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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왜 신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인류 2017. 9. 20. 12:25 Posted by 해양장미


 나자렛 예수는 크리스트교에서는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신의 아들이자, 메시아이자, 성부와 같은 페르소나라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현대인들이 들으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지요. 만약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다 가정한다면, 남신+여인이니까 잘 봐줘도 반쪽짜리 신 아니냐고요.

 

 본문에선 옛 사람들이 왜 예수의 신성을 인정하기 쉬웠는지, 과학기술의 발전이 어떻게 여권을 성장시킬 수 있었는지, 사람들의 인식이 과학의 발전으로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많은 것이 하나의 오해에서 비롯됩니다.실 옛 사람들은 정액 속에 이미 완성된 작은 사람이 들어있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작아서 안보인다고, 그런 식으로 생각했지요.

 

 이 작은 사람을 부르는 라틴어가 연금술과 창작물에서 많이 언급하는 호문쿨루스입니다. 다만 옛 사람들은 이 호문쿨루스가 성장하려면 모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여성의 역할은 호문쿨루스를 몸 속에서 키워 낳고 젖을 먹여 성장시키는 거라 생각했지요. 현미경으로 처음 정자를 발견했던 사람들은 호문쿨루스를 드디어 관측했다고 기뻐했었다고도 합니다.

 

 말 그대로 남성은 씨를 만드는 존재요, 여성은 그 씨를 키우는 밭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창작물에서 연금술사들이 유리병 속에서 호문쿨루스를 키우는 건, 별다른 게 아닙니다. 기술이 발달하면 정액 속의 호문쿨루스를 여자 몸이 아니라 유리병 속에서도 키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지요. 요즘 기준으로 생각하면 시험관 아기를 대리모가 아닌 인큐베이터에서 키우려는 것이니, 별로 황당한 발상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런 오해는 과학적, 의학적으로는 별로 심한 오해는 아니었습니다. 현미경이 발견되고, 난자를 관측하고, 수정과 착상을 이해하게 되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지요. 다만 이 오해는 문화에는 당연하리만큼 큰 영향을 줬고, 오해가 풀린 후에도 큰 영향을 줬습니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동정녀 마리아는 성령에 의해 잉태했다고 합니다. 그 경우, 옛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예수는 반쪽짜리 신이 아니고 온전하게 신성을 가진 겁니다. 마리아의 역할이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거랄까요. 생모가 아니라 대리모인 겁니다. 그래서인지 성모공경은 성모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고, 성모의 원죄 없음만을 인정합니다. 물론 과학적으로 보면 만약 동정녀가 아이를 낳으면 자신의 클론, 그러니까 연령차 나는 일란성 쌍둥이가 나올 뿐입니다만.

 

 그리고 이런 인식체계에서 가부장제는 당연한 겁니다. 생모라 해봐야 현대인들 마인드로는 대리모 같은 거고, 자식들의 씨는 온전히 아버지의 것이니까요. 현대인들이 보기엔 좀 웃긴 이야기지만, 중세 세계관에선 여자는 번식능력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기술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전하고, 사람이 어떻게 생겨나는지가 밝혀졌지요. 이후 어머니는 기존과 다른 위상이 되었습니다. 현대 페미니즘은 모성에 대해 부정적인 경우가 많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여권의 상승은 진짜 모성의 발견으로 이루어진 면이 큽니다.

 

 자녀의 씨가 온전히 아버지의 것이 아닌 것이 알려진 이상, 호문쿨루스가 고환이 아닌 자궁에서 생성된다는 게 알려진 이상 가부장제는 금이 가기 쉬운 것이 되었습니다. 중세적 세계관에선 여성이 혈족의 이름을 주도할 수 없었지만, 현대 세계관에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도 되니까요. 자녀의 생모는 보다 중요한 것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세계관의 큰 변화가 온갖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인식의 전환이 아동양육에 준 영향이 클 거라 생각합니다. 전근대적 세계관에서, 어머니는 자녀들을 남자의 아이로 볼 수 있었습니다. 전근대엔 흔했던 원하지 않는 임신일수록 자녀를 보는 눈이 나빴겠지요. 그런데 과학의 발달 이후 그게 어쨌든 내 아이가 된 것입니다. 물론 모성은 자연스러운 것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인식이 달라진 건 영향을 줬을 것입니다.

