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TV 완화 및 가계부채 논란에 대하여

경제 2014. 6. 29. 19:41 Posted by 해양장미

 근래 들어 LTV[각주:1] 완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 예전부터 LTV 완화에 강력하게 찬성하는 입장이었는데, 가계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LTV 완화가 가계부채에 악영향을 줄 거라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어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모든 것에 앞서 우선적으로 이야기할 게 있습니다. 모든 투자전망 및 규제정책에는 낙관론자와 비관론자의 의견이 엇갈리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각자가 보고 싶은 데로 상황을 보게 됩니다. 경제학자들은 보다 정확한 예측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만, 이러한 예측 모델들의 정확성은 일기 예보보다 떨어지는 게 현실입니다. 기상 현상에 비해 경제 현상은 더욱 변덕스럽고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한계 때문에 경제 문제에 있어 미래를 전망한다는 것은 내일 비가 오냐, 안 오냐같은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경제 정책을 결정한다는 건 내일 놀러가려고 하는데, 예상 강수확률이 60%라면 과연 그냥 놀러갈까, 아니면 취소해야 하는가?’ 같은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치권의 언어는 이런 불확실성에 비해 너무나도 전투적입니다. 한국에서는 꽤나 단정적인 어투가 일상적이며, 예언가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특히 일종의 종말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대체로 사이비 종교 교주 혹은 신도와 같습니다. ‘곧 멸망이 다가오니, 우리는 검소함 같은 도덕적 미덕을 회복해야한다.’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이란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긴 합니다만, 혹세무민은 언제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마련입니다.

 

 그럼 본론인 가계부채 문제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LTV 논란의 핵심은 LTV 그 자체가 아닌 가계부채입니다. KDI[각주:2]나 피치[각주:3]LTV를 늘리면 가계부채가 늘어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거나 경고를 하고 있는데, 사실 이건 당연한 일입니다. LTV를 늘리면 당장은 가계부채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불경기에서 레버리지 규제를 해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살펴봐야 할 건 현재의 높은 가계부채 자체입니다. 왜 이리 가계부채가 많은지, 가계부채의 질(퀄리티)과 건전성은 어떠한지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가계부채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보고, LTV가 그것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거시경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심리와 전망에 있습니다. 쉽게 기본적인 설명을 하자면 사람들은 앞으로 수입이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돈을 더 쓴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지금 자금이 충분하더라도 앞으로 쪼들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돈을 덜 씁니다. 유난히 헤픈 사람도 있고 구두쇠도 있지만 대체로는 이렇습니다.

 

 시장경제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쓰면 쓸수록 더 호황이 오고, 안 쓰면 안 쓸수록 불황이 오게 되어있습니다. 누군가가 돈을 쓴다는 건 누군가가 돈을 번다는 거고, 돈의 흐름이 빨라질수록 해당 사회는 부유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연장선상에서 가계부채는 그 액수보다도 사람들이 가계부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봐야합니다. 부채가 그 이상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전망하게 되면, 그 부채는 거시적으로는 별 문제가 아닙니다. 쉬운 말로 5%이율로 돈 빌려서 10% 수익을 얻게 되면, 아무리 많은 돈을 빌려도 빌린 만큼 이익이 되는 것이지요.

 

 한국의 가계부채가 늘어나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만, 가장 큰 비중은 역시나 2008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경기 침체에 있습니다. 한국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매우 잘 이겨낸 국가지만, 같은 해부터 발생한 부동산 경기 침체는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방보다는 수도권에서의 피해가 큽니다.

 

 노무현 정권 시절 부동산 상승기 때 수많은 사람들이 담보대출을 포함한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그 덕에 대다수는 재산을 불렸습니다만, 망설이다 나중에 움직인 사람들 중 일부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망설이던 사람들은 그다지 투기적인 성향을 가졌다 보긴 어려운데[각주:4], 이 사람들 중 일정 비율이 주로 하우스푸어가 된 것입니다.

