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NLL - 대북송금특검과 노무현의 인식

정치 2013. 10. 7. 19:21 Posted by 해양장미

 노무현의 NLL관련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자료 삭제 및 봉하 이관 문제에 있어 노무현 전대통령이 문제 소지를 만든 것이 아니었나 정도로 생각 중이다. 일단 본문에서는 그것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본문에서 우선적으로 이야기하려는 것은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과 줄곧 가져온 군사외교노선에 대한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군사외교적 성향은 당연히 이명박ㆍ‘박근혜정부’와는 차이가 있고, 내 생각엔 김대중 정부와도 꽤 차이가 있다. 나는 노무현 정권이 이 문제에서 비현실적인 면이 있었고, 그게 참여정부가 크게 좌충우돌하게 된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노무현은 대북문제에 있어 몇 가지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잘못 끼운 첫 단추는 유명한 대북송금특검이었다. 대북송금특검이 당시 한국 사회와 대북관계에 끼친 영향은 상당했고, 그 영향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나는 대북송금특검을 노무현 대통령이 강행하게 된 데에는 노무현의 정치적 아마추어리즘과 정몽준에 대한 악감정이 크게 한 몫 했다고 추정한다. 대북송금특검의 결과 김대중의 민주당과 현대그룹, 그리고 대북정책 등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결국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던 정몽헌은 자살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그 노무현도 정몽헌의 뒤를 따르게 되었지만. 당시의 분위기를 볼 수 있는 기사를 하나 링크한다.


<영남을 향한 뜨거운 프로포즈>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대통령은 도박을 하면 안 된다. 대통령이 손에 쥐고 있는 판돈은 국가와 국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 전대통령은 비현실적인 상황 인식 및 경남지역에 대한 편애로 도박을 걸었고, 그것은 한나라당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이 때 노무현의 태도와 이후 삼성X파일 사태가 터졌을 때의 이중적인 태도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파멸 직전이었던 한나라당이 기사회생하는 데 대북송금특검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당시 노무현 청와대가 가졌던 태도를 보여주는 기사를 링크하겠다. 대연정 제의까지, 더 나아가 고건의 발목을 잡을 때까지 노무현 정권이 가진 태도는 한결같은 데가 있었다.


<유인태 수석, 박희태 대표 방문>


 이후 대북관계는 급속히 냉각되고 만다. 김대중 정부 때는 남북이 어느 정도 대화도 하고 문제도 풀어가려는 움직임이 충분히 있었다. 재벌인 현대그룹까지 거기에 개입해 있었기 때문에, 그 반발도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그룹이 이탈하고 김대중 쪽 인물들이 조사를 받게 되면서 상황은 크게 악화되었다. 한국이 북조선에 대한 무언가를 행사해볼 수 있는 여력이 급속도로 사라졌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는 2004년 1월에 고 김근태 전 의원이 했던 인터뷰를 보면 조금 감을 잡을 수 있다.


<김근태, “김정일 설득할 사람은 DJ뿐”>


 이후 노무현 정권이 가졌던 군사외교 계획은 논란거리가 되었던 ‘동북아 균형자론’이었다. 이는 노무현 정권의 민족주의적 아이덴티티를 강하게 증명하는 것으로, 지금 생각해봐도 현실성이 부족했던 정책이었다. 주체성을 가지겠다는 건 좋지만, 사실 우리가 안 그래왔던 것은 아니다.[각주:1]


 다만 동북아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사력이 모여 있는 곳이다. 대한민국은 결코 만만한 국가가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타국의 눈치를 안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편으로 노무현 정권은 그 유명한 평택 대추리 사건을 일으킨다. 이것은 다들 알다시피 용산 등지에 있던 주한미군을 이전시키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 정권은 평택의 자국민을 우선시하지 못했고, 군대까지 투입하는 폭력적인 진압으로 악명을 떨쳤다. 동북아 균형자를 이야기하는 노무현이 먼저 보던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민족일 뿐, 그곳에 살고 있는 자유 시민들이 아니었다. 정의와 민주주의의 수호자같이 이야기하던 그는 말뿐인 대통령이었다. 이명박은 적어도 시위대를 향해 군대를 투입한 적은 없었다. 당시 대추리 상황에 대한 기사 하나를 링크한다.


<대추리 주민들 “땅 줄더라도 농사지으며 살 수 있도록 해달라”>


 전시작전권 문제도 이와 함께 터져 나왔다. 사실 줄곧 전시작전권을 한국에 되돌려주고 싶어 하는 것은 미국이고, 한국은 그걸 그냥 가지고 있으라고 떠넘기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는 여러 현실적인 이유가 있는데, 민족주의자들이 단편적으로 이해하기엔 어려운 문제다. 노무현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전시작전권을 빨리 환수하려 했는데, 이 면에서 사실 그는 (아마도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미국의 편을 든 것이었다. 이라크파병과 대추리 문제에서부터 전시작전권 문제, 그리고 더 나아가 한미 FTA까지 그는 줄곧 미국에게 어떤 주도권도 잡지 못했다. 정확히 말해 미국의 요구대로 끌려 다녔다고 보는 게 맞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후 다른 포스트에서 또 이야기할 일이 있을 것 같다. 이번 포스트에서 저 문제들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고, 실제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하는 건 노무현이었다.


