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트 아머에 대한 오해와 이야기

인류 2017. 5. 26. 17:38 Posted by 해양장미


 요즘 시대에 안 맞게 기사단이 많이 보여서, 이런 이야기도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플레이트 아머는 보편적 인식보단 유니크 아이템으로 유럽사나 인류사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 물건입니다. 이런 분야를 재미있어 하실 분들도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전쟁은 안 하는 게 좋습니다만 실제로 많이 했고, 갑옷과 투구, 방패 같은 건 전쟁에서 꽤나 중요한 물건이었습니다. 사람의 맨살은 거의 털도 없고 가죽도 얇아서, 날붙이 같은 데 대단히 취약합니다. 실제 뭔가 작업할 때 목장갑 정도만 껴도 손이 다치는 정도가 확 줄어듭니다.

 



 그래서 전쟁에 나가는 사람들은 무언가 많이 걸칠수록 살아날 확률이 높았습니다. 두꺼운 털가죽을 뒤집어쓰거나, 천 옷이라도 두껍게 누빈 옷을 입는다거나. 이런 건 실제로 방어력이 제법 있어서 각기 생가죽 갑옷(하이드)이라거나, 누비갑옷(갬비슨, 퀄티드 아머) 같은 식으로 부르는 물건이 됩니다. 좀 더 본격적인 경우는 가죽을 무두질하고 파라핀, 밀랍에 삶아 강화한다거나 옻칠을 한 것으로 갑옷을 만들기도 했습니다만, 좋은 가죽은 귀한데다 들인 공에 비해 성능이 애매한 게 문제였지요. 비단도 꽤 방어력을 가진 소재이지만, 귀하고 비싸서 그런지 활용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강철로 갑옷을 만들면 방어력이 더 좋은 물건이 되기 때문에, 철을 다룰 수 있게 된 인류는 거의 어느 지역에서나 철로 갑옷을 해 입고 전투에 나서곤 했습니다.

 

 철제 갑옷은 제작방식에 따라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라멜라(찰갑/미늘갑옷), 라미너(판갑), 스케일(어린갑/비늘갑옷), 메일(쇄자갑/사슬갑옷), 플레이트 앤 메일(경번갑), 브리간딘(두정갑), 플레이트 아머(판금갑옷). 게임 좀 하신 분들은 웬만큼 들어보신 것들일 겁니다. 영어식 표현을 우선적으로 쓰는 건 보편적으로 그 쪽이 더 이해하기가 쉬워서입니다.


 

 하나하나 간단히 설명하자면, 라멜라는 찰갑 또는 미늘갑옷으로 불리는 것으로 작은 금속편이나 골편, 가죽편 같은 걸 끈으로 엮은 것입니다. 방어력도 있고 제작에 큰 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지역에서나 보편적으로 쓰였습니다만... 구조 상 유지보수가 매우 골치 아픕니다. 쓰다 보면 엮어놓은 게 계속 풀어지고 어디 공격받기라도 하면 손상되고, 겹친 부분에 녹이 스는 문제 등 때문에 반복적으로 해체 후 손질, 보수, 다시 엮기를 해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라미너는 고대에 쓰던 판 갑옷으로, 조금 큰 철판을 겹치듯 이은 형태입니다. 로마에서 쓰던 로리카 세그멘타타 같은 게 대표적이네요. 한반도에서도 쓰였고 전세계적으로 많이 쓰였습니다. 방어력은 있을 테지만 겹치는 부분이 많아 영 무겁고 불편했는지 중세 이후부터는 쓰지 않게 됩니다. 이 형태는 고대식이라 게임 같은 데도 잘 안 나옵니다.



 

 스케일은 라멜라와 혼동될 때가 많습니다. 한국어로 비늘갑옷이라 부르는데, 라멜라도 종종 비늘갑옷이라 부르기 때문입니다. 라멜라가 미늘끼리 끈으로 엮은 거라면 스케일은 단단한 비늘을 가죽 옷 같은 데 붙인 건데요. 방어력이 좋고 고대부터 근대까지, 거의 전세계에서 쓰던 갑옷 형태입니다만... 단점은 아무래도 보기보다 무겁다는 거였던 거 같습니다. 이 형태는 비늘이 겹친 구조가 잘 나와요. 보기엔 그럴싸하니 의장용으로는 곧잘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메일은 체인을 뜻합니다. 체인메일이라는 표현도 많이 씁니다만, 이는 후대의 표현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이 쓰였으며, 실제 중세의 기사들을 상징하는 갑옷 형태입니다. 플레이트를 입은 기사는 중세보다는 근대의 형태에요.