 

 한편 이 사회엔 하우스푸어보다도 가계부채문제의 주된 요인이 되는 계층이 있습니다. 자영업자[각주:5]와 실질적으로 자영업이나 다름없는 소규모 법인[각주:6]의 문제입니다. 한국은 신용대출이 발달하지 못했기에, 가능한 한 저리로 대출을 받으려면 담보대출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한국에서 가장 일반적이고도 저금리인 담보대출은 주택담보대출입니다.

 

 IMF이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가속화되면서 은퇴자금을 활용해 자영업을 시작하는 사례가 증가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질이 좋지 못한 가계부채가 늘었습니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상승, 이어지는 불경기, 신용카드 사용 비율의 증가, 계속되는 은퇴자들의 창업, 대기업 계열의 골목상권 진출 등으로 인해 자영업 및 소규모 법인의 생태계는 무너졌고[각주:7] 그것은 현재의 가계부채 문제의 주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문제가 커지게 된 건 부동산 경기침체 이후 부동산에 묶인 자산이 충분히 유동화되기 어려웠다는 점에 있습니다. 부동산은 거래에 시일이 오래 걸릴 수 있는 자산이고, 급매물이 축적될 경우 순식간에 가격이 폭락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공동주택이 주된 거주형태이기에 주택가격이 규격화되어있고, 폭락은 순식간에 번질 수 있습니다. 물론 폭락을 방지하려는 힘이 충분하기에 실제 폭락이 발생한 지역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만, 대신 유동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표준가격에 거래가 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줄어든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거래보다는 대출을 선택하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침체 당시 정권을 쥐고 있었던 이명박 정부는 정책과 행정에 있어 애매한 모습을 적잖게 보였습니다. 부동산 문제에 있어 최악의 대응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태도 역시 부족하였다고 봅니다. 쉬운 말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결정하고 추진하기보다는 우유부단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나쁜 결정을 밀어붙이는 것보다는 낫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문제 해결에 대한 더욱 본격적인 논의는 현 정부인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이후에야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각주:8]

 

 LTV 관련 논의에 있어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율입니다. LTV는 부채의 액수에 대한 제한이지만, 이 법적 한도는 제1금융권[각주:9]의 담보대출에만 적용됩니다. LTV 제한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제한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LTV를 넘어서는 대출을 받는 사람들은 LTV 한도 때문에 더 많은 이율을 부담하게 됩니다.[각주:10] 실제로 보면 자영업자들이 부담하는 가계부채 평균 이율이 노동자가 부담하는 이율보다 유의미하게 높습니다.

 

 즉 위에 이야기한 것을 요약하자면 가계부채의 주된 문제는 소규모 사업자들에 있고, 이 소규모 사업자들은 LTV한도로 인해 실제 가진 자산의 규모에 비해 비교적 높은 이자를 부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에서 저는 LTV한도가 소규모 사업의 실패 확률을 높이고 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여깁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실패한 사업자는 그 순간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피부양인구가 됩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이 문제는 우리 사회의 고령화 문제 및 복지 문제, 청년층의 노인 부양 문제와도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LTV 한도를 완화해야 한다는 명분은 충분합니다. 또한 부동산 경기침체가 계속되어왔는데 LTV를 낮게 유지할 명분이 없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자영업자, 소규모 법인 문제를 개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기침체를 속히 끝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계부채의 위험성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가계대출 금액이 너무 크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엔 많은 이들이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를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보통 이런 비관적 시각에는 전문적인 언어가 정치적 언어로 옮겨질 때 확대 재해석되는 문제가 그 뒤에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한국의 가계대출 규모는 외부 조건이 불변일 때는 감내할 만한 수준입니다. 한국의 가계대출은 많은 부분이 부동산 담보대출이고, 부동산이 폭락하지 않는 한 총자산에 비해 안정적인 규모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금융자산에 비해서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부채가 유난히 큰데, 이는 한국인들이 재산을 금융자산으로 보유하는 비율이 낮기 때문입니다.[각주:11] 물론 이런 점을 정치적이고도 공격적인 언어로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국은 (가계)금융자산에 비해 가계부채가 비정상적으로 높다!' 같은 식으로요.

