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는 언제 풀릴 것인가

경제 2013. 2. 13. 00:31 Posted by 해양장미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언제가 좋은 시기였는지 기억이 아득하다. 아마 한국 경제의 상대적 황금기는 1990년대 중반기였을 것이다. 그 땐 대체로 모두가 적당히 잘살았다. 지금보단 객관적으로 가진 게 없었지만, 체감 상으로는 잘 살게 되었다고 느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인들은 항상 불경기라 느끼고 있다. 큰 불경기냐 작은 불경기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박근혜 후보의 당선은 군사정권 당시의 성장에 대한 향수가 또 한 번 발휘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실제 경제 공약에 있어서도 객관적으로 문재인 후보보다 많이 낫기도 했다. 그렇다면 박근혜 후보는 한국에 호황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과연 경기는 언제 풀릴까?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로 나는 지난 포스트, ‘한국은 잘나가는데 왜 한국인은 가난할까? 에서 외국인 투자자에 의한 국부 유출을 주된 문제로 든 적이 있다. 그 구체적인 사례로 2010년을 돌아보면, 당시엔 한국의 무역이 잘 되어서 예상을 상회한 최대 흑자를 기록하였다. 흑자 금액은 $417억 정도. 당시 환율로 대략 47.3조원에 육박하는 수준의 흑자였다. 그런데 문제는 같은 해에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주식시장에서 이익본 돈이 대략 62조원이라는 것이다.


 이건 간단히 말해 한국 안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밤새서 일해 번 외화, 약 47조원보다 15조원 많은 62조원을 외국인 투자자들이 빨아먹었다는 뜻이다. (물론 이 계산엔 한국인 투자자들이 외국 증권에서 번 손익이 집계되지 않긴 한다. 그런데 그런 소득이 얼마나 있겠는가. 정보력에서 앞서는 홈그라운드에서도 탈탈 털리는데. 한편으로 채권 투자액에 관한 건 아예 언급도 안했다.) 당연한 건데, 이래서야 무역해서 이익을 얻어 봐야 별 소용이 없다. 한국 기업이 번 무역 흑자가 한국에서 좀 돌아야 내수 시장도 돌아갈 텐데 외국으로 죄다 빠져나가는 걸 넘어, 개미 투자자들이 그나마 있는 돈까지 더 가져다 바치니 나라꼴이 제대로 돌아갈 수가 있겠는가.


 근본적으로 한국의 경제가 진정으로 개선되려면 주식시장을 통한 국부의 유출을 제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를 막으라는 게 아니다. 매년 수십조씩 털려서는 곤란하다는 거다. 밤새서 폰만들고 차만들고 이것저것 만들어봐야 수익이라는 면에서는 사모, 헤지펀드들 클릭 좀 해대는 것만도 못한 현실이다. 그러나 소위 민주화 세력이건 자칭 보수세력이건 (이름들이 아깝게도) 아예 이런 문제 인식 자체를 제대로 못하는 게 현실이다 보니, 여기엔 당장은 별 기대가 없다. 얼른 시민 사회에서라도 사태 파악을 하는 게 먼저다.


(한편 근본적으로는 한국 특유의 문화적 결함들이 개선되어야 금융에서 좀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한다. 지금은 걸고는 맨날 잃는다. 그저 안습. 한국인 평균 성격을 보면 금융에서 절대로 절대로 죽었다 깨어나도 돈을 딸 수가 없다. 여하튼 깨시민부터 좀 재우자. 그들은 너무 오래 깨어있었다.)


 그보다 현실적으로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부터 보자면, 그리고 실제 박근혜가 손 댈 수 있는 문제를 보자면 소위 ‘돈맥경화’를 들 수 있겠다. 경기가 시원찮다는 건 쉽게 말해 화폐라는 경제의 혈액이 빠르게, 많이 흐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돈은 재화의 매개수단이고 돈이 타인의 손으로 빠르게 오고갈수록 경제는 활성화된다. 전체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내가 돈을 많이 쓸수록 내가 돈을 많이 벌게 된다. 물론 분배가 공평할 때의 이야기다. 물론 사회가 가진 총생산력 이상의 생산은 불가능하고, 화폐가 아무리 잘 흘러도 이 이상 부유해질 수는 없지만, 잠재 생산력 자체가 현실에서 최대한으로 돌아갈 때는 거의 없다. 전시에 군수품 만드는 거라면 모를까.


