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지명 정리 Ver 2.1

사회 2022. 1. 5. 20:29 Posted by 해양장미

 인천에서 현지에서 통용되거나 예전에 쓰던 지명 등 다룹니다. 가나다 순입니다. 차후 업데이트될 수 있습니다.

 

(2022/01/05 대규모 업데이트. Ver 2.0)

(2022/01/13 구송도 내용 추가, 정렬 오류 수정. Ver 2.1)

 

 

 

BYC거리

 

: 연수구 연수2동에서 청학동까지 걸쳐있는 상권을 의미합니다. 정식 명칭은 연수동 맛고을길 정도. 어원은 먼우금사거리에 있는 BYC 직영점입니다. 꽤 넓은 규모의 상권으로 연수구청 인근이며 북쪽으로 연수역이 지나가는, 도시설계상 연수구의 중심가. 실제 한동안 연수구 제1상권이었으나 송도국제도시가 흥한 현 시점에서는 연수지구의 중심상권 정도의 위상이 되었습니다. 연수역이 본래 도시계획보다 너무 늦게 생긴 건 이 상권에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원래 계획은 수인선 연수역이 인천 1호선 신연수역보다 먼저였지요.

 

 

 

 

 

NDS

 

: 법정동 남촌동, 도림동, 수산동을 의미합니다. 행정동 남촌도림동과 같은 의미입니다. 많은 지역이 그린벨트에 해당하며 인구밀도가 매우 낮은 지역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도시 느낌이 아니었는데, 근래엔 그나마 농산물도매시장도 생기고 개발도 조금씩은 되는 분위기입니다만... 그래도 인근 구월동에 비하면 여전히 별세계입니다. 대도시 한복판의 소도시.

 

 

 

 

 

6, 8공구

 

: 송도국제도시 6, 8공구를 의미합니다. 서쪽에 좀 외진 편이고, 근래 개발이 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공구 이름으로 불릴 때가 많습니다. 현 행정동으로는 송도4동의 옐로 선셋 레이크를 포함한 서쪽과 송도5동 주거지역이 6, 8공구입니다. 송도국제도시 전체로 보면 1공구부터 11공구까지 있는데, 송도국제도시 현지인은 송도1동~5동 구분보다는 공구 넘버로 동네를 구분합니다.

 

 

 

 

 

가정오거리

 

: 현재 가정오거리는 사라졌습니다만, 여전히 예전 이름을 사용하게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현재의 가정역 및 루원시티가 있는 곳입니다. 예전에는 이곳에 오거리가 있었습니다. 루원시티는 현지에서는 청라와 구분하지만 외지(인천 내 타 지역 포함)에서는 많이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서, 해당 지역은 그냥 청라 쪽이라고 하거나 구분해서 부를 때는 가정오거리 쪽이라고 많이 부릅니다. 지금은 오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찾아도 없습니다.

 

 

 

 

 

깡시장

 

: 부평시장역 근처의 연담화된 시장 중 하나. 예전에는 그냥 ‘깡시장’ 또는 ‘(부평)농산물도매시장’이라 했는데, 요새는 보통 ‘부평 깡시장’이라 부릅니다. 그리 멀지 않은 부천역 남쪽에도 부천깡시장이 있긴 한데, 그쪽은 부천 토박이들이나 아는 시장이 되어 있습니다.

 

 ‘깡’은 경매를 ‘깡 부른다’고 하던 말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도매시장이라는 뜻인데, 지금은 딱히 도매시장은 아닙니다. 현재의 부평시장은 다수의 시장이 합쳐진 형태가 되어서, 깡시장은 부평시장 중 일부 구역에 붙은 이름이 되었습니다.

 

 

 

 

 

 

검단

 

: 1994년까지 김포군 검단면이었던 지역으로 인천 본토의 북쪽입니다. 당시 인천직할시가 광역시로 승격되면서 강화군, 옹진군과 함께 김포군도 편입이 논의되었었는데, 김포군 내에서 의견이 갈려 주민투표를 했고 그 결과 검단면 사람들만 인천 편입에 찬성하여 검단면만 인천광역시가 되었습니다.

 

 검단은 본래 인천지역은 물론 부평지역과도 거리가 있었고, 후술할 계양동(면)과도 거리가 있어 교류가 많지 않았습니다. 또한 90년대 초반만 해도 대부분의 지역이 오지였고, 지형도 한남정맥에 속하는 구릉지대라 인천 편입 이후에도 개발이 신속하게 되지는 않은 곳이 많습니다. 다만 어느 정도는 90년대에 이미 신도시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발굴된 유적으로 박물관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후술할 경인아라뱃길 공사 이후에는 서구에 속하는 아라뱃길 이북 지역은 모두 검단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생겼는데, 아라뱃길 이북 서구 지역 중 그럴만한 게 본래 검단면이 아니었던 지역은 일부에 불과하고, 그 일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이 소수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도시가 된 지 25년 이상 지나고 있지만 아직 검단 지역과 그밖의 인천지역이 완전히 한 도시가 되었다고 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검단은 구릉지다보니 원래 외지기 쉽고, 인천 타 지역에서 굳이 검단에 가볼 일이 별로 없습니다. 경인아라뱃길 때문에 교류가 더 없기 쉽기도 하고요. 본래 검단면에 속하지는 않았던 드림파크나 독정역 인근까지는 그나마 서구에서 왕래가 있습니다만, 진짜 검단 안쪽까지는 타 인천지역에서 거의 오고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검단 사람들 중 제법 다수가 오고다니는 생활권이 김포, 일산, 서울입니다. 인천에 대한 외부의 오해 중 하나가 인천을 서울 위성도시라고 보는 건데요. 인천은 어떤 기준으로 봐도 서울의 위성도시라고 볼 수 없습니다만, 예외적으로 검단만은 서울의 위성도시 성격이 있는 지역입니다.

 

 

 

 

 

검암

 

: 서구 검암동 일대의 지명입니다. 이름의 유래는 검은 색을 띤 큰 바위가 있어서 지어졌다고 하고, 서인천고에 있는 검바위가 그 기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본래는 그보다 큰 검바위도 있었는데 학교 공사하는 과정에서 큰 건 사라지고 작은 것만 남았다고도 전해집니다.

 

 해당 지역에 인천2호선 역이 두 개 있고 서인천고 바로 앞에 있는 역명은 검바위, 보다 북쪽에서 AREX(공항철도)와 환승하는 역 이름은 동명과 같은 검암입니다. 검바위와 검암이 이름 뜻은 같지만 구분해서 부르고 있고, 그래서 검바위역의 중국어 이름은 黔石 입니다.

 

 바로 북쪽이 검단이고 이름이 유사하기 때문에 검암동은 검단과 흔히 혼동됩니다. 그러나 검암동은 아라뱃길 남쪽이고, 검단은 아라뱃길 북쪽입니다. 검암 생활권은 검단이 아니라 서구청 일대에 속합니다.

 

 

 

 

 

 

검바위 롤러코스터

 

: 검바위역 앞의 인천도시철도 2호선 경사구간을 롤러코스터 구간이라 부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철도 경사를 체험할 수 있는 구간으로, 실제 보는 거나 전철을 타고 체감하는 것보다 사진을 찍었을 때 착시로 극단적인 경사처럼 보이게 됩니다. 실제 타보면 의외로 그리 별 느낌이 아닙니다.

 

 

 

 

 

경서지구

 

: 청라 북쪽, 검암 서쪽에 고립되어 있는 도시화된 주거지역입니다. 05~06년 정도에 준공된 주택들이 있고, 인천 본토 최고의 오지. 청라나 서구청 일대, 검암 쪽에서 먼 건 아닌데 도보로 이동할 만한 거리도 아니고, 2021년 현 시점에서 주변에 다른 연담화된 지역이 없기 때문에 많이 외집니다. 외진 곳을 좋아하는 사람한테 추천할 만한 지역 중 하나.

 

 

 

 

 

경원

 

: 고려 초기 1133년까지, 그리고 1390~1392년에 잠시 인천지역에 붙었던 이름입니다. 한자로는 慶源. 앞 시기에는 경원군이었고 뒷 시기에는 경원부였다는 차이가 있지만, 오래 쓴 이름이 아니고 잘 알려지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이 이름을 딴 경원중학교가 미추홀구 주안동에 있고, 연수구에서부터 부평까지 이어지는 인천의 주요 도로 중 하나인 경원대로도 이 이름을 따왔습니다.

 

 

 

 

 

 

경인아라뱃길

 

: 인천 서구 오류동의 정서진에서부터 김포와 서울의 경계 아라갑문으로 이어지는, 황해와 한강을 잇는 운하입니다. 운하의 폭은 80m 정도. 서해에서 서울 한강까지 직통으로 잇는 뱃길로 많은 기대와 우려 속에 준공되었습니다만, 결과는 우려했던 쪽에 가깝고요. 수운 역할은 못하는 대신 근사한 공원이자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만든 자전거 도로이자 성능 좋은 홍수방지시설입니다. 아라라는 이름은 아리랑의 가사 ‘아라리요’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이하 여러 번에 걸쳐 후술하겠으나 경인아라뱃길 프로젝트의 시작은 고려 무신정권 시대부터였습니다. 그 완공을 21세기에 하게 된 것이고요. 아마 좀 이른 시대에 완공했으면 수운으로도 잘 활용했을 것이나,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시대를 잘못 만났습니다. 다만 본래 기대된 두 번째 역할이 홍수가 잦은 부평평야의 홍수 방지용인데, 아라뱃길 완공 이후 부평평야에 홍수가 나지 않는 걸 보면 그 역할은 잘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라뱃길은 자전거 도로로 명성이 높습니다. 곧은 운하를 따라 자전거도로가 쭉 뻗어있는데, 한강처럼 사람이 많지 않고, 고저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꽤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풍향은 거의 항상 바다 -> 한강 쪽이기 때문에 동 -> 서로 가는 건 맞바람이라 상대적으로 어렵고, 서 -> 동 방향은 속도가 잘 나옵니다. 사람이 좀 더 많은 곳은 뱃길 남쪽 길인데, 뱃길 북쪽 길이 좀 더 경치 등이 근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계산지구

 

: 계산택지, 계산택지지구로도 부르는 계양구의 중심지로 행정동 계산4동 및 행정동 작전서운동, 그리고 법정동 병방동에 걸쳐있습니다. 계양구청과 계양경찰서, 소방서, 우체국 및 계양구 중심 상권이 있는 지역이며, 주거지역은 전부 고층아파트로 되어있고 북쪽에서부터 학마을, 용종마을, 초정마을, 은행마을, 도두리마을, 까치마을의 여섯 지역으로 나뉩니다. 이 지역의 아파트들은 건설사/단지별이 아니라 마을 단위로 동 넘버가 붙는 특성이 있는데, 예를 들어 학마을 아파트는 첫 숫자는 1이고, 그 다음은 학마을 아파트 전체에 01부터 동 넘버가 붙습니다. 101동부터 145동까지 있는데, 단지는 네 단지가 있지만 상관없이 동 넘버가 올라갑니다. 계산택지와 인접해 있지만 작전2차 현대아파트, 서운동 경남아너스빌, 계양임광그대가, 계양효성해링턴플레이스는 계산택지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이 마을 체계와 동 넘버 체계와 무관한 독자적인 동 넘버가 붙어있습니다.

 

 

 

 

계산천

 

: 본래 계산동 일대를 흐르던 하천이었습니다. 90년대에 대부분의 구간이 복개되어 도로화되었는데, 도로명에 그 흔적이 남았습니다. 계산천서로, 계산천동로, 계산새로에 속하는 구간이 본래 계산천이었습니다. 이 하천의 흔적으로 계산천서로와 계산천동로 및 그 주변 길은 구릉지가 아님에도 반듯하지 않습니다. 본래 하천 근처에 있던 자연적인 주거 환경의 모습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계산천은 서부간선수로에서 굴포천까지 이어지는 짧은 구간만이 남았습니다. 굴포천의 지류에 속합니다.

 

 

 

 

계양구

 

: 인천광역시 본토 북동쪽의 자치구. 과거 부평도호부 시절도 그렇고, 그 이전 시대도 그렇고 삼국시대부터 쭉 부평지역의 중심지였으나, 경인선이 생긴 이후 부평역이 있는 현재의 부평구 쪽으로 중심지가 넘어간 이후 외곽 주거지역화된 자치구입니다.

 

 인천 본토에서 가장 넓고 권역이 큰 산인 계양산과 아라뱃길을 끼고 있어 전체 면적의 2/3 정도가 산지 또는 농지이며, 북동쪽으로는 김포공항 활주로 일부를 포함하여 그 주변 지역은 오지로 남겨둔 상태이기도 합니다. 부평구와 가까운 남쪽 지역에 대다수의 인구가 거주 중이며 90년대에 많은 인구가 이주해 살다가 근래는 인구유출지역이 된 상태. 오래된 지역은 쇠락의 징후가 현저하여 과감하고 광범위한 재개발이 필요합니다만 복합적인 문제로 추진이 잘 되는 지역은 아닙니다.

 

 녹지가 많아 전반적으로 공기가 좋고 부평평야지대라 평지가 많으며, 신도시 지역은 실거주자들의 만족도가 높고 서울 강서구, 양천구와 가깝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강서구와는 접경하고 있어서 인천과 서울의 유일한 접경지입니다. 다만 위치 특성상 인접한 부평구, 서구를 제외한 인천 안쪽과는 교류가 다소 적은 편이며, 토박이들은 부평구쪽 못지않게 현재의 부천시, 김포시 고촌읍 및 사우동 일대, 김포공항 인근과도 전통적으로 교류가 있어왔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강화-김포-계양 지역은 순무를 먹는 공통점이 있기도 합니다. 다만 계양구 토박이는 드물기 때문에 순무를 아무데서나 쉽게 보거나 먹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강화도는 순무를 특산물화하여 팔고 있지만 김포, 계양 지역에서는 그냥 토박이들이 자급자족하는 정도입니다. 순무김치 나오는 음식점이 계양구에 가끔 있긴 한데 흔하지는 않습니다.

 

 본래 부평구와는 하나의 구였고, 00년대만 해도 계양구는 부평구에서 이어지는 주거지역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공항철도가 개통되어 계양구에서 서울로의 독립적인 접근성이 높아지고, 부평구 일대가 쇠퇴하면서 2010년대 들어 계양구는 부평구에서는 보다 독립적인 성향을 가지게 됩니다. 다만 본래 태생이 주거지역이고 일자리가 많은 자치구는 아니라서 여전히 다수의 계양구민들은 자치구 밖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습니다.

 

 

 

 

 

 

계양동

 

: 계양구 북쪽의 행정동. 계양 1동부터 3동까지 있는 광범위한 행정동이며, 계양구 전체 면적의 2/3정도를 차지합니다. 본래는 부평도호부에 속하였으나 1973년부터 1989년까지는 경기도 김포군이었던 지역입니다. 그래서 한참 한국이 도시화되던 시절에는 인천이 아닌 김포였고, 1990년대 들어서야 인천에 편입된 바깥쪽 지역입니다.

 

 19개의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래 임학동, 병방동은 계산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도시지역이었고 인천도시철도 1호선 완공 및 동양지구 개발 이후에는 박촌동, 동양동, 귤현동, 그리고 아라뱃길 이북의 장기동 및 이화동, 그리고 오류동 일부도 도시지역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계양동에 속하는 지역 중 아직 꽤 넓은 지역이 계양산 일대 및 농경지, 김포공항 활주로 및 그 인근으로 개발이 어렵습니다. 특히 계양산은 주민들이 나서서 개발을 막은 곳이기도 하고요.

