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민주당은 뒤늦게야 대선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리 큰 부담 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웬걸, 어지간한 페이퍼북 2권 분량에 해당하는 엄청난 분량이었다. 결국 보기 시작한 죄로 읽는 데 적잖은 시간을 쓰고 말았다. 그러나 그에 비해 얻은 수확이 크다고는 할 수 없겠다.
보고서는 어느 정도 이상 잘 알려진 민주당의 문제점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고 증명하는 데 대부분의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고 느꼈다. 무엇보다도 친노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건 민주답 입장에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할 수밖에 없지만 나에게는 그런 부분 자체를 읽을 가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단 좀 더 디테일하게 친노가 지난 대선을 어떻게 말아먹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은 있었다.
지난 대선에서 불거진 가장 큰 문제는 친노의 권력욕에는 뒤가 없었다는 것이다. 당내 사투에서 이겨서 대선후보까지 배출하느냐, 아니면 그대로 계파 자체가 사멸하느냐의 양자택일 하에 있었다. 이것은 친노가 기본적으로 정상적인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 친노는 민주당 내 비노와 안철수의 힘을 온전히 흡수할 수 없게 된다. 본 보고서는 이 점을 어느 정도 이상 증명해주고 있었다. 결국 지난 대선은 융합으로 인한 시너지를 만들기보다는 친노가 라이벌들을 하나하나 꺾는 모습에 가까웠고, 그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는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 보고서의 한계는 여기까지였다. 보고서는 민주당의 좌클릭에 대해 별 문제가 없다는 식의 결론을 내고 있다. 공약의 세부적인 면은 박근혜 후보보다 나았다는 자평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것은 단순히 보고서 작성자들이 주관적으로 뽑은 이야기가 아니고, 민주당 내부 인사에게 설문 조사를 한 것이기에 좀 더 골치가 아픈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양당제 형태의 자본주의 VS 사회주의의 대결에서는 사회주의가 승리할 수가 없다. 박근혜 후보가 승리한 것은 양쪽 다 확실하게 잡으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즉 우파들은 박근혜 외엔 어차피 현실적인 선택사항이 없었고, 박근혜의 좌클릭은 스펙트럼 포용범위를 넓힌 셈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민주당의 좌클릭은 그렇지가 않다.
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 자영업자와 저소득 노동자, 그리고 40대 중반 이상 계층에게 지지를 받지 못했다. 또한 동시에 부유한 사람에게도 지지를 못 받았다. 이것들이 표시하는 바는 간단하다. 민주당의 공약이 경제적으로 다소 터무니없는 데가 있었다는 것이다.
충분한 노임을 받고 있는 사람에겐 사실 경제적 공약이 덜 중요할 수 있다. 직장에서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수입이 창출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현재 젊은 중산층이 지지하는 사회자유주의적 정당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상업 종사자들이나 투자 소득 비율이 높아지는 40대 중반 이상, 그리고 여성들에겐 경제 공약이 중요하다. 저임금 노동자들 또한 보다 높은 경제적 안정성을 필요로 한다. 아직 민주당 내부 인사들과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은 그들의 경제 공약이 얼마나 허술하고 문제가 많았는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민주당의 미래는 여전히 암울하다. 현재의 민주당 인식 수준과, 친노들의 이번 보고서에 대한 반응 및 근래 민주당의 전반적인 정치 행위를 보고 있자면 좋게 볼 여지가 거의 없다. 120석 이상을 가진 거대 야당이라기엔 너무나도 분열되어있고, 힘이 없으며 어리석다. 안티이명박도 유통기한이 다한 상황에서, 민주당은 스스로 어떠한 가치를 창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어 심각하게 무능력하다.
민주당이 다시 긍정적인 모습을 보일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어쩌면 곧 사멸되고야 말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동안 민주당을 유지해온 힘이 점점 쇠락해가는 느낌이다. 그 대안이 안철수에게 있을지, 아니면 다른 누구에게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잘 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실망스러운 내용을 담은 보고서였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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