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이 취임 후 1년도 안 되어 서울시 빚을 무려 1조 2천억이나 줄였다는 말은 어느 정도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런데 나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좀 의아했던 게, 도대체 어떻게 그 시간 동안에 그런 막대한 빚을 갚을 수 있었을까?였다. 1조가 넘는 빚이라는 건 정말 엄청난 액수다.


 그런데 이게 숫자놀이라는 공방이 이미 시의회에서 있었던 것 같고, 나는 좀 뒤늦게야 이 내용의 상세한 것들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는 참으로 황당하다는 기분이 들어 블로그에 글을 적으려 한다.


 서울시의 채무[각주:1]는 2011년 말 기준 18조 6844억원이었다. 그리고 이중 SH공사의 채무가 66%인 12조 2672억원 이었다. 박원순이 줄였다는 1조 2천억원은 이 SH공사의 채무를 줄인 것이었다.


 그런데 SH공사의 채무가 별 문제를 일으키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SH공사는 신용등급이 무려 AAA에 이르는, 채무 자체는 많지만 그 채무가 문제를 일으킬 확률은 삼성전자 수준으로 낮은 (실제 동일 신용등급인) 공사다. 그런데 박원순은 이 SH공사의 채무를 ‘회계적으로’줄였다.


 이것을 요약해 이야기하자면 박원순이 줄였다는 채무는 다음과 같은 분야로 이루어져 있다.


1) ABS발행 5300억

2) 마곡지구 택지 매각 3000억

3) 현금 상환 2000억

4) 투자 지연 2000억


 이렇게 합쳐서 1조 2천억 이상의 채무를 ‘회계적으로만’ 줄였다.


 회계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는 분들은 이미 이게 무슨 뜻인지 대략 감을 잡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곡지구를 매각해 빚을 갚거나 가지고 있던 현금성 자산으로 빚을 갚은 건 말 그대로 그냥 원래 있던 자본으로 채무를 상환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일정 이상 정치적 고려로 나온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 위에 이야기했듯 SH공사는 채무가 문제를 일으키던 공사는 아니다. 이익잉여금도 1조원이나 쌓아둔, 아주 건실한 회사다. AAA라는 신용등급은 정말 쉽게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이런 행위는 원래 적금도 꽤 있고, 집도 있고, 은행 대출도 좀 있던 사람이 적금 깨고 집 팔아서 대출 갚은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선택이 과연 순수하게 SH공사의 경영상의 이유로 이루어진 것일지는 의심해볼만 하다. 박원순은 부임 이후 채무를 줄이라고 지속적으로 막무가내 압력을 넣었고, 그 결과 올 2월 SH공사 사장이 사임하겠다고 했다가 박원순이 붙잡아서 무마되기까지 했었다.[각주:2] 2천억의 투자 지연 또한 원래 마곡에 하려고 했던 투자자금을 안 넣은 것이니, 채무를 줄였다고 기뻐할 것도 아니다. 이건 마치 돈 좀 있던 이혼녀가 새 결혼을 했는데, 새 남편이 대출 없애라고 우겨서 있던 집도 팔고, 적금도 깨고, 투자 하려던 것도 안 해서 대출금이 줄어든 것과 마찬가지다. 이걸 가지고 채무를 줄였다고 기뻐할 수 있을까? SH공사는 어차피 AAA 신용 회사라 공사채를 발행해도 이율이 상당히 낮을 뿐더러, 원래 SH공사가 하는 사업 자체가 굉장히 장기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 본래는 장기적 계획 하에 모든 행동을 해야 한다. 그러나 박원순은 자신의 치적을 쌓기 위해 정치논리를 적용해 버렸다.


 그렇다면 나머지 5300억의 ABS는 뭘까? 이건 회계적으로 좀 복잡한 개념이라 설명하기가 좀 곤혹스럽다. 쉽게 이야기해 채권 만기가 다가온 상태에서 새로운 차입을 좀 복잡하게 했다는 걸로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이게 SH공사가 쓰고 있는 K-GAAP 회계방식에서는 부채가 줄어든 것으로 기록된다.