  이 방식은 장점이 워낙 많아서 현대에도 쓰입니다. 촘촘한 사슬을 선이 아니라 면으로 만들어놓은 형태라, 입어도 움직임에 별로 지장이 없습니다. 공기도 통하고요. 그러면서도 베이는 걸 효과적으로 막아주기 때문에, 현대에도 정육 작업이나 잠수부가 상어의 공격을 막는다거나 하는 데 쓰입니다. 또 라멜라정도는 아니지만 노동집약적인 방식이고 기술이 덜 발달해도 좋은 걸 만들 수 있습니다. 관리도 라멜라같은 것보다 훨씬 쉬워서, 녹이 슬면 전체적으로 모래 같은 데 넣어 벗겨내는 식으로 녹제거를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아예 스테인리스로 만들기도 하지만요. 고양이 키우는 분들한테도 유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메일은 구조적으로 사슬이 촘촘하고 이웃하는 고리의 수가 많을수록 방어력이 좋아지는데, 방어력을 높일수록 비싸고 무거워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도 촘촘할수록 화살 같은 걸 막는 성능이 올라가서 고성능 메일은 꽤 촘촘했던 것 같습니다.

 

 장점이 있는 만큼 단점도 꽤 분명한데, 움직이긴 편합니다만 메일을 입으면 하중이 어깨 쪽에 전부 걸립니다. 그리고 타격엔 전혀 방어력이 없다시피 합니다. 타격에 한정한다면 우리가 요즘 겨울에 입는 패딩만 못한 방어력이지요.

 

 메일이 유행하던 시기에 도검은 종종 큰 게 유용했습니다. 제대로 베이지 않더라도 후려갈기면 어쨌든 데미지가 들어가는 게 메일이니까요. 그나마 유럽 중세시대 땐 대부분의 기사들은 귀족이었고, 귀족은 죽이기보다는 포로로 잡아 몸값을 받는 게 이익이었으므로 메일만 입어도 목숨을 부지할 확률이 높아 많이 애용되었습니다만... 기사계급이 점차 기득권이 생기고, 교육수준이 올라가고 싸움을 안 하게 되면서 상황이 변하게 됩니다.

 

 플레이트 앤 메일과 브리간딘은 트랜지셔널 아머라고도 합니다. 과도기형 갑옷이라는 뜻인데, 이는 유럽에 한정하여 이 갑옷들이 메일과 플레이트 시대 중간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플레이트 아머는 거의 유럽에서만 썼던 방식으로, 다른 지역은 브리간딘 이상의 진화는 없었습니다. 물론 현대의 방탄복이나 방검복, 강화 외골격 같은 건 제외하고요.

 


 플레이트 앤 메일은 말 그대로 메일에 판금이 결합된 형태입니다. 이 형태는 타 지역과 유럽의 것이 좀 다른데, 유럽의 것은 메일 위에 각부의 판금을 부분부분 덧입어 방어력을 높인 형태입니다.



 대조적으로 타 지역의 것은 라멜라가 진화한 것처럼 보이는 형태가 많습니다. 라멜라의 미늘을 판금 느낌 좀 날 정도로 사이즈업 하고, 잇는 끈을 메일로 바꾸면 이렇게 됩니다. 고려나 조선에서도 경번갑이라 부르면서 많이 썼습니다. 이런 형태는 플레이티드 메일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보편적으로 합의된 표현인진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명칭들 사이에서 플레이트 메일이라는 잘못된 표현 또는 오해도 등장했습니다. 실제론 플레이트 앤 메일과 플레이트 아머는 좀 다른 겁니다. 플레이트 아머는 거의 전신이 판금이며, 움직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부분만 메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풀 플레이트라는 표현도 씁니다.