 

 

 

 

 

계양산

 

: 인천 본토 최고봉. 높이는 해발 395.4m. 본래 부평도호부 최고봉이었으며, 강화군 편입 이전에는 인천직할시 최고봉이기도 했습니다. 단순하게 높이로만 보면 그렇게까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주변이 해안 평야지대라 워낙 지대가 낮고, 주변에 다른 높은 산이 없기 때어 계양산 정상을 중심으로 직선거리 24km 내에서는 가장 높은 산입니다. 계양산에서 가장 가까운 계양산보다 높은 산은 관악산입니다. 그 다음으로 가까운 산은 인천광역시 최고봉인 마니산이고요. 현재 인천광역시에서 계양산보다 높은 산들은 모두 강화도에 있습니다.

 

 평야지대 최고봉이고 주변에 높은 산이 없는 만큼 날씨 좋은 날의 계양산 정상에서는 굉장히 먼 곳까지 볼 수 있습니다. 파주, 개성, 대부도, 롯데월드타워까지 시야 안입니다. 광범위한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만큼 항공관측장비가 나오기 이전에는 군사적 요충지였고, 고대에는 산성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개발되기 이전에는 산세가 험하기로 유명하기도 했습니다.

 

 롯데에서 계양산 토지를 많이 소유하고 있고, 개발하여 골프장과 테마파크 등을 만들려는 시도를 장기간 해왔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이 천주교세와 함께 개발을 막아, 롯데가 결국 포기한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계양구는 민주당의 텃밭이 되어버렸고, 또한 동시에 유감스러울 정도로 개발, 재개발, 재건축 등이 어려운 지역이 되어버렸습니다.

 

 

 

 

 

 

계양산팔각정

 

: 정상쪽 말고 계산역 쪽에서 가장 일반적인 등산로로 계양산을 오르면 육각정자가 하나 있는데, 지역 랜드마크로 실제로는 팔각이 아니지만 다수가 팔각정이라 부릅니다. 육각정을 팔각정이라 부르는 것이니, 다른 데서 팔각정을 찾으면 안 됩니다. 실제로는 육각인 건 대체로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육각정이라 불러도 사람들이 대체로 이해는 합니다.

 

 

 

 

계양천

 

: 계양산 북쪽 둑실동 쪽에서 발원하여 김포로 흐르는 하천입니다. 발원지가 아라뱃길 이북에 속하며, 검단을 지나 북쪽으로 흘러 한강으로 이어집니다. 지류로는 나진포천이 있습니다.

 

 이름이 계양천인 것과는 별개로 계양구 일대와는 별 상관이 없는 하천으로, 유역은 주로 서구와 김포 쪽에서 이용합니다. 발원지가 계양산이라 계양천이라 부르는 하천이고, 실제 김포 일대도 계양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이라 계양구, 서구 북쪽, 김포시는 본래 광의의 한 생활권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구송도

 

: 본래 인천 송도는 송도유원지 인근 및 옛 송도역 일대(현 청학사거리 일대)를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송도국제도시가 생기고, 송도유원지가 사라지면서 현재는 그냥 ‘송도’라고 하면 송도국제도시쪽을 부르는 말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래서 본래 송도였던 지역을 일컫는 말이 지금은 ‘구(舊)송도’가 되었습니다. 지리적으로 보면 연수구에서 송도국제도시가 아닌 지역 중 미추홀대로 서쪽은 대략 구송도에 해당합니다. 연수구 타 지역과는 달리 구릉이 이어지는 지형입니다.

 

 현재 수인선 송도역이 위치한 곳은 구송도입니다. 옛 송도역에 비하면 서쪽으로 1.5km 정도 떨어져 있고요. 그렇다보니 송도역은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역이 아닙니다.

 

 

 

 

 

구월동

 

: 본래는 법정동 구월동을 일컫는 말인데, 구월동이 워낙 도시 중심지고 인지도가 높다 보니 대략 근처 지역까지 뭉뚱그려서 구월동 쪽이라고 부를 때가 많습니다. 특히 구월동으로 오해를 많이 받는 지역은 터미널 주변이고, 간석동 쪽 일부도 구월동 취급받을 때가 드물지 않습니다. 여담으로 간석초등학교는 구월동에 위치합니다.

 

 

 

 

 

 

굴포천

 

 부평 일대를 흐르는 주요 하천입니다.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만들고 관리해온 인공하천으로, 발원지는 원적산입니다. 처음 공사를 시작한 인물은 최충헌의 아들 최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부평평야는 본래 전국적으로 꼽힐 곡창지대라 하천이 필요했으나 워낙 완전 평지라 공사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충분한 경사를 만들 수 있는 지역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천은 물이 흘러나가야 하는데, 완전한 평지에서는 경사를 만들기 어려워 물이 잘 흘러나가지 않습니다. 심히 평평하다보니 부평평야 일대는 오래 전부터 홍수가 잦은 지역이었습니다.

 

 굴포천은 그 자체로 저수기능이 있기 때문에 공사 이전보다는 부평지역의 홍수를 덜하게 만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역할의 연장선상에서 공사한 게 현대의 아라뱃길이고요. 현대의 굴포천은 본래 청천동을 흐르던 청천천 쪽을 복개하고 갈산동 쪽부터 하천이 드러나 아라뱃길로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7호선에 굴포천역이 있는데, 사실 굴포천역은 굴포천과 딱히 밀접한 상관이 있는 곳이 아니고, 해당 역명을 지을 때 주민들이 지지한 이름도 아닙니다. 본래 해당 위치는 신복사거리라 신복역으로 명명될 예정이었는데, 부평구에서 굴포천 이름이 들어간 역명을 짓고 싶어하여 굴포천역이 되었습니다.

 

 

 

 

 

 

금곡동

 

 인천에 금곡동이라는 동명은 두 곳이 있습니다. 하나는 동구 배다리 쪽에 있고, 하나는 서구 검단과 김포의 경계 쪽에 있습니다. 두 지역은 거리가 꽤 떨어져 있고 생활권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혼동을 일으키지는 않습니다만, 같은 도시에 동일한 동명이 있는 것은 좋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두 이름 다 법정동명이며, 본래 원인천과 검단이 다른 지역이라 생긴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길주

 

 인천의 과거 지명은 옛 인천도호부쪽을 위주로 설명되곤 합니다만, 실제 전근대 시절에는 부평도호부가 더 큰 도호부였습니다. 부평 지역의 옛 이름들은 잘 알려지지 않아 현재는 도로명이나 학교명 등에 좀 남아있는데, 길주는 인천광역시 이전 부평 지역에 붙었던 가장 급이 높은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려는 좀 복잡한 지방 행정 체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주요 지방 도시에 ‘목’이라는 이름을 붙여 관리하였었습니다. 흔히 12목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당시 목에 해당하는 도시는 양주, 광주(廣州), 충주, 청주, 공주, 상주, 전주, 나주, 진주, 승주(현재 순천에 통합), 해주, 황주였습니다.

 

 고려 시대에 부평은 처음에 수주(樹州)로 불리다가 이후 안남도호부로 개명되고, 또 계양도호부로 개명됩니다. 그런데 충렬왕 시대에 이르러, 충렬왕은 계양도호부에 자주 들르며 호감을 보입니다. 충렬왕은 태자 시절을 몽고에서 보낸 영향인지 매 사냥을 좋아했고, 당시 고려에서 매를 키우던 곳이 계양산에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현재 계양구와 서구 사이에 있는 징매이고개에 남아있지요.

 

 그 덕인지 충렬왕 34년(1308년), 계양도호부는 길주(吉州)목으로 승격됩니다. 그런데 이때는 충렬왕의 말년입니다. 충렬왕이 계양도호부를 길주목으로 승격시킨 1308년에 이미 충렬왕은 아들 충선왕과의 정쟁에서 패해 실권을 잃은 이후였고, 그 해 사망합니다. 참고로 충렬왕과 충선왕은 부자관계지만 꽤 정쟁이 심했는데, 본래 충렬왕은 1274년에 처음 재위하여 1298년까지 1차 재위한 이후, 아들인 충선왕에게 양위했다가 복합적인 갈등이 심해져 8개월 만에 복위하였었습니다. 그러다가 1307년에 들어서는 다시 충선왕에게 밀리게 되지요.

 

 충렬왕 사후 재즉위한 충선왕은 모처럼 목으로 올라갔던 길주목을 이번에는 도호부도 아닌 그냥 ‘부’급으로 강등시킵니다. 그 때 붙은 이름이 부평부. 부평이라는 지역 이름은 충선왕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이후 다시 도호부로 올라가긴 합니다만. 그러니까 길주는 부평이 독립 지자체로 가졌던 가장 급이 높은 이름이었습니다.

 

 현재 길주라는 이름은 7호선 석남역 서쪽부터 까치울역 동쪽까지, 7호선 라인과 동일한 도로인 길주로와 계양구 용종동의 길주초등학교에 남아있습니다. 본래 길주라는 지명이 현재의 부평구, 계양구, 부천시를 모두 포괄하는 것을 드러내듯 세 기초단체에서 사용 중인 이름입니다.

 

 

 

 

남구

 

: 미추홀구의 옛 이름. 과거에는 남동구와 연수구도 남구에 속했었습니다. 본래 인천 남쪽에 있었던 구지만 1988년에 남동구가, 1995년에 연수구가 분리되면서 실제 남쪽에 있는 구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 이름과 위치가 맞지 않아 2018년에 미추홀구로 이름을 개명하게 됩니다. 이름이 개명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직 남구라는 지명이 남아있는 곳이 꽤 될 겁니다.

 

 

 

 

 

남동구

 

: 인천광역시 남동쪽의 자치구. 방위에 어울리는 이름이기는 하지만 이름 한자가 南東은 아닙니다. 그래도 방위에 어울리는 이름이라 사용에 문제는 없는 상태. 금세기 들어 인천의 행정, 교통, 상권 등의 실질적 중심지입니다. 신도심. 그리고 도심지역과 떨어진 곳에 유명한 소래포구를 포함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리적으로는 구릉지이고 인천의 남동쪽 외곽이며 도심도 아니었습니다. 실제 상기한 대도시 속 한복판의 소도시, NDS 지역을 포함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원래 도심으로 발달하기 좋은 지형은 아니고, 주거지 및 농지에 가까웠으나 인천시청이 구월동으로 이전하고 1999년 10월에 인천도시철도 1호선이 부평과 인천시청, 구월로데오 및 인천터미널을 잇도록 개통되면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도심이 옮겨지고 말았습니다.

 

 남동구는 남동구만 하나의 도시라고 쳐도 대도시라 할 만큼의 면적, 인구수, 다양성, 상권, 산업 시설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점은 구월동-만수동-간석동의 도심지역은 어쩔 수 없이 번화도가 높아서 자차 운전, 주차 등이 쾌적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남동공단의 영향 등으로 주거하기에 공기질이 좋은 편은 아닌 지역이 제법 있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남동공단

 

: 인천에서 가장 유명한 공단. 남동구 고잔동 쪽에 위치해있으며, 실제 규모에서 인천 최고는 아니지만 존재감은 큽니다. 연수지구와 논현지구 사이에 위치해있으며, 정식 명칭은 남동인더스파크고 남동공단은 옛 이름이지만 다들 남동공단이라 부릅니다. 수인선 남동인더스파크역이 공단 한가운데 있습니다.

 

 대부분의 인천 바닷가 공단들이 그러하듯 남동공단도 간척으로 만들어진 땅에 형성된 공단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평지 지형이며, 현재는 송도국제도시가 생겼기에 인천 남부의 중앙에서 약간 동쪽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첨단화가 많이 진행된 공업지대라 공장지대 치고는 인식이나 환경이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만, 그래도 공단이다보니 인천에서 화재가 나면 이 지역에서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동유수지

 

: 남동공단 남부에 있는 거대한 유수지입니다. 승기천 하류의 물을 저수하는 시설로, 후술할 옐로 선셋 레이크 다음으로 인천광역시에서 큰 호수입니다. 공단지대를 흐르는 하천 하류 물이니까 원래 수질이 매우 나빴으나, 근래 많이 개선되었지만 음용수로 사용은 불가능합니다.

 

 꽤 거대한 호수입니다만 사람의 발길이 잘 닿는 곳은 아닙니다. 실제 유수지 주변에는 주택 등이 없다시피하고, 근처에서 봐도 조림을 통해 호수가 잘 안 보이게 해놨습니다.

 

 천연기념물인 저어새가 번식하는 곳으로도 유명한데, 본래 저어새는 외딴 섬에 알을 낳는 습성이 있는 새라 고양이같은 육상 포식자가 있는 곳에서는 번식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간척사업으로 인천앞바다 섬이 많이 줄어들었고, 그에 저어새는 한 때 멸종위기에 몰렸었습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근래에는 남동유수지에 저어새가 자리를 잡아 번식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몇 년 전에 너구리가 유수지에서 저어새를 공격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헤엄을 쳐서 저어새가 산란을 해 둔 유수지 한가운데의 섬을 공격한 것입니다. 그에 저어새를 보호하려는 사람들이 너구리를 생포해 먼 곳에 방사함으로 저어새를 지킨 일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캣맘은 야생 생태계의 진정한 적입니다. 환경 생태계 보호를 위해 캣맘을 근절해야합니다.

 

 

 

 

 

논현동

 

: 소래포구 주변, 남동구의 법정동입니다. 행정동으로는 논현 1, 2동이 있고, 나머지 법정동 논현동 지역과 고잔동 지역을 포괄하는 논현고잔동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논현동 일대에 소래염전과 한화의 화약 공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래포구가 있었고요. 그 때는 사람들이 논현동이라는 동명을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인천 사람들도 논현동이라 하면 서울 강남의 논현동을 먼저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한화가 화약 공장을 이전하고, 논현동을 주거지역으로 재개발하게 되면서 논현지구는 인천의 부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논현지구는 신도시 지역임에도 특이하게 고가철도로 수인선이 지나가는 지역입니다. 이는 수인선이 본래 오래 된 협궤 노선이었는데 표준궤로 바꿔 깔면서 고가철이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호구포역, 인천논현역, 소래포구역이 논현지구에 있는 역입니다. 7호선 논현역과 구분하기 위해 수인선에는 인천논현역이라는 역명이 붙어 있습니다.

바다에 인접했고 서쪽으로는 남동공단, 북쪽으로는 구릉지를 넘어 NDS로 이어지기 때문에 논현동은 고립된 도시에 해당합니다. 다만 간선도로를 따라 연수지구나 송도국제도시와 가깝고, 해협을 건너면 역사적으로는 동일 지역이었던 월곶이나 배곧신도시와도 가깝습니다.

 

 논현지구는 인천지역에서 평수가 큰 신축 아파트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삽니다. 이는 논현지구가 들어서던 시대가 대형평수를 많이 짓던 마지막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논현지구보다 일찍 생긴 도시는 주택이 낡았고, 논현지구보다 늦게 생긴 도시는 대형평수 비율이 낮습니다. 그러니까 식구수가 많은 가구가 살기 좋은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논현지구의 단점은 공기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겁니다. 남동공단 근처에 있긴 하지만 송도국제도시나 연수지구는 공기가 좋은데, 논현지구는 공기가 나쁩니다. 그 이유는 풍향이 바다에서 육지로, 산에서 평지로 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논현지구는 계절에 따라 남동공단쪽에서 바람이 불어오게 됩니다. 물론 못 살 정도로 공기가 나쁜 건 아니지만, 남동공단 인근이라도 위치에 따라 공기 질은 좀 차이가 있습니다.