 

 그 영향일까요. 실제 현대에 들어 자녀를 키우는 방식이 바뀌고, 아동보호라는 개념이 생겼습니다. 사실 전근대엔 현대처럼 아동이 보호받거나 귀히 대접받지 못했거든요. 현대인들은 인류사에 전례 없을 정도로 너무 귀하게들 커서 문제인 것 같기도 합니다만.


여성의 안전과 남성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

사회 2016. 5. 30. 15:59 Posted by 해양장미

 이 이야기를 자세하게 하면 밑도 끝도 없어서 조금 러프하게 이야기합니다.

 

 과거의 남성과 현재의 남성을 비교해보면, 의외로(?) 현재의 평균 남성이 압도적으로 평화적입니다. 현대 한국 소년 중 랜덤한 한 명을 200년 전의 세상에 던져 놓는다면, 굉장히 높은 확률로 계집애 같다는 소리를 듣기 알맞을 겁니다.

 

 현대화된 남성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많이 여성화되었습니다. 문화적/정서적인 면만 그렇게 된 게 아닙니다. 신체적으로도 옛날 남성에 비해 작은 턱, 체격대비 더 약한 근력, 보다 여성화된 얼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디까지나 평균 이야기입니다만, 인류의 수명 대비 꽤 빠른 속도의 변화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추세대로 수백 년쯤 지나면 미래 남성들은 현재와는 꽤 다른 모습 및 문화양식을 지닐 확률이 낮지 않습니다.

 

 이런 변화가 왜 일어났을까요? 사견으로는 적어도 많은 부분은 여자들의 작품입니다. 과거에 비해 남자아이들은 어머니, 여성 교사 등 여자와 매우 오랜 시간을 보내고 교육받습니다. 이 기간에 두뇌 시스템의 대부분이 자리 잡고, 후성유전적인 많은 것들도 결정됩니다. 그리고 산업 사회 이후 여성들의 남편 선택 권한이 증가함에 따라, 그리고 근래 들어 사회가 평화롭고 풍요로워짐에 따라 여성들이 보다 예쁘장하게 생기고 가정적인 남자를 선택하는 양상이 생겼습니다. 유전적인 단계에서도 일종의 자연선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과거대비 여성화된 남자들, 남녀는 평등하다고 교육받은 남자들은 옛날 남자들 같은 소위 기사도 같은 게 별로 없습니다. 옛날 남자들보다 여자들에게 더 계산적으로 굴고, 쉽게 여자를 무서워하며, 성차로 인해 손해 보는 것 같은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사실 인류사를 되돌아보면 남성에게 자연 선택적 압력을 가하는 것은 여성이었습니다. 인간 특유의 특질 중 많은 부분은 양성 중 여성에게서 기인하였을 확률이 높습니다. 인류 특유의 부성애와 미래예측, 종교적 행위 등은 여성에게서 시작되어 남성에게로 전파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남성에 비해 애매하고 불분명하게 표출되곤 하는 여성의 성욕과 구애 행동은 여성의 강력한 협상 카드가 되었고, 남자를 여성의 공간인 가정에 끌어들였습니다. 부성애는 친자확인 문제 때문에 일부(일처 또는 다처) 가부장제가 정착된 후 자리 잡혔다고 할 수 있지요.