 



 브리간딘은 유럽지역이 아닌 지역,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갑옷의 최종진화형태였습니다. 이 형태는 가죽이나 직물로 된 천에 라멜라보다 큰 철판들을 리벳()으로 고정시킨 것인데, 이렇게 만들면 충격을 받아도 철판들의 연결이 잘 끊어지지 않습니다. 방어력이 좋은데 유지보수도 쉬웠습니다. 조선에선 두정갑이라 불렀지요. 우리 조상들이 제법 많이 썼음에도 어째 현대엔 잘 알려지지 않은 유형입니다. 유럽에선 많이 안 썼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브리간딘은 그냥 가죽옷이나 비단옷에 정이 박혀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들기에 따라선 거의 갑옷처럼 안 보이기도 합니다. 안쪽은 다 철판이지만요. 이런 외형은 갑주에 대한 기억이 많이 잊혀졌던 20세기 중후반기만 해도 많은 오해를 낳았습니다. 가장 흔한 오해가 브리간딘을 징 박힌 가죽갑옷으로 오해한다거나, 아예 아시아 군인들은 갑옷을 잘 챙겨 입지 않은 걸로 오해한 것입니다. 이 오해 속에서 나온 것 중 D&D룰에 나오는 스터디드 레더 아머라는, 가죽에 징을 박아 방어력을 높였다는 게 있습니다만, 실제론 그런 거 없었습니다. 브리간딘을 오해한 거예요. 그렇지만 요즘 게임에도 그 이상한 가죽 갑옷은 종종 등장합니다. 가죽에 징만 박는다고 그다지 나아질 건 없을 텐데요. 그리고 우리나라 사극에서 조선 군인들은 아직도 갑옷을 잘 안 챙깁니다...

 

 어쨌든 브리간딘은 거의 단점이 없는 갑옷이었으니까 웬만해선 이거보다 갑옷이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유럽만 예외였지요. 모두가 알다시피, 유럽엔 전신을 감싸는 플레이트 아머가 등장합니다.


 

 플레이트 아머는 무겁고 둔하다는 흔한 오해와는 달리 입은 상태에선 단점이 거의 없습니다. 입고 체조건 구르기건 달리기건 다 할 수 있습니다. 보기엔 무거워 보입니다만, 실제 철판이 그다지 두꺼운 건 아니고, 통판 특성상 하중이 분산되기 때문에 오히려 철 조각들이 겹치는 스케일 같은 것보다 무겁지도 않고 메일처럼 어깨에만 하중이 걸리지도 않습니다.

 

 방어력도 다른 갑옷보다 아무래도 높았는데, 통 철판이라 냉병기론 데미지가 잘 안 들어갔습니다. 물론 꿰뚫는 게 불가능하진 않고 강하게 때리면 안쪽으로 충격이 들어가긴 합니다만, 플레이트는 정타가 잘 안 들어가도록 여기저기 각이 져있어서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당연하리만큼 플레이트에 데미지를 주는 공격법이나 냉병기도 발달하긴 했습니다만... 너무 많은 훈련과 재능이 필요했습니다.

 

 일단 왜 유럽에서만 플레이트 아머가 발달했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플레이트의 발달 요인 중 하나는 유럽 중세사회의 봉건제에 있습니다. 기사와 기사단, 용병단 위주의 형식과 문화를 지니고 있었던 유럽 군대는 다른 유라시아 지역 군대에 비해 아무래도 소수정예 엘리트 무장집단에 가까웠고, 그러다보니 개개인의 무장 수준이 높았습니다. 대조적으로 징병을 일상적으로 하거나 모든 남성이 전사에 가까웠던 아시아 군대는 각각의 무장 수준은 낮았지요. 쉽게 이야기하면 숫자냐 정예화냐의 차이입니다.

