정도가 하나회 수준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한국 군대도 문제 많다는 건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김영삼이 기존 군부를 제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좋은 군대를 만든 것도 결코 아니다.


 그는 박정희가 한 건 다 문제가 있다는 듯 행동했다. 그래서 매우 강력한 신자유주의 노선을 걸었다. 개방, 개방, 개방... 그의 신자유주의 행보에 견줄 수 있는 정부는 노무현 정부뿐이다.


 그의 무리한 금융경제개방과 치적을 쌓으려는 태도는 결국 IMF 외환위기라는 엄청난 비극을 가져온다. 전후 45년간 한국인들이 피땀으로 일군 자본과 기득권의 정말 많은 부분이 그에 의해 무너졌다.


 IMF는 한국 경제에 어떤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기에 왔던 비극이 아니다. 그저 정부가 관리를 잘못하고, 섣부른 금융개방을 추진하면서 위기에 안일할 때 어느 정도의 비극이 찾아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세계적인 사례일 뿐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IMF를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던 한국 경제에 대한 필연적인 심판’ 정도로 포장하려 들고, 이런 경향은 역시나 신자유주의적인 친노 깨시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진실이 아니다. IMF가 오기 불과 1년 전만 해도 한국 경제는 성공신화 속에 있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시절의 호황기를 한국은 아직도 되찾지 못했다. 한국 브랜드나 기업은 엄청나게 성장했지만, 김영삼 이후 한국이 이룬 성과는 한국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덤) 박근혜정부


 항상 ‘박근혜정부’라고 붙여 쓰려니 힘들다.


 현재까지 박근혜정부에 대한 개인 평가는 김대중 정부와 유사한 수준이다. 이명박 정부보다는 확실히 낫다고 느끼고 있고, 그렇다고 노태우 정부 수준은 아니다.


 나는 박근혜정부가 다소 과감함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경우에 안전주의적인 선택을 하는 것으로 보이곤 한다. 그러나 정치력이 모자라지는 않고, 납득 가능한 수준에서 행동하는 편이다. 이런 면에서도 김대중 정부와 유사하다. 선거 후 1년이 지나도록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역시 유사성이 있다.


 다만 나는 박근혜정부가 힘을 많이 쓸 수 있는 초반에 이룬 게 좀 적지 않나 우려하는 면이 있다. 정부는 대선 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힘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아직까지는 별 가시적인 문제가 없지만, 5년 단임제의 한국에서 성공적인 통치를 하려면 빠른 각종 조처들이 불가피하다.


 아직 박근혜정부는 만 4년 1개월 정도에 해당하는 임기가 남았다. 이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을지, 성공한 정부로 평가받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올해에 많은 것들을 해내야 한다. 선거의 여왕이 통치의 여왕이 될 수 있을지는 거의 올해 결정될 것이다.





- 마무리하며


 사실 안타깝게도 민주화 이후 87년 체제에서, 각각의 정부들은 대체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냉정하게 이야기해 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 출신 인사들의 정치가 훨씬 성공적이었다. 물론 군바리 정치가 수많은 문제점과 단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막상 성적표를 놓고 보면 군인들이 더 잘한 면이 너무 많다. 박정희 이전의 이승만과 윤보선은 최악의 대통령들이었고.


 정말 좋아할 수는 없지만, 일베충들이 ‘민주화’를 부정어로 사용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하위 중 하위문화에서 말하는 것들은 대체로 현실을 반영하는 면이 있다. 그것이 바람직하다거나 옳다거나 그런 문제는 아니다. 사회적인 기본 현상 중 하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익보다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유교 선비스타일 수꼴들이 너무 많은 것을 망쳐 놨다. 민주주의는 그런 게 아니다. 민주주의의 민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자기 맘대로 전용하면서 생겨난 문제가 정말 크다. 민주주의는 밥을 먹여주고 돈을 벌게 해줘야, 그리고 재미있게 해줘야만 하는 제도다.


