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층의 고립된 정치지지, 아마도 그 한 원인

정치 2019. 10. 13. 12:49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youtu.be/WaPOQacn2qw

 


 

 현재의 30대와 그 아래 연령대는 아주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30대 이상의 연령대는 맞고 자랐다는 겁니다. 부모가 체벌을 하지 않았더라도 학교 교사들의 무분별하고 비인도적인 폭행 속에 자라났고, 대다수의 남성들의 경우 역시나 폭력이 사라지지 않았던 군대에 다녀오기도 했지요.


 

 그래서 30대 이상은 대체로 폭력교사들에 대한 아주 깊은 부정적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랬던 잘못된 세상이 어떻게 고쳐졌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교사들에 의한 폭력을 처음으로 완화시킨 건 김대중 정권이었습니다. 민주진보개혁세력이 교사들에 의해 만연하던 학교폭력을 없앴습니다. 교사들에 의한 폭행이 사라진 현재의 학교가 과거의 학교보다 꼭 좋은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의 1020대는 과거의 교사들이 얼마나 정신이 나간 자들이었는지 잘 모를 것입니다. 30대 이상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인권이 없었습니다. 인권이 침해당한 기억은 30대 이상에게는 보편적인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딱히 부정적인 인식조차 없이, 그냥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학생이 대다수이긴 했습니다만 그렇다 해도 부당하게 일상적으로 얻어맞은 기억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많은 교사들은 1990년대에만 해도 명백하게 감정적인 이유로 학생들을 때리고 학대했었습니다. 본질적으로 폭력을 즐기기 위해 학생을 마구 때리는 교사들도 꽤 있었습니다. 그런 교사들은 자차가 아니면 거리를 다니지 않더라고요.


 

 그랬던 현실에서 당시 보수우파는 이유 없이 두들겨 맞던 청소년들 편을 전혀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한국놈들은 맞으면서 커야 정신 차린다는 무개념한 발언을 공공연하게 하던 자들도 있었는데, 대체로 자칭타칭 보수우파였습니다. 그런 청소년들 편을 들어주던 게 민주개혁세력이었습니다.


 

 마침 21세기에 접어들던 시대는 엄청나게 빠르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90년대에서 00년대는 사회변화가 빠르던 시기입니다. 2010년대는 대조적이라 할 만큼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변화가 더딘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하튼 그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던 청년들은, 교사들의 폭행과 학대를 옹호하고 각종 변화에 뒤쳐진 보수우파를 자격 없다고 판단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 때와는 또 다르지요. 지금은 민주당 간판을 단 자들이 파시스틱할 뿐만 아니라 청년, 특히 청년남성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청년들이 이 정권에 강한 반발을 하고 있는데요. 지금 1020 남성들이 문재인 정권에 대해 느끼는 악감정을 현재의 3040대는 한나라당 세력에 가졌던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좀 든다고 그 나쁜 인식이 쉽게 변하지는 않습니다. 누구나 정치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는 건 아니고, 변한 현실과 상황을 실시간으로 명징하게 인지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편하고 빠르게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20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20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리지만, 배운 것에 어떤 현실이 어긋나는지는 금방 파악합니다. 즉 학생들에게 우리 사회가 올바른 기준을 가르쳤다면, 그 기준에 무엇이 어긋나는지를 판단하는 데는 청년들이 뛰어납니다.


 

 도덕이 붕괴한 사회입니다. 집권여당은 명백하게 부도덕하며, 위선으로 바름을 모독합니다. 그 추종자들은 물론 가장 적극적인 도덕 파괴자들입니다. 현실에 적응하고 익숙해진 어른들보다는 도덕적 지식을 학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들이 보다 더 현실적 부정에 민감하기 마련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존중받는 어른이 되고 싶은 자들은 청년들의 목소리를 수용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귀를 열고 들어는 봐야 합니다. 듣는 귀가 없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면 문재인처럼 늙게 됩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링기오 2019.10.13 14: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역시도 급식생 시절엔 맞으면서 컸습니다. 장구채, 드럼채, 빗자루, 아이스하키채, 여기에 야구 방망이까지...맞는 것도 기분나빴지만, 맞으면서 들은 막말들은 더 기분나빴고, 기억에도 오래 남았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음악 선생이 한 막말은 지금도 종종 떠오르네요. 그때마다 기분이 더럽구요.)

