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이야기하면 길어지니 최대한 간단하게만 이야기합니다. 너무 더워서 할 말 다 할 기운이 없습니다. 광복절/건국절에 맞춰서 씁니다.
1) 개인적으로는 1945년 8월 15일은 일제로부터 조선(대한제국)이 독립한 날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날은 당시를 살아가던 조선인들에게 ‘불행 끝, 행복 시작’인 날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나마 살만하던 조선반도에 헬게이트가 열리던 날이었지요.
2) 1945년 8월 15일 당시 조선반도를 기준으로, 임시정부 세력을 특별히 볼 이유는 없었습니다. 당시 임시정부 외에도 많은 독립운동 단체들이 있었고, 임시정부는 대표성이 없었습니다. 특히 당시 가장 민중들 사이에서 지지도 높던 여운형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도 인정하지 않았고, 임시정부 세력 또한 대표성 없다고 봤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에 비해 임시정부는 그야말로 엉망인 조직이었고, 실제 조선독립운동의 대표자 자격이 있다 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3) 개인적으로는 고종이 죽자마자 임시 공화국 정부 세운 사람들, 특히 독립협회 출신들을 결코 순수하게 안 봅니다. 그 집단이 괜히 민족주의 내세운 게 아닙니다. 조선 왕조의 정통성이 상실되었으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당시 왕족들 중 공화국 수립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만, 입헌군주제도 아닌 공화정을 밀어붙인 건 본질적으로 해당 인물들의 권력욕에 의한 것으로 봅니다. 임정 수립 시점에서 조선 왕당파는 이미 몰락했다 할 수 있긴 합니다만, 과거 고종한테 반역단체로 조치 당했던 독립협회 인물들이 임시정부 수립에 많이 관여했던 건 단순하게 볼 일이 아닙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일시적으로 대세에 따랐던 독립운동가들도 있습니다만, 곧 갈라섰지요.
이후 임시정부의 행보를 보면 그런 단체가 조선독립의 대표성을 가진다 결코 인정할 수 없습니다. 특히 김구는 흑역사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사람들이 잘 모를 뿐이지요.
4) 임시정부가 조명 받게 된 건 대체로 나중의 일입니다.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니까요. 결코 온전한 국가는커녕, 조선 왕조의 정통성도 잇지 못한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정통 취급을 받게 된 건 어디까지나 이승만 파벌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객관적으로 한국 상황을 보면 1948년에 대한민국이 수립된 게 어떤 기준에서 봐도 맞습니다. 국가의 구성 요소를 이때에야 다 갖췄고, 8월 15일에 맞춰 건국을 선언했지요. 특히 이승만 본인이 분명히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딱히 논란거리도 아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에 취임했고, 건국 50년을 강조했어요. 제 2의 건국을 하자는 말도 했지요. 이 때만 해도 아무도 48년 건국에 대해 뭐라 안했습니다. 노무현 정권 때도 건국 년도에 대한 이견은 없었습니다.
5) 대한민국 건국 년도에 대한 논란은 극히 최근에 일어났습니다. 사실 논란거리가 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설령 상해임시정부의 모든 것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은 임시정부 수립일 뿐 정식정부 수립이나 건국이 아닙니다. 그 어떤 기준에서 봐도, 상해임시정부는 조선의 적통도 아니었고 망명정부도 아니었으며 국가의 구성 요소를 갖추지 못한 선언에 불과하였습니다.
6) 당장 광복 이후만 봐도 대한민국이 안정적으로 수립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었습니다. 미 군정의 신탁통치는 오래 지속될 수도 있었고, 사회 혼란이 극심하여 일제 때보다 여러 모로 좋지 못한 시기였습니다. 물론 이승만 집권기는 더 심한 암흑기이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미 군정에서 독립해 주권국가를 세웠다 선언한 1948년 8월 15일은 나름대로 기념할 가치는 있습니다. 일제로부터의 독립만 독립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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