 문제는 이 흐름의 방향 제어와 심리에 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재화 흐름 중 많은 부분이 외부로 유출되게 되었다. 그나마 극심한 고통 없이 외환위기를 극복한 것처럼 느꼈던 것은 재화 자체의 양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게 한계에 부딪친 이명박 정권에 들어서 고통이 가중되었다. 재화의 증식이 잦아들었기 때문이다.


 소위 진보좌파들의 가장 큰 착각 중 하나가 부동산에 대한 인지이다. 부동산은 재화의 주된 척도 중 하나이며, 부동산 가격 상승은 추가적인 화폐 흐름을 만들어낸다. 소비는 현재의 소득보다도 미래의 기대소득에 의해 좌우되는 면이 강하다. 다만 노무현 정권 때의 부동산 가격 상승은 너무나 가팔랐기에, 늘어난 재화가 부동산으로 재투자되는 경향을 가져와 실물경기에는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한 면이 있었다.

 

 부동산 가격은 어느 정도 완만하게 상승하는 것이 실물 경제에 가장 좋다. 안전한 채권보다는 높은 수익률에, 투기용 채권보다는 덜한 리스크 정도면 이상적이다. 오늘날 적잖은 자칭 진보좌파들은 부동산이 투자자산이어서는 안 된다고 헛소리를 해대지만, 사유지는 인류의 긴 역사 속에서 언제나 투자자산이었고, 투자자산이 아닌 이상 비유동자산을 구매할 바보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문제는 근래 5년간 부동산, 그 중에서도 주택 가격이 실질적으로 떨어졌고 그로 인해 부동산 거래가 마비되어버렸다는 데 있다. 낮은 가격으로라도 거래가 되면 그나마 괜찮은데, 주택은 좀 특수한 시장이어서 가격이 회복될 때까지 세를 주고 대출을 돌려 막으면서 버틸 수가 있다. 이 때문에 주택을 가진 수많은 중산층의 지갑이 굳게 닫혔다.


 한국 수도권 중산층의 자산 중 가장 많은 부분이 부동산, 즉 자가 소유의 공동 주택에 들어가 있다. 이 막대한 자산이 지닌 유동성이 사라진데다 단기적으로 상승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소비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소비의 감소는 곧 생산의 감소 및 시장의 불황으로 이어진다. 화폐의 흐름이 마비된 것이다. 한국은 이런 상황에 대응할 만한 시스템이 없다. 부동산 시장이 풀릴 때까지는 무한한 불황과 고통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 가격이 더 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재인도 그랬다. 당연히 헛소리다.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그럴싸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도, 부동산 거래가 안 되는 이상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의 주머니로 돈이 들어갈 일은 거의 없다. 돈이 돌아야 누군가가 창업을 하고, 창업을 해야 일자리가 생기고, 일자리가 좀 있어야 노동자도 돈을 좀 쓰지 않겠는가. 이런 불경기에 창업을 하는 사람은 위인이거나 바보다.


 한편으로 도전적인 창업이 어려울수록 프랜차이즈가 흥하고, 프랜차이즈의 점주 등쳐먹기도 그만큼 심해진다. 상황이 이래서는 일자리가 생길 턱이 없다. 일자리가 없으니 영세 자영업이 늘어나고, 영세 자영업이 늘어나도 소비해줄 지갑 두꺼운 소비자가 없는데다 경쟁이 더 심해지니 다 같이 망한다. 부동산에 고여 있는 막대한 자금이 풀리고, 새로운 창업 붐이 일어날 정도가 되어야 이 극심한 불경기가 해결된다.


 전세값 오른다고 다들 난리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다. 물론 가끔 재산에 여유가 있어서, 여기에 더해 자비로운 마음으로 전세를 계속 싼 가격에 주는 집주인들도 있긴 있다. 그러나 전체 인구 중 돈에 여유있는 생불이 얼마나 되겠는가. 보통 집주인들도 그리 꼭 부자는 아니다. 또한 부자는 대체로 부자일 만 하니까 부자다. 돈 버는 센스가 없는 갑부는 거의 없다는 거다. 게다가 집주인이 있어야 세입자도 있는 게 아니겠는가.


