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의 한켠에서 자유를.

사회 2022. 11. 6. 23:27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youtu.be/bxw7ZNDAQ6k

 

 

 

 

 

 

1) 우리나라에서 잘 지켜지지는 않지만, 책임은 곧 권리입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가진다면, 그것은 바꿔 말하자면 국가가 국민의 생명에 대해 무한한 권리를 가진다는 뜻도 됩니다.

 

 자유롭다는 건 다치고 죽을 위험의 증가를 의미하는 면이 있습니다. 자유롭게 사는 야생동물은 가축에 비해 다치거나 죽을 위험이 있습니다. 가축은 상대적으로 보호받지요.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처럼 외치는 사람들은, 단적으로 이야기해 사람들이 가축처럼 살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세상은 통제될수록 가시적으로 안전해집니다. 물론 완벽하게 그렇게 된 사회는 디스토피아입니다.

 

 운이 없으면 비참하게 죽을 수 있는 게 자유입니다. 안전을 원해 울타리를 높이 칠수록 자유는 사라집니다. 우리들은 바위산의 산양처럼 살고 싶은지, 목장의 면양처럼 살고 싶은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가축은 언제나 주인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2) 행복도가 높고, 남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타인에 별로 신경을 안 쓴다는 겁니다. 마이페이스로 산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언어부터 고맥락언어를 쓰고, 눈치보는 관습이 강하고, 타인에게 간섭하는 걸 일상적으로 하다 보니 타인에게 신경을 안 쓰는 성격으로 자라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한국인은 불행하고, 정신적으로 병이 들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믿을 때, 주변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느낄 때, 그리고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을 때, 주어지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함을 느낄 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불행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내적 만족감이 없으니까 타인을 공격하고 다닙니다. 유감스럽게도 스마트폰의 보급과 초연결 사회의 도래는 그러한 공격적인 대중을 양산하였습니다. 특히 어떠한 정당성이 부여될 때, 공격적인 대중은 거리낌없이 폭력적인 모습을 표출하곤 합니다.

 

 

 

 

 

 

 

3) 이태원 압사 사고를 예방해서 막았어야 했다. 정권의 책임이다. 라고 주장하는 부류를 많이 봅니다. 대체로는 정치에 뇌가 오염되어서, 또는 정신적으로 취약해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데요.

 

 사고가 난 쪽 골목은 경찰이 인파를 통제하고 뭘 어쩔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진짜로 길이 좁음에도 잘 나가는 가게가 많은 핫플레이스인데,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서 난 압사사고일 뿐입니다. 그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적어도 자유국가에서는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한 이야기지만 이태원에서 인파 통제를 하고 싶다면 공식적인 행사가 치러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인파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경우 입점 상인들의 심각한 반대를 뚫어야 합니다. 이태원 상권의 임대료를 고려할 때 헬로윈 같은 날의 매출은 사업의 생사를 좌우하는 일입니다. 지성과 교양이 있는 시민이라면 경찰이 함부로 어쩔 수 있는 건이 아니라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4) 세월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시끄러운 사람들이 진짜로 관심이 있는 쪽은 진실이나 피해자를 더 만들지 않는 게 아닙니다. 대체로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거나, 정서적 만족을 위해 누군가를 악당으로 지목하고 싶어하고 그런 게 진짜 목적입니다. 물론 본인들은 스스로가 어떤 언행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인식도 못합니다. 자기 정당화에 능한 사람들이거든요.

 

 나는 현 정권을 옹호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대응이 영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정말 불난 데 부채질하는 데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권을 끌어내리는 수단으로 세월호 때 그러하였듯 이태원 트라우마 팬데믹을 전국민적으로 부채질하려 드는 부류에게는 악의와 권력욕밖에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음침하고 우울한 곳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살아가는 시간은 가까운 사람을 잃는 일이 반복되는 시간입니다. 일가 친척이 많을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장례는 일상적인 일이 되고, 부모와 형제자매를, 그리고 때로는 자식의 죽음을 겪고 받아들이는 일도 보통 언젠가는 겪게 됩니다. 그 또한 삶의 일부이며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지요.

 

 가까운 피붙이가 사망했을 경우, 어쨌든 빨리 그것을 받아들이고 정서의 회복을 도모해야 합니다. 죽은 사람은 떠나보내고, 살아있는 사람은 계속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세월호 때 선동꾼들은 그러한 자연스럽고 건강한 흐름을 방해하였고, 전 국민에게 트라우마를 떠안겼습니다. 대다수의 유가족들이 자연스럽게 감정을 정리할 수 없게 만든 건 덤입니다.

 

 2014년에 나는 악마를 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한 번 준동하고 있습니다.

 

 

 

 

5) 장자는 아내가 죽었을 때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내를 싫어했던 게 아니고, 삶과 죽음이 자연적인 것이기에 마냥 슬퍼할 이유가 없다고 자연법칙을 받아들인 것이었지요. 장자는 자신이 죽을 때 제자들이 성대하게 장사를 지내려는 것도 마다하였습니다.

 

 현대 우리나라는 장자와 같은 사상을 공격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장자가 틀린 게 아니지요. 디스토피아는 사회 전체의 구조와 기반이 지나치게 인공적이면서, 그것에 균형이 없고 누군가의 권력이 과하게 우선시될 때 발생한다 할 수 있습니다. 고도로 발전한 문명화된 사회라 할지라도 결국 인류도 자연의 일부고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자연적인 것은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데, 여전히 마음은 동화 속 공주인 여자들과 칼싸움 한 번 해본 적 없는 피터팬들이 현실을 부정하고 세상을 디스토피아로 물들여가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 와중에 시위를 하려던 한국 페미니즘 연대가 유가족들의 요청으로 시위를 취소했다 하니 현재진행형 디스토피아 중 그나마 다행입니다.

 

 

 

 

 

 

6)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시작한 올해는 음침한 연말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음침함을, 불행을, 슬픔을 강요할지언정 즐겁고 따스한 한 해의 마무리로 남은 시간을 가꿔나가시길 바랍니다.