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최진리)가 죽었다고 합니다.

사회 2019. 10. 15. 00:53 Posted by 해양장미

https://youtu.be/SQ2s3Oicr4o

 

 설리에는 이 노래.




 자살 소식을 듣고 노무현이 죽었을 때와 비슷한 정도로 심정적인 동요가 있었습니다.


 

 일단 원칙적인 이야기부터 해 볼까요. 나는 모든 자살한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존중을 우선적으로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살에는 각자의 절박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것이 쉬운 선택인 경우는 없기 때문에 존중이 우선입니다. 남은 이들의 심정이 자살한 사람 본인의 심정보다 우선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설리는 역시나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고 하는데, 심한 우울증 환자의 자살 성공은 그 자신에게는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설리 본인은 죽은 게 그리 나쁘지 않을 겁니다. 중증의 우울증은 치유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환자 본인은 적잖은 고통을 상시로 감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울증이라는 건 말 그대로 그냥 우울감을 느끼는 병이 아닙니다. 그 병명은 잘못되었습니다. 우울증의 주 증상은 무기력, 허망감이나 공허감, 대책 없는 절망감입니다. 그건 인과가 불분명한 정신적인 통증질환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울증 환자가 자살하면 어째서 어제까지 멀쩡하게 돌아다니던 사람이 죽는지 잘 이해를 못 합니다. 그런데 우울증 환자는 대체로 평소에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일상적으로 합니다. 그러니까 언제 죽어도 딱히 이상할 건 없습니다. 보통 상태가 너무 나쁘면 못 죽고요. 좀 상태가 괜찮을 때 죽습니다. 다만 이번에 설리는 부검을 한다고 하니, 약물 등의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긴 합니다.


 

 한편으로 설리는 천장 등에 목을 매달아 죽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무계획적이고 성공률이 낮은 방식입니다. 대체로 이런 식의 자살은 충동적이고, 성공하건 실패하건 운명에 따른다는 식으로 보입니다. 살고 싶기도 하고 죽고 싶기도 할 때 그런 방식을 쓴다고 생각하는데, 결과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정황상 설리는 이미 과거부터 여러 번의 자살 시도가 있었습니다.


 

 나는 연예인 설리의 팬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f(x)에 데뷔하기 전부터 화면을 통해 보면서 대체로 응원하고 좋게 보는 편이었습니다. 설리가 최자와 사귀면서 온갖 소리 다 들을 때 공개적으로 설리 편을 든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 입장을 유지합니다. 설리는 근래 마이웨이로 살았고 이번에도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설리의 선택을 존중하며, 본인이 죽음을 바란 것이라면 일단 인정하고 축하해 주겠습니다. 사람들은 설리의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을 아주 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설리는 참 악플이 많은 연예인이었습니다. 우울증에 걸리면 사소한 스트레스들에도 취약해지기 때문에, 악플을 견디기 어렵게 됩니다. 분명히 그런 악플들은 설리의 죽음에 영향을 꽤 줬을 것입니다.


 

 물론 f(x)에서 설리가 보인 모습은 영 좋지 않았고, 진나빛 사건, 장어 사건 등에서 보인 설리의 인성은 성숙되었다고 하긴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불안정한 면이 있고, 무난하지 못한 성정을 가졌다고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게 일상적인 악플에 시달리고 죽음에까지 이를 문제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녀가 튀는 행동을 보일 때마다 많은 이들이 공격적인 발언을 일삼아왔습니다. 그렇게 타인을 함부로 공격하고 상처 주는 말을 일삼는 자들이 이번에도 훌륭하게 살인을 저질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살인자들 중 가장 악질인 부류가 누구인지 압니다. 걸핏하면 여자 연예인에 대한 극악한 공격을 일삼고, 여성의 권익을 이야기하면서 정치 권력하고까지 결탁한 부류가 있지요. 앞으로 그것들과 투쟁하는 건 설리에 대한 나름대로의 추모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청년층의 고립된 정치지지, 아마도 그 한 원인

정치 2019. 10. 13. 12:49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youtu.be/WaPOQacn2qw

 


 

 현재의 30대와 그 아래 연령대는 아주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30대 이상의 연령대는 맞고 자랐다는 겁니다. 부모가 체벌을 하지 않았더라도 학교 교사들의 무분별하고 비인도적인 폭행 속에 자라났고, 대다수의 남성들의 경우 역시나 폭력이 사라지지 않았던 군대에 다녀오기도 했지요.