 

 정예화된 유럽 기사들은 랜스의 발달과 함께 마상 돌격을 많이 활용했고, 그러다보니 더 갑옷이 발달했습니다. 플레이트는 투구 다음 무릎, 정강이 부분부터 발달했고 이는 말에 탄 상태에서 다리를 공격당하는 걸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플레이트가 발달하게 된 데는 또 다른 요건들도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흑사병이었습니다. 유럽은 흑사병으로 인구가 많이 줄어들었는데, 그 결과 제조업이 노동집약적인 것보다는 숙련자에 의한 것으로 발달하였습니다. 갑옷 중에 라멜라나 메일은 노동집약적인 것입니다. 대조적으로 플레이트는 숙련된 장인이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또 유럽에선 시장경제가 비교적 일찍 활성화되었는데, 이는 유럽 중세사회에서 도시들이 독립적이었던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인력의 감소로 인해 발달한 도제 시스템과 상공업자들의 공간이었던 도시가, 엘리트 위주의 군대 문화와 맞물려 만들어낸 게 플레이트 아머입니다. 유럽에서만 플레이트가 등장하게 된 덴 이런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대조적으로 다른 지역의 갑옷은 노동력 문제가 덜했고 도시, 상업이 덜 발달했으므로, 메일이 좀 더 촘촘해진다거나 아니면 브리간딘의 외피가 더욱 화려해지는 식으로 발달합니다. 메일이나 브리간딘이 꼭 플레이트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갑옷은 아니기도 합니다. 사람이 쓰는 물건이다보니 입은 상태에서의 방어력이 전부는 아니거든요.

 

 플레이트 아머엔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입고 벗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구조적으로 혼자선 입고 벗는 게 좀 어렵습니다. 입은 상태에선 화장실 문제도 해결이 안 됩니다. 그래서 더더욱 플레이트는 엘리트 기사 위주였던 유럽 사회에서 잘 통용될 수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종자 없이 입고 벗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만,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리고 기사들은 플레이트를 입은 상태에서 화장실 갈 일이 생기면... 보통 그냥 입은 채로 배설하였습니다. 그 결과물을 해결하는 건 종자의 몫이었지요.

 

 아시아 전쟁사에 등장하는 것처럼 장수가 갑옷을 입은 채로 잔다거나... 밤에 기습을 받았는데 갑옷을 걸쳐 입고 뛰어나간다거나 하는 게 플레이트로는 거의 안 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대조적으로 브리간딘은 안쪽이 철판인 코트 같은 거라 기습 받아도 바로 걸쳐 입을 수 있었지요.

 

 그래도 플레이트는 방어력이 좋아도 너무 좋았습니다. 냉병기로 플레이트를 상대하려는 시도도 많았습니다만, 그보단 화기가 빨리 발달합니다. 위에 이야기했듯 검이나 철퇴, 해머 들고 플레이트 입은 기사를 상대하려면 많은 숙련에 더해 재능까지 필요했으나, 화기는 아무나 다뤄도 기사를 이길 수 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플레이트 아머의 발달은 총기의 발달을 초래하였고, 성능이 영 좋지 않던 전근대 총기를 다루는 전략전술도 발달시켰습니다. 유럽 군대는 계속 강해졌고, 결국 다른 지역을 본격적으로 침공해 점령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집니다.

  

 플레이트 아머의 발달 이전까지 유럽과 다른 지역의 군사적 역량 차는 별로 없었습니다. 오히려 많이 졌지요. 자주 싸웠던 중동, 이슬람 세력은 물론 칭기즈칸의 손자, 킵차크 초대 칸 바투가 폴란드를 정복했을 때만 봐도요.



 그 때 참전한 기사단 중 유명한 기사단으로 소위 튜튼기사단으로 불리는 예루살렘의 성모마리아의 도이첸(독일) 형제회가 있었습니다. 1190년 경 현 이스라엘 아코 시에 세워진 야전 병원에서 시작되어 1808년 나폴레옹에 의해 해체되었다가 다시 부활하여 명예 가톨릭 단체로 아직도 남아있는 단체인데요. 여튼 그 땐 튜튼기사단이 졌습니다. 그림에도 표현되지만, 1241년이라 플레이트가 아닌 메일 입던 시기였어요. 이 때 고려에선 최충헌의 아들 최우가 집권하던 때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보편적 의미에서의 중세 땐 플레이트 아머가 없었어요.