 

 

 

 

동구

 

: 인천 서쪽의 작은 자치구. 오타가 아니고 진짜로 인천 서쪽이고 서구의 남쪽입니다. 동구라는 이름은 예전에는 현 중구청이 인천시청이었는데, 그 동쪽이라 붙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인천 자치구중 최소면적, 최소인구에 낡고 못사는 이미지지만 실제로는 재개발이 꽤 되었고, 근처에 대기업도 있어서 경제력이 있는 가구도 어느 정도 거주하는, 빈부격차가 큰 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인천역이 있는 곳이라 오해할 수 있지만 동인천역은 중구에 속해있고, 동구는 경인선 북쪽입니다. 권역의 많은 부분을 공장과 항만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름이 전혀 실제 위치와 어울리지 않다보니 미추홀구처럼 개명을 추진하기도 하였으나, 중구 본토와 합치자는 의견이 있어 잘 추진되고 있지 않습니다. 중구 본토와 동구는 다른 자치구에 비해 면적이 작은 편이라, 둘을 합쳐도 그리 넓지는 않습니다.

 

 

 

 

 

 

동인천

 

: 동인천은 정확한 경계가 있거나 한 지명은 아닙니다. 동인천역은 축현역 -> 상인천역 -> 동인천역으로 개명을 거쳤는데, 동인천역 일대가 한동안 도시의 중심 번화가였기 때문에 그 주변을 동인천이라 불렀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은 인천의 원도심 전반이 쇠퇴해서, 동인천 쪽이라 부르는 범주가 좀 더 넓어졌습니다. 예전에는 인천 사람들이 동인천 쪽을 많이 다니니까 주변 지명을 잘 알았지만, 이제는 별로 다니지 않고 지명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아졌기 때문에 대략 원인천과 그 근처 전반을 동인천쪽이라 부르는 경향이 생긴 것입니다. 지리적으로 보면 인천 본토 서쪽을 동인천이라 부르게 된 거라 이름 자체가 아이러니합니다.

 

 

 

 

디스코팡팡

 

: 인천에서 가장 유명한 놀이기구는 당연히 월미도 바이킹입니다. 극악의 각도와 불안정성을 자랑하지요. 그리고 그 다음으로 유명한 놀이기구는 월미도의 디스코팡팡입니다. 원래 정싱 명칭은 타가다 디스코, 예전 정식 명칭은 아폴로 디스코였다고 합니다만 다들 디스코팡팡이라 부릅니다.

 

 원반형 기구에 앉으면 디스코 음악과 함께 돌아가고 흔들리면서 DJ가 이런저런 입담으로 분위기를 띄워주는 기구인데요. 이게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에는 없고, 각 지역의 소형 테마파크들에는 있는데요. 옛날 드림랜드에는 있었지만 드림랜드는 사라졌고, 이제 수도권에 있는 남은 디스코팡팡인 월미도 디스코팡팡이 가장 유명합니다.

 

 다만 요새 세상 분위기가 흉흉해서 DJ가 하는 말을 성희롱이라 고소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생기면서 입담이 예전보다 조심스러워졌다는 소식이 들리긴 합니다. 원래 여성 고객을 놀리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경향은 있었지요.

 

 

 

 

 

로데오거리

 

: 인천에서 로데오거리라고 하면 구월동 로데오거리를 의미합니다. 중앙공원 동쪽, 예술회관역 남쪽, 인천터미널 북쪽에 해당합니다. 2000년대 이후 인천의 중심 번화가이며, 부평 문화의거리와 함께 인천의 2대 번화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90년대까지 번화했던 동인천의 번화함이 00년대 이후엔 옮겨온 느낌입니다.

 

 

 

 

마니산

 

: 강화도 남부에 있는 해발 472.1m의 인천 최고봉. 단군신앙과 엮여 전국적으로 유명한 산이기도 합니다. 강화도 현지명은 마리산. 올라가려면 입산료를 내야 합니다.

 

 본래 마니산이 있는 강화군 화도면은 강화도 본도와 분리된 섬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706년 조선 숙종대에 간척사업으로 강화도와 하나의 섬이 되었다고 합니다.

 

 개천절 행사 및 전국체전 성화 행사가 이루어지는 산으로, 도교 제단이었던 참성단이 유명합니다. 참성단은 첨성대와 이름이 비슷하여 첨성단, 첨성대, 참성대 등으로도 불립니다.

 

 

 

 

 

마전지구

 

: 동쪽으로 떨어진 불로동의 불로지구와 함께 인천 본토 최북단 도시지역입니다. 김포 한강신도시에서는 남쪽으로 2.5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그 사이는 시골 지역입니다. 이름은 마전지구지만 같은 마전동에 속하는 마전역에서는 거리가 꽤 떨어져 있으며 상기한 NDS, 경서지구와 함께 인천 본토의 대표적인 오지라 할 수 있습니다. 북쪽인데다 산골짜기에 위치한 도시라 여름에 서늘하고 겨울엔 춥습니다.

 

 

 

 

매소홀

 

: 인천도호부 지역의 고구려 시절 이름입니다. 백제 시절 첫 이름은 미추홀이었는데, 미추홀과 매소홀은 같은 이름의 다른 표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대 인천에서는 매소홀보다는 미추홀이라는 이름이 더 인기있고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굳이 매소홀이라는 옛 이름을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문학산 북쪽의 매소홀로에 그 이름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만월산

 

: 남동구 간석 3동에 위치한 해발 187.1m의 만월산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지리적으로 현 인천광역시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인천 일대의 지리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산입니다. 만월산의 옛 이름은 주안산 또는 구월산이었는데, 만월산의 옛 이름을 딴 두 이름 다 인천의 지명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요. 대략 만월산 서쪽은 주안, 만월산 남쪽은 구월, 만월산 북쪽은 부평입니다.

 

 본래 인천도호부와 부평도호부는 만월산을 포함한 한남정맥으로 나뉜 지형에 따라 분리된 다른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만월산 서쪽으로는 인천도호부와 부평을 오다닐 수 있는 고갯길이 있었지요. 그러니까 원래 만월산 일대는 교통의 요지였고, 현대에는 만월산과 그 동쪽 만수산 일대에 만월산 터널을 뚫어 보다 편하게 부평과 구월동 일대를 오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래내시장

 

: 소래포구어시장이나 구월/남촌농산물도매시장 등의 특수한 시장을 논외로 하고, 일반 재래시장 중 21세기에 인천에서 가장 흥한 시장은 구월동 모래내시장입니다. 도심 주거지에 위치한 대형 재래시장이라 항상 잘됩니다. 재래시장의 쇠퇴 같은 건 적어도 여기서는 옛말입니다.

 

 모래내시장이라는 이름은 본래 이 지역이 하천가로 모래사장이 있었기에 붙었습니다. 실제 모래내시장 인근에는 만수천이 복개된 흔적이 있는데, 현재 만수천은 전 구간이 복개되었지만 본래 만수산 일대에서 발원하여 장수천에 합류하던 하천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도로를 보면 복개의 흔적을 볼 수 있지요.

 

 전국적으로 보면 모래내시장이라는 이름은 여럿 있습니다. 인천 모래내시장에서 가까운 다른 모래내시장은 서울 서대문구 가좌동에 있는데, 이쪽에도 마찬가지로 하천과 모래사장이 있어 붙은 이름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인천 서구에도 가좌동이 있다보니 서울 서대문구 가좌동의 모래내시장은 인천 가좌동 및 구월동 모래내시장과 이중으로 이름이 겹칩니다. 서대문구는 인천 북쪽에서는 가까운 편이기도 하고요.

 

 인천 모래내시장 인근에는 인천 2호선 모래내시장역이 있어서 외지에서도 편하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도심지에 있는 시장 치고는 주차환경도 극악하지는 않습니다. 바로 인근에 인천에서 가장 큰 아파트 단지인 구월힐스테이트-롯데캐슬골드가 있어 도보 이용자가 많은 게 이유라 생각합니다.

 

 

 

 

 

무네미고개

 

: 요즘 말로 하면 물넘이 고개입니다. 무네미는 옛 말이고요. 위치는 남동구 장수동입니다. 이 이름은 굴포천 및 후술할 원통이고개와 관련이 있습니다.

 

 최충헌의 아들, 최이 시대에 무네미고개 쪽으로 물길을 내서 한강까지 이어지는 수로를 파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실패했지요. 그렇지만 무네미고개라는 이름은 남았습니다. 지금은 무네미고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무네미고개의 이름을 딴 인근의 무네미로는 통행량이 매우 많은 도로입니다. 영동고속도로와 직결되어 북쪽 방향으로 장수고가와 인천대공원 정문(인천대공원역이 있는 쪽은 남문) 및 대공원앞지하차도, 장수IC를 지나 거마산 서쪽 고개를 넘어 송내지하차도를 끝으로 송내대로와 직결되는 인천 최악의 정체구간인 도로입니다.

 

 장수IC 서쪽 산 이름은 물넘이뒷산입니다. 그리고 그 인근에 수현마을과 수현로가 있는데, 무네미고개의 한자어가 수현(水峴)입니다.

 

 적어도 고려 시대부터는 인천에서 부평을 지나 한강까지 잇는 수로의 계획과 추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네미고개와 원통이고개는 그 실패의 흔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굴포천은 타협의 결과물이었고요. (절반의) 성공작은 경인아라뱃길입니다.

 

 

 

 

 

 

문학산

 

: 미추홀구와 연수구를 나누는 동서로 긴 산. 가장 높은 곳의 높이는 217m입니다. 인천의 역사적 기원은 비류가 세운 미추홀로 보는데, 비류가 처음 미추홀을 세운 곳이 이 문학산 일대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 시대의 인천도호부도 문학산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승학산에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인천지역에서 가장 주요한 산입니다.

 

 문학산 주변에는 ‘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지명이 많습니다. 북서쪽으로 미추홀구 학익동, 북쪽에 미추홀구 문학동, 동쪽에 연수구 선학동, 남쪽으로는 연수구 청학동이 있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현대에는 문학산 주변에서 학을 볼 수는 없고요. 연수구 쪽에는 특이하게 까마귀들이 좀 있습니다. 인천 본토에서 까마귀가 목격되는 지역은 연수구뿐입니다.

 

 연수구와 미추홀구는 본래 같은 구였음에도 불구하고 문학산이 막고 있어 왕래가 많은 편이 아닙니다. 그나마 문학산을 통과하는 문학산터널이 있어 차량이 있으면 멀리 돌지 않고 왕래할 수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문학산터널은 유료터널이고 하이패스도 안 됩니다. 문학산터널을 건설해 운영하는 민자 회사 때문인데, 그래도 몇 년 지나면 인천시 쪽으로 소유권이 이전되어 무료화될 예정입니다. 인천에 이와 같은 유료 터널이 둘 더 있는데, 원적산터널과 만월산터널이 그것입니다.

 

 예전에는 문학산 정상에 군부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민간인들이 정상에 올라가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몇 년 전부터는 문학산 정상이 개방되어 등반이 가능해졌습니다.

 

 

 

 

 

미추홀

 

: 역사에 기록된 인천의 첫 이름입니다. 흔히 알려진 걸로는 백제의 첫번째 왕, 온조의 형이자 고구려 주몽 동명성왕의 아들이며, 유리왕의 동생이었던 비류가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실제의 역사는 어땠는지 미지수인 부분이 있습니다만. 여하튼 이후 비류의 미추홀은 온조의 위례와 합쳐져 백제가 되지요. 백제는 처음에는 십제(十濟)라 불렀으나 비류와 합쳐진 후 백제(百濟)로 이름을 바꿨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름 뜻은 물의 도시 정도. 인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 알려진 인천의 옛 이름으로, 인천 사람들이 ‘인천’이라는 이름보다 더 좋아할지도 모르는 이명쯤 됩니다. 그래서 인천 전역에 ‘미추홀’이라는 이름 붙는 게 매우 많습니다. 문제는 2018년에 남구가 이름을 미추홀구로 개명하면서 특정 구가 미추홀이라는 이름을 선점해버렸다는 건데, 그렇다고 미추홀이라는 이름을 미추홀구가 독점한 건 아닙니다. 미추홀이라는 이름은 인천의 아이덴티티 그 자체라, 본래 미추홀과는 다른 지역이던 부평 지역에서도 미추홀이라는 이름을 많이 쓸 정도입니다.

 

 

 

 

 

미추홀구

 

: 상기하였듯 남구가 2018년에 개명한 이름입니다. 인천 본토의 지리적 중앙 즈음에 위치하여 계양구를 제외한 인천의 모든 자치구와 접경해 있으며, 조선시대 인천도호부의 중심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도심인 인천터미널과 인천롯데백화점이 미추홀구 권역에 포함됩니다.

 

 주안, 석바위 등 80~90년대 인천의 핵심이었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살던 곳들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실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인천지역 사람에게는 원인천보다도 더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을 지역입니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재는 인천 본토에서 가장 낡은 자치구라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인데, 미추홀구보다 더 낡은 중구, 동구는 관광지화되거나 재개발이 많이 된 반면 미추홀구는 시기적으로 낡은 정도가 애매한 것입니다. 지금은 그래도 재개발이 진척중이니 시간이 지나면 주거지로는 개선이 있을 수 있을걸로 기대합니다.

 

 전반적인 지형은 동쪽은 고저차가 크지 않은 완만한 구릉지대. 부평평야나 매립지 수준으로 완전한 평지는 아니지만 경사가 급한 곳이 적어 인구밀도가 매우 높던 지역입니다. 서쪽에는 그리 크지 않은 수봉산과 선인학원이 있는 부채산 (이 산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이 있어 산기슭을 따라 발달한 지형입니다.

 

 

 

 

 

 

백마장

 

: 부평구 산곡동 일대를 뜻합니다. 요즘은 사용빈도가 낮아졌지만, 예전에는 산곡동이라는 동명보다 백마장이라는 이름을 더 많이 썼습니다. 백마장이라는 이름은 산곡역이 위치한 백마장사거리 및 산곡동을 지나는 도로명인 마장로에 남아있으며, 현재 산곡입구삼거리를 부르던 본 명칭은 백마장입구이며, 여전히 버스정류장에는 백마장입구라는 이름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부평구의 구수(獸)는 백마입니다. 산곡역 또한 완공되기 전에는 백마장사거리역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부평지역 토박이들은 ‘산곡’이라는 이름보다 ‘백마장’이라는 이름을 익숙해하고 좋아합니다. 백마장이라는 이름이 일제시대 ‘백마정’에서 비롯되었다 하여 공식적으로는 사용하지 않는 걸 권해 좀 강제로 사라지고 있는 이름이긴 합니다만.

 

 

 

 

 

부평

 

: 역사적인 ‘부평’은 부평도호부를 의미했는데, 지금으로 치면 독정역 이남 옛 서구 지역을 포함한 계양구 전체, 부평구 전체 및 부천시, 그리고 안양천 서쪽 서울 구로구 정도를 포괄하는 행정구역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심지는 현재의 계양구 계산동 일대였지요. 그러다가 부평역이 생기고 일제 들어 부평도호부가 해체되면서 부평지역의 중심지가 부평역 일대로 옮겨가게 되는데요. 시대가 많이 지나 인천직할시 북구에서 서구가 먼저 분리독립한 이후, 인천광역시로 승격되면서 부평구와 계양구를 나눌 때 현 부평구 지역이 부평이라는 지명을 가져가게 되었고, 본래 부평도호부 시절의 중심지였던 계양구는 부평이라는 이름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계산동에 있는 부평초등학교와 부평향교 등에 옛 전성기의 흔적 정도만 남았지요. 현재는 부평이라고 하면 좁은 의미로는 부평역 및 부평동 일대를 의미하고, 넓은 의미로 부평구 전체. 그보다 조금 낮은 빈도로 계양구를 포함한 한남정맥 이북 지역 인천을 의미합니다. 다만 본래 부평도호부에 속하였던 서구 일대를 포함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검단정도로 이질적인 건 아니지만 부평구/계양구와 타 인천지역은 문화적으로 살짝 이질성이 남아있는데, 80년대까지만 해도 부평/계양 일대에서 택시를 타고 남동구나 주안 쪽을 가면 시외요금을 적용할 정도로 다른 지역이었습니다. 본래 부평도호부와 인천도호부는 다른 도호부였고, 그건 한남정맥이라는 지리적인 경계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부평구

 

: 대략 한남정맥 북쪽, 부평평야 남부의 자치구. 구의 북쪽 경계는 경인고속도로고, 예외적으로 십정동은 한남정맥 남쪽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십정동은 부평도호부가 아니라 인천도호부이긴 했습니다.