 냉정하게 말해 부동산 가격이 안 오르면 전세는커녕 월세도 지금보다 훨씬 더 오른다. 그나마 지금은 아직 전세도 남아 있고, 미분양 아파트들도 있고, 부동산 시장 회복의 기대도 남아있기에 월세금액의 상승이 가파르지 않은 것이다. 만일 이런 상황이 더 지속되어 부동산 소유 모델이 본격적으로 수익형으로 변하게 되면, 월세는 크게 오르고 불경기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아직 임대인 입장에서 주택 임대차 수익은 채권 수익만도 못하다. (임대용 원룸형 주택 제외) 또한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현 주택 소유 중산층 가정이 늘어날수록, 다가구를 소유한 부동산 부자 수도 늘어나게 되어 있다. 어차피 서민은 본인 자본으로 집을 못산다. 그나마 가격이 오를 거라는 기대가 있어야 빚이라도 내서 사는 거다.


 박근혜가 취임 후 갑작스레 엄청난 세금을 거둬, 엄청난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경기를 살릴 거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런 식으로 경기를 회복시키려면 브라질이 하는 것처럼 기본소득이라도 줘야 할 거다. (한편으로 나는 소액 기본소득이 있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박근혜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박근혜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장기적인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을 개선하는 것 정도일 것이다.


 경기가 언제 풀릴까? 답은 간단하다. 부동산 가격 하락이 끝났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거래가 활성화되고, 가격이 완만하게 상승하기 시작하면 적어도 현재의 극단적인 돈맥경화는 해결된다. 물론 너무 가파르게 가격이 오르면 오히려 비유동자산인 부동산으로 막대한 자금이 흘러가서 경기가 죽는다. 그리고 부동산 문제가 해결된다고 모든 경기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부동산에 모든 통화가 고여 있는 한, 불경기가 나아질 일은 없다. 아예 사회주의 정권이라도 들어서면 모를까. 여하튼 부동산 종말론자들에게 속지 말자.



 뱀발. 노무현 정부 때는 부동산 가격상승 외에도 사교육에 엄청난 자금이 흘러들어갔다. 정확히 말해 둘은 연합하여 통화를 빨아들였다. 그로 인해 총 경제 규모는 성장했지만, 실질적 통화 흐름은 좋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는 노무현 때와는 달리 인구수의 감소로 총 학생 수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또한 사교육이 신분의 상승을 가져오는 효과 또한 가시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앞으로 사교육과 부동산의 가격 흐름은 기존과는 다른 양상이 될 것이라 전망할 수 있다. 한편으로 한국 부동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전망에 대한 글은 다음 기회에. 애초에 왜 노무현 때 부동산이 폭등했는지부터 이야기를 풀어야 한다. 알고 보면 정말 많은 게 IMF 탓이다.


(본문 업데이트 약 1시간 후 금액 부분 등의 오류를 발견하여 수정하였습니다.)


한국은 잘나가는데 왜 한국인은 가난할까?

경제 2013. 2. 8. 16:57 Posted by 해양장미


 한국은 잘나가는 나라다. 사실 요즘 한국인들은 만성적 불경기 때문에 잘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한국 경제는 근래에도 계속 눈부신 성장을 해 왔다. 그러나 한국은 부자일지언정 한국인은 가난하다. 문제는 이걸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거다.


 보수주의자들은 아직 1인당 GDP가 모자라서 그렇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물론 말 자체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현재 체감 상 적잖은 한국인들은 1인당 GDP가 현재의 반도 안 되었던 시절에 비해서도 못 산다. 경기는 계속 안 좋다.


 그렇다면 진보주의자들은? 각자 말이 다르지만 대체로 하는 이야기는 ‘분배 정책이 모자라서’ 그렇다고 주장한다. 경제민주화를 이루고 복지를 늘리면 해결이 된다는 거다. 그런데 그들의 구체적인 방안들을 계산해보면, 장기적인 계획의 현실성 및 총체적인 사태 파악에 대해 의구심이 들곤 한다. 일단 지난 대선의 문재인 경제공약부터 심각한 문제였다. 그래도 경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좋단다.


 한국 경제는 쉽게 이야기해 국내에 식민지를 가진, 재벌 위주의 현대적 중상주의 경제다. 중상주의는 본래 값싼 노동력과 반강제적 판매처를 제공해줄 식민지를 필요로 하는데, 한국은 바깥에 식민지를 만들 힘이 없었기 때문에 안에다 만들었다. 이 과정은 폭압적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국가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고, 적잖은 사람들이 성공적으로 자산을 가진 계층으로 올라섰다. 교육과 부동산에 대한 투자는 전국민적이었다.


