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모델

운동 2022. 12. 25. 00:48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youtu.be/lONcHpO2MEw

 

 

 

 

 

 

 

1) 2014년에 메시가 눈앞에서 월드컵을 놓치는 걸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8년은 긴 세월이었고, 여느 신화가 그러하듯 운명이 메시에게 과도한 시련을 부여한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최고의 경기를 통해 이 신화가 완결되었습니다.

 

 축구실력 자체로 보면 이미 10년도 더 전에 메시는 역대 다른 그 어떤 선수와도 다른 레벨에 있었습니다. 대표팀을 제외하면 이미 10년쯤 전에 모든 걸 이룬 선수였고요. 그러나 대표팀에서는 잘 풀리지 않았었지요.

 

 바르셀로나에서 최고가 되었던 메시는 꽤나 높은 위치에서 플레이하는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에서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메시에게 마라도나같은 플레이를 요구했지만, 메시는 마라도나와는 많이 다른 유형의 플레이어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마라도나와 같은 플레이를 해줄 필요가 있었고, 아르헨티나에서 그걸 가장 잘 할 수 있는 선수는 메시였기에 메시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어야 했지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 문제는 조금씩 해결되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메시는 어릴 때 가지고 있던 초현실적인 속도를 잃어버렸고, 대신 킥력이 늘었습니다. 그리고 팀동료들의 성향 및 소속 클럽팀의 상황이 변하면서 점차 더 아래로 내려오는 플레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위치는 대표팀에서 본래 메시가 뛰었던 위치와 같았기에 점차 그 플레이에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절대적인 기량 자체가 전성기에 비하면 많이 내려오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축구를 잘 하는 선수는 메시고, 그것은 메시 외의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축구팬들은 다 알고 계시겠지만, 지난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와 프랑스는 16강에서 만났었습니다. 그 때도 4:3의 치열한 난타전 끝에 프랑스가 올라갔고, 결국 프랑스가 우승하지요. 프랑스가 우승하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상대가 아르헨티나였습니다.

 

 그렇기에 아르헨티나의 이번 우승은 더더욱 특별했습니다. 결승이 4년 전의 리벤지 매치이기도 했거든요. 준결승 상대는 지난 대회 준우승팀인 크로아티아였고요.

 

 음바페는 결승에서 무척이나 인상적인 활약을 했습니다. 페널티킥으로 두 골을 넣긴 했지만 어쨌든 해트트릭이고, 필드골 득점이 레벨이 높았지요. 월드컵 결승임에도 두려움이 없는 것 같은 투지가 인상깊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결승이 메시의 대관식이 아니라 음바페의 대관식이라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메시는 이제 승천했잖아요? 다만 나는 음바페가 아직 왕관을 쓸 정도의 선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 루니가 지금의 음바페보다 더 잘했어요. 음바페가 루니보다 성실해 보이긴 합니다만. 재능은 루니가 더 뛰어났습니다.

 

 

 

 

 

 

 

3) 이번 월드컵 이전 나는 본 블로그에서 우리나라 성적은 별로 좋지 못할 것 같다. 우승팀은 잘 모르겠지만, 메시가 월드컵을 들었으면 좋겠다.’ 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예상보다 성적이 좋았고, 메시가 월드컵을 들었으니까 기쁜 결과입니다.

 

 우리나라가 예상보다 성적이 좋았던 건, 전술적인 면은 물론이고 선수 기용에 있어서도 무척이나 고집스럽던 벤투가 마지막에 고집을 좀 꺾어줬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호날두의 노쇼 손해배상이 있었고요. 2010년엔 야쿠부의 자비로 우리나라가 16강에 갔었는데, 이번에는 호날두의 배상으로 16강에 갔습니다.

 

 다만 나는 우리나라가 16강과 이 스타일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브라질에게 대패한 것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크로아티아는 브라질을 승부차기로 꺾고 올라가 3위를 했는데, 일본도 크로아티아와 비겼고 승부차기에서 떨어졌습니다. 일본이 브라질과 경기했다면 우리처럼 대패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크로아티아는 지난 월드컵에서도 멋진 팀이었지만, 이번에도 그러하였습니다. 크로아티아 대 모로코의 34위전은 마치 그 스타일이 과거의 이탈리아 대 브라질과 같았는데, 그러한 경기 양상은 약간 변형된 형태로 결승에서도 전개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와 크로아티아 사이에 스타일상의 공통점이 있었지요. 프랑스는 모로코와 유사성이 있었고요.

 

 나를 감탄하게 만든 건 크로아티아와 아르헨티나 쪽이었습니다. 결승전의 아르헨티나는 일방적인 경기를 하다가 한순간의 실수와 음바페의 대활약으로 다 잡은 경기를 놓칠 뻔하긴 했습니다만. 우리가 본받아야 할 쪽이 어딘지는 명백합니다.