 

 중요한 것은 가계부채의 규모를 줄이려면 경기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기가 나쁠 때 부채가 줄어들 리 없고, 채무가 늘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다 유동성이 줄어드는 경우 심히 나쁜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경영이 힘든 기업에 회생자금이 필요하듯, 경기가 나쁜 사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동산이 시민들의 가장 큰 재산인 나라에서 부동산 거래가 오래 침체되어 있는 건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한편으로 저는 충분한 근거 없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종말론을 설파하는 부동산 폭락론자들을 경계합니다. 대부분은 부동산이나 금융에 대해 기초지식조차 없어서 하는 말입니다만, 그 뒤에는 누가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세상에는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LTV는 완화해야 합니다. 설령 가계부채가 더 늘어나더라도, 현행 LTV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장기적으로 가계부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각주:12] 다만 정부는 향후 금리가 오를 것에 대비하여 고정금리대출을 늘리려는 시도를 지난 몇 년간 반복하고 있는데, 고정금리를 선택했던 사람들이 금리인하로 손해를 본 경험들이 있기에 이 시도는 실패할 것입니다. 한국은 변동금리제를 실시해왔던 나라인 만큼, 앞으로도 경기회복 때까지는 어떻게든 저금리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옳다고 봅니다.

 

 더 나아가 저는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잘 팔리지 않는 주택을 매입하고 임대를 놓는 등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북유럽 등의 복지국가 시스템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사실 진보주의자들이 이런 식의 주장을 강력하게 펼칠 필요가 있습니다. 주거복지와 경기부양 모두에 도움이 되는데다, 북유럽에서 실제로 사용중인 방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자칭 타칭 진보들을 보면 한숨이 나올 뿐입니다. 그들은 대체로 나쁜 상황을 이용해 불안과 공포를 자극함으로서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고 얻으려 들 뿐, 진짜 문제를 해결할 만한 어떠한 현실적 방안도 생각하거나 제시하지 않습니다.

 

 당장 이 사회의 미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불안을 해소시키고, 안정된 정서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공포감을 자아내는 말들이 공포를 확대시키고, 공포스러운 미래를 불러옵니다. 사람들은 예견한 대로 행동함으로 인해 예견을 실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 위험에서 눈을 돌리는 것은 더 위험한 행위입니다만, 약간의 위험을 확대시켜 겁을 주는 것은 더욱 위험합니다. 역사는 겁쟁이가 아닌 용기 있는 자들의 편이었습니다.

 


  1. 주택담보대출비율을 의미합니다. LTV가 60%으로 책정된 지역에서는, 주택가치가 1억일 때 제1금융권에서의 주택담보대출한도가 6천만원이 됩니다. [본문으로]
  2. 한국개발연구원. 국무조정실 산하의 재단법인 경제ㆍ사회 연구기관입니다. [본문으로]
  3. 국제신용평가사 중 하나입니다. [본문으로]
  4. 수완 좋고 재기 넘치는 사람들은 대체로 분위기를 빠르게 읽고 투자에 일찍 뛰어들기 마련입니다. [본문으로]
  5. 연구에 의하면 자영업자들의 부채는 전체 가계부채의 43.6%를 차지하며, 가구당 부채액수는 임금노동자의 2배에 육박합니다. [본문으로]
  6. 실제 소규모 법인회사들을 보면 적잖은 경우 자영업과 동일한 방식으로 경영되고 있고, 자영업과 같은 양상의 큰 문제를 가진 경우가 적지 않지만 통계적으로는 결코 자영업으로 잡히지 않습니다. 무늬만 법인이지만 무늬 때문에 식별은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본문으로]
  7. 통계적으로 현재 자영업자의 1/3 정도는 생활비도 못 벌고 있습니다. 자영업자 평균 연수입도 노동자에 비해 유의미하게 낮습니다. [본문으로]
  8. 잘 하다가 전월세에 세금 걷는다는 희대의 바보짓을 하긴 했습니다만. [본문으로]
  9. 새마을금고, 지방농협 같은 건 제1금융권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본문으로]
  10. 물론 현실적으로는 DTI같은 문제도 있습니다. [본문으로]
  11. 한국 사람들은 총자산이 많은 사람이 부채도 많습니다. 그런데 비금융자산인 부동산을 빼고 금융자산만을 놓고 보면, 금융자산과 부채 사이엔 역의 관계가 성립합니다. 금융자산이 없을수록 부채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서구 선진국과는 정반대의 성향입니다. 즉 한국 가계부채는 외국의 사례와 양상이 달라 특수성이 있다는 겁니다. 자산이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에 돈이 묶여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12. 다만 외부리스크를 헤지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LTV를 지키자는 주장도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국이 그런 위험 회피적인 경향이 중장기적으로 더 큰 위험을 만들어내는 상황에 처해있다고 느낍니다. [본문으로]