 

 옛 부평도호부의 적통을 승계하기로 협의된 자치구이기도 합니다. 실제 역사적인 부평도호부의 중심지였던 계산동 일대가 계양구로 분리되어 나가면서, 일단 부평이라는 이름은 부평역이 있는 부평구가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본래 경인선을 타고 외부에서 인천으로 오면 가장 먼저 들어오게 되는 지역이었고, 상권과 주거 및 산업이 같이 발달한 지역이라 80년대 말부터 부촌이 발달했고, 전성기에는 인천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자치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금세기 들어 조금씩 쇠퇴를 시작하여 2010년대 들어서는 일단 추세가 꺾였고, 근래 들어서야 재개발 등을 통해 재부흥을 노리는 중입니다. GM 대우 공장이 위치하여 인천 노동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남쪽으로 남동구와 인접해 있으나 한남정맥으로 나뉘어져 있어 본래 같은 생활권이 아니었고, 교통이 좋아진 현대에도 교류가 아주 많은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구월동과 부평은 각자 도심화되었고, 21세기 이후 보통 인천의 제1도심은 구월동, 제2도심은 부평 같은 정도로 꼽히곤 했었습니다. 다만 근래에는 부평이 예전만은 못해서 향후 어떻게 될지는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부평역 일대는 본래 미성년자에서 20대가 많은 분위기인데, 이젠 예전만큼 1020세대가 많지 않은 게 한 원인인 것 같습니다.

 

 

 

 

 

부평역분수대

 

: 부평역 분수대는 부평역 북부 지상 광장에는 없습니다. 지하에 작게 있습니다. 부평역은 번화가인 북부에서 역에 갈 때는 지하도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때문에, 지하도에서 부평역 개찰구로 들어가는 곳에 있는 분수대가 랜드마크입니다. 부평역에서 약속을 잡으면 분수대에서 만날 때가 많지요. 지하도를 이용하지 않고 부평역 광장으로는 도보 접근하기 좋은 지역이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문제는 부평역 분수대는 예전에는 물이 나왔는데, 지금은 물이 안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기준으로는 그냥 봐서는 그게 분수대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냥 지하 개찰구 앞에 기둥같은 거 있고 그 주변에 벤치 있는 게 분수대입니다. 예전엔 그게 분수대였기 때문에 분수대라고 지금도 부릅니다.

 

 

 

 

부평지하상가

 

: 점포수 기준 세계 최대의 단일 지하상가. 공식 명칭은 부평모두몰이며, 본래 4개의 지하상가가 합쳐진 것으로 33개의 출입구를 가지고 있고, 부평역 북부 일대 번화가 전반에 대한 우수한 접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천에서 젊은 여성이 보세옷, 악세사리 쇼핑하는 주요 공간이기도 합니다.

 

 부평에 자주 다니던 사람이 아닌 이상 지금도 복잡하다고 느낄테지만, 지금은 많이 정비되고 지도도 나와서 접근성이 좋아진 것입니다. 1990년대의 부평지하상가는 지금보다 훨씬 복잡했고, 몇 배는 길을 잃기 쉬운 곳이었습니다. 별명은 부평지하던전.

 

 인근 부평시장로터리에 부평시장로터리 지하상가가 있는데, 원래 부평지하상가와 연결할 계획이 있었으나 인근 지상상가 상인들의 반대에 의해 무산되었습니다.

 

 

 

 

 

부평평야

 

: 김포평야와 함께 수도권 최대의 저지대 평야. 전국적으로 꼽힐 만한 크기의 자연적인 평야입니다. 참고로 대한민국 최대 평야인 호남평야는 간척지입니다. 위치는 현재의 부평구, 계양구, 부천시, 김포공항을 포함한 주변 서울 강서구, 그리고 김포 동쪽 일대에 펼쳐져 있습니다. 지형으로 보면 마곡을 넘어 가양동, 염창동 일대가 대략 부평평야의 동쪽 끝쯤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김포평야’는 부평평야의 김포쪽이 아니라 김포 통진읍, 하성면 쪽과 한강을 건너 일산 및 파주 쪽에 펼쳐진 평야를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포평야와 부평평야는 때때로 문헌에 따라 한 평야로 간주되거나 혼동되거나 합니다.

 

 본래 부평도호부는 이 부평평야 지대의 행정구역이었고, 원체 소위 꿀땅이라 조선 초 및 해방 이후 도읍으로 지정될뻔한 적도 있었습니다만 무산되었습니다. 현재는 김포공항이 워낙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몇 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인천광역시는 김포와 부천을 인천광역시로 편입ㆍ통합시켜 이 땅을 제대로 활용할 생각을 가지고 있으나 부천, 김포, 경기도측에서는 반대하고 있습니다. 예외적으로 옛 김포군 검단면은 90년대에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었고요. 부천은 역으로 부평구, 계양구측에 부천과 합쳐 인천에서 독립해 (가칭) 부평광역시를 만들 생각은 없느냐는 제안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을 활용하는데 있어 김포공항이 워낙 걸림돌이 되고있다보니, 김포공항을 없애자는 의견은 종종 나오는데요. 이번에 이재명 후보도 그런 말을 하고 있고요. 다만 그러기에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꼽자면, 인천공항은 섬지역이라 김포공항보다 악천후가 되기 쉽고, 랜딩하기 힘든 시간이 일년에 몇 시간은 생기는데요. 그럴 때면 보통 항공기 기준으로는 가까운 김포공항에 랜딩합니다. 만약 김포공항을 없애려면 인천공항에 문제가 생길 때 랜딩할 수 있는 다른 공항을 마련하거나, 인천공항이 악천후라도 랜딩할 수 있게끔 대비를 할 것입니다.

 

 부평평야는 저지대에 넓게 펼쳐진 자연평야라서 홍수에 매우 취약했었습니다. 그래서 굴포천과 경인아라뱃길이 만들어졌고, 본래 상습침수지역이었으나 아라뱃길 준공 이후에는 예전보다 홍수문제가 많이 개선된 것으로 보입니다.

 

 

 

 

 

북구

 

: 현재의 부평구 + 계양구 + 서구에 해당하던 구. 십정동 일대를 제외하면 본래 옛 부평도호부 권역이었습니다. 88년에 서구가 먼저 분리되어 나갔고요. 이후 1995년, 인천이 직할시에서 광역시가 된 그 해에 부평구와 계양구로 분리됩니다. 이 때 북구청이 있던 지역이 부평구 쪽이라 북구의 적통은 부평구가 가져가는 게 되었고, 계양구는 명목상 분리독립이 되었습니다만 보통 부평지역 토박이들은 그냥 북구가 부평구와 계양구로 나뉜 걸로 생각합니다. 부평구청 인근에 ‘북구도서관’이 있고, 아직 도서관 이름을 개명하지 않아 북구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사월마을

 

: 소위 쇳가루 마을로 악명높은 지역. 서구 왕길동에 있으며 드림파크 북쪽에 있는 시골 지역입니다. 수도권 쓰레기매립지와 폐기물 처리업체 등이 인근에 있고요. 관련 문제가 몇 차례 보도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쓰레기매립지 매립종료 및 사월마을 도시화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월마을 측에서는 도시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삼산지구

 

: 00년대 중반 정도에 조성된 부평구 삼산동의 신도시 지역입니다. 동쪽의 부천 상동과 완전히 연담화된 지역이고, 북쪽으로는 계산지구가 그리 멀지 않지만 중간에 경인고속도로와 소규모 산업지역이 있어 교류가 많지는 않습니다.

 

 지역 특성상 생활권이 부평 못지않게 상동에 가깝습니다. 삼산체육관역이 인천과 부천의 경계에 있는데, 그 동쪽에는 남북으로 꽤 큰 규모의 공원이 있어 삼산지구 사람들이 많이 이용합니다.

 

 이 지역에서 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외곽순환도로의 중동IC를 이용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전국 유료도로 중 최악의 정체구간이 이 중동IC부터 송내 IC를 지나 남쪽의 장수IC까지입니다.

 

 

 

 

 

 

서구

 

: 인천 본토 북서쪽의 자치구. 이 지역은 본래는 부평도호부에 속했던 한남정맥 넘어 해안가의 그리 넓지 않은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다쪽이 매립되고 공단이 들어서고, 쓰레기매립지 일대가 편입되고, 검단이 편입되고, 청라국제도시가 생기면서 인천 본토에서 가장 큰 자치구가 되었습니다. 인구도 지금은 인천 자치구/군중 가장 많고, 아라뱃길로 분단된 지형 탓도 있어 분구의 조짐이 있습니다.

 

 인천도시철도 2호선은 주안 북쪽으로는 서구쪽으로 쭉 이어집니다. 본래 서구에서는 인천 신도심쪽으로의 접근성이 좋지 못했는데, 2호선이 생긴 이후에는 비약적으로 쉬워졌습니다. 예전에는 검단쪽에서 인천시청쪽으로 가는 건 한세월이었는데, 이제는 어렵지 않게 오고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부간선수로

 

: 1923년~1925년에 착공한 수로입니다. 김포 고촌쪽 한강에서 물을 끌어다가 부평구청 인근까지 물을 대던 농업용 수로로, 지금은 한강에서 물을 대지 않지만 수로 자체는 거의 전 구간이 남아있습니다. 현재는 수로 형태의 저수지나 다름없는, 발원지가 없는 수로로 알고 있습니다.

 

 물길이 굴포천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굴포천과 비슷한 지역을 흐르기 때문에 혼동될 수 있지만 굴포천은 원적산쪽에서 한강으로 물이 흘러나가는 하천이었고, 서부간선수로는 반대로 한강에서 부평평야 지대에 물을 대던 수로였습니다.

 

 현재 서부간선수로는 삼산지구와 계산지구를 따라 공원화되어있습니다. 계산지구쪽 서부간선수로에는 노사모가 모금해 만든 노무현 벚꽃길이 있고, 예전에는 박유천(믹키유천) 벚꽃길도 있었는데 필로폰 투약 혐의 이후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부간선수로는 물이 깨끗하지는 않지만 물새가 많이 옵니다. 왜가리, 백로 등등. 근처 산책로에는 꽃도 많이 식재되어 있고요. 날이 좋을 때에는 주변 주민들이 산책을 즐기곤 합니다.

 

 

 

 

 

 

석바위

 

: 인천 토박이에게는 매우 익숙한 지명이었지만 외지인에게 어딘지는 설명하기 힘든 위치였는데, 인천도시철도 2호선 개통 이후에는 석바위시장역이 생겨서 설명이 쉬워졌습니다. 여담으로 간석이라는 지명은 동암과 석암(석바위) 사이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지만, 예전에는 인천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 중 하나가 석바위였습니다.

 

 

 

 

 

소래

 

: 소래포구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인데, 막상 인천 사람들도 왜 거기가 그렇게 유명한지는 잘 모릅니다. 논현지구가 개발되기 전에 소래 일대는 염전이었고, 소래포구는 접근성 좋지 않고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어시장이었는데요. 여전히 논현동보다는 소래가 유명한 지명이라 외지인한테는 논현동을 소래 쪽이라 합니다. 지금은 소래포구 인근은 고층건물 즐비한 신도시 지역이지요. 물론 지금도 소래-논현동 일대는 고립지이기는 합니다. 북쪽은 상기한 NDS 지역이고 서쪽은 남동공단이거든요.

 

 한편으로 본래 소래 지역은 인천도호부에 속해 있었는데,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지역이 갈려 아직 경기도 시흥시에 소래 지역 일부가 속해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한 지역인 걸 광역단체 레벨에서 갈라놔서 개발과 행정에 문제가 좀 있습니다.

 

 

 

 

소성

 

: 인천지역은 비류-백제 시절에는 미추홀, 고구려 시절에는 매소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고구려가 멸망하고 신라가 백제를 차지한 다음에는 소성(邵城)이라는 이름이 붙여집니다. 당시 행정구역명은 ‘현’이라 ‘소성현’으로 불렸지요. 이 소성이라는 이름은 인천 지역 탁주인 ‘소성주’, 그리고 미추홀구 문학동의 ‘소성어린이공원’, 또한 무네미로에 있는 ‘소성성당’에 붙여져 있습니다. 소성성당의 위치는 부평구 구산동이지만, 군인이 이용하는 성당이라서 소성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걸로 보입니다.

 

 

 

 

 

 

소성주

 

: 인천지역 탁주입니다. 업계 최초 쌀막걸리로 알려져 있으며 생탁이고 저렴하고 맛있습니다. 다만 근 몇 년 사이 ‘소성주 플러스’라는 것도 나왔는데, 그건 나는 맛있는지 모르겠고요. 그냥 소성주는 탄산이 세고 맛있습니다. 맛있다보니 꽤 인기가 좋아서 인천 지역 외에서도 찾는 사람은 있지만, 인천을 벗어나면 구하기 어렵습니다. 바로 인접한 김포와 부천에서는 파는 곳이 있을 겁니다. 인천지역에서는 소성주 인기가 좋아서 다른 탁주를 밀어내고 탁주시장 1위 유지 중입니다.

 

 소성주에는 12간지에 해당하는 동물이 그려져 있습니다. 고를 때 마음에 드는 걸 골라도 되고요. 최근에는 인천의 오래된 건물 12개의 그림도 들어가 있습니다.

 

 

 

 

 

소래산

 

: 인천과 시흥에 걸쳐있는 산. 높이 299.6m. 정상의 비석은 299.4m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인천도호부에서 가장 높은 산이었고, 현재는 남동구쪽 인천광역시의 동쪽 경계에 해당합니다.

 

 소래산 정상부는 인천 권역입니다만, 소래산에 접근하기 좋은 지역은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과 대야동 쪽입니다. 시흥시에서는 소래산을 시흥시 산으로 홍보합니다. 정상부는 인천 권역인데 이용객은 김포시 쪽에서 많은 가현산과 비슷한 케이스. 인천 쪽에서 대중교통으로 방문할 때는 인천대공원이나 운연역 쪽을 통해 접근하는 게 편합니다.

 

 

 

 

 

송도

 

: 구송도에서 상기하였듯 현 시점에서 ‘송도’라고 하면 송도국제도시를 뜻합니다. 송도국제도시는 전역이 매립지고, 인천 본토와의 사이에 해수가 있는 해협이 하천 정도 폭으로 남아있어 인공 섬과 같은 지형입니다. 물론 구송도를 그냥 송도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고, 구송도와 송도국제도시를 합쳐서 송도라 해도 그 또한 틀린 말이 아니긴 한데 근 몇 년 사이에는 그런 식으로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송현아

 

: 송도현대프리미엄아울렛의 송도 현지 속어입니다. 근 몇년 사이 송도국제도시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송현아 일대입니다. 대중교통도 주차도 편하고 규모가 있는 복합쇼핑몰이라 바깥날씨 영향이 덜하기 때문입니다. 근접해 있는 오네스타, 홈플러스 송도점, 트리플스트리트 A,B,C,D동과 지하도로 연결되기 때문에 밖에서 보면 사람이 많아보이지 않습니다만. 이중 송현아가 건물이 크고 주차가 편하기도 하고, 인천1호선 테크노파크역과 바로 이어지기도 해서 흔히 이쪽 일대를 부르는 이름이 송현아 쪽입니다. 테크노파크역이라는 역명으로는 이쪽 지역을 잘 부르지 않습니다.

 

 아라뱃길 아라마리나 근처 김포시 권역에도 현대프리미엄아울렛이 있는데, 그건 김현아라고 부릅니다.