 이 흐름은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안정적이었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 라는 면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좋았던 시기다. 그러나 IMF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간단히 말해 한국은 잘나가는데 한국인이 가난한 이유는, IMF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의 폐해가 아직도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보여주는 표를 보자. 2013년 2월 8일 현재 (장마감)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30개 상장회사의 주가 및 외국인 소유 지분 상황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외국인 비율이다. 주식이란 주식회사의 소유증권이며, 회사는 장기적으로는 회사의 이익과 손해를 주주에게 가급적 정직하게 반영하여 손익을 분배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 유수의 기업들을 소유한 자들 중 적잖은 비율이 외국인이라는 데 있다.


 한국은 사실 몇몇 잘나가는 대기업들을 빼면 그 경제 규모가 크게 줄어든다. 애초에 성장 과정에서 몰아주기식으로 대기업을 키웠고, 그 재벌들이 실질적 소유권을 지니고 책임경영을 하면서 국부를 쌓아온 것이다. 그런데 외환위기는 이 대기업들의 소유권을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들에게 나눠주는 방식의 개방을 가져왔다.


 외국인 소유 지분으로 보자면, 코스피 상위 30회사 중 삼성전자(우선주까지 포함)와 포스코, 신한지주, KB금융, NHN(네이버), KT&G, 삼성화재, 하나금융지주는 아예 한국인이 과반을 소유한 회사가 아니다. 외국인이 더 많은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 외국인이 40% 이상을 소유한 회사까지 이야기한다면 현대차(우선주들은 외국인들이 과반을 소유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SK텔레콤, S-Oil, KT, LG생활건강이 들어간다. 다들 한번쯤 들어본 거대 회사들이다. 기타 잘 알려진 코스피 200 내의 외국인 소유비율이 과반인 회사는 이마트, 코웨이, BS금융지주, 한라공조, DGB금융지주, 신세계, 쌍용차가 있다.


 이 회사들은 법인의 국적은 한국이지만 소유주는 외국인 비율이 더 높거나, 외국인이 상당히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장기적으로는 외국인 소유 지분 이상으로 나라 밖으로 빠져 나가게 된다. 특히 금융 회사들의 지분 구조는 한국인의 부의 축적에 있어서 잠재적인 악재다.


 그러나 이렇다고 해서 외국인 투자를 막는 게 딱히 좋은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투자금은 어쨌든 많이 들어올수록 유리하다. 사업을 할 때 투자금을 많이 확보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한국은 한국이 벌어들이는 부를 한국인이 충분히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순환출자라는 회계의 마법이 없었다면 경영권까지 빼앗긴 회사들이 많았을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순환출자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한 건 무지와 우격다짐의 결정체였다. 한국 혼자서 세계의 자본과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금융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 세력이 집권을 하면 큰 파국을 불러올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한국인이 더 부유해지려면 개개인이 더 많은 주식을 구매하여 장기 보유하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인의 개인 투자자들 (소위 개미들) 은 상당히 잦은 주식거래를 반복하며 돈을 많이 잃어주고 있다. 그들이 잃는 돈의 대부분은 보다 신중하고 장기적인 양상으로 돈을 투자하는 외국인들의 주머니로 향한다. 이들이 금융에서 돈을 벌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거의 빨대를 꼽고 단물을 빨아먹는 수준에 가깝다. 한편 한국의 투자기관들은 외국인과 경쟁하기엔 연기금을 제외하고는 실력이 모자라는 것 같다. 조직 문화 자체가 금융같이 바쁘게 돌아가는 산업에서는 너무 수직적이고 딱딱한데다, 창의성이나 도전정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국부의 유출’이 한국은 부유하지만 한국인이 가난한 근본적인 이유다. 그리고 이런 국부 유출의 기원은 IMF고, 나쁜 형태로 지속되는 이유는 제도보다는 한국인 개개인의 자질과 전반적인 문화적 결함, 그리고 순종적인 노동자와 공무원만을 길러내는 교육 탓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나마 국내에 남아 있는 국부 또한 제대로 분배되지 않고 있는 것은 맞다. 두 가지 문제가 공존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가난하고, 자산에 비해 실 구매력이 낮다. 그러나 분배 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국부가 대규모로 유출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소위 깨시민들의 인식 수준은 ‘나라가 망할 거다! 주가는 폭락할거다! 연기금이 주가를 떠받치고 있다!’ 정도에 머물러 있다. 한심할 뿐이다. 원래 주식이건 상품이건 쌀 때 사서 비싸게 팔아야 이득인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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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현대의 민주적인 정치 체계를 구성하는 기반 철학에는 크게 두 가지 축이 있다 할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공화주의이며, 그 중 하나는 자유주의이다. 그렇기에 현대의 이상적인 민주 국가는 ‘자유로운 민주 공화국’ 이라는 식의 표현이 적합하다 할 수 있다.


