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금
공동주택은 철근콘크리트조로 짓는 게 표준입니다. 철근콘크리트조로 짓는 게 가격도 저렴하고, 튼튼하고, 층간소음도 덜하고, 고층으로 지을 수 있기 때문인데요. 철근콘크리트조 다층건물은 구조에 따라 셋으로 나눕니다. 벽식, 무량판(기둥식), 라멘조(기둥-보 구조).
이 셋 중 가장 비싸고 가장 좋은 건 라멘조입니다. 라멘조는 기둥으로 건물의 하중을 지지하고, 기둥 사이에 보 구조물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구조물로 슬래브(바닥 또는 천장)를 지지하지요. 문제는 비싸다는 것. 그리고 보 구조물이 차지하는 공간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라멘조 건물은 잘 짓지 않고, 대부분이 벽식 아니면 무량판입니다. 이중에서도 벽식이 훨씬 많습니다.
벽식은 내력벽이 기둥을 대신하는 구조입니다. 기둥이 따로 없고요. 구조상 두껍고 고정된 벽들로 기둥을 대체합니다. 그러니까 이 내력벽은 구조변경이 불가합니다. 내력벽이 아닌 벽만 구조변경이 가능하지요. 대다수의 아파트는 벽식구조입니다.
벽식구조의 장점은 어차피 있어야 하는 벽이 그냥 기둥을 대신하기 때문에 내부공간이 넓다는 겁니다. 다른 공법보다 저렴해지고요. 평면에서 벽이 차지하는 넓이가 꽤 되고, 슬래브도 벽에 고정되기 때문에 제법 튼튼하기도 합니다. 다만 한가지 결정적인 단점이 있는데, 층간소음이 심하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아파트에서 층간소음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한 이유가 벽식구조가 많아서입니다. 벽식구조는 특정 슬래브에 충격진동이 발생하면 주변 벽으로 퍼진 후, 벽을 따라 전달됩니다. 벽이 크고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멀리까지 충격음이 잘 전달되지요. 그러니까 위층에서 슬래브가 울리는 소리가 바로 들리는 것뿐만이 아니고, 아래집 소음이 위층에 전달된다거나 몇 세대를 거치면서 꽤 멀리까지 퍼지거나 합니다. 이런 문제를 줄이려면 벽 내부공간에 흡음재가 잘 차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까지 부실할 경우 답이 없을 정도로 층간소음에 취약해집니다.
그래서 요즘은 무량판도 많이 짓는데요. 흔히 기둥식이라고 하면 무량판 구조입니다. 라멘조도 기둥식이라 할 수 있지만, 잘 짓지 않으니까요.
무량판 구조는 쉽게 이야기하면 라멘조에서 보 구조물이 빠진 형태입니다. 기둥으로만 슬래브를 지탱하는 형태인데요. 장점은 라멘조에 비해 저렴하고 보 구조물이 없으니까 그만큼 공간도 절약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벽식에 비하면 층간소음이 덜합니다. 넓은 내력벽을 따라 곧바로 소음이 전달되지 않고, 충격이 기둥에 집중되니까요. 위층 슬래브가 직접 울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벽타고 전달되는 건 덜하지요. 물론 라멘조는 무량판보다 층간소음에 더 강합니다. 보 구조물이 슬래브의 소음진동을 줄여주기 때문입니다.
대신 무량판은 단점이 있습니다. 구조가 약하다는 겁니다. 보도 없고 단면적이 좁은 기둥으로만 건물을 지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삼풍백화점이 대표적인 무량판이었는데, 삼풍이 그렇게 붕괴한 건 무량판 구조의 취약성을 잘 보여줍니다. 그래서 삼풍 붕괴 후 무량판을 잘 안 짓게 되었었습니다. 벽식을 주로 지어왔지요. 그런데 최근에 층간소음 문제가 점점 사회적으로 대두되다보니 다시 무량판 구조를 짓는 경우가 늘어났고요.
그렇게 무량판 구조를 짓다가 이번에 광주에서 아이파크가 붕괴한 겁니다. 콘크리트 양생문제나 동바리 철거문제, 무단으로 슬래브 두께를 늘린 것 등이 직접적인 붕괴의 원인이겠지만, 무량판이라 구조가 약하니까 상대적으로 붕괴가 쉬웠던 것이기도 합니다.
똑같이 부실공사를 한다 칠 때 벽식은 버텨도 무량판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게 무량판의 문제입니다. 라멘조라는 모범답안이 있긴 하지만, 라멘조는 비싸지기 때문에 상업성이 없습니다. 주택 소비자들은 더 비싸고 더 공간이 좁은 집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건축회사들의 이익율은 지금처럼 부실하게 짓는 와중에도 그렇게까지 높지 않습니다. 업계 Top 5 안에 드는 대우건설이 부도나고, 아직도 산업은행이 가지고 있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운한 참극 (77) | 2022.10.30 |
---|---|
디스토피아 : 안티 휴머니즘 & 안티 플러럴리즘 (45) | 2022.06.25 |
논현경찰서 여경 도주 사건 (33) | 2021.11.22 |
다가오는 판데믹 종식 (62) | 2021.10.27 |
폭염의 계절 (18) | 2021.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