 각 정부들의 실패엔 미국 유학파들이 앞뒤 분간을 못한 탓도 크다. 뭐가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하지 못하고, 미국에서 배운 대로 하다 보니 너무 많은 것을 망쳐 놨다. 그들은 미국에서 배운 걸 한국에서 또 그대로 가르치고 발언하면서 문제를 엄청나게 키워 놨다. 어디에나 공부만 잘 하는 돌대가리 멍청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민주주의는 좋은 제도이지만, 반드시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역사상 수많은 민주주의가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허울뿐인 민주주의가 유지되는 곳도 있다. 나는 모든 정치체계는 근본적으로 각자의 권익과 안전을 위한 것이라 여긴다. 그것이 잘 지켜지는 체계가 좋은 체계다. 각각의 사람들이 과거와 현재를 냉정하고 바르게 평가할수록, 정치는 더 성공적으로 나아갈 확률이 높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영논리와 아집과 각종 관념의 울타리들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87체제의 각종 실패들은 시민들의 삶, 특히 젊은 사람들의 희망을 너무 많이 빼앗아갔다. 그 결과 한국은 눈부신 성장을 하는 동시에 큰 잠재성장률 하락을 겪고 낮은 출산율을 가진 국가가 되었으며, 너무 많은 사회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더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크게 위협받기 마련이다. 깨시민과 일베충이라는, 서로 적대적이지만 너무나 많은 부분이 닮은 파시스트들이 온라인 세계를 온통 잠식한 것도 정치의 실패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정치의 성공이란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인터넷에서 야권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 절대 다수는 친노다. 좀 더 제대로 표현하자면 ‘친노주의’적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대부분 그들은 친노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친노가 그 어떤 다른 세력보다도 낫다고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친노가 잘못을 좀 저질렀기로서니 그들의 적인 새누리-친일파보다는 훨씬 낫지 않느냐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런 의문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참고 자료를 제시하고자 한다. 친노가 그 동안 해 온 업적과 잘못을 좀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애초에 친노가 왜 태어났는지,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리고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와 헌법은 1987년의 민주화로 탄생되었다. 그래서 현재의 체제를 87체제 및 제 6공화국이라 한다. 그러나 이 87체제는 시작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민주화의 두 영웅, 김대중과 김영삼이 단일화를 이뤄내지 못함에 의해 전두환의 친구였던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당시에 민주화 항쟁을 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극심한 정신적 피해를 입었고, 그 때 정신줄이 나가버린 사람은 그야말로 셀 수 없이 많았다. 당시 노태우의 득표율은 36.6%에 불과했다. 그리고 김영삼과 김대중이 각기 28%, 27%을 나눠 먹었다. 단일화를 했다면 절대로 질 수 없는 선거였다.


 그러나 이 87년의 오점은 이후 흑역사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는 김영삼의 3당 합당으로 한 단계 진화하고야 만다. 김영삼은 민주화 세력의 반을 이끌고 박정희 잔여 세력 및 전두환 잔여 세력과 합치고 만다. 그리고는 92년에 평생의 동반자이자 라이벌이었던 김대중을 꺾고 대통령이 되면서 미래로 이어질 단단한 흑역사의 구도를 완성 짓는다.


 이 때 김대중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것은 단순한 좌절 탓은 아니었다. 87년의 패배엔 김영삼보다는 그의 책임이 더 컸다. 3당 합당을 저지른 것은 김영삼이었지만, 김대중도 그럴 만한 배경은 제공한 상태였다. 그리고 김대중의 적들은 김대중을 두려워했다. 그는 완벽한 인물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너무 큰 인물이었다. 이때의 비극은 5년 후에 반전 드라마가 되긴 하지만, 그가 정치에서 떠나있던 동안 민주화 세력은 참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


 또한 3당 합당이 일어나던 시기에 세계사도 큰 변화가 있었다. 도이칠란트가 통일되고,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고, 중국 또한 본격적으로 자본주의의 길로 가면서 한중수교가 대선을 약 4개월 앞둔 시기에 이루어졌다.


 김문수와 이재오는 다들 높이 평가하던 민주화 투사였다. 그러나 이들은 공산주의의 붕괴를 보면서, 자신들이 믿던 가치가 붕괴하는 것을 보았다. 뉴라이트는 믿음의 붕괴로 탄생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180도 선회했다. 그들은 여전히 치열하지만, 과거의 동지들과 함께 하지는 않은 지는 오래되었다.


 손학규가 김영삼의 밑으로 들어간 것은 저 김영삼 정권 때의 일이었다. 그는 민주화 투사였으며 김근태의 친구였고, 김대중을 더 존경했다. 그러나 김대중은 그 때 정계에 없었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김영삼 쪽이었다. 친노들은 아직도 그가 한나라당 출신이었다고 낙인을 찍는다. 그러나 그의 입장에서는 그럴 만 했다.