 이 중 공화주의를 쉽고 간결하게 정의하는 것은 어렵지만, 실질적으로 이 시대에 널리 받아들여지는 공화주의는 거의 공동체주의나 다름없다. 이 사고 체계는 근본적으로 사적인 것보다는 공적인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공적인 것의 부활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것이다. (이는 공화주의의 역사를 볼 때, 과거의 공화주의와는 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제목에 적은 공동체주의적 공화주의는, 마이클 샌델이 주장하는 내용과 동일하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런 사고방식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 점차 늘어나고 있는 자유와 상충되는 면이 있다. 자유주의는 개개인의 자유를 더 중시한다. 근현대의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공화와 자유라는 두 가지 이질적 요소가 접합된 형태일 수밖에 없고, 현실적으로는 두 가치가 충돌하고 타협하면서 사회를 형성해나간다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역사 자체와도 관련이 있다. 공화 없는 민주주의도, 자유 없는 민주주의도 존재할 수 없다. 근현대의 민주주의는 이 두 가지 이념이 혼재되는 과정에서 탄생하였고, 약간 대조적인 두 사상 사이에서 현실의 민주주의는 줄타기를 하면서 각각의 이익을 취하고 균형을 잡는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 현실 정치 담론의 주된 문제점 중 하나로 민주당을 비롯한 통칭 범야권 세력이 공동체주의적 공공선 이미지를 선점하고, 그 공공선을 도덕적인 면에서 강요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많은 경우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선이고, 그 반대라 할 수 있는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것은 악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그 선을 위한 정의의 사도로 나서 악당을 물리치고자 노력한다.


 물론 이런 시도가 잘 될 리가 없다. 민주당이 선거에서 이기는 빈도는 그리 높지가 않다. 평범한 사람을 악당으로 규정하려 드는 데 상대가 수긍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정의는 중요한 가치다. 그리고 충분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국의 기득권이 충분히 정의롭지 못하고, 민주당이 많은 경우 그래도 새누리당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심정적으로라도 정의롭다는 쪽으로 느슨하고도 암묵적인 동의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정의를 규정하는 것은 항상 신중할 필요가 있으며, 정의를 아는 것과 정의를 실행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걸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정의에 의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어 왔다. 적잖은 경우 내가 정의라고 믿는 사람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지극히 잔인한 언행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박근혜와 그 주변은 악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박근혜를 지지하는 모두가 악당은 아니다.


 적잖은 한국 사람들은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할 줄 모른다. 문화적으로 공동체 사회가 극히 최근까지 강하게 존속되어왔고, 각종 역사적 비극으로 인해 개인성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유에 대한 침해는 많은 경우 윤리적으로 규범화되어있기까지 하다. 오랜 기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자유와 개성은 악이었다. 자유로운 정신을 지닌 자들은 규범의 틀을 깨고 더 많은 자유를 향해 나아갈 필요가 있었다. 한편으로 한국 사회의 진보적인 입들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서글픔만을 이야기하면서, 한국에 애초에 모자랐던 자유주의의 전통과 역사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일단 힘들더라도 문재인을 찍었던 사람들은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의 자유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패배가 뼈아플지라도, 견딜 수 있다면 승자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라. 그것이 민주주의다. 상대를 욕하고 몰아붙이고 비난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그들 또한 하나의 선택을 했을 뿐이고, 그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법률과 철학으로 보호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이 취득한 정보와 각자의 입장, 그리고 사고방식은 문재인을 찍은 사람들과 다르다. 그리고 자유로운 민주 공화국 시민들은 반드시 공동체를 우선해야 할 의무는 없다. 공익을 위해 사익을 희생하라 강요하는 것은 충분히 민주적인 태도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공공선에 있어서는 그다지 로맨틱한 만족감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한편 실제로 대부분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평균적으로 의식이 더 많이 규범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많은 경우 민주당 지지자들은 문화적으로 적잖게 보수적이다.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보수주의자고, 새누리당은 친일 매국 세력이라는 주장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논지로 국민의 51%를 친일 매국 세력으로 규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51%은 무지하고 사욕에 가득 찬 세력으로 - 즉 한 단계 낮은 수위의 악당으로 - 규정되곤 한다.