 

 과거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를 여성에 대한 억압 체계로 인식했습니다. 이런 인식은 지금까지도 다수의 여성주의자들에게 이어지고 있지요. 그렇지만 과학적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자연적으로 남성은 가부장적 특성이 강하지 않습니다. 인류의 강한 부성애는 포유동물 중에서도 이례적인 편이지만 그래도 통상 모성애만큼 강하지는 않고, 대부분의 남자는 여러 여자와 관계 맺길 원하지 한 여자에 평생 정착하는 것에 완벽하게 만족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일부일처 가부장제 모델을 좋아하는 것은 여성 쪽입니다. 믿음직스럽고, 돈 잘 벌고, 문제 해결 능력이 좋으면서 가정에 충실하고 아이들에게 잘하는 남편을 원하잖아요.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이 가부장제 코르셋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여자들이 남자를 저런 데 협조적으로 만드는 데는 최소 수천 년, 아마도 수만 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가부장제 아래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이 상당한 수준으로 있긴 했습니다만, 그 모델은 딱히 남성이 만든 건 아니며 남성들이 가부장제에서 받아온 압박도 상당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근래 들어 생긴 성 갈등 양상은 오히려 가부장제의 파괴에서 시작된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가부장제의 파괴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만, 여러 외부적 요인들을 후순위로 제치고 이야기하자면 이젠 여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남자들도 가부장제를 거부하고 있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가부장제의 거부의 한 요인으로 저는 남성성의 약화를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적 남성성이 그 동안 여성들이 남자를 가부장제에 묶어둘 수 있었던 주된 이유였다면, 남성성이 약화됨으로 남자들이 가부장제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쉽게 예를 들 수 있는 게 초식남이지요.

 

 나는 초식남 현상에 대해 좋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도덕적인 문제라는 게 아니고, 그 배경과 원인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초식남 현상으로 대표되는 남성의 여성화가 여성들에게 상당한 진화적 압력을 넣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즉 여성도 기존 체계에서 누리던 일련의 권리를 상당 부분 포기해야하는 상황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무가 줄어드는 대신 말입니다.

 

 한편으로 나는 여성주의 활동 가운데서도 가부장제에서 여성이 누리던 특권을 지키려는 움직임을 종종 발견합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건 당연한 것입니다만, 페미니즘이라는 큰 범주에서 보면 논리적 모순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페미니즘은 잘 정리된 일련의 가치 체계가 아니긴 합니다만, 이권을 추구하기 위한 모순이 반복되는 한 페미니즘 이미지가 좋아질 일은 별로 없습니다. 이건 나름의 대안이 필요하겠지요. 이 이야기는 자세히 풀면 복잡하니 나중에.

 

 여하튼 현재의 상황은 대략 이렇습니다. 여성의 권익이 향상되고 덜 차별당하고 더 안전해지는 만큼, 다수의 여성이 기존의 남성들에게 원했던 만큼의 믿음직스러움과 강인함, 가정에 대한 책임감, 호혜적 태도 등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모든 걸 얻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남자들은 점점 더 예쁘장해지고 다정다감해지는 동시에 (어머니를 포함한) 여자에게 더 의존하려 들 겁니다. 물론 평균적인 이야기고요. 소위 찌질남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겁니다. 줄어들 일 없을 거예요. 그래도 여자들이 겪을 평균적 위험성은 낮아지겠지요. 아직도 많은 여자들은 남자에게 바라는 수많은 로맨스들이 있지만, 그것을 충족하기란 확률적으로는 점점 어려워질 겁니다. 추세가 유지되는 한은 말입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는 남성이 받는 차별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많이 나올 겁니다. 현재 제도적으로는 여성이 우대받는 부분은 많고, 손해 보는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이 상황은 소위 역차별의 여지가 많아서, 계속 이어질 거라곤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남성들의 반발은 시작된 지 오래고, 상황이 돌아가는 추세를 고려해보면 아직은 수면 밑에 있는 남성차별 논란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는 이런 상황 전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긍정적이긴 합니다. 미래의 인류는 과거의 인류에 비해 많이 진화할거고, 더 나은 생활양식과 삶을 가져야 할 테니까요. 개개인의 독립성과 자유가 늘어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대적 변화는 기존에 가졌던 걸 잃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모두들 생각해볼 필요정도는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