 김대중이 없는 5년간 민주당을 일으켜보고자 고생한 사람들은 여럿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나름대로의 야심이 있었다. 그러나 5년 후 복귀한 김대중의 거대한 존재는 그들의 지난 노력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김대중은 그들과 충분히 타협하질 못했다. 민주당의 잠재력은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도 충분히 하나가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이 승리한 것은 김종필과의 연합 및 이인제의 이회창 표 나누기, 그리고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상황과 이회창이 영남 출신 후보가 아니었던 배경 등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이후 집권한 김대중은 자신에게 충성했던 측근들을 제대로 챙겨주거나 키워주지 못했다. 그는 위대한 정치인이었지만 현실적인 통치자로 충분히 단련되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또한 그는 이상주의적인 면이 있는 인물이었고, 그가 처한 현실은 현실주의적인 복수를 어렵게 했다. 그는 악을 철혈로 심판하려고 하기보다는 용인하였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필요한 계파와 정당의 발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결과 소위 동교동계는 김대중의 5년이 흐르면서 구태의 상징이 되었다. 김대중조차 막지 못한 측근비리가 터지면서는 더더욱. 그는 한국의 눈부신 민주화와 새로운 번영의 길을 만드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신질서를 만드는 데 실패한 것이다.


 노무현은 이러한 조건에서 대선 후보로 등장했었다. 그의 개인적 정치사도 꽤 복잡한 편인데, 그는 처음에는 김영삼 쪽의 인물이었으나 3당 합당 때 그 유명한 ‘이의 있습니다!’를 외치면서 떠났다. (그 결과 김영삼은 노무현의 장례식에서조차 그를 제대로 추모하지 않았다.) 이후 노무현은 민주당계로 들어갔고, 부산과 종로 등지에 여러 번 출마했으나 두 번을 제외하고는 낙선을 거듭했었다. 2000년엔 종로 공천을 거절하고 부산에 출마했었는데, 여기서도 낙선했지만 결국 이 과정에서 노사모를 얻었었다. 그 후 그는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해수부가 없어진 것과, 이번 대선 과정에서 해수부 이야기가 많이 나온 것은 실질적으로 노무현의 발자취 때문이라 할 수 있다.


 10년 전, 민주당 경선 시작 당시 가장 유력하던 후보는 이인제였다. 지금이야 이인제가 좀 개그 이미지로까지 전락했지만, 그 때만 해도 이인제는 작년의 문재인이나 안철수 이상의 인지도를 지닌 유력 대선 후보였다. 대조적으로 당시 경선에 나선 노무현은 사실 충분히 준비된 후보는 아니었고, 안티 이인제에 가까웠다.


 이인제의 최종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뜻밖의 변수는 여론조사에서 나왔다. 여론조사 결과 노무현이 이회창과의 1:1 구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고, 이후 민주당 경선에서 엄청난 세몰이를 하며 최종 승리에 이르렀다. 한편으로 당시 김해 출신이던 노무현은 영호남으로 갈라진 한국의 지역 구도를 타파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안고 호남의 지지를 받는 영남 후보로 올라서게 되었다. 여론조사가 정당 정치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 이 때였다.


 그러나 경선을 승리한 노무현이 대선을 맞이하기엔 아직 긴 시간이 남아있었다. 당시 민주당의 경선은 4월 말에 끝났고, 대선까지는 무려 8개월이 남은 상황이었다. 더구나 그 중간의 여름엔 지방 선거와 한일 월드컵이 끼어 있었다. 거기에 더해 노무현은 쉽게 말해 갑자기 툭 튀어나온 후보에 가까웠다. 노무현은 호남 출신도 아니었고, 명성도 다소 부족했고, 기반도 충분하지 않았다.


 당시에 노무현을 견제했던 민주당 사람들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정치는 현실이고, 현실적인 조직에서 갑자기 위로 확 올라와 튀는 사람이 있으면 견제하는 게 사람 심리다. 특히 한국은 그런 문화가 강하다. 그리고 노무현은 기반이 충분하지도 않았고, 그런 현실에 적응하기보다는 그런 현실과 맞서는 사람이었다.