 이런 행태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이기고 싶다면 의식을 바꿔야한다. 저런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지나치게 규범적이기에 사실 좀 반민주적이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공화 정치는 플라톤식 철인정치도 아니고, 유교식 왕도정치도 아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에 찬성하지 않았다. 유학자들도 찬성할 사람이 없었을 거다. 당신이 민주주의를 존중할 수 없다면, 스스로 민주주의자가 아님을 받아들이라. 민주주의는 유일하게 정의롭고 훌륭한 정치 체계는 아니다. 잘만 실현된다면 철인정치나 왕도정치가 더 나은 방식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적으로 이기고 싶다면 힘들더라도 닫힌 마음을 열고 새누리당 지지자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 SNS를 언팔로우하는 식으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들이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지를 알아내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소통이다. 나만 정의고,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설령 그게 진리의 기준에서는 맞다 해도 현실에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정치는 현실이다. 민주주의도 현실이다. 이걸 받아들이지 않는 도덕주의자들에게 승리는 찾아오지 않는다. 상대를 잘 알지 못하는데 어찌 상대를 이길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현실에선 격언처럼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야’ 이긴다. 그런데 민주당 지지자들은 새누리당 지지자들을 잘 모르지만,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민주당 지지자들을 제법 잘 안다. 그러니까 민주당은 이길 만한 싸움도 맨날 지는 거다.


 한편으로 공화와 공동체, 그리고 도덕 윤리를 강조하는 관점 자체는 항상 힘 있는 철학이긴 했다. 그러나 그런 태도 자체는 문화적으로 보수적이기 쉽다. 진보라는 제목을 달고 보수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는 모순을 해결할 필요가 있다. 또한 나는 한국 사람들은 항상 어떤 의미로든 한 발식이라도 전진하려는 진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의 국민들이다. 국민의 마음을 잡고자 한다면, 불안과 공포라는 대중 심리와 그로 인해 끊임없이 강요되는 진보성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대선 복기 첫 번째, 서론

정치 2013. 1. 23. 04:32 Posted by 해양장미

 개인적으로 정말 이런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상한 시대가 끝나면, 정치엔 관심을 반쯤 끊고 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집중하고 싶었다. 자꾸 시끄럽게 내 관심을 과도하게 불러일으키는 정치를 난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대선 막판에 들어선 후에야 결정하긴 했지만, 결국 문재인을 강하게 지지했던 한 사람으로 이번 결과에는 정말 큰 실망을 느낀다. 그러나 나의 개인적인 정치 성향이 문재인과 일치했던 것은 아니다. 근래 난 자유주의를 지지하게 되었고, 이번 대선 공약을 볼 때 나는 완전히 중도적인 입장에 가까웠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문화적인 부분은 문재인을, 경제적인 부분은 박근혜를 지지하는 면이 강했다.


 그에 앞서 난 5개월 전만 해도 박근혜 지지에 가까웠다. 박근혜가 마음에 들어서는 아니었고, 원래 내 생각이 민주주의란 정당을 기반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나는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제가 낫다고 생각하고, 정당과 의회가 주축이 되어 정치를 하는 게 민주주의 모델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이 면에서 나는 안철수는 일단 논외 대상에 가깝다 보았다. 인간 안철수에 대한 감정은 크게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지난 몇 년간 가장 강하게 지지했던 대권 후보는 손학규였다. 내가 판단하기에, 손학규는 대중적 인지도와 상대의 사악함을 파악하는 것 외엔 거의 모든 것을 다 갖춘 정치인이다. 그는 지난 5년간 쓰러져가는 민주당을 지탱해온 한 축이었고, 2011년엔 분당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기도 했었다. 임공이 없는 보궐선거에서 직장인들이 서둘러 퇴근해 몰표를 던져줘 이뤄낸 성과였다.