    그런 제가 이젠 쌤으로써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상대하다보니 참...많은 생각이 듭니다. 교육 트렌드가 바뀌면서 학생들의 인권이 매우 좋아진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가끔은 아이들이 너무 오냐오냐 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부모들도 너무 자기 자식밖에 모르고, 안하무인이란 생각이 들고요.

    여기에 수험생 시절, 그리고 임고준비생 시절 정부의 교육 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고 전교조 교사들의 도를 넘는 행동들을 접한 저로써는 김대중에 대해서는 고마운 마음이, 노무현에 대해서는 아쉬운 마음이, 문재인에 대해서는 더러움과 역겨움과 메스꺼움이 들수밖에 없네요.

    마지막 말씀이 소름끼치네요. 말씀하신대로 20대 청년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고, 그들 입장에서 더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그분처럼 되긴 싫으니까요.

    • 해양장미 2019.10.13 16: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교육현실에 대해서는 복잡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도 '현재의 학교가 과거의 학교보다 꼭 좋은지 나는 잘 모르겠다'고 기술하였습니다.

      학생인권 향상은 그 긍정적인 부분 못지않게 전교조가 드세지는 등 각종 부정적 요소도 함께 가지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학생들이 느끼기엔 부정적인 게 잘 와닿겠지요.

  2. 2019.10.13 17: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해양장미 2019.10.13 17: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체벌은 없앴는데 그것을 대체하고 뒷받침 할 만한 제도적 보완이 미비한 것 같습니다. 관련하여 적극적인 보완책이 필요한데, 정치적인 갈등과 만인의 무관심으로 인해 잘 되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민주 사회는 서로 다른 입장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이해하고 타협하고 살아가는 사회여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어지간히 이상한 이야기가 아닌 이상, 적어도 상대의 이야기가 합리적이거나 자신의 입장을 잘 표현하고 있다면 일단 들어봐야 합니다. 듣는 게 먼저입니다. 듣고 싶은 것만 듣다 보면 누구나 각자가 가장 싫어하는 대상을 닮아가게 됩니다.

  3. 가챠가챠 2019.10.13 18: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제와는 관계가 없을 수도 있으나 본문 내용 중에서 약간의 옥의 티라고 보면 20대 중반 이상은 아마 선생님들에게 많이 맞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경기도의 경우 (제가 경기도에 살았기 때문에 말씀드립니다.) 학생 인권조례가 통과된 것이 2010년경이었고,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저도 그 인권조례 이후에는 좀 많이 덜 맞았던 기억이 나네요.. 뭐 그전에는 얼굴에 손 날라가는 건 다반사 였지만요, 그 이후로 선생님들도 이제는 한대 맞고 끝나는게 아니라 행정적으로 (벌점이나 징계 등)제약을 가할 수밖에 없다고 했고 한국사회가 특유의 정문화와 점점 이별하는구나 생각도 했습니다.

    • 해양장미 2019.10.13 18: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인권조례 통과 이전에는 그래도 꽤 맞았다는 이야기가 많긴 한데, 그것도 이해찬이 교육부장관하기 이전에 비하면 평균적으로 교사의 폭력이 제법 줄어든 것이긴 했습니다. 이해찬 때 교사들 폭력 사용하지 말라고 공문 내려왔고, 체벌 관련해서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고, 반대 의견이 대두되고, 동시에 핸드폰이 보급되면서 사진 찍어서 알리기도 하면서 줄어들어 갔었거든요. 다만 이 시절의 교사 폭력은 제가 보기엔 좀 케바케라서 많이 맞은 사람들도 있고, 덜 맞은 사람들도 있고 한 것 같습니다.

  4. 유월비상 2019.10.13 20: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 교사한테 들은 이야기로는 한 반에 50명을 넘었고, 교사의 지위가 낮던 시절 자격 이하이거나 사디스트 기질 있던 교사들이 학급 통제를 위해 무조건적인 폭력을 내세웠다고 합니다. 그런 교사들이 IMF 시절 많이 명퇴하고, 동시에 이해찬의 개혁으로 많이 줄었다곤 하더라고요.

