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때 안철수에 대한 유보적 지지를 보낸 주된 이유 중에 최장집이 있었다. 시작부터 안철수는 국회의원을 200명으로 줄이겠다는 등의 어이없는 발언을 했지만, 최장집과 같이 간다면 그런 뻘소리는 더 이상 없을 거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최장집과 갈라졌고, 그 이후의 행보를 보면 도저히 성공하기 힘든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근래 안철수가 도마에 올렸던 것 중 하나가 공천문제다. 정당이 공천을 하지 않겠다는 건, 국회의원을 200명으로 줄이겠다는 발상과 별 다를 게 없다. 안철수는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모자라고, 존중도 없다. 그리고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웠다.
민주주의는 너무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시스템이다. 현행 민주주의 시스템은 정당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소위 개혁적이라는 인물들이 정당의 힘을 와해시키며, 직접적으로 국민과 소통하고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식의 언행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이런 건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과 오만에서 나오는 것이다.
도시에서 출발한 초기의 민주주의와는 달리, 현대의 국가 단위 민주주의는 너무 큰 대상(Nation)을 다룰 뿐만 아니라 너무 전문적이고 복잡한 걸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현대의 민주주의는 전문가 집단과 안정적으로 고용된 정규직들(공무원)을 기반으로 한 체제를 구축하고 있으며, 여기에 국민들이 선거로 뽑은 지도자를 앉혀 전문 관료집단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사회를 운영하게 된다.
정당이 필요한 이유는 더 나은 정치인을 선별하고 육성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쇠락하지 않으려면 항상 새롭고 유능한 정치인들이 배출되어야 하며, 성공적인 회사가 그렇듯 정치인 또한 정당한 노력을 통해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새누리당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제대로 된 정당이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이합집산을 반복하며 전통을 잃어버렸고, 젊은 당원들을 키워낼 만한 상황도 아니며 입당 지원자도 별로 없고 실질적으로 정치 자영업자의 협회처럼 전락해버린 지 오래다.
정당에서 공천권을 빼자는 건 곤혹스러운 발상이다. 유능한 지도자가 지휘하는 정당이 유능한 정치인들을 발굴해서 시민들에게 소개하는 게 정상이다. 그것은 마치 유능한 소믈리에가 와인을 추천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니들 알아서 고르세요.’는 좋은 서비스가 아니다. 소믈리에가 괜히 있는 게 아니듯이, 정당인들도 아닌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새로 좋은 정치인을 발굴할 수 있단 말인가.
정당의 올바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선 정치인들이 바른 길을 걸을 수가 없다. 어떻게든 나서서 이름을 날리고 시민들의 눈도장을 찍어야만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정당이 힘을 잃고, 구심점이 되지도 못한다면 정치인들은 정당을 이용하려 들 뿐이다.
어리석은 실패한 실험들이 현재의 망가진 민주당을 만들었다. 새누리당이 그나마 현재의 위용을 갖추고 있는 것은 위기를 극복할 만한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고, 조직이 와해된 적이 없으며 이상한 실험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야권 지지자들은 민주당이 더 민주적이라 착각할지 모르겠지만, 훨씬 완성도 높은 민주주의 시스템을 가진 게 새누리당이고 그래서 새누리당이 선거 승률이 좋은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너무 많은 야권 지지자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개념을 못 잡고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깨시민들이 그리도 파시스트처럼 구는 거고. 뭐가 민주주의고 뭐가 수호자주의고 뭐가 파시즘인지, 뭐가 뭔지 아예 개념을 못 잡거든.
안철수는 최장집에게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고 본다. 정치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고집만 부리니까 최장집이 떠났으리라. 안철수에게서 어떠한 진보성을 찾을 수 있는지, 어떠한 새정치를 찾을 수 있는지 나로서는 더 이상 모르겠다. 수많은 이들이 빠졌던 함정에 안철수 또한 빠진 것이다. 이게 다 공부를 안 해서, 뭐가 옳고 그른지를 구분하지 못해서 그렇다. 안철수가 의술이나 프로그램은 알겠지만, 정치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결국 그는 올바른 말을 무시하고,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서는 그를 도우려던 사람들까지 배신해 버렸다.
현재 안철수가 제시하는 구조로 통합신당은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운이 좋아 집권을 하더라도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것이다. 정당으로서 구심점이 제대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때 잘 나갔던 열린우리당이 무너지는 데는 6개월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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