박근혜 정부의 LTV 규제완화 방안에 찬성한다.

경제 2013. 2. 26. 10:51 Posted by 해양장미


 개인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는 부분이 있다면 용감하다는 것이다. 용기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자질 중 하나다. 이명박은 이 용감함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현재 대통령 입장에서 LTV[각주:1]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특히 감정적인 자칭 진보들은 대체로 저 조치를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고, 박근혜에 대한 반대 담론을 키워나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는 그런 용기 있는 선택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자칭 진보들의 경제적 인지 수준에 대해 큰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다. LTV 반대를 외치는 자칭 진보들이 입에 담는 말들을 보면 미국 공화당이 하는 말이랑 별로 다를 게 없다. 차이라면 좀 더 비현실적이라는 것 정도다. 문재인이 선거에서 괜히 진 게 아니다.


 LTV 건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면, 대표적인 진보 경제 시민단체인 경실련은 LTV 완화와 같은 조치가 가계부채 문제를 폭발시킬 방아쇠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경실련이 이 가계부채를 해결할 수 있는 어떠한 방안을 떠올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통상적으로 큰 기업의 경영상태가 위험에 처하면 조건부로 구제 금융을 지원해준다. 그것이 전반적인 사회의 손익을 계산할 때 대체로 이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 부동산 시장의 냉각은 그 어떤 큰 기업의 경영 문제보다도 심각한 문제다. 당연히 사회적인 구제금융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왜 위기에 처한 기업을 도와주느냐, 그냥 망하게 두지?’ 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감정적인 판단일 뿐이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다. 대우그룹이다. 대우그룹을 그대로 망하게 한 결과가 어떤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대우를 그대로 죽인 것은 대한민국의 큰 손실이었다.[각주:2] 부동산 시장에 구제금융이 필요한 것도 이와 같다.


 통상적으로 LTV가 거의 꽉 찬 주택담보대출은 부동산의 거래를 통해 상환하는 방법밖에 없다. 노동을 통해 그 거액을 갚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문제에 묶인 개개인들은 높은 비율로 적잖은 이자만을 갚으면서 부동산 시장이 다시 풀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시장에 자금이 흘러갈 리가 없다.


 이제 부동산 시장이 침체된 지도 4년 이상이 흘렀다. 그 시간동안 고통을 겪은 것은 소위 하우스푸어뿐만이 아니다. 하우스푸어는 대체로 막대한 자산[각주:3]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산의 양에 부채에 대한 이자를 더한 만큼 시장에서 유동성이 사라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금융 그룹[각주:4]은 외국계 자본이 과반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하우스푸어들에 의해 금융에 흘러가는 이자 소득들은 중장기적으로 외국으로 빠져나가 버리곤 한다. 지난번에 쓴 ‘한국은 잘나가는데 왜 한국인은 가난할까?’에서 이런 국부유출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또한 이렇게 사라지는 유동성과 부동산 거래 실종으로 인한 심리적인 불안감은 2차, 3차 피해자를 양산한다. 전세는 사라지면서 가격이 오르고, 월세 가격도 오르고, 자영업자들은 시장에 돈이 돌지 않다 보니 큰 고통을 겪는다.[각주:5] 이로 인해 가시적인 피해를 보는 인구 비율만 해도 대한민국 인구 중 과반은 훌쩍 넘는다. 간접적인 피해까지 합치자면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 중 예외는 없다.