 

 

 

 

수주

 

: 고려 초기 부평 지역의 명칭. 1150년까지 사용된 이름입니다. 이 이름을 딴 도로명 ‘수주로’와 ‘수주초등학교’, ‘수주중학교’, ‘수주고등학교’가 있는데, 모두 인천광역시 권역이 아닌 부천시 고강동에 있습니다.

 

 

 

 

 

숭의아레나

 

: 정식 명칭은 인천축구전용경기장입니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홈 구장이고, 경인선 도원역 인근입니다. 구장의 공식적인 주소는 인천광역시 중구 도원동 참외전로 246인데, 흔히 부르는 이름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이름을 딴 숭의아레나입니다. 원래 이 곳에 숭의종합경기장과 숭의야구장이 있었는데 그걸 철거하고 축구전용경기장을 지은 것이거든요. 건축과정에서 중구와 미추홀구(당시엔 남구) 사이에 분쟁이 있었고, 결국 정식 명칭은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 되어 공식적으로는 그리 불립니다만, 축구팬들은 그 이름을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실제 구 경계선이 경기장을 지나가고, 인천유나이티드 홈팬 응원석은 미추홀구 숭의동이고 원정팀 응원석은 중구 도원동이라 더더욱 현지팬들은 숭의아레나라는 이름을 고집 중입니다.

 

 

 

 

승기천

 

: 인천지역의 대표적인 하천입니다. 수봉산에서 발원하여 주안을 거쳐 구월동에서 남쪽 방향으로 흘러 남동유수지를 지나 황해로 흘러가는 하천인데요. 지금은 구 구월농산물도매시장보다 상류는 복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복개되지 않은 승기천 일대는 원래는 바다였던 지역입니다. 간척한 지역만 복개하지 않은 상태고요.

 

 복개되지 않은 부분 전체가 공원화되어 있고, 연수구와 남동구의 경계를 이룹니다. 대략 승기천 서쪽은 연수구, 동쪽은 남동구 남동공단입니다.

 

 

 

 

 

시민회관

 

: 현재의 인천도시철도 2호선 ‘시민공원’역은 ‘옛시민회관사거리’에 인접해 있습니다. 사거리 북서쪽에 ‘옛시민회관쉼터’가 있는데, 그곳에 본래 2000년까지는 인천시민회관이 있었습니다. 역 이름이 ‘시민회관’이 되지 않은 건 지금은 시민회관이 없고 공터가 있어서인데, 사실 공원이라 하기엔 그냥 별로 넓지 않은 산책로 수준입니다. 시민공원역을 시민회관역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고, 시민공원이라는 이름이 많이 사용되는 편은 아닙니다.

 

 

 

 

신승반점

 

: 한국식 자장면은 차이나타운에 있던 ‘공화춘’이라는 중화요리집에서 처음 상품화되었다는 게 정설입니다. 설립 당시의 이름은 ‘산동회관’이었습니다.

 

 본래의 공화춘은 1970년대에 박정희 유신정권의 외국인에 대한 재산권 행사 제한으로 인해 경영이 어려워지게 되어 1984년에 폐업합니다. 이후 오랜 시간동안 폐가로 있었고, 2010년에 들어서야 중구청이 건물과 대지를 매입하여 짜장면박물관으로 개장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차이나타운에는 공화춘이 있는데, 이곳은 공화춘 재건 프로젝트로 다른 사람이 설립한 곳입니다. 설립 당시 옛 공화춘에서 일하던 주방장이 참여했다고는 합니다만, 보통 이 공화춘은 본래의 공화춘과는 다른 중화요리집으로 인식합니다.

 

 본래의 공화춘의 맥을 이은 곳으로 인식되는 음식점은 신승반점인데, 공화춘 설립자 우희광의 외손녀가 영업 중입니다. 본점은 역시나 차이나타운에 있는데, 지점도 곳곳에 있습니다. 본점에는 사람이 몰려서 이용하려면 대기시간이 긴 편이고요. (새) 공화춘과 신승반점 사이에 상표권 분쟁이 오랜 기간 있었는데 이건 공화춘이 이겼습니다.

 

 나의 경험으로는 신승반점은 방문할 때마다 맛 편차가 큰 편입니다. 워낙 고객이 많은 음식점이다보니 주방 인원이 다수인 게 영향이 아닐까 추정하고요. 맛있는 날엔 최고 수준인데 맛없는 날에는 꽤 평범해집니다.

 

 

 

 

신포닭강정

 

: 최초의 닭강정. 닭강정이라는 요리는 동인천역 인근 신포국제시장에서 처음 개발되었습니다. 신포시장에 가면 닭강정집이 여럿 있는데, ‘신포닭강정’이 최초의 닭강정을 만든 곳입니다.

 

 신포닭강정 맛은 간장 계열에 가깝고, 자른 고추가 들어있어 매운 맛을 보충합니다. 뼈가 있는 닭강정이고요. 흔히 닭강정은 식어도 맛있다고 합니다만 어떻게 먹어봐도 갓한 게 더 맛있습니다.

 

 부평에도 신포닭강정 지점이 있습니다. 거주지에 따라 다르지만 어지간해서는 사람이 몰리는 신포시장보다는 부평에서 먹는 게 편합니다. 위치는 북인천우체국에서 백운역 방향으로 100m정도 떨어진 길건너 맞은편입니다.

 

 

 

 

 

십정동

 

: 부평구 서남단의 법정동. 행정동으로는 십정1동, 십정2동, 부평3동으로 나뉘어있습니다. 행정동 부평3동은 법정동 부평동의 일부와 십정동의 일부를 포함하는 행정동이라 오래 전부터 말이 좀 나오는 편입니다. 보통 이런 경우는 부평십정동 같은 식으로 행정동 이름을 붙이는데, 왜 부평3동이라 이름붙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자로는 十井. 그래서 열우물이라는 한글 표현도 많이 씁니다. 본래 이 지역은 주안일대 만(Bay)이 닿은 바닷가에 해당하던 지역이고 인천도호부에 속하던 곳으로, 역사적으로 부평도호부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행정구역상으로는 부평구지만, 실제로는 부평지역이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대략 부평쪽에서는 백운고가 너머부터 동암역 권역이라 상권으로도 간석동이 가깝고, 서구 가좌동과도 이어지는 지역입니다. 즉 본래 인천도호부와 부평도호부의 경계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는데, 지리적으로도 그렇고 예전에는 인천도호부에 속했지만 인천과 부평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행정구역상 부평에 편입된 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릉지형으로 응답하라 1988을 찍은 지역이었기도 한데, 현재는 대규모 재개발이 이루어져 곧 준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동암역에서 백운역 사이는 경인선으로 인해 동서가 심히 분단되어 있고, 경인선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기 좋은 장소라 생각합니다.

 

 

 

 

 

쓰레기도로

 

: 2025년 종료를 앞두고 인천-서울 대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서구 오류동 쓰레기매립지에 오고가는 도로를 본래 쓰레기도로라 불렀습니다. 지금은 매립이 끝난 구역을 공원화시켜 ‘드림파크’라는 이름을 붙였고, 쓰레기도로도 이름을 드림로로 바꾸긴 했는데요. 예전하고 비주얼도 많이 바뀌어서 더 이상 쓰레기도로라는 이름을 많이 사용하지는 않습니다만, 누군가 쓰레기도로라 한다면 드림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라동

 

: 가장 최근에 생긴 인천광역시 검단 지역의 행정동. 행정동 원당동에서 분동되었으며, 2022년 초 현재 건축 중인 지역으로 전국을 시끄럽게 만드는 장릉 남쪽 고층아파트가 있는 지역이 이 아라동입니다. 김포시 풍무동과의 경계 지역으로, 일단 현 시점에서는 풍무동 인접지역과는 직접적으로 오갈 수 있는 길이 없는 상태입니다.

 

 동 이름은 아라뱃길에서 따온 것 같은데, 막상 아라뱃길이 지나가는 동은 아닙니다. 아라동 남단에서 아라뱃길까지는 직선거리 500m 이상 떨어져 있습니다.

 

 최근에 생긴 행정동이고 아직 거주인구가 없으며 제주시에도 아라동이 있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는 ‘아라동’으로 검색하면 거의 제주시 아라동에 대한 정보만 나옵니다. 앞으로 검단 아라동 아파트들이 완공되면 제주 아라동과 혼동하지 않도록 구분해서 부를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아시아드

 

: 2014년에 아시안게임을 하면서 인천광역시는 글로벌금융위기의 여파와 유동성위기에도 불구하고 여러 시설을 건립하게 되는데, 그것들에 아시아드라는 이름이 붙어있습니다. 일단 ‘아시아드주경기장’은 인천 서구청 쪽에 있습니다. 인천도시철도 2호선에 ‘아시아드경기장역’도 있긴 한데, 실제 역에서 경기장까지는 수백미터정도는 거리가 있습니다. 아시아드경기장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아시아드대광로제비앙’이라는 아파트 단지가 있고요.

 

 아시아드라는 이름이 붙은 주요 거주지로는 ‘구월아시아드’가 있습니다. 남동구 구월1동에 위치해 있으며, 상기했던 NDS지역에 해당하는 수산동 인근입니다. 브랜드 이름이 붙은 아파트도 있고, 그냥 선수촌 X단지라고 부르는 단지들도 있는데요. 이름은 선수촌이지만 실제 운동선수들이 거주하거나 매수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천 도심지역에 있는 드문 신축아파트고, 주변이 녹지라 인기는 좋습니다만, 구월동 중심지 생활권에서는 다소 떨어져 있기 때문에 도심 선호자들에게는 비선호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계양구 서운체육공원 및 대한항공 점보스의 홈구장, 계양체육관이 있는 곳에 아시아드 양궁장이 있습니다. 이쪽은 양궁장이 존재감이 강한 편은 아니라서 아시아드로 불리는 빈도는 낮은 편입니다.

 

 

 

 

안남

 

: 부평지역의 옛 이름중 하나로, 고려 의종 4년(1150년)에 수주에서 안남도호부로 개명되었었습니다. 안남이라는 이름은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의 남쪽을 편안하게 다스린다는 뜻인데, 이 이름을 가진 지역이 여러 번 변경되었었습니다. 대략 전주 -> 고부(현 정읍) -> 영암 -> 전주 -> 부평으로 옮겨가면서 붙었던 이름입니다.

 

 안남도호부라는 이름은 고려 고종 2년(1215년)에 계양도호부로 변경되면서 사라집니다. 이름 변경 당시 안남도호부 관아는 현재의 이화동(당시 황어향 오리울=선곶. 현 행정동 계양1동 권역)에 있었는데, 의종 19년(1165년)에 이후의 부평도호부 위치(부평초등학교 관내)에서 멀지 않은 중구봉 아래로 이전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조선이 망할 때까지 700년 이상 부평의 중심지는 현 계산동-작전동-효성동 일대가 됩니다.

 

 안남이라는 이름은 경인교대 부설초등학교부터 남쪽으로 이어지는 안남로와 계산3동의 안남초등학교, 안남중학교, 계산1동의 안남공원, 작전1동의 안남고등학교에 남아있습니다. 부평의 옛 이름 중에서는 많이 쓰는 편이라 인지도가 있는 이름이지만, 실제 안남이라는 지명을 익히 사용하는 계양구에도 안남이라는 이름이 부평의 옛 이름이라는 것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안병원

 

: 현재의 부평구청 사거리에 있는 세림병원의 예전 이름이 안병원입니다. 처음 안병원을 세운 의사의 이름이 ‘안승택’이어서 안병원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쪽을 부평구청 쪽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부평구청이 생긴 건 부평구가 생기고 나서입니다. 80년대에는 부평구+계양구+서구가 북구였지요. 여기서 일단 서구가 분구되어 나간 이후, 인천직할시에서 인천광역시가 되면서 계양구가 분구되어 나가고 남은 북구는 부평구가 됩니다. 그 이후 세림병원 앞에 부평구청이 생겼고요. 부평구청이 생기기 이전엔 안병원이 그 지역의 랜드마크였고, 부평구청이 생긴 이후에도 한동안 그 쪽을 안병원 쪽이라고 했었습니다.

 

 안병원은 2001년에 이름을 세림병원으로 변경합니다. 이유는 ‘안과’병원이나 ‘암’병원으로 오인되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도 사람들은 세림병원을 안병원으로 오랜 기간 불렀으나, 이제 이름 바꾼지도 20년이 지났기 때문에 이젠 안병원이라는 이름을 잘 쓰지 않습니다.

 

 

 

 

안스베이커리

 

: 인천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 체인입니다. 대한민국 제과명장 중 한 명인 안창현 씨가 1989년 창업하였고, 성공하여 현재는 서울과 고양시, 부천시 등에도 체인점이 있습니다. 또한 안스베이커리에서 일을 하다가 독립한 사람들이 연 제과점들도 있는데, 그런 제과점들은 안스베이커리의 체인점은 아니지만 제빵 스타일은 안스베이커리와 유사합니다.

 

 안스베이커리 본점은 인천 구월동에 있는데, 구월동 번화가 중심지에 있는 건 아니라서 로데오거리 같은 데서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주관적으로 본점 빵을 좋아합니다. 다만 본점은 그리 넓지 않아서 빵을 사기는 좋아도 거기서 먹기는 어렵고요. 지점은 인천에는 연수구 롯데마트 인근과 송도 센트럴파크 푸르지오, 그리고 미추홀구 도화사거리 쪽에 세 지점이 있는데, 이 지점들은 베이커리 카페로 좋습니다.

 

 

 

 

 

연수구

 

: 인천광역시 최남단의 자치구. 문학산 남쪽으로, 남구에서 1995년에 분리 독립하였습니다. 인천광역시에서 경제력이나 생활수준이 가장 높은 자치구로, 본래는 행정 등에는 영향력이 높지 않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행정적인 비중도 높아지는 중입니다.

 

 연수구의 지역은 크게 3지역으로 나뉩니다. 구송도, 연수지구, 송도국제도시. 이 중 연수지구와 송도국제도시는 거의 전 면적이 간척사업으로 만들어낸 땅입니다. 그래서 예전엔 연수구 권역에 해당하는 땅이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꽤나 넓은 지역이 되었습니다. 구송도쪽만 원래 육지였는데 간척해 만든 다른 지역과는 달리 구릉지라 지형이 매우 대조적입니다.

 

 연수지구는 90년대 초중반에, 송도국제도시는 00년대 후반부터 도시화가 되었기 때문에 이 지역들은 거의 전체가 신도시입니다. 연수지구의 경우 송도국제도시가 활성화되기 전에는 인천의 강남 정도로 인식되었습니다만, 근 몇 년 사이에는 송도가 흥하고 건물이 구축화되면서 위상이 다소 떨어져 인천의 송파 정도가 되어버렸고, 대조적으로 송도국제도시는 나날이 별세계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생활수준이 높다보니 연수구 일대는 인천의 타 지역보다 물가가 비싼 편이고, 신도시가 차지하는 면적이 넓어 재래시장은 구송도의 옥련시장밖에 없습니다. 실거주시에는 고려해야 합니다.

 

 구의 마스코트는 학인데, 실제 학을 볼 수는 없고요. 대신 인천 타 지역에는 없는 까마귀는 쉽게 볼 수 있는 편이고, 새는 아니지만 박쥐가 종종 목격되기도 합니다. 

 

 

 

 

 

 

연수지구

 

: 90년대 중반에 들어선 신도시로, 연수구에서 구송도와 송도국제도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쯤 됩니다. 송도국제도시 북쪽, 미추홀대로 동쪽 정도로 규정할 수 있고요. 이 연수지구가 생기면서 원인천에 있던 중산층과 부유층이 많이 이주해 왔었습니다. 그래서 90년대부터 00년대까지 인천 최고 부촌으로 꼽혔고, 인천의 강남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젠 송도국제도시로 부유층이 많이 넘어가면서 인천의 송파 정도로 위상이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아직 생활수준이 괜찮은 곳입니다.