 

 

 

 

 

 

4) 나는 축구 전략전술을 지공이냐 속공이냐, 경기장을 넓게 쓰느냐 좁게 쓰느냐를 관건으로 봅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이 핵심을 잘 모르면 엉뚱한 전략전술이 채택되고 축구 팀이 비효율적인 플레이를 펼치게 됩니다. 문제는 이에 대해 개념을 잘못 잡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아스날에서 뛰던 시절, 벵거의 아스날과 펩의 바르셀로나가 비슷한 스타일의 축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만, 두 팀은 전혀 다른 스타일의 축구를 하는 팀이었습니다. 벵스날은 이상적인 속공을 추구하는 팀이었고 펩바르싸는 극단적인 지공을 하는 팀이었지요. 특히 역대 최강팀으로 꼽히는 2010-2011시즌의 펩바르싸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후 속공에 특화된 세스크가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면서 바르셀로나의 팀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지요. 세스크한테도 영 좋지 못한 이적이 되었고요.

 

 어떤 팀에 지공이 어울리느냐, 속공이 어울리느냐는 일차적으로는 팀 선수들의 평균 신장이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조건이 같다고 가정할 때, 단신 선수는 정지상태에서부터 가속이 빠르고 장신 선수는 상대적으로 가속은 느리지만 탑스피드가 빠릅니다. 몸을 돌리는 선회력이나 기술을 컴팩트하게 쓰는 것도 단신 선수가 유리합니다. 대조적으로 장신 선수는 당연히 제공권이 좋고요.

 

 그래서 팀에 키가 작은 선수가 많을수록 공격을 루즈하게, 길게 끌면서 볼소유시간을 늘리고 최대한 서로 정지된 상태에서 플레이를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게 좋습니다. 단신 선수가 장신 선수보다 가속이 빠르기 때문에, 서로 정지한 상태에서 달리기 시작하면 단신 선수가 유리합니다. 방향전환이 많아도 단신 선수가 유리합니다. 이 원리를 극단적으로 잘 살렸던 게 10-11 시즌의 펩바르싸였습니다. 어렸던 메시가 걷는 수준의 속도에서 볼을 소유하고, 가속을 붙일 때 그 속도를 잡을 수 있는 선수는 세상에 아무도 없기도 했지요. 어린 시절의 메시는 탑클래스 단거리 육상선수 수준의 가속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축구선수가 따라갈 수준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양팀이 경기장을 종적으로 넓게 쓰면서 서로 치고받는 경기가 되면 장신 팀이 단신 팀보다 매우 유리해집니다. 탑스피드는 장신 선수가 빠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계로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경기장에서 직관을 하면 장신의 수비수들이 달리기가 매우 빠른 걸 볼 수 있기도 하고, 볼을 치고달리는 유형의 엄청나게 빠른 선수들은 대체로 180cm이상의 장신입니다. 음바페 같은 경우 예외적으로 180cm가 안되는데도 이 시대에 가장 탑스피드가 빠른 선수 중 한 명인데, 그래서 현재의 음바페는 가속과 탑스피드가 모두 빠른 선수지만 롱런은 상대적으로 어려울 거라 봅니다. 근력이 좋아서 빠른 거라서요. 그런 선수는 나이 들면 확 느려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제는 펩바르싸가 일으켰던 속칭 티키타카의 유행이었습니다. 펩 과르디올라 본인도 주장하는 거지만, 티키타카는 전술이 아닙니다. 극단적인 지공을 하다 보면 경기 모양새가 그렇게 되는 거지요. 전성기의 챠비, 이니에스타, 메시가 뛸 때는 자연스럽게 그런 경기 모양새가 되는 거였고요. 일본 대표팀이 소위 스시타카를 곧잘 하는 이유도 일본 대표팀의 신체조건과 사용하는 기술 스타일이 그에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2018년 월드컵 참가팀의 평균신장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단적으로 이야기해서 우리나라는 지공을 하면 할수록 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키가 제법 크기 때문입니다. 한국인 자체가 키가 크기보다는 20세기에 우리나라 스포츠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키가 큰 선수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었기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신체조건이 작으면 상대적으로 신체조건이 우월한 다른 나라 선수들을 이기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경제발전이 뒤늦게 된 나라라서, 베이비붐 세대는 평균키가 그렇게 크지가 않습니다. 경제력이 올라오고 잘 먹게 된 86세대 정도부터 키가 커졌지요.

 

 더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종이 아시안이라 백인이나 흑인에 비해 근력이 약합니다. 그러니까 평균적인 가속도가 극단적으로 떨어집니다. 대신 키가 큰 편이라 탑스피드는 괜찮고요.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지공하려고 하면 망합니다. 또한 우리나라 선수들이 쓰는 평균적인 기술 체계도 지공에 전혀 안맞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대체로 속공에 익숙합니다.