 

 그래서 30대 이상은 대체로 폭력교사들에 대한 아주 깊은 부정적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랬던 잘못된 세상이 어떻게 고쳐졌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교사들에 의한 폭력을 처음으로 완화시킨 건 김대중 정권이었습니다. 민주진보개혁세력이 교사들에 의해 만연하던 학교폭력을 없앴습니다. 교사들에 의한 폭행이 사라진 현재의 학교가 과거의 학교보다 꼭 좋은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의 1020대는 과거의 교사들이 얼마나 정신이 나간 자들이었는지 잘 모를 것입니다. 30대 이상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인권이 없었습니다. 인권이 침해당한 기억은 30대 이상에게는 보편적인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딱히 부정적인 인식조차 없이, 그냥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학생이 대다수이긴 했습니다만 그렇다 해도 부당하게 일상적으로 얻어맞은 기억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많은 교사들은 1990년대에만 해도 명백하게 감정적인 이유로 학생들을 때리고 학대했었습니다. 본질적으로 폭력을 즐기기 위해 학생을 마구 때리는 교사들도 꽤 있었습니다. 그런 교사들은 자차가 아니면 거리를 다니지 않더라고요.


 

 그랬던 현실에서 당시 보수우파는 이유 없이 두들겨 맞던 청소년들 편을 전혀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한국놈들은 맞으면서 커야 정신 차린다는 무개념한 발언을 공공연하게 하던 자들도 있었는데, 대체로 자칭타칭 보수우파였습니다. 그런 청소년들 편을 들어주던 게 민주개혁세력이었습니다.


 

 마침 21세기에 접어들던 시대는 엄청나게 빠르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90년대에서 00년대는 사회변화가 빠르던 시기입니다. 2010년대는 대조적이라 할 만큼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변화가 더딘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하튼 그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던 청년들은, 교사들의 폭행과 학대를 옹호하고 각종 변화에 뒤쳐진 보수우파를 자격 없다고 판단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 때와는 또 다르지요. 지금은 민주당 간판을 단 자들이 파시스틱할 뿐만 아니라 청년, 특히 청년남성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청년들이 이 정권에 강한 반발을 하고 있는데요. 지금 1020 남성들이 문재인 정권에 대해 느끼는 악감정을 현재의 3040대는 한나라당 세력에 가졌던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좀 든다고 그 나쁜 인식이 쉽게 변하지는 않습니다. 누구나 정치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는 건 아니고, 변한 현실과 상황을 실시간으로 명징하게 인지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편하고 빠르게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20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20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리지만, 배운 것에 어떤 현실이 어긋나는지는 금방 파악합니다. 즉 학생들에게 우리 사회가 올바른 기준을 가르쳤다면, 그 기준에 무엇이 어긋나는지를 판단하는 데는 청년들이 뛰어납니다.


 

 도덕이 붕괴한 사회입니다. 집권여당은 명백하게 부도덕하며, 위선으로 바름을 모독합니다. 그 추종자들은 물론 가장 적극적인 도덕 파괴자들입니다. 현실에 적응하고 익숙해진 어른들보다는 도덕적 지식을 학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들이 보다 더 현실적 부정에 민감하기 마련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존중받는 어른이 되고 싶은 자들은 청년들의 목소리를 수용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귀를 열고 들어는 봐야 합니다. 듣는 귀가 없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면 문재인처럼 늙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