 

 90년대 초중반, 김영삼 시대는 우리나라의 황금기였습니다. 물질적으로는 지금이 더 잘 살겠지만 정서적으로는 저 때가 서민들 기준에서는 최고로 잘 살았지요. 그리고 그 당시 지어졌던 아파트 근린상가들은 크기도 큽니다. 아직 마이카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시기에 중산층과 부유층이 많이 들어왔던 곳이고, 문학산 이북에 비하면 인구유출도 심했던 지역이 아니고, 기독교인 비율도 높아서 그런지 동네 분위기가 밝은 편입니다. 경험적으로 어떤 동네는 처음에 어떤 분위기가 자리잡히면 그 분위기가 좋은 방향으로는 잘 변하지 않습니다.

 

 

 

 

연희동

 

: 서구청 일대의 행정동이자 법정동. 행정동 연희동은 법정동 공촌동과 심곡동을 포함합니다. 즉 행정동 연희동 = 법정동 연희동+공촌동+심곡동입니다.

 

 거대한 자치구인 서구의 행정중심지. 역사적으로는 부평에 속했고, 부평의 중심지였던 계산동 일대에서 징매이고개를 넘으면 되는 가까운 지역이라 구한말부터 요새화되는 등 역사적으로도 서구 지역의 중심지였습니다. 다만 지형이 구릉지고 넓지는 않습니다. 또한 서울 연희동이 유명하고, 실제 인천 연희동과 서울 연희동은 은근히 가깝기도 해서 (직선거리 20km 정도) 인천의 타 지역에서 ‘연희동’이라고 하면 서울 연희동을 떠올리는 경우도 제법 있습니다.

 

 

 

 

 

영종도

 

: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는 원래 지금만큼 큰 섬이 아니었습니다. 영종도 서쪽으로 신불도, 삼목도, 용유도라는 분리된 섬들이 있었지요. 그런데 현재의 영종도는 그 중간에 간척사업을 해서 하나의 섬으로 합친 겁니다. 그 결과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큰 섬이 되었지요. 안면도, 완도, 울릉도보다 큰 섬입니다. 공항이 워낙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고, 그 넓이에 비해 사람이 많이 산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만.

 

 네 개의 섬 중 제일 서쪽에 있었던 용유도는 다른 세 섬과 거리도 좀 있었고, 크기도 제법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영종도를 영종ㆍ용유도라 부르기도 합니다. 지금도 용유동이라는 지명으로 용유도의 흔적이 남아있고요. 지금 공항이 있는 위치가 대략 본래의 세 섬과 용유도 사이의 바다를 간척한 지역입니다.

 

 

 

 

옐로 선셋 레이크

 

: 송도4동에 위치한 인천에서 가장 큰 인공호수.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지도에도 나오지 않지만, 옐로 선셋 레이크 (Yellow Sunset Lake) 라는 이름이 붙어있습니다. 가칭인지 정식명칭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네이버 지도에는 현재 Water Front Lake로 나와 있습니다.

 

 주변 일대는 한참 개발 중이라서 아직 호수가가 공원화되거나, 호수에서 레저를 즐길 수 있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송도 워터프론트 계획의 일부가 될 겁니다.

 

 다만 호수가 남북으로 길이가 2km에 육박할 만큼 꽤 크다보니 송도 내부의 교통에는 좀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다리나 지하도 등 호수를 가로지를 수 있는 수단이 없고, 수단을 만드는 문제에 있어 협의가 없는 상태입니다. 호수 서쪽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있습니다.

 

 

 

 

오류동

 

: 인천에 오류동은 두 지역이 있습니다. 하나는 계양구 오류동이고 하나는 서구 오류동인데, 둘 다 아라뱃길 북쪽에 있고 멀지도 않습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서구 오류동 일부 권역은 아라뱃길 남쪽에도 걸쳐있습니다만, 대부분의 면적이 아라뱃길 북쪽에 있기 때문에 아라뱃길 북쪽의 법정동으로 인식되곤 합니다. 두 지역 다 별로 사람이 살지 않는 외곽 지역입니다.

 

 서구 오류동은 정서진과 수도권쓰레기매립지와 공단이 있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계양구 오류동은 그나마 신동아라는 대단지 아파트가 있긴 합니다만, 해당 지역은 법정동 장기동, 오류동, 이화동이라는 세 법정동이 몰려있는 지역이라 아파트 단지 이름은 ‘오류동 신동아’지만 지역을 부르는 대표동명은 장기동입니다. 한편으로 오류동 신동아 바로 옆에는 신동아 2단지가 있는데, 그 2단지는 법정동 이화동 권역이라 이화 신동아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류동이라는 동명은 인천에 두 곳이나 있지만, 아라뱃길 이남 계양구나 서구 사람들에게도 인지도가 별로 없는 편입니다. 그나마 인천도시철도 2호선 개통 이후에는 검단오류역이 생겨서 오류라는 지명을 인지하게 된 사람들이 꽤 있긴 합니다만, 일견 오류동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인천 사람들은 서울 구로구 오류동을 떠올립니다. 인천 사람들이 경인선을 타고 다닌 역사가 길고, 경인선에 오류동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 이전에는 서울 오류동 또한 부평도호부에 속하기도 했습니다.

 

 

 

 

 

올리브백화점

 

: 간석동의 백화점. 1980년에 ‘미도파쇼핑센터’로 개점하여, 1984년에 ‘희망백화점’으로 이름을 바꾸어 2004년까지 영업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인천 사람들 다수는 희망백화점 시대를 기억하고 있고요. 2004년에 동보가 인수하여 ‘올리브아울렛’이라는 이름을 거쳐 ‘올리브백화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지역 백화점으로 2016년까지 영업하였으나 현재는 공식적으로는 폐점.

 

 그러나 여전히 올리브백화점이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하고 있는데, ‘백화점’으로는 그리 멀지 않은 관교동 신세계-롯데에 밀려 경쟁력이 없지만 그냥 ‘상가’로는 워낙 대단지 인근에 위치한 상가라 영업이 아예 안 되지는 않습니다. 아울렛화된 옛 지역 백화점이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원인천

 

: 정확한 의미가 정해져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영종도를 제외한 중구 본토와 동구 지역을 의미합니다. 일제 시대 초기에 인천부와 부평부는 이 지역만 빼고 부천부가 되었었거든요. 원래 인천도호부의 중심지는 문학산 동북쪽의 문학동 및 관교동 일대였지만, 개항기와 일제 초기를 거치면서 현재의 인천역과 동인천역 쪽이 인천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후 1980년대까지는 이쪽이 쭉 중심지였지요. 1990년대 이후에는 문학동에 가까운 구월동 쪽이 다시 중심지가 되고요.

 

 

 

 

 

원통이고개

 

: 부평삼거리에서 간석오거리 사이의 고개. 이 원통이고개에는 두 가지 전승이 전해지는데, 하나는 상기하였던 무네미고개 및 굴포천과 관련이 있습니다. 원래 처음에 뱃길을 뚫으려고 한 시도가 원통이고개 쪽이었고, 원통이고개에서 실패해서 무네미고개도 시도했지만 그쪽도 실패했고, 결국 성공한 게 굴포천이었다고 전해지거든요. 원통하게 실패해서 원통이고개라고 불렀다고 하고요.

 

 또 다른 하나의 전승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건국을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부평은 이때도 도읍으로 고려되었었다고 하는데, (조선 시대의 부평 지역은 대략 현재의 부평구 - 십정동 + 계양구 + 부천시 + 서울 구로구 일부 정도 됩니다.) 도읍이 되려면 산골짜기가 100개는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세어보니 99개였는데, 원래 원통이고개 쪽에 산이 있어 100개의 산골짜기가 있었으나 막상 세어보니 원통이고개가 언덕이 되어 있어서 99개로 그쳤다 합니다. 그래서 부평은 도읍이 되지 못했고, 원통하다고 원통이고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합니다.

 

 현재 원통이고개쪽을 다니면 원통이 같은 이름을 딱히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부평삼거리역 인근에 있는 인천가족공원묘지에 원통천이라는 하천이 흘러, 그것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읍내 (송도국제도시)

 

: 읍내는 보통 시골 지역에서 상권이 형성되어 있는 쪽을 읍내라고 하는데, 송도국제도시에서는 해양경찰청 주변 2공구 쪽을 읍내라고 합니다.

 

 송도국제도시는 대부분의 지역이 넓습니다. 밀도가 낮게 계획되어있기 때문에, 도보로 이동해서 뭔가 하기에는 부적합하지요. 그런데 2공구 쪽은 예외적으로 해협 건너 연수지구처럼 좀 평범한 대도시 밀도입니다. 그래서 상권의 밀도가 높고, 또 일찍 개발되기도 해서 한동안 송도국제도시의 중심상권이었기 때문에 읍내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지금은 송도에 상권이 많아졌지만, 읍내라는 별명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인주

 

: 인천의 본래 이름. 인천은 고려시대 때 경원(慶源) 또는 인주(仁州)로 불렸습니다. 인주라는 이름이 붙은 기간이 훨씬 길었고요. 모두들 잘 아시다시피 州는 우리나라 도시에 주로 붙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조선 초에 인천은 도호부급 도시가 아니었고, 이 때 州급 도시가 아니다 하여 仁州에서 仁川으로 격하 개명당합니다. 인천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도호부급 도시가 되었지만, 인천이라는 이름은 유지됩니다. 이 때 붙은 이름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지요. 문제는 인천은 전혀 하천이 발달한 도시가 아니라서 완전히 엉뚱한 이름이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급이 낮은 이름인데 아직도 쓰고 있기도 하고요.

 

 인주라는 이름은 현재 인천에서는 많이 쓰지 않지만, 숭의역부터 장수서창동까지 인천을 동서로 횡단하는 인주대로에 그 이름을 사용하고 있고, 학익동의 인주초등학교 및 인주중학교등의 학교 이름에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천가족공원

 

: 인천 시민들의 화장터이자 납골당이자 공동묘지. 위치는 만수산, 광학산 일대입니다. 만월산터널이 이 가족공원 밑을 지나갑니다. 인천 시민들 중 다수는 타계하면 인천가족공원에서 화장되고 납골당에 안치됩니다. 온갖 일로 츤츤대지만 인프라는 인프라 공사비까지 인천에 의존 중인 부천시 사람들도 이 인천가족공원을 이용하고 있고요.

 

 인천가족공원은 평소에는 자차로 방문해도 상관없는데, 명절에는 자차로 못 갑니다. 명절 자차 출입 자체를 통제합니다. 그러니까 대중교통으로 방문해야 하고요. 대중교통 역으로는 부평삼거리역이 가깝습니다. 경인선을 이용하면 백운역을 이용하는 게 편한데, 부평삼거리역을 이용하는 것보다 600미터 정도를 더 걸어야 합니다만 그게 부평역에서 환승하는 것보다는 편합니다.

 

 한편으로 인천가족공원에는 세월호 일반인 사망자를 위한 추모관이 있습니다. 이는 세월호가 인천항에서 출항했기에 인천가족공원에 추모관이 설립된 것으로 보입니다.

 

 

 

 

장수천

 

: 인천대공원에서 발원하여 소래로 흘러가는 하천. 장수동 일대와 만수6동 일대에서 부분적으로 하천 주변이 공원화되었지만, 아직 제대로 개발되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서창지구와 논현지구, 소래습지생태공원 일대를 흐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공원화될 수 있는 하천으로 생각합니다.

 

 

 

 

 

 

장기동

 

: 장기동이라는 동명은 좀 혼동되기 쉬운 게, 인천 계양구 행정동 계양1동에 법정동 장기동이 있는 동시에 김포 한강신도시 쪽에도 장기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둘은 거리도 가까운데, 생활권도 어느 정도 겹칩니다. 둘을 오고가는 버스노선들도 있고요. 그러니까 장기동이라고 할 때는 인천 장기동인지, 김포 장기동인지를 확인해야합니다. 또한 계양1동이라는 표현은 잘 안 쓰기도 하고, 인천 장기동에 인접한 계양구 오류동, 이화동도 묶어서 장기동 쪽이라 표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김포 장기동도 운양동을 포함한 한강신도시 동쪽 지역을 한강신도시 장기지구라 할 정도로 대표적인 동명이라, 서로 곧잘 많이 쓰는 지역명입니다.

 

 

 

 

 

 

 

 

장제

 

: 부평 지역의 신라시대 이름. 부평 지역은 본래 고구려 시절에는 한자 표기로 주부토(主夫吐)라 하였고, 이는 긴 둑인 순우리말 줄보뚝의 한자 음차였다는 게 통설입니다. 어쩌면 부평은 평야지대였기 때문에 긴 둑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이설로는 ‘임금이 사는 땅’ 정도의 의미라는 설도 있는데, 이는 고구려 이전 마한 54국중 하나인 優休牟啄國(우휴모탁국)이 부평에 있었다는 설에 의합니다. ‘모탁’은 당시 언어로 ‘물뚝’을 의미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신라 경덕왕 시절에 우리나라 지명들을 한자화하면서 ‘長堤’가 부평지역의 이름이 되었었습니다. 장제는 현대의 의미로 훈역하면 긴 뚝입니다.

 

 장제라는 이름은 서구 아라동과 김포시 풍무동, 그리고 계양구의 접경인 유현사거리부터 시작하여 남쪽으로 만월산터널까지 이어지는 긴 도로인 장제로에 남아있습니다. 장제로는 평균적인 너비가 왕복 6차로고, 좁은 구간은 왕복 4차로라 대로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는 않지만 실제 계양구-부평구 지역의 중심지를 쭉 있는 가장 주요한 도로입니다.

 

 

 

 

 

제물포

 

: 본래는 현 인천 중구 본토 지역의 이름이자 인천항 일대의 이름. 개항 이전에는 말 그대로 포구 이름이었고 현재의 항동/해안동/중앙동 쪽이었으며, 개항 이후에는 현재의 인천항, 동인천 일대를 부르던 말이었습니다. 지리적으로 보면 본래 곶(Cape)이었던 원인천 일대의 이름으로도 간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45년 10월 10일부터 27일까지 인천이 가졌던 이름이기도 합니다. ‘제물포시’라는 이름이 잠시 붙었었지요.

 

 문제는 제물포역입니다. 경인선 개통 이후 처음에는 인천역의 영문 부역명이 제물포역이었으나 그 시대는 길지 않았고요. 현재의 제물포역은 전후 1957년에 준공된 역입니다. 처음에는 제물포역 역명을 숭의역으로 고려하였으나 어떤 이유에선지 제물포역이라 하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때는 제물포가 인천의 이명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때였던 걸로 보이고요. 문제는 이후 ‘제물포’라고 하면 진짜 제물포가 아니라 제물포역 인근을 지칭할 때가 더 많아졌다는 겁니다. 미추홀구에 속한 제물포역은 원인천에서는 약간 거리가 있습니다. 실제 浦라는 이름이 붙기에 제물포역은 바다에서 너무 멉니다.

 

 현재 중구 본토는 이름을 제물포역이라고 개명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이 경우 제물포역은 나름대로의 역명 혼동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남구가 미추홀구로 개명하면서 미추홀도서관이 미추홀구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였듯, 중구가 제물포구로 개명하게 되면 제물포역이 제물포구에 없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주부토

 

: 고구려 시절 부평 지역에 붙은 부평지역의 이름. 그 의미에 대해서는 장제에서 상기하였습니다. 다만 본래의 부평지역이 일제 이후 여러 지자체로 갈라졌고, 부평의 적통을 이은 부평구는 인천에 통합된 지 오래다보니 미추홀처럼 주부토라는 이름이 잘 알려져 있거나 많이 쓰이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본래 부평지역의 중심지였던 계양구 지역 토박이들조차 미추홀을 주부토보다 친숙해합니다.