 

 

 

 

 

 

5) 그래서 기성용이 뛰던 시대에 우리나라 대표팀 성적이 계속 안 좋았습니다. 기성용은 수비력도 제공권도 나쁜데 공격시에도 지공밖에 못하는 선수거든요. 실력 자체는 대표팀 승선에 어울리는 선수였지만, 기성용을 써서는 성적이 나올 수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성용이 최강희 감독 당시 파벌을 만들고 대표팀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의혹은 넘어가더라도, 카잔의 기적은 기성용이 빠진 가운데 일어났었지요.

 

 이번 대표팀은 그 면에서는 과거보다 많이 나아진 상태였습니다. 정우영, 황인범, 이재성은 기성용보다 훨씬 동적이고 속공 전개가 되는 선수들입니다. 그러나 벤투는 속공을 선호하는 감독이 전혀 아니고, 지공에 집착하는 면이 있는 감독이기에 우리나라 성적이 영 좋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거보다는 우리나라 대표팀이 속공 능력이 좋아진 상태였고, 이강인이 들어간 경우 확실히 더더욱 그렇게 되어 (+호날두가 활약하여) 좋은 성적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볼을 길게 소유하고 지공을 하는 방식의 축구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려면 선수 구성을 보다 단신 위주로 바꿔야 그나마 어울립니다. (이번 대표팀 멤버들의 평균신장은 지난 대회보다 살짝 작아졌고 2010년부터 쳐도 가장 평균시장이 작긴 했습니다만,) 그렇게 하더라도 우리나라 선수들은 인종적인 문제로 인해 브라질리언이나 프랑스, 북아프리카계 선수들처럼 폭발적인 가속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체의 근력이 차이나기 때문입니다. 브라질, 프랑스, 모로코같은 팀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기술도 기술이지만 하체의 강한 근력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우리나라 선수들 중 그렇게 폭발적인 가속과 좁은 공간에서의 테크니컬한 플레이가 가능하던 선수는 박지성 정도입니다.

 

 나는 우리가 이번 월드컵의 크로아티아와 (최근의 월드컵 성적은 영 좋지 못하지만) 이탈리아를 롤모델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메시의 존재를 논외로 한다면 근래의 아르헨티나도 좋은 참조 대상이고요. 이번 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의 플레이는 참으로 예술적이었는데, 크로아티아 선수들의 신체적인 강인함이나 기술적인 완성도는 3위를 할 정도의 구성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축구 지능이 돋보이는 축구를 했습니다. 매 순간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고, 위험을 줄이고 창조성을 발휘하는 축구를 했단 이야기지요.

 

 축구는 머리로 하는 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탈리아가 월드컵 4회 우승을 했던 건 머리를 잘 썼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선수들에게는 북유럽 선수들 같은 신체조건도, 브라질리언같은 기술도, 메시도 마라도나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막고) 더 생각하고 상상하고 창조해내면서 4회 우승을 할 수 있었지요. 사실 우리나라도 인종적 특성을 생각해보면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어울립니다. 아시안의 강점은 추위에 강하다는 거랑 머리가 좋다는 거지요.

 

 문제는 축구 플레이에서 생각하는 플레이가 구현되더라도 그걸 알아볼 수 있는 관중은 소수라는 겁니다. 인기가 별로 좋은 타입이 아니라는 거지요. 예를 들어 라울이 축구를 얼마나 잘하는건지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기술 축구에 대한 판타지가 강해도 너무 강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축구를 브라질처럼 하고 싶어하지요. 그게 문제의 근원입니다. 브라질은 전통적으로 지공하는 팀인데, 역사에 남은 브라질 선수들이 대체로 얼마나 초인적인 발목힘을 가졌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시안은 어지간해서는 그렇게 폭발적인 가속을 할 수 없어요.

 

 

 

 

 

 

 

 

6) 우리나라 선수들은 생각하는 축구를 할 때, 그리고 동적인 플레이일 때 좋은 성적을 냅니다. 그리고 전진해 있을 때보다는 경기장을 종적으로 넓게 쓸 때 강합니다. 내가 벤투 감독에 대해 별로 좋지 않게 생각했던 이유입니다.

 

 물론 벤투는 좋은 선수 관리와 존중을 보여줬습니다. 결과적으로도 16강에 갔으니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습니다. 그러나 16강에 만족해버리면 안 됩니다. 브라질에 대패한 걸 분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본은 16강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리그와 달리 토너먼트 컵 대회는 전력이 높은 팀이 우승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매번 본선에 나가고, 16강 이상도 종종 가고 4강도 가본 나라가 우승을 노리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갈길은 멀지만. 꿈꾸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대체로 누구나 입고 싶은 옷과 실제 어울리는 옷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게 꽤 큰 차이가 있는 경우도 있지요. 우리나라 축구도 비슷한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7) 최고의 월드컵은 막을 내렸습니다. 실질적으로 미국 월드컵인 다음 월드컵은 4년이 아니고, 3년 반 남았습니다. 

 

 날리면 대통령이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