 부동산 종말론자들[각주:6]은 2000년대의 부동산 가격 상승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2008년 이후에도 지가는 상승하였고, 주택은 필수재이기에 전월세 가격 또한 지속적으로 올랐다. 현재의 부동산 가격은 거품이 아니다. 그저 다소 가파르게 올랐기에 현재는 긴 조정단계를 겪고 있을 뿐이다.[각주:7] 일단 이런 식으로 오른 가격은 긴 경제사를 돌아볼 때 크게 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각주:8] 무엇보다도 2000년대 초반 부동산 이상으로 귀금속 가격과 석유 가격이 폭등했는데, 이것도 조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그 또한 가격이 이전처럼 꺼지지는 않는 걸 봐야 한다. 부동산은 귀금속, 석유와 크게 다른 특성을 가진 자산이 아니다. 실제로 근래 보이는 가격 움직임은 꽤 비슷하다. 만약 현재의 부동산 가격을 거품이라 생각한다면, 귀금속이나 석유 가격도 거품이라 생각해야 한다.


 부동산 호황기였던 노무현 정권 때의 법률은 사실 여건이 크게 변한 만큼 빨리 수정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현실에 대응하는 힘과 결단력, 그리고 판단력이 부족했다. 이에 비해 박근혜 정부는 어쨌든 가시적인 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힘과 강단이 있어 보여서 다행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모든 면에서 합격점을 줄 만큼 잘 하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잘했으면 한다. 그녀가 과하게 보수적인 경제 정책을 펴고 리스크를 축소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이번 발언은 기대 이상이다.


 한편으로 자칭 진보주의자들은 오바마 정부와 오바마를 돕고 있는 폴 크루그먼, 버냉키 등이 어떠한 조처로 미합중국의 망가졌던 경제를 부활시키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게 진짜 진보적인 방안이다. 불황에선 리스크를 감수하고 유동성을 높여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불황을 구경하라는 건 아직 충분한 경험이 없던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다.[각주:9] 그 땐 결국 대공황이 왔었다. 그리고 그 때랑 지금은 아예 화폐의 개념이 달라졌다. 진보진영이 착각 속에서 부동산 종말론을 포교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길고도 큰 고통을 겪었다.



뱀발.


 분양가상한제는 이미 여야가 폐지에 합의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국회통과만 남았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잘하긴 했는데, 민주당은 지난 대선기간 내내 분양가상한제를 사수하겠다는 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리 신뢰가 없어서는 곤란한데. 한편으로 분양가상한제 폐지는 김대중도 노무현도 다 하던 건데, 이걸 분양원가를 공개하며 발목 잡은 건 의외로 오세훈이었다.


 깨시민들은 아니나 다를까, 지금 이 순간에도 분양가상한제를 노무현의 공인 양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오세훈의 공이었고 노무현 임기 중에 일어났을 뿐이다. 당시엔 부동산 폭등이 심했기 때문에 그런 제도도 필요했다. 그러나 미분양 주택이 쌓인 현재는 적합하지 않다.

 


  1. 주택담보대출비율. 예를 들어 집값이 1억이고 LTV가 60%이면, 주택담보대출을 6천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본문으로]
  2. 당시의 대우그룹 경제팀 출신이 현재 박근혜 근처에 많다. 이런 인적 자원 구성은 향후 지속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 반영될 것이다. [본문으로]
  3. 회계에서 자산은 자본과 부채의 합이다. [본문으로]
  4. 쉽게 말해 은행 그룹. [본문으로]
  5. 이 뿐만이 아니다. 대부분 자영업자들의 사업 자본은 주택담보대출로 충당된다. 이율이 낮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6. 부동산 종말론은 보편적인 종말론과 많은 맥락에서 유사하다. 물론 종말론자들의 예언은 매번 어긋난다. [본문으로]
  7. 자본주의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가격 폭등 현상을 거품이라 부르는 건 사실 대체로 적합한 표현이 아니다. 그보다는 조지 소로스의 표현처럼 'Boom'이라고 표현하는 게 적합하다. [본문으로]
  8. 일본은 정말 예외적인 경우다. 한국은 그렇게 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본문으로]
  9. 신자유주의자들도 비슷한 말을 하긴 한다. 그래서 깨시민들이 사실 알고 보면 수꼴이라는 거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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