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지하경제 양성화 공약과는 정반대로, 근래 지하경제의 성장은 내 눈에까지 가시적으로 보이고 있다. 특히 그 움직임 양상이 조세회피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장기적 투기라는 점에서 경제에 끼칠 마이너스가 심각하다 할 수 있겠다.


 이 문제가 시작된 주된 원인은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금액이 올해 1월 1일부터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내려갔다 데 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금액 이하의 금융소득에 대해서는 (모두들 적금 탈 때 경험해봤겠듯이) 15.4%의 세금을 일괄 부과하게 된다. 그런데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금액 이상의 금액에 대해서는 종합소득으로 계산하게 된다.


 종합소득은 누진세율이 붙기 때문에, 이는 결국 금융소득에 대한 세율이 증세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이는 사회주의적인 법률이고, 근래 한국 사회가 사회주의적인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일례이다.


 그런데 이렇게 과세표준을 바꾸면 실제로 서민에게, 그리고 국가와 사회에 좋을까?


 이제 본문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사회주의와 초기 케인즈주의가 실패한 원인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분명한 것은 과세를 늘린다 해서 그만큼 세수가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해당 시민이 받아들이지 않는 과세는 결국 강경한 조세저항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금액 감소에 대하여, 시민들은 결코 그냥 과세당하지 않는다. 투자자들은 새로운 기준에 맞춰 최대한 절세하는 방향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성하였다.물론 이 과정은 필연적인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정부가 커지면 커질수록 비효율적이라는 말 속에는 이런 현실도 포함되어있다. 정부와 시민의 갈등은 필연적으로 ‘무의미하게 소모되는 비용’을 만들어버린다. 없었다면 보다 생산적인 데 쓰일 수 있었던 재화와 시간이다.


 그런데 이 포트폴리오의 재편성 방향은 당연하게도, 일정 이상 정부의 눈을 피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사실 절세를 위해 노력해본 사람은 모두가 알겠지만, - 돈 없고 앞으로도 없을 ‘실패한 먹물’들은 이걸 잘 모르지만 - 어떠한 과세 체계도 어느 정도 합법적으로 피해나갈 방법은 있다. 심지어 잘만 하면 100% 피하는 것도 불가능한건 아니다. 다만 이 과정에 그 나름대로의 적잖은 비용이 필요할 뿐이다.


 2월 말부터 4월 말까지 은행에 예금되어있던 정기예금이 약 5조원 줄어들었다. 금리의 저하 문제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이 정도의 이탈이 일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 이런 변화의 주요인은 은행권 예금은 정부의 눈에 바로 가시적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다. 은행에 예금된 돈은 지급준비율을 제외한 나머지, 즉 정기예금의 경우 예금액의 98%에 해당하는 금액이 다시 대출되어 시장에 흘러 다니는 유동자금이 된다. 그리고 이 유동자금이 흘러 또 예금이 되면, 그건 다시 지급준비율을 제외하고 대출됨으로 호황을 불러오게 된다. 그러나 세금을 피해 지하로 숨기 시작한 돈은 그렇지 않다.


 여기엔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박근혜 정부의 정책도 한몫하고 있다. 분명 역설적인 결과가 나오고 있는 것인데, 현 정부는 국세청에 의해 ‘탈세가 의심될 경우’ 보다 쉽게 금융정보를 받아볼 수 있도록 법을 바꾸려고 하고 있다. 현재의 기준은 ‘조세범죄 혐의’가 있을 때에만 금융정보를 받아볼 수 있다. 당연히 ‘탈세 의심’과 ‘조세범죄 혐의’ 사이엔 엄청난 격차가 있다.


 그런데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세금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이러한 금융에 대한 변화는 지하경제가 밝은 양지로 나오게 하기보다는 더 깊이 숨어버리도록 조장하고 있다. 실제 사람들의 대응이 어떨까?


 답은 간단하다. 금괴, 즉 골드바 판매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특히 추적이 쉽게 되는 은행 골드바 판매가 아닌, 추적이 어려운 시중 골드바 판매가 늘어났다. 시중 골드바는 현재 은행 골드바보다 훨씬 비싼 상황이지만, 그래도 없어서 못 팔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가정용 금고에 그 금괴들을 보관하기 시작했다. 국제 금값이 크게 내려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사람들은 개의치 않는다. 금값이 다시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세금폭탄을 얻어맞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여기엔 상속문제가 걸려있기도 하다.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금괴를 몰래 상속할 경우 어지간한 거액이 양지에서 일시에 움직이지 않는 한 그걸 잡아낼 방법은 거의 없다.


 근래 경제민주화니 복지니 하는 좌파적 화두가 대두되었었다. 이 모든 움직임은 그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방안이 성공한 역사는 실제 1970년대 이후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시민들은 정부의 증세 정책에 결코 순종하지 않는다. 각각의 시민은 개개인이 처한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주체이다. 시민사회는 근래 들어 여러 모로 커졌고, 정보를 다루는 기술이 발전해 대응속도도 과거에 비해 훨씬 빨라졌다. 이제 정부는 시민을 이기는 게 쉽지 않다. 특히 세금문제에서 정부가 상대해야 하는 시민들은 시민들 중 가장 강하고 영민한 자들이다. 힘은 정부가 강할지 몰라도 정부의 일은 결국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에 비해 시민의 대응과 회피는 훨씬 빠를 수밖에 없다.


