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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패권주의'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6.18 노무현의 가장 큰 실수, 당 분열과 호남 차별에 대한 가설 10
  2. 2011.01.04 2011년, 반 MB를 넘어서 9


 노무현 정부가 가장 강성했던 시기는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대승을 거둔 직후였다. 국회의 탄핵은 헌재에 의해 막혔고, 노무현은 화려하게 부활하여 막대한 권력을 쥐게 되었다.


 이 시기 (구) 민주당은 붕괴 직전의 위기였으며, 한나라당도 기존에 겪어보지 못한 약세에 전전긍긍하는 양상이었다. 그런데 현실 정치인 노무현의 화려했던 승리는 여기까지다. 이 이후 그는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박정희 이후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은 대통령이 되고 만다.


 그는 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별명답게 정말 ‘바보같은’ 행위를 많이 했지만, 본문에서는 그 중 가장 난감한 실수였던[각주:1] 당 분열에 대한 언급을 하려고 한다. 노무현은 임기 내내 지속적으로 자당을 분열시키고 유력 정치인을 중심부에서 탈락시키는 언행을 일삼었는데, 여기에는 대단히 묘하고도 냉정하지 못한 그의 정치철학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본다.


 그의 정치철학은 취임부터 임기 후 사망 직전까지 계속 변화한 것 같지만, 재임기간을 기준으로 내가 파악한 몇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대통령제를 신봉했으며[각주:2], 전문가 집단에 의한 엘리트 정치[각주:3]를 선호하였다. 그리고 그 지원으로 자신을 지지해주는 대중 동원을 좋아하였으며 의회에 의한 정치가 아닌 행정부에 의한 강력한 주도적 정치를 우선시하였다. 행정부의 힘을 중시한 연장선상에서 공무원의 수는 늘리되 정부에 의한 시장 간섭 및 구체적 사안에 대한 간섭은 적었으며[각주:4] 주관성 하에서는 탈이념적인 에고 아이덴티티를 지니고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대단히 확고한 ‘자신의 인력 풀’에 대한 호감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행위 자체는 현 정부보다 비리라는 윤리성 문제에서는 자유로울지언정 인력풀의 다양성에서는 모자란 특성이 있었다고 파악한다. 또한 윤리성에 대한 집착과 나름대로의 이중 잣대를 가져, ‘지역주의 극복’ 이라는 레토릭은 걸고 있었으나 실제 호남인에 대한 차별은 심한 양상을 보였다.


 그런데 왜 노무현은 정동영, 김근태[각주:5] 등의 호남 인사를 지속적으로 탈락시키고 영남 인사를 중용하였을까? 그가 전형적인 영남우월론자였을까? 어쩌면 그랬을 수도 있다. 노무현의 감정적인 성향을 고려할 때, 호남인과 영남인의 평균적인 성격은 차이가 있기에 호남인이 불편하고 다툼을 초래하여 싫어했을 수도 있다. 그가 호남인이 충분히 사근사근하지 못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러나 그가 병적인 수준으로 호남인을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면, 그의 지역 편향적인 선택들은 납득하기 어렵다. 최소한 그는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며, 폭군 짓을 ‘은근히 제법 했지만[각주:6]’ 정말 폭군은 아니었던 것 같다. 또한 그가 바람직한 국가에 대한 심정적 윤리관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그래서 나는 조금 다른 가설을 제안하고 있다.


 비판적인 사람들의 흔한 가설 중 하나는 노무현이 열등감이 심한 사람으로, 어떻게든 영남에서 주류의 위치를 차지하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이 가설에 대해 별다른 불만이 없다. 그가 심정적으로 어떤 심리상태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알기 어렵지만, 그의 행동들에는 이런 추론이 가능하게 할 법한 실수 또는 의도적인 행위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행동들이 단순한 심리상태에서 단순하게 발현된 행위들이라 여기지는 않는다. 그에게는 어떤 명분이 있었을 것이고, 나는 그 명분을 다음과 같이 추론한다.


