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서구와는 좀 다른 양상의 역사를 가졌고, 그에 따라서 정치적 이념의 분화 역시 형성되었다. 또한 냉전과 케인즈 시대를 거치면서 기존의 단편적인 좌우파 구분은 현실에서 잘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에 따라 본 블로그에서는 한국 현실에 어느 정도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6단계 이념 분류 체계를 제시해볼까 한다. 이 분류는 (1)에 가까울수록 우익이고, (6)에 가까울수록 좌익이다. 그리고 가운데 쪽일수록 개인주의적이고, 양 끝에 가까울수록 집단주의적이다. 그렇다면 우선 하나하나 설명해 나가려고 한다.
(1) 반공주의적 보수주의
: 한국에서 가장 오른쪽에 선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북조선이라는 적을 관념 속에서 강하게 설정하면서, 그 적과 대비하여 ‘우리’를 강화하고자 한다. 이런 관념은 그들에게는 질서를 잡는 체계이며, 자신의 이념과 거리가 먼 사람을 ‘빨갱이’로 낙인찍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전체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며, 민주주의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인 경향은 약하다. 이들에게는 어지간한 우익 정당조차 충분히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강한 통제로 사회를 안정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보면 사실 불안감이 크고 안전의 욕구가 강한 편. 이 정도로 극단적이면 어지간해서는 이성적인 논의가 어렵기 때문에, 대체로 그나마 가까운 (2)나 (3)과 연대하는 정도에서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2) 중상주의적 보수주의자
: 가장 표준적인 보수주의자. 한국인 전체에 가장 흔한 유형이라 볼 수도 있다. 이 쪽 타입은 국가와 우리를 중요시여기고, 개개인을 우리라는 틀에 일치시키고자 하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 전체의 이익을 곧 우리의 이익으로 환산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실제 그런 경험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관념을 실행하려는 성격도 강하다. 집단주의적이며, 계획 경제로 부강해진 한국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하며 앞으로도 그런 양상으로 국가가 나아가길 원한다.
개개인의 이익이라는 면에서 이 타입은 종종 모순을 드러내는데, 집단과 개인 간의 갈등에서 집단의 편을 들 때가 많은 반면 본인이 집단과 갈등을 벌일 때는 다른 판단을 하곤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런 태도가 별 문제가 되지는 않고, 집단 속에서의 사적인 유대 관계를 중요시하면서 실리를 챙기는 경향도 짙다. 정치적 보수성을 꽤 강하게 가지지만, 의외로 이 집단이 무조건적으로 새누리당 계열만을 찍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관념적 보수성이 ‘정당함’에 대한 추구로 이어져 더 정당해보이는 정치적 선택을 할 때도 많다.
(3) 신고전적 자유주의자
: 한국에서 가장 자유주의적인 경향이 짙은 집단으로, (2)와는 문화적인 면에서 차이가 크고 (4)와 비교하면 국가와 사회를 신뢰하는 정도에서 차이가 크다. 이 타입은 기본적으로 국가, 사회, 타인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고,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를 갈등을 일으키기 쉽거나 암묵적 계약으로 묶여 있는 정도의 관계로 생각한다. 물론 국가 외의 다른 집단주의에도 상대적으로 호응이 없는 편.
경제에 대한 접근에서 이 집단은 외부에서 볼 때 때때로 (2)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러나 (2)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2)와는 달리 경제 행위를 보다 사적인 것으로 인지한다는 데 있다. 또한 국가의 통제가 가지는 비효율성을 빨리 간파하고, 그것을 줄이려는 시도를 곧잘 한다. 단점은 비교적 적은 숫자와 대표성 부족. 아직까지 자신들의 정당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정치적으로는 보다 숫자가 많고 세력이 큰 (2)나 (4)와의 연대가 불가피하다. 사실 수많은 선거에서 이 좌우중도적인 집단을 누가 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들은 그다지 나서서 시끄럽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편은 아니다보니 충분한 포섭이 이루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일견 정치적 관심이 적어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본인 이익을 중시하는 경향이 짙기에 선거의 양상에 따라 투표율이 꽤 달라지기도 한다. 이따금 이 집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은 이들을 ‘문화적으로는 좌파, 경제적으로는 우파’ 정도로 규정하기도 한다. 경향으로는 한국 사회에서는 가장 냉정한 축에 속하는 집단.