 현 시점에서, 좌파적 의제에 의한 법률의 변화방향은 결국 가장 진중한 가치투자자들이 설 자리를 좁혀버렸다. 이럴 때 투자 양상은 보다 투기적이고 불법적인, 또는 각종 꼼수를 동원하는 양상이 되어버리기 마련이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세금을 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 예외적인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 정말 없다. 기부를 하면 했지.


 한국의 경우 금융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조업에서 무역흑자를 크게 기록하더라도 그걸 금융에서 잃는 게 현실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무역흑자를 쉽게 상회하곤 한다. 그런데 정부의 규제 방안은 건전한 투자를 방해하고, 투기를 조장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특히 금을 사서 금고에 넣어두는 것만큼 ‘나쁜’ 투기는 없다. 금고에서 잠자는 금은 다른 투자자산과는 달리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주식이나 채권, 또는 예금을 구매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투자다. 그 돈은 결국 제조와 서비스, 각종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투자금액인 것이다. 아니면 유전의 지분에 투자하더라도 그 석유를 퍼 쓰는 한은 투자라 할 수 있다. 물론 석유를 지하에 잔뜩 묻어두고 풀어주지 않으면 그건 수요-공급을 교란하는 투기가 되겠지만.


 금고에서 잠자는 금괴의 금액만큼, 시장에서는 돈이 사라져버린다. 돈은 흘러 다녀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바람직하게 투자된 돈은 엄청나게 증식하며 시장을 활성화시킨다. 투기 소리를 듣긴 하지만 부동산을 사는 것도 바람직한 투자다. 부동산에서는 사람이 살면서 일을 하고, 농작물과 가축이 자라기에 결국 전체적인 사회의 부를 늘리기 마련이다. 아니면 나대지를 놀리더라도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그린벨트도 가치가 있으니까. 그러나 금괴는 정말 아무 것도 안한다. 금고 속 금괴야말로 최악의 오리지널 투기다. 매도하기 전엔 절대 움직이지도 않는, 통화의 블랙홀이기도 하다. 특히 세계 금값이 하락추세에 있기 때문에, 만약 크게 하락할 경우 반등이 있기 전까진 금괴가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위에 말했듯 좌파적, 사회주의적 사회 분위기와 그로 인해 생긴 각종 법률이 최악의 투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거다. 돈이 숨다 보면 불황이 오고, 불황이 오면 금리를 내리고 돈을 더 풀어야하고, 이러다 보면 물가가 오르고 바람직한 투자자나 서민이 결국 피해를 보기 마련이다.


 자칭 진보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은 결코 ‘왜 자본주의에서 그래도 사회주의보단 서민이 잘사는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략 그 중 99%는 정말 몰라서 말을 못하는 거고, 1%는 자신의 밥줄을 위해 알아도 말하지 않는다.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변경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물론 자칭좌파들은 그런 비난을 앞세울 것이다. 그러나 본래 민주주의의 출발은 ‘국가에 의한 사유재산 및 각종 권리에 대한 침해’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되었다. 국가는 유사시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사유재산을 뜯어가려 하지만, 개인은 그걸 지키려 노력하기 마련이다. 물론 항상 이러한 갈등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은 사회적 비용의 지출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 한다. 그 결정권이 기부는 많이 하는 사람도 세금은 내기 싫어하는 이유다.


 신뢰의 문제도 있다. 내가 사회로부터 많은 걸 이미 얻었고, 내가 세금을 내더라도 사회가 그걸로 더 ‘우리가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조세저항은 줄어들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이런 건 요원한 일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사실 복지 제도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문제를 일으킬 경우 얼마나 조절하기 어려운지 잘 체감하고 있다. 건강보험재정과 국민연금이 그것이다. 우리는 막대한 건강보험 적자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국민연금 문제도 어찌 손을 못 대고 있다. 그런데도 좌파적 담론들과 분노를 앞세우는 분노조절장애 환자들은 일단 복지부터 늘리자 한다.


 냉정하게 말해서 복지 재정 왕창 늘려봐야 그 효과를 보는 사람은 소수고, 체감이 잘 되는 경우도 드물다. 그러나 복지를 늘린다는 증세담론에 의해 피해를 입는 통화와 각종 자산, 그리고 기업의 문제는 결국 돌고 돌아 모두에게 적잖은 피해를 줄 수도 있다. 많은 양의 돈이 빨리, 잘 돌수록 결국 개개인의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는 돈도 많아진다. 그러나 돈이 어딘가로 계속 증발해버리면, 결국 못 사는 사람의 주머니가 먼저 말라버리기 마련이다. 얕은 개울이 먼저 말라버리듯.


 마지막으로 이 글은 복지 제도를 보다 양질의 것으로 만드는 데 대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복지의 퀄리티를 늘리는 데 있어 반드시 증세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또한 증세를 하더라도 보다 조세저항이나 부작용이 적은 방향을 선택하는 게 필요하다. 섣부른 증세와 복지만큼 위험한 것도 드물다는 게 이 글에서 꼭 하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