 대한민국이 북조선에게도, 미국에게도 힘을 뭔가 행사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은 결과는 끔찍했다. 2006년엔 북조선의 1차 핵실험이 터지고 말았다. 이 결과 김대중 정권까지 싸잡혀 평가 절하되고 말았지만, 사실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의 외교 및 대북관계를 계승한 게 전혀 아니었다.


 그나마 노무현 임기 말 2차 남북정상회담이라도 할 수 있었던 데엔 김대중의 중재가 큰 공헌을 하였다. 김대중의 선택이 옳았건 틀렸건 그는 일관적이었고, 분명한 선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 노무현은 정의감이 있었을지는 모르나 미숙했고 여러 번 모순된 선택을 하였으며 비현실적이었다.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제의 발언이 터져 나온 걸 이해하려면 이런 각종 배경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문제의 NLL로 돌아가 보자. NLL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임의 설정되고 관례적으로 굳어진 황해상의 남북 경계선이라 할 수 있다. 휴전 당시 남북은 해상 경계선을 확정하지 않았고, 한국 및 유엔군은 황해 북쪽의 많은 섬들을 점령한 상태였다.


 한국은 이 면에서 휴전을 위해 북조선에게 북부 섬의 점령 권한을 양보하였다. 예를 들어 휴전 당시 한국&유엔군은 평양에서 80km도 안 떨어진, 대동강 하구에 위치한 석도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섬들을 점령하고 있으면 한국이 북조선에 대해 치명적인 군사작전을 전개할 수 있었기 때문에, 평화를 위해서는 포기해야만 했다. 한국은 결국 백령도를 최북단으로 하는 서해 5도만을 영토로 가져가게 된다. NLL이 한국에 유리한 방식으로 그어진 이유는 해상에서의 우위에 있었다.


 그러다보니 NLL은 북조선 입장에서는 숨이 턱턱 막히는 분계선일 수밖에 없다. 황해도는 서해 5도 덕에 바로 문 앞까지 조여진 상황이라 볼 수 있다. 북조선이 휴전조약을 폐기하고 국제법으로 나가자고 할 경우, 서해 5도의 앞바다는 북조선의 12해리 영해에 들어가게 된다. 북조선은 최소한의 군사적 분쟁으로 이를 국제분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 한국은 북조선에 비해 훨씬 우위에 있는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만, 군사적 충돌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이번 NLL 문건에 있어 노무현의 발언이 크게 비화가 된 것은 NLL을 딜의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교적 발언이라는 게 두루뭉실한 데가 있고, 이후 장관급 추가 협상에서 NLL은 지켜졌지만 시비가 걸릴 정도는 된다. 노무현은 NLL 근처에 평화수역을 조성하고, 대신 해주항을 개방해달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결론적으로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이게 성사되었을 때 어떻게 되었을까?


 내 견해는 다음과 같다. 노무현의 안보 의식은 느슨한 데가 있었고, 북조선에 대한 인식도 어느 정도 과하게 낭만적이었다. 등면적 공동어로구역을 만드는 대신 해주항을 개항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적어도 안보에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NLL은 굉장히 첨예한 적대적 해상경계선이다. 북조선과의 전쟁 가능성이 현존하는 한, 어떤 형태로든 NLL을 양보하는 건 위험할 수밖에 없다. 군사적 측면에서 서해 5도는 지극히 중요하다. 만일 공동어로구역 때문에 보안이 약화되어서 북조선의 기습 작전으로 서해 5도가 점령된다면, 한국은 바로 수도권이 위험해진다.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전쟁이 벌어진다면 초반에 서해 5도를 사수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공동어로구역이 생긴다면 서해 5도는 유사시 더 위험해진다.


 DMZ와 NLL의 가장 큰 차이는 DMZ는 명목상 완충지대지만 NLL은 그런 거 없다는 것이다. NLL은 바로 황해도와 서해5도의 좁은 해역 사이에 있고, 워낙 좁기에 완충지대가 있기 어렵다.


 한편으로 개성공단이 있는 이상 솔직히 해주항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있으면 물론 더 좋지만 없다고 해서 별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해주항을 개항할 경우 북조선도 위험을 더 감수해야하긴 하지만, 어차피 우리는 북조선을 먼저 공격할 계획이 없다. 만약 우리가 선공할 계획이 있다면야 해주항을 개방했다면 유리했겠지만, 당연히 그런 목적은 없었다.


 또 일부가 주장하듯 해주항을 평화적인 항구로 만들었다면 군사적으로 유리할 수 있었을까? 답은 NO. 우선 해주항에서 눈에 보이는 군함들을 치울 수는 있어도, 거기에 주둔한 병력을 없애는 것은 북조선 입장에서 불가능할 뿐더러 전쟁이 발발하는 동시에 해주항은 군사적인 항구로 변해버린다. 쉽게 말해 계산해보면 군사적으로는 전혀 이익이 아니라는 것.


 어쩌면 노무현은 해주항을 김정일이 양보할 리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발언을 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게 아니라도 노무현이 의도적으로 안보를 포기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정치적 쟁점으로 과하게 타오르고 있는 건 별로 좋은 현상이 아니다. 물론 화약에 앞뒤 안 가리고 불붙인 문재인이 책임지고 국회의원 사퇴하거나, 최소한 반성하는 성명을 내는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1. 소위 진보주의자들이 가져왔던 가장 비현실적인 인식이 대한민국이 미국에 대해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것인데, 사실 굳이 보자면 한국은 어느 정도 미국을 착취해온 나라에 가깝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