 노무현은 자신의 윤리성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 윤리성에 대한 의혹을 제기할 수 있을 테지만, 적어도 노무현은 과거의 보수적인 권력에 대해 저항하는 심리가 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대통령이 되고 권력을 잡는 과정을 지나 승리자로의 자세 및 더욱 승리하려는 욕구를 가지게 되었다. 그의 방식은 그때까지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영남의 주류가 되겠다는 그의 발상은 기존 영남세력을 역사적 뒤안길로 돌리려는 시도였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그는 ‘호남은 어쨌든 결국엔 우리 편 또는 동맹.’ 이라는 발상 아래 호남에 대한 관심이나 자원을 줄이고, 영남에서 세력을 키우는 데 주력했을 수 있다. 그가 영남의 정치적 혁명을 원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실제 그의 주요 정치적 쟁점들은 역사적인 관점 위에 있었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국가의 미래를 위하는 자세를 가질 때가 많았다. 결국 그의 행동들은 다분히 국가주의적이었으며, 필연적으로 기존 국가주의 세력과의 갈등과 저항. 그리고 더 나아가 그에 이어지는 대연정 제의 등이 이어지게 되었다.


 이 가설이 맞는다고 가정한다면, 그의 행위는 다분히 어리석다. 기존 세력에 대항하려는 자는 새로운 동지들을 충분히 대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편을 공격했으며, 그 과정 속에서 그가 적대했던 기존 보수세력의 힘을 끊임없이 키웠다. 호남은 버리고 영남 비주류만 모아서 영남 주류를 이기려고 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김대중 시절 차별의 늪에서 벗어나는가 싶던 호남인들은 다시금 차별 아래 놓이게 되었으며, 야권은 분열되어 아직까지도 갈등이 크고 영남패권은 지속되었다. 국가주의는 공고화되어 박정희의 향수가 커졌으며, 그 결과는 이명박 정부로 나타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노무현은 (그럴 의지는 없었던 것 같으나) 기존 권력구조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셈이 되었다. 현실을 개혁하려는 자는 현실의 저항에 필연적으로 부딪치게 된다. 성공적인 변화는 마음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노무현은 정동영이나 김근태의 말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한편으로 그의 곁에서 그의 편만 들면서 영남패권주의를 드러내며 그를 사지로 몰아갔던 자들을 잊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다.




  1. 이것이 가장 난감한 실수라는 것은 주관적인 견해이다. [본문으로]
  2. 그가 주장한 개헌안은 4년 중임제의 대통령제였다. [본문으로]
  3.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반쪽짜리 엘리트 정치'에 가깝다는 인상이지만 본문에서는 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 [본문으로]
  4.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의도적으로 삼성 등 대기업들의 편을 들었다. 대기업의 정책 제안이 정부에 반영된 정도로는 현 정부보다 노무현 정부가 높다고 느끼고 있다. [본문으로]
  5. 김근태의 출생지는 경기도 부천이지만, 호남에 지지기반을 두고 있다는 맥락으로 서술한 것이다. [본문으로]
  6. 이런 게 잘 안알려진 걸 보면 친노도 참 대단하긴 하다. [본문으로]

2011년, 반 MB를 넘어서

정치 2011. 1. 4. 19:31 Posted by 해양장미


 새해가 되었다. 근래의 정치사회적 움직임은 이명박의 통치시기를 넘어서는 기점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려하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어떠한 커다란 악이 있을 때, 어쩌면 그 악과 싸우는 것은 차라리 쉽다. 그렇지만 악이 남긴 파괴를 딛고 그 다음을 기약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물며 지금까지 해온 게 싸움밖에 없다면 더더욱.


 담론은 이미 옮겨지고 있지만 중앙 정부의 정치적 힘은 한나라당이 독점하고 있다. 다른 정치세력들은 반 MB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았으며, 지금도 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다. 오히려 거대담론들은 민주주의의 확산에 좋지 않게 작용했고, 지난 2010년에 민주당계를 제외한 진보세력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 분위기가 지독하게 나빠진 것은 여러 정치사회 담론과 문화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거대담론과 네가티브에 휘말리기 쉬운 상황이 반복해 발생했고, 문화는 날이 갈수록 빠르게 천박해졌다. 심해진 배금주의는 더 심한 배금주의로의 악순환을 반복시켰고, 내 주변의 거의 모두가 몇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가난해졌다.


 나쁜 쪽으로 가속화된 정치사회적 흐름은 대안으로 거론되는 여러 담론들을 포퓰리즘에 가까운 것으로 만든 것 같다. 물론 그런 조짐은 계속 있었지만, 이 시대의 정치적 퇴행은 무시하기 어려운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근래의 군사적인 갈등은 이념적 균열에 매우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문제는 몇 년 내에 어떤 식으로든 해결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현재는 아주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


 그렇더라도 이제 네가티브는 끝났다. 이명박 정권 다음을 논의할 때가 이미 다가왔으며 그렇다면 반 MB를 넘어 새로운 대안을 이야기해야 한다. 복지 이야기도 좋지만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어지간한 수준의 복지가 자신의 삶을 우선적으로 개선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복지가 세금을 늘릴 거라 생각한다. 정치는 윤리적 욕구뿐만 아니라 실질적 욕구도 충족시켜줘야 한다.


