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옳은가에서 누가 더 좋은가로

정치 2017. 4. 9. 01:42 Posted by 해양장미

 읍읍씨는 항상 이렇게 주장합니다.

 

 나는 옳다. 누구보다도 옳다. 그러므로 내가 정의로운 권력자가 되어야 한다.

 

 그에 비해 안철수는 항상 이렇게 주장합니다.

 

 내가 더 나은 후보다. 국민들이 그것을 알아줄 것이다.

 

 나는 이번 대통령 선거는 본질적으로 옳음과 좋음의 대결이라 생각합니다. 철학적인 주제가 어느 때보다도 현실화된 것이지요. 읍읍 후보에겐 이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게, 이번에 읍읍 후보의 앞에 선 상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읍읍 후보 못지않게 옳은 후보입니다. 읍읍 후보가 더 옳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옳음의 격차는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읍읍 후보는 옳음의 홈그라운드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읍읍 후보는 상대를 나쁘다고 주장합니다.

 

 안철수 후보는 좋음 영역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옳음보다 좋음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역대 선거도 더 좋은 후보가 거의 이겼지요. 그러나 안철수 후보는 자신이 충분히 좋은 후보라는 걸 더 증명해야합니다. 많은 유권자들은 안철수보다 더 좋은 후보가 없는지를 오랜 시간동안 기다려왔고, 이젠 대선 전에 그런 사람이 안 나올 것이라는 걸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눈에 안철수 후보가 충분한 건 아닙니다. 한국인들은 비현실적으로 눈이 높은 경향도 있습니다.

 

 나는 입법과 행정은 좋게, 사법은 옳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무엇이 옳은지 잘 모르고 삽니다. 지금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지만, 천년 이천년 후의 후손이 그것들을 옳다고 해줄지는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혜를 모아 무엇이 좋은지를 고민하고, 그에 맞춘 기준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준을 정한다면, 그것에 대해 옳고 공정한 절차를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민주적이고 자유로운방식입니다.


 정치에서 옳음이 앞서는 경우, 그것은 자유와는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건 종교거나 관습’, 또는 도그마’, ‘교조적이라 해야 합니다. 사람은 좋음을 평화롭게 논할 수 있으나 옳음을 평화롭게 논할 수는 없습니다. 좋음은 더 좋음과 덜 좋음이 있지만, 옳음엔 더 옳음과 덜 옳음이 잘 없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사랑과 구원을 이야기하더라도 전쟁과 살인, 참혹한 고문을 일삼아왔습니다. 옳은 정치를 하려고 애썼던 조선이 처참하게 몰락했던 걸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정치에서 옳음을 앞세우는 사람들은 가장 보수적인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