 

 기록상 플레이트 아머가 최초로 등장하는 시기는 1410년입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중세라기보단 르네상스 시기(시각에 따라선 르네상스를 중세말로 보기도 합니다만), 이 때 한반도는 조선 태종 이방원 집권기였습니다. 즉 플레이트 아머는 흑사병 이후의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지게 된 것으로, 근대의 태동기에 등장하여 근대사 발전과 그림자에 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물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총기의 시대에 플레이트 아머는 점차 각 부분이 줄어들고 흉갑만 남다 사라져 현대의 방탄복으로 교체됩니다. 근래는 전국민이 징병되고 군용 방어복이 비교적 중시되지 않는 시기였습니다만, 점차 징병제가 사라지면서 그런 추세도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스타크래프트의 마린이 입는 것 같은 전투복이 개발중이다보니 나중엔 정예 군인들이 그런 걸 입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전쟁은 기사단이 하는 것으로 돌아가겠지요. 근현대의 시민 평등을 만든 건 총기였습니다. 죽창이 아니라 총 앞에서 만인은 평등했으니까요. 총을 막아낼 수 있는 강화 외골격이 보편화되면 평등은 사라질 확률이 꽤 있습니다.


달님 집권 2주차 이야기

정치 2017. 5. 25. 01:00 Posted by 해양장미

 달님이 집권한지 2주째에 접어들었습니다. 허니가 강력한 비토층을 안고 시작했던 반면 달님은 현재까지는 그런 게 없어 보입니다. 달님은 2MB처럼 일방적으로 승리했고, 당선 후 인기가 더 올라갔다고 파악합니다.

 

 불안요소나 부정적인 면들을 배제하고 이야기한다면, 달님은 현재 옛날 김영삼 정권이 생각될 정도로 일방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김영삼이 3당합당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집권 이후 최초의 문민정부로 많은 인기를 누렸듯, 지금 달님도 그런 것 같습니다.

 

 내용과 무관하게 높은 기대와 인기는 그 자체로도 사회에 영향을 줍니다. 같은 현상이 일어나도 시민들은 정서에 따라 현상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곤 합니다. 지난 정부의 대죄는 이번 정부의 작은 미덕마저 크게 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비판을 불허하는 열광에 불안요소와 위험이 있음은 굳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언젠가 모두가 그 대가를 치러야겠지요. 그러나 모처럼 정부 인기가 좋은 건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정부에 보다 신뢰를 느끼고 행복감을 가지기 쉽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입니다. 2MB나 허니는 못했던 거지요. 이는 정치성향의 문제 이상으로 퍼포먼스의 문제가 큽니다. 정치인에게 퍼포먼스는 필요한 것이며, 민주정에서 대표자가 시민의 마음을 얻는 건 중요합니다. 이 면에서 나는 2MB나 허니를 다시 한 번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가진 리소스를 잘 활용하지도 못했고, 쓸데없는 데 힘을 빼면서 민심을 잃었습니다.

 

 한편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진심으로는 불안을 느낍니다만 부정적인 예견을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입이 방정이라거나, 괜히 재수 없는 소리를 하지 말라거나, 그런 게 있으니까요. 다만 원론적으로 견제 없는 개혁성향의 권력은 꽤 불안한 것이며, 시민들이 견제를 불허하는 상황은 더더욱 위험하다는 말 정도는 해야겠습니다.

 

 빠른 자동차에는 좋은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브레이크가 좋은 차가 더 빨리 달릴 수 있습니다. 만약 브레이크가 나쁜데 엔진만 좋은 차가 있다면, 그런 차로 빨리 달리는 건 매우 고난이도인 동시에 아주 위험한 행위가 됩니다.

 

 달님 정권도 브레이크는 필요합니다. 달님이 매력적이건 좋은 정치인이건 간에 상관없이 말이지요. 달님이 달려야 하는 길은 험난하고 구불구불합니다. 빨리 달리라고 등 떠밀어봐야 사고만 나기 십상입니다. 적어도 김영삼 정부와 같은 마무리는 없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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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적 문제

정치 2017. 5. 17. 13:48 Posted by 해양장미

 달님께서 간소하게 즉위하신 후 휘하 기사단이 폴암과 플레일을 들고 이단심판에 성실한 이 초생의 시기에, 그분들의 말과 행동 사이엔 어쩔 수 없는 차이가 있기에 그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강력한 개혁을 어느 한 쪽의 의지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매우 강한 권력이 필요하며, 이는 반대자들과 신중론자들을 꺾기 위함입니다. 즉 본질적으로 개혁은 보다 덜 온화한 행위로, 통상적 인식에서 민주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일수록 강력한 개혁을 해내기란 어렵습니다.