 MB의 비윤리적 권위주의식 통치 시기는 필연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끝을 맺게 되어있다. 막상 그 끝을 앞둔다면, 사람들은 결코 윤리적 욕구만을 고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누가 더 나은 비전을 제시하고 더 포괄적인 시민들을 돌보고 포용할 것인가? 이 의문의 답은 아직 변수가 많다.


 한편 개인적으로는 근래 시민들의 이성적, 윤리적인 수준이나 욕구가 전반적으로 저하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부분이 많은데, 이는 결과적으로 앞으로의 정치사회문화적 양상에 일정 부분 이상 변수로 작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반적으로 사회의 여러 건강한 모습이 사라진 양상이라 할 수 있다.


 너무 많은 것이 파괴되었다. 많은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고, 사람들은 적어도 무언가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은 느끼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열망이 단순한 포퓰리즘으로 기울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지만 이 나라에 앞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은 포퓰리즘 시대를 이겨낼 수 있는 가능성이 어느 정도나 있을까?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또한 이것과 별개로 아직도 야권에서 주로 논의되는 이야기는 반MB연대이며, 안타깝게도 이런 연대는 박근혜의 좌향좌에 의해 이념적, 정책적 차별을 유의미하게 확보하지 못하게 된 게 현실이다. 올해는 나에게 보이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 및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천천히 해나가게 될 것 같다.


 내 생각에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이 자유민주주의의 틀을 일차적으로는 유지하는 가운데 문제점 하나하나를 충실하게 보완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은 절차적 민주주의 체제를 보완해가면서 정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 노력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물론 반 MB담론은 이런 것을 기본적으로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현재의 추세로 정권을 교체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무엇이 나아질 것인가? 물론 MB정권에 비해 더 윤리적인 행정 절차를 밟을 수 있고, 언론은 좀 더 자유로워져 노무현 때 수준으로 수구언론의 권력은 내려갈 것이며, 새만금은 하더라도 4대강 같은 수준의 어이없는 공사는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사회 분위기는 현재보다는 나아질 것이며 서민이 구제받을 확률이 2%내지 5%는 더 생길 것이다. 북조선과는 지금처럼 냉전으로 달려가지 않을 것이며, 제국주의적인 군사주의의 망령도 덜 소환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훨씬 더 나은 기회들이 생길 거다. 국민들끼리의 사회적인 신뢰도 아주 약간은 회복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변화는 근본적으로는 거의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성장 및 그 부수효과들 외엔 뚜렷한 업적 없이 정권을 빼앗기고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켰음에도 그런 실수는 반복될 가능성이 적지 않고, 노무현과 유시민의 신도들은 노무현 정부 및 관련 인사들에 대한 비판 자체를 불허하면서 매우 폭력적인 대응을 일삼고 있다. 국민참여당은 이제 민주당보다 정치학적으로 진보적인 특색이 없다고 판단됨에도 그들이 더 진보적인 것처럼 이미지를 관리하고 있으며, 좌파 정당들은 호남의 민주당보다는 영남패권주의적인 국민참여당과 함께하려고 하고 있다.


 사실 내 생각엔 이제라도 가장 기초적인 것을 해야 한다. 정당이 좀 더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젊은 정치인을 성장시키며 이념적으로 포괄해야 할 계층에게 어필하고 요구를 수용하면서 세력을 늘려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렇게 하려면 현실적이고 시대의 변화에 어울리는 진보적 변화와 행동이 필요하다. 쉽게 말하면 이는 민주주의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정당이 시민의 요구사항을 수용하지 않으면, 절차적 민주주의 정치는 뼈대만 남은 통치에 불과하다.


 한편으로 현재의 복지 담론은 저도의 포퓰리즘성 시혜적 복지에 불과하기 때문에, 바람직하고 수준 높은 복지로 연결될 확률이 낮다. 박근혜도 오세훈도 유시민도 복지를 말하지만, 그것은 아주 낮은 단계의 - OECD 국가 중 형용할 수 없이 최저인 - 복지에 불과하다. 그리고 시간에 따라 복지 레벨은 높아질 것이지만, 그 복지 양상은 각각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포퓰리즘 성향을 가질 확률이 높다. 보다 민주주의적인 변화가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