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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25 대선 복기 두 번째, 공동체주의적 공화주의의 강요 6

 근현대의 민주적인 정치 체계를 구성하는 기반 철학에는 크게 두 가지 축이 있다 할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공화주의이며, 그 중 하나는 자유주의이다. 그렇기에 현대의 이상적인 민주 국가는 ‘자유로운 민주 공화국’ 이라는 식의 표현이 적합하다 할 수 있다.


 이 중 공화주의를 쉽고 간결하게 정의하는 것은 어렵지만, 실질적으로 이 시대에 널리 받아들여지는 공화주의는 거의 공동체주의나 다름없다. 이 사고 체계는 근본적으로 사적인 것보다는 공적인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공적인 것의 부활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것이다. (이는 공화주의의 역사를 볼 때, 과거의 공화주의와는 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제목에 적은 공동체주의적 공화주의는, 마이클 샌델이 주장하는 내용과 동일하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런 사고방식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 점차 늘어나고 있는 자유와 상충되는 면이 있다. 자유주의는 개개인의 자유를 더 중시한다. 근현대의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공화와 자유라는 두 가지 이질적 요소가 접합된 형태일 수밖에 없고, 현실적으로는 두 가치가 충돌하고 타협하면서 사회를 형성해나간다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역사 자체와도 관련이 있다. 공화 없는 민주주의도, 자유 없는 민주주의도 존재할 수 없다. 근현대의 민주주의는 이 두 가지 이념이 혼재되는 과정에서 탄생하였고, 약간 대조적인 두 사상 사이에서 현실의 민주주의는 줄타기를 하면서 각각의 이익을 취하고 균형을 잡는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 현실 정치 담론의 주된 문제점 중 하나로 민주당을 비롯한 통칭 범야권 세력이 공동체주의적 공공선 이미지를 선점하고, 그 공공선을 도덕적인 면에서 강요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많은 경우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선이고, 그 반대라 할 수 있는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것은 악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그 선을 위한 정의의 사도로 나서 악당을 물리치고자 노력한다.


 물론 이런 시도가 잘 될 리가 없다. 민주당이 선거에서 이기는 빈도는 그리 높지가 않다. 평범한 사람을 악당으로 규정하려 드는 데 상대가 수긍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정의는 중요한 가치다. 그리고 충분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국의 기득권이 충분히 정의롭지 못하고, 민주당이 많은 경우 그래도 새누리당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심정적으로라도 정의롭다는 쪽으로 느슨하고도 암묵적인 동의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정의를 규정하는 것은 항상 신중할 필요가 있으며, 정의를 아는 것과 정의를 실행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걸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정의에 의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어 왔다. 적잖은 경우 내가 정의라고 믿는 사람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지극히 잔인한 언행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박근혜와 그 주변은 악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박근혜를 지지하는 모두가 악당은 아니다.


 적잖은 한국 사람들은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할 줄 모른다. 문화적으로 공동체 사회가 극히 최근까지 강하게 존속되어왔고, 각종 역사적 비극으로 인해 개인성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유에 대한 침해는 많은 경우 윤리적으로 규범화되어있기까지 하다. 오랜 기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자유와 개성은 악이었다. 자유로운 정신을 지닌 자들은 규범의 틀을 깨고 더 많은 자유를 향해 나아갈 필요가 있었다. 한편으로 한국 사회의 진보적인 입들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서글픔만을 이야기하면서, 한국에 애초에 모자랐던 자유주의의 전통과 역사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일단 힘들더라도 문재인을 찍었던 사람들은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의 자유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패배가 뼈아플지라도, 견딜 수 있다면 승자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라. 그것이 민주주의다. 상대를 욕하고 몰아붙이고 비난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그들 또한 하나의 선택을 했을 뿐이고, 그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법률과 철학으로 보호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이 취득한 정보와 각자의 입장, 그리고 사고방식은 문재인을 찍은 사람들과 다르다. 그리고 자유로운 민주 공화국 시민들은 반드시 공동체를 우선해야 할 의무는 없다. 공익을 위해 사익을 희생하라 강요하는 것은 충분히 민주적인 태도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공공선에 있어서는 그다지 로맨틱한 만족감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한편 실제로 대부분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평균적으로 의식이 더 많이 규범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많은 경우 민주당 지지자들은 문화적으로 적잖게 보수적이다.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보수주의자고, 새누리당은 친일 매국 세력이라는 주장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논지로 국민의 51%를 친일 매국 세력으로 규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51%은 무지하고 사욕에 가득 찬 세력으로 - 즉 한 단계 낮은 수위의 악당으로 - 규정되곤 한다.


 이런 행태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이기고 싶다면 의식을 바꿔야한다. 저런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지나치게 규범적이기에 사실 좀 반민주적이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공화 정치는 플라톤식 철인정치도 아니고, 유교식 왕도정치도 아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에 찬성하지 않았다. 유학자들도 찬성할 사람이 없었을 거다. 당신이 민주주의를 존중할 수 없다면, 스스로 민주주의자가 아님을 받아들이라. 민주주의는 유일하게 정의롭고 훌륭한 정치 체계는 아니다. 잘만 실현된다면 철인정치나 왕도정치가 더 나은 방식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적으로 이기고 싶다면 힘들더라도 닫힌 마음을 열고 새누리당 지지자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 SNS를 언팔로우하는 식으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들이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지를 알아내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소통이다. 나만 정의고,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설령 그게 진리의 기준에서는 맞다 해도 현실에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정치는 현실이다. 민주주의도 현실이다. 이걸 받아들이지 않는 도덕주의자들에게 승리는 찾아오지 않는다. 상대를 잘 알지 못하는데 어찌 상대를 이길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현실에선 격언처럼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야’ 이긴다. 그런데 민주당 지지자들은 새누리당 지지자들을 잘 모르지만,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민주당 지지자들을 제법 잘 안다. 그러니까 민주당은 이길 만한 싸움도 맨날 지는 거다.


 한편으로 공화와 공동체, 그리고 도덕 윤리를 강조하는 관점 자체는 항상 힘 있는 철학이긴 했다. 그러나 그런 태도 자체는 문화적으로 보수적이기 쉽다. 진보라는 제목을 달고 보수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는 모순을 해결할 필요가 있다. 또한 나는 한국 사람들은 항상 어떤 의미로든 한 발식이라도 전진하려는 진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의 국민들이다. 국민의 마음을 잡고자 한다면, 불안과 공포라는 대중 심리와 그로 인해 끊임없이 강요되는 진보성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