 

 현재 주부토라는 이름은 계양도서관 일대, 옛 사이클경기장 앞길부터 시작하여 남쪽으로 부평시장역 인근까지 이어지는 주부토로에 남아있습니다. 이 주부토로는 큰길이라기보다는 안쪽 길이지만, 계양부평 사람들이 예전부터 이용하던 주요 생활권 길입니다.

 

 

 

 

 

주안

 

: 주안은 본래는 현 만월산의 이름이자, 만월산 서남쪽 일대인 현재의 부평구 십정동, 남동구 간석동 및 구월동 북쪽을 가리키는 지명이었습니다. 또한 본래는 십정동과 간석동 서쪽은 간조시 개펄이 되는 만(Bay)이었지요. 일제시대 들어 이 십정동, 간석동 서쪽 바다에 염전을 만들었는데, 이를 주안염전이라 하였고 1960년대까지는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염전이었습니다.

 

 1910년에 경인선 축현역(현 동인천역)과 부평역 사이에 주안역이 생깁니다. 일제시대에 생긴 유일한 경인선 역이었고, 그 때 만들어진 주안역이 지금도 있는 주안역입니다. 이후 부평역이 부평이라는 이름을 본래 부평의 중심지였던 계산동에서 빼앗았듯, 주안역도 주안이라는 이름을 십정동-간석동에서 빼앗게 됩니다. 사실 부평역과 계산동 사이가 제법 먼 것에 비해 간석동과 주안역은 가깝고, 실제 예전에는 동암역도 간석역도 없었던 만큼 주안역이라는 이름이 이상하지는 않았는데, 이후 주안이라는 지명은 본래의 주안보다는 서쪽을 의미하게 되긴 합니다.

 

 주안은 좁게는 주안역 일대를 의미합니다만, 실제로는 행정동 기준 1~8동까지 있는 주안동 전역과 주안국가산단역 북쪽으로도 이어지는 주안국가산업단지 전반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한 때 주안역 일대는 인천의 대표적인 번화가 중 하나였고, 거주지로도 정말 높은 비율의 인구가 사는 곳이 주안이었는데 지금은 예전정도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주안역 주변은 번화가에 속하고, 사람도 여전히 많이 사는 곳입니다.

 

 

 

 

주안산단

 

: 주안역 북쪽은 본래 바다였고, 주안염전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염전이 있던 곳입니다. 그러다가 60년대부터 염전을 간척하여 공단을 조성하게 되는데, 그것이 주안산단입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정확히 주안산단이라 해야 할지는 좀 어렵습니다만, 항구를 기준으로 보면 인천의 항구는 월미도와 연안동 일대의 인천항, 그리고 북성포구부터 청라 남쪽까지라 할 수 있는 인천 북항, 그리고 송도국제도시쪽의 인천신항이 있다 할 수 있는데요. 이 중 인천 북항에 해당하는 지역은 상당히 넓고 거의 항만산업단지로 조성되어 있는데, 이 산업단지 전체를 주안산단이라 불러도 별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동구와 청라이남 옛 서구지역 바닷가 일대 전체, 그리고 미추홀구 북쪽 일부가 주안산단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이 주안산단의 넓이는 남동공단보다 넓고, 현대제철이나 두산인프라코어, 동국제강같은 대기업 산업시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주안산단이 사실 인천 바닷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인천 사람들은 외부에서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달리 별로 바다를 보고 살지 못합니다.

 

 인천도시철도 2호선 개통 이후 주안국가산단 역이 주안산단 내부에 정차하는데, 그 역 주변만 산업단지가 아닙니다.

 

 

 

 

 

주안시민지하상가

 

: 시민공원역 인근의 지하상가. 시민회관지하상가라고도 부릅니다. 인천에서 부평지하상가 다음으로 큰 지하상가인데, 유감스럽게도 시민회관 일대의 상권 전성기가 지난 다음에 준공되었습니다.

 

 북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주안역 지하상가가 있고 동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석바위 지하상가가 있는데, 이 세 지하상가가 합쳐질 경우 부평지하상가의 규모를 능가할 정도의 거대지하상가가 되겠지만 현재는 따로 떨어져 있고, 딱히 합쳐진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중구

 

: 원인천의 중심지이자 현재의 영종도, 인천공항을 포함한 자치구. 인천의 자치구 중 면적이 가장 넓습니다만, 대부분의 면적은 영종도 일대가 차지하며 본토는 좁습니다. 90년대만 해도 영종도에 거주하는 인구는 얼마 되지 않았었습니다만 금세기 들어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현재는 본토보다 영종도 인구가 많아졌고요. 중구 본토에서 영종도로 오가는 방법은 현재 페리선 뿐이고, 영종도와 오고가는 두 대교는 중구 본토를 통하지 않기 때문에 중구 내부의 갈등이 심한 상태입니다. 영종도 주민들은 독립을 원하고 있고, 중구 본토는 인접한 동구와 합친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지요. 제물포구로 개명하겠다는 말도 있고요.

 

 중구 본토는 항만시설이 차지하는 면적이 넓고, 차이나타운과 월미도 일대 같은 관광지 및 동인천역 상권 등이 차지하는 면적 또한 넓어 현대에는 거주인구가 많지 않습니다. 이름이 중구인 이유는 본래 중구청이 인천시청이고 원인천 시절의 중심지였기 때문인데, 이 시대에는 딱히 어울리는 이름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1990년대까지는 동인천역 일대가 도심이었고, 중구는 인천의 중심지였습니다.

 

 인천 중구 본토는 법정동이 매우 잘게 세분되어 있는데, 이는 일제시대의 행정체계 영향입니다. 그래서 법정동명으로 위치를 세세하게 특정할 수 있습니다. 도로명주소에는 법정동명을 부기하게 되어있으므로 부기시 중구 본토는 도로명주소를 써도 예외적일 만큼 상세하게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영종도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방문한 인천 권역일 것입니다. 인천공항이 있으니까요. 원래 다수의 섬으로 되어 있었는데, 섬 사이를 간척하여 그 간척지에 인천공항을 지었습니다. 인천 본토에서 인천공항은 제법 거리가 있는 편이라, 계양부평 쪽에서는 사실 거리상 김포공항이 더 가깝기도 합니다. 김포공항 활주로 일부는 계양구 권역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영종도 주민들은 공항에서 일하는 비율이 제법 높은 편입니다.

 

 

 

 

 

 

 

진선미예식장

 

: 옛날에 부평에 있었던 랜드마크 예식장입니다. 워낙 유명했기 때문에 진선미예식장이 사라진 이후에도 그곳을 진선미예식장쪽이라 불렀고, 아직까지도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위치는 현재의 시장로, 한남시티플라자 정류장 쪽입니다. 이쪽에는 아직도 ‘진선미주차장’이 남아있어 옛 흔적을 보여줍니다.

 

 

 

 

 

 

한남정맥

 

: 경기도 안성시 칠장산부터 김포시 문수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의미합니다. 인천에서는 동쪽의 소래산, 성주산, 거마산, 관모산부터 서쪽으로 만수산/광학산, 만월산, 그리고 북쪽으로 이어져 철마산, 원적산, 천마산, 중구봉, 계양산, 가현산으로 이어집니다.

 

 이 산맥은 조선 시대 부평도호부와 인천도호부의 경계였고, 현재의 부평+계양구와 서구의 경계입니다. 이 자연적인 경계 때문에 한 도시가 된 이후에도 인천과 부평은 완전히 한 도시라고는 하기 어려우며, 1980년대까지는 택시를 탈 때 아예 부평과 인천 지역끼리는 시외요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서구는 본래 부평 지역이었고 북구였습니다만, 한남정맥 서쪽이기 때문에 주안염전 간척 이후에는 동쪽의 부평/계양구보다는 주안에 더 가까운 지역이 됩니다.

 

 한남정맥은 기후에도 영향을 주는데, 한남정맥 남쪽인 구월동이나 인천대공원이 있는 장수동까지는 해풍이 불어옵니다. 그래서인지 바람 냄새도 다르고, 인천대공원의 벚꽃 개화 시기는 한남정맥 북쪽 부평/계양구의 개화 시기와 다릅니다. 그밖에 도시 분위기 자체도 좀 다릅니다. 부평/계양과 한남정맥 남쪽 인천지역은 1999년 10월에 인천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된 이후에야 실질적으로 좀 가까워졌습니다.

 

 

 

 

혈구산

 

: 인천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은 강화도 중앙 쪽에 있는 혈구산(466m)입니다. 마니산과 별로 높이 차이가 나지는 않는데, 유명세는 많이 차이 납니다. 본래 강화도의 주산은 마니산이 아니라 혈구산이었습니다. 상기하였듯 마니산이 강화도 섬이 된 건 1706년부터니까요. 혈구군은 강화군의 옛 이름이었습니다.

 

 혈구산은 높이에 비해 산세가 험하고 풍경이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좀 오지에 있고 유명하지가 않지요.

 

 

 

 

 

 

홍진아파트

 

: 인천지역 홍진아파트는 계양구 계산삼거리에 있던 랜드마크 아파트 단지입니다. 2005년에 현재의 계산동 신도브래뉴로 재건축되었는데, 이후에는 랜드마크 역할을 못 하고 있습니다만 홍진아파트는 매우 유명한 랜드마크였기 때문에, 이후에도 한동안 계산삼거리 쪽을 부르는 명칭이 홍진아파트 쪽이었습니다.

 

 이 홍진아파트는 1970년대 후반 박정희 시대 때 정부정책에 의해 분양된 아파트로, 우리나라 아파트 중에는 이른 시기의 것이었으며 당시에는 아직 계양구 계산동 일대에 부평이라는 명칭을 쓰던 시기라 부평 홍진아파트로 불렸습니다. 지금은 계양구를 부평이라 하면 좀 어색할 수 있습니다만, 사실 90년대 이후 부평 일대가 워낙 혼잡해져서 그렇지 거리로 보면 부평역에서 계산삼거리까지 거리는 송도국제도시 동쪽에서 서쪽 정도의 거리밖에는 되지 않고, 평야지대기 때문에 그냥 통틀어 부평이라 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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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닉내임을입력해주세요 2021.11.28 19: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기서 대학교를 다녔었는데, 저희 학교 학생들은 '읍내'를 '해경'으로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ㅋㅋㅋ

    • 해양장미 2021.11.28 19: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해양경찰서 주변이라 해경으로 부르셨군요. 그러고보면 송도 거주자들 입장에선 2공구가 읍내처럼 느껴지겠으나 대학생들 입장은 그렇지 않겠습니다.

  2. 방구석 비트겐슈타인 2021.11.28 23: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숭의아레나 직관 후에 동인천역으로 이동해 주변을 쭉 걷다가 술집이 꽤나 몰려있는 거리를 봤는데 그쪽이 번화가였나보네요. 부평 문화의거리 못지 않은거같은데 사람이 엄청 없더군요. 근데 생각보다 굉장히 잘 꾸며져있어서 놀랐습니다. 벌써 크리스마스 트리도 놓고 조명도 반짝반짝하게 해놨던데 아마 일요일 저녁이라 사람이 없었던걸까요.

    백마장 사진은 아딸이 있는걸 보아하니 2009년~11년 사이정도로 짐작이 됩니다ㅎㅎ 저 시기 동네사진이 없었는데 하나 득템했네요. 전 백마장이라는 지명을 몇년 전까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집 근처 버스정류장 이름이 백마장입구였고, 농협 지점이름도 백마농협인데 그게 지명이란 생각조차 못했었거든요. 지금 아직 재개발이 안된 백마장구역은 산곡1동인데요, 그 건너편 롯데마트쪽이 도로를 경계로 해서 산곡2동으로 나뉩니다. 우스갯소리로 뒤돌기만 하면 50년을 왔다갔다 할 수 있다고 친구들이랑 얘기하곤 했습니다. 저는 롯데마트쪽에서 쭉 살았어서 산곡1동 갈 일이라곤 거의 없었는데요. 예전에 정아식당이란 유명한 닭도리탕집이 있었는데 그 주변만 가봤었습니다. 엄마 손 잡고 시장도 가봤었던걸로 어렴풋이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정아식당이 청천동으로 옮겨서 그동네 맛집은 덕화원, 회락춘정도만 남아있습니다. 최근에서야 구석구석 구경하고 있는데 알고가면 볼거리가 쏠쏠한 동네더군요. 역시 아는게 있어야 보이는게 많은가봅니다.

    • 해양장미 2021.11.28 23: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90년대만 하더라도 부평 이상으로 동인천이 번화했었습니다. 다시 되살리려는 노력은 계속 있어서, 꾸며는 놨는데 사람이 없지요.

      백마장 사진은 말씀대로 2010년입니다. 그런데 네이버 로드뷰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전 가끔 예전 로드뷰를 봅니다.

      백마장은 예전에는 그 일대를 다들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런데 일제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고 쓰지 말라고 계속 그래서. 토박이들은 백마장이라고 여전히 종종 부르지만 공식적으로는 기피되는 그런 지명이지요. 그런데 백마장이라는 이름 쓰던 사람들은 산곡이라는 이름보다 백마장이라는 이름을 좋아합니다.

      정아식당 본점이 옮겼나요? 정정아식당이라고 지점은 많은데, 거기 있는 정아식당이 본점이었지요. 덕화원은 계속 하고 있나보군요.

    • 방구석 비트겐슈타인 2021.11.28 23: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작년 8월에 옮겼는데 저는 정아식당이 분위기를 먹는곳이라 생각해서 참 좋아하던 곳인데 바로 옆 청천동으로 옮긴 이후엔 그런 느낌이 싹 사라지고 흔한 번화가 가성비 닭도리탕 술집이 되어버린 느낌이라 더 이상 찾지 않습니다. 게다가 저는 백마장이 아닌 산곡동 토박이에 가까워서 청천동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아서요. 같은 세트로 묶이면 산곡동 사람들은 몸서리칩니다ㅎㅎ 바로 코앞의 동넨데 참 웃긴 일입니다

    • 해양장미 2021.11.28 2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습니까. 작년에 갔었는데... 제가 갔던 게 8월 이전이었지요.

      청천동이나 산곡동이나 제가 생각하기에는 한 동네지만, (부평쪽 산곡동은 다른 동네 맞고요) 어떤 느낌으로 이야기하시는지 이해는 갑니다. 바로 옆동네끼리 사이 나쁜 건 흔한 일입니다. 그래도 사이좋게 지내면 좋지요.

  3. 익명 2021.11.30 14: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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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양장미 2021.11.30 14: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 동인천에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모여살던 시기는 대략 60년대까지였다고 해야 할 겁니다. 이후 70~80년대에는 현재의 미추홀구 쪽으로 스프롤 현상이 가속화되었고요. 부평은 일제 시대 때 이미 독립적으로 발전하고 있었고.

      그러니까 굳이 보자면 90년대엔 이미 동인천은 남구(현 미추홀구)에 사는 사람들이 놀러가는 곳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땐 그래도 인천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곳이 남구였어요.

      - 우리나라에서는 압구정 로데오가 로데오거리의 원조격이 맞을 겁니다. 그런데 구월동 로데오거리는 패션거리라기보다는 번화가/유흥가에 가깝지요. 굳이 보면 예전부터 인천에서 옷 사는 걸로 유명한 건 부평지하상가쪽이었고요.

      - 실제로 고각이긴 합니다. 경전철이라 그런 고각이 가능한 것도 같고요. 다만 탔을 때는 딱히 롤러코스터같은 느낌까진 아니지요.

      - 옛날에 송도유원지는 좋았습니다. 지금은 송도유원지 재개장이 꼬이기도 했고, 송도 워터프론트 계획 때문에 컨셉이 좀 겹치기도 해서 고민이 많을 겁니다.