    저는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중반에 서울에서 중고등학교(평준화중, 자사고)를 나왔는데 비인격적인 체벌은 많지 않았고, 그랬던 몇몇 선생들도 수업도 잘 하고 평판이 좋아서 큰 불만은 없었습니다. 다만 학생들을 차별대우하거나 성격 이상한 선생들은 좀 있었는데, 다행히 그런 선생들은 비인격적으로 체벌하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 해양장미 2019.10.13 2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본 바로는 IMF때 교사의 명퇴는 딱히 없었습니다. 그 때 퇴직했던 건 보통 나이가 많은 교사들이었는데, 노인 교사들은 대체로 폭력적인 성향이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립학교에서는 좀 달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해찬이 교육을 망치긴 했지만 그가 개혁하기 전엔 일선학교에 사디스틱한 교사들이 상당히 많았을 뿐만 아니라, 전혀 제어가 되지 않았었습니다. 쾌락형 범죄자들이 제약없이 아동/청소년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있던 것입니다. 그랬던 시절이 그리 오랜 과거가 아닙니다.

  5. 셀레우코스 2019.10.13 23: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생인권조례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 해양장미 2019.10.14 00: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본적으로는 긍정합니다. 다만 논란 과정에서 두발의 길이에 대한 조항만 들어가고 염색에 대한 조항이 빠졌는데, 그에 대해서는 삽입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두 가지 이야기 정도는 첨언할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있고 그것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현행 제도와 문화로는 학생들을 교육시키기가 어렵습니다. 문제학생들을 현실적으로 제제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제도들이 필요할 것이고요. 배제된 학생들을 추가 교육할 장치도 필요합니다.

      또한 저는 강행규정이 적은 게 좋고, 사인간의 계약이 공정하다면 보다 우선시되는 게 옳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특정 학교의 교칙이 공개되어 있고, 그것을 학생과 학부모가 지키겠다고 동의하고 입학하는 경우에 제한한다면, 그 내용이 학생인권조례에 일부 어긋나는 면이 있다 해도 (최소한의 시민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인간의 계약으로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6. 胤熤 2019.10.14 01: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교육 분야에 한정해서 '진보'를 미약하게나마 지지했던 이유가 바로 산업화세력의 교육관 때문이었습니다. 규율과 통제를 지나치게 요구하는 경향이 있었고, 학생들의 삶에 초점을 두지 않고 학습의 성과에만 치중하곤 했지요. 교육 방식도 시대의 흐름에 동떨어져 있고요.

    민주세력은 지나친 권위 배격 성향 탓인지 교권과의 균형을 경시했고, 선진국의 교육 모델을 한국 교육에 무리하게 단기간에 안착시키려 했지요. 이들의 문제는 사전작업과 악영향을 무시하고 이상과 이념을 밀어붙이는 데 있습니다. 거기에 위선적이고 계몽주의에 심취해있기까지 하지요.

    그래도 이제는 제가 추구하던 '학생의 자유 신장'에 있어서 '학생 인권' 문제가 상당히 해결되었습니다. 이는 명백히 좌파의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자유로운 학습주체로서의 학생' 에 있어서는 산업화세력이나, 민주세력이나, 모두 퇴행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민주세력이 시도는 하고 있습니다만, 껍데기일 뿐이지요.

    • 해양장미 2019.10.14 01: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 또한 청소년 인권의 신장에 관한 민주/개혁/진보좌파의 공은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청소년 인권을 자신들의 권력 투쟁과 영달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고, 진짜 청소년의 권리와 자유와 미래에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 의해 교육 전반이 너무 망가졌습니다.

  7. 떫은사탕 2019.10.14 07: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90년대부터 2000년 초반까지 학교를 다녔는데 유독 중학생 때 많이 맞았습니다. 벽에 머리 부딪히기, 회초리로 손톱 맞기, 야구 방망이로 엉덩이 맞기, 발차기 등등 제가 당한 건 아니지만 목격한 것 중에는 바닥에 쓰러진 애를 구둣발로 마구 차는 일까지 있었죠. 지금도 중학생 때의 기억은 지옥같습니다.
    초등과 고등학교와의 차이점이라면 중학교가 사립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명문사립학교를 제외한) 일반사립학교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매우 좋지 않습니다. 공립이라면 어느 정도 교사에 대한 품위유지나 언행에 제약이 있을테지만 사립의 경우는 그런 것도 없을테니 말입니다.

    • 해양장미 2019.10.14 10: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시대적으로도 중학생 때 더 심한 학교폭력을 겪을 만 하셨습니다.

      사립학교에는 비교적 늦게까지 교사들에 의한 폭력이 남아있었다고 압니다. 공립에 비해 공공기관의 통제가 잘 들어가지 않다보니 각종 문제가 생기기도 쉬운 것 같습니다.

  8. 복서겸파이터 2019.10.14 09: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윤리적 판단의 기준은 청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맥락에서 이 글에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