 노무현 같은 유형의 사람이 실질적으로 최고 지도자에 오르는 것은 인류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그리 흔한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발달한 문명과 기술, 그리고 노무현이 가진 정치인으로의 매력은 그런 낮은 가능성을 실현시켰다. 노무현은 21세기식 통신 테크놀러지를 활용해 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자신의 매력을 어필했고, 이후 벌어진 각종 갈등들을 정면으로 맞상대했다.


 당시 야권의 갈등은 심각했다. 반대쪽의 상수로는 이회창이 있었고, 야권은 시끄러웠다. 심지어 민주당 경선 당시엔 박근혜조차 이인제와 연대할 가능성이 있었다. 2002년 4월에 박근혜는 이회창에 반대하여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후 신당 창당 작업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때 DJ 정부 출신인 김종필도 연합할 수 있었다. 이는 당시 대선 레이스의 중대 변수였다. 이후 박근혜는 정몽준과 연대하여 제3의 세력을 만들려다 실패하고 10월에 한나라당으로 돌아가게 된다. 박근혜는 이로 인해 많은 것을 배웠고, 이후 2007~2008년에는 모든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가 만약 또 한 번 한나라당에서 탈당했었다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인제는 경선 패배 후 결국 민주당을 탈당했다. 노무현이 이끄는 민주당은 6월의 지방선거에서 참패했고, 노무현은 그 책임을 져야 했다. 그는 재신임 투표를 이야기했지만, 민주당의 반노 세력은 노무현의 퇴진을 요구했다.


 친노와 반노라는 갈등의 싹은 이미 이 때 틔어졌다. 노무현이 민주당에서 기반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정당 기반의 대의민주제라는 체제를 파괴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민주당이 가진 여러 문제점을 봉합하는 대신, 기존의 정당 체제에 구체제라는 도장을 찍었다. 그 대신 온라인을 이용한 준-직접 민주주의를 추구하였다. 이는 노무현 집권 내내 일어난 현상이었다. 아직도 온라인에 가득한 친노주의자-깨시민들의 의식은 저 노무현식 프레임의 연장선상이나 다름없다. 노무현은 저게 옳은 길이라 믿었던 것 같지만, 저것은 현실적으로 무모한 시도였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본인에게는 이익이 되는 사고방식이기도 하였다.


 애초에 당시의 민주당에는 갈등의 씨앗이 심어져 있었다. 정당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면, 김대중을 보좌했던 사람들이 민주당에서 충분한 대접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사람들은 계파와 정당, 인물 중심이라는 현실 정치의 여러 요소들을 무시하기에 바빴다. 그들은 군사정권을 부수는 데는 전문가였지만, 어떤 것이 현실적으로 훌륭한 정치 구조인지를 성찰하는 데는 모자람이 있었던 것 같다.


 헌신과 노력이 정당한 보답을 주지 않을 때 사람은 좌절하고 분노한다. 이는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정치인들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오직 사회와 정의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굉장히 폭력적인 발상인 동시에 비현실적이고도 도덕주의적인 관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김대중은 험한 시대를 헤쳐 나갔고, 워낙 많은 짐을 지고 있었기에 모든 행동에 있어 충분히 가벼울 수가 없었다. 그 무거움은 주변 사람들을 버겁게 했고, 분열의 씨앗을 낳았다.


 노무현은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할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지 않았다. 애초에 그러기 힘든 위치이기도 했지만, 애초에 그는 본인이 믿는 바에 충실한 사람이었고 그의 관념 속에 소위 ‘구태정치인’들은 들어있지 않았다. 그는 국민을 소환하여 구태정치인과 싸우는 소환술사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전쟁은 시작되었고, 그는 정몽준을 꺾고 이회창을 꺾었다. 그러나 그의 승리는 기본적으로 엄청난 갈등의 싹을 안고 있었다. 너무 많은 적을 만들었던 것이다.


 잘나고 윤리적인 인간이 타인을 이해하려면, 우선 보편적인 인간의 모자람과 어리석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최소한의 관용이 생긴다. 그러나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이걸 잘 하지 못하기에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곧잘 관념의 척도로 사람을 상상하고 재단한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보기엔 노무현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보통 사람의 욕망과 질투, 추악함, 어리석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면해버렸다. 그는 사람을 믿어주면 보답한다는 식의, 손을 내밀면 잡아줄 거라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불행하게도 대통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