(4) 문화적이면서 사회적인 자유주의자
: 젊은 층에서 꽤나 흔히 볼 수 있는 유형. 이 집단은 자유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는 (3)과 동일하지만, 개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회와 국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보다 좌파적인 관념을 많이 가지고 있고, (5)나 (6)이 주장하는 것들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이 집단이 원하는 것은 ‘개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복지국가’ 정도.
다른 어느 집단보다도 이 집단이 그리는 사회는 이상적이기 때문에, 대외적인 호응도 높고 현실 속에서 소위 진보좌파의 스펙트럼이 이 정도에 맞춰질 때가 많다. 다만 문제는 매우 심각한 디테일 부족.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결합된 형태다보니 그 중간에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하거나, 갈등이 생기기 쉬울 때에는 굉장히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한다거나 사태 파악 자체를 못 할 때가 많다. 즉 실제 권력을 가져도 문제 해결 능력이 크게 떨어질 때가 많은 게 결정적인 문제. 이런 문제 때문에 이 집단은 시대에 따라 (3)에 가까워지기도 하고 (5)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3)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더 감정적인 유형이 많고, 디테일을 높여나가는 경우 (4)에서 벗어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보고 있다.
(5) 전통적 사회주의자
: 소위 가방끈 긴 386~486 진보좌파가 많이 속한 유형. (4)와는 달리 자본주의 자체에 대해 의구심을 강하게 가지고, 사회주의적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한다. 전반적으로 (4)보다 더 집단주의적이고, 이론적으로 체계를 갖춘 동시에 수가 적다. 그렇지만 보다 수가 많은 (4)집단의 관념에 큰 영향을 주는 그룹.
이 집단의 결정적인 단점이라면 과도한 관념성으로 인한 현실과의 불일치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자체가 아주 오래 전의 사회를 기반으로 하는데, 이 그룹은 업데이트가 과도하게 느리다. 또한 자본주의 중에서도 세계 첨단을 달리는 한국 사회에서 현실을 설명하고 개선하는 데 큰 약점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이 그룹은 실제로 본인들의 의견을 (4)에 반영할 수 있을 뿐, 자체적으로 수를 늘려나가거나 정치적 입지를 만드는 데는 지속적으로 실패하고 있다. 그 외에 너무 편하게 입만 쓴다는 지적도 많다.
(6)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자
: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자는 흔히 NL(민족해방 또는 자주파)로 불린다. 이 집단은 대한민국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민족분단의 문제로 생각한다. 즉 현재의 대한민국은 미국 제국주의의 식민지이며, 자본가 세력은 미국과 결탁하고 있고 그 결과 여러 문제가 특수하게 큰 상태라는 것이다.
흔한 오해와는 달리 모든 NL이 종북세력인 것은 아니다. 요새는 민족주의가 약해졌지만, 민족주의가 강하던 시절엔 NL의 주장이 설득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 이 그룹은 한국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민주화에도 일조한 면이 있다. 그러나 현재 이 집단이 한국 내에서 어떻게 인지되는지는 모두가 잘 알 것이다.
NL을 논파하려면 사실 민족주의를 논파할 필요가 있다. 바꿔 말해 대부분의 내셔널리스트는 언제든 NL의 말을 일부라도 수용할 여지가 있다. 실제로 이 (6)이 입장을 바꿀 경우 비교적 숫자가 가까운 (4), (5)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정 반대의 (1), (2)가 될 때가 많은데, 이것은 실제로는 좌우를 바꾸는 것보다는 집단주의적인 태도를 바꾸는 게 더 힘들기 때문이라 본다. 한편으로 이 (6)이 하는 말을 수용한 사람들 중에는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우익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역시 집단주의적인 태도가 만들어내는 것이라 본다,
적잖은 NL이 친북성향을 보이는 건 역사 속에서 북조선 쪽이 더 정통성을 가졌다고 보는 그들의 입장과 관련이 있다고 파악한다. 그들의 표현으로 이야기하자면 남쪽정부는 미국의 괴뢰정권이지만 북쪽은 주체적이었다는 것이다. 민족국가를 중심에 놓는 관점에서는 이런 인지도 가능하다. 물론 철저하게 집단을 우선시하는 관점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그래도 이 집단이 (5)보다는 숫자가 많다.
이해하기 쉽도록 이 6단계 이념 분류에 대한 대략적인 그래프를 첨부한다.
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모든 시민을 이 분류법에 일치시키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또한 이 분류 체계는 개인적인 인상을 포함하여 설명하였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면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편적이고 혼동하기 쉬운 통상적 좌우파 구분보다는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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