 그러나 손학규의 분당 대승리 이후 민주당은 다소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민주통합당이 되었고, 친노라는 과거의 망령 같은 존재들이 패권을 잡았다. 난 이 친노라는 세력을 기본적으로 곤혹스럽게 생각한다. 이는 과거의 내가 노무현을 좋아했고, 노무현을 찍었고, 노무현을 계속 지지했던 것과 별개인 것 같다. 노무현과 친노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친노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고, 친노가 대체 뭐냐는 말도 있지만 분명히 ‘친노’는 존재한다. 친노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99.99% 친노(또는 친노주의자)다.


 한명숙 체제의 총선 패배는 뼈아팠고, 충격이 오래 갔다. 야권 세력은 질 수 없는 총선을 거듭되는 실수로 대패했다. 그러나 친노는 그 후에도 충분한 반성이 없었다. 문재인은 친노들 특유의 수법에 의해 일사천리로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민주당 출신 대의원들은 경선이 한참 진행되는 와중에도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친노세력의 전가의 보도와도 같은 온라인 투표에서 완벽하게 문재인이 승리한 것이다. 친노는 노무현의 집권 때부터 항상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을 끌어들여 승리하는 경향이 있다.


 당시에 나에겐 문재인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의 애매한 경력도 문제였지만, 그는 순전히 친노에 의해 갑작스레 추대된 후보였다. 나조차도 그다지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그는 무명이었다. 당연히 대중적 인지도가 높을 리도 없었다. 또한 나는 유시민에게 상당히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유시민이 결국 거듭되는 자충수로 인해 차기대선후보 명단에서 이탈하게 되자 친노가 찾아낸 대안 카드가 문재인이라는 판단이 들었기에 좋게 보기가 어려웠다.


 어쨌든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난 ‘절대 친노는 뽑지 않는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에 민주당 경선에서 문재인이 승리한 것은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였다. 난 애초에 민주당의 경제정책이 마음에 드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손학규가 진 이상 박근혜로 깔끔하게 갈아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마 끝까지 박근혜로 갈아타버린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발끈하는 문재인 지지자가 많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제발 그러지 마시라. 내가 보기에 대부분의 문재인 지지자들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타인을 이해할 생각이 없다. 어이없는 재검표 이슈로 한 달을 까먹은 것도 사실 귀를 막아서 생기는 일이다.


 ‘친노주의자’들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타인을 인간적으로 좀 더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타인을 이해해줄 생각이 없는 진보는, 무늬만 진보다. 괴물이 되기 딱 알맞은 무늬진보.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짓을 하는 부류는 사이코패스와 자신이 옳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괴물이 되지 말라. 박근혜 지지자는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다. 선거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박근혜를 지지하려 했다가 그 지지를 철회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 정치적 관심이 통상적인 대중보다 높았다는 데 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대로 박근혜를 찍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박근혜는 가급적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높은 지지를 유지하고 있었고, 나 역시 어느 정도 유보적인 시각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과거의 박근혜라면 절대로 지지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문제는 그가 충분히 성장했느냐는 것이었다. 결론은 아니었고.


 박근혜가 왜 대통령의 자질이 부족한가에 대해서는 차후에 설명하도록 하고, 우선 나는 두 대안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안철수가 처음에는 나에게 더 많은 점수를 얻었다. 안철수의 ‘정치에 대한 무지’는 나에게 그를 선택하기 어렵게 했지만, 친노는 나에게 애초에 큰 페널티를 안고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나는 안철수 쪽의 공약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특히 경제적인 쪽에서 그랬다.


 일단 난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진보좌파’들은 경제적인 데 대해선 거의 기초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경제면에 있어 적잖은 그대들은 상대를 편향적이라 낙인찍으며 적잖이 편향된 정보를 주워 모으는 중이다. 부디 진보적이고도 위대한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이, 그리고 현재의 미합중국 민주당이 통화에 대해 어찌 이야기하고 행동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화라는 현상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난 통화와 통화량이라는 기초적인 경제학적 개념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진보좌파를 거의 본 적이 없다. 만일 문재인 후보와 문재인 캠프가 통화와 통화량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라도 있었다면 이번 대선에서 패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편으로 안철수는 진보이긴 하지만 좌파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비록 피상적이기는 하지만, 안철수가 문제를 이해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다만 나에게 그는 정치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인상을 지속적으로 주었고, 정치를 하기엔 너무 우유부단하다는 판단이 들게 행동하기도 했다. 또한 박근혜 후보에 대한 판단이 극단적으로 나빠진 게 대선 전 3개월 동안의 주된 인상 변화였고, 그러다보니 어떻게든 박근혜를 막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이 든 상황에서 안철수의 우유부단함은 그리 마음에 들긴 어려웠다.