 회계나 투자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으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K-GAAP는 구식 회계방식으로 이제는 더 이상 상장회사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새로운 회계기준인 K-IFRS 연결회계방식을 쓰면 ABS를 한다고 해서 부채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SH공사는 상장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아직 K-GAAP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방식에서는 ABS로 차입을 돌리면 그만큼 부채가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회계표시방식의 문제일 뿐, 실제론 전혀 부채를 줄인 게 아니다.[각주:3]


 즉 박원순이 서울시 빚을 1조 2천억 줄였다는 건 그냥 포퓰리즘 숫자놀이다. 그는 가진 자본으로 채무를 줄이고, 회계방식의 단점을 활용해 채무가 줄어든 것처럼 보이게 했을 뿐이다. 물론 이런 걸 일반 회사 사장이 해서 ‘우리 회사 채무 줄였다!’ 라고 하면 사기꾼 소리 듣기 딱 알맞다.


 결국 박원순은 대국민 사기를 치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9호선도 그렇고, 서울시 채무 문제도 그렇고 제돌이도 그렇고... 아직 이야기 안 했지만 새빛둥둥섬도 그렇고 도무지 제대로 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다른 이야기들은 다음 링크에서 다뤘다.


9호선 이야기[각주:4] 

제돌이 이야기 


 현실적으로 서울시 최대 부채 문제는 지하철 양 공사의 누적적자 문제다. 지하철 요금이 저렴하고, 무료로 지하철을 타는 노인 등의 문제로 누적채무가 이미 2011년에 3조원을 넘어선 상황이다. 이걸 해결하려면 지하철 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박원순은 실제 양 공사의 적자누계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민자가 손해보고 있는 9호선을 건드리면서 이미지 관리를 하는 중이다. 현재 박원순이 사실 그 나름대로 유력한 차후 대선 후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볼 때,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과연 어떤 행위를 할까 심히 우려가 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박원순이 처한 문제도 있다. 경기침체, 특히 부동산 경기침체와 그에 따른 각종 대응 등으로 예상 수익보다 실제 지자체 수입이 줄어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행보가 진정성이 충분하다 보기도 어렵다. 눈에 당장 보이는 정치적 파격의 대가는 참으로 비쌀 수 있다.


 실제 서울시의 채무는 줄었을지 몰라도, 부채는 늘었다. (이에 대해서는 각주 1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박원순은 결코 서울시의 빚을 줄인 게 아니다. 모두들 진실을 알 필요가 있다.


  1. 채무와 부채 사이엔 좀 차이가 있다. 회계에서는 사실 채무가 아닌 부채를 다루는데, 박원순이 줄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채가 아니라 채무다. 쉽게 이야기해서 부채 중 상환기간이 정해져 있고 이자가 발생하는 것을 채무라 보면 된다. 서울시의 실제 부채는 박원순 취임 이후 늘어났다. SH공사 임대보증금, 퇴직금 충당금 등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채무가 아닌 부채는 채무보다는 덜 부담스러운 것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부채가 늘어났기에 서울시의 재정이 좋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관련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5152229185&code=950201 [본문으로]
  2. 관련 기사. http://news.einfomax.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560 [본문으로]
  3. SH공사 사장의 주장에 의하면, ABS로 채무를 돌려서 25억 정도 이익을 볼 거라 기대하고 있다고는 한다. 물론 의원의 질의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다보니 변명일 수도 있고, 진짜라 해도 시장 이율은 계속 변하기에 계획대로 될 지 미지수이지만, 말대로 성공한다면 조금은 득을 봤다고 칭찬해줘도 좋을 거다. 물론 이 경우 금액은 5300억이 아닌 25억이다. [본문으로]
  4. 지난 포스트 작성 후 9호선 관련 1차 판결문 내용을 볼 수 있었다. 그 결과 판결에 대해 좀 긴가민가한 부분이 해결되었고, 당장은 일단 맥쿼리 측이 실수를 저지른 게 있어 서울시가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서울시 또한 큰 실수를 저지른 게 있어 어쩌면 차후 서울시가 큰 손해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것에 대해서는 차후 시간이 나면 추가 포스팅을 쓸까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