      - 쓰레기도로가 90년대만 해도 진짜 오지로 가는 도로 느낌이었습니다. 지금 드림파크를 보면 참 대단하다 싶지요.

      - 간척사업은 전근대 시절부터 꽤 하던 겁니다. 그 드넓은 호남평야도 사실 간척지입니다. 원래 전주는 바닷가 도시였어요. 강화도는 여러 개의 작은 섬으로 된 곳이었고요.

      - 네. 허물고 거기 그 별로 공원 같지 않은 공원 조성해놓고 역 이름이 '시민공원역'이 되었지요. 사거리 이름은 여전히 시민회관 사거리고.

      - 길병원은 이'길'여 여사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김씨나 이씨 의사는 성씨로 개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더라고요. 백병원은 성씨에서 따온 이름이 맞고요.

      - 네. 간척사업은 수산업에는 분명히 대미지를 많이 주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야 좀 회복이 되는 것 같아요.

    • 2021.11.30 1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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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양장미 2021.11.30 16: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 QR코드가 일반화되기 전엔 어느 음식점에나 수기로 방문자 기록을 남겼는데, 저는 그 때 원인천 쪽에 어떤 사람들이 방문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보면 인천 사람들이 월미도를 제외한 원인천에 가는 비율이 높지 않더라고요. 원인천도 외지인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 되어 있는데, 그러기에는 동인천 쪽은 주차도 도로접근성도 너무 나쁩니다.

      - 생각해보면 외지인들한테 인천은 항구 이미지가 강한데, 그나마 소래포구 쪽이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곳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천 현지인들이야... 대체로 동네 상인들이 어차피 소래건 연안부두건 어디건 가서 새우 가져 오니까 굳이 먼 수산시장까지 갈 이유가 없거든요.

  4. 익명 2021.12.01 2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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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양장미 2021.12.01 21: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 네. 수산동하고 남촌동 쪽에 과수원이 좀 있습니다.

      - 현 가정역 인근의 루원교차로가 원래 가정오거리였습니다. 지금은 남동쪽으로 아파트 단지를 지으면서 사거리로 바뀌었지요.

      청라하고 루원시티 차이는, 얼핏 보기엔 구분이 안가지만 일단 청라는 그 주변을 수로가 감싸고 있고요. 간척지인 청라보다 재개발한 루원쪽이 땅값이 더 비쌌고, 개발도 청라보다는 살짝 고밀도로 되었습니다.

      - 드림파크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조금만 달리면 검단입니다. 말씀대로 아직은 굳이 외지인이 가서 뭘 구경할만한 게 없습니다.

      - 서울도 북쪽 산골짜기 동네는 시원할 겁니다. 대신 겨울엔 춥지요.

      - 그게 부평역 지하상가 개찰구 쪽은 원체 유동인구가 많은 동네인데, 앉아있을 곳이 그 분수대밖에 없습니다. 공간이 없어요. 부평역에 분수대를 만든다면 지상광장이나 지하철 1호선 역사 쪽은 가능할 겁니다.

      - 연수지구가 보기보다 공기가 좋습니다. 풍향이 거의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하고, 청량산/봉재산에서 불어오는 바람만 있어서 공단쪽에서 연수지구로는 바람이 안 붑니다. 공기질은 송도국제도시 > 연수지구 >>>> 구월동 도심 (아시아드 제외) > 논현지구 정도 됩니다.

      - 부평역 쪽하고 구월동 쪽을 직통하는 도로가 만월산터널입니다. 만월산터널 안 지나고 가려면 만월산 동쪽 고갯길인 만월로를 넘거나 부평삼거리역 쪽이나 백운역 쪽으로, 아니면 십정동 쪽으로 돌아야 합니다.

    • 2021.12.01 2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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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양장미 2021.12.01 2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 그 원인천이 옛날에는 거의 서울급 인구밀도였습니다. 지금은 도심공동화라는 게 뭔지 세계적으로 잘 보여주는 곳이 되었습니다만.

      - 아마 읍내는 계속 읍내일 겁니다. 이유가... 굳이 보면 송도에서 '자차가 없어도 살 만한' 동네가 2공구라서 그렇습니다. 이게 경제능력 있는 성인이나 아예 아동은 송도 다른 지역에서 살아도 괜찮은데요. 중학생부터 대학생 정도까지는 2공구 쪽에 사는 게 편합니다. 여기에 더해 개발이 일찍 된 면도 있어서 2공구 쪽이 교육이 발달했고, 다른 공구가 그걸 대체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5. 익명 2021.12.12 2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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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양장미 2021.12.13 19: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 아. 맞습니다. 녹청자박물관이 있는 곳이지요. 대중교통 접근성이 별로 좋은 곳이 아닌 게 단점입니다.

      - 구월동은 인천 최대단지인 힐스테이트-롯데캐슬 쪽에 중산층 이상이 모여살고요. 그리고 근래 생긴 아시아드에도 살고. 그 외의 지역은 대체로 서민들이 사는 오래된 주거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연수지구 준공하고 힐스테이트-롯데캐슬 재개발 준공 사이에 10년정도 텀이 있습니다. 원인천쪽에 살던 부유층이 연수지구 준공 당시에 많이 이주했고요. 원인천의 몰락과 구월동의 도심화는 연수지구 준공 이후에 일어났습니다.

      연수지구와 송도는 같은 연수구에 근접지역이고, 어느 정도 생활권이 겹칩니다. 연수지구에 살던 사람이 분가하면서 송도에 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연수지구도 재건축이 될 것 같고요.

      사람들은 그냥 좋은 주거환경에서 살고싶어합니다. 그런데 길이 잘 뚫린 아파트단지보다 좋은 주거환경이 잘 없는 거지요. 요새 생긴 단독주택단지 정도가 그보다 좋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인천에 그런 단독주택단지는 논현동, 청라, 서창동에 소규모로 있습니다. 그리고 굴포천 따라 삼산지구 인접해서는 상동에도 있긴 한데, 거긴 행정구역상 부천이고요.

  6. Palaiologos 2022.01.06 00: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인아라뱃길 역시 4대강과 마찬가지로 좌익들에게는 절대악으로 인식되는 모양입니다. 실례지만, 장미님이 판단하시기에 아라뱃길이 그정도로 폐급입니까?

    • 해양장미 2022.01.06 0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라뱃길보다는 일단 4대강이 결과물이 더 낫습니다. 대운하는 말도 안 되는 발상이었지만, 4대강의 결과물은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습니다.

      아라뱃길은 뱃길로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기대했던 화물용 뱃길로는 가치가 0입니다. 다만 원래 기획한 다른 이유였던 홍수예방이나 수변공원으로의 가치는 높아서, 아예 완벽한 실패는 아닙니다. 돈이 너무 많이 들었을 뿐.

  7. 방구석 비트겐슈타인 2022.01.06 01: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라뱃길 진가는 여름 해질녘에 있는데 혹시 그 때 가보셨나요? 그 아라뱃길 전망대가 있는쪽이랑 계양역 바로 뒷편이랑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는데, 전망대쪽도 좋지만 계양역 바로 뒷편에 여름 해질녘은 최곱니다. 차가 없어도 갈 수 있는것도 한 몫 하죠. 저는 개인적으로 사람 없고 한적한 곳을 선호해서 '경치' 하나로만 본다면 반포한강 급이라 생각합니다. 역사에서 닭강정 하나 사들고 앉아서 바람쐬며 먹으면 '좋다'라는 단순한 말의 감정이 오롯이 느껴집니다. 경험상 6월 말~7월 초 6시~8시의 느낌이 제일 좋더군요. 주로 여자친구 생기면 꼭 써먹는 코스중 하나입니다만 혼자 갔을때도 정말 볼만합니다. 예전에는 역 앞에서 자전거 빌려서 인천항 방향으로 1시간 30분정도 가면 근사한 경치를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자전거 대여소가 눈에 안보이네요.

    • 해양장미 2022.01.06 0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계양역 바로 뒷편이요? 귤현프라자 쪽을 이야기하시는 걸까요. 아라뱃길은 좋은 곳이 하나둘이 아니지요.

      아라뱃길에서 진짜 경치 아름답다고 느낀 적은 많습니다. 석양이 아니라도. 석양이 제일 유명하지만요. 그러니까 저는 거기가 실패했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뱃길로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도 말이지요.

      그리고 계양역 닭강정 가게는 맛이 괜찮은 편입니다.

    • 방구석 비트겐슈타인 2022.01.06 02: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검색해봤는데 거기가 귤현프라자였군요. 그쪽 라인 맞습니다. 거긴 맨날 화장실만 쓰느라 이름은 관심이 없었네요. 귤현프라자 바로 옆 다리를 통해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서 차가 다니는 도로쪽 걷는 기분도 짜릿하고, 그 바로 밑에 사람 다니라고 만들어둔 다리도 좋던데요. 거긴 또 야간에 올라가면 숨이 탁 트이는 기분이에요. 저는 그 닭강정집 마늘맛이 원픽입니다. 옆에 쌍둥이분식도 괜찮던데요. 아라뱃길은 마음에 드는것 투성입니다. 사실 반포같은데는 오롯이 즐기기엔 돈이 없는데 아라뱃길은 싼값인것도 한몫 하네요.

    • 해양장미 2022.01.06 02: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계양대교가 아라뱃길 다리 중 경치 즐기면서 관광하기 가장 좋은 다리입니다. 낮보다 야경이 아름답고요. 차 몰고 통과할 때는 그저 그렇습니다만.

      아라동에 입주 끝나고 나면 계양대교쪽에 사람 좀 많아질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한적하고 자연경관즐기기 좋은 지금까지의 아라뱃길도 좋지만, 반포한강공원처럼 번화해져도 그 또한 좋겠지요.

  8. 익명 2022.01.06 15: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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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양장미 2022.01.06 16: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평계양지역의 하천들은 본문에도 기술하였듯 인공하천들입니다. 본래는 충적평야일거라 자연하천이 거의 없었을 겁니다. 사람이 살고 농사도 짓고 수운도 이용하려면 물길이 필요했지요.

      말씀대로 송도청라와 인천의 타 지역은 많이 다릅니다. 송도는 특히 많이 다르고요.

  9. 익명 2022.01.06 2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해양장미 2022.01.06 2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 계양산은 계양구고 루원시티는 서구입니다. 구가 다릅니다. 계양산 개발 반대할 때 만들어놓은 룰 또는 논리 때문에 계산동쪽 재개발/재건축이 좀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 굴포천은 물이 흐릅니다. 서부간선수로가 안 흐르고요. 굴포천에서는 낚시를 하는데, 서부간선수로에서는 낚시를 안 합니다.

      - 신세계, 롯데, 이랜드의 몰은 아직 짓는다는 말만 있지 아직 착공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만약 근사하게 백화점이 들어선다 해도 송현아 일대는 장점이 분명해서 쉽게 쇠락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 닭강정같은 요리에 대한 기록이 제대로 있을 것이 있나 모르겠습니다.

      - 저는 원래 유니짜장을 좋아하는데, 제가 느끼기에 신승반점 유니짜장은 평범했습니다. 저한테 거긴 간짜장이 낫더라고요.

      - 남동구청장이 요새 불미스러운 뉴스를 타고 있어서 어찌 잘 풀릴지 모르겠습니다.

      - 안스베이커리가 구월본점에서 처음 시작할 때는 동네 빵집에 가까웠는데, 성공하면서 지점을 차릴 때 베이커리 카페 형태로 차린 것으로 보입니다. 안스 아니라도 인천에 안스 출신 빵집이 종종 있습니다. 안스 지점이다가 독립한 빵집도 있고요.

  10. 익명 2022.01.09 2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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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양장미 2022.01.09 2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 네. 1984년에 서인천고가 들어서기 전에 검암 일대는 별게 없는 농지에 가까웠고, 그 때는 바닷가답게 커다란 검은 바위 있는 게 상징적이라 지명의 유래였던 것 같습니다.

      - 네. 실제 아라뱃길 근처에 사는 현지인들은 아라뱃길을 매우 좋아합니다. 특히 코로나 이전에 하절기 시천교 쪽은 꽤 즐거운 분위기였지요.

      - 계양구 효성동, 작전동 일대에는 꽤 오래 된 동네가 많습니다. 재건축에 가장 열올리고 있는 동네는 계산3동 쪽이고요. 저층아파트들이 많거든요.

      -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개발한다고 했었던 쪽이 목상동 쪽이었다고 아는데 거긴 지금도 완전 오지라서요.

      - 계양산팔각정까지 올라가는 길이 제법 가파르기 때문에 그쪽에서 잠시 쉬는 경우도 많습니다. 경치가 제법 좋기도 하고요.

      - 네. 적어도 캣맘짓은 절대 금지시켜야 합니다. 캣맘이 착하다는 잘못된 인식부터 근절시켜야 합니다.

      - 그게 전철을 타고 지나가면서 보면 볼만하고, 실제 최근에 준공된 고가철이다보니 지나다니면서 선로를 봐도 괜찮은데요. 막상 살기엔 고가철로 인근이 그리 좋지가 않지요.

      물론 그래도 논현지구는 좋은 동네입니다.

      - 아직 인천에서 로데오거리만한 곳이 없습니다. 코로나 끝나면 다시 좋아지겠지요.

      - 아무래도 그렇지요. 일단 도로부터 좀 문제가 있어서요. 차몰고 미추홀구 들어가는 순간 영 답답해집니다.

      - 네. 상동이 비싸다보니 삼산지구도 비쌉니다.

      - 종종 이야기하고 있지만 송도는 자체적으로 발달했고, 인천은 자체적으로 뒤쳐졌습니다. 인천이 송도를 개발하느라 뒤쳐진 게 아니고, 오히려 송도가 인천에 발목을 잡혔지요. 인천의 제대로 발목을 잡았던 동네는 송도도 청라도 아닌 검단입니다.

      - 저는 중구 일대의 본격적인 쇠락의 시작을 제물포고 평준화로 봅니다. 학군문제가 아니었다면 부평 일대도 쇠퇴하지 않았을거라 생각합니다.

      - 혈구산은 인천 본토 사람들한테도 거의 안알려져있습니다. 혈구산이라는 이름도 거의 모릅니다. 그렇지만 가본 분들은 대체로 평이 좋더라고요.

  11. 익명 2022.01.11 2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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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양장미 2022.01.12 02: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 네. 서울에서 미혼 시절까지 살다가, 아니면 혼인해서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살다가 아이가 생기면 인천, 김포 등지로 이사가는 가구가 꽤 됩니다.

      여초도시 서울의 극단적으로 낮은 출산율은 상기한 이주에 의한 것도 있습니다.

      인천도 아파트 없는 동네에는 청년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송도 가면 아동이 많지요.

      - 지은 시기가 다르니까요. 현대에는 좀 레트로하게 지으려고 해도 아무래도 근대건축처럼 짓게 되지는 않습니다. 가성비를 신경쓰면 좋은 건재가 많아졌으니까요.

      - 순무는 계양이나 김포에서도 김장철에만 드물게 볼 수 있고, 토박이들은 알아서 구해서 각자 해먹고 말기 때문에 흔하게 있는 곳은 강화밖에 없을 겁니다.

      계양구에 순무김치가 나오는 음식점이 드물게 있긴 한데, 대체로 대중교통 접근성이 매우 좋지 못한 외지 가든형 음식점에서 나옵니다.

      - 태화원 향토, 용화 간을 꼽고 싶네요.

      - 네. 장수천은 복개구간이 없지요. 원래 만수천하고 담방마을쪽에서 합쳐지는 하천이었는데, 만수천은 전구간 복개고요.

      - 미추홀구는 잘나가다가 꺾인건데, 동구는 원래 시작부터 서민동네였거든요. 재개발을 하려고 해도 사업성이 좋은 동네가 아니다보니 고급아파트가 들어서기도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