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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23 진보좌파의 경제에 대한 무지와 낙후에 대한 이야기 18

 개인적으로 진보좌파를 구분하는 기준은 지난 포스트, ‘한국형 6단계 이념 분류’ 에서 밝혔다. 본문에서는 저 포스트에서 (4), (5), (6)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통합하여 진보좌파라 이야기할 것이다. 그래프를 첨부한다.





 한국의 진보좌파가 사회에 끼치는 가장 큰 문제라면 사실 경제적인 면에서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다분히 교조적인 (5), (6)은 그렇다 치고 문화적으로 자유주의적인 (4)가 경제적으로 비현실적 선택을 하는 것은,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은 왜 그럴까? 본문에서는 이것에 대한 사견을 좀 이야기하려 한다.


 본래 한국에서 생겨나지 않은 말 중 본래의 어감과 꽤 다르게 번역된 말들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대통령’인데, 이 어감은 ‘president’와 분명히 좀 다르다. 그런데 이건 자본주의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의 영문은 ‘capitalism'이다. 한국에서 ’캐피탈‘이라는 말이 쓰이는 용례 덕도 있겠지만, 어감이 확 달라지지 않는가?


 진보좌파가 경제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관념적 윤리성이다. 많은 그들은 이 시장이 윤리적으로 잘못되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윤리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면에서 그들은 사회성을 앞세우려 들고, 복잡한 각종 금융 기술들을 사기적인 것이라 생각하여 ‘악’으로 규정한다. 물론 실제로 수많은 파생 금융 기술들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선악을 쉽게 나누고 구분하려는 건 진보좌파가 가장 빈번하게 가지곤 하는 미성숙한 모습 중 하나다.


 경제 분야에서 가장 큰 문제는 너무 많은 진보좌파인들이 ‘돈’자체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못한다는 데 있다. 너무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돈을 실물이라 착각한다. 실물의 변형된 형태를 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사실 자본주의에는 맞지 않는다. 1) 이자가 있고, 2) 발행기관이 있는 한 돈은 실물일 수가 없다. 그리고 그들이 딱히 크게 어리석어서 이런 착각을 하는 건 아니다. 정말 오랜 세월동안 인류는 돈이 실물이라고 착각을 해 왔다. 돈이 실물이 아님을 깨달은 사람들이 먼저 부자가 되었고, 그런 사람들이 사는 국가가 제국이 되었다. 이것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해 보자.


 사람들은 오랜 시간동안 금화와 은화를 화폐로 썼다. 금과 은은 그 자체로 귀금속이기 때문에, 순도만 보장된다면 그 자체로 실물로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근대 이전 화폐 발행기관들은 충분한 신용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렇기에 화폐 자체의 가치를 실물로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가치가 있기 어려웠다. 사실 너무 많은 진보좌파의 인식은 안타깝게도 이 시대에 머물러 있다.


 대항해시대가 시작될 무렵, 에스파냐(스페인)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앞서갔다. 그들은 남아메리카의 은광에서 엄청난 은을 발견했는데, 당연하게도 그들은 부자가 되었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았다. 오히려 에스파냐는 얼마 안 되어 브리튼(영국)과 네덜란드에 밀리고 만다. 왜 그들의 막대한 부는 실효성이 없었던 걸까?


 MMORPG계열 게임을 해보신 분이라면 이 문제를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게임 속 화폐는 유저가 많아지면 금방 그 가치가 떨어진다. 많은 MMORPG게임에서는 따로 화폐발행기관이 없고, MOP을 잡으면 돈이 생기게 된다. 그런데 MOP은 계속 무한히 리필되기 때문에 유저들은 약간의 노동으로 무한한 돈을 벌 수 있다. 이것은 엄청난 은광을 발견한 에스파냐와 거의 동일한 상태다. 너무 많은 돈이 시중에 풀리면, 돈은 그 가치가 떨어진다. 시중에 돈이 2배가 되면 예전에는 은화 1개로도 살 수 있던 고깃덩어리를 은화 2개는 줘야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돈은 교환의 매개수단일 뿐 실물이 아니다. 관리되지 않는 돈은 풍년에 농산물 가격 폭락하듯 언제든 그 가치가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후에도 인류가 돈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부 천재들이 돈의 본질을 빨리 직감하고 막대한 돈을 벌긴 했지만, 그것은 소수에 국한된 경우였고 체계화되어 있지도 않았다. 인류가 돈을 바르게 이해하고 통제하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1971년, 서방 세계는 드디어 화폐를 실물과 완전히 분리시켰다. 그 이전에 달러는 금화의 변형된 형태였다. 35달러는 언제든 금 1온스로 바꿀 수 있었다. 이 제도를 금본위제라 한다. 그리고 금본위제 폐지 이후, 인류의 경제는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되었다.


