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회는 9월 1일부터 정기국회를 가진다. 그 기간은 100일이며, 원칙적으로는 국회의 가장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자리다. 그런데 이제 마무리를 앞둔 2013년 올해의 정기국회는 어땠을까?


 현재 국회에 올라가 계류되어있는 법안은 약 6000개다. 그런데 이 중 올해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은? 실질적으로 0개다. 명목상 15개인데, 이 15개는 모두 발의 철회된 거라 실제로 하나도 통과된 게 없다. 이게 2013년 정치의 현주소이다.


 이렇게 된 주책임은 당연히 민주당에게 있다. 민주당은 일단 첫 한 달 동안 국회엔 나가지도 않고 시위만 했고, 그 다음에도 걸핏하면 보이콧하면서 국회 일 자체를 제대로 안 했다. 지금은 마무리지어야 할 내년 예산안 심의까지 보이콧하고 있다.


 저 6000개의 법안 중에는 물론 바람직하지 못한 것도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삶과 밀접한 법안이 정말 많다. 논의 자체도 거의 필요 없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서, 저 계류 법안 중에는 아동폭력 당사자들을 좀 더 효율적으로 구제해 줄 수 있는 개정안도 있다. 민주주의 법치 국가에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효율적인 방법은, 법안을 개정하거나 신설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국회의원의 권한이 큰 것이고, 국회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대선불복 시위로 국정은 뒷전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받고 있다.


 이런 것들은 통치의 부재로 이어진다. 국가는 문제의 해결사 또는 조정자로 기능해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국가는 불편한 통제자로 전락해 버리기 쉽다. 이는 곧 정부실패이며, 동시에 민주주의의 실패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절대선이 아니다. 잘 작동되는 민주주의는 지금껏 인류가 가졌던 어떤 제도보다도 좋은 제도이지만, 지금 한국처럼 작동이 멈춘 민주주의는 잘 작동되는 군주정만 못하다. 이런 식으로 민주주의가 실패할 때 시민들은 더 강한 지도자, 즉 일종의 구원자를 원하게 되며 정치를 혐오하게 되기도, 파쇼화되기도 쉬워진다. 민주당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부르짖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민주주의를 적극적이고도 확실하게 망가뜨리고 있다.


 시민들이 보내는 경고는 조용하지만 분명하다. 지난달에는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 지지율이 10% 밑으로 떨어지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 정도 지지율이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돌아섰고, 심지어 호남도 좀 돌아섰다는 게 된다. 철학도 비전도 없고 심지어 자기 밥그릇도 못 챙기는 못난 정당의 말로를 보고 있는 셈이라 할 수 있지만, 그 피해를 고스란히 국민이 함께 받고 있기도 하다.


 물론 국회선진화법 같은 악법을 상정하고 통과시킨 새누리당에게도 부수적인 책임은 있다. 아마 그 때 국회선진화법 주도했던 인물들은 지금쯤 백 번도 더 반성했을 거다. 앞으로도 평생 반성하길 기대한다.


 야당이 시위하면서 국회를 계속 파행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건 그냥 통치의 부재이자 민주주의의 실패, 그리고 정부실패일 뿐이다. 이런 기간이 길어질수록, 시민들은 정치에 실망하고 더더욱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한국엔 현재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이 없다. 이는 국회에 대통령 탄핵권이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이런 기간이 길어진다면, 시민들은 점점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이 부여되길 원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 군사정권 때는 국회해산권이 있었는데, 87체제에선 없다. 그렇지만 지금 한국 상황은 국회해산권이 있는 다른 나라라면 국회해산권이 사용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국회가 해산될 만한 근거가 충분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파행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회해산권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나는 현 시점에서 국회해산권의 찬반을 국민들에게 묻는다면, 그 결과는 아마도 반반일 거라 예상한다. 민주당의 국회파행이 국민들에게 그만큼 큰 고통을 주고 있다.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광신적인 깨시민과 일부 좌익들을 제외하면 현재와 같이 파탄된 정국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박근혜의 지지율이 줄곧 과반인 것과, 화통하지 못한 안철수가 어느 정도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