 

 민주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과거엔 민주적 방향으로의 개혁을 주장했기에 말과 행동이 일치할 수 있었습니다. 민주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민주적인 방향으로 가는 것 자체를 개혁이라 한다면, 보편적 인식 아래의 민주적인 방식으로도 그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민주적 방식. 즉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각자의 의견을 존중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도 가능한 합의를 통하는 방식으로는 그 외의 정치적 개혁을 서두를 수가 없습니다.

 

 민주정이 자리 잡힌 시점에서, 민주적 성향과 개혁성향은 정치적으로는 같이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합니다. 이 현상은 민주적 성향이라는 표현 자체에 다소의 오류가 있는 것과 연관이 있다 싶은데, 민주정은 하나의 정치체제일 뿐,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 자체를 민주적이라 표현하는 것은 사실 부정확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언어를 인위적으로 고칠 필요는 없다 생각하며, 보편적 관점에서 민주적인 것은 온건함과 맞닿아있다는 것이 보다 잘 알려졌으면 합니다.

 

 달님과 그 휘하는 투사의 모습이기에 낮은 곳으로 내려가 친근하게 대할 수는 있어도, 보편적 의미에서 민주적일 수는 없습니다. 그는 온화한 얼굴의 정복자이며, 시민들과 함께 선 자리에서 스스로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패권을 휘둘러야 하는 분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합리적이며, 폴암과 플레일을 든 기사단원들도 합리적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역할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건 그들에게 있어 사소한 문제입니다. 그들은 그믐이 되고 삭이 오기 전에 많은 걸 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그들은 스스로를 표현합니다. 밤은 아직 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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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혐오의 시대, 개막

사회 2017. 5. 16. 17:58 Posted by 해양장미

 개인적으로 근 10년 동안 사회적인 분노와 혐오가 증가해왔다고 생각합니다. 한 땐 그게 정치적인 우경화 현상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가설을 세웠습니다만, 우파가 아닌 계열에서 본격적인 혐오조장을 하는 것을 확인한 이후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었습니다.

 

 근래 EBS에서 까칠남녀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다고 들었습니다. 직접 보진 않았습니다만, 스크린샷이나 평가 등을 볼 때 래디컬 페미니즘의 입김이 듬뿍 들어간 방송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예전부터 EBS에 문제 많다는 주장을 해왔으나 미지근한 반응을 얻었던 입장에선, 현재의 뜨거운 반응에 조금 쓴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만, 적폐청산을 외치던 달님이 당선되고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그에 비교적 가까운 방송사 계열에 래디컬들이 많다는 걸 아는 입장에선 미래도 어느 정도 예상하게 됩니다. 물론 홍준표가 당선되었더라도 그다지 나을 건 없었을 겁니다.

 

 나는 앞으로의 시대가 분노와 혐오로 물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한국뿐만의 일은 아닙니다. 그런 움직임을 막을 필요가 있다 생각해왔습니다만, 개인이 시대적인 흐름을 어찌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흐름이 예상된다면 그에 맞춰 대응하는 게 최선이겠지요. 이에 감상적이 될 여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원인을 생각하다보니 3차 산업혁명에 생각이 닿았습니다. 4차 이야기가 나오는데 웬 3차냐 싶은 분들도 있겠으나, 3차 산업혁명이 우리의 통상적 인지보다 삶의 모습을 많이 바꾼 것은 사실입니다. 3차 산업혁명은 좋은 의미로건 나쁜 의미로건 우리 모두에게 다소의 공간적 자유를 부여하였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과 굳이 부대끼는 걸 덜하게 해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변화는 우리가 타인에 대한 분노와 혐오를 인내하는 능력을 덜하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타인을 실제 접하는 상황에 대한 모두의 평균적 역치가 낮아져서, 보다 쉽게 타인에게 분노하거나 혐오감을 드러낼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우리는 진화적으로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감정 및 감각 체계는 매우 예전의 것에서 무척 더디게 발달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변화는 일어나고 있고, 결과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구시대적 종교는 힘이 약해졌고, 더 이상 사람들을 이끌지 못합니다. 철학은 말장난처럼 여겨지고 있고, 실제로 그러한 영역이 많으며, 아노미는 일상화되었습니다.