 수많은 진보좌파들과 (한국에서는 아니지만) 보수주의자들은 금본위제의 폐지를 탐탁찮아한다. 그러나 금본위제는 본질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었다. 화폐에는 이자가 붙는데, 금은 저절로 증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자가 존재하는 한 금의 가치는 저절로 올라가게 된다. 장기적으로 이 모순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이자가 있는 자본주의에서는 금을 화폐로 쓸 수 없다. 자본주의가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이었다.


 한편으로 인류가 금을 돈으로 썼던 것은 발행기관의 신용문제 때문이었다. 금이 어떠한 발행처보다도 믿을 만했기 때문에 금을 돈으로 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금을 돈으로 쓸 수 없게 되었다. 돈은 본질적으로 신용이다. 이 크레딧을 보증하는 게 과거엔 금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금은 저절로 증식하지 않기 때문에, 이자가 존재하는 돈은 금이라는 기원을 벗어나 더 진보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돈이 사람보다 더 빠르게 진보했다. 자칭 진보주의자들에 비해 경제학과 금융의 진보가 훨씬 빨랐다는 뜻이다. 너무 많은 진보좌파가 본질적으로 현대의 돈이 크레딧이며, 폭발적으로 증식하는 속성이 있다는 걸 잘 이해하지 못한다. 때때로 일부 이해하더라도 이 상황은 윤리적인 문제가 있으며, 금본위제로 돌아가거나 획기적인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말 많은 경우 일종의 음모론을 믿곤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금본위제 폐지 이후 공산주의에 대해 승리를 거뒀다. 또한 1971년 이후 지구는 상당히 부유해졌다. 그들은 금이 돈을 계속 보조할 수 없다는 것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또 이해하지 못하는 것(어쩌면 인정하지 않는 것)은 시장의 분배기능이다.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에서 분배를 담당하는 것은 시장이다. 잘 돌아가는 시장은 은행의 예대차와 연계되어 엄청나게 자본을 증식시키고, 수요를 늘린다. 늘어나는 수요 전망은 경쟁적으로 공급을 늘리기 때문에 분배도 잘 일어난다. 그런데 너무 많은 진보좌파들은 시장 자체를 과소평가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실제 공산주의 국가를 제외하면 시장은 언제나 분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정부의 직접적인 분배는 훨씬 그 효율이 떨어지고 부작용도 큰 방식이다.


 냉정하게 이야기해 진보좌파들이 경제면에서 하는 이야기 중 정말 많은 것들이 1800년대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다. 또한 그들은 너무 많은 경우 이성적인 이야기보다는 감정적인 증오를 퍼붓는다. 근래 그들이 취하는 태도 중 가장 나쁜 예를 들자면 부동산과 대기업에 대한 태도를 들 수 있다.


 민주당을 위시한 대다수 진보좌파들의 부동산에 대한 접근은 어리석은 광신 그 자체나 다름없다. 그들이 집값폭락을 외치는 근본적인 원인은 증오심과 질투, 그리고 그런 감정과 결합되어 ‘집값이 이렇게 높은 건 옳지 않다.’라는 판단에 있다. 그러나 집값은 시장에서 형성된 것이지, 어떤 특정인이 결정한 게 아니다. 또한 집값이 폭락할 경우 어떤 현상이 생길지, 부동산 거래가 잘 되지 않을 때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그들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거나 망상을 한다. 부동산 가격이 반토막 난다는 예언과 떨어져야 한다는 당위,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민주당의 행동들은 결국 전세대란을 불러왔다.