 내 지지는 천천히 문재인으로 넘어갔지만, 그럼에도 내가 문재인을 지지하는 데는 나름대로의 용기가 필요했다. 우선 만일 내가 문재인과 경제면에서 방송 공개토론을 할 수 있었다면, 난 순식간에 문재인 후보를 바보로 만들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정도로 문재인 후보의 경제 공약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박근혜 후보가 충분히 똑똑하지 못했기에 문재인이 48%이 넘는 득표를 할 수 있었다 말해도 거짓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그나마 난 문재인 후보의 다른 면들을 좋게 생각했기에 문재인을 지지하게 되었다.


(부연하자면 문재인은 똑똑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경제 공부에 딱히 게으르지도 않다. 그러나 문재인은 내가 생각하기에 경제라는 면에서 가장 핵심적이라 할 수 있는 ‘탐욕’과 ‘불안’, 그리고 ‘금융’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심리적 요인들과 유동성은 사실 무엇보다도 경제를 강하게 움직이는 동력이다. 그 외 정치적으로 다소 편협한 관점에서 경제를 공부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건 좌파 세력의 전형적인 문제다. 문재인을 비롯한 친노와 좌파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천천히 이야기할 것이다.)


 어쨌든 박근혜 후보는 너무 심하게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나는 비록 내가 알거지가 되더라도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는 게 낫다고 생각했고, 한편으로 민주당이 그런 어이없는 경제 공약들을 제대로 실천하리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립서비스(?)로 낸 포퓰리즘 공약도 많은 것 같았지만, 애초에 그들은 그런 공약을 이행할 능력이 없기도 하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대다수가 나만큼 배짱이 두둑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공약 등을 살펴본 후 경제적인 이유로 문재인을 선택하지 않은 모두에 대해 적잖게 공감한다. 나는 그나마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다면 실질적으로 얻을 경제적 이익 또한 어느 정도는 있는 편이다. 이는 내 입장이 그런 것이고, 사실 한국의 중산층 중에선 나와 다른 특성을 가진 기득권을 지닌 사람이 더 많다. 또한 나는 나이가 그리 많지 않기에 재산을 잃더라도 재기하기가 쉬운 편이다. 그렇지만 나보다 나이가 꽤 많은 분들이라면 용감한 선택을 하기 쉬울 리가 없다.


 적잖은 사람들이 문재인 후보가 좀 더 정의로울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박근혜를 찍었다. 그러나 이를 비겁한 선택이라 단정 짓지 말라. 만일 문재인이 정의의 편이라 할지라도, 민주주의는 정의라는 단일 가치를 위한 제도가 아니고, 정의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라고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은 목숨 걸고 정의를 쫓지만, 어떤 사람은 아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건 비난은 좋지 못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정의는 중요한 여러 가지 가치 중 하나일 뿐이다. 적어도 그것만이 유일하고, 가장 앞서서 무엇보다도 숭배 받고 있는 가치는 아니다. 정의를 지키고 싶다면, 정의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현실 속에서 정의를 지키는 게 유리하도록 만드는 게 최선이다. 또한 현실 속에서 ‘정의’를 강조하는 사람은 대체로 가족과 동료들을 힘들게 하곤 한다. 사람들은 경험으로 그런 것들을 알고 있다. 정의를 중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감정적인 일이다.


 냉정하게 말해 문재인은 태생적으로 이기기 힘든 후보였다. 그리고 문재인 지지자들이 프레임을 정의로 맞추면서, 선거는 더 이기기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문재인 후보가 분전한 것은 그의 매력과 온라인 여론의 큰 우세, 야권 전체의 절박함, 그리고 박근혜 측의 실수 연발에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문재인 후보는 꼭 이겨야 할 선거를 졌다. 이기기 위해 했어야 할, 내가 제시할 수 있는 여러 언행 중 문재인 후보가 실행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 결과 충분히 이길 수 있고 이겨야 할 선거를 두 번 연속으로 졌다.


 개인적으로 박근혜 당선인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대통령은 결정되었고, 결국은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문재인을 지지했던 모두는 왜 졌는지에 대해 이성적으로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그러려면 여러 가지 감정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이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생긴다. 다음 선거는 불과 1년 반도 남지 않았다. 보궐 선거는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