 

 증오와 분노의 시대가 어떻게 흘러갈진 알 수 없습니다. 뭘 어떻게 해볼 방법도 없습니다. 여러 정치세력이 서로 분노를 부추기고 증오하도록 하니 정치적 탈출구도 거의 없습니다. 다 잘될 거라고 행복회로 돌리면서 증오나 분노에 휘말리지 않는 게 각자의 최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로 정치인 안희정

정치 2017. 5. 11. 12:42 Posted by 해양장미




 이 장면은 훗날 교과서에 실릴지도 모릅니다.

 

 한 순간에 친문세력과의 화해 + 양념 면역 획득 경선 경쟁자를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대인배 이미지 획득 이슈였던 민주당 LGBT 문제의 개선 가능성 표출 + 음주로 인한 친근한 서민 이미지 + 아마도 예상되는 부녀자들의 지지 + 국제적 명성을 획득하였습니다. 각종 외신의 기사 1면에 안희정이 정중앙에 실렸습니다.

 

 이미 선의 발언 등으로 타당에서도 그나마 괜찮다 보는 편으로 현재 그와 같은 위치에 오른 정치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안희정은 직업 정치인으로 하나의 행동이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 보여줬습니다. 이런 큰 기술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역시 제가 한 표 던진 프로답습니다.

 

 다만 안희정에 대해 조금 진지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는 청사진이 없어요. 도지사는 행정가로 충분하지만 더 올라가려면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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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을 맞이하며

정치 2017. 5. 10. 00:06 Posted by 해양장미

 포스터가 나온 날, 문재인이 대통령이 될 걸로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안철수에게 표를 주기로 결심하였으나 안철수를 응원할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가 정치인으로 재능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고, 더 실망할 것도 없을 정도로 기대치가 낮았지만...

 

 그럼에도 그 포스터와 토론에서의 모습은 제 상상을 넘어서고 있었고, 그에 대해 아무 말 안 하는 게 개인적인 그에 대한 최선의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내가 뭐라도 말했다면 안철수에 대한 비판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대선 기간 내내 말을 아꼈습니다. 

 

 대조적으로 문재인은 대통령의 모습으로 선거운동에 나섰습니다. 선거라는 건 보편적 인식보다 보통은 그다지 이성적인 행위가 못 됩니다. 나 같은 고관심 부동층에 한정한다면 모를까, 일반론으로 보자면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면에서 지지를 얻어야 이깁니다. 문재인은 지도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안철수는 약자의 자세였습니다. 그렇기에 문재인이 이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만...

 

 개인적으로 그걸 받아들이긴 싫었고 결과는 끝까지 모른다고 행복회로를 돌리기로 다짐하였고, 최선을 다해 돌려봤으나 잘 안됐습니다.

 

 그리고 나는 민주정 지지자이기에 결과를 받아들입니다. 당선되는 순간 문재인은 내 조국의 대통령이고 대표자입니다. 그가 나에게 큰 손해를 끼치고 설령 위험을 가져오더라도, 그가 대통령으로 가진 합당한 권한은 존중합니다. 민주정을 지지한다는 건 내가 반대하는 정치인도 대표자로 수용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안철수가 개인의 자질과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훨씬 나은 선택이 될 걸로 판단했습니다만, 이는 복잡한 정세계산에 의한 것이기에 타인을 설득할 만한 게 될 수 없었습니다. 안철수는 대통령으로 자질이 부족하였고, 그를 한때 지지하려 했던 사람들도 많이 돌아서게 만들었습니다. 문재인을 찍지 말라는 말 같은 건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더 나은 대안을 한두 마디로 알려줄 수 있어야 영업이 되거든요.