 대기업에 대한 태도 또한 그렇다. 그들은 대기업을 마치 재벌의 소유인 양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 재벌에서 기업을 분리시키고, 좀 더 사회가 기업에서 많은 것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기업에 대해 워낙 잘 모르다보니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게 문제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 현금을 쌓아놓았다는 말에 진보좌파들은 분개하며, 그것들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로 그 쌓아놓은 현금은 대체로 ‘유보금’이다. 이 유보금은 본질적으로 대기업 소유의 돈이 아니고, 대기업의 소유자인 주주의 돈이다. 그러니까 기업은 함부로 유보금을 건드릴 수 없다. 기업이 순이익을 현금배당하지 않고 이익금을 쌓아두면 그 유보금은 주가에 반영된다. 기업 총수라 할지라도 이 유보금을 함부로 건드리면 배임ㆍ횡령죄가 된다.


 다만 유보금이 그냥 기업에 쌓여있는 건 사회적으로 좋은 건 아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정부는 투자를 유도한다. 기업이 투자를 한다는 것은 대체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일자리도 생기고, 시장에서 돈이 더 빠르게 돌아 호황이 오게 된다. 그러나 진보좌파들은 투자를 위해 정부가 기업에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매우 아니꼬와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좌파 이념은 다 내던지고 ‘그냥 시장에 맡기라!’고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이나 할 법한 말을 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웃기는 광경을 너무 많이 봤다. 그런데 그러면서 또 법인세는 늘리라고 한다. 아무 것도 모르고 매사에 감정적이니까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런 판단들과 사회적 압력은 불황을 만들어낸다. 불황은 그 무엇보다 나쁘다. 특히 가진 게 없는 사람일수록 불황을 견디기 더 어렵다. 진짜 부자들은 오히려 불황을 반기기도 한다. 호황은 시민들을 더 평등하게 만들지만, 불황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한편으로 진보좌파들은 국가와 사회를 실제보다 인격체에 가까운 것으로, 또한 보다 전지전능한 것으로 여기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상을 반영하는 직관은 아니다. 정부는 아무리 잘 하려고 노력을 해도 허술한 면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시장은 쉽게 제어할만한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정부는 시장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오직 규제나 진흥을 시도할 수 있을 뿐이다.


 모든 국가가 시장이 발달하기 전에는 계획경제 정책들이 잘 통한다. 그러나 충분히 시장이 커진 이후엔 그렇지 않다. 계획경제를 추종한다는 면에서는 모든 집단주의자가 좌우에 상관없이 동일하다. 보수주의자들은 제 2의 박정희를 기대하고, 사회주의자들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혁명적 영웅을 꿈꾼다. 박정희교와 노무현교가 동시에 존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에서 한 정치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때때로 진보좌파들은 ‘진짜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라고 외친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경제를 모르듯, 민주주의도 모른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란 통치제도일 뿐이고 이 제도는 현실 속에서는 자유주의와 결합되어, 각각의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경쟁하고 화합하는 가운데 시장과 연계되어 돌아가는 사회 구조가 된다. 세금을 좀 더 걷던 덜 걷던, 세계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는 근본적으로 이렇다. 시민들은 결코 경제적으로 실패한 정권이나 정당에 투표를 하지 않는다.


 깨시민들은 서민들이 왜 새누리당을 지지하느냐고 분개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새누리당이 민주당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현실적이고, 지난 세월을 되돌아봐도 뭐 하나라도 서민들에게 더 해줬다. 민주당은 서민들에게 잘 한 게 거의 없다. 있더라도 그것은 거의 다 김대중 정권이 한 것이지, 노무현 정권은 그야말로 최악이었고 각 지역의 지자체장이나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봐도 새누리당 쪽이 더 해놓은 게 많고 문제도 잘 해결하는 경향이 짙다.


 진보좌파들의 경제적 이론들은 너무나 낙후되어있다. 그들이 하는 말들은 케인즈주의와 사회주의를 적당히 섞어놓은 것들이 많은데, 실제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현재의 네오케인즈주의에 대한 이해는 너무나도 부족하고, 좌파 경제학자들은 주류 학계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있는 사람들조차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맞는 게 없고, 네오케인지언에 해당하는 주류 경제학자들과 토론을 하면 상대가 되지를 않는다. 한국의 진보좌파들은 좀 더 현실적인 경제적 시선을 가질 필요가 있다.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제시하는 대안들은 대체로 별 가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