 

 이제 나는 문재인에 대해 가능한 비관하지 않고, 그가 잘할 수 있을 거라 행복회로를 돌리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에 대해 비관하니 도저히 정신적으로 감당이 안 됩니다. 앞으로 달님에 대한 이야기는 행복회로 풀가동이 적용된 것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아직 개표가 끝나진 않았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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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를 보내며

정치 2017. 5. 9. 15:09 Posted by 해양장미

 나는 지난 2012, 문재인에게 투표하였습니다. 박근혜는 대통령의 자질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 나는 문재인에 대해 영업을 할 수 없었습니다. 박근혜를 찍지 않아야 할 이유는 수없이 말할 수 있었지만, 문재인을 찍어야 할 이유를 말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문재인에게 긍정적인 면은 별로 없었으니까요.

 

 이후 문재인의 행보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결코 좋게 볼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찍었으나, 그가 대통령이 되지 않아 다행이었다 싶을 정도였지요. 박근혜는 음... 일을 안 하고 나서지도 않아서 다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5년 전의 새누리당은 유능했고, 나쁘지 않은 정책을 만들고 펼칠 수 있었고, 박근혜가 방해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는 정부를 무난하게 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건 내가 보기엔 과격하고 현실파악 못하는데다 무책임에 말바꾸기를 일삼는 민주당보다 확률적으로 나은 것이었지요.

 

 그러나 박근혜라는 인물은 오래 못 가 바닥을 드러내며, 아무리 대통령으로 존중을 하려 해도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나설수록 정부는 혼란스러워졌고, 모순된 정책을 동시에 펼친다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권력투쟁에만 매달리다 큰 치부를 드러냈지요. 현 시점에서 한국 역사상 박근혜보다 못한 대통령은 이승만과 윤보선 정도일 겁니다.

 

 이제 새 정부의 출범이 시작되기 직전입니다. 부디 다음 정부는 박근혜정부의 실패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 바랍니다. 나는 다음 정부가 박근혜정부보다는 잘할 거라 안심하지 않습니다. 이승만을 몰아낸 후 장면 정부는 무능하였고, 군사정부를 끝낸 김영삼 정부는 외환위기를 초래하였습니다. 개혁은 필요한 것이지만 어렵고 또 위험한 행위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번 대선후보들에 대해 그다지 좋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영업을 못했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나는 진심으로 그를 응원하는 동시에 비판하고 견제할 것입니다. 특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그에게 맹목적으로 힘을 실어주려는 움직임이 거셀 것입니다. 난 그런 게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지저분하며 추악하기에 열광하거나 진심으로 좋아할 만한 게 못 됩니다. 걱정은 많습니다만, 어쨌든 일단 새 정부를 환영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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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했습니다.

정치 2017. 5. 4. 13:36 Posted by 해양장미

 본래 찍으려 했던 후보에게 투표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찍은 후보 쪽에 표를 준 건 처음이네요. 결과적으로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참여했던 모든 투표에서 모두 다른 쪽에 투표를 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꽤나 스윙보터인 것 같습니다.

 

 결과가 나온 후에 해야 할 말이 많습니다만, 이번 선거에서도 나는 내가 찍은 후보에 대해 영업하지 못했습니다. 세일즈를 하려면 그럴 만한 포지시브함이 단순명료하고 짧으면서도 강력하게 정의되어야 합니다. 정치적 발언을 길게 할 수 있는 대상은 지극히 한정적입니다. 그리고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후보 쪽에서 해줘야 합니다. 내가 구매한 상품이 꼭 팔 만한 상품인 건 아닙니다.

 

 정치에서 무언가 희망을 보고 싶은 건 모두의 바람일 겁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나는 희망을 볼 수 없었습니다. 누가 더 나은 미래로 갈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에 적합한지를 관찰할 수 있을 뿐이었지요.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겐 어떤 후보가 희망일 겁니다. 나는 그 열기에 전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지만, 이 우려스러운 상황 또한 현재 처한 정치적 현실의 한 단면이겠지요.

 

 사전투표는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게 좋습니다. 나는 대도시에 거주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하고 있었지만 줄을 설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참관인들이 많았는데 투표소는 개방되어 있었고, 투표용지는 여전히 한 번 접는 정도로는 비쳐서,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게 조심스레 투표함에 넣었습니다. 이번 선거는 별 말 안 나오도록 깔끔하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나는 비판적인 입장이 될 테고, 정책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입니다. 어쨌든 준 무정부 상태도 곧 끝납니다. 대통령이 탄핵되는 